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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역의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국제 유가 상승에 불이 붙었다. 유가 급등으로 휘발유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등 석유가 원재료인 제품 가격이 치솟으며 다시 인플레이션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면서 글로벌 주요 증시도 하락세를 나타냈다. ● 브렌트유, 배럴당 80달러 돌파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제 유가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1일 이란이 이스라엘을 겨냥해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한 뒤 유가 상승세는 더 가팔라지고 있다.7일(현지 시간)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12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3.7% 상승한 배럴당 80.9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27일 이후 7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면서 한 달여 만에 80달러 선을 웃돌았다.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3.71% 급등한 배럴당 77.14달러에 마감했다. 이스라엘이 보복의 일환으로 이란의 석유 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시장의 긴장감은 한층 커지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산하 피치솔루션스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면전에 돌입할 경우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이란이 중동지역의 원유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을 전면 봉쇄할 경우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도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중동 지역 위험이 이어질 경우 유럽이나 중국, 아프리카 등 경기 침체 조짐이 보이는 지역을 중심으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제이콥 키르케고르 선임 연구원은 “유럽은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시장 불안이 커진 가운데 미국의 신규 고용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도 인플레이션 재발 공포를 키우고 있다. 미국의 9월 비농업 신규 고용이 전월 대비 25만4000명 늘어나면서 시장 예상치(14만7000명)를 크게 웃돌았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11월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금리 동결 가능성도 흘러나온다. 이에 미국 10년물 채권금리가 4%를 돌파하는 등 오름세를 보이기도 했다.● 주요국 증시 일제히 내림세 보여금융 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글로벌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7일(현지 시간) 전일보다 0.94% 하락한 41,954.24에 거래를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0.96%)와 나스닥지수(―1.18%)도 1% 안팎의 내림세를 보였다. 미국 증시의 영향을 받아 이날 한국의 코스피(―0.61%), 일본의 닛케이평균주가(―1.00%)도 하락했다. 중국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 효과에 상하이종합지수는 4.59% 올랐다. 전문가들은 중동 지역의 위험이 커지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면서도, 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전면 봉쇄 등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이상으로 오르기는 힘들다”고 했다. 다만 최근 유가 상승 등이 국내 경제에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 유가 급등이 계속될 경우 국내에서도 물가 상승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최근 A자산운용사는 신규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앞두고 다수 증권사를 통해 1억 원 상당의 경품을 내걸고 거래량 이벤트를 실시했다. 이벤트 효과는 적지 않아 거래 시작 1시간 만에 100억 원 이상의 거래가 발생했다. ETF 시장 관계자는 “운용사 간 경쟁이 치열한 상품일수록 경품 규모도 커지고, 거래량도 늘어난다”고 귀띔했다. 수백만 원대의 골프채와 백화점상품권 등 화려한 경품을 내건 이벤트가 ETF 거래량을 사실상 좌우하며 가요계 ‘음반 사재기’처럼 시장 질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만들어진 거래량 통계 숫자가 도리어 소비자의 선택을 방해한다는 우려도 크다.● ETF 거래량 이벤트, 4년 만에 21배 증가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증권사의 ETF 상품 관련 거래량 이벤트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는 ETF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 일정 기간 ETF 거래액이 많은 고객 중 추첨을 통해 적게는 수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이르는 경품을 제공하고 있다. 2019년 11건이었던 거래량 이벤트는 지난해 238건으로 늘었다. 경품 금액도 6850만 원에서 14억5524만 원까지 불어났다. 올해 상반기(1∼6월)까지 진행된 이벤트 건수는 119건, 경품 금액은 7억8604만 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건수는 23%, 금액은 43% 이상 증가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신규 ETF 상품 출시가 늘어나면서, 거래량을 늘려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거래량 경품 이벤트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신규 ETF 상장 건수는 48건에 불과했으나 2022년 139건으로 처음 100건을 넘겼다. 지난해에 160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상반기까지 116건의 ETF 상품이 상장했다. 전문가들은 ETF 거래량 이벤트가 자칫 소비자의 잘못된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거래량이 많으면 시장에서 인기가 많고, 환금성이 좋다고 여겨진다. 투자자가 거래량 숫자만 믿고, 이벤트를 통해 일시적으로 거래량이 늘어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거래량 이벤트의 경품만을 노린 ‘체리피커’(혜택만 챙기는 소비자)가 활개를 치면서 왜곡 현상이 더 커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거래량 이벤트를 시작할 때 30분에서 1시간가량 거래량이 급증한다”며 “일부 ‘꾼’들이 다수의 계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거래량을 높이고, 경품을 받아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체리피커가 몰리면서 증권사의 거래량 이벤트가 중단되는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달 한 증권사에서 실시한 해외 주식 거래량 이벤트에 이상 거래가 발생하면서 일부 미국 ETF 종목에 거래량이 급증하자 온라인 매수를 제한하기도 했다.● “베끼기 상품에 국내 ETF 시장 차별성 잃어”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ETF 시장에서 ‘베끼기 상품’이 급증하면서 운용사들이 상품 차별화보다는 광고나 마케팅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규 상품 개발보다 마케팅이나 광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운용업계 내부에서는 “금융회사가 아니라 광고회사를 다니는 느낌”이라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운용사 간 ETF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기 유튜버나 대형 블로거 등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인기 유튜버 등을 대상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광고비를 집행하기도 한다”며 “마케팅이나 광고 비용은 결국 고객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의 다양한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차별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벌어지는 MBK파트너스·영풍과 고려아연 간 지분 매입 경쟁이 ‘연장전’에 돌입하게 됐다.