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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중심가에서 테베레강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왼쪽으로 높이 50m 정도의 언덕 몬테 테스타치오가 눈에 들어온다. 19세기 초 이곳을 방문한 작가 스탕달은 일요일마다 와인과 춤이 함께하는 유쾌한 축제에 대해 썼다. 이 언덕의 기원은 서울 월드컵공원과 비슷하다. 몬테 테스타치오는 고대 로마인들의 쓰레기장이었던 것이다. 독일 경제사회사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곧 쓰레기의 역사와 다름없다. 이 책은 문명이 발생한 후 오늘날까지 인간이 지구에 배출해온 쓰레기의 역사와 인간에게 쓰레기가 되돌려준 영향들을 추적한다. 몬테 테스타치오를 이룬 쓰레기는 대부분 도자기 파편이다. 나무를 비롯한 유기물은 거의 모두 썩어 없어졌다. 이와 달리 먼 훗날의 문명은 현재 오늘날의 우리가 남긴 지층을 ‘플라스틱층’이라고 부를지 모른다. 인류가 내놓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일 에펠탑 100개 무게에 달한다. 이 쓰레기는 도시 외곽으로, 나아가 쓰레기 수출을 통해 저개발 국가로 ‘밀쳐진다’. 플라스틱 더미가 태평양 위에 만든 쓰레기 섬의 면적도 해마다 넓어진다. 근대 이전에는 자원의 재활용률이 높아 쓰레기도 적었다. 음식 쓰레기는 퇴비로 활용됐고 입을 수 없는 옷은 천이 들어가는 모든 종류의 물건으로 재사용되다가 종이 원료가 됐다. 산업혁명은 상품의 수와 양만 늘린 게 아니라 물자의 재활용도 크게 줄였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늘어난 쓰레기는 해충과 쥐를 비롯한 위생 문제를 일으켰고, 특히 19세기 유럽에서 콜레라의 대유행은 쓰레기 수거 형태에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개인들이 알아서 배출하던 쓰레기를 1880년대경에는 도시 정부, ‘시청’이 수거해 가기 시작했다. 1890년대엔 곳곳에 매립지가 건설됐고 많은 곳이 움푹 파인 채석장 부지였다. 식민 제국의 정부들은 쓰레기 수거로 인한 위생 개선을 침략의 정당성으로 포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쓰레기 더미를 흙으로 덮고 중장비로 누르는 ‘위생 매립’이 대세가 되었다. 해충 같은 문제는 줄었지만 어떤 지역도 매립지를 반기지 않는다. 도시에서 멀고 인구가 적은 곳일수록 반발을 줄일 수 있었지만 너무 먼 곳에 둘 수는 없었다. 1960년대부터는 캔과 비닐 포장이 급증했다. 1990년대까지 30년간 미국 가정 쓰레기 중 플라스틱의 무게는 0.5%에서 8.5%로 늘었고 부피는 25%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회용 기저귀 같은 새 상품이 계속 등장하면서 인간이 내놓는 쓰레기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1980년대 말부터 위성에서는 대양 위 거대한 쓰레기 섬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 쓰레기들을 처리할 방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저자는 인류가 쓰레기를 떨쳐 버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소각해도, 매립해도, 재가공해도 결국 오염이라는 형태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쓰레기를 밀어만 내고 있는 것이다.” 물건을 택배로 받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 우리는 거대 국제 쓰레기 공장의 공범이 된다. 인류가 사는 방식 자체를 다시 검토하는 수밖에 없다. “물자 부족이라는 문제가 해소되면서 새로운 부족이 드러났다. 파괴되지 않은 건강한 자연의 부족이다. 쓰레기 양을 감소시키는 것은 일상을 비싸고 불편하고 느리게 만든다. 하지만 과거의 방법으로는 쓰레기를 감소시킬 수 없다. 이러한 깨달음만으로도 큰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저자의 유일한 권고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선 2년마다 ‘투란도트’를 공연하는데 항상 체피렐리 연출판을 무대에 올립니다. 늘 ‘다른 연출의 투란도트라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죠.”10월 12∼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KSPO돔)에서 공연되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현장 연출을 맡은 오페라 연출가 스테파노 트레스피디는 이렇게 전했다.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투란도트’ 제작발표회에는 그와 이번 공연 제작을 맡은 솔오페라단의 이소영 단장, 에밀리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 미켈라 린다 마그리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장, 투란도트 역으로 출연하는 소프라노 전여진이 참석했다. 2019년부터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 부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인 트레스피디 연출은 “내가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아레나 디 베로나의 오페라를 한국에 가져오는 게 첫 번째 뜻깊은 일이지만 전설적 연출가 프랑코 체피렐리(1923∼2019)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도 내게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로 살던 내 인생을 바꾼 게 1995년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그를 만난 일이었죠. 한국 관객들도 이번 공연을 ‘입을 벌린 채’ 감동해서 보시게 될 겁니다.” 영화감독 겸 오페라 연출가였던 체피렐리는 198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의뢰로 무대 바닥의 십자 장식과 주인공 투란도트의 푸른 옷이 특징인 ‘투란도트’를 선보였다. 이 체피렐리판 투란도트는 첫 공연부터 격찬을 받은 뒤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기념 문화행사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이탈리아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투란도트’도 체피렐리 연출판을 사용했다. 트레스피디 연출은 “체피렐리는 연출가에 그치지 않고 무대 미술과 조명 등 무대 전체를 진행하고 운영했다”고 전했다.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그가 비제 ‘카르멘’ 무대를 설치하는 걸 봤는데, 다리가 불편했던 체피렐리는 45m 높이의 꼭대기를 올려다보다 ‘나를 저기 올려달라’고 말하는 거예요. 결국 올라가서 모든 무대를 하나하나 칠하셨죠.” 이번 공연은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 음악감독인 다니엘 오렌이 지휘를 맡고 소프라노 올가 마슬로바, 옥사나 디카, 전여진이 타이틀롤인 투란도트 공주로, 테너 마르틴 뮐레와 아르투로 차콘 크루스가 칼라프 왕자 역을 노래한다. 전여진은 “올해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에서 ‘투란도트’를 노래하기로 캐스팅되어 6월까지 연습을 마쳤는데 몸에 이상이 생겨 출연하지 못했다. 아쉬웠는데 이번 뜻깊은 아레나 디 베로나의 한국 합작 공연에 출연하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했다. 가토 대사와 마그리 문화원장은 “올해는 푸치니 서거 100주년이자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다. 이런 뜻깊은 행사를 통해 양국 국민이 서로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게 되길 바라며 한국의 오페라도 이탈리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자주 공연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축제에선 2년마다 ‘투란도트’를 공연하는데 항상 체피렐리 연출판을 무대에 올립니다. 늘 ‘다른 연출의 투란도트라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죠.”10월 12~19일 서울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KSPO돔)에서 공연되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현장 연출을 맡은 오페라 연출가 스테파노 트레스피디는 이렇게 전했다. 2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투란도트’ 제작발표회에는 그와 이번 공연 제작을 맡은 솔오페라단의 이소영 단장, 에밀리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 미켈라 린다 마그리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장, 투란도트 역으로 출연하는 소프라노 전여진이 참석했다.2019년부터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 부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인 트레스피디 연출은 “내가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아레나 디 베로나의 오페라를 한국에 가져오는 게 첫 번째 뜻 깊은 일이지만 전설적 연출가 프랑코 체피렐리(1923~2019)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도 내게 뜻 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로 살던 내 인생을 바꾼 게 1995년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그를 만난 일이었죠. 