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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주 북부 시골 마을 오로라. 젊고 아름다운 여성 조각가 마그리트 풀머가 사라진다. 1991년 4월 11일 아침 여동생 조진에게 목격된 것이 마지막 모습이다. 지역 유지이자 상속녀였던 마그리트가 사라지자 마을 일대가 뒤집힌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달아났다”, “납치를 당했다” 등 온갖 추악한 소문이 떠돈다. 조진은 경외하는 언니를 지키기 위해 남몰래 움직인다. 언니의 침실 바닥에 떨어진 섹시한 하얀 슬립 드레스를 경찰이 보기 전에 숨긴다. 언니의 내밀한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도록 작업실에서 작품 노트를 모두 훔쳐 나온다. 웬 점성술사가 “언니의 행방을 알고 있다”며 접근하는 것도 차단한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선 조진의 열등감이 점점 커진다. 못생긴 자신과 달리 늘 주목받는 쪽은 예쁜 언니였다. 사라져서까지 관심을 독차지하는 언니가 더 미워진다. 비틀린 마음은 점점 극한을 향해 달려간다. 이 책은 현대 미국 문단의 대표 작가이자 고딕 소설(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의 대가인 저자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인간 영혼에 도사린 악의와 공포에 대한 글을 주로 써온 작가는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완벽한 언니를 향한 동경과 열등감으로 일그러진 인물의 내면을 촘촘히 묘사한다.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마그리트의 남자들이 점점 드러난다. 몇 달간의 짧은 연애 끝에 문자메시지로 마그리트에게 차인 코넬대 연구생물학자 월터 랭. 마그리트가 실종되기 전 뉴욕에서 그녀를 찾아온 랭은 그녀의 아버지만 겨우 만났다.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하소연하는 랭을 본 조진은 “언니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나야말로 당신에게 어울린다”고 외치면서. 조진은 공주님 같던 언니에게서 버려진 남자들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끼지만, 언니의 남자들은 조진에겐 관심도 없다. 작가는 동경하는 인물에 대한 양가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언니에 대한 조진의 악의는 그만큼 언니를 사랑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사랑하는 언니만큼 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섬뜩한 악의로 바뀐 것이다. 자신과 비교되는 언니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다가도 갑자기 깎아내린다. “아름다움은 벌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발목을 잡고 끌려가야 하기 때문이며, 맨피부 그대로 쓸려야 하기 때문이다.” 광기에 어린 독백이 서늘한 공포를 자아낸다. 질투와 증오에 사로잡혀 툭 내뱉는 독백은 불편하면서도 흡입력을 높인다. 극단적 증오는 점점 그 스스로를 파괴해 간다. 실종의 진실을 찾아 오래 헤맬수록 언니에 대한 점점 강한 증오를 표현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불편하면서도 흥미롭다. 언니와 얽힌 남자들이 그녀를 살해한 용의자로 몰리면서 피폐해지는 모습을 볼 때는 “인간에게 질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질투심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인물의 말로를 생생히 담은 작품.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54)의 가장 마지막 작품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다. 내용도, 분량도 비밀에 부쳐진 이 작품은 90년 뒤인 2114년에야 공개되기 때문이다. 11일 출판계에 따르면 한강은 2019년 5월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에 2114년에 출간될 미공개 소설 원고를 전달했다. 미래도서관은 2014년부터 100년간 매년 작가 1명의 미공개 작품을 받아 2114년에 100편을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2014년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를 시작으로 튀르키예 작가 엘리프 샤팍,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등이 참여했다. 한강은 다섯 번째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한강의 미공개작 제목은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 분량이나 소재, 내용은 모두 알려지지 않은 채 현재 오슬로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한강은 원고 전달식 당시 “나의 원고가 이 숲과 결혼을 하는 것 같기도,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장례식 같기도, 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긴 잠을 위한 자장가 같기도 하다”고 했다. 당시 원고는 흰 천에 싸인 채 전달됐다. 한강은 “한국에서 신생아를 위한 배냇저고리, 소복, 홑천으로 흰 천을 사용하기에 원고도 흰 천으로 감쌌다”고 밝혔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에 진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동안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서사가 아시아 여성으로 옮겨왔다는 의미죠.” 10일 소설가 한강(54)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은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어는 세계 문학의 주변부에 있어서 번역이란 지난한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도, 세계 문학의 중심에서 (작품이)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을 갖추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강이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시절 창작 수업을 수강한 정현종 시인도 “(한강은)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며 “기쁘고 축하할 일”이라고 했다. 한강의 수상 소식에 문학계 인사들은 들뜬 반응이었다. 곽효환 시인은 “한국 문학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는 여러 번 얘기했지만 예상보다 몇 년 빨리 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최근 한국 문학의 위상이 급격히 올라갔는데 이 같은 점을 아울러 한강이 수상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수상을 계기로 단편소설에 강했던 한국 문학의 위상이 다시 한 번 제고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강의 대표작이자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단편소설 3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그야말로 K문학의 경사”라며 “그동안 한국이 다른 나라의 소설에 비해 단편이 강해 노벨 문학상에선 불리하다는 여론이 있었는데, 이번 수상으로 한국적 특수성이 반영된 단편문학의 정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시적인 문체와 깊이 있는 사유를 곁들여 예술적 문장으로 기억하고 환기하는 데 강점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 문학 작가 중 노벨상 수상자로 먼저 거론돼 왔던 작가들은 황석영, 고은 등이었다. 