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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업계는 인력 수급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 고교와 대학, 대학원에서 배출되는 반도체 관련 인력은 연평균 5000명 수준. 하지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21년 17만 명 수준인 반도체 인력이 2031년에는 총 30만 명까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대로 가면 필요 인력에 비해 공급이 절반을 한참 밑도는 것이다. 정부가 2031년까지 15만 명의 반도체 인력 양성 계획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인력 양성의 최전선에 있는 홍유석 서울대 공대 학장(57)은 “정부의 관심이 반갑긴 한데 아직 청사진만 있고 디테일이 부족하다”며 “구체적 실행 방안을 채우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임명된 홍 학장에게 반도체 인력 문제를 비롯해 최근 이슈가 된 의대 쏠림 현상과 ‘문과 침공’, 챗GPT 열풍 등에 대해 물었다.》―다음 달 공대에 임용되는 교수 17명이 1명 빼고는 30, 40대이고, 미국의 빅테크 기업인 인텔과 메타에서 일하다 온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미 학문적으로 완성된 분보다는 젊고 잠재력이 높은 인재들을 데려왔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분야가 가장 필요한데 데려오기가 힘들다. 학과장들한테 좋은 인재를 데려오면 서울대 발전기금 등에서 지원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해외 빅테크 기업에서 온 분들은 연봉 차이가 날 텐데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 없는 것 아니냐.“설득 작업이 힘들지만 아직 한국인에겐 애국심에 호소하는 게 먹힌다(웃음). 국민의 눈높이에선 적다고 할 수 없지만 그분들 입장에선 아쉬운 액수다(기존 연봉의 절반은 되느냐고 묻자 어림도 없다는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서울대 법인화가 10년이 넘었는데 인력 관련 문제에 융통성을 갖기 어려운 건가. “예를 들면 산업체 석좌교수 제도 같은 게 허용이 안 된다. 교수가 특정기업과 연계해 일을 하면 그 기업에서 상당한 급여를 따로 받는 제도인데, 서울대 권위가 사라진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리가 있지만 지금은 문을 열어줄 때가 됐다. 그 교수가 받는 급여 중 일부는 학교에 기여해 연구와 교육에 재투자하면 된다. 첨단 분야 인재를 위한 충분한 보상을 정부와 대학이 다 해줄 수 없으니 기업의 협력을 받자는 것이다.” 최장욱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가을 미국 전고체 배터리 개발 업체인 SES의 요청에 따라 사외이사가 되겠다고 신청했다. 하지만 교수가 국내가 아닌 해외 업체의 사외이사가 될 수 있다는 학교 규정이 없다며 거절당했다. 홍 학장과 최 교수가 설득에 나서 결국 통과됐지만 한동안 진통을 겪었다. 홍 학장은 “국내 교수가 사외이사 같은 제도를 통해 해외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기술주권이 국가경쟁력으로 여겨지는 요즘 산학협력이 가장 필요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갇혀 있는 건가. “과거엔 기업이 과제를 주면 학교가 연구를 수행하는 ‘과제수행형’ 산학협력 프로젝트가 많았다. 하지만 이젠 인력이 학교와 기업을 오가는 ‘인력교류형’으로 바꿔 장기간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교수는 학교 일과 기업 일을 각각 50%씩 할 수 있도록 한다. 사원은 학교에서 재교육을 받고 반대로 학생은 현장에서 인턴십을 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기업이 학교에 지원한 돈은 다시 필요 인력 확보와 장비 구입 등에 투입한다. 이렇게 인력 기술 자금이 학교와 기업 사이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새로운 동맹(뉴 얼라이언스)’이 산학협력의 새 모델이 돼야 한다. 학교 입장에선 이런 ‘교육 비즈니스’를 터부시하지 말고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 ―교육부는 반도체 분야에서 2031년까지 15만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은 어떤가.“그동안 정원 늘려 달라고 그토록 요청했는데 이제는 교육부가 먼저 증원 신청을 해보라고 하니 반갑긴 하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직 큰 숫자만 있고 디테일이 없다. 반도체 인력 15만 명이라고 하면 그 안에는 박사급 이상의 최상위 연구자부터 산업현장에서 당장 필요한 인력 등 다양한 레벨의 인력이 존재한다. 