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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착취물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가해자들이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중학생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팔아 돈을 벌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례도 확인됐다. 당국의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로 결제가 이뤄지는 탓에 딥페이크 범죄가 음지에서 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유통 중인 대화방 10곳에 잠입해 거래 현황을 살펴봤다. 이 대화방에서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이용해 음란물을 사고파는 거래가 이뤄졌다. 취재팀이 성착취물 구매를 희망하는 것처럼 가장해 결제를 시도하자 ‘46종의 가상화폐로 이용 가능하다’는 안내가 나왔다. 대화방에서는 ‘더 적나라한 성착취물을 구입하고 싶으면 좀 더 큰 금액을 지불하라’는 취지의 안내도 이어졌다. 딥페이크 범죄를 실제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중학생이 경찰에 검거된 사례도 확인됐다. 2021년 7월 경북 구미의 중학교 3학년 A 군은 한 성착취물 제작자에게 15세 여학생 2명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해 달라고 의뢰했다. A 군은 이후 직접 딥페이크물 제작 방법을 터득한 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비롯해 총 177건의 딥페이크물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성착취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팔았다. 나아가 합성 사진을 당사자인 피해 여성에게 전송한 뒤 “알몸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협박했다. 결국 경찰에 붙잡힌 A 군은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1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범죄 조직들은 몇천 원만 내면 성착취물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일명 ‘딥페이크 봇(bot)’으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성착취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거래 구조가 유지되는 한 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화폐가 불법 음란물 유통의 핵심 도구로 이용 중”이라며 “더 큰 금액을 지불할수록 더 높은 강도의 음란물을 받을 수 있다 보니 범인들이 떼돈을 버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코인 받고 ‘딥페이크 성착취물’ 다단계 거래… 추적 어려워 [돈벌이 된 딥페이크 성범죄]퍼트릴수록 돈 더 버는 구조… ‘봇’ 통해 거래, 판매자 정체 몰라텔레그램은 광고수익탓 방치… 전문가 “범죄수익 몰수대책 필요”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의 정점에는 ‘딥페이크봇’을 만들어 굴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자동으로 가짜 이미지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뒤 텔레그램 대화방을 운영한다. 그 아래는 이들에게 구입한 성착취물을 다단계식으로 되파는 일당들이 있다. 말단에는 잠재적 구매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미끼’처럼 무차별적으로 성착취물을 퍼뜨리는 텔레그램 대화방 참여자들이 존재한다. 이들 사이의 거래가 모두 ‘가상화폐’로 이뤄지고 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퍼뜨릴수록 돈을 버는 구조 탓에 관련 범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돈 더 내면 더 수위 높은 사진 구입’ 유도 28일 동아일보 취재팀은 텔레그램봇으로 운영되는 한 대화방을 확인했다. 이 대화방은 실제 참가자들은 없고, 딥페이크봇 프로그램이 마치 운영자처럼 상주한다. 취재팀이 이 방에 접속하자 ‘여성의 사진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여기서 다이아몬드란, 일종의 가상 거래 수단인데 보통 ‘1다이아몬드=약 500원’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취재팀이 확인한 10개 이상의 텔레그램봇 방은 개당 이용자가 20만∼30만 명 정도였다. 이들 모두 비슷한 가상화폐 결제 방식을 쓰고 있었다. 취재팀이 접촉한 텔레그램봇들은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면 더 수위가 높은 성착취물을 구입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들은 “당신만의 사진을 가져보세요. VIP의 특권임. 워터마크(일종의 표식) 없음” “더 나은 디테일을 경험하세요” “더 진짜 같은 사진” 등의 홍보성 문구를 계속 쏟아냈다. 구매자로 하여금 더 적나라한 성착취물을 비싼 가격에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매자들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딥페이크봇을 통해 거래하기 때문에 내 돈이 누구한테 건너갔는지는 알 수 없다. 판매자의 진짜 정체도 드러나지 않는다. 취재팀이 관찰한 결과 이렇게 제작된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일명 ‘지인능욕방’ ‘겹지인방’ 등으로 확산, 유통됐다. 일종의 ‘공급자→도매시장→소매시장→소비자’로 연결되는 구조다. ● 범죄 수익 높아지면 텔레그램도 수익 증가 이 같은 구조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가상화폐로 거래한 경우에는 추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텔레그램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이러한 범죄 구조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착취물을 거래하는 봇, 대화방, 결제창 등에는 상업 광고가 내걸려 있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텔레그램이 광고 수익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다. 마치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높아질수록 영상 제작자와 유튜브 측이 함께 수익을 올리는 것과 같은 셈이다. 올해 4월 텔레그램은 1000명 이상이 이용하는 ‘텔레그램봇’ 제작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절반을 가상화폐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취재팀이 확인한 딥페이크봇들은 20만∼30만 명 규모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봇들을 통한 성착취물 거래가 늘어나고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텔레그램과 봇 제작자들의 수익은 커진다. 게다가 텔레그램이 발행하는 가상화폐가 주요 거래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텔레그램이 얻는 이익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수익 연결고리 깨야…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이들의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범죄로 수익을 거두는 구조를 깨뜨려야 성착취물의 제작, 배포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학장은 “딥페이크 성착취물 거래는 가상화폐를 이용하기 때문에 기존 은행 등 금융기관 시스템으로는 확인이 어렵다”며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도 “딥페이크는 성폭력처벌특례법 제14조의 2에 따라 반포와 판매만 처벌하도록 돼 있어 구매자를 처벌할 수 없다. 구매자들도 강력하게 처벌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도박에 쓰인 가상자산을 범죄 수익으로 몰수할 수 있다는 2018년도 대법원 판례를 참고할 만하다”며 “딥페이크 범죄에 쓰인 가상자산도 충분히 몰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만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실제 몰수하기 위한 수단이나 장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범죄가 온라인 성착취물 제작, 유포를 넘어 오프라인으로 번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들은 피해 여성이나 그 가족에게 음란물을 전송하거나 학교폭력 및 왕따(집단 따돌림) 수단으로 딥페이크를 악용했다. 올해만 국내 피해자가 1000명을 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 가운데 미국의 한 사이버 보안업체는 전 세계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피해자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오프라인으로 번진 딥페이크 범죄 28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대전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딥페이크 관련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는 1월 2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에서 ‘딥페이크 음란물 공유방’을 운영했고, 한 여성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만든 뒤 대화방 참가자 2000∼3000명에게 유포했다. 김 씨는 피해 여성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 여성의 아버지 전화번호도 퍼뜨렸다. 이후 피해 여성과 그 가족들의 스마트폰에는 갑자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음란한 메시지와 음성 등이 담긴 문자, SNS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와 고통에 시달렸다. 학교에서도 딥페이크가 학생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학교폭력 예방 전문기관인 푸른나무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고등학교 남학생 두 명이 서로 짜고 동급생 사진으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었다. 이들은 마치 피해 학생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가짜 SNS 계정을 만들어 이를 유포했다. 가해 학생들은 ‘추가 영상을 만들어 유포하겠다’며 피해 학생을 협박하고 왕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딥페이크 사진이나 영상은 2000원대에 판매되기도 한다. 