한국 관객들도 이번 공연을 ‘입을 벌린 채’ 감동해서 보시게 될 겁니다.”영화감독 겸 오페라 연출가였던 프랑코 체피렐리는 198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의뢰로 무대 바닥의 십자 장식과 주인공 투란도트의 푸른 옷이 특징인 ‘투란도트’를 선보였다. 이 체피렐리판 투란도트는 첫 공연부터 격찬을 받은 뒤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기념 문화행사로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이탈리아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투란도트’도 체피렐리 연출판을 사용했다.트레스피디 연출은 “체피렐리는 연출가에 그치지 않고 무대 미술과 조명 등 무대 전체를 진행하고 운영했다”고 전했다.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그가 비제 ‘카르멘’ 무대를 설치하는 걸 봤는데, 다리가 불편했던 체피렐리는 45m 높이의 꼭대기를 올려다보다 ‘나를 저기 올려달라’고 말하는 거예요. 결국 올라가서 모든 무대를 하나하나 칠하셨죠.”이번 공연은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 음악감독인 다니엘 오렌이 지휘를 맡고 소프라노 올가 마슬로바, 옥사나 디카, 전여진이 타이틀롤인 투란도트 공주로, 테너 마틴 뮐레와 아르투로 차콘 크루즈가 칼라프 왕자 역을 노래한다. 전여진은 “올해 아레나 디 베로나 축제에서 ‘투란도트’를 노래하기로 캐스팅되어 6월까지 연습을 마쳤는데 몸에 이상이 생겨 출연하지 못했다. 아쉬웠는데 이번 뜻 깊은 아레나 디 베로나의 한국 합작 공연에 출연하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했다. 가토 대사와 마그리 문화원장은 “올해는 푸치니 서거 100주년이자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다. 이런 뜻 깊은 행사를 통해 양국 국민이 서로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 바라며 한국의 오페라도 이탈리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자주 공연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올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 수석지휘자로 취임한 이탈리아계 영국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 경이 LSO를 이끌고 내한한다. LSO는 경쟁이 치열한 영국 오케스트라 가운데서도 영국을 넘어 베를린 필, 로열 콘세트르헤바우 오케스트라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실력을 인정받는 악단으로 꼽힌다. 파파노 경은 2002년부터 올해까지 런던 로열오페라 음악감독으로, 2005∼2023년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재직한 바 있다.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한 인터뷰에서 LSO에는 일종의 ‘감정지능’이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악단의 특징을 소개하신다면…. “1996년 푸치니 오페라 ‘제비’를 녹음하면서 처음 LSO를 만났죠. 비트를 주자 오케스트라가 활력과 위풍당당함으로 폭발하던 모습을 잊지 못해요. 페라리를 타고 가속 페달을 밟은 느낌이었습니다. LSO는 연습 중 몇 마디 말만으로도 복잡하고 깊고 인간적인 음악이 탄생합니다. 앞으로 LSO의 교육 활동에도 힘을 쏟고자 합니다. 영상과 소리를 결합하는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해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파파노 경은 2018년 당시 음악감독을 맡고 있던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 바 있다. 이번 내한에서 그는 10월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피아니스트 유자 왕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말러 교향곡 1번을 메인곡으로 들려준다. 3일 롯데콘서트홀 공연에서는 유자 왕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하며 파이프오르간과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맞추는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이 메인곡이다. ―피아니스트 유자 왕에 대한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유자 왕은 특별한 아우라와 개성을 갖고 있죠. 화려한 의상으로 유명하지만 외적인 모습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음악에 헌신적이고, 철저히 준비하며 풍부한 감정을 가진 음악가예요. 스스로를 끊임없이 시험해왔다는 점에서 동료 음악가로서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9월에 발간된 자서전 ‘음악 속의 나의 삶(My life in music)’에서 클래식은 새로운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콘서트는 감각적으로 체험돼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깊숙이 와 닿는 경험을 제공해야 하죠.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청중이 ‘이런 엄청난 음악을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고, 그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번 공연에는 올해 1월 한국인 최초 LSO 종신 단원이자 아시아인 최초 LSO 더블베이스 종신 단원으로 임용된 더블베이스 연주자 임채문(28)이 참여한다. 그는 “LSO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강렬한 사운드와 모두가 하나 되는 호흡이 큰 장점”이라고 밝히며 “파파노 경은 오랫동안 오페라를 지휘한 경험 때문인지 노래하듯 연주하는 걸 중시한다. 한계를 뛰어넘는 숨 막히는 사운드를 만들어 낼 때는 감탄이 나온다”고 말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가톨릭평화방송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사회 장일범·연출 김민영)이 방송 4주년을 맞아 26일 오후7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기념음악회를 연다.1부에서는 피아노 듀오와 첼로 앙상블 등을 연주하고 2부에서는 탱고음악과 우리 가곡, 오페라 아리아 등 친근한 클래식 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박종해 김재원, 소프라노 김순영 이해원, 테너 김현수, 베이스바리톤 길병민, 탱고 4중주단인 고상지 콰르텟, 타악기 합주단인 퍼커션 플러스, 첼로 합주단 조이풀 첼로스가 출연한다.2020년 8월 방송을 시작한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월~토요일 오전 10시~12시)은 다양한 형태의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한편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와 공연 전문가들을 출연시키면서 친근하고 전문적인 해설로 인기를 끌어 왔다. 전석 무료. 02-2270-2306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음악가라면 그런 생각을 하죠. ‘세상에 음악가가 많은데 내 음악의 의미는 뭘까’라는. 슈베르트조차 ‘베토벤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음악을 하는 게 맞나’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런 슈베르트가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피아니스트 원재연(36)에게 올가을의 선택은 슈베르트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 메인곡으로 그는 슈베르트의 유작인 마지막 3대 피아노소나타 중 두 번째인 20번 D.959를 택했다. 전반부에는 미뉴엣 A장조와 ‘세 개의 피아노 소품’ D 946 등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연주한다. “베토벤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고민한 슈베르트였지만 베토벤에게 묻히지 않고 연주되는 데는 자기만의 순수함이나 단순함 같은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 한 음악학자는 ‘슈베르트가 베토벤을 넘는 곳이 있다면 20번 소나타 4악장 론도’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곡은 원재연이 어린 시절부터 끌린 곡이었다. “이 곡을 중심으로 슈베르트의 성격이나 인생을 언젠가 풀어보려 해요. 피아니스트 아르카디 볼로도스도 이 곡을 오랫동안 연주했고 저도 실황 연주로 네 번 정도 봤거든요. 