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김유영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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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유영 부본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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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10-22~2024-11-21
칼럼100%
  • 서민 위한다는 정부의 ‘K자형 부동산 격차’[광화문에서/김유영]

    최근에 만난 후배 A는 올해 5월에 서울 강북 지역에 집을 샀다고 했다. 한동안 부동산 커뮤니티와 단톡방을 열심히 드나들던 남편이 “지금이라도 사자”며 있는 돈 탈탈 털고 무리해서 대출까지 받았다. 당시 오를 대로 오른 집값인데도 반 년 만에 2억 원 넘게 올랐다. 부부 연봉을 합한 금액의 두어 배를 앉은 자리에서 벌어들인 셈. 그런데 그는 “하나도 좋지 않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맞춰 학군 좋은 곳에 이사 가서 살고 싶지만, 그런 동네는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가격이 치솟았다. 서울 강남권에서 시작돼 서울 강북은 물론 경기 인천 부산 대구 울산에 이르기까지 집값이 연이어 오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지역에서 집값이 평등하게 오르는 것은 아니다. 지역별 집값 격차는 오히려 ‘K자형’으로 더 벌어지고 있다. 대단지이면서 국민주택 규모(전용 85m²)인 서울 각지의 아파트 값을 살펴보면 서울 강북구 SK북한산시티는 최근 7억5000만 원에 팔렸다. 현 정부 출범 때인 2017년 5월에 4억 원에 거래됐으니 3억5000만 원 올랐다. 이 기간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7단지도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올랐다. 이들 단지 집값은 모두 2배 가까이로 올랐지만, 금액으로 치면 강남권 아파트와는 비교가 안 된다. 서울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는 2017년 16억∼17억 원에서 30억∼31억 원으로 치솟았고, 서울 송파구 리센츠는 12억5000만 원에서 23억 원으로 급등했다.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이 실물이 아닌 자산으로 잠기면서 집값 상승은 어느 정도 예견은 됐었다. 하지만 국민주택 크기의 집값이 특정 지역에서 로또 당첨금에 버금갈 정도로 10억 원 넘게 뛴 것은 유동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핀셋 규제를 한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지만 해당 구역뿐 아니라 인접 지역까지 풍선 효과로 가격을 높였고 재건축 추진도 어렵게 만들어 공급은 여전히 옥죄고 있다. 양도세 중과로 파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만들어 매물도 예전처럼 많이 안 나온다. 이처럼 공급이 달리며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수요는 여전히 높아 가격이 계속 올라가는 건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현 정부 출범 직후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세금과 대출 등 고강도의 규제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강남 집값은 규제에도 아랑곳없이 더 많이 오르며 연일 최고 가격으로 거래되는 게 현실이다. 사실 후배 A 부부는 그나마 나은 경우다. 집을 보유했고 그 집값도 오르긴 했다. 진짜 문제는 집 없는 ‘진짜 서민’들이다. 티끌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높아진 집값에 비하면 여전히 티끌인 시대가 됐다. 고로, 이들의 내 집 마련 기회는 더 멀어졌다. 서민 위한다는 정부가 집값 격차를 키우면서 서민에게 상대적인 빈곤감과 박탈감을 심어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평등하지 않고 기회도 막혀 있다. 수요 공급 원리를 무시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으로는 영원히 집값을 잡을 수 없다. 정부가 이제는 시장과 화해했으면 한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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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비규환 전세시장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면[광화문에서/김유영]

    올가을 전세시장은 지난여름의 매매시장을 방불케 한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뛰어 아파트 단지별로 전셋값 신고가(新高價)가 속출한다. 돈이 모자라 매매시장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전세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나마 전세 매물이 있으면 다행. 대단지에서조차 매물이 없어 부동산 중개업소에 번질나게 드나들며 부탁해놓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매물을 바로 채가고, 웬만큼 좋다는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비싼 월세를 감수해야 하는 등 ‘한 번도 경험 못한 시장’을 경험하고 있다. 성난 민심을 읽었는지 대통령은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세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기필코’라는 부사에 힘이 실렸다. 그러면서 임대차법 안착과 질 좋은 공공 임대아파트 공급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과연 지금의 전세대란이 임대차법이 안착되고 좋은 공공임대가 나오면 해결될 문제인가. 정말 그렇게 여긴다면 문제 진단이 한참 잘못됐다. 지금의 상황은 임대차법 시행 전부터 예견됐다. 많이들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의 주택 공급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집주인이 자신이 보유한 집에 실거주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보게끔 대출, 세제 규제가 잇달아 쏟아졌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6개월 이내 들어가 살아야 하고, 재건축 아파트도 2년 이상 살아야 입주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식.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신규 아파트에도 집주인이 살게 해서 신축 단지에서 전세 물량이 대거 풀리는 일도 앞으로는 드물게 됐다. 사실 집주인인 동시에 세입자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집 한 채는 있어야 든든해하는 정서상 다른 곳에 집을 사서 세 주고 교육 여건이 좋거나 직장이 가까운 곳에 세 살고 있는 경우다. 반대로 좋은 동네에 집 한 채 마련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해 전세 끼고 사두고 본인은 전셋값이 싼 곳에 세를 살며 전세를 ‘주거 이동의 사다리’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투기꾼으로 몰아 집값 안정을 빌미로 각종 규제를 강화했다. 이들이 세입자를 내보내고 들어가 사는 일이 연쇄적으로 빚어졌고 맨 끝단의 세입자가 어디론가 밀려나며 전세시장이 불안해졌다. 민간 부문에서 임대 물량을 공급했던 다주택자에게 ‘징벌적 과세’를 하고 임대사업자에게 줬던 세제·금융 혜택을 없애 물량이 줄어드는 점도 한몫했다. 여기에 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담은 임대차법이 시행되며 전세난의 불씨를 지폈다. 문제는 앞으로다. 보유세 등 각종 세금 중과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저금리 시대에 세금 부담을 높은 월세로 전가하려는 집주인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금의 전세대란은 각종 규제가 얽히고설켜 전세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져서 빚어진 영향이 크다. 정부는 ‘전세 안정’ 의지를 거듭 밝히지만 전세 찾기에 지친 사람들은 이젠 ‘전세 안녕’ 해야 하지 않느냐며 쓴웃음을 짓는다. 더 나은 집에서 살고 싶고, 더 나은 집을 갖고 싶은 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다. 이런 욕망을 악(惡)으로 몰아세우고 공급을 옥죄는 철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전세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는 공언은 허언에 그칠 수 있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 2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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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시대의 재택근무, 사무실은 사라질 것인가[광화문에서/김유영]

    대기업 마케터인 서모 부장(43)은 올해 3월 재택근무를 시작할 때 내심 좋아했다. 1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시간에 운동하거나 책을 읽을 시간을 벌었다. 상사 눈치를 보며 종종 늦게까지 있어야 했던 일도 사라졌다. 노트북과 와이파이가 있으면 어디서든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될 줄 알았다. 반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그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차라리 편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왜일까. 화상회의가 여러 차례 이어지다 보니 화면은 아예 꺼놓고 소리만 키운 채로 다른 일을 할 때도 있고 사무실이라면 몇 마디 말로 간단히 될 일을 여러 차례 e메일이나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해결해야 할 때도 있었다. 상사에게 보고해도 한참 후 답이 돌아와 진이 빠졌고, 일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지며 집에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피로감이 이어졌다. 이른바 재택근무 탈진(burn-out) 혹은 줌 피로(Zoom Fatigue)다. 그래서인지 1993년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시작했던 IBM은 2017년 이를 중단했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코로나19로 시작한 재택근무를 중단하고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아마존은 아예 사무실을 늘리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 금싸라기 땅인 5번가에 있는 백화점 건물을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를 주고 사들여 직원 2000명이 근무하는 사옥으로 한창 보수 중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혁신의 씨앗’은 대면 근무에서 비롯된다는 판단에 따른 영향이 크다.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과정에서 ‘생각의 섞임’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는다는 것. 의사소통에서도 비언어적인 신호(non-verbal cue)까지 포착해야 상대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협업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는 ‘규칙 없음’이 규칙일 정도로 직원들에게 전폭적인 자율성을 부여해 기업을 성장시키고 있지만 정작 재택근무에 대해서는 “딱히 득 될 게 없다(few positives)”고 단언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택근무 확산이 빨라질 것이며,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사무직의 일하는 방식은 바뀔 것으로 보인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10년 내에 직원 절반이 재택근무를 할 것으로 예상했고, 트위터는 직원이 원하면 영구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고까지 선언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도 장기화되자 직원들끼리 친밀감과 유대감을 다지기 위해 ‘온라인 티타임’을 갖거나 평소엔 재택근무를 해도 특정일에는 사무실로 나와 일하는 ‘오피스 데이’를 만드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재택근무의 장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혁신은 예상치 못한 우연한 만남(serendipity)에서 나온다. 혁신의 돌파구가 인구 100만 명 이상인 도시에서 생겨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윤혜진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는 “재택근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재택근무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혁신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생각을 접하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혁신을 바탕으로 성장을 이어 나가려면 기업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 20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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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빅브러더’ 급등한 집값 잡을까[광화문에서/김유영]

