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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습니다.’ 2010년 12월이었던 것 같다. 경기 과천시의 한 음식점에서 기획재정부 공무원들과 출입기자들이 모여 송년회를 했다. 그때 기재부 측에서 이 퀴즈를 내면서 “기재부 직원들이 □에 들어갈 단어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이 무엇일지” 물었다. 기자들의 답은 다양했다. ‘이성 친구’ ‘돈’ ‘자유시간’ ‘취미’…. 다 틀렸다. 기재부가 공개한 답은 ‘불만’이었다. 일이 많아 자유시간이 부족하고, 데이트를 할 여유가 없으니 이성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며 민간 기업에 비해 월급도 크게 낮다. 하지만 기재부 공무원들은 “불만 없습니다”라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약 2년간 기재부를 출입한 기자는 그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는 기자가 가장 바쁜 직업이라 여길 때였는데, 기재부 공무원들은 기자 이상으로 바쁘다고 인정했다. 경제위기 상황이었기에 경제사령탑인 기재부가 특히 바쁘기도 했을 것이다. 기재부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기자지만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조규홍 현 1차관이 지명된 것에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조 차관은 1988년 공직에 입문해 기재부 내에서 예산총괄과장, 경제예산심의관, 재정관리관(차관보) 등을 지냈다. 30여 년간 예산과 재정 업무를 담당한 정통 경제관료다. 지난해 10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에서 퇴임한 후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일했고, 대통령직인수위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다가 5월 복지부 1차관에 기용됐다. 그리고 4개월 만에 장관 후보자가 된 것이다. 그를 보건 및 복지 분야 전문가로 부르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대통령실도 이번 인사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전문성을 가진 의사, 교수도 여럿 접촉했지만 그들은 예외 없이 장관직을 고사했다. 청문회를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 후 3년 동안 업무 관련성이 있는 곳에 재취업을 할 수 없는 점도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조 후보자를 포함해 이번 정권에서 기재부 출신들이 대거 기용되고 있다. 대통령실 경제수석,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등 사실상 기재부 몫인 자리뿐 아니다. 대통령비서실장, 총리와 국무조정실장,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도 기재부 출신이다. 은행연합회 등 주요 금융 협회와 공기업에도 전직 기재부 인사들이 두루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대해 과거 청와대 고위직을 거친 한 기재부 출신 인사는 “서로 눈빛만 보고서도 알아서 일처리를 할 테니 효율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부처 의견을 제대로 들을지 모르겠다. 다양성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현재 상황은 2012년 말 일본과 유사하다.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당시 두 번째로 총리에 오르면서 경제산업성 출신들을 대거 중용했다. 러시아와의 영토 교섭을 외무성이 아니라 경산성이 주도했다. 재무성이 재정 안정을 걱정할 때 경산성은 “일단 투자부터 하라”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아베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0번 이상 정상회담을 하고서도 영토 교섭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본이 선진국 최악의 국가채무에 짓눌리고 있는 것은 재무성 목소리가 작아진 탓도 있다. 2020년 9월 일본 총리가 바뀌자 경산성 출신들은 모두 요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정부의 한 부처가 실권을 쥐면 분명 속도감 있게 일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멀리 가려면 여럿이 함께 가는 게 낫다.박형준 경제부장 lovesong@donga.com}
온천의 나라 일본. 그런 일본이지만 이와테현 가와군 니시와가정은 2020년 말 남탕과 여탕, 휴게실, 매점, 주차장이 있는 온천 시설을 공짜로 민간에 넘기겠다고 공고했다. 2005년 7400여 명이던 인구가 공고 당시 5400여 명으로 줄어든 게 근본 이유였다. 온천 이용자도 줄다 보니 지자체는 이용료 300엔(약 3000원)으로 시설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적자가 쌓이다 보니 공짜로 내놓은 것이다. 공짜로라도 처분하고 싶었던 것은 온천 시설뿐만이 아닐 것이다. 마을의 매점, 식당, 상가 등도 매출 부진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미 다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인구 감소가 지속되면 결국 지자체는 소멸하고 만다. 일본 정부는 “2040년 일본 기초지자체 1727곳 중 896곳이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고 2014년에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도 강 건너 불구경 할 때가 아니다. 지난해 처음 총인구(국내 거주 외국인 포함)가 줄어들었다. 첫 인구 감소 시점이 일본보다 16년 늦었지만 앞으로 감소 속도는 일본보다 훨씬 빠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합계출산율)는 지난해 0.81명으로 일본 1.34명보다 크게 낮았다. 줄어드는 인구를 갑자기 늘릴 묘수는 없다. 하지만 대도시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시킨다면 지방 인구를 늘릴 수 있다. 이를 통해 지방 소멸을 막고 국가 균형 발전도 이룰 수 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는 마당에 서울 사람을 지방으로 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 역시 아니다. 도쿄특파원으로 재직하던 2013년 1월에 취재했던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정의 사례를 소개한다. 노토정은 ‘깡촌 중의 깡촌’이었다. 마을에는 편의점이나 음식점이 전혀 없었다. 1박 2일 동안 머물렀지만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 수단을 보지 못했다. 당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7%. 그런 시골 골짜기에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주민들이 일주일씩, 길게는 한 달씩 머문다. 해외에서도 여행이나 이민을 오는 경우도 흔했다. 노토정 주민이면서 마을 변화를 주도하고 있던 60대 다다 기이치로(多田喜一郞) 씨는 “깡촌이라는 게 바로 노토정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벼 베기, 과일 수확, 반딧불이 보기, 이글루 만들기 등이 노토정의 대표 상품이다. 그런 노토정을 온라인으로 알리고, 농가민박 예약을 받았더니 일본 국내외에서 이용객들이 몰려 왔다고 했다. 방학 때면 대도시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오기도 했다. 다만, 두 가지 유의할 점. 다다 씨는 “정보기술(IT) 능력을 가진 젊은이가 있어야 마을 변화를 이끌 수 있고, 각 가정집의 화장실과 욕실을 최신식으로 수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지자체들은 이미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대도시 청년들에게 각종 지원책을 제시하며 귀농을 제안하고 있다. 경남 밀양시는 만 18∼40세를 대상으로 스마트팜 청년창업 보육센터를 운영한다. 20개월 교육의 수강료는 전액 무료고 숙식도 지원한다. 충남 서천군은 만 18∼40세 도시 청년에게 초보농부 교육 훈련비 월 100만 원을 7개월 동안 지원한다. 만약 전국 지자체의 귀농 지원책을 알고 싶다면,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2022 A FARM SHOW(에이팜쇼)-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를 방문하면 된다. 행사는 26일까지 열린다. 박형준 경제부장 lovesong@donga.com}
