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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일본 열도 너머로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9월 23일 밤. 미군 B1-B 폭격기 2대가 호위 전투기들과 공중급유기, 특수전기 등 10여 대를 이끌고 동해로 진입했다. 폭격기 편대는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한 뒤 그대로 북상해 풍계리 근처까지 동쪽 공해상을 2시간 가까이 휘젓고 다녔다. 미군의 공개 작전으론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NLL을 넘은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북한 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폭격기 편대가 떼로 몰려와 북한 영공을 넘보는 상황이었는데도 전투기 대응 출격은커녕 레이더 조준조차 없었다. 북한 방공망이 작동하지 않았거나 그 위력에 놀라 그저 지켜만 봤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북한은 뒤늦게 사실상 ‘선전포고’라고 온갖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이후 두 달 넘게 미사일 도발을 멈췄다. 북한은 지난주 한바탕 도발을 벌인 뒤 ‘순항미사일 2발을 울산 앞바다에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미 정찰자산에 전혀 포착되지 않은 터라 상투적 기만전술이거나 시도했더라도 실패한 작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내놓은 데는 눈 뜨고 당했던 5년 전의 치욕을 씻어야 한다는 북한군 수뇌부의 중압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의 도발 공세는 5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한미 연합훈련을 맹비난하면서도 정작 미군 전략자산이 전개되면 숨죽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보복’ 운운하며 겁 없고 간 큰 도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핵 보유의 자신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과거 도발이 개발·시험 차원이었다면 이젠 실전에의 적용, ‘전술핵 운용’ 차원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북한은 “감히 우리를…”이라며 실제 핵보유국처럼 거침없이 행동하고 있다. 격화된 신냉전 정세도 북한의 객기를 부추겼다. 북한은 공공연히 중국 러시아와의 “전략 전술적 협동”을 들먹인다. 잇단 도발에도 대북 추가 제재는커녕 기존 제재조차 무력해지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중-러는 규탄을 할지언정 제재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이제 굳이 핵실험 카드까지 쓸 필요가 있을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 북한은 긴장을 최고조로 높인 뒤 대화 국면으로 극적인 전환을 꾀하곤 했다. 그런 도발-협상 패턴에 익숙한 한미 조야의 일각에선 도발의 정점 이후를 대비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워싱턴에서 북한과의 군비통제 협상론이 나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비핵화는 물 건너갔고 핵보유라는 현실을 외면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이다. 하지만 북한은 불법으로 핵무장한, 그것도 죄질이 매우 나쁜 깡패국가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핵을 보유한 다른 탈법국가와 달리 핵개발을 위해 NPT에 가입했다가 불법행위가 들키자 탈퇴한 유일한 나라다. 깡패를 신사로 대접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커지는 위험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다. 앞으로 북한을 다루는 일은 길고 고단한 여정이 될 것이다. 당장은 북한이 핵 도박을 벌이지 못하도록 군사적 억제력을 과시하면서 그 생존능력을 끊임없이 시험해 지쳐 쓰러지거나 제풀에 꺾여 대화에 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억제(deterrence)의 두 축은 위협(threat)과 보장(assurance)이다. 군사적 경고와 함께 외교적 노력도 함께 가야 한다. 한미 간 엇박자가 없도록 공동의 대북 억제전략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시진핑의 부상은 다름 아닌 ‘이념적 인간’의 귀환이다.”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는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시진핑의 세계관(The World According to Xi Jinping)’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이 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머릿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마르크스주의적 민족주의’가 어떻게 통치이념으로 작동하며 중국 사회 전반을 바꿔놨는지 분석했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교관 출신으로 곧잘 친중(親中) 논란에도 휘말렸던 러드 전 총리다. 시진핑이 지방도시 부시장일 때 처음 만나 교류를 이어왔고 최근엔 옥스퍼드대에서 시진핑 사상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누구보다 중국을 잘 안다는 그는 어쩌면 뻔할 수 있지만 흔히 간과돼 온 시진핑의 사고 체계, 그것도 오래전 사멸했다고 여겨진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데올로기에 주목했다. 덩샤오핑이 1981년 “이념 논쟁은 집어치우라(不爭論)”라고 일갈한 이래 중국은 비(非)이념의 실용주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시진핑은 낡은 공산주의 교리를 부활시켜 중국을 통치하는 이념적 토대로 삼았다. 그런 이념은 정치에선 사회 구석구석 공산당의 통제를 강화하는 레닌주의 좌파, 경제에선 국유기업을 되살리고 민간 영역에까지 제한을 가하는 마르크스주의 좌파, 외교에선 공격성을 노골화하는 민족주의 우파 정책으로 나타났다. 시진핑은 역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사회주의 중국의 발전이 자본주의 미국의 쇠퇴를 수반한다며 역사는 중국 편에 있다고 강조한다. 중국의 승리는 필연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역사의 종언’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상 아래 공산당은 규율과 교리의 전위대가 됐고, 개혁개방 경제는 국가 통제에 자리를 내줬다. 외교마저 ‘늑대전사’의 무대가 됐다. 향후 시진핑 체제에 대한 러드의 전망은 암울하다. 시진핑은 올해 69세. 그의 어머니는 96세이고 그의 아버지는 89세까지 살았다. 가족의 장수를 감안하면 시진핑은 그 직함이 뭐로 바뀌든 2030년대 후반까지 최고지도자로 남을지 모른다. 러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중국이 이념적 프리즘으로 국제 정세까지 평가할 위험성이다. 즉 역사는 중국 편이라는 결정론에 입각해 무력 충돌도 불사한다는 무모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 러드는 중국 문제라면 빠지지 않는 단골 논객으로 중국의 강압적 행태를 거세게 비판해 왔다. 다만 서방의 거친 공세에 대해서도 “불에 기름을 부어선 안 된다”며 ‘관리된 전략 경쟁’을 제안한다. 외교 경제 이념적으론 치열하게 경쟁하되 군사적으론 명확한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패권국과 도전국 간엔 불가피하다는 ‘예정된 전쟁’에 대응해 러드는 ‘피할 수 있는 전쟁(The Avoidable War)’이란 책도 냈다. 하지만 미중은 충돌 쪽으로 한 발 더 나가고 있다. 지난주 미국 백악관은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통해 “탈냉전의 시대는 확실히 끝났다”고 선언했다. 신냉전 개시, 봉쇄전략 가동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군사 경제 기술 전 분야에 걸친 전략경쟁은 이미 한창 진행 중이다. 그 모든 격전지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이념전쟁이다. 전방위 대결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적 공급망 분리는 당장 한국에도 탈(脫)중국시장을 강요하고 있다. 이젠 출혈을 최소화하는 출구 전략도 강구할 때다. 사실 한중 이념전쟁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6·25전쟁을 두고 “항미원조의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했던 시진핑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이른바 ‘페리미터(Perimeter)’ 시스템은 냉전기 소련이 극비리에 운영했다는 자동 핵 반격 기계다. 그 실존 여부를 두고선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수뇌부가 외부 공격으로 무력화되거나 통신 두절 사태가 나면 지진과 방사능, 광선, 기압 계측을 통해 핵 피격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전면 핵보복을 수행하는 장치다. 사람의 개입 없이 인류 절멸로 몰아가는 전자동 기계, 그래서 ‘죽은 손(Dead Hand)’이라고도 불린다. 북한이 이달 초 공표한 ‘핵무력 정책’ 법령은 소련식 핵전쟁 기계의 북한판이라 할 수 있다. 법령은 핵무기에 관한 김정은의 독점적 결정권을 명시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국가핵무력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 김정은의 생명이 위협받으면 곧바로 공멸(共滅)의 ‘물귀신 기계’가 가동된다는 협박이다. 북한의 이런 극단적 위협은 예견된 일이다. 수령 1인 독재국가에서 국체(國體)라는 핵무기도 유일영도체계를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령이 사라지면 핵무기도 작동 불능에 빠지게 되니 자동기계 같은 보완 장치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새 법령은 김정은을 보좌하는 ‘국가핵무력지휘기구’를 명시했지만 구성과 운영 등 모든 것을 베일 속에 감춰뒀다. 