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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200만’ 유튜버 곽튜브(본명 곽준빈·32)가 최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토크 콘서트를 취소했다. 과거 같은 그룹 내 멤버를 따돌렸다는 의혹을 받는 가수 출신 여배우와 촬영한 콘텐츠가 논란이 된 이후다. 논란의 영상 속 곽튜브는 해당 배우에게 “(가해자로) 오해받는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것 같았다”고 했고, 이는 ‘곽튜브가 따돌림 가해자를 두둔한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영상은 사과문과 함께 삭제됐으나 비난이 이어졌다. 자신을 곽튜브의 동창이라고 주장한 한 누리꾼은 “곽튜브가 학창 시절 물건을 훔쳤다”는 내용의 허위 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사회적 논란이 된 유명인을 사적으로 단죄하려는 대중의 ‘디지틴(digital guillotine·디지털 단두대)’ 현상이 점차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인물, 기업을 보이콧함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인 ‘캔슬 컬처(cancel culture)’ 현상이 즉각적 처벌, 집단 공격으로 과격성이 커진 것. 당사자가 “내 잘못”이라고 밝혀도 용서하는 모습을 찾아보긴 어렵다. 앞서 올 5월에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에서 촬영한 콘텐츠 속 지역 비하 발언으로 단두대에 올랐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영양 지역축제 기간에 맞춰 홍보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 중이지만 사태 이후 ‘구독 취소’를 결정한 구독자 수는 약 32만 명에 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디지틴의 타깃은 연예인을 넘어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으로 넓어지는 추세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에서 주로 이뤄지는 디지틴은 확증편향, 일반화의 오류로 이어지기 쉽다. 자신이 가진 정보와 의견을 무기로 공적 제재, 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사적인 처벌을 내리고 있는 것”이라며 “취업, 주거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악화하면서 젊은층이 더욱 공정성에 매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디지틴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 대중의 주목도를 빠르게 높이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속결 처단에 급급해 숙고보다는 찬반 여론에 따라 ‘악인’으로 몰아가고 이를 비난하고, 처벌하는 추세로 고착화되고 있다. 특히 구독자 수와 조회 수 등이 수익과 직결돼 있고, 연예 기사 댓글이 제한된 포털사이트와 달리 노골적인 댓글을 달기 쉬운 SNS 특성상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은 사과를 강요받는 압박에 시달리기 쉽다. 유튜브 채널 ‘싱글벙글’은 올 6월 “안마기가 좋으면 뭐 하니, 군대 가면 쓰지를 못하는데”라며 웃는 영상으로 ‘군인 조롱’ 논란을 샀다. 그러나 이는 군인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진 못한 채 채널 측의 사과와 영상 삭제에 그쳤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최근 디지틴은 합리적 의견 대립이 아닌 집단적 몰아가기 양상을 띠면서 오히려 본질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 되고 있다”며 “정치, 사회적으로 중대한 문제에 대한 의견 개진이 어려운 사회 구조로 인해 사소한 문제에도 과격하게 결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가 유명인에게 유독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재근 사회문화평론가는 “서구권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대중의 도덕적 잣대가 엄격한 나라 중 하나”라며 “정답과 오답을 가르기 급급한 입시 교육의 영향,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집단주의적 사고 등의 영향으로 인해 사실관계를 면밀히 따지기보다 우선 심판부터 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마저 부정하는 분위기는 결국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평론가는 “경중에 따라 실수를 용인하고 만회할 기회를 제공해야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며 “또한 지나친 자기 검열이 강화된다면 개개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기 어려운 사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유명 유튜버 곽튜브가 지난 28일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토크 콘서트를 취소했다. 과거 같은 그룹 내 멤버를 따돌렸다는 의혹을 받는 가수 출신 배우와 촬영한 콘텐츠가 논란이 된 직후다. 영상 속 곽튜브는 해당 배우에게 “(가해자로) 오해받는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것 같았다”고 했고, 이는 ‘곽튜브가 따돌림 가해자를 두둔한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영상은 사과문과 함께 삭제됐으나 비난이 이어졌고, 자신을 곽튜브의 동창이라고 주장한 한 네티즌은 “곽튜브가 학창시절 물건을 훔쳤다” 는 내용의 허위 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사회적 논란이 된 유명인을 사적으로 단죄하려는 대중의 ‘디지틴(digital guillotine·디지털 단두대)’ 현상이 점차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인물, 기업을 보이콧함으로써 변화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인 ‘캔슬 컬처’ 현상이 즉각적 처벌, 과격한 비난에 과중한 형태로 격화한 것. 앞서 올 5월에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에서 촬영한 콘텐츠 속 지역 비하 발언으로 단두대에 올랐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영양 지역축제 기간에 맞춰 홍보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 중이지만 사태 이후 ‘구독 취소’를 결정한 구독자 수는 약 32만 명에 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디지틴의 타겟은 연예인을 넘어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으로 광범위해지는 추세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SNS에서 주로 이뤄지는 디지틴은 확증편향, 일반화의 오류로 이어지기 쉽다. 자신이 가진 정보와 의견을 무기로 공적 제재, 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사적인 처벌을 내리고 있는 것”이라며 “취업, 주거 등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악화하면서 젊은층이 공정성에 매달리게 됐고, 스스로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성공한 유명인에게 투사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디지틴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 대중 주목도를 빠르게 높이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속결 처단에 급급할 경우 사회 전반에 대한 근본적 숙고보다는 찬반 여론에 따른 ‘악인’ 한 명을 제거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구독자 수와 조회수 등이 수익과 직결돼있고, 연예 기사 댓글이 제한된 포털사이트와 달리 노골적인 댓글을 달기 쉬운 SNS 특성상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은 사과를 강요받는 압박에 시달리기 쉽다. 유튜브 채널 ‘싱글벙글’은 올 6월 “안마기가 좋으면 뭐 하니, 군대 가면 쓰지를 못하는데”라며 웃는 영상으로 ‘군인 조롱’ 논란을 샀다. 그러나 이는 군인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진 못한 채 채널 측의 사과와 영상 삭제에 그쳤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최근 디지틴은 합리적 의견 대립이 아닌 집단적 몰아가기 양상을 띠면서 오히려 본질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 되고 있다”며 “정치, 사회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향해 의견을 냈을 때 개진이 어려운 사회구조로 인해 사소한 문제에도 과격하게 결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가 유명인에게 유독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재근 사회문화평론가는 “서구권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대중의 도덕적 잣대가 엄격한 나라 중 하나”라며 “정답과 오답을 가르기 급급한 입시교육의 영향,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집단주의적 사고 등 영향으로 인해 사실관계를 면밀히 따지고 실수 만회를 지켜보기보다는 심판부터 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했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마저 부정하는 분위기는 건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평론가는 “경중에 따라 실수를 용인하고 만회할 기회를 제공해야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며 “지나친 자기검열로 이어진다면 개개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기 어려운 사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대한민국 여군 상위 1%만이 모인 최정예 부대. ‘독거미 부대(태호대대)’ 출신 조성원 예비역 중사가 매섭게 두 눈을 치켜뜨며 허공을 찢을 듯 외친다. “살아 방패 죽어 충성, 조국이 부르면 우리는 간다!” 