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안개 켜주세요.” 지난달 24일 경기 연천군에 있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SOC(사회간접자본)실증연구센터. 운전석에 앉은 센터 관계자가 이렇게 외치자 왕복 4차로 길이 200m, 높이 16m 실험용 터널에 희뿌연 연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약 40m 거리에는 빨간색 속도 표지판이 2개 놓였지만 2분이 지나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때 센터 관계자가 차 버튼 하나를 누르자 차량 내 모니터에 선명하게 해당 표지판이 떠올랐다. 표지판 내 적외선 장치가 설치돼 이를 센서로 감지한 것이다. 이석기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안개, 비 등 악천후에서는 자율 주행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보조 장치가 필요하다”며 “이곳에서는 다양한 기상 환경을 조성해 데이터를 쌓고 안전 운행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차는 운전자가 조작하지 않고도 차량 스스로 운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말한다. 빛 또는 전파를 발사한 후 반사되는 신호를 받고 이를 반복 학습해 마치 눈이 달린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빗방울 또는 눈송이가 끼어들거나 장비에 흙탕물이 튀면 도로 환경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폭우, 폭설 등 악천후 환경에서 자율주행차를 미리 가동해 다양한 주행 데이터를 쌓아야 하는 이유다.● 축구장 65배 규모서 안전 해법 찾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연천에 축구장 65배 규모인 69만 ㎡에 달하는 거대한 도로 주행 연구소를 세워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과거 전차, 박격포 등 대전차 화기 사격훈련이 이뤄지던 곳이 미래 모빌리티 연구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공간이 넓어 도로 합류부, 보행자 횡단 구간, 회전 교차로, 비신호 교차로 등 다양한 주행 환경도 갖췄다. 이곳에서는 강우 실험도 이뤄졌다. 이날 센터 관계자가 태블릿PC 버튼을 클릭하자 터널 내 8m 높이에서 시간당 45mm에 해당하는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는 호우 경보 수준이라 차량 와이퍼를 고속으로 가동해야 겨우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빗줄기를 뚫고 주행하자 차량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중앙선 인식 시스템이 잠시 꺼지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런 식으로 최대 시간당 100mm까지 강도를 달리하며 차선 인식 시스템 성능을 점검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강설 장비를 갖춰 민간 자동차 업체에서도 성능 검사를 위해 찾아온다. 한 완성차 업체는 해외 공장에서 생산한 완성차를 다른 공장으로 옮기는 자율주행 트레일러를 도입하기 전에 이곳을 찾았다. 공장 일대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주행 데이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면 앞서 달린 차로 도로 위에 눈이 두껍게 뭉쳐지기도 하지만 제설 작업으로 살짝 녹기도 해 주행 환경이 달라진다. 강설 실험은 운전자 보조 시스템 강화에도 필수적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완성차에는 앞서가는 차량과의 간격을 조절하고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등 지원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하지만 눈이 올 때에는 차량이 멈추는 데 필요한 거리가 맑은 날 대비 3, 4배 길어져 해당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도로 상태를 인지해 브레이크를 밟는 시기와 강도를 다르게 할 수 있도록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로 시설물 안전성 강화 실험도 활발 실증센터에서는 조명, 표지판 등 기본적인 도로 시설물에 대한 성능 실험도 이뤄진다. 안개 농도에 따라 밝기를 조절하는 후미등이 대표적이다. 현행 후미등 밝기 기준은 기상 조건과 관계없이 일률적이다. 안개가 끼는 날이면 해가 뜨는 새벽 시간에 추돌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연구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안개 농도와 외부 밝기 등을 고려해 밝기가 달라지는 후미등을 고안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기존 후미등 대비 시야 거리가 44% 늘어난다. 우천 및 안개 상황에서 빛 번짐이 덜한 도로 조명도 연구하고 있다. 차량 가드레일 높이 수준에 설치해 운전자 시야가 흩어지지 않도록 해 주행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다. 빛을 밝게 하더라도 운전자가 불쾌감을 덜 느끼도록 적정 밝기를 찾고 있다. 차선 구분을 명확하게 해주는 능동형 노면 표시(DRM) 실험도 진행된다. DRM은 페인트로 칠해진 도로 차선을 따라 매립해 설치하는 조명이다. 비가 올 때 시야가 분산돼 운전자가 느끼는 피로도가 100이라면 DRM을 추가 설치할 경우 피로도는 평균 47.7로 낮아졌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실증센터를 도로 인프라 기술 검증 구축 장소로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중소·중견 기업이 자재나 공법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기관이 없다. 이 때문에 지방청, 지자체 등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기술로 보고 도입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디지털 기술, 탄소중립형 자재 공법 등이 늘고 있는 만큼 검·인증 기준을 만들어 도로 인프라 완성도를 높이려는 취지다. 정준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도로교통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도로 현장에 다양한 민간 연구 결과물이 도입될 수 있도록 객관적 검증 절차를 갖출 계획”이라고 했다.기후변화로 발생 잦은 도로 파임 위험도 사전 대비내년 2단계 연구시설 준공 앞둬 진동-레이저로 도로상태 점검 “인프라 기술개발의 요람 될 것”현재 경기 연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SOC(사회간접자본)실증연구센터는 대규모 변화를 앞두고 있다. 내년 3월 8만5486㎡ 규모 2단계 시설 준공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도로포장 시공 장비 △실내·외 지반구조물 성능 평가 △스마트건설 등 다양한 시험시설이 들어선다. 행정망 등 구축이 필요해 실제 운행은 이르면 내년 말부터 이뤄질 예정이다.새로 준공된 센터에서는 폭염 등 기후변화로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 도로 위험에 대비할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사고가 도로 포장에 쓰는 콘크리트가 솟아 오르는 ‘블로업’ 현상이다. 콘크리트는 외부 온도가 오르면 팽창한다. 이때 포장 이음부 사이에서 콘크리트가 솟아 오르거나 파쇄되는 것. 이 현상 때문에 1년간 전국 4개 고속도로에서 차량 22대가 파손되고 5명이 다쳤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블로업 테스트베드 센서를 도입해 도로 포장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점검할 계획이다.악천후에 대응할 수 있는 도로 연구도 진행한다. 폭 3.5m, 길이 10m 도로 4개 구간을 서로 다른 기술로 조성해 배수 성능, 미끄럼 저항성 등을 평가한다. 설치가 용이한 공법을 찾아 긴급 복구에 드는 시간을 줄인다.집중호우와 무더위 등으로 발생하는 도로 파임(포트홀) 대책도 짠다. 진동, 레이저, 영상 인식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도로 상황을 점검한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전국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포트홀은 총 2만2753건이다. 이 중 32%가량이 강수량이 많은 7∼8월에 집중됐다. 피해배상 건수와 배상액은 2019년 707건(6억4600만 원)에서 지난해 2580건(44억3800만 원)으로 급증하는 추세다.SOC실증연구센터는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노후 인프라 개선에도 활용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지어진 지 30년 이상 된 도로는 전체 9만5693개 중 4만4469개(46.5%)지만 2030년에는 5만4261개(56.7%)로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정준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노후 인프라 보강 공사를 빠르게 수행하기 위해 공사 진행 과정을 미리 가상공간에 구현해 덤프트럭 등 장비 동선을 효율적으로 짜는 실험도 이뤄질 예정”이라며 “인프라 기술 개발의 요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공동 기획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송유근 사회부 기자 big@donga.com▽소설희(경제부) 이축복(산업2부) 이청아(국제부)이채완(사회부) 한종호(산업1부) 기자}