    “부동산 감독기구에 (검찰의) 기소 권한을 부여해야 합니다.”, “국민 주거권을 침해하는 세력에 감독 기능을 철저히 행사해야 합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시장 감독기구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라는 토론회에서 부동산 감독 권한 강화 방안이 쏟아졌다. 내년 초 부동산거래분석원 출범을 앞두고 여당 의원실 주최로 마련된 자리였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은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부동산 거래를 상시 감독하게 된다. 시장의 불법·편법 행위를 감시하겠다는 목적이지만, 금융거래와 납세 기록 등까지 샅샅이 뒤져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개인 정보 침해 등의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주민등록 전산정보나 등기기록, 보험료 납부 명세, 금융자산, 신용정보까지 각 기관에서 제출받아 부동산 감독에 활용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따지고 보면 부동산 감독 체계는 이미 있다. 각종 불법·편법 행위와 관련해 세금은 국세청에서, 대출은 금융감독원 등에서 감시하고 있다. 서울이나 경기에서 웬만한 집을 사려면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동안 3억 원 이상 주택에 해당됐는데 다음 달부터는 조정대상지역이라면 모든 주택에 의무화된다. 예금 잔액과 소득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할 수도 있다. 집을 사는 순간 집값과 무관하게 조사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부동산 감독을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의 발언에서 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참여연대 출신의 이 세무사는 “투기세력 등 집을 갖고 장난질을 하는 분들이 더 이상 시장이라든지 국민, 정부를 비웃지 않게 좀 하자”고 말한다. 대통령도 총리도 부총리도 장관도 약속이라도 한 듯 “투기세력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고 한다. 투기세력이 집값 상승의 주범이며 이들을 잡아야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10억 원을 돌파했다’는 부동산 정보업체를 여당 의원은 ‘언론의 탈을 쓴 어둠의 세력’으로 칭하는가 하면, 집값 상승을 다뤘던 부동산 유튜버들은 시장 교란 세력으로 지목되자 일제히 활동을 접었다. 그런데, 과연 누가 투기세력이고 누가 집으로 장난질 했다는 말인가. 불법 행위는 없어져야 마땅하지만 최근 1, 2년간 집을 사들인 사람들은 무주택자나 일시적 2주택자 등 실수요자들이 상당수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정부 조사를 받을까 두려워하며 자금조달계획서를 쓰고 있다. 이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자금조달계획서 작성법에 대한 문의가 넘친다. 서류를 잘못 제출했다가는 자칫 과태료나 세금까지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집값 급등은 부동산 시장을 감시할 기구가 없어서 빚어진 일이 아니다. 주택 공급은 줄고 각종 규제로 오히려 집값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이제라도 집을 못 사면 영영 못 산다는 두려움에 따라 주택 매수에 나선 사람들이 많다. 정부는 집값이 안정됐다고 하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집값이 상승률 0%에 수렴하며 높은 집값이 유지되고 있다. 부동산 감독 강화를 시장 안정의 해법으로 여긴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 집값은 신념으로 잡히지 않는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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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입자와 집주인, 적대관계로 모는 정부[광화문에서/김유영]

    “엄마 아빠 신혼 때는 6개월마다 이사 다녔다고?” 최근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서 국토교통부가 제작한 ‘90년대생은 모르는 그때 그 시절’이라는 웹툰이다. 이삿짐 싸기 힘들다고 불평하는 자녀에게 부모는 ‘라떼는 말이지…’라며 말문을 뗀다. 신혼 시절에는 멀쩡한 집을 두고 6개월마다 (임대차) 계약을 갱신했어야 했는데, 재계약을 못 하면 이사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들은 “임대차 3법으로 임차인(세입자)과 임대인(집주인)의 관계가 동등해지겠네”라며 ‘2년+2년’ 계약갱신청구권의 우수성을 홍보했다. 과연 그런가. 현실 속의 세입자들은 여전히 마음을 졸이고 있다. 앞으로 가격을 못 올릴 걸 우려하는 집주인은 전세 매물을 새로 내놓을 때 4년 치 인상분을 반영해 높게 내놓거나 아예 반월세로 돌린다. 실거주를 이유로 현 세입자를 내보내고 다른 세입자를 들이려 하기도 한다. 새로운 세입자를 들일 때에는 전월세상한제를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은 높아진 전셋값에 전세대출은 물론 신용대출까지 ‘영끌’해서 돈을 마련한다. 주요 지역 아파트 매매가에 붙는 신고가(新高價)라는 수식어가 이젠 전세가에도 붙으니 속이 쓰리다. 영끌해도 전셋값이 모자라면 서울 외곽으로 밀려 나간다. 교육 환경이 좋은 지역에서는 자녀가 학교 마칠 때까지 눌러앉으려는 마음에 세입자가 먼저 전셋값을 5% 넘게 올리겠다는 경우도 있다. 집주인이 살겠다며 나가라고 할까 봐 미리 방어하려는 차원이다. 물론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갱신을 거부했는데 실제로 살지 않으면,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등을 개정해 계약 갱신을 거부당한 기존 세입자는 해당 주택의 확정일자와 전입신고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따라서 계약 갱신 거절을 당한 세입자는 자신이 전에 살았던 집에 집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지 언제든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억하심정으로 기존 집주인을 2년간 ‘감시’하고 시간과 비용을 따로 들여 소송에 나서는 세입자가 얼마나 있을까. 또 개인 정보보호에 역행해 거주 여부를 제3자인 기존 세입자에게 감시당해야 하는 집주인은 무슨 죄인가. 기존 세입자 동의 없이 임대료를 한 푼도 못 올린다는 규정도 양측의 갈등을 구조적으로 키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집주인과 세입자를 적대 관계로 설정한 정부 시각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공공임대 주택 못지않게 개인이 공급하는 임대주택도 중요하다. 전체 전·월세 시장에서 개인 등 민간이 공급하는 물량이 80∼90%에 이르기 때문이다. 세입자 보호 취지와 달리 시장 지표는 거꾸로 나오고 있다. 가을 이사철이 다가오는데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0주 연속 상승하고 전세 품귀로 전세 수급지수는 전세대란(2015년) 수준으로까지 치솟았다. 지금이라도 세입자와 집주인이 상생 관계라는 시각으로 제도 연착륙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미래 언젠가는 ‘20년대생은 모르는 그때 그 시절: 엄마 아빠 신혼 때에는 집도 못 구했다고?’라는 도시괴담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 202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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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끌도 아끼는 청춘들 ‘욜로’ 포기의 심리학[광화문에서/김유영]