딥페이크 가해자가 피해 여성을 스토킹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경남 진주에서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한 혐의로 20대 남성이 붙잡혔다. 그는 구속을 면하자 피해 여성의 집에 찾아가 피해자가 공포에 떨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살펴본 딥페이크 관련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현실 범죄를 모의하는 대화도 오갔다. 28일 잠입한 한 대화방에서는 “협박할 사진이나 약점이 있으면 무조건 몸사(몸 사진) 얻어 드린다”, “성폭행하는 사진도 촬영 가능하다” 등의 대화가 오갔다. 다른 대화방에서는 한 피해 여성의 신상 정보, 주소 등과 가족 신상 정보까지 올라왔다. 단순 성착취물 제작 유포를 넘어 협박, 성범죄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전 세계 피해자 절반 이상이 한국인 최근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내놓은 딥페이크 범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8월 사이 전 세계 85개 딥페이크 채널을 분석한 결과 성착취물 피해자 중 53%는 국적이 한국이었다. 2위는 미국(20%), 3위는 일본(10%)이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가장 많이 이용된 인물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인 가수였다. 구체적인 피해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인기 케이팝 아이돌 등일 가능성이 크다. 딥페이크 피해 규모는 급증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2018년 4월부터 이달 25일까지 약 6년 4개월 동안 딥페이크 피해 지원에 나선 건수는 총 2154건이다. 2018년 69건에서 올해 781건(8월 25일 기준)으로 약 11배로 늘었다. 연말까지 1000건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지원을 요청한 781명 중 288명(36.9%)은 10대 이하 청소년이었다. 경찰은 28일 딥페이크 관련 텔레그램방 8곳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해당 대화방에 많게는 40만 명의 참가자가 있었다고 밝혔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딥페이크물은 가해자들에게 잘못된 판타지와 인식을 심어줘 실제 범죄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
22일 경기 부천시 호텔 화재 참사 당시 계단 방화문이 열려 있어 유독가스가 빠르게 퍼졌을 가능성을 경찰이 수사 중이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방화문은 불길이나 연기 확산을 막기 위해 평상시 닫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6일 부천 호텔과 유사한 서울의 주요 숙박시설을 살펴본 결과 상당수가 방화문을 열어 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 숙박시설 10곳 가보니, 8곳 방화문 개방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부천 화재 사망자 7명 중 5명은 사망 원인이 일산화탄소 중독, 즉 ‘유독가스’였다. 이 중 2명은 처음 불이 난 7층에서, 나머지 3명은 그 위층에서 발견됐다. 호텔 복도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화재 발생 83초 만에 연기가 복도와 피난 계단 앞을 가득 메우는 장면이 담겼다. 소방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호텔의 층간 방화문에는 자동개폐장치가 다 달려 있었다”며 “다만 몇 개가 안 닫혔는데 화재 때 망가진 것인지, 처음부터 불량이었는지는 수사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연기가 위층으로 퍼진 점을 감안하면 자동개폐장치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방화문을 열어 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99년 만들어진 건축물 방화구조 규칙은 방화문을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하거나, 화재 시 연기 발생 또는 온도 상승에 의해 자동적으로 닫히는 구조로 설치하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화문을 열어 놓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취재팀이 26일 서울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 일대 숙박시설 10곳을 돌아본 결과 8곳은 방화문이 열려 있었다. 종로구의 5층 호텔은 모든 층의 방화문이 개방된 상태였다. 문 앞에 수건 포대나 이불 포대를 쌓아둔 곳도 있었다. 중구의 한 모텔은 옷걸이와 노끈을 이용해 방화문을 열린 채로 고정시켜 놨다. 기자가 힘을 주어 닫아 보려 해도 문이 닫히지 않았다. 중구의 13층 호텔에는 방화문에 자동개폐장치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문이 끝까지 닫히지 않았다. 방화문 개방은 화재 참사로 이어진다. 지난해 12월 서울 도봉구 아파트 화재 당시 3층에서 불이 났는데 유독가스가 11층까지 올라가 주민이 숨졌다. 방화문이 모두 열려 있었던 탓이다. 2022년 경기 이천시 상가 화재 사건 때도 방화문이 열려 있었던 탓에 3층의 연기가 4층으로 번져 5명이 숨졌다.● 적발돼도 유야무야… “신고제 활성화 필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동법 시행령에 따르면 방화문을 개방해 놓을 경우 100만 원 이상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당국은 종종 점검에 나서지만 실제 불이익 조치까지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이달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는 방화문 개방 등 위반으로 과태료 100만 원이 부과됐지만 아파트 측이 “시정하겠다”고 한 뒤 부과 조치가 유예됐다. 방화문을 열어두거나 피난 계단을 장애물로 막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신고포상제도 운영 중이지만 효과는 낮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올해 포상금 관련 예산 3000만 원 중 지난달 29일까지 집행된 금액은 735만 원뿐이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부천 화재 호텔은) 방화문이 닫혔다면 피해가 크게 줄었을 것”이라며 “모든 숙박시설에 자동개폐장치 부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영국은 2022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은 주기적으로 방화문을 점검하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다. 높이 11m가 넘는 건물은 담당자가 3개월마다 방화문, 자동개폐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2017년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로 70여 명이 사망한 뒤에는 화재안전시설 기준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2021년에는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건물주에게 징역 9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약 7400만 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경찰은 26일 호텔 업주와 명의상 업주 등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형사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생존 투숙객, 목격자, 직원 등 15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마쳤다. 소방 당국은 올해 5월 해당 호텔에 대해 ‘화재 발생 시 다수의 인명 피해 우려가 있다’는 조사서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 관계자는 “숙박시설이면 통상적으로 그렇게 적는다”고 말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경기 부천시 호텔 화재 당시 투숙객 2명이 에어매트에 뛰어내린 뒤 숨지자 에어매트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에어매트는 소방법상 ‘구조장비’가 아니라 ‘보조장비’로 분류돼 관련 예산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장비 전체 예산 중 보조장비 예산은 0.5%에 불과해 노후화와 부실 관리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조장비’로 분류, 예산 부족 현행 소방장비관리법에 따르면 소방장비 중 에어매트는 구조장비가 아닌 보조장비로 분류된다. 보조장비란 소방 업무 수행에 간접 또는 부수적으로 필요한 장비로 카메라와 녹음기, 지휘 텐트 등이 해당된다. 구조장비는 구조용 사다리, 유압장비, 총포류, 절단기 등이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에어매트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구조장비가 아닌 보조장비로 분류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보조장비로 분류될 경우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가 소방 관련 예산 최근 5년 치(2020∼2024년)를 분석한 결과 소방장비 구매 분야 예산은 총 1조3800억 원이었다. 그중 에어매트 등 보조 장비 예산은 72억7000만 원(0.5%)에 불과했다. 반면 구조장비의 예산은 1171억3000만 원으로 훨씬 많았다.● 노후화-관리 부실 원인으로 작용 이 예산은 장비의 구입뿐만 아니라 보수, 유지, 수리 등에 쓰인다. 예산이 부족하면 노후화와 관리 미비의 원인이 된다. 현재 소방이 쓰는 에어매트는 개당 400만∼500만 원 수준이다. 22일 부천시 화재 현장에서 사용된 에어매트는 2006년에 지급돼 사용 가능 연한(7년)을 훌쩍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3년까지만 쓸 수 있었던 셈. 소방당국은 “매년 관리를 받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사고 당시 에어매트가 뒤집힌 것을 목격한 시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에어매트의 노후화 비율은 20%가량”이라며 “매년 심사를 하고 구조적으로 사용하는 데 큰 지장이 없어서 계속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부천 화재에서 에어매트가 논란이 되자 부랴부랴 점검에 나선 소방서들도 있다. 화재 다음 날(23일) 서울 서대문소방서는 서울시가 관리하는 서울정보광장 온라인 사이트에 ‘공기안전매트 누기 및 내부 연결고리 파손’ 결재 문서를 올렸다. 공기 주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달 6일에는 서울 서초소방서가 에어매트 고장을 신고했고, 서울 송파소방서는 지난달 25일과 5월 31일 두 번 수리를 요청했다. 