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1차 공개매수에 사실상 실패한 뒤 매수 가격을 고려아연 측과 똑같이 올렸기 때문이다. 양측은 동일 가격, 동일 조건으로 치열한 ‘쩐의 전쟁’을 이어가게 됐다. MBK파트너스·영풍은 공개매수 거래 마감일인 4일 오후 고려아연 주식 매수 가격을 기존 75만 원보다 10.7% 높아진 83만 원으로 인상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확보(대항 공개매수)에 나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공개 매수 가격과 똑같은 액수다. MBK파트너스·영풍이 매수 가격을 인상한 것은 이날 고려아연 주가가 77만6000원으로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MBK파트너스·영풍이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보다 2만6000원 높다. 이는 고려아연 주주들이 MBK파트너스 측에 주식을 넘기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향후 판도는 안갯속이다. MBK파트너스·영풍 측은 14일까지 고려아연 주식 최대 14.61%를 사들인다는 방침이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23일까지 최대 18%를 매입할 계획이다. 양측이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이 동일하게 83만 원이어서 고려아연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이 어느 쪽을 향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 회장 측에서 추가로 가격을 더 인상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MBK파트너스·영풍 측은 고려아연이 자기자본을 활용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식이 배임 등의 소지가 큰 것으로 보고 소송을 제시한 상태다. 사법부의 판단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이미 해당 문제로 MBK 측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법원의 기각 판정을 받은 만큼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 주가는 회사의 가치보다 월등히 높은 상황으로 경영권 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 반영됐다”며 “추가적인 상승 가능성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 전부를 대출을 상환하거나 이자를 내는 데 쓰는 가계대출자가 15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4일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말 기준 국내 가계대출자 1972만 명 중에서 157만 명(7.9%)이 연 평균 소득의 10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70%를 초과하는 가계대출자도 275만 명(13.9%)에 달했다. DSR은 1년간 갚아야 하는 대출 원리금이 소득과 비교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한 수치다. 일반적으로 DSR이 70%를 초과하면 소득에서 최저 생계비를 제외하고 원리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차주로 분류된다. 고금리 장기화 여파로 가계 빚 부담이 커지면서 돈을 벌어도 오히려 빚이 늘어나는 가계 비중이 큰 셈이다.빚 부담이 큰 취약 차주도 1년 만에 3만 명이나 늘었다. 취약 차주 가운데 DSR이 70%이상인 차주도 총 47만 명으로, 전체 취약차주(129만 명) 가운데 36%에 달했다. 취약차주는 3개 이상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 중에서 저소득(소득 하위 30% 미만)·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상태의 차주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국내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간 주식 대여 수수료율 격차가 21배 이상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자산운용사가 고객 몫의 상장지수펀드(ETF) 주식을 증권사에 헐값에 빌려주면서 증권사들은 손쉽게 이익을 올리는 반면 ETF 고객의 수익은 연평균 수백억 원 줄어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자산운용사·증권사 대여수수료 격차 21배 이상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게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자산운용사별 주식 대여금 상위 10개 상장사의 연평균 수수료율은 0.065%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증권사의 주식 대여금 상위 10개사 연평균 수수료율은 1.413%로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간 수수료율 격차는 21.7배에 달했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올해 상반기(1∼6월) 자산운용사들이 주식 대여를 통해 가장 수익을 많이 올린 종목은 삼성전자로, 평균 수수료율은 0.047%였다. 같은 기간 증권사의 삼성전자 주식 대여 수수료율은 0.279%로 수수료율 격차가 약 7배에 달한다. 에코프로(59배), 에코프로비엠(34배), 셀트리온(21배) 등의 경우 수십 배까지 격차를 보였다. 특히 고평가 논란 등으로 공매도 등의 타깃이 되는 종목들의 수수료 격차가 더 컸다. 지난해 바이오제약 업체인 HLB는 25배, 이차전지 업체 포스코DX는 무려 31배까지 났다. 2022년 신라젠(30배), 2021년에도 셀트리온제약(42배), 2020년 한진칼(35배) 등도 큰 격차를 보였다.● 자산운용사-증권사 ‘짬짜미 의혹’에 고객 손해 커져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증권사들이 자산운용사로부터 싸게 빌린 주식을 기관, 외국인 등에 더 높은 가격에 대여해주는 이른바 ‘주식 전전대’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자산운용사가 증권사와 비슷한 요율로 대여 수수료를 받았다면 300억 원 안팎의 수익을 더 올릴 수 있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주식 대여금 등은 ETF 상품의 순자산에 반영된다. 순자산이 늘어날 수록 ETF의 주가는 올라기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더 큰 매매 차익을 챙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증권사에 유리한 수수료의 배경에는 신규 ETF 상장 시스템이 자리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규 ETF의 상장을 위해서는 최소 70억 원어치의 판매가 필요한데, 증권사가 핵심 투자자(LP)로서 대부분의 자금을 대고 있다”며 “자산운용사가 ETF 보유 주식을 증권사에 싼값에 빌려주는 대신 증권사는 자산운용사가 신규로 출시하는 ETF를 사주면서 상부상조하고 있다”라고 했다. ‘짬짜미’ 거래 때문에 성장성이 떨어지는 ETF를 걸러내지 못하는 등 ETF 시장의 발전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거래소 관계자는 “2002년 ETF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이후 1071개의 ETF 상품이 상장됐는데, 상장에 실패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라고 말했다.수수료율 단순 비교는 무리라는 반박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여 규모와 시기에 따라 수수료율이 천차만별”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수수료율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신규 ETF가 인기가 없을 경우 증권사가 손실을 보게 되는데 이를 대비한 수익 보전 차원”이라고 했다. 강 의원은 “금융당국의 대응이 ETF 시장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금융사의 불공정 행위 의혹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면서 “당국의 관리감독 미흡이 일반 투자자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정감사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사모펀드 (PEF) MBK파트너스가 4일부터 영풍정밀 공개 매수가를 기존 2만5000원에서 3만 원으로 올린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6일 종료 예정이던 영풍정밀 공개매수 기간이 이달 14일까지로 연장된다. 앞서 영풍과 MBK는 지난달 13일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공개 매수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영풍정밀에 대해서도 주당 2만 원에 매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에는 공개 매수가를 2만5000원으로 올렸다. 