    사회초년생 박모 씨(26)는 입사 2년 차인데 신용카드가 없다. 연말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것보다는 아예 카드를 긁지 않고 돈을 아끼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친구들과 만나 지출이 생기면 며칠은 돈을 안 쓴다. 한 달 용돈 30만 원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한다. 스트레스도 재테크로 푼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통장에 돈을 이체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달라지고 있다.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돈을 쓰던 이들이 이제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금이든 종잣돈 불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나 애널리스트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메신저의 채널에서 주식 시황과 뉴스 해설을 받아 본다. 많게는 1000명 가까이 되는 부동산 투자 단톡방에 들어가 각종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정부 규제를 논한다. 그래도 궁금한 건 유튜브를 통해 배운다. 유튜브엔 이들에게 익숙한 수능 인강(인터넷 강의) 스타일로 일일이 정보를 알려주는 영상들이 쌓여 있다. 주말엔 ‘임장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나 모하(모델하우스)를 누비며 당장은 사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지만 종잣돈이 불어날 언젠가를 기약해 본다. 심지어 10, 20대가 주(主) 사용층인 틱톡에서도 주식 크리에이터가 등장해 인기를 끈다. 1분짜리 짧은 영상을 올리는 앱 특성상 춤추는 모습 등이 주를 이루지만 이들은 직접 투자한 주식 종목과 수익률 등 주식 현황판 영상을 공개한다. 실시간 게임을 보여주는 플랫폼인 트위치나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에서도 장(場)이 열리면 자신의 주식 투자 현황판을 그대로 보여줘 수백 명이 동시에 지켜보기도 한다. 이들은 마치 게임을 관전하듯 현황판을 보며 수익률이 오를 때에는 환호를, 급락할 때에는 탄식을 대화창을 통해 보낸다. 이들은 왜 재테크에 매달릴까. 그동안 모아둔 돈도 없는데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지도 몰라 앞날이 막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 돈을 모아 주식으로 불린 뒤 집을 사고, 은퇴해도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것. 실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최근 만 25∼39세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복수응답)한 ‘밀레니얼 세대 신투자인류의 출현’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재무적 목표로 ‘주택 매입을 위한 재원 마련’(61%), ‘은퇴자산 축적’(51%)을 꼽았다. 한때 호주의 부동산 재벌이 “힙스터들이여, 브런치 사먹을 돈을 모아 집을 사라”고 말해 현지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비난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에게는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질(質)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 안정성도 떨어지면서 집값은 크게 올랐다. 다가올 미래에 각종 복지예산 증가로 이들이 짊어져야 할 세금 부담은 커지고 국민연금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아끼고 조금이라도 수익률을 높여 그 나름의 미래를 구축해놓는 게 이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최근 젊은층의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대통령이 이달 5일 “젊은이들과 꿈을 함께 하겠다”고 발언한 게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현상이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 20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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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통의 서울 시민에겐 끊어진 부동산 사다리[광화문에서/김유영]

    “집 샀어?” 젊은 사람들로 붐비는 주말 카페나 도심 오피스 식당에 있으면 옆 테이블에서 요즘 자주 들리는 소리다. 때로는 부러움 섞인 이야기가 오가지만 대개는 탄식으로 시작해 분노로 끝난다. 요즘만큼 부동산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하게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서울 아파트 값(중위가격)이 올 초 9억 원을 돌파했으니 백만장자(millionaire) 뜻도 수정되어야 한다. 100억 원이라면 모를까, 100만 달러(약 12억 원)로 한국에서 부자라 하기엔 어림도 없게 됐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혹은 물려받을 재산이 마땅히 없는 서울 사람들은 요새 유독 절망스러워한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욕구에 따라 좋은 동네의 좋은 집을 어떻게든 사고 싶어 하지만, 그 길이 사실상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전세 끼고 집을 사두는 ‘한국형 내 집 장만 모델’이 불가능해진 게 대표적이다.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라 목돈 마련이 힘든 사람들은 현 거주지보다는 상급지에 전세 끼고 아파트를 사뒀다가 나중에 돈 모아서 입주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곤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9억 원 이상 아파트(지난해 12·16대책)에 이어 3억 원 이상 아파트(올해 6·17대책)까지 이런 매매가 힘들어졌다. 서울에서 3억 원을 밑도는 아파트는 씨가 마르고 있어 서울 대부분의 아파트가 이런 규제를 받는다. 은행 대출도 힘들어졌음은 물론이다.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를 사려면 집값의 50∼60%는 현금으로 들고 있어야 한다. 강남으로 향하는 길은 더 험난해졌다. 강남 아파트 값은 대체로 15억 원 이상인데 담보대출이 전면 금지됐고 실거주 요건도 강화됐다. 정부는 집값 상승 요인으로 강남 4구(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전세 끼고 사는 주택 매매 비중이 높았다는 점을 들었지만 이 지역은 진입 대기 수요가 꾸준히 존재해 왔다. 사람들이 절망하는 정부 대책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부가 ‘1가구 1주택’과 ‘실거주’를 강조하다 보니 더 나은 삶으로의 상향 이동(upward mobility)을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나 노후 대비, 자녀 결혼 등에 따른 추가 수요는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의 정책은 자신이 보유한 집에 거주하고 있지 않으면, 이런 수요를 모두 투기로 몰아붙이고 대출 한도도 줄이고 갭 투자도 막아놓았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풍선효과가 일어나는 등 시장 왜곡이 생기고, 결국 사람들은 지금의 집에 머물러 앉을 수밖에 없다. 자조 섞인 웃음을 자아내는 ‘부동산 계급표’가 요새 나오는 이유다. 황족-왕족-중앙귀족-지방호족-중인-평민-노비 등으로 나뉘어 집값이 비싼 순으로 서울의 각 자치구 거주자들이 나뉘어 있다. 차익만을 노린 단기 투자는 규제받아 마땅하지만 서울 집값이 오르는 건 투기 세력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공급 확대를 지시하고 정부가 늦게나마 공급 방안 마련에 나선 점은 꽤 긍정적이지만 서울에 공급해도 투기 세력의 먹잇감을 늘려주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면 성난 부동산 민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충분히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집값이 안정된다. 더 나은 삶을 살고픈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린 대책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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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의 할머니 52년생 장명숙[광화문에서/김유영]

    일흔에 가까운데 청춘들이 열광하는 할머니가 있다. 은발 커트 머리가 예사롭지 않다. 파마도 염색도 안 했다. 나긋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튜브 밀라논나 채널을 운영하는 장명숙 씨(68)다. 유튜브 활동 반년 만에 구독자 수 50만 명을 거뜬히 넘겼다. 초반에 대학 교양강의 같다며 몰려든 젊은이들이 이제는 인생수업이라 칭한다. 일단은 직업적인 내공. 1978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패션 유학을 떠나 한국에 페라가모를 들여오는 등 패션 바이어로 활약했다. 유튜브에서도 명품 매장을 방문해 어떤 스타일의 옷인지, 해당 브랜드는 어떤 특성과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등 전문가가 아니면 못 할 이야기를 소개한다. 현지 매장 섭외까지 해서 촬영한 것도 네트워크가 탄탄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평생직업이 필요한 시대에 그는 자신만의 분야를 만들어 평생의 인맥과 지식을 밑천으로 여전히 일하고 있다. 압권은 상담 코너다. 인간관계가 힘들다는 사람에게 “내가 할 만큼 했는데도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다면 관계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것”이라며 “나의 귀한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마음의 지옥에 가두지 말라”고 조언한다. ‘선배가 여전히 편한데 연차가 올라 후배가 어렵다’는 젊은 직장인에게는 “수평적 관계에서 선배에게 일을 배웠을 때의 고마움을 후배에게도 느끼게 해주라”고 제안한다. 찌들지 않은 모습에 ‘애는 없겠거니’ 짐작할 법도 하지만 그는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하루 6시간도 못 자는 시간 빈곤자였던 그는 건빵을 점심으로 많이 먹었다. 빨리 끼니를 때울 수 있어서다. 워킹맘의 어려움을 알기에 “모두 다 잘하기는 애초부터 힘드니 회사에 있을 땐 회사에, 집에 있을 땐 집에 충실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조언’을 한다. 시부모가 입원하면 출근 전 죽까지 쒀서 병원에 갔지만, 정작 자신은 아들에게 “10번 결혼해도 되니 나만 귀찮게 하지 마”라고 말하는 ‘쿨한’ 엄마다. 명색이 패션 유튜버지만 극도의 간결을 유지한다. 화장품은 비싸지 않은 토너에 친구가 만들어준 크림을 쓰는 게 전부다. 많다고 좋은 게 아니고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 밀라노의 작은 집에는 조부모의 장롱이나 100년 된 거울 등을 놓고 쓰며 비싼 가구도 대체 못 할 가치를 보여준다. 그가 습관처럼 하는 말은 “재밌지 않아요?”이다. 새로운 경험이라면 힘든 것도 재밌다는 지론. 그래서인지 침대 머리맡에 이탈리아어 사전을 놓고 자기 전에 들여다보며 올 초엔 휴대전화를 새로 사서 새로운 기능을 익혀 더 배워 보겠다고 했다. 젊은이들은 이런 모습에 자신의 미래 모습을 투영해 대리만족하는 걸까. “나이 먹는다고 다 어른 아니잖아요. 그냥 늙는 사람도 얼마나 많아요. 제게도 닮고 싶고 의지할 수 있는 근사한 어른이 간절하던 차에 이렇게 만나 뵐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자신만의 고유함을 지키며 노년의 현명함과 젊은이의 호기심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 고령화 시대에 나이 든 사람에게는 젊은이와 소통할 수 있는 법을, 젊은이들에게는 어떻게 나이 들면 좋을지를 떠올려 보게 해준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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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발언이라도… 문제라면 문제 삼는다[광화문에서/김유영]

