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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확실, 고통 없는 ‘자살 세트’를 판매합니다.” 지난달 3일 서울지방경찰청은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일명 ‘자살 세트’를 판매한 브로커 송모 씨(55)와 이모 씨(38)를 자살방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질소가스와 신경안정제 등으로 구성된 이 세트는 스스로 목숨을 끊길 바라는 이들에게 돈을 받고 판매됐다. 한국이 200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가 3일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되는 ‘자살 조장 정보’에 대해 시정을 요구한 현황을 공개했는데, 올해 1분기(1∼3월)에만 317건이나 됐다. 지난해 1년 전체 시정 요구가 276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방심위에 따르면 자살 조장 정보는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같이 가실 분 연락 주세요’처럼 함께 자살을 시도할 사람을 구하는 내용 △‘연탄으로 고통 없이 가는 방법’ 등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거나 자살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내용이다. 최광호 법질서보호팀장은 “지난해부터 관련 심의를 강화해 왔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라며 “자살 정보라도 신세 한탄 수준의 경미한 케이스는 제외했음에도 이만큼 많은 사례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조사에서 ‘문서 위조 정보’ 역시 매우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인터넷과 SNS에선 주민등록증을 비롯해 인감증명서나 통장, 대학성적증명서 등 각종 불법 서류 위조를 알선하는 내용이 무차별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관련 시정 요구는 1년 동안 1493건이었는데 올해는 1분기에만 1156건이 나왔다. 3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대비 77.4%에 이른다. 방심위는 “두 정보 모두 사회적 폐해가 심각한 만큼 경찰청과 대한의사협회 등 관계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해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구가인 채널A 기자}
《“이런 개소리 좀 시키지 마요. 지원동기? 몰라서 물어요? 먹고살려고 지원했습니다!”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지금 눈에서 흐르는 건 땀일 뿐이야. 야근을 하다 컵라면을 먹던 에이전트26(유원모 기자)은 순간 체증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아니, TV에서 저렇게 내 맘을 후벼 파다니. 갑자기 업무만 냅다 떠안기고 팔랑팔랑 퇴근한 에이전트2(정양환 기자)의 뒤통수가 떠올라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TV, 직장인 얘기가 참 많이 나온다. 한때 사극과 판타지로맨스밖에 없더니 ‘현실의 회사’가 무대인 드라마가 연이어 쏟아졌다. ‘자체발광…’을 비롯해 KBS2 ‘김과장’, SBS ‘초인가족 2017’, KBS2 주말극 ‘아버지가 이상해’까지. 뭐, 100% 리얼하진 않아도 평범한 직장생활의 애환을 조명하려는 노력은 박수 받을 만하다. 진짜 직장인 눈엔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특히 최근 드라마엔 ‘자체발광…’ 계약직 신입사원 은호원(고아성)이나 ‘아버지…’의 늦깎이 인턴 변미영(정소민), ‘김과장’ 경리부 대리 윤하경(남상미), ‘초인가족…’ 모태솔로 대리 안정민(박희본) 등 사회생활에 고단한 여성 캐릭터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40대 실제 여성 직장인에게 촌평을 부탁해 봤다. ▽신모 팀장(44·유통 회사)=‘김과장’ 보면 나희용 윤리경영실장(김재화)이 나와. 학교로 치면 엄한 학생주임이랄까. 살짝 뜨끔했어. 평소 팀원들 복장이나 근태에 엄격한 편이거든. 아, 나도 저리 얄미운 시누이로 보이겠구나 싶었지. ▽이모 대리(32·공기업)=굳이 따지면 안 대리랑 비슷해. 미혼인 데다 감정 기복 별로 없고. 근데 확실히 남성 직원들은 여성 동료의 연애나 결혼에 쉽게 한마디씩 해. 항의하면 ‘농담인데 왜 정색하나’ 하지. 어느 순간 한 귀로 흘리는 게 신상에 이롭단걸 깨달았지. ▽김모 사원(25·호텔)=‘자체발광…’ 보며 3년 전이 떠올랐어. 그땐 취직만 시켜주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줄 수 있었는데…. 근데 사람 참 간사하지. 지금은 이 일이 적성에 맞나 고민이 커. 입사 동기들도 만나면 이직, ‘취집’(취업 대신 시집) 얘기야. ▽신 팀장=tvN ‘미생’(2014년) 때문인가. 한국 드라마도 확실히 달라졌어. 옛날엔 회사를 무슨 연애집합소로 그렸잖아. 요즘은 그나마 직장인 같더라고. 아, 변미영은 자신을 ‘왕따’시켰던 고교 동창을 상사로 만나잖아? 그 정돈 아닌데 지난해 대학동아리 후배를 클라이언트로 만났어. 정말 많이 혼냈던 앤데, 어찌나 불편하던지. ▽이 대리=정말 공감 가는 건 주인공이 아니야. ‘김과장’에서 다른 직원들은 상사한테 찍소리도 못 하잖아. 원래 사무실 분위기가 그래. 억울해도 조용히 넘어가고. 윤 대리처럼 임원한테 대드는 건 꿈도 못 꿔봤지. 그나마 옛날 드라마는 여성들이 ‘민폐 캐릭터’였잖아? 윤 대리는 일만큼은 딱 부러지게 잘해. 그게 이 시대 여직원의 사는 방식이야. ▽김 사원=그럴까? 작품에서 남녀가 꽤 동등한 것처럼 묘사되잖아. 그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야. 여성들이 얼마나 눈치를 많이 보는데. 승진이나 대우에서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해. 그런 면에서 여직원이 주요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 여성으로서 느끼는 미묘함은 잡아내질 못하는 한계가 있어. ▽이 대리=맞아. ‘초인가족…’에서도 같은 대리지만 박원균(김기리)과 안정민은 동등한 위치가 아니야. 여성은 2, 3배 더 노력해야 인정받아. 특히 육아휴직 같은 불가피한 경력단절이 있다 보니 밀리는 경우도 많고. 그걸 따라잡으려고 미친 듯 일하는 여성 선배들 많아. 근데 웃긴 건 남성이 열심히 하면 ‘능력 있다’ 그러면서, 여성에겐 ‘독하다’고 말해. ▽김 사원=딴건 몰라도 ‘여자의 적은 여자’란 프레임은 좀 부수고 싶어. ‘아버지가…’나 ‘자체발광…’도 그런 구도가 나오는데, 현실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여성 동료가 꽤 돼. 그건 여성이 가장인 남성 직장인보다 절박함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만큼 잘못된 거 아닌가. ‘김과장’에 ‘사람을 잃으면 다 잃는 거다’란 말이 나오더라. 여성도 그런 연대의식을 좀 가질 필요가 있어. ▽신 팀장=계약직인 은호원이 상상 속에서 ‘몰라서 그랬으면 가르쳐주면 되잖아’라고 외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 근데 돌이켜보면 20년 넘게 사회생활 했지만 누구도 뭘 가르쳐준 적은 없어. 실수하면 ‘왜 안 물어보고 맘대로 했나’였고, 질문하면 ‘바쁜데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나’란 말을 들었지. 여직원에게 회사는 정글이야. 늪과 맹수가 가득한. 하지만 그거 알아? 남직원도 똑같아. 자빠지는 곳만 다를 뿐이지.(다음 회에 계속)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