이 곡에 대한 꿈 같은 게 늘 있었어요.” ‘세 개의 피아노 소품’도 슈베르트의 순수함을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냥 들을 때는 이런 쉬운 곡이 있나 싶어요.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역의 민요를 그냥 옮긴 듯한 느낌이죠. 그런데 악보를 보면 단순하지 않거든요.” 그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연주자가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작곡가다. “음표를 잇는 법이나 셈여림 같은 지시가 악보에 많이 있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가 재창조하며 관객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면이 베토벤보다 많고, 그만큼 어렵습니다.” 원재연은 최근 지휘라는 새 영역에 도전했다. 지난달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12번과 23번을 직접 지휘하고 피아노 독주도 했다. 그는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것, 새로운 걸 찾아 할 수 있는 건 어렵지만 축복받은 일”이라며 “솔직히 말해 피아노 연주보다 훨씬 재미있고 행복했다. (지휘에) 중독돼 있는 상태”라고 고백했다. 음반 소식도 있다. 그는 “베를린의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유명 엔지니어 마틴 자우어의 엔지니어링으로 앨범을 녹음했다”고 귀띔했다. 새 음반은 내년 오닉스 레이블로 발매될 예정이다. 레퍼토리에 대해서 그는 “나오면 알게 될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음악가라면 그런 생각을 하죠. ‘세상에 음악가가 많은데 내 음악의 의미는 뭘까’라는. 슈베르트조차 ‘베토벤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음악을 하는 게 맞나’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런 슈베르트가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피아니스트 원재연(36)에게 올 가을의 선택은 슈베르트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 메인곡으로 그는 슈베르트의 유작인 마지막 3대 피아노소나타 중 두 번째인 20번 D.959를 택했다. 전반부에는 미뉴엣 A장조와 ‘세 개의 피아노 소품’ D 946 등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연주한다.“베토벤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고민한 슈베르트였지만 베토벤에 묻히지 않고 연주되는 데는 자기만의 순수함이나 단순함 같은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 한 음악학자는 ‘슈베르트가 베토벤을 넘는 곳이 있다면 20번 소나타 4악장 론도’라고 말했다고 합니다.”이 곡은 원재연이 어린 시절부터 끌린 곡이었다. “이 곡을 중심으로 슈베르트의 성격이나 인생을 언젠가 풀어보려 해요. 피아니스트 아르카디 볼로도스도 이 곡을 오랫동안 연주했고 저도 실황 연주로 네 번 정도 봤거든요. 이 곡에 대한 꿈같은 게 늘 있었어요.”‘세 개의 피아노 소품’도 슈베르트의 순수함을 잘 보여주는 곡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냥 들을 때는 이런 쉬운 곡이 있나 싶어요.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역의 민요를 그냥 옮긴 듯한 느낌이죠. 그런데 악보를 보면 단순하지 않거든요.” 그에 따르면 슈베르트는 연주자가 해석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작곡가다. “음표를 잇는 법이나 셈여림 같은 지시가 악보에 많이 있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가 재창조하며 관객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면이 베토벤보다 많고, 그만큼 어렵습니다.”원재연은 최근 지휘라는 새 영역에 도전했다. 지난달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12번과 23번을 직접 지휘하고 피아노 독주도 했다. 그는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것, 새로운 걸 찾아 할 수 있는 건 어렵지만 축복받은 일”이라며 “솔직히 말해 피아노 연주보다 훨씬 재미있고 행복했다. (지휘에) 중독돼 있는 상태”라고 고백했다.음반 소식도 있다. 그는 “베를린의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유명 엔지니어 마틴 자우어의 엔지니어링으로 앨범을 녹음했다”고 귀띔했다. 새 음반은 내년 오닉스 레이블로 발매될 예정이다. 레퍼토리에 대해서는 그는 “나오면 알게 될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올해 우리는 기록적인 여름을 경험했다. 한국만이 아니다. 8월 초 찾은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도 35도를 넘는 더위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한밤중 열리는 야외 오페라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부채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런 형태의 여름밤 야외 행사가 미래에도 계속될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들었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중부 유럽은 유례없는 가뭄에 이어 9월 들어 폭풍 ‘보리스’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위기에 처한 지구를 위해 음악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연주자들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화석 연료를 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치아 코파친스카야는 2018년 ‘변화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기후위기 문제를 담은 콘서트를 열었고 수익금은 환경단체에 기부했다. 그는 대륙 내 이동에서는 가능한 한 비행기를 타지 않고 열차로만 다닐 수 있도록 일정을 짠다.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미국 산림 보존 단체 ‘아메리칸 포리스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2020년 화재로 황폐화한 오리건주의 숲 복원 자금을 지원했다. 악단 측은 “숲 복원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나무가 자라면서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투어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악단은 투어 중 화물량을 20% 줄이고 가능한 경우 기차로 운송하며 음악가들이 재사용 가능한 물병을 사용하도록 권장한다.미국 오케스트라 연맹은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 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이 연맹의 부회장 헤더 누난은 “지구 온난화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종을 보전하는 데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현악기 활에 사용되는 아마존 페르남부쿠 목재의 멸종 위기를 상기시키는 ‘노 유어 보(Know Your Bow)’ 캠페인을벌였다.유니버설뮤직, 소니뮤직, 워너뮤직 등 음반 업계의 주요 기업들은 2021년 ‘음악 기후 협정’에 서명하고 2년 뒤인 2023년에는 음악산업 기후 단체(MICC·Music Industry Climate Collective)를 공동 설립했다. 참여 기업들은 2030년까지 음반 등 제품 제조, 유통, 라이선스 등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50% 이하로 줄이고 205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 0%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나라에서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을까. 작곡가 이승규는 재활용 쓰레기로 만든 악기로 ‘업사이클 뮤직’이라는 새 장르를 열고 있다. 2022년 그는 버려진 농약 분무기로 만든 ‘유니크 첼로’와 레고 블록으로 만든 바이올린 등 업사이클(재생) 현악기를 공개했다. 그는 재두루미, 쇠똥구리, 북극곰 등 멸종위기 동물을 표현한 ‘잃어버린 동물의 사육제’를 작곡했으며 첼리스트 4명으로 모인 ‘유니크 첼로 콰르텟’을 구성해 업사이클 악기로 전국에서 공연하고 있다.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음악으로 경고하는 것은 이미 낯익은 일이다. ‘사계 2050’은 디지털 마케팅 회사 아카(AKQA)가 2021년 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세계 지역별 기후변화 데이터를 비발디의 ‘사계’ 원곡에 적용해 인공지능(AI)이 편곡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우리나라의 서울 대전을 비롯해 6개 대륙 14개 도시에서 공연됐다.존 루서 애덤스의 관현악곡 ‘비컴 오션(Become Ocean·2013년)’과 키런 브런트의 ‘떠오르는 바다 교향곡’(2020년)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을 경고한 작품들이다. 