    ‘트위터 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트위터가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다. 포문은 트럼프가 열었다. 미국 대선에서 우편투표를 하면 부정투표로 이어질 것이란 트윗을 띄운 것. 트위터는 ‘팩트 체크하라’는 경고 딱지를 붙였다. 우편투표가 선거 부정과 관련 없다는 CNN 워싱턴포스트 등의 기사도 함께 달았다. 굴욕당한 트럼프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인터넷 기업들이 이용자가 올린 콘텐츠에 책임지지 않는 특권(미국 통신품위법 230조 면책특권)을 누리는데, 이를 수정하라고 명령했다. 콘텐츠를 임의 편집·차별하지 말라는 것으로 자신의 트윗에 손대지 말라는 뜻이다. 트위터는 물러서지 않았다. 트럼프가 흑인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자들을 폭도로 칭하며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전도 시작된다’는 트윗을 올리자 이번엔 ‘폭력을 미화할 수 있다’는 문구를 걸고 해당 트윗을 아예 가려 버렸다. 트럼프가 같은 글을 올렸는데 그대로 놔둔 페이스북과 대비되는 조치였다. 플랫폼의 면책특권은 1996년 인터넷 서비스가 막 태동하던 시점에 생겨났다. 주의경제(attention economy) 대표 주자인 플랫폼이 갖가지 콘텐츠를 매개로 이용자를 모아 광고 등 수익을 거두는 토대를 제공했다. 플랫폼이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뉴질랜드에서 한 청년이 페이스북에 백인 민족주의 선언문을 올리고 17분 동안 끔찍한 총기 난사 영상을 생중계한 게 단적인 예다. 플랫폼도 폭력 혐오 모욕 막말 등이 담긴 유해 콘텐츠를 방치한 책임을 면하기 힘들게 됐다. 트럼프 발언을 그대로 남겨둬 비난받는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자신들이 진실의 결정자(arbiters of truth)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은 가짜 같아도 나중에 진실로 밝혀질 수 있고 입맛에 맞지 않는 정보는 가짜뉴스라 치부하는 요즘, 일면 타당하다. 가짜뉴스 판별엔 당연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명백하게 조작된 가짜뉴스는 다르다. 실제로 트위터는 최근 “코로나19가 미국에서 발생해 미군을 통해 중국에 전파됐다”는 중국 외교부 간부의 트윗이나 “자가 격리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킨다”는 브라질 유력 정치인 트윗에도 트럼프와 동일한 경고 딱지를 붙였다. 이번 논란은 플랫폼을 단순 전달자(mere distributor)로 볼지, 콘텐츠 발행자(contents publisher)로 볼지에 대한 문제다. 물론 트럼프가 제 발등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플랫폼에 책임을 지우면 당장 트럼프 트윗도 제재 대상이 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단 설명이다. 그럼에도 플랫폼이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인 60% 이상이 소셜미디어로 뉴스를 접하지만 플랫폼에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 플랫폼이 특정 세력에 이용자 정보를 팔아넘겨 선거 개입의 빌미를 주고 혐오와 막말의 정치를 방치하는 등 민주주의를 망친다는 비판이 커진 만큼, 플랫폼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논의가 함께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 10명 중 9명이 포털로 기사를 보고 상당수 정치인이 소셜미디어를 입장 표명 창구로 쓰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 같다.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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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이 없어지는 세상… ‘디지털 흔적’ 악용 막으려면[광화문에서/김유영]

    이태원 특정 클럽을 다녀간 ‘숨은 클러버’ 찾기가 한창이다. 이들이 남긴 디지털 흔적이 단서다. 클럽 근처 기지국에 접속한 휴대전화 통신 기록을 바탕으로 무려 1만905명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까지 일괄 확보됐다.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했지만,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개인 움직임도 샅샅이 꿰뚫어볼 수 있으리란 점도 여실히 체감했다. 코로나19로 이런 모습이 부각됐을 뿐 이미 우리는 매 순간 디지털 흔적을 곳곳에 뿌리고 있다. 무언가를 검색하며 생각의 흐름을 남기고 소셜미디어를 하며 취향과 인맥을 드러낸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며 소비 패턴을 짐작하게 하고,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쓰며 가족과의 대화를 스피커 회사에 고스란히 보낸다. 초연결 사회에서 디지털 흔적 하나하나가 데이터 자원으로서 새로운 가치를 낳기도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맞춤형 광고를 노출해 특정 상품을 구매하게 하고 유권자에게는 특정 정치인을 선호하도록 유도하거나 여론을 조작할 수도 있다. 영국 정치 데이터업체인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가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넘겨받아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지원한 게 단적인 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이런 위험을 모르는 게 아니라는 것. 자신의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찜찜해하거나 심지어 부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서비스 혜택에 선뜻 정보를 내어준다. 이른바 ‘프라이버시 패러독스(privacy paradox)’다. 구글이 지메일 상단에 자신이 선호할 만한 광고를 삽입하리라는 걸 알지만, 그게 꺼림칙해 지메일을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짜 서비스를 받아들이고 개인정보 수집에 기꺼이 동의한다. 사람들의 이런 속성으로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허상에 가깝게 됐다.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 개인정보 보호보다는 공동체의 안전과 안녕이 우선시되는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데이터가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했을 때 벌어질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19로 근접 (over the skin) 감시에서 내부까지 들여다보는(under the skin) 감시 체제로 바뀌었다. 빅브러더가 일상화되는 등 전체주의적인 감시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개인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해 디지털 통제사회의 일면을 보여준 중국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데이터 유출·노출 자체를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데이터 악용·오용을 막으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국가나 기업이 우리 데이터를 훤히 들여다보듯 우리도 그 과정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해서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폐기하는지 알아야 하고, 데이터에 접근하고 수정을 요구할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상황별로 어디까지 데이터를 공유해야 할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아직은 낯설지만 중요한, 데이터의 민주적 사용에 대한 질문을 코로나19가 미리 던져줬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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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유튜브 방송의 덫… 닫힌 방의 분노를 경계하라[광화문에서/김유영]