숙명여대가 최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석사 논문 표절 의혹을 검증할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연구윤리위)를 재구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검증을 공약으로 내걸며 당선된 문시연 신임 총장이 취임하면서 2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검증 작업에 속도가 날 것으로 보인다. 4일 숙명여대에 따르면 숙대 연구윤리위는 지난달 1일 당연직 위원 3명을 교체하며 위원회를 재구성했다. 연구윤리위원들의 임기는 지난달 19일 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새롭게 합류한 당연직 위원은 △교무처장 △산학협력단장 △기획처장 등 세 명으로 모두 문 총장이 취임하며 임명한 보직이다. 이들은 전임자들로부터 논문 검증에 필요한 내역을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윤리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당연직 위원 등을 포함해 9명 이내로 구성된다. 새로 합류한 세 명 외 나머지 위원들은 전임 총장 시절부터 연구윤리위에서 논의해 온 전임 교수들로 구성됐다. 새 연구윤리위는 지난달 23일 첫 회의를 열고 위원 호선으로 위원장을 선임했다. 연구윤리위가 표절 여부를 검증할 대상은 김 여사가 1999년 숙명여대에서 미술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할 때 제출한 논문인 ‘파울 클레(Paul Klee)의 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다. 대선 과정이었던 2021년 12월 해당 논문의 표절률이 42%에 달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국민의힘은 입장문을 내고 “당시 숙명여대의 학칙과 심사 절차에 따라 석사 논문이 인정된 것이므로 22년 전 기준을 따지지 않은 채 제3자가 현재 기준으로 표절을 단정할 순 없다”고 반박했다. 숙명여대는 표절 의혹 제기 후 2022년 2월부터 조사에 착수했으나 현재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통상 표절 등 연구 부정행위 검증 기간은 약 5개월이다. 지난달 2일 취임한 문 총장은 총장 선거 과정에서 김 여사의 석사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검증을 약속한 바 있다. 문 총장은 올 6월 열린 총장 후보자 정책토론회에서 “총장이 된다면 진상 파악부터 해보고,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정리하겠다”며 “표절 여부 판단은 독립적인 위원회가 판단하겠지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법의 격언이 있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당시 결선 투표에서 전체 유효 투표수의 56.29%로 1위를 차지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경찰이 마약 등 약물 복용 운전 여부를 검사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마약 운전 검사 의무화법’이 국회에서 추진된다. 음주 운전과 달리 경찰은 약물 운전을 단속할 권한이 없어 마약 투약이 의심되는 운전자가 관련 검사를 거부해도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4년 사이 약물 복용 운전으로 운전면허를 취소당한 사례가 2배 가까이로 급증하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 약물 운전 검사 가능토록 도로교통법 개정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은 경찰이 마약 등 약물 운전 검사를 할 시 운전자가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때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약물 운전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약물 운전 측정을 거부할 때 이를 강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본보 10월 4일자 A1, 12면 참조). 이번에 발의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 운전과 마찬가지로 경찰이 운전자가 마약 등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했다고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약물 운전 측정 검사를 하도록 하고, 운전자는 이에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불응 시 현행법상 음주 운전 단속 거부와 마찬가지로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서 의원은 “마약류 사범 증가로 마약 운전자도 늘어나는 게 현실”이라며 “마약은 소지와 투약 자체가 불법인 점에서 약물 운전 검사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4년 사이 약물 복용 운전으로 운전면허를 취소당한 사례는 2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2019년엔 57명이었으나 지난해 113명으로 크게 뛰었다. 앞서 제21대 국회에서도 약물 운전 단속을 의무로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 미국, 일본 등 해외서는 이미 시행 중 해외에서는 경찰에 약물 단속을 할 권한을 적극 부여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에서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모든 운전자가 경찰의 지시에 따라 알코올 및 약물 함량을 측정하기 위해 호흡, 혈액, 소변 또는 타액 검사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를 거부할 경우 최소 1년간 운전면허가 취소된다. 일본도 약물 운전 검사 권한을 경찰에 주고 약물 운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약물 또는 음주 운전으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마약사범은 역대 최초로 2만 명을 넘기며 교통사고를 포함한 2차 피해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이 올 6월 발간한 ‘2023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사범은 2만7611명으로 최초 2만 명을 넘겨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1만8395명) 대비 약 50.1% 증가한 수치다. 특히 최근 5년 새 청소년 마약 범죄가 14배로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마약류 범죄소년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18∼2023년) 마약사범으로 검거된 만 14∼18세 청소년은 총 1430명에 달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8년 56명, 2019년 72명, 2020년 132명, 2021년 183명, 2022년 201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다 지난해엔 786명으로 폭증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경찰이 마약 등 약물 운전을 검사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마약 운전 검사 의무화법’이 발의된다. 그간 음주운전과 달리 경찰은 약물 운전을 단속할 권한이 없어 약물을 한 운전자가 거부해도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은 경찰이 마약 등 약물 운전 검사를 할 시 운전자가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때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 운전 검사 의무화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약물 운전으로 인한 운전 면허 취소자는 최근 4년 사이 2배 가까이로 늘었다. 2019년 57명에서 지난해 113명으로 급증했다. 현행법상 약물 운전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다는 규정이 있지만 약물 운전 측정을 거부할 때 이를 강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동아일보 4일자 A1,12면 참조). 서 의원이 대표 발의할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운전자가 음주운전과 마찬가지로 경찰이 운전자가 마약 등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했다고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약물 운전 측정 검사를 하도록 하고, 운전자는 이에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서 의원은 “최근 마약류 사범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어 마약 운전자도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마약은 소지와 투약 자체가 불법인 중대한 범죄라는 점에서 음주운전 검사와 마찬가지로 약물 운전 검사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올 8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30대 남성이 운전 중 신호대기 중이던 앞차를 들이받았다. 가만히 서 있는 차를 뒤에서 추돌한 데다, 사고 직후 운전자는 동공이 풀려 있었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이었다.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마약 정밀검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가해 운전자는 필로폰 양성이었다. 그보다 한 달 전에도 강남구에서 마약을 투약한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냈다. 4월에는 차량 대 차량 추돌사고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약물 양성으로 드러난 적도 있었다. 이처럼 마약 등 약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곳곳에서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처벌 수위는 음주 운전보다 약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약물 복용 운전으로 운전면허를 취소당한 사례가 최근 4년 새 2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2019년엔 57명, 2020년 54명, 2021년 83명, 2022년 79명으로 늘다 지난해 113명으로 크게 뛰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의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 등 다양하며, 적발되는 마약의 종류도 케타민과 대마초, 엑스터시 등 여러 가지”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마약 등 약물을 투약한 뒤 운전을 하다 적발되면 도로교통법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반면 음주 운전은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더 높다. 