어느 레벨의 인력을 어디서, 어떻게 양성할지 구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한다. 그게 만들어져야 각 대학이나 기업에 특정한 역할을 맡길 수 있다. 청사진을 던졌으면 빨리 알맹이를 채워야 한다.” ―서울대에도 반도체 관련 교수가 10명 남짓이고 학생 정원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고 들었다. “공대 전체 교수가 320명인데 과거 관행대로 하면 연간 2명을 증원해준다. 반도체 전공으로 다 채워도 2명밖에 늘지 않는 것이다. 학생 정원 늘리는 것도 교육부가 개별 과 정원을 일일이 정한다. 교육부가 전국의 대학 사정을 어떻게 다 알고 정원을 정하겠나. 대학에 자율성을 줘야 한다. 학교별 또는 단과대별로 전체 정원을 주고 그 속에서 자율적으로 정원 배분을 하게 하면 된다. 그래야 급변하는 기술 수요에 맞춰 탄력적인 정원 운영이 가능하다.” ―지난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 진학 등을 위해 자퇴를 한 숫자가 1400명이 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의대 쏠림 현상을 보는 공대의 시각은 어떤가.“최근 이 문제가 심각해진 건 코로나19의 영향이 있다. 집에 있다 보니 재수를 위해 공부할 여유가 많아졌고 주변의 권유도 이어졌을 것 같다. 의대 쏠림 현상은 의대 학장도 근심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의대에 수학 잘하고 똑똑한 인재들이 몰리는 건 국가 인력 관리 차원에서 낭비가 분명하다. 의사의 높은 연봉과 직업적 안정성이 원인인 건 맞다. 하지만 챗GPT 열풍에서도 확인되듯 인공지능이 본격 도입되면 지금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분야가 머지않은 미래에 가장 불안한 분야가 될 수 있다. 의사도 그중 하나다. 앞으로 파이가 커지는 건 지금은 불확실한, 그래서 도전 가능성이 더 많은 기술 분야다. 자녀를 의대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이 예측하는 미래와 실제 미래는 다를 수 있다.” ―인식 개선과 함께 공학기술자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나 여건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반도체 기업은 맨날 인재가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최고의 인재를 원한다면 의사에 버금가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면 된다. 또 창업으로 성공하는 사례도 많아져야 한다. 로버트 랭거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전공 분야인 나노기술을 이용해 백신 업체인 모더나를 세웠고, 30개 이상의 회사를 만들었다. 그가 창업한 기업의 가치는 30조 원이 훌쩍 넘는다. 또 창업에 한 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학생들에게 실패의 두려움이 적어진다. 이런 사례가 확산돼야 자연스럽게 의대 쏠림 현상이 사라질 수 있다. 서울대 교수들도 MEMS(미세전자제어기술)를 이용해 사막에서도 고당도 토마토를 재배하거나, 미생물 진단 및 인공지능을 이용해 패혈증을 빠르게 진단하는 업체를 세워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가 있다.” ―또 이과생들이 통합 수능 여파로 문과에 진학하는 ‘문과 침공’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통합수능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과=미적분’이라는 통념부터 없애야 한다. 이과 학생들이 고교 때 배우는 수준을 조금 낮추고, 문과도 수학 과학을 좀 더 하도록 해야 한다. 고교에서 이과 문과 가리지 말고 배울 범위를 정해서 가르치고, 거기서 벗어나는 부분은 대학에서 가르치면 된다. 고교와 대학 커리큘럼을 바꾸는 일이어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입시제도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인재는 다양해야 한다고 본다. 영재고 과학고 일반고 학생들이 섞이고, 문과 이과도 섞여서 공부해야 시야도 넓어지고 시너지도 난다.” ―챗GPT로 인한 AI 열풍이 불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챗GPT가 대단하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의미 없다. 개별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들 기술이 어디서 모여 새로운 시스템 혹은 산업을 창출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귀결점은 결국 인간이다. 최근 기술 발전이 너무 빠르다 보니 기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 잊혀졌는데 다시 합칠 때가 됐다. 개인적으론 ‘헬스케어 엔지니어링’에 주목한다. 