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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내가 먹는 사탕을 아주 멀리서 살고 있는 누군가가 포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도로 세계화된 경제 시스템에서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속에 놓인 사람의 몸, 노동의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조명한 미카 로텐버그의 개인전 ‘노 노즈 노우즈(No Nose Knows)’가 23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개막한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로텐버그가 20여 년간 작업해 온 대표 영상과 설치,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의 출발은 로텐버그가 대학원생일 때 만든 초기 작품 ‘메리의 체리’다. 좁은 공간에서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서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작은 구멍으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체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은 유쾌하며 우스꽝스럽게 그린다. 이 작품은 이어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노 노즈 노우즈(NoNoseKnows)’로 이어지는데, 백인 여성이 재채기를 하면서 음식을 만들어내는 영상과 중국에서 진주가 생산되는 과정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영상이 전시된 장소 입구에는 플라스틱 바구니 속에 진주가 놓여 있는데, 이렇게 최종 결과물로 생산된 진주는 반짝이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장소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흙투성이의 맨바닥이다. 상품은 우아하지만 그렇지 못한 제작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작가는 세계의 수많은 자원을 한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현대사회 경제의 이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로텐버그의 작품만이 가진 강점은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발랄한 색감과 재치가 가미된 스토리다. 21일 기자들을 만난 로텐버그는 “세상에 대해 비평할 수 있지만 너무 진지하게 힘을 줘서 명령하듯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유머는 작가로서 나름의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전시장에는 긴 손톱이 달린 채 벽면에서 회전하는 조각 작품 ‘손가락’이나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영상을 연상케 하는 ‘스파게티 블록체인’ 같은 작품도 볼 수 있다. 작가는 대규모 상품 유통 과정을 역설적으로 묘사한 ‘코스믹 제너레이터’를 꼭 봐야 할 대표 작품으로 꼽았다. 전시는 내년 3월 2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 서초구 멀버리힐스(MULBERRY HILLS) 빌딩 안의 갤러리와 전시장에서 국제적 감각의 청년 작품들이 모인 비엔날레가 열린다. 12월 24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리는 2024년 ‘서울청년비엔날레’가 그것. 이 비엔날레 전시는 멀버리힐스 9개 전시관, 갤러리 앨리 6개 전시관, 그 외 모든 전시 공간을 활용하여 25여 갤러리 전시관을 한 빌딩 안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19세 이상 45세 이하의 청년들로 이루어진 전시 형식과 작품이 강남의 도시 공간과 교감 된 미술로 선보일 예정이다. 미술평론가 이경모(미술평론가협회 평단 주간) 운영위원장은 “올해 서울청년비엔날레는‘청년 서울, 청년 미술, 청년 아더랜드’라는 주제로 개최된다”며 “멀버리힐스 다목적홀에서는 서울청년비엔날레 포럼을 세계미술의 다양한 전략과 청년 미술 환경의 회복성을 주제로 연다“고 전했다. 포럼은 △미술의 도시 서울 △청년 미술의 개념과 변화 등 세션으로 진행된다. 안재영 총감독은 “미술뿐 아니라 영화, 디자인 및 다양한 문화의 영역까지 확장된 청년들의 시각과 전문성, 예술성을 폭넓게 경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수석큐레이터는 P&C TOTAL GALLERY 박천희 대표가 맡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제목을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즉흥적으로 붙인 제목이 나중에 바뀌기도 하고, 또 어떤 제목은 후대의 연구자들이 임의로 붙이기도 한다. 또 어떤 제목은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일부러 동떨어진 내용의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예술 작품의 제목을 돌아본 전시 ‘이름의 기술’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만1560점 중 관객이 난해하게 여길 만한 ‘무제’, ‘기호’, ‘문장형’의 제목을 가진 작품 37점을 소개한다. 먼저 ‘무제’는 추상 작품에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으로 1970, 80년대 멋이나 유행의 어조로 지어지기도 했다. 아무런 내용이 없어 불친절하거나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는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기 위한 의도였다. 따라서 전시는 ‘무제’ 제목이 붙은 작품은 이미지를 언어에 가두지 않고 관객이 직접 교감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호형’은 의미를 알 수 없거나 불분명하게 내세워 작가의 의도를 감춘다. 김도균 작가의 ‘b.vfd. 46.1783921.266070-01, 2011’이 그 예다. 이 작품은 밤하늘의 별을 촬영한 사진으로, 촬영한 장소의 지도에 표기된 좌표를 제목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암호 같은 제목은 작품이 한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지 않고 관람객이 상상하고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문장형은 1990년대 이후 작품에서 자주 발견된다. 공성훈의 ‘예술은 비싸다’(1992년), 김상진의 ‘나는 사라질 것이다’(2021년)처럼 작품이 던지고자 하는 화두를 제시하거나, 온라인에서 밈으로 활용되는 유행어를 차용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제목을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가 즉흥적으로 붙인 제목이 나중에 바뀌기도 하고, 또 어떤 제목은 후대의 연구자들이 임의로 붙이기도 한다. 또 어떤 제목은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일부러 동떨어진 내용의 제목을 붙이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예술 작품의 제목을 돌아본 전시 ‘이름의 기술’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만1560점 중 관객이 난해하게 여길 만한 ‘무제’, ‘기호’, ‘문장형’의 제목을 가진 작품 37점을 소개한다. 먼저 ‘무제’는 추상 작품에 가장 많이 사용된 이름으로 1970~1980년대 멋이나 유행의 어조로 지어지기도 했다. 아무런 내용이 없어 불친절하거나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는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기 위한 의도였다. 