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관련 특검법을 그냥 넘기지 않을 태세다. 어제도 만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모든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숫자에 약한 나로선 김 여사가 결혼 전 주가를 어쨌다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친윤(친윤석열)계 아닌 의원들이 “검찰에서 탈탈 털었는데도 나온 게 없다”고 한 말을 믿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이 가족 관련 특검을 거부한 적 없다”는 민주당 주장에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 관련 특검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반박한 건 실수라고 본다. 측근은 가족이 아닌 데다 2003년 11월 25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야당인 한나라당(현 국힘)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만 빼고 다른 야당과 공조해 열흘 만에 209 대 54로 재의결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여당은 “(대선자금 비리 은폐를 위한) 방탄특검이자 (내년) 총선을 위한 정략특검”이라고 야당을 공격했다. 국힘이 지금 민주당에 대고 하는 말과 다름없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총선을 보름 앞둔 2004년 4월 특검팀 최종 수사 발표에서 특별히 밝혀낸 게 없다는 것도 특검의 아이러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있다. 특검법이 재의결된 뒤 윤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노무현은 “잘못했다, 미안하다 말하기 이전에 참 부끄럽다”고 언론 간담회에서 거듭 사과를 한 것이다. 물론 ‘정치인에게는 측근이 웬수(원수)’라는 말이 있지만 측근과 가족은 무게가 같지 않다. 그러나 국민 눈에는 대통령 가족도 공적 영역에 포함돼선 안 될 사적 영역에 불과하다. 설령 대통령 부인이라 해도 국민은 권력을 위임한 바 없다. 공적 영역에 사적 관계를 앞세운다면, 그것도 일종의 부패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민생 현장에서 국민 여러분을 뵙고 고충을 직접 보고 들을 때마다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경제 외교, 세일즈 외교는 바로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자리 외교”라고도 강조했다. 그런데 어쩌랴. 국민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건 김 여사가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수십 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명품 숍을 방문한 모습이다. 그러고도 한국에서 뒤늦게 공개된 영상에선 300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을 남겼다. 작년 12월 둘째 주 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가 62%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김 여사 행보(2%)다. 2022년 2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 사치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김 여사 행보는 부정평가 이유에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억울하더라도 김 여사는 이미지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이달 중 윤 대통령이 가질 예정인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멋지게 대신 사과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을 설치해 김 여사의 조용한 활동을 보좌하겠다고 밝힌다면, 모질지 못한 우리 국민은 김 여사와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성장 양극화 속에 강남 빼고 전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부글거리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장관 청문회만 봐도 ‘부모 찬스’를 누리고 또 물려주며 세습자본주의를 즐기는 얌체족이 수두룩했다. 대통령은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했으나 검찰 출신 검피아·기재부 출신 모피아는 인사 회전문을 타고 공무원연금까지 받으며 몇 바퀴씩 해먹는 것을 전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 연세대 송복 명예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고위 관료, 상층 계급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보이지 않아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일수록 계속 존경심을 유발하는 사람들이 있고, 계속 도덕심을 높여주는 집단이 있어 역사를 이끄는 동력이 나오는데 우리 사회에선 운 좋게 높은 자리 올라간 사람들이 혜택받은 만큼 도덕성과 책임윤리를 보여주지 못해 경제도 더는 도약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것을 윤 대통령이 보여줬으면 좋겠다. 변혁적 리더십의 요체는 비전 달성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1969년 대통령직을 사임할 때 대통령 연금조차 사양했다. 국가를 위한 봉사에 대가는 필요 없다는 신념이 있어서다. 조희대 대법원장 같은 유능하고 깨끗한 인선을 계속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공직사회가 달라지고, 보수세력이 달라지고, 젊은 세대 눈빛이 달라지면서, 나라엔 새로운 활력이 넘쳐날 것 같다.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
일할 땐 “프로”…삶은 “즐겁게”. 30년 전인 1993년 4월 동아일보 창간 73돌 기획으로 열 달간 연재했던 ‘신세대’ 시리즈 첫 회 제목이다. 좀 유치한가(맞다. 내가 썼다ㅠㅠ). 젊은 날 한껏 모양을 내고 찍었던 빛바랜 앨범 사진을 들춰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당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동아일보답지 않게 톡톡 튄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73년생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젊은 날 서태지와 아이들을 소환했다. “동료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라고 외친 ‘환상 속의 그대’에서 따왔다는 후문이다. ‘신세대 30주년 기념 도발’을 세 줄로 줄이면 이렇다.① 신세대는 모든 청춘의 공통점 말고도 특이점이 있었다. ② 잘 자란 신세대가 한동훈이라면 퇴행적 그룹은 한총련이다.③ 주류가 되지 못했다는 신세대, 이제 다시 뛴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왜 30년 전 ‘신세대’였을까. 93년 신군부 전두환-노태우 시대를 종식시키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71%의 국정지지율로 벅차게 출범했다. 91년 소련이 무너졌고(좌파는 꼭 이걸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졌다고 한다)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로 기성세대에 문화충격을 던진 다음이었다. 미국선 베이비 부머 세대의 2세, 도무지 알 수 없는 X세대가 등장했다. 생애 전반기에 맞는 ‘첫 번째 인상’이 개인의 가치와 정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우리도 70년 전후 경제성장기에 태어났고 교복자율화와 민주화 속에 성장해 자의식과 욕망과 대중문화에 진심인, 생전 처음 보는 인류를 탐구해볼 필요가 있었다. 시리즈 첫 회 부제가 ‘자유와 개성의 삶’이다. 태양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믿으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심지어 직장에서도 “나는 나”라고 주장했던 ‘한국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가 그들이었다. 88서울올림픽과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신세대에게 철학이 있다면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 무렵 신세대 여성을 사로잡았던 불후의 광고 카피가 있다. 