한강은 이들과 뚜렷하게 다른 문학적 방식을 택해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우찬제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황석영과 고은은 20세기 리얼리즘적 방식으로 분단 상황과 전쟁 등에 대한 이야기를 썼지만,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시작한 사건을 환상적으로 풀어낸다”며 “큰 상처의 현장 속에서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작은 인간에게 숨결을 불어넣고 서사를 부여한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 문학을 해외로 번역해 온 시도가 결실을 맺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강의 작품은 한국문학번역원 등의 지원으로 28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76종의 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한강의 수상 소식에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대형 서점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될 정도로 책 주문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의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국적 기준으로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913년·인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모옌(2012년·중국) 등에 이어 한강이 5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한림원이 공개한 전화 인터뷰에서 “정말정말 감사하다. 너무 놀랐고, 영광이다”라며 “한국 독자들,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인 한강은 1993년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제33회 인촌상(언론·문화부문)을 수상했다.한강은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삶의 비극성을 집요하게 탐구해 온 작가로 꼽힌다. ‘채식주의자’ 외에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2014년),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그린 ‘희랍어 시간’(2011년) 등의 작품을 썼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게는 1100만 크로나(약 14억3000만 원)의 상금과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인간 폭력성과 상처 집요한 탐구… “시적 현대 산문의 혁신가”한강의 작품 세계-수상 이유폭력적 본성 파헤친 ‘채식주의자’… 5·18 상처 보듬은 ‘소년이 온다’ 4·3 비극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국 특수성 넘어 세계적 공감소설가 한강(54)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예측하는 사람은 적었다. 문학적 성취를 논외로 하더라도 노벨상을 받기에는 아직 젊다는 평가도 많았다. 한강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영국 유명 온라인 베팅사이트 나이서오즈에서 순위권에도 오르지 않았다. 10일 오후 8시 수상 발표 이후 동아일보와 통화한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조차 “멍해질 정도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며 “본인에게 확인해 봐야겠다. 좋은 일인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몇 차례나 사실이냐고 되물었다.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작품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전부터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등 국제 문학상을 두루 수상해 온 한강은 화려한 수상 경력에도 작가 특유의 겸손하면서도 수줍은 듯한 태도를 잃지 않아 왔다. 그는 국내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직후인 2016년 5월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상은 책을 쓴 다음 아주 먼 다음의 결과다.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쓴 유명한 원로 작가 한승원의 딸인 한강은 어려서부터 문학과 친숙했다. 지천에 책이 널려 있던 집에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곤 했다.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그의 날카로운 글쓰기가 그때부터 벼려졌다. 대학 재학 당시 시인 정현종의 시창작론 시간에 시 ‘이월’을 선보여 “무당기 같은 게 보인다”는 평을 들은 게 작가가 되는 계기였다고 본인은 회고한 바 있다.등단 후 30년 동안 그는 늘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상처를 집요하게 헤집어 왔다.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딸 한강의 문학세계에 대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든지, 새로운 세계를 추구한다든지 하는 평을 하지만 그 아이는 사랑 문제를 이야기한다”며 “비극적인 사안을 묘사하고 인물들을 동원할지라도 결국은 큰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1998년 출간된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에서는 한낮에 도심을 알몸으로 달음박질하는 여자와 그녀를 찾아 강원도 오지를 헤매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인간의 광기 속에서 개인과 시대의 상처를 조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강 소설의 본류라는 평이 나온다. 이후 남편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점차 식물화돼 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창비·2000년), 인체를 석고로 뜨는 조각가를 통해 육체의 탈 속에 숨은 삶의 생채기를 드러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2002년) 등을 거치며 특유의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색깔을 확립했다.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처음 게재된 중편소설로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고,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영혜는 폭력에 대항해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려 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결국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되는 영혜를 통해 인간의 폭력적 본성에 대해 집요하게 파헤친 작품이다.‘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소설 3편을 하나로 연결한 연작 소설집이다. 2015년 미국, 영국에 번역 출간된 직후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이 “한국 현대문학 중 가장 특별한 경험” “감성적 문체에 숨이 막힌다” 등의 호평을 받았다. 한강은 2016년 제41회 서울문학회에서 ‘채식주의자’에 대해 “인간은 선로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질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잔인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며 “인간성의 스펙트럼에 대한 고민에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4년 6개월에 걸쳐 쓴 소설은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전문가들은 ‘채식주의자’가 폭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한강 특유의 서정적 문장으로 풀어냈다고 평한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오래된 미적 본능인 탐미주의를 극단까지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인간 욕망의 추함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2014년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소년이 온다’는 독특한 방식으로 광주를 기록한다. 기존의 광주를 다룬 소설들이 르포 형식을 빌려 온 것과 달리 작가는 사망자들에게 빙의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국 인디펜던트지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톤킨은 “한강의 작품은 우아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묻어난다”며 “그의 작품에는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괴한 조화가 이뤄진다”고 평가한 바 있다.‘한강 문학’은 한국의 특수성에 갇히지 않고 보편적인 문학 세계를 보여준다는 평도 나온다. 