그러나 이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2일부터 주당 3만 원에 대항 공개 매수에 나서자, MBK도 또 한번 가격을 상향 조정한 것이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의 지분 1.85%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경영권 싸움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영풍-MBK 연합과 최윤범 회장 측 모두 영풍정밀 공개 매수에 승부를 걸고 있다. MBK는 장형진 영풍 고문을 비롯한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 지분을 제외한 잔여 물량(지분 43.43%)을 전부 사들인다는 계획으로, 반면 최 회장 측은 25.0%를 공개 매수한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대학 입시제도에 대해 연일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논쟁의 불을 지피려는 모습이다. 그간 한은 총재들이 통화 정책이나 물가 관리에 집중한 것과 달리 지역 불균형, 농산물 수입, 교육 등 민감한 이슈에도 거침없이 발언에 나서며 이례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한은은 ‘한은사(寺)’라는 별명까지 붙을 만큼 조직 분위기가 조용하고 엄숙한 편이었다. 그간 한은을 이끌었던 수장들은 금리 등 전통적인 중앙은행의 업무 외에는 외부에 의견을 밝히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총재 부임 이후 한은의 조직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자신들의 전공 분야인 통화정책 외에도 ‘지역 불균형’, ‘차등 최저임금제 도입’, ‘농산물 수입 확대’ 관련 보고서를 내고 있다. 특히 8월 27일 한은이 ‘입시 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뒤에는 이 총재가 직접 국내 대학 입시와 관련한 발언을 이어오고 있다. 보고서 발표 당일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지역 비례 선발제’를 주장하면서 “서울대 교수님들께서 합의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강남 입시생의 대입 상한제’를 주장하더니, 30일 기획재정부와의 타운홀 미팅 직후에는 “성적순 대학 진학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이슈의 중심에 섰다.이 총재의 발언 배경을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의 구조개혁을 위해 논쟁이 필요하다는 이 총재의 평소 소신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대입 등 교육 문제가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을 비롯해 지역 불균형 발전, 저출생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판단해 직접 파격적인 제안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목을 집중시켜 논쟁이 번지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계산된 발언’이라는 얘기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내에 최대한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다. 이 총재는 한은에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더 강력한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의 임기는 2026년 4월로 1년 6개월 정도 남아 있다. 반면 이 총재의 거친 발언이 기준금리 인하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금리 인하 후 집값 급등이나 가계 부채 증가에 따른 비난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라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한은이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총재의 파격 행보가 조직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코앞에 둔 상황이라 한은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은이 중립적인 역할을 벗어나 다양한 정부 부처와의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한은 관계자는 “최근 한은의 행보가 자칫 조직의 독립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최근 통화 정책과 관련해서 대통령실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한은이 빌미를 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주가(상승)는 연금에만 기대선 안 된다. 연금보고 ‘주식 시장을 살리라’고 한다면 시장의 경쟁력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국 증시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시장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정부의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자본 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58)은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이나 기관의 자금력에만 의존하려는 현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김 이사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대로 자본 시장에서 주주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라면서도 “주가는 뭐니 뭐니 해도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올라가게 돼 있다. 실적이 좋으면 리스크에도 둔감해지는 반면 실적이 안 좋으면 리스크에 민감해져 주가는 더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지배구조 리스크 모두에 노출돼 있어 주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에 실적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시장 진출과 관련해서 김 이사장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 해볼 의향은 있다”고 밝혔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1∼2%대에 머물고 있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면 기업이나 개인이 금융사와 계약을 맺고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는 기존 ‘계약형’ 방식을, 국민연금 같은 별도 조직이 관리 및 투자하게 하는 ‘기금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에 진출해 민간 금융사들과 경쟁을 하게 되면 수수료는 낮추고 수익률은 높이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다만 우리가 기존 사업을 빼앗는다거나 시장을 독점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퇴직연금 제도에 가입하지 않았던 중소기업들도 국민연금이 들어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듯이, 퇴직연금 시장의 전체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4일 정부가 공개한 연금개혁안에 대해선 “5년 전에 했어야 할 연금개혁이 늦어지면서 국민이 져야 할 부담만 더 늘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5년마다 인구, 경제 전망 등을 기초로 향후 70년간 국민연금의 수입 및 지출 흐름을 점검하는 재정추계를 실시하는데,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은 채 지난해 새로 재정추계를 한 결과 5년 전 제4차 추계 때보다 적립배율 1배(70년 뒤인 2093년 그해 지출할 연금만큼의 적립금이 연초에 확보된 상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보험료율이 1.79%포인트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전 국민의 노후 자산을 책임지는 연금은 “기승전 ‘수익률’”이라고 말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설립 이후 역대 최고 수익률인 13.59%를 달성했다. 올 7월 말 기준 기금 운용 수익률은 9.88%로, 연간으로 환산하면 10%가 넘는다. 