채시라가 당당한 직장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해 다수 여성들의 롤 모델로 등극한 광고.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 “내가 열심히 사는 것이 정의(正義)”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청춘이 다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5회 직장인 편에서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맡겼더니 첫마디가 “안 될 것 같다”여서 놀랐다는 한 팀장의 하소연. 요즘 MZ세대의 ‘3요’(이걸요? 제가요? 왜요?)에 쇼크 먹는 임원들 얘기와 흡사한가. “큰 정의(Great Cause)의 시대는 가고 이제 ‘내가 열심히 사는 게 정의다’라고 믿는 일상의 정의가 정착되는 것이 신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당시 서울대법대 안경환 교수는 법대에선 그게 공부로 나타난다고 했다. “부모가 잘난 것도 내가 잘난 것과 마찬가지고, 그걸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며 기회”라는 계급의식도 신세대는 스멀스멀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주류로 성장한 신세대 중 한 사람이 국힘 비대위원장 92학번 한동훈이 아닐까 싶다. 심규진 스페인IE대학 교수는 최근 저서 ‘73년생 한동훈’에서 “한동훈의 능력주의 서사엔 기존의 능력주의가 가지고 있는 촌스러운 ‘짠내’, 동정과 눈물을 요구하는 신파가 없다”고 썼다. 인생이 축복이고 혜택 받았다고 여기는 기득권층이라면, 어렵게 자랐다고 세상에 적개심을 갖는 그래서 반칙과 탈법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과는 달라야 한다. “한동훈의 확고하고 도덕적이며 귀족적인 자의식은 자신보다 낮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책임의식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연결된다”고 심규진은 썼다. 책임의식만으론 부족하다. 동료시민 앞에 보여주고, 정책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지 온 국민이 주시하는 상황이다. ● 민주당에 어른대는 97운동권 한총련 신세대 시리즈에서 놓친 부분이 93년 봄 출범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었다. 시리즈를 거의 전담했던 내가 운동권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총련이 너무나 마이너였던 이유가 크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92년 단행본 ‘역사의 종언’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승리를 선언했고, 극단적 좌파 이념과 학생운동은 신세대 관심사와 거리가 멀었다. 제일기획부설 마케팅연구소의 여론조사결과 60%이상의 20대 젊은이들이 아예 정치는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했다. 젊은 세대라고 다 미래를 상징하는 것도 아니다. 젊음의 폭발력으로 역사의 퇴행을 몰고 오기도 한다. 1928년의 독일은 청년들이 주축이 된 나치 돌격대가 바이마르 민주주의를 황폐화시켰고 곧이어 나치 체제가 확립되면서 독일의 민주주의가 사망했다고 신진욱은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지적했다. 세계화 바람 속에서도 세상 변화에 눈감은 한총련은 출정식에서 “외세와 독재에 맞선 전대협의 투쟁정신을 계승해 자유·민주·통일을 향한 백만학도…”를 외쳤다. 94년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로 표어를 바꾸면서 한총련은 더 외골수로, 강경 주사파로 달려갔다. 97년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때려 숨지게 한 이종권 사건과 이석 사건 뒤에 한총련 간부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측근을,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내년 총선 공천을 노리는 건 또 무슨 퇴행인가. ● 그들이 유독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93년 12월 시리즈 마지막은 좌담으로 마무리된다. 큰 제목은 ‘사회변화 이끄는 전위(前衛) 부상-합리 바탕 기존질서 해체 성향’. 장상수 당시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업도 신세대에 맞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정보지식사회로 나아가는 미래사회의 흐름을 주도할 세대가 지금의 신세대”라고 했다. ‘주류 질서의 전복자’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를 발표한 것도 93년이었다. “예예예예예 야야야야야 예이예이예이 야이야/너에게 모든 걸 뺏겨버렸던 마음이/다시 내게 돌아오는 걸 느꼈지…”‘문화 대통령’으로 군림하던 그들이 96년 1월 돌연 은퇴를 발표했다. 그리고 97년 외환위기가 닥쳤다. 한국사람 모두에게 IMF사태는 충격이었지만 당시 신세대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대학 졸업 무렵 취업절벽을 맞았거나 부친의 사업 실패 또는 명예퇴직으로 자신의 미래도 암울해졌다는 서사가 적지 않다.전례 없이 커졌다가 갑자기 포기된 욕망은 크나큰 정신적 내상으로 남는다. 특히 보수정부에서 IMF사태가 닥쳤고, 2009년 또 다른 보수정부에서 신세대가 만들었던 대통령 노무현이 목숨을 끊었다(고 그들 일부는 믿는다). 신세대가 40대가 된 지금 유독 반(反)보수층,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것도 이 같은 서사와 무관치 않다.● 그런 세대는 없다? 신세대는 살아있다? 모든 세대는 자기들 세대가 가장 불행하다고, ‘낀세대’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40대는 특히 더해서 586세대와 MZ세대 사이에 꽉 끼어 사회 주류로 뜨지 못하고 늙어가는 ‘낀낀세대’라는 소리도 나온다. 고령화·정년연장 덕에 86세대는 여전히 활동하는데 젊은 날 신세대였던 그들은 승진도 늦고, 권한도 누려보지 못한 채 MZ세대에 밀려나고 있다는 불만도 부글거린다. 중앙대 신진욱 교수(사회학)는 2022년 ‘그런 세대는 없다’고 아예 책 제목에 썼다. 586으로 뭉뚱그려진 1960년대 생 중 4년제 대학에 간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정치권에선 86운동권이 오랜 영화를 누리는 바람에 한총련 출신 97(90년대 학번·70년대 출생)그룹이 오래 굶었는지 몰라도 요 몇년 새 집값 폭등 때 자산 최상위층이 늘어난 쪽은 3040대였다. 요컨대 세대 내 불평등과 계층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지 (젊은층) 꿀 빠는 꼰대세대와 얼떨결에 패싱 당한 낀세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분석이다. 둘러보면 맞는 말이다. 30년 전 386이 지금 모두 기득권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30년 전 신세대가 현재 모두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당대의 두드러진 현상을 취재 보도하는 게 저널리즘이고, 마침내 30년 후 확실한 주류로 뜨고 있는 신세대를 목도하고 있다. 30년 전 신세대로 열심히 살아온 그대들, 그동안 안녕들 하셨던 거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노파심에 고백하자면 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일면식도 없다. 하지만 한동훈이 ‘윤석열 아바타’는 아니라고 본다. 검찰 때 일 잘해 윤 대통령 총애를 받았다지만 첫째, 한동훈은 술을 입에도 못 대기 때문이다. 둘째, 구리구리한 꼰대가 아니다. 셋째, 옷도 잘 입고 정제된 언어로 말도 잘해서다. 한동훈이 내년 총선 망하게 생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을 모양이다. 당 대표를 둘이나 끌어내린 대통령실이 힘을 썼다는 소리가 나온다. 또 검찰 출신이냐 싶다. 안 그래도 ‘검찰 공화국’ 비판을 듣는 판에 그가 사실상 당 대표인 비대위장을 맡으면 국민의힘은 용산의힘이 되고 ‘윤심 공천’도 KTX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한나땡”(한동훈이 나와 주면 땡큐) 외칠 만하다. 이미 정치인 뺨치게 진화한 한동훈이 과연 그럴까.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은 검찰 출신도 아닌데 “나라님” 운운하며 대통령한테 한마디 못했다. 의사지만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실패 이유를 오진하고 용산 아닌 당에 메스를 댔다. 