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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라고 해도 할 수 없다. C레이션을 아십니까? ‘라테(우리 어릴 때)’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C레이션이나 PX식품을 맛보는 날은 입이 호강하는 날이었다. 밀가루 범벅이 아닌 진짜 소시지, 처음 맛보는 땅콩버터, 노란 가루 탄 물이 아닌 진짜 오렌지 주스…. C레이션이란 게 고작 미군의 전투식량이었지만, 이런 걸 먹어볼 수 있는 사람도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땐 그랬다. 좋은 건 다 미제(美製)였던 시절. 다른 나라, 특히 미국의 원조와 협력 없이는 국가를 경영해 나갈 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이었다. 불현듯 이렇게 꿀꿀한 기억이 소환된 건 이스라엘에서 남는 코로나19 ‘아재(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1000만 회분을 들여오자는 야당의 제안을 접한 뒤였다. 우리가 어쩌다 다시 외국의 잉여물자를 구하는 처지가 됐나. 야당만 그런 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민의힘 제안에 앞서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의 도입 가능성을 점검해보라고 지시했다. 얼마나 다급하면 2등(AZ)도 아닌 3등 백신 도입을 검토했을까. ‘백신 확보는 충분하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꼴찌 수준의 국민 접종률, 툭하면 중단되는 접종의 차질, 무엇보다 명확히 밝히지 않는 도입과 접종 일정 탓에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근 수십 년간 이렇게 외국의 도움을 절실하게 바란 적이 있었을까. 그래도 국민들이 꾸준히 참아내는 건 공포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격리 공포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과 회사에 폐를 끼칠 거란 공포도 그에 못지않게 크다. 사생활까지 탈탈 털릴 거란 공포는 보너스다. 하지만 참는 데도 한도가 있다. 백신 기근은 언젠가는 해소되겠지만, 이런 개고생을 시켜놓고 그때 가서 또 야당과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다는 둥 남 탓을 하지는 말길 바란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이치를 보니, 백신 문제를 백신만으로 풀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백신 종주국 미국의 우선 공급순위는 캐나다 멕시코 같은 인접국 다음에 대중(對中)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회원국이다. 명색이 동맹인 한국은 우선 공급 대상이 아니다. 벌써 미국은 미중 패권 경쟁의 전선을 기술패권 전쟁으로 확대했다. 백악관이 직접 글로벌 반도체 패권 장악을 위한 전략회의를 주재해 우방을 ‘반도체 동맹’으로 묶으려 한다. 이런 동맹 네트워크 안에 확실히 편입된 나라부터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거다. 안보와 경제, 백신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묶음이 된 셈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 정부 일각에서 내세웠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은 없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난감한 일이나, 일극(一極) 슈퍼파워 미국이 그렇게 세계의 판을 짠 이상 따르지 않을 방도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미중(美中) 사이 줄타기 외교나 ‘전략적 모호성’은 물 건너갔다. 애석하게도 이렇게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모르는 분이 우리의 국가 지도자다. 아니, 알면서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 “(국제사회가) 국경 봉쇄와 백신 수출 통제, 사재기 등으로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며 미국을 우회 비판하는 발언까지 한다. 백신이 없으면 받아올 생각을 해야지, 때린다고 백신이 나오나. 운동권 대학생이면 몰라도 나라의 리더가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또 판문점선언 3주년을 맞아서는 “판문점선언은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평화의 이정표”라고 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판문점선언, 그것도 핵·미사일 무력 증강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가장 크게 망가뜨린 사람이 김정은인 터에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니…. 대통령의 정신세계가 놀랍다. 누구든 희망에 집착하면 현실을 못 본다. 문재인 정권 4년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대한민국 70년 번영 엔진을 걷어차는 일의 연속. 그 엔진이 무언지는 자명하다. 바로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다. 고작 5년짜리 정권이 이를 걷어차는 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역사에 대한 반역에 가깝다. 그런 반역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귀결될지도 분명하다. 북한에 대한 굴종, 중국에 대한 신(新)조공국가화, 중남미 3류국가로의 추락이다. 문 정권 4년,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는 이미 충분히 목도했다. 내년 3월 ‘두 번 경험해선 안 될 나라’가 우리 앞에 펼쳐지는 건 막아야 한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대개는 들어본 말일 듯.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다.’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민의(民意)를 요약하면 국민을 바보 취급하지 말라는 거다. 지난해 총선에서 한 번 속여 놓고 1년 만에 같은 수법으로 두 번 속이려 드니 영화 대사와 교육부 공무원의 리바이벌로 유명해진 ‘민중은 개돼지’란 말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누굴 정말 개돼지로 아나. 역시 주연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 때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기다리지 말고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자들에게 미리 통보해주고 신청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선거 전날에. 이번에는 가덕도까지 찾아가 “가슴 뛴다”며 여당이 다시 불붙인 가덕도 신공항 공약에 기름을 듬뿍 부어줬다. 그런데 선거가 여당의 참패로 돌아가자 여권에서 가덕도 얘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러니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도 ‘가덕도가 사골도 아니고 도대체 몇 번이나 우려먹느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 문 정권은 긴급재난지원금 아동수당 노인일자리사업 구직촉진수당 고용안정지원금 등 이름도 가지가지인 천문학적 현금 살포로 톡톡히 재미를 봤다. 이번에도 4차 재난지원금을 필두로 다양한 현금 지원책은 물론 디지털 화폐라는 ‘신상 아이템’까지 들고나왔다. 하지만 ‘돈발’이 저번처럼 먹히질 않았다. 부동산 실정(失政) 등으로 ‘벼락거지’ 만들어놓고 돈 몇 푼 쥐여준다고 풀릴 민심이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안 먹히니 그렇게 인색하던 사과와 자기부정(自己否定)마저 난무했다. 대통령부터 ‘부동산 적폐’ ‘부동산 정쟁’ 등 남 탓을 한 지 20시간 만에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여당과 여당 후보도 △공시가 인상률 조정 검토 △주택 대출 완화 △공공 재건축 민간 참여 등 기존 부동산정책을 뒤집는 공약을 들고나왔다. 그것도 약발이 안 먹혔다. 왜? 유권자들이 두 번 속을 바보는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선거가 끝나자 그런 약속들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대통령부터 언제 사과했냐는 듯이 ‘부동산 부패 청산’을 다시 꺼내들었다. 시키지도 않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직계가족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를 약속하더니, 역시 흐지부지되고 있다. 언제까지 선거 때만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지켜봐야 하나. 다시는 이런 세력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딱 두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첫째는 아름다운 말이다. 아름다운 말은 감동을 주지만, 지키기 어렵다. 고로 아름다운 말을 자주 내뱉는 정치인은 십중팔구 나라 망칠 포퓰리스트다. 본인부터 못 지키는 말을 해대니 내로남불을 달고 산다. 이제는 조롱거리가 돼버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대통령 취임사의 명구(名句). 중국 공산당도 쓰는 말임이 확인되면서 더 없어 보이게 됐다. 2012년 9월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도 등장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표현한 대로 ‘높은 산봉우리’ 중국이 ‘작은 나라’ 한국의 정당 후보 연설을 베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 공산당산(産)으로 보는 게 합리적일 터. 그런데 우리가 아는 중국이 과연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인가. 공산당 간부들이 다 해먹는 일당 독재체제가 그럴 수는 없다. 조국 씨의 아름다운 말.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드러난 진실은 이랬다. ‘나와 내 가족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용이 될 테니, 당신들은 가붕개로 살아라.’ 두 번째로 조심해야 할 건 나랏돈으로 선물 준다는 자들이다. 나랏돈이라는 게 결국 세금이고, 따지고 보면 내 돈이다. 내 돈을 제 돈처럼 쓰고 생색내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장래, 청년의 미래에는 관심 없는 선거 한탕주의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남의 돈을 자기편에 쏟아붓게 마련이다. 5년간 3300여 개 시민단체에 7100억여 원을 지원해 좌파 생태계를 구축해준 박원순 전 서울시장. 그 불명예를 남기고도 ‘대부(代父)’ 대접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10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누가 과연 책임 못 질 아름다운 말과 남의 돈으로 선물 준다는 약속을 남발하는지 똑똑히 지켜보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말을 새기면서.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2016년 4월 20대 총선 이틀 뒤 게재된 내 칼럼 제목은 이랬다. “위기의 박근혜, 개헌 ‘블랙홀’ 펼칠까” 총선 참패로 위기에 빠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었다. 그런 위기가 오히려 실패한 대통령을 줄줄이 양산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할 기회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취임 이후 ‘개헌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반대해온 박 대통령의 태도엔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 그해 10월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돌연 ‘임기 내 개헌 방침’을 밝혔다. 들불처럼 번지던 국정농단 사건을 덮기 위한 비겁한 제안이었다. 해묵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틀 뒤 치러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이후가 궁금해서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與圈)은 어떻게 나올까. 선거 결과가 유리하게 나온다면 실정(失政)을 반성하기는커녕 ‘대못박기’에 나설 것이다. 불리하게 나온다면? 반성하고 정책 전환에 나설까. 다 아는 대로 문재인 정권 4년은 이보다 실패할 순 없을 정도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온 힘을 쏟았던 남북관계 대전환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물 건너갔다. 안보는 ‘문재인 보유국’을 자랑하는 동안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가 더 단단해졌으며,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라며 사실상 북 비핵화 포기 선언을 할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폭망한 부동산 정책을 비롯해 ‘부채 천조국’ 등 경제 정책도 어느 것 하나 건질 게 없다. ‘화합’이라고 쓰고 ‘분열’로 읽어낸 국민화합 정책, 검찰 장악으로 드러난 검찰개혁, 후진국 수준의 코로나 백신 확보 실패…. 입만 아프다. 이쯤 되면 보선 결과와 관계없이 국정 대전환에 나서야 정상이건만, 참패를 한다 해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레임덕 가속화의 초조감 때문에 특유의 전(前) 정권 탓, 야당 탓, 보수언론 탓을 해가며 실패한 정책의 대못을 박으려 들 것이다. 