    이번 총선은 유튜브 총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각 정당과 선거 후보자는 일제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정치 유튜버들도 후보자 유세 중계나 이슈 해설에 나섰다. 1위를 달리는 정치 유튜버 구독자 수는 120만여 명. 웬만한 언론사 유튜브를 능가한다. 지난 10년간 현 여당 지지자를 위주로 팟캐스트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선거전이 펼쳐졌다면 이번엔 야당 지지자들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유튜브 민심’으로 따지자면 야당이 우세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판이하게 나왔다. 이런 괴리를 유튜브 속성과 인지 편향에 따른 결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유튜브는 이용자가 오래 체류해야 광고 수익도 높아지는데,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내용을 잇달아 보여주다 보니 비슷한 사람들끼리 같은 방에 갇혀 있게 된다. 그게 취향이라면 상관없지만 정치적 견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방 안이 세상의 전부인 양 여기고 서로 박수쳐 주는데, 바깥 분위기는 사뭇 다를 수 있다. 몰리 크로켓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쉽게 끌 수 있는 도구로 도덕적 분노(moral outrage)를 제시한다. 깜냥 안 되는 사람이 권력을 잡으려 한다는 분노, 상대의 결함을 세상이 묵인해준다는 분노,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분노…. 다양한 분노를 이유로 사람들은 더 오래 유튜브를 보고 더 많이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유튜버는 거짓 정보나 음모론을 쏟아내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떤 정치인은 해당 유튜브에 출연해 주도적으로 맞장구치고 이를 인용해 가세하며 재확산시켰다. 이런 메커니즘은 자신이 동의하는 측이라면 일단 함께하는 성급한 의사결정(snap decision)을 내리는 사람들의 속성과 맞물려 파장이 증폭됐다. 특정 정당에 소속감이나 유대감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일수록 어떤 사실을 접했을 때 꼼꼼히 따져보고 자신만의 의견을 형성하기보다 이런 인지적인 지름길을 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에 맞는 정치 유튜버 채널을 선별 시청한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연세대 정보대학원 이상우 교수가 정치 성향별 신뢰하는 미디어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유튜브 뉴스 채널에 대해 보수(3.24점·5점 만점)가 가장 큰 신뢰를 보냈고 진보(3.05점)도 평균 이상이었다. 반면 중도는 2.97점에 그쳤다. 결국 입장이 비슷한 채널들을 선별해 보면서 스스로의 믿음을 강화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지는 것이다. 닫힌 방에서 목소리가 실제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정치 유튜버가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기도 하고 생생한 목소리나 기존 언론이 다루지 않는 내용을 소개하며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도 사실이다. 유튜브 자체도 이용자와의 직접적인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한다면, 자신의 뜻에 반하는 정보라도 꼼꼼하게 확인하고 다양한 의견을 접하며 토론하는 숙의 민주주의 원칙과 어긋난다. 우리 정치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닫힌 그 방문을 이제라도 열어 공론의 장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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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시대 뉴노멀, 멀리서 함께하기[광화문에서/김유영]

    가정집 좁은 방에서 한 남성이 더블베이스를 켠다. 깊고 낮은 울림이 퍼지더니 곧 첼리스트 3명이 등장한다. 각각 다른 화면에서 각자의 방을 배경으로 연주한다. 이어 비올라와 바순, 오보에 연주자 등이 합류하고 종국에는 19명이 19개로 나뉜 화면에서 베토벤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들려준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겪는 이들에게 숭고하고 강인한 선율로 베토벤이 고난을 헤치고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필하모닉 단원들로 각자의 집에서 이어폰을 꽂고 서로 연주하는 영상을 보며 화음을 맞췄다. 단원들은 “우리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하며, 함께하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응원과 감사의 댓글로 화답했다. 고강도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에 갇혀 있다시피 해도 디지털을 통해 심리적 고립을 피하고 멀리서라도 함께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을 시작으로 각국 가수들은 ‘집에서 함께’라는 해시태그인 ‘TogetherAtHome’을 붙여 집에서 즉석 공연을 펼친 영상을 올렸다. 첼리스트 요요마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조성진 등도 동참했다. 이들은 의료진에게 경의를 표했고 환자의 건강을 기원했으며 집에 머무르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줬다. 개인들도 신체적으론 떨어져 있지만 디지털을 통해 어울리고 있다. 재택근무로 최근 이용이 폭증한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줌(Zoom)의 경우 ‘줌 북클럽’ ‘줌 요가’ ‘줌 피트니스’ 등으로 발전했다. 미리 정해놓은 시간에 각자의 줌을 켜고, 동시에 무언가를 함께 한다. 페이스북 화상 메신저인 페이스타임이나 소셜 교류 앱인 하우스파티 등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의 분할된 화면을 통해 여럿이 얼굴 보며 맥주를 마시고 게임을 한다. 집안에서만큼은 나름의 유쾌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넷플릭스로 같은 영화를 보면서 화면 한쪽의 채팅창으로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인 ‘넷플릭스 파티’도 인기다. 극장은 폐쇄됐지만 온라인 극장은 분주한 셈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며 ‘혼자의 동굴’에 침잠해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통제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 질병에 대한 공포,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뒤바뀐 일상 등에 따른 ‘코로나 블루’까지 겹치면 더 그렇다. 스스로 사색하는 고독(solitude)은 긍정적이지만 무리에서 떨어져 느껴지는 막막한 외로움(loneliness)은 혼자 극복하기 힘들 수 있다. 디지털의 쓸모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자밀 자키 스탠퍼드대 사회신경과학연구소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를 신체적 거리 두기(physical distancing)로 칭하고, 멀리서 교류하기(distant socializing)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둘지언정 심리적인 거리까지 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코로나19가 20년 전 발생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모습일 수 있을까. 당시 인터넷은 존재했지만 소셜미디어나 동영상 플랫폼은 거의 없었다. 집에 갇혀 소통하려면 전화나 문자, e메일로 안부를 묻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각자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려면 고도화된 통신 기술이 필요하지만 당시 통신 속도는 512Kbps에 그쳤다. 영화 한 편 내려받으려면 30분 안팎이 걸렸지만 이젠 몇 초면 충분하다. 지금은 기술의 발전과 혁신적인 서비스로 할만 한 게 꽤 많아졌다. 디지털이 갖가지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리도록 돕는 데에 있을 것이다. 디지털의 쓸모에 새삼 집중해야 할 이유를 지금의 코로나19가 보여주고 있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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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마스크 전쟁 속 우리 안의 선한 본성[광화문에서/김유영]

    마스크와 아파트는 지금이 가장 싸다고 했던가. 마스크 가격은 사정없이 올라갔고 마스크를 게릴라로 판다는 쇼핑몰은 오픈 즉시 품절. 아기가 있는 데다 병원을 오가는 부모님도 계셔서 당장 쓸 마스크가 필요했다. 마스크 요일제로 구할까 했지만 업무시간 약국 방문은 힘들 듯했다. 주말에 인터넷 중고카페를 찾았다. 그곳은 아우성이었다. 마스크 판매 글이 올라오기 무섭게 ‘거래 완료’라는 딱지가 붙었다. 마스크를 사려면 관련 키워드에 알람 설정을 해놓아야 했다. 그랬더니 2, 3초 단위로 ‘마스크 팝니다’ ‘마스크 삽니다’ 등이 죽죽 올라왔다. 흡사 게임이었다. 새 글을 읽자마자 사기 여부를 재빨리 판단하고 다음 액션을 취해야 했다. 글쓴이 거래 내역이 좀 있다면 실제 판매자일 확률이 높고, 내역이 별로 없고 연락처까지 안 나왔으면 단속을 피하려는 업자일 수 있다. 실제 판매자인 것 같아 사겠다는 댓글을 달면 이미 댓글 10여 개가 좌르르 달려 있다. 댓글에서 인사는 사치. ‘저요’ 혹은 ‘저’로 짧게 때워야 먼저 달 수 있다. 그러고도 실패하면 또 다른 판매 글에 ‘도전’해야 한다. 연락처가 있어도 안심은 금물. 통화 후 판매자의 투박한 말씨에 왠지 안심되어 마스크 값을 부칠 계좌번호를 문자로 받는 순간, 미리 깔아 놓은 ‘사기 감지 앱’에서 알람이 뜬다. 해당 계좌로 송금했는데 마스크는 안 오고 연락 두절이었단 글이 줄줄이 나온다. 중고카페도 그 나름의 시장인지라 수급 상황뿐 아니라 정책 영향도 받았다. 공적 마스크를 푼다고 하자 마스크를 판다는 글이 산다는 글보다 많아지며 마스크 가격은 장당 2500원에서 2000원으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후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공적 마스크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한때 5000원으로 치솟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1500원에 판다는 글에 구매 의사를 밝히니 누군가가 ‘사기꾼이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무조건 직거래 해야겠다는 점을 이내 터득했다. 마침 “돈이 급해 마스크 처분하니 직거래만 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거래 내역도 풍부했다. 바로 댓글을 썼지만 한발 늦었다. 판매자는 웃돈을 주겠다는 댓글에 “거래 중”이란 글을 달았다. 조금 뒤,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판매자 연락이었다. 웃돈 주겠다는 사람은 마스크를 사들이는 업자인 것 같으니, 아기 있는 집에 팔고 싶다는 것. 기자의 육아 물품 거래 내역을 본 듯했다. 모두 어려운 시기라 그냥 드려야 하는데 돈 받고 팔아야 하는 상황을 양해해달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중고카페에는 황사 때 사둔 마스크를 약국에 줄서기 힘든 노인에게 드리겠다는 사람, 외출이 줄어 마스크가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확진자가 많이 나온 도시 거주자에 우선 팔겠다는 사람, 마스크 사기 방지 글을 올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거래를 계기로 건강관리 등 안부를 주고받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 대응에 아쉬움이 많지만 개인들은 자체적인 질서를 구축하며 견디고 있었다. 마스크를 못 구해 중고카페를 헤매며 각자도생에 나선 이들은 안온한 마스크를 나누며 각자도생을 함께 넘어서고 있었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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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정치 관전이 ‘캔슬 컬처’와 맞물릴 때[광화문에서/김유영]