능력주의로 무장한 한동훈은 19일 공공선이 자신의 기준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권 때인 2021년 초 한 인터뷰에선 윤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가치를 공유하는지는 몰라도 이익을 공유하거나 맹종하는 사이는 아니다”라고 했다. 누구처럼 허언증에 걸리지 않았다면, 상명하복에 익숙한 검찰 출신 대통령 앞이라 해서 할 말을 못 하거나 할 일을 못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럴 자신 없으면 비대위장 자리는 맡지 말아야 한다. 한동훈을 위해 무난한 비대위장을 내세워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강감찬 아꼈다 임진왜란 때 쓸 요량이겠지만 고려가 망하면 조선도 없다. 당연히 임진왜란도 일어나지 않는다. 강감찬 위하려다 고려 왕이 죽듯, 국힘이 총선에서 지면 대통령도 제 역할 못 한다. 국힘과 대통령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내 나라와 우리 아이들 미래가 억울해서 하는 말이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숙주 삼아 나라를 친북·친중으로 몰고 갔던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출신들이 총선에 나올 태세다. 전대협 벼슬의 전직 고관대작 때문에 오래 굶은 97(90년대 학번·70년대생) 한총련 출신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현역 의원 물갈이 공세를 벌이고 있다. 1980, 9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는 그들은 가짜 민주화 세력이었다. 국민 앞에선 “주사파와 관련 없다” 주장했지만 북한이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명의로 내보낸 구국의소리 방송 지령대로 인민민주주의혁명을 꾀했다는 게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출신 민경우의 증언이다(최근 저서 ‘스파이외전-남조선해방전쟁 프로젝트’). 86그룹 맏형이던 ‘돈봉투’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이” 꼰대질을 하자 “어릴 때 운동권 했다는 것 하나로 수십 년간 시민들 위에 군림했다”며 ‘후진 정치’를 세련되게 질타한 사람이 한동훈이다. 시대착오적 ‘×팔육 정치’를 종식시키고 전대협보다 극단적 좌파인 한총련의 정치 진입을 막으면서, 지긋지긋한 보스정치 팬덤정치를 끝내고, 멀쩡한 보수를 넘어 태도 또한 괜찮은 쿨한 보수로 가려면 73년생 신세대 정치인 한동훈이 ‘세대교체’를 들고나와야 한다. 관건은 용산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더는 안고 갈 수 없다는 보수층 민심을 똑똑한 한동훈이 모를 리 없다. 1982년 장영자-이철희 사기 사건 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친구 노태우 체육부 장관은 장문의 읍소편지로 대통령 처가 일족의 구속과 공직 사퇴를 설득했다. 1987년 6·29선언은 전두환 각본에 “각하께서 호통을 쳐달라”는 노태우 연출이 덧붙여졌다는 후문이다. “권력과 국민의 이익이 배치될 때 힘들고 손해 보더라도 국민 편을 들라고 이 나라 법과 국민들이 검사에게 신분 보장도 해주고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한동훈은 작년 1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일개 공직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자신의 말을 기억한다면 편지를 쓰든 ‘아름다운 뒤통수’를 치든, 한동훈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할 것이다. 총선 공천도 공공선과 당선을 최우선으로 두면 답이 나온다. “대통령의 국민과의 소통이 90점”이라는 간신 같은 용산 출신에게 공천 주는 일들이 벌어지면 총선 승리는 물론이고 한동훈에게 ‘별의 순간’은 없다. 다행히도 2022년 윤석열의 대선 승리를 전망했던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전망에서 국민의힘이 총선 과반수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썼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영화 ‘서울의 봄’에 가려졌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도 퍽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영화다. 물론 스콧 경이 한국 상황을 고려했을 리 없다. 프랑스에선 영국 출신 감독이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나폴레옹을 찌질하게 연출한 반(反)프랑스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란 평가도 분분하다. “영화가 다큐멘터리냐?” 일갈했다는 감독은 최근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게 막강하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인물이, 어떻게 아킬레스건을 가질 수 있을까. 나폴레옹에게 아킬레스건은 한 여자였다. 그래서 나는 핵심을 파고들었던 거다.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관계라는.” “위대해지고 싶겠지.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아냐, 나 없이는. 말해봐(You want to be great. You are nothing without me. Say it).” 유럽 인구 절반을 다스린 제국의 황제가 나폴레옹이다. 그런 위대한 남자를 손끝으로 가지고 놀던 유일한 사람이 조세핀이었다. 날름거리는 촛불 아래 그 여자가 속삭이듯, 아니 씹어 뱉듯 이렇게 말하는데 불현듯 우리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 “당신은 아무것도 아냐, 나 없이는”작년 1월 MBC ‘스트레이트’ 가 방송되기 전, 당시 대통령 후보 부인이었던 김건희 여사가 7개 내용에 대해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안타깝게도 내용이 유출돼 버렸는데 그 중 하나가 이거였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내가 아는 많은 남자들은 껄껄 웃었다. 실은 자기도 집에서 만날 듣는 소리라며 그게 무슨 대수냐고 했다. 참 속도 좋다. 남편이 집에서 라면 하나 못 끓여먹어 마누라가 챙겨줘야만 한다는 투정과,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 얘기는 같은 급이 아니다. 국정까지 대통령 부인이 챙겨줘야만 뭐라도 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면, 나라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스콧 감독이 해석하는 영화 속 나폴레옹은 그런 모습이다. 전쟁터에선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외쳤을지언정 조세핀 앞에선 바보멍청이일 뿐이었다. 유럽 대륙을 정복한대도 사랑이라는 전쟁에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패자(敗者)다. 이건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조세핀은 나폴레옹을 사랑하지 않았고, 이혼할 때야 비로소 사랑했음을 알게 된다고(조르주 보르도노브 ‘나폴레옹 평전’). ● “가장 행복한 기억은 아내를 만난 것”윤석열 대통령은 올 4월 미국 국빈 방문에 앞서 워싱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어서 늦게, 50(살)이 다 돼서 제 아내(김건희 여사)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 가장 기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대통령 취임 1년이 다가오는 시점이었다. 그것도 미국 방문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대통령 당선’도 아니고(정권교체를 원했던 다수 국민은 구국의 심정으로 2번을 찍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아니고, 김건희 여사와의 결혼을 언급한 거다. 이런 개인사 발언이 대통령 이미지를 부드럽게 해주는 측면은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나의 아킬레스건은 내 아내’라고 공표한 것과 다름없다. 윤 대통령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 사람이 대통령 부인인데 누가 감히 “여론이 안 좋은데 김 여사와 처가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을 둬야 한다” “대통령비서실에 김 여사 일정과 예산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을 따로 둬야 한다”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나(원래 이렇게 ‘짖어대라’고 비서실장이 있는 거라고 도널드 럼스펠드는 강조했다). 