아버지 한승원은 “한강의 문학세계는 앞선 세대의 리얼리즘의 저항의식을 넘어선 신화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며 “그것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한 문학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부활시키는 문학”이라고 말했다. ‘채식주의자’에서 탐미적 욕망에 저항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떤 사회에서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표면적으로 ‘육식’으로 표현된 욕망은 타인에 대한 폭력이자 사회구조의 폭력, 제도적 폭력을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 역사의 흐름 속에 짓밟힌 개인에 대해서도 꾸준히 이야기해 왔다. 지난해 메디치상 외국문학 부문을 받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 냈으며,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빈집에 내려가 인선 어머니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는 작품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한강 수상 이유2024년 노벨 문학상은 한국의 작가 한강에게 수여됐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작가입니다. 한강은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취약성을 폭로합니다. 그녀는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에서 혁신자가 되었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광화문 현판(사진)을 한글로 바꾸자는 주장에 대해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이 명확한 반대 입장을 10일 밝혔다. 전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한글화 제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이다. 최 청장은 이날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광화문 현판 한글화 가능성을 묻는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의 질문에 “(반대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최 청장은 “현판은 경복궁 중건 당시 걸려 있던 현판에 가깝게 고증해야 한다는 게 문화유산 복원의 원칙에 맞는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그동안의 과정과 제작 비용 등을 본다면 (현판 제작을 위한) 다사다난한 과정이 다시 시작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9일 한글날 행사에 참석한 유 장관은 “대한민국의 얼굴인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5월에 이어 재차 밝혔다. 유 장관은 “올 5월 세종대왕 탄신 하례연에서 광화문 현판 한글화에 대한 재논의를 제안했지만 크게 진척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며 “한글학회 및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토론하고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고 했다. 광화문 현판은 그동안 오랜 논의를 거쳐 현재의 형태를 갖췄다. 광화문 현판은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한글로 제작돼 걸려 있었지만, 원형 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2010년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의 한자 현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교체 3개월 만에 현판 목재가 갈라지고, 색상 고증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2012년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경복궁 영건일기’를 토대로 검은색 바탕에 금색 한자가 새겨진 지금의 현판이 제작돼 지난해 10월 내걸렸다. 광화문은 사적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현판 교체는 국가유산청 산하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와 결정을 받아야 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에 진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동안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서사가 아시아 여성으로 옮겨왔다는 의미죠.” 10일 소설가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은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어는 세계문학의 주변부에 있어서 번역이란 지난한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도, 세계 문학의 중심에서 (작품이)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을 갖추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강이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시절 창작 수업을 수강한 정현종 시인도 “(한강은)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며 “기쁘고 축하할 일”이라고 했다. 한강의 수상 소식에 문학계 인사들은 들뜬 반응이었다. 곽효환 시인은 “한국 문학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는 여러 번 얘기했지만 예상보다 몇 년 빨리 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최근 한국문학 위상이 급격히 올라갔는데 이같은 점을 아울러 한강이 수상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수상을 계기로 단편소설에 강했던 한국 문학의 위상이 다시 한 번 제고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강의 대표작이자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단편 소설 3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그야말로 K문학의 경사”라며 “그동안 한국이 다른나라 소설에 비해 단편이 강해 노벨문학상에선 불리하다는 여론이 있었는데, 이번 수상으로 한국적 특수성이 반영된 단편문학의 정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시적인 문체와 깊이 있는 사유를 곁들여 예술적 문장으로 기억하고 환기하는 데 강점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문학 작가 중 노벨상 수상자로 먼저 거론돼 왔던 작가들은 황석영, 고은 등이었다. 한강은 이들과 뚜렷하게 다른 문학적 방식을 택해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썼다. 우찬제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황석영과 고은은 20세기 리얼리즘적 방식으로 분단상황과 전쟁 등에 대한 이야기를 썼지만,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시작한 사건을 환상적으로 풀어낸다”며 “큰 상처의 현장 속에서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작은 인간에 대해 숨결을 불어넣고 서사를 부여한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 문학을 해외로 번역해 온 시도가 결실을 맺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강의 작품은 한국문학번역원 등의 지원으로 28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에서 76종의 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한강의 수상 소식에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대형 서점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될 정도로 책 주문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설가 한강(54‧사진)이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이같이 밝혔다. 한국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작가로서는 2012년 중국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국적 기준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모옌(2012년‧중국) 등 지금까지 3명에 불과했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인 한 씨는 1970년 전남 광주시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소설에 익숙했던 그는 연세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1993년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을 만큼 국제적 명성을 확보했다.