국민연금 기금 자산이 1000조 원을 넘어서면서 국민연금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글로벌 운용사 미국 뱅크오브뉴욕 멜론(BNY멜론)과 프랭클린템플턴,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 등이 이미 전주연락사무소를 개소했고, 글로벌 부동산투자회사 티시먼스파이어와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 역시 전주사무소 개소를 추진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기금 규모가 1000조 원을 넘어선 국민연금은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 정체된 조직이 아닌 나날이 커가는 조직으로서 앞으로 우리 자신을 계속 단련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신아형 기자 abro@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한국투자증권은 손익차등형 공모펀드와 대출담보부증권(CLO)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고객 이익을 높이고 국내 투자자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글로벌 상품에 투자하는 길을 넓히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투자금융그룹 계열사가 단독 출시한 손익차등형 펀드는 고객의 손실 가능성을 줄이는 한편 이익이 발생하면 고객에게 먼저 배정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공모펀드에 대한 고객 신뢰를 확보하고 경쟁력 있는 상품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 상품은 수익증권의 선순위 투자자로 고객을, 한국투자금융그룹 계열사를 후순위로 분류했다. 손실이 나더라도 일정 부분까지는 후순위 투자자인 한국투자금융그룹 계열사가 먼저 손실을 반영한다. 반대로 이익이 발생하면 고객 이익으로 먼저 배정하면서 고객 투자금의 안정성을 높였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도 ‘한국투자글로벌AI빅테크펀드’ ‘한국밸류AI혁신소부장펀드’ ‘한국투자삼성그룹성장테마펀드’ ‘한국밸류기업가치포커스펀드’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투자처를 찾지 못한 고객 자금을 성공적으로 끌어모았다. 이 펀드들은 설정 후 모두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양질의 자산을 찾아 국내 투자자들에게 공급하는 역할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중 하나인 칼라일그룹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사모 형태로 네 차례에 걸쳐 출시한 CLO 펀드가 대표적이다. 해당 펀드는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1332억 원을 모으기도 했다. CLO 펀드는 여러 기업의 담보대출을 한데 모은 것으로 대출이자 등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수익증권을 발행하는 구조화 상품이다. 200∼300개의 담보대출을 함께 담아 위험을 분산하고 신용보강을 통해 위험 요인을 줄일 수 있다는 평가다. CLO 펀드는 최근 20여 년간 다른 기업 부채 및 구조화 펀드에 비해 매우 낮은 부도율을 기록하고 있다. CLO는 국내보다는 주로 선진 금융시장 내에서 거래가 활발하다. 투자 주체들도 개인보다는 연기금·헤지펀드·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활발하다. 글로벌 CLO 시장 규모는 1100조 원에 달한다.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고도화된 상품을 국내에 공급하고 고객 중심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고객에게 안정적이고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세계시장에서 더 많은 기회를 탐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삼성생명이 올해 보험업계에서 가장 많은 5건의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면서 상품 개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삼성생명은 최근 ‘삼성 치매보험’ ‘삼성 다(多)모은 건강보험 필요한 보장만 쏙쏙S3’ ‘삼성 함께가는 요양보험’ 등이 생명보험협회 신상품심의위원회로부터 각각 6개월의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출시한 총 5개의 보험상품이 연이어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면서 기존 보험상품과의 차별성을 인정받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번 달에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받은 3개 상품은 새롭게 선보인 담보들의 독창성과 유용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 치매보험은 경도 인지장애와 최경증 치매 발생 시 치매 예방관리를 위한 ‘돌봄 로봇’을 제공하는 현물 특약 보장을 통해서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했다. 다(多)모은 건강보험 S3는 항암치료 후 중증 합병증뿐만 아니라 면역력과 골밀도 감소 등을 고려해 감염질환 및 골절까지 보장 영역을 확대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삼성 요양보험은 ‘장기요양지원특약’을 통해 요양 장소 및 기간에 대한 제한을 없애면서 초고령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삼성생명은 연금, 건강, 요양보험 등 보험상품 전반에 걸쳐 혁신을 도모하고 보장의 영역을 넓히는 데 힘쓰고 있다. 전담 개발 테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외부 관련 기관과 협업을 강화하는 등 1년 이상에 걸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이번 3건의 배타적 사용권 획득으로 혁신적 상품 개발을 위한 노력을 다시 인정받게 됐다”며 “앞으로도 기존 보험의 영역을 넘어 고객에게 유용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글로벌 증시가 인공지능(AI) 혁명에 주목하면서 반도체나 정보기술(IT), 클라우드 등 기술혁신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증권은 국내 투자자들에게 기술 진보를 통해서 상당한 이익을 얻는 전 세계 기업의 주식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는 ‘피델리티 글로벌테크놀로지 펀드’를 추천한다. 이 펀드는 2015년 6월에 최초 설정된 대표적인 테크 펀드로 전 세계 기술 기업 등에 투자하고 있다. 이달 초 기준 순자산은 3조7000억 원에 달한다. 피델리티 글로벌테크놀로지 펀드는 성장주를 비롯해서 경기 민감주, 특수 상황주 등 서로 다른 보상 특성을 지닌 100여 개 종목으로 구성됐다. 꾸준하면서도 안정적인 성장 전망을 가진 기업을 선별해서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핵심 투자 전략이다. 피델리티 글로벌테크놀로지 펀드는 포트폴리오 종목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구조적으로 봤을 때 장기적으로 승자가 될 수 있는 기업과 경기 사이클상 투자 기회가 있는 기업, 가격 조정 및 불일치로 인해 저평가된 종목을 바탕으로 구성한다. 펀드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미국 투자 비중이 약 58%로 가장 크다. 종목 중에서는 글로벌 빅테크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중이 5.9%로 가장 높다. 그다음으로 대만 기업이자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1위 업체인 TSMC,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애플 등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최근 반도체, 소프트웨어, 결제 처리 네트워크의 가격이 높아지면서 대형 테크 기업들의 현금 비중이 늘어났다. 앞으로 자본을 배분할 수 있는 역량이 커졌다는 점에서 고금리 시기에 우수한 장기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당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은 AI 장기 테마 측면에서 수혜가 예상되는 기업 중에서도 저평가된 종목을 선정하고 있다. 최근 월가를 중심으로 기술주 과열 논란이 커지고 있는 만큼 기업가치와 실적을 면밀히 고려해서 실적이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AI 관련 기업 등 유망한 기술주 종목에 투자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AI 테마 이외의 영역에서는 높은 수준의 재고를 가진 스마트폰, 네트워크 인프라 등 수요 회복 가능성이 있는 부문에도 투자하고 있다. 또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있는 중소 기술주 관련 기업에도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피델리티 글로벌테크놀로지 펀드는 최근 1년 동안 28.9%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최근 6개월 동안 9.3%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회사 측은 다른 IT 업종 관련 지수와 비교해 안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글로벌 IT 기업의 향후 성장 동력, 높은 가격 경쟁력 등을 토대로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접근할 때 좋은 투자 수단”이라고 설명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외국인투자가가 지난달부터 코스피에서만 10조 원 넘게 순매도하며 한국을 등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 기업들이 출현하지 않는 데다 정부가 올해 초부터 야심 차게 밀어붙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크게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 결과다. 