따라서 전시는 ‘무제’ 제목이 붙은 작품은 이미지를 언어에 가두지 않고 관객이 직접 교감하라고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호형’은 의미를 알 수 없거나 불분명하게 내세워 작가의 의도를 감춘다. 김도균 작가의 ‘b.vfd.46.1783921.266070-01,2011’이 그 예다. 이 작품은 밤하늘의 별을 촬영한 사진으로, 촬영한 장소의 지도에 표기된 좌표를 제목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암호같은 제목은 작품이 한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지 않고 관람객이 상상하고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문장형은 1990년대 이후 작품에서 자주 발견된다. 공성훈의 ‘예술은 비싸다’(1992), 김상진의 ‘나는 사라질 것이다’(2021)처럼 작품이 던지고자 하는 화두를 제시하거나, 온라인에서 밈으로 활용되는 유행어를 차용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러시아 문학 전문가인 저자는 약 15년 전 안구 건조증과 비문증(눈앞에 이물질이 떠다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을 심하게 앓으면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눈에 관한 여러 연구서를 읽던 중 ‘눈이 없어도 뇌만 있다면 대상을 볼 수 있다’는 신경과학의 가설에 강렬한 흥미를 느낀다. 이는 문학을 넘어 눈과 뇌에 관한 연구로 이어졌으며, 이 책은 그 과정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시작은 지구상에 눈이 탄생한 과정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등장한 시기는 약 45억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삼엽충이 눈을 갖게 된 때는 약 5억 년 전. 그러니 지구 위 생명체들은 40억 년 동안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살았다는 얘기다. 어둠 속에서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저자는 러시아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전위적 음악 ‘봄의 제전’에 빗댄다. 이렇게 생물학, 신경학 등 과학적으로 연구한 시각에 관한 내용을 저자는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과 엮어 서술해 나간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야’에서 주인공이 실연을 겪고 난 뒤 갑자기 주변 풍경이 어둡고 침울하게 보이는 현상을 묘사한 것을 두고 지각 심리학의 ‘인지적 침투’(인간의 지각이 믿음, 욕망, 정서 등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로 설명하는 식이다. 이 밖에 인간이 너무 작거나, 크거나, 멀리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기 위해 도구를 발명하는가 하면, ‘내면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등 ‘보기’의 다양한 양상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시각의 윤리’를 언급하는데, 이는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보지 않기로 하는지, 또 감시하는 눈이 있음에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의 의미에 관한 내용이다. 마지막 장 ‘신의 눈을 흉내 내는 시선’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연민과 삶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도스토옙스키 같은 문학 대가들이 상상한 신의 눈은 보편적 참회와 구원의 눈물이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응시 같은 것들이다. 인류의 역사 속 ‘보기’의 의미를 조명하는 것을 통해 저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본명 정호석·30·사진)이 군 복무를 마쳤다. 제이홉은 17일 강원 원주시 육군 제36보병사단 백호신병교육대에서 전역식을 가졌다. 제이홉은 현장에 모인 팬들에게 경례하며 “건강하게 잘 전역했다.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1년 6개월 조교 임무를 수행하며 행군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군 장병들에게 인사와 응원을 해주신 시민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장병들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제이홉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해 6월 BTS 멤버 중 가장 먼저 전역한 진도 현장을 찾아 꽃다발을 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황금빛 회화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1902년 길이 34m, 높이 2m의 대형 벽화를 제작한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토대로 예술을 통해 환희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베토벤 프리즈’. 클림트의 대표작을 볼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빈의 미술관 제체시온에 한국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됐다. 지난달 20일 개막한 ‘그림자의 형상들’전을 찾았다.● “‘쿨한’ 한국, 더 알고 싶어”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제체시온 관장 라미시 다하는 “오스트리아는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었고, 최근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확전 우려와 극우파 부상의 압박 속에 놓여 있다”며 “이런 가운데 냉전이 진행 중인 한국의 큐레이터, 예술가의 시선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지정학적 긴장, 팬데믹, 기후 위기 등을 통해 드러난 우리 시대의 그림자를 조명한다. 메인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불, 임민욱, 함경아 등 남북 관계를 주제로 한 작품이 보인다. 함경아의 ‘당신이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연작은 흔들리는 샹들리에를 찍은 사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단실 자수 작품이다. 이 자수는 북한의 전통 공예가들이 놓은 것으로, 작가가 밑그림을 준비하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중개인을 통해 전달한 다음 기약 없이 기다리다가 결과물을 받으면 완성된다.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다하 관장은 “유럽에서는 대중문화로 ‘쿨한’ 한국과 ‘끔찍한 독재 국가’ 북한의 이미지가 공존한다”며 “예술 작품을 통해 한국의 분단이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어 인상 깊다”고 말했다. 그는 “이불처럼 유명한 작가뿐만 아니라 함경아의 작품도 제작 과정부터 놀라웠다”고 덧붙였다.이불의 ‘오바드 V’는 2018년 남북군사합의로 철거된 비무장지대(DMZ) 감시 초소의 철조망을 녹여 만든 탑이다. 임민욱의 ‘커레히―홀로 서서’는 오랜 기간 수집한 군용 모포 위에 그림을 그렸다. 군대에서 병사의 몸과 생각은 자유로울 수 없지만 모포를 덮고 잠을 잘 때는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해 꿈에서 나타날 것 같은 원초적인 이미지를 담았다.