엔지니어링이란 단어를 꼭 쓰고 싶다. 개별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공대와 의대는 기본이고, 체육학 식품영양학 약학 등이 함께해야 한다.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가 가까운 미래에 가장 유망한 분야라고 본다. 민간자금을 유치해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홍유석 서울대 공대 학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누비라 등 승용차 개발에 힘썼다. 미국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털리도대에서 교수로 일하다 2003년 모교 교수로 돌아왔다. 올해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 됐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올해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인덱스 관계’를 꼽았다. 아는 사람을 친밀도에 따라 분류(인덱스)해 필요 이상의 관계를 맺지 않고 관리한다는 의미다. ‘인덱스 관계’에선 소수의 신뢰할 만한 사람과 끈끈한 정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얕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선호된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이 영향을 미쳤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면서 더욱 강화된 측면이 있다. ▷지난달 30일 마스크 착용이 ‘의무’에서 ‘권고’로 완화되면서 대중교통과 의료시설 등을 제외하곤 3년간 쓰던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불러온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사람들의 고립감과 외로움은 커졌다. 특히 절박한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사람이나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줄어들었다. 기댈 곳이 없어지니 우울감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 39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2일 발표한 ‘코로나19와 사회통합 실태 조사’는 이런 경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큰돈을 갑자기 빌릴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47.7%였다. 2017년 같은 조사 때 71.5%보다 무려 23.8%포인트 낮다. ‘아플 때 도움 받을 사람이 있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6∼15%포인트 낮게 나왔다. 그에 비례해 우울감도 함께 커졌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우울감이 늘었다는 응답은 20%가 넘었고, 줄었다는 대답은 3%에 그쳤다. ▷조사 대상 가운데 임시 일용직이나 스스로를 하층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훨씬 큰 타격을 입었다. 예를 들면 큰돈을 빌릴 사람이 있다는 항목에서 최하위 소득자의 답변은 최상위 소득자에 비해 절반 이하였다. 일상으로의 회복 속도도 차이가 나 ‘회복됐다’는 응답의 경우 사회적 취약계층이 비취약계층보다 20%포인트나 낮았다. 코로나 감염률은 빈부 차이가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가 생물학적으론 공평했으나 사회적으론 불평등하게 영향을 끼친 셈이다. ▷마스크를 벗은 민낯을 보이는 것이 어색해 여전히 마스크를 쓰게 된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앞으로 ‘코로나 학번’이 본격적으로 입사하게 되면 사회성과 적응력이 부족할 것을 가장 우려한다고 한다. 부모들은 장기간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아이들의 언어 발달이 늦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물론 비대면을 ‘뉴노멀’로 여겨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서로 만나고 어울리는 일이 인간의 본능에 더 가깝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후유증 극복과 별개로 정서적 관계 단절의 후유증은 그리 빨리 치유될 것 같지 않다. 특히 사회적 약자는 더 어려울 것이다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프로그램인 ‘챗GPT’에 작년 한국 대선을 분석한 글을 써달라고 필자가 직접 요청해 봤다. 10초도 안 돼 A4 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내놓았는데 결론이 엉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홍준표 후보와의 대결에서 여유 있게 승리해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해봤다. 