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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전직 외교 수장과 미국 정보기관의 감청 의혹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재미있는 영어 표현을 들었다. ‘클라이언타이티스(clientitis)’라는, 필자에겐 생소한 단어였다. 외교 당국자나 현지 주재원 등이 본분을 망각하고 클라이언트, 즉 ‘고객’인 상대국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방어하는 경향을 보일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협상 상대국 과신(過信), 의존국 과신 증후군 등으로 번역될 수 있겠다. 미 기밀문서 유출 사건으로 용산에 대한 감청 의혹이 불거졌을 때 우리 대통령실이 보인 대응 방식이 딱 그랬던 것 아니었나 싶다. 정작 미국은 ‘진본’이 유출됐다는 점을 인식하고 유감을 표시하며 색출 작업에 나섰는데, 무슨 연유인지 우리 대통령실은 “상당수 위조됐다는 데 한미 평가가 일치한다” “악의적 도청 정황은 없다” 등 실드 치는 데만 급급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기밀 유출의 용의자는 21세 하급 병사로 밝혀졌다. 빨간 반바지 차림으로 잔뜩 겁을 먹은 채 장갑차와 소총 등으로 중무장한 FBI 요원들에게 체포되는 모습을 보니 허탈함마저 들었다. 정부 정책에 분노한 내부 고발자도 아니고, 러시아 등 제3국의 개입도 아니고, 고작 자기 과시욕이 강한 일개 병사의 ‘철부지 일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코미디 같은 사건이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진 것도 황당하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우리 정부의 ‘조심조심’ 대응 방식이다. 용산에 대한 감청이 실제 이뤄졌는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등에 대한 테크니컬한 측면의 진상 규명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번 사건을 다루는 현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 동맹의 가치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아일보 창간 여론조사에서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가 84%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7%, ‘한미 연합훈련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8.8%에 달했다. “반미면 어때” 했던 말이 먹히던 시절이 불과 20년 전 일이니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지난 정부의 친중 노선에 대한 반작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 바탕엔 높아진 국가 위상에 대한 자존감이 깔려 있다고 본다. 이번 사건에서 친미-반미의 진영에 얽매이지 않은 보통의 국민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깊은 논의가 오가는 우리나라 최고의 권부(權府)가 진짜 뚫렸는지, 방어 태세에 허점은 없는지,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도 뚫리고 있는 건 아닌지 등을 걱정했다. “용산 이전 때문”이라는 식의 정치 공세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우려다. 정보전의 세계,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도 다 하는 활동임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드러난 이상 응분의 해명과 조치를 요구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정상회담 불똥만 의식한 듯 “사과 요구 않겠다” 등의 반응만 나오니 의아했던 것이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해 훼손됐던 동맹 복원의 기틀을 잡고 또 다른 미래를 열어가는 것은 중차대한 과제다. 그러나 지나친 동맹 의존이나 동맹 과신의 심리나 태도는 독(毒)이 될 수도 있는 만큼 경계해야 한다. 70년 전 “강대국은 믿어선 안 된다”고 했던 이는 다름 아닌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듬해인 1954년 미국을 방문한 그는 환영 행사에서 휴전에 대해 “미국이 겁을 먹어서”라고 일갈한 데 이어 의회 연설에서도 “나약하다는 것은 노예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등 미국을 대놓고 질타했다. 당시 국제 정세에 맞는 발언인지 여부를 떠나 적어도 결기는 있었다. 바야흐로 천하 양분의 시대라고 한다. 미국도 중국도 전 세계를 상대로 줄 세우기 압박에 나서고 있다. 고난도 외교일수록 당당함이 깔려 있어야 한다. 이번 건만 해도 미국 당국자들이 먼저 굉장히 곤혹스러워하고 미안해해서 “고맙다”고 했다는 식으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밥 먹을 때 매너’와 ‘공식 석상의 매너’는 달라야 한다. 한미 동맹의 본질적 가치, 상호 신뢰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단호히 하는 모습을 보일 때 동맹도 더 견고해진다. 곧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다. 국빈이란 형식이 아니라 국익을 깐깐히, 또 담대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일 때 흔들리는 지지율도 반등할 수 있다. 그래서 궁금하다. 대체 어느 단계에서 “상당수 위조” “한미 견해 일치” 등의 정부 메시지를 정했던 건지…. 흐지부지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총사령탑인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경질 사건은 석연찮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 문화 행사 보고 누락이 트리거가 됐다는데, 그게 경질 사유가 되느냐는 반응이 적지 않다. “낙타가 쓰러지는 게 깃털 하나 때문이겠냐”는 말도 나오지만, 낙타를 짓눌러 온 등짐의 실체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 구구한 억측만 나온다. 국가안보실장은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장관급 직제다. 국방, 외교, 통일 문제를 두루 관장하는 대통령실의 투톱 중 하나다. 현 정부 들어 경제안보비서관이 신설돼 영역이 더 확대됐다. 그런데 ‘정책’ 문제도 아니고 일정 보고 문제로 11개월 만에, 그것도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추진된 대통령 방미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물러났으니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여권과 외교가 등 얘기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이 미국 측의 ‘블랙핑크-레이디 가가’ 공연 제안 얘기를 처음 들은 건 3월 9일이다. 대선 1주년이던 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방문을 위해 이동하던 중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던 외교부 간부의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미국 측이 합동 공연을 제안했는데 왜 한 달 반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답도 주지 않느냐는 항의를 하더라”는 취지의 직보(直報)였다고 한다. 국가안보실에 경위를 파악한 대통령의 강한 질책이 있었고 김일범 의전비서관이 이튿날 사퇴한다. 여기서 그쳤으면 한미 회담 전 안보실장 교체라는 이례적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의전비서관 경질 후 2주일도 더 지나 이문희 외교비서관도 교체된다. 행사 조율은 엄밀히 말해 의전비서관 소관이다. 외교비서관도 문화 행사 제안에 대한 답을 수차례 요청한 주미 대사관 전문을 열람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자기 고유 업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데도 연대 책임을 진 것이다. 이 비서관은 김 전 실장의 대학 직속 후배로 김 전 비서관과 함께 안보실 내 ‘김성한 라인’으로 분류된다. 시간차를 두고 김 전 실장의 핵심 비서관이 둘 다 교체된 셈이다. 뭔가 큰 사달이 났음을 직감한 동아일보 취재로 ‘김 실장 교체 검토’가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대체 왜 블랙핑크 보고를 뭉갰을까 하는 점이다. 미국 측의 제안이 왔으나 블랙핑크 섭외가 쉽지 않은 데다 ‘부부동반’ 문화 행사보다는 ‘정상’ 간 외교 일정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질 바이든 여사가 제안했다고 하나 아이디어 수준으로 여겼을 수도 있고, 거액의 개런티 비용을 누가 정산할지 등 복잡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김 전 실장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 번도 블랙핑크 공연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미국이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소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보고 누락은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이 정도 사안이 벌어져 상대방이 불만을 보였다면 징계감이다. 다만 정상회담 콘셉트의 판단 문제였다면 조용히 깔끔하게 처리하고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다. 국가안보실장 책임문제로 일이 커졌으니 외교안보라인의 난맥상 문제로 논의가 옮겨간 것은 당연했다. 그중의 하나가 김 전 실장과 김태효 1차장의 알력설이다. MB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4년 동안 대외전략비서관과 대외전략기획관으로 지내며 실세로 자리매김됐던 김 차장은 같은 정부에서 1년 남짓 외교부 2차관을 지낸 김 실장과 업무 궁합이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김 전 실장이 보안을 이유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등 비밀주의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는 얘기도 적잖이 흘러다닌다. 블랙핑크 일만 해도 김 차장은 몰랐다는 것이다. 야당에선 김건희 여사 라인과 정통 외교 라인 간에 갈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구체적 근거는 없다. 의전비서관 직무대리를 김 여사와 친분 있는 선임행정관이 맡고 있으니 뒷말이 나올 만한 정황만 있을 뿐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한일 정상회담은 한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한일 회담 후폭풍을 잠재우기도 벅찬데 돌발 변수까지 벌어졌다. 잇단 악재에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30%로 떨어졌다. 곧 집권 1년. 사람이 문제인지, 시스템이 문제인지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도 좀 더 세련된 수습 방법은 없었는지 곰곰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이상 조마조마하고 싶지 않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주로 나온 조언의 핵심은 한마디로 “천천히 서둘러라”였다.