첼리스트 겸 작곡가 대니얼 크로퍼드는 2013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구 표면 온도 데이터를 첼로의 세 옥타브 음역에 적용했다. 각각의 음표는 1880년부터 2012년까지의 연도를 나타내고, 기온이 0.03도 오를수록 반음이 높아진다. 이렇게 만든 악보는 첼로곡 ‘온난화하는 행성의 노래’가 됐다.이탈리아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2016년 6월 17일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부근의 빙하 위에 그랜드 피아노를 설치해 ‘북극을 위한 비가’를 연주했다. 공연하는 동안 빙하에서 갈라진 큰 얼음덩어리가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는 800만 명의 지지를 이끌어 낸 그린피스의 북극 보호 운동을 환기한 행사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빌딩 숲 사이의 바쁜 일상 속에서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가 없었던가. 타는 햇살과 빗줄기에 시달려 하늘 한 번 쳐다보기 싫었던가. 올 것 같지 않던 가을이 한 발짝 더 곁으로 다가왔다. 모처럼 여유를 갖고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연휴도 찾아왔다. 탁 트인 곳으로 나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자. 머리 위에 어떤 구름이 있을까? 가장 친근하고 ‘인기 있는’ 구름은 쌘구름(적운)이다. 솜뭉치 같은 구름이 하나하나 떨어진 상태로 떠 있다. 밑면은 펑퍼짐하고 위쪽은 꽃양배추처럼 볼록 솟아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태평스러운 구름이다. 새털구름(권운)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름이다. 구름으로서는 가장 높은 곳, 항공기 비행 고도에 있는 이 구름은 헝클어진 하얀 머리카락 다발을 길게 빗어 넘긴 것 같다. 쌘비구름(적란운)은 ‘구름계의 록스타’다. 키가 가장 크고, 엄청난 비를 내린다. 커지면 수영장 1만 개 분량의 물을 머금는다. 우박을 내리기도, 번개와 천둥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래도 멀리서 보면 거대한 버섯처럼 예쁘다. 구름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사람은 19세기 영국의 약사이자 기상학자인 루크 하워드였다. 오늘날 구름은 그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열 가지 운형(雲形)에 따라 분류된다. 구름의 입자가 물방울일 때는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얼음일 때는 매끈하다. 여기 소개하는 두 책 모두 열 가지 운형의 특징과 삿갓구름, 물결구름, 벌집구름 등 특별한 경우에 생기는 구름들을 상세히 설명하는 점은 같다. ‘구름관찰자를 위한 그림책’은 자기 전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한 그림책만은 아니다. 어른들도 충분히 도움을 받을 만한 상세한 ‘구름 정보’들을 담았다. 파스텔화로 표현한 구름들이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각 구름의 성격들을 나타내 보인다.‘다 읽은 순간 하늘이 아름답게 보이는 구름 이야기’의 저자는 일본 기상청 기상연구소의 연구관이다. 구름과 날씨만 생각하는 그의 일상은 때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아침 식탁에 오른 된장국부터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다. 국물에서 수증기가 공급되고, 수증기가 포화 상태가 되고 응결하면 물방울이 형성되면서 흰빛을 띤다. 국에서 올라오는 김이다. “보세요, 구름이 형성되는 것과 똑같죠.” 된장국을 그릇에 부은 뒤 들여다보면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흐름이 보인다. “온도 차 때문에 열대류가 발생하는 거죠. 된장국은 하늘의 모형입니다.” 그에게 하늘은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다. 기상학을 알면 그 즐거움을 더 선명히 즐길 수 있다. 아이스라테를 마시면서는 적란운의 하강 기류를 발견하고, 뜨거운 라테를 마실 때는 엘니뇨의 소용돌이 원리를 알 수 있다. ‘비행기에서 즐길 수 있는 구름 종류’ 등 ‘하늘 마니아’를 위한 정보들도 쏠쏠하게 제공한다. 평생 기상을 연구해 온 저자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구름은 대기 중의 미립자인 에어로졸을 핵으로 해서 발생한다. 그런데 에어로졸이 구름의 형성에 미치는 명확한 과정도, 에어로졸이 어디에 얼마나 존재하고 어떻게 변동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이 평생 몸담아 온 일기예보의 불확실성에 대한 변명까지 담은 얘기다. 저런, 옆 나라 기상청도 ‘자주 틀린다’는 눈총을 받기는 우리와 매한가지인가 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지휘자로 활동 영역을 넓혀 온 그리스의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57)가 내년 롯데콘서트홀의 ‘클래식 레볼루션’ 예술감독으로 축제를 이끈다. 내년 8월 말에서 9월까지 열리는 제6회 ‘클래식 레볼루션’은 독일 바로크 음악의 완성자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와 구소련을 대표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작품을 집중 소개할 예정이다. 카바코스는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 피날레 무대인 11일 콘서트에서 사오치아 뤼 지휘 KBS교향악단과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했고 앙코르로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3악장을 연주했다.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바흐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은 자유나 사랑 등 우리가 바라는 가치들의 창문을 열어 줄 수 있는 음악”이라며 “두 사람의 곡을 함께 들을 경우 두 작곡가가 한층 특별하게 들릴 수 있다”고 소개했다. 쇼스타코비치는 1950년 러시아 피아니스트 타티야나 니콜라예바가 라이프치히 바흐 콩쿠르에서 연주한 바흐의 건반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아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작곡하는 등 바흐의 음악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흐는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음악을 창조했죠. 신과의 대화가 음악으로 이뤄졌습니다. 반면 쇼스타코비치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을 배경으로 음악을 썼죠. 소련 체제로 인한 우울함일 수도 있고 인간의 미성숙함 자체가 빚어내는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음악을 통해 시대의 문제를 극복할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축제를 통해 관객이나 젊은 음악가들과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공연 외 마스터클래스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관객과 만나거나 토론하는 자리도 만들고 싶습니다. 음악에 있어서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는 바이올리니스트에서 지휘로 활동 영역을 넓힌 것도 연주가들과 생각을 나누는 ‘상호작용’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카바코스는 1985년 시벨리우스 국제콩쿠르, 1988년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91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협주곡 초연 버전을 세계 최초로 녹음해 BIS 레이블로 발매하면서 화제가 됐다. 2011년 리카르도 샤이 지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드보르자크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고 2013, 2020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 등 한국 무대에 자주 서 왔다. 지휘자로서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예술감독을 지냈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랑스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했다.2018년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롯데콘서트홀에서 가진 내한공연에서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등의 솔로를 맡는 한편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등을 지휘하며 지휘자로서의 면모를 전했다. 