음주 운전이 가중 처벌도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약물 운전의 처벌 수준은 음주 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환각-환청 마약운전, 음주보다 위험한데 처벌수위는 절반마약운전 면허취소 2배로… 키트에 침 뱉으면 10분 안에 판독마약운전 면허취소 급증하는데법 미비로 검사 강제할 권한 없어전문가 “형량 높여야 예방 가능”“약물 투약 여부 확인하겠습니다. 키트에 침을 뱉으면 됩니다.”지난달 28일 오전 2시 반경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신사역 2번 출구 근처 도로. 마약류 및 약물 운전 단속에 나선 경찰이 단속 지점에 다가온 차량을 세운 뒤 운전자를 내리게 했다. 경찰이 약물 검사를 위한 타액형 마약 검사 키트를 내밀자 운전자는 지시대로 키트에 침을 뱉은 뒤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경찰 관계자는 “신사역 일대는 클럽과 술집이 많고, 이곳에서 마약을 한 후 운전하다 교통사고가 종종 발생한다”며 “키트를 이용하면 11종의 마약 및 약물 양성 여부를 10분 안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 처음으로 약물 운전 단속 나서강남경찰서는 이날 전국에서 처음으로 약물 운전 단속을 실시했다. 지난해 8월 강남구 압구정역 근처에서 약물을 복용한 20대 남성이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을 숨지게 한 사건 등으로 시민의 불안감이 커지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경찰은 운전자가 음주 반응이 없더라도 동공 변화, 흥분, 말더듬,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이거나 과속, 급발진, 지그재그 운행 등 비정상적인 운전 행태를 보이면 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했다. 단속에 나선 한 경찰은 “약물에 취해 운전하면 차가 비틀거리거나 급제동, 급가속을 한다”며 “동공이 풀려 있다거나 횡설수설하는 것 등도 일반적인 음주 운전과의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다면 현행법에 따르면 아직 경찰에게 약물 운전 검사를 강제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운전자가 키트 검사를 거부해도 대응할 방법이 없다. 때문에 이와 관련해 권한과 강제력을 부여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단속에서 적발된 여성 운전자는 음주는 했지만 약물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와 일단 훈방 조치됐다. 경찰 관계자는 “약물 운전이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단속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해 113명이 약물 운전으로 면허 취소경찰청에 따르면 약물 운전으로 인한 운전 면허 취소자는 최근 4년 사이 2배 가까이로 늘었다. 2019년 57명이었는데 지난해엔 113명이었다. 약물 운전이 부상,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지난달 인천 계양구에선 20대 운전자가 차를 몰다 오토바이를 치어 30대 운전자를 다치게 했다. 조사 결과 가해 운전자와 옆 좌석 동승자 모두 케타민 양성 반응이 나왔다.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올 4월 강남구 한 도로에서 차량 추돌 사고가 발생했는데 경찰이 조사해 보니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간이 시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둘 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입건했다. 같은 달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필로폰을 투약한 20대 운전자가 오토바이와 차량들을 추돌해 50대 배달노동자가 숨졌다.약물 운전은 환각이나 환청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크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아편성 진통제를 복용한 운전자는 추돌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정상인의 2배 이상이었다. NIH는 “대마초는 운전자의 반응 시간을 늦추고 시간과 거리에 대한 판단을 손상시키며, 코카인이나 메탐페타민은 운전자를 공격적이고 무모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아편성 진통제는 졸음, 어지럼증을 유발하고 사고 및 판단에 관한 인지 기능을 손상시킨다.● 전문가 “처벌 강화 없이는 예방 힘들어”하지만 현행법상 약물 운전의 처벌 수위는 음주 운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약물 운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약물 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된 가운데 위원회 심사가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 없이는 약물 운전의 증가세를 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마약은 나이와 관계없이 소지만 해도 처벌을 받는 범죄인데 약물을 한 뒤 운전을 했으면 형이 훨씬 무거워야 정상”이라며 “형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점점 더 심각해지는 위협에 대해 균형을 맞추고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올해 4월 25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모처에서는 일명 ‘MI5’로 불리는 영국 국내정보국 관계자들이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등 영국 주요 대학 부총장 24명을 앞에 앉혀놓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영국 올리버 다우든 부총리는 이같이 말했다. 브리핑에는 펄리시티 오즈월드 국가사이버안보센터장, 켄 매캘럼 MI5 국장도 참석했다. 정보당국은 부총장들에게 “적대국이 영국의 국가 안보를 침해하려 영국 대학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경고하며 “앞으로 정부는 영국 대학에서 민감한 연구 결과를 훔치는 스파이를 막기 위해 심사를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은 이 모임 소식을 전하며 “특히 베이징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며 “각 부처 장관들은 중국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하라는 압박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 美, 수사 강화하고 인재 확보에 1056조 원 투입‘첸런(千人·천인)계획’과 ‘치밍(啓明·계명)’ 등 중국의 해외 인재 포섭 정책에 각국이 경계를 강화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인재와 기술이 중국에 유출되는 사건이 이어지자 수사를 강화하고 있다. 호주는 비자 제도 손질에 나섰다. 일본은 해외 유출을 반드시 막아야 할 핵심 기술 리스트를 만들었다. 한국도 이 사례들을 참고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 중인 미국에서는 2020년 5월 중국행 전세기에 타려던 중국인 정모 연구원(당시 오하이오주립대 소속)이 연방수사국(FBI)에 긴급 체포됐다. 면역학 전문가인 그는 첸런계획 참여 사실을 숨기고 미국 연구기관에서 410만 달러(약 53억 원)의 연구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 연구원은 2021년 5월 미국에서 징역 37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현재 중국 상하이교통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FBI는 이 사건에 대해 “미국 납세자의 세금으로 이뤄진 연구비를 받아서 중국을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지속적인 위협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산하 스탠퍼드중국경제제도센터(SCCEI)가 올해 7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0∼2021년 미국에서 경력을 쌓고 중국 등으로 이주한 중국계 과학자는 1만9955명이다. 이 중 행선지가 중국, 홍콩인 경우는 2010년 48%에서 2021년엔 67%로 급증했다. 상황이 이러자 미국은 중국의 인재, 기술 탈취를 겨냥한 수사를 확대했다. 2020년 크리스토퍼 레이 당시 FBI 국장은 “전국적으로 중국의 ‘(기술) 절도’에 대한 1000건 이상의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중국은 해외 인재를 흡수하며 국가 과학기술 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표에 따르면 주요 과학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수준을 100%라고 가정했을 때 중국은 2014년 69.7%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82.6%로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중국에 기술 수준을 역전당했다. 미국은 기술 유출을 막는 한편으로 인재를 끌어모으기 위한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과학기술 분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등에 약 8000억 달러(약 1056조 원) 예산을 배정했다. 이 돈은 미국 내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에게 지원되고 있다.