대통령과 대통령부인 활동이 별도 게시되는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와 달리 우리 대통령실엔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 사진이 함께 올라가 있다. 그래서 용산에서 VIP1, VIP2 소리가 나오는 거다(심지어 VIP제로란 말도 들린다). ● 황제의 아내는 노련한 정치가였다조세핀은 어려서 점쟁이한테 프랑스 여왕이 된다는 운명적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너무나 여성스럽고 우아해 남들이 몰라봤을 뿐, 남자를 조종할 줄 아는 조세핀은 노련한 정치가였다. 영화에선 조세핀의 부정 때문에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부랴부랴 오는 걸로 나오지만 실은 나폴레옹이 소환 명령도 안 받고 돌아올 것이란 정보를 경무대신 푸셰에게 전해준 스파이가 바로 조세핀이었다(슈테판 츠바이크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온통 황제뿐인 주변국과의 관계를 위해 후계자를 필요로 한다. 결국 ‘국민의 이익’을 우선해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택하는 것이다. ‘행운의 별’ 조세핀과 헤어진 뒤 패배를 거듭하다 죽음 앞에서 듣는 그 여자의 환청은 섬뜩하다. “내가 당신을 파멸시켰지. 다음 생엔 내가 황제가 되고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될 거야.” 실제로 조세핀은 제1통령의 아내로서, 황제비로서의 역할은 훌륭하게 해냈다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다. 앙드레 모로아는 ‘프랑스사’에서 파리는 조세핀에게 ‘승리의 성모’라는 칭호를 바쳤다고 했다. ● 김 여사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노련한 독자들은 내가 왜 먼 길을 돌아왔는지 알 것이다. 검찰은 인터넷매체 서울의소리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을 고발함에 따라 15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소환 조사 없이 서면 조사만 했다는 검찰이 명품백 수수 의혹이라고 바짝 수사할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두고 볼 일이다. 작년 9월 그 명품백을 받은 자리에서 몰래 찍었고 올해 11월 말 공개한 그 영상에서 자칭 통일운동, 보통 친북 활동가로 알려진 재미교포 목사에게 김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 객관적으로 전 정치는 다 나쁘다고 생각해요” “막상 대통령이 되면 좌나 우나 그런 거보다는 진짜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게끔 되어 있어요.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김 여사는 과거 공개된 녹취록에서 “내가 정권 잡으면 하하하 거긴 무사하지 않을 거야”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도 아니고, ‘남편이’도 아니고, ‘내가 정권 잡으면’이다. 그런 의식이 살아 있으니, 그리고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으니 이 영상에서도 “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끊어지면 적극적으로 남북문제 (해결에) 나설 생각”이라며 “우리 목사님도 한번 크게 저랑 같이 일하자”고 작년 9월 마치 대통령처럼 말한 게 아닌가 싶다. ● “드러나지 않게 잘하라고 했다”더니대통령 선거 전에 했던 김 여사의 사과를 전 국민이 기억한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올 초 윤 대통령은 한 신문과 단독 인터뷰에서 “취임해 보니 배우자도 할 일이 적지 않더라”며 “드러나지 않게 겸손하게 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윤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면, 개인적 희극에 그치지 않는다. 나라의 비극이다. 작년 9월 ‘도발’ -‘“우리 남편은 바보”…녹취록은 윤석열 리스크였다’에서 나는 스페인 방문 때 둘렀던, 재산신고 때 빼먹은 6200만 원 짜리 반 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도 늦었지만 신고하고(아, 지인에게 빌렸다니 선물 반환 창고에 보관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감찰관도 임명해 ‘김건희 리스크’를 끊어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대통령의 애처증은…안타깝지만 죄다. 나폴레옹의 아킬레스건이 조세핀이듯, 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은 김 여사다.▶[김순덕의 도발]“우리 남편 바보”…녹취록은 ‘윤석열 리스크’였나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반복한다. 내년 총선에서 폭망하지 않으려면, 곧 구성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쫓기듯 임명하지 않으려면, 특별감찰관과 제2부속실장 임명을 윤 대통령 스스로 속히 단행하는 게 낫다. 그것이 영화 속 나폴레옹처럼 국민의 이익을 우선하는 길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잠언시집이 있다.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 떠올라 가슴을 치게 만드는 제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최근 한 일간지가 연재하고 있는 회고록을 보면 ‘나는 몰랐다’는 대목이 왜 그리 많은지 가슴을 칠 정도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몰락을 몰고 온 공천 파동을 놓고도 그런 소리를 했다. 김무성 당시 대표가 면담도 요청했고 전화 통화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는데 자신은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거다. 기막힐 노릇이다. 2015년 11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해 달라”며 ‘총선 심판론’을 들고나온 뒤 곳곳에서 진박(진짜 친박) 마케팅, 진박 공천 갈등으로 난리라고 언론마다 도배를 하는 상황이었다. 김무성이 대통령과의 대화를 수차 요청했으나 현기환 정무수석이 안 된다고 했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참다못해 전화 통화를 요구하자 정무수석이라는 자가 “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하더라는 거다. 2016년 1월 말 우리 신문 5면 통단으로 달린 김무성 인터뷰 제목이 ‘진박 마케팅 역효과…청(靑)과 터놓고 대화 못 해 안타깝다’였다. 사인(私人)은 “몰랐다”고 혼자 한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공인의 뒤늦은 회한은 개인적 비극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통령이 정확한 보고를 못 받아 암군(暗君)으로 전락한다면 나라와 국민에 죄(罪)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독재자’로 찍힌 대통령들도 임기 초엔 입바른 소리를 따로 챙겨 듣곤 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고 육영수 여사는 ‘청와대 속 야당’ 역할을 했던 대통령 부인의 전형(典型)으로 추앙받는다. 혼자선 힘들 때면 1970년 당시 이건개 사정비서관을 불러 비판 여론을 보고하라고 옆구리를 찔렀다고 했다. 대통령은 안면이 경직되면서도 끝까지 듣고는 쓴 약을 마신 것처럼 “고맙다”는 격려를 잊지 않았다는 거다. 김영삼 정부 때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았던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2005년 고려대 대통령학 수업에서 “대통령들이 빠지는 가장 큰 함정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서실, 정보기관, 여당, 행정부 등에서 최고의 정보를 전달한다고 해도 각기 자신들 이익에 맞게 해석해 보고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얘기다. 임기 말도 아닌, 출범 1년 반밖에 안 된 윤석열 정부에 보고 시스템 붕괴 경보음이 요란한 건 위험한 징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4월 “특히 서방 관리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나토) 동맹국들이 어려움을 겪는데도 한국이 부산 엑스포 개최 지원 확보에 집착하는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라는 칼럼까지 실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9월 ‘한 달 안에 가장 많은 정상회담을 연 현대 외교사의 대통령’이라고 기네스북에 신청할 판이라고 ‘윤비어천가’나 불러댔다. ‘엑스포 2030’ 유치에 실패한 뒤 윤 대통령은 “저희들이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인정하긴 했다. “모든 것이 저의 부족의 소치”라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까지의 윤 대통령과 달라진 것도 같다. 