한강의 작품은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삶의 비극성을 집요하게 탐구해 온 작가로 꼽힌다. 채식주의자 외 대표작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온다(2014)’,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그린 ‘희랍어 시간(2011)’ 등이 있다.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4억2000만 원)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올가을부터 연말까지 약 58만 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국내 여행 활성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열린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가는 가을’이 그것. 정부는 지난달 25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주재로 ‘국가관광전략회의 확대조정회의’를 열고 이 같은 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난 후 억눌렸던 여행 욕구는 분출되고 있으나 주로 해외에 쏠려 생각만큼 국내 관광업이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의 평가. 하반기 내수 활성화를 위해선 국내 관광이 살아나야 할 필요성이 큰 상황이다. 정부는 당초 문체부 2차관이 주재하던 관련 회의를 장관급으로 격상해 관련 정책에 힘을 실었다. 10∼12월 실시되는 ‘여행가는 가을’ 캠페인은 가을철 여행 코스를 발굴해 알리고 교통과 숙박, 여행상품 등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특별 할인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교통 혜택=‘관광 열차’ 5개 노선 50% 할인, ‘내일로 패스’ 1만 원 할인 등 △숙박 혜택=‘여행가는 가을’의 100여 개 상품 20% 할인, ‘나만의 여행’(열차·숙박·렌터카·입장권 등) 40∼50% 할인, ‘웰촌 농촌여행’ 최대 50% 할인 등이다. 지자체별로도 각종 할인 혜택 제공에 나섰다. 가을 여행 활성화를 위해 ‘스탬프 투어’도 실시한다. 12월 10일까지 2개 시도 이상의 축제를 찾아 ‘모바일 도장’(스탬프)을 받으면 경품을 지급한다. 전국 각지에서 연극, 무용, 클래식 음악 등 다채로운 공연을 즐기는 ‘2024 대한민국은 공연 중’(11월 10일까지)도 열린다. 아울러 정부는 ‘하이커 페스타’ 등을 열어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여행을 유도해 지역 소비 확대를 이끌어 낼 계획. 더욱 상세한 캠페인 정보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다. 앞서 국내 유명 축제 등에서 논란이 됐던 ‘바가지 상술’ 등 관광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점검도 강화한다. 문체부는 한국관광공사 등과 함께 관광 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정부와 지자체 간 관광 불편 해소를 위한 대응 체계도 보강할 예정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이 족건(足巾·버선)은 내게 작사오니 수대(守大·정조의 외사촌인 홍수영의 어릴 적 이름) 신기옵소서.’ 조선 22대 국왕 정조(재위 1776∼1800년)가 어린 시절 외숙모 여흥 민씨(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큰오빠였던 홍낙인의 부인)에게 한글로 쓴 편지 중 일부다. 사촌을 챙기는 내용이 제법 의젓하지만, 글씨체는 다소 삐뚤빼뚤하다. 발신자가 조카를 뜻하는 ‘질’로 표기돼 있어 정조가 왕세손으로 책봉된 7세 이전에 썼음을 알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날을 맞아 정조의 한글 편지를 모은 ‘정조 한글 편지첩’ 실물을 13일까지 선보인다. 2022년 보물로 지정된 편지첩은 정조가 원손 시절부터 왕에 즉위한 이후까지 여흥 민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 14통을 묶은 것이다. 정조 편지첩이 전시되는 것은 2022년 7월 이후 2년여 만이다. 현존하는 정조의 원문 편지 대부분은 한자로 쓰여 있다. 조선시대 국왕이 쓴 한글 편지 여러 점을 엮은 것은 정조의 한글 편지첩이 유일하다. 김미미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궁녀 등 신분이 낮은 계층만 한글을 사용했을 거라는 편견과 달리 왕도 일상의 소통 도구로 한글을 쓴 사실을 알려주는 핵심 자료”라며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 정조의 필체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어 흥미롭다”고 말했다. ‘오래 편지도 못하여 섭섭하게 지냈는데 돌 아재(막내 외삼촌 홍낙윤으로 추정)가 (궁에) 들어오니 든든합니다. (중략) 수대 못 들어오니 후일 부디 (병이) 낫거든 들여보내옵소서.’ 발신자가 ‘세손’으로 적혀 있는 정조의 이 편지는 한글 글씨체가 한결 단정해졌고, ‘든든’이나 ‘섭섭’ 같은 감정 표현도 잘 드러나 있다. 어린 정조가 같이 놀 사촌이 궁에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찬(歲饌·설 음식) 몇 가지는 변변치 않으나 해마다 보내던 것이기에 보내오니 수대로 받으옵소서.’ 정조가 41세이던 1793년 12월 20일 여흥 민씨의 집에 인삼과 쌀, 전복 등 설맞이 선물을 보내면서 함께 부친 편지는 정조의 필체가 뚜렷하게 확인된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육순을 한 해 앞두고 느끼는 사사로운 감정도 편지에 담았다. 이 밖에 전시에선 조선시대 생활 교과서로 여겨진 ‘삼강행실도’ 한글본, 우리말 사전 편찬의 기틀이 된 ‘말모이 원고’ 등을 볼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이번 전시가 끝난 직후인 14일부터 시설 증축을 위해 1년간 휴관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이 족건(足巾·버선)은 내게 작사오니 수대(守大·정조의 외사촌인 홍수영의 어릴 적 이름) 신기옵소서.’ 조선 22대 국왕 정조(재위 1776∼1800)가 어린 시절 외숙모 여흥 민씨(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큰오빠였던 홍낙인의 부인)에게 한글로 쓴 편지 중 일부다. 사촌을 챙기는 내용이 제법 의젓하지만, 글씨체는 다소 삐뚤빼뚤하다. 발신자가 조카를 뜻하는 ‘질’로 표기돼 있어 정조가 왕세손으로 책봉된 7세 이전에 썼음을 알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날을 맞아 정조의 한글 편지를 모은 ‘정조 한글 편지첩’ 실물을 13일까지 선보인다. 2022년 보물로 지정된 편지첩은 정조가 원손 시절부터 왕에 즉위한 이후까지 여흥 민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 14통을 묶은 것이다. 정조 편지첩이 전시되는 것은 2022년 7월 이후 2년 여만이다. 현존하는 정조의 원문 편지 대부분은 한자로 쓰여 있다. 조선시대 국왕이 쓴 한글 편지 여러 점을 엮은 것은 정조의 한글 편지첩이 유일하다. 김미미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궁녀 등 신분이 낮은 계층만 한글을 사용했을 거라는 편견과 달리 왕도 일상의 소통 도구로 한글을 쓴 사실을 알려주는 핵심 자료”라며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 정조의 필체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어 흥미롭다”고 말했다. ‘오래 편지도 못하여 섭섭하게 지냈는데 돌 아재(막내 외삼촌 홍낙윤으로 추정)가 (궁에) 들어오니 든든합니다. (중략) 수대 못 들어오니 후일 부디 (병이) 낫거든 들여보내옵소서.’ 발신자가 ‘세손’으로 적혀 있는 정조의 이 편지는 한글 글씨체가 한결 단정해졌고, ‘든든’이나 ‘섭섭’ 같은 감정 표현도 잘 드러나 있다. 어린 정조가 같이 놀 사촌이 궁에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찬(歲饌·설 음식) 몇 가지는 변변치 않으나 해마다 보내던 것이기에 보내오니 수대로 받으옵소서.’ 정조가 41살이던 1793년 12월 20일 여흥 민씨의 집에 인삼과 쌀, 전복 등 설맞이 선물을 보내면서 함께 부친 편지는 정조의 필체가 뚜렷하게 확인된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육순을 한 해 앞두고 느끼는 사사로운 감정도 편지에 담았다. 이밖에 전시에선 조선시대 생활 교과서로 여겨진 ‘삼강행실도’ 한글본, 우리말 사전 편찬의 기틀이 된 ‘말모이 원고’ 등을 볼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이번 전시가 끝난 직후인 14일부터 시설 증축을 위해 1년간 휴관에 들어간다”고 밝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최근 가요계에선 2NE1을 비롯해 과거 해체한 걸그룹이 재결합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8인조 걸그룹 러블리즈는 데뷔 10주년을 맞아 다음 달 16, 17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콘서트 ‘겨울나라의 러블리즈 4’를 연다. 