“예능을 통해 우리 역사를 배우는 본격 ‘사(史)방’이 온다.” 채널A의 신규 야외 버라이어티쇼 ‘사심충만 오!쾌남(오쾌남)’이 이번 주 토요일(4월 1일) 오후 11시 첫 방송을 시작한다. 역사를 테마로 한 본격적인 예능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오쾌남’은 제목부터 ‘사심(史心)충만’, 즉 역사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득 채우겠다는 목표가 뚜렷한 예능프로그램이다. 최근 ‘먹방’(먹는 방송)이나 ‘쿡방’(요리 방송)이 입과 배를 채우는 방송이라면, ‘오쾌남’은 역사 현장을 직접 살펴보며 머리를 채우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연출을 맡은 박세진 PD는 “학창 시절 수업은 들었지만 역사를 까맣게 잊고 산 ‘아재’들과 어릴 때부터 바쁜 연예계 생활로 기회조차 부족했던 ‘아이돌’들이 함께 역사를 배우며 얻는 감동을 담았다”고 말했다. ‘오쾌남’ 진행을 맡은 5명의 MC는 프로그램 콘셉트에 최적화된 캐스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 방송가에서 최고의 콤비로 꼽히는 방송인 김성주와 안정환 전 축구 국가대표가 다시 환상의 호흡을 맞춘다. 여기에 ‘프로 불참러’로 불리는 개그맨 조세호가 성실한 개근을 약속했고, MBC 드라마 ‘이산’의 홍국영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한상진도 한 자리를 꿰찼다. 마지막으로 대세 아이돌 ‘몬스타엑스’의 카리스마 리더 셔누가 막내로 참여해 형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예정이다.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나온 출연진은 환상의 궁합을 보여줬다. 조세호는 “처음엔 부담도 많이 됐지만 ‘건강하고 의미 있는’ 예능에 참여해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셔누도 “솔직히 역사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오쾌남’을 통해 배우는 게 많다”며 “형들이 너무 잘 챙겨주셔서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1일 방송될 ‘오쾌남’ 1화의 목적지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별칭으로도 불리는 인천 강화군 강화도다. 인기 걸그룹 ‘EXID’의 하니와 혜린이 특별 게스트로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학원가에서 ‘한국사 스타강사’로 유명한 이다지 강사의 안내를 받으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민족의 아픔이 서린 현장을 꼼꼼하게 답사했다. 다섯 MC는 ‘명쾌 흔쾌 유쾌 통쾌 상쾌, 오쾌남(男)’란 닉네임에 어울리게 시종일관 쾌활함이 넘친다. 그렇다고 역사를 대하는 자세가 결코 가볍지도 않다. 가는 곳마다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꼼꼼히 필기하고 열심히 질문한다. 여기에 홀로 경주로 역사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는 하니와 혜린의 반전 매력도 볼거리다. 무엇보다 ‘오쾌남’은 그저 역사 상식을 훑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를 살았던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등사를 방문한 출연진은 대웅전 기둥에 병사들이 남긴 이름을 하나하나 살피며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되짚기도 한다. 김성주는 “아직 초반이지만 여러 역사 현장에 갈 때마다 오늘날의 우리와 너무 비슷한 점이 많아 깜짝깜짝 놀란다”며 “역사야말로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거울이란 점을 깊이 새기며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오늘 하루는 분명 어제보다 나을 겁니다.”(마무리 멘트)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돌직구쇼)가 28일 방송 1000회를 맞았다. 2013년 7월 8일 첫 방송을 한 ‘돌직구쇼’는 평일 오전 9시 주요 시사 이슈를 꼼꼼히 짚어주며 시청자의 아침을 여는 채널A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한 이래 아침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이토록 롱런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약 3년 9개월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다양한 시사 이슈를 날카로우면서도 친절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왔다. 특히 가장 사랑받는 코너인 ‘신문 읽어주는 남자’는 미리 쓴 원고도 없이 그날그날 종합일간지의 주요 뉴스를 심층 분석하며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알람시계’ 역할을 했다. ‘돌직구쇼’는 단지 오래되기만 한 게 아니다. 지난해 1월 기록한 최고시청률 4.119%를 비롯해 꾸준히 2∼4%대 시청률을 유지한다. 이 배경엔 정성희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병민 경희대 행정학과 객원교수, 윤태곤 정치컨설팅업체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이승원 칼럼니스트 등 전문성과 입담을 고루 갖춘 패널의 힘이 크다. 1회부터 진행을 맡아온 김진 기자도 빼놓을 수 없는 일등공신이다. 마무리 멘트 “오늘 하루는…”이 인상적인 그는 “정성 들인 손편지를 보내주시는 시청자도 여럿”이라며 “돌직구쇼 덕에 또 하루 신나게 출발한단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1000회를 이어가며 우여곡절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1층에 자리한 ‘오픈스튜디오’는 바깥 경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매력이 크다. 펑펑 쏟아지는 눈도, 시원하게 내리꽂는 빗줄기도 스튜디오 세트가 된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땐 그 행렬이 그대로 배경으로 잡혔다. 반면 방송 초기 스튜디오로 술에 취한 시민이 난입하는 등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2014년 12월 1일 개국 3주년 특집방송에선 당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칩거하던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을 최초로 단독 인터뷰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런 노력 덕분에 팬을 자처하는 유명인사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바쁜 일정이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챙겨 본다”며 “못 보는 날에도 그날 돌직구쇼가 어떤 내용을 다뤘는지 확인할 정도”라고 ‘커밍아웃’했다. 채널A ‘외부자들’ MC인 개그맨 남희석 씨도 “아침마다 ‘돌직구쇼’를 보며 공부한다. 정치시사 분야에서 스승이나 마찬가지”라고 애정을 표시했다. 아침 시사 프로그램의 간판답게 ‘고인 물’로 머물지 않는 것도 ‘돌직구쇼’의 매력이다. 최근에 방송하고 있는 코너 ‘대선 상황실’은 김 기자가 상황실장 역할을 맡아 패널과 함께 여러 캠프의 정책을 검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민희 PD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뉴스를 얼마나 친숙하고 맛있게 시청자에게 차려드릴지 늘 고민한다”며 “언제나 균형감 있고 정의로운 시각을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참으로 많다.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세월호 구름’(사진)이 딱 그렇다. 1072일 만에 세월호가 돌아온 날. 누가 봐도 리본인 형상이 하늘에 걸리다니. 너무 뚜렷해 합성이란 의심이 들 정도다. 다행히 이 장면을 담은 증거 사진이 여럿이라 의혹은 사그라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건 ‘권운(卷雲)’의 일종이다. 새털구름, 꼬리구름이 여기 속한다. 바람에 휠 때도 있지만 이렇게 꺾인 경우는 매우 특이하단다. 혹시나 해서 국내외 포털사이트에서 관련 이미지 수백 장을 뒤져봤다. 신기한 생김새가 적지 않으나 이만큼 놀랍진 않다. 우주의 기적, 천상의 조화…. 세상에 모를 일이 많다. 그러나 신계(神界)가 아니라면 알아낼 도리는 있다. 세월호 참화는 사람의 영역이다. 3년 아니라 30년이 걸려도 진실을 건져 내고 밝혀야 한다. 정말 아이들이 저 구름을 띄운 거라면, 그걸 우리한테 일깨우고 싶었던 게 아닐까. 노란 꽃들이 흐드러질, 봄이 오고 있다. 퍼렇게 멍든 바다 저편에서.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2002년 국내 개봉) 노땅 같아 보이겠지만 네이버·MBC 웹 드라마 ‘반지의 여왕’을 보는 내내 이 영화가 떠올랐다. 