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으로 잘 알려진 이 말엔 신중함, 냉철함, 치밀함 등의 의미가 깔려 있다. 정치인이 아닌 정통 외교관 출신들이 이 말을 자주 썼다. 한일 관계는 살짝 건드려도 터질 수 있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이니 섣부르게 접근하지 말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한일 관계는 늘 미묘한 정치 문제였다. 지난 10여 년, 특히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한일 관계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다. 국내 여론도 문제지만, 역사의 가해자인 일본 측 사정도 녹록지 않긴 매한가지였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는 문 정부 때 내팽개쳐진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외상이었다. 그로선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섣불리 발을 담갔다가 제2의 위안부 상황이 재연될 경우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민당의 ‘오너’도 아닌 그는 최대 계파인 아베파 등 강경 보수 세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도 했다. 4월엔 통일지방선거와 중의원 보궐선거도 예정돼 있다. 이번 방일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란 정황은 이처럼 한둘이 아니었다. 4월 방미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던 이유다. 일본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듣는 귀’라는 별명을 가진 기시다는 ‘말하는 입’이 없는 듯 신중했다.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했을 뿐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사죄를 끝내 입에 올리진 않았다. 우리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안에 대해 “대단한 결단”이라면서도 그에 걸맞은 호응 조치도 나오지 않았다. 되레 독도 위안부 문제도 논의된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하거나, 2018년 우리 함정이 독도에 접근한 일본 초계기를 향해 사격용 레이더를 조준했다는 ‘레이더 조사(照射)’ 등 그간 양국 간의 해묵은 크고 작은 현안을 다 끄집어내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일본 측의 정상회담 브리핑 과정을 보면서 이러니 ‘존경받지 못하는 대국’이라는 소리를 듣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본의 이런 태도는 사실 예견된 것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왜 그리 강제징용 해법과 방일을 서둘렀을까 . 대통령의 직진 스타일이나 소영웅주의를 거론하기도 하고, 외교라인의 판단 착오를 지적하기도 한다. 여권의 설명은 다르다. 현실적으로 더 이상 방치할 수도, 달리 해법도 찾을 수 없는 지경까지 온 데다 시간을 더 끈다고 해서 일본 측에 결정적 변화가 올 가능성도 거의 없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딱히 감출 패도 마땅치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변호사처럼 문구 하나하나를 따지는 일본에 전혀 다른 초식(招式)을 구사하는 전략을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런 ‘이니셔티브 전략’이 먹힐지 아닐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에서 “친일 넘어 숭일(崇日)” “조공” “일본 하수인 전락” “망국적 야합” 운운하며 반일 프레임을 또 들고나온 것은 뻔뻔하다. 문 정부 때 파탄 난 한일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스스로도 알면서도 이완용이니 제2의 을사늑약이니 하며 철 지난 ‘매국노’ 노래만 틀어대니 MZ세대를 비롯한 국민 반응도 시큰둥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나 여권도 ‘결단’이라는 표현은 자제하는 게 낫다. 과거 한일 관계에선 크게 두 가지 결단이 있었다. 1964년 독일에 돈을 빌리러 갔던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과 수교를 맺으라”는 에르하르트 총리의 충고를 듣고 전격적으로 한일 수교에 나선 것, 그때 ‘사쿠라’ 소리를 들어가며 한일 수교에 찬성했던 DJ가 오부치 선언을 이끌어내고 일본 문화 개방 결단을 단행한 것이다. 그 역사의 흐름은 이어가되,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대단한 결단을 한 것인 양 포장할 필요까진 없다. 강제징용 문제를 국제 중재위로 가져가지 않는 한 제3자 변제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다만 정치엔 논리뿐 아니라 감성의 영역도 존재한다. 어쩌면 감성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그 점에선 미흡했다. “국익 위한 결단”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 등의 수사보다는 이제라도 국민과 징용 피해자들에게 저간의 사정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단 얘기다. “천천히 서둘러라”의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양자로 들어간 이름도 없던 시골 소년이었다. 몸이 병약해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진 못했지만 주도면밀하게 궁극의 권력을 얻은 인물이다. 한일 관계 개선의 첫발은 뗐다. 물꼬를 텄을 뿐 어느 쪽으로 물결이 칠지는 알 수 없다. 곧 방미다. 이젠 주사위 게임이 아닌 체스 게임을 하듯 주도면밀해야 한다. 진짜 게임은 이제 시작이니까.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어느덧 대선 1년,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마디로 지옥에 갇혀 있다. “회술레 수치” “조리돌림” 운운하며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점점 더 궁지, 아니 사지로 내몰리는 형국 같다. 방탄 갑옷은 구멍이 뻥뻥 뚫려 너덜너덜해졌다. 업보(業報)다. 성남시장 때 일이 줄줄이 터져 나올 줄 어찌 알았겠나.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당 대표가 되고 당헌 80조(부정부패로 기소 시 직무정지) 무력화까지 나섰지만 패장의 당당치 못한 처신에 적잖은 민주당 지지층이 돌아서고 있다. 견고했던 169석 민주당의 성벽은 깨지기 시작했다. 개딸과 문파의 내전(內戰)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조짐이다. “문재인도 수박7적”이라는 개딸 구호가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본질을 꿰뚫는다. 첫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드러난 30여 표의 집단 이탈은 이심전심인지, 조직적 반란인지 알 수 없지만 문 전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졌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 대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2주 전 칼럼에서 “설마” 하면서도 민주당이 ‘투표 불참’을 당론으로 정할지 모른다고 썼다. 검찰이 체포동의안을 또 제출하면 아예 투표를 보이콧하자는 논의가 실제 나오고 있다.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다가 비명 측의 일격을 받은 친명 핵심들은 이판사판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이들은 국민 여론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내부의 적에 굴복하는 게 더 두렵다. 총선 공천이 위태롭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판에 의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 표결 때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 중에 이 대표와 끝까지 정치 운명을 같이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안개가 짙어 길이 안 보이니 일단 다수의 편에 섰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하며 여론의 눈치를 보는 회색지대 의원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투표 보이콧 당론이 쉽지 않은 이유다. 설사 보이콧을 한다 해도 두 번 세 번 할 수 있겠나. 결국 이 대표가 언제 어떻게 결단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민주당은 어느 비명 의원 표현대로 “방탄 프레임에 갇혀 발버둥칠수록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요즘 민주당 지지율 하락세는 뚜렷하다. 이 대표는 그럼에도 개딸과 친명 핵심들의 호위하에 끝까지 민주당 담장 안에 숨으려 한다. 여권으로선 최상의 그림이다.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전의 계기는 남아 있다. 시간이 문제일 뿐 민주당이 뻔히 알면서 폭망의 길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3년 11개월 비정상적인 분탕질을 치다가도 총선만 다가오면 정상으로 돌아온 듯한 모습을 띠곤 하는 게 그간 봐온 한국 정당들의 생리다. 죽을 지경이 되면 살길을 찾느라 몸부림을 친다. 비대위 체제로 가든, 신장개업을 하든, 공천 물갈이를 하든…. 자의든 타의든 이 대표가 민주당에서 손절되면 국면은 바뀐다. 민주당은 변신의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심판을 받았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 사법 권력을 한 손에 쥐고도 국민연금 등 국가의 명운이 걸린 개혁엔 손놓았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 야당이 돼서도 반성을 하기는커녕 반도체법 등 성장 동력 살리기는 제쳐둔 채 매년 수조 원을 허공에 날리는 양곡관리법이나 강행 처리하려 한다. 그래도 민심은 변덕이 심하다. 현 정권이 오만함을 보이고 야당이 이재명 리스크를 벗어던지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또 달라지는 게 여론이다. 민주당 내부의 반란 기류가 여권에 심상치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쌍방울이든 백현동이든 검찰이 다시 구속영장을 칠 것이란 관측이 많지만 여권으로선 정치 득실만 따진다면 머리가 복잡해질 수 있다. 이 대표의 빠른 정리로 이어져 역설적으로 여권엔 독(毒)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법 리스크가 법정으로 넘어가면 경제 리스크가 부상할 수 있다. 나라 경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리도 없고…. 방탄 프레임은 점차 약해지고 윤석열 정부의 성적표가 도드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듯 여권 안팎에선 방탄 프레임을 어떻게 더 활용할지, 야당의 개미지옥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길게 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속도 조절’ 얘기가 오간다. 허나 이는 함정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어떤 길을 가든 여권으로선 상황 변수일 뿐 본질은 아니다. 