채널A 간판 예능 ‘강철부대’ 시리즈가 ‘여군 편’으로 10월 1일 국군의날에 돌아온다. 2021년부터 시즌 3까지 방영된 ‘강철부대’는 최정예군 예비역들이 팀을 이뤄 출신 부대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1일 오후 10시 처음 방송되는 ‘강철부대W’에는 ‘특전사들의 특전사’로 불리는 제707특수임무단, ‘귀신 잡는’ 해병대, 특수임무대대 등 총 6개 부대 출신 예비역 대원 24명이 출동한다. 이번 출연진은 어렵게 발굴한 각 분야 ‘최초’ 타이틀의 여군들로 구성됐다. 대한민국 여군 소위 최초로 특수전사령부에서 복무한 우희준 예비역 중위, 공군 군사경찰 중 여군 최초로 특수임무 반장을 맡은 문지영 예비역 대위, 특전사 여단 최초의 여군 저격수 박보람 예비역 중사 등이 주인공.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느라 제작진은 출연진 선발에만 3, 4개월을 보냈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신재호 PD는 “여군 전역자가 예상보다 많지 않아 섭외가 어려웠다. 이전 시즌에 비해 섭외에만 한두 달 더 걸렸다”며 “남성 군인 출신을 섭외할 때 참고하지 않았던 국방일보까지 뒤지며 전방위로 물색했다”고 말했다. 여군 출연진은 이전 남성 출연자들보다 더 난도 높은 미션을 수행한다. 예컨대 참호는 역대 시리즈 중 가장 넓고 깊다. ‘타이어 뒤집기’ 미션에선 무게가 200∼300kg에 달하는 타이어를 뒤집기 전 삽질까지 시키는 등 단계를 추가했다. 대원들에게 미션을 부여하는 ‘마스터’ 역할의 최영재는 “여군에게도 동등한 전투기술과 능력치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일부러 난도를 높게 잡았다. 사격이나 전투기술 분석 등에서는 여군이 더 뛰어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PD는 “과거 훈련 도중 입은 부상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전역을 택해야 했던 이들이기에 소속 부대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여성의 신체 능력에 감탄하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건 살면서 처음”이라고 했다. 폭발하는 초소 옆 철조망에서 포복하고, 11m 높이의 공중에서 외줄을 타는 등 영화를 방불케 하는 아슬아슬한 장면도 펼쳐진다. 특히 시즌 1∼3에서 보지 못했던 총기 등 다양한 최신 국산 무기들이 미션마다 다양하게 등장해 출연진의 손을 거친다. MC 김성주는 “이전 시즌과 다른 점은 단순히 성별만이 아니다. 여군은 의무 복무가 아니라 ‘자원 입대’란 점에서 차별화된다”며 “자신의 의지로 군인이 된 이들이 발산하는 열정과 투지가 고스란히 프로그램에 녹아 있다”고 강조했다. 특수부대와 일반 부대 사이의 살벌한 기 싸움도 새로운 묘미. ‘강철부대’ 시리즈 중 처음으로 특수부대가 아닌 육·해군 등 일반 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출격한다. ‘강철부대’ 1, 2에 이어 새 시즌에도 참여한 강숙경 작가는 “국토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육군 백골부대 등 강력한 일반 부대들이 있음에도 그간 시리즈에서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시청자들의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엔 이런 갈증을 해소해 드릴 수 있을 것”이라며 해병대 출신 이수연 대원을 예로 들었다. 강 작가는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특수부대 출신이 아닌 이 대원을 견제한다. 그에게는 ‘코끼리’ ‘멧돼지’ ‘괴물’ 등 과격한 별명들이 따라붙는다”고 말했다. ‘오직 승리’를 다짐하는 출연진 간의 극적인 갈등과 서사가 주는 감동과 짜릿함도 커졌다. 최영재는 “군복에 대한 사명감이나 자부심은 여군에게 특히 두드러진다. 시청자들이 거기에서 느끼는 재미가 클 것”이라고 했다. 강 작가는 “여군들은 뒷담화를 하지 않는다. 면전에서 말로 상대를 가격하는 ‘앞담화’로 기선을 제압한다”고 덧붙였다. 여자 레슬링 국가대표 장은실이 MC로 합류해 여군들 사이에 벌어지는 몸싸움을 생생하게 설명한다. 장은실은 “한때 여군이 꿈이었으나 방송을 녹화하면서 ‘입대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들의 혹독하고 치열한 싸움을 보며 시청자들도 ‘걸크러시’ 매력에 빠져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철부대W’는 매주 화요일 오후 10시에 방영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냉장고에 붙은 레시피 쪽지가 일주일마다 바뀌어요. 제가 진행하는 방송에서 내보내는 건강 팁들을 몸소 실천해 봐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MC 정은아(59)는 이렇게 건강 정보 프로그램에 임하는 자세를 말했다. 그는 24일 첫 회가 방송되는 채널A ‘몸신의 탄생’에서 건강 전도사로 돌아온다. 2014년 시작해 2023년까지 10년간 방송됐던 장수 프로그램 ‘나는 몸신이다’가 이름과 포맷을 바꿔 신규 프로그램으로 다시 찾아온 것. 정은아는 ‘나는 몸신이다’의 원조 MC로 8년간 진행하다 바통을 강호동에게 넘기고 떠났었는데 이번에 다시 ‘몸신 시리즈’에 합류했다. 19일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DDMC)에서 만난 정은아는 다시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제가 부모님의 연배가 됐다. 저도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건강에 대한 관심이 훨씬 많아졌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부끄럽지 않은 방송을 만들고자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지한 채 녹화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방송에선 코미디언 유민상, 방송인 황보라가 함께 MC로 출연한다. 정은아는 “유민상 씨는 지금보다 건강한 몸을 만들려는 도전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역할을, 황보라 씨는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질문을 쏙쏙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몸신의 탄생’에서는 건강 관리가 필요한 일반인 참가자가 한 달간 전문가들의 진단과 솔루션에 근거해 ‘몸신’ 도전에 나서고 점차 자신의 몸이 변해 가는 과정을 담는다. 정은아는 “‘나는 몸신이다’가 건강 정보 전달에 집중한 ‘Know’ 프로그램이었다면 이번 키워드는 ‘Do It’”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러 매체에서 정보를 접하고도 동기부여가 부족해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몸신의 탄생’ 속 도전자들의 변화가 시청자들에게 실천의 자극제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첫 회에는 과거 미인대회 출전을 권유받을 정도로 건강한 몸매였으나 갑작스레 체중이 불어난 여성이 도전자로 출연한다. 도전자는 한 달간의 치열한 노력 끝에 10kg 이상을 감량하는 데 성공한다. 정은아는 “해당 출연자의 딸과 배우자가 본인들의 식단도 함께 바꾸는 등 적극 협조했다. 가까운 사람들의 응원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실 건강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이다. 방송에서 다루는 콘텐츠는 뭐가 다를까. 정은아는 “‘몸신의 탄생’은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보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다르다”고 말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떠도는 각종 불확실한 건강 정보와 차별화된다는 것. “제작진이 일일이 최신 건강 정보를 찾고, 논문을 전문가들에게 전달해 의견을 듣습니다. 제작진은 본인들의 가족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건강 정보를 소개하자는 생각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정은아는 시청자들이 방송을 보며 ‘일상에 좋은 습관 하나 더하기’에 동참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건강은 개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의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몸이 건강해지면 건강한 생각을 갖게 되죠. 더 건강해지면 더 서로 배려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몸신의 탄생’이 그 도전에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몸신의 탄생’은 24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8시 10분에 방송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목적을 갖고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무엇이 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이 책은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끊임없이 환생하는 ‘베일리’라는 개의 시선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앰블린 엔터테인먼트사가 제작한 영화 ‘베일리 어게인’(2017년)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졌다. 10년 전 출간된 ‘내 삶의 목적’의 개정판이다. 소설은 떠돌이 잡종견 베일리가 천방지축 골든리트리버에서 수색구조 경찰견으로 환생하는 여정을 좇는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삶의 완전한 목적이라고 믿었던 베일리는 경찰견으로 환생하면서 혼란을 겪게 된다. 가족의 곁을 지키는 것,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그의 임무이지만 그것이 과연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견생’의 의미를 탐구하기 시작하는 베일리의 고민은 사람이 자신의 존재 목적에 갖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개가 결국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을 만나고, 이들을 구하게 된다는 서사 자체는 다소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평범한 이야기이면서도 공감력이 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빈집에서 가족이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베일리의 모습에서 마음이 먹먹해질지 모른다. 한때 떠돌이 개였던 베일리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 차량에 대해 “크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트럭은 사람들이 우리 먹으라고 내다 놓은 음식물 봉지를 모조리 빼앗아 가버린다” 등으로 묘사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베일리는 고군분투 끝에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목적임을 깨닫는다. 