일본 정계에는 ‘30% 룰’이 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의 집권당은 내각 지지율이 30%를 밑돌면 총리 교체를 검토한다. 총리가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내각 지지율이 20% 밑으로 떨어지면 예외 없이 총리를 교체했다. 그 기준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잇달아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30% 아래로 떨어졌다. 정부는 평상시 같았으면 ‘경제’에서 돌파구를 찾을 것이다. 재정 집행을 늘리고, 금리를 낮춰 시중에 돈을 공급하면 경제는 살아난다. 내 배가 부르면 정권에 대해 호의적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은 돈을 풀 형편이 안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이미 엄청나게 돈을 푼 데다 원자재 가격 고공행진,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 가치 급락) 등의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리를 올려 시중에 풀린 돈을 흡수해야 해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 실제 상당수 기업이 비상 경영을 선언하며 투자와 지출을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눈에 들어온 게 금융권 아닐까 싶다. 대부분 은행들은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 금리 인상기엔 대출 금리가 곧바로 오르고 예금 금리는 천천히 오르는 경향이 있어 예대마진이 늘어난다. 면허(라이선스)로 은행을 관리하는 정부로선 은행이 공적 역할을 대신해 주길 내심 바랐을 것이다. 5월 이후 새로 취임한 정부와 금융 당국 수장들은 입을 맞춘 듯 은행의 ‘이자 장사’를 비판했다.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도 했다. 여론 역시 우호적이었다. 그러자 시중은행들은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즉각 내렸다. 예금과 대출은 은행업의 본질이지만, ‘이자 장사’라는 프레임에 은행이 꼼짝 못 했다.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는 금융 부문 민생안정 대책을 발표하며 9월 종료 예정인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에 대해 “주거래 금융기관의 책임 관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차주(돈 빌린 소상공인)가 신청하는 경우 자율적으로 90∼95%는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 해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금융위는 ‘자율’이라고 표현했지만 금융기관들은 ‘강제’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부실 대출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서도 계속 만기를 연장해 줘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7일 6조6000억 원에 이르는 수상한 외환 거래에 대한 잠정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큰 규모의 송금 거래가 이뤄지면 일단 뭔가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며 은행을 질책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은행 창구 직원은 매뉴얼대로 적법하게 대응했다. 어떻게 서류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느냐”고 반문했다. 금감원의 칼끝이 ‘관리 책임’이란 명목으로 은행장, 지주 회장으로까지 향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새 정부는 민간시장 중심의 역동성을 강조하며 “모래주머니를 확 벗겨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권에 대해선 관치(官治)가 여전한 느낌이다. 정부는 “언제 강제로 지시한 적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와 감독을 받는 금융권으로선 금융 당국자의 말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주머니를 하나둘 차게 되면 금융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진다.박형준 경제부장 lovesong@donga.com}
2019년 1월 도쿄 특파원으로 출국했을 때 코스피는 2,100대였다. 한동안 한국 증시를 잊고 살다가 지난해 초 우연찮게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한 것을 봤다. 깜짝 놀랐다. ‘코스피가 이렇게 쉽게 끓어오르다니….’ 그 무렵 일본에서 한국 지인들과 통화를 하면 그들은 온통 투자 이야기를 했다.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돈을 모아 집을 샀다. 목돈이 마련되지 않으면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했다. 대출 이자가 워낙 낮았기에 은행 대출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주점을 운영하던 한 지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를 명분으로 손쉽게 은행에서 돈을 빌렸고, 그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정부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상환유예와 만기연장 조치를 2년 넘게 실시했기에 원금 상환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3월 일본에서 귀국했더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주식과 코인은 연일 가격이 떨어졌고, 부동산 상승세는 주춤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투자를 권했던 지인들은 입을 닫았다. 13일 한국은행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보면서 속이 탔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경제 위기 때마다 정부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풀었고, 그 돈을 거둬들이는 정상화 때마다 항상 고통이 뒤따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경제를 살리느라 돈을 풀자 너도나도 은행 빚으로 부동산을 사고 소비를 늘렸다. 물가가 치솟았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렸다. 이자 부담에 쓰러지는 가계가 하나둘 나왔다. 지금 상황과 판박이다. 다만 현 상황은 아직 고통의 정점이 아니다. 1차 충격은 10월 즈음 드러날 것 같다. 9월 말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상환유예가 끝나기 때문이다.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60조 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해 40.3% 급증했다. 금융위는 “10월 이후에도 급격한 대출회수가 없도록 주거래 금융기관 책임관리를 추진하겠다”고 14일 밝혔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은 대거 부실채권이 생길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은행도 비례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2차 충격은 연말 즈음에 완연해질 수 있다. 지난해 7월 0.5%에 불과했던 기준금리는 이달 2.25%가 됐고, 연말이면 약 3%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 ‘가계부채’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날 수 있다. 현재 한국 가계부채는 약 1900조 원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36개국을 대상으로 올 1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빚 규모를 조사한 결과 1위가 한국이었다. GDP 대비 104.3%였다. 급격하게 금리가 오르면 파산하는 가구가 속출하게 된다.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에 불이 붙게 되고, 그 폭탄이 터지면 금융 부실, 부동산시장 폭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돈 풀기 파티는 끝났다. 정상화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정부는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 비상경제장관회의 등 요란한 이름의 회의를 연일 열고 있지만 신통한 해법이 있을 리 없다. 가계와 기업은 고통스럽지만 끈질기게 구조조정해 건전성을 높일 때다. 정부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는지 철저하게 점검하면서 취약계층의 부담을 낮추는 핀셋 지원을 해야 한다. 아울러 일자리를 늘려 가계소득을 증가시키는 정공법도 필요하다. 이제 내려가기 시작하는 롤러코스터의 손잡이를 꽉 잡을 때다. 박형준 경제부장 lovesong@donga.com}