● 호주 EU도 대응… “한국도 모니터링 강화해야”미국 주도 안보협의체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소속 국가인 호주와 일본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호주는 올해 4월 중요한 국가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위험이 있을 땐 유학생 비자 발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미국이 앞서 비자 관리를 강화해 ‘의심스러운 해외 유학생’의 입국을 차단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기업들에 “해외 유출을 막아야 할 핵심 기술 리스트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이어 이 기술들을 사용하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기존 생산량을 늘릴 때도 정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6월 한 중국인 연구원이 중국에 첨단 기술을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로 이어졌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0월 첨단기술 보호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중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와의 위험을 줄이고자 한다”며 중국을 겨냥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EU는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기술, 생명공학 등 4가지 영역을 보호해야 할 첨단 기술로 지목했다. 한국도 앞선 사례를 참고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나중에 산업 스파이가 되는 경우도 많다”며 “국가 핵심 기술 분야는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술 유출 범죄는 비록 붙잡혀 처벌되더라도 해당 기술만 확보할 수 있으면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벌어진다”며 “보안을 철저히 하고 유출을 스스로 막도록 관련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동아일보 취재팀이 ‘첸런(千人)계획’과 ‘하이구이(海歸)’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중국인 유학생이나 중국인 교수들이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인재를 포섭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한중 학술 교류나 대학 교류, 한국 유학 생활을 통해 친해진 한국 전문가나 교수들에게 접근해 중국으로 건너올 것을 제안했다. 그 제안의 이면에는 대부분 첸런계획 등 중국 정부 차원의 해외 인재 확보 정책이 도사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중국 경계령’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인 정상진(가명·75) 교수는 생물자원 연구 등을 위해 중국 연변대와 교류하다 2010년경 중국인 유학생 제자로부터 첸런계획 참여를 제안받았다. 정 교수의 대학원 연구실에서 일하던 제자가 “중국이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스승님을 추천하고 싶다”는 취지로 제안했다. 이후 정 교수는 첸런계획에 선발돼 중국에서 생명공학 연구를 이어갔다. 중국 유학생이 중국 당국의 ‘메신저’가 된 셈이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대만 당국은 중국 유학생 저우훙쉬를 2017년 간첩 혐의로 체포하기도 했다. 대만 수사기관에 따르면 그는 대만 국립정치대 MBA 과정을 밟은 뒤 중국 국무원의 지령을 받으며 대만의 군인, 경찰, 정보기관 관계자 등을 포섭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미국 국무부 자료를 보면 2020년 1월경 체포된 찰스 리버 전 미국 하버드대 화학과 학과장은 중국 우한이공대의 한 교수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리버 교수를 우한이공대의 ‘전략 과학자’로 채용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리버 교수는 우한을 직접 방문한 뒤 해당 제안을 수락했고, 이후 첸런계획에도 선발됐다. 그는 중국으로부터 연구 자금을 받은 사실을 숨긴 혐의로 체포, 구속됐다가 가택연금 및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중국 유학생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미국은 2020년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중국인 유학생과 연구자의 미국 체류 자격을 취소했다. ‘미국 기술과 지식을 불법적으로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미국고등교육연감(CHE)에 따르면 2022년 미국 정부가 중국 유학생에게 발급한 비자 건수는 전년(2021년)보다 45% 줄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국방 분야에서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심사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국가 안보와 기술 유출 방지 등을 위한 조치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하는 조건으로 장학금을 받은 중국인 유학생은 학업을 마치면 2년 안에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26일 오전 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쌍용종합상가 앞. 2.7km 떨어진 지하철 2호선 선릉역까지 가려고 카카오T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서울 자율차’를 호출했다. 차가 배정됐다는 알림이 뜨더니 곧 택시가 도착했다. 일반 택시와 외관은 거의 비슷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자율주행 장비들이 달려 있었다. 뒷좌석에 타자 택시는 “자율주행을 시작합니다”라는 음성이 나왔다. 운전석에는 비상 상황을 대비한 자율주행업체 직원이 앉아 있었지만 운전대, 가속 및 감속 페달에서는 손발을 떼고 있었다. 잠시 후 운전대가 ‘스르륵’ 스스로 움직이며 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자율주행 택시 타보니 ‘절반 이상’은 사람 개입 동아일보 기자는 26일 오후 11시부터 강남 일대에서 국내 최초로 운행되는 서울시 심야 자율주행 택시를 같은 날 오전 1시에 미리 30분간 타봤다. 자율주행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승차감이 부드럽고 앞차와의 거리 유지 등도 능숙했지만, 종종 차량이 흔들릴 만큼 과격하게 차선을 바꾸거나 잘못 진입하는 등 문제점도 드러났다. 출발한 지 수초 만에 앞에 공사 구간이 나왔다. 그러자 조수석의 직원이 운전대를 붙잡아 이를 피해 갔다. 이후 2개의 공사 구간이 더 나왔을 땐 차에서 “공사 구간에 진입했습니다. 수동 주행하세요”라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총 30여 분의 운행 시간 중 직원이 절반 이상 운전에 개입했다. 자율주행 택시는 교통 신호등을 제법 잘 인식하고 과속도 하지 않았다. 시속 40km대로 일정하게 달렸다. 좌회전, 우회전할 땐 시속 20km대로 감속한 뒤 안전하게 코너를 돌았다. 사람 운전자는 마음이 급하면 앞차에 너무 달라붙는 경우도 있는데 자율주행 택시는 주행 내내 멀찍이 거리를 유지했다. ● 순식간 차선 3개 변경 ‘아찔’ 순간도 다만 오류도 있었다. 포스코사거리에선 내비게이션에 따르면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차선을 잘못 진입해 직진했다. 기자가 깜짝 놀랄 만큼 급격한 차선 변경으로 ‘위험 운전’에 가까운 상황도 있었다. 쌍용종합상가 앞으로 되돌아와 도착할 때엔 택시가 4개 차선 중 3개를 오른쪽으로 한꺼번에 확 가로질러 차선을 바꿨다. 택시도 크게 흔들리고, 안에 탄 기자도 몸이 휘청일 정도였다. 직원은 “정해진 구간 안에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데 앞에 다른 차가 있는 걸 인식하다 보니 조금 무리하게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 택시가 먼저 도입된 미국과 중국의 일부 도시에서는 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무인택시(로보택시)를 상용화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난해 10월 로보택시가 보행자를 들이받은 뒤 6m 가까이를 끌고 가 중상을 입혔다. 이후 캘리포니아 차량국에서는 로보택시의 운행대수 50% 감축을 지시한 바 있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자율주행차의 상업적 운행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로보택시엔 운전자가 꼭 동행할 필요는 없지만 원격 운전자가 있어야 하고, 이 원격 운전자는 한 번에 최대 3대까지의 차를 감독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자율주행 택시의 본격 상용화를 위해서는 이 같은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26일 오전 1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쌍용종합상가 앞. 2.7㎞ 떨어진 선릉역 앞으로 가기 위해 일반 택시를 부르듯 카카오T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서울 자율차’를 호출했다. 곧 차가 도착해서 탑승했다. 일반 택시와 똑같은 외관의 택시는 “자율주행을 시작합니다”라는 음성과 함께 운행이 시작됐다.동아일보 기자는 이날부터 강남 일대에서 국내 최초로 운행되는 서울시 심야 자율주행택시를 오전 1시~1시 반경 타봤다. 전반적인 승차감이 부드럽고 앞차와의 거리 유지 등도 능숙했지만, 차량이 흔들릴 만큼 급격한 차선 변경이나 차선을 잘못 진입하는 등의 미숙함도 드러났다. 본격 상용화를 위해선 해외처럼 비상상황에 대비한 촘촘한 매뉴얼 설계부터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론 절반 이상 수동주행 한계이날 운전석엔 자율주행업체 직원이 앉았다. 