크고 작은 의무를 끊임없이 지고 사는 우리의 존재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책의 부제가 ‘인간을 위한 소설’인 이유다. 책은 지난하고 지루한 삶 속에 결코 무의미한 순간은 없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일상적이고 따뜻한 문체로 그려진 덕에 부담 없이 술술 읽힌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발레단의 양대 산맥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대작 ‘라 바야데르’로 맞붙는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 달 간격으로 작품을 잇달아 선보이는 것. 오는 27일 먼저 개막하는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은 ‘고전 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페티파의 안무를 토대로 한다. 프랑스 출신 안무가인 페티파는 1877년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국립발레단은 러시아 출신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2013년 만든 버전을 공연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다음 달 30일 개막한다. 김양현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사업팀장은 “시각적 측면에서 페티파의 마린스키 스타일은 정교함과 화려함을, 그리고로비치의 볼쇼이 스타일은 민족적 색채, 웅장함을 추구한다”며 “페티파 버전에선 길이 2m 넘는 화려한 코끼리가 등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출연진만 120∼150명에 달하는 대규모 작품인 만큼 각각 막강한 출연진을 내세웠다. 국립발레단 공연에는 ‘동양인 최초’ 타이틀을 딴 두 무용수가 호흡을 맞춘다.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수석무용수)에 등극한 박세은, 동양인으로는 처음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수석무용수 김기민이 2009년 ‘백조의 호수’ 이후 15년 만에 파트너로 만나는 것.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에는 요즘 가장 ‘핫한’ 무용수들이 출연한다. 내년 김기민의 뒤를 이어 마린스키 발레단의 두 번째 한국인 단원이 되는 ‘차세대 스타’ 전민철, 지난해 ‘무용계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거머쥔 강미선 수석무용수가 주인공 역을 맡는다. 두 공연의 차이는 결말에서 두드러진다.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는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힌두 사원의 무희 니키야와 전사 솔로르, 니키야를 짝사랑하는 최고 승려 브라만, 솔로르의 약혼녀인 감자티 공주가 등장한다. 국립발레단 공연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해 솔로르가 회한 가득한 독백을 하며 끝나고,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은 망령의 세계에서 니키야와 솔로르가 ‘스카프 춤’을 추며 마무리된다. 한지영 발레평론가는 “스카프는 두 사람이 영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상징하는 도구”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나는 ‘탄츠(tanz·무용을 뜻하는 독일어)’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막연한 동경, 기대감을 가졌을 뿐. 그러나 2024년 9월, 나는 말과 몸부림으로 탄츠를 구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비어 있는 무대, 의자 여섯 개와 스탠드 마이크 하나가 놓였다. 릴데크(아날로그 오디오 장치의 일종) 위 테이프가 돌면서 간간이 기계 음성이 흘러나온다. 한쪽 발목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위태롭게 발끝으로 버티고 선 등장인물이 말한다. “피나의 이름 뒤에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 있는 이야기들, 나는 부스러기라도 그것을 만지고 맛보고 싶었다.” ‘현대 무용의 전설’ 피나 바우슈(1940∼2009)를 통해 과거와 현재 사이 전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연극 ‘P와 함께 춤을’ 연습 현장을 11일 찾았다. 피나는 과거 독일의 무용단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이끌면서 현대 무용계에 혁명을 일으킨 안무가 겸 무용수. 타계 후에도 전 세계에서 계승되고 있는 그의 춤맥을 탐구한 작품이 28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다. 연극은 부퍼탈 탄츠테아터 출신 무용수 약 10명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구성됐다. 2021년부터 3년간 이어진 인터뷰는 오래전 피나와 함께 춤췄던 70대 후반의 1세대 무용수부터 피나가 세상을 떠난 뒤 입단해 현역으로 활동 중인 3세대 젊은 무용수까지 아우른다. 취재 및 작품 제작에 참여한 배우 성수연, 무용가 황수현 등 6명의 출연진이 가상의 배역 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무대에 올라 연극을 이끈다. 작품은 원형 그대로의 전승과 ‘창조적 파괴’ 사이에서 전통이 맞춰야 할 균형에 주목한다. 제47회 동아연극상에서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한 이경성 연출가가 작품을 연출했다.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단순히 피나를 숭앙하는 연극은 아니다. 1∼3세대 무용수들이 각자 과거의 것을 부정하면서 새로움을 추구하던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어 “과거와 미래가 대화해야만 전통이 현재와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작품에 녹여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균형감은 대사와 움직임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춤의 기본이 되는 ‘땅 밀기’ 동작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무용가 정재필은 천천히 한 발로 땅을 밀어 무게 중심을 옮긴 뒤 휘청대지만 다시 중심을 찾고 일어선다. 이에 배우 나경민은 “머물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이 자신과 세상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행위”라고 덧붙인다. 피나에 대해 친숙지 않은 관객을 위해 챗봇이 등장한다. 챗GPT로 만들어진 ‘피나봇’은 등장인물 간 대화에 개입해 피나의 일생과 작품에 얽힌 정보를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이 연출가는 “피나봇이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상징적인 안무를 말로 묘사하면 출연진이 몸으로 풀어내도록 해 이해를 높였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나는 ‘탄츠(Tanz·무용을 뜻하는 독일어)’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막연한 동경, 기대감을 가졌을 뿐. 그러나 2024년 9월, 나는 말과 몸부림으로 탄츠를 구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비어있는 무대, 의자 여섯 개와 스탠드 마이크 하나가 놓였다. 릴데크(아날로그 오디오 장치의 일종) 위 테이프가 돌면서 간간이 기계 음성이 흘러나온다. 한쪽 발목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위태롭게 발끝으로 버티고 선 등장인물이 말한다. “피나의 이름 뒤에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있는 이야기들, 나는 부스러기라도 그것을 만지고 맛보고 싶었다.”‘현대 무용의 전설’ 피나 바우쉬(1940~2009)를 통해 과거와 현재 사이 전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연극 ‘P와 함께 춤을’ 연습 현장을 11일 찾았다. 피나는 과거 독일의 무용단 ‘부퍼탈 탄츠테아터’를 이끌면서 현대 무용계에 혁명을 일으킨 안무가 겸 무용수. 타계 후에도 전 세계에서 계승되고 있는 그의 춤맥을 탐구한 작품이 28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된다.연극은 부퍼탈 탄츠테아터 출신 무용수 약 10명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구성됐다. 2021년부터 3년간 이어진 인터뷰는 오래 전 피나와 함께 춤췄던 70대 후반의 1세대 무용수부터 피나가 세상을 떠난 뒤 입단해 현역으로 활동 중인 3세대 젊은 무용수까지 아우른다. 취재 및 작품 제작에 참여한 배우 성수연, 무용가 황수현 등 6명의 출연진이 가상의 배역 없이 ‘자기 자신’으로서 무대에 올라 연극을 이끈다. 작품은 원형 그대로의 전승과 ‘창조적 파괴’ 사이에서 전통이 맞춰야 할 균형에 주목한다. 제47회 동아연극상에서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한 이경성 연출가가 작품을 연출했다.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단순히 피나를 숭앙하는 연극은 아니다. 1~3세대 무용수들이 각자 과거의 것을 부정하면서 새로움을 추구하던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이어 “과거와 미래가 대화해야만 전통이 현재와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작품에 녹여내려 했다”고 설명했다.이러한 균형감은 대사와 움직임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춤의 기본이 되는 ‘땅 밀기’ 동작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무용가 정재필은 천천히 한발로 땅을 밀어 무게 중심을 옮긴 뒤 휘청대지만 다시 중심을 찾고 일어선다. 이에 배우 나경민은 “머물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이 자신과 세상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행위”라고 덧붙인다.피나에 대해 친숙지 않은 관객을 위해 챗봇이 등장한다. 챗GPT로 만들어진 ‘피나봇’은 등장인물 간 대화에 개입해 피나의 일생과 작품에 얽힌 정보를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이 연출가는 “피나봇이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상징적인 안무를 말로 묘사하면 출연진이 몸으로 풀어내도록 해 이해를 높였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암산을 척척 해내는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종일 휴대전화만 보다가 성적이 떨어진 ‘게으른 천재’ 를 어떻게 해야 할까. 