경기의 한 소방서 관계자는 “구조대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에어매트 수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예산은 적은데 값싼 장비가 아니다 보니 많이 찢어지지 않는 이상 수리도 잘 안 하고 문제가 생겨도 바로 교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에어컨서 시작된 화재, 매트리스에서 커져 전문가들은 향후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예산 확보, 매트 교체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에어매트를 18년 동안 썼다는 것 자체가 소방의 예산 부족 문제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며 “소방안전교부세를 소방이 관리하도록 해 지금보다 더 많은 예산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부세는 현재 행정안전부가 관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화재가 발생한 건물이 스프링클러가 미설치된 숙박 시설이었기 때문에 진압이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화재가 시작된 810호 객실의 에어컨에서 떨어진 불똥이 매트리스에 떨어져 불길이 커지면서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매트리스에 불이 붙으며 실내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 오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방재학회에 따르면 매트리스는 TV보다 불이 확산되는 속도가 490배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린 고의당정협의회에선 구축 건물의 화재 진압에 필요한 장비 설치 등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수립 방안이 논의됐다. 부천=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경기 부천시의 한 숙박시설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최소 7명이 숨지고 중상자 3명을 포함해 11명 이상이 다쳤다. 22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39분 원미구 중동의 한 호텔 8층 객실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후 비슷한 신고가 20여 건 계속 접수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 당시 호텔에는 총 23명이 투숙 중이었으며, 불길이 처음 발생한 방에는 투숙객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직후 현장에는 소방차 46대, 소방대원 153명이 투입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호텔은 지하 2층∼지상 9층 규모로 객실은 총 64개다. 이날 오후 11시 30분 소방당국은 사망 7명, 중상 3명, 경상 8명 등 최소 18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 4명은 순천향대병원, 1명은 부천성모병원, 1명은 인천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부상자들은 순천향대병원 등 6곳으로 나누어 이송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망자 7명은 호텔 내부 복도와 계단 등에서 발견됐다.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다고 소방은 밝혔다. 최종적인 인명피해 상황은 화재 현장 내부 수색, 그리고 병원으로 이송된 중상자들의 치료 경과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순식간에 연기 확산 “살려주세요” 비명… 창밖으로 뛰어내려부천화재 최소 7명 사망소방 에어매트 뒤집혀 중상자 늘어생존 투숙객 “문밖서 비명-타는 냄새”소방당국 “여러 곳서 희생자 발견”“시커먼 연기가 보이길래 나와 보니 호텔 창문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창문에는 불길과 연기가 보였다.”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날 화재 직후 호텔 건물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검은 연기로 분간이 어려운 가운데 호텔 앞에 소방차, 구급차들이 빼곡했고 호텔 1층 앞에는 에어매트가 설치됐다. 일부 투숙객들이 불길을 피해 고층 창문에서 에어매트로 뛰어내렸고,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매트가 뒤집어진 후에도 투숙객이 뛰어내려 중상자가 늘었다. 호텔 바로 맞은편 건물의 경비원은 “오후 8시 좀 전이었던 것 같은데 연기가 보이길래 나와봤더니 호텔 4, 5층 정도에서 불길이 보였다”며 “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사람 2명이 위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비명소리가 들리길래 깜짝 놀라서 봤더니 아래 에어매트가 깔려 있었다. 거기에 뛰어내린 것”이라며 “호텔 입구에서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는데 발을 접질렸는지 절뚝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주변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은 “오후 9시경 나와 보니 호텔 8층에서 불꽃이 보였다. 연기가 났다”며 “2, 3명 정도가 구급차에 실려갔고 그중 한 명은 구급대원이 다급하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불길을 피해 빠져나온 한 중국인 투숙객(40)은 “사업차 20일 한국에 들어와서 503호에 묵고 있었다”며 “문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타는 냄새가 나서 급하게 동료 2명과 서쪽 비상 통로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이어 “비자, 여권을 방에 다 두고 나왔다”며 “오후 7시 35, 36분 사이 화재 경보음은 딱 한 번 울렸다”고 당시 급박한 상황을 전했다. 이날 화재 소식이 처음 알려진 이후 시간이 갈수록 인명 피해는 계속 늘어갔다. 오후 8시 50분경에는 심정지 2명, 부상 5명으로 알려졌다가 오후 9시 20분이 넘어가자 심정지 4명으로 늘었고, 오후 9시 반에는 사망 1명, 심정지 4명으로 늘었다. 이후 오후 11시 반경 소방당국은 사망 7명을 포함해 총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화재가 발생한 숙박시설은 호텔과 모텔의 중간 정도 시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천시의회 옆 블록에 있으며 주변에는 음식점과 상가 등이 밀집해 있다. 인근에는 비슷한 규모의 모텔 3곳이 운영 중이었다. 온라인 예약 사이트 등에 따면 불이 난 호텔에는 ‘흡연 가능 객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소방당국은 오후 7시 42분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오후 7시 57분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대응 2단계는 중형 재난에 발령되는데 사고 발생 지점 인근 5, 6개 소방서의 장비, 인력이 총동원된다. 최근에는 6월 24일 경기 화성 아리셀 배터리 공장 화재 당시 발령됐다. 마지막으로 대응 3단계는 2019년 고성 속초 산불,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강릉 산불 때 발령됐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소방 및 지방자치단체는 가용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구조 대원의 안전에도 각별히 유의해 달라”고 긴급 지시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보이스피싱 등 범죄 조직에 7만 개가 넘는 가상계좌를 판매하고 10억 원대의 수수료를 챙긴 일당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20일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은 가상계좌 7만2500개를 유통한 조직을 적발해 총책 A 씨(41) 등 4명을 입건하고 이 중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에 가상계좌를 판매한 대가로 11억2060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판매한 가상계좌는 보이스피싱 피해금이나 도박 자금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이 가상계좌들을 통해 유통된 범죄 수익만 59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적발된 가상계좌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합수단에 따르면 A 씨는 조직폭력배 ‘신양관광파’ 조직원 출신 B 씨(28) 등과 함께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와 판매 계약을 체결해 ‘머천트’(가상계좌 판매업자)로 활동했다. 가상계좌는 PG사가 보유한 모(母)계좌에 연결된 ‘입금 전용 임시 계좌’다. PG사로부터 관리 권한을 부여받은 머천트는 가맹점과 이용 계약을 맺어 가상계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PG사로부터 개설 권한만 받으면 간단한 절차를 통해 가상계좌를 무한대로 만들 수 있고, 피해자가 신고해도 모계좌가 지급 정지되지 않는다. 일반계좌와 달리 개설 시 실명 확인 의무도 없다. 검거된 조직은 이를 악용해 보이스피싱 및 불법 도박 조직을 ‘가맹점’으로 모집하고 이들에게 가상계좌를 제공한 뒤 불법 자금을 관리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세탁한 자금에는 피해자 6명으로부터 편취한 1억2000만 원 상당의 보이스피싱 피해금도 포함됐다. 또 이들은 피해 신고가 접수될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을 대신해 피해자와 접촉한 뒤 사건을 무마시키고 계좌 지급정지를 회피하기도 했다. 합수단은 PG사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지급정지 신청이 접수된 뒤에도 이들에 대한 계약 해지와 가상계좌 이용 중지 등의 조처를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범죄 수익을 박탈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현금·계좌 등에 대해 추징 보전을 청구했고, 가상계좌를 매수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합수단은 향후 금융당국과 함께 가상계좌 불법 유통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공유하고 가상계좌 악용 범죄에 대응할 방침이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우리나라에서 전기차를 판매 중인 주요 제조사들의 화재 매뉴얼에 잘못된 내용이 여럿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소방용 수조가 있어야 불을 끌 수 있는데 운전자 개인이 물을 뿌려 진압하라든가, 전기차 화재에 무용지물인 C급 소화기로 대응하라는 식이다. 인천 서구 전기차 화재 이후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이 같은 잘못된 매뉴얼이 오히려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에 전기차를 시판 중인 업체 중 테슬라, 현대차, 기아, 벤츠, KG모빌리티(KGM), 캐딜락, 렉서스 등 7곳은 각 사 홈페이지에 자체적으로 만든 화재 대응 매뉴얼을 공개하고 있다. 