개각으로 국면전환을 기도(企圖)하겠지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같은 무리수를 끝까지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자칫 개헌론을 들고 나올 수도 있다. 선거 패배로 여권으로선 초유의 위기에 몰린다면 개헌만 한 국면전환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이 지든 이기든 레임덕을 피할 수 없는 대통령에겐 유혹이 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앞서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모두 집권 4년 차에 개헌 의사를 밝힌 것도 단임제 대통령의 운명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3월 개헌을 발의한 바 있으나 진정성 없는 ‘기록용’에 가까웠다. 지금은 처지가 다르다. 174석의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여당 2중대’ 의원들, 개헌에 찬성하는 야당 의원까지 포함하면 국회 의석 분포도 개헌안 통과에 나쁘지 않은 지형이다. 개헌으로 한국정치 만악(萬惡)의 근원처럼 여겨지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할 수 있다면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고 한 명의 현직 대통령이 레임덕은 물론 ‘퇴임 후 안전’까지 걱정해야 하는 오늘의 상황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개헌의 최종 관문인 국민의 뜻이다. 올해 동아일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헌 찬성(57.9%)이 반대(28.7%)의 두 배다. 하지만 개헌 시기에 대해선 차기 정부(58.8%)가 현 정부(29.2%)의 두 배다. 개헌엔 찬성하지만 임기 말 개헌은 부적절하다는 민의(民意)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적 소명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끊어내라는 민의를 담기에 윤 전 총장만 한 그릇도 드물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제왕적 권력을 건드렸다가 좌천된 뒤 문재인 정부의 총아(寵兒)로 부활했다가 다시 ‘산 권력’에 손을 대 갖은 핍박을 받고 저항하다 대선주자 지지율 1위로 떠오른 인물. 윤석열처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롤러코스터처럼 경험한 사람이 있을까. 따라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청산은 윤석열이 주장하는 ‘상식 정의 법치의 복원’ 외에도 그의 강력한 정치적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여권이 보선 이후 개헌론을 제기하든 않든, 그가 정치에 뛰어든다면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에 대한 확실한 청사진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사슬을 끊어내려면 꼭 개헌을 해야만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부터 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제왕적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법에 능한 윤석열이라면.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20시간. 대통령의 부동산 ‘남 탓’이 사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오후 2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건에 대해 ‘부동산 적폐(보수정권 탓)’ ‘부동산 정쟁(야당 탓)’ 타령을 했다. 그런데 16일 오전 10시 국무회의에서는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이 달라졌다. 대통령의 워딩, 특히 ‘불통 직진’의 문 대통령 말이 하루도 안 돼 바뀐 건 참으로 드문 일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내 탓이오’와는 거리가 먼 쪽이다. LH 사건으로 국민적 울화 지수가 치솟는 가운데도 자신이 은퇴 후 살 집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분을 못 참고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그 정도 하시지요”라는 직정(直情)의 언어를 페이스북에 쏟아냈다. 청와대라는 공식 창구가 있는 최고권력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직접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게다가 국익이나 국민적 감정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집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말 그대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문 대통령은 진정성 있는 사과, 아니 그냥 사과와도 거리가 먼 편이다. 뜬금없이 보수정권 때 일을 사과하며 사실상 ‘네 탓’을 하거나 윤석열 징계 파동 때처럼 ‘인사권자로서 사과’ 같은 유체이탈 사과를 하곤 했다. 자신이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재·보궐선거 원인 제공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당헌에 넣었으면 민주당의 서울·부산 보선 후보 공천에 사과, 아니면 유감 표명이라도 했어야 마땅하다. 그렇게 사과에 인색한 대통령이 이번에는 ‘큰 심려를 끼쳤다’며 비교적 강도 높게 사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처럼 하룻밤 새 ‘신내림’을 받았을 리도 없고…. 20시간 만에 돌변한 대통령의 이례적인 사과는 선거가 20여 일 앞으로 임박했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페이스북 글과 ‘부동산 남 탓’의 연타(連打)가 불 지른 민심의 분노가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누군가 귀띔했을 것이다. 그렇다. 문 정권 사람들은 국정(國政)은 하릴없이 무능해도 선거엔 목숨을 건다. 일국의 대통령이 하룻밤 새 말을 확 바꾸는 게 남사스러울 법도 하건만,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개의치 않는다. 그러니 몇 번이나 죽었던 가덕도 공항을 살려내도,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가슴 뛴다”며 ‘애프터서비스’를 해도, 국고로 현금을 뿌리는 신종 관권·금권선거도 모자라 이번에는 ‘디지털 화폐’라는 신규 아이템까지 들고나와도 거리낌도 수치심도 없다. 그런데 이런 ‘선거 귀신’들에게 맞서야 할 제1야당은 어떤가. 문 정부의 실정(失政)과 LH 사태의 반사이익으로 자당 후보의 지지율 좀 올랐다고 특유의 웰빙 기득권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당의 울타리가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나. 윤석열이나 안철수 같은 당외(黨外) 주자들에게 ‘입당하려면 꿇어!’를 사실상 강요하려 한다. 참 못났다. 기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많은 중도·보수 유권자들에게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가 오세훈이냐, 안철수냐는 큰 의미가 없다. 누가 되든 야권이 하나로 뭉쳐 내년 대선의 전초전 격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선전한 뒤 메인 게임인 대선에서 ‘한 번도 경험 못 한 폭정’을 끝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공정과 정의, 법치와 상식의 복원을 통해 비정상 대한민국을 정상화하고, 과거에 처박힌 국가 담론을 미래로 옮겨주길 염원하는 것이다. 1년도 남지 않은 시간, 국민의힘이 지난 4번의 큰 선거에서 연패했을 때처럼 정파의 소리(小利)에 매달려 분열로 치닫는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무엇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부터 달라져야 한다. 비대위원장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비상시가 지나면 물러난다는 각오로 마음을 비우길 바란다. 힘을 합쳐야 할 후보에게 사감(私感)을 드러내고 당의 터줏대감처럼 행세하고 있으니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하면 어차피 해체될 수밖에 없다. 그땐 울타리고 뭐고 없다. 그 알량한 울타리를 부수고 광야로 나가 야성(野性)을 보여라. 윤석열 안철수가 국민의힘으로 오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이 윤석열 안철수에게 가라. 정말로 ‘국민의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내일부터 딱 1년 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대선을 1년 앞두고 던진 윤석열의 승부수는 극적(劇的)이었다. 그런데 그 드라마는 누가 만들었을까. 윤석열 본인이 만들었다면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리인으로 세운 추미애 박범계가 밟으면 밟을수록 정치적으로 커졌다. 그의 수족을 자른 데 이어 존재 기반인 검찰의 손발마저 잘라내려 하자 뛰쳐나가 홀로 선 것이다. 사실상 그의 정치적 성장의 기록이 돼버린 이 드라마의 제작사는 문재인 정권이다. 윤석열을 키운 건 팔 할이 문 정권이다. 정치가 생물이라 단언할 순 없으나 윤석열은 이번 대선에 뛰어들 것이다. 아니,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적확(的確)하다. 그는 3일 “내가 총장직을 지키고 있어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도입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 같다”며 “내가 그만둬야 멈추는 것 아니냐”고 피력했다고 한다. 과연 그는 중수청 무산을 위해서 사퇴한 것인가. 입장을 바꿔 보자. 그러면 여권은 윤석열이 물러났다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포기할까. 아닐 것이다. 눈엣가시 같은 그가 물러났으니 당장 한숨을 돌렸을지 몰라도 검찰에 제2, 제3의 윤석열 검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중수청을 추진했던 진짜 이유가 ‘산 권력’ 수사를 봉쇄하고, 더 좁게는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퇴임 후 안전’을 도모하는 것인 만큼 4월 보선 이후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카드다. 당연히 윤석열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에게 중수청은 사퇴의 이유라기보다는 ‘계기’로 보인다. 그로서는 자신과 처가 등 주변을 향해 시시각각 조여 오는 정권의 올가미에 숨이 막혔을 것이다. 무엇보다 판검사의 경우 공직선거일 1년 전까지 그만두지 않으면 출마할 수 없도록 한 ‘윤석열 출마 제한법’이 발의된 게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을까. 이 법안은 사람 하나를 콕 집어 법을 찍어내려는 잔인함, 판검사 외 다른 사법 직역과의 형평성 문제, 공무담임권 제한 등 위헌 소지를 담은 말도 안 되는 법안이다. 하지만 그런 황당한 법안들을 기어코 관철시키는 입법독재를 자행해 온 게 현 여권이다. 윤석열로서는 대선 출마라는 마지막 무기마저 무장해제당한 채 야인(野人)으로 내려가는 데 공포감을 느꼈을 수밖에 없다. 친문세력이 찍으면 무슨 수를 쓰든 보복하고야 마는 집요함을 잘 아는 터. 하여, 오늘 즉 3월 8일까지는 사퇴해야 하는데 마침 중수청 논란이 불을 지른 것이다. 또 하나, 윤석열은 애초 정치할 뜻은 없었을지 모르나 생각보다 정치에 잘 맞는 사람이다. 책 10쪽을 읽고도 한 권을 읽은 듯 풀어내는 속칭 구라, 후배들을 모아 술자리를 만들고 그 구라를 푸는 보스 기질, ‘검수완박’에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으로 응수하는 조어(造語) 능력…. 정치는 말인데, 그 구사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도 ‘여의도 체질’이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과 폭정에 지친 이들이 ‘윤석열’을 환호하는 소리가 잠자던 그의 정치 본능을 깨웠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택은 현직 검찰총장이 대선판으로 직행하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만은 분명하다. 그 선택으로 이제 사활을 건 일전이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그의 상대는 어쩌면 여야의 다른 대선주자가 아닐지 모른다. 정권의 치부를 속속들이 잘 아는 ‘검사 대통령’의 탄생을 가장 끔찍한 악몽의 시나리오로 여기는 집권세력일 것이다. 그런데 그 세력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같은 심판기관까지 사실상 장악해 실탄도 충분하고 ‘뒷배’도 든든하다. 게다가 수치심도 없어 선거가 임박하면 나라의 얼굴인 대통령부터 나서 몇 번이나 죽었던 공항을 살려내고, 천문학적인 현금을 무슨 ‘○○지원금’이니 ‘××수당’ 등의 이름으로 뿌려대는 현대판 ‘고무신 선거’를 서슴지 않는다. 더 무서운 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 그러니 대통령이나 그 ‘친구’의 당선을 위해 불법 댓글을 조작하거나 표적수사를 벌이고, 입막음을 하거나 경쟁자를 주저앉히기 위해 공직을 제안하기도 했다. 여당 후보 공약 이행을 위한 예타(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기본이며 선거비리 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키는 ‘애프터서비스’까지 제공한다. 그러는 사이 국정은 멍들고 민생은 치이며 국고는 비어가지만 선거에 이기고 나면 그만이다. 이렇게 ‘국정(國政)은 등신’이나 ‘선거는 귀신’을 상대로 한 윤석열의 전쟁. 