현재 기술력으로는 수동주행을 해야 하는 구간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돌발 상황, 공사 구간이나 어린이보호구역이 대표적이다.출발한 지 수초 만에 공사 구간이 나와 시험운전자가 핸들을 직접 조작해 이를 피해갔다. 이후 2개의 공사 구간이 더 나왔을 땐 아예 “수동 주행을 시작한다”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약 30분의 운행 중 운전자는 절반 이상 운전에 개입해야만 했다.신호 인식 등 기본적인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다. 시속 40㎞대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급하게 정차하지 않아 전반적인 승차감도 부드러웠다. 특히 좌회전, 우회전 시 시속 20㎞대에서 정교한 핸들링이 돼 코너링이 부드러웠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처럼 커피가 든 컵을 들고 탔어도 넘치지 않을 정도였다.앞차와의 간격에선 보수적인 안전거리 유지가 돋보였다. 수m 거리로 보통 차량들이 하는 것보다도 훨씬 멀찍이 유지하는 모습이었다. 내비게이션대로 자동 주행되기에 길 안내 음성이 울리지 않아서 일반 택시보다 소음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장점이었다.● 순식간 차선 3개 변경 ‘아찔’ 순간도다만 설익은 기술력에 경로 인식 오류도 있었다. 선릉역으로 향하는 포스코사거리에선 내비게이션상 좌회전을 해야 했는데 차선을 잘못 진입해 직진하게 된 것이다. 기자가 깜짝 놀랄 만큼 급격한 차선 변경으로 ‘위험 운전’에 가까운 상황도 있었다. 다시 쌍용종합상가 앞으로 되돌아와 도착할 때엔 자율주행택시가 4개 차선 중 3개를 오른쪽으로 순식간에 바꿨다. 차량과 기자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시험운전자는 “정해진 구간 안에서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데 앞에 다른 차가 있는 걸 인식했다 보니 조금 무리하게 들어왔다.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앞서 자율주행택시가 먼저 도입된 미국과 중국의 일부 도시에서는 실제로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무인택시(로보택시)를 상용화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난해 10월 로보택시가 보행자를 들이받은 뒤 6m 가까이를 끌고 가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로보택시가 환자를 태운 응급차를 약 90초간 막아 환자가 끝내 숨지기도 했다. 승객을 태우고 주행하던 중 소방차와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잇따른 사고에 캘리포니아 차량국에서는 로보택시의 운행대수 50% 감축을 지시한 바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12월 자율주행차의 상업적 운행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로보택시엔 운전자가 꼭 동행할 필요는 없지만 원격 운전자가 있어야 하고, 이 원격 운전자는 한번에 최대 3대까지의 차를 감독할 수 있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의사들에게 자사 약을 쓰는 대가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 고려제약 임직원 2명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6일 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24일 고려제약 임원 A 씨와 회계 담당 직원 B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각각 회사의 영업 관리 업무와 회계 사무를 맡으며 의사들을 대상으로 고려제약 제품을 쓰는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이달 13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한 바 있다. 이들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2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 A 씨와 B 씨는 이 사건으로 구속되는 첫 사례가 된다. 경찰은 올 초부터 고려제약이 수년간 의사들에게 현금이나 가전제품, 골프 접대 등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펼쳐왔다. 특히 올 4월 서울 강남구 고려제약 본사를 압수수색 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 내용이 상세히 담긴 ‘BM(블랙머니’)란 이름의 엑셀 파일을 확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달 23일 기준 경찰은 고려제약 불법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해 전체 319명을 입건해 300명을 조사한 상태며 이 중 279명은 의사로 확인됐다. 경찰은 고려제약 리베이트에 의사 1000여 명이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선상에 이름을 올린 의사는 대형병원뿐만 아니라 2차 병원, 동네 병의원 등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도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의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해 손 전 회장의 처남 김모 씨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김수홍)는 24일 김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김 씨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법인을 통해 매입한 부동산 계약서를 위조해 거래금액을 부풀린 뒤 우리은행으로부터 과도한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법인 대표자는 김 씨의 부인으로 돼 있으나 실질적인 운영은 김 씨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김 씨의 주거지와 사무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과 강남구 선릉금융센터 등 사무실 8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달 6일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도망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우리은행이 김 씨에게 부당 대출을 내준 사실을 적발했고, 이후 검찰은 김 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우리금융지주 자회사인 우리은행이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과 관련된 법인이나 개인사업자 차주를 대상으로 내준 616억 원 규모 대출 가운데 28건, 350억 원을 부당하게 대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손 전 회장 등 당시 경영진이 부당 대출을 직접 지시 또는 관여했는지를 수사 중이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의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해 손 전 회장의 처남 김모 씨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김수홍)는 24일 김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김 씨를 구소기소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법인을 통해 매입한 부동산 계약서를 위조해 거래금액을 부풀린 뒤 우리은행으로부터 과도한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법인 대표자는 김 씨의 부인으로 되어 있으나 실질적 운영은 김 씨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김 씨의 주거지와 사무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과 강남구 선릉금융센터 등 사무실 8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달 6일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도망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우리은행이 김 씨에게 부당 대출을 내준 사실을 적발했고, 이후 검찰은 김 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우리금융지주 자회사인 우리은행이 2020년 4부터 올해 1월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과 관련된 법인이나 개인사업자 차주를 대상으로 내준 616억 원 규모 대출 가운데 28건, 350억 원을 부당하게 대출한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손 전 회장 등 당시 경영진이 부당 대출을 직접 지시 또는 관여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부산의 한 초등학교 앞에 국내에선 처음으로 8t 무게 차량이 시속 65km로 돌진해도 견디는 강력한 차량용 방호 울타리(가드레일)가 설치됐다. 최근 3년간 매년 평균 500명의 어린이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다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이후 방호 울타리의 필요성이 커진 가운데, 전국 스쿨존의 약 40%는 방호 울타리가 여전히 없어 설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방호 울타리 설치한 스쿨존 61% 그쳐지난달 31일 부산 남구 우암초교 앞에 설치된 울타리는 8t 무게 차량이 시속 65km로 돌진해도 충격을 견디고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등급(SB2 등급)의 차량용 방호 울타리가 스쿨존에 설치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울타리는 초등학교 보행로 200m 구간을 따라 설치돼 아이들과 시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앞서 부산시와 손해보험협회는 이 주변 차량 통행을 고려해 새로운 방호 울타리 설치를 추진해 왔다. 기존에 보행자용 방호 울타리가 있었으나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같은 차량 돌진 사고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3일 확인한 새 울타리는 매우 견고했다. 