이번엔 문 대통령이 51.04%를 득표해 48.96%에 그친 안철수 후보를 이겼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긴 것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당시 윤석열은 후보가 아니었다고 답했다. ▷미국 스타트업 ‘오픈AI’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챗GPT는 요즘 압도적인 화젯거리다. 미국 의사고시, 변호사시험, 경영학석사(MBA) 등 전문직 시험도 통과하고 석사 수준의 논문, 의회 연설문도 척척 써낸다는 무용담 같은 얘기가 넘친다. 사용자가 잘못된 사실을 바탕으로 질문하면 그 오류를 지적하거나 노래 가사, 시 등 감성적인 글도 자유자재로 내놓는다. 챗GPT에 선수를 빼앗긴 구글은 곧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드’를 내기로 했고, 네이버도 상반기 중 ‘서치GPT’를 출시할 예정이다. ▷챗GPT가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적지 않다. 데모 버전인 챗GPT는 2021년 자료까지만 학습돼 있어 최근 상황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또 학습하지 않은 사실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억지로라도 답을 하도록 돼 있어 2022년 한국 대선 분석 글 같은 엉터리 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특히 의료나 교육 같은 분야에선 인공지능의 말을 멋모르고 믿었다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미국 의사가 환자의 연령, 성별, 증세 등을 챗GPT에 넣자 구체적 병명을 내놓았지만 잘못된 진단이었고, 근거로 제시한 연구 논문 역시 가짜였다는 사례도 있다. ▷챗GPT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미라 무라티가 최근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AI가 사실을 꾸며낼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 언어 기반 모델의 AI가 가진 한계인 셈이다. 무라티 CTO는 나아가 나쁜 사람이 악용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한 규제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가치에 부합하도록 AI를 통제하려면 급속한 기술 발전의 속도에 발맞춘 AI 윤리와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경고인 셈이다. ▷2016년 혜성같이 등장한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꺾어 바둑계를 뒤흔들었다. 이후 많은 AI 바둑 프로그램이 등장해 인간을 실력으로 압도했다. 하지만 AI의 실력을 흡수한 인간의 실력도 진일보하고 있다. 챗GPT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도 여러 문제점이 있으나 기술 진보로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면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안전장치를 마련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전국에서 의대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교는?” 답을 과학고나 자사고 같은 유명 고교에서 찾으려고 하면 이미 출발부터 틀렸다. 정답은 ‘서울대’라고 한다. 서울대생 가운데 재수나 반수(半修)를 해서 의대에 가는 학생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의 우스갯소리지만 최근 대학에 불고 있는 ‘의대 쏠림’ 현상을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종로학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서 자퇴한 학생이 1874명으로 전년 대비 40% 늘었다. 이들 대학의 입학 정원이 대략 1만2000여 명이니까 6명 중 1명꼴로 어렵게 얻은 학생증을 자진 반납한 셈이다. 이들 자퇴생의 75%는 자연계열로 대부분 수능을 다시 쳐서 의약 계열에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자퇴생이 많아지면서 학과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어떤 난관이 있어도 의대에 들어가겠다는 것은 과학·기술 인재를 키울 목적으로 설립된 과학고, 영재고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과학고는 ‘의학 계열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 학생만 입학시킨다. 