그는 “여러 차례 롯데콘서트홀에 서면서 건축적이나 기능적, 음향적인 면, 운영 등에서 훌륭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멋진 곳에서 축제를 열 수 있게 돼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첫해인 2020년부터 독일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바이올린 교육가, 지휘자인 크리스토프 포펜이, 2023년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클라리네티스트이자 지휘자인 안드레아스 오텐자머가 예술감독을 맡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동아일보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LG와 함께하는 제19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피아노 부문)’ 1차 예선 경연에 참가할 7개국 32명이 가려졌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10, 11일 열린 참가자 제출 영상 예비심사에는 주희성 서울대 교수, 김진욱 한양대 교수, 조지현 단국대 교수, 최경아 가천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손민수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는 일정상 별도로 영상을 심사했다. 심사위원들은 16개국 140명의 지원자가 제출한 연주 영상을 보며 예선 출전 가능 여부를 ○×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채점한 뒤 합산해 예비심사 합격자를 정했다. 합격자 32명의 국적은 한국이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 4명, 미국 2명, 일본 2명, 러시아 2명, 체코 1명, 터키 1명 등이다. 심사위원들은 “여느 해보다 독자적인 개성을 갖추고 특징 있는 연주를 펼친 지원자가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중국 지원자들의 기량 발전이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예비심사 합격자들은 12월 1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 종합문화관에서 열리는 1차 예선에 참가한다. 예비심사 결과는 13일 콩쿠르 홈페이지에 공지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제8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본선 경연이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종합문화관에서 4, 5일 열렸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서울교대와 라율아트홀이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중·고등부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부문으로 치러졌다. 8월 26∼28일 예선을 거친 48명이 본선에 올라 각 부문 1위 7명 등 29명이 수상했다. 중등부 각 부문 최상위 입상자는 서울 서초구 라율아트홀(대표 최연우·바이올리니스트)이 선정하는 라율인재상을 함께 수상하며 라율아트홀이 제공하는 무료 독주회 특전을 받는다. 중등부 첼로 부문에서 1위에 입상한 김지우 양(13·예원학교 1년)은 올해 라율 영재&영아티스트 오디션에 합격해 5월 독주회를 연 바 있다. 본선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 4악장을 연주한 그는 “곡이 기교적으로 요구하는 면들을 담아내면서 느낀 벅찬 감동까지 표현하려 했다”며 “한 가지씩 차분하게 풀어 나가면서 계속 노력하는 첼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9일 오후부터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juniormusic)에서 채점표를 확인할 수 있다. 심사평도 함께 게재된다. 다음은 입상자 명단. ◇고등부 ▽피아노 △1위 신은원(17·서울예고 2년) △3위 윤채원(17·서울예고 2년) ▽바이올린 △1위 이예솔(16·홈스쿨링) △2위 김현정(16·서울예고 1년) △3위 박시후(16·서울예고 2년) ▽첼로 △2위 소아림(18·서울예고 3년) △3위 이원영(17·선화예고 3년) ▽플루트 △2위 성상민(16·선화예고 1년) △3위 박루린(17·선화예고 3년) ◇중등부 ▽피아노 △2위 이연송(15·부산예중 3년) △3위 정해인(14·예원학교 2년) ▽바이올린 △2위 김동휘(15·전주예중 3년) △3위 김다비(15·예원학교 3년) ▽첼로 △1위 김지우 △2위 김규리(14·예원학교 3년) △3위 최성현(14·예원학교 3년) ▽플루트 △1위 유지우(15·예원학교 3년) △2위 박지인(15·예원학교 3년) △3위 김진(14·예원학교 2년) ◇초등부 ▽피아노 △2위 김하민(11·예일초 5년) ▽바이올린 △1위 박제인(12·낙생초 6년) △2위 백수현(11·대치초 5년) △3위 김서윤(12·서울도성초 6년) ▽첼로 △1위 장세인(11·봉은초 6년) △2위 홍서영(11·계성초 6년) △3위 고채원(11·내발산초 6년) ▽플루트 △1위 박혜륜(11·인천송천초 6년) △2위 주가원(12·인천부평동초 6년) △3위 이재아(11·언북초 6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첼리스트 이정현(33·사진)이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명문 커티스 음악원 첼로 교수로 임용됐다. 국제무대에서 ‘크리스틴 정현 리’로 활동해 온 그는 최근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로 종신 단원으로 임용돼 경사가 겹친 셈이다. 이정현은 커티스 음악원에서 학사를,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플로브디프 콩쿠르, 윤이상 국제콩쿠르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크론베르크 실내악 축제와 말버러 페스티벌, 여수 ECO 국제음악제 등 국내외 무대에서 활동해 왔다. 5일 전화로 만난 이정현은 “어제 첫 수업을 했다”며 즐거워했다. “열 살 때 처음 미국에 와서 수업을 들었던 제 모교거든요. 은사이신 피터 와일리 교수님이 ‘동료가 되었으니 피터라고 불러라’라고 하시더군요.” 그는 “커티스 음악원에 오면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전했다. “캠퍼스부터 고풍스러운 건물들이에요. 학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원하면 피아노 교수님의 실내악 레슨도 받을 수 있고 성악 레슨까지도 받을 수 있죠. 교수들이 연주가로도 대단한 분들이어서 그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도 일찍이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로 단원으로 임용되기 전 그는 1년간의 트라이얼(수습) 기간을 거쳤다. 정식 종신 단원으로 임용되면서는 ‘50년 만의 여성 첼로 단원이자 최초의 동양 여성 단원’으로 화제가 됐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특유의 밀도 높은 소리가 매력적이에요. 20세기 초반 스트라빈스키나 버르토크 같은 대작곡가의 곡을 많이 위촉 초연해서 이들의 곡에는 특히 자부심을 가진 악단입니다.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가 매우 온화하고 세심하게 연습을 이끌어 나가죠.” 이정현은 2022년부터 현악 4중주단 ‘모나 콰르텟’ 첼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교단과 오케스트라, 실내악, 독주 활동까지 모두 가능할까. “모나 콰르텟은 유럽이 본거지여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죠. 최근 저 대신 새 첼리스트를 뽑았어요. 제가 실내악을 매우 좋아하는데 다행히 커티스 안에서 교수진끼리 다양한 실내악 활동이 가능하죠. 다양한 활동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아가려 합니다.” 그는 국내 무대에 최소한 1년에 두세 번은 서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큰 목표 중 하나는 ‘첼로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배운 게 있다면 꿈을 크게 꾸는 것이었고, 꿈을 크게 꾸면 도움을 받게 되더라고요. 첼로와 음악을 통해 인종 등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첼리스트 이정현(33)이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명문 커티스 음악원 첼로 교수로 임용됐다. 국제무대에서 ‘크리스틴 정현 리’로 활동해온 그는 최근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로 종신 단원으로 임용돼 경사가 겹친 셈이다. 이정현은 커티스 음악원에서 학사를,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플로브디프 콩쿠르, 윤이상 국제콩쿠르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크론베르크 실내악 축제와 말보로 페스티벌, 여수 ECO 국제음악제 등 국내외 무대에서 활동해 왔다.5일 전화로 만난 이정현은 “어제 첫 수업을 했다”며 즐거워했다. “열 살 때 처음 미국에 와서 수업을 들었던 제 모교거든요. 은사이신 피터 와일리 교수님이 ‘동료가 되었으니 피터라고 불러라’고 하시더군요. ”그는 “커티스 음악원에 오면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전했다. “캠퍼스부터 고풍스러운 건물들이에요. 학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원하면 피아노 교수님의 실내악 레슨도 받을 수 있고 성악 레슨까지도 받을 수 있죠. 