“경제 분야에서 30년 일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위기다.” 한 경제연구소의 부사장급 인사의 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로 인한 공급망 교란, 유가 폭등…. 통제할 수 없는 해외 요인이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다. 거기에 물가 급등, 무역수지 적자, 금리 인상 등 국내 문제도 만만치 않다. 연일 주가는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치솟는다. ‘복합위기’다. 깜깜한 터널 속에서 어떻게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과거 한국 경제의 위기 사례를 참고 삼아 들여다봤다.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지금처럼 한국 증시와 원화 가치가 연일 하락했다. 그해 연간 물가 상승률은 4.7%로 치솟았다. 불을 끌 소방수로 2009년 2월 윤증현 당시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이 새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기재부 출입기자였던 필자는 윤 장관의 취임 기자회견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그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 내외에서 ―2.0%로 과감하게 낮췄다. 일부 기재부 당국자는 “그래도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마이너스’ 언급만큼은 피해야 한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장관은 “국민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그 이후 약 1년간 신문은 ‘위기’ ‘사상 최악’ ‘도산’ 등 단어로 도배됐다. 국민들은 경각심을 가졌고 위기 극복에 동참했다. 만약 정부가 1997년 외환위기 직전처럼 “경제 펀더멘털은 좋다”며 달콤한 발언만 내놨다면 2010년 한국 경제의 퀀텀 점프(성장률 6.5%)는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던 1979년 이야기다. 그해 초 청와대에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이 농가주택 개량사업 업무보고를 했다. 애초 9만5000호를 개량하려다 그 규모를 3만 호로 줄였다. “나도 농촌 출신인데 더 투자합시다.”(박정희 전 대통령) “각하, 경제의 안정구도를 갖고 나가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시멘트를 비롯한 건설 자재값과 건설 임금 상승, 그리고 재정 부담 때문에 축소가 불가피합니다.”(신현확 전 경제기획원 장관) “그래도 6만 가구는 해야 하는 거 아니오?”(박 전 대통령) “안 되겠습니다.”(신 전 부총리) 그날 이후에도 대통령과 장관의 농가주택 논쟁은 이어졌고,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이 “내가 농업 개발에 대한 집념이 있는데, 당신이 내 집념을 꺾을 작정이냐”고까지 몰아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신 전 장관은 신념을 꺾지 않았다. 오일쇼크의 위기 속에 ‘성장’을 추구할 게 아니라 ‘안정’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경제 전문가로서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해 봄 경제기획원은 중화학공업 축소 및 조정, 새마을운동 지원 축소, 수입 개방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을 내놨다. 성장 지상주의자였던 박 전 대통령의 심기는 불편했겠지만 이 정책으로 치솟던 물가는 떨어졌고, 1981년 한국 경제는 다시 반등할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팀도 최근 성장률 전망을 대폭 낮추고, 물가 전망은 2배 이상으로 올리며 연일 위기 경고음을 내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앞에서 신념 있는 목소리를 내는지는 의문이다. 지방선거 직전에 결정된 62조 원의 사상 최대 추가경정예산이 물가를 더 부채질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1979년 상황은 ‘신현확의 증언’(신철식, 2017년)을 참고했습니다. 박형준 경제부장 lovesong@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상에 본격 모습을 드러낸 2020년 초, 도쿄 특파원으로 일본에 있었다. 그랬기에 일본 정부의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도쿄에서 15m² 남짓한 공간에 한식 음식점을 운영하는 지인 A 씨는 그해 4월 일본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실시했을 때 ‘곧 망하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정부는 도쿄도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음식점에는 오후 8시까지 단축 영업을 요청했기에 손님이 뚝 끊어졌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돌아갔다. 단축 영업에 응하면 하루 4만 엔(약 4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그 금액은 지난해 초 하루 6만 엔으로 늘었다. 가게 임차료 지원금(6개월 동안 100%), 주류 판매 제한에 따른 영업손실 보조금(매월 최대 400만 원)도 나왔다. 거기에 1회성으로 사업부활 지원금, 소규모 사업자 지속화 보조금 등도 받았다. A 씨는 “2년 동안 받은 정부 지원금을 다 합치면 2000만 엔 정도 되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앞으로 계속되어도 끄떡없다”고 말했다. 올해 3월 귀국해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지인 B 씨를 만났다. 최근 2년 동안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두 차례 방역지원금 400만 원과 손실보상금 3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두세 달 임차료와 인건비를 내니 사라졌다. 그는 결국 올해 초 가게를 접었다. B 씨는 “알아서 살아남아야 했다. 코로나19로 임차료조차 못 낸 식당 주인이 자신의 식당에 불을 냈다는 신문 기사를 봤는데, 나도 꼭 그런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두툼한 손실보상은 참 부럽다. 지난해 일본에서 도산한 업체 수는 6030곳으로 1964년 이후 57년 만에 최저였다. 외식업, 여행업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지만 분명 정부 지원금으로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대체로 일본 정부를 비판한다. 선진국 최악 수준의 국가채무를 가진 일본이 또다시 퍼주기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일본의 세출은 175조6000억 엔으로 예년 수준(약 100조 엔)보다 크게 늘었지만 세입은 55조1000억 엔에 그쳤다. 결국 그해 평상시 두 배가 넘는 112조5000억 엔의 국채를 발행해야만 했다. 일본이 100조 엔 이상 국채를 발행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해 상황도 비슷했다. 그렇게 늘어난 나랏빚은 후대가 갚아야 한다. 참고로 한국도 2020년에 세출이 크게 늘어 통합재정수지가 71조2000억 원 적자였지만, 적자 규모는 일본의 약 6%에 불과했다. 일본에서 만난 경제 당국의 고위 공무원은 “처음에 한국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책을 보고 ‘이것뿐인 게 맞나’ 싶어 몇 번이고 다시 봤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일본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국회가 약 62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추경 사상 최대 금액이다. 주로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 지원에 사용된다. 국가재정법에 제대로 근거한 추경인지, 물가 상승을 부추기지 않을지 등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상공인에게 ‘단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62조 원 중 23조 원을 교부금 관련법에 의해 지방교부금으로 의무 사용해야 한다는 데에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빠른 추경 집행과 비효율을 초래하는 50년 된 교부금 제도를 이번 기회에 손볼 것을 제안한다. 박형준 경제부장 lovesong@donga.com}