최면에 걸린 주인공 할(잭 블랙)의 눈에 엄청난 덩치를 지닌 여성이 절세 미녀(귀네스 팰트로)로 보인다는 내용. ‘반지의 여왕’엔 최면 대신 ‘절대 반지’가 등장할 뿐. 못난 외모로 연애는커녕 어딜 가도 구박받는 대학생 모난희(김슬기). 같은 학교 ‘킹카’ 박세건(안효섭)을 짝사랑하지만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다. 그러나 집안의 마법반지를 끼면 그걸 끼워준 사람에겐 자신이 이상형으로 보인다는 걸 알게 된다. 어렵사리 작전에 성공해 세건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그는 자기를 절친 강미주(윤소희)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반지의 여왕’은 묘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앞서 얘기했듯 기시감이 크지만 그리 뻔하진 않다. 한 편 보고 나면 다음 편이 궁금해진다. 속도감이 관건인 웹 드라마답게 이야기 전개를 질질 끌지 않는다. 물론 띄엄띄엄 넘어가는 대목이 잦지만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진 않다. 여기엔 모난희 역을 맡은 배우 김슬기의 공이 크다. 2015년 웹 드라마 ‘퐁당퐁당 LOVE’에서 주인공 자질을 충분히 증명한 그는 평범한 장면도 맛깔 나게 살리는 재주를 지녔다. 2011∼2013년 tvN ‘SNL 코리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패러디 등을 통해 ‘쌈빡하게’ 욕설을 내뱉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반응도 뜨겁다. 현재 전체 21회 가운데 19회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누적 재생 횟수가 벌써 약 800만 회다. 1000만 회가 넘으면 ‘대박’이라 부르는 웹 드라마에서 엄청난 성적이다. 다만 9, 16일 MBC를 통해 방영한 TV판은 시청률이 1%를 겨우 넘는 수준. TV 주시청자들이 보수적인 편이란 걸 감안해도 아쉬움이 크다.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2002년 국내 개봉) 노땅 같아 보이겠지만, 네이버·MBC 웹 드라마 ‘반지의 여왕’을 보는 내내 이 영화가 떠올랐다. 최면에 걸린 주인공 할(잭 블랙)의 눈에 엄청난 덩치를 지닌 여성을 절세미녀(기네스 펠트로)로 보인다는 내용. ‘반지의 여왕’엔 최면 대신 ‘절대 반지’가 등장할 뿐. 못난 외모로 연애는커녕 어딜 가도 구박받는 대학생 모난희(김슬기). 같은 학교 ‘킹카’ 박세건(안효섭)을 짝사랑하지만 명함도 못 내미는 처지다. 허나 집안의 마법반지를 끼면 그걸 끼워준 사람에겐 자신이 이상형으로 보인다는 걸 알게 된다. 어렵사리 작전에 성공해 세건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그는 자기를 절친 강미주(윤소희)로 보고 있단 사실을 깨닫는데…. ‘반지의 여왕’은 묘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앞서 얘기했듯 기시감이 크지만, 그리 뻔하진 않다. 한편 보고나면 다음편이 궁금해진다. 속도감이 관건인 웹 드라마답게 이야기 전개를 질질 끌지 않는다. 물론 띄엄띄엄 넘어가는 대목이 잦지만 어색하거나 억지스럽진 않다. 여기엔 모난희 역을 맡은 배우 김슬기의 공이 크다. 2015년 웹 드라마 ‘퐁당퐁당 LOVE’에서 주인공 자질을 충분히 증명한 그는 평범한 장면도 맛깔 나게 살리는 재주를 지녔다. 2011~3년 tvN ‘SNL 코리아’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패러디 등을 통해 쌈빡하게 욕설을 내뱉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반응도 뜨겁다. 현재 전체 21회 가운데 19회까지 공개된 상황에서 누적 재생수가 벌써 약 800만 회다. 1000만이 넘으면 ‘대박’이라 부르는 웹 드라마에서 엄청난 성적이다. 다만 9, 16일 MBC를 통해 방영한 TV판은 시청률이 1%를 겨우 넘는 수준. TV 주 시청자들이 보수적인 편이란 걸 감안해도 아쉬움이 크다. ★★★(별 다섯 개 만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F=ma(힘=질량×가속도)니까 중력과 마찰력을 고려한 뒤, 삼각측량법으로 계산하면….” 대기오염 세계 2위란 ‘쾌거’가 전해진 날. 골방에 틀어박힌 에이전트2(정양환)는 뭔가를 끼적거리며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자, 요원7(임희윤)과 26(유원모)은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따져 물었다. “으응? 심, 심오한 물리학의 세계에 취해 있었다네.” “근데…, 뒤춤에 숨긴 건 뭐죠?” 재빨리 종이 한 장을 낚아챈 26. 넘겨받은 요원7은 얼굴빛이 달라졌다. “요새 ‘인형 뽑기’ 하느라 코빼기도 안 보였던 거요? ‘탕진잼’에 빠졌구먼.” 오호통재라. 탕진잼은 또 뭐기에 외계요원마저. 혹시 한때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며 ‘악마의 잼’으로 불린 누텔라의 부활인가. 위기감을 느낀 에이전트26은 2의 뒷덜미를 질질 끌고 곧장 수사에 착수했다.○ 아낌없이 펑펑 써라, 단 3만 원 이하로 “최근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가진 돈을 다 써 버리며 재미를 찾는다는 뜻의 ‘탕진잼’(탕진 재미)이란 말이 유행이다.”() 탕진(蕩盡)이라…. 그 옛날 동화책에서나 접하던 단어가 21세기에 인기라니. 일단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의 도움을 얻어 탕진잼의 실체부터 파악해 봤다. 10∼30대 남녀 600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49%가 탕진잼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한국 청년층 둘 중 하나는 해본 적이 있다는 소리다. 경험자로 범위를 좁혔더니 20.3%는 ‘최소 주 1회 이상’ 탕진잼을 맛보고 있었다. ‘주 3회 이상’도 4.2%나 됐다. 탕진잼을 즐기는 분야(복수 응답)는 무척 다양했다. 남녀 모두 먹는 걸(71.3%)로 돈 써본 경험이 가장 많은 가운데, 여성은 의류(66.7%)와 미용(57.1%)이 뒤를 이었다. 남성은 전 분야가 엇비슷했으나, 최근 번화가에 급속도로 늘어난 ‘인형 뽑기방’(27.1%)을 즐기는 비율이 여성(17.9%)보다 훨씬 높았다. 에이전트26이 만난 금융사 직원 이모 씨(31)도 1주일에 두세 번씩 인형 뽑기방을 찾는 덕후. 지난 3개월 동안 50만 원 이상 썼다. 하도 갔더니 알바생이 공짜로 횟수도 늘려주고 대신 뽑아준 적도 있단다. 그는 왜 이런 탕진잼에 빠졌을까. “직장인이 스트레스 풀 방법이 별로 없잖습니까. 술 먹는 것도 지겹고. 우연히 해봤는데 어릴 때가 떠오르고 좋더라고요. 게다가 2만∼3만 원어치 동전 쌓아놓고 딱 하면 라스베이거스에 간 느낌이랄까, 하하. 어차피 월급 사정 뻔하니까 기분 한번 내는 거죠.”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그들의 탕진은 탕진이라 하기도 멋쩍었다. 1번에 ‘3만 원 이하’가 48.3%였다. 그저 주머니에 가진 돈 털어 흥 한번 내는 찰나의 만족. 그들은 그걸 스스로 탕진이라 부르고 있었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미래와 그걸 지켜보는 너 왜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탕진잼을 좋아할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과 탕진재머(탕진잼을 즐기는 사람)는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둘 다 불확실한 미래보단 현재의 만족을 지향하는 공통점은 있죠. 허나 해외에서 들어온 개념인 욜로는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있는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과소비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반면 탕진잼은 장기 불황에 청년 실업난이 겹친 한국적 상황이 반영된 거예요. 쌈짓돈 쓴 것도 탕진이라 부르는 일종의 반어법이죠. 청년세대의 박탈감이 깊게 깔려있다고 봐야 합니다.” 문구점에서 필기구 등 사무용품을 사며 탕진잼을 즐긴다는 서모 씨(28·여)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1주일에 최소 한 번씩 가는데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을 얻는 기쁨이 너무 크다”며 “부담스럽지 않은 범위에서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문조사도 왠지 모를 서글픔이 묻어났다. 탕진잼을 즐기는 이유로 ‘현재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30.1%)라거나 ‘어차피 돈이 모이지도 않으니 아낌없이 쓰고 싶다’(14.0%)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더 안타까운 건 겨우 ‘몇만 원의 사치’를 부린 것임에도 ‘탕진잼을 벌인 뒤 후회가 밀려온다’(23.8%)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에이전트26은 그제야 잡았던 요원2의 뒷덜미를 놓았다. 나름 거기서 위안을 찾는지도 모르고. 26은 따뜻한 눈길로 2를 일으켜 세웠다. “뽑기가 그리 재밌어요? 그간 인형은 얼마나 모았는데요?” “어…, 자취방에 200개쯤? 근데 월급 가불한 거 다 썼는데 돈 좀 꿔줘라.” 그래, 선배를 위해 뭐가 아까우랴. 얼른 병원에 방 하나 잡아야겠다.(다음 회에 계속)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