호가호위 세력을 내치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진정성과 실력으로 성과를 입증하는 정공법을 펼치는 것 외엔 달리 길이 없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1년 전 이맘때 대선 구도는 혼미했다. 정권교체 진영의 단일화는 삐걱댔고 초읽기 단계까지 몰렸다. 안철수 후보가 마지막 심야 회동을 제안했을 때 윤석열 후보 측 첫 반응은 다소 떨떠름한 쪽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성사됐다. 단일화 효과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이제 와 따지는 건 좀스럽다. 미미했든 아니든 분명한 건 역사의 물꼬가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단 1%만 기여했다 해도….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 국면에서 단일화 상대였던 사람에게 “국정 훼방꾼” “적” 운운하는 상황을 접하며 ‘2번’을 찍었던 이들 중 “뭘 저렇게까지?” 하는 반응이 적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처럼 대놓고 역린을 뽑으려 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권력 속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그저 정권교체 공치사를 좀 과하게 하며 ‘윤안 연대’ 구호를 내세웠을 뿐이다. 역린을 건드린 건지조차 몰랐던 게 안 후보의 잘못일 순 있겠지만 “적”으로 규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통령이 직접 거칠고 투박한 비(非)정치적 용어까지 써가며 속내를 드러내는 방식이나 태도가 생경하긴 하다. 여의도 스타일이 아니라 좋은 게 좋은 식의 발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덜 위선적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그렇다 해도 당내 인사들을 향한 적의 표출은 처음 보는 광경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진심은 뭘까, 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윤핵관은 용산에서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정치를 잘 모르는 대통령이 간신 같은 몇몇 측근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는 논리 구조야말로 ‘대장’ 스타일의 대통령으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실은 윤핵관이란 용어엔 필자도 공감하진 않는다. 모름지기 핵관쯤 되려면 대통령과 대등하게 토론하고 때론 대통령 생각을 바꿀 정도는 돼야 한다. 윤핵관이라 불리는 이들이 그 정도의 역량을 갖고 있는지엔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어쩌면 대통령도 이들을 자신의 지시를 잘 따르고 이행하는 행동대장쯤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윤핵관 운운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 심리의 영역이라면 내년 총선 승리 여부는 대통령의 명줄이 걸린 문제다. 내년 총선에서 지면 ‘식물 대통령’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 그래서 더 두렵고 조바심을 낼 수도 있다. 이준석 트라우마가 컸다. 손발이 착착 맞는 대표를 세우고 당과 정부, 대통령실이 똘똘 뭉쳐 이재명당과 아마겟돈 수준의 일전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할 법하다. 박근혜 사례처럼 대통령과 당이 따로 놀다 망한 잔혹사가 멀리 있지 않다는 얘기에도 귀가 솔깃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당정일체, 명예당대표 추대 얘기에 이어 대통령실과 당의 ‘혼연일체’ 주장까지 들고나온 건 지나치다. 혼연일체란 생각과 의지, 행동이 합쳐져 완전히 하나가 되자는 건데, 무슨 검사동일체 원칙의 여의도 확장 버전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대통령과 당이 사사건건 부딪쳐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 뜻에 따라 당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금이야 대통령의 힘이 세니까 눈치를 보지만 당정 혼연일체는 허상일 뿐이다. 당은 다양한 민심의 통로이자 국정 조언 그룹이어야 한다. 여권의 한 인사는 이런 해석을 내놨다. “지금 용산이 가장 신경 쓰는 건 김건희 여사 특검 문제일 거다.” 민주당은 이재명 방탄을 위해 똘똘 뭉쳐 있지만 지금 여당은 그렇지도 못하니 그나마 방어벽을 쳐줄 안전판이 누구인지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란 얘기다. 반면 다른 인사는 대통령이 “정치판이 확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을 ‘윤석열당’으로 재편하네 마네 하는 차원을 넘어 ‘여의도 물갈이’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누군가 던진 “탈당” “신당 창당” 얘기도 그 연장선에서 봐야 윤심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대 이후 여당은 더 큰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겠다. 정치는 기획이나 의도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는 성질이 있다. 당장 친윤 핵심들은 대통령이 전대에 참석한다는데 1차에서 과반 득표 승리를 얻지 못할까 내심 걱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민주당은 이재명 체포동의안 부결이 아니라 아예 ‘투표 불참’을 당론으로 정하는 초강수를 둘지도 모른다. 윤석열당과 이재명당은 이제 어떤 승부를 펼칠까. 대통령은 연초 3개 개혁 드라이브를 잡는 듯했다가 다시 당내 문제에 휩싸인 형국이다. 모든 건 국정 성과와 지지율에 달려 있다. 대통령 스스로 큰 물결을 이뤄내느냐의 문제다. 누가 당 대표가 되든 ‘적’이 아닌 ‘우군’을 많이 만들어야 국정 기반이 단단해진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2009년 12월. 코펜하겐 일정 후 귀국길에 오른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기내 간담회에서 흥이 난 듯 막걸리를 여러 잔 마셨다. 방금 전 아랍에미리트(UAE)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로부터 “26, 27일 아부다비로 와 달라”는 전화를 받은 터였다. “프랑스로 결정 났는데, 더 이상 매달리면 망신”이라는 참모들의 만류에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얻은 바라카 원전 수주 최종 통보였다. MB가 2011년 3월 원전 기공식 참석차 다시 아부다비를 찾았을 때 무함마드는 아부다비에서 200여 km 떨어진 리와 사막으로 MB를 깜짝 초대했다. 왕세제의 스위트룸이 있는 전용 호텔에서 둘은 극소수 수행원만 대동한 채 매사냥 체험을 하고 만찬을 함께 했다. 언론에는 사후에도 밝히지 않은 비공개 일정이었다. 수백억 달러의 비즈니스가 얽혀 있지만 둘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MB가 어떻게 무함마드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뒷얘기를 길게 설명하진 않겠다. 분명한 건 새 권력자들은 UAE 내 MB의 그림자가 달갑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다. 방한한 무함마드가 퇴임한 MB와 오찬 약속을 잡았는데 정부 최고위급 인사가 같은 시간 점심을 하자며 끼어들었다. MB와 그대로 만나겠다고 할 수도 없고, 정부 쪽 사람을 만날 수도 없어 난감해진 무함마드는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오전에 한국을 떴다고 한다. 탈원전을 내세운 문재인 전 대통령 때는 두말할 나위 없다. 원전 수주 스토리는 철저히 지워지고 폄훼됐다. 그랬던 문 전 대통령도 집권 2년 차에 UAE를 방문했다. 정상회담에서 “사막을 가고 싶다”고 하자 무함마드는 사막의 리조트인 신기루성을 준비해 대통령 내외가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 배려’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 사진 등을 공식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그 ‘뜨거운’ 사막 체험엔 무함마드가 아닌 UAE 에너지장관이 수행했다. MB 시절 뻥튀기 양해각서(MOU)도 있었다. 자원외교 과대포장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UAE로부터 10억 배럴 이상의 유전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는 것도 한 예다. 10억 배럴은 약 110조 원 규모다. 다만 한국석유공사가 참여한 어느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 10만 배럴이 2019년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왔다는 보도가 있는 걸 보니 일부 성과는 있는 모양이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제2의 중동 붐’에 꽂혔다. MB 색깔이 강하게 남아있는 UAE 대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난데없이 이란이 중동의 마지막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2016년 이란을 국빈 방문해 60여 건의 MOU를 맺고 최대 456억 달러를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52조 원 잭팟 수주 발판’ ‘역대 최대 경제외교 성과’ 등이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실질적 성과로 이어진 사례는 찾기 힘들다. 문 정부도 중동 국가 등과 이런저런 MOU를 맺었지만 답보 상태인 경우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의 UAE 방문을 계기로 또 ‘제2 중동 붐’ 얘기가 한창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무함마드가 “300억 달러 투자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어김없이 ‘UAE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 간 투자 결정’이란 설명이 잇따랐다. 통 큰 투자의 실체는 아직 알 수 없다. 대통령들이 중동만 다녀오면 대박, 잭팟, 역대 최대 규모, 수십 건의 MOU 체결 등의 얘기가 나왔지만 흐지부지된 전례가 많았다. 300억 달러 투자의 약속이 이행되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하고 나섰다. 원전 등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나 방산 수출 등은 최고 권력자의 의지, 고공 플레이가 중요하다. 그 점에서 문 전 대통령은 소극적이었다. MB는 ‘을’의 자세를 마다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세일즈 스타일은 잘 모르겠다. 일선 부처를 다그치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훗날 공허하지 않도록 잠정적인 MOU보다는 확실한 본계약 실적이 많아지도록 꼼꼼히 챙겨야 한다. 대통령실에 ‘해외 수주’ 관리 및 조정을 맡는 전담팀을 두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MB 중동특사론’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부패 혐의로 수감” “상대국에 대한 모욕” 운운했다. 이 대표가 할 소린 아닌 것 같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적절하게 예우를 복원시키고 해외 활동 공간도 열어주는 게 국익엔 도움 아닌가.