● 전쟁의 공포, 빈에서도 공명 전시는 냉전과 분단의 현실을 조명하는 것을 넘어 이주, 난민, 기후 위기 등 보편적인 문제로도 관심사를 넓힌다. 한국 작가뿐만 아니라 라미로 웡, 민윤, 닐바르 귀레슈 등 빈에서 활동하는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아르헨티나), 리 킷(중국), 미카엘 레빈(미국) 등 작가 18팀의 설치, 조각, 회화, 영상 등을 선보인다. 중국계이지만 페루 리마와 빈을 오가며 활동하는 라미로 웡은 중국 전통 음식을 먹는 식기를 여행 가방 속에 담아 굳혀서 일부를 드러내며 정체성을 탐구한다. 이번 전시는 주오스트리아 한국문화원에서도 동시에 열린다. 윤진미의 ‘꿈꾸는 새들은 경계를 모른다’ 등을 볼 수 있다. 제체시온 큐레이터 베티나 스푀르는 “나의 조상 중에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사람이 많으며 오스트리아도 프랑스, 러시아, 미국에 의해 분단된 역사가 있기에 전시장 속 예술 작품들이 공명하는 바가 있다”고 밝혔다. ‘그림자의 형상들’전은 11월 17일까지 열린다.빈=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체시온(Secession)은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등 아카데미즘에 반발해 새로운 예술을 꿈꾸었던 분리파 예술가들이 1897년 만든 미술관이다. 오페라극장, 시청, 국회의사당 등 19세기 합스부르크 제국을 상징하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둘러싼 순환도로 링슈트라세에서 홀로 직각의 단순한 형태에 금빛 잎사귀로 만들어진 돔이 얹혀 있는 건물이다. 지금 봐도 독특한 제체시온은 빈 시민에게 ‘황금 양배추’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벽면엔 부엉이 조각이 새겨져 있고, 입구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분리파 구호가 적혔다. ‘예술의 사원’을 표방했던 제체시온은 지금까지도 예술가로 구성된 이사회가 운영하고 있다. 라미시 다하 관장은 “제체시온 회원 약 300명은 모두 예술가 아니면 건축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투표로 구성되는 이사회는 건축가 1명, 예술가 12명으로 선출된다”고 설명했다. 관객 대부분은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를 보기 위해 제체시온을 찾는다. ‘베토벤 프리즈’가 전시된 지하 공간에서는 헤드셋을 이용해 베토벤 9번 교향곡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그림자의 형상들’ 전시 기간 한국 예술가 그룹 ‘이끼바위쿠르르’가 비무장지대(DMZ)의 식물을 담은 영상 작품 ‘랩소디’가 베토벤 프리즈와 함께 전시된다.빈=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매끄러운 흰 벽이 감싸고 있는 미술관 유리창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용암과 검은 뿔이 보인다. 미술관 입구 작은 유리 부스 전시장에는 구겨진 알루미늄 캔의 형태를 본떠 커다랗게 만든 대리석 조각이 놓여 있다. 화산이 폭발해 모든 것이 검게 변했지만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것 같은 역설적인 풍경. 스위스 출신 미술가 클라우디아 콤테의 개인전 ‘재로부터의 부활: 재생의 이야기’의 모습이다. 경기 과천 K&L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는 미술관 모든 층을 뒤덮은 붉은 카펫, 흙을 섞어 검게 칠한 벽과 조각으로 구성된다. K&L뮤지엄 건물은 각 층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1층에서 1.5층, 2층이 넓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시 개막을 맞아 한국을 찾았던 작가는 “미술관 건물의 형태를 보고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이에 작가는 컴퓨터 그래픽(3D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용암 카펫’을 주문 제작했고, 미술관 3층부터 1층까지 용암이 끌어내리는 것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벽면에 칠해진 검은 벽화 위로는 물결무늬가 그려져 생동감을 더한다. 바닥 곳곳에는 불탄 나무 위의 이구아나, 잘린 나무 위 벌새, 돌 위에 죽은 물고기, 멸종된 동물인 황금 두꺼비, 땅에서 솟아오른 매머드의 엄니 조각이 놓여 있다. 이번 전시는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의 다큐멘터리 ‘인페르노 속으로(Into the Inferno)’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다큐멘터리는 화산학자 클라이브 오펜하이머와 헤어조크 감독이 전 세계 활화산을 찾아다니며 용암의 장엄한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것은 물론 인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상도 보여줬다. 화산은 폭발하면 모든 것을 뜨거운 불에 태워 파괴하지만, 그 재가 다시 비옥한 거름이 되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바탕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K&L뮤지엄은 의류 제조 업체인 SMK인터내셔날 산하 사립미술관으로 지난해 9월 오스트리아 전위 예술가 헤르만 니치 개인전 ‘총체 예술’로 개관했다. 미술관 1, 2층은 전시장이며 3층은 미술 서적 열람이 가능한 카페가 있다. 이번 전시는 12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 미술가의 전성기는 60대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체파 회화로 시작해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담은 ‘게르니카’를 발표했을 때 파블로 피카소가 56세.프란시스코 고야가 나폴레옹 전쟁 참상으로 인간의 폭력성을 표현한 걸작 ‘1808년 5월 3일’을 발표했을 때는 68세였죠.‘20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요제프 보이스가 사회를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제시한 역작 ‘7000그루 참나무’를 선보인 것은 61세입니다.장미셸 바스키아처럼 20대에 뛰어난 감각을 발휘한 작가도 있지만, 그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더 큰 작업을 했을 것임은 분명합니다.이렇게 때로 나이가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가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살며 피부로 겪은 바가 녹아드는 시간 덕분입니다.현대미술 작품은 작가의 손기술뿐 아니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과 사상을 담기 때문이죠.훌륭한 문학가가 젊은 시절 감각적인 작품을 하다가 연륜이 쌓일수록 인간을 깊이 고찰한 복잡한 작품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현대 미술가 이불도 2018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와 독일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 개인전을 기점으로 최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파사드의 커미션 작품까지 이어가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는 듯합니다.‘그로테스크’나 ‘페미니즘 전사’라는 단편적 수식어로 소개되던 이불의 예술 세계를 헤이워드 갤러리 개인전에서 본 작품 중심으로 소개합니다.