채널A 시사예능 ‘외부자들’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3월 순위에서 8위에 올랐다. 시청률 4% 안팎을 유지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12월 27일 첫 방송을 시작했지만 1월에 18위에 진입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은 여론조사회사 한국갤럽이 시청률과 별개로 시청자들의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해 발표한다. 시사 정치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송 시작 3개월도 안 돼 톱10에 든 것은 이례적이다. 이 프로그램의 패널인 전여옥 전 의원은 “방송이 나갈 때마다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며 “열정을 가진 제작진과 애정 어린 시청자들 덕분에 패널들도 더 열심히 준비하고 치열하게 논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강산이 두 번 하고도 반쯤 바뀌었다. 1992년 ‘오렌지족(族)’이 등장한 지 25년. 당시 피 끓던 청춘은 이제 40대 중후반 아저씨 아줌마가 됐다. 2007년 테이크아웃 커피 잔만 들어도 눈총을 받았던 ‘된장녀’들도 벌써 30대 초중반. 그리고 2017년 대한민국 청년들은 인도 카스트 제도처럼 ‘흙수저’ ‘금수저’란 소릴 들으며 살고 있다. 이들은 다른 세대지만 20대에 한국 사회가 만든 신어(新語)에 자신이 규정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고, 살고 있을까. 또 그들의 눈에 다른 세파를 거친 족(族)과 여(女)는 어떻게 보일까. 덤덤하나 뾰족했던, 여섯 명과의 인터뷰를 가상 대담으로 꾸몄다. ▽오렌지족A(44·자영업)=당시엔 좀 황당했다. 물론 부모 덕에 누린 게 많다. 그땐 해외 유학이 흔치 않았고. 하지만 범죄자 취급까지 당했다. 같이 놀다가도 뒤에서 딴소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사고를 확대 해석하며 모두 싸잡아 비난했다. ▽된장녀Ⅰ(30·금융사 직원)=100% 공감한다. 내 인생인데 왜 난리인지 이해가 안 갔다. 빚을 냈든, 남친이 사줬든 자기 선택 아닌가. 복학생 오빠한테 공개적으로 욕먹은 적도 있다. 겉멋 들었다고. ××월드로 쪽지 보내 사귀자고 조를 땐 언제고. 그런 남성의 이중잣대가 크게 작용한 말이 된장녀라고 본다. ▽오렌지족B(47·공무원)=나이 먹고 생각도 좀 바뀌더라. 사회 나와서 돈 벌기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철없어 보였을까. 평범한 직장인 월급을 하루 술값으로 날린 적도 있으니. 자식(중학생)한테 떳떳하게 말하긴 힘들지 않나. ▽흙수저㉠(32·S사 근무)=배부른 소리 한다 싶다. 직장 생활 몇 년째인데 학자금과 전세 대출이 1억 원쯤 된다. 죽어라 공부해 취직했는데 매달 몇십만 원만 손에 남는다. 소개팅 들어와도 누굴 만나기가 두렵다. 결혼도 빚내서 할 판이다. ▽흙수저㉡(28·중소기업 근무)=홀어머니랑 TV를 보는데 ‘수저 계급’ 얘기가 나왔다. 엄마가 “우리 딸, 뒷바라지 못 해줘 미안해” 하시더라. 오렌지족이건 된장녀건 탓할 맘은 없다. 다만 쳇바퀴 돌듯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상은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 ▽된장녀Ⅱ(35·L사 간부)=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난 최소 ‘은수저’는 됐다. 그런 입장에서 봐도 요즘 한국 사회는 너무하다. 흙수저였다면 잘됐을 거란 자신이 없다. 근데 오렌지족은 그 정도 비난은 감내할 수준 아닌가. 된장녀는 인신공격에 가까웠다. ▽오A=글쎄, 허세 심한 된장녀야말로 욕먹을 만했지. 오렌지족은 비교적 솔직했다고 본다. 흙수저는…,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빈부격차는 있어 왔다. 금수저라 뭐라 하는 건 역차별이다. ▽흙㉡=그만큼 한국 상류층이 존경받을 만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가졌기 때문에 시기하는 게 아니다. ‘갑질’과 부정부패를 욕하는 거다. 기회마저 사라지니 박탈감을 느낀다. ▽된Ⅰ=‘편 가르기’가 더 문제다. 한국엔 자기와 다르면 삿대질부터 하는 문화가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오B=맞다. 20여 년 전 무조건 혀를 끌끌 차던 시선들이 싫었다. 이젠 내가 ‘꼰대’라 불리는 나이가 됐다. 적어도 서로를 단정 짓진 말았으면 좋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신어(新語)’로 본 한국사회-사회 불만 표현 수위 높아졌다#2.“방학이 되면 국내파와 해외파 오렌지족이 어울려 사치 퇴폐 행각을 일삼는다. (중략) 종전엔 식당이나 록카페에서 파트너를 물색했는데, 요즘엔 그랜저 승용차 등을 몰고 가다 길가는 여학생 옆에 세워놓고 ‘야, 타라’ 하며….”(동아일보 1994년 1월 22일자)“1990년대 초반 오렌지족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녔던 이유는 당시 급격한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비추는 ‘사회적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3.사람·세대를 지칭하는 신어(新語)가 한 해 수백 개씩 쏟아집니다. 동아일보가 당대 혹은 지금까지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말을 중심으로 최근 25년(1992~2016년) 동안 시대를 따라 흐른 신어 211개를 정리했습니다. 오렌지족 이후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거울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4.1994년 국내에 ‘X세대’가 등장했습니다. 한 화려한 TV 광고에서 세련된 이미지로 포장된 X세대는 통통 튀는 ‘신세대’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정착했죠. 정치적 신인류라 할 ‘386세대’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죠.“가난 탈출이나 군사독재가 시대적 화두였던 이전과 달리 1990년대는 경제적 안정과 민주화가 함께 발흥한 시기다. 본격적으로 소비문화가 발흥한 시점에 두 신어(오렌지족, X세대)가 유행한 건 우연이 아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5. 신어들을 보면 1990년대는 낙관과 비관이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던 시기였습니다.긍정 혹은 가치중립적 신어(15개)와 부정적 신어(16개)의 비율이 거의 동일했죠.하지만 1997년경 한국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신어 ‘왕따’도 탄생했습니다. 왕따는 점차 과열돼 가던 경쟁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죠.#6.21세기 초반 신어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세대’가 확산됐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족’이 인기를 끌었죠. 반면 ‘사오정’(45세면 정년) ‘오륙도’(56세에 회사 다니면 도둑) ‘이태백’(20세 태반이 백수) 등 우울한 세태를 반영한 신어도 많았습니다. ‘얼짱’ ‘몸짱’ ‘꿀벅지’ ‘베이글녀’ 등은 한국적 외모지상주의를 그대로 반영했죠.#7.최근 신어들은 파괴적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같은 의미라도 ‘성형미녀’가 아닌 ‘성괴’(성형괴물)로 더 파괴적이죠. 부모 신세를 지는 젊은이들을 부른 ‘캥거루족’(1990년대 후반) ‘연어족’도 ‘빨대족’ ‘등쳐족’(부모 등쳐먹는 족속) 등 공격적으로 변모했습니다.계층·계급적 불만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태백’ ‘88만원 세대’ ‘n포세대’ ‘헬조선 세대’ ‘흙수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으로 신어의 의미는 갈수록 더 과격해지죠.#8.“신어는 당대의 사회 구성원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와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국 사회에서 부정의 가치가 점점 노골적으로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길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앞으로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신어가 쏟아지는 시대가 도래 할 수 있을까요?원본: 정양환·유원모·이지훈 기자기획·제작: 이유종 기자·신슬기 인턴}