3년 2개월의 일본 도쿄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3월 19일 귀국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더니 목이 칼칼해 편의점에서 500mL 녹차 음료를 샀다. 가격은 1600원. 오미자, 흑미, 보리 등 기능성이 가미된 음료들은 2000원을 넘었다. 일본에선 같은 크기의 녹차 음료를 120엔(1224원·당시 매매기준율 100엔=1020원 적용)이면 살 수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1만 원으로 점심을 먹으려면 간당간당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쿄에선 같은 금액으로 넉넉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긴자 인근 자주 가던 태국음식점은 전채, 메인 요리, 후식까지 갖춰 800엔이다. 그 옆 인도음식점도 비슷한 구성을 1000엔에 판다. 점차 물건 값이 싸지는 일본에서 살다 귀국했기에 한국의 ‘물가 충격’에 자주 놀랐다. 고물가는 이미 한국 경제의 중요한 위험 요인이 돼 있다.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에 비해 4.8% 올라 13년 6개월 만에 최고다. 물가는 돈의 가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악마’에 비유된다. 특히 서민의 삶이 더 팍팍해진다. 정부가 긴장해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기에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도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물가 급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등, 글로벌 곡물 가격 상승, 미국발(發) 금리 인상으로 인한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 가치는 하락) 등 대외 변수의 영향이 크다.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 그렇기에 개인과 기업까지 물가 잡기에 함께 나서길 제안한다. 일본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게 물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3월 일본의 ‘기업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9.5% 폭등했는데, 이는 2차 석유위기 영향이 남아 있던 1980년 12월(10.4%) 이후 최고다. 기업이 원자재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에 그쳤다. 일본 기업들이 자체 이윤을 줄이고 소비자가격 인상을 최소화하며 대응에 나선 결과다.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인 와타나베 쓰토무(渡변努)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최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일본 소비자 마음속에 1엔이라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물가 상승을 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 그리고 그들의 눈치를 살피는 기업이 소비자물가 급등을 억누르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저녁 식사 예약을 위해 서울 광화문 인근의 과거 단골집들에 전화를 돌렸다. 특파원으로 출국하기 전보다 1인당 2만∼3만 원씩 가격이 올라 있었다. 그런데 A음식점에서 “1인당 5만 원짜리를 예전 가격 3만 원에 드리겠다. 앞으로도 계속 이용해 달라”고 했다. 남들이 가격을 다 올렸으니 그 음식점도 손쉽게 가격 인상을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분명 저렴한 재료로 대체한 요리를 개발하면서 품질은 과거처럼 유지하려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소비를 더 하게 되고, 그런 심리가 물가를 끌어올린다. 4월 기대인플레이션율(소비자가 예상하는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2013년 4월(3.1%) 이후 9년 만에 최고다. 당분간 고물가는 지속될 것이다. 정부뿐 아니라 개인과 기업이 ‘3인 4각’으로 협력해야 악마로부터 입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박형준 경제부장 lovesong@donga.com}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역 오거리. 흰색 승용차가 시속 50km 이상으로 진입하더니 우회전을 시도했다. 앞에 남성 2명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결국 보행자까지 불과 2∼3m를 남겨두고서야 ‘끽’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하마터면 인명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현행법상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무조건 차량을 멈춰야 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횡단보도 사고가 빈번한 서울 시내 사거리 등 10곳을 점검한 결과 우회전 차량 10대 중 3대가 횡단하는 보행자를 보고도 차를 멈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7월 12일부터는 새 도로교통법이 시행된다. 횡단보도에선 통행을 기다리는 대기자만 있어도 차량을 일단 세워야 한다. 신호등이 없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에선 사람이 없어도 일시정지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법규조차 안 지켜지는 상황에서 새 규정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 의문이라는 전문가들이 상당수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보행자보다 운전자 중심의 교통체계가 작동되고 있다”고 했다. 차량 ‘거친 우회전’에 깜짝… 보행자 벌벌 떠는 횡단보도 보행자 아랑곳 않는 우회전 빈번… 우회전 사망사고 59% 횡단중 발생“녹색불에도 보행자가 눈치 보게돼”… 7월부턴 ‘대기자’ 있으면 멈춰야적색신호땐 대응 규칙도 곧 마련… “보행자 중심으로 인식 전환 절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거리.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진입하더니 우회전하면서 곧장 횡단보도로 진입했다. 횡단보도 주변에는 10여 명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운전자는 개의치 않았다. 마침 녹색등이 켜지고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지만 차량은 오히려 속도를 높여 횡단보도를 통과했다. 사거리에는 ‘우회전 시 일단 멈춤’ 권고 표지가 있었다. 반대편에서도 사람들이 건너오고 있었지만 차량의 브레이크등은 끝내 켜지지 않았다. 보행신호가 켜진 걸 보고 건너려다가 멈칫하고 차량이 지나길 기다린 한 남성은 “차가 멈추지 않을 것 같아 발을 떼기가 무서웠다”고 말했다.○ 횡단 보행자 보면서도 버젓이 주행올해 7월 12일부터 보행자 보호 의무를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기존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만 차량이 정지하면 됐지만 앞으론 횡단보도에 진입하지 않고 ‘통행을 하려는 때’에도 차량을 멈춰야 한다. ‘대기자’가 인도에 서 있어도 일단 차량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횡단보도 사고가 빈번한 서울 종로 성북 강남 동대문 일대 사거리 등 현장 10곳을 둘러보니 ‘보행자 횡단 시 정지’라는 현행 법 규정도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았다. 15일 찾은 중랑구 화랑대역 교차로의 경우 우회전하면 바로 신호 없는 횡단보도가 나온다. 30분 동안 지켜봤는데 보행자가 길을 건너고 있거나 건너려는 상황에서 차를 멈춘 우회전 차량은 40대 중 단 1대에 불과했다.○ 우회전 사상자 4년간 1만3362명전문가들은 차량이 우회전할 때 사고 위험이 특히 높다고 입을 모은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교통사고 보행 사상자 중 우회전 교통사고로 발생한 비율은 2018년 9.6%에서 2020년 10.4%로 증가 추세다. 최근 3년간(2018∼2020년) 우회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는 212명, 부상자는 1만3150명에 달했다. 사망자 절반 이상(59.4%)은 도로 횡단 중 사고를 당했다. 특히 횡단보도 사망자는 94명으로 횡단보도 밖 사망자와 3배 가까이나 됐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양정훈 도로교통공단 사고조사연구원은 “우회전 시 차량이 보도 측에 인접하여 회전하는데 자동차 구조상 사각지대가 발생해 보행자를 인식하기 어렵다”며 “특히 화물차 버스 등 대형 차량의 경우 회전 반경이 크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에선 대형 차량으로 인한 아찔한 순간이 적잖게 목격됐다. 16일 찾은 성북구 하월곡동 종암 사거리에선 보행신호에 한 여성이 길을 건넜는데 흰색 트럭이 그대로 우회전해 횡단보도로 진입했다. 여성은 놀라 그 자리에서 멈췄고 뒤늦게 트럭이 급정거했다. 평소 이곳을 자주 통행한다는 장모 씨(37)는 “이 도로는 항상 무섭다”며 “녹색 신호에도 오히려 보행자들이 눈치를 보며 건너야 한다”고 했다.