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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응급환자의 정보를 119구급대와 병원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보 공유를 가로막았던 법적 장벽이 해소되면 구급대원이나 응급실 의료진이 병원마다 일일이 전화해 설명하지 않아도 치료가 시급한 환자의 정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다른 병원에 알릴 수 있다. 이는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떠도는 ‘표류’를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응급환자 정보 공유 가로막는 장벽 해소”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에 따르면 최근 소방청은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발의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기존 (반대) 의견을 철회하고 동의한다”는 의견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법안은 ‘응급의료정보통신망을 통해 응급환자의 인적 사항과 검사·치료 결과 등 건강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환자 정보를 119구급대와 병원 등이 손쉽게 주고받도록 했다. 현행법상 응급환자의 인적 사항과 치료·검사 결과는 민감정보에 해당해 응급의료정보통신망을 통해 공유할 법적 근거가 없다. 119구급대가 현장에서 작성한 구급활동일지와 응급환자번호(EPN), 각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이 서로 연계되지 않는다. 이에 환자를 이송하거나 전원(轉院·병원을 옮김)할 때마다 119구급대원이나 응급실 의사, 상황실 직원이 병원에 전화해 환자의 상태를 다시 설명하고 수용 가능 여부를 문의해야 한다. 이 같은 ‘정보 칸막이’는 대형 재난 때마다 취약점을 드러냈다. 지난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대표적이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은 전국 응급실의 가용 병상과 인력을 관리하며 특정 병원 쏠림을 막는 역할을 하지만, 이태원 참사 땐 환자가 어느 병원으로 이송됐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어서 병원마다 전화해서 물어야 했다.● 구급대원이 태블릿PC로 환자 정보 병원에 전송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119구급대원이 태블릿PC로 기록한 환자 정보를 여러 병원에 동시에 전송해 수용 가능 여부를 일괄적으로 확인하고, 해당 환자의 기존 진료기록을 의료진이 찾아보는 것도 가능해진다. 중증응급 환자가 어느 병원으로 몰리는지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전문 의료진이 부족한 중소 병원은 환자를 수술해 줄 병원을 찾기 쉬워진다. 그간 소방청은 이 법안에 대해 “(소방청이 보건복지부 등에) 제공해야 하는 정보의 범위와 종류가 지나치게 넓다”며 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소방청의 환자 이송이 적절했는지 타 부처가 감시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환자 정보를 수집 목적으로만 이용한다”는 수정 문구를 넣으면서 소방청도 찬성으로 선회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환자 이송 및 치료와 무관한 정보까지 무분별하게 공유될 우려가 해소됐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응급환자의 기록을 이송부터 최종 치료 결과까지 추적 관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119구급대가 직접 이송한 환자의 최종 치료 결과를 알 수 있게 되면 비슷한 환자를 태울 때 더 나은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체 병상과 인력 관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이르면 다음 주 복지위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된다. 관계 부처가 모두 동의했고 여야가 공감하는 만큼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1일 “국민의 공복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관용 없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자당 소속 최강욱 전 의원의 이른바 ‘암컷’ 발언이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킨 데에 따른 경고 메시지다. 조정식 사무총장도 이날 “최 전 의원의 발언을 ‘국민들에게 실망과 큰 상처를 주는 매우 잘못된 발언’이라고 규정하고 최 전 의원에게 엄중하게 경고했다”고 공지했다. 전날 ‘청년 비하’ 논란을 일으킨 당 현수막 문구와 관련해 지도부가 공식 사과한 지 하루 만에 ‘여성 비하’ 실언에 대해 또 사과한 것. 당내에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막말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 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태도가 본질”이라며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 강선우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민주당은 앞으로 각별히 언행에 유의할 것”이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최 의원은 이날 사과하지 않았다. 당 지도부가 즉각 사과하고 경고에 나선 건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당내 강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각종 막말과 비하 발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 전 의원은 앞서 19일 광주에서 열린 민주당 민형배 의원의 북콘서트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서 “암컷이 나와서 설친다”고 말했다. 올해 9월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최 전 의원은 “(민주당이) 김건희 주가 조작 특검에 매진하실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도 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도 같은 자리에서 “대통령 탄핵 발의를 해놔야 반윤(반윤석열) 연대가 명확하게 쳐진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민주당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어린 놈” 막말로 논란이 된 송영길 전 대표는 이날도 CBS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을) 빨리 끌어내리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길”이라며 “(야권 연대를 통해) 200석을 만들어 ‘윤석열’을 탄핵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오직 정쟁을 위해 막말과 비하를 서슴지 않으며 갈등과 분열, 혐오를 부추기는 민주당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는 사람이 여성의 존엄성을 그렇게 짓밟아도 되는가”라며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헌혈과 봉사활동을 즐기며 베풀고 살아온 26세 여성이 뇌사 뒤 장기기증으로 4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났다. 21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회사원 박래영 씨(26·사진)가 지난달 13일 고려대구로병원에서 심장과 간, 양 콩팥을 뇌사 뒤 기증했다고 밝혔다. 박 씨는 9월 18일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보행 신호에 길을 건너다 차에 치였다. 당시 운전자는 서류를 줍다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을 밟아 사고를 냈다. 박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유족은 평소 베풀길 좋아했던 박 씨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선택했을 것 같아 기증에 동의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담배사업법이 만들어진 지 35년여 만에 처음으로 ‘담배’의 정의가 확대돼 전자담배 규제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다만 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합성 니코틴’은 유해성분 공개와 담뱃세 부과 등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반쪽짜리 규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담배사업법상 담배 원료의 범위를 ‘연초의 잎’에서 ‘연초의 잎이나 뿌리, 줄기’로 넓히는 개정안에 여야가 합의했다. 1988년 12월 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담배 범위가 확장될 가능성이 커진 것. 여야와 관련 부처가 모두 동의한 만큼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도 통과가 유력하다. 