본보는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 등 전문가 6명과 함께 각 사 매뉴얼을 분석했다. 테슬라의 모델X는 매뉴얼에 ‘고압 배터리에 난 불은 물로 꺼야 합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이호근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일반적인 물로 진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불을 끄려는 과정에서 운전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운전자가 직접 물을 뿌려 불을 꺼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운전자까지 다칠 수 있다는 것. 이항구 원장은 “소방 당국이 사용하는 ‘이동식 침수조’를 제외하곤 배터리를 냉각시킬 방안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기아의 EV6, KGM의 코란도 EV 등 4개 모델은 매뉴얼에서 ‘반드시 전기화재 전용 분말 소화기를 사용해 화재를 진압하십시오’ 등으로 안내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설명이 반만 맞다는 것이다. 국내 안전기준에 따르면 화재 유형은 일반(A급), 유류(B급), 전기(C급), 주방(K급) 등 총 4가지로 분류된다. 전기 소화기로 통하는 C급 소화기는 일반 내연기관 차량 화재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전기차 배터리 화재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이영주 교수는 “보이는 불꽃을 일시적으로 잠재울 순 있어도 완전 진화는 어렵다”고 했다. 이덕환 교수는 “배터리는 밀폐돼 있고 외부 프레임도 강하게 만들어져 아무리 소화수나 소화액을 뿌려도 내부로 들어가지 못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리튬 배터리 화재에 효과가 있다는 금속화재용(D급) 소화기가 시중에 판매 중이지만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 인천 서구 화재 뒤 소방 당국은 국내외에 현재 시판 중인 소화기들은 전기차 배터리의 불을 끌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매뉴얼이 차주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소방 당국이나 국책연구기관을 통해 전기차 운전자들을 위한 공통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기차 화재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김필수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에서 불이 났다면 ‘대피 후 신고’ 원칙을 명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학훈 교수는 “전기차를 구입하면 반드시 매뉴얼을 완독해야 차량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매뉴얼은 (배터리 화재만 특정한 게 아니라) 차량 전반 화재를 가정한 것”이라며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고 소방서에 연락해 전기차 화재임을 알리고 조치를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KG모빌리티 관계자는 “소화기와 충분한 양의 물을 이용하라는 내용은 배터리 화재가 발생했을 때의 매뉴얼이 아니다”라며 “안전한 장소로 대피해 소방서 등에 연락하라는 내용도 매뉴얼에 함께 나와 있다”고 말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한재희 기자 hee@donga.com}
보이스 피싱, 온라인 불법도박 등 범죄 조직에 7만 개가 넘는 가상계좌를 판매하고 10억 원대 수수료를 챙긴 일당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은 가상계좌 7만2500개를 유통한 조직을 적발해 총책 A 씨(41) 등 4명을 입건하고 이 중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들은 2022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유령법인을 설립한 뒤 보이스 피싱과 온라인 불법도박 조직에 가상계좌를 판매한 대가로 11억2060만 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취득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판매한 가상계좌는 보이스피싱 피해금 및 도박자금 5900억 원 등을 이체받는 데 활용된 것으로 조사됐다.합수단에 따르면 이들이 판매한 가상계좌는 검찰 적발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합수단 조사 결과, A 씨는 조직폭력배 ‘신양관광파’ 조직원 출신 B 씨(28) 등과 함께 유령법인을 설립하고 결제대행업체(PG사)와 판매계약을 체결해 ‘머천트(가상계좌 판매업자)’로 활동했다. 가상계좌는 PG사가 보유한 모(母) 계좌에 연결된 입금 전용 임시 계좌번호로, PG사로부터 관리 권한을 부여받은 머천트는 가맹점과 이용계약을 맺어 가상계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PG사로부터 개설 권한만 받으면 간단한 절차를 통해 사실상 가상계좌를 무한대로 만들 수 있고 피해자가 신고하더라도 모 계좌가 지급 정지되지 않는다. 일반계좌와 달리 가상계좌는 개설 시 실명 확인 의무도 없다. 이번에 적발된 조직도 이를 악용해 보이스피싱 및 불법도박 조직을 가맹점으로 모집하고 이들에게 가상계좌를 제공해 범죄 조직의 불법 자금을 관리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세탁한 자금에는 피해자 6명으로부터 편취한 1억2000만 원 상당의 보이스 피싱 피해금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들은 피해 신고가 접수될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을 대신해 피해자와 접촉해 사건을 무마시키고 계좌 지급정지를 회피하는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합수단은 PG사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지급정지 신청이 접수된 뒤에도 이들에 대한 계약 해지와 가상계좌 이용 중지 등 조처를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합수단 관계자는 “범죄수익을 박탈하기 위해 피고인들의 현금·계좌 등에 대해 추징보전을 청구했고 가상계좌를 매수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합수단은 향후 금융당국과 함께 가상계좌 불법유통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공유하고 가상계좌 악용 범죄에 대응할 방침이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더워진 바다에 위험 어종 주의보독성이 강한 노무라입깃해파리 출현 규모가 작년의 약 360배로 늘었다. 피서객과 어민들은 비상이 걸렸다. 맹독을 품은 바다뱀과 문어를 봤다는 신고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온난화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전기가 흐르는 회초리로 맞은 느낌이었어요.” 대학생 이은희 씨(26)는 지난달 30일 강원 고성군의 한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왼쪽 손등과 무릎, 발등을 해파리에게 쏘였다. 손과 발등이 심하게 부은 탓에 인근 병원 응급실에서 주사까지 맞았다. 이 씨는 “응급처치 방법을 몰라 더 심하게 상처가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약 2주가 지나서도 이 씨의 몸에선 붉은 반점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폭염을 피해 피서객들이 해수욕장으로 몰리면서 덩달아 해파리에게 쏘이는 피해도 크게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바닷물 온도가 오르고 아열대화되며 ‘독성을 가진 바다 생물’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파리 출현율 4주 연속 증가 3일 오후 3시경 취재팀이 찾은 강원 강릉시의 한 해수욕장에선 안전요원 김모 씨(22)가 삽으로 노무라입깃해파리의 잔해를 모래사장 한편에 묻고 있었다. 김 씨의 배에는 20cm 길이의 흉터가 있었다. 그는 “일주일 전 해파리에게 쏘여 응급실을 다녀왔다”며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흉터가 남고 간지러워서 괴롭다”고 말했다. 이날 경북 경주시의 한 해수욕장에서 해파리에게 쏘인 김수경 씨(57)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몇 분 만에 쏘였다”며 “해파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일부 피서객은 전신 수영복으로 중무장을 한 채 해수욕장을 찾았다. 이날 강릉시 송정해변을 찾은 피서객 절반은 팔다리가 가려지는 긴 옷을 입었다. 전국 연안에 해파리 출현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동해안과 남해안에서 자주 발견되는 해파리는 강한 독을 가진 노무라입깃해파리로, 직경 길이 1∼2m에 달한다. 한 번 쏘이면 발열, 근육 마비, 쇼크 증상을 유발한다. 2000년 이후 매년 여름철 동중국해 북부 해역을 거쳐 우리 연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의 ‘해파리 모니터링 주간 보고’ 자료에 따르면 노무라입깃해파리 출현율은 14일 기준 56.5%를 기록했다. 출현율은 한 주간 어업인 모니터링 요원 응답자 292명 중 해파리를 관찰한 사람 수를 백분율화한 값이다. 즉 어업인 10명 중 5.7명이 이번 주 바다에서 노무라입깃해파리를 봤다는 뜻이다. 이는 4주 연속 증가한 수치다.● 노무라입깃해파리 360배 급증 지난달 기준 제주와 남해 연안에서 출현한 노무라입깃해파리는 바다 1ha(1만 ㎡)당 108마리다. 가로세로 10m 면적마다 1마리가 넘게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0.3마리)의 약 360배다. 수과원에 따르면 이는 측정을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또 다른 강독성 해파리인 유령해파리와 커튼원양해파리, 두빛보름달해파리도 국내 바다에서 꾸준히 관측되고 있다. 해파리 쏘임 사고도 늘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수과원 조사 결과, 올 6월 전국 해수욕장 개장 이후 이달 5일까지 접수된 해파리 쏘임 사고는 총 2989건이다. 폭우 등으로 관광객이 줄어든 2023년(753건)을 제외하면 2021년 2434건, 2022년 2694건보다 많다. 전문가들은 해파리 급증이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열대성 어종인 해파리가 늘어난 건 우리나라 인근 해수면 온도뿐만 아니라 전체 바다 온도가 올라간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며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 산성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해양 생태계의 존립 자체가 위협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손민호 해양생태기술연구소 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우리나라 동해 온도는 빠르게 올라가고 있고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수과원의 동해 표층 수온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에는 따뜻한 바닷물이 우리나라 남해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속도가 10년간 연평균 2.09km였다. 