하지만 정보 실패, 보고 잘못에 책임을 물어야 할 비서실 개편에서 비서실장은 여전히 굳건했고 국정기획수석은 정책실장으로 승진했으며 총선 출마를 노리는 수석 등 보좌진은 ‘윤심’을 싣고 꽃동네로 출동할 모양이다. 이래서야 과연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이 진정 달라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여당의 총선 성패는 대통령 지지율에 달려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버티고 있는 것이 국민의힘의 희망이긴 해도 혹시 모른다. 그가 총선 승리를 위해 과감히 물러나는 ‘연기’를 한다면 국민의힘은 믿을 데가 없어져 버린다. 윤 대통령이 국민 앞에 겸허한 모습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내년 초 신년기자회견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도록 연출하는 ‘국민과의 대화’는 또 하나의 홍보 행사일 뿐이다. 올 초처럼 대통령이 편한 언론 하나만 택해 독점 인터뷰를 갖는 건 더 많은 독자에 대한 배신이 될 수 있다. 묻고 따지는 기자들이 싫고 지겨워도 하는 게 낫다. 정치는 말이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대신한다. 거북한 보고를 받으면 화부터 버럭 낸다는 소문을 날리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초심을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은 내년 초 신년기자회견으로 ‘달라진 윤석열’을 국민 앞에 입증할 필요가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혈압 올라가기 딱 좋다는 영화 ‘서울의 봄’을 나도 보았다.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의 그날,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역할로 나온 정우성(극중 이태신)이 반란군 진압 출동을 막는 부하에게 “방패막이면 어때!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눈을 부릅뜨는데… 눈물이 솟구치는 것이었다.기자에게 가장 심한 욕은 “네가 기자냐?”다. 일부 네티즌이 함부로 쓰는 ‘기레기’ 같은 비속어는 기자 세계를 모르는 이들이 하는 소리니 못 들은 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배한테, 동료한테 “네가 기자냐?” 소리를 들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그래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거나 개과천선 시킬 각오가 없으면 그런 말 못 한다).‘서울의 봄’은 보는 이들마다 다양하게 읽히는 영화다. 혈압이 치솟았던 이유가 내겐 업(業)의 엄중함 때문이었다. “저게 국방장관이냐?”(영화에서 국방장관은 한미연합사에 몸을 피하고는 “I‘m fine, thank you. And you?” 요런다). “저게 장군이냐?” 심지어 “저게(아니, 저런 분이) 대통령이냐?” 싶어 나는 분기탱천했다. ●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으면 그게 군대냐” 장태완 장군은 월간조선 2010년 1월 인터뷰에서 “최규하 대통령, 노재현 국방장관만 자리를 지켰다면 군사반란을 막았을 것”이라고 했다(그는 그해 7월 별세했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을 연행하게 해달라고 사후 결재를 강요할 때 안 된다고 불호령을 내렸어야 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두려운지 대통령은 도피한 장관만 찾으면서 반란을 초동 진압할 기회를 놓쳤다”며 “이것은 직무유기”라고 장군은 분명히 말했다. 5공 실세들은 박정희 시해가 김재규의 단독 범행 아닌 정승화의 방조가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전두환은 살아생전인 2016년 대통령 퇴임 뒤 처음으로,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신동아 인터뷰에서 “정승화는 왜 잡아놨느냐. 우리가 볼 때, 젊은 장군들이 볼 때 (정승화가) 김재규를 앞세워 정권을 잡으려 했으니까. 김재규 머리로는 안 돼. 큰일 나. 그래서 잡아넣었어” 주장했다. 물론 대법원은 1997년 정승화 강제연행이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정승화가 뒤집어썼던 내란방조죄도 무죄 판결을 내놨다. 장군의 아들 정홍열은 2002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나온 자서전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 발간사 첫머리에 “나는 어제도 군인이었고, 오늘도 내일도 군인일 따름이다”라는 장군의 발언을 소개했다(공교롭게도 1979년 10월 28일 새벽에 전화로 들은 얘기란다). 책 속에는 ‘청와대나 정보부, 보안사 등만 뺑뺑 돌면서 진급은 제일 먼저 하는 군인은 군인도 아니다. 예편시켜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바로 그 군인도 아닌 군인들, 하나회 우두머리 전두환을 12월 13일 좌천시키려다 하루 앞서 강제연행 당한 것이 12·12 쿠데타였다.● 국방장관답지 않은 장관을 앉히면당시 대통령 최규하가 군부에 문외한이면, 4성 장군 출신 국방장관이라도 군을 장악해야 했다. 그러나 노재현은 전두환의 정승화 조사 건의뿐 아니라 정승화의 전두환 인사조치 건의 도 묵살했던 무책임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12·12 총소리가 터지자 냅다 피신해선 대통령이 찾아도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가느냐”며 나타나지 않았다(만약 전쟁이 터졌다면 어쩔 뻔했나 싶다). 시사인이 2016년 12월 공개한 장태완의 ‘12·12전후 10시간의 기록’에 따르면, 79년 12월 13일 오전 3시경 반란군 부대가 서울을 완전 장악한 다음에야 그는 애타게 찾던 국방장관의 전화를 받는다. 장관의 첫마디는 “장태완! 너는 왜 자꾸 싸우려고만 하나?”였다. 그러더니 “부대를 철수시키고 상황을 끝내! 내 지시를 따라!”하곤 끊더라는 거다.전두환은 2017년에 낸 회고록에서 ‘(새벽 4시경) 노 장관은 내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정 총장 연행 문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재가받는다는 얘기를 미리 해주었으면 혼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고 썼다. 하, 웃었다고? 군사반란을 사후 합법화해준 대통령 재가와 국방장관의 부서는 이렇게 이뤄졌다.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하고 대통령이 국방장관답지 못한 국방장관을 자리에 앉힐 때, 나라와 국민은 이렇게 고생한다. 그러고도 최규하는 12·12가 일단락된 다음 날 공화당 총재 김종필에게 전화를 걸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총재님이십니까? 저 어젯밤에 죽을 뻔 했시유!”(김종필 증언록2). ● “역사는 멋진 인물들의 합리적 판단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그렇다고 고관대작들이, 5공 실세들이 처음부터 못난 인물이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영화에서도 그러지 않던가. 전두광 역할의 배우 황정민이 반란을 모의할 때, 연희동 집에서 카리스마를 뿜뿜 내뿜으면서. “여기 대령 이하 잘 들어라. 니들 솔직히 서울대 갈 실력 됐잖아? 근데 왜 육사 왔어? 다 집에 돈 없고 빽 없어서 먹이고 재워 주는 육사 온 거 아니야? 근데 여까지 와가 저딴 똥별 새끼들 때문에 옷 벗으면 느그들 억울해 안 해? 눈까리 똑바로 쳐들고 들으라고! 억울해 안 해?!! 그러니까 대한민국 군대 한 번 대차게 바꿔보자는 거 아니야!”(그래서 김충식의 ‘남산의 부장들’에 따르면 당시 주미대사관에 근무하던 외교관 H는 “한국군에는 항상 ‘커널’(대령)이 문제”라고 증언했다). 김성수 감독이 본 12·12 군사반란은 그저 권력에 눈먼 인간들의 욕망이 만든 결과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거창하게 쓰여진 어떤 역사는, 그 순간 개입한 많은 이들의 돌발적인 생각과 가치관, 됨됨이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역사책에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읽히는 필연의 역사가 실은, 멋진 사람들의 합리적 판단을 거쳐 나오는 게 아니란 감독의 통찰은, 섬뜩하다. 심지어 그는 “이런 일은 지금도, 늘 벌어진다”고 했다(그래서 더 섬뜩하다).