이 경우 연초의 뿌리나 줄기로 만든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처럼 온라인 판매와 판촉이 금지되고, 2025년 11월부터 유해성분 자료 제출이 의무가 된다. 하지만 소위 논의 과정에서 합성 니코틴은 담배 원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합성 니코틴은 독성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기획재정부의 주장을 여야가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합성 니코틴을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법안이 이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풍선 효과’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배 수입·판매업자 입장에선 담뱃세 등 각종 세금이나 유해성분 분석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는 합성 니코틴을 내다 파는 게 훨씬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합성 니코틴의 수입량은 2020년 56t에서 지난해 119t으로 급증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1일 “국민의 공복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관용없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자당 소속 최강욱 전 의원의 이른바 ‘암컷’ 발언이 여성비하 논란을 일으킨 데에 따른 경고 메시지다. 조정식 사무총장도 이날 “최 전 의원의 발언을 ‘국민들에게 실망과 큰 상처를 주는 매우 잘못된 발언’이라고 규정하고 최 전 의원에게 엄중하게 경고했다”고 공지했다. 전날 ‘청년 비하’ 논란을 일으킨 당 현수막 문구와 관련해 지도부가 공식 사과한 지 하루 만에 ‘여성 비하’ 실언에 대해 또 사과한 것. 당내에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막말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 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태도가 본질”이라며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 강선우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민주당은 앞으로 각별히 언행에 유의할 것”이라고 사과했다.당 지도부가 즉각 사과하고 경고에 나선 건 총선을 4개월 여 앞두고 당내 강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각종 막말과 비하 발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 전 의원은 앞서 19일 광주에서 열린 민주당 민형배 의원의 북콘서트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서 “암컷이 나와서 설친다”고 말했다. 올해 9월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최 전 의원은 “(민주당이) 김건희 주가 조작 특검에 매진하실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도 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도 같은 자리에서 “대통령 탄핵 발의를 해놔야 반윤(반윤석열) 연대가 명확하게 쳐진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민주당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어린 놈” 막말로 논란이 된 송영길 전 대표는 이날도 CBS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을) 빨리 끌어내리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길”이라며 “(야권 연대를 통해) 200석을 만들어 ‘윤석열’을 탄핵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오직 정쟁을 위해 막말과 비하를 서슴지 않으며 갈등과 분열, 혐오를 부추기는 민주당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는 사람이 여성의 존엄성을 그렇게 짓밟아도 되는가”라며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원주서 쓰러진 40대 대동맥박리 환자,서울까지 120km 헬기-구급차 이송기적처럼 살아나 갓 태어난 아들 마주해“모든 톱니바퀴 맞물려 환자 소생”20일 오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입원실. 태어난 지 사흘 된 아들 딱풀이(태명)를 영상통화로 처음 마주하는 정일수 씨(40)의 눈빛이 애틋했다. ‘딱 붙어 있으라’는 뜻으로 지어준 태명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불과 3주 전, 정 씨는 강원 원주시에서 심장 대동맥이 찢어져 심장이 멎은 채 쓰러져 발견됐기 때문이다. 120km 떨어진 이 병원으로 옮겨져 국내 최고의 명의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수술을 집도한 송석원 이대서울병원 대동맥혈관병원장(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은 “정 씨가 살아난 건 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닥터헬기-특수구급차 동원해 120km 이송정 씨는 지난달 28일 오후 강원 원주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친척을 면회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일행이 심폐소생술(CPR)을 하며 119에 신고했다. 오후 1시 58분경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검사 결과 A 씨는 찢어진 심장 대동맥에서 흘러나온 피가 심낭에 차올라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는 상태였다. 급성 대동맥박리였다. 긴급 수술이 필요했지만 근처엔 가용한 의료진이 없었다. 정 씨를 수술해 줄 병원을 찾아 수소문한 끝에 120km 떨어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이 ‘환자를 데려오라’고 응답했다.오후 4시 18분, 정 씨가 응급의료 전용 헬기(닥터헬기)에 올랐다. 헬기 안에서도 정 씨는 심정지를 맞았다. 헬기에 함께 탄 의료진이 여러 차례 정 씨의 심장을 마사지해서 되살려냈다. 헬기는 당초 이대서울병원 옥상 헬리패드로 직행할 계획이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항공당국의 허가를 받은 병원 옥상 헬기장이었다. 하지만 기상이 나빠 병원 인근 하늘의 시정(視程·목표물을 뚜렷하게 식별할 수 있는 거리)이 좋지 않았다. 오후 4시 45분, 헬기는 병원을 약 15km 앞둔 용산구 노들섬 헬기장에 내려야 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올림픽대로는 토요일 저녁 나들이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다행히 헬기장에선 구급차가 정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닥터헬기 의료진이 구급차로 옮겨 탔다. 구급차 안에서도 정 씨의 심장은 여러 차례 멈췄다. 의료진은 승압제를 고용량으로 투약하며 정 씨의 혈압을 올리려 노력했다. 꽉 막힌 도로를 헤치고 구급차가 이대서울병원에 도착한 건 오후 5시 19분. 첫 응급실로 이송된 지 3시간 21분 만이었다. ● 밤새워 혈압 올려 가까스로 수술당시 정 씨의 수축기 혈압은 50㎜Hg으로 정상치(120㎜Hg)의 절반도 안 됐다. 혈압이 돌아오지 않는 한 수술을 시작하는 건 무리였다. 환자의 몸이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동맥박리 등 심장질환 환자를 5000명 넘게 수술한 송 교수도 “지금껏 봐온 환자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고 말할 정도였다.정 씨의 아내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찾아와 중환자실 앞에서 초조하게 의료진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송 교수는 “환자 가족에겐 객관적인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는 게 최선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심정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의료진은 밤을 새워 정 씨의 심낭에 바늘을 꽂아 피를 빼내며 상태를 지켜봤다. 심낭에 차오른 피가 심장을 압박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29일 아침부터 정 씨의 혈압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정 씨는 반쯤 의식을 차려 의료진과 눈까지 마주쳤다. 이날 점심 무렵 시작한 정 씨의 수술은 오후 늦게 마무리됐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수술 이후 정 씨의 심장 기능이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정 씨가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마치고 일반병실에서 안정을 찾아가던 17일, 정 씨의 아내가 무사히 출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 씨는 20일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며 아이 앞에서 약속했다. “만나면 우리 아기 꼭 안아줄게. 앞으론 술 담배도 안 할게.”