괴물, 현대인의 자화상“(20대 퍼포먼스를 마친 어느 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의 문을 열고 뛰어내릴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갈망과 연결된 동시에 자유에 대한 느낌이었다”이불많은 사람은 이불을 1990년대 강렬한 퍼포먼스로 기억합니다.1989년 ‘제1회 한일 행위 예술제’에 참가한 이불은 동숭아트센터에서 관객에게 막대 사탕을 나눠주고 천장에 매달린 채 ‘낙태를 한 분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다’며 최승자의 시를 읊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낙태’입니다.실제로 보면 이 작품은 옳고 그름, 정치적 다툼 사이에서 배제된 당사자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합니다.따라서 페미니즘 운동이기보다는 여성 혹은 그 무언가로 낙인찍히기 전 개인이 몸으로 느끼는 바를 드러낸 과감한 고백에 가깝습니다.이불은 2018년 당시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 디렉터와의 인터뷰에서 낙태에 관한 이야기를 왜 공개적으로 했느냐는 질문에 “삶 자체가 그렇고 삶에 관한 작업이기 때문”이라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이러한 퍼포먼스는 ‘수난 유감’ 같은 거리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길거리에서 촉수가 돋아난 옷을 입고 다니며 다양한 반응을 끌어낸 이 작품은 별난 여자의 희한한 행동인 걸까?개인을 과도하게 옥죄는 경직된 윤리 의식 같은 제약을 보통 사람은 몸 안에 품고 괴롭게 살아간다면 이불은 이 작품에서 그것을 뒤집어 가시처럼 외부로 뻗어냅니다.작가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로 태어난 ‘나’를 깎아내고 가두려는 틀에 억눌리지 않고, 오히려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촉수를 뻗습니다. 그렇게 세상과 나만의 방식으로 손을 잡고 ‘내 세계’를 넓히려 노력하죠.20대 때 알몸으로 퍼포먼스를 했던 어느 날.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의 문을 열고 뛰어내릴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갈망과 연결된 동시에 자유에 대한 느낌이었다”는 이불의 회고는 ‘나로서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 통쾌함입니다.깨지기 쉬운 현대 사회그녀의 관심은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해 시스템과 문명의 취약함을 고찰하기 시작했습니다.‘나의 거대 서사(mon grand recit)’ 연작이 대표적입니다. 역사 속 사람들이 꿈꾼 유토피아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은 멀리서 보면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세계를 표현합니다.이런 탐구를 구체적으로 전개한 작품은 ‘천지(Heaven and Earth)’입니다. 한국인이 신성하게 여긴 백두산 ‘천지’를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의 형태는 타일 욕조입니다.욕조 가장자리를 산맥이 에워싸고 있어 욕조가 천지 호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엔 검은 물이 가득합니다. 이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암시입니다. 박종철 사건은 독재를 억지로 이어가려던 정권을 무너지게 한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개인의 탐욕과 오만함이 만든 허술한 시스템은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게 합니다.더 나아가 고층 빌딩과 복잡한 도로가 얽힌 도시를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과학 기술과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도 돌아보게 합니다.모순 덩어리라 아름다운 세계일련의 작업과 최근 메트 프로젝트까지 이불이 꾸준하게 보여주는 키워드는 바로 모순입니다.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플라톤 중심적 사상의 뿌리는 세상 많은 일을 정해진 ‘개념’에 고정해서 이해하려 합니다.이런 사고가 인류에게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강한 것이 때로 놀랍도록 허약하고, 추하다고 여긴 것이 때로는 눈부시게 아름다우며, 틀렸다고 믿은 것이 오늘은 정답이 되기도 합니다.그럼에도 객관식 시험 답안지에 자신을 욱여넣고, 자라서도 ‘정답’이라고 믿는 것을 벗어나길 두려워하며 자신을 바늘로 찌르는 사람들에게 이불의 작품은 말합니다.우리가 만든 감옥을 비집고 나가보자고. 인간이 사는 세상은 모순 덩어리라서 아름다운 것이라고.※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높이 6.7m에 달하는 큰 캔버스 중심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기둥처럼 굳건하게 보이는 큰 소용돌이는 자세히 보면 작은 소용돌이들이 빠져나오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고, 소용돌이들 사이로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2024년 강원국제트리엔날레가 열리는 평창송어종합공연체험장에서 관객들이 주목하는 이 작품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 가나인의 ‘종말은 언제나 시작이다’(2019년). ‘삶’ 연작으로 이어지는 이 소용돌이 작품은 작게는 개인의 인생부터, 크게는 21세기 사회 구조에 일어난 변화까지 다룬 ‘신자연주의’ 미학을 담는다. 이 작품 속에서 반듯한 직선으로, 인과 관계가 딱 들어맞는 순서에 따라 안정되게 유지될 줄 알았던 세계의 여러 구조들은 서로 부딪치고 붕괴하며 혼란을 빚는 중이다. 어떠한 변수가 나타나 흔들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작품은 소용돌이 자체를 받아들이고, 시행착오를 통해 넓어지는 삶의 가치를 표현했다. 전시에서는 현재 리움 미술관에서도 ‘에어로센’ 프로젝트를 열고 있는 아르헨티나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의 ‘궤도에서-S’, 한국 작가 정연두의 ‘백년 여행기: 프롤로그’, 멕시코 작가 보스코 소디의 ‘타불라 라사’ 등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은 지하부터 관람하며 차례로 위로 올라오는 구조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개미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예술감독을 맡은 미술평론가 고동연은 벽을 쌓거나 경계를 짓는 인간의 건축과 달리, 뿌리처럼 유기적으로 뻗어 나가며 순환하는 개미굴의 구조를 인상 깊게 봤다. 이러한 개미굴에서 감독은 자연의 섭리를 심각하게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떠올렸고, 이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생태 예술’을 주제로 국제 커미셔너인 라울 자무디오(미국), 가나자와 고다마(일본), 리처드 스트라이트매터트랜(베트남)과 함께 작가 섭외 공모, 심사 과정을 거쳐 전시를 완성했다. 전시는 평창송어종합공연체험장, 월정사, 진부시장, 진부 공공형 실내 놀이터 등에서 22개국 77팀(작가 85명)의 작품 200여 점을 선보이며, 27일까지 열린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는 아직 도립 미술관이 지어지지 않은 강원도에서 시군을 순회하며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행사로 3년마다 개최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허공을 가르며 부드럽게 흐르는 선을 갖고 있지만 그 재료는 철이다. 단단한 철을 용접해 음악을 연주하듯 감각적인 작품을 만들어 온 조각가 존 배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가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존 배의 70여 년 예술적 여정을 집약적으로 선보인다. 1960년대 초반 제작한 강철 조각부터 철사 조각, 드로잉, 회화까지 40여 점이 소개된다. 