성인이 손으로 잡고 흔들거나 발로 걷어차도 꿈쩍하지 않았다. 서울 시청역 주변의 보행자용 울타리들이 대부분 쉽게 흔들리거나 덜컹거렸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한 주민은 “주변에 대형 부두와 컨테이너 터미널이 있어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데 아이들 지나는 곳에 튼튼한 울타리가 설치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국 스쿨존 10곳 중 4곳에는 방호 울타리가 없다. 경찰청의 ‘최근 3년간 스쿨존 교통사고 현황’에 따르면 매년 평균 500명 이상의 어린이가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다쳤다. 2021년엔 563명, 2022년 529명, 2023년 523명이었다. 하루에 1.5명꼴로 사고가 발생한 것. 반면 아이들을 지켜줄 방호 울타리 설치율은 낮다. 경찰청 조사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스쿨존 1만6490곳 중 방호 울타리가 설치된 곳은 61.4%(1만120곳)에 불과했다.● 아슬아슬 韓 스쿨존… 日은 가이드라인 따라 설치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올해 7월 31일부터 스쿨존에 방호 울타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용과 보행자용을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방호 울타리’로만 정의하고 있다. 보행자용은 사람이나 자전거가 도로 등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는 용도로 강도가 약하다. 차량 충돌 사고로부터 보행자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다. 방호 울타리를 우선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도 없다. 이 때문에 스쿨존 방호 울타리 설치 지점을 검토할 때 주변 산업단지, 공장지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화물차 등의 통행량이 많고 그만큼 사고도 잦기 때문이다. 실제 취재팀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 시화공업단지에서 약 1.2km 떨어진 경기 시흥시 시흥초교 주변을 살펴봤다. 사고가 잦은 지역이고 스쿨존이었지만 학교 정문 오른편 약 20m 구간에 가드레일이 없었다. 드럼통을 가득 실은 화물트럭이 유턴을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인도에 바짝 붙어 지나갔다. 아이들이 있었다면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주민 송모 씨(33)는 “등교 시간에 특히 트럭들이 더 많이 지나다닌다. 이런 곳에 왜 가드레일이 없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서 약 1.3km 떨어진 호원초교 주변 역시 일부 구간에 가드레일이 없었다. 일본은 스쿨존 안전대책 정비 가이드라인에 따라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고 있다. 보도 폭이 2m 이상이면 차량용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도록 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 역시 사람이 주로 다니는 길의 폭이 1m 이상∼2m 미만이면 고강도 보행자용 방호 울타리 설치를 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시흥=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12일 오전 충남 천안시 동남구 민간연구소 한국자동차연구원 주행시험장. 기자가 핸들 좌측 하단에 설치된 차량 비상 정지 장치 ‘1단 스위치’를 돌리자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던 차량이 30∼40m 정도 더 간 뒤 힘을 잃고 멈춰 섰다. “띠리리리리” 경고음과 함께 계기판 화면에는 ‘긴급 제동’이라는 문구와 빨간색 경고 표시가 나타났다. 차량 비상 정지 장치는 사람이 수동으로 정지 명령을 내리거나 배터리 전원을 끊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명 ‘급발진’ 사고의 원인으로 꼽히는 페달 오조작, 페달 끼임, 차량 오류 등 3가지 상황에 모두 대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허청은 올해 5월 이 장치를 개발한 김용은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올해의 발명왕’으로 선정했다.● “익숙지 않은 차량 신기술에 오조작 증가” 최근 급발진 의심 사고가 잇따르면서 급발진 사고에 대처할 수 있는 장치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23일 한국교통안전공단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실에 제출한 급발진 의심 신고 건수 및 인정 건수 현황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4년 6월까지 총 793건이 자동차리콜센터로 접수됐다. 이는 신차들이 장착한 각종 제어 장치로 인해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오조작이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의 원페달 드라이빙의 경우 가속 페달에서 발만 떼도 시속 30km까지 속도가 줄기 때문에 갑자기 장애물을 마주했을 때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착각하고 더 세게 밟는 경향이 있다”며 “2010년대 후반부터 전기차가 도래하면서 익숙지 않은 기술들이 등장해 운전자 실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본인의 실수를 차량의 결함으로 오인하는 운전자가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민제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급발진 의심 사고 신고건 중 실제로 의심할 만한 증거나 정황이 발견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으로 감식과 분석을 의뢰하는 사건은 극히 일부”라며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 중 상당수가 사건 초기 자신의 실수나 과실을 오인하고 급발진 등 결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2단계 스위치로 전력 차단… “100% 정지” 한국자동차연구원이 개발한 차량 비상 정지 장치의 스위치는 2단계로 작동한다. 1단으로 스위치를 돌리면 긴급제동기능(AEB) 브레이크가 동작하도록 통신선을 통해 신호를 전달한다. 비상등도 함께 점등된다. 후방 차량이 급정거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차체 결함이 없다면 차량은 1단계에서 100% 정지한다. 과거 일부 완성차 업체들이 의도치 않은 가속 현상으로 대량 리콜을 진행했던 것을 고려하면 차량 결함 가능성도 100% 배제할 수는 없다. 차량이 멈추지 않는다면 스위치를 2단으로 돌리면 된다. 2단계에서는 퓨즈 박스 전력을 차단한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전력을 주관하는 장치인 ‘릴레이’ 전원을, 엔진차의 경우 엔진 컨트롤 유닛(ECU)의 전원을 끊어 차량은 자연 감속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속도를 더 빨리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번에 개발된 비상 정지 장치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완성차 업체의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등과 병행해 설치한다면 차량의 안전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AI가 의도하지 않은 가속을 막아주는 것과 더불어 인간이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해당 장치는 15만 원대로 제작할 수 있다. 대량 생산할 경우 소비자가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 가로막혀 양산 걸림돌 급발진 의심 사고를 막기 위한 비상 정지 장치가 양산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됐지만 법적인 규제가 상용화를 가로막고 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범퍼 등 경미한 튜닝을 제외하고 법에서 정한 튜닝 항목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측은 비상 정지 장치가 법에서 정한 튜닝 항목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선 승인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장치가 정지 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통신선을 통해 차량의 통신 라인에 접속한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자칫 튜닝으로 차량 시스템을 건드려 오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전기차의 전기를 강제로 차단하거나 제작사의 소프트웨어를 임의로 변경할 경우 다른 전자 제어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안전성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기술적인 문제이자 제도적인 문제”라며 “정부 기관을 통해 수천 회 이상의 테스트를 통과할 경우 인증을 요청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절차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경일 법무법인 엘엔엘 대표변호사는 “앞서 나가는 기술에 법이 제동을 걸어서는 안 된다”며 “제한적으로 통신 라인에 접속하는 제품은 승인받을 수 있도록 기술 검증을 거쳐 예외 기준을 만드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특별취재팀▽팀장 송유근 사회부 기자 big@donga.com▽소설희(경제부) 이축복(산업2부) 이청아(국제부)이채완(사회부) 한종호(산업1부) 기자}