서울 공연 뒤 마카오와 대만 공연도 예정돼 있다. 이는 2021년 계약 만료로 해체된 뒤 약 3년 만이다. 러블리즈는 올 6월 예능 프로그램에서 완전체로 노래를 불러 좋은 반응을 얻은 뒤 재결합 기대감을 키웠다. 6인조 걸그룹 여자친구도 내년 1월 데뷔 10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2021년 계약 만료로 해체한 지 4년 만이다. 소속사 쏘스뮤직은 “‘버디’(여자친구의 팬덤) 여러분께 소중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는 멤버들의 바람이 모여 이번 프로젝트가 성사됐다”고 밝혔다. 2012년 8월 데뷔한 5인조 걸그룹 피에스타도 최근 “사비로 곡을 구매했다”며 복귀를 시사했다. 가요계 관계자는 “눈에 띄는 마땅한 신인을 발굴하기 어려워진 가요계에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검증된 흥행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며 “재결합하고자 하는 멤버들의 의지와 합쳐져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놀 준비 됐죠?” 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 걸그룹 투애니원(2NE1)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이들의 데뷔 15주년을 기념해 이날 열린 ‘웰컴 백 인 서울(WELCOME BACK IN SEOUL)’ 콘서트 현장은 거대한 노래방을 방불케 했다. 원조 걸크러시 콘셉트로 사랑받으며 많은 히트곡을 낸 ‘K팝 레전드’답게 팬들은 모든 노래를 떼창 하며 여걸들의 귀환에 환호했다. 2NE1이 4명의 완전체로 뭉친 것은 2016년 11월 팀 해체 후 8년 만이다. 단독 콘서트로는 2014년 3월 이후 10년 6개월 만이다. 멤버 씨엘(CL)과 산다라박, 박봄, 공민지는 각자 소속사가 다르지만, 이번에는 원래 몸담았던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공연을 꾸렸다. 데뷔 15주년을 앞두고 멤버들이 양현석 YG 총괄 프로듀서를 만나 공연 의사를 타진한 데 따른 것. “나 미-미-미-미-미-미-미-치고 싶어. 더 빨리 뛰-뛰-뛰-뛰-뛰-뛰-뛰-뛰-뛰고 싶어.” 붉은 조명과 함께 강렬한 원색 옷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 2NE1은 데뷔곡 ‘파이어(Fire)’로 분위기를 달궜다. 밴드 반주에 맞춰 ‘박수쳐’, ‘캔트 노바디(Can’t Nobody)’ 등 히트곡을 연이어 라이브로 선보인 멤버들은 금세 땀으로 젖었지만 표정은 시종일관 들떠 있었다. 공연 중간에 멤버들이 “2NE1”을 선창하자 관객들은 “놀자!”로 화답했다. 2009년 싸이월드 뮤직 연간차트 1위에 오른 ‘아이 돈 케어(I Don’t Care)’가 흘러나오자 스탠딩석뿐 아니라 객석의 관객들도 일제히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릎 꿇고 잘못을 뉘우쳐, 아님 눈앞에서 당장 꺼져.” 바람 피운 남자친구를 일갈하는 하이라이트 대목에선 팬들의 함성이 극에 달했다. “올림픽홀은 저희한테 특별한 곳이에요. 첫 콘서트를 여기서 했으니까요. 그때 (콘서트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학생이라 못 오신 분들 여기 계신가요?”(산다라박) 쉬지 않고 라이브를 이어간 지 약 1시간 20분이 돼서야 멤버들이 말문을 열었다. 공민지가 “그땐 열여섯 살이었지만 이제는 숙녀가 됐다. 민지가 여러분의 손에서 자란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하자, 객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씨엘은 “많은 분들이 추억을 공유하고, 새로 오신 분들은 이런 그룹이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클래식한 공연을 준비했다”고 했다. ‘클래식한’이란 씨엘의 말대로 이날 공연엔 아이돌 콘서트에서 으레 등장하는 화려한 편곡이나 특별 게스트는 없었다. 하지만 그 덕에 대중이 기억하는 2NE1의 히트곡을 예전 감성으로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특히 검은 정장 차림으로 ‘그리워해요’, ‘아파’, ‘론리(Lonely)’ 등의 발라드를 부를 때는 10년이 지나 더 성숙해진 멤버들의 가창력이 돋보였다. 일종의 유행어가 된 “누가 제일 잘나가? 내가 제일 잘나가”란 가사와 격렬한 댄스가 합쳐진 ‘내가 제일 잘나가’는 넘치는 카리스마를 보여 줬다. 이날 2시간 동안 21곡을 선보인 2NE1은 4∼6일 진행된 서울 콘서트에서 관객 1만2000명을 끌어모았다. 공연이 갑자기 성사돼 대관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비교적 수용 인원이 적은 홀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공연 중 산다라박이 “티켓 대란이라던데 앵콜 콘서트를 더 큰 데서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2NE1은 서울 공연 후 필리핀 마닐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일본 고베 등 9개 도시에 걸쳐 총 15회의 아시아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좀 더 깊이 있는 논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70)는 2일 통화에서 신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영유아의 행동을 관찰해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려 한 신간을 공동 번역했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발달심리학과 언어심리학의 권위자다. 2015년 이미 한 번 출간된 책이지만 최 교수가 새롭게 번역을 맡아 재출간하게 됐다. 최 교수는 “저자의 다른 작품 ‘공감의 배신’(2019년)은 ‘공감이 없을 때 오히려 더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도발적 내용으로 국내에서 주목받은 데 비해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오랜 연구 데이터에 기반해 탄탄하게 잘 쓴 책이라는 생각에 번역을 맡게 됐다”고 했다. 신간은 갓난아기에게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는지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을 제시한다. 생후 9개월, 12개월 아기들에게 각종 기하학적 도형이 서로 돕거나 방해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아기들의 시선은 도형들이 방해할 때보다 서로 도울 때 더 오래 머물렀다. 한 살배기 아기는 ‘착한 인형’과 공을 훔쳐가는 ‘못된 인형’을 구분하기도 한다. 저자는 “아기들이 ‘도움’이라는 선한 사회적 상호작용에 반응하는 본능이 있다”며 이를 본능적 도덕 감각이 존재한다는 근거로 내세운다. 무조건적인 ‘성선설’에 대한 지지는 결코 아니다. 아기의 도덕성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험에 따르면 백인 아기는 아프리카인이나 중국인보다는 백인 얼굴을 보는 것을, 에티오피아 아기는 백인보다 에티오피아인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같은 언어로 말하는 아이들을 친구로 삼길 선호하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 외에 보이는 배타적인 태도가 차별이나 범죄의 단초가 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 교수는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섞이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에 선과 악이 모두 있다’고 말한 전국시대 동양 철학자 고자의 의견에 동감한다”며 “어떤 쪽으로든 인간이 본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말 못 하고 통제가 어려운 갓난아기들과 실험하는 힘겨운 과정에 대한 생생한 묘사도 흥미롭다. 아기들은 직접적인 의사 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사물을 응시하는 시간과 같은 간접적인 지표를 통해 선호도를 파악해야 했다. 게다가 아기들이 엄마나 아빠가 보낸 무의식적 신호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했다. 