추석 연휴인 15일 채널A에서 방송되는 입시 코치 프로그램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에는 IQ가 136에 달하지만 게으른 생활 태도 때문에 ‘영재고 진학’이란 꿈에 빨간불이 켜진 도전 학생이 등장한다. 현재 중등 2학년인 도전 학생은 간단한 손짓만으로 빠른 암산이 가능한 실력을 타고났다. 그러나 하루에 무려 12시간 25분씩 사용하는 휴대전화로 인해 영재고 진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참을 만큼 참은 도전 학생의 어머니가 폭발하면서 가족 내 갈등까지 심화한다. 패널로 참석한 방송인 장영란과 배우 한혜진은 아이를 둔 엄마로서 각자 어머니와 학생의 편을 들며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1타 듀오’ 정승제와 조정식은 쓴소리 매타작을 쏟아내며 도전 학생의 성적 향상을 돕는다. 강사 경력 20년, 누적 수강생 수 910만 명에 달하는 수학 강사 정승제는 “영재고에 입학해도 문제”라고 지적하며 “여유 부릴 때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고려대 법학과 출신 영어 강사 조정식의 ‘팩폭(팩트 폭행)’도 이어진다. 단순 입시 예능을 넘어 ‘금쪽이’와 그 가족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도 방송에 담긴다. 방송은 15일 오후 7시 40분에 볼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국에 부는 ‘셰익스피어 열풍’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 400년도 넘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책과 공연 등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한국에선 특히 희극보다 비극이 인기라는데…. 최근 문화계 셰익스피어 열풍 현상을 짚어 봤다.》쇼트폼, 웹툰 등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 셰익스피어 희곡 열풍이 뜨겁다. 요즘 국내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연들은 17세기 영국 대문호인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다.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하는 배우 조승우의 첫 연극 도전작 ‘햄릿’은 올해 들어 주요 무대에서만 세 번째로 오르는 ‘햄릿’이다. 티켓 예매 시작과 함께 약 1000석 규모 좌석이 전 회차 매진됐다. 연기 경력 51년의 원로 배우 전국환, 넷플릭스 드라마 ‘돌풍’의 김종구가 각각 덴마크의 선왕 역과 폴로니어스 역을 맡아 햄릿 역 조승우와 호흡을 맞춘다. 대형 제작사들은 경쟁적으로 셰익스피어 희곡을 선보이고 나섰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서도 대중성 높은 ‘햄릿’ ‘맥베스’ 같은 작품들은 캐스팅에 힘을 실어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올여름에는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황정민 주연의 ‘맥베스’가 공연돼 화제를 모았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공연제작사 샘컴퍼니가 제작을 맡고 송일국과 송영창이 주요 캐릭터인 뱅쿠오, 덩컨 역을 각각 연기했다. 이달 1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약 3개월간 공연됐던 ‘햄릿’은 뮤지컬 ‘시카고’ 등을 만든 신시컴퍼니 제작으로 전무송, 이호재, 박정자, 손숙 등 연극계 거목들이 대거 출연했다.● 내면 방황하는 주인공, 불안한 현대인에게 호소 왜 지금 셰익스피어일까. 전문가들은 셰익스피어가 여전히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 이유를 그만큼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현대 문화 속에서 찾았다. 엄현희 연극평론가는 “자극적인 콘텐츠 속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친숙한 이야기를 반복해 음미하고 싶은 정반대의 욕구를 무대 예술이 해소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셰익스피어 작품 속 주인공들은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무너진 가운데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인물로, 오늘날 기후 위기, 정치 투쟁, 기술 발달 등으로 인해 불안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호소력을 갖는다”고 했다. 셰익스피어 희곡은 ‘드라마의 정수’로 불릴 만큼 서사의 기승전결과 갈등 구조가 뚜렷하다. 19세기 안톤 체호프의 희곡 ‘벚꽃 동산’ 등이 일상성을 앞세우는 것과 대비된다. 주인공들은 내면의 극심한 방황을 겪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 간다. 이시영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은 “인간의 내면과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관객은 인간을 이해하고 ‘나’를 발견한다. 400년 전 인물을 통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캐릭터 내면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극적 서사는 동시대의 그 어떤 사연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포스트드라마’(문학성이 아닌 현장성, 상호작용 등에 중점을 둔 연극 사조) 기조가 시들해지면서 “이야기가 있는 연극으로 회귀하자”는 관객의 요구가 거세진 것도 셰익스피어 재소환과 연관이 깊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국내 연극계가 10여 년간 연극성 강화에 집중하면서 이야기의 힘이 약해졌다”며 “관객이 셰익스피어를 다시 소환하는 건 드라마가 있는 연극을 갈구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나 미투 사태 이후 한동안 관객과 창작자 모두 현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급선무였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드라마 연극에 눈길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영향도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4대 비극, 제작사·배우에게도 ‘꿈의 작품’연극 관객은 영화 등과 비교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높은 티켓 가격을 지불한 만큼 관객들은 확실하고 안전한 작품을 선택하기 원할 때가 많다. 제작사들 입장에서 작품성이 보장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이런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유용하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프로듀서는 “극장까지 오가는 시간, 상대적으로 높은 값을 지불한 공연 관객들은 관람 역시 적극적인 편”이라며 “인간의 근본적 속성을 다룬 셰익스피어 희곡은 자기만의 시선으로 해석해 보는 재미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약 한 달간 공연됐던 황정민 주연의 ‘맥베스’는 유료 객석 점유율 99%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모았다. 티켓 최고가가 11만 원으로 연극 입장료 기준 고가였음에도 약 1200석 규모 객석이 가득 찼다. 이는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기준 올해 상반기(1∼6월) 연극 장르 티켓 예매 수가 전년 동기보다 1.5% 감소한 추세와 대비된다. 한 공연 프로듀서는 “평소 연극을 자주 보지 않는 관객도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관심을 갖기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가능성이 낮은 안전한 작품”이라며 “4대 비극의 주요 캐릭터는 배우들에게도 ‘꿈의 배역’으로 여겨지는 만큼 티켓 파워가 있는 인기 배우를 섭외하기도 좋다”고 말했다.● 익숙한 정통 연극에 극장에 돌아오는 중년층 최근 공연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원작 서사는 충실히 따르되 시대착오적 요소는 시대에 맞게 다듬는다. 전근대적인 대사, 캐릭터를 줄이고 배경 설정을 현대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올 7월 공연된 국립극단 ‘햄릿’은 성차별적 요소를 대거 들어냈다. 햄릿을 해군 장교 출신 공주로 설정했고, 상대역 오필리아는 기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꿨다. 여성 비하적 대사도 뺐다. 부새롬 연출가는 “성별을 넘어 단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이 작품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각색 의도를 설명했다. 올 6월 공연된 국립극장 기획 연극 ‘맥베스’도 시대적 배경을 각색했다. 원작 속 중세 스코틀랜드 왕족의 이야기가 정육점을 운영하는 오늘날 한국의 가족 이야기로 재창작됐다.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 관계자는 “고전은 검증이 끝난 작품이라 관객에게 쉽게 어필한다”며 “‘익숙한 원작을 어떻게 변주했는지’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로 작용한다”고 했다. 셰익스피어 원작에 충실하면서 고전미를 살린 정통 연극에는 전 세대가 고르게 반응했다. 신시컴퍼니 ‘햄릿’은 젊은층은 물론이고 중장년층 관객에게도 사랑받았다. 인터파크티켓에 따르면 예매자 중 40, 50대 비율이 48%에 달해 20, 30대 비중(41%)을 넘어섰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최근 공연된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정통 연극에 가까웠고, 중장년층에게 인지도 높은 출연진이 많았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정통 연극 트렌드가 확산되면 그동안 극장에 발길이 뜸했던 중장년층 관객까지 돌아오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상대 배우의 앙코르에 항의하며 공연을 지연시킨 오페라 스타 안젤라 게오르기우(59·사진)가 논란이 커지자 “즉흥 앙코르를 하지 않기로 사전 협의했다”고 주장했다. 게오르기우의 소속사 인터뮤지카는 11일(현지 시간) 성명을 내고 “공연 도중 누구도 앙코르를 하지 않기로 오페라 ‘토스카’ 제작진 및 지휘자와 사전에 협의하고 확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앙코르 진행은) 게오르기우에 대한 개인적인 모욕”이라고 했다. 