급발진 의심 사고는 차종이나 연령대에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어 이를 대처할 수 있는 장치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12일 서울 여의도 FKI 콘퍼런스센터에서 공동 개최한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설명회’에서 전문가들은 제조물 책임법 개정과 같은 사후 조치보다는 실질적인 사고 방지를 위한 신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박성지 대전보건대 경찰과학수사학과 교수는 “급발진 의심 사고는 운전 경력과 무관하게 가속케이블 고착, 엔진오일의 흡기 유입 등 다양한 형태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 개발 등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최근 고령 운전자들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잇따른 데 대한 오해를 바로잡자는 취지였다. 최영석 원주한라대 스마트모빌리티공학부 교수는 “최신 차량은 각종 제어 장치로 인해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운전자 오조작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운전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같은 신기술을 개발하고 신속히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강남훈 KAMA 회장은 “올해 11월 국제기준 제정을 목표로 논의 중인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소형 전기차에 이미 장착해 출시했고, AEBS는 현재 승용, 승합, 화물 등 모든 자동차에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며 “신속한 기술 개발을 통해 AEBS 감지 대상도 보행자와 자전거까지 감지할 수 있는 기능으로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조물 책임법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현행법은 소비자가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발의된 개정안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조사가 입증하도록 해 급발진 등의 사고에서 운전자의 부담을 완화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일각에선 제조물 책임법 개정은 사고 예방 기능이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러한 법 개정은)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늘어나게 해 소비자와 국가 모두에게 비용 낭비가 될 것”이라며 “소송 내용과 상관없는 자동차 회사의 자료를 요청해 제조사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성급한 조치가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송유근 사회부 기자 big@donga.com▽소설희(경제부) 이축복(산업2부) 이청아(국제부)이채완(사회부) 한종호(산업1부) 기자}
최근 경기 고양시의 도로에서 60대 노인이 폐지 수집 손수레를 끌고 가다가 차에 치여 숨진 사건을 계기로 안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7월 기준 국내의 폐지 수집 노인은 1만4831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5명 중 1명꼴로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너비 1m가 넘는 손수레를 ‘차’로 분류하기 때문에 폐지 수집 노인들은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선 차도로만 통행할 수 있다.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 도중 부상을 경험한 노인은 전체의 22%였다. 교통사고를 경험한 비율은 전체의 6.3%였는데 그중 77.2%는 차량과의 사고였다. 손수레를 끌고 인도로 다니면 적발 시 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받는다.동아일보 취재팀은 22일 서울 시내에서 폐지 수집 노인들과 동행해 봤다. 취재 내내 도로에서 위험한 상황에 자주 직면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1년째 빈 병 등을 줍는 김모 씨(70)는 차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인도에 바짝 붙어 다니다가 세 차례 넘어졌다. 김 씨는 “아는 언니는 리어카(손수레)를 끌고 다니다가 사고로 병원에 두 달간 입원했다”고 전했다. 다른 주택가에서 만난 홀몸노인 김모 씨(80)는 차도에서 손수레를 끌고 가는 내내 주변 차량들이 옆에 바짝 붙어 지나갔다. 김 씨는 “박스를 주우러 간 사이 차가 내 리어카를 들이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폐지 수집이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라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보건복지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하루 평균 5.4시간, 주 6일 일한다. 한 달 평균 수입은 15만9000원이었다. 폐지를 줍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 노인의 84.1%는 “경제적 사유”라고 답했다. 앞서 20일 고양시에서 숨진 60대 여성도 폐지 값을 더 잘 쳐주는 고물상을 찾아 먼 길을 가다가 변을 당했다. 주변 지인 등에 따르면 그의 주거지 10분 거리에 고물상이 있었지만 폐지 1kg당 50원을 더 주는 다른 고물상으로 40분 이상 거리를 걸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전문가들은 도로교통법의 예외 규칙 등을 마련해 교통사고 위험을 줄여야 된다고 지적한다. 제20대 국회에선 ‘손수레’를 ‘보행자’에 포함시켜 인도 통행을 가능하게 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리어카는 속도 등 여러 면에서 차를 따라갈 수 없는데 차도로 다니는 건 위험하다”며 “게다가 주로 새벽에 다니는 경우가 많아 운전자가 식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대체 일자리 및 보조금 등을 늘려야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노인인력개발연구원은 “지자체 폐지 수집 노인 지원 조례를 제정 혹은 개정할 수 있도록 표준 조례안을 마련해 체계적인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고양=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70대 남성 A 씨는 최근 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문자를 받고 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입장했다. 이곳에선 “추천한 비상장 코인 종목이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수일 만에 상장돼 1400%의 수익이 났다”는 정보를 담은 유튜브 영상이 공유되고 있었다. 문제는 해당 앱과 정보 모두 조작됐다는 점이다. 가짜 정보를 믿었던 A 씨가 거액의 투자금을 이체하자, 범인은 수익금을 인출하기 위해 수익금의 30%를 지정한 계좌로 송금하라고 했다. 범인의 거짓말에 속은 A 씨는 총 11억 1293만 원을 이체해 빼앗겼다.13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투자리딩방, 보이스피싱 범죄 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A 씨 등의 사례를 공개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발생한 투자리딩방 사기는 총 6143건으로 5340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올 1월부터 7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사건은 총 1만1734건, 피해액 3909억 원이다. 올 2월부터 8월까지 발생한 로맨스스캠 사건은 920건이었으며, 피해액은 545억 원으로 집계됐다.경찰청은 최근 발생하는 금융사기의 수법이 매우 정교해 사기 범죄의 유형을 모를 경우 성별, 연령대, 직업과 상관없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령층 등 취약한 사람들만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경찰관이 피해자인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한 20대 여성은 과거 코인으로 사기 피해를 당한 후 ‘주식 등 사기 피해 모임’이라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알게 된 투자 전문가한테 또 사기를 당했다. 이 투자 전문가는 ‘집단 소송을 도와주겠다’며 신뢰 관계를 형성한 뒤 특정 비상장주식을 매수할 것을 권유했고, 피해 여성이 5억4000만 원 가량을 투자하자 연락을 두절했다. 한 40대 남성은 인스타그램에서 ‘해외에서 의사로 일하는 외국인 여성’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이를 알게 돼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범인은 “일 끝나면 한국에 가서 같이 살 거라 이삿짐을 보낼 테니 택배비를 대신 지불해 달라”고 속였고, 피해자는 이에 1억4000만 원을 보냈다 빼앗겼다.경찰청은 범행 시나리오와 수단이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 공통적으로 ①피해자에게 미끼 문자를 발송하는 등 접근하는 ‘미끼 접근 단계’ ②가짜 앱, 홈페이지, 오픈채팅방 등으로 피해자를 속이는 ‘속임 단계’ ③ 대포 통장, 가상계좌 등을 통해 편취하는 ‘편취 단계’를 거친다.이 과정에서 사기꾼들은 분야별 전문가를 활용해 가짜 신분, 가짜 홈페이지와 앱, 가짜 정보 등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모든 것을 조작한다고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SNS에서 대화하는 사람, 오픈채팅방에 수백 명이 있어도 모두 가짜일 수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보는 모든 화면도 가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범행 시나리오 역시 다양하다. 