만약 서약을 어기고 의대에 진학하면 장학금·교육비 환수, 대입 추천서 제외 등의 불이익을 준다. 하지만 올해 입시에서 서울과학고는 3학년 정원의 32%인 41명, 경기과학고는 19%인 24명이 의대에 지원했다. 그동안 지원받은 교육비 500만∼600만 원을 토해 내는 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대 선호 현상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됐지만 최근 강도가 더 세졌다. 의대에 목을 매는 이유는 의대 졸업 후 누릴 수 있는 직업적 안정성과 고소득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3070만 원이다. 대기업 평균 연봉 7000만 원의 3배를 웃돈다. 개원의는 더 높아 평균 3억 원에 육박한다. 청년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는데 의대에 입학만 하면 장밋빛 미래의 문을 열 수 있으니 실력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무더기 자퇴로 공백이 생기면 중위권 대학 학생들이 편입을 위해 재수나 반수를 하고, 다시 지방대 학생들을 자극하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다. 이처럼 의대가 블랙홀처럼 우수한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것은 대학 교육과 인재 관리 측면에서 국가적으로 큰 낭비다. 의대 쏠림은 결국 다른 선택지가 불확실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창업 등에 도전할 만한 환경이 부족하고,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와 적성을 펼치는 데 있어 의대만큼 매력적이고 보상 받을 수 있는 길이 많아야 의대 쏠림이 사라질 수 있다.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하겠지만 정부와 산업계, 교육계가 차근차근 숙제를 풀어가야 한다.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안성준 8단과 대만 신인왕 출신인 리웨이 5단의 대결은 시종 엎치락뒤치락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막판 집중력에서 안 8단이 앞서며 승리를 거뒀다. 리 5단의 막판 난조는 상변에서 백 92로 끊을 때부터 시작됐다. 참고 1도처럼 상변 흑을 크게 공격했으면 백이 유리했다. 실전에선 흑 99의 단수 한 방이 아팠고 103의 씌움을 당해 백 두 점이 고립됐다. 최후의 패착은 백 124. 하변에서 길게 뻗어나온 백 대마를 살려야 할 시점에 중앙 백 3점의 안위부터 걱정한 착각이었다. 참고 2도처럼 뒀으면 흑도 백을 잡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흑 127이 결정타가 됐고 133으로 중앙 흑 돌마저 살리자 리 5단은 돌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가 패착이었다. 흑 25, 27로 하변 백 대마가 속절없이 잡혀서는 승부가 결정됐다. 백은 26으로 끊는 수에 흑이 직접 응수할 것이라고 착각한 듯하다. 하지만 흑이 27로 뚫어 하변 백 대마를 잡아 상황 끝이다. 백 26으로 31의 곳에 둬 흑 5점을 잡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또 참고 1도 백 1로 연결하는 것 역시 흑 6까지 대마의 탈출로가 없다. 백 28은 마지막으로 우상귀를 차지하며 버티는 것이지만 흑 33으로 중앙 백 2점을 잡아 승부가 끝났다. 백 28로 참고 2도 백 1로 탈출을 시도해도 하변 백 대마는 살길이 없다. 고작해야 중앙 흑 5점을 잡는 정도다. 안성준 8단이 신진서 9단에 이어 16강전에 진출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는 승부수. 백 22까지는 일사천리의 진행인데, 백은 상변 흑 6점을 일단 잡았다. 이렇게 실리를 크게 챙겨놓고 하변에서 뻗어 나온 대마의 생사에 승부를 걸겠다는 뜻이다. 수많은 변수가 있지만 상당히 유력한 전략이다. 대마의 생사를 둘러싸고 어느 한쪽이 삐끗하면 그대로 승부가 결정된다. 보통 사는 것보다 잡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흑에게 부담이 더 많다. 흑도 전력을 다해 백을 잡으러 가야 한다. 우선 흑 23이 절대의 한 수. 여기서부터 백의 눈 모양을 없애 가야 한다. 그런데 상당히 복잡하게 이어질 것 같던 창과 방패의 대결이 백 24의 한 수로 싱겁게 정리되고 말았다. 이 수로는 백 ○ 석 점을 가볍게 보고 참고도 백 1로 뛰어야 했다. 흑 2의 응수는 불가피한데 백 3으로 들여다보며 백 대마를 살리자고 했으면 승부는 알 수 없었다. 백 24는 착각인데 어떤 수읽기 오류가 있었던 것일까.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으로 백 2점이 갇혔다. 물론 백 2점이 쉽게 잡힐 돌은 아니다. 리웨이 5단은 백 104, 106으로 A의 3·3에 들어가는 수를 확보했다. 2점이 잡히더라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한 것. 