● 연성 파시즘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문재인 정권 영화를 종종 정치에 이용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의 봄’을 보고 반색을 한 모양이다. “군복 대신 검사의 옷을 입고, 총칼 대신 합법의 탈을 쓰고 휘두르는 검사의 칼춤을 본다”(정청래) “하나회가 검란을 일으켰던 검찰 특수부와 오버랩됐다”(민주당 출신 무소속 김남국)며 ‘윤석열 검찰독재’를 전두환 신군부독재와 동격으로 놓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산하 검사범죄대응TF 팀장 김용민 의원은 “윤 정권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면 계엄을 선포하고 독재를 강화하려고 할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10월 출범 때 이미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검사 출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활용하고 있는 검찰이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광범위하게 파괴하고 있다”며 검사 탄핵을 예고했다.그런데 어쩌랴. 정승화는 강제 예편 뒤 1987년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으로 김영삼(YS)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사람이다. 그 민주당이 지금의 민주당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YS는 “호랑이를 잡겠다”며 90년 3당 합당했고, 대통령이 된 다음 95년 재창당한 신한국당의 후신이 현재 국민의힘이다. 93년 2월 취임하자마자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과감히 척결해 쿠데타의 싹을 도려낸 점은 YS의 공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승화 등 22명은 93년 7월 전두환·노태우 등 38명을 12·12 군사반란 혐의로 고소해 97년 역사적 심판을 받아냈다.그리고 또 어쩌랴. 44년 전 신군부는 총칼로 권력을 찬탈했지만 21세기 선출된 독재자는 사법부를 비롯한 제도와 기관을 자의적으로 바꿔선 겉으론 합법적으로 보이게끔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그게 연성 파시즘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 시절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책을 인용해 나도 팔이 아프게 썼던 민주주의 파괴 말이다.● 이념 사조직이 지배하는 사법부 “네가 판사냐?”‘민주주의를 부드럽게 죽일 수 있는 세계적 공식이 궁금한가. 심판 매수! 언론을 시작으로 사법부와 검경, 정보기관, 국세청, 선거관리위원회, 통계청 등의 중립적 기구에 충성스러운 측근을 들여보내 자연스럽게 장악하는 거다.’ 2019년 1월 첫 ‘도발-독재자 감별법을 아십니까’에서 내가 썼던 대목이다. ‘검경’ 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너무 길다. 이하 文)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결국 못 참고 “상식과 공정, 법치를 내팽개쳐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렸다”며 무도한 문 정권 타도에 나섰고, 마침내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그리곤 文이 쌓아놓은 쓰레기 치우기에 허덕이는 상황이다.이제 보니, 文의 가장 탁월한 용인술은 군부 사조직 하나회 뺨치는 우리법연구회,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김명수를 2017년 대법원장에 앉힌 것이었다. 김명수가 전체 법관(3400명) 중 14%도 안 되는 특정 이념집단 법관들을 요직에 심어 헌법이 보장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훼손시킨 건 정말 웃기는 짜장면이다(인권이면 인권이지, 한국인권 국제인권 따로 있나?). 이념의 배짱이 맞는 판사를 만나면 유죄도 무죄 되는 사법의 이념화, 정치화, 복권화(福券化)라니 “네가 판사냐?” 소리가 절로 나올 판이다. 일주일에 몇 개인 지도 모를 재판에 출석하는 민주당 당대표 이재명이 재판 중 농땡이를 부리는 것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대선 때 이재명이 대장동 핵심 실무자를 “몰랐다”고 말했던 선거법 위반 사건은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공직선거법과 국회법에 따라 의원직을 잃고 5년간 피선거권도 제한돼 차기 대선에 출마할 길도 막히는 엄청난 재판이다. 민주당이 선관위로부터 보전받은 대선 선거 비용 약 434억원도 토해내야 한다. 그런데 김명수가 만든 사무 분담 내규 등에 따르면 내년 2월 재판장이 바뀔 공산이 크다. 그러니 이재명이 하품을 안 하겠느냔 말이다. ● 예산안 팽개치고 탄핵 처리한 국회 “너희가 의원이냐?”영화 속 최고의 대사는 단연 이 대목이다. 전두광이 으스대며 하는 말. “인간이 명령 내리기 좋아하는 거 같지? 인간이라는 동물은 안 있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주길 바란다니까?”민주당은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관련 수사 책임자였던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직무대리와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단독 처리했다. 656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 헌법상 처리 시한(2일)은 젖혀 놓고, 숱한 범죄 혐의로 재판 중인 당 대표 ‘방탄 탄핵’에 올인한 의원들 모습이 마치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강력한 누군가가 자신들을 리드해주길 바라는’ 꼬라지와 겹쳐 보인다. 그래서 묻고 싶은 거다. 수박으로 찍힐까 두려워, 이재명한테 찍힐까 겁나서, 이미 감찰받고 재판받는 검사나 탄핵하는 당신들이 무슨 국회의원이냐고. (12·12 군사반란 42년 후인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은 저세상으로 갔다. 향년 90세. 한때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지만 국민 두려운 줄 알았던 YS는 특별법 제정에 나섰고 전두환은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등의 혐의로 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과 2205억 원 추징 판결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아직까지 대한민국 땅 어디에도 안장되지 못하고 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마침내 국민의힘 혁신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모양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 표현대로라면 ‘나라님’ 목이다. 오신환 혁신위원은 22일 “많은 분들이 왜 대통령을 향해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며 “일반 당원이라면 당정 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5호나 6호 혁신안에서 논의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여당이 이제라도 건강한 당정 관계 혁신안을 내놓겠다니 다행이다. 이에 비하면 대통령도, 나라님도 없는 야당이 ‘숨 막힐 상황’이라는 건 분명 비정상이다. 더불어민주당 비명(비이재명)계 이상민 의원이 21일 대전 KAIST 혁신위 특강에서 한 소리다. 비명계 의원 4명이 결성한 모임 ‘원칙과 상식’ 중 한 명인 조응천 의원도 같은 소리를 했다. 당내 패권주의, 사당화, 팬덤 정치 때문에 질식할 지경이라는 거다. 이 모임이 19일 진행한 청년 간담회에선 현재 민주당의 상태가 독재, 공포, 경색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거대야당 민주당엔 제왕적 당 대표 이재명이 있다. 대통령의 측근인사 비판할 것 없다. 이재명도 친명인사 일색으로 해놓고는 대통령 못지않은 ‘친명 패권’을 휘두른다. 8월 ‘김은경 혁신위’가 조기 종료된 뒤 이재명은 조용히, 실은 더 무섭게 혁신 중이다. 당내 공식 기구도 아니면서 공식 기구 같은 이름을 가진 ‘더민주전국혁신회의’라는 친위조직을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다. 이 사병 같은 친위대가 많은 이들에게 각인된 건 이재명이 자신의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을 앞두고 8월 31일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을 때다. 혁신회의 강위원 사무총장이 야권 성향 유튜브에 나와 “가결표를 던지는 의원들은 끝까지 추적, 색출해 당원들이 그들의 정치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압박한 거다. 