● “‘표류’ 일상화된 의료 현실에 기적 같은 일”현장 의료진들은 정 씨가 살아난 게 응급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가 일상이 된 의료 현실에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정 씨에게 CPR을 해준 일행은 물론이고, 그를 첫 병원으로 이송한 119구급대, 닥터헬기에 동승한 의료진과 조종사 등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정 씨를 소생시킬 수 없었다는 얘기다. 송 교수는 “지역·필수의료가 붕괴하는 상황에서 정 씨처럼 이송과 치료에 관여한 모든 톱니바퀴가 다 맞물려 돌아간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이대서울병원 대동맥혈관병원은 올 6월 문을 열었다. 송 교수를 비롯해 국내 최고 수준의 대동맥 수술팀이 모였다. 365일 24시간 전국에서 대동맥박리 환자를 이송받아 수술하는 ‘EXPRESS 시스템’을 통해 지금까지 177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합성 니코틴을 원료로 쓴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처럼 규제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른바 ‘전자담배 꼼수 방지법’)에 기획재정부가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합성 니코틴이 유해성분 공개, 담뱃세 부과 등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이 수입량은 급증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1일 경제재정소위원회에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상정하고 담배의 정의를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제조한 것’에서 ‘연초의 뿌리나 줄기, 합성 니코틴으로 제조한 것’까지 넓히는 방안을 논의한다. 현재 대다수의 액상형 전자담배가 ‘유사 담배’로 분류돼 유튜브 등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버젓이 판촉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해도 제재받지 않는데, 이를 규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관할 부처인 기재부는 국회에 낸 보고서에서 “담배 규제 사각 해소를 위해 담배 원료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취지에 동의한다”면서도 “합성 니코틴을 담배 원료로 인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전자담배 꼼수 방지법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합성 니코틴의 독성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는데 담배로 인정하면 정부가 유통을 허용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금연 학계에선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라고 지적했다. 합성 니코틴은 이미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합성 니코틴의 국내 수입량은 2020년 56t에서 지난해 119t으로 증가했다. 대다수는 니코틴 함량이 1% 미만이라서 환경부 관리 대상이 아니다. 2025년 11월부턴 ‘담배 유해성분 공개법’ 시행에 따라 담배에서 나오는 모든 유해성분을 검사해 공개해야 하는데 이 의무도 피해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미 100t 넘게 유통되는 합성 니코틴의 판매를 금지할 게 아니라면 담배 원료에 포함해 독성 감시라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태어날 때부터 기형으로 자궁이 없었던 30대 여성에게 뇌사자의 자궁을 이식하는 수술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이 여성은 첫 수술에서 어머니의 자궁을 이식받는 데 실패한 뒤 두 번째 수술에서 다른 사람의 자궁을 이식받는 데 성공했다. 자궁 재이식 수술 성공은 이번이 세계 최초다. 16일 삼성서울병원 다학제 자궁이식팀(팀장 박재범 이식외과 교수)이 대한이식학회에 제출한 발표 초록에 따르면 이식팀은 올 1월 44세 뇌사자의 자궁을 한국인 여성 A 씨(35)에게 이식했다. 10개월이 지난 현재 A 씨는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유지하고 있고, 최근 조직검사에서도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아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A 씨는 난소 기능이 정상이지만 선천적으로 자궁이 없는 마이어-로키탄스키-퀴스터-하우저(MRKH) 증후군이다. 자궁 이식 말고는 임신할 방법이 없었다. 지난해 7월 어머니의 자궁을 보건복지부 승인을 거쳐 이식받았다. 국내 첫 자궁 이식 시도였다. 하지만 자궁으로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2주 만에 자궁을 제거해야 했다. 이후 뇌사 기증자가 나타나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했다. 국제자궁이식학회(ISUTx)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보고된 자궁 이식 사례 가운데 A 씨와 같은 재이식 수술은 처음이다. A 씨는 현재 본인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로 수정한 배아로 임신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 첫 재이식 성공 외과-감염내과 전문의 등 13명 투입… 자궁 없던 30대에 두번째 이식 수술국내 ‘자궁 문제 불임’ 작년 1592명… 건보 적용-절차 표준화 등 논의할때‘의학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뇌사자 자궁 이식 성공. 세계 최초의 자궁 재이식 성공.’ 이번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의 자궁 이식 성공은 국내외 의료계에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 선천기형이나 질환으로 자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불임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는 희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궁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장기다.● 전문의 13명 투입, 세계 최초 재이식 수술 성공 국내에서 이뤄지는 콩팥과 간 등 장기의 이식 수술은 한 해 5000건이 넘는다. 하지만 자궁 이식 수술은 세계적으로 85건에 그친다. 이식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자궁을 내줄 기증자를 찾기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수술 자체가 의학적으로 까다롭기 때문이다. 기증자의 몸에서 자궁을 적출할 땐 이와 연결된 크고 작은 혈관의 손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수혜자의 난소와 생식선 등에 연결할 땐 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면역 거부 반응이 나타나거나 수술 부위가 감염되면 수술은 수포로 돌아간다. 수술 뒤 체계적인 관리도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자궁 이식에는 이식외과와 산부인과뿐 아니라 혈관외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병리학과, 감염내과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의가 참여한다. A 씨의 진료에도 박재범 이교원 이식외과 교수뿐 아니라 김성은 오수영 이유영 산부인과 교수, 고재훈 감염내과 교수 등 13명의 전문의를 포함한 의료진이 투입됐다. 이식팀은 2020년 세계에서 세 번째, 국내에서 처음으로 면역억제제 없이 콩팥 이식을 받은 환자의 임신과 출산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었다. 현행 장기이식법상 자궁은 이식 가능 장기로 명시되진 않았다. 다만 2019년 1월 시행된 개정법에 따라 ‘사람의 내장 또는 조직 중 기능 회복을 위해 적출·이식할 수 있는 것’에 맞으면 보건복지부 산하 장기등이식윤리위원회 심의와 복지부 장관의 결정을 거쳐 이식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런 절차와 병원 내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 등을 거쳐 A 씨의 수술을 진행했다. 이식팀은 발표 초록에서 “진료와 수술이 임상 연구의 일환으로 수행됐고, 관련 비용은 삼성서울병원 미래의학연구소를 통해 모금한 기부금으로 충당했다”고 밝혔다.● 불임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희소식 삼성서울병원은 A 씨의 성공을 계기로 다른 불임 여성의 자궁 이식도 준비 중이다. 향후 A 씨가 임신과 출산에 성공하거나 국내 자궁 이식 성공 경험이 여러 건 축적될 경우, 자궁 기형이나 질환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 씨가 겪은 MRKH 증후군의 국내 유병률은 여성 5000명당 1명 수준이다. 국내 가임기 여성 인구(1049만 명)에 대입하면 유병 인구가 2098명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3∼2022년) ‘자궁에서 기원한 불임’으로 진단된 여성은 1만4794명에 이른다. 