하지만 2020년대에는 10년간 북상하는 속도가 연평균 4.95km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이처럼 바다가 빠르게 더워지면 해파리가 급증하고 생태계도 바뀐다. 어민들도 “살길이 막막하다”는 입장이다. 17년차 어부 김명호 씨(59)는 “해파리 때문에 물고기도 잘 안 잡히거나 많이 죽어 수입이 5분의 1로 줄었다”며 “수온이 계속 높아진다면 폐사하는 물고기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맹독 바다뱀-문어도 출현… 9년 만에 물림 사고 수과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표면층 온도는 2020년대 평균 18.2도다. 2070년에 20도를 넘긴 뒤 2090년대에는 21.7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연중 내내 20도를 넘기면 ‘열대 바다’로 분류된다. 올해 제주에선 9년 만에 ‘파란선문어’에게 물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말 50대 여성이 통발에서 어획물을 꺼내던 중 파란색 고리 무늬가 선명한 문어에게 쏘였다. 여성은 손이 퉁퉁 붓자 인근 병원을 찾아 진통제 등을 처방 받았고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2015년에는 제주의 한 해수욕장 갯바위에서 고둥을 잡던 30대 관광객이 이 문어에게 손가락을 물려 열흘 만에 겨우 회복했다. 파란고리문어속에 속하는 파란선문어의 독은, 청산가리보다 10배 강한 복어 독(테트로도톡신 성분)보다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과원 집계를 보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파란선문어는 총 34건이다. 고준철 수과원 아열대수산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해안에 파란선문어가 정착하는 단계로 보고 있다”고 했다. 단순 유입을 넘어 번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려갈 수 있다는 의미다. 맹독 바다뱀도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2015년 넓은띠큰바다뱀이 제주 서귀포 연안에서 처음 포획된 뒤 현재까지 32건의 바다뱀 포획 및 발견 신고가 접수됐다. 대다수는 넓은띠바다뱀이며, 좁은띠바다뱀(2건)과 바다뱀(4건) 신고도 있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연구원은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 일본 아열대 해역에서 독성이 강한 바다뱀이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현재 동아시아권 해역에서 보고된 바다뱀은 총 13종이다. 강독성인 노무라입깃해파리보다 독성이 더 강한 ‘맹독성 해파리’들이 국내 연안에 출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양 동물 중 가장 치명적인 독을 지녀 ‘바다 말벌’이란 별명이 붙은 ‘호주 상자해파리’는 호주, 필리핀 등 열대기후 바다에 주로 서식한다. 호주에서만 누적 6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것으로 보고됐다. 촉수 길이가 3m까지 뻗는 데 비해 몸집은 약 15cm로 작고 몸체가 투명해 미리 발견한 후 피하기가 어렵다.● 쏘이면 바닷물로 상처 씻은 뒤 병원으로 가야 해파리 등에게 쏘이면 바닷물로 상처 부위를 충분히 씻어야 한다. 이후 온찜질(45도 내외)로 통증을 완화시킨다. 만약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아야 한다. 신경독 계열인 파란선문어와 바다뱀 등에게 물리면 119에 신고하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맹독 생물 관련 물림·쏘임 사고가 많은 호주는 정부 차원에서 24시간 핫라인을 구축해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독성 전문가(SPI)’가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가 회복된 이후에도 또 다른 SPI가 24시간 이내 해당 처방의 적절성을 이중으로 검토하도록 했다. 국내 독성학 분야의 한 전문가는 “맹독 관련 사고가 적어 해독에 필요한 혈청이 없거나 유통기한이 만료된 경우가 많다”며 “제주·남해안 등 맹독 해양생물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 내 병원에서는 필수 해독제를 사전에 구비해둘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강릉=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선릉을 훼손한 50대 여성에 대해 경찰이 사안이 중대하고 모방 범죄가 우려된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6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성종대왕릉 봉분을 훼손한 50대 여성 이모 씨에 대해 전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14일 오전 2시 반경 강남구 삼성동의 성종대왕릉을 모종삽으로 파헤쳐 지름 10cm, 깊이 10cm의 구멍을 낸 혐의(문화 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는다. 경찰은 “유네스코 유산인 점과 최근 잇단 문화재 훼손 사건으로 모방 범죄가 우려되는 점 등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이 씨는 이날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왜 구멍을 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했다. 선릉은 조선 9대 왕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가 묻힌 왕릉으로 200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현행 문화유산법에 따르면 문화재를 훼손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왜 내 물건 훔쳐 이 도둑×아. 죽여버린다.” 지난달 8일 새벽 경기도의 한 지하철역 인근 인도. 환경미화원으로 혼자 쓰레기를 치우던 50대 여성 김영숙(가명) 씨의 손을 한 취객이 강하게 잡아채며 이렇게 말했다. 벤치에 엎드려 자던 취객 옆에 있던 맥주병과 과자 봉지를 김 씨가 치우자 대뜸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이 취객은 꼬인 혀로 침을 튀겨가며 연신 김 씨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놀란 김 씨가 “뭐 하는 짓이냐”며 손을 뿌리치자 취객은 더 흥분해 고성을 질러댔다. 마침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으로 위험을 모면했지만, 행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더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환경미화원들 이달 2일 오전 5시 10분경에는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지하보도에서 청소를 하던 6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당하는 등 환경미화원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늦은 밤이나 새벽 등 인적이 드문 시간 홀로 일하는 근로자들이 많은 탓에 범죄는 물론이고, 교통사고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 의왕시에서 20년 동안 환경미화원으로 일해 온 손재선 씨(56)는 “외딴곳에서 낯선 사람이 시비를 거는 경우도 많다”며 “혼자서 일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안하기 마련”이라고 토로했다. 12일 오전 동아일보 취재팀이 손 씨와 동행하며 근무 현장을 확인한 결과 ‘안전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지 않은 으슥한 골목 안쪽까지 들어가 쓰레기를 수집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져 자칫 범죄에 노출될 수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손 씨의 등 뒤로 덤프트럭이 쌩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덤프트럭과 손 씨의 간격은 채 1m도 되지 않았다. 손 씨는 “혼자 일하는데 눈이 뒤통수에 달린 게 아니니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제 일하다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환경미화원은 최근 5년 새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실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근무 중 사망 또는 부상을 당해 산업재해가 인정된 환경미화원은 2019년 5078명, 2020년 5136명, 2021년 5627명, 2022년 5859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지난해엔 6439명까지 늘어났고, 올 1∼6월에도 3127명이 산재 인정을 받았다.● “‘2인 1조’ 근무해야 안전” 환경미화원들은 적어도 도로에서 일할 때나 인적이 드문 시간만이라도 ‘2인 1조’로 근무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인 1조로 일하면 차량이 지나갈 때 서로 “조심하라”고 알려줄 수 있고, 범죄 대응력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고용하는 공무직이나 청소용역업체 모두 예산과 비용 등을 이유로 2인 1조 근무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지자체 공무직 노조 관계자는 “환경미화원들에게 1km가 넘는 골목의 청소를 ‘혼자서 오전 중에 모두 끝내놓아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자체나 용역업체 모두 안전 비용을 추가로 부담할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근로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용역 방식의 경우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있어 2인 1조는커녕 있는 인원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먼저 나서 ‘2인 1조’를 기준으로 제시하는 한편 기준에 부합하는 업체가 낙찰되는 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명문대 학생들로 구성된 마약 연합동아리 일당이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마약 투약 ‘예행연습’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접한 영상 중에는 마약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게 만든 가짜 뉴스들도 있었다. 이른바 ‘마약 인강(인터넷 강의)’이 10, 20대로 하여금 마약 범죄를 시작하게 만드는 ‘트리거(방아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서울남부지검 등에 따르면 최근 검거된 마약 동아리 일당은 투약에 앞서 ‘명상’이라는 제목의 환각 체험 영상을 시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함께 마약을 투약할 사람들끼리 모여서 “마약을 하면 이런 느낌일 것”이라는 예행연습을 한 것이다. 