예일대 유아인지센터를 이끄는 저자의 아내 캐런 윈 박사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최 교수는 “책을 보면서 꿈틀거리는 애들을 데리고 실험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이유가 뭘지 궁금했다”며 “한 달 동안 몇십 명 인터뷰하면 끝나는 다른 실험과 달리 반복적인 실패를 겪는 실험 과정을 통해 아무도 갖지 못한 데이터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결국 본성이 선하든 악하든 인간은 이성과 숙고를 통해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 “‘도덕성의 씨앗’이 이미 우리 안에 있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선천적인 도덕 감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꼭 읽어봐야 할 교육서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단순히 아기가 선하냐, 그렇지 않으냐에 그치는 책은 아니다”라며 “아이를 선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에게 추천한다”고 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5곡. 9월 마지막 주 멜론 주간차트 10위 안에 포함된 밴드 데이식스(DAY6)의 노래 곡 수다. 올 3월 발매된 미니앨범 8집 ‘포에버(Fourever)’에 수록된 ‘해피(HAPPY)’와 ‘웰컴 투 더쇼(Welcome to the Show)’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발매한 미니앨범 9집 ‘밴드에이드(Band Aid)’의 타이틀곡 ‘녹아내려요’는 데이식스의 예전 곡들에 밀려 4위를 차지했다. 2019년 발표한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5위, 2017년 발표한 ‘예뻤어’는 10위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4인조 보이밴드 데이식스가 2015년 데뷔한 후 9년 만에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음원 차트에 발매된 지 오래된 노래들을 줄 세우는가 하면, 지난달 20∼22일 사흘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모두 4만여 장에 달하는 티켓을 매진시켰다. 이전부터 밴드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데이식스 노래가 유명하긴 했지만 이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은 처음이다. 이런 인기 비결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은 노래에 있다.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를 사용하고,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노래한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 내려가자”며 청춘을 응원하는 내용이다.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준 선수가 결승전에서 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상의 절망에 얼어버릴 때 너로 인해 모든 것이 녹아내린다”는 내용의 ‘녹아내려요’, “내일은 걱정 하나 없이 웃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HAPPY’도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노래로 사랑받고 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데이식스 노래에는 공격적 메시지나 복잡한 테마가 없고, 지친 세대에 대한 ‘응원가’ 같은 느낌을 준다”며 “멤버들이 전곡을 작사 작곡하는 데다 호불호가 없는 노래를 하면서 더욱 사랑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근 밴드 음악이 주목받는 가요계 트렌드와도 맞물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어 가사와 전자음 위주의 아이돌 음악에 지친 사람들이 밴드 음악으로 발길을 틀었다는 것. 한 가요계 관계자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FT아일랜드와 씨앤블루 이후 밴드 아이돌의 명맥이 끊겼었는데, 데이식스가 이 틈새를 잘 파고들었다”며 “밴드로서 갖는 실력파 이미지에 아이돌의 비주얼까지 갖춘 보기 드문 사례”라고 했다. 데이식스는 기세를 이어 올 연말 K팝 밴드 최초로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메탈리카, 마룬5, 퀸 등 해외 유명 밴드가 고척돔에서 공연을 연 적은 있지만, 국내 밴드가 단독으로 공연한 사례는 없다. JYP 관계자는 “2015년부터 멤버들이 직접 작업해 온 곡이 풍부하게 쌓인 데다 노래에서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데이식스를 더욱 친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감정선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겠다”고 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절묘한 옛 모습 사라져 가므로 박정희 대통령이 그것을 보고 미리 먼 뒷날을 걱정한 나머지 두 탑을 새로 만들라 분부했다.’ 50년 가까이 국립경주박물관 중앙 야외전시장에 서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 복제품을 설명하는 비석 문구 중 일부다. 이 탑들은 1975년 경주박물관이 현재의 위치로 자리를 옮길 때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불국사에 있는 실물과 같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당시 박물관 신축 개관식과 함께 열린 탑 제막식에 박 전 대통령이 참석했다. 이 두 복제 탑이 이사 가게 됐다. 지난달 26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는 국보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을 야외전시장 중앙으로 옮기는 안건을 조건부 가결 처리했다. 고선사지 석탑은 현재 박물관 입구와 떨어진 신라미술관 근처에 있는데 ‘중앙’으로 오게 되는 것. 밀려나는 다보탑과 석가탑 복제품의 이전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 경주박물관은 2017년부터 이전 작업을 추진해 왔다. 석탑들이 연쇄 이동하는 것은 국보인 고선사지 석탑이 박물관 구석에 있어 관람객이 잘 보지 못하고, 복제된 다보탑과 석가탑을 실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 경주박물관 관계자는 “관람객들이 다보탑과 석가탑 복제품을 진짜인 줄 알고 국보보다 더 관심을 보였다. 국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탑을 옮기기로 했다”고 했다. 고선사지 석탑은 통일신라 전기인 7세기 후반 원효대사(617∼686)가 주지로 있던 고선사에 세워졌다. 1975년 덕동댐 준공으로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석탑들을 해체 조사하고 보존 처리를 거쳐 이축하기까지는 4∼5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5곡. 9월 마지막주 멜론 주간차트 10위 안에 포함된 밴드 데이식스(DAY6)의 노래 곡수다. 올 3월 발매된 미니앨범 8집 ‘포에버(Fourever)’에 수록된 ‘해피(HAPPY)’와 ‘웰컴 투 더쇼(Welcome to the Show)’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지난달 발매한 미니앨범 9집 ‘밴드에이드(Band Aid)’의 타이틀곡 ‘녹아내려요’는 데이식스의 예전 곡들에 밀려 4위를 차지했다. 2019년 발표한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5위, 2017년 발표한 ‘예뻤어’는 10위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4인조 보이밴드 데이식스가 2015년에 데뷔한 지 9년 만에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음원 차트에 발매된 지 오래된 노래들을 줄 세우는가 하면, 지난달 20~22일 사흘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 콘서트를 열고 모두 4만여 장에 달하는 콘서트 티켓을 매진시켰다. 이전부터 밴드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데이식스 노래가 유명하긴 했지만 이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은 처음이다. 이런 인기 비결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은 노래에 있다.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를 사용하고,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노래한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며 청춘을 응원하는 내용이다.