그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위협감소국(DTRA)이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 ‘북한의 핵지휘통제(NC2): 선택지와 시사점’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보고서는 북한이 채택할 수 있는 NC2 시스템으로 △독단적 자동작동(automaticity) △정치적 차원의 권한 이양(devolution) △군사적 차원의 재량권 위임(delegation) △조건부 사전위임(pre-delegation) △무기 유형별 혼종(hybrid) 체계 등 다섯 가지 모델을 제시한다. 보고서는 자동작동 모델에 무게를 두면서도 다른 선택 가능성을 함께 점검한다. 수령 유일체제에서 ‘2인자’란 존재가 있을 수 없고 군부 역시 잦은 숙청과 물갈이 대상이 되는 북한이다. 하지만 내밀하게 여동생 김여정이나 최측근 조용원 최룡해에게 권한을 부여하거나 군사작전의 즉응성을 높이기 위해 야전부대에 위임할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 유형에 따라 다원적 지휘체계를 가동할 가능성에 보고서는 주목한다. 전략핵은 김정은의 독점적 통제 아래 두면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전략사령부에, 전술핵은 포병사령부에 위임하는 식이다. 권한 위임은 우발적 핵사용과 확전의 위험성을 더욱 높인다. 새 법령이 ‘작전적 사명’ ‘작전상 필요’를 언급한 대목은 심상치 않다. 그렇다면 한미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략적 안정성 제고를 위한 대북 메시지 발신이 필요하다. 어떤 핵무기의 사용도 체제의 절멸을 낳을 것임을 경고해야 하지만, 선제타격을 공언하는 것은 김정은의 발작적 충동과 권한 위임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전문가들도 일찍이 참수작전이나 킬체인, 대량응징보복 같은 과잉 레토릭을 경계해왔다. 가공할 핵무기를 둘러싼 전략게임은 생존과 멸망의 딜레마 속에서 상대를 발끈하게 하거나 겁먹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미국 본토를 전략핵으로, 휴전선 남쪽을 전술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맞설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북한이 위험천만하게 날뛰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미가 확장억제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세계 첫 핵실험의 거대한 폭발을 지켜본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관제소 안 기둥을 붙들고 힌두교 경전의 구절을 떠올렸다. “천 개 태양의 빛이 하늘에서 일시에 폭발한다면, 그것은 전능한 자의 광채와 같으리라.” 하지만 뒤이어 그의 머릿속에 들어온 다른 구절은 이랬다.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된다.”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은 전율과 경외를 부르지만, 그것이 가져올 참상은 경악과 공포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핵은 우리의 국위이고 국체이며 공화국의 절대적 힘이고 인민의 크나큰 자랑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정의한 북한 핵무기의 위상이다. 한때 ‘만능의 보검’이라 불리던 핵무기는 어느덧 ‘국위이자 국체, 절대권력’이 됐다. 흔히 주권을 누가 가지느냐에 따른 국가 형태를 국체(國體)라 하는데, 이제 북한은 인신(人神)인 독재자 수령에 더해 물신(物神)인 핵무기까지 숭배하는 핵·수령 일체국가가 됐다. ▷북한은 국가 법령으로도 핵이 곧 김정은임을 거듭 천명했다. 새 법령은 ‘핵무력은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하며,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핵무력 지휘통제 체계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밝혔고, 5가지 핵 사용 조건을 통해 핵공격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 그게 오판이든 변덕이든 김정은의 결심에 따라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핵무기 운용 체계를 만든 것이다. ▷북한 핵무기는 이제 할아버지의 주체사상, 아버지의 선군정치를 뛰어넘는 김정은의 위업이 됐다. 더욱이 모래탑 같은 선대의 사상적 업적과 달리 김정은이 만들어낸 것은 핵탄두와 미사일이라는 유형의 실체가 있는 성과물이다. 당장 휴전선 너머 같은 민족은 물론 멀리 바다 건너 강대국까지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을 부정하는 유물론 국가임에도 사교집단 같은 광신적 수령 숭배와 가혹한 감시·억압으로 지탱되는 체제에선 앞으로 핵 숭배를 위한 법제화를 넘어 각종 교리와 상징체계, 비의(秘儀)까지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은 일찍이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미국을 위협했다. 이에 전임 미국 대통령은 “내겐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며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비록 ‘말폭탄’이었지만 예측불허의 지도자 손에 쥐어진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을 불렀다. 머지않아 김정은에게도 미국과 러시아처럼 늘 곁에 묵직한 핵가방이 따라붙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위험한 핵전쟁 격발장치는 외려 정권의 자폭장치가 될 공산이 크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2025년 1월 18일. 미국은 새 대통령 취임을 이틀 앞뒀지만, 민주 공화 두 후보가 각기 승리를 외치면서 지지세력 수백만 명은 길거리에서 충돌한다. 그 시각,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대규모 해상훈련을 벌인다. 인민해방군은 공수부대와 상륙부대, 전투기, 탄도미사일을 배치한다. 이런 무력시위는 사실상 정례화한 지 오래다. 첩보위성으로 심상찮은 동향을 지켜본 미국 정보기관도 늘 하던 힘자랑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틀렸다. 이튿날 중국군 미사일이 대만의 공항과 정부 건물, 군사 시설, 오키나와와 괌의 미군기지를 일제히 타격한다.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도 직격탄을 맞는다. 이미 침투한 중국 특수부대는 대만 지도부를 제거하고, 급기야 대대적인 상륙작전이 시작된다. 백악관 참모들은 병상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제2차 대전 이래 가장 큰 전쟁을 감수하지 않는 한 막기 어렵습니다.” 당장 추가 전력 투입엔 며칠이 걸리고, 중국의 에너지·식량 수입을 봉쇄하는 ‘목 조르기’엔 몇 달이 필요하다.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저위력 핵무기 공격. 한데 그것은 대만의 파멸, 미국과 중국 모두에 재앙일 뿐이다. 미국의 지정전략가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베클리의 신간 ‘위험지대(Danger Zone)’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상한 최악의 위기 시나리오로 시작한다. 두 저자는 중국의 무력 도발이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바로 임박한 위험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도발적 문제제기의 토대는 이른바 ‘정점을 찍은 강대국의 함정(peaking power trap)’ 이론이다. 신흥강국에 대한 패권국의 두려움이 전쟁을 낳는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살짝 뒤집은 논리다. 국력이 정점에 오른 중국(피크 차이나·peak China)은 야망과 좌절의 교차로에 섰다. 심각해지는 성장 둔화, 급속한 노령화와 노동인구 축소, ‘늑대 외교’가 초래한 적대 국가들…. 이젠 쇠락을 걱정하며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불안과 초조가 지배한다. 1914년 독일과 1941년 일본, 그리고 올해 러시아가 무력 도박을 감행했듯이 중국도 바로 강대국 성쇠 주기의 가장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지금까지의 중국 위협론이 ‘100년의 마라톤’ ‘롱 게임’처럼 치밀한 전략경쟁을 주문하는 것이었다면 ‘피크 차이나’ 위기론은 당장이라도 닥칠 패권 충돌에 대비하라는 경보음이다. 그렇다고 그 처방이 크게 다르진 않다. 대만에 대한 군사지원과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 차단, 인터넷의 분리까지 ‘봉쇄정책 2.0’의 가동이다. 이미 미국 행정부가 차근차근 밟아가는 정책 기조인데, 당장 위험지대를 통과하려면 급가속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런 대중 강경론엔 반론도 적지 않다. 다만 중국의 거침없는 팽창과 강압적 행태에 온건론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이처럼 충돌 임박론까지 나오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두려움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넘버2 강대국 중국과 넘버1 핵국가 러시아를 상대로 두 개의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워싱턴 조야를 지배하는 것이다. 미중은 지금 상대의 인내심과 조바심을 떠보며 무력 충돌에도 대비하고 있다. 국제정치는 소수 강대국이 지배하는 과두체제다. 그 냉혹한 무대의 조역일 수밖에 없는 한국은 다가올 위기에 비상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대만해협으로 주한미군이 차출되고 북한이 그 틈을 노린다면, 한국이 미중 전쟁의 후방기지가 된다면…. 우리는 과연 대비하고 있는가.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1985년 3월 54세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오르자 세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원고 없이 연설하고 부축 받지 않고 걷는 소련 지도자의 모습 자체가 신기했다. 