이제 시작됐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단 한 자리를 꼽는다면? 단연코 대법원장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란 자리는 한국적 상황이 부여한 제왕적 권력 탓에 민주주의 수호자가 되기보다 자칫 민주주의 파괴자로 변질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나타난 극명한 사례가 박근혜 문재인 전현(前現) 대통령일 것이다.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은 정치인이란 속성 때문에 정파성을 띠기 쉽고, 그것도 근래에는 큰 정치인이 의장이 되는 경우가 없어 민주주의 수호와는 거리가 멀다. 헌법재판소장도 있으나 사법부의 대종(大宗)은 역시 대법원이며 법관들도 헌재 재판관보다 대법관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우리 사회 최후의 권력이자 심판인 대법원이야말로 민주주의와 법치의 보루이며 그 수장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존재다. 그 자리의 무게 때문에 현직 때는 물론이고 물러난 뒤에도 처신을 진중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상정하는 대법원장의 모습이다. 그런 자리의 권위를 단박에 저잣거리로 팽개친 사람이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분들께는 민망한 일이지만, 오죽하면 ‘거짓말의 명수’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정권 이후 ‘기울어진 대법원’에 대한 우려가 큰 터에 대법원장 권위의 추락은 대법원 신뢰의 위기로 직결된다. 이는 곧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다. 그쯤 됐으면 물러나는 게 정상이다. 다른 자리는 몰라도 대법원장은 그래야 한다. 그런데 물러나기는커녕 인사권을 악용해 ‘정권 방탄재판부’를 구성하는 그 낯 두꺼움. 두꺼워도 너무 두꺼워 보는 사람이 되레 낯 뜨거울 지경이다. 시쳇말로 패러디하면 지금까지 이런 대법원장은 없었다. 이것은 정치인인가, 장사꾼인가. 김명수 같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문재인 정부에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등장은 참신하다. 특히 문 정권 출범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는 대통령의 불통(不通)과 유체이탈 화법, 각료의 무능과 남 탓, 여권 인사의 위선과 내로남불, 관료의 영혼 가출은 전에 없던 실존적 고민까지 하게 만든다. 과연 인간이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그런 정권에도 신현수 같은 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을 준다. 그가 청와대로 복귀하든, 안 하든 고위 공직자의 소신 행보를 본 지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일 터. 정권보다 국민을 섬겨야 하는 공복(公僕)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행동도 어느덧 ‘집 지키는 개’로 전락한 문 정권 공직사회에서는 희한한 일이 돼버렸다. 무엇이 김명수와 신현수를 가르는가. 인품 성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 하나만 고르라면 실력일 것이다. 김명수는 자기편이라면 능력이나 도덕성, 야당의 동의 따위는 싹 무시하는 문재인 인사(人事)가 아니라면 대법원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을 사람이다. 신현수의 검사와 변호사 시절 실력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인정한다. 그러니 과분한 자리에 앉혀준 ‘주군(主君)’에게 감읍할 수밖에 없고, 그 자리에 있는 하루하루가 기꺼워 제 발로 박차고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분이 후보 시절에는 시외버스와 지하철로 대법원에 오는 ‘서민 코스프레’를 한 뒤 대법원장이 된 후에는 거액을 들여 공관 외관을 고급 석재로 바꾸고 손자 놀이터 등을 조성하는 이중성을 보인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른 대법원장이라고 우중충한 외관을 바꾸고 공관을 산뜻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국민의 세금을 써야만 이룰 수 있는 그런 욕망을 자제하느냐, 마느냐가 그 사람의 격(格)이다. 문 정권은 능력에 부치는 자리에 앉은, ‘길 가다 지갑을 주운 듯’ 횡재한 또 다른 김명수들의 천국이다. 검찰 내에서 ‘검사장 되기도 어렵다’던 이성윤을 요직에 발탁한 뒤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시켜주니 물불 안 가리고 ‘방탄정권단’ 노릇을 하다 이제는 가장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가 됐다. 북한 핵문제와 4강 외교를 잘 모르는 분도 청와대 말만 잘 들으니 ‘일국의 외교장관’으로 3년 반 넘게 장수하는 기록을 세웠다. 현 정권의 실력자나 고위 공직자 가운데 유난히 역대 정권에 비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자리에 탐닉하고 연연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자명하다. 이 정권이 아니라면 중용되지 못했을 3류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1류일 필요는 없으나 국정 담당자들이 3류면 국민이 피곤하고 민생이 고단해진다. 그 낯 두꺼움을 봐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보너스’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민의힘의 대북 원전(原電) 의혹 제기를 비난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그러면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야당의 의혹 제기를 과거 보수 정권의 북풍(北風) 조작에 빗댄 것이다. 그로부터 4일 뒤, 여권은 헌정사상 처음 법관의 탄핵소추를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1심에서 무죄가 난 사건을 이유로, 퇴임이 확정돼 헌법재판소에서 ‘각하(却下)’ 결정이 확실시되는 법관에게 기어이 ‘첫 탄핵소추 판사’라는 올무를 씌웠다. 탄핵의 실효성을 떠나 퇴직하는 판사일망정 편히 집에 보내주지 않겠다는 악착을 드러낸 것. 사법부 길들이기 의도겠지만, 인간에게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게 다수 의석의 힘으로 밀어붙여 야당 총재를 제명하고 법안을 날치기했던 구시대 정치와 다른 게 뭔가. 그 구시대에도 대법원장도, 대법관도 아닌 일반 법관에 대한 탄핵 발의는 없었다. 그런 정권의 수장이 구시대의 유물 정치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정치 보복에서도 문 정권은 구시대보다 한발 더 나갔다. 집권하자마자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저인망식 정적(政敵)·반대세력 숙청에 나섰다. 아직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다. 구시대의 지역감정보다 무서운 ‘진영감정’을 조장해 온 나라가 이념 빈부 세대 노사 등으로 편을 갈라 박 터지게 싸우도록 만든 건 어떤가. 구시대에 북풍이 있었다면 ‘문(文)시대’엔 일풍(日風)이 있다. ‘친일파’ ‘토착왜구’ 프레임을 씌워 비판세력을 옥죄다가 좀 잠잠해지는 줄 알았더니, 선거 때가 되자 야당의 한일 해저터널 공약에 다시 꺼내 휘두른다. 도대체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킨’ 사람들이 누군가. 이 정권은 ‘진보’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그래도 구시대엔 경제라도 좋았다. 법관 탄핵소추를 통과시킨 날, 25번째 부동산정책을 들이밀 정도로 문 정부는 각종 경제정책을 헛발질하고 곳간을 거덜 내고 있다. 정권 핵심부의 위선과 내로남불, 유체이탈 화법으로 상식과 법치, 가치관과 언어까지 파괴하는 건 구시대에는 없던 ‘보너스’다. 문제는 무기력하고 자기 잇속만 챙기는 야당마저 구시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도 잘 모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왜 정치에 뛰어들었는지, 왜 그렇게 양보하고 ‘철수’했는지, 왜 다시 복귀해 기를 쓰고 정치를 하려는지…. 최근 많이 나아진 것 같긴 하지만, 몸에 잘 안 맞는 정치를 ‘패션’으로 시작했다가 생활이 돼버린 건 아닌가. 그런 안철수가 지금 서울시장 야권후보 지지율 1위다. 거칠게 말하면 안철수가 좋아서라기보다 국민의힘이 싫어서다. 아직도 국민의힘이 ‘그냥’ 싫다는 중도성향 유권자가 많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싫은 거보다 그냥 싫은 게 가장 무서운 거다. 정권을 뺏기고도 일평생 해먹은 듯한 기득권 이미지를 벗지 못한 보수 야당의 업보(業報)다. 그런 점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중원(中原)으로 지지세를 넓히겠다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전략은 옳다고 본다. 복잡한 사안을 단칼에 정리하는 정무 감각도 좋다. 그렇다고 다른 정치인들을 ‘애송이’ 취급하는 듯한 그의 꼰대식 화법은 국민의힘에 또 다른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지라도 팔순의 김종인이 국민의힘을 이끈다는 것 자체가 보수 야당의 지체 현상을 상징한다. 그럴수록 김종인은 정치 신인과 젊은 정치인을 키우는 데 매진해야 한다. 국민의힘에 씌워진 비호감 이미지를 바꾸는 데는 사람을 바꾸는 것만 한 게 없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곧 있을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는 물론 향후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양보와 희생을 보여줘야 한다. 당에 젊은 피가 돌고, 양보와 희생을 실천해야만 보수야당을 4번 연속 전국선거에서 패배시킨 주범인 기득권 이미지를 타파해볼 수 있다. 지난해 총선 참패 이후 다 죽었다가 조금 살 만해지니까 특유의 웰빙 본색을 드러내는 건 다시 죽는 길이다. 그래도 보수성향 유권자는 선거 때가 되면 국민의힘을 찍을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 보수도 국민의힘 집토끼가 아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입양아 바꾸기’ 발언이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대통령이 뭐 이렇다 할 악의가 있거나 비정해서 한 말이라고 보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 특히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 입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냥 진솔하게 사과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을 내세워 어설픈 변명으로 주워 담으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바로 다음 날 보건복지부까지 나서 ‘사전 위탁제 도입’ 운운하니까 많은 국민의 분노지수를 치솟게 한 것이다. 정부 부처가 대통령의 실언(失言)을 치다꺼리하는 곳인가.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발언은 따로 있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저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한 것. 바로 이 대목에서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장장 1년 4개월간 문 정권이 펼친 ‘윤석열 찍어내기 대하드라마’를 생생하게 시청한 국민들은 뜨악해질 수밖에 없다. ‘집 지키라고 했더니 감히 살아 있는 권력을 문 검찰견’에 대한 이 정권의 찍어내기 드라마는 법원이 정직 2개월 징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고서야 비로소 종영했다. 그 난장(亂場)을 벌인 정권의 최고책임자가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란다. 당장 윤석열 찍어내기 선봉에 섰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당 의원들, 홍위병 같은 공격을 자행했던 ‘문파’들부터 그 말에 동의할까. 더구나 지난해 연초부터 추 장관 임명을 강행해 윤석열을 식물총장으로 만든 뒤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절차적 정당성이라고는 없는 징계안을 즉각 재가해 사실상 찍어내기를 배후 연출한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누구보다 강력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른 문 대통령이 애초부터 ‘노(NO)’ 했다면 윤석열 축출 기도(企圖)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 그런 국가적 소모전을 조장해 놓고 이제 와서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러니 임기 종료를 1년 3개월여 앞둔 대통령이 ‘퇴임 후 안전’을 고려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즉, 법이 정한 검찰총장 임기제를 부정한 윤석열 퇴진 압박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기록’을 남겨 훗날 직권남용 등 법적 논란 소지에 대비하려 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감사원의 탈원전 정책 수립과정 추가 감사를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데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이 정권 사람들이 최재형 감사원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감사에 대해 전방위 압박을 가한 건 주지의 사실. 그것도 ‘다 밑에서 한 일’이라는 취지일 것이다. 아직 봄꿈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계단 앞에 떨어진 오동잎이 벌써 가을의 소리를 낸다고 했다. 