여기에 각종 질병으로 인한 자궁 적출 수술이 해마다 약 4000건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자궁 문제 탓에 임신하지 못하는 여성은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임신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에서는 해외 자궁 이식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글이 수백 건 검색된다. 일부 이용자는 국내에 자궁 이식 사례가 없다는 답변에 ‘해외에서 대리모를 구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문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국내 판례상 부부의 정자와 난자로 만든 배아를 다른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하는 대리모 계약은 인정되지 않는다. 대리모 알선 브로커에게 거액을 줬다가 떼이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수술비만 1억… 건보 적용 논의 필요 이번 성공을 계기로 법에 명시된 이식 가능 장기를 넓히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당초 장기이식법에 손과 팔은 이식 가능 장기로 명시돼 있지 않았지만, 2017년 2월 대구 W병원이 40대 뇌사자의 팔을 30대 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한 뒤 ‘법령 위반’ 논란이 일자 이를 포함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다만 자궁 이식이 불임 여성 전반에 ‘고려할 만한 수단’이 되려면 건강보험 적용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 씨의 수술과 면역억제제 투약, 시험관 시술 수술 등에는 최소 1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 것으로 추산된다. A 씨는 연구 기부금으로 비용을 댈 수 있었지만, 이런 지원이 없다면 개인에겐 부담되는 액수다. 자궁 이식에 뒤따를 수 있는 혼란과 논란을 예방하기 위해 의료계와 윤리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자궁 기증자와 이식 수혜자 선정 기준, 이식 절차 등을 표준화할 필요도 있다. 캐나다에서는 자국 내 자궁 이식 성공 사례가 등장하기 전인 2012년에 이미 관련 절차와 이식 수혜자 선정 기준 등을 정한 규약이 발표됐다. 영국은 2015년 자궁 이식을 받을 수 있는 여성의 나이를 만 25세에서 38세 사이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식팀을 이끈 박재범 교수는 “17일 학회에서 공식 발표한 이후에 응하겠다”며 인터뷰를 고사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최소 13%로 올리는 방안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16일 이 같은 방안이 담긴 최종보고서를 보고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와 정치권은 여론이 민감한 모수개혁(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개선)을 뒤로 미뤘으나 자문위는 이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15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자문위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자문위는 14차례 회의 결과를 토대로 2가지 개혁안을 최종 제시했다. 현재 보험료율(내는 돈)은 9%,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40%다. 첫 번째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소득보장강화안이다. 두 번째 개혁안은 보험료율만 15%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 그대로 두는 재정안정화안이다. 어느 쪽이든 보험료율은 최소 4%포인트 이상 오른다. 보고서는 “구조개혁의 큰 틀에 저해되지 않는 선에서 모수개혁을 우선 추진해야 연금개혁의 지속적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구조개혁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직역연금 등 공적연금의 전체 체제를 바꾸는 더 넓은 차원의 개혁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보험료율 인상을 결정하면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정치권은 모수개혁을 미루고 구조개혁부터 하겠다고 밝혔었다. 자문위 관계자는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둘 다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단 급한 것(모수개혁)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 수령 나이를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지만 자문위는 “급격한 제도 전환은 여러 부작용 가능성이 있다”며 부정적으로 판단했다.국민연금 보험료율 13% 땐, 직장인 월평균 13만원 더 내야 연금특위 자문위 보고서2가지 구체적 숫자 제시안 나와수급 개시 연령 상향엔 신중 입장 올해 4월 기준 국민연금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의 월평균 연금 보험료는 각각 29만2737원(본인과 회사가 절반씩 부담), 12만6035원이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가 제안한 개혁안대로 보험료율이 최소 13%까지 인상되면 직장인은 월평균 최소 13만105원(본인과 회사가 절반씩 부담), 지역 가입자는 5만6015원을 더 내게 된다. 자문위가 2가지 구체적인 모수개혁안을 제시함에 따라 꺼졌던 연금개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정부와 정치권은 연금개혁이 총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사실상 알맹이 없는 방안만 내놨었다. 지난달 19일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단일안을 내놓지 못하고 보험료율, 수급 개시 연령, 기금 투자수익률, 소득대체율 등 갖가지 변수를 조합한 무려 24개 시나리오를 보고서에 담아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그러자 복지부는 지난달 27일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구체적인 조정 방안이 모두 빠진 ‘맹탕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를 받아든 국회는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조정 없이 추상적인 ‘구조 개혁’부터 하겠다고 나섰다. 이 때문에 “사실상 연금개혁이 물 건너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번 연금특위 자문위 최종보고서에는 수급 개시 연령 상향과 관련해 신중한 입장이 담겼다. 자문위는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방향일 수 있으나 현재의 (은퇴 후 연금을 수령하기까지의) 소득 공백 기간을 고려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16일 열리는 회의는 연금특위 활동 기한이 연장된 뒤 처음으로 열리는 회의다. 이 자리에서 복지부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연금특위는 자문위의 최종 보고서와 정부의 계획안 등을 참고해 대국민 공론화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결과를 종합해 최종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최소 13%로 올리는 방안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16일 이 같은 방안이 담긴 최종보고서를 보고할 예정이다. 앞서 정부와 정치권은 여론이 민감한 모수개혁(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개선)을 뒤로 미뤘으나 자문위는 이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15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자문위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자문위는 14차례 회의 결과를 토대로 2가지 개혁안을 최종 제시했다. 현재 보험료율(내는 돈)은 9%,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40%다. 첫번째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소득보장강화안이다. 두번째 개혁안은 보험료율만 15%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 그대로 두는 재정안정화안이다. 어느 쪽이든 보험료율은 최소 4%포인트 이상 오른다.보고서는 “구조개혁의 큰 틀에 저해되지 않는 선에서 모수개혁을 우선 추진해야 연금개혁 지속적 동력 확보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구조개혁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직역연금 등 공적연금의 전체 체제를 바꾸는 더 넓은 차원의 개혁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보험료율 인상을 결정하면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정치권은 모수개혁을 미루고 구조개혁부터 하겠다고 밝혔었다. 