    회사원 김모 씨(43)는 정치 팟캐스트를 들으며 출근한다. 사무실에선 틈이 나면 포털에 걸린 정치 뉴스를 읽는다. 통쾌한 기사나 화나는 기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의견을 붙여 올린다. 때때로 온라인 국민청원에 동참한다. 잠들기 전엔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며 정치 이슈를 좇고 지지 정당 혹은 정치인과 관련된 내용엔 일일이 응원 댓글을 단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실질적으로 하는 정치 행동은 딱히 없다. 그는 “반대 정당(정치인) 비판 글을 접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며 “웬만한 취미 생활보다 정치 뉴스 보기가 더 재밌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곳곳에서 중계되다시피 하는 정치 뉴스를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듯 소비하고 논쟁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정치 하비스트(political hobbyist)’로 일컫는다. 미국 터프츠대 정치학과 에이탄 허시 교수가 저서 ‘정치는 파워를 위한 것’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감정적으로 만족하고 (어떤 국면이 이어질지) 궁금증을 채우려고 정치 뉴스를 소비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허시 교수는 미국에서 1950, 60년대에 출현한 ‘아마추어 민주당원(Amateur Democrats)’에 이들을 빗댔다. 대졸 전문직 남성 위주로 미 워싱턴 정가 뉴스를 좇으며 정치 토론에 열중했지만, 정작 지역사회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정책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대개의 민주당원들이 끈기를 갖고 꾸준하게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면서 자신의 환경을 바꿔 나가고 기본권 옹호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었다. 문제는 이런 정치 하비스트의 특질이 ‘캔슬 컬처(cancel culture)’와 맞물렸을 때다. 캔슬 컬처는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면 팔로를 취소(cancel)한다는 뜻으로 소셜미디어를 타면 집단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호주 매쿼리사전 등에도 등재된 영미권 신조어다. ‘당신을 내 세상에서 없앤다’는 캔슬 행위로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때로는 도덕적 정치적 과시에 빠진다. 소셜미디어에선 자신이 팔로하는 사람, 즉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글에 둘러싸여 확증 편향에 갇히기 쉽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 가능한 일이다. 우리 현실을 생각해본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한 사람의 신상을 털어 인신공격에 나서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반하는 글을 쓴 필자를 개인이 잇달아 고발한다. 같은 진영 사람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발언을 하면 문자 폭탄 보내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정치보다는 팬덤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가 민주주의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판단보다는 감정을 내세우고 구체적인 정책 실행보다는 추상적인 구호와 이념에 빠져 뉴스를 관전하는 건,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바꾸기 위해 힘을 실어주는(empowering) 정치 본연의 목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런 행태가 문제 되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누군가에게 돌 던지는 것은 쉽다. 하지만 캔슬 컬처는 깨어 있고 의식 있는 행위도 아니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치 행위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우리에게 ‘진짜 정치’란 무엇인가. 총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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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은 죽지 않았다…다만 포털에 갇혔을 뿐[광화문에서/김유영]

    미국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오랫동안 운영했던 신문 가판대를 지난해 9월 없앴다. 신문 도난이 이유였지만 종이신문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등 해석이 분분했다. 하지만 스타벅스가 신문 자체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미국 주요 신문사는 온라인 기사를 유료화했는데, 올해 스타벅스는 매장 와이파이망으로 온라인에 접속한 고객이 이를 무료로읽을 수 있게 하는 실험에 돌입했다. 이를 위해 월스트리트저널과 USA투데이 등 25개 신문과 제휴했다. 커피를 마시며 신문 기사를 읽고 싶어 하는 고객을 위한 전략이었다. 종이신문이 위기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신문 기사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뉴욕타임스는 디지털 구독자가 꾸준히 늘어 이달 전체 구독자가 5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중 지난해 확보한 구독자가 100만 명에 이른다. 워싱턴포스트 디지털 구독자는 전체의 70%나 된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전체 구독자는 지난해 100만 명으로 2015년(52만 명)의 두 배로 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19 언론수용자조사’에 따르면 신문기사를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인공지능(AI) 스피커 등 다양한 경로로 접하는 경우까지 포함한 ‘결합 열독률’은 88.7%로 전년(86.1%)보다 2.6%포인트 올랐다. 2000년 80%를 웃돈 종이신문 열독률이 지난해 12.3%로 떨어졌지만 그 감소분은 결합 열독률 증가분으로 메워졌다. 기사 읽는 통로가 바뀌었을지언정 기사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통계다. 다만 한국이 다른 나라와 극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 디지털 기사 수요가 늘어도 신문 구독 증가나 신문사 웹사이트 방문으로 거의 이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예상대로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9’에 따르면 한국에서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에서 기사를 보는 비율이 75%에 이른다. 반면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는 비율은 4%로 조사 대상 24개국 중 가장 낮다. 이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에서 포털 기사를 누르면 포털 페이지 안에서(in-link) 읽게 한 포털 전략과 무관치 않다. 언론사 홈페이지로 넘어가는(out-link) 방식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이는 PC에서다. 기사를 접하는 창구는 모바일(79.6%)이 PC(20.1%)보다 훨씬 많아 신문 기사가 포털 안에 갇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A일보 기사나 B신문 기사나 ‘네이버 뉴스’ 등으로 통칭하거나 포털이 뉴스 생산자가 아닌데 언론으로 인식(64.2%·2019 언론수용자조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거짓정보 등에 속지 않으려면 출처 확인이 필수지만 포털에서 본 기사 출처를 기억한다는 사람은 30%도 채 안된다. 정재민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교수는 “누가 썼든 상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질 높은 기사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사 가치마저 떨어뜨려 사회에 손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문 기사의 디지털 소비가 늘었다는 사실은 반갑다. 하지만 기자 여럿이 매달려 심층 취재하고 공들인 상당수 기사들이 여전히 포털에 가둬진 채 소비되고 있다. 지난 20년 가까이 포털은 수많은 기사로 모객(募客)하며 매출을 올려왔다. 포털에 기사가 집중돼 여론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댓글 자체가 조작되거나 일부 댓글에 여론이 좌우되는 등의 해악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포털이 기사의 종착지가 아니라 본래 뜻인 관문(portal) 역할에 이제라도 충실해야 하는 이유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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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친’과 ‘인친’ 사이… 당신의 친구는 어디 있나요[광화문에서/김유영]