코스피는 외국인들의 외면 속에 주요 20개국(G20) 증시 가운데서도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 외국인, 두 달 사이 10조 넘게 순매도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외국인투자가는 코스피에서만 5000억 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지난달(2조8682억 원)에 이어 이달 들어서도 외국인들이 7조6000억 원 넘게 주식을 팔아 치우면서,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10조 원 이상을 순매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했지만 외국인들의 매도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25일 코스피는 오히려 전날 대비 1.34% 내린 2,596.32에 마감했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올 7월까지만 해도 코스피에서만 총 24조 원 넘게 순매수하면서 국내 증시 상승을 이끌었다. 7월 한때 코스피가 2,900 선에 육박하기도 하면서 증권업계에서는 연내에 3,000 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달 5일 아시아 증시를 덮친 블랙먼데이 이후 외국인투자가 매도세로 돌아서면서 한국 증시는 맥을 못 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 구조가 외국인투자가들에게는 위험요소로 부각되며 한국 증시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AI 등의 수혜를 본 혁신 기업이 부족한 것도 국내 증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경기 침체 위기가 커지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외국인투자가들이 보수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반도체 업황 둔화 전망도 외국인투자가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달부터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가장 많이 판 종목은 삼성전자로 24일까지 9조1198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1조7737억 원어치를 팔아 치웠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외국인들이 반도체 관련주 위주로 팔고 있는데,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 비중이 크다 보니 외국인이 더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전했다. ● 올해 코스피 수익률 ―1.4%… G20 중 16위코스피의 부진은 올해 들어 상승세인 글로벌 증시와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코스피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24일 종가 기준 ―1.4%로 G20 가운데 16위에 머물고 있다. 아르헨티나 MERVAL지수(62.7%)와 튀르키예 ISE100지수(31.6%)가 1, 2위를 차지했다. 아시아권에서는 인도의 SENSEX가 17.5%로 4위에 올랐고 일본의 닛케이255(14.0%)도 6위를 차지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당분간 코스피 부진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의 반도체 수출 증가율이 꺾였고, 핵심 수출 품목인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반등이 내년 2분기(4∼6월)나 돼야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대학 입시에서 서울 강남 등 부유한 지역의 출신 학생들에 대한 ‘대학 입학 상한선’을 두자는 식의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지난달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을 주장한 데 이어 발언 수위를 더 높였다. 24일 이 총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강남 등지에서 벌어지는 입시 경쟁이 서울 등 수도권 집값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서울 강남에 몰려 있는 사교육 강사와 대학 입시 코치를 두고 부모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경쟁이 주택가격과 가계부채를 끌어올리고 지역 불평등과 지방 인구 감소를 가속화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입시제도가 한국의 잠재성장률 저하 등 구조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고도 지적했다. 이 총재는 “서울의 부자들은 6세 때부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 대학 진학을 준비시키고 여성 근로자들은 자녀 교육 때문에 집에 머물기로 결정한다”며 “이런 치열한 경쟁이 경제에도 해를 끼치고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계 지도자들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칭찬하지만 현실을 모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27일 한은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 진학이 결정된다면서, 대학의 신입생을 지역별 입시생 수에 비례해서 선발하자는 파격 제안을 한 바 있다. 이 총재가 입시와 관련해 발언 수위를 점차 높이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현행 입시 제도나 수도권 집중 현상에 대한 문제 의식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강남 등 특정 지역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은 내부에서도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통화 정책 수립과 물가 안정을 도모하는 한은의 설립 취지와는 이질적인 면이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은은 앞서 돌봄 서비스 최저임금 차등화, 과일·채소 수입 확대 주장을 내놓아 일각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지난달 기록적인 불볕더위 여파로 배추 가격이 한 달 전보다 70% 넘게 뛰었다. 김장에 쓰는 가을배추 재배 면적은 평년보다 4%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 벌써부터 김장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27일부터 중국산 배추 16t을 수입하기로 했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배추 생산자 물가는 7월보다 73.0% 상승했다. 부추(172.9%), 시금치(124.4%) 등도 큰 폭으로 뛰면서 전체 농산물 생산자 물가는 한 달 전보다 7.0% 올랐다. 이문희 한은 경제통계국 물가통계팀장은 “8월 채소류 가격 상승은 폭염과 추석을 앞두고 늘어난 수요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축산물도 소고기 가격이 11.1% 오르면서 전반적으로 4.2%가량 올랐다. 농산물, 축산물 등이 포함되는 농림수산품 생산자 물가는 6월까지 안정세를 보였지만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등 이상 기온으로 인해 7월부턴 오름세로 돌아섰다. 채소 가격이 폭등하면서 신선식품 가격이 9.7% 올랐고 식료품 가격도 2.5% 상승했다. 생산자 물가는 약 한 달 후 소비자 물가에 반영돼 서민들의 밥상 물가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가을배추 재배 면적도 줄어 배추 가격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가을배추 재배 면적이 1만2870㏊로 평년보다 4% 정도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1년 전과 비교해도 2% 줄어든 규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당분간 공급 부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가격 안정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27일부터 중국산 배추 16t을 수입하기로 했다. 정부가 중국산 배추를 수입하는 건 역대 5번째다. 수입 물량은 일반 가정이 아니라 외식 업체와 식자재 업체, 수출 김치 업체 등에 풀린다. 중국 산지 상황을 반영해 수입 물량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지만 중국 일부 지역도 배추 작황이 좋지 않아 대량 수입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배추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할당관세(0%)를 적용하고 있다. 또 농식품부는 유통업체에 장려금을 지원해 조기 출하를 유도하고 체감물가를 낮추기 위해 다음 달 2일까지 대형마트 등에서 최대 40%까지 할인을 지원하기로 했다. 배추뿐만 아니라 무 가격도 평년보다 비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날 무 한 개 소매가격은 4032원으로 평년보다 46.89% 올랐다. 