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준 선수가 결승전에서 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상의 절망에 얼어버릴 때 너로 인해 모든 것이 녹아내린다”는 내용의 ‘녹아내려요’, “내일은 걱정 하나 없이 웃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HAPPY도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노래로 사랑받고 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데이식스 노래에는 공격적 메시지나 복잡한 테마가 없고, 지친 세대에 대한 ‘응원가’ 같은 느낌을 준다”며 “멤버들이 전곡을 작사 작곡하는 데다 호불호가 없는 노래를 하면서 더욱 사랑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근 밴드 음악이 주목받는 가요계 트렌드와도 맞물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어 가사와 전자음 위주의 아이돌 음악에 지친 사람들이 밴드 음악으로 발길을 틀었다는 것. 한 가요계 관계자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FT아일랜드와 씨앤블루 이후 밴드 아이돌의 명맥이 끊겼었는데, 데이식스가 이 틈새를 잘 파고 들어갔다”며 “밴드로서 갖는 실력파 이미지에 아이돌의 비주얼까지 갖춘 보기 드문 사례”라고 했다. 데이식스는 기세를 이어 올 연말 K팝 밴드 최초로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메탈리카, 마룬5, 퀸 등 해외 유명 밴드가 고척돔에서 공연을 연 적은 있지만, 국내 밴드가 단독으로 공연한 사례는 없다. JYP 관계자는 “2015년부터 멤버들이 직접 작업해 온 곡이 풍부하게 쌓인 데다 노래에서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데이식스를 더욱 친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감정선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겠다”고 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텔레그램이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기술을 악용한 불법 게시물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를 요청하면 이를 즉시 이행하기로 했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30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9월 27일 오후 첫 대면 실무협의에서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범죄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한국의 상황을 깊이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고 했다. 또한 텔레그램은 디지털 성범죄, 음란, 성매매, 마약, 도박 등 각종 불법 정보에 대해 삭제 요청 시 이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방심위는 밝혔다. 텔레그램은 전담 직원을 통해 상시 연락이 가능한 핫라인을 추가로 구축하고, 실무자 간 정기 협의체를 가동하기로 약속했다. 방심위에 따르면 9월 3일 텔레그램과 핫라인 개설 후 25일까지 방심위가 148건의 디지털 성범죄 정보에 대한 삭제를 요청했으며, 텔레그램은 이를 모두 이행했다. 이 중 삭제 처리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사례는 약 36시간이 소요됐다. 이동수 방심위 디지털성범죄심의국장은 “텔레그램을 통해 범죄에 연루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아이디와 전화번호 정도는 (경찰에)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도 관련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3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올 9월 25일 기준 딥페이크 성범죄 신고 812건을 접수했고, 387명의 피의자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우 본부장은 텔레그램 측과도 수사 협조와 관련해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 본부장은 “텔레그램과 면담이 있었으며, 소통을 시작한 단계”라고 전했다. 그간 텔레그램은 경찰 수사 협조 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해온 바 있다. 하지만 8월 25일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프랑스에서 체포되면서 텔레그램 측도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우 본부장은 “딥페이크 운영자 수사를 위해 프랑스 수사 당국과 국제 공조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텔레그램을 이용한 딥페이크 성범죄 수사를 위한 위장 수사 제도와 관련해서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에 따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머리채가 긴 사람이 두 손으로 따비를 잡고 힘차게 밭을 갈고 있다. 그 왼쪽에는 수확한 곡물을 토기에 담는 이가 보인다. 6일 충북 증평군 증평민속체험박물관에서 개막한 ‘시대를 담다, 농경문 청동기’ 전시에서 선보인 보물 ‘농경문 청동기’의 독특한 무늬다. 기원전 3, 4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은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의례용 도구로 여겨진다. 구리에 주석을 섞은 청동은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주조 기술이 필요하기에 청동 의기는 당대 지배계급이 전유한 물건이었다. 박유진 증평민속체험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초기 철기시대의 풍부하고 생생한 한반도 농경문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전시에선 농경문 청동기 외에 국보 ‘청동방울’과 ‘방패형 동기’도 소개됐다. 이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국박)과 지역 공립 박물관·미술관이 협업한 ‘국보 순회전’의 일환이다. 서울 국박에 편중된 국보, 보물을 지역으로 순환 전시해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공립 박물관을 살리려는 취지로 기획됐다. 국보, 보물 22점, 29점을 공립 박물관 및 미술관 6곳에 3∼7점씩 나눠서 보낸다. 해당 유물들은 신라 금관, 기마인물형토기, 청자, 백자, 농경문 청동기 등 교과서에 나오는 중요 문화유산이다. 올 6∼9월 충남 보령군, 전남 강진군 등에 이어 9∼12월 증평군, 강원 양구군 등 6곳에서 진행된다.국보, 보물의 관람객 유인 효과는 큰 편이다. 실제로 농경문 청동기가 전시된 6∼19일 증평민속체험박물관 방문객 수는 237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62명)에 비해 147% 늘었다. 앞서 6월 5일∼7월 21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금관, 금방울을 선보인 경남 합천박물관도 방문객 수가 이전보다 162% 증가했다. 증평민속체험박물관 전시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국보, 보물을 굳이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동네에서 볼 수 있다는 데 만족감을 표했다. 인근 형석고에 재학 중인 장민선 군(16)은 “교과서에 나오는 귀중한 유물들을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있다니 신기했다”고 말했다. 윤선식 형석고 역사 교사(34)도 “보통 국보나 보물은 서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만 전시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 학생들이 손쉽게 생생한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박유진 학예연구사는 “추석 기간 중 가족 방문이 이어졌고, 인근 학교들의 단체 관람 스케줄도 꽉 찬 상태”라고 전했다. 주요 국보, 보물이 서울 국박에 소장돼 있는 것은 전시 환경 등을 감안한 조치다. 지방 공립 박물관은 국박에 비해 항온 항습 기능 등이 갖춰진 수장고나 전시 공간이 부족한 데다 유물 보험 비용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황은순 국박 학예연구관은 “전시 환경에 덜 민감한 금속과 토기 등을 이번 순회전에 우선 선정하고, 보안이나 운반에도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순회전에선 지역에서 새로 발견된 유물을 연계한 전시도 마련돼 눈길을 끈다. 전북 장수역사전시관은 13일 개막한 ‘금관총 금관, 그리고 이사지왕’ 전시에서 신라 금관총 출토 금관 등과 더불어 올여름 춘송리 고분군에서 발굴된 신라 토기 22점과 고대 악기 ‘훈’을 선보이고 있다. 이진성 장수역사전시관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장수군에서는 주로 가야 고분이 확인됐지만 최근 신라 고분도 새로 발견됐다”며 “장수군이 갖는 신라의 역사성을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증평=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움마의 남자가 닝기르수의 국경을 넘지 못하게 하소서. 제방이나 도랑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소서.” 