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어느 사상가는 “우리는 시대를 알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했다. 격동의 세계, 힘없는 개인에 대한 통찰이었다. 오늘날도 무슨 시대라는 말은 많지만 ‘시대를 알 수 없는 시대’라는 말만큼 가슴에 와닿는 표현은 찾지 못했다. 다만 ‘외로움의 시대’라는 진단엔 눈길이 간다. “행복의 결정적 요인은 부(富)도 명예도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다.” 수십 년째 인생 연구를 해오고 있는 로버트 월딩어 하버드대 교수가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밝힌 행복 비결이다. 이제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한편으론 우리 사회에 점점 심각해지는 외로움, 그에 따른 파괴적 분열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이 더 심화시켰지만 그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각종 연구로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30% 가까운 사람들이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는 통계가 여럿 있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그 비율은 높아질 것이다. 외로움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문제는 점점 살벌해지는 세상에서 따뜻한 관계를 맺을 역량도 수단도 없는 이들은 늘어가고, 방송이나 소셜미디어는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연결 사회, 외로움의 문제에 천착한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가 ‘고립의 시대’에서 설파했듯 외로움은 개인의 ‘쓸쓸한 기분’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경제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이 책에는 생쥐 얘기가 나온다. 어린 생쥐를 우리 안에 한동안 가둬놨다가 그 우리에 다른 생쥐를 집어넣었더니 ‘침입자’를 마구 물어뜯더라는 것이다. 자기보존 본능, 외로움과 적대감의 상관관계에 대해 섬뜩한 시사점을 주는 사례다. 숲속을 걷다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뱀으로 착각한 적이 있나? “외로운 정신은 언제나 뱀을 본다.” 나아가 ‘뱀을 보는’ 이들은 포퓰리스트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물이라는 게 허츠의 진단이다. 외로움의 문제는 이처럼 정치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정치의 저변을 잠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인이나 청소년 고독사, 높은 자살률 등 사회면 기사 차원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모든 게 정치 문제냐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요즘 점점 극렬해지는 진영 대결, 온갖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살벌한 댓글과 독설이 횡행하는 현실을 보라. 국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낀 이들의 정치에 대한 적의(敵意)는 상상 이상이다. 누군가 내 아픈 구석을 긁어주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극렬 지지자’ ‘정신적 노예’를 마다하지 않을 이들이 적지 않다. 외로움으로부터의 탈출, 어딘가 소속돼 있다는 연대감, 살아 있다는 존재감을 위해…. 기이한 정치 팬덤, 이른바 개딸이니 양아들이니 하는 것들도 어쩌면 외로운 영혼의 탈출구가 아닐까. 어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지만 어떤 외로움은 정치 문제고 사회 문제다. 특정 계층, 집단에 만연한 외로움이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맞물릴 때 무시할 수 없는 부정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20, 30대 젊은층의 외로움을 심각하게 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외로운 그들은 스스로 침잠하든가 아니면 분노의 대상을 찾아 나선다. 또 누군가는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척하며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혐오와 반목을 부추기고 특정 대상을 악마화하는 데 동원하려 한다. 건전한 공론의 장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극우 극좌 유튜버들에 여론이 휘둘리는 현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진실이 뭔지, 팩트는 뭔지 관심 없다. 정상이 아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더 심해졌을 외로움의 문제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같은 행정의 영역으로만 접근할 일은 아니다. 외로움이란 가스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있다. 생때같은 자식이 좁은 골목길에서 죽었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던 듯 돌아갈 때 느끼는 부모의 외로움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참사까진 아니라도 국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번지는 건 위험하다. 새해, 정치의 역할이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권력은 저 멀리 범접할 수 없는 성 속에 머물러선 안 된다. 권력자는 고독하다. 고독은 즐길 수 있지만 외로움은 고통이다. 각자도생의 세상, 그 대열에 끼지 못하고 배제된 이들이 다수다. 그들의 외로움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선한 척하는 권력은 위선이다. 그래도 권력, 따뜻한 말로라도 외로운 영혼을 품어야 한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저희는 아직도 10월 29일, 그날의 아비규환 속에 갇혀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한 분이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00일 미사를 올리고 있다는 또 다른 분은 “너무 소중해서, 누가 데려갈까 봐 딸 자랑 한번 안 했는데…”라며 “제 스스로 주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악마로 돌변할 것 같았다”고 했다. 지옥, 악마 같은 단어들이 귓전을 맴돈다. 참혹한 고통을 대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같을 리 없다. 유가족 중엔 정부와의 연락을 아예 끊거나 장례비 지원을 거절한 분들도 있다고 한다. 숨죽여 앓고 있을 것이다. 어렵게 목소리를 내고 유가족협의회에 참여한 데 이어 시민분향소를 만들고 영정 사진을 직접 올린 이들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든 모두 가슴의 응어리를 풀지 못해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건 분명하다. 어느덧 이태원 참사는 정쟁 단계로 진입했다. 한쪽은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탄핵을 앞세워 정권 흔들기에 나서고 한쪽은 세월호 재판을 우려한 듯 방어에 급급하다. 민노총, 참여연대 등이 주도해 만든 좌파 시민대책회의가 발족됐고, 극우 단체들은 맞불 행동에 돌입했다. 진정한 치유가 절실한 이들이 점점 정쟁의 한복판으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진상 규명 논의는 허공에 흩어지고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오래전 끝났지만 ‘치유의 시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민노총 같은 조직은 왜 여기에 끼어드는 걸까. 피켓 들고 집회하고 구호 외치고 할 게 아니라, 지옥의 고통에서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조용한 마음의 지지와 위로를 보내는 게 상식이고 도리 아닌가. 유가족들의 슬픔을 반정부 깃발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결코 먹히지 않을 것이다. 유가족들 사이에서 “장례 끝나고 정부 측과는 대화가 끊겼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일대일’ 맞춤형 심리 지원까지 하고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장례식 지원이나 형식적인 행정 지원 정도로 끝났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유가족 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관료 마인드로 법적·행정적 처리에만 신경 쓴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책임자에 대한 수사, 예방 시스템 재구축 등은 아주 중요하다. 다만 정부 최고 당국자가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고 지속적으로 위로하는 노력은 등한시했던 건 아닌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수습을 원한다면 여야도 시민단체도 제발 뒤로 빠지길 바란다. 정략적 사심(邪心)을 가진 이들이 분탕질에 나서면 유가족들의 ‘지옥의 시간’은 끝없이 이어질 뿐이다. 누가 뭐래도 위험을 상상하고 예측하지 못한 정부 책임을 피할 순 없다. 여러 부처에 분산된 실무자급이 아니라 정부의 최고위급 총괄 대표와 유족 대표가 단일화된 대화 채널을 열 필요가 있다. 수습 및 지원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관장할 대통령 특보 등을 임명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나. 여기서 추모비나 추모 공간 등 유족들의 의견을 듣고 협의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실은 “국가의 법적 책임 범위가 정해져야 국가 배상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태도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국가 책임의 크기, 희생자의 나이와 직업 등 참으로 복잡한 문제다. 다만 분명한 건 진정한 치유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란 점이다. 일반적으론 ‘49재’를 기해 마음의 매듭을 짓곤 한다. 창밖을 보니 한파에 눈발까지 날린다. 이태원에서 스러져간 청춘들의 영혼, 그 유가족들에게 대통령이 직접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계기도 조만간 찾았으면 한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고블린(Goblin)은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다. 주로 덩치가 작고 사악하거나 탐욕스러운 요괴로 그려진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선 강력한 괴물로 등장했지만…. 도깨비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느낌은 다르다. 도깨비는 훨씬 종류가 다양하고, 또 친근하다. 수호자 의미도 있다. 고블린은 ‘추함’을 연상시킨다. 