폭염으로 작황이 부진해 공급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배추 대신 무를 찾는 수요까지 늘어 가격은 평년보다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농식품부는 무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농협의 출하 약정 물량 500t을 이달 말까지 도매 시장에 공급하도록 했다. 다만 크게 뛰었던 사과와 배 등 과일 가격은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농식품부는 홍로 품종 사과가 출하되면서 가격이 떨어지고 신고 품종 배 가격 역시 평년보다 낮게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세종=이호 기자 number2@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한국거래소가 국내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고 기업가치 우수기업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야심하게 준비해 온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공개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이 해당 지수에 포함된 가운데 증권업계는 11월 출시되는 밸류업 지수 관련 선물과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얼마나 많은 자금이 몰리는지에 따라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24일 한국거래소는 정부의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일환으로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국내 상장사 100종목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대형주를 비롯해 밸류업 조기 공시 특례 편입 상장사인 신한지주, 우리금융지주 등이 포함됐다. 거래소는 △시장대표성 △수익성 △주주환원 △시장평가 △자본효율성 등 5개 지표를 감안해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 등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최근 2년 연속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실시한 기업을 대상으로 했으며, 시가총액 순위 400위 이내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은 기업순으로 선정했다. 최근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2년 손익 합산 적자 기업은 제외됐다.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기업가치 우수기업과 조기 공시기업을 포함해 100종목으로 구성했다”라며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지표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라고 밝혔다. 거래소는 30일부터 실시간 지수 산출을 시작할 예정이며, 11월에는 지수 선물 및 ETF도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리스트에서는 시가총액 3위인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이차전지 종목이 대거 제외되면서 눈길을 끌었다. 밸류업 수혜 종목으로 지목됐던 4대 금융지주 중에서도 신한지주와 우리금융지주 등만 포함됐다. 증권업계에서는 밸류업 지수 발표에 따른 단기적인 증시 부양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밸류업 지수 관련 선물이나 ETF에 자금이 몰릴 경우 중장기적으로 국내 증시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조재운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연기금들이 밸류업 지수 관련 선물이나 ETF에 얼마나 투자할지가 관건”이라며 “밸류업 지수에 포함되기 위해 대형주들이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을 한다면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밸류업 지수에서 제외된 상장사를 중심으로 주가 하락 가능성도 제기됐다. 또 일각에서는 밸류업 지수에서 코스피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면서 “사실상 코스피 100”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밸류업 지수에서 코스피와 코스닥의 종목 수 비중은 67.0% 대 33.0%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미국발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훈풍에도 국내 반도체 관련주는 오히려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망 부진과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 악재가 겹쳤다. 국내 대표 반도체 종목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한 달간 시가총액만 100조 원 이상 증발하는 부진을 보였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467조4339억 원이었던 삼성전자의 시총은 이달 20일 기준 376조963억 원으로 한 달 만에 91조3376억 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시총도 140조2132억 원에서 114조3691억 원으로 25조8441억 원 줄었다. 두 종목의 시총 감소액은 117조1817억 원으로, 전체 코스피 시총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이 한 달 만에 증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부진은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부진 우려가 컸다. 스마트폰이나 PC 등 정보기술(IT) 장비의 수요 부진으로 1년간 상승했던 D램 가격이 내림세로 돌아서면서 반도체 관련 종목들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것이다.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퍼진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 추석 연휴 기간이던 15일 외국계 증권사인 모건스탠리가 반도체 업황 부진을 예고하는 리포트를 낸 것도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1월부터 글로벌 반도체 업황이 꺾일 것으로 전망하면서 SK하이닉스의 목표 주가를 26만 원에서 현재 주가보다 낮은 12만 원으로 낮췄다.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도 10만5000원에서 7만6000원으로 대폭 내려 잡았다. 국내 반도체 관련 종목들이 부진을 이어가면서 국내 증시도 빅컷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18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다고 발표한 뒤 이틀간 코스피 상승률은 0.70%에 그쳤다. 이웃 국가인 일본의 닛케이평균주가(3.69%)와 대만 자취안지수(2.22%) 상승률에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도 앞으로 국내 증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올해 7월까지 순매수를 이어오던 외국인 투자가들은 8월에 코스피에서만 2조8680억 원을 순매도하더니, 이번 달 들어 6조 원 넘게 팔아치웠다. 20일 기준 코스피의 외국인 투자 비중도 33.29%로 떨어지면서 2월 21일(33.28%)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줄었다. 국내 증시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를 비롯한 국내 증시에 대한 우려가 과도한 수준”이라며 “외국인 투자가들도 최근 차익 실현에 나섰지만 조만간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세계 경기는 올해 대비 더 나빠질 것”이라며 “국내 경제는 반도체 수출 부진과 내수 경기 침체로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18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했다. 0.25%포인트 인하에 그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을 넘어선 조치다. 미국이 4년 6개월 만에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단행하면서 조만간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가능성도 커지게 됐다.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성명을 통해 “미국의 기준금리를 4.75∼5.0%로 0.5%포인트 인하한다”고 밝혔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은 4년 6개월 만에 내려진 것이다. 연준은 2020년 3월 이후 0.25%(상단 기준)로 유지되던 기준금리를 2022년 3월 0.5%로 올리기 시작해 2023년 7월 5.5%까지 인상했고, 이를 1년 2개월째 유지해 왔다. 