레임덕은 없을 것 같았던 문 대통령의 권력도 이제 손안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이 오고 있다. 여권 대선주자들이 국가 재정을 쌈짓돈인 양 돈 풀기 경쟁을 벌이고, 그렇게 말 잘 듣던 홍남기 경제부총리마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들이받으며 자신의 ‘레코드’를 남기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도 당분간은 거대 여당의 친문 의원들이 ‘대통령 옹위’에 적극 나설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권의 미래권력이 구체화하기 전까지다. 그때가 되면 한번 권력의 맛을 본 ‘문재인 키즈’들마저 줄 대기에 나서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금배지의 속성상 자신의 연임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다. ‘평생 친구’ 노무현이 간파한 대로 문재인은 정치에 잘 맞는 사람은 아니다. 기자회견 기피와 입양아 실언에서도 드러나듯, 말의 경중(輕重)을 따져 구사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공감능력도 떨어진다고 본다.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나 남 얘기를 듣기는 하되 입력은 잘 안 되는 스타일도 공감능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불통(不通)과 자기편에 갇힌 ‘팬덤 통치’가 이 나라를 한 번도 경험 못 한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단임 대통령에게 숙명적인 계산서가 날아올 시간이다. 그런데도 실정(失政)의 대못을 박기 위해 무리수를 두거나, 자칫 차기 대권 구도 개입의 욕심에 흔들린다면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문 대통령에게도 겨울이 오고 있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글의 서두로 시작하기엔 불편한 이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재신임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청원인데, 참여 인원이 41만 명을 넘는다. 청원이 처음 올라간 날은 지난해 12월 17일. 청와대가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한 다음 날이다. 당시 발표된 문 대통령의 워딩은 이렇다. “추 장관 본인의 사의 표명과 거취 결단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 숙고해 수용 여부를 판단하겠다. 마지막까지 맡은 소임을 다해주기 바란다.” 말로는 ‘본인의 사의 표명’이라고 했지만 당시 정황을 종합하면 검찰개혁, 아니 검찰장악을 위해 칼춤을 추게 했던 추미애의 존재가 마침내 국정운영에 부담이 된다고 느낀 여권 핵심부가 경질한 것에 가깝다. 청와대는 밝히지 않아도 될 ‘사의 표명’ 사실을 공개하고, 문 대통령은 ‘마지막’이란 단어를 붙여 쐐기를 박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대통령의 의중에 반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수십만 명의 친문세력이 동의 버튼을 누른 것이다. 청와대 토론방에는 추 장관을 내친 대통령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는 지지자들의 글도 올라왔다. 과거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던 문빠(이하 ‘문파’로 순화)식 무조건적 지지가 아닌 것이다. 비슷한 일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논란에서도 벌어졌다. 사면론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기했지만, 대통령과의 교감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게 정치적 상식이다. 이 대표 측은 ‘독자 행동’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낙연은 대통령과의 교감 없이 박근혜·MB 사면론 같은 메가톤급 폭탄을 던질 정도로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사면론은 문파 내부에서 강한 역풍을 불렀고, 결국 ‘당사자의 사과’ 같은 불가능한 조건이 붙거나 선별 사면론이 나올 정도로 옹색해졌다. 사면권자인 대통령으로선 곤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자신의 임기 전후 감방에 간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적어도 ‘박근혜 사면’만이라도 퇴임 전에 털고 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에도 두 전직 모두 감옥에 있는 한 문 대통령도 편히 발을 뻗고 자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사면에 대해선 아직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편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언명(言明)한 대로 ‘진영 바깥’의 비판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진영 내부의 비판에는 굉장히 아파하고 귀를 기울인다’. 결국 친문 진영의 사면 반대가 문 대통령이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된 셈이다. 바로 이런 현상들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의 또 다른 징표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던 문파들마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는 마’라고 변하는 것. 이는 팬덤 정치를 조장해온 문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문파의 스타 문재인이 도리어 팬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시간이 오고 있다. 소위 대깨문(대××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사람들은 ‘문 대통령과 끝까지 간다’고 외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연예계 스타에겐 임기가 없으나 대통령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 14개월밖에 남지 않은 지금, 문 대통령도 ‘퇴임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적폐청산이니,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의 검찰장악)이니 칼바람을 일으켜 수많은 ‘적’을 양산(量産)하는 게 부담스러운 때가 됐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8일 “새해는 통합의 해”라며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통합”이라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취임식부터 말로는 ‘통합’을 외치고도 역대 최악의 분열로 치달은 대통령이지만, 이번에 말한 ‘마음의 통합’은 다르게 들렸다. 문제는 대통령이 박근혜 사면 같은 임기 말 통합 행보를 보일 경우 문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누구나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을 수 있고, 지지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문파의 관계는 건강한 정치적 지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문 대통령을 절대 선(善)으로 보고, 문재인과 그 주변에 신성불가침 영역의 울타리를 세운 뒤 누군가 그 영역을 침범하면 떼로 몰려가 응징하는 극성 팬덤. 그 위험한 팬덤을 자제시키기는커녕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용해온 대통령이 ‘너무 멀리 나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은 이미 늦은 때일 것이다. 문 대통령도 문파도 멈출 때가 됐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시작은 이랬다. ‘모두가 서울 강남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내가 살아봐서 안다). 그러더니 ‘모두가 서울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3기 신도시 아파트 공급대책 발표)→‘모두가 아파트에 살 필요는 없다’(빌라·연립 위주 공급대책)로 졸아들었다. 급기야 나온 대책이 ‘모두가 집에 살 필요는 없다’(호텔 살면 된다). 거주뿐 아니라 소유 형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집을 가질 필요는 없다’(보유세 폭탄)→‘모두가 전세 살 필요는 없다’(임대차 3법으로 전세 절벽)→‘비싼 월세 내며 살 필요 없다’(공공임대 살면 된다).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내 집에서 편안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느낌이다. 무능하니 정책의 화살을 표적과는 한참 먼 데다 24번이나 날려 버렸다. 오만하기까지 해 그래도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른다. 코로나19 백신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세계가 부러워하는 K방역이 있으니 미리 준비할 필요 없다’더니 ‘백신을 개발한 나라에서 먼저 접종하는 건 불가피하다’고 꼬리를 내렸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이라는 사람은 “(백신 안전성) 문제를 한두 달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굉장히 다행스럽다”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해댄다. 연말 안에 30여 개국이 접종에 들어가고, 일반 국민의 접종은 이 나라들보다 적어도 반년 이상 늦어질 텐데 ‘굉장히 다행’이라니…. 阿Q도 울고 갈 ‘정신 승리’다. 옹색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백신 확보 대책마저 뜻대로 안 되면 ‘모두가 백신을 맞을 필요는 없다’고 할 건가. 부동산과 백신 정책에서 그렇게 자주 말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잘못했다.” 사과가 바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일 터. 문재인 정부 정책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데도 이 한마디를 안 하려고 궤변과 ‘정신 승리’를 들이대며 듣는 사람의 양심과 상식에 상처를 입힌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서울 강남 아파트를 팔아 거액을 챙겨도, 비리 잡화점 수준에 인성(人性)마저 의심되는 자격 미달이어도 장관이 되고, 야밤에 택시기사에게 행패를 부려도 차관이 된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면 된다’는 조국 씨의 멋진 말. 그 안에 숨겨진 행간(行間)은 부인의 1심 판결로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났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단, 우리 가족은 용이 돼야 한다).’ 문 정권은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 1, 2위로 아시타비(我是他非)와 후안무치(厚顔無恥)를 꼽을 정도로 ‘내로남불 정권’으로 기억될 것이다. 왜 그럴까. 보통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는 정책을 펼치기 때문이다. ‘아파트 살고 싶고, 기왕이면 강남 아파트 살고 싶고, 그 아파트가 내 소유라면 더 좋다’는 욕망, ‘나는 몰라도 내 자식은 공부 잘하고, 용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평범한 인간들의 이런 본성은 짓누르면서 자신들은 예외다. 공정과 나눔의 화신인 양 하면서 실상은 좋은 아파트 살고, 자식 스펙 챙기고 유학도 보내면서 집요하게 인간 본성을 추구한다. 이런 언(言)과 행(行)의 극심한 해리(解離) 현상의 핵심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문 대통령은 법원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의 효력을 정지시키자 “결과적으로 국민들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인사권자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런 게 사과인가. 사과문에 ‘결과적으로’ 같은 수식어를 넣거나 ‘상처를 줬다면’ 같은 가정법을 넣는 건 사과가 아니다. 말로는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절차적 정당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추미애 법무부의 징계안을 즉각 재가하며 뒤에서 윤석열 징계를 밀어붙인 사람이 누군가. 그래 놓고 진솔한 사과는커녕 제3자인 ‘인사권자’로서 추미애와 윤석열의 싸움에 대해 사과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유체이탈 화법. 듣는 사람은 찐 고구마를 먹다가 목에 걸린 것처럼 속이 답답하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코로나 피해 예술인 지원 예산을 타낸 건 누가 뭐래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쏟아진 비판 여론에 도리어 ‘착각하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이 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으로서, 특히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외친 대통령으로서 부끄러움을 표시했어야 마땅했다. 자식 일마저 남 일 보듯 하는 문 대통령의 ‘고구마 정치’가 위선이 난무하는 나라를 키운 온상이다. 영양 많은 다이어트 식품 고구마엔 미안한 말이지만.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참 안전한 나라다. 