‘오렌지족’부터 ‘된장녀’를 거쳐 ‘흙수저’까지. 1992년 방탕한 소비문화에 빠진 젊은이들을 일컬었던 ‘오렌지족’이 등장한 지 올해로 25주년이다. 동아일보가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오렌지족 이후 2016년까지 사람(혹은 세대)을 지칭하는 주요 신어(新語) 211개를 분석한 결과 21세기에 들어 점점 공격적이고 비관적인 경향이 뚜렷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어는 수만 개에 이르지만 △포털사이트 시사용어집이나 오픈사전에 등재됐고 △언론매체에서 최소 10회 이상 사용했던 단어들을 뽑았다. 조사 기간인 1992∼2016년을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나눌 경우 90년대는 부정적 신어(52%)와 긍정적·가치중립적 신어(48%) 비율이 엇비슷했다. 하지만 2000년대는 부정적인 비율이 62%, 2010년대 이후엔 70.5%로 급격히 높아졌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로 신어를 생산하는 주체인 청년세력이 스스로는 물론이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만큼 절망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똑같은 상황을 지칭하는 신어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거칠어지는 경향도 확인됐다. 대표적 사례가 미용을 위해 성형수술을 받은 이들을 조롱하는 표현들이다. 90년대 말 등장한 ‘성형미인’은 2000년대 ‘성형중독녀(남)’로 바뀌더니 2010년대 전후에는 ‘성괴(성형괴물)’란 표현까지 나왔다. 경제 상황과 연관된 신어들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90년대엔 4개에 머물렀으나 2000년대 13개, 2010년대 16개로 증가했다. 무엇보다 2000년대만 해도 부정적 신어가 6개(46.2%)로 균형을 이뤘으나 2010년대는 ‘n포세대’ ‘흙수저’ 등 부정적 신어가 15개(93.8%)로 훨씬 많았다. 권상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도 먹고사는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에 불황이나 취업난 등에 대한 시대적 절망, 불안이 깊숙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이지훈 기자}
“방학이 되면 국내파와 해외파 오렌지족이 어울려 사치 퇴폐 행각을 일삼는다. (중략) 종전엔 식당이나 록카페에서 파트너를 물색했는데, 요즘엔 그랜저 승용차 등을 몰고 가다 길가는 여학생 옆에 세워놓고 ‘야, 타라’ 하며….”(동아일보 1994년 1월 22일자) 한국 대중음악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1992년.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신인류(新人類)’가 출현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바로 ‘오렌지족(族)’의 등장이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오렌지족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녔던 이유는 당시 급격한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비추는 ‘사회적 거울’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오렌지족 이후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거울은 어떤 게 있었을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사람·세대를 지칭하는 신어만도 한 해에 수백 개 쏟아진다. 1992∼2016년 동안 산술적으로 수만 개에 이른다. 동아일보는 이 가운데 △포털사이트 시사용어집이나 오픈사전에 등재됐고 △언론 매체에서 최소 10회 이상 사용했던 단어들로 추려봤다. 모두 211개가 기준에 부합했다. 당대 혹은 지금까지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말들을 중심으로 25년 동안 시대를 따라 흐른 신어들을 정리했다.○ 1990년대=‘응답하라 1992’ 한국 사회의 지각변동 1992년 한 일간지가 명명한 오렌지족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부유한 부모 덕에 분에 넘치는 유흥을 즐기는 20대를 두고 한 언론은 “사회적 치욕”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이후 오렌지족의 변형인 ‘야타족’ ‘낑깡족’에 지금의 흙수저와 비슷한 개념인 ‘뚜벅이족’까지 나왔다. 2년 뒤인 1994년 국내에 등장한 ‘X세대’도 빼놓을 수 없다. 원래 X제너레이션은 1991년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커플런드의 동명소설에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젊은이”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한 화려한 TV 광고에서 세련된 이미지로 포장된 X세대는 통통 튀는 ‘신세대’를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정착했다. 쓰임새는 사뭇 달랐지만 오렌지족과 X세대의 출현은 당대를 1980년대와 구분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는 “가난 탈출이나 군사독재가 시대적 화두였던 이전과 달리 1990년대는 경제적 안정과 민주화가 함께 발흥한 시기”라며 “본격적으로 소비문화가 발흥한 시점에 두 신어가 유행한 건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신인류라 할 ‘386세대’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1960년대 출생해 80년대 대학을 다닌 90년대의 30대’를 일컫는 386세대란 용어는 1997년 전후 언론 매체들이 정치판을 분석하며 즐겨 쓰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후 ‘486세대’와 함께, 앞선 4·19세대나 6·3세대와 구분되는 새로운 정치적 시대상이 반영된 신어였다. 신어들을 보면 1990년대는 낙관과 비관이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던 시기였다. 긍정 혹은 가치중립적 신어(15개)와 부정적 신어(16개)의 비율이 거의 동일했다. 오렌지족조차도 지금 보자면 낭만적 뉘앙스가 짙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신어도 탄생했다. 1997년경 등장한 ‘왕따’였다. 일본의 이지메(イジメ·집단 괴롭힘)가 건너와 최고를 뜻하는 ‘왕∼’과 따돌림이 결합한 이 신어는 점차 과열돼 가던 경쟁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00년대=희망과 절망을 양손에 부여잡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은 한국 사회는 21세기 초반 신어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월드컵 세대’가 확산됐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족’이 인기를 끌었다. 반면 1997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외환위기의 여파도 여전했다. 