강위원은 이재명이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함께 비서실 총괄팀장을 맡았던 실무 3총사였다. 그는 1997년 23세 선반기능공을 경찰 프락치로 몰아서 숨지게 했던 ‘이석 치사 사건’ 당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으로 유명하다. 자유일보에 따르면 김용은 1993년 한총련 출범 시 지도위원으로 종북그룹을 관리했다. 정진상은 남총련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혁신회의엔 강위원 말고도 1997년 남총련 의장 출신 정의찬, 1998년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 출신 이석주 등 한총련 출신이 적지 않다. 민주당 공식 조직도 아닌 이 조직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여기서 성명서를 내거나 움직이면 이재명이 따르기 때문이다. 9월 6일 혁신회의가 “윤석열 정권의 무능독재, 내각 총사퇴 요구로 해체하자”는 성명서를 내자 이틀 후 이재명은 국회에서 총리를 포함한 내각 총사퇴를 촉구했다. 강서구청장 후보로 진교훈을 선보인 것도 8월 20일 혁신회의 전국대회에서였다. 정당법에 명시된 대의원제 폐지와 ‘당원민주주의’도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혁신회의에서 민주당을 ‘접수’해 이재명을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 출생) 강위원은 최근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우리 목표는 진보개혁세력의 집권이고 이재명을 통해 그 목표를 이루려는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도구’로 택했던 안희정, 이광재 등 86그룹을 연상케 하는 발언이다. 내년 총선에서 현역 의원 50% 물갈이해서 자신들이 나서는 것은 물론이다. “윤 대통령으로 인해 개헌을 통한 제7공화국 건설 논의가 활발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기본소득에 기반을 둔 사회경제 체제, 남북 화해협력도 강조했다. ‘전대협 문재인 정권’을 능가하는 가공할 제7공화국 구상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이 성남시장 시절 한총련이나 경기동부 운동권과 연을 맺어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역 의원들을 제치고 ‘자객 공천’에 나서겠다는 혁신회의 사람들 중에는 종북·폭력·점거·반(反)인권적 과거에서 자유롭지 않은 점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국고에서 보조금을 받는 공당(公黨)의 정책과 공천 결정 과정이 공식 조직 아닌 사조직을 통해 비민주적으로, 사적 이해관계에 의해 정해져도 되는지 의문이다. 만일 국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비선조직 아니냐며 나라가 뒤집어질 판이다. “한총련이여 반미자주 함성으로, 가자 가자 한총련이여, 통일 조국으로” 진군가를 불렀던 한총련 출신들이 이재명과 어떤 제7공화국을 만들려는지도 무섭고 두렵다. 이념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대남 도발을 감행하는 상황이다. 86그룹보다 훨씬 시대착오적이고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97운동권에 기댄 이재명의 혁신은 ‘혁신’에 대한 모독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낚시 제목 아닙니다. 실화입니다(아…좀더 솔직하게 붙이려면 ‘늙은 여자’ 혼자 여행하기라고 해야겠네요). “일기는 일기장에 써랏!”하는 분들은 오늘은 여기서 멈춰 주세요^^. 인터넷 공간 좋은 점이 뭐겠어요. 주말이니 저도 좀 편하게 써보려구요.실은…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쓸 게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우리 독자님들 좋아하는 걸 쓸작정이었는데(윤석열 대통령 잘하고있다, 이런 거 좋아하시죠?) 대한민국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부터 육·해·공군참모총장 등등 4성장군 7명을 모조리 파직하고 중장(3성 장군)을 대장으로 전격 진급시켜 합참의장에 임명한 것도 불안불안한 마당에, 그렇게 앉힌 김명수 합참의장 후보자가 근무시간에 50번 넘게 주식거래질이나 했던 사람이라면서요.심지어 작년 3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쏜 날도 오후에 골프를 쳤다니, 이것만 가지고도 욕이 한 바가지 나올 판이예요(그래 놓고 “참모총장 되면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겠다”고요? 자기는 근무 중 실컷 딴짓 해놓고, 군 기강 잡히겠느냐고요. 군필 아닌 대통령이 알 리가 있을까요?).● 우리는 ‘정치 중독’에 걸린 게 아닐까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윤핵관과 지도부를 향해 매일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지겹고 괴로워요. TK 꿀단지 비워달라는 건 알겠는데 그럼 그 자리에 누굴 앉힐 건데요? 용산 출신인가요? 아님 검찰 출신? 하이고, 그렇게 잘났고 그토록 잘 해왔으면 당당하게 서울-수도권 험지로 나와야죠. 윤 대통령 얼굴 배지로 만들어달고 나와야지, 왜 안전한 TK에 낙하산 타고 양탄자 깔아 내려 보낼 짱구나 굴리느냐구요. 이렇게 쓰기 시작하면 또 욕이 한바탕 나올 것 같아서 슬픈 거예요. 근데…언제는 국힘이 내 삶에 도움이 된 적 있었나요? 아, 반대로 생각하면 답이 나오긴 해요. 더불어민주당은 그놈의전세3법으로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게 분명했죠. 그러고 보면 국힘은 민주당의 계속 집권을 막아준것만으로도 고마운 정당이구요. 다만, 더 이상의 기대는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 싶어 또 슬퍼지네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정치 중독’에 빠진 건 아닐까요. 내 문제는 들여다보지 않고, 내가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그저 정치 탓, 대통령 탓만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내가 살기 어려운 것도 대통령 때문이고,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못(또는 안)하는 것도, 취직 못하고, 집 못 사고, 전세 사기 당하고,아이들 안 낳는 것도 다 정치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거죠. 정치만 잘하면 해결이 될 텐데, 대통령만 잘 뽑으면 졸지에 잘 살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니 얼마나 답답해요! ● 댓글창은 일종의 신경정신과 병원 더구나 윤 대통령은 “국민이 늘 무조건 옳다”고 했어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미국과의 튼튼한 안보동맹을 중시하는 윤 대통령이 우리 궁민(窮民)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준다는 거 아니어요? 그런데 저 거대야당 민주당 사람들이 발목만 잡고 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되겠느냐구요! 화가 나시죠? 그럼 냅따 악플을 달면 된답니다^^ 인터넷 시대, 모두가 섬처럼 외로운 고독의 시대, 정치가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정치중독의 시대, 악플달기는 스트레스 해소 및 치매예방용 국민 e스포츠로 자리잡았거든요(노무현 시절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라고 욕하던 게 국민스포츠였던 거, 기억나시죠?) 우리 동네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그러더라구요. 모두가 병원에 올 순 없으니까 인터넷 댓글 창에 각자의 욕구불만을 내뿜는 것이라구요. 그러고 보면, 신문 인터넷판 댓글창은 동네 신경정신과 병원 같아요. 우리들의 정치중독을 고쳐주진 못하지만 중독자들을 받아주는 역할은 아주 잘 하고 있죠. 낮엔 하이드 씨였던 분들이 밤엔 지킬 박사가 돼서(사실은 밤낮을가리지않고) 온갖 감정을 쏟아내면 묵묵히 받아주는 거예요. ● 악플의 바다…또는 감정의 시궁창가슴 가득한 애국심과 울분을 나누고 싶은데 나눌 사람이 없는 분들, 너튜브를 보고선 공감은 했으되 쏟아낼 데가 없는 분들, 그런 분들이 주로 댓글창을 찾죠. 제가 열심히 쓴 기사는 보지도 않고(어쩌면 제목과 이름만 보고는) 냅따 아래로 내려가 다다다 댓글부터 다는 분들도 계시다는 걸 알아요(그래도 고맙답니다 ,하하). 궁민 여러분의 감정 수렴…정치인들은 안하고, 못하는 일을 인터넷 댓글창이 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남의 불평불만 들어본 분은 잘 알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랍니다(그래서 의사들도 돈을 받고 들어주는 거에요^^;). 