당초 시장에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내려야 할지, 아니면 0.5%포인트를 한꺼번에 인하해야 할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져 왔다. 이날 연준이 0.5%포인트의 ‘빅컷’을 결정한 것은 최근 빠르게 냉각되고 있는 미 고용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통화정책이 경제 흐름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대담한 길을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최근 2년여간 고수해 온 고금리 정책의 물줄기를 튼 셈이다. 연준은 이날 경제 전망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점으로 찍어 나타낸 도표)를 통해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을 4.4%로 예상했다. 앞으로 남은 11월과 12월 FOMC 회의에서 0.5%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시장에서는 연준이 큰 폭으로 금리를 내리면서 한은의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도 커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상당수 국가가 경기 침체 우려에 맞서 금리 인하에 나선 데다 연준마저 빅컷에 나서면서 글로벌 금리 인하 속도전에서 한은만 뒤처지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처음으로 한미 금리 격차가 역전된 이후 최대 2.0%포인트까지 벌어졌던 금리 격차도 1.5%포인트로 좁혀졌다. 그만큼 자본 이탈 우려가 줄어들며 한은의 금리 인하 여력이 생긴 셈이다. 경기 침체 예방을 위한 미국의 빅컷이 ‘호재’로 작용하며 아시아 증시는 상승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2.13%, 대만 자취안지수는 1.68% 올랐고 홍콩 지수도 2%가량 급등했다. 다만 코스피는 반도체 종목들의 부진으로 0.21% 상승하는 데 그쳤다.연준, 美고용 냉각에 ‘빅컷’ 처방… 연내 금리 0.5%P 추가인하 시사[美 4년반만에 금리 빅컷]고용증가 ‘완화’ → ‘둔화’ 표현 바꿔… 큰 폭 금리인하에 시장선 환호“경기침체 안심은 못해” 분석 나와… 파월 “빅컷 또 있을거라 생각 말라”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8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4.75∼5.0%로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한 것을 두고 연준이 고용지표가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선제 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의 고용지표 악화, 나아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을 반영한 조치라는 뜻이다.실제로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해 7월 3.5%에서 지난달 4.2%로 증가했다. 또 연말 실업률 전망도 4.4%로 올 6월 전망치(4.0%)보다 상승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고용에 대한 위험이 증가했고, 임금 상승률은 눈에 띄게 하락했다”며 “통화정책의 적절한 조정은 고용시장 강세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추가 금리 인하 있을 듯”연준은 금리 인하를 발표하며 경기 침체 우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파월 의장은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견고하다”고도 말했다.하지만 연준은 이날 성명에서 7월에 ‘고용 증가가 완화됐다(moderated)’고 썼던 표현을 ‘고용 증가가 둔화됐다(slowed)’로 바꾸는 등 고용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 올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도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우리는 (금리를 인하할 시점을) 기다렸고, 그 인내심이 큰 결실을 봤다”며 “정책을 더 적절하게 재조정할 때가 됐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그 과정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향후에 더 많은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란 점을 파월이 직접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은 경제 전망 요약(SEP) 점도표(dot plot·연준 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점으로 찍어 나타낸 도표)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연준이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을 4.4%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11월과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0.5%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으로 이런 규모의 빅컷은 생각하면 안 돼”다만, 파월 의장은 “정책 완화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앞으로도 이런 규모의 빅컷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며 “이전과 같은 마이너스 금리 시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연준의 FOMC가 통상적으로 만장일치로 금리를 결정했던 것과 달리, 이날은 위원 12명 가운데 베이비컷(0.25%포인트 인하)을 지지한 미셸 보먼을 제외한 11명만 빅컷에 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글로벌 컨설팅 기업 KPMG의 수석 경제학자인 다이앤 스웡크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파월이 보먼의 반대에도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한 건 그가 얼마나 빅컷을 원했는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선 7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실수’를 만회하고자 파월 의장이 빅컷에 더 적극적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시장은 여전히 경기 침체 우려연준의 빅컷 단행과 파월 의장의 미국 경제는 견고하다는 발언에도 18일 미 뉴욕 증시는 하락세로 장을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와 S&P500지수는 장중 한때 사상 최고치까지 오르기도 했으나 이후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다 결국 내림세로 돌아섰다.시장에선 이에 대해 경기 침체를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는 “큰 폭의 금리 인하는 발표 직후 큰 환호를 받았지만 결국 잠재적인 경기 약세에 대한 우려를 시장에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또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시장에 선반영됐고, 오히려 차익을 실현하려는 매물이 시장에 쏟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빅컷을 밀어붙인 이유는 수년간 미국 경제를 짓누른 인플레이션 위협은 한풀 꺾인 대신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경기 침체 우려에 맞서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도 더 늦기 전에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한국은행은 가계빚 폭증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모습이다. ● 주요국은 경기 침체 우려에 비상18일(현지 시간) 연준이 0.5%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은 그만큼 경기 침체 신호가 심상치 않아서다. 노동시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식어가는 분위기가 감지된 것이다. 미국의 8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은 전월보다 14만2000명 늘어나며 시장 예상치(16만4000명 증가)를 크게 밑돌았다. R의 공포에 휩싸인 곳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중국 역시 정부 주도로 경기 부양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소비·생산지표가 여전히 시장 전망치를 밑돌고 있다. 지난달 중국의 소매판매액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1% 늘어나는 데 그치며 전문가 예상치(2.5%)에 훨씬 못 미쳤다. 지난달 산업생산도 전년 대비 4.5% 증가하며 예상치(4.8%)를 밑돌았다. 