경찰청은 “사기꾼들은 사람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 수 있도록 맞춤형 시나리오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노후 자금을 걱정하는 은퇴를 앞둔 사람에게는 안정적인 고수익 투자처를, 외로운 사람에게는 연애의 감정을, 대출이 필요한 사람에겐 저금리 대출 상품을 제안하는 식이다. 경찰청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 먼저 인지하고 가족, 친척 등 주변에 알려 예방법을 적극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7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갑자기 돌진하는 사고로 12일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부산에서는 가해 차량이 7월에 있었던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당시처럼 빠른 속도로 인도를 덮친 뒤 행인들을 치었다. 두 고령 운전자들은 두 달 전 벌어진 시청역 사고 가해 운전자처럼 “급발진”을 주장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12분경 부산 해운대구 중동 해운대구청 인근 일방통행 차로에서 70대 운전자가 몰던 벤츠 승용차가 인도를 향해 돌진했다. 가해 차량은 오른편 도로변에 정차 중이던 트럭 뒷부분을 들이받은 뒤 행인 2명을 치었다. 이후 인근 점포로 돌진한 뒤에야 멈춰 섰다. 이 사고로 70대 여성 행인이 현장에서 숨졌고 60대 남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 인근 상인들은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펑 하는 굉음이 울렸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차량은 송정해수욕장 방향 해운대로를 달리다가 해운대구청 어귀삼거리에서 우회전해 120m를 더 가던 중 사고를 냈다. 주변 폐쇄회로(CC)TV에는 가해 차량이 도로를 벗어나 인도 위에서 10m가량 질주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차가 들이받은 트럭이 충격에 튕겨 나가는 모습도 담겼다. 해당 인도에는 사고를 막기 위한 보행울타리(가드레일)가 없었다. 가해 운전자는 사고 직후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오후 5시 10분경 서울 성동구 성동세무서 앞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70대 남성이 몰던 벤츠 차량이 총 7대의 차량을 연쇄적으로 들이받았다. 가해 운전자를 포함해 9명이 다쳤고 그중 3명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대부분 경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 운전자는 사고 뒤 차에서 내려 역시 “급발진”을 주장했다. 사고 여파로 성동세무서 앞 도로는 한동안 전면 통제됐다. 앞서 7월 1일 서울에서는 68세 운전자 차모 씨의 운전 미숙 탓에 차량이 역주행 질주했고, 인도를 걷던 시민 등 9명이 숨졌다. 차 씨는 사고 직후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경찰 수사 결과 차 씨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이 없었고 대신 가속 페달을 여러 번 밟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입수한 ‘최근 5년 치 급발진 의심 사고 현황’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 6월까지 접수된 총 364건의 급발진 의심 사고 중 88.2%(321건)는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 원인이었다. 이 경우 사고 운전자의 평균 나이는 64세였다. 나머지 11.8%는 차량이 완전히 부서져 사고 원인을 판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올해 추석을 일주일 앞둔 10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고 김기현 씨(23)의 집에는 생전에 쓰던 책상 위에 기현 씨의 유골함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기현 씨의 아버지 김모 씨(54)와 어머니 이모 씨(52)가 쓴 편지가 있었다. ‘착하고 예쁜 내 아들아, 다음 생에도 우리 아들로 와 줘.’ 외아들인 기현 씨는 지난달 12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전기에 감전돼 숨졌다. 원래 그가 맡았던 일은 기계를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비의 전원을 직접 끄라’는 지시를 받고 작업을 하다 고압 전류에 감전됐다. 현장에서 기현 씨가 사고를 당한 것을 인지한 건 1시간 30분 뒤, 병원에 도착한 건 그 이후로도 1시간 뒤였다. 사건 당일, 일한 지 8개월째였던 기현 씨는 휴일이었지만 출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늦게까지 자서 기분도 좋고, 친한 삼촌 부탁이라 얼른 다녀올게요.” 기현 씨는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그게 부모가 본 살아 있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기현 씨가 숨진 지 12일이 지난 지난달 24일 하청업체 책임자들이 김 씨와 이 씨를 찾아왔다. 그들이 내민 것은 처벌불원서였다. ‘유족은 하청과 원청 모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아파트 공사가 조속히 재개되길 원한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불과 6일 전 아들의 장례를 마친 김 씨는 그때까지 ‘원청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김 씨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들의 장례가 끝난 뒤에도 김 씨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원래 리모컨 조작 작업만 하기로 했던 아들이 왜 감전사를 했는지. 왜 동료도 없이 혼자였는지. 쓰러진 뒤 왜 1시간 반 동안 방치됐는지. 그 후에도 왜 1시간이나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했는지. 김 씨는 사고 당시 아들의 최후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들의 죽음은 여전히 미궁 속이었다. 김 씨와 이 씨는 5일에 걸쳐 아들의 장례를 치렀다. 다음 날 찾아간 ‘그 아파트’ 현장은 다시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엘리베이터와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이 죽은 현장만 작업이 멈춰 있었다. 이 씨는 왜 아직 아들을 봉안당에 보내지 못했느냐는 물음에 “추석에 아이가 봉안당에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아직 보내지 못했어요”라며 “집에서 마지막으로 추석을 같이 보내려고 해요”라고 했다. 부모는 추석을 보내고 22일 유골함을 봉안할 계획이다.고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최근 5년간 분석한 급발진 의심 사고 10건 중 9건은 원인이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인 것으로 나타났다. 페달 오조작으로 판명 난 차량의 운전자는 평균 64세였다. 최근 서울시청역 역주행 참사, 경기 용인 카페 테슬라 돌진 등 사례에서 운전자들이 급발진을 주장한 가운데, 고령 운전자의 오조작 사고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9일 국과수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실에 제출한 ‘최근 5년간 급발진 의심 사고 분석 현황’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 6월까지 총 364건의 급발진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국과수가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 등을 분석한 결과 이 중 88.2%(321건)가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 원인이었다. 나머지 11.8%는 대부분 차량이 완전히 파손돼 분석이 불가능했던 경우다. 국과수 관계자는 의원실에 “사고 차량이 대파돼 감정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감정 건이 차량 결함 없이 운전자의 가속 페달 오조작에 의한 사고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페달 오조작’ 운전자의 평균 나이는 64세였다. 국과수에 따르면 급발진 주장 차량 운전자의 평균 나이는 2020년 61.2세, 2021년 63세, 2022년 62.2세, 2023년 67세, 올 상반기(1∼6월)엔 63.9세였다. 시청역 역주행 참사의 가해자 차모 씨는 68세, 용인 테슬라 운전자는 62세였다.국과수 분석에 따르면 급발진 의심 사고의 절대 다수는 고령층의 운전 미숙, 오조작인 셈이다. 시청역 참사 이후 고령층의 운전면허 갱신 제도 개선 등 여러 제안이 나왔지만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입장 차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고령 운전자에 한해서만 매년 면허를 갱신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경찰청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보류했다. 특히 대중교통이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지방에서는 면허를 제한할 경우 고령층의 이동권 침해 문제 등이 불거질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페달 오조작 방지를 막을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은 2022년부터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비상제동장치(AEBS), 페달 조작 오류 및 급발진 억제장치 등의 기능을 갖춘 ‘서포트카S’만 운행 가능한 한정 면허를 신설했다. 차량 구매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70∼79세는 3년에 한 번, 80세 이상은 매년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한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