고블린과 생활 방식을 뜻하는 모드(Mode)의 합성어 ‘고블린 모드’가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 ▷고블린 모드란 말 자체는 국내엔 생소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미 고블린 모드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만약 내가, 혹은 자녀가 일주일 내내 같은 잠옷을 입고 거의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휴대전화로 넷플릭스만 보고 있다면, 침대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입던 잠옷 차림에 양말만 신고 집 앞 편의점에 콜라를 사러 간다면….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고블린 모드에 대해 “사회적 규범이나 기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변명의 여지없이 방종하거나 게으르거나 탐욕스러운 행동 유형”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집이 지저분하든, 정크푸드 박스 더미가 곳곳에 쌓여 있든 “뭐 어때서?”라는 마음가짐이다. 고블린은 남들 눈에 신경 쓸 이유가 없으니까. 타락의 안락함, 그 자체인 것이다. ▷고블린 모드는 올해 처음으로 실시된 대중 투표에서 93%, 31만여 표를 얻어 ‘메타버스’와 ‘#IStandWith(∼을 지지한다는 뜻. 우크라이나 전쟁 계기로 급증)’를 제치고 1위로 선정됐다. 2022년, 팬데믹 3년 차에 접어들며 ‘지친’ 개인들의 심리적 상태를 정확히 포착했다는 평가다. 팬데믹 초기 유기농 아침 식사를 하고 근사한 몸매를 만드는 등의 모습을 너도나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러나 점점 달성할 수 없는 미적 기준, 지속 불가능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반항 심리가 일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 방종’이 아닌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거부하는 ‘의도된 방종’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각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에 대한 환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혹시 있을지 모를 제3차 세계대전 위기감까지 겹쳐 극단적 자아 중심주의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블린 모드는 그런 점에서 세계사적 전환기를 맞아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시대적 현상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기개발 행위는 영속성을 갖기 힘들다. 실제 모습과 SNS를 통해 과시하는 삶이 다르다면 이중생활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고블린 모드의 삶이 장난스러움을 넘어 사회적 무력감으로 이어져선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 대해 “무난하게 잘 진행이 됐다”고 했다. 첫 만남이니 박하게 평가를 내릴 이유는 없다. 다만 한중 관계가 앞으로 ‘무난(無難)’의 길이 아니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난(苦難)’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우려는 떨치기 어렵다. 시 주석은 “정치적 상호 신뢰를 증진해야 한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믿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어느 대통령은 천안문 망루에 오르고, 어느 대통령은 “큰 봉우리, 작은 봉우리” 운운했지만 사드 배치 등 자기 나라의 핵심 이익을 건드렸을 땐 가차 없이 보복을 했던 그가 한국의 새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과거 전철을 밟지 말라”고 경고한 셈이다.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고, 범안보화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는 말은 마치 중국 천하(天下)에 들어올래, 말래 하는 식의 압박으로 들린다. 진짜 황제라도 된 듯한 태도 같다. 이런 중국을 뒷배로 둔 북한 김정은은 영악하다. 작금의 정세를 핵능력 고도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어떤 짓을 해도 미국과 경제 안보 패권을 놓고 한판 승부에 돌입한 중국이 북한에 등을 돌릴 일은 없다고 본다. 중국은 북핵 문제로 미국의 전력을 흩뜨려 놓는 게 낫다는 판단도 할 것이다. 제국 본능을 드러낸 시진핑과 김정은의 핵을 매개로 한 전략 동맹이다. 한중 관계도, 북핵 문제도 지금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은 적이 있었던가 싶다. 시 주석이 북핵 문제에 짐짓 먼 산 바라볼 때 북한은 괴물 ICBM을 보란 듯 쏘아 올렸고 성공했다. 말 그대로 게임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6번의 핵실험을 했지만 북한은 이제 5년 만의 7차 핵실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략핵, 전술핵 완성 단계로 볼 수밖에 없다. 흥분해서도, 호들갑을 떨어서도 안 된다. 다만 괴물 ICBM의 대기권 재진입 역량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거나 미국과 큰 담판을 지으려는 협상용이라는 등의 분석만 되뇌는 건 너무 한가한 것 같다. 게임의 본질이 바뀌었으면 대응의 본질도 바뀌어야 한다. 멍하니 있다가 자칫 한 방에 훅 가거나 휘청댈 수도 있는 위태로운 형국 아닌가. 최근 민간 레벨이나 정치권 일각에서 한시적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전술핵 운용 협의권을 갖는 나토식 핵공유 방안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이스라엘은 미국 지지를 잃을지라도 핵무기 보유로 아랍국들로부터 안보를 지키고자 했다”는 미 전문가의 평가를 인용해 우리도 ‘이스라엘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무장한 예언자’가 살아남는다는 논리다. 핵 이슈는 복잡하고 예민하다. 한반도가 실제 핵 전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권에 따라 노선이 오락가락하는 한국 정치 상황을 미국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국론이 격렬히 갈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확장억제에만 기대면 되는지, 미국 도시가 공격 위기에 처해도 우리 안보는 보장되는지, 우리 군의 3축 체계는 탄탄한지 등에 대한 토론은 더 활발히 전개돼야 한다. 큰 전략은 열망과 수단의 균형에서 나온다. 우리 여건에 맞는 적절한 방안을 깊이 고심할 수밖에 없다. 여러 옵션에 대한 모호함도 전략이 될 수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북한의 군사 도발 등 갖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큰바둑을 둘 때다. 자잘한 국내 정치 싸움에 휘말려 정신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동아시아에 리더의 혜안과 전략 대결이 시작됐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글을 쓰려니 머릿속은 뿌옇고 시작도 어렵다. 참사(disaster)니 사고(incident)니, 희생자니 사망자니 하며 용어를 놓고 정치적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지만 실로 어처구니없고 허망한 참사의 원인이 뭔지, 누구의 책임이라는 건지 딱 부러지게 얘기할 자신은 없다. 언론에 몸담고 있는 필자 역시 반성문을 써야 하나 싶을 만큼 둔감했음을 자책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 복기하고 짚어볼 대목은 있다. 대통령은 어제도 분향소를 찾았다. 나흘째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 애도의 마음을 정치적으로 꼬아 볼 이유는 없지만 답답함은 남는다. 주무 장관, 경찰 수뇌부들이 “경찰과 소방 인력 배치의 문제가 아니다” “주최자 없는 행사의 군중 관리 매뉴얼이 없어서…” 등 법적 책임에 선을 긋는 태도를 보이더니 대통령도 주최자 없는 집단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시스템’ 마련을 주문하고 나섰다. 국민 슬픔과는 동떨어진 메시지였다.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냐”는 외신 기자의 물음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참사 당일 몇 시간 전 들어온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건의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고 비판 여론이 들끓자 경찰청장은 사흘 만에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래 놓고 “현장의 대응 부실” 운운하며 일선 경찰에 대한 감찰을 주도하고 있다. 대통령보다도 늦게 상황 보고를 받았다니 좌불안석일 것이다.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의 뒤늦은 사과도 감흥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국무총리가 외신 기자들 앞에서 어이없는 농담을 던졌다가 비판을 받고 사과한 건 그나마 곁가지 문제다. 그보다 현 여권은 “세월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오히려 이번 사건을 정치 문제로 키운 건 아닐까. 참사 자체보다 정권책임론에 대응하려는 생각이 앞서는 것으로 비쳤다. ‘죽음에 대한 예의와 공감’이 부족한 언사가 터져 나온 이유다. 그러다 “현 정권의 총체적 무능에 따른 인재(人災)였다”는 야권 공세를 불렀다. 야권은 심지어 “최소 2년은 갈 사안”이라고 한다. 총선 때까지 끌고 가기로 작정한 듯하다. 탄핵 주장의 불쏘시개로 활용하려는 일부 세력의 움직임도 노골화하고 있다. 국가애도 기간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하다. 숱한 젊음의 죽음에 대한 아픔은 정치의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이 지점에서 ‘국가의 역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공권력의 통제는 자유의 제한과 맞물려 있다. 이태원은 특별한 자유의 공간이다. 핼러윈 같은 신문화의 현장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하필 그날 들뜬 마음으로 현장을 찾은 청춘들이 대부분이다. 분명한 건 그들이 방치됐다는 사실이다. 어른들, 모두의 책임이다. 다만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은 한계가 없다. 단죄할 희생양을 찾아내란 얘기가 아니다. 국가가 얼마나 더 지혜롭게 대처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대통령실은 매일 전쟁을 치르는 듯한 자세로 국정을 챙길 수밖에 없다. 안전 위협, 안보 위협, 경제 위기 등 곳곳이 전쟁터다. 매뉴얼 정비도 필요하지만 능사는 아니다.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의 새로운 흐름까지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늘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고 스케치해야 한다. 결국 국정 시스템이 얼마나 탄탄하냐의 문제이고 궁극적으론 사람의 문제다. 각자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기본의 문제이고, 기강의 문제이고, 책임을 지는 자세의 문제다. 