이어 백 108이 수습의 맥이다. A로 들어가는 수를 더욱 강력하게 하면서 B로 붙여 건너는 수를 맞보고 있다. 흑 109도 급소. 하변에서부터 뻗어 나온 거대한 백 대마가 은근히 불안해졌다. 백 110으로 들여다보는 수에 대해 어느 쪽을 잇지 않고 흑 111로 뒤에서 받은 것이 좋은 수. 이때 리 5단은 결심한 듯 백 112로 뚫고 백 114로 들여다본다. 백 114로는 참고도 1, 3으로 귀를 차지하고 흑이 두 점을 잡을 때 백 7로 두면 미세한 승부였다. 백 114는 B로 넘는 퇴로를 스스로 끊고 여기서 승부를 보자는 배수진이다. 그 승부수는 백 116인데 리 5단은 어떤 복안이 있는 것일까.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88, 90으로 흑 한 점을 차단하고 나섰지만, 흑도 91로 젖히는 수단이 있어 백도 마냥 편하게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백 92로 끊은 수가 큰 실착. 참고 1도를 보자. 백 1로 젖히고 3으로 가르고 나오는 행마가 흑에게 훨씬 부담스럽다. 백 92 이후 수순은 외길이다. 무엇보다 흑 99의 단수가 백에게는 뼈아프다. 흑의 모양이 활짝 피어나고 있다. 흑 101은 안성준 8단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수. 백은 회돌이를 당할 수는 없기에 백 102로 참았다. 하지만 백은 참고 2도 백 1로 응급처치를 하고 3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더 좋았다. 백 15까지 앞길을 알 수 없는 공방이 펼쳐진다. 흑 103이 요처 중의 요처로 백 두 점이 갇혔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의 단호한 끊음에 안성준 8단이 당황한 것일까. 흑 77이 부자연스러운 행마였다. 백 78과 교환되어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마땅히 참고 1도 흑 1로 뻗고 3을 선수로 처리했어야 했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흑 7, 9로 좌변을 보강할 수 있고, 11로 반격에 나설 수 있다. 흑 79로 뒤늦게 기대기 전법을 들고 나섰지만 참고 1도에 비해선 한참 부족한 모양이다. 흑 81 때가 백이 확실히 우세를 잡을 기회였다. 흑 81에 응수하지 말고 참고 2도처럼 처리했으면 중앙 백이 두터워져 확실하게 앞설 수 있었다. 형세가 유리하다고 본 리웨이 5단은 백 82로 순순히 물러섰는데 흑도 83으로 지켜 해볼 만한 국면이 됐다. 흑 87은 좋은 감각.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가 굴러온 기회를 스스로 놓친 수. 참고 1도를 보자. 백 1로 들여다보고 5로 자연스럽게 흑을 뚫고 나갔으면 순식간에 ‘백 유리’의 형세를 만들 수 있었다. 흑 ‘가’면 백 ‘나’로 그만이다. 백 ◎로 한가하게 두는 바람에 흑 ○로 지켜 이젠 백중지세. 흑 69, 71은 방향 착오. 참고 2도 흑 1, 3으로 하변 백을 압박할 곳이었다. 물론 백은 4, 6으로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 틈에 좌변 흑 진을 키울 수 있었다. 백 72, 흑 73도 모두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초반 내내 안성준 8단의 강수에 시달리던 리웨이 5단은 이젠 반격으로 주도권을 잡아야 할 때라고 봤는지 74, 76으로 강력하게 끊고 나왔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일본 법 의존을 극복하고 새로운 법 강의를 개척한 법대 교수, 엄정한 재판관, 능란한 외교관, 현실감각이 뛰어난 국제정치가…. 이 많은 수식어와 직업의 조합을 한 사람의 이름 앞에 붙일 수 있을까.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79)이라면 가능하다. 35년간 서울대 법대 교수로 봉직하다가 2003년 재판소 초대 재판관과 2, 3대 재판소장을 맡아 12년간 국제무대를 누빈 인물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고하 송진우 선생의 손자인 그가 최근 ‘고독한 도전, 정의의 길을 열다’(나남출판)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내놓았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이 책은 그가 출생 때부터 재판소장직을 수행하고 퇴임할 때까지의 긴 여정을 담고 있다. 6·25전쟁을 겪은 어린 시절과 고등고시 행정과와 사법과에 연이어 합격하고 미국 유학 후 서울대 법대 교수에 임용된 것 등의 일대기는 일인칭 소설처럼 흥미롭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12년간의 국제형사재판소에서의 활약이다. 2002년 국제형사재판소가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되자 그는 정부의 추천으로 이듬해 초대 재판관으로 선출됐다. 