그러자 세종문화회관은 12일 “앙코르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게오르기우가 개인 매니저를 통해 앙코르가 없기를 바란다고 통역사에게 문자로 전달한 사실은 있으나 이를 ‘합의’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다른 출연진의 앙코르까지 소프라노 1인이 결정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게오르기우는 앞서 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토스카’ 공연 3막에서 테너 김재형이 ‘별은 빛나건만’을 앙코르 하자 무대로 나와 지휘자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커튼콜에서는 인사도 없이 퇴장해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제작진 등의 대응이 세심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오르기우가 사전에 명확히 ‘본인 앙코르 불가’ 입장을 밝혔지만 2막이 시작하기 전 지휘자가 ‘다른 출연진이 앙코르를 할 것 같은데 당신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는 것. 거절당한 뒤 다른 출연진의 앙코르를 진행시키자 게오르기우의 불만이 커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민족 대명절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함께 문화의 향연을 만끽하면 어떨까. 추석을 맞아 볼만한 주요 공연과 문화 행사, 박물관 전시 등을 소개한다.● 거리극, 전통예술, 뮤지컬 등 다채로운 공연거리 공연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서울거리예술축제 2024’를 눈여겨볼 만하다. 16∼18일 오전 11시∼오후 9시 서울 중구 서울광장과 청계천, 무교로 일대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국내외 예술가 300여 명이 거리극, 무용, 전통연희 등 24개 작품을 선보이는 행사다. 하이라이트는 추석 당일 열리는 ‘쾌지나 창창 나네’. 현대무용가 안은미와 서울문화재단이 공동 제작한 공연으로 경기민요명창 이춘희와 씽씽 밴드 출신의 신승태, 추다혜 등이 출연한다. 공연료는 무료.전통예술의 깊은 맛에 빠지고 싶다면 17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연희마당의 ‘휘영청 둥근 달’ 공연에 가보자. 국립국악원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 등이 무대에 올라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이 어우러지는 한 마당을 선보인다. ‘풍년을 기뻐한다’는 뜻을 담은 궁중음악 ‘경풍년’과 강강술래 등이 펼쳐진다. 무료로 예약 취소분에 한해 현장에서 선착순 입장이 가능하다.서울 남산의 청량함을 덤으로 즐길 수 있는 국립극장 나들이도 고려할 만하다. 14, 15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선 장선희발레단의 ‘러브스토리 인 발레’가 열린 다.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등 사랑에 관한 발레 명작을 7개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강민우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조연재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등 스타 무용수들이 출동한다. 4만∼12만 원.다양한 연령층의 가족들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뮤지컬도 있다. 2014년 국내 초연 후 누적 관객 50만 명을 달성한 스테디셀러 뮤지컬 ‘킹키부츠’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공연된다. 폐업 위기에 놓인 아버지의 수제화 공장을 다시 일으키고자 주인공 찰리가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8만∼17만 원.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는 창작뮤지컬 ‘비밀의 화원’이 펼쳐진다. 195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보육원 퇴소를 앞둔 네 명의 아이가 “이 세상 모든 것엔 마법이 있다”고 믿으며 꿈과 희망을 품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전 석 7만 원.● 조선시대 ‘궁궐 잔치’ 체험 행사도 조선 왕실 문화의 꽃인 궁궐과 왕릉을 산책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가유산청은 14∼18일 닷새간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궁과 종묘, 조선 왕릉을 무료로 개방한다. 평소 예약제로 운영되는 종묘도 이 기간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그 대신 4대궁 등은 무료 개방 기간 다음 날인 19일 문을 닫는다. 경복궁에선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하루 두 번 궁궐 문을 지키는 수문장의 근무 교대 의식을 볼 수 있다.조선시대 궁궐 잔치를 체험해볼 수 있는 행사도 마련됐다. 12∼18일 창경궁 문정전에선 관객 참여형 행사 ‘창경궁 야연’이 열린다.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가 부왕에 대한 공경과 효심을 담아 주관한 야연에서 착안해 2021년부터 선보이고 있다. 가족 중 한 명(부모님)이 국왕으로부터 초대받은 손님이 돼 고위 관료나 정경부인의 복식을 착용한다. 이때 다른 가족들도 함께 궁중병과를 즐기며 전통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5만 원. 12일부터 11월 10일까지 창덕궁에선 은은한 달빛 아래 경내를 거닐며 해금, 거문고 연주 등을 즐길 수 있는 ‘창덕궁 달빛기행’이 진행된다. 3만 원.국립민속박물관은 추석 당일을 제외한 15, 16, 18일 사흘간 추석맞이 ‘한가위를 힙하게’ 행사를 연다. 이 중 16, 18일 박물관 본관 앞마당에서 ‘한가위배 씨름대회’가 열린다. 씨름 기술을 배우고, 겨루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밖에 사물놀이와 비보이가 만나 펼치는 퓨전 공연과 강강술래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기획전 ‘요즘 커피’에서는 대한제국 황실이 사용한 이화무늬 커피잔 등을 선보인다. 무료.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만약 지금 실력으로 알파고와 대결한다면 5번기에서 과감하게 3승에 도전하겠습니다.” 지난달 열린 제2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 결승에서 우승을 거둔 신진서 9단은 10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우승 기념 기자회견에서 ‘8년 전으로 돌아가 알파고와 맞붙는다면?’이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읽기, 형세 판단 등이 인공지능(AI)과 유사해 ‘신공지능’으로 불리는 신 9단은 AI와의 대결에 대해 “아주 재밌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2016년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는 당시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이긴 후 중국 1인자 커제 9단 등 세계 최강자들을 상대로 60전 전승을 거뒀다. 이세돌에게 당한 1패가 유일한 패배였다. 신 9단은 “AI 덕분에 프로 기사들의 역량이 많이 성장했고 (나 역시) 세계대회에서 초일류 기사들을 꺾을 수 있는 기량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우승으로 인해 신 9단은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7번째 우승을 거뒀다. 국내에선 이창호 9단(17회), 이세돌 9단(14회), 조훈현 9단(9회)을 잇는 기록이다. 올 3월 열린 제15회 춘란배 16강전에서 탈락했던 부진을 털어냈다. 자타 공인 세계 최강자인 그도 좌절감, 부담감에 바둑을 관두고 싶을 때가 많았단다. “2016년부터 2, 3년간은 어떻게 넘겼을지 모를 만큼 힘들었다”고 했다. 큰 대회를 앞두고는 여전히 잠을 설친다. 신 9단은 “슬럼프를 극복한 특별한 비결은 없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큰 대회를 앞둔 신 9단만의 컨디션 조절 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루틴은 없고 잠을 많이 잔다”며 “세계대회 때는 아침이나 점심을 많이 먹지 못해 매우 허기진 상태에서 대국하는 편”이라고 했다. 신 9단 앞에는 ‘최고 상금’ ‘정상’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올 1∼8월 그의 누적 상금은 13억4069만 원으로, 연말까지 약 1억6000만 원을 추가로 획득하면 한국기원 사상 연간 최대 상금인 15억 원을 넘어선다. 그는 “바둑 기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금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바둑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 그의 목표는 ‘끝없이 성장하는 기사’로 기억되는 것이다. 신 9단은 “AI조차 수를 다 못 찾을 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운 게 바둑의 매력”이라며 “15년 이상 바둑을 뒀지만 보면 볼수록 수가 더 나오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부담이나 좌절감 때문에 바둑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난달 열린 제2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전 결승에서 중국 구쯔하오 9단을 꺾고 우승을 거둔 신진서 9단이 10일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 9단은 구쯔하오 9단과 맞서 1국과 2국 모두 완승하며 전기 대회의 설욕을 갚았다. 이번 우승으로 신 9단은 2012년 입단 이후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7번째 우승하게 됐다. 국내에선 이창호 9단(17회), 이세돌 9단(14회), 조훈현 9단(9회)을 잇는 기록이다. 올 3월 열린 제15회 춘란배 16강전에서 중국 양카이원에게 패배한 이후 부진이 이어졌기에 더 값진 성과다. 그는 “최근 연이어 아쉬운 성적을 받았으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지난해 아픔이었던 란커배에서 우승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한 해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연말까지 남은 세계 대회를 통해 신9단이 슬럼프를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지 바둑팬들의 관심이 크다. 11월 개최되는 삼성화재배의 경우 지난해 중국 셰얼하오 9단에게 대마를 잡히며 8강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는 “많은 역경을 통해 성장했기에 최근의 슬럼프는 비교적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며 “특별한 비결은 없다. 