    대기업 회계팀 과장인 권모 씨(36)는 소셜미디어 친구가 2000명에 이른다. 인스타그램에 400여 명, 페이스북에 900여 명, 트위터에 500여 명 있다. 출근길에 이들의 게시물을 먼저 보고 사무실에서도 종종 댓글을 단다. 때때로 쪽지나 메신저도 주고받는데, 오프라인에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주기적으로 보는 학교 동창이 네댓 명 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사이. 그는 “기존 친구를 보면 감정적으로 지친다”며 “소셜미디어 친구들과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내용만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라도 다 같은 친구가 아니다. 소셜미디어가 확산되며 인친(인스타그램 친구), 페친(페이스북 친구), 트친(트위터 친구) 등으로 세분화되다 보니,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친구는 ‘실제 친구’ 즉 실친으로 불리게 됐다. 인친과는 트렌드나 취향을, 페친과는 새로운 이슈를 나눈다. 트친과는 정치·사회적 의견을 짧고 굵게 쏟아 내거나 비계(비밀 계정)를 통해 주변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덕질’을 함께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실친을 대체할 수 있을까. 소셜미디어 친구가 실친보다 좋다는 사람들은 ‘질척거림이 없다’ ‘무리하게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 답할 의무가 없고 시간 맞춰 말하면 된다’ ‘밥값 걱정 없다’ ‘안 맞으면 끊으면 된다’ 등을 장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한 인간이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최대 150명이라고 한다.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함께 술 한잔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친밀감을 지닌 사람들로 보면 된다. 과거 부족사회 20개를 조사해 보니 씨족 집단은 평균 153명이었다는 것이다. 로마군의 기본 전투 단위인 보병 중대 역시 약 130명이었고 아직까지도 중대 단위는 130∼150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목할 부분은 150명도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라는 것.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적극 공감해주는 ‘친한 친구’는 15명, 매우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적극 요청할 수 있는 ‘진짜로 친한 친구’는 3∼5명(가족 포함)으로 줄어든다. 내가 선망해 마지않는 인친, 나와 함께 덕질 하는 트친, 내게 뉴스를 알려주는 페친이 내가 아플 때, 내가 슬플 때, 내가 외로울 때 얼마나 내게 힘이 될지, 나의 약한 모습이나 못난 모습까지 이해해줄지 알 수 없다. 던바는 이렇게 말한다. “소셜미디어로 친구를 쉽게 늘릴 수 있게 됐지만 인간이 유지할 수 있는 친구 규모 150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직접 만나지 않는다면, 소셜미디어 친구도 그냥 아는 사람(acquaintance)일 뿐이다. 이들과는 경험을 공유할 수 없다. 소셜미디어로 소통하는 건 친구를 만나 웃고 떠들고 음식을 먹고 돌아다니는 등 이야깃거리(anecdotes)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만큼은 못하다.”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에 한계가 있기에 소셜미디어 친구에 쏟는 자원은 실친에게 들일 기회비용일 수 있다. 새해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수 있는 소셜미디어 친구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대신 마음 써주고 싶던 실친들과 좋은 시간(quality time)을 보내길 기원한다. 누군가 그랬던가.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일은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지 못한 일이라고.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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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 통화가 두려운 세대… 디지털이 바꿔놓은 소통법[광화문에서/김유영]

    “안녕하세요. 음식 주문하려고요. ○○대학교 ○○관 ○호고요(배달 주소). ○○ 2개, ○○ 1개(음식명과 수량), 카드 결제(결제 수단)할게요. 혹시 수저 ○개(추가 부탁) 더 챙겨주실 수 있을까요? 여럿이 나눠 먹을 거(부탁 이유)여서요. 감사합니다.” 한국어 회화 교재가 아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전화공포증을 위한 상황별 맞춤 스크립트(대본)’다. 여기엔 식당 예약할 때, 예약 취소할 때, 교수님께 문의할 때, 쇼핑몰에 배송일 물을 때 등의 전화법이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전화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만능 표현’도 나왔다. ‘당신을 귀찮게 할 것이다’의 예의 바른 표현으로 ‘문의 좀 드리려고 하는데요’를, ‘당신 잘못이 아닌 걸 아니까 잘못한 사람 바꿔라’의 뜻으로 ‘담당 부서 연결해 주세요’를 쓰라 한다. ‘그냥 웃자고 쓴 글’로 여긴다면 X세대나 베이비부머 이상일 확률이 높다. 밀레니얼이나 Z세대 상당수는 “유용하다”며 진지하게 이를 공유했다. 통화할 때 과하게 긴장하거나 통화 자체를 피하는 ‘전화 공포족’이 적지 않다. 이들은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메신저로 용건을 묻는다. 사무실에서 전화가 울리면 가슴이 뛰고 전화 걸 땐 미리 용건을 써놓고 연습한 뒤 통화에 임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취업포털 커리어 설문에 따르면 전화 공포증의 이유로 ‘말실수할까 봐’(53.9%)와 ‘말을 잘 못해서’(26.8%) 등이 꼽혔다. 여기엔 내 영역을 침범당하기 싫고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심리기제가 깔려 있다. 메신저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답변할 수 있는 비(非)동시적인(asynchronous) 커뮤니케이션이다. e메일이나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하고 있을 때 방해받지 않으면서 실수를 고치며 상대와 소통한다. 상대의 시간과 집중력을 존중해 생산성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이들은 전화나 대면(對面)접촉 등 즉각 대응해야 하는 실시간(synchronous) 커뮤니케이션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전화 통화가 편한 세대는 의아해한다. 실시간 대화로는 상대와 상호작용하며 해결책을 빨리 모색하고 교감도 이룰 수 있으며, 목소리나 말 속도 등 비(非)언어 단서를 더 잘 파악해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다. 사회성(social skill) 저하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대세를 바꾸긴 힘들 것 같다. 지금의 10∼30대는 어릴 때부터 휴대전화 문자나 버디버디, 네이트온, 카카오톡을 잇달아 쓰며 자라왔다. 디지털은 이들의 소통법을 구조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럴진대 젊은이가 당신과의 전화(혹은 대화)를 슬슬 피해도 억하심정으로 그러는 건 아니니 당황 마시라. 다름을 인정하고 디지털 문법에 맞는 새로운 비언어 단서를 알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예컨대 같은 긍정이어도 ‘네’, ‘네.’, ‘넵’, ‘넵넵’, ‘넹’, ‘눼눼’ 등의 차이가 크고 여기에 붙는 문장부호는 감정을 실어 나른다. 혹은 대답할 여유를 충분히 주거나 대체 소통 수단을 찾는 게 차라리 속편할 수 있다. 식당, 마트의 무인 계산대나 쇼핑몰 챗봇(채팅로봇)은 인건비 절감 목적도 있지만 직접 소통을 불편해하는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소통법은 이렇게 바뀌고 있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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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염된 인터넷을 구하라”… 웹 창시자의 엄중한 경고[광화문에서/김유영]