그도 감개무량했는지 “정의를 통한 평화의 실현을 위하여 인류에게 봉사하는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것은 분명 나에게는 새로운 도약의 순간이고, 인생의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다”라고 적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으로 전쟁, 침략, 집단학살, 반인도적 범죄 등 네 가지 중범죄를 범한 권력자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처벌하는 ‘로마 규정’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국제사법기구였다. 그는 2009년 제2대 소장이 됐다. 한국인이 신설된 지 얼마 안 되는 국제기구의 최고책임자 자리에 오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어 2012년 소장 선거에서 재선됐다. 재판소장은 그냥 법대 위에 앉아 엄숙하게 판결만 내면 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회원국을 확대하기 위해 100개국 이상의 국가원수들과 정상회담을 했고 123개국 회원국의 대사와 날마다 상대해야 하는 외교관이었다. 또 재판소로 쏟아지는 각국의 정치적 압력을 이겨내야 하는 정치인이었다. 심지어 리비아의 카다피 아들 사건 때문에 리비아로 갔던 재판소 직원 4명이 한 달 가까이 구금되자 직접 리비아로 날아가 이들을 데리고 무사 귀환한 협상가이기도 했다. 재판소장직을 수행하며 겉으로는 화려한 명성을 얻은 그였지만 흠 잡히지 않기 위해 철저한 처신으로 일관했다. 그는 “공과 사를 구별해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웃음으로 대하되 말을 조심하고, 공무 외에 일체의 사교적 접촉을 삼갔다. 헤이그 생활 12년은 도덕적 자기 검열 때문에 외롭고 힘든 세월이었다”고 술회했다. 그가 퇴임할 무렵 네덜란드 정부는 최고 훈장인 ‘기사대십자훈장’을 수여했고 네덜란드에 영구 거주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2015년 유엔총회에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결의안을 심의할 때 유엔 주재 네덜란드대사는 “송상현 소장은 국제형사재판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진정한 국제 정의의 챔피언”이라고 격찬했다. 2015년 퇴임한 그는 국내로 돌아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일 말고는 ‘완전 실업자의 묘미를 즐기겠다’고 했으나 원고지 5000장이 넘는 회고록 집필에 힘을 쏟았다. 회고록은 그의 개인 기록이기도 하지만 국제형사재판소의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흑이 ●로 지켰는데도 백은 52, 54로 급소를 찔러 공격한다. 흑 53으로 참고 1도처럼 당장 끊는 것은 백 12까지 백이 돌을 연결시키며 짭짤하게 실리도 벌 수 있다. 흑으로선 하변에서 한 일이 없게 된다. 여기서 백 56이 과한 선택이었다. 흑을 끝까지 공격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참고 2도처럼 뒀어야 했다. 백 13까지 조금이나마 백이 편한 초반 진행이다. 흑도 바로 실수가 나온다. 흑 61은 62의 곳에 둬야 했다. 선수를 잡고 백을 1선으로 넘게 하는 정도로 흑은 충분한 형세인 것이다. 흑 61, 63으로 억지로 백을 차단했기 때문에 백에게 기회가 찾아온 상황. 하지만 백 64가 너무 밋밋한 수였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로 연결한 백 모양이 두텁다. 흑이 백을 양분하고 있지만, 흑이 공격하기는커녕 공격당하기 십상인 상황이다. 흑 37은 좌하 백 석 점을 더 압박하려고 살짝 비튼 행마인데, 그냥 참고 1도처럼 평범하게 뛰어나가는 것이 더 반듯해 보인다. 백 40, 42는 수습의 맥. 흑 45는 정석 중 하나인데 하변 흑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참고 2도 흑 1로 백 한 점을 잡는 편이 좋았다. 백 6까지 예상되는데, 서로 무난하게 타협된 모양이다. 흑 49로 씌워 흑이 신바람을 내는 듯하지만 흑 모양이 허약해 실속이 없다. 백 50은 좌하 백을 살리기 위한 단단한 보강인데 너무 움츠린 느낌이다. 흑도 51로 지켜 한숨 돌리게 됐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백 ◎로 침입해 하변에서 근접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백병전까지 가기는 싫은지 흑 19, 백 20 등 서로 차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백 20은 참고 1도 백 1의 두 칸 벌림이 먼저 떠오르지만 나중에 우하 흑 석 점을 공격하기 어렵다. 이 석 점은 흑 ‘가’, 백 ‘나’, 흑 ‘다’로 두는 수가 있어 생각보다 탄력적이다. 백 26은 강수. 그러나 참고 2도 백 1로 막고 흑을 넘겨준 뒤 우하 흑 석 점을 공격하는 것이 더 좋았다. 백 9까지 흑 돌을 몰아가며 중앙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때 흑 27이 경솔한 수. 백이 순순히 이어주리라고 생각했지만 백 28로 한발 비껴 보강한 것이 좋았다. 