이 나라 현직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안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그의 임기 중에 한 명의 전임 대통령이 감옥에 있었고, 한 명의 전전임 대통령은 감옥에 갔어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철갑을 두르게 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겨눌 수 있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사건의 수사는 법치(法治) 파괴와 무도한 정치가 낳은 괴물 공수처가 완전히 고사(枯死)시킬 것이다. 문 대통령 가족과 관련된 구설 등 주변 문제 또한 그의 임기 이후에도 건재할 친문좌파 공수처가 막아줄 것이다. 문 대통령이 7일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역사적 시간”이라며 입법 폭주의 스위치를 누르고, 공수처법이 통과되자마자 “새해벽두 출범”을 외친 게 충분히 이해는 된다. 이보다 안전할 순 없다. 문 대통령뿐인가. 입법 폭주를 자행하며 대통령을 향해 충성경쟁을 벌인 집권당 국회의원, 진보좌파 대법원장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 헌재재판관, 현 청와대 관계자, 친문·친(親)추미애 검사, 문 정권의 행동대장을 자임한 고위 경찰도 도리어 공수처의 비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검찰을 비롯한 다른 수사기관은 이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인지한 경우 반드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하며, 공수처는 다른 수사기관에서 이런 사건들을 빼내와 수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무소불위 공수처는 정권 옹위를 위한 방패로뿐 아니라 ‘감히 살아 있는 권력을 건드리려는 자’들에게 휘두르는 창으로도 쓰일 것이다. 사법 기능을 가진 판검사와 경찰에게 이만한 겁박이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권을 총동원한 찍어내기에 맞서고 있지만 모두가 윤석열은 될 수 없다. 그것도 모자라 윤석열의 대선 출마를 막거나 조기 퇴진을 강요하는 법안까지 발의한 짓은 비열해도 너무 비열하다. 윤석열이 그렇게 두려운가. 그래도 참 행복한 나라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은 무수한 입시 부정 의혹에도 의사 가운을 입게 될 것 같다. 위안부 시민운동에 오물을 튀긴 윤미향 의원은 아직도 금배지를 단 채 소나기를 피했다고 안도했는지 와인파티까지 벌였다.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의 검찰장악을 위해 폭주기관차처럼 내달린 추미애 법무장관의 아들 문제도 잠잠해졌다. 이제는 ‘1가구 1주택’이라는 유치한 입각 기준마저 팽개치고 정권의 필요에 따라 아무나 장차관으로 데려다 쓴다. 이보다 행복하고 따스할 순 없다. 누가 이런 내로남불을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친일·수구로 낙인을 찍으면 된다. 이러니 일제강점기에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일본 여행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한 사람들이 갑자기 ‘친일파’나 ‘토착왜구’로 둔갑한다. 그래도 미진하면 박근혜 보수 정권의 약점인 세월호를 들이댄다. 이번에는 세월호 특검이다. 2014년 이후 9번째 조사다. 세월호의 아픔이야 공감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 그럼에도 참 평화로운 나라다. 5·18역사왜곡처벌법으로 역사 해석을 정부가 독점할 수 있게 됐다. 다른 의견은 입도 뻥긋 못 하게 하니 얼마나 조용하고 편안한가. 대북전단발송금지법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강행처리했지만, 북한 2인자 김여정의 심기를 거스를 순 없다. 이 땅에서 전쟁을 막으려면 김정은 남매에게 굴종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평화롭지 아니한가. 문재인 대통령과 그 추종세력이 꿈꾸는 나라는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만 안전하고 행복하며 평화로운 나라의 실상은 죄지어도 벌 받지 않는 신성(神聖)귀족의 나라, 민주화 30여 년 만에 민주주의 시계를 그 이전으로 되돌린 운동권 독재의 나라, 정권과 다른 의견이라면 입을 닫으라는 전체주의의 나라, 주적(主敵)인 북한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굴종의 나라, 양심 상식 공정 정의 법치 같은 낱말의 원뜻이 파괴된 혼돈의 나라다. 취임 3년 반 남짓 만에 나라를 이렇게 만든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연’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닫아버린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왠지 북한 전역에 걸려 있다는 구호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우리는 행복해요”.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지 말라. 일찍이 니체는 이렇게 경고했다. 인간 군상(群像)에서 예를 들자면 돈만 알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평생 증오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거나, 비열한 라이벌과 경쟁하다가 어느새 그보다 더 비열해진 자신을 발견한다거나…. 소설이나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건 그만큼 우리 삶에서 왕왕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일 게다. 2020년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에게서 그런 괴물의 모습을 본다. 독재라는 괴물과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독재에 물든. 목적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좌파 운동권 논리가 체화(體化)된 그들. 권력을 쥐고서도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위험한 비민주적 도그마에 사로잡혀 폭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목적이란 게 뭔가. 말이 좋아 ‘주류세력 교체’지, 이미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주류세력 교체를 이룬 터에 걸리적거리는 거라면 뭐든 휩쓸어 버리고 가겠다는 식으로 내달리는 이유는 한 가지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한번 잡은 권력을 결단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지독한 권력욕. 문재인 대통령이 이 땅에 만든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를 이대로 쭉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지키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식언(食言)을 밥 먹듯 하고, 말 뒤집기쯤은 예사이며, 궁지에 몰려도 궤변으로 말 같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고, 그래도 안 되면 안면몰수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쩔래’ 한다. 듣는 사람은 숨이 턱 막히지만 자신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사람 사는 세상’, 아니 ‘우리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을 써도 좋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그러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냥 당당한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도 ‘문파 장기집권’의 탄탄대로를 까는 데 돌멩이처럼 삐죽 튀어나와 걸리적거리는 사람을 쓸어버리고 가려다 일이 커진 것이다. 아무리 문 대통령이 직접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하라’고 했다고 감히 손을 대다니…. 알아서 기지 않는 검찰총수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문재인 나라’를 세우는 데 거슬리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이미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멈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인사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팀은 공중분해됐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라임 옵티머스 등 정권의 개입 연루 의혹 사건들의 수사는 권력의 입김으로 고사(枯死) 직전이다. 그런데도 허울뿐인 모자를 쓴 윤석열을 찍어내 다른 검사들도 감히 산 권력을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려다 이 난장(亂場)을 벌이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추 장관이 내세운 윤 총장 징계 및 직무정지 사유가 너무 졸렬하다. 첫째로 든 중앙일보 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은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때 일이다. 그때야말로 윤석열이 날이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정권이 내린 적폐청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때. 오죽 딱 떨어지는 건수가 없으면 자신들이 ‘충견(忠犬)’으로 부릴 때 일부터 첫째로 들이민 것이다. 다른 사유들도 없어 보이긴 매한가지지만.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대통령이 침묵을 깨라,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과연 제3자로 심판할 자격이 있나. 윤석열이라는 칼로 적폐청산의 칼바람을 일으키고, 산 권력에 엄정하라고 영혼 없는 립 서비스를 한 뒤, 진짜 산 권력에 손대자 추미애를 ‘상전’으로 세워 윤석열의 손발을 묶은 사람이 누군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막장 드라마의 각본가이자 연출가는 바로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새누리당 소속 경남 고성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받자 ‘재·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며 이를 자당 당헌에도 집어넣었다. 그런데 70대 부산시장의 성추행으로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은 아무렇지 않게 그 규정을 휴지통에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부산 표심을 흔들 가덕도 신공항 카드를 던진 뒤 특별법을 만들어 ‘예타(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독재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통치 행태를 말한다. 윤석열 징계 사태와 신공항 사달을 보라. 더구나 ‘야당의 비토권 보장’을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탄생의 핵심 명분으로 내세운 뒤 이번에는 법을 바꿔 비토권을 빼앗겠다는 무도한 정치가 독재 아니고 뭔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폭력과 다를 바 없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면 로마 황제 콤모두스가 생각난다. 로마 5현제 중에서도 가장 후대 평가가 높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이었으나 폭정과 실정(失政) 12년 만에 암살당한 뒤 치세(治世)의 기록을 소멸시키는 ‘기록말살형’에까지 처해진 폭군. 어떻게 아우렐리우스 같은 위대한 황제가 그렇게 못난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줬을까 하는 의문을 모티브로 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 인물이다. 위대한 아버지 콤플렉스에 시달렸을 콤모두스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아버지 프레드다. 자수성가해 부(富)를 일군 그의 승리 지상주의 교육이 도널드를 ‘괴물’로 키웠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세상에는 ‘승리자’와 ‘패배자’ 두 부류의 인간만이 존재하며, 자신은 항상 승리자라는 착각과 과대망상이 대선 불복까지 이어지고 있다. ‘명상록’을 남긴 아우렐리우스는 ‘철인(哲人) 황제’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제위 기간 대부분을 전장에서 보내다 게르마니아의 겨울 숙영지에서 숨을 거뒀다. 그런 아버지를 화장한 불길이 꺼지자마자 콤모두스는 ‘전쟁을 계속하라’는 선황의 유지(遺旨)를 어기고 철군을 결정했다. 이후에도 제국의 안전을 위해 ‘팍스 로마나’를 추구해 온 로마 황제의 책무를 팽개쳤다. 그러고는 자신이 환생이라는 헤라클레스의 분장을 하고 직접 검투사로 싸우는 기행까지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도 세계 평화와 질서 유지에 앞장서 온 슈퍼파워 미국의 대통령 역할을 저버리고 자국의, 아니 자신의 이익에만 탐닉했다. 국정을 리얼리티 쇼처럼 벌이고 이벤트에 몰두한 것도 콤모두스와 닮았다. 콤모두스가 로마 제국 몰락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듯, 트럼프라는 대통령의 등장과 그런 대통령이 이번에 역대 선거 2위 득표를 했다는 사실이 ‘팍스 아메리카나’ 몰락의 서곡(序曲)이라고 본다. 