그저 열심히 한다”고 했다.인공지능(AI)처럼 정확한 수를 보여 ‘신공지능’이란 별칭을 가진 신9단 앞에는 ‘최고상금’ ‘정상’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삼성화재배에서 우승 상금 3억 원을 받으면 신 9단은 한국기원 사상 연간 최고상금을 거두게 된다. 역대 최고액은 지난해 신 9단이 기록한 14억7961만 원. 올 1~8월 그의 누적 상금은 13억4069억 원으로, 연말까지 약 1억6000만 원을 추가로 획득하면 최초로 15억 원을 넘어선다. 그는 “20년 가까이 시합 하나만 보고 바둑을 뒀다. 상금은 따라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상금 뿐 아니라 ‘57개월 연속 정상’ 같은 타이틀에도 그는 특별히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AI조차도 보지 못한 수를 봤을 때” 가장 기쁘단다. 신9단은 “AI조차도 수를 다 찾지 못했을 만큼 바둑은 어렵고도 재미난 게임”이라며 “20년 가까이 바둑을 뒀으나 보면 볼수록 더 많은 수가 나오는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끝없이 성장하는 기사’로 기억되는 것이다. 지난달 발간한 첫 에세이 ‘대국: 기본에서 최선으로’에서 신 9단은 “바둑의 신과 하이파이브 하는 그날까지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큰 대회를 앞두고는 여전히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그런 부담감 자체에서 뿌듯함을 느낀다”며 “연말까지 중요한 시험대가 남아있기에 더욱 정진하겠다”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영광의 수상자들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9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8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4명씩 참여해 6∼8월 3개월간 진행했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오늘날 밀알학교가 있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대표해 이 상을 받는 것 같습니다.”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82·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은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밀알학교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 같은 소감을 밝히고 한동안 교정을 바라봤다. 밀알학교는 밀알복지재단이 1996년 설립한 발달 장애 아동 특수학교다. 1975년 남서울교회를 세워 담임목사로 활동 중이던 그가 밀알학교 설립을 결심한 것에는 지체 장애를 가진 스무 살 터울 막내 여동생의 영향이 컸다. 국내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동생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다. 결국 홍 이사장 권유로 미국 유학을 떠났고 현지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홍 이사장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견고한 사회적 편견과 장벽에 맞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며 “장애인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지 고민하다 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밀알학교 설립 당시만 해도 지역 주민 반대로 개교가 무산될 뻔했다. 결국 소송을 통해 학교를 설립했지만 홍 이사장은 이후 지역 주민과 학교의 ‘공존’을 위해 노력했다. 1998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학교 건물 내 카페, 음악홀, 미술관 등의 시설을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또 남서울은혜교회는 별도 건물을 짓지 않고 밀알학교 강당에서 예배를 진행했다. 밀알학교를 달가워하지 않던 주민들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졌다. 2009년에는 밀알학교 학생들이 졸업 후 교육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드림대학도 설립했다. 2011년부터는 세계적 비영리 단체인 ‘굿윌’과 손잡고 굿윌스토어를 운영하며 발달 장애 학생들의 취업도 지원하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많은 장애 학생들이 삶의 보람과 희망을 찾고 있다. 재단에서 운영하는 발달장애인 예술단 소속 한 첼리스트는 다른 기업에서 채용 제의를 받고도 “살면서 여기서 처음 사람대접을 받았는데 다른 곳으로 왜 가겠냐”며 거절하기도 했다. 홍 이사장은 “그 말을 듣고 모든 걸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이 감사하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사회의 됨됨이는 가장 연약한 사람을 어떻게 돕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 곳곳에선 서로 미워하고 싸우기만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선(善)이 더 큰 선을 키우는 선순환의 고리를 종교와 교육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공적국내 복음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홍정길 이사장은 ‘건물 없는 교회’로 유명한 남서울은혜교회의 원로목사로 1996년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밀알학교를 설립했다. 1997년 3월 유치원과 초등학교 총 13학급으로 출발한 밀알학교는 현재 유치원과 초중고교, 직업 훈련 과정인 드림대학까지 총 31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재학생은 총 196명이다. 밀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굿윌스토어(기증품 판매점)는 33호점까지 확장됐다. 굿윌스토어에서 일하는 장애인 직원만 400여 명에 이른다. 해외 빈곤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 사업도 진행해 지난해만 10개국 1777명의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62년간 연기 한우물… “연극배우 첫 수상, 후배들에 길 열어줘 기뻐”언론·문화 박정자 배우“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 내 생애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요. 인촌상이 연극배우에게 주어지는 건 처음이기에 더욱 감사합니다. 앞으로 후배들이 상 받을 기회가 열린 것 같아서요.”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연극배우 박정자 씨(82)를 만났다. 1962년 데뷔 후 올해까지 62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무대를 지키고 있는 박 씨는 “과거 잘나가던 한때의 배우가 아니라 현역 배우로서 받은 상이라 뜻깊다. 이름값을 하기 위해 여생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박 씨는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뒤 지금까지 총 16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올해도 연극 ‘햄릿’, 뮤지컬 ‘영웅’ 등 세 편에서 조연 및 단역을 맡았다. 박 씨가 보여준 수첩은 연습과 공연 일정 메모로 빼곡했다. 그는 “배역의 크고 작음은 중요치 않다. 객석을 등진 채 앉아 있기만 해도 아우라를 뿜어낼 수 있는 실력이 중요하다”며 “어제 한 연습 오늘 또 하는 건 소용없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연극과의 첫 만남은 그가 여덟 살이던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전쟁이 나기 직전이다. 박 씨는 “극단 ‘신협’ 연구생이던 오라버니(박상호 영화감독)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러 간 부민관에서 연극 ‘원술랑’을 봤다. TV조차 없던 시절, 어린아이가 마주한 판타지는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내게 연극은 운명과도 같았다.”박 씨는 1963년 동아방송(DBS) 성우극회 1기로 활동했고, 1966년 극단 자유의 창단 멤버가 되며 연극 ‘따라지의 향연’ 등에 출연했다. ‘신의 아그네스’를 비롯해 숱한 대표작을 남겼고, 동아연극상을 3번 받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에 서는 것은 지금도 혼신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 “요즘도 무대에 설 때마다 떨립니다. 객석 앞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어떤 호흡과 발성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야 할지 지금도 끝없이 고민하곤 합니다.”박 씨는 2005년부터 12년간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연극인 처우 개선에 힘쓰기도 했다. 그는 배우로서 연극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주위에 전달하고자 했으며, 그 노력을 앞으로도 지속하겠다고 했다.“일평생 가장 잘한 선택은 배우가 된 것입니다. 무대 위에서 쓰러지는 것이 꿈이에요. 염치없을 만큼 큰 욕심이지만요. 내 가슴속 불덩이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불을 지피겠습니다.”공적1962년 연극 ‘페드라’ 이후 올해까지 62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오르면서 일생을 연극에 헌신했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금언을 자신의 연극 정신으로 삼아 160여 편의 연극 작품에 주연, 조연, 앙상블(주·조연 제외한 배역)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으며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나의 종교는 연극이다’라는 말로 삶의 지표와 가치를 표현하기도 했다. 1986년 연극 ‘위기의 여자’로 여성 관객들을 대거 문화 현장으로 불러내는 트렌드도 만들었다. 당시 만들어진 후원조직 ‘꽃봉지회’와 함께 연극 대중화 운동과 연극인의 복지 향상에도 힘썼다.