전시장 1층에 가면 ‘인볼루션’(Involution·1974년)이나 ‘스피어 위드 투 페이시스’(Sphere with Two Faces·1976년)처럼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 모호한 뫼비우스의 띠 같은 작품이 눈길을 끈다. 또 벽면에 있는 ‘언타이틀드, 1970, 엔타이틀드, 2021’(Untitled, 1970, Entitled, 2021·1970년)은 캔버스가 아닌 허공에 드로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나온 작품으로, 사각형 틀 속에 이어진 직선과 곡선들이 마치 연필로 자유롭게 그린 것처럼 느껴진다. 10여 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 개막을 맞아 한국을 찾은 작가는 “내 작품은 하나의 음표에서 시작한다”며 “그 음에서 다음은 어떤 음이 올지, 또 다음은 무엇이 이어질지 각각의 점과 선들이 대화하듯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2층에서 볼 수 있는 신작 ‘하늘과 대지’(2024년)도 이런 과정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떨어진 작은 조각들을 붙여보고 있던 건데, 주변에서 어떻게든 작업을 이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최근에 완성했다”며 “완성된 모양이 대지와 하늘을 연결해주는 것 같아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 동료가 극도의 압박감과 어려움을 겪는 것을 지켜보다가, 짧은 철사를 밀도 있게 용접해 힘찬 곡선의 움직임을 만들어 낸 작품 ‘라이즌, 폴른, 워큰’(Risen, Fallen, Walken·1987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탐구한 ‘홈프런트’(Homefront·1990년) 등의 작품도 지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민미술관이 주목하는 작가 3명을 선정해 각자의 개인전을 선보이는 ‘이마 픽스(IMA Picks) 2024’전이 올해로 3회를 맞았다. 3년 주기로 개최되는 ‘이마 픽스’는 2018년 김아영 이문주 정윤석 등 중견 작가를, 2021년에는 윤석남 홍승혜 이은새 등 다른 세대 여성 작가 3명을 초청했다. 올해 ‘이마 픽스’는 중견 작가에게 다시 집중했다. 윤율리 학예팀장은 “하반기 ‘프리즈 서울’ 같은 행사가 있어 미술 시장에서 각광받는 작가들이 주로 조명됐지만, 이와 관계없이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를 선정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이 올해 선정한 작가는 차재민 백현진 김민애다.미술관 3개 전시실에서 펼쳐지는 ‘이마 픽스’는 1전시실의 차재민 개인전 ‘빛 이야기’로 시작한다. 신작 ‘광합성하는 죽음’이 전시의 중심이다.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작가는 빈집에 관찰대를 설치하고 빵, 버섯, 과일 등 음식이 썩어가는 과정, 또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영상에서는 작가와 가상의 인물인 ‘시무라 히카루’가 일본 불교 회화인 ‘구상도’(시체가 썩어가는 아홉 단계를 그린 그림)를 보러 가는 계획을 세우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내레이션을 통해 작가는 과거 죽음과 삶을 회화로 표현하는 수단이었던 ‘구상도’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했음을 드러낸다. 영상과 함께 촬영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며 그린 드로잉 연작과 브론즈 조각을 감상할 수 있다.2전시실에선 음악가, 배우로도 활동하는 백현진의 개인전 ‘담담함안담담함 라운지’가 열린다. 백현진은 이번 전시에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의 감각을 담아냈다. 어린 시절 화곡동 주택가를 미술관 공간에 맞춰 각색한 ‘새출발 실내 우물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작품에는 고무 화분과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 등이 늘어서 있으며 그 뒤 벽면에는 선을 반복적으로 그린 그림이 펼쳐진다. 가로 27m, 세로 3m인 회화 ‘당신의 배경’이다. 전시의 내용과 맞물려 만든 새 앨범 ‘심플렉스: 담담함안담담함 라운지’에 수록된 11곡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 기간 실리카겔 보컬리스트 김한주, 배우 문상훈과 최성은이 참여하는 비정기 퍼포먼스 ‘늪과 거울’, 매주 금요일 오후 7∼9시 전시장을 무료 개방하는 관객 참여 퍼포먼스 ‘공짜’가 열린다.김민애의 개인전 ‘화이트 서커스’는 3전시실과 프로젝트룸에서 열린다. 작가는 전시 제목에 ‘서커스’가 갖는 두 가지 의미 ‘곡예’와 ‘원형 광장’을 모두 담았다. 미술관 일대가 광화문광장이라는 점, 또 오래된 문화와 현대적인 것이 혼재하며 어딘가 기이하고 들뜬 서커스의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토대로 작가는 3전시실을 미술관 옥상이라고 상상하고, 그곳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소재로 조각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각각 ‘이중주’ ‘문지기들’ ‘때늦은 휴가’라고 제목을 붙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고, 이 조각들을 전망대처럼 놓인 설치 작품 위로 올라가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프로젝트룸은 일민미술관의 오래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3전시실이 실외의 느낌을 자아냈다면, 프로젝트룸은 실내 작은 방에 들어온 분위기로 만들었다. 2018년 아틀리에 에르메스 개인전 ‘기러기’에서 선보였던 ‘새’ 부조 9점을 한데 뭉쳐 새로 만든 작품 ‘새’와 ‘연속된 조각상’ 등 과거 작품들을 새로운 공간 구성에 맞게 가구처럼 재배치했다. 11월 1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납부하는 물납제 도입 후 처음으로 현대 미술 작품 4점이 물납 됐다. 7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중국 작가 쩡판즈의 ‘초상화’(2007) 2점, 전광영의 ‘집합’(2008), 이만익의 ‘일출도’(1991) 등 4점에 대한 국립현대미술관 물납이 허가됐다. 해당 작품들은 8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반입되며 추후 연구와 전시에 활용된다. 이 작품을 상속받은 신청자는 총 10점의 미술작품을 물납 신청했고, 문체부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를 비롯해 분야별 전문가 7인으로 ‘미술품 물납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회의를 거쳐 4점을 물납 받기로 결정했다. 물납 작품의 가액은 비공개다. 문체부 관계자는 “시장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가격과 물납 거절 작품도 비공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작품 가액은 감정기관 2곳에서 감정을 받은 금액의 평균으로 정해진다”고 덧붙였다. 네 작품 중 가격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쩡판즈의 초상화는 유사한 작품이 2021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685만 홍콩달러(수수료 포함, 약 11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문화유산 등에 대한 물납제는 세금 납부 시 현금 대신 문화유산이나 미술품 등의 특정 자산을 납부하는 제도다. 