미국 역사상 트럼프 같은 대통령은 처음이지만 많은 유권자가 한번 편 가르기, 포퓰리즘에 중독된 이상 제2, 제3의 트럼프 대통령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국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로마가 콤모두스 이후에도 300년 가까이 갔듯(서로마 기준) 아메리카 제국의 추락 또한 우리 자식 대까지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선에서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뽑아, 더 정확히는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해고해’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는 미국민의 복원력이야말로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것이다. 바이든 시대, 미국은 다시 세계 질서 유지에 ‘개입’할 것이고, 좌충우돌 트럼프 때문에 출렁였던 세계는 보다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대북 정책과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는 소원하고, 중국을 가까이하면서 일본은 배척하고, 북한에만 안달하는 문 대통령의 정책은 공교롭게도 트럼프의 고립주의 한탕주의 외교정책과 맞아떨어졌다. 돌아보면 트럼프가 문재인 외교정책의 뒷배 역할을 해준 셈이다. 바이든의 동아시아 정책은 동맹을 중시하고 북한에 냉정하며 한미일 삼각협력을 유지하려는 전통적인 미국 정책으로 회귀할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상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정상화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미국은 트럼프마저도 어찌해 보지 못한 미국만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겠지만, 문 정권 3년 반 만에 정치 시스템이 무너져 내린 대한민국은 어쩔 것인가. 법무부 장관이라는 사람의 입에 담기도 피곤한 언행이 펼치는 일일 막장 드라마를 필두로 국정과 사회 각 분야에서 비정상의 일상화가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요즘이다. 그런데도 야당은 대안세력으로 희망을 주기는커녕 나라의 명운이 걸린 선거들을 앞두고도 정신을 못 차린다. 알량한 자리다툼에 혈안이 돼 중도 유권자의 표심을 흔들 ‘9억 원 이하 재산세 감면’ 같은 이슈들도 차버리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희망은 국민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과연 국민은 희망인가. 아직도 적지 않은 국민은 문재인을 선택한 자신의 판단을 고수하며 다른 얘기 자체를 듣기 거부한다. 문 대통령이 옳아서 지지한다기보다는, 내가 지지하니까 옳다는 심리에 가깝다. 여기엔 권력에 대한 비판이 들어설 여지가 거의 없다. 이런 건 정치적 지지라기보다는 일종의 팬덤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 망친 포퓰리즘 혹은 파시스트 정권을 일으키고, 결국 망하게 한 건 이런 팬덤식 지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에둘러 묻지 않겠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가. 이제껏 ‘정답’은 대체로 이랬다. ‘그래도 그 정도의 소신과 기개가 있는 기관장이 자리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권력기관인 검찰과 헌법기관인 감사원이 정치적 중립을 잃고 편파의 칼을 휘두르거나 기울어진 저울을 갖다대는 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과연 그랬나. 지금까지 못 했다면 앞으로는 그럴 수 있나. 윤 총장에 대해선 결론이 나와 있는 듯하다. 수족은 물론 몸통까지 모두 잘려 머리만 남은 장(長). 검찰총수를 대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태도와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사건에 ‘무혐의’를 들이민 서울동부지검의 행태는 윤 총장으로선 능멸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언뜻 윤 총장이 이 지검장에게 ‘옵티머스 사건 수사 인력을 늘리라’고 지시한 게 먹힌 듯하지만, 수사 인력이 증원된 건 문재인 대통령의 ‘성역 없는 수사’ 지시가 나온 날이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정치권력은 검찰 조직에 손대기를 버거워했다. 권력의 약점을 잡아 레임덕이 올 때까지 묵혔다가 끄집어내거나, 아니면 정권이 바뀐 뒤에라도 보복하는 게 검찰의 속성이었다. 그래서 ‘검찰이야말로 권력 그 자체’라는 말도 있었다. 이런 무소불위 검찰을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검찰개혁이다. 그랬던 검찰이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문 정권의 검찰 장악에 이토록 쉽게 ‘애완검(檢)’이 될 줄은 몰랐다. 추미애 장관이 몇 번 인사권을 휘두르자 바람이 불기도 전에 바짝 엎드리는 검사들이 많았다. 흔히 검찰을 칼에 비유하는데, 이쯤 되면 찌르면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나오는 장난감 칼이다. 이런 검찰이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지, 22일 국감장에 서는 윤석열의 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최재형 감사원장. 입법 사법 행정 3권이 사실상 정권에 장악돼 권력분립이란 헌법정신이 흘러간 옛 노래처럼 들리는 요즘. 아직도 고개를 쳐들고 있어 돋보이는 기관장이다. 그의 삶에 스토리가 있고 주변 관리도 잘돼 있어서 벌써부터 보수 일각에서 대권후보감으로 꼽는 인물이다. 금명간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타당성 감사 결과를 발표하게 돼 초미의 관심이 쏠린다. 결과가 어떻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방향에 일대 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당연한 의문. 조기 폐쇄 결정이 잘못됐다는 감사 결과가 나온들 탈원전 정책 방향이 바뀔까. 우리는 모두 답을 안다. 미동도 않을 것이고, 오히려 어깃장을 놓아 탈원전에 더 속도를 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 경우 최 원장은 ‘한 번도 경험 못 한’ 문빠들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시달릴 것이다. 그럴 때 최재형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윤석열과 최재형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려 한다면 이런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아도 두 사람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사표 던지기를 바라는 이 정권에 왜 좋은 일을 시키나. 파출소 지나서 경찰서 나온다고, 이런 저런 눈치 안 보고 정권 코드에만 더 충실한 사람을 내리꽂는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몰라서 그러나. 조국 다음에 더 센 추미애, 김동연 다음에 더 말 잘 듣는 홍남기를 기용하지 않았나. 더구나 윤 총장이 물러나면 후임 총장은 이미 내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이성윤 지검장으로…. 하지만 우리는 이 정권 들어서 일상화된 비정상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두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의 불의와 부당에 항거하며 자리를 떨치고 나오는 올곧은 고위공직자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봤으면 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용단이 새로운 스파크를 일으켜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도 무기력증에 허덕거리는 웰빙 보수정치에 정치적 에너지를 공급할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윤 총장과 최 원장이 정치에 관심이 있는지는 모른다. 윤석열에게는 지나친 검찰주의자라는 평도 있고, 최재형은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지금의 야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정치적 자산을 쌓아올린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자산을 현 여권이 재집권하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쓸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신성(神聖)귀족의 탄생이다. 죄 지어도 벌 받지 않는 ‘사회적 특수계급’. 우리 헌법은 명시적으로 이를 금지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들어 대통령과 가까운 여권 인사들의 비리 의혹 시리즈, 특히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를 거치면서 이런 신(新)귀족의 출현을 목도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 같은 권력기관은 물론 법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 심판기관, 심지어 대법원 같은 최후의 보루마저 이들 신성귀족의 비호를 위해 복무하는 듯하다. 하지만 일반 국민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의 목숨 값은 하찮고 또 하찮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공무원을 그렇게 ‘버린 자식’ 취급하는 게 국가인가. 월북 여부를 떠나 표류한 사람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정황만으로도 북을 응징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사과’ 운운을 무슨 황제의 교지(敎旨)라도 되는 양 받아들고 감읍하는 대통령 이하 여권 인사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게다가 반(反)정부 시위를 막는다고 ‘재인산성’을 쌓고 불심검문까지 자행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런 나라가 올 줄 몰랐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부터 “대통령이 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라고 했는데, 그가 성공했다는 점을 아프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대한민국을 많이 바꾸는 데 성공했다. 불공정하고 불의(不義)하며 불안한 나라로. 그만큼 한국 정치와 우리의 민주주의가 인치(人治)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차기 대통령 선거다. 벌써부터 친문(親文) 사이에선 ‘김경수 대망론’의 물이 올랐다. 문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인 데다 신귀족의 일원인 김 경남지사가 다음 달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문재인의 황태자’로 떠오르는 시나리오다. 권력기관과 사법부가 왼쪽으로 가파르게 기운 마당에 불가능한 그림도 아니다.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가 여권이기는 해도 아직 ‘우리 사람’은 아니라는 게 친문의 속내다. 여기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법적인 때를 벗겨 이낙연 이재명 김경수 조국 등이 일대 경선판을 이끌어 간다는 구도다. 그런데 야권은? 다음 대통령 선거일은 2022년 3월 9일이다. 1년 5개월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보이는 사람이 없다. 문 정권이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실정(失政)을 저질러도 야당이 뜨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꼰대 보수 이미지도 큰 부담이지만, 현재로선 이렇다 할 미래권력이 보이지 않는 ‘불임정당’이기 때문이다. 인치(人治)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정치와 유권자의 습성상 차기 대통령 후보가 보이지 않는 정당에 눈길이 덜 가게 마련이다. 여기서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의 탄생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은 원래 친노(親盧)와 좌파·재야 세력이 합작해 만들어낸 ‘대통령 기획상품’이었다. 본인도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고, 정치에 맞는 사람도 아니었다. 평생 친구 노무현 전 대통령도 ‘정치가 전혀 안 맞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데, 요즘 들어 노무현의 혜안에 이마를 치게 된다. 그런 사람을 친노 핵심과 재야 원로들이 필사적으로 설득해 오늘의 문 대통령을 만든 것이다. 거기엔 한때 폐족(廢族)으로 추락했다가 노무현의 비극으로 기사회생한 친노,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정권을 빼앗긴 좌파 단체와 재야의 절박감이 있었다. 절박하기로 말하자면 지금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이 그보다 더할 것이다. 여당에선 대놓고 ‘이대로 20년’을 외치지만 20년이 아니라 5년만 더 해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 절박함으로 야당식 대통령 기획상품을 만들어보라. 그러려면 먼저 상품이 ‘신상(품)’일 필요가 있다. 과거 대선주자 같은 헌 상품의 포장지를 바꿔 재포장해도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 데 한계가 있다. 부잣집 도련님 같은 웰빙 이미지의 인사도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 그 삶의 여정에 스토리가 있고, 미래의 비전을 느낄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해야 한다. 