교수들이 연주가로도 대단한 분이어서 그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도 일찍이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로 단원으로 임용되기 전 그는 1년간의 트라이얼(수습)기간을 거쳤다. 정식 종신 단원으로 임용되면서는 ‘50년 만의 여성 첼로 단원이자 최초의 동양 여성 단원’으로 화제가 됐다.“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특유의 밀도 높은 소리가 매력적이에요. 20세기 초반 스트라빈스키나 버르토크 같은 대작곡가의 곡을 많이 위촉 초연해서 이들의 곡에는 특히 자부심을 가진 악단입니다.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가 매우 온화하고 세심하게 연습을 이끌어나가죠.”이정현은 2022년부터 현악 4중주단 ‘모나 콰르텟’ 첼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교단과 오케스트라, 실내악, 독주 활동까지 모두 가능할까. “모나 콰르텟은 유럽이 본거지여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죠. 최근 저 대신 새 첼리스트를 뽑았어요. 제가 실내악을 매우 좋아하는데 다행히 커티스 안에서 교수진끼리 다양한 실내악 활동이 가능하죠. 다양한 활동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아가려 합니다.” 그는 국내 무대에 최소한 1년에 두세 번 이상은 서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그의 큰 목표 중 하나는 ‘첼로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배운 게 있다면 꿈을 크게 꾸는 것이었고, 꿈을 크게 꾸면 도움을 받게 되더라구요. 첼로와 음악을 통해 인종 등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보헤미아는 오늘날의 체코 서부를 뜻하는 지명이죠. 하지만 ‘보헤미안’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방랑자들과 자유로운 예술혼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작곡가 손일훈(34)이 마포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9회 M 클래식축제 ‘보헤미아의 숲에서’ 예술감독을 맡았다. M 클래식 축제는 국내 기초 지방자치단체 주최 클래식 축제로는 예외적으로 8년 동안 480여 회 공연을 통해 아티스트 6000여 명이 참여하고 관객 66만 명을 동원했다. 올해는 지난달 31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린 ‘모던가곡 I’을 시작으로 12월 10일까지 총 22개 공연을 마련했다. 이 축제에 예술감독이 위촉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마포문화재단의 요청을 받아 두 차례 ‘보헤미아의 숲에서’라는 제목의 공연을 제작했죠. 전석 매진됐고, 당시의 호응이 올해 M 클래식축제 ‘보헤미아의 숲에서’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번 축제에서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은 여섯 차례 열리는 실내악 시리즈 ‘보헤미아의 숲에서’다. 축제 제목과 시리즈 제목이 같다. 피아니스트 박종해, 플루티스트 조성현, 호르니스트 김홍박 등 출연자들을 그가 섭외했고 선곡도 출연자들과 함께 하나하나 공을 들였다. 10월 23일 시리즈 네 번째 콘서트 ‘림(林)’에는 정가 조윤영 등 국악인들이 출연해 음악을 통한 동과 서의 만남을 선보인다. 10월 29일 ‘아시아 피아노 트리오’에는 중국 바이올리니스트 장팅슈오, 일본 피아니스트 오사다 유스케가 한국 첼리스트 이호찬과 호흡을 맞춘다. “‘보헤미아의 숲에서’는 본디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작곡한 피아노 연탄곡 제목이죠. 그중 ‘고요한 숲’이라는 곡이 특히 유명합니다. 야나체크, 라이하, 마르티누, 수크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보헤미아의 풍광과 정신을 음악에 담아냈어요. 그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시간이 될 겁니다.” 10월 18일 열리는 교향악 시리즈 메인 콘서트 프로그램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권민석 지휘 M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1번과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바이올린 이재형, 첼로 채훈선 협연으로 연주한다. 손일훈은 “이중 협주곡은 브람스 특유의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라는 보헤미안적 정신을 구현한 곡이다. 말러 교향곡 1번도 초기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선율들이 들어 있는 만큼 방랑하는 보헤미안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 재학 시절 작곡 교수 얀 판더퓌터와 함께 피아노를 치면서 공부한 손때 묻은 피아노 연탄용 악보를 펼쳐 보였다. 손일훈은 헤이그 왕립음악원 석사와 최고과정을 마쳤다. 10인조 실내악 연주단체 클럽M의 상주 작곡가이며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음악극 ‘숨’ 작곡을 맡는 등 작곡가와 기획자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올해 M 클래식축제에서는 개막 공연인 8월 31일 ‘모던가곡 I’ 콘서트에서 그가 나태주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소망’을 바리톤 양준모가 노래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이아고에게는 손수건이 있었지, 내게는 부채가 있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1900년) 1막에 나오는 악당 스카르피아의 노래 일부다. 이아고는 17세기 초에 초연된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오셀로’를 바탕으로 한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1887년)를 서울 예술의전당이 8월 18∼25일 공연하고 이어 서울시오페라단이 이달 5∼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푸치니 ‘토스카’를 올림으로써 서울의 오페라 팬들은 오페라 역사상의 두 대표 악한들을 잇달아 만나게 되었다. 왜 손수건이고 왜 부채일까? ‘오텔로’에서 베네치아 장군 오텔로의 부하 이아고는 여주인공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이용해 주군 오텔로를 질투와 파멸로 이끈다. ‘토스카’에서 로마 경시총감 스카르피아는 늘 성당에 나와 기도하는 아타반티 부인의 부채를 미끼로 삼아 여주인공 토스카의 질투를 유발하고 그에게 덫을 놓는다. 두 악당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토스카’의 1막 성당 장면에 나오는 테데움(찬미가)에서 스카르피아는 거룩한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토스카, 너는 내가 신도 잊게 만드는구나”라며 여인에 대한 불붙는 욕망을 토로한다. 그에게 악행은 욕구를 배설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편 ‘오텔로’에 나오는 노래 ‘크레도’(신앙고백)에서 이아고는 “나를 자신과 닮게 창조한 잔혹한 신을 믿노라”라고 노래한다. “씨앗이나 사악한 원자의 비겁함으로부터 나는 비열하게 태어났다. 인간이기에 악당이 되었고 내 안에 깃든 원초적인 더러움을 느낀다. 맞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이런 이아고에게 악(惡)이란 수단이라기보다는 행동 원칙이자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살면서 이런 인물을 만나기 쉬울까? 두 오페라 모두 소름 끼칠 정도로 긴박하고 극적이며, 두 작품에 나오는 음악도 팽팽하게 폭발하기 직전의 긴장과 그 밖의 아름다움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악당이 빚어내는 인물의 현실성에 있어서는 푸치니와 그의 대본 작가 자코사·일리카, 원작자 사르두가 만들어낸 스카르피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베르디의 ‘오텔로’에 형상화된 이아고를 함부로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아고의 노래 ‘크레도’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없다. 오페라의 대본을 썼고 스스로 작곡가이기도 했던 아리고 보이토가 창작해 대본에 집어넣은 노래다. 보이토는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메피스토펠레’(1868년)에서 주인공 메피스토펠레스를 통해 악마의 전형을 창조한 바 있다. 그가 21세 때인 1863년에 쓴 시 ‘이원론(二元論·dualism)’은 선악을 동시에 가진 인간의 본성을 다뤘다. 말하자면 이 오페라의 대본 작가는 당대 대표 ‘악(惡) 전문 사상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악행 대부분은 악 자체를 숭상하고 찬양하는 악의 화신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못 이겨 남의 희생 따위는 깔아뭉개는 인간들에 의해 집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지금까지 살며 만났던 크고 작은 악인들을 떠올려 보면, 역시 그렇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에서 악당 스카르피아는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양준모가 노래한다. 