그 바탕엔 차가운 법이 아닌 인간애와 측은지심이 깔려 있어야 한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미국 뉴욕타임스 최근 기사에 ‘서조선(西朝鮮)’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대관식 기획 보도에서 ‘전면적인 통제의 시대(Era of Total Control)’가 도래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온라인에선 중국이 서조선, 즉 ‘서쪽의 북한(the North Korea to the west)’이란 닉네임으로 불린다고 썼다. “시진핑은 걸출한 인민 영수” 등 ‘시비어천가’가 울려 퍼지고 있지만 온라인에선 중국이 ‘북조선’을 닮아가고 있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조선이란 말이 처음 나온 건 아니다. 10년 전 일본 누리꾼들이 먼저 자국을 비하하는 의미로 동조선(東朝鮮)이란 신조어를 썼고, 중국 누리꾼들도 따라 했다. 억압 정치, 민주주의 결핍, 서방에 대한 두려움 등에서 북한과 다를 게 없다는 점을 풍자한 조어다. 서(西)의 발음이 시(習)와 성조는 다르지만 발음은 같다는 점에서 ‘시황제의 중국’이라는 의미도 깔려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베이징은 중국인들이 접할 정보, 말할 수 있는 정보를 거의 절대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광활하다. 인구도 14억이 넘는다. 북한처럼 철저히 외부 세계와 단절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도 완벽히 통제 사회를 구현하려 한다. 대체 이는 어떻게 가능한가. 각종 첨단 기술을 동원한 ‘디지털 법가’의 세상을 만든 것이다. ▷중국은 만리장성과 같은 ‘성벽’을 사이버 공간에도 구축했다. 이른바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연결될 수 있지만 중국 인터넷은 외국과 연결될 때 검열 기능이 있는 스위치, 라우터를 경유해야 한다. ‘디지털 요새’를 만들어 놓고 중국 인민해방군은 수만 명을 고용해 공산당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포스팅을 올려 여론을 조작한다. 건당 50센트를 준다고 해서 ‘50센트 공산당’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중국은 아울러 최고의 디지털 감시 시스템인 ‘톈왕(天網)’을 가동하고 있다. 해외 도피 인사까지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하늘의 그물을 만든 것이다. 톈왕의 그물코는 점점 촘촘해지고 있다. 최첨단 안면인식 장비, 4억만 개가 넘는 감시 카메라, 감시 드론, 빅데이터, 딥러닝 기술을 결합한 최고의 감시 시스템이다. 인민 개개인의 생채 정보까지 정부 데이터에 쌓이고 있다. ▷북한을 빗대 ‘서조선’이란 조어가 나왔지만 이쯤이면 북한은 ‘아날로그 전체주의’, 중국은 ‘디지털 전체주의’로 규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이 커 ‘공동부유’를 내세운 시 주석의 노선에 동조하는 인민도 적지 않다지만 이런 빅브러더의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은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라며 “저부터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두 달 가까이 진짜 분골쇄신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대선후보 때 못지않게 매일 일정이 빼곡하다. 각종 현안을 챙기느라 퇴근 시간도 늦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저녁 식사를 하는데 두 시간 남짓 동안 대통령 전화를 여러 차례 받는 걸 본 이도 있다. 취임 초 우왕좌왕했던 잘못을 바로잡고 신발 끈을 동여매는 자세는 필요했다. 낮은 자세, 약자와의 동행도 적절했다고 본다. 그런데, 대통령이 뭘 하고 다녔는지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열심히 다녔는지는 모르나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고 반대 진영 프레임에 끌려다닌 탓이다. 뉴욕 비속어 논란이 단적인 예다. 호미로 막을 일을 산처럼 키웠다. 국민 뇌리엔 ‘××’만 남았다. 자신이 사석에서 한 말을 나중에 녹음으로 들어보면 이런 얘기를 했나 싶을 때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참모를 통한 “기억은 나지 않는데…”라는 ‘간접’ 대응은 당당하지 않다는 인상을 줬다. 검사 말투를 버리고 정치인 언어를 익혀야 한다는 지적은 수도 없이 나왔다. ‘고언의 홍수’에 한마디 더 보태면 투박하든 비속어가 섞였든 중요한 건 말의 내용이란 점이다. 정치인의 말엔 늘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이 담겨 있어야 한다. 가치와 신념이 삶의 궤적과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그 정치인의 말은 살아 움직이고 힘을 발휘하고 국민 가슴에 깊이 파고들게 된다. 공정과 상식? 이젠 야당의 역공까지 받을 만큼 말의 힘을 잃었다. 자유? 취임사, 8·15 경축사, 유엔 총회 연설까지 관통했던 단 하나의 국정 키워드지만 확 와 닿지 않는다. 정책으로 구체화하겠다지만 힘든 길이다. 밀이 어쩌고 프리드먼이 어쩌고 해도 만델라라면 모를까 평생 인신 구속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 말하는 ‘고상한 자유’에서 국민들의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쉽지 않다. 대통령의 말을 장황히 쓰는 이유는 따로 있다. 11월이면 취임 6개월이고 곧이어 집권 2년차를 맞는다. 어, 하다 보면 총선 국면으로 금방 넘어간다. 국정 성적표인 지지율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30%대 초반 지지율이 고착될까, 40%를 넘길 수 있을까. 국정 방향은 옳았는데 추진의 문제인지, 국정 방향 자체에 문제는 없는지 등 냉정한 결산을 해야만 할 때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100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개딸에 안보 친일몰이로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있는 야당의 헛발질에 기댈 건지,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 체제로 그럭저럭 국정을 끌고 갈지, 말 그대로 환국(換局) 수준의 변화를 줄 것인지 등에 대한 판단이다.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 스스로, 또 누군가는 친윤이 아니라 신윤(新尹), 즉 ‘뉴’ 윤석열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흐릿해진 새 정부의 정체성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법치(法治)와 협치(協治)는 현실 정치에서 동시에 구현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모순 관계는 아니다. 다수 국민의 지지 아래 약자에게 따뜻하고 강자에게 엄격한 법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바로 정치다. 대통령은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최고 권력에 굴하지 않는 듯한 검사의 ‘신념’을 보여줬다. 이젠 자신이 최고 권력자다. 누구를 대표하고, 뭘 위해 목숨을 걸 것인가. 대통령 개인의 ‘정치 신념’이 국민과 괴리돼 있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많이 해도 공허함만 남을 뿐이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1962년 핵전쟁 발발까지 갈 뻔했던 쿠바 미사일 사태에서 물러선 뒤 흐루쇼프는 “나는 무서웠다”고 했다. “겁먹었다는 것이 이 ‘미친 짓’이 일어나지 않는 데 기여했다는 것을 뜻한다면 나는 겁먹었다는 것이 기쁘다”는 말도 했다. 무엇이 핵전쟁을 막았나. ‘공포’ ‘두려움’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오래 살아 우크라이나인으로 오해받기도 했던 흐루쇼프는 2년 뒤 권좌에서 축출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반대다. ‘미친 짓’이라도 서슴지 않을 듯한 태세다. ▷현존 최장 길이(184m)의 러시아 최신 핵잠수함이 핵 어뢰 ‘포세이돈’을 싣고 북극해를 향해 출항했다고 한다. 핵무기 시험 가능성이 있다는 게 나토의 판단이다. 핵무기 운용 부대의 병력과 장비를 실은 러시아 열차가 우크라이나 전방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두 개의 뉴스 중에서도 서방이 더 관심을 보인 건 ‘종말의 무기(Apocalypse)’로 불리는 포세이돈이다. ▷포세이돈은 푸틴의 ‘절대 반지’나 마찬가지다.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만큼 미국 최첨단 미사일 방어 체계로 요격이 불가능한 비대칭 전력으로 개발된 것이다. 길이 24m, 직경 2m로 추정된다. 어뢰 모양의 무인 자율주행 잠수정에 핵탄두가 탑재된 방식이다. 최고 속도는 시속 185km, 사정거리는 1만 km에 달한다. 경량 소형의 원자로로 추진기를 작동시켜 ‘은밀하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서방 일각에서 추정한 대로 100메가톤급일 경우 역사상 가장 강했던 1961년 소련의 ‘차르 붐바’보다도 위력이 크다. 히로시마 원자탄의 6700배에 달한다. 이런 핵탄두가 해저에서 폭발하면 높이 500m의 방사능 쓰나미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미 해안 도시가 초토화될 수 있는 것이다. 포세이돈 위력이 과장됐다는 반박도 있지만 공포의 핵 어뢰임은 틀림없다. ▷푸틴의 노림수는 명확하지 않다. 핵 위협이 허풍이 아닐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과대망상이나 판단력 저하 등 오만증후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서방에 던진 것일 수도 있다. 완전한 광인(狂人)처럼 보이는 것 자체가 수세에 몰린 푸틴의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종전을 위한 협상 전술이란 얘기다. ▷쿠바 위기 직전 케네디는 “세계는 핵의 다모클레스 칼 아래 살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연한 사고, 계산 착오, 지도자의 미친 짓에 의해 어느 순간에라도 절단될 수 있는 가느다란 실에 핵이 매달려 있는 형국이란 얘기였다. 상황은 다르지만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자신의 권력을 지켜줄 거라 믿었던 핵무기가 진짜 ‘종말의 날’을 부를 수도 있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민주당은 요즘 ‘대통령 복’ ‘여당 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20년 집권’ 운운하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지방선거까지 패한 뒤엔 “이러다 당이 끝장나는 것 아니냐” 하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4개월여 만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반사이익이다. 대통령과 주변의 숱한 설화, 인사 잡음, 정책 난맥상에다 여당 내전까지 겹치며 새 정부에 대한 국민 기대가 싸늘하게 식었기 때문이다. 대오각성 목소리는 사라지고 총선 낙관론까지 슬슬 나올 정도라고 한다. 사법리스크, 방탄 운운하며 대선 패자 이재명 의원이 대표가 되면 곧 당이 깨질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도 쏙 들어갔다. 총선 출마를 포기하면 모를까. 77%의 득표율을 얻은 힘센 대표에게 누가 감히 덤비랴. 이 대표는 “정치는 재미있어야 한다”며 짐짓 여유까지 부린다. 자신의 목을 겨냥한 검찰의 시퍼런 칼날이 두렵겠지만 적어도 ‘내부 총질’ 세력은 별로 없다. 사법리스크만 제외하면 민주당은 사지로 내몰렸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최근 민주당의 ‘상태’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해프닝이 있었다. 국회의원 3선인 어느 최고위원 얘기다. 