자문위 관계자는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둘 다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단 급한 것(모수개혁)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 수령 나이를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요구도 나오지만 자문위는 “급격한 제도 전환은 여러 부작용 가능성이 있다”며 부정적으로 판단했다.올해 4월 기준 국민연금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의 월평균 연금 보험료는 각각 29만2737원(본인과 회사가 절반씩 부담), 12만6035원이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가 제안한 개혁안대로 보험료율이 최소 13%까지 인상되면 직장인은 월평균 최소 13만105원(본인과 회사가 절반씩 부담), 지역 가입자는 5만6015원을 더 내게 된다.자문위가 2가지 구체적인 모수개혁안을 제시함에 따라 꺼졌던 연금개혁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정부와 정치권은 연금개혁이 총선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사실상 알맹이 없는 방안만 내놨었다. 지난달 19일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단일안을 내놓지 못하고 보험료율, 수급 개시 연령, 기금 투자수익율, 소득대체율 등 갖가지 변수를 조합한 무려 24개 시나리오를 보고서에 담아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그러자 복지부는 지난달 27일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구체적인 조정 방안이 모두 빠진 ‘맹탕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를 받아든 국회는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조정 없이 추상적인 ‘구조 개혁’부터 하겠다고 나섰다. 때문에 “사실상 연금개혁이 물 건너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이번 연금특위 자문위 최종보고서에는 수급 개시 연령 상향과 관련해 신중한 입장이 담겼다. 자문위는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필요한 방향일 수 있으나 현재의 (은퇴 후 연금을 수령하기까지의) 소득 공백 기간을 고려해야 한다”고 진단했다.16일 회의에서 보건복지부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연금개혁특위는 자문위의 최종 보고서와 정부의 계획안 등을 참고해 대국민 공론화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결과를 종합해 최종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현재 ‘유사 담배’로 분류된 액상형 전자담배를 현행법이 정의하는 ‘담배’에 포함해 세금을 물리고 유해성분 공개 등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는 이르면 16일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상정할 방침인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현행법상 담배는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제조한 것’으로 정의돼 있다. 연초의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하거나 화학적으로 합성한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로 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액상형 전자담배는 유튜브 등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버젓이 판촉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해도 제재받지 않는다. 경고 그림이나 문구를 표시할 의무도 없다.더 큰 문제는 유사담배가 지난달 국회를 통과해 2025년 11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담배 유해성 관리법’조차 피해 간다는 점이다. 합성 니코틴 등으로 만든 전자담배에서 어떤 유해 성분이 나오는지, 담배회사가 전자담배 용액을 만들 때 어떤 재료를 쓰는지 알 길이 없어 ‘반쪽 규제’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그중에서도 합성 니코틴 제품은 더 깊숙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담배소비세 등 각종 세금과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이 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허점 탓에 담배 판매업자들은 액상형 전자담배 용액을 팔면서 ‘연초의 잎뿐만 아니라 뿌리나 줄기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모니터링한 결과 온라인에서 이뤄진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와 광고 3481건 가운데 합성 니코틴을 썼다고 표시한 게 3208건(92.2%)이었다.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선 이런 ‘꼼수’를 막기 위해 연초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니코틴이 포함돼 있으면 담배 제품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기재위에 계류 중인 담배 정의 확대 관련법안은 4건이다. 그중 3건은 담배의 정의를 ‘연초의 줄기나 뿌리를 원료로 제조한 것’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나머지 1건은 여기에 ‘합성 니코틴으로 제조한 것’까지 더하는 방안이다. 20대 국회에서는 관련법안이 발의됐다가 처리 시한을 넘겨 폐기된 바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를 막기 위해 내년 예산 240억 원을 추가 투입할 것을 국회가 정부에 요구했다. 분만 중 의료진의 과실 없이 불가항력으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급하는 국가보상금의 한도는 현재의 3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높아진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복지위는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응급환자 표류 방지 예산을 올해보다 839억4900만 원 늘리는 내용이 담긴 2024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정부가 관련 지출을 올해보다 599억 원 늘리는 계획서를 냈는데, 이를 240억4900만 원 더 키우라고 국회가 요구한 것. 복지부는 이를 전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복지위는 전국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77곳에 병상 정보관리 전담 인력을 2명씩 둘 수 있도록 지원 예산 106억2000만 원을 신설하라고 요구했다. 119구급대나 다른 병원 의료진이 환자를 이송할 때 병상과 의료진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수용 문의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여러 병원 전문의가 순번을 짜서 야간 당직을 서는 ‘순환당직제’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지원,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시스템 구축, 경증 환자의 응급실 이용 자제 캠페인 등에는 정부 계획보다 134억2900만 원을 더 투자할 것을 요구했다. 복지위는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보상금 한도를 높일 것도 요구했다. 분만 중 산모가 사망하거나 아이가 뇌성마비로 태어났을 때 보상금 한도는 2013년 4월 제도 도입 이후 현재까지 3000만 원으로 묶여 있었는데, 이를 1억 원으로 상향하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서도 “재정당국과 적정 보상금을 협의해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며 수용했다. 예산안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쳐 확정된다. 여야 모두 표류를 방지하고 의료사고 보상을 높이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고 복지부도 동의하는 만큼 관련 예산은 본회의까지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국내 의료진이 미얀마에서 의료 봉사로 선천성 기형 환자들에게 새 희망을 선물했다. 13일 고려대 안산병원은 이 병원 김덕우 유희진 성형외과 교수와 박호진 고려대 안암병원 성형외과 교수 등 의료진 5명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5일까지 미얀마 네피도 종합병원에서 구순구개열 환자 26명을 수술했다고 밝혔다. 구순구개열은 입술이나 잇몸, 입천장이 갈라지는 선천성 기형이다. 생후 3∼12개월 전후로 수술하지 않으면 위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평생 발음장애를 안고 살아갈 위험이 큰데, 미얀마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고 많은 환자들이 수술비를 댈 형편이 안 돼 방치되는 일이 잦다. 