소련은 이미 노쇠할 대로 노쇠한 제국이었다. 권력 핵심부터 늙고 병들었다. 불과 3년 사이에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로 이어지는 당서기장 3명을 포함해 지도부가 줄줄이 사망했다. 일찍이 고르비는 지도부의 단체사진을 가리키며 “모두 조만간 밥숟가락을 놓을 분들 아닌가”라고 한탄했다. 안드로포프가 “늙은 말은 밭고랑을 망가뜨리지 않네”라고 타일러도 그는 “작은 도토리가 강건한 상수리나무로 성장하죠”라며 굽히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살 순 없다.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시골 출신의 젊은 야심가 고르비는 달랐다. 소련의 경제적 파탄으로 이미 그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고르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통해 소련 체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해체였다. 한 번 풀린 권력의 실타래를 되감기는 불가능했다. 동구권 국가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고 막강했던 초강대국은 15개 나라로 분리됐다. 그로선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제국의 파괴자’가 된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보수파의 쿠데타, 개혁파의 이반에 따른 희생양이 되어 권좌에 오른 지 7년도 안 돼 굴욕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동서 냉전을 종식시키고 핵전쟁의 공포를 밀어낸 평화주의자로서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고르비지만 국내에선 동구권을 서방에 넘기고 러시아의 몰락을 가져온 배신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1996년 대선에 출마해 얻은 0.5%의 초라한 득표율은 국가적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다시 한 번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했겠느냐’는 질문에도 늘 이렇게 답하곤 했다. “뒤로 물러서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똑같은 길을 갔을 것이다. 더욱 끈질기고 단호하게.”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든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비가 지난달 30일 타계했다. 향년 91세. 실패한 비운의 개혁가 고르비의 몰락 이후 러시아 정치는 보리스 옐친 10년의 혼란과 좌절에 이어 새로운 정치적 괴물을 탄생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련 붕괴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며 옛 소련의 부활을 꿈꾼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두고 고르비는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전쟁의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냉혈한 권력자 푸틴의 앞날은 여전히 진행형인 고르비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지난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재점화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은 곧바로 우리 정치권을 들끓게 했다. 한국 정부가 사드 추가 배치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화를 하지 않는다는 ‘3불(不)’에다 사드 운용을 제한하는 ‘1한(限)’까지 선언했었다는 중국 측 주장에 국민의힘은 “문재인 전 정권의 안보주권 포기”라며 이면합의 여부에 대한 규명을 촉구했다. 대통령실도 “인수인계받은 사안이 없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1한’에 대해선 여당 공세는 번지수가 잘못됐다. ‘1한’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7월 사드 배치를 결정하면서 공표된 내용이다. 당시 한미의 발표문에는 한국에 배치될 사드는 ‘어떠한 제3국도 지향하지 않고, 오직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만 운용될 것(It will be focused solely on North Korean nuclear and missile threats and would not be directed towards any third party nations)’이라고 돼 있다. 결국 ‘1한’의 근원은 박근혜 정부 때 미국과 함께 발표한 동맹 차원의 공동발표에 있었다.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대대적 사드 보복을 무마하기 위해 ‘3불’ 입장을 천명하면서 사드가 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1한’을 주요 협의 의제로 삼은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중국은 이미 2014년부터 미국 MD망의 구성 요소인 사드의 한반도 배치 가능성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사드 배치는 미국이 중국 동북부의 핵미사일 기지를 들여다보며 중국의 핵 억지력을 무력화하려는 노림수라고 본 것이다.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박근혜 정부 역시 미국의 요청도, 한미 간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는 ‘3노(No)’를 내세우다 북한의 잇단 도발에 사드 배치를 전격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외교적 관리는 서툴고 안이했다. 중국은 정작 미국은 제쳐두고 약한 고리인 한국에만 보복을 가했다. 그런데 한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동안 미국은 뒷짐 진 채 침묵했다. 한국은 여러 경로로 미국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정권교체기까지 겹친 미국의 반응은 냉랭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MD용 레이더 배치를 타진해왔던 미국이지만 막상 배치한 뒤 한국이 겪는 곤경엔 나 몰라라 했다. 따지고 보면 중국의 ‘3불’ 요구는 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1한’에 대한 불신에서, 한국의 ‘3불’ 수용은 미국의 방관자적 태도에 대한 실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를 전 정부 최악의 외교 실책으로 보고 북핵 문제가 잘 풀리면 언제든 철수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게 ‘3불’이다. 비록 약속도 합의도 아니라지만 우리 안보의 미래 선택지마저 닫아버린 또 하나의 실격(失格) 외교였다. 윤석열 정부는 그런 ‘굴욕 외교’의 산물을 폐기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 윤 대통령이 대선 때 내건 ‘사드 추가 배치’ 6자 공약도 외교적 고려 속에 슬그머니 접어둔 상황 아닌가. 더욱이 고조되는 미중 간 전략적 긴장 속에 MD 참여나 한미일 군사동맹화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무모한 선택일 것이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대국의 패권경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자강(自强)의 노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긴장으로 세계 각국이, 당장 이웃나라 일본까지 대규모 국방비 증액에 나서는 요즘이다. 한데 한국에선 군비 증강 목소리도 듣기 어렵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주민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지원할 방침입니다.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북한 측과 협의해 나갈 예정입니다.’ 윤 대통령 취임 사흘 만인 5월 13일 나온 대통령실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은 느닷없었다. 전날 북한은 코로나19 발병 사실을 공개하고 단거리미사일 무력시위도 벌였다. 그런 북한에 백신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는 남북 간에 뭔가 긴박한 물밑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나아가 긴장 국면에 뜻밖의 반전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낳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의 시간은 잠시였다. 뒤이어 나온 설명은 아직 북한에서 어떤 연락이 온 것도, 우리가 어떤 제안을 한 것도 아닌 원론적인 입장을 정리한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 정부의 코로나 지원 제안은 실무접촉을 갖자는 우리 측 통지문에 대해 북한이 끝내 접수 여부조차 밝히지 않으면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담대한 계획’이 조만간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세부 내용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그 기조나 방향을 정립해 가는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지난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단계별로 제공할 수 있는 대북 경제협력 및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선 ‘경제 지원뿐 아니라 북한의 안보 우려까지 고려’ ‘선(先)비핵화 또는 빅딜식 해결이 아닌 단계적 동시적 이행’이 주요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핵화 정책의 진화와 발전을 도모’한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새 정부 대북 기조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부 내에선 어떤 대단한 아이디어가 논의되는지 모르지만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미국도 그간 대북 협상 과정에서 밝혀온 해결 방식들이다. 