○ 보행자 중심으로 인식 전환을경찰청은 개정 도로교통법상 ‘통행을 하려는 때’라는 문구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조만간 정할 방침이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 인도에 대기자가 있고 보행신호가 적색일 때 일시정지를 의무화할지 등 상세한 내용이 조만간 정해진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도로교통법 개정을 계기로 ‘운전자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인식 전환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이미 1950년대에 보행자 중심으로 교통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는데 우리나라에선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보행자 보호 의무가 운전자에게 있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잘 보호되지 않았다”면서 “이번 법 개정을 시작으로 보행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꾼다면 사고 감소 등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美, 교차로 우회전때 ‘일단 정지후 보행자 확인’이 기본 교차로서 직진車-보행자에 우선권… 전방 빨간불땐 우회전 금지한 곳도‘방향 반대’ 日, 좌회전 규정 엄격… ‘직진 신호때만 천천히’ 습관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주재원으로 파견 나온 A 씨는 미국 입국 직후 운전을 하다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교차로에서 차를 멈추지 않고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린 것이 화근이었다. 슬금슬금 우회전을 하려는데 오른편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이 멈춰 서더니 정색을 하고 ‘뭐 하는 거냐’고 소리쳤다. 보행자와 스치지도 않았지만 마치 큰 사고를 낸 것처럼 질책을 당했다. A 씨는 그 후 미국에서 어디를 가도 일단 교차로에서는 정지하고 주위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미국은 각 주마다 교통 규칙이 다르다. 우회전할 때 지켜야 할 규칙도 조금씩 다른 데, 대체적으로 보면 한국보다 교차로 우회전에 제약이 많은 편이다. 뉴욕주의 경우 교차로에서 직진 신호가 빨간불이고 따로 우회전 신호가 없을 때는, 일단 차를 교차로에서 멈추고 왼쪽에서 오는 차량 및 횡단보도 보행자에게 우선권을 양보한 뒤에야 천천히 우회전을 할 수 있다. 만일 ‘NO TURN ON RED’(빨간불에 회전 금지)라는 표지판이 있다면 반드시 파란불에만 우회전이 가능하다. 특히 차량 통행이 많은 뉴욕시 안에선 별도 표시가 없는 한 전방 빨간불에서 우회전하면 안 된다.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전방 빨간불에 우회전하려면 일단 오른쪽 차선에 붙은 뒤 교차로에서 반드시 정지해야 한다. 보행자나 자전거, 다른 차량들이 모두 지나간 뒤에야 천천히 우회전을 할 수 있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의 경우 ‘STOP’(정지) 표지판에 따라 무조건 일단 정지해야 한다. 가장 먼저 교차로에 도착해 정지한 차량에게 우선권이 있다. STOP 표지판 앞 정지는 미국 어디서나 지켜야 하고, 운전자 사이에서도 체화돼 있다. 일본은 한국 미국과 주행 방향이 반대라 한국의 우회전은 일본에선 좌회전에 해당한다. 일본에선 직진 신호가 들어와야 좌회전을 할 수 있고, 빨간불일 때는 좌회전을 하면 안 된다. 일본 도로교통법 34조는 ‘좌회전 시 미리 도로 왼쪽 끝에 붙어서 가능한 한 도로 왼쪽 끝을 따라 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좌회전할 때 운전자들이 보행자를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것도 한국과의 차이다. 10일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도쿄 주오구 쓰키지의 교차로에서 차량의 좌회전 상황을 점검해봤다. 차량 153대가 좌회전을 했는데, 모든 차량이 왼쪽 끝 차선으로 이동해 차례대로 좌회전을 했다. 왼쪽 끝이 아닌 차선에서 급하게 좌회전을 하거나, 차량 두 대가 동시에 좌회전을 한 경우는 없었다. 횡단보도에 한 발짝이라도 내디딘 사람이 있으면 차량 대부분은 일단 정지했고,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벗어난 다음에야 움직였다.특별취재팀▽ 팀장 강승현 사회부 기자 byhuman@donga.com▽ 김재형(산업1부) 정순구(산업2부) 신지환(경제부) 김수현(국제부) 이기욱(사회부) 기자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lovesong@donga.com특별취재팀}
일본 대표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73)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반전 메시지를 담은 특별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나선다고 요미우리신문 등이 16일 보도했다. 그는 18일 오후 11시부터 55분간 도쿄 FM의 특별 방송 ‘무라카미 라디오 특별판―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한 음악’ 방송에 DJ로 출연한다.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그는 유명한 재즈 애호가로 음악에 상당한 조예를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무라카미는 이날 방송에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CD와 레코드 중 반전 메시지가 강한 약 10곡의 노래를 골라 들려주기로 했다. 특히 직접 가사의 의미와 시대 배경을 소개하며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할 계획이다. 그는 출연을 승낙하며 “우크라이나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전쟁이 벌어졌다. 음악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청취자로 하여금 ‘전쟁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할 수는 있다”는 소감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침공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해 권위주의 지도자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기로 했다. 방송을 기획한 노부에 히로시(延江浩) 프로듀서는 “그의 발언은 해외에도 영향력이 있다”며 “그의 선곡과 메시지가 전 세계에 전해져 많은 이의 마음에 와닿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도 종종 라디오 DJ를 맡았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사태가 발령됐을 때도 DJ로 나서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당시 “음악은 논리를 넘어 공감하도록 만든다.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를 우려하는 발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원자폭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일본인의 생각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1923년 간토 대지진 후 극우 세력이 조선인을 희생양 삼아 학살한 사건을 언급하며 “위기 때 말로 선동하는 세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대표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73·사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반전 메시지를 담은 특별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나선다고 요미우리신문 등이 16일 보도했다. 그는 18일 오후 11시부터 55분간 도쿄 FM의 특별 방송 ‘무라카미 라디오 특별판-전쟁을 멈추게 하기 위한 음악’ 방송에 DJ로 출연한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그는 유명한 재즈 애호가로 음악에 상당한 조예를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무라카미는 이날 방송에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CD와 레코드 중 반전 메시지가 강한 약 10곡의 노래를 골라 들려주기로 했다. 특히 직접 가사의 의미와 시대 배경을 소개하며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할 계획이다. 그는 출연을 승낙하며 “우크라이나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전쟁이 벌어졌다. 음악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청취자로 하여금 ‘전쟁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할 수는 있다”는 소감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침공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해 권위주의 지도자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기로 했다. 