지도부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군 장병들의 전투화, 내복, 심지어 팬티 예산까지 삭감했다며 “비정하다”고 방방 떴다가 “착오였다”고 꼬리를 내렸다. 이재명 대표도 “한심하고 황당하고 기가 차다”며 맞장구를 쳤었다. “비정한 예산”은 애초 이 대표가 썼던 표현이다. 전투화 논란은 좀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 5월 추경 때 민주당의 다른 의원들이 제기했다가 해명이 됐던 사안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지지층에선 사실인 양 퍼져 나갔고, 몇 개월이 지나 최고위원이란 사람이 또 들고나왔다. “윤 정권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짓을 했을까?” 하는 상식적 의문도, 팩트 체크도 없었다. 단순 착오가 아니라 병폐가 드러난 것이다. 여전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그들만의 팬덤 세상에 갇혀 있는 것 아닌가. 대선 패배 후엔 “5년간 내로남불, 편 가르기, 독선 등 나쁜 정치를 하며 국민 마음을 떠나보냈다”는 반성문도 나왔다. 침소봉대, 억지 프레임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정치 기술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러나 민주당의 권력이 ‘개딸’로 상징되는 강성 팬덤에 넘어가더니 지난 5년의 관성과 폐해가 되살아나고 있다. “폭력적 팬덤 정치로 쪼그라드는 길을 선택했다”고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일찍이 간파한 그대로다. 그 박지현은 이제 개딸들에 의해 조리돌림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내로남불 대신 이젠 ‘남불나행’, 즉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란 인식도 당에 팽배하다. 정부가 헛발질만 하길 바라는 심리가 깔려 있다. 그러니 좀스러운 정치 공세가 판을 친다. 매사 ‘기승전희’에만 매달린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도 민주당 지지율이 그대로인 건 다 이유가 있다. 민주당의 연원은 멀리 신익희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DJ가 중시조쯤 된다. 민주당은 한때 민주, 인권, 평화, 지역주의 타파 등 시대정신을 주도하는 정당이었다. 1997년 이후 3차례나 집권한 경험이 있다. 지금 민주당이 지향하는 가치가 뭔지, 정체성이 뭔지 후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당에 있는가. 국정 해법은커녕 “서생의 문제의식”조차 흐릿해진 집단이 돼 가는 것 같다. 정권에 각만 세운다고 국민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합리적 진보의 가치와 비전을 바로 세우지 못한 채 ‘방탄 대오’만 굳건히 하다간 곧 ‘야당 복’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보육원 출신 남녀 청년 2명의 잇단 극단적 선택 사건 얘기로 이 글을 시작하려니 무척 조심스럽다. 젊은 고인에게 누가 되는 건 아닌지, 남은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스무 살도 안 됐다. “삶이 고단하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등 남긴 글에서 낭떠러지에 홀로 선 막막한 심정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지만 짐작일 뿐이다. 새삼 국가의 존재 이유는 뭔가,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한 해 2500여 명에 이르는 보호종료아동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보육원 퇴소를 앞둔 17세 소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적도 있었다. 보호종료 시점을 만 22세로 올리자는 법안이 발의되는 등 온갖 처방이 쏟아졌지만 그때뿐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8년 만에 벌어진 수원 세 모녀 사건처럼…. 무슨 거창한 비책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 정치가 좀 부끄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들의 슬픈 소식이 전해지던 무렵 정치 뉴스는 펼쳐보기도 민망했다. 국민의힘의 끝없는 내전(內戰)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뭘 위한 내전인가. 이대남을 대변한다는 전직 젊은 대표는 현란한 말 폭탄을 연일 투척하고 있지만 보육원 출신 청년 등의 얘기엔 별 언급도 없다.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는 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긴 했던가. 퇴진 요구를 받는 여당 원내대표는 ‘대선 일등 공신’ 운운한다. 그들만의 논리다. 국민도 그렇게 볼까. 민주당은 이재명당으로 10년 만에 당권이 교체됐다. “친명과 친문은 같다”며 ‘명문(明文) 정당’ 운운하지만 허울 좋은 작명이다. 민주당 색깔은 확 바뀔 것이다.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는 개딸이란 친위 부대를 방벽처럼 둘러 세웠다. 특정 정치인을 “아빠”라며 일방적으로 떠받드는 이들에 의해 당의 의사결정까지 좌우된다. 자발적 팬덤인지, 조직화된 팬덤인지 모르지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또 다른 딸들에 대해선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비호감 대선이 끝난 지 반년도 안 돼 또 ‘비호감 정치’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비호감은 한국 정치와 동의어가 된 건가. 대선 상대였던 두 사람이 이젠 대통령과 169석 거대 야당 대표로 맞서게 됐다. 곧 만나자는 가벼운 덕담은 오갔지만 ‘시즌2’ 걱정을 하는 건 기우에 불과할까. 국민은 지도자의 등과 품을 본다. 국가가 처한 현실을 꿰뚫어 보고 좌표를 정확히 설정한 뒤 정교한 전략을 세워 목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지도자의 당당한 등, 그리고 어렵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삶에 안타까워하고 진정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너른 품에서 신뢰와 호감을 갖게 된다. 수원 세 모녀의 죽음에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복지 아닌 약자복지를 추구하겠다”고 했고, 보육원 청년에겐 “부모 심정으로 챙겨 달라”고 했다. 그냥 하는 말에 그쳐선 안 된다. 이 대표는 새해 예산안에 대해 “참 비정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내내 그렇게 복지를 챙긴다며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보육원 청년 등 약자들의 삶은 달라진 게 뭐가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권력싸움은 본디 무자비하지만 낮은 곳에서 민심의 승패가 판가름 난다. 말로만 민생이니 복지니 하는 건 금세 탄로 난다. 진심으로 약자의 절규에 귀 기울이고, 전 국민 퍼주기가 아니라 정말 절실한 곳에 세심한 ‘핀셋 복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호감의 문은 열리고 국민 지지도 조금씩 올라갈 것이다.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지혜’의 향연을 보고 싶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또 주목 대상이 됐다. 현직 당 대표에 대한 초유의 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를 의결했던 윤리위는 최근 소속 의원 3명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수해 복구 현장에서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의원, 이른바 ‘쪼개기 후원’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된 의원은 징계 절차 개시에 숨죽인 듯한 모습이다. 문제는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있다가 국민의힘과의 합당으로 여당 소속이 된 권은희 의원이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내에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내부 총질 당 대표’ 문자메시지가 공개되자 “장소적으로는 용산 시대인데 실질적으로는 경복궁 시대로 됐다”고 비판했다. 새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대놓고 반대했다. 경찰국 신설에 반발해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두고 ‘쿠데타’를 언급했던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해 “딱 기다리시라”며 국회 탄핵소추 논의를 시사하기도 했다. 여권 핵심부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음은 물론이다. ▷권 의원은 지난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쪽과의 단일화를 모색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힘과의 합당에 반대했다. 비례대표 의원은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 합당 전 제명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체성이 맞지 않지만 어쩌다 여당 소속이 된 처지다. 당내에선 “의원직 유지를 위해 탈당하지 않고 들어왔으면 조용히 있어야지 왜 분탕질이냐” “입만 열만 자유를 부르짖는 정당에서 국회의원 발언을 놓고 징계를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등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권 의원 문제를 이준석 전 대표와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권 의원에게 적용된 윤리위 규정 제20조는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정당한 이유 없이 당명에 불복하고…” 등 징계 사유를 명시하고 있다. 윤리규칙 제4조는 “당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등 품위 유지 조항으로 구성된다. 이 전 대표가 당 대표직을 박탈당한 뒤 쏟아낸 발언들은 권 의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 권 의원 징계가 궁극적으론 이 전 대표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권 의원 사례는 한국 정치의 우스운 한 장면이다. 당은 “국민의힘이 싫으면 탈당하라”며 제명을 안 해 준다. 해당 의원은 “마음대로 하라”며 나 홀로 행보를 보이고 급기야 괘씸죄에 걸려 징계 대상에 올랐다. 빌미를 준 쪽이나 징계를 하려는 쪽이나 다를 게 없다. 다만 국회의원은 헌법 기관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견해에 대해 징계를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갈수록 정치의 담대함은 사라지고 누가 더 옹졸한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어느 변호사가 올 1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고슴도치에 비유한 적이 있다. “고슴도치는 가시로 찌르는 게 생래(生來)의 본능이니 한번 품었다고 해서 다시 찌르지 않을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 그에게 휘둘리면 또 찔리니 경계하란 조언이었다. 그래서일까. 