한문 고전 쉽게 풀어 대중화… “삶의 지평 넓히는 고전, 널리 알릴것”인문·사회 안대회 교수“무게감 있는 상을 받았으니 앞으로도 더 차분하게 연구를 지속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인촌상 인문·사회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63)는 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수상 소감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안 교수는 “큰 영광이면서도 ‘내가 이런 상을 받을 만한 성과를 냈나’ 하는 생각도 든다”며 겸손해하기도 했다.1994년 연세대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7년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임용돼 후학을 양성 중인 안 교수는 한문 고전을 쉽게 풀어 번역해 인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전 중에는 지금 읽어도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고전을 딱딱하다고 여기는 대중들에게 읽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안 교수는 18, 19세기 조선 민중들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문헌을 수집해 연구해 왔다. 개성 한량 한재락이 1820년대 평양 기생 66명과 기방 주변 명사 5명을 만나 엮은 책인 ‘녹파잡기(綠波雜記)’ 원본을 2006년 발굴한 것이 대표적. 2011년에는 조선 정조 때 활약한 노비 시인의 한시집 ‘초부유고(樵夫遺稿)’를 소개하기도 했다. “사대부뿐 아니라 민중과 예술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삶을 복원해야 우리 문화사가 풍부해집니다. 한문학 하면 점잖은 양반들의 이야기만 다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2018년에는 조선 후기 학자 이중환(1691∼1756)이 쓴 인문 지리서 ‘택리지(擇里志)’ 정본을 번역해 발간했다. 제자들과 함께 6년 가까이 200여 종의 이본을 비교해 믿을 만한 텍스트를 선별한 결과다. 안 교수는 “후학들의 연구를 돕기 위해선 선배 연구자들이 많은 이본과 교감해 신뢰할 수 있는 연구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 “좋은 연구서가 있어야 이를 토대로 후학들이나 외국 학자들이 우리 고전을 효과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했다.흥미로운 대중 교양서도 다수 펴냈다. 조선시대 광대, 점쟁이 등 재주꾼들의 삶을 다룬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2010년), 여행가와 바둑기사 등 조선 전문가들의 열정을 그린 ‘벽광나치오’(2011년) 등이다.안 교수는 “정년 이후로도 관심사에 천착한 긴 호흡의 연구에 매진하고 싶다”고 했다. “고전은 그냥 ‘구닥다리’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분명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삶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혀주는 고전의 훌륭함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공적한문학 연구 권위자로 다양한 인문교양서를 통해 한문 고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18, 19세기 문집을 집중 연구해 조선시대 지식인과 민초들의 생생한 삶을 보여주는 미시사 연구에 한 획을 그었다. ‘학술 연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일’이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한문 자료들을 번역해 소개해 왔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인 ‘택리지’ 이본을 수집해 정본을 확정하고, 주석을 붙여 번역 출간했다. 이 밖에 꾸준한 자료 발굴과 해석을 통해 조선 후기 풍속사와 문화예술사 연구의 기반을 구축했다.국내 AI 컴퓨터비전 연구 기틀… “실패는 재도전 기회, 꾸준히 노력을”과학·기술 권인소 교수“조용하게 연구만 해 온 저에게 이런 상을 주신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을 후배 과학자들에게 해주고 싶습니다.”인촌상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권인소 한국과학기술원 전기및전자공학부 KAIST 교수(66)는 이같이 말했다. 권 교수는 “실패를 ‘다시 도전’이라 생각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건넸다.국내 대표 인공지능(AI) 컴퓨터비전 석학으로 꼽히는 권 교수의 전공은 뜻밖에도 기계공학이다. 서울대 기계설계공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한 권 교수는 1984년 미국 카네기멜런대로 박사학위를 따러 떠났다. 그는 당시 로봇 공학자로 이름을 떨치던 가나데 다케오 교수를 찾았다. 로봇 과제에 필요한 알고리즘을 3개월 만에 개발하라는 과제를 받았고,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도전한 끝에 눈이 내리던 12월 마지막 날, 권 교수는 가나데 교수의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하지만 권 교수가 개발한 알고리즘 에러로 인해 고가의 ‘보드’에 불이 붙는 사고가 생겼다. 당시 미국 내 5개밖에 없던 보드였다. 쫓겨날 위기였다. 권 교수는 “그때 가나데 교수가 차라리 다른 전공인 ‘컴퓨터비전’으로 바꾸면 연구실에 머물 수 있다며 기회를 주셨다”고 회상했다. 실수가 평생의 연구 분야로 이끌어준 것이다.AI 컴퓨터비전은 AI를 활용해 이미지와 동영상 속 물체를 인식, 분류하고 분석하는 기술이다. 권 교수는 2015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재난 구조 로봇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던 국내 최초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의 숨겨진 조력자다. 휴보의 눈과 머리를 맡았던 권 교수는 라이다 센서와 컬러 카메라 정보를 융합해 빛의 양과 관계없이 물체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했다.이후 권 교수는 인간의 주의 집중을 모사한 ‘어텐션’ 모델을 컴퓨터비전 분야에 적용한 ‘CBAM(Convolutional Block Attention Module)’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어텐션 모델은 챗GPT와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에도 적용된 모델이다. CBAM은 수많은 딥러닝 모델에 적용돼 성능은 유지되면서 모델의 복잡도는 평균 37% 정도 줄였다. 이 연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럽컴퓨터비전학회(ECCV)에 게재돼 현재까지 2만 회 이상 인용됐다.권 교수는 “앞으로도 꾸준하게 연구를 이어갈 것이다. 후학들도 항상 성실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AI 연구를 이어가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공적권인소 교수는 1980년대 국내에서 불모지였던 로보틱스·컴퓨터비전 분야 연구에 도전해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연구자다. 1세대 컴퓨터비전 연구자로 2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해 국내 AI 컴퓨터비전 분야의 기틀을 닦았다. 최근 인간의 주의 집중을 모사한 ‘어텐션’ 모델을 컴퓨터비전 분야에 확장해 영상 인식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인 ‘CBAM’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유럽컴퓨터비전학회(ECCV),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 등 세계적인 학술대회에서 여러 상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는 한국로봇학회 회장을, 2017년에는 한국컴퓨터비전학회 초대 회장을 맡은 바 있다.제38회 인촌상 심사위원 (가나다순)▽교육 △위원장 김경성 전 서울교대 총장 △위원 신종호 서울대 교수, 이용균 중앙고 교장, 장덕호 건국대 교수▽언론·문화 △위원장 김영석 연세대 명예교수 △위원 곽효환 시인·전 한국문학번역원장, 이은주 서울대 교수, 최맹호 전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인문·사회 △위원장 김혜숙 전 이화여대 총장 △위원 구범진 서울대 교수, 김두얼 명지대 교수, 임준철 고려대 교수▽과학·기술 △위원장 노정혜 서울대 명예교수 △위원 김창영 서울대 교수, 예종철 KAIST 교수, 천진우 연세대 교수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한때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17년째 신작을 내지 못하고 외로움에 빠져든 교수 ‘벨라’. 그녀를 존경하는 학생 ‘크리스토퍼’는 매일 같은 시간에 벨라를 찾아와 자신이 위태로이 쓴 소설을 들려준다.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지만, 마음속 “벌거벗은 나무가 있는 겨울 공원” 같은 고독까지 서로 치유해 줄 수 있을까. 다음 달 27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의 줄거리다. 위암에 걸린 예일대 영문학부 교수 벨라, 명석하지만 무람없는 학생 크리스토퍼가 유대를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 2인극이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일 테노레’의 극작가 겸 작사가 박천휴가 대본 윤색에 연출까지 처음 맡았다. 등장인물들은 커트 보니것, 오노레 드 발자크 등 유명 소설가들을 끊임없이 거론하며 대화에 입체감을 더한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애증은 두 주인공이 고독함을 자처하는 동시에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상반된 심리를 은유적으로 전달했다. 다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작품 메시지와 연결하려 했던 점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극중 상황과 심리는 벨라의 시점에서 섬세하고 문학적인 대사들로 풀어져 나온다. 벨라는 자신에 대해 “난 녹슨 병따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고학적 유물”이라고 냉소하며 “세월은 어딘가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갑자기 덮쳐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심경을 “한겨울 따뜻한 비에 녹아버린 눈”에 빗댄 대목은 마치 소설을 읽는 듯했다. 벨라 역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등에 출연한 서재희가 맡아 담담한 서술자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소화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봄과 여름이 등을 맞댄 5월이 되면 전남 강진에는 선홍빛 모란이 황홀경을 이룬다.