방송을 기획한 노부에 히로시(延江浩) 프로듀서는 “그의 발언은 해외에도 영향력이 있다”며 “그의 선곡과 메시지가 전 세계에 전해져 많은 이의 마음에 와 닿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에도 종종 라디오 DJ를 맡았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사태가 발령됐을 때도 DJ로 나서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당시 “음악은 논리를 넘어 공감하도록 만든다.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점점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를 우려하는 발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원자폭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일본인의 생각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1923년 간토대지진 후 극우 세력이 조선인을 희생양 삼아 학살한 사건을 언급하며 “위기 때 말로 선동하는 세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가 일본에도 미치고 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최근 일본 주변에서 잇따라 군사 활동을 늘리자 집권 자민당 또한 이에 맞서 ‘핵 공유’를 공론화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러시아 함정 6척이 14일 오전 홋카이도와 러시아 사할린 사이 소야해협을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10, 11일 양일에도 러시아 함정 10척이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 쓰가루해협을 통과했다. 러시아군은 10일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에서 지대공 미사일 발사 훈련도 실시했다. 이에 자민당 또한 16일 유럽 안보 전문가 등을 초청해 미국의 핵무기를 일본에 배치해 공동 운영하는 ‘핵 공유’에 대한 강연을 듣기로 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또한 지난달 2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일본도 핵 공유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다만 핵 공유는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에 위배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지난달 28일 “(핵 공유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가 일본에도 미치고 있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최근 일본 주변에서 잇따라 군사 활동을 늘리자 집권 자민당 또한 이에 맞서 ‘핵 공유’를 공론화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러시아 함정 6척이 14일 오전 홋카이도와 러시아 사할린 사이 소야해협을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10, 11일 양일에도 러시아 함정 10척이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 쓰가루 해협을 통과했다. 러시아군은 10일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에서 지대공 미사일 발사 훈련도 실시했다. 이에 자민당 또한 16일 유럽 안보 전문가 등을 초청해 미국의 핵무기를 일본에 배치해 공동 운영하는 ‘핵 공유’에 대한 강연을 듣기로 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또한 지난달 2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일본도 핵 공유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다만 핵 공유는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에 위배된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지난달 28일 “(핵 공유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1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한미일 3국이 한반도 사안 관련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취임 후 이른 시일 내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전 10시 반부터 15분간 기시다 총리와의 전화 회담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은 동북아 안보와 경제 번영 등 향후 힘을 모아야 할 미래 과제가 많은 만큼 양국의 우호협력 증진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또 “양국 현안을 합리적으로, 상호 공동이익에 부합하도록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한반도 사안과 관련해 한미일 3국이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자”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날 윤 당선인에게 축하의 뜻을 전한 뒤 “한일은 서로 중요한 이웃 국가이고, 건전한 한일 관계는 룰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실현하고 지역 및 세계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는 데 불가결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또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쌓아온 한일의 우호협력 관계에 기초해 일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차기 대통령의 리더십을 기대하며 일한 관계 개선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한일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고, 관계 개선을 향해 함께 협력하자”고 말했다. NHK방송은 “기시다 총리와 윤 당선인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직접 만나 회담하는 방향으로 조정해 나가자는 데 공감했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는 물론이고 전임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와도 정식 회동을 하지 않았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0일 당선 수락 인사를 한 지 약 5시간 만인 오전 10시경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 통화는 미국 측의 요청으로 진행됐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북한이 연초부터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 한반도 사안에 대해 더욱 면밀한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이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는 만큼 한미일 3국의 대북정책 관련 긴밀한 조율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백악관은 양국 간 긴밀한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 번영의 핵심축(linchpin·린치핀)인 한미동맹의 힘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이날 윤 당선인에 대해 “새 대통령과 긴밀히 의사소통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며 축하 메시지를 밝혔다. 윤 당선인은 11일 오전 중 기시다 총리와 통화할 예정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윤 당선인이 한국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다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명의의 축하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북·외교 정책에 대해 미국과 중국, 일본의 전문가들은 각국 입장에 따라 엇갈린 제언을 내놓았다. 