구조조정 광풍이 불며 ‘사오정’(45세면 정년) ‘오륙도’(56세에 회사 다니면 도둑) ‘이태백’(20세 태반이 백수) 등 우울한 세태를 반영한 신어도 많았다. 인터넷·모바일 문화가 급속하게 팽창하던 분위기를 담은 신어도 나타났다. 영상채팅의 유행이 만든 ‘얼짱’과 일본 오타쿠(オタク)에서 변형된 ‘(오)덕후’였다. 덕후는 처음엔 ‘사소한 취미에 집착하고 사교성이 부족하다’는 조롱의 뜻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엔 하나의 분야에 정통하다는 뉘앙스로 바뀌며 위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2001년경 본격적으로 쓰인 얼짱은 한국적 외모지상주의의 ‘시조’ 격인 신어다. 초기엔 그저 미남미녀를 지칭하는 단순한 말이었지만, 이후 ‘몸짱’ ‘꿀벅지’ ‘베이글녀’ 등 수많은 유사용어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외모 중시 풍조는 오랜 인간의 본성과 연결되지만 21세기 들어 외모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력한 경쟁력으로 대접받으며 더욱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는 남녀 성역할과 관련된 신어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진 시기이기도 했다. 초중반엔 능력이 출중한 여성들을 일컫는 ‘알파걸’ ‘줌마렐라’ ‘골드미스’ 등 높아진 여성의 지위를 반영한 긍정적 키워드가 많았다. 그러다 2006년 등장한 ‘된장녀’는 이 모든 걸 ‘한 방’에 뒤흔든 신어였다. 허영심을 지닌 일부 여성을 비하하는 이 말은 한국 사회의 격렬한 ‘젠더(사회적 의미의 성) 논쟁’을 불러일으킨 시발점이었다. 이후 ‘쩍벌남’ ‘김치녀’ 등 관련 신어가 쏟아지며 현재의 극단적 남성·여성 혐오로까지 번졌다.○ 2010년대=사회적 불안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최근 신어들은 갈수록 파괴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같은 의미라도 ‘성형미녀’가 아닌 ‘성괴’(성형괴물)로 더 파괴적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신세를 지는 젊은이들을 부른 ‘캥거루족’(1990년대 후반) ‘연어족’도 마찬가지. 다소 조롱의 의미는 있을지언정 평범한 뉘앙스였으나 이 시기엔 ‘빨대족’ ‘등쳐족’(부모 등쳐먹는 족속) 등 공격적으로 변모했다. 계층·계급적 불만을 드러내는 신어들이 쏟아진 것도 눈에 띈다. 물론 이전에도 ‘이태백’과 같은 신어가 존재했다. 그러나 2007년 우석훈 박권일의 책 ‘88만원 세대’ 이후 2010년대엔 ‘n포세대’ ‘헬조선 세대’ 등으로 점점 거세졌다. 지난해 ‘흙수저’ 논쟁이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같은 푸념은 이런 분위기가 더욱 심화됐음을 드러낸다. 권상희 성균관대 교수는 “극심한 청년실업과 더불어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사회적 경직성이 청년세대에게 좌절과 자기비하를 체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진단했다. 된장녀에 이어진 젠더 혐오 논쟁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한남충’(한국 남성은 벌레)이나 ‘아몰랑’(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성) ‘김 여사’(중년여성 비하) ‘개저씨’(개+아저씨) 등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할퀴고 있다. 이런 극단적 충돌은 계층 혐오 등으로 번지며 갈수록 거칠어졌다. 사람을 짐승이나 벌레만도 못한 부류로 비하하는 ‘맘충’(아기 엄마 비하) ‘틀딱충’(노년 비하) 등도 나왔다. 이 시기라고 비관적 신어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외모지상주의에 반발한 ‘훈남(녀)’ ‘뇌섹남(녀)’이나 시대적 아픔과 정치사회적 성숙을 담은 ‘촛불 세대’ ‘세월호 세대’도 등장했다. 하지만 그 비율은 10개 가운데 7, 8개가 부정적일 정도로 극심하게 기울었다. 남길임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신어는 당대의 사회 구성원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와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부정의 가치가 점점 노골적으로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이지훈 기자}
최근 논란이 재점화됐던 ‘티아라 왕따 사건’이 13일 방영된 채널A 연예정보 프로그램 ‘풍문으로 들었쇼’에서 다뤄지며 또 한 번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이번 논란은 이날 ‘풍문…’에 출연한 스타일리스트 김우리 씨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사건 당시 티아라 스타일리스트였던 그는 “폭로전에 대해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티아라 (기존 멤버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당시 논란이 됐던 멤버 화영에 대해 “헤어숍 직원을 ‘샴푸’라 부르는 (무례한) 태도로 스태프 사이에 안 좋은 소문이 퍼졌었다”고 밝혔다. 방송 직후인 14일 당사자인 화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즉각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김우리 선생님, 효민 언니(티아라 멤버)랑 친한 거 아는데요. 없는 이야기 지어내지 마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걸그룹 티아라는 2012년 SNS로 노출된 멤버들의 감정적 갈등이 ‘왕따 논란’으로 번지며 당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논란이 잠잠해졌지만 화영이 쌍둥이 언니인 효영과 tvN 토크쇼 ‘택시’에 출연해 다시 언급하며 불씨를 지폈다. 이후 티아라 전 매니저가 화영과 효영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며 논란이 가열됐다. 인터넷 댓글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나간 일을 자꾸 들추는 게 지겹다”는 측과 “이제라도 명확히 진상을 밝혀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 누리꾼은 “싸우든 말든 지들 맘이지만 그럴수록 맘이 식는 것도 팬들 마음”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시청률 20% 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최근 KBS 주말연속극 ‘아버지가 이상해’에 달린 인터넷 댓글 가운데 하나다. 4일 시작한 이 드라마는 1회부터 22.9%(닐슨코리아)란 높은 시청률(당일 종합 1위)을 거뒀다. 그런데 호평만큼이나 ‘그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상당했다. 언제부터인가 KBS 주말연속극은 ‘흥행보증 수표’로 통한다. 시청률이 40% 안팎은 찍어줘야 성공이라 부른다. 2013년 ‘최고다 이순신’은 최고 시청률이 30.8%(48회)인데도 ‘기대에 못 미쳤다’는 반응이 쏟아졌을 정도. “누워서 만들어도 20%는 넘는다”는 KBS 주말연속극이란 맛집의 ‘필승 레시피’를 들여다봤다. 》 ○ 주말 8시, 가족드라마의 전형을 완성하다 오후 8시대에 방송하는 KBS 주말연속극은 1980년 TBC가 KBS에 합병된 뒤 줄곧 자리를 지켜온 전통의 노포(老鋪·대를 이어 내려오는 점포). 하지만 1990년대까진 ‘드라마왕국’ MBC에 다소 밀리는 형국이었다. 물론 역대 드라마 시청률 1위(65.8%)인 ‘첫사랑’(1996년)을 비롯해 ‘야망의 세월’(1990년) ‘목욕탕 집 남자들’(1995년) 등 굵직한 작품도 많았지만, ‘사랑과 야망’(1987년) ‘사랑이 뭐길래’(1991년) ‘아들과 딸’(1992년) 등 MBC 드라마가 워낙 강세를 떨쳤다. 두 방송사의 주말극 경쟁은 2000년대 초반까진 팽팽했다. 그러나 KBS는 ‘부모님전상서’(2004년) ‘소문난 칠공주’(2006년) ‘엄마가 뿔났다’(2008년) 등을 내놓으며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특히 당대 최고의 흥행 카드인 김수현 작가 작품을 연달아 선보인 게 컸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전까진 시대극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던 KBS 주말연속극이 현재의 ‘가족 드라마’ 이미지를 구축한 때도 이즈음”이라고 말했다. 