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남긴 시인 김영랑은 이처럼 모란이 가지런히 심긴 강진의 마당, 은빛 바다를 바라보며 살았다. 책은 “시에 토질이란 것이 있다면 남도의 정서, 그 청자빛, 순연한 슬픔과 정조가 영랑의 토질일 것”이라고 한다. 경북 안동의 이육사, 충남 부여의 신동엽, 강원 봉평의 이효석 등 한국 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배경이 된 23곳을 답사한 기록을 모은 책이다.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여행기와 비평문을 매끄럽게 넘나들며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섬세한 답사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전 작고한 문인들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서울 성북구의 심우장에 간 저자는 생가를 둘러보며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한 시인의 올곧음을 톺아본다. 책에 따르면 생가는 애초에 남향으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만해가 ‘조선총독부 건물과 마주하지 않겠다’며 북향으로 지어졌다. 윤동주의 자취를 쫓고자 옛 간도 땅인 중국 연길로 향하기도 한다. 시 ‘별헤는 밤’ 등에 담긴 고향과 자연을 향한 애틋함은 윤동주 가문이 초창기에 이민한 북간도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연길에 있는 윤동주 생가를 둘러보면서 여리고도 강인한 시인의 성품을 헤아려본다. 여행지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한 수려한 문장들은 당장 떠나고 싶은 충동을 일게 만든다. 시 ‘깃발’ ‘바위’ 등을 쓴 유치환의 흔적을 찾아 경남 통영으로 떠난 저자는 남도의 바다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남도의 해안 끄트머리에 이르러 부챗살처럼 퍼진 어항에 늘 넘실대는 푸른빛 바다는 (중략) 내륙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힘든 세계”.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온전한 사랑을 지치지 않고 퍼붓는 남자야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죠. 현실에선 어렵잖아요. 그런 왕자님인 ‘주원’이 잘 표현되게끔 상대 배우로서 호흡을 궁리했어요.”(배우 신현빈) “주원은 ‘윤서’를 사랑하기에 마음속 상처를 내색하지 않고 한없이 헌신해요. 저라면 그렇게 못할 것 같아서일까요. 처음 대본을 읽는 순간 엄청난 매력을 느꼈죠.”(배우 문상민) 채널A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새벽 2시의 신데렐라’에서 재벌 3세 연하남 주원 역을 맡은 배우 문상민(24)과 현실판 신데렐라 윤서 역으로 출연하는 신현빈(38)을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드라마는 주원을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지키려 이별을 결심한 현실주의자 윤서, 그녀와 헤어지지 않으려 끊임없이 매달리는 주원이 그리는 좌충우돌 로맨틱 코미디다. 동명 웹툰 및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10년 데뷔해 ‘얼굴을 갈아 끼우는 배우’라는 평을 받는 신현빈이 정석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에 도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백마 탄 왕자님은 내 쪽에서 거절”이라고 말하는 당찬 면모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여린 눈매가 교차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신데렐라가 되기를 거부하는 신데렐라’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익숙한 클리셰를 조금씩 비틂으로써 시청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겠다고 봤다”고 했다. 앞서 드라마 ‘웨딩 임파서블’에서도 재벌 연하남으로 출연한 문상민은 더욱 깊어진 눈빛과 노련해진 플러팅을 선보인다. 로맨스물 주인공으로서 역량을 높이려 소속사 선배이자 ‘로코 장인’인 박서준의 영상을 뜯어보며 공부한 것. 그는 “귀여움과 박력을 모두 갖춘 연하남을 소화하고자 평소 좋아하지 않던 헬스로 몸을 다지고 눈빛 연기에 공을 들였다”면서 “감독님이 ‘사연 있어 보이는 눈망울을 가졌다’고 해주시더라”며 웃었다. 신현빈은 세밀한 시선 처리까지 고민해 가며 배역을 연구했다. 그는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이 밀어내는 윤서의 속마음을 시청자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목표였다”며 “주원의 매달림에 흔들리는 마음을 막아서는 상황이 반복되지만 시청자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시선 처리 하나하나 고심하며 바꿨다”고 설명했다. 주원이 데려간 순두부찌개 가게에서 윤서가 잽싸게 소주 한 병을 주문하는 등 절로 웃음이 나는 ‘쿵 짝’은 드라마의 묘미. “촬영장 분위기 자체가 화기애애한 덕”이라지만 두 사람이 첫 만남부터 완벽한 궁합을 보였던 건 아니다. 고속 승진한 팀장 윤서, 신입사원으로 위장한 주원을 맡은 두 사람은 실제 열네 살 차 연상연하다. 신현빈이 “초면엔 상민 씨가 눈을 전혀 못 맞추며 어려워했다”고 하자 문상민은 “누나가 출연한 드라마 ‘아르곤’을 좋아했던 터라 처음엔 부끄러웠다. 밥 사달라고 하면서 거리를 좁혔다”고 했다. 나이 차가 느껴질 법도 하지만 신현빈의 배려심과 문상민의 ‘아재스러움’이 만나 간극을 메웠다. 신현빈은 “캐스팅 소식을 듣고선 다소 의아하긴 했다. 그러나 상민 씨가 푸근한 성격인 데다 ‘산울림’ 같은 옛날 노래를 즐겨서인지 빠르게 친해졌다”며 미소 지었다. 이에 문상민은 “어릴 때부터 가족 모임에 빠지지 않는 귀여운 막내”라며 “누나가 선배로서 해준 연기 조언이 캐릭터 구축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총 10부작인 작품은 이제 5∼10화가 남았다. 두 사람은 ‘성민’ 역 배우 이현우의 등장이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라고 입을 모았다. 문상민은 “삼각구도로 인한 주원의 질투가 아주 귀엽고, 성민의 미스터리한 과거가 밝혀지면서 드라마가 더 힘을 받는다”고 말했다. ‘새벽 2시의 신데렐라’는 매주 토, 일요일 오후 9시 20분에 방송된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선선한 가을 저녁 즐기기 좋은 클래식 및 뮤지컬 음악회가 이달 다채롭게 열린다. 6∼8일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크레디아 파크콘서트’가 5년 만에 개최된다. 첫날에는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와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호흡을 맞추고, 이튿날에는 온 가족이 즐기기 좋은 ‘디즈니 인 콘서트’가 이어진다. 뮤지컬 배우 정선아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가수들이 출연해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노래를 80인조 대형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부른다. 마지막 날에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등 클래식 명곡을 연주한다. 5만∼10만 원. 20일과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는 크로스오버 합창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서울시예술단 가을 음악회’가 펼쳐진다. 서울시합창단은 20일 오후 7시 반 출연진 80여 명을 구성해 ‘사운드 오브 뮤직’ 등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부터 민요 ‘경복궁타령’, 크로스오버 ‘넬라 판타지아’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합창을 들려준다. 22일 오후 6시에는 서울시뮤지컬단이 무대에 올라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를 비롯한 유명 뮤지컬은 물론 ‘서편제’ 등 국내 창작 뮤지컬을 아우르는 넘버들을 노래한다. 전석 무료, 4일부터 사전 관람 신청을 받는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올 8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데스타운’ 무대에 한국계 배우가 올랐다. 동양인 남자 배우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해석한 ‘하데스타운’의 브로드웨이 본공연에 합류한 건 이번이 처음. 배우 티머시 이(27·한국명 이해찬)는 올해 미국 투어 공연에서 아시안 최초로 주인공 오르페우스 역을 맡은 데 이어 본공연에서 앙상블 ‘워커’ 역과 오르페우스 역의 언더스터디(예비 배우)를 겸하게 됐다. 하나의 배역을 서너 명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 흔한 우리나라와 달리 통상 단일 캐스트로 이뤄진 브로드웨이에서 언더스터디는 정기적으로 무대에 선다. 이 씨는 “본공연에 들어가게 돼 큰 영광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배우와 함께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동양인에게 문턱 높은 ‘뮤지컬 본고장’ 브로드웨이에 한국계 배우, 창작진이 점차 입지를 넓히고 있다. 배우의 경우 ‘미스 사이공’ 등 주인공 설정이 동양인인 소수 작품을 제외하면 설 자리가 좁다. 한 공연제작사 관계자는 “투어 공연은 출연진이 길게는 몇 년간 묶여 있어야 하기에 인기 배우들은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서구에서 발전한 뮤지컬 특성상 동양인 캐릭터 자체가 드물고 (본공연에서) 동양인 배우에게 비동양인 배역을 잘 주지 않는다”고 했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로 제작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4월 15일 이후 19주 연속 매주 매출액 100만 달러 이상을 내며 ‘원 밀리언 클럽’을 이어가고 있다. OST 앨범은 최근 빌보드 차트 ‘캐스트 앨범’ 부문 1위를 석권하기도 했다. 올 6월 미국 토니상에선 한국계 디자이너 2명이 의상상과 조명상을 받기도 했다. 브로드웨이에서 한국계 입지가 넓어지는 것. 신춘수 대표는 “브로드웨이 공연을 본 해외 창작자들의 라이선스 공연 문의가 많아 독일, 스페인, 호주 등 진출을 모색 중”이라며 “향후 후배 뮤지컬 제작자들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고 K뮤지컬이 영역을 넓히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