이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새 인물을 키우기 위해 움직일 때가 됐다. 그래야 ‘아직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소리도 들어갈 것이다. 김 위원장이든 야권 구(舊)대선주자든 이번 대선만큼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을 버리고 승리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벼랑 끝에 걸린 대한민국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 죄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창피하다. 요즘 자주 느끼는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에서 사태로 이어지며 드러나는 문재인 정권의 민낯이 창피하다. 양심 상식 법리의 잣대를 제대로 적용하면 어렵지 않게 정의가 실현될 일들이 진영 간 전쟁으로 비화하고 마는 한국 사회의 수준이, 그래도 내 편이라면 한사코 감싸며 침묵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그리고 이렇게 비정상이 일상화된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광정(匡正)하지 못하는 나의 무딘 펜이 창피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지키기 위해 여권에서 쏟아낸 궤변과 말장난, 집단 이성(理性) 붕괴현상은 이를 비판하기 위해 다시 주워섬기기도 창피한 수준이다. 쏟아지는 야당 의원 비판에도 무너지기는커녕 슬금슬금 웃는 추 장관의 극강 멘털, 와중에도 ‘엄마가 당 대표여서 미안해’라는 닭살 ‘모성(母性) 멘트’를 던지는 그 여유. 같은 나라에 살지만 다른 세상 사람을 보는 듯하다. 보좌관이 청탁 전화를 했는지는 확인하고 싶지 않고, 남편에게는 전화했는지 물어볼 형편이 안 된다는 추 장관이야 원래 그렇다 치자. 국정과 국회를 제 기분과 형편에 따라 농단하는 듯한 언행을 조목조목 논파(論破)하지 못하는 야당 의원들이 참으로 창피하고 실망스럽다. 로마시대에 폭군의 기록을 말살하는 기록말살형이 있었다는데, 추미애 사태를 둘러싸고 나온 수준 이하 언사들을 모조리 기록말살형에 처하고 싶은 기분마저 드는 요즘이다.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를 거치며 새삼 놀라게 된다. 주인공이나 조연, 응원단들의 멘털이 어찌 그리 한결같이 강한가.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정녕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사람일지는 몰라도 시쳇말로 ‘뇌구조’가 다른 것은 아닌가. 이분들의 뇌구조 그림에는 다른 건 몰라도 굵디굵은 경계선 하나가 떡 하니 쳐져 있는 것 같다. 내 편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심리적 국경이다. 이 국경이 상식이나 양심, 도덕이나 실정법까지 초월하는 레드라인이다. 이 국경 안에 있는 내 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국경 너머 네 편에게는 한없이 가혹하다. 그러니 자기편을 향한 비판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라도 국경 너머 적들의 공격으로 간주하고 똘똘 뭉쳐 막아내는 것이다. 정상적인 비판에 전쟁으로 응전하는 이유다. 이러니 도덕적으로 거리낄 게 없고,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이유도 없다. 멘털이 강할 수밖에 없다. 간혹 양심의 가책으로 비극적 선택을 한 분도 있고 이성에 눈 감은, 숨 막히는 패거리즘에 질려 국경 밖으로 자발적 망명을 한 사람들도 있으나 드문 경우다. 이 국경 내에선 아무리 돌이킬 수 없는 허물이 있어도 국경 너머 적들의 비판이 집중된다는 이유만으로 영웅시되기도 한다. 조국 윤미향 추미애를 칭송하며 꽃다발을 보내고, 이에 고무된 비리 당사자가 스스로를 순교자로 착각하는 도착(倒錯) 현상도 벌어진다. 그 대신 추미애 아들의 ‘황제 휴가’ 의혹을 폭로한 당직사병 같은 공익제보자, 특히 국경 내부의 고발자나 비판자에게는 가차 없이 좌표를 찍고 무차별 댓글 폭탄을 퍼부어 초토화시키고 마는 것이다. 이 국경 안에 있는 한 법적으로도 안전하다. 친문 국회의원과 청와대의 비호와 엄호사격은 기본이다. 알아서 기는 검사들과 풀잎보다 먼저 눕는 판사들의 창궐로 편만 잘 먹으면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한 ‘법우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최후의 법정인 대법원이 있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대법원의 파기환송은 다 죽었던 목숨도 살려놓는다. 이렇게 3심까지 질질 끌다 보면 임기를 거의 다 채울 수도 있다. 11월 2심 선고를 앞둔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벌써 임기의 절반을 넘겼다. 고발장 접수 4개월을 넘겨 기소된 윤미향 의원은 또 언제까지 금배지를 달고 있을 건가.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나도 끝난 것은 아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사건에서 보듯,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라며 판결 뒤집기 시도마저 나온다. ‘당신들의 천국’에서 당신들은 도덕적으로 든든하고, 법적으로 안전하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경제공동체’ 같아서 경제적으로도 따스하다. 그토록 ‘장기집권’을 외치는 것도 이렇게 안전하고 따스한 파라다이스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나라 돌아가는 꼴이 너무 창피하지 않은가.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사흘 뒤인 10일이 무슨 날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 4개월, 즉 40개월째 되는 날이다. 5년 임기의 3분의 2를 꽉 채우고 남은 3분의 1을 향해 발걸음을 떼는 날인 셈. 역대 대통령은 이맘때쯤 레임덕 내리막의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으나 문 대통령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아니, 취임 초보다 되레 서슬이 퍼렇다고 해야 하나. 하필 이즈음 문 대통령을 제왕으로 빗댄 ‘시무 7조’니 ‘영남만인소’ 같은 풍자 글이 화제가 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한때 ‘경청의 달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말하기보다 듣기에 능했던 문 대통령. 허나 요즘의 언행에는 거침이 없다. 최근 구설을 빚은 ‘의사 간호사 편 가르기’ 발언도 그렇다. 대통령쯤 되는 분이 일부러 의사와 간호사를 이간질하려 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다만 ‘쓰러진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 등의 사려 깊지 못한 표현들을 서슴없이 인터넷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좋게 말하면 자신감의 표현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만함의 발로(發露)다. 여론이 불리해지니까 ‘대통령이 직접 쓴 게 아니다’라고 연막을 피우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걸 보면 더 가관이다. 민주 국가의 대통령을 ‘무오류의 제왕’으로 떠받들려는 기도(企圖)야말로 왕조시대 간신의 행태를 연상시킨다. 그렇지 않아도 총선 압승에 코로나19 사태로 지도자에 힘이 쏠리는 분위기를 업고 문 대통령이 더욱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느낌이다.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줘라’ ‘공권력의 엄정함을 세우겠다’는 등 사회질서를 마구 유린한 민노총에는 한번도 쓰지 않던 ‘공권력’이란 용어를 연달아 소환하더니,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놓고 대놓고 꾸짖는 듯한 태도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이야 권력자니까 권위적으로 변하는 것도, 때로 권력에 취하는 것도 일견 이해는 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측근들이, 혹은 소위 ‘문파’라는 사람들이 문재인의 털끝만 건드려도 우 하고 일어나서 결사 옹위하는 듯한 모습은 시계를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리는 행태다. 그런 시대착오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것인지, 문 대통령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알다시피 ‘문재인의 30년 친구’라는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을 위해 2018년 시장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개입한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이 수사팀은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인사로 사실상 분해됐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묻힐까. 문 대통령 임기 중엔 어려울지 몰라도 대통령의 연루 소지가 있는, 이미 윤곽이 드러난 사건이 완전히 묻히는 일은 없다. 시간이 얼마 걸리든 간에. 그게 한국 정치다. 문 대통령의 딸과 관련된 구설 등 주변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입도 뻥긋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지만, 우리 사회의 입은 그렇게 다물어지는 법이 없다. 문 대통령에게 신발을 투척한 사람을 기어코 구속시키고야 마는 등 대통령 주변에 철옹성을 쌓는 이들이야말로 결국 대통령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전 두 대통령의 실패 사례를 보라. 비단 대통령 주변뿐이 아니다. 조국 윤미향 사태와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에서 보듯, 블랙홀 주변에서 빛이 굴절되듯이 권력 근처만 가면 진실이 꺾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권력을 옹위하는 사람들은 영전하고 금배지 달고, 엇나가는 소리를 낸 사람들은 좌천되고 옷을 벗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일들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어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도 점점 무덤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댓글조작 혐의 재판의 2심 선고가 11월에 나온다고 한다. 아무리 김 지사가 권력 실세라고 해도 대통령 선거 관련 사건의 2심 선고가 대선 3년 반 뒤에야 나오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3심까지 가면 지사 임기를 거의 다 채우는 것 아닌가. 그 와중에 한 부장검사는 이 사건 특검에 참여해 권력의 속살을 건드린 뒤 한직을 떠돌다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져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사회…. 그래도 이 정권 사람들은 당당하게 정의(正義)를 외친다. 너무 당당해서 지지자들, 아니 보통의 시민들까지도 현혹될 지경이다. 명백한 불의(不義)가 권력 근처만 가면 어느새 정의(正義)로 둔갑하는 이 나라, 과연 정상인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지난 8·15광복절 직후 사진 한 장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받았다. 누군가 연설하는 사진이었다. 연사의 하관이 광복회장 같기는 한데, 연단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작은 글씨로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 그 아래 큰 글씨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였다. 첫 느낌은 이랬다. ‘누군가 또 장난을 쳤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런 유의 유머들이 넘쳐난다. 다소 어려운 단어나 한자를 어린아이들 눈으로 풀이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술에 취해 큰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짓’을 뜻하는 4자성어는? 단답식 ‘( )( )( )가’의 괄호에 들어갈 정답은 ‘(고)(성)(방)가’겠지만 아이의 답변은 이렇다. ‘(아)(빠)(인)가’. 대한민국이란 한자 국호를 우리나라라는 쉬운 우리말로 바꾼 합성 사진인 줄만 알았다. 그게 합성이 아니라 진짜임을 알게 됐을 때 밀려온 허탈감…. 그 다음엔 ‘참 애쓴다’는 느낌과 함께 ‘그래도 일관성은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죽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싶었으면 이런 코미디 같은 짓을 벌였을까. 그 연단에서 마구 쏟아낸 요설(妖說)이나 그 이후 궤변에 대해선 논평하고 싶지 않다. 본란(本欄)의 격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청와대는 광복회장 발언에 대해 18일 “광복회장으로서의 입장과 생각을 밝힌 것”이라며 “청와대와는 무관하고, 사전에 간섭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광복회장 기념사 내용을 사전에 몰랐을 리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몰랐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그 행사 때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태극기 문양 아래 ‘우리나라’라고 새긴 마스크를 썼다. 