고대 수메르의 도시국가 라가시에서 기원전 2450년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독수리 비석’ 문구의 일부다. 라가시는 다른 도시국가 움마와 100년 넘게 물의 통제권을 놓고 싸웠다. 관개 운하 등 물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해야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초기 국가에서는 수자원을 통제하는 능력이 권력 확보에 핵심 요소로 인식됐다. 2018년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칼 세이건상을 받은 물 전문가인 저자는 신간에서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인 물의 역사를 세 시기로 나눈다. 첫 번째 시대는 수렵채집 생활의 시작부터 강을 기반으로 4대 문명이 꽃핀 시기까지다. 당시 유목에서 정착으로 인류의 생활방식이 바뀌면서 댐, 수로는 물론이고 물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정비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대는 산업혁명 후 기술 발달을 토대로 과거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물 활용이 가능해진 시기다. 이때 인류는 빙하에서 사막까지 수천 km에 이르는 수로를 건설하고, 농경이 불가능한 지역에서 식량 재배가 가능하도록 대규모 관개 시스템을 구축했다. 저자는 “현대 문명은 두 번째 물의 시대의 발전 위에 세워져 경제·사회·문화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시대의 발전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 수자원 통제는 효율적인 경제 성장을 가져왔지만 의도치 않은 부작용도 초래했다. 환경 파괴와 그로 인한 기후변화다. 1700년대 이후 지구 해안과 내륙 습지의 87%가 파괴됐는데, 이 중 30%가 기술 발전이 가속화된 1970년대 이후 훼손됐다. 생태계도 망가지고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에 따르면 어획이 쉬운 대형 어종 200여 종 가운데 85종은 이미 멸종 위기에 처했다. 민간기업의 ‘수도 민영화’도 두 번째 물의 시대에 닥친 또 다른 위험 요소다. 세계은행은 1990년부터 2021년까지 65개국의 상하수도 부문에서 1100건 이상의 민영화가 이뤄졌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민간기업은 자연 수생태계를 보호할 유인책이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1989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잉글랜드와 웨일스 상하수도 시스템을 10개 지역 기업에 넘겨 민영화했지만, 물 가격은 대폭 올랐고 환경 오염은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물의 세 번째 시대를 통해 물과 인류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앞으로 물 사용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재 지하수는 세계 식량의 3분의 1 이상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지하수는 화석 연료처럼 매장량이 한정돼 있어 언젠가 고갈될 수밖에 없다. 화석 연료는 풍력, 태양 등 대체 에너지가 있지만, 수자원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대안으로 △물 이용에 대한 보편적 권리 인식 △훼손된 생태계 복원 △폐수 등을 활용한 수자원 가용성 확대 등을 제시한다‘디스토피아냐, 지속 가능한 세계냐.’ 인류의 행동에 따라 다가올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한가위 열대야’를 처음 겪은 한국에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진행 중인 기후위기의 실존적 위협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해하기 쉬운 문장과 각종 도표로 물에 대한 전문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자연은 ‘초월적인 존재’잖아요. 인간관계처럼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자연을 빌려와서 곡을 써요.”4일 서울 성북구 연습실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최유리(26)는 대표 곡 ‘숲’을 작곡·작사한 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숲’은 BTS 뷔와 세븐틴 도겸 등 스타 가수들이 추천하면서 힐링 곡으로 입소문을 탔다. 음악차트 역주행에 이어 지난해 방송에서 이 곡을 부른 그의 영상 조회수가 450만 회를 넘겼다.2022년 8월 발표한 싱글앨범 ‘유영’에 수록된 ‘숲’은 사실 대학생 시절 주변 사람들로부터 느꼈던 ‘자격지심’을 풀어낸 노래라고 했다. 스스로를 남들보다 키 작은 나무라고 생각해 위축되면서도, 얼른 한 뼘 큰 나무가 돼 남들과 숲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 같은 싱글에 실린 ‘바다’는 땀과 작은 눈물이 고여 모든 사람이 헤엄칠 수 있는 바다가 되고픈 마음을 노래했다. 숲과 바다라는 자연물을 노래의 소재로 쓰는 것에 대해 그는 “인간관계를 직접 얘기하면 아프니까 돌려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강원 평창군 출신의 최유리는 동아방송예술대 재학(작곡과) 중이던 2018년 싱어송라이터의 등용문인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자작곡 ‘푸념’으로 대상을 받았다. 2020년 정식으로 데뷔하면서 낸 미니앨범 ‘동그라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미니앨범 7장을 발표했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 ‘갯마을 차차차’ 등 유명 드라마 OST를 불러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최유리의 노래는 감성적인 가사와 어우러지는 따뜻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특히 남녀 간 사랑 외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소재를 가사에 활용해 ‘읽는 재미’가 있는 가수라는 평을 듣는다. 최유리의 첫인상은 그가 만든 감성 넘치는 노래들처럼 ‘촉촉한 느낌’은 아니었다. 살짝 뻗친 단발머리에 진한 청재킷을 입은 그는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음악적 영감을 받는 편은 아니다”라며 “제멋대로 상상하면서 볼 수 있는 웹툰을 선호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웹툰은 판타지 학원물 ‘일렉시드’, 성격유형지표(MBTI)는 ‘용의주도한 전략가’ 형인 INTJ. 살짝 삶에 지친 듯한 건조한 표정은 예술가라기보다 평범한 20대 직장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음악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음악은 내게 가장 큰 취미”라고 말했다. “마음이 좀 헛헛해서 다른 취미를 조금 찾아보려고 하다가도 결국 돌아오는 건 ‘이 직업’이더라고요. 레고 맞추기 같은 색다른 취미를 갖더라도 그건 잠깐이고, 음악 작업할 때가 가장 편해요.” 그는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가수 김범수의 정규 9집 타이틀 곡 ‘여행’을 작사·작곡하며 활동 반경을 넓혔다. 고음 위주의 기존 김범수 노래와는 조금 다른 담담한 감성의 곡이다. 김범수는 앨범 발매 당시 인터뷰에서 “최유리의 노래를 들으면 잔에 물이 조금씩 채워지는 감사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최유리는 “곡을 쓸 때 그 사람이 해줬으면 하는 얘기, 그 사람이 했을 때 정말 슬프거나 에너지가 실릴 것 같은 얘기를 쓰려고 한다”며 “대선배님과 작업하면서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 등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최유리는 10년 뒤 음악프로 심사위원이 되는 게 버킷리스트란다. 그는 설레는 목소리로 “음악 하는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는 것 보고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밌을 것 같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그는 11월 9, 1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3022석)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5년 차 솔로 가수로서는 작지 않은 ‘성취’로도 보였다. “유명해지는 것보다 스스로가 재미있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다만 성실하게, 지금의 끈기를 잃고 싶지 않아요. 더뎌도 묵묵히 하는 단단한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