이후 KBS 8시 주말드라마는 두 차례 큰 전기를 맞는다. 오랜 라이벌인 MBC가 2010년 9시대로 드라마를 옮기며 동시간대 유일한 강자로 올라섰다. 게다가 2012년 시청률 45.3%를 기록한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2012년)의 사회적 파장도 거셌다. 김 평론가는 “넝쿨당은 ‘따뜻한 코믹 가족극’이란 21세기형 주말극의 본보기를 세운 작품”이라며 “이후 ‘내 딸 서영이’(2012년)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로 이 공식을 따르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전통적 가치를 지킨 게 성공 비결…현실 반영은 아쉬워 두 사건은 KBS 주말극이 지금까지 성공적인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됐다. 사실 2010년 전만 해도 KBS 역시 ‘막장 논란’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았다. 하지만 8시대 기존 시청자층이 두꺼운 상황에서 라이벌마저 사라지니 과열 경쟁을 펼칠 이유가 없어졌다. 한 드라마PD는 “심지어 타사에서 막장으로 유명했던 작가조차 KBS 주말극에선 그런 색채를 빼고 가더라”며 “피 터지듯 경쟁 중인 MBC와 SBS 9시 드라마가 여전히 막장 코드가 범람하는 상황과 비교된다”고 말했다. ‘가족의 유대나 윗세대 경험의 소중함’이란 가족극의 코드는 주시청자인 중장년층이 바라는 전통적 가치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심지어 시청률이 안정적인 데다 건강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배우 섭외도 수월하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최근엔 아이돌을 포함한 젊은 연기자들도 KBS 주말극 출연에 매우 적극적이다”라고 귀띔했다. 다만 검증된 공식이긴 하나 지속적인 패턴 반복은 언젠가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달 종영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높은 시청률과는 별개로 현실과 동떨어진 전개라는 비난을 받았다. 김 평론가는 “취업난이나 생계 문제와 같은 가족이 지닌 현실적 고민도 적절히 짚어줄 수 있어야 가족극의 생명력 또한 길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스타워즈가 왕좌의 게임(미국 HBO 드라마)을 만났다.”(MTV) 미국도 참 과하다. 괜찮다 싶으면 칭찬이 블록버스터다. 좀 재밌기로서니 SF(공상과학)와 판타지 최고봉을 다 갖다 붙이다니. 이게 끝도 아니다. “반지의 제왕 우주 버전.”(AICN) “SF로 탄생한 로미오와 줄리엣.”(iFanboy) 도대체 뭐기에. 모두 올해 초 국내에 1, 2권이 출간된 그래픽노블 ‘사가(Saga·시공사)’를 두고 나온 얘기다. 살짝 배알도 꼴린다. 뭐 대단하다고 이리 난리냐. 몇 장 넘기다 보니 입이 삐죽거려진다. ‘젠장’ 시샘이 불끈 솟구쳤다. 이것들, 또 물건 하나 내놓았구나. 차마 저만한 호평까진 아니더라도. 그래, 끝내주는 ‘영웅전설(saga)’이 다시 한번 우리 곁을 찾아왔다. 머나먼 우주 어딘가에 ‘랜드폴’과 ‘리스’란 별이 있다. 천사와 악마만큼 생김새가 다른 두 별 종족은 철천지원수. 서로 증오하며 끝없이 싸워왔다. 아, 근데 이를 어쩌나. 군인과 포로로 만난 마르코와 알라나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어렵사리 함께 도망쳤지만 양국 정부의 끈질긴 추격을 받게 되는데…. 딸 ‘헤이즐’까지 출산한 두 사람의 여정은 어디까지 다다를까. 줄거리만 따지면 ‘사가’는 의외로 심플하다. 허나 빼곡히 속을 채운 설정과 캐릭터가 거침없다. 뿔이나 날개 달린 모양새는 딱히 놀랍지도 않다. ‘스파이더우먼’ 살인청부업자는 진짜 다리만 8개인 거미 여인.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랜드폴 왕족은 몸은 사람이나 머리가 TV(혹은 컴퓨터)다. 광선총과 유령, 마법과 최첨단이 뒤섞여 우주를 수놓는다. 잠깐 갓길로 새자면, 이토록 광활한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인종 성별 같은 ‘선긋기’는 참 부질없다. 현지에선 2012년 선보인 ‘사가’는 출간 전부터 만화 팬들의 기대가 무척 컸다. 글쓴이가 다름 아닌 브라이언 K 본이기 때문이었다. 국내엔 배우 김윤진이 출연해 화제였던 드라마 ‘로스트’ 시즌 3∼5의 각본가인 그는 2002년 만화 ‘Y: 더 라스트 맨’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어느 날 남성 1명과 원숭이 1마리만 빼고 모든 남성과 수컷이 멸종한 세상을 다룬 이 작품은 소설가 스티븐 킹이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꼽기도 했다. ‘사가’는 평단의 상찬만큼 상복도 엄청났다. ‘만화의 아카데미상’ 아이스너상의 최고상 격인 ‘베스트 연재 만화상’을 2013∼2015년 3년 연속 받았다. 이는 1991∼1993년 ‘샌드맨’에 이은 역대 두 번째. 이 밖에 ‘SF계의 노벨상’ 휴고상 그래픽노블 부문상(2013년)도 거머쥐었다. 물론 이 작품은 워낙 강해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듯하다. 욕설과 외설이 차고 넘친다. 미국에서도 2014년 전미도서관협회(ALA)는 “가족주의적 가치관에 반하며 성적으로 문란해 (청소년이나 노년) 특정 연령에 맞지 않는다”며 ‘가장 논란이 큰 문제작 10’ 리스트에 올렸다. 실제로도 어린이나 점잖은 분들이 보기엔 다소 상스럽긴 하다. 허나 품위만 따지고 들기엔 ‘사가’는 너무 매력적이다. 생각해보라. 걸작인 건 분명하지만 루크 스카이워커나 프로도 배긴스가 지금 나왔다면 그런 인기가 가당키나 했을까. 21세기엔 줄리엣도 걸쭉한 입담 정도는 갖춰 줘야지. 어차피 볼 사람만 볼 만화. 시원하게 질러주고 통쾌하게 뻗어나가길. 그놈의 우주는 넓디넓으니까. ★★★★☆(다섯 개 만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열 살은 어려 보인다는 얘기를 들으셔야 해요. (아니면) 모성애밖에 없어요. 다 받아주세요.”(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뭣이라? 4일 방송에서 모델 이소라 말을 듣고 에이전트2(정양환)는 한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연하남 사귀는 팁’이라니. 그럼 연하녀도 마찬가진가. 동안 아니면 부성애가 답이란 말이지. 요원은 잠깐 애 딸린 신분은 망각하고 한동안 늘어진 뺨을 조몰락거렸다. “에휴, 선배 같은 이들 땜에 예능이 힘든 거예요.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니.” 뭣이라. 어느새 나타나 뒤통수를 때리는 에이전트26(유원모)의 목소리. 이 자식이… 내 속을 다 알아채다니. 요즘 연하남을 다룬 예능이 화제긴 하다. tvN ‘신혼일기’에는 실제 연상연하 부부인 안재현 구혜선이 나오고, ‘10살 차이’는 여성 연예인이 위아래로 10세 차이인 남성을 번갈아 만나는 내용을 다룬다. 과연 대한민국 TV 예능은 연하남이란 소재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 걸까.》 ○ ‘연하남은 애완동물?’…TV 예능의 연하남 10년사(史) 21세기 들어 대중문화에서 연하남은 심심찮은 단골 소재였다. 이승기의 데뷔곡 ‘내 여자라니까’(2004년)나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2008년)는 대놓고 연상녀의 맘을 흔드는 노래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는지, 딱 10년 전인 2007년 방송도 본격적인 연하남 예능이 등장했다. 코미디TV의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이었다. 2009년 시즌7까지 이어진 펫 시리즈는 제목만큼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외모에 경제력까지 갖춘 싱글 여성이 귀여운 연하 남성을 ‘분양(?)’ 받아 한집에서 같이 산다는 콘셉트. 목줄을 매단 남성을 끌고 있는 여성이 나오는 포스터는 지금 봐도 ‘세다’. 이는 당시 연상연하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만큼 틀에 갇혀 있었단 걸 반증한다. 