그러니 새 정부가 이제 공부를 좀 해보니 특별한 길은 없음을 깨달았다고 실토한 것으로 읽힐 뿐이다. 권 장관은 “북한이 핵을 더는 개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준의 담대한 내용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그 내용은 둘째 치고 ‘담대한 계획’이란 용어 자체에 북한이 아쉬워지면 손을 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가. 권 장관은 그제 국회 답변에서 이런 말도 했다. “북한이 얘기하는 ‘안보 우려’가 허구의 것이라고 보지만, 그래도 북한이 주장하는 부분을 다뤄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새 정부 대북정책이 이명박(MB) 정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MB는 누구 못지않게 대북 제안에 열심이었다. 8·15 광복절 등 때마다 ‘비핵 개방 3000’ 구상을 가다듬은 제안을 내놓았다. 북핵 폐기와 안전보장, 경제지원을 일괄 타결하자는 ‘그랜드 바겐’도 천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몇 차례 북한과의 비밀접촉이 이뤄졌음에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지 못했고, 천안함과 연평도로 대표되는 북한 도발과 대북 관리 실패로 기억될 뿐이다. 아무리 담대한 계획도 북한이 외면하는 한 생색내기용 제안이 될 수밖에 없다. 거창한 이름 아래 일단 던져놓고 보자는 식의 이벤트성 제안은 또 다른 관리의 실패를 낳을 수도 있다. 북한이 대형 핵 도발을 위협하는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북한을 어떻게 상대하면서 충동을 제어할 것이냐는 현실적 전략과 접근법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시절 미국과 일본에 파견된 정책협의단은 새 정부 출범 즉시 한미일 정상 간 연쇄 회담을 통해 3각 공조체제를 신속히 복원한다는 파격적인 구상을 추진하려 했다. 윤 대통령 취임식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축하사절로 참석하고 열흘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 이어 한미 정상이 나란히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으로 간다는 그럴듯한 그림이었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핵실험까지 점쳐지던 때라 북핵에 맞선 3국 정상 간 연대를 적시에 과시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국내 한 싱크탱크가 주최한 한일관계 세미나에서 나온 전문가의 아이디어가 단초가 됐지만, 실제로 정책협의단은 무척 열의를 갖고 미일 양국에 이 구상을 제시했다. 미국은 전적으로 찬동했고, 일본도 꽤나 솔깃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연쇄 이벤트의 시작이 기시다 총리의 방한이라는 점, 즉 일본이 먼저 물꼬를 트는 모양새는 곤란하다는 일본 측의 망설임이 발목을 잡았고, 한일 속도전 외교구상은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참의원 선거를 앞둔 기시다 정권으로선 당장 손에 쥐는 것 없이 손부터 내미는 것은 정치적 자살골이나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그 구상이 도로(徒勞)로 끝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달 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무대에서 한일 정상 간 짤막한 대화와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성사되면서 얼추 비슷한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한일 정상이 정식회담도 열지 못하는 마당에 한미일 연쇄 이벤트 구상은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드러났지만, 어쨌든 한일 두 정상은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속도감 있게 관계를 진전시키자는 이심전심을 확인했다. 그런 기류 때문인지 한일 정관계의 관계복원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게 사실이다. 한국 정책협의단과 일본 축하사절단의 방문에 양국 정부는 과공(過恭)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큼 각별히 대우했다. 일본 측 인사들은 윤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에 놀랐다며 “그 전향적 태도에 진심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이런 양국 상층부의 열기가 과연 한일관계의 급진전으로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도 컸던 과거 사례들을 돌아보면 이번에도 속도전이 오히려 급제동과 후퇴를 낳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당장 일본이 한국 측에 해법을 요구하는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독도 영유권, 동해 표기, 역사교과서까지 한일관계는 매년 때가 되면 혹은 언제 불쑥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의 연속이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10일 참의원 선거 이후엔 일본의 자세가 달라질까. 자민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지만 그런 결과는 한일관계의 미래 전망을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선거의 최대 이슈는 방위비 대폭 증액과 평화헌법 개정이다. 일본 보수우파는 격화되는 신냉전 대결 기류를 타고 한층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차제에 세계 3위의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강국으로 가자는 기세다. 과거를 잊은 일본이 세계 3강의 군사대국으로서 중국에 맞선 미국의 동북아지역 대리인으로 떠오른다면, 한국은 그런 이웃나라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일본이 앞장서는 지역안보체제에 한국은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인가. 한일관계 개선은 필요하고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조급해선 안 된다. 동북아 안보질서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까지 내다본 전략적 고민과 함께 풀어가야 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지난 일요일 북한이 서해로 방사포 5발을 쐈다는 사실을 군 당국이 10시간 뒤에나 공개한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국가안보실은 앞서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응하는 새 정부의 3원칙 중 첫 번째로 “발사체가 미사일인지, 방사포인지, 탄도미사일인지 정확히 밝히겠다”고 했다. 그랬던 정부가 잇단 미사일 도발에 핵실험 임박설까지 나온 민감한 시기에 북한의 군사동향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자초했다. 윤석열 대통령 말대로 “미사일에 준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알리고 영화 관람도 갔다면 됐을 텐데 말이다. 물론 북한이 뭐든 쏘면 무조건 “도발”이라며 맞대응할 일은 아니다. 특히 방사포(다연장로켓)는 야포와 미사일 사이에 있는, 그 경계가 애매한 무기체계다. 대부분 휴전선 인근에 배치돼 서울 등 수도권을 기습 공격하기 위한 것인데, 신형 초대형 방사포는 화력이나 사거리에서 웬만한 탄도미사일을 능가한다. 이번 방사포는 사거리가 짧은 구형이어서 호들갑 떨 일은 아니었다지만, 전임 정부와는 다르다던 새 정부로선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 그런데 정작 주목할 대목은 윤 대통령의 대응이 이전과 크게 달랐다는 점이다. 북한은 새 정부 출범을 50일 앞두고도 방사포 4발을 쐈다. 당시 윤 당선인은 특유의 상기된 톤으로 “방사포는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 아닙니까? 명확한 위반이죠?”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뿐이 아니다. ‘합의 위반은 아니다’는 국방부를 향해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우리 국민 머리 위로, 우리 영공을 거쳐서 날아갔다면…”이라며 있지도 않은 ‘영공 침범’을 거론했다. 그 위세에 국방부는 입을 다물었고, 그렇게 넘어갔던 논란이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다. 대선후보 시절 9·19 군사합의 폐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던 윤 대통령이다. 그래서 취임 후 9·19 합의는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사실 그 합의는 ‘안보 포기 서약’이라는 보수의 공세 대상이었고 북한의 파기 위협으로 이미 사문화됐다는 평가도 많다. 다만 그것이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는 완충장치 역할을 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새 정부가 “폐기는 아니다”라고 밝힌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무력시위를 넘어 북한이 노릴 지점도 9·19 합의에 완충지대로 설정된 휴전선과 북방한계선(NLL) 일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일찍이 ‘가치와 국제규범, 법치에 기반을 둔 외교관계’를 내세웠다. 그런 칸트식 이상론이 무정부적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국제 현실에서,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한반도 현실에서 얼마나 통할지 의문이다. 가치와 규범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외교안보에서까지 범죄자 단죄하듯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동맹과 그 진영을 향한 잘 뚫린 길을 내달리기는 쉽다. 