이들은 유튜브 영상 여러 개를 함께 시청하며 ‘마약 공부’도 했다. 이들이 여러 번 시청한 한 영상에는 “실로시빈과 LSD는 이른바 ‘사이키델릭’ 약물로 마약 아닌 신약”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로시빈은 환각 효과를 일으키는 버섯에 들어 있는 성분이다. LSD 역시 강력한 환각 약물이다. 실로시빈과 LSD는 모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마약류에 속한다. 이 영상을 올린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12일 기준 53만 명이 넘었다. ‘마약 체험’을 검색하면 관련 유튜브 영상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사 당국은 유튜브 동영상이 실제 마약 접촉 및 투약으로 이뤄진 흐름을 파악하고 유사한 추가 사건 가능성을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독성 없다” 등 거짓 유튜브 영상 수두룩… 마약범죄 온상 돼유튜브 보며 마약 예행연습초보자들 영상보며 호기심에 투약… “영상 보니 해보고 싶다” 등 댓글유튜브, 1020세대에 강한 영향력… “정부 특위 만들어 강력 규제” 지적전문가들은 유튜브 등 플랫폼이 마약 범죄에 들어서는 루트로 활용되는 상황에 대해 대책과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2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유튜브에 ‘실로시빈 체험’, ‘LSD 체험’ 등 키워드를 넣고 검색하자 10건이 넘는 체험 영상이 떴다. 1인칭 시점으로 몸이 허공에 떠서 걷는 듯한 영상, 빠르게 돌아가는 이미지가 반복되는 영상 등이 재생된다. 해당 영상들에는 “실제 마약하는 기분이 들어 종종 찾아온다”,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영상을 보니 한 번쯤 해보고 싶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마약 인강’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마약 범죄 ‘트리거’ 유튜브 이 같은 영상을 본 뒤 실제 마약에 손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에 검찰이 적발한 마약 동아리 회원 중 대부분은 이전에 마약 투약 경험이 없었던 초보자였다. 이들은 마약 환각 체험 영상을 모여서 시청했다. 2022년 3∼8월 이 동아리에서 활동한 한 회원은 “(운영진이 마약을) 강요하기보단 유튜브 영상 등을 보여주거나 조심스레 권유해 거부감 없이 호기심에 투약하는 회원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들은 “실로시빈, LSD는 마약이 아닌 신약”이라는 내용이 담긴 유튜브 영상 등도 공유했다. 이를 믿은 동아리 회원들은 검거된 뒤에도 “LSD 등은 중독성이 없고 새로운 영감을 얻게 해준다”고 수사 당국에 말했다. 공판검사 시절 이 사건을 포착해 수사한 이영훈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 검사는 “검증되지 않은 유튜브 영상을 공유하는 건 (동아리 내에서) 부지기수였다”면서 “관련 논문 등을 조금만 찾아보면 유튜브 영상들이 거짓말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검찰에 따르면 동아리 회원 중에는 마약을 구입하기 위해 6개월에 수백만 원가량을 쓴 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전문가 “정부 특위 구성해 대책 모색해야”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의 마약류 정보 유통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추세다. 1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따르면 유튜브를 비롯해 X(옛 트위터), 인터넷 게시판 등 온라인상 마약류 매매 및 알선 등 정보에 대한 시정 요구 조치는 2020년 8130건, 2021년 1만7020건, 2022년 2만6013건 등 매년 급증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는 총 2만8811건에 대해 시정 요구 조치가 이뤄졌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특히 유튜브에 큰 영향을 받는 10, 20대들이 자극적인 영상을 보고 마약 등 범죄에 빠져들고 있다.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컨설팅업체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 조사 결과 국내 10, 20대의 월평균 유튜브 시청 시간은 각각 49.7시간과 46.0시간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길었다. 특히 유튜브에 올라온 마약 관련 정보는 ‘해롭지 않다’, ‘중독성이 없다’는 설명이 많다. 검증되지 않은 허위 정보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유튜브를 지식채널로 오해하고, 거짓 정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곤 한다”며 “마약 관련 영상에 문제의식 없이 반복 노출되면 투약과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뒤에 숨은 유튜브는 영향력은 크지만 책임은 그만큼 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특별위원회 등을 구성해 유튜브 규제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방심위 “해외 사업자에 강제성은 떨어져” 실제 유튜브 등 해외에 서버를 둔 플랫폼 사업자는 방심위가 단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마약 관련 콘텐츠를 점검하고 필요시 국내에서라도 접속 차단을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해외 기반 사업자에겐 국내 법령 위반 사실을 고지하고 자체 단속을 요구하는 수준이라 강제성은 떨어지는 편”이라고 밝혔다. 유튜브 측은 실로시빈 등 관련 영상에 대해 “해당 영상이 안전 기준인 커뮤니티 가이드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청소년 도박 근절을 위해 하나금융그룹이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향후 3년간 100억 원대 규모의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한다고 11일 밝혔다. 하나금융그룹은 9일 서울 마포구 하나은행 사옥에서 ‘청소년 불법 도박 피해 예방 및 치유를 위한 프로젝트’ 선포식을 열었다. 최근 심각해지는 청소년 불법 도박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과 금감원·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경찰청·서울시교육청이 함께 참여했다. 최근 동아일보의 ‘온라인 도박, 교문을 넘다’ 기획 보도를 통해 심각한 실태가 알려지자 금감원 등이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금융그룹은 3년간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과 함께 100억 원 규모의 청소년 불법 도박 근절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청소년 도박 문제를 주제로 한 뮤지컬과 웹툰, 애니메이션 등 문화 콘텐츠 공동제작·배포 △버스킹 공연과 토크콘서트를 비롯한 각종 캠페인 △청소년 도박 예방 실천학교 선정 및 운영 △하나금융그룹 스포츠단 연계사업 등을 준비 중이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명동 황제’로 불렸던 1세대 원로 주먹 신상현 씨가 10일 오전 향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조폭 추모객’ 탓에 경찰까지 배치됐다.11일 오후 5시경 서울 송파구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에는 검은색 양복 차림의 건장한 남성 6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빈소 앞에는 화환 100여 개가 늘어섰고 분향실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 등 리본이 달린 조기(弔旗)가 놓였다가 논란 끝에 철거됐다.신 씨는 1950~1970년대 서울 명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김두한, 이정재, 시라소니(본명 이성순) 등과 함께 ‘전국구 주먹’으로 불렸다. 1932년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서 태어난 그는 1953년 대구 특무부대에서 1등 상사로 전역한 경력 때문에 ‘신상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54년 상경해 명동 중앙극장 옆을 근거지로 삼아 ‘신상사파’ 두목으로 활동했다. 은퇴 후에는 외제차 사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까지 빈소에는 15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오갔다. 시라소니의 아들 이의현 목사, 배우 이동준 씨도 빈소를 찾았다. 스스로를 ‘명동파 후계자’라고 밝힌 장례위원장 홍인수 씨(72)는 “1974년부터 고인을 보좌했다. 의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사복 경찰 50여 명을 장례식장 곳곳에 배치했다. 발인은 12일 오후 1시 30분이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지금이 청소년 도박 확산을 막을 골든타임이에요.”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있는 서울경찰청에서 만난 하동진 청소년보호계장(44)은 이렇게 말했다. 온라인 도박이 영화 소재 등으로 쓰일 만큼 사회적 관심이 쏠린 지금이 적기라는 것이다. 하 계장은 “도박 공급자를 막을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며 “오늘날 수요자인 청소년이 ‘평생 고객’이 되지 않도록 기관들이 협업해 예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 계장은 청소년 분야 경력만 10년이 넘는 베테랑 경찰이다. 그는 청소년 도박 문제 근절을 위해 △사전 예방 △치유 및 재활 △인식전환 등 3가지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전 예방 대책에는 ‘긴급 스쿨벨’ 발령이 대표적이다. 서울청은 청소년 도박 예방과 대응을 위해 서울 내 학교 1374곳과 학부모 78만 명을 대상으로 올해 첫 긴급 스쿨벨을 5월에 발령했다. 긴급 스쿨벨은 청소년 범죄가 발생할 경우 학교와 학부모에게 주의 및 대응 요령 등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시스템으로 지난해 서울에 도입됐다. 하 계장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도박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예방치유원) 등 치유·재활센터와 연계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 예방치유원은 도박 중독 관련 치유 및 재활 프로그램을 중점으로 운영하는 기관이다. 서울경찰청이 2022년 예방치유원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청소년 도박 예방 및 치유 체계를 구축했다. 하 계장은 “처벌만 하면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재범 방지를 위한 예방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예방치유원으로 연계된 도박 중독 청소년은 지난해 26명에서 올해 1~6월 180명으로 늘었다. 