미국 전문가들은 윤 당선인이 한미동맹 강화를 내세운 만큼 한미 간 대북 정책 조율이 더욱 긴밀해질 것이라며 한미 전략대화 채널을 가동해 한국이 미국의 동맹으로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중국 전문가들은 윤 당선인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자 간 안보협의체) 참여 입장을 경계하면서 “미국에 기울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대북 정책, 미중 대립 등에서 한일이 공통의 이익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美 “미일과 협력해 대북정책 해야”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9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북한 관리가 최우선 외교 과제”라면서 “(새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응징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 바이든 미 행정부나 의회 및 영향력 있는 전문가들과 지속적인 전략대화체를 가동해 외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렛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한미동맹과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 간 조율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면서도 “북한이 (향후) 도발 행위를 윤 당선인의 책임으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 윤 당선인은 미국 일본과 협력해 북한의 도발에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미 테리 우드로윌슨센터 한국담당 국장은 “윤 당선인이 중국의 경제 보복이나 한국 내 반일 감정 등 난제에 부딪힐 수 있다”고 했다. ○ 中 “日처럼 미국 편 택하면 안 돼”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주펑(朱鋒)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1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이 대선 기간 중 내놓은 정책은 일본처럼 완전히 미국 편을 택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강대국들의 경쟁판에 바둑알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리난(李楠)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연구원은 “윤 당선인이 쿼드 참여와 사드 추가 배치를 언급한 만큼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면 한중 관계가 어려운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중국에 기울면서 한미동맹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했다”며 “중국과 관계를 재설정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일본의 한일 관계 전문가인 니시노 준야(西野純也) 게이오대 정치학과 교수는 1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한일 관계가 개선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면서도 “야당(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파인 점 등 윤 당선인의 정치 환경이 만만치 않다. 윤 당선인의 노력에 일본 측이 얼마나 보조를 맞추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는 “양국이 대북 정책, 미중 대립 등에서 공통의 이익을 찾아 서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사히신문은 사도 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한국이 반발하고, 기시다 정권은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일본 정부가 타협하는 형태로 한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아사히에 “한국은 선거 전과 후에 주장이 바뀌는 경우가 있고, 국민감정 영향도 크다”면서 한국의 대응을 지켜보겠다고 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14일부터 일본으로 가는 길이 더 넓어진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14일부터 하루 입국자 상한을 기존 5000명에서 7000명으로 완화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말까지 외국인 신규 입국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하지만 이달 1일부터 관광객을 제외한 외국인 입국을 하루 최대 5000명 허용하기로 방향을 전환했고 이제 7000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해외 유학생의 일본 입국도 더 늘린다. 기시다 총리는 “유학생은 우리나라의 보물”이라며 비즈니스맨 입국이 상대적으로 적은 평일에 우선적으로 입국시키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해외 유학생을 외국인 입국자 수 상한인 7000명에 포함시키지 않고 별도로 하루 약 1000명씩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재 일본 체류 자격을 얻었지만 입국하지 못한 유학생은 약 15만 명이다. 이들은 5월까지 일본에 입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일본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입국 후 격리를 면제하거나 혹은 3일 격리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들어갈 경우 코로나19 3차 백신을 접종했고, 출국 전이나 또는 일본 공항 도착 후 유전자증폭(PCR)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3일간 격리하면 된다.도쿄=박형준 특파원lovesong@donga.com}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1000만 달러(약 120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고위급 대표단을 미국에 보내 수출통제 적용 면제 협상에도 나섰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동맹 전선에서 소외되는 징후가 감지된 이후 동맹의 움직임에 적극 공조하고 나선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일 오후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혔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정 장관은 우크라이나 측 요청에 따라 방호복, 구급키트, 의료장갑, 의료마스크, 담요 등을 우선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쿨레바 장관은 정 장관에게 “어려운 시기에 한국 정부와 국민이 보여준 연대 의식과 지지를 잊지 않겠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정 장관은 대러 제재 등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도 재확인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현지 시간) 미 상무부와 국장급 화상회의를 열고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적용 면제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FDPR는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 등은 러시아 수출 전 미국 승인을 받도록 한 규정이다. 미국은 지난달 24일 대러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자체 수출통제 조치를 내놓은 유럽연합(EU)과 영국, 일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32개국에만 FDPR 적용을 면제해 줬다. 여기서 한국은 제외됐다. 정부는 3일에는 여한국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상무부와 협상한다. 미 재무부는 1일 “러시아 주요 은행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퇴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협력과 대러 수출통제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 대한 감사 편지를 보냈다고 교도통신이 1일 보도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금지가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라는 것은 옛 소련 재건과 소련 붕괴 후 만들어진 유럽 안전보장 질서의 전복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70)는 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위기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냉전 종식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승리를 선언한 저서 ‘역사의 종말’로 유명한 국제정치학계의 세계적 석학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냉전 후 이어진 민주주의 확대 시대가 명확하게 끝났으며, 강권(强權)국가가 잇달아 대두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현재 인류는 민주주의 후퇴 및 약체화에 대항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침공 결정에 대해 후쿠야마 교수는 “러시아는 옛 소련 같은 강국이 전혀 아니다. 