대선을 앞둔 윤 후보는 고슴도치를 끌어안았지만 불신의 벽은 해소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내부 총질 당 대표’ 문자 파동은 최고 권력자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대표는 대표인지, 전(前) 대표인지 모호한 처지가 됐다. 그가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건지, 그리 내몰린 건지를 따지는 게 이제 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분명한 건 사자와 같은 맹수가 제멋대로 나대는 고슴도치 하나 집어삼키려다 거꾸로 입 주변에 숱한 가시가 박혀 힘들어하는 희한한 형국이 됐다는 점이다. 고슴도치를 아예 건드리지 말든가, 제대로 다루든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을 한 달 이상 끌더니 막판에 거칠게 몰아치는 듯한 양상을 보여줬다. 이 대표도 사면초가에 놓였지만 윤핵관도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국민 보기엔 양쪽 다 진 게임이다. 새 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초유의 혼돈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은 어찌 되나. 대표 거취 문제를 법원의 판단에 맡긴 상황 자체가 어이없다. ‘리더의 그릇’ 문제와도 연관된다. 일각에선 조기 전당대회 주장도 나오지만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렵다. 첫 정기국회가 열리고 국감에다 새해 예산안 처리도 해야 하는 와중에 집권 여당이 당권 경쟁을 벌이고 있을 계제는 아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내년으로 미뤄질 공산이 크지만, 더 눈여겨봐야 할 물밑 기류가 있다. 정계개편, 신당 움직임이다. 윤 대통령이 현재의 국민의힘 체제로 후년 총선을 치르고 싶을까에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역대 직선 대통령들이 다른 세력과 연합하든, 신장개업하든 신당을 만들어 총선을 치른 사례는 숱하다.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이런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실제로 추진될지 예측하긴 어렵다. 3김 시대도 아닌데 인위적 정계개편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국정 지지율 20%대의 윤 대통령은 당장 앞가림하기 바쁘다. 다만 국정 지지율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여야 모두에 새로운 정치판이 조성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야권도 ‘이재명당’에선 함께할 수 없는 친문 세력이 독자 생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신당을 만드는 시나리오도 상상해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정치공학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총선은 한참 남은 듯하지만 곧 온다. 야권은 이달 말 민주당 전당대회가 사실상 1차 분기점이다. 팬덤과 진영의 재편과 결집이 본격화하겠지만 결국은 어느 쪽이 명분을 갖고 국민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가느냐가 관건이다.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국가 대의(大義)를 좇는 세력이 궁극적으로 승리한다. 권력게임에 능한 자, 권력게임으로 망한다. 여든 야든 국가 흥망에 대한 절박함 없이 자기 살길에만 연연하거나 조그마한 진영, 팬덤의 우두머리 의식으로 꽉 찬 정치인들이 득실대는 집단으로는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국민의힘은 이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탄핵을 자초했던 정당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각자 사욕(私慾)을 버리고 중도·보수의 가치와 철학하에 큰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윤핵관이니 이준석계니 하며 한 줌 권력 싸움만 지속하다간 진짜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92세의 대표적인 ‘초신 퓨(Chosin Few)’ 한 명이 최근 타계했다. 스티븐 옴스테드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이다. 초신 퓨는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수 생존자라는 뜻이다. 선택됐다는 뜻의 ‘chosen’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초신은 장진(長津)의 일본어 발음. 유엔군이 일본어 지도를 이용했기 때문에 미국에선 장진호 전투를 ‘초신호 전투’라고 불렀다. ▷1929년 뉴욕에서 태어난 옴스테드 장군은 19세에 입대했다. 부친도 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일부 수업을 빼먹었는지 한국을 잘 몰랐다”던 그는 1950년 10월 미 해병대 소속으로 일본을 거쳐 원산 상륙작전에 투입됐다. 목표는 함흥이었다. 개마고원의 장진호 방면으로 진격했다. ▷장진호는 ‘사지(死地)’, 그 자체였다. 영어로 사지를 뜻하는 책 ‘데스퍼레이트 그라운드’의 무대가 바로 장진호다. 불멸의 동투(冬鬪)였다. 중공군 인해전술에 전멸 위기에 처했지만 기적적으로 성공한 후퇴 작전이 전개됐다. 집결지인 하갈우리로 가는 길은 ‘지옥불 계곡(Hellfire Valley)’으로 불렸다. 옴스테드 장군은 “중공군이 계곡 양쪽 언덕에서 총을 쏘아댔다”고 증언했다. ▷옴스테드 장군은 “(장진호 주변 고토리 일대에서) 사흘 동안 눈보라가 몰아쳐 길을 찾지 못했는데 새벽 1시쯤 눈이 그치고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철수 작전의 성공을 알린 ‘고토리의 별(Star of Kotori)’이다. 고토리의 별이 장진호 전투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의 기념비 제작을 주도한 이가 옴스테드 장군이다. 기념비엔 영어로 장진(JANGJIN)을 먼저 표기하고 초신을 병기해 놨다. ▷얼마 전엔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카투사의 유해가 미국 하와이를 경유해 1만5000여 km를 돌아 72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 7사단 카투사 고 박진호 일병이다. 카투사 병사 유해 확인 후 당시 병사로 참전했던 옴스테드 장군이 별세를 했다는 소식에 뭔가 보이지 않는 생사 인연의 끈, 혈맹의 끈이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침 중국의 국뽕 영화 ‘장진호’ 관련 뉴스가 눈길을 끈다. 장진호 전투가 항미원조 최종 승리의 토대를 닦았다고 묘사한 이 영화가 중국영화인협회가 발표한 대중영화백화상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것이다. 중공군은 장진호 전투에서 4만8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6·25전쟁은 ‘잊힌 전쟁’이 아닌 ‘잊힌 승리’다.” 옴스테드 장군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윤석열 정권이 심각한 난관에 처한 것 같다. 진짜 위기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내심 답답해하는 듯하다. 망가진 한미 동맹을 빠르게 복원했고, 한일 관계 재정립에도 나섰다. 대북 안보 태세도 강화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천명했다. 나라의 기본(基本)을 바로 세우려 나름 애를 쓴 거 같은데…. 지지율은 머리가 하얘질 만큼 추락하고 있다. 정치 영역에선 뭘 하느냐와 함께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경제 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데 뭔가 미덥지 않다. 지금 당장, 또 향후 5년 뭘 어떻게 해서 국민을 먹고살게 하겠다는 건지의 비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검찰 출신이나 지인 인사만 잔상에 남았다. 노동계에 틈을 보이면서 특유의 강단 이미지가 훼손됐다. 법과 원칙, 능력주의를 내세운 정권의 아이러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윤 대통령은 ‘톤앤매너’, 즉 말투와 태도에서 쓸데없이 점수를 까먹었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 “그게 뭐 어때서?” 하는 식의 반문 화법은 솔직하다기보다는 진중하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요즘엔 도어스테핑 실수를 줄이려 하는 것 같다. 김건희 여사도 2주일째 언론 노출을 피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겠지만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변화가 단기 처방일지는 모르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정국을 주도해 나갈 방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물론 용산 참모진과 당, 내각이 다 함께 심기일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다. 현 대통령실 인적 구성이 ‘드림팀’인지에 대해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비서실장과 5수석이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지애를 공유하고 팀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국정 메시지를 정교하게 다듬고 여당 및 국회와의 관계도 주도해 나가야 한다. 국민의힘은 탄핵 정당이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하다. 윤핵관들은 원톱이니 투톱이니, 형님이니 동생이니 하며 싸우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잘들 해봐라” 하는 듯한 태도다. 정권 망쳤다간 2년 후 총선에서 당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눈앞의 당권 내전에 여념이 없다. 대권 욕심이 없는 현역 중진이든, 대통령과 소통이 가능하고 정치력도 검증된 외부 인사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게 현실적 시나리오일 순 있지만 다들 각자도생에 바쁘니…. 이 대표는 ‘통 큰 결단’을 내리고 윤핵관도 백의종군 태도를 보여야 한다. 어차피 ‘파생 권력’ 아닌가. 꽉 막혔다. 윤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쓸 수 있는 묘책은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인적 쇄신이 어려우면 ‘심적(心的) 쇄신’으로 가야 한다. 그 출발은 대외 환경이든 지지 기반이든 국회 의석 분포든 역대 최약체 정권임을 인정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집권 초 기세등등했던 이명박 정권 사례를 보라. 둑이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공권력도 무용지물이었다. 모종의 사태라도 벌어지면 어쩔 건가. 집권세력이 혼연일체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장관은 발에 땀이 나게 현장을 뛰고, 의원들도 윤핵관 눈치만 볼 게 아니라 국민의 가려운 곳을 파고드는 절박감을 보일 때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 0%, 1%가 나와도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99% 민생 챙기기에 나서는 모습을 먼저 보일 때다. 취임 100일에 즈음한 8·15 경축사를 제2의 취임사라 여기고 윤석열 정부의 새 출발을 알려야 한다. 그게 윤 대통령이 성공의 길로 가는 좁은 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