하 계장은 ‘청소년들의 인식 부재’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도박을 범죄가 아닌 단순 게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는 “‘바카라’처럼 몇 초 안에 결판이 나는 도박이 청소년 사이 트렌드가 됐다”며 “온라인으로 진행되다 보니 청소년들이 실물 감각이 없어 금전적 피해가 더 커진다”고 우려했다. 또 대출이 안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편하게 돈을 빌려준다고 접근해 ‘고금리 소액대출’을 해주는 이른바 대리입금(댈입) 등의 불법 사금융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도박은 돈 벌 수 없는 구조’라는 사실을 청소년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게 하 계장의 생각이다. 서울청은 예방치유원 등 관계부처와 청소년 도박 관련 간담회를 추진하기 위해 조율 중에 있다. 방학 기간인 도박 중독 청소년에 대해 집중 치유 및 상담 연계 활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또 도박중독 추방의 날인 9월 17일까지 첩보수집기간 운영하고 기존 ‘청소년 도박 릴레이 챌린지’도 이어간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5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승용차가 인도로 돌진해 행인 1명을 숨지게 한 사고와 관련해 차량의 인도 돌진을 막는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볼라드)의 설계 기준이 모호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경찰과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종합하면 5일 오전 10시 40분경 50대 후반의 남성이 운전하는 회색 승용차는 이촌동의 한 스쿨존 삼거리 앞에서 정지했다. 이후 차량은 갑자기 속도를 높여 10여 m 앞 인도 경계에 설치된 볼라드를 향해 돌진했다. 가속 구간이 짧아 속도가 높지 않았지만 차량은 철제 볼라드를 부수고 인도로 진입해 행인 2명을 치었다. ● 저속 승용차도 막지 못한 볼라드 현행 보행안전법은 볼라드 설치 규격에 대해 ‘속도가 낮은 자동차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구조로 해야 한다’고 규정할 뿐 구체적인 설계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 교통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시속 40km 이하일 때 ‘속도가 낮다’고 본다. 취재팀이 전문가와 함께 CCTV에 담긴 모습, 해당 승용차 성능 등을 종합해 산출한 당시 차량의 속도는 시속 30∼40km로 예측된다. 만약 볼라드의 강도가 더 높았다면 인명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강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서울 곳곳에 설치된 볼라드는 주차 차량을 막는 용도로 활용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통상 주차하려는 차량이 인도에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게 (볼라드) 설치 목적”이라며 “충돌 상황은 가정하지 않으며, 도로의 설계 속도와도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보행자가 차로로 이탈하는 것을 막는 ‘보행자용 가드레일’과 마찬가지로 차량 충돌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인도 통행 중 사상은 매년 2500명, 하루 7명꼴로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인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상자 수만 1만2256명에 달한다. 사망자는 총 128명으로 집계됐다. 올해도 지난달 1일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로 사상자 16명이 발생했다. 이후 보름 새 서울역 인근에서 경차가 인도 위 행인 2명을 덮쳤고, 대구 동구에서도 승용차가 인도로 돌진해 행인 1명을 다치게 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차량 충돌 상황을 가정해 강화된 규격의 볼라드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 네바다주는 2017년 차량 돌진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500만 달러(약 69억 원)를 들여 6.8t 무게의 차량이 시속 80km로 돌진해도 견딜 수 있는 700여 개의 볼라드를 설치했다. 인도 내 교통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지난달부터 관할 내 가드레일과 볼라드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 볼라드 없는 스쿨존 특히 이번 이촌동 사고처럼 평소 아이들의 왕래가 잦은 곳일수록 관련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월 스쿨존으로 지정된 도로에는 반드시 보도를 설치하고, 가드레일을 우선적으로 설치하도록 명시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동원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볼라드 설치와 관련된 조항은 담기지 않았다. 취재팀이 이날 오후 서울 은평구, 서대문구, 마포구의 초등학교와 유치원 인근 횡단보도 24곳을 확인한 결과 15곳에 볼라드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은평구 증산동의 폭 10m짜리 횡단보도에는 볼라드가 없어 하교하는 아이들을 태우러 온 학원차량이 인도를 밟고 지나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횡단보도 앞 인도는 경계석 높이가 낮고 아이가 많이 몰려 인도 돌진 사고에 취약하지만 이런 안전시설 없이 방치된 것이다. 조준한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스쿨존 등 보행자 보호가 우선시되는 지역에 설치되는 볼라드는 최소한 해당 도로의 제한속도를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오늘(7일) 이촌동 사고 당시 차량의 정확한 속도 등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명문대를 중심으로 연합동아리를 결성해 마약을 유통·투약한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주범인 동아리 회장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KAIST 대학원에 재학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 외 피의자 13명은 모두 서울 및 수도권 내 주요 13개 대학의 재학생으로 의대·약대 재입학 준비생, 법학전문대학 진학을 위한 법학적성시험(LEET) 응시자도 포함됐다.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부장 남수연)는 동아리 회장 30대 A 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대마), 특수상해, 성폭력처벌특례법 위반(촬영물 등 이용 협박), 무고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동아리 임원으로 활동한 20대 등 3명은 구속 상태로, 회원 2명은 불구속 기소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2022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약 1년간 향정신성의약품과 대마를 매매하고 투약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마약을 투약하기만 한 나머지 대학생 회원 8명은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됐다.● ‘호화 파티’로 현혹해 마약 투약 A 씨는 2021년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깐부(오랜 친구)’란 이름의 연합동아리를 결성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동아리에 가입하면 고가 외제차, 고급 호텔 등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후 호화 파티와 술자리를 열어 회원을 모집했고, 외모·학벌·집안 등을 기준으로 임원 면접을 실시했다. 서울 소재 아파트를 임차해 동아리 회원들의 모임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다. 해당 동아리는 단기간에 회원 약 300명을 보유한 전국 기준 규모 2위 동아리가 됐다. 이후 해당 동아리는 A 씨의 ‘수익 사업의 장’으로 전락했다. A 씨는 대마를 시작으로 실로시빈, 케타민, 필로폰까지 회원들에게 제공하며 마약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 중독으로 몰아갔다. 마약 투약은 호텔, 놀이공원, 해외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뤄졌다. A 씨는 남성 회원들과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초대해 마약을 하며 집단 성관계를 했다. 회원들과 단체로 향정신성 의약품인 LSD를 기내 수하물에 넣어 태국·제주 등 해외까지 반출해 마약을 즐기기도 했다. A 씨는 마약 매수를 ‘공동구매’라고 지칭했다. 그는 텔레그램을 통해 만난 마약 딜러에게 가상화폐로 마약 대금을 지불했다. 동아리 임원 B 씨와 C 씨는 매수 자금을 분담하는 식으로 참여했다. A 씨는 동아리 회원들에게 마약을 판매하면서 건당 10만 원 이상의 차액을 남겼다. 지난해에만 최소 1200만 원 상당의 마약을 매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20대 마약 사범 급증… “2차 범죄 이어질 위험” 피의자들은 각종 법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고문 변호사를 고용했고, 텔레그램 정보 채널을 통해 마약 수사에 대비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들은 ‘휴대전화 포렌식 대비, 모발 탈·염색’ 등에 대한 정보를 찾아 활용했다. 이 채널에는 피의자들 외에도 9000명 이상이 가입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대검찰청과 공조해 해당 채널 운영자 등을 추적 수사 중이다. 앞서 A 씨는 지난해 12월 성탄절 무렵 한 호텔에서 여자 친구와 마약을 투약한 뒤 난동을 부려 현행범으로 체포,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A 씨의 수상한 계좌 거래 정황을 발견했고, 수사에 착수해 이번 사건에 해당 연합동아리가 연루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이들이 외부의 대형 마약 조직과 연계됐을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범죄 단체 조직죄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대 마약사범은 2022년 4203명에서 지난해 5689명으로 급증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이번 사건은 어떤 단체든 마약 범죄의 근거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윤흥희 남서울대 글로벌중독재학상담학과 교수는 “동아리를 통한 마약 범죄는 중독뿐만 아니라 동아리 내 성범죄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며 “대학 교육 과정에 약물 관련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서울 용산구 일대에서 승용차를 몰던 운전자가 어린이집 앞 인도로 돌진해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5일 오전 10시 40분경 용산구 이촌동 인근에서 운전하다가 인도로 돌진해 인명 피해를 낸 50대 남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과 목격자 증언 등을 종합하면 차량은 어린이보호구역 삼거리에 들어선 순간 갑자기 가속해 횡단보도와 인도 경계에 설치된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볼라드)을 부순 뒤 인도를 따라 60여 m를 질주했다. 