다른 때 같으면 참신한 디자인으로 보일 수도 있는 마스크였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선 광복회장의 연단과 함께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소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대통령이 부주의했던 건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의 기념사에 심정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인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은 헌법에 새겨진 우리의 국호(國號)다. 1948년 7월 제헌국회 때 국호로 정해졌으며 문재인 정권이 국가 정통성의 연원(淵源)으로 삼으려는 상하이 임시정부 때부터 사실상 국호였다. 현행 헌법전(憲法典)의 공식 제목도 그냥 ‘헌법’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다. 그 헌법에 의해 당선되고 대통령 선서까지 한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듯한 언행을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서 임기의 3분의 2를 거의 다 채운 지금도 이 나라가 친일과 독재, 사이비 보수 세력이 주류인, 청산돼야 마땅한 체제로 보는가.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대통령의 부정적 인식은 음지에서 암약하던 대한민국 부정 세력이 양지에서 활개 칠 공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세력은 이제 대놓고 애국가는 물론 국호까지 바꿨으면 한다. 그렇지 않아도 문 정권 들어 양심 도덕 상식 평등 공정 정의 법치 검찰개혁 같은 단어의 뜻을 전혀 다르게 쓰는 ‘문재인 어족’의 탄생으로 두 개의 언어가 충돌하는 아노미 상태다. 이제 국호까지 두 개로 만들 참인가. 당신들의 ‘우리나라’에선 박정희의 공화당 사무처에 공채시험을 봐서 합격하고,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에서 조직국장이란 요직을 지냈으며, ‘친일수구의 본산’이라고 매도한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광복회장의 전력은 ‘생계형이었다’는 한마디로 너무 쉽게 용서된다. 기업에 다니거나 장사를 한 것도 아니고 집권당 요직에 보수당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지내놓고 ‘생계형’이라니…, 진짜 ‘생계형’들은 가슴을 칠 얘기다. 변명도 앞뒤가 맞아야 하거늘.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그토록 관대한 정권이 ‘대한민국 백성’을 적폐 청산할 때는 어찌 그리 가혹한가. 우리나라(Our country)는 동서를 막론하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찬 용어를 이렇게 오염시킨 것만으로도 큰 죄를 짓는 일이다. 국민통합의 언어를 분열의 언어로 쓰려는 책동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나라’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라.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지금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동거(同居)한다. 같은 단어를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두 어족(語族)이다. 어의(語義)의 불일치는 양심 도덕 상식 정의 법치 같은 규범 단어에서 극대화된다. 문재인 정권 전에는 없던 현상이다. 국어를 다르게 쓰는 ‘문재인 어족’의 탄생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대국민 메시지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고 다음 날 취임사에서는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말하는 ‘통합 대통령’과 ‘국민통합’이란 용어가 이런 뜻일 줄은. 문 대통령이 역대 어느 정권보다 극심한 ‘국민분열’을 자초한 ‘분열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통령의 언어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하라’고 당부했다. 그 말을 믿고 산 권력에 손을 댄 윤 총장은 지금 어떻게 됐나. 이미 수족이 다 잘린 터에 엊그제 인사에서는 ‘정권의 충복(忠僕)들’에게 둘러싸여 말 그대로 고립무원 신세다. 대통령의 언어가 이럴진대, 우리 사회의 언어가 온전할 리 없다. 국민이 두 어족으로 갈라지는 결정적 계기는 조국 사태였다. 대통령 취임사의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은 모두 무너져 평등과 공정, 양심 도덕 상식 같은 규범어의 정의(定義)가 일대 혼돈에 빠졌다. 많은 국민이 들고 일어난 것은 조국에 대한 분노보다 우리 사회를 지켜온 상규(常規)가 무너지는 데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다. 이어 터진 윤미향 사태는 이런 의문을 던졌다. 과연 이 나라에 정의(正義)는 있는가. 사태가 터진 지 석 달이 넘었다. 아직도 국회의원 윤미향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못 하고 있다. 이제 정의라는 단어의 뜻을 ‘약자의 정의’와 ‘강자의 정의’로 나눠서 해석해야 하나. 정의를 담보해야 할 법치(法治)라는 말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등장과 함께 조롱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런 추 장관이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처럼 오로지 공정과 정의에만 집중하겠다”고 썼다. 한마디로 ‘졌다’. 또 3일 신임 검사들에게는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게, 상대방에게는 봄바람처럼 따스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마음에 거리낌 없이 훈시하는 그를 보고 다시 한 번 ‘졌다’. 법치의 기본원리는 ‘법의 지배(rule of law)’다. 윤석열 총장이 신임 검사들에게 법의 지배를 강조했더니, 한 여당 의원이 “과감한 발상이 매우 충격적”이라며 “일반인의 입장에서 법의 지배 같은 무서운 말들은 꽤 위험하게 들린다”고 논평했다. 혹시 법의 지배란 말을 처음 들어보고, ‘지배’란 단어의 어감 때문에 그렇게 반응한 것은 아닌가. 법의 지배는 군왕(君王)이나 독재자 같은 자의적 권력보다 법을 우위에 둠으로써 ‘법 앞에 평등’이라는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법을 세워야 할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법치의 기본원리조차 모르니 할 말이 없다. 이러니 ‘검찰개혁’이라 쓰고 ‘검찰장악’이라고 읽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검찰개혁이란 말은 원래 두 가지 의미를 담는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검찰 독립과 과도한 검찰권한의 축소. 그런데 문 정권 사람들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후자보다 중요한 전자를 깡그리 무시한다. 오히려 노골적인 검찰 길들이기, 검사 줄 세우기를 하면서 입으로는 당당히 ‘검찰개혁’을 말한다. 이후 다른 정권이 본받을까 겁난다. 이제 ‘검언(檢言)유착’ 의혹마저 실체가 없고, 실상은 ‘권언(權言)유착’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죄악’ ‘세금=징벌’로 어감이 바뀐 지도 오래다. 얼마나 더 낙인을 찍고, 프레임을 짜며, 거짓 조어(造語)를 하고, 말뜻을 왜곡해 우리말을 오염시킬 건가. 국민을 ‘편 가르기’한 것도 모자라 언어마저 편 가르기 하나. 갈라진 국민은 계기가 있으면 다시 통합할 수 있지만, 말이 안 통하면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딴 나라 국민이 된다. 집권 3년여 만에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참으로 ‘이상한 문재인 랜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호소문은 절절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딸을 둔 아버지로서 깊은 공감과 슬픔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정한 법’과 법치(法治)에 호소하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습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습니다.” 소시민들이, 특히 궁지에 몰린 약자가 이 나라 법에 대해 갖는 마지막 기대와 신뢰는 이런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박 전 시장 통화내역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한 데 이어 서울시청과 박 전 시장 휴대전화 압수수색영장도 기각했다. 피해자는 지금 자신이 기대한 대로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끝 모를 거대한 2차 피해의 공포에 떨고 있을까. 무엇보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내게는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피해자가 말한 대로 대한민국은 과연 법치국가인가. 오늘로 윤미향 사태 82일째. 고발장이 접수된 것도 두 달 반이 넘었지만 검찰은 소환조사조차 못하고 있다. 법은 국회의원 윤미향과 일반인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모두 공정하고 평등한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총선에 압승하면서 거여(巨與)의 ‘입법독재’는 어느 정도 예고됐다. 그래도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폭주할 줄은 몰랐다. 이명박 정권 때인 18대 총선에선 범여(汎與) 정당이 185석을 석권하고 통합민주당은 8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민주당에 법제사법위원회를 비롯한 6개 상임위원장 자리가 돌아갔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18개 상임위를 싹쓸이해 하루가 멀다 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根幹)을 뒤흔드는 법안을 쏟아내는 건 대한민국 헌정사에 오욕(汚辱)으로 남을 것이다. 그나마 법제화라도 하면 낫다. 국토교통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재산세 폭탄’을 투하해 여기저기서 곡소리 나게 하는 건 조세법률주의 위반 아닌가. 게다가 상위법을 거스르는 시행령, 위헌 소지가 큰 소급법안 등을 남발해 나라의 법체계를 누더기로 만드는 건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최후의 권력기관’인 사법부, 즉 법원이 흔들리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 중국에도 법원은 있지만 중국을 실질적인 법치국가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법원의 판결이 지방 실력자, 판사와의 친소 관계, 공산당 입김, 권력 수뇌부 등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법치의 보루는 단연 사법부였다. 그 사법부가 지금 흔들린다. 최근 대법원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의 정치생명을 살려주는 두 개의 판결을 했다. 이 지사를 살려준 다수 의견은 방송토론회에서 ‘소극적 거짓말’을 한 것은 인정되나 “토론 과정에서 검증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했다.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거짓말이 난무하는 한국 정치판을 얼마나 더 오염시키려고 하나. 이러니 이 지사가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을 확인했다”는 적반하장 식 소감을 내고,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를 내면 안 된다고 했다가 뒤집으며 “주장이 아니라 의견이었다”고 말장난을 하는 것 아닌가. 하급법원에선 친문 실세들과 가까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뇌물수수를 인정하면서도 석방하고, 대학 구내에 문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청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전 채널A 기자를 구속한 판사는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는 여느 구속영장 발부사유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이유까지 댔다. 법의 수호자여야 할 법원부터 이러니 여권에선 국가 최상위법인 헌법마저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변경할 것’이라고 한 데 이어 이해찬 대표는 ‘개헌할 때 수도를 세종시에 둔다는 문구를 넣으면 된다’고 했다. 헌재 결정과 개헌도 입맛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다. 과거 독재 정권은 정통성이 없다는 태생적 약점 때문에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민주화 30년이 지나서 출범한 이 정권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법을 만들어서, 법을 비틀어서, 검찰을 압박해서, 법원을 흔들어서, 헌재 결정을 바꿔서, 개헌을 해서라도 기필코 해내려 한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당당하다. 이쯤 되면 법치주의 원리인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독재다. 그래도 지금 어딘가에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이대로 무너져 내려서는 안 된다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고뇌의 밤을 보낼 적지 않은 판사들이 여전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