김 교수팀이 만난 현지 환자들도 대개 만 2, 3세로 적정 치료 시기를 놓친 사례였지만 이번 수술을 통해 건강을 되찾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이 소속된 고려대의료원은 2012년 이후 미얀마 구순구개열 환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수술 봉사를 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중단됐다가 이번에 재개됐다. 고려대의료원 의료진은 앞으로도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고려대 안산병원은 후속 봉사활동을 위해 미얀마 보건복지부와 업무협약도 맺었다. 외국인 의료진이 현지에서 무료로 수술하려면 행정 절차를 밟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는데, 이를 간소화하는 내용이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부산의 한 의대 졸업반(본과 4학년)인 오모 씨(24)는 올 7월 여름방학 때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에서 2주간 ‘필수의료 실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평소 뇌혈관 개두술(머리를 열고 하는 수술)에 관심이 있었던 오 씨는 뇌혈관 수술과 입원환자 회진 등을 가까이서 지켜본 뒤 신경외과를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오 씨는 “술기(의학적 행위)를 익히기 어렵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도 어려운 분야라는 걸 깨달았다”라면서도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막연한 걱정이 많았는데, 실제 체험해보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의대생이 중증외상이나 소아 심장, 뇌혈관 등 이른바 ‘힘들고 돈 안 되는’ 전문 필수의료 분야를 2주간 경험해보고 진로를 정할 수 있도록 2021년 보건복지부가 도입했다. 첫해 참가자 135명으로 시작해 2022년 173명, 올해 255명 등으로 규모가 늘었다. 평균 경쟁률이 2 대 1로 의대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실습에 참여한 충청 지역 의대 3학년 고모 씨(29)는 “지방 의대에서는 어려운 수술을 참관할 기회가 적었는데 갈증이 풀렸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어려운 만큼 도전 정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도입 첫해인 2021년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의대 졸업반 학생 가운데 올해 전공의 1년 차가 된 19명의 진로를 추적해 보니, 8명이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과목을 전공하고 있었다. 특히 그중 4명은 심장혈관흉부외과와 산부인과 등 매년 정원을 못 채우는 ‘비인기 과목’을 선택했다. 필수의료 과목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 ‘돈은 안 되고 어렵기만 한 과목’이라는 편견이 현장 체험을 통해 상당 부분 불식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의료계는 현재 추진 중인 2년제 ‘임상 수련의’가 도입될 경우 실습프로그램을 확장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평생 특기가 될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필수의료 분야를 체계적으로 경험해 보면 지원율을 높일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고환암을 이겨내고 아이를 출산한 부부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비영리 단체 한국난임가족연합회(회장 김명희)는 11일 ‘제10회 난임가족의 날’을 앞두고 1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념행사를 열어 난임 성공 수기 공모전 당선자 13명을 시상했다고 밝혔다. 대상(복지부 장관상)은 ‘끝까지 나를 믿고 도전하면, 봄은 반드시 옵니다’를 쓴 진모 씨에게 수여됐다. 진 씨는 남편이 고환암에 걸린 후에도 임신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한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 난임 가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공로가 인정됐다. 김명희 한국난임가족연합회장은 “국가와 개인이 힘을 합쳐 난임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아파도 진료받지 못한 우리나라 국민의 비율이 오스트리아의 30배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진료비 부담보다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교통편이 불편해 병의원에 가지 못하는 ‘돌봄 체계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6일 정우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2018년 한국의료패널 조사에 참여한 만 18세 이상 1만3359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지난 1년간 병의원 치료나 검사가 필요했는데 받지 못한 적이 있다”는 ‘미충족 의료 경험률’이 11.7%였다고 밝혔다. 이는 같은 해 유럽연합(EU)이 실시한 조사 가운데 설문 문항이 같은 33개국과 비교했을 때 알바니아(21.5%)와 에스토니아(18.9%), 세르비아(11.8%)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 오스트리아(0.4%)나 네덜란드(0.8%) 등과 비교하면 15~30배로 높았다.국내 지역별로는 강원의 미충족 의료 경험률이 22.9%로 가장 높았고, 제주(16.2%)와 전북(14.3%)이 뒤를 이었다. 전남(4.9%)과 광주(5.7%), 울산(6.7%) 등과 비교하면 지역 격차가 최대 4배 이상이었다.정 교수가 국내 미충족 의료 경험의 이유를 세 범주로 구분한 결과 ‘돌봄 부족’과 ‘시간 제약’, ‘진료비 부담’ 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돌봄 부족은 건강상의 이유나 어린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혹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병의원에 방문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경우를 묶은 것이다. 정 교수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돌봄과 의료를 통합한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지역과 나이, 계층에 따른 ‘의료 소외’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보건행정학회지 최신호에 발표됐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의사가 환자 수술이나 시술 중 과실 없이 불가항력적으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급하는 국가보상금 제도가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반으로 확대된다. 지금까지는 분만 중 사망사고 등 극히 일부에만 적용돼 왔다. 이 정책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불가’ 입장이었던 보건복지부는 최근 입장을 바꿔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의사들 사이에서 소송 부담 때문에 소청과가 ‘기피과’가 되고, 소아청소년 응급환자가 ‘표류’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정부가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2일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사업에 소청과 진료를 추가하는 내용의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 대해 복지부가 최근 “취지에 공감한다. 구체적인 유형과 방식에 대해 관련 단체와 논의하고 재정 당국과 협의하겠다”는 답변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발의했고 국민의힘에서도 별 이견이 없는 법안인 만큼 복지부까지 동의하면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 보상은 2013년 4월 처음 도입됐다. 현재는 분만사고 등에만 적용 중인데, 해당 사건이 발생하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의료보상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환자 측에 최대 3000만 원을 보상한다. 현재는 이 중 70%를 국가가, 30%를 병의원이 내지만 다음 달 14일부턴 정부가 전액 부담한다. 내년엔 보상액 한도도 늘릴 계획이다. 이 제도를 분만사고가 아닌 다른 분야로 넓히는 건 도입 1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올 9월만 해도 복지부는 해당 법안에 대해 “다른 진료과목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수용 곤란’ 의견을 표했다. 그런데 최근 소청과 의사들이 잦은 소송 위협 탓에 현장을 떠나고 새로운 의사도 들어오지 않는 현상이 심해지자 이를 수용했다. 의사단체를 상대로 ‘의대 정원 확대’를 설득할 카드이기도 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수련병원의 소청과 전공의(레지던트) 충원율은 2019년 92.4%에서 올해 25.5%로 급감했다. 비수도권 수련병원에서는 올해 72명 모집에 고작 4명(5.6%)이 지원했다. 