하지만 그에 따른 마찰과 파열을 이겨낼 힘은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작금의 북한 핵·미사일 폭주는 5년 전 문재인 정부 초기 때와 판박이다.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정부의 수단이나 방법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 정부가 “말이 아닌 행동”을 내세우며 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지만, 달라진 말투 외에 달리 뾰족한 대안이 있을까. 윤 대통령으로선 국가안보를 책임진 자리의 무게, 나아가 녹록지 않은 현실을 실감하는 요즘일 것이다. 면밀한 현실 진단과 대응, 그 반작용까지 내다본 전략적 고투가 필요하다. 외교안보는 겪으면서 배울 수 있는 실전공부가 아니다. 9수는커녕 재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더할 나위 없이 죽이 잘 맞았다던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두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에선 묘한 불일치가 눈에 띄었다.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간 ‘북한 비핵화’냐 ‘한반도 비핵화’냐를 놓고 벌어졌던 논란을 다시 소환하는 대목이다. 한미 정부가 초안과 수정안을 몇 차례 주고받은 끝에 나온 공동성명의 문구는 그동안 남북, 북-미, 한미 간 합의된 용어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였다. 하지만 새 정부 주요 인사들이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와 다름없다며 비난했던 게 ‘한반도 비핵화’다. 정부 여당이 야당 시절 견지해오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가역적 비핵화(CVID)’도, 인수위원회에서 다소 완화했다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CVD)’도 이번에 반영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굴종적 대북자세’를 비판하며 출범한 윤 대통령이 바이든과 달리 굳이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전임 정부의 정책적 흔적을 지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도 한미 간 조율 과정의 견해차를 부인하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워낙 준비시간이 촉박해 일단 기존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미국도 우리 입장에 공감하는 만큼 앞으로 나올 문서에는 ‘북한 비핵화’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한미 공동성명에는 새 정부의 달라진 대북전략 기조를 반영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1년 전 문재인-바이든 공동성명에 담겼던 한반도 비핵화의 다른 한 축, 즉 평화 프로세스에 관한 내용도 모두 사라졌다. 남북 ‘판문점 선언’과 북-미 ‘싱가포르 성명’ 언급이 빠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웠던 ‘외교적 모색을 위한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법’도 빠졌다. 오히려 이틀 뒤 일본에서 나온 미일 공동성명에 “두 정상은 ‘정교한 외교적 대북 접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는 표현으로 반영돼 있는 것과 대비된다. 사실 이번 바이든의 첫 아시아 순방은 온통 중국 견제에 맞춰졌다. 그러다 보니 북핵 이슈는 묻혀버린 모양새였다. 오직 관심은 북한이 바이든 순방이란 도발의 최대 찬스를 어떻게 노릴지에 쏠려 있었다. CNN은 바이든 출발 이틀 전에 향후 48∼96시간, 즉 방한 기간에 맞춰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도발이 일어날 진짜 가능성, 실제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바이든이 한국 일본에 머물던 5일 동안 잠잠하면서 그저 호들갑으로 끝나나 싶었는데, 결국 북한은 귀국길에 오른 바이든의 뒤통수를 향해 미사일 3발을 쏘아 올렸다. 이제 북한이 언제 뭘 쏴도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 됐지만, 이미 준비를 마쳤다는 7차 핵실험이나 일본열도를 넘어 태평양을 향하는 미사일 도발은 북한이란 ‘시한폭탄’을 다시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북한은 2017년 ‘화염과 분노’의 시절보다 더욱 대담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세계적인 신냉전 대결 기류를 틈타 중국 러시아의 등 뒤에 재빨리 올라탄 북한이다. 이런 북한의 폭주를 막을 수단은 많지 않다. 유엔의 대북제재 기능마저 마비된 터에 강력한 경고와 응징 능력 과시가 북한에 얼마나 먹힐까. 도발을 관리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도 외면해선 안 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저는 격노 잘 안 하고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퇴임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재임 기간에 종종 대변인 브리핑이나 참모진 전언을 통해 자신의 노여운 심기를 드러내곤 했다. 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그 노여움을 드러낸 것은 취임한 지 20일 만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가 비공개로 국내에 추가 반입된 사실을 보고받고 “매우 충격적”이라며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국방부가 국민도 모르게 일을 진행했고 의도적으로 보고까지 누락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선 하극상이니 국기문란이니 격한 반응도 나왔다. 결국 실무자 문책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그것은 이제 새 정권이 들어섰으니 대외정책도 확실히 바뀔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를 최대의 외교적 실패로 봤다.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과 한한령(限韓令·한류 수입 금지), 외교관계의 사실상 단절까지 낳은 패착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새 정부의 차별성을 보여줄 기회로 여겼다. 그래서 곧바로 중국과의 사드 사태 해결에 매달렸다. 그로부터 5개월 뒤 나온 것이 이른바 ‘3불(不) 입장’이었다. 사드 철거를 요구하는 중국과의 협의는 순조롭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는 ‘중국 측은 자신들의 우려를 천명했고 한국 측은 그간 밝혀온 입장을 다시 설명했다’는 협의 내용을 발표하고, 외교부 장관이 국회에서 사드 추가 배치와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과 합의하거나 약속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외교적 타협 방식은 사실 30년 전 한중 수교 때도 있었다. 수교 협상의 난제는 과거사 문제였다. 한국은 중국군의 6·25전쟁 개입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거부했다. 결국 중국 측이 ‘6·25 참전은 중국 국경지대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고 이는 과거에 있었던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우리 정부가 공개하는 것으로 협상은 타결됐다. 중국은 “사과한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어쨌든 문재인 정부는 ‘굴종외교’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한중관계 복원에 나섰는데도 결과는 갈등의 봉합에 그쳤다. 이후 중국은 마치 시혜라도 베풀 듯 한한령을 찔끔찔끔 풀면서 한국을 관리했고, 한국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통한 관계 정상화를 기다렸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중국에 끌려 다녔다. 윤석열 새 정부의 대(對)중국 기조는 크게 다를 것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때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했고, MD 참여나 한미일 군사동맹 가능성도 열어뒀다. ‘전략적 동반자’라는 공식적 관계가 격하(格下)되지는 않겠지만 실질적 관계의 이격(離隔)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대선 이후 당선인 측의 언급은 신중해졌다. 중국에 당당히 맞설 배짱도 필요하지만 우선 우리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는 현실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내건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새 정부의 지향점 앞에 중국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름 뒤 방한하는 미국 대통령에게는 첫 아시아 순방지로서 ‘중국 견제’ 연설을 위한 멍석도 깔아준 상황이다. 그러니 한국의 정권교체를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게 러시아와 북한의 불법무도는 방관하면서 주변국에는 치졸한 보복과 겁박, 오만방자한 외교로 일관하던 중국의 자업자득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올 들어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을 비교해보면 그 궤적이 묘하게 일치한다. 러시아가 1월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는 동안 북한은 주로 단거리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2월 들어 베이징 겨울올림픽 기간엔 러시아도 북한도 숨을 고르듯 멈췄고, 러시아가 2월 말 침공을 감행하자 북한도 기다렸다는 듯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연달아 쏘아 올리며 무력시위를 재개했다. 