미술품 물납제는 2020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상속세 문제로 보물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고, 이후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이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도입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술품 상속세에만 물납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부동산 주식 등 다른 상속 자산에 대한 세금을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는 없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반대 의견과 문제점을 지적해도 삐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오는 전화가 스트레스가 아닌 사람. 그 옛날 여성 작가가 남성 큐레이터나 미술관장과는 편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분위기였으니까.”(정정엽 작가) “김홍희는 예리한 안목으로 문학 용어를 사용해 우리 여성 미술의 문학성(쓰기)을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시켰다. 이렇게 작품의 맥락을 짚어주고 큐레이팅 해주는 사람을 만난 여성 미술계가 부럽다.”(김혜순 시인)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 여성 미술인들이 모였다. 198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이뤄진 여성 미술가 44명의 작품 세계를 해석한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사진)의 책 ‘페미니즘 미술 읽기: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열화당) 출간을 기념해서다. 이날은 같은 주제로 글로벌 미술 전문 출판사 파이돈에서 펴낸 영어 책 ‘한국의 페미니스트 예술가들: 저항과 파괴(Korean Feminist Artists: Confront and Deconstruct)’를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김 전 관장은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페미니스트로 호명되든 그렇지 않든 사회 곳곳에 편재하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평등하고 미래가 보이는 사회를 향한 변화 의지를 가진 작가들”이라며 “좁게는 한국 화단, 넓게는 문화계를 위해 고군분투한 작가들께 존경과 사랑을 바친다”고 밝혔다. 책은 페미니즘이 당면한 화두 15가지를 설정하고 이 분류에 맞는 작가 2∼4명을 배치해 소개한다. ‘여성성과 섹슈얼리티’ 챕터에서는 원로인 윤석남과 젊은 작가인 장파를, ‘몸의 미술’에서는 이불, 이피, 이미래를 조명하는 식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문을 연 작가로 나혜석과 천경자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페미니즘 미술 운동의 발아기인 1970, 80년대 중반 민중계 페미니즘, 1990년대 탈모더니즘 경향의 페미니즘, 2000년대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과 2010년대 이후 소셜미디어로 촉발된 ‘넷페미’ 현상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짚은 글 ‘한국 현대 페미니즘 미술의 흐름’과 시인 김혜순의 발문 ‘김홍희라는 접속사―여성 ‘시하기’와 ‘미술하기’’도 수록됐다. 영어 책은 19일 발간 예정이며 출간 기념 패널 토크가 이에 앞서 10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 미술가의 전성기는 60대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체파 회화로 시작해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담은 ‘게르니카’를 발표했을 때 파블로 피카소가 56세. 프란시스코 고야가 나폴레옹 전쟁 참상으로 인간의 폭력성을 표현한 걸작 ‘1808년 5월 3일’을 발표했을 때는 68세였죠. ‘20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요제프 보이스가 사회를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제시한 역작 ‘7000그루 참나무’를 선보인 것은 61세입니다. 장미셸 바스키아처럼 20대에 뛰어난 감각을 발휘한 작가도 있지만, 그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더 큰 작업을 했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때로 나이가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가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살며 피부로 겪은 바가 녹아드는 시간 덕분입니다. 현대미술 작품은 작가의 손기술뿐 아니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과 사상을 담기 때문이죠. 훌륭한 문학가가 젊은 시절 감각적인 작품을 하다가 연륜이 쌓일수록 인간을 깊이 고찰한 복잡한 작품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미술가 이불도 2018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와 독일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 개인전을 기점으로 최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파사드의 커미션 작품까지 이어가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는 듯합니다. ‘그로테스크’나 ‘페미니즘 전사’라는 단편적 수식어로 소개되던 이불의 예술 세계를 헤이워드 갤러리 개인전에서 본 작품 중심으로 소개합니다.괴물, 현대인의 자화상많은 사람은 이불을 1990년대 강렬한 퍼포먼스로 기억합니다. 1989년 ‘제1회 한일 행위 예술제’에 참가한 이불은 동숭아트센터에서 관객에게 막대 사탕을 나눠주고 천장에 매달린 채 ‘낙태를 한 분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다’며 최승자의 시를 읊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낙태’입니다. 실제로 보면 이 작품은 옳고 그름, 정치적 다툼 사이에서 배제된 당사자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합니다. 따라서 페미니즘 운동이기보다는 여성 혹은 그 무언가로 낙인찍히기 전 개인이 몸으로 느끼는 바를 드러낸 과감한 고백에 가깝습니다. 이불은 2018년 당시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 디렉터와의 인터뷰에서 낙태에 관한 이야기를 왜 공개적으로 했느냐는 질문에 “삶 자체가 그렇고 삶에 관한 작업이기 때문”이라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수난 유감’ 같은 거리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길거리에서 촉수가 돋아난 옷을 입고 다니며 다양한 반응을 끌어낸 이 작품은 별난 여자의 희한한 행동인 걸까? 개인을 과도하게 옥죄는 경직된 윤리 의식 같은 제약을 보통 사람은 몸 안에 품고 괴롭게 살아간다면 이불은 이 작품에서 그것을 뒤집어 가시처럼 외부로 뻗어냅니다. 작가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로 태어난 ‘나’를 깎아내고 가두려는 틀에 억눌리지 않고, 오히려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촉수를 뻗습니다. 그렇게 세상과 나만의 방식으로 손을 잡고 ‘내 세계’를 넓히려 노력하죠. 20대 때 알몸으로 퍼포먼스를 했던 어느 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의 문을 열고 뛰어내릴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갈망과 연결된 동시에 자유에 대한 느낌이었다”는 이불의 회고는 ‘나로서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 통쾌함입니다.