하반기(7∼12월) 들어서도 중국 경제지표 부진이 이어지자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목표치(5%) 이하인 4.5∼4.9%로 낮춰 잡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9%에서 0.8%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는 원자재 시장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세계 경기의 바로미터로 일컬어지는 구리 가격도 최고점 대비 20% 넘게 하락했다. 글로벌 곳곳에서 경기 침체 ‘경고등’이 켜지자 JP모건은 이달 초 올해 안에 세계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을 기존 25%에서 35%까지 상향 조정했다. 주요국의 경기 둔화는 내수 부진 속에서도 수출로 버티고 있는 한국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이다. 이미 2분기(4∼6월) 한국 경제는 1년 6개월 만에 역성장(―0.2%)을 기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민간소비와 투자 부문의 부진이 이어진 결과였다. ● 한은, 금리 결정 두고 딜레마 빠져연준의 금리 빅컷으로 한은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 금리 격차가 1.5%포인트로 줄어든 만큼 한은이 금리를 내려도 자본 이탈 등 시장 변동 가능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은도 19일 시장점검회의를 열고 “연준의 금리 인하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내심 금리 인하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대통령실은 8월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직후 “내수 진작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언급했다. 최상목 부총리도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을 계기로 글로벌 복합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이라며 “내수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기준 물가 상승률이 2%를 나타내는 등 ‘물가 안정’이라는 조건도 충족됐다. 다만 수도권 집값 급등과 가계부채 폭증은 여전히 금리 인하를 머뭇거리게 하는 불안 요소로 꼽히고 있다. 자칫 금리를 서둘러 내렸다가 부동산 및 금융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의 금리 인하 시기가 늦은 만큼 당장 인하에 돌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을 더 체크한 뒤 금리 인하를 단행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금리 수준이 높지 않은 만큼 정부의 대출 규제 효과를 보고 대응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주식·채권·펀드 등 금융투자를 통해 실현된 모든 소득에 종합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장기화되며 자본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시행(내년 1월 1일)을 불과 3개월여 앞두고도 방향이 결정되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코스피가 부진한 가운데 금투세가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며 국내 증시 성장을 막는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권 줄다리기 4년에도 결론 안 나금투세는 주식과 펀드 등 금융투자에서 발생한 소득 중 5000만 원을 초과(해외 주식은 250만 원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22%에서 27.5%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는 세제다. 금투세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정 소득세법은 유예기간을 거쳐 2025년 1월 1일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올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기획재정부가 올해 7월 금투세 폐지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다시금 ‘뜨거운 감자’가 됐다. 당초 ‘금투세 폐지 반대’를 당론으로 주장하던 더불어민주당은 당내에서 금투세 유예를 요구하는 입장이 나타나면서 이달 24일 토론회를 열어 당론을 확정할 방침이다. 금투세 시행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은 2년 전에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2020년 12월 문재인 정부 당시 금투세 도입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정부·여당이 2년 유예를 추진하고 야당이 이에 동의하면서 2025년 1월 1일로 시행 시점이 미뤄졌다. 장기화된 금투세 논란의 최대 쟁점은 금투세가 과연 우리 증시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줄 것이냐 여부다. 금투세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과세 대상자가 1% 안팎으로 일부에 불과해 시장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반면 금투세 시행 시 국내 증시에서 고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본보가 국내 증권사 소속 프라이빗뱅커(PB) 및 세무사 1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4.9%가 “금투세 도입 시 고액 자산가들이 국내 증시 비중을 줄이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금투세 도입 이후 고액 자산가들이 국내 증시 비중을 얼마나 줄일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는 ‘20∼30%’라고 응답한 인원이 21.3%로 가장 많았다. ● 국내 증시 짓누르는 금투세 리스크 금투세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면서 찬반을 떠나 이에 대한 지루한 공방이 한국 증시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견도 높아지고 있다. 금투세를 둘러싸고 도입, 유예, 폐지 등으로 메시지가 바뀌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투세 시행을 대비하고 있는 증권사, 은행 등에서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금투세는 금융사가 정부를 대신해 투자자 세금을 원천 징수해야 하기 때문에 시행에 앞서 관련 전산 시스템 등을 갖춰야 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투세 시행이 예고됐던 2년 전에도 시스템을 구축하다가 유예되며 사업이 중단된 적이 있다”며 “시스템을 갖추는 데 많게는 수십억 원이 드는데, 이번에도 시행 여부가 불투명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금투세 시행 여부가 결정되지 않고 2년 전처럼 다시 한번 유예되는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바라본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투세 시행을 다시 유예할 거라면 차라리 폐지하고 원점에서 논의하는 게 낫다”며 “금투세 논의가 바람직한 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막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백지화하고 다시 합리적인 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는 것”이라며 “금투세 시행이 다시 한번 유예될 경우 늘어난 기간만큼 우리 증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한양학원과 KCGI가 한양증권의 인수합병(M&A) 본계약 체결 일정을 한 주 더 미뤘다. 가격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 거래 무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13일 한양증권은 자사의 M&A 본계약 체결일이 20일까지 연기됐다고 공시했다. 한양증권 매도자인 한양학원과 우선협상대상자인 KCGI는 인수 가격을 두고 협상을 펼쳤으나 합의하지 못하고 결국 거래일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앞선 지난달 2일 한양학원은 KCGI에 한양증권 지분 29.6%를 주당 6만5000원, 총 2449억 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계약 체결 예상일은 지난 6일이었지만, KCGI의 자금조달 지연과 가격 협상 등을 이유로 한 주 더 연장키로 했다. 하지만 가격 협상 등에서 이견을 보이면서 양측은 또 한 주 더 협상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KCGI 측은 이번 주계약 종결을 자신했지만 한 번 더 거래가 연장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특히 KCGI의 가격 인하 요구를 한양학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거래가 추가적으로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양측이 가격을 두고 평행선을 달릴 경우 거래가 무산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