그러다 러시아가 침공 한 달 만인 지난달 25일 ‘1단계 목표 달성’을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자 북한도 ‘신형 ICBM 성공’을 선언한 뒤 3주 가까이 잠잠하다. 이제 러시아군은 병력을 보강 재정비하며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준비하고 있고, 북한은 풍계리 갱도를 복구하며 7차 핵실험을 위협하고 있다. 마치 시간표를 맞춘 듯한 북-러의 군사 행로를 보면 양국이 군사계획을 주고받으며 움직이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앞으로 진행될 러시아의 총공세와 북한의 핵 도발을 지켜보면 그것이 북한의 기회주의적 숟가락 얹기인지, 아니면 사전 조율 아래 이뤄지는 공동 작전인지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강도 도발과 협상 전환, 장기 교착으로 이어진 북한의 지난 5년 대외 행보에서 김정은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중국 러시아와의 유대관계 복원이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주최하는 국제행사 때마다 대형 도발로 중국을 화나게 했던 ‘사고뭉치’ 김정은은 남북, 북-미 회담 전후로 늘 시진핑을 찾으며 공을 들였다.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은 북-미 하노이 결렬 뒤에야 열렸지만 이후 러시아는 대북제재 완화를 앞장서 주창하는 후견인이 됐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주변부로 밀려난 러시아와 북한은 현 국제질서의 변경을 위한 모험주의적 공생(共生)을 꾀하고 있다. 특히 거악(巨惡) 러시아에 묻어가는 소악(小惡) 북한의 날쌘 행보가 두드러진다. 북한은 러시아 침공 초기 유엔총회의 규탄 결의안 표결에 중국이 기권했는데도 반대표를 던졌다. 러시아의 무기 지원 요청에 중국은 거절했지만 북한은 수락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북-러의 도발은 이미 1단계부터 그 밑천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점령과 젤렌스키 정권 교체가 어려워지자 당초 목표를 수정해야 했고, 북한도 신형 ICBM의 실패를 덮기 위해 과거 영상을 짜깁기하는 꼼수까지 부렸다. 북-러 도발이 부른 역풍은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은 핀란드 스웨덴 같은 중립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편입을 부추기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그간 나토 가입에 부정적이던 국민 여론이 급변하면서 정부 차원의 공식 절차에 들어갔고 나토도 신속 처리를 약속했다. 북한이 ICBM에 이어 핵 도발까지 감행하면 한국 일본의 전술핵 배치 등 핵무장론에 불길을 댕길 것이다. 그러면 중국도 북한과의 손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푸틴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10년 전쟁은 제국의 몰락과 미소 양극체제의 붕괴를 재촉했고, 미국의 아프간과 이라크 20년 전쟁은 유일 초강대국 지위의 쇠퇴를 불렀다. 미국이 한사코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을 담그지 않으려 하고, 중국이 멀찌감치 러시아 뒤편에서 지켜보는 이유다. 호기롭게 시작한 북-러의 삽질이 제 무덤 파기로 판명되기까지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세계 최고로 쳐주는 영화상인 아카데미 시상식은 대략 3시간 반가량 이어진다. 시상식 시청률은 비스포츠 생방송 중계 프로그램 중엔 가장 높다지만 최근 몇 년간 급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상식 시간을 줄이거나 주목도가 덜한 시상을 생중계 전에 배치하기도 했지만 하락 추세는 막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94번째 시상식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중계사인 ABC방송의 잠정치에 따르면 시상식을 지켜본 미국 시청자는 1536만 명. 최악이던 작년의 985만 명보다 56% 늘었다. 그 현장에서 벌어진 초유의 폭행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배우 윌 스미스가 자기 아내의 탈모 증상을 농담의 소재로 삼는 코미디언 시상자에게 격분해 무대로 뛰어 올라가 뺨을 후려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가족의 아픔을 건드린 것에 자제력을 잃었다지만 폭력 행사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기 어렵다. 스미스는 당국의 처벌과 남우주연상 박탈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끝없이 추락하던 아카데미가 드디어 이제 갈 데까지 갔다는 혹독한 평가들이 줄을 잇는다. 한편으로 올해 시상식이 그 어떤 작품이나 배우, 감독이 아니라 ‘역대 가장 추악한 오스카의 순간’으로 기억될지 모른다며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카데미상은 몇 년 전까지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비판받았다. 그런 따가운 시선에 아카데미도 변하기 시작했다. 재작년 한국 영화 ‘기생충’의 4관왕, 작년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도 그런 변화의 산물이었으리라. 아카데미는 올해 여성과 비백인, 성소수자, 장애인을 모두 무대에 불러올렸다. 특히 청각장애 부모를 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코다(CODA)’는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3관왕을 차지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플러스를 통해 출시된 작품이다. 감독상을 받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파워 오브 도그’와 함께 스트리밍 서비스의 대세화, 할리우드가 지배하던 극장영화의 쇠락을 보여준다. ▷과거 할리우드는 장애인을 연기하는 비장애인에게 상을 줬지만 이번엔 달랐다. 청각장애인 트로이 코처의 남우조연상 수상은 그래서 빛났고, 그 시상자로 나선 윤여정의 수어(手語)는 더 큰 감동을 줬다. 윤여정은 수상자 호명에 앞서 수어로 “축하한다”고 표현했고, 관객들도 박수 대신 양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축하했다. 윤여정은 코처가 수어로 소감을 밝히는 동안 대신 트로피를 들고 곁을 지켰다. 누군가의 고통을 희화화한 코미디언, 분노에 찬 폭력을 행사한 할리우드 스타가 전 세계 시청자를 충격에 빠뜨렸다면 수렁에 빠진 아카데미를 살린 것은 윤여정의 진심이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새삼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꺼내 읽었다. 이른바 진보에서 보수로의 정권 교체이고,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정부인수팀 외교안보 분과에 MB맨들이 대거 등장하니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오는 상황이기에. 역대 어느 대통령이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지만 MB의 대외정책은 특히나 그렇다. 대외적 성과는 화려했다. 미국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 주요 20개국(G20)과 핵안보 정상회의 같은 대형 이벤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완성 등등. 하지만 MB 시절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대표되는 남북 충돌의 시대로 기억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MB 회고록의 절반이 외교안보와 대북관계에 할애됐다. 그만큼 자랑하고 싶은 것도, 설명할 것도 많다는 뜻일 듯싶다.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과 중국 총리의 권유에 따른 여러 차례의 대북 접촉 비사(秘史)를 공개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MB 정부는 이전 10년의 햇볕정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하며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내걸고 출범했다. 한미동맹 등 4강 외교를 앞세웠고, 대북정책은 뒤로 밀렸다. 북한은 대남 비난과 군사 도발에 나섰고, 남북관계는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비밀접촉은 이어졌다. 이런 모든 접촉이 무위로 끝난 뒤 MB 정부는 ‘방법론적 유연성’을 내세우는가 하면, 김정일이 사망한 뒤엔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며 북한 붕괴론에 기대기도 했다. 다만 MB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강변했다. “정상회담을 하는 것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내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고, 더 값진 일이기도 했다.” MB는 회고록을 두고 “내 개인의 기록이자 참모들의 집단 기억”이라고 했다. 회고록 작성에 외교안보 분야 멤버로 참여해 감수까지 맡았던 사람이 김태효 전 대외전략기획관이다. 북핵 ‘그랜드바겐’의 설계자이자 어그러진 대북 접촉에도 나섰던 MB 외교의 핵심이었다. 마흔을 갓 넘어 청와대에 들어간 그는 ‘소년 책사’로 불렸다. 기자들이 전화를 하면 늘 “질문은 30초 이내로, 공부해서 물어보세요”로 시작하는 까칠한 인물이었다. 그가 윤 당선인의 인수위원이 됐다. 윤 당선인과는 한 아파트에 사는 동네 주민이다. 대선 때 윤 당선인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도 사실상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기고문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굴종적이었고 중국에 지나치게 고분고분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명료성과 대담함, 원칙을 강조했다. 사드 추가 배치, 쿼드 가입론도 담겼다. 이를 두고 MB식 외교로의 복귀 혹은 한발 더 나간 것이라고 본다면 비약일까. 윤 당선인에 대한 미국 측 반응은 긍정적이다. 