깨지기 쉬운 현대 사회 그녀의 관심은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해 시스템과 문명의 취약함을 고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거대 서사(mon grand recit)’ 연작이 대표적입니다. 역사 속 사람들이 꿈꾼 유토피아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은 멀리서 보면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세계를 표현합니다. 이런 탐구를 구체적으로 전개한 작품은 ‘천지(Heaven and Earth)’입니다. 한국인이 신성하게 여긴 백두산 ‘천지’를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의 형태는 타일 욕조입니다. 욕조 가장자리를 산맥이 에워싸고 있어 욕조가 천지 호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엔 검은 물이 가득합니다. 이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암시입니다. 박종철 사건은 독재를 억지로 이어가려던 정권을 무너지게 한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개인의 탐욕과 오만함이 만든 허술한 시스템은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고층 빌딩과 복잡한 도로가 얽힌 도시를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과학 기술과 진보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도 돌아보게 합니다. 모순 덩어리라 아름다운 세계 일련의 작업과 최근 메트 프로젝트까지 이불이 꾸준하게 보여주는 키워드는 바로 모순입니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플라톤 중심적 사상의 뿌리는 세상 많은 일을 정해진 ‘개념’에 고정해서 이해하려 합니다. 이런 사고가 인류에게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강한 것이 때로 놀랍도록 허약하고, 추하다고 여긴 것이 때로는 눈부시게 아름다우며, 틀렸다고 믿은 것이 오늘은 정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객관식 시험 답안지에 자신을 욱여넣고, 자라서도 ‘정답’이라고 믿는 것을 벗어나길 두려워하며 자신을 바늘로 찌르는 사람들에게 이불의 작품은 말합니다. 우리가 만든 감옥을 비집고 나가보자고. 인간이 사는 세상은 모순 덩어리라서 아름다운 것이라고.※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이수지 작가(사진)의 신작 그림책 ‘춤을 추었어’의 원화 23점을 선보이는 전시가 2일부터 내년 1월 12일까지 현대백화점 판교점 5층 현대어린이책미술관 모카랩에서 열린다. ‘춤을 추었어’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관현악곡인 ‘볼레로’의 구성에 맞춰 어린아이의 춤의 여정 등을 그렸다. 전시장에서는 원화와 함께 국악 밴드 이날치의 장영규 음악감독이 책에 맞춰 편곡한 볼레로를 감상할 수 있다. 또 프로젝터를 통해 원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 영상도 상영된다. 이 작가는 2022년 한국인 최초로 ‘한국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그림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HSBC 빌딩, 이오 밍 페이의 중국은행 타워 등 세계적인 건축가가 만든 고층 빌딩과 고급 쇼핑몰이 모여 있는 홍콩 센트럴 지역에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가 만든 새 랜드마크 빌딩 ‘더 헨더슨’이 등장했다. 홍콩을 상징하는 보히니아 꽃봉오리에서 영감을 얻은 곡선 형태가 특징인 이 빌딩에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본사가 확장, 이전했다. 첫 경매를 시작한 현장을 지난달 26일 찾았다. 크리스티 홍콩은 더 헨더슨에서 4645㎡(약 1405평) 규모 4개 층 공간을 사용한다. 이 중 2개 층은 경매장과 전시장으로, 1개 층은 고객 전용 공간으로 사전 예약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다. 전시장은 과거 홍콩 컨벤션 센터를 임대해 열었을 때보다 작은 규모였지만, 과거에는 고미술부터 근현대 미술은 물론 보석, 럭셔리도 한 번에 경매가 열렸다면 이번엔 20/21세기 미술과 도자기 경매만 열렸다는 점이 다르다. 전시장에는 홍콩 도심이 보이는 채광창이 있는 공간도 마련됐고, 크리스티 뉴욕에서 경매 예정인 데이비드 호크니,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포함된 미카 에르투건 컬렉션도 일부 관람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날 이브닝 경매에 출품 예정인 클로드 모네의 ‘수련’과 빈센트 반 고흐의 ‘정박한 배’를 보기 위해 컬렉터뿐 아니라 작가, 젊은 세대 관람객도 눈에 띄었다. 크리스티 관계자는 “22일부터 26일까지 프리뷰 기간 동안 1만2840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고객 전용 공간에서는 예술 서적을 열람하거나 경매에 나온 와인, 핸드백, 시계와 부동산 정보까지 볼 수 있었으며, 공개 경매가 아닌 프라이빗 세일로 판매되는 고흐의 작품도 걸려 있었다. 크리스티 아시아 지역 총괄 사장인 프랜시스 벨린은 “새 본사에서 가장 기대되는 점은 전시, 행사, 경매를 1년 내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 직원들까지 같은 공간에서 함께할 수 있으며, 경매는 물론 교육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예술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는 개관 경매에 모네, 고흐, 김환기 등 고가의 작품을 구매자가 확보된 3자 개런티(경매사가 아닌 제3자가 낙찰가를 보증해 주는 형태)로 출품하고 불황인 만큼 동시대 작가보다 블루칩 작품에 집중하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다. 경매 결과 모네의 ‘수련’(2억 홍콩달러·약 339억9700만 원), 고흐의 ‘정박한 배’(2억1500만 홍콩달러·약 365억4700만 원), 김환기의 ‘9-XII-71 #216’(4600만 홍콩달러·약 78억1940만 원) 모두 큰 경합 없이 추정가 하단에 낙찰됐지만 모네와 고흐는 아시아 경매에서 작가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날 ‘20세기/21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 낙찰 총액은 10억4000만 홍콩달러(약 1750억 원)로 지난해 하반기(10억5000만 홍콩달러)와 비슷했고 올해 상반기(9억6300만 홍콩달러)보다는 높았으며 낙찰률은 93%였다. 벨린 사장은 “상반기 경매에서는 하반기 헨더슨 이전 프로젝트가 있었고, 고객들도 새 본사에서 작품을 출품하고 싶어 해 예년보다 떨어질 수 있지만 하반기에 더 좋은 결과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10월 럭셔리, 11월 고미술 경매도 아직 출품작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중요한 소장품을 확보해 자신 있다”고 말했다. 홍콩=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피노 컬렉션 전시가 열린 미술관 송은에 들어섰을 때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헤르조그 앤 드뫼롱의 건축물과 어디에서 들리는지 모를 마리아 칼라스 목소리가 환상적이었죠. 우리가 기획한 전시는 아니었지만, 크리스티 고객을 초대할 좋은 기회였습니다.”2022년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드리안 게니 2인전, 2023년 장미셸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 전시를 기획했던 크리스티의 아시아태평양 부회장(20세기 및 21세기 미술 공동대표) 크리스티안 알부가 말했다. 