소아심장 환자의 가슴을 열고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소아심장외과 전문의가 2035년엔 전국에 17명만 남게 될 거란 예측(동아일보 10월 10일자 A1·12면 참조)까지 나오면서 소아 필수의료 공백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다.떠나는 의사 잡으려… 기형-미숙아 수술사고 책임, 국가가 분담 소아과 과실없는 의료사고 국가 보상 의료진 환영속 “지원 한도 높여야… 최선 다했다면 형사처벌 면제를”의료배상보험 의무 가입도 제기정부-의료계, 국가보상 범위 논의 복지부는 국가가 보상할 ‘불가항력 의료사고’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지 소아 의료계와 논의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소아청소년 환자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실시한 의료 행위였다면 의료진의 무과실 여부를 따져 국가가 보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식도나 항문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 선천성 기형아나 괴사성 장염을 앓는 이른둥이(미숙아)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술 등이 우선 고려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술실 떠나려는 후배 붙잡는 데 도움” 일선 소아 의료진들은 이번 조치를 반겼다. 소아 중증 환자에 대한 진료는 성인 환자에 비해 의사 입장에서 훨씬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복 수술의 경우는 성인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정도의 출혈에도 체구가 작은 소아 환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서정민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수술이 어려울 뿐 아니라 혹시 결과가 잘못되면 (환자의) 기대여명에 따른 보상액도 큰 편”이라며 “국가가 보상을 지원한다면 수술실을 떠나려는 후배들을 붙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실효성 있는 의료진 보호를 위해선 배상 금액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시행 중인 분만 사고에 대한 국가보상제는 한도가 3000만 원인데, 최근 의료사고 민사 소송에선 이보다 훨씬 큰 배상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손해배상 금액이 수억 원을 넘나드는데 3000만 원을 지급한다는 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형사처벌 면제 필요” 목소리도 민사 소송에 의한 손해배상만 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론 한계가 있고, 의료진이 현장에서 최선의 판단에 따라 진료했다면 형사 처벌도 면제해야 한다는 요청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어린이병원장은 “분초를 다투는 아이를 어떻게든 살리려다 보면 사소한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의료진이 형사 처벌의 공포를 떨쳐내지 못한다면 위급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의사 본인은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형사 소송으로 인한 긴 법정 다툼에 지쳐 일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합의금을 지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올해 초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A 씨가 중이염이 의심되는 환아의 귀를 검사하기 위해 귀지를 떼다 피가 나자, 부모가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논란이 된 적 있다. A 씨는 결국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합의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청과 전문의는 “형사 고소가 의료 분쟁에서 ‘합의금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필수과목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진료하던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하는 ‘필수의료 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궁극적으로는 필수의료 전반으로 국가의 안전망을 확대해야 하며, 보상 규모도 현재 분만사고에 적용되는 것보다 더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외선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비해 의료인이 의료배상 책임보험에 의무 가입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의의 교통사고에 대비해 운전자의 보험 가입이 의무인 것과 같은 이치다. 캐나다는 의료배상 책임보험 가입이 의무인데, 연 500만 원 수준의 보험료 중 80%를 정부가 부담한다. 일본의 책임보험은 의사가 의사협회에 가입할 때 자동으로 가입되도록 설계돼 있고, 미국도 뉴욕 등 일부 주에서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복지부는 의료계와 법조계, 환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의료분쟁 제도개선 협의체를 꾸리고 2일 첫 회의를 열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의료사고 부담은 필수의료 기피로 이어져 국민과 생명의 건강을 위협한다”며 “환자와 의료인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보건복지부가 31일 열린 장기요양위원회에서 2024년 장기요양보험료율을 올해 대비 0.01%포인트 오른 0.9182%로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에 장기요양보험 가입 가구가 낼 월평균 보험료는 기존 대비 182원 오른 1만6860원이 된다.장기요양보험은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이나 노인성 질병 환자에게 목욕, 간호 등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 제도다. 이번 장기요양보험료 인상률은 2018년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장기요양보험의 재정 여건이 나쁘지 않고 물가·금리 등 국민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인상률을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장기요양위원회는 노인이 살던 곳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장기요양 재가급여의 이용 한도액을 올리는 한편, 중증 수급자를 돌보는 가족을 지원하는 ‘중증 수급자 가족 휴가제’를 도입해 수급자가 월 한도액 외에도 단기보호 및 종일방문급여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두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상태가 심각해 구급차에 올랐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2008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뇌출혈로 숨진 30대 임산부와 2010년 11월 대구에서 장중첩증으로 숨진 A 양(4) 얘기다. 사건 이후 양국 정부는 응급의료 체계를 뜯어고치겠다고 밝혔다. 10여 년 뒤. 일본에서는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거리를 떠도는 ‘표류’가 사라졌다. 환자가 표류하면 인근 모든 병원에 경보를 울리는 ‘마못테(まもって·지켜줘) 네트워크’와 구급대원 단말기에 이송 가능 병원을 자동으로 띄워주는 ‘오리온 시스템’을 2008년, 2013년 각각 도입한 덕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올 8월부터 10월까지 일본을 포함한 5개국 의료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환자 ‘표류’ 해법, 해외에서 찾다’ 시리즈(25일자 A1·3면 등)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한국은 어땠을까. 정부는 2010년 A 양의 수용을 거부했던 병원에 행정처분을 내리는 한편 응급실마다 일일이 전화하지 않아도 치료 병원을 신속히 찾을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도 ‘마못테 네트워크’와 유사한 제도를 추진했던 것. 하지만 몇 달 후 관련 대책은 사라졌고 행정처분마저 철회됐다. 소방청과 보건복지부가 관할을 두고 입씨름하고, 의료계의 반발에 정부가 물러선 탓이었다. 그 후로 수많은 환자가 길거리를 떠돌다가 희생됐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대처는 한결같았다. 소방본부가 환자의 응급도를 구분해 꼭 필요한 환자만 대형병원에 보내는 독일이나 응급환자 전원(轉院)을 정부가 조율하는 캐나다의 시스템도 우리 정부가 여러 차례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그때뿐, 대책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그 결과 올 3월 대구에서 발생한 B 양(17) ‘표류’ 사망은 12년 전 A 양 사건과 판박이였다. 