한 목격자는 “운전석 문이 열린 회색 승용차가 순식간에 인도로 돌진해 어르신을 치었다”고 전했다. 이 사고로 인도를 걷던 50대 여성 1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또 80대 여성 1명이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차량은 아파트 공동현관 앞 돌계단과 충돌하고서야 멈췄다. 사고 현장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에는 어린이집이 있었다. 차량이 질주한 인도는 어린이집 바로 앞 인도였다. 7세 아들을 둔 인근 주민 박모 씨(43)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밀집한 곳이라 평소에도 우리 아이를 포함해 많은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라며 “하원 시간대였다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사고 현장에서 조사한 결과 가해 운전자가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직후 이어진 조사에서 운전자는 “차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며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을 주장했다고 한다. 앞서 시청역 역주행 사고 당시 부서진 가드레일(방호울타리)이 보행자 보호가 아닌 무단횡단 방지용이었던 것과 달리, 이날 이촌동 현장에서 꺾여 부서진 볼라드는 차량의 인도 침범으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는 설치물이다. 국토교통부 관련 지침에 따르면 볼라드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자동차의 보도 진입을 방지하는 시설물’로 높이는 약 80∼100cm로 하며, 속도가 낮은 자동차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설치해야 한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서울 용산구 일대에서 승용차를 몰던 운전자가 어린이집 앞 인도로 돌진해 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고령의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5일 오전 10시 40분경 용산구 이촌동 인근에서 운전하다 인도로 돌진해 인명 피해를 낸 50대 남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과 목격자 증언 등을 종합하면 차량은 어린이보호구역 삼거리에 들어선 순간 갑자기 가속해 횡단보도와 인도 경계에 설치된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볼라드)을 부순 뒤 인도를 따라 60여m를 질주했다. 한 목격자는 “운전석 문이 열린 회색 승용차가 순식간에 인도로 돌진해 어르신을 치었다”고 전했다.이 사고로 인도를 걷던 50대 여성 1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또 80대 여성 1명이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차량은 아파트 공동현관 앞 돌계단과 충돌하고서야 멈췄다. 사고 현장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에는 어린이집이 있었다. 차량이 질주한 인도는 어린이집 바로 앞 인도였다. 7살 아들을 둔 인근 주민 박모 씨(43)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밀집한 곳이라 평소에도 우리 아이를 포함해 많은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라며 “하원 시간대였다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사고 현장에서 조사한 결과 가해 운전자가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고 직후 이어진 조사에서 운전자는 “차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며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을 주장했다고 한다.앞서 시청역 역주행 사고 당시 부서진 가드레일(방호울타리)이 보행자 보호가 아닌 무단횡단 방지용이었던 것과 달리, 이날 이촌동 현장에서 꺾여 부서진 볼라드는 차량의 인도 침범으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는 설치물이다. 국토교통부 관련 지침에 따르면 볼라드는 ‘보행자 안전을 위해 자동차의 보도 진입을 방지하는 시설물’로 높이는 약 80~100cm로 하며, 속도가 낮은 자동차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구조로 설치해야 한다. 함은구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어린이보호구역처럼 더 높은 보행잡 보호를 요하는 곳들을 선제적으로 지정해 볼라드 등 시설의 내구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압사 우려에 중단된 미등록 공연장… 1평 공간에 최대 24명 몰려1㎡ 면적에 7명. 1평(약 3.3㎡) 공간에 24명. 지난달 29일 소방 당국이 공연을 강제 중단시킨 서울 성동구 문화복합시설 에스팩토리의 당시 인파 상황이다. 동아일보가 전문가에게 당시 영상 등을 토대로 분석을 의뢰한 결과 2022년 10월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근접한 정도의 인파가 몰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공연장은 현행법의 규제를 피해 가는 ‘미등록 공연장’이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워터밤, 록페스티벌 등 인파가 몰릴 공연이 여럿 예정된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지난달 29일 압사 사고 우려로 공연이 중단됐던 서울 성동구 복합문화공간 에스팩토리에서 당시 ㎡당 최대 7명가량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평(약 3.3㎡)에 24명인 셈이다. 에스팩토리는 공연법상 등록된 공연장이 아니었다. 이런 미등록 공연장은 수용 인원 규제가 없어 ‘관리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스탠딩 공연은 사고 위험이 더 큰 가운데 앞으로 유사한 공연들이 잇달아 예정돼 있어 대형 사고 우려가 나온다.● 성동구 공연장, 이태원 참사 때에 근접한 밀집도공연 중단 사태가 벌어진 지 사흘 만인 1일 기자가 찾은 에스팩토리 D동 내부에는 사건 당일 부착된 것으로 보이는 ‘보일러룸 공연장 층별 안내문’이 여전히 붙어 있었다. 에스팩토리 D동은 지상 4층 규모의 시설로, 사건 당일 이곳에 약 4000명이 몰려들어 건물을 휘감을 정도로 관객들이 장사진을 쳤다. 이곳은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걸어서 9분 정도 거리라 주변 유동인구도 많았다. 약 700m 떨어진 곳에는 119안전센터가 있었다. 동아일보가 이날 현장점검과 함께 전문가들에게 에스팩토리 사건 날 상황 분석을 의뢰한 결과 당시 공연장 3층의 군중 밀집도는 ㎡당 최대 7명 수준으로 분석됐다. 2022년 10월 29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 당시의 최대 군중 밀집도(㎡당 8.1명)에 근접한다. 신동민 한국교통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현장 영상으로 분석해 보니) 부상자가 발생한 3층 메인 스테이지와 계단 인근의 1인당 입석 점용면적은 ‘0.14∼0.25㎡’ 내외”라고 추정했다. 손바닥 하나가량 면적에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던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만든 ‘공연장 외 공연 안전관리 가이드’에 따르면 한 사람당 바닥 면적이 0.5㎡ 이하면 위험한 상태로 분류된다. 0.19㎡ 이하면 ‘여러 사람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단계가 된다. 공연법상 등록 공연장의 경우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수용 인원 기준이 있지만, 에스팩토리 같은 미등록 공연장은 이 같은 기준이 없다. 이런 곳에서 이뤄지는 공연을 ‘공연장 외 공연’이라고 한다. 공연 관객 수에 법적 제한이 없다 보니 공연 수익을 늘리기 위해 최대한 많은 티켓을 팔려는 경우도 있다. ‘보일러룸 서울 2024’ 공연 주관사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한 기준에 따라 관객 수를 정했다”고 했다. 에스팩토리 측 관계자는 “안전 문제 발생 시 즉각 공연을 중단하기로 공연 주관사 측과 협의했었다”고 밝혔다.● 비슷한 공연 줄줄이 예정… “대책 필요” 앞으로 예정된 다른 공연에도 대책이 필요하다. 2∼4일에는 인천 송도 록페스티벌이 열린다.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몰리는 행사다. 워터밤도 이달 31일까지 인천, 대전, 강원 속초, 경기 수원, 광주에서 열린다. 에스팩토리에서는 다음 달 16, 17일 또 스탠딩 공연이 열린다. 공연 도중 젊은 관객들이 한껏 흥이 오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기 힘들다. 인기 가수 등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인파가 무대 쪽으로 확 쏠릴 우려도 있다. 미리 적정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이태원 참사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6월 강원에서 열린 한 페스티벌에 다녀온 직장인 임모 씨(25)는 “무대 근처 스탠딩 구역에서 공연을 봤다. 유명 연예인이 등장할 때마다 앞으로 쏠리며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숨쉬기가 어렵다. 뒤로 가 달라’고 소리치는 관객이 있었지만 인원이 워낙 많아 잘 통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안전요원들은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엑스(X)자를 만들어 달라”고 안내했지만, 공연 도중 모든 관객이 흥에 겨워 팔을 머리 위로 드는 상황이 벌어지자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 공연도 야외에서 진행된 ‘공연장 외 공연’으로 당시 관객은 1만8000여 명에 달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공연장 내 수용 인원은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공연법에)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며 “공연장의 모든 구역 내 상시 안전 공간이 확보될 수 있도록 세심한 인파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