피노 컬렉션 전은 크리스티의 소유주이자 케링 그룹 창립자인 프랑수아 피노의 소장품을 선보이는 전시였다.26일 홍콩 더 헨더슨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본사에서 만난 알부는 “한국 컬렉터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 덕분에 큰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다”며 “지난 3년간 서울에서 크리스티의 존재감이 나날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며 더 발전하는 전시를 선보이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2012년부터 크리스티 런던에서 일하기 시작한 알부는 2020년부터 홍콩팀에 합류했다. 2022년 5월 배우 숀 코너리의 소장품이었던 파블로 피카소의 ‘Buste d’homme dans un cadre’를 가져와 1억7500만 홍콩달러(약 294억 원)에 판매했고, 2021년 12월에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Abstraktes Bild 747-1’(1억4000만 홍콩달러, 약 235억 원), 아드리안 게니의 ‘Pie Fight Interior 12’를 8100만 홍콩달러(약 136억 원)에 판매해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운 핵심 인물이다.특히 아시아에서 보기 어려웠던 작품을 전시하며 호평을 받았다. 베이컨과 게니 2인전은 홍콩에서 9일간 열렸는데 1만2000명이 줄을 서서 관람했다. 알부는 이에 대해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고 했다.“베이컨과 게니의 작품을 살면서 처음으로 접한 젊은 작가와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삶을 바꾸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서울에서는 일반인뿐 아니라 연예인부터 서울 시장 같은 정치인까지 다양한 부류의 관객이 방문하는 게 뿌듯했죠.”내년에도 전시를 기획할 예정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크리스티 서울 지사와 논의해 최고의 전시를 선보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이날 저녁 예정됐던 ‘20/21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에는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의 작품이 주목받기도 했다. 서양 대가들의 작품을 홍콩 경매에 소개하고 있는 그에게 ‘한국 컬렉터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서양 근현대 미술 작가를 소개한다면 누구를 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그는 “한국 컬렉터들은 런던 파리 뉴욕 등에서 직접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있기에, 내가 먼저 소개하기보다는 컬렉터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올해 세실리 브라운처럼 아시아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가 서울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기도 해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보이고 싶은 좋은 작가는 너무 많지만, 피터 도이그의 제자인 허빈 앤더슨이 지금은 생각난다. 그러나 한국 컬렉터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다”고 했다.이날 경매 출품 예정이었던 김환기의 ‘9-XII-71 #216’(약 78억 원에 낙찰됨)이 2019년 ‘우주’(약 132억 원)의 기록을 깰 것 같냐는 질문에는 “기본적으로 크기가 작고 구성이 다르다”며 “기록을 깨면 좋겠지만 그보다 모네, 고흐, 자오우키 등 다른 대가의 작품과 함께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HSBC 빌딩, 이오 밍 페이의 중국은행 타워 등 세계적인 건축가가 만든 고층 빌딩과 고급 쇼핑몰이 모여 있는 홍콩 센트럴 지역에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가 만든 새 랜드마크 빌딩 ‘더 헨더슨’이 등장했다. 홍콩을 상징하는 보히니아 꽃봉오리에서 영감을 얻은 곡선 형태가 특징인 이 빌딩에 크리스티 아시아태평양 본사가 확장, 이전했다. 첫 경매를 시작한 현장을 26일 찾았다. 크리스티 홍콩은 더 헨더슨에서 4645㎡(약 1405평) 규모 4개 층 공간을 사용한다. 이 중 2개 층은 경매장과 전시장으로, 1개 층은 고객 전용 공간으로 사전 예약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다. 전시장은 과거 홍콩 컨벤션 센터를 임대해 열었을 때보다 작은 규모였지만, 과거에는 고미술부터 근현대 미술은 물론 보석, 럭셔리도 한 번에 경매가 열렸다면 이번엔 20/21세기 미술과 도자기 경매만 열렸다는 점이 다르다. 전시장에서는 홍콩 도심이 보이는 채광창이 있는 공간도 마련됐고, 크리스티 뉴욕에서 경매 예정인 데이비드 호크니,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포함된 미카 에르투건 컬렉션도 일부 관람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날 이브닝 경매에 출품 예정인 모네의 ‘수련’과 빈센트 반 고흐의 ‘정박한 배’를 보기 위해 컬렉터뿐 아니라 작가, 젊은 세대 관람객도 눈에 띄었다. 크리스티 관계자는 “22일부터 26일까지 프리뷰 기간 동안 1만2840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고객 전용 공간에서는 예술 서적을 열람하거나 경매에 나온 와인, 핸드백, 시계와 부동산 정보까지 볼 수 있었으며, 공개 경매가 아닌 프라이빗 세일로 판매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도 걸려 있었다. 크리스티 아시아 지역 총괄 사장인 프랜시스 벨린은 “새 본사에서 가장 기대되는 점은 전시, 행사, 경매를 1년 내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 직원들까지 같은 공간에서 함께할 수 있으며, 경매는 물론 교육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예술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는 개관 경매에 모네, 고흐, 김환기 등 고가의 작품을 구매자가 확보된 3자 개런티(경매사가 아닌 제3자가 낙찰가를 보증해주는 형태)로 출품하고 불황인 만큼 동시대 작가보다 블루칩 작품에 집중하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다. 경매 결과 모네의 ‘수련’(2억 홍콩달러, 약 339억9700만 원), 반 고흐의 ‘정박한 배’(2억1500만 홍콩달러, 약 365억4700만 원), 김환기의 ‘9-XII-71 #216’(4600만 홍콩달러, 약 78억1940만 원) 모두 큰 경합 없이 추정가 하단에 낙찰됐지만 모네와 고흐는 아시아 경매에서 작가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날 ‘20/21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 낙찰 총액은 10억4000만홍콩달러(약 1750억 원)로 지난해 하반기(10억5000만 홍콩달러)와 비슷했고 올해 상반기(9억6300만 홍콩달러)보다는 높았으며 낙찰률은 93%였다. 벨린 사장은 “상반기 경매에서는 하반기 헨더슨 이전 프로젝트가 있었고, 고객들도 새 본사에서 작품을 출품하고 싶어 해 예년보다 떨어질 수 있지만 하반기에 더 좋은 결과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10월 럭셔리, 11월 고미술 경매도 아직 출품작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중요한 소장품을 확보해 자신 있다”고 말했다.홍콩=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