    인터넷 혁명을 촉발한 월드와이드웹(WWW·웹)이 탄생한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컴퓨터 공학자 팀 버너스리는 1989년 곳곳의 컴퓨터에 흩어져 저장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일정한 표준(HTML)에 따라 연결하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정보를 나누는 웹을 고안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인터넷 포털, 동영상, 스마트폰 앱 등도 웹을 근간으로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현 인터넷 문화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우리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이달 25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유와 개방 정신을 기치로 하는 웹을 지켜내지 못하면 디지털 디스토피아를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 거짓 정보와 편견, 혐오, 증오가 담긴 언어를 실어 나르며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현상은 거대 플랫폼이 잇달아 등장하며 심해졌다. 플랫폼은 이용자를 오래 붙잡아 둘수록 광고 등 수익이 많아지는 특성상 이용자를 자신의 공간에 가둬놓으려 한다. 이용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려 설계돼 숙의(熟議) 민주주의의 방해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개방된 웹’과 ‘폐쇄된 플랫폼’이 상충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유튜브는 영상을 다 보면 이용자가 봐온 것과 비슷한 영상을 추천해 자동 재생해 주는데, 시청 시간을 늘리려 자극적인 걸 보여주다 급기야 극단주의 영상으로 치달을 때가 있다.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정보를 올려도 검증할 길이 사실상 없다.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소셜미디어는 결국 ‘좋아요’와 ‘공유하기’ 등으로 클릭 유발 콘텐츠를 유도하기도 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인터넷 포털은 혐오와 증오가 담긴 댓글을 무책임하게 방치해 사회를 분열시키거나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버너스리는 ‘모두를 위한 웹’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호소한다. 30년 전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특허를 포기하면서까지 웹 기술을 공짜로 개방한 것은 웹이 민주주의 구현의 발판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아버지는 ‘인터넷 구하기’에 나섰다. 정부, 기업(플랫폼), 개인이 지켜야 할 액션플랜인 ‘웹을 위한 계약(Contract for the Web)’을 만들어 이번에 공개했다. 최근 1년간 전문가 자문을 거쳐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신뢰를 쌓고, 특정 집단 괴롭힘을 방지하며, 거짓 정보를 걸러내고, 인터넷을 가치 있는 공간으로 만들라는 등의 촉구를 담았다. 전문가들은 한국 미국 프랑스 등 60여 개국이 일제히 선거에 돌입하는 2020년을 디지털 민주주의를 본격 시험하는 원년으로 본다. 민주주의는 합리적인 토론과 여론 형성을 전제로 하지만, 온라인 세상에선 이상에 그칠 때가 적지 않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페이스북은 이용자 정보를 팔아치워 러시아 정부가 미국 여론을 조작할 빌미를 줬고, 한국 대선에서는 대규모 댓글 조작 사건이 있었다. 내년에 인터넷 공간에서 어떤 위협 요인이 나올지 지금으로선 예측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웹’을 만들려던 인터넷 아버지의 담대한 정신을 우리가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인터넷 구하기에 나서는 일은 어렵지 않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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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정보 과잉시대… 사람과의 접촉이 사치재[광화문에서/김유영]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어느 놀이학교. 대기업 오너의 손주들이 많이 다닌다는 이곳은 뜻밖에도 첨단 건물이 아닌 2층짜리 낡은 주택에 있었다. 넓은 잔디 정원 한쪽에 모래밭과 그네가, 미니 사육장에 토끼와 강아지가 있었다. 독립서점처럼 꾸며진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언제든 그림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디지털 접촉을 최소화한다는 원칙도 있었다. 30대 이상이라면 어릴 때 쉽게 누렸던 환경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월 200만 원 안팎을 내야 다닐 수 있는 곳이 됐다. 이곳을 갑자기 떠올린 건 어린 시절 스크린을 많이 접할수록 뇌 발달 속도가 늦어진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를 접하고 나서다. 미국 신시내티 어린이병원 연구팀이 3~5세 아이들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분석했더니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많이 볼수록 중추신경계에서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백질(white matter)의 질(質)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생각과 감정 표현하기, 사물에 빠르게 이름 붙이기 등 인지 능력이 낮게 나왔다. 그래서인지 최첨단 디지털 기술의 본산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테크기업 임직원들은 역설적으로 자녀에게만큼은 스크린을 허용하지 않는 ‘노 스크린(no screen)’ 교육을 고수한다. 자녀들은 자연과 놀이를 강조하는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고 보모에게는 스마트폰 사용 금지 약속을 받아낸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자녀들에게 아이패드를 아예 안 줬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식탁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하고 취침 전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도 제한했다. 디지털 기기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 디지털을 접하는 사람이 그러지 못하는 사람보다 얻는 게 많아지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디지털 격차)를 우려했지만 지금은 반대가 됐다. 오히려 소득·교육 수준이 높은 가구일수록 디지털 기기를 적게 쓰고 자녀에게 창의력과 깊이 있는 사고를 배양해 줘서 지적 자산을 대물림할 수 있다는 것. 디지털 과잉 시대에 걸맞은 ‘신(新) 디지털 디바이드’인 셈이다. 실제로 미국 보건정책 연구단체인 카이저가족재단의 조사 결과 부모 최종 학력이 고졸 이하인 경우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시간이 대졸 이상인 경우보다 하루 평균 90분 많았다. 한국에서도 저소득층 학생의 디지털 중독 위험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과의 접촉이 사치재가 됐다(Human Contact Is Now a Luxury Good)’는 올 초 뉴욕타임스 기사가 생각난다. 빈자(貧者)의 삶에 스크린이 더 많이 들어오고 부자의 삶에선 스크린이 사라진다. 패스트푸드처럼 강하고 빠른 자극이 아닌 오감을 풍부하게 하는 느린 자극을 받아 인지·정서 등의 발달 수준이 높은 아이가 사회적으로 더 성취할 확률이 크다. 이들은 무인 자판기에 줄 서서 주문해 허겁지겁 밥 먹기보다는 인간 웨이터가 서빙하는 식당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사무실에선 스마트폰을 안달복달 확인 안 해도 되는 삶을 살 개연성이 높다. 일부러 디지털 기기를 많이 보여주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녀를 보살필 마음의 여유, 체력의 여유, 시간의 여유가 없으면 디지털 기기를 내어주곤 한다. 전문가들은 사람이나 실생활(real world)로부터의 자극을 늘려야 발달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며 아이 생각을 들어주고 아이에게 말을 걸며 사소한 눈 맞춤을 늘리라고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21세기 희소자원인 시간이야말로 모든 부모에게 충분히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 아이 뒤처지지 않게 하려면 쥐어짜내는 수밖에. 출산율이 바닥 치는 마당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라도 확보해 주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복지일지 모르겠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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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플에 초연할 사람 없다” 댓글과 사투 벌이는 풍경들[광화문에서/김유영]

    모든 사람이 마이크를 쥐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시대다. 디지털 미디어 확산으로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의견을 올리고 포털이나 언론사 사이트에 가서 댓글을 단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팔로어가 적으면 목소리가 묻힐 가능성이 크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댓글은 때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거나 여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댓글이 선한 의도에서 쓰이는 건 아니어서 욕설과 비방, 혐오 표현이 넘치는 ‘감정의 배설구’가 되기도 한다. 온라인 화면으로는 제목과 기사 첫 머리 몇 줄을 읽은 뒤 바로 댓글로 넘어가는 ‘Z자형 읽기’를 하는 특성상 본문을 제대로 읽지 않거나 제목만 읽고 즉각 반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분노 사회의 모습이 녹아 있을 때도 있다. 영국 가디언이 자사 기사에 달린 댓글 70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악플을 가장 많이 받은 고정 필진 10명 중 8명이 여성, 나머지 2명이 흑인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에서 댓글에 고통받다가 목숨을 끊은 연예인 중 여성이 더 많다는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가디언 여성 필진인 제시카 벌렌티는 “악플을 받는다는 건 출근할 때 나를 향해 욕을 퍼붓는 사람 100명을 뚫고 걷는 것처럼 끔찍하다”고 말했다. 결국 가디언은 여성과 인종 관련 기사에 한해 댓글창을 닫기로 했다. 악플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 만국 공통인지 해외 뉴스 유통 채널이나 플랫폼들은 일제히 악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세계 최대 검색 포털인 구글은 순수하게 검색 기능만 제공하고 사이트 내에 댓글을 담지 않아 악플 책임에서 영리하게 비켜 나갔다. 대신 구글 모(母)회사인 알파벳 산하 직소(Jigsaw)는 각 언론사들이 악플을 가려낼 수 있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모두 자체 검토를 마친 댓글만 올리는데, 두 회사 모두 직소 AI를 바탕으로 악플을 관리한다. 기존 방대한 댓글로 자사 기준을 머신러닝(기계학습)시킨 AI가 댓글 게시 여부를 판단해 준다. 인신공격이나 외설·음란한 내용, 비속어, 분노가 담긴 댓글은 모두 단호하게 삭제된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칼럼과 주요 기사 등 전체 기사의 10%에 한해 딱 24시간 동안 댓글창을 운영한다. “댓글창을 계속 열어두면 좋겠지만 모두 관리하기 힘들다”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바에는) 댓글창을 닫아서 얻는 효과가 더 크다”고 강조한다. CNN과 로이터통신 BBC 등은 아예 전체 댓글창을 닫고 게시판이나 소셜미디어로 독자 의견을 받고 있다. 극히 일부 방문자만 댓글을 달아 댓글의 대표성이 떨어지거나 댓글이 온라인 여론을 왜곡한다는 이유다. 한국처럼 포털에 뉴스가 집중되는 일본은 일찍이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 2002년 ‘프로바이더(인터넷 제공자) 책임 제한법’을 만들어 악플에 대한 명예훼손 책임을 포털이 지게 했다. 또 포털은 피해자가 요청하면 악플을 삭제하고 악플 작성자 정보까지 제공하도록 했다. 댓글창은 독자 참여와 다양한 의견 개진을 이끌어내 숙의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등의 기능이 있다지만, 익명을 무기 삼아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댓글은 저열하고 비열하다. 악플에 초연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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