적의(敵意)와 초강대국 시대에 대한 향수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대실패로 끝나 많은 것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최대 위협”이라고 했다. 후쿠야마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앙 속에 일종의 광기에 빠졌다는 추측이 있다”면서 “(우크라이나) 침공 후 많은 러시아인이 강한 충격을 받았고, 국익 면에서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봤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의 전망에 대해 그는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러시아가 병력을 전개해 미국이 참전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이 러시아의 다음 타깃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태가 중국의 대만 침공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이번 전쟁의 결말에 달려 있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조기 침탈하면 나토나 미국이 거의 뒤집지 못한다. 대만에는 좋지 않은 전개”라고 진단했다. 반면 러시아에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장기전이 될수록 중국은 대만 침공에 더 신중할 것으로 봤다. 후쿠야마 교수는 강권주의를 물리치기 위해 민주주의 세력의 ‘재무장’을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에 더욱 엄중한 제재를 가하고 다시 (민주주의 국가) 병력 강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나토는 러시아 위협에 맞서 연합훈련이나 병력 주둔을 강화해야 하고, 중국 군사력이 급속하게 커지는 동아시아 민주주의 세력도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지난해 1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일본의 경제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강하다’는 28%로 ‘약하다’(32%)를 밑돌았다. ‘강하다’는 응답은 2018년 37%, 2019년 33%로 갈수록 떨어졌다. 정치력 군사력 외교력 등 다른 국력에 대한 자신감도 크게 낮았다. 정치력에 대해 ‘약하다’는 46%로 ‘강하다’(8%)보다 5배 이상이었다. 군사력(약하다 45%, 강하다 11%), 외교력(약하다 51%, 강하다 7%)도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격세지감이다. 197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 일본에선 ‘1억 총중류(總中流)’란 말이 유행했다. 전 국민이 중산층에 해당한다는 말이니, 국민 모두가 잘산다는 자신감이 스며 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가 세계를 석권했을 무렵에는 ‘도쿄 땅을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세계 1위 미국 경제를 넘어설 기세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폭발하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감 저하’는 현재 일본 사회를 꿰뚫어볼 수 있는 중요 키워드다. 옛날 같으면 한국에 대한 과거사 부채 의식으로 한발 물러설 일도 요즘은 ‘한국에 밀리면 안 된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느낌이랄까.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서도 ‘한국이 해법을 가져오라’는 태도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다. 한일 관계는 3년 이상 얼어붙어 있다. 하지만 9일 실시되는 한국 대통령 선거가 양국 관계 개선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최근 일본 정치권과 정부 내에선 한국의 새 대통령과 어떻게든 양국 관계를 개선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행이다. 다만 징용 배상 문제는 여전히 핵심 걸림돌이다. 사법 절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고, 배상 명령을 받은 일본 기업 자산은 점차 강제 매각(현금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본 측은 한일 정상이 악수하며 “잘해 보자”고 합의했는데 바로 다음 날 배상 판결을 받은 일본 기업 자산이 강제 매각돼 버리는 상황 전개를 가장 우려한다. 그럴 경우 섣불리 한국과 악수했다는 국민적 비판이 커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 한국 측도 난감하다. 새 대통령이 탄생하더라도 행정부 수반이 사법부 판단을 뒤바꿀 수는 없다. 최근 발간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책공약집의 대일 정책 부분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투 트랙 기조’ ‘올바른 역사 인식’ 같은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두 정당 모두 미래지향적 관계에 방점을 찍었다. 새 대통령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용기’를 낼 것을 제언한다. 일본을 향해 큰소리를 치라는 것이 아니다. 한국 내부를 향해 용기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징용 피해 당사자와 주변 강경파를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가며 징용 문제 타협책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 측 역시 ‘용기’가 필요하다. 팔짱 낀 채 한국이 내민 타협책에 점수만 매겨서는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한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과거사에 눈을 감는 집권 자민당 일부 강경파가 대한(對韓)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해서도 안 된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감추면 안 된다. 강제노동이 있었고,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광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일본 유명 역사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65·사진) 씨는 ‘사도 광산에서의 조선인 강제노동’을 주제로 진행된 27일 온라인 강연에서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의 땀과 눈물로 사도 광산은 성과를 냈다. 그걸 잊으면 안 된다. 강제노동을 인정하는 게 오히려 사도 광산의 가치를 더 높이는 길“이라고 밝혔다. 앞서 1일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일본 후보로 신청하며 신청 범위를 에도시대(1603~1867년)로만 한정한 것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조선인을 강제 노역시킨 것까지 포함한 ‘전체 역사’를 기재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이날 강연의 시작부터 ”강제 노동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처벌 위협 하에서 노동을 강요당하거나 자유 의사에 따르지 않는 모든 업무가 곧 강제 노동“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일본이 ‘조선인 스스로 모집에 응했다’ ‘식민지 국민에 대한 합법적인 동원’이라고 주장하며 조선인 강제노동을 부정하는 것을 일축한 셈이다. 또 ‘사도광산사’, ‘사도광업소 명부’ 등 과거 자료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조선인 노동자가 얻어맞고 발길질을 당했다는 구술 기록이 있다. 폭력이 있었고,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는 점은 바로 강제노동을 당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인 고용주가 조선인 노동자의 임금을 강제로 저축하게 한 것 또한 도망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비판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이 억압받은 것은 민족 차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 교사 출신인 다케우치 씨는 조선인, 중국인 노동자 현황에 대한 사료를 발굴하고 연구해 왔다. 전체 4권으로 이뤄진 ‘조사·조선인 강제노동’이란 책도 집필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