사무엘 윤은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는 인간이 갖는 악한 감정의 극한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할 때마다 내 몸 안에 이렇게 어둡고 악한 에너지가 있다는 걸 느끼며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스카르피아가 남주인공 카바라도시의 처형을 지시하는 장면에서 ‘예전에 했던 것처럼’이라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사람은 늘 그런 방식으로 욕망을 해소해 왔어요. ‘능숙한 잔인함’을 보여줘야 하죠. 오페라의 수많은 빌런(악당) 역 중에 이렇게 잘 표현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악에 자신을 바치고 악의 추구 자체에 가치를 두는 이아고,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악행을 거듭하는 스카르피아,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일까. 두 오페라를 관람하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하지만 분쟁이 있을 때 상대방을 ‘타협할 수 없는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나와 비슷한 인간’으로 보면 문제가 더 잘 풀려 나갔다. 그것이 지상의 악에 대한 나의 작은 믿음의 고백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오텔로’ 이아고와 ‘토스카’ 스카르피아, 누가 진짜 악당인가“이아고에게는 손수건이 있었지, 내게는 부채가 있다.”푸치니 오페라 ‘토스카’(1900) 1막에 나오는 악당 스카르피아의 노래 일부다. 이아고는 17세기 초에 초연된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오셀로’를 바탕으로 한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1887)를 서울 예술의전당이 8월 18~25일 공연하고 이어 서울시오페라단이 이달 5~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푸치니 ‘토스카’를 올림으로써 서울의 오페라 팬들은 오페라 역사상의 두 대표 악한들을 잇달아 만나게 되었다.왜 손수건이고 왜 부채일까? ‘오텔로’에서 베네치아 장군 오텔로의 부하 이아고는 여주인공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이용해 주군 오텔로를 질투와 파멸로 이끈다. ‘토스카’에서 로마 경시총감 스카르피아는 늘 성당에 나와 기도하는 아타반티 부인의 부채를 미끼로 삼아 여주인공 토스카의 질투를 유발하고 그에게 덫을 놓는다.두 악당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토스카’의 1막 성당 장면에 나오는 테데움(찬미가)에서 스카르피아는 거룩한 성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토스카, 너는 내가 신도 잊게 만드는구나”라며 여인에 대한 불붙는 욕망을 토로한다. 그에게 악행은 욕구를 배설하기 위한 수단이다.한편 ‘오텔로’에 나오는 노래 ‘크레도’(신앙고백)에서 이아고는 “나를 자신과 닮게 창조한 잔혹한 신을 믿노라”라고 노래한다. “씨앗이나 사악한 원자의 비겁함으로부터 나는 비열하게 태어났다. 인간이기에 악당이 되었고 내 안에 깃든 원초적인 더러움을 느낀다. 맞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이런 이아고에게 악(惡)이란 수단이라기보다는 행동 원칙이자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이다.살면서 이런 인물을 만나기 쉬울까? 두 오페라 모두 소름 끼칠 정도로 긴박하고 극적이며, 두 작품에 나오는 음악도 팽팽하게 폭발하기 직전의 긴장과 그 밖의 아름다움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악당이 빚어내는 인물의 현실성에 있어서는 푸치니와 그의 대본 작가 자코사·일리카, 원작자 사르두가 만들어낸 스카르피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베르디의 ‘오텔로’에 형상화된 이아고를 함부로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아고의 노래 ‘크레도’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없다. 오페라의 대본을 썼고 스스로 작곡가이기도 했던 아리고 보이토가 창작해 대본에 집어넣은 노래다. 보이토는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메피스토펠레’(1868)에서 주인공 메피스토펠레스를 통해 악마의 전형을 창조한 바 있다. 그가 21세 때인 1863년에 쓴 시 ‘이원론(二元論·dualism)’은 선악을 동시에 가진 인간의 본성을 다뤘다.말하자면 이 오페라의 대본 작가는 당대 대표 ‘악(惡) 전문 사상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악행 대부분은 악 자체를 숭상하고 찬양하는 악의 화신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못 이겨 남의 희생 따위는 깔아뭉개는 인간들에 의해 집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지금까지 살며 만났던 크고 작은 악인들을 떠올려보면, 역시 그렇다.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에서 악당 스카르피아는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양준모가 노래한다. 사무엘 윤은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는 인간이 갖는 악한 감정의 극한을 표현한 오페라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할 때마다 내 몸 안에 이렇게 어둡고 악한 에너지가 있다는 걸 느끼며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스카르피아가 남주인공 카바라도시의 처형을 지시하는 장면에서 ‘예전에 했던 것처럼’이라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사람은 늘 그런 방식으로 욕망을 해소해 왔어요. ‘능숙한 잔인함’을 보여줘야 하죠. 오페라의 수많은 빌런(악당) 역 중에 이렇게 잘 표현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악에 자신을 바치고 악의 추구 자체에 가치를 두는 이아고,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악행을 거듭하는 스카르피아,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일까. 두 오페라를 관람하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하지만 분쟁이 있을 때 상대방을 ‘타협할 수 없는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나와 비슷한 인간’으로 보면 문제가 더 잘 풀려나갔다. 그것이 지상의 악에 대한 나의 작은 믿음의 고백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오페라 ‘토스카’에서 여주인공 토스카는 극 중 오페라 가수죠. 이 작품에 출연할 때면 저 자신을 연기하는 것 같아서 더 특별한 느낌이 듭니다.” 루마니아 출신 오페라 스타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59)가 서울시오페라단이 5∼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 출연한다. 게오르규는 2002년 당시 남편이었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의 듀오 무대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한국 무대를 찾았으며 2012년에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정명훈 지휘로 열린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에서 미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베로나 야외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등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소프라노 임세경이 나란히 토스카 역을 맡는다. 지난달 3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에서 열린 ‘토스카’ 제작발표회에서 게오르규는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한국에서 이 오페라에 참여하게 돼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다. “제 조국 루마니아와 ‘토스카’는 남다른 인연이 있어요. 1900년 이 오페라가 로마에서 초연될 때 루마니아 소프라노 하리클레아 다르클레가 토스카 역을 노래했고, 2막의 유명한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푸치니가 다르클레의 요구에 따라 작곡해 넣은 곡이거든요.” 그는 “푸치니는 여성의 특징과 성격, 열정과 질투 등 모든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가장 잘 묘사한 작곡가”라며 “‘토스카’는 특히 원작의 긴 내용을 줄이고 24시간 이내 진행되는 사건에 극적으로 집중해 더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게오르규는 베누아 자코 감독의 2001년 영화판 ‘토스카’에 출연해 열정적인 연기로 격찬을 받은 바 있다. 