연상녀가 어린 남자를 만나려면 돈이건 지위건 뭔가 있어야 하며, 연하남은 ‘토이 러버(toy lover)’로서 진부한 종속관계를 되풀이할 뿐이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때만 해도 남녀 성역할을 구분하는 전통적 연애상이 우세했던 시절”이라며 “낯설고 익숙지 않다 보니 더 자극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2008년 MBC ‘우리 결혼했어요’(우결)의 첫 연상연하 커플인 황보-김현중 편에서 김현중 별명이 ‘꼬마신랑’이었던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같은 우결의 가상 부부로 2009∼11년 출연한 조권과 가인은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주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다소 유약하고 까불거리는 이미지이긴 했으나 둘은 동갑내기처럼 동등한 눈높이에서 로맨스를 펼쳤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구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사고는 물론이고 생활방식도 변화했기 때문”이라며 “결국은 TV 예능도 보편적인 시청자의 인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결국 문제는 나이가 아니건만… 재밌는 건 이후 연하남에게 초점을 맞춘 예능이 TV에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우결이나 여타 파일럿 프로그램에 연상연하 커플이 나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나이 자체가 주목을 받진 않았다. TV 속에서도 밖에서도 ‘평범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7년 새롭게 등장한 연예 프로그램은 연상연하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사실 평가는 극과 극이다. 최고 시청률 5.6%(닐슨코리아)까지 기록한 ‘신혼일기’는 예능이 연상연하를 다루는 최종 버전이다. 진짜 부부가 나오니깐. 어떤 로망을 극화시킨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을 다룬다. 그저 남편이 나이가 어릴 뿐이다. 실제 4세 연상연하인 이재천 이현주 부부는 이 작품의 미덕을 ‘공감’이라고 짚었다. “보면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살림에 대한 고민 같은 우리가 겪었던 일이 그대로 나올 때가 많아요. 남편이 사근사근하고, 아내가 거침없는 점도 닮았습니다. 확실히 연상연하는 뭔가 좀 다른 점이 있거든요. 다만 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린 연상연하라서 좋아한 게 아니에요. 편하고 대화가 통하고 사랑했기 때문이죠. 나이는 상관없잖아요.” 반면 ‘10살 차이’는 시청률 0.8%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형적이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극단적이진 않아도 출연 남성은 예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연상남은 안정적이고 의젓하며, 연하남은 활발하고 장난기 가득하다. 설 교수는 “요즘 시골에서 국제결혼을 색안경 끼고 보면 욕먹을 것”이라며 “이미 자연스러워진 패턴을 오히려 도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에이전트2는 묘한 혼란을 느꼈다. 우주에서 한국인만큼 나이 따지는 이들이 있을까. 놀이터에 가면 애들조차 서로 “몇 살이냐”고 묻는다. 진짜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면 연상연하 커플이란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때 에이전트26이 조용히 어깨를 다독거렸다. “그럼, 우리 앞으로 말 놓을까?” 아, 이 ××…. 고맙다, 여기선 나이가 계급인 걸 일깨워줘서.(다음 회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올 초부터 ‘2017 사이다를 부탁해(사진)’란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독자의 억울했던 사연을 만화로 그려낸다. 그 대신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답답했던 현실을 ‘사이다’ 마신 듯 속 시원한 결과로 반전시켜 주는 게 포인트. 6일엔 병원에서 일하는 아빠가 이사장 아들에게 부당 대우를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딸의 얘기를 소개했다. 작가는 사실을 알게 된 이사장이 아들을 혼내주는 걸로 마무리했다. 그런데 댓글은 마냥 통쾌하단 반응이 아니다. “저랬다간 아빠가 더 난처해질 것” “이사장이 아들을 감쌀 듯”이란 의견도 적지 않다. 실은 모든 에피소드마다 이런 ‘현실론’이 꽤 쏟아진다. 맞다. 삶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 잘 풀렸다면 화병(火病)은 있지도 않았을 터. 다만 한 가지. 혹 상대를 예단해 뭔가 해볼 생각조차 안 한 건 아닐까.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 그래도 시도라도 해보는 게 청량음료 100병보다 훨씬 나을 텐데. 적어도 스스로에게라도. 사이다, 너무 마시면 속 버린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과 차기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진솔한 만남을 주선하는 채널A ‘청년, 대선 주자에게 길을 묻다’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을 초대했다. 1일 첫 방송에서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청년, 대선 주자에게 길을 묻다’는 5일 오후 8시 10분 두 번째 주자로 유 의원 편을 방영한다. 김승련 채널A 정치부장이 사회를 맡고 동아일보의 정성희 송평인 논설위원과 박용 경제부 차장, 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이 패널로 참여한 방송은 2일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녹화가 진행됐다. 이날 현장엔 대학생 60여 명이 방청객으로 참여해 뜨거운 열기를 더했다. 유 의원의 정치 소신과 공약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화끈하게 쏟아졌고, 녹화가 끝난 뒤엔 유 의원과 청년 방청객들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모두가 유 의원과 기념사진을 찍느라고 상당한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토록 기다리던 이를 이제야 만났는데 왜 이리 허전할까. 지난달 20일 방영을 시작한 SBS 드라마 ‘초인가족 2017’을 마주한 심정이 딱 이렇다. 솔직히 요즘 한국 드라마는 다소 극단적이었다. 아침·주말극은 여전히 불륜과 출생의 비밀이 가득하다. 미니시리즈는 만화 같은 퓨전사극과 판타지로맨스만 판을 쳤다. 소소하지만 소중한 웃음과 감동을 담은 작품은 쉽게 만나기 힘들었다. 그런데 드디어, 평범한 가족의 하루하루를 담은 작품이라니. 기대감이 컸다. 딱히 나쁘다는 건 아니다. 만년 과장인 아빠 나천일(박혁권)과 전업주부 엄마 맹라연(박선영), ‘중2병’에 걸린 딸 나익희(김지민)를 중심으로 가족과 직장, 학교에서 벌어질 듯한 에피소드가 물 흐르듯 펼쳐진다. 딸과 소통하려 열심히 신조어를 익히려는 아빠(3화)나 5자매 사이에 낀 셋째라서 서러운 엄마(1화)의 정서는 공감이 간다. 배우들 연기 역시 넘치지 않고 안정감을 준다. 한데 얘기가 일직선으로 단출하다. 국이랑 밥이랑 있을 건 다 있는데 딱히 손이 가질 않는 상차림이랄까. 물론 이건 그간 너무 ‘단짠단짠’(달고 짠맛) 드라마에 길들여진 우리 입맛이 문제일 수 있다. 그래도 일주일 내내 된장찌개만 먹는다면 좀…. 게다가 매번 끝자락에 굳이 감동 코드를 넣어 마무리하는 건 강박관념 아닌가. 가족이라고 항상 따뜻할 필요는 없는데. 장르가 다르긴 해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년)과 ‘지붕 뚫고 하이킥’(2009∼2010년)이 뿜어내던 생기발랄함까지 바라면 욕심이 큰 건가. 오히려 ‘초인가족…’은 의외의 지점에서 던져주는 시사점이 많다. 등교를 앞둔 딸의 성화에 체육복을 찾아나서는 엄마, 술 취해 잠든 아빠의 양말을 벗겨주는 딸. 20세기의 전형적 도덕 기준은 21세기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일상’이란 이름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그게 ‘보통’ 아빠와 엄마와 자식이란 굴레 속에서. 하긴 이래서 그들을 초인가족이라 부르나 보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질 않아서. 정말 엄청난 능력이긴 하다.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