미 의회조사국(CRS)도 “미국 정책에 더 부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의 선제타격 발언과 관련해 “미국은 남북 군사 충돌이 나면 종종 한국에 ‘군사 대응을 자제하라’고 압박했는데, 이는 윤의 공약과 상충될 수 있다”고 했다. 폭침과 포격 이후 도발 원점과 지휘부 타격을 공언했던 MB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정권이 바뀌는 만큼 대외적 변침(變針)은 불가피하겠지만 이번엔 인수인계 단계부터 요란하다. 가열된 ‘안보 공백’ 논란이 자칫 차분한 실태 파악도 건너뛴 급격한 변침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외교는 궁극적인 해결을 추구하지만, 현실적 우선순위는 갈등을 관리하는 데 있다. 연속성 속에서 변화를 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1955년 4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는 신생 중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다자외교 무대였다. 이런 중국을 대만의 장제스 총통이 가만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홍콩 카이탁공항의 직원을 매수해 중국 대표단이 탄 비행기에 폭탄을 심었고, 외교관과 기자 11명이 공중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거기에 저우언라이 총리는 없었다. 어디선가 위험 첩보를 전달받고 다른 비행기를 탄 덕분이었다. 냉전기 미국이든 소련이든 어느 블록에도 가담하지 않은 제3세계 국가들의 비동맹 회의에서는 공산주의 중국에 대한 의심, 적대적 기류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연단에 오른 저우는 준비한 메모를 치워놓고 즉석연설을 시작했다. “중국 대표단은 공통점을 찾으러 온 것이지, 불일치를 만들러 온 게 아닙니다.” 대만 문제 같은 분열적 이슈도 피했다. 박수가 간간이 터져 나오더니 연설을 마칠 땐 참석자들이 기립 박수로 환호했다. 당시 저우가 제시한 것이 ‘평화공존 5원칙’(주권·영토 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호혜평등, 평화공존)이다. 이 5원칙은 반둥회의가 결의한 ‘평화 10원칙’의 골간이 됐고, 오늘날까지 중국이 말끝마다 내세우는 외교의 기본 원칙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매력외교’를 펴던 가난한 신생 국가에서 세계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으로 변신한 지금, 중국이 표방해온 외교 원칙은 한낱 외교적 수사로 전락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 외교를 시험대에 세웠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브로맨스’를 과시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장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미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병력을 배치해 놓은 푸틴의 전쟁 명분에 대한 공개적 지지였다. 그 보답이었을까. 푸틴은 2008년 베이징 여름올림픽 초반 조지아를 침공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올림픽이 끝나길 기다렸다. 중국도 푸틴의 도발을 놓고 꽤나 고심한 듯하다. 푸틴이 베이징을 떠난 뒤 시진핑을 비롯한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외신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비공개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그래서 나온 결과는 원칙과 이익의 기괴한 조합이었다. 중국은 ‘주권과 영토의 존중’을 내세우면서도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며 주권 유린을 묵인했다. 반미(反美) 연대를 위해 원칙의 훼손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국은 러시아의 침공에 전혀 대비돼 있지 않았다.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 준비에 관한 비밀정보를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중국은 번번이 묵살했다. 오히려 미국의 경고를 ‘긴장을 부채질하는 가짜뉴스’라고 비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대사관은 갈팡질팡했다. 각국이 자국민 철수에 나섰지만 중국은 막판까지 머뭇거리다 그 시기를 놓쳤다. 오성홍기 부착을 권고했다가 이틀 만에 신분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이런 한심한 대응은 시진핑이 과연 푸틴의 속내를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침공의 공모자’라는 낙인까지 찍히면서 러시아를 감싸는 중국의 태도를 볼 때 푸틴이 귀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푸틴이 조지아 침공과 크림반도 병합 때처럼 속전속결의 국지적 작전이라고 얘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였든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의 자격을 잃었고, 자국민 안전조차 챙기지 못한 비정한 외교는 두고두고 지탄받을 것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헤이스팅스 이즈메이 초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나토의 설립 목적을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나토는 러시아를 내쫓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제압하기 위해(to keep Russians out, Americans in, and Germans down) 고안됐다.” 그 말대로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시작된 냉전체제에서 공산주의 소련의 팽창과 전범국가 독일의 부상을 막기 위한 집단동맹이었다. 요즘 나토 동진(東進) 반대를 내걸고 전쟁불사를 외치는 러시아도 소련 시절 나토 가입의 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1955년 서독의 재무장과 나토 가입이 추진되자 정치공세 차원에서 나토 가입을 요청한 것이다. 이즈메이는 “도둑이 경찰관 되겠다는 격”이라며 거부했고, 소련은 동유럽 위성국가들을 모아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출범시켰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엔 통일독일의 나토 잔류, 즉 동독의 나토 편입이 미소 간 난제였다. 당시 서방 측이 거듭 “나토 관할권을 동쪽으로 1인치도 넓히지 않겠다”고 구두약속을 하고서야 독일 분단은 끝날 수 있었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제 나토는 1000km 넘어 러시아의 코앞까지 확대됐다. 나토 역사에서 독일은 ‘주역’이 아닌 ‘문제’였다. 그러면서도 나토의 보호 아래 경제성장을 이뤘고 그런 독일을 향해선 주변의 견제도, 새로운 역할에 대한 요구도 많았다. 독일은 신중했다.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자랑하는 영국이나, 미국이라면 거리부터 두는 프랑스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여전히 전범국의 책임과 동맹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독일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로 또다시 괴로운 시험대에 들었다. 많은 나라가 각종 무기와 전함, 전투기까지 보내는 상황에서 독일이 내민 것은 헬멧 5000개였다. 당장 “다음엔 뭘 보낼 건가. 베개?”라는 조롱이 나왔다. 독일은 에스토니아가 보유한 옛 동독산 곡사포의 우크라이나 이전 승인 요청도 ‘분쟁지역에 살상무기를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거절했다. 독일 국민 대다수는 정부의 방침을 지지하지만, 외부에선 ‘또 습관적 평화주의 핑계냐’고 비아냥거린다. 독일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러시아 의존이다. 특히 이미 완공돼 가동을 기다리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비겁하게 러시아 눈치를 본다고 뭇매를 맞고 있다. 주간지 슈피겔은 “독일이 위기 때마다 그랬듯 옆으로 비켜 앉아 불신받는 처지에 몰렸다”며 ‘줄타기 외교로의 귀환’이라고 지적했다. 불신의 눈초리는 독일 정치권의 ‘푸틴 동조자(Putin-Versteher)’로 쏠린다. 러시아의 로비스트가 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와 그의 총아였던 올라프 숄츠 총리로까지 향했다. 숄츠가 엊그제 미국을 방문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푸틴과의 동침’이란 비난까지 쏟아낸 미국 조야의 의구심을 떨쳐냈는지는 의문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한 기고에서 각국의 외교정책 성과를 평가해 금메달을 준다면 그것은 독일 몫이 될 것이라고 썼다. 정치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미국과의 동맹도,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도 잘 관리해 안보와 번영을 증진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월트 교수는 거세진 강대국 대결에서 독일이 계속 잘해낼지는 큰 의문이라고 했다. 독일 외교가 많은 중견국가에 본보기가 될지, 반면교사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미국 국방부가 24일 미군 8500명을 동유럽에 파견하기 위해 비상 대기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미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여 병력과 기갑전력, 미사일장비를 배치한 러시아의 침공 협박에 맞서 단호한 군사적 대응 의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아울러 미국은 상황이 악화되면 파병 규모를 10배로 늘릴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그간 미국은 금융·무역제재 같은 보복조치를 경고해 왔지만 그것만으론 러시아의 도발을 막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판단 아래 마지막 군사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대비 차원의 조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래 “미국의 이익이 심대하게 위협받지 않는 한 해외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혀 왔다. “우리는 세계의 호구(sucker)가 아니다”며 ‘세계의 경찰’ 역할을 거부했던 전임 대통령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출구 없는 ‘전쟁의 진창’에 빠졌던 미국이다. 