게오르규는 “어제 임세경 씨의 노래를 들었는데 환상적인 목소리에 놀랐다”고 전했다. 임세경은 “홀수 날짜 출연진과 짝수 날짜 출연진의 개성이 너무나 다르다. 청중이 두 출연진을 비교하며 들어볼 수 있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을 맡은 표현진 연출가는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무대를 펼쳐낼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오페라는 1800년 나폴레옹 전쟁이 배경이죠. 1막이 열리면 신성한 공간인 성당이 파괴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전쟁의 공포 속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토스카의 연인인 화가 카바라도시 역에는 테너 김재형과 김영우, 악당인 스카르피아 역에는 바리톤 사무엘 윤과 양준모 등 유럽 주요 무대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해온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사무엘 윤은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 ‘토스카’ 공연에 게오르규와 함께 출연한 바 있다. 제작발표회에서 3막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열창한 김영우는 “올해만 유럽 등에서 ‘토스카’에 50여 회 출연하게 되는데 서울시오페라단 공연은 30회째 정도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반주는 부천시립교향악단이 맡으며 울름 시립극장 수석지휘자를 지낸 지중배가 지휘한다. 지중배는 “‘토스카’에 나타난 인물들은 허구이지만 실제 역사적인 사실이 상세히 담겨 있어 인물들에게 공감이 된다. (임세경이 소개한 것처럼) 두 팀의 색깔이 크게 달라 한 팀만 관람하면 정말 후회될 수 있다”고 말했다. 5일 오후 7시 반, 8일 오후 5시에는 게오르규, 김재형, 사무엘 윤이, 6일 오후 7시 반, 7일 오후 5시에는 임세경, 김영우, 양준모가 무대에 오른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군인 10명이 적군 15명을 물리치고 4명의 사상자를 낸다고 생각해 보자. 15 나누기 4는 3.75이므로 승리한 군대의 투지가 3.75배 크다고 할 수 있다.” 작가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다양한 역사적 단위를 방정식에 적용하면 특정 법칙이 존재해야 하고, 일련의 숫자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문학과 수학은 얼핏 만나는 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시는 일종의 영감을 받은 수학으로 인간 감정의 방정식을 묘사한다’(에즈라 파운드)같은 말을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2020년부터 3년 동안 영국수학사학회 회장을 지낸 저자는 “수학이 문학적 비유를 사용하듯 문학에도 수학자의 눈으로 간파하고 탐구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고 소개한다. 책에 나오는 수학적 개념 모두가 톨스토이의 ‘투지 방정식’처럼 쉽게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쓰는 동기가 된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는 화자(話者) 이슈메일이 말하는 곡선 ‘사이클로이드’가 나온다. “냄비 속의 비눗돌을 보면서 나는 사이클로이드를 따라 미끄러지는 모든 물체가 정확히 같은 시간에 어느 지점에서 내려올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사이클로이드란 원을 직선 위에서 굴렸을 때 원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곡선을 말한다. 이 개념은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나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에도 등장한다. 걸리버는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에서 사이클로이드 모양으로 자른 푸딩을 먹는다. 3부로 구성된 책의 1부는 시의 운율 등 문학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수학을 탐구한다. 압운(押韻)과 음보(音步)가 있는 서구 시의 경우 수많은 조합의 형식이 가능하다. 레몽 크노가 1961년 발표한 ‘100조(兆) 편의 시’엔 14행으로 된 10개의 소네트(짧은 시의 일종)가 실려 있다. 각각의 행을 임의로 조합해 읽으면 10의 14제곱, 즉 100조 편의 시가 나올 수 있다. 만약 저자가 한국 전통 문학을 탐구했다면 ‘3-4-3-4(…)’의 음수율을 기본으로 하는 시조에 대해 언급했을 듯하다. 2부에서는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수학적 은유와 암시들이 소개된다. 단테 ‘신곡’의 연옥편과 천국편은 33개 장으로 돼 있지만 지옥편만은 34개 장으로 되어 있다. 3은 ‘성삼위일체’와 연관된 숫자로 여겨졌으며 이를 깨뜨린 것은 지옥의 상징이 된다. 수학자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엔 42개 삽화가 있고 앨리스의 나이는 7세 6개월, 7과 6을 곱하면 42가 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체스 게임 여왕의 나이는 날짜로 환산해 3만7044일인데 이는 42의 세제곱을 2로 나눈 것이다. 3부는 수학과 수학자가 직접 등장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에 나오는 악당 모리아티는 수학자다. 수학적인 지적 능력에서 홈즈와 동등하기 때문에 함께 폭포에서 떨어져 죽는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는 ‘너무 많은 행복’에서 주인공인 수학자 코발렙스카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수학을 건조하고 메마른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영혼의 시인이 되지 않고는 수학자가 될 수 없어.” 2023년 나온 이 책의 원제는 ‘Once upon a prime’이다. ‘옛날 옛적에’를 뜻하는 ‘Once upon a time’을 살짝 비튼 것으로 ‘prime’은 수학에서 소수(素數)를 뜻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현악기와 피아니스트의 듀오 연주는 ‘기술적으로’ 어느 쪽이 비중이 크다고 하기 힘들다. 고전주의 이전의 현악 소나타는 ‘첼로(또는 바이올린)가 딸린 피아노 소나타’로 흔히 표기되기도 했을 정도로 피아노의 역할은 크다. 그런데도 듀오 리사이틀에는 흔히 ‘○○○ 첼로(바이올린) 리사이틀’이라는 제목이 붙기 일쑤다. 9월 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 오르는 첼리스트 이원해(33)와 피아니스트 최형록(31)은 ‘이원해 & 최형록 듀오 리사이틀 로맨틱 로드’를 제목으로 내세웠다. 23일 화상으로 만난 두 사람 중 이원해는 “프로그램을 정할 때 피아니스트의 비중이 큰 곡들이라고 느꼈다.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같은 조명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두 사람은 슈만의 환상소곡집 작품 73과 쇼팽의 첼로 소나타 G단조,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G단조를 연주한다. ‘로맨틱 로드’라는 리사이틀 제목 그대로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낭만주의 감성이 전해지는 선곡이다. 의외로 이원해는 “학창 시절에는 감성적인 음악이 편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게 어려웠고 현대곡이 더 편했죠. 이번 공연에서는 감정 표현에서도 더 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는 각각 두 작곡가의 유일한 첼로 소나타다. 쇼팽의 소나타는 그가 생전에 출판한 마지막 작품이며, 피아노곡에 몰두했던 이 작곡가가 드물게 현악기를 사용한 작품이기도 하다. 최형록은 “세 곡 모두 피아노의 비중이 높다. 소리의 층을 섬세하게 구분해서 더 잘 들려야 하는 소리와 조금 덜 들리게 해야 하는 소리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해는 프랑스 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 첼로 부수석을 지냈고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의 첼로 연주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형록은 일본 센다이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했으며 독일 뮌스터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에서 명교사 아르눌프 폰 아르님을 사사하고 있다. 누나인 가수 최해든(최효인)과 2인조 그룹 ‘블리쉬 녹턴’으로 활동하는 특이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악기 소개를 부탁하자 이원해는 “1715년산 마테오 고프릴러 첼로를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저음은 파고드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나고, 고음은 크고 울림이 좋은 홀에선 걷잡을 수 없이 좋은 소리가 납니다. 이번에 연주할 IBK챔버홀은 악기와 홀이 서로를 잘 받는 것 같아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