이번에도 구급대원은 병원마다 전화를 거느라 골든타임을 날렸다. A 양을 받아주지 않았던 병원은 B 양 사건 때도 수용을 거부해 행정처분을 받았다. 개혁에는 진통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이유’ 한 가지를 잊어선 안 된다. 환자의 생명. 응급환자가 허무하게 숨을 거둘 때마다 사사건건 부딪치는 정부 부처와 병원들은 과연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에 두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그걸 잊지 않고 대의를 위해 뜻을 모았기에 대책을 관철할 수 있었다. 대구시와 대구소방안전본부, 복지부는 B 양 사건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협의체를 꾸리고 ‘한국판 마못테 네트워크’의 시범사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부처 간 칸막이와 병원들의 반발 탓에 좌초될 위기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기우이길 바란다.조건희·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재무 상담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간호사, 의사….’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닷하우스’ 직원 300명의 면면이다. 3일(현지 시간) 취재팀이 닷하우스에 들어서니 잘 관리된 수영장, 농구 코트까지 갖춘 실내체육관이 눈에 띄었다. 재무 상담과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사무실이 마련돼 있고, 식료품을 지원받을 수 있는 ‘푸드뱅크’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센터일까. 아니다. 닷하우스는 이민자들이 주로 사는 도체스터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1차 의료기관, 즉 동네 의원이다. 기본적으로는 경증, 만성 질환자 치료가 목적이지만 단순히 환자 진료와 처방에서 그치지 않는다. 주거가 마땅치 않은 사람에겐 머물 곳을 알아봐 주고, 법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겐 무료 법률 상담도 지원한다. 환자가 겪는 사회적 어려움이 건강 상태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차 의료기관이 ‘주치의’가 되어 환자의 건강을 지키는 곳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도체스터 지역 주민 2만4000명이 의료-재활-복지 등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의원에 다닌다. 의사 한 명에 간호 인력 서너 명이 근무하기 마련인 한국의 동네 의원과는 사뭇 다른 운영 방식이다. 동네 의원이 담당하는 1차 의료는 필수의료 체계를 뒷받침하는 기반이다. 닷하우스처럼 경증, 만성질환자 진료를 의원에서 책임져 줘야 큰 병원이 중증, 응급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 이런 작은 병원과 큰 병원 간의 ‘분업’을 의료전달체계라고 하는데 한국에선 의료전달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다. 6만8000여 개나 되는 동네 의원이 있지만 소아청소년과(소청과) 등에선 ‘오픈런’이 벌어진다. 줄을 서서 의사를 만나도 ‘3분 진료’ 끝에 처방전만 받아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청과, 산부인과 등 꼭 필요한 의원은 줄고 미용 시술에 전념하는 의원이 는다. 심지어 마약성 진통제나 다이어트 약을 무분별하게 처방해 돈을 버는 곳까지 나오고 있다. 동네 의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큰 병원에 경증 환자가 몰리고, 정작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가 표류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19일 필수의료 혁신 전략 발표에서 1차 의료기관의 예방·관리, 교육·상담, 퇴원 후 관리 등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내놓지 못했다.美 동네의원, 경증-만성질환 책임져… 응급실 방문 35% 줄였다美 동네의원, 대형병원과 분업 확실맞춤형 서비스로 입원율 11% 감소환자 상급병원 수술 일정도 잡아줘韓 의원은 “큰 병원 가보라” 말만 미국 보스턴 닷하우스에서 일하는 한국인 의사 김유나 씨(41)에게 흑인 여성 A 씨(45)는 각별한 환자다. 김 씨가 이 환자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 병원을 찾은 표면적인 이유는 만성 허리 통증이었지만 A 씨는 우울증과 불안장애, 뇌전증(간질)까지 앓고 있는 어려운 ‘복합’ 질환자였다. 여러 약을 처방했지만 A 씨의 증세는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초보 주치의로서 고민이 깊어지던 차에 김 씨는 A 씨의 불안한 주거 환경을 떠올렸다. 당시 A 씨의 집 유리창이 깨진 채로 방치돼 있었는데, 이것이 그의 불안장애와 뇌전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김 씨는 사회복지사와 협력해 A 씨가 살던 임대주택 창문을 수리해 줬고, 그 이후 환자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김 씨는 “한국에서였다면 이렇게 환자 한 명을 오래 보고 고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 A 씨가 한국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환자의 속사정을 알기 어려운 동네 의원에선 그에게 “큰 병원에 가 보라”는 말밖엔 해주지 못했을 것이고, 환자는 병명을 찾아 여러 종합병원을 전전하게 됐을 공산이 크다.● 응급실 방문 35%, 입원율 11% 감소 효과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이를 조기에 포착해 대형병원으로 보내는 것도 1차 의료기관, 즉 의원의 중요한 역할이다. 취재팀이 2일 방문한 필리스 젠 센터는 대형병원인 브리검 여성병원이 운영하는 의원이다. 이곳의 의료진은 환자가 유방암이 의심돼 큰 병원에서 진료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 자리에서 브리검 여성병원에 진료 및 수술 일정까지 잡아 준다. 환자가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이후에는 다시 필리스 젠 센터로 돌아와 경과를 추적한다. 닷하우스 또한 보스턴대병원과의 환자 의뢰 및 회송 체계를 갖추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가치 기반 1차 의료’의 특징이다. 비만율이 높고 고혈압, 당뇨 환자가 많은 미국 특성상 보스턴의 의원들은 영양사를 고용해 환자의 식단 조절을 각별히 챙기는 경우가 많다. 커스틴 마이징어 하버드대 의대 1차 의료센터 교수는 “환자에게 ‘맥도널드를 그만 드시라’고 할 것이 아니라, 환자가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개선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스턴에 있는 1000여 개의 의원은 대부분 닷하우스나 필리스 젠 센터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된다. 학계에선 이러한 통합적인 의료 서비스 모델을 ‘가치 기반 1차 의료’라고 부른다. 하버드대 의대 연구에 따르면 가치 기반 1차 의료는 환자의 응급실 방문 확률을 35%, 입원율을 11%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늬만 남은 의료전달체계 회복해야 베테랑 내과 의사인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무늬만 남았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환자는 병이 호전된 후에도 동네 의원을 가지 않고 다니던 병원에서 계속 진료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국민보건의료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종합병원을 찾은 외래 환자 중 22.3%가 감기, 장염 등 경증 질환자였다.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을 채우고 있으면 정작 중증 환자는 의사 만나기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경증·만성질환자들이 동네에서 치료받는 게 낫다고 느끼도록 큰 병원에서 할 수 없는 통합적 건강관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체질 개선을 위해선 장기적으로 의료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되는 진료비) 지불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한국은 의사가 수행한 검사나 시술 ‘한 건당’ 돈을 받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 아래에선 1차 의료기관이 영양사나 사회복지사를 뽑아 환자에게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대가를 지급받기 어렵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스턴에선 1차 의료기관들이 진료비를 ‘환자 1명당’으로 받는다. 우선 관리하는 환자 1명당 일정 금액의 진료비를 받아 환자에게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쓰고, 추후 환자의 건강 상태가 개선되면 인센티브를 추가로 받는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보스턴=특별취재팀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