공화·민주 어느 행정부를 막론하고 군사적 과잉개입(overstretch)은 가장 경계해야 할 과제가 됐다. 바이든이 지난해 ‘카불의 치욕’을 감수하면서도 아프간 철군을 단행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막무가내 치킨게임 도전에 칼집에 넣어뒀던 군사 카드를 다시 저울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물론 우선순위는 외교적 해결에 있다. 미국은 조만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나토의 동진(東進) 금지, 러시아의 옛 소련 세력권 인정 등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요구 조건에 대한 서면 답변을 주기로 했다. 러시아의 턱없는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전쟁은 시작하긴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다는 점을 푸틴도 모르지 않을 것인 만큼 타협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폐기된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이나 군사적 신뢰구축조치(CBM) 복원 같은 큰 그림 속에 러시아를 협상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전쟁의 북소리가 요란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그런 해법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임시 출구를 찾더라도 합의를 이루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장은 시간싸움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러시아가 누려온 선제적 공세의 이점은 사라진다. 러시아 측은 질질 끄는 ‘협상의 늪’에 빠지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3월이면 땅이 녹으면서 기갑전력의 기동이 어려워지는 만큼 서둘러 결딴을 내겠다며 벼르고 있다. 시간을 벌려면 미국도 일단 양보가 불가피한데, 당장 ‘히틀러를 달래던 유화정책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결코 전쟁을 원치 않지만 마냥 회피할 수도 없는 ‘자유주의 제국’ 미국이 처한 딜레마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미국에선 사업상 분쟁이 생기면 으레 변호사를 고용하죠? 법원으로 가면 통상 수개월이 걸리고 그만큼 변호사비만 쌓이죠. 러시아에선 대개 상식에 따라 해결됩니다. 큰돈이 걸린 분쟁이 나면 양쪽은 대표들을 만찬에 내보내죠. 모두 무장한 채로 말입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할 가능성에 직면하면 양측은 합의 가능한 해법을 찾습니다. 공포는 상식의 기폭제죠.” 과거 여러 미국 대통령의 지정(地政)전략 자문을 맡았던 해럴드 맘그렌(87)이 최근 한 기고문에서 소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992년 발언이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의 젊은 야심가 푸틴이 30년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밑에서 일하던 시절 자신에게 했던 얘기에서 마피아 보스 같은 본능을 읽었고, 그것은 요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협하며 미국과 대결하는 푸틴의 벼랑 끝 치킨게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난 몇 개월에 걸쳐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명 가까운 병력을 배치해놓고 푸틴이 미국과 그 서방 동맹에 내놓은 요구사항은 30년 전 옛 소련의 세력권을 복원할 테니 그걸 문서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내밀어 침공의 구실로 삼겠다는 최후통첩성 협박이다. 러시아는 인근 벨라루스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준비하는가 하면 대규모 해킹 공격과 가짜 뉴스 유포, 거짓 피격사건 공작까지 이른바 ‘하이브리드 전쟁’에도 들어갔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당장 푸틴의 의도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의 야릇한 눈빛 속에 감춰져 있다. 서방과의 협상에 나선 러시아 측 대표도 그 속내를 모를 것이라느니, 아니 푸틴 자신조차 결정을 못 내렸을 것이라느니, 중(重)기갑전력 작전을 위해 땅이 꽁꽁 얼기를 기다리고 있다느니, 우크라이나 점령 이후 출구 없는 ‘전쟁의 늪’에 빠질 것을 푸틴도 모를 리 없다느니 온갖 추측성 전망만 무성하다. 어쨌든 푸틴은 선제 도발자의 이점을 누리고 있다. 고도의 정치심리전이 노리는 것은 상대를 열 받게 하거나 겁먹게 만드는 것. 미국은 그런 노림수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수세적 처지에 빠진 것은 어쩔 수 없다. 병력 파견 같은 맞대응 대신 꺼내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나 금융·무역 제재 경고는 나약하게 비칠 뿐이다. 다만 미국과 동맹들이 점차 결의를 모으고 있는 만큼 푸틴이 주도하는 시간이 마냥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푸틴의 마피아식 도발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패권도전자 중국보다 질서교란자 러시아의 도전에 먼저 맞닥뜨렸다. 러시아를 이용한 중국 견제, 즉 중-러 갈라치기는 환상이었음도 드러났다. 오히려 중-러의 연대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응원과 경계 사이에서 향후 대만 공략의 학습기회로 여기며 관전하고 있다. 내달 4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은 세계 양대 스트롱맨 푸틴과 시진핑의 밀월을 과시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짙어지는 신냉전 기류는 다른 독재자들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당장 카자흐스탄의 독재자는 반정부세력 진압을 위해 러시아 군대를 불러들였다. 북한이라고 가만있을 리 없다. 김정은은 새해 벽두부터 각종 미사일을 연거푸 쏘아 올렸고, 국제 제재를 무력화하는 중-러의 비호 아래 더 큰 도발의 호기로 삼을 태세다. 냉전시대 첫 열전지대, 탈냉전시대 마지막 냉전지대 한반도의 불안 요인은 커지고 있다. 바짝 긴장하고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1950년대 말 냉전이 무르익던 시절,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제2세대 전투기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고성능화 경쟁도 한층 가열됐다. 강력한 엔진과 최신 레이더, 신예 무기를 갖추다보니 덩치가 커진 반면 기동력은 떨어졌고 가격도 매우 비싸졌다. 서방의 맹주 미국엔 고성능 막강 전투기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개발도상국 동맹국들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런 틈새를 내다본 방위산업체 노스럽사가 기존 고등훈련기를 토대로 개발한 ‘꿩 대신 닭’ 격인 전투기가 구매가격도 운용비용도 저렴한 초음속 경량 전투기 F-5A/B ‘프리덤파이터’였다. ▷인기 높은 수출 기종으로 세계적 각광을 받은 F-5A는 1965년 한국에 처음 도입돼 한국군의 초음속 전투기 시대를 열었다. 1972년부터는 성능을 향상시킨 F-5E가 나와 한국도 추가로 구매했다. 하지만 F-5E는 당시 북한이 보유한 미그-19나 미그-21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평가에 시달렸다. 그래서 추진된 차세대 전투기 F-16 구매사업이 자금 압박으로 물량이 축소되는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F-5E/F가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서 조립 생산되기도 했다. 그렇게 한국은 전 세계에서 F-5 기종을 가장 많이 운용하는 국가가 됐다. ▷11일 오후 경기 화성의 한 야산에 F-5E 한 대가 추락했다. 이 전투기는 이륙 직후 좌우 엔진 화재 경고등이 켜지고 기체가 급강하했다. “이젝트(탈출)! 이젝트!” 조종사는 관제탑과의 교신에서 비상탈출을 두 차례나 외쳤으나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추락 지점은 주택 몇 채가 있는 마을에서 100여 m 떨어진 곳이었다. 조종사가 민가로 추락하는 것을 피하려고 야산 쪽으로 기수를 돌리면서 탈출 시기를 놓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워낙 낡은 기종이어서 수리 부품조차 다른 전투기에서 빼내 돌려쓰는 판에 탈출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을지나 모르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공군이 보유한 F-5 기종 80여 대는 통상 30년 정도인 정년을 훌쩍 넘긴 노후 전투기다. 2000년 이후에만 모두 12대가 추락했다. 이번 사고기도 운용한 지 36년이 됐다. 공군은 F-5 기종을 한국형 전투기 KF-21로 대체해 2030년까지 도태시킬 계획이다. 영공 방어를 위한 ‘전투기 적정 대수(430여 대)’ 유지 차원에서 퇴역 시기를 넘겨 운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공군은 설명한다. 초계 임무 같은 보조전투기로서의 역할이 있고 조종사의 비행시간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뭉치 기종을 넘어 ‘조종사 킬러’ ‘과부 제조기’로 오명만 쌓는 상황을 앞으로도 8년간 지켜봐야 하는지 의문이다.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