백 36까지 하변 백 모양만 좋게 해준 셈이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안성준 8단은 국내 랭킹 7위. 최근 KBS바둑왕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자는 신진서 9단이었다. 대만의 신인왕인 리웨이 5단은 국제무대 경험이 없는 젊은 기사다. 흑 5의 3·3 침입에 백 6으로 받은 것은 큰 세력을 쌓기보다는 국면을 잘게 쪼개서 운영하겠다는 뜻. 흑 9로는 참고 1도 1로 뛰는 것도 많이 둔다. 축이 흑에게 유리하기 때문. 흑 13도 또 한 번 고민되는 수. 참고 2도 흑 1로 막는 것도 유력하다. 흑 9까지 하변 백 모양도 지우고 우변도 제법 단단해진다. 하지만 선수를 빼앗기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흑 17은 좌하 백 석 점을 최대한 압박하는 의욕적인 수. 백 18의 침입 겸 공격도 당연하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초반 우세했던 흑은 우하에서 공격에 실패하며 역전당했다. 우선 흑 89가 과했다. 백을 강하게 압박하려는 뜻이었지만 오히려 약점이 노출돼 백 90, 92의 역습을 당한 것. 참고 1도를 보자. 흑 1처럼 한 칸 좁혀서 공격했으면 우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변 백과 우변 백이 연결해 가지만 흑 9까지 중앙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 이어 흑 109가 패착이었다. 보통 이렇게 늦춰 받고 싶지만 지금은 참고 2도 흑 1로 틀어막았어야 했다. 백이 살아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참고 2도의 흑 모양이 실전 모양보다 훨씬 뛰어나다. 이 두 번의 실수가 흑을 패배로 몰아갔다. 40 46 52=14, 43 49 54=31, 194 200 206=106, 197 203=191. 백 236수 끝 불계승.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로 끼운 것은 좌하 귀 패를 염두에 두고 팻감을 만들기 위한 공작인데, 애매한 의미가 있다. 좌하귀를 단패로 바꾸려면 흑이 A, B를 연속해서 둬야 하는데, 그사이에 백은 중앙 등에서 이익을 본다. 단패가 되면 백은 불문곡직하고 패를 해소해 좌하 귀를 살린다. 흑은 그 대가로 뭔가를 얻어내야 하는데, 패를 만들기 위해 이미 중앙 등에서 본 손해를 능가하는 팻감이 반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좌하 귀 패는 흑에겐 그림의 떡인 셈. 그래서 흑이 중앙에서 손을 빼지 못하고 27까지 일일이 응수를 한 것이다. 백 30 때 흑이 31로 받은 것은 의외. 참고도를 보자. 정상적이면 흑 1로 받는 것인데, 백 6으로 끼우는 묘수가 기다리고 있어 중앙 흑이 함몰한다. 그래서 백 2 때 흑 석 점을 버려야 하는데 실전 백 32로 뚫리는 것보다 크다. 흑 31을 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32로 좌변 흑 집이 꽤 부서졌다. 백 36을 본 신민준 9단은 돌을 던졌다.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전보 마지막 수인 백 ◎로 중앙 백과 상변 백은 연결됐다. 흑이 참고도 1, 3으로 백의 연결을 끊을 수는 있으나 백 6의 반격으로 공격하던 흑이 오히려 잡힌다. 결국 백 108을 두자 중앙 백은 자체에서 두 집 내는 수와 상변과 연결하는 수를 맞보기해 살았다. 지금 유일하게 남은 변수는 좌하귀 패. 하지만 세 수 늘어진 패여서 당장 흑이 결행하기가 어렵다. 흑 113까지 두텁게 둔 것은 좌하귀 패를 염두에 둔 것. 흑 119는 끝내기도 짭짤하고 세 수 늘어진 패를 두 수 늘어진 패로 줄인 것. 물론 정식 패가 되려면 아직 멀고 험하다. 그렇다고 흑이 빅으로 정리하면 형세를 뒤집을 수 없다. 백도 이 패를 의식해 120을 둔다. 흑이 팻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뜻. 흑 121 역시 팻감을 염두에 둔 수. 좌하귀 패를 둘러싸고 흑백의 샅바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다. 103=○, 106=100.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흑 81은 승부수. 흑이 실리로는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대마 사냥에 나선 것. 하지만 백 84로 붙이자 더 이상 공격이 여의치 않다. 흑 85로 젖힐 때 백은 조심해야 한다. 물론 참고 1도 백 1로 끊어도 흑이 수를 낼 수는 없다. 하지만 흑이 사석작전을 펼쳐 10, 12로 중앙을 틀어막은 뒤 중앙 백을 잡으러 가면 상당히 위험하다. 흑 87로 참고 2도 흑 1로 둬도 백은 6까지 깔끔하게 넘어간다. 실전과 비슷하다. 중앙에서 패가 났지만 사실상 의미 없는 패. 백이 팻감 비슷하게 98로 뛰자 백 대마는 거의 살아있는 형태다. 신민준 9단이 승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94=◎, 97=91.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