댓글창이 궁민들 감정을 다 받아주는 바람에 그나마 신경정신질환이 이 정도에서 유지되고, ‘묻지마 폭력’도 그 정도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좋게 말하면 바다처럼…거칠게 말하면 감정의 시궁창처럼ㅜㅜ).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저의 여행 가이드도 그러더라구요 “저도 사람인지라…”) 방향을 180도 바꿔 이번엔 저의 여행기나 쓰기로 했답니다. 죄송하게도 특별한 건 없구요(심심해서 읽은 분들이 아니라면, 제발 여기서 멈춰주시어요). 혼자 다녀왔다는 거예요. 코타키나발루. 3박 5일. 여행사 상품이죠. 저까지 29명이었는데요. 저와 눈이 딱 마주치면 사람들이 그러는 거예요. “혼자 오셨어요? 용감하네…”● 나홀로 여행? 용감하게, 청승맞게아프리카 정글 탐험도 아니다. 바람의 딸로 유명한 한모 씨처럼 오지 배낭여행을 한 것도 아니다. 비행기 타고 얌전히 날아가 호캉스 하다가 가이드 따라 낮에는 섬 투어, 밤에는 반딧불 투어하는 여행사 상품을 구입한 거다. 그런데 대체 왜 남들은 날더러 용감하다고 하는 걸까.혼자 해외출장을 안 가봤으면 또 모른다. 1994년 세계 가정의 해를 앞둔 꼭 30년 전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를 20일간 혼자 취재한 적도 있고, 2001년 뉴욕 해외연수도 혼자(처음엔 딸과), 2013년 벨기에 연수도 혼자 갔다. 그런데 관광지에 혼자 왔다고 말로는 용감하다면서도 내심으론 여자 혼자 웬 청승? 하는 티가 역력했다. 신문을 그리 열심히볼 것 같지 않은 그들에게 “제가 직업상 혼자 출장도 많이 다녀서요” 할 수도 없다.학구열에 불타는 나는 돌아와 논문을 찾아봤다. 올해 나온 경희대 이동옥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의 ‘해외 자유여행에서 50,60대 여성의경험:휴식, 치유, 자아인식’이라는 논문을 보니 알것 같다. 비혼이 아닌 여성들은 주로 가족, 대체로 남편과 여행을 하는데 “가족여행에서 여성들은 돌봄(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가족이벤트로 참여한다 하더라도 가족간의 갈등과 불편한 감정을 감수해야 했다”는 거다. 쉽게 말해 아직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여자는 가족과의 여행이 당연했다(무슬림 국가에서 여성은 스카프로 얼굴을 감싸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 가족들과 여행하면 엄마라는 여자는 일일히 가족들을 챙겨주거나 신경을 써야 한다. 타고난 여왕님이 아닌 이상. ● 붙어 있으면 싸운다…효도여행이 이혼여행돈 많은 ‘지갑’과 함께 여행하면 참 편할 것 같긴 하다. “동행없이 여행하지 말라”는 명언도 있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근사한 말도 있지만 “효도여행이 이혼여행 된다” 같은 살벌한 우스개도 있다. 터키를 갔을 때다. 당근 나홀로였는데 관광버스에선 대개 처음 앉은 자리가 고정석이다. 그런데 이튿날 부부끼리 온 분들이 붙어 앉지 않고 뚝뚝 떨어져 앉는 바람에 내가 앉을 자리가 없어진 것이었다(씩씩).남편이야 인간성은 물론 지갑 사정까지 다 아는 처지지만 친구는 또 그렇지 않다. 친한 친구들끼리 와서도 방까지 같이 쓰며 몇일씩 같이 있다보면 감정을 상하는 일이 없지 않다(주로 여자친구끼리다. 골프여행도 부부동반이지, 남자끼리는 별로 못 봤다). 모녀 사이도 꽤 있다. 나도 딸과 다녀봐서 아는데 애인하고 똑 같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또 애인처럼 싸우기도 많이 싸운다. 애인과 다른 점은 엄마가 일방적으로 구박 받는다는 것. 나도 지난달 제주도 갈 때 공항에서부터 딸과 싸웠다. 저쪽 줄이 짧다고 딸이 먼저 가서 보고는 전화를 해왔기에 허겁지겁 갔더니 어떤 줄인지, 글쎄 애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막 찾았는데 나중엔 그것도 못 찾는다며 어찌나 구박을 하던지, 눈물이 다 나왔다(그래서 이번엔 그런 감정노동 안 하려고 혼자 여행을 했던 것이다!).● 행복의 비결은 ‘좋은 관계’물론 혼자 떠나 있지만 마음까지 혼자인 건 아니다. 좋은 걸 보면 딸과 함께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고, 맛있는 걸 먹어도 딸과 먹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래서 자식의 마음엔 역적이, 부모의 마음엔 충신이 들어있다고 돌아가신 엄마는 말했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 찍어선 결국 보내는 것도 딸한테였다(불의의 비극으로, 내 목숨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고 싶다. 스마트폰 같은 기계를 통해서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족에게로.그래서 85년간 진행된 하버드대 연구는 인생에 관해 이렇게 한 줄로 요약된다. 좋은 관계는 우리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해준다. 끝.요새 핫한 책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탐사보고서’의 핵심이 바로 이거다. 그 좋은 관계가 내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 좋은 관계면 제일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잘 모르는 사람과 가볍고 친절한 대화를 하는것도 긍정적 경험으로 남는다. 이건 매번, 매일, 매주, 매년, 수없이 새롭게 해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사족-‘도발’을 시작한 2019년에도 나홀로 이집트 여행을 갔었다(‘’). 마침 생일이 끼어 있는 걸 알고 가이드가 내 방으로 케익 한상자를 보내줬다. 난감했다. 이 큰 케익을 혼자 어떻게 다 먹으라구ㅜㅜ. 그땐 솔직히 안 반가웠다.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맙다. 하지만 관심도(그리고 사랑도)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좋은 거랍니다^^.▶[김순덕의 도발]하늘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 저는 지금이집트로 가요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너무 솔직한 것도 병이다. 경기 김포, 하남, 광명 등을 서울에 편입시키는 ‘메가시티 서울’ 구상은 2008년 총선에서 집권당에 승리를 안겨준 뉴타운 공약과 똑같다고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가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 치른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국힘)은 ‘헌 집 주면 새집 받는다’는 뉴타운 개발을 내걸어 서울에서 압승했다. 그때처럼 이번엔 경기 주민들의 집값 상승 욕망을 자극해 내년 총선에서 재미 보겠다는 속셈을 털어놓은 거다. 심지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여당의 총선 전략을 거들고 나섰다. 8일 친윤(친윤석열)계 단체인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초청 강사로 나와선 김포시 서울 편입에 대해 “장점으로는 재산 가치가 증식되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알게 된 사실은 마셔버린 물 같아서 다시 몰라질 수가 없다. 물에 체하면 약도 없다는데 국가 운영이나 발전에 대한 비전도, 공부도 없는 정부여당이 국민을 그저 천박한 욕망 덩어리처럼 대하는 듯해 답답하고 참담하다. 15년 전 여당이 “우리도 강남처럼 살고 싶다”는 강북 주민들의 욕망을 자극해 서울 48곳 중 40석을 차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제는 그 뒤 상황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뉴타운 지정설만 나와도 땅값이 뛰어 ‘뉴타운 로또’라고 했지만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사업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온갖 분란이 벌어졌다. 2011년 11월 취임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내가 대머리가 된다면 뉴타운 때문일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물론 더 좋은 곳에 살고 싶다는 보통 사람들의 소망을 비난할 순 없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부라면 뉴타운 지정에 앞서 투기 대책, 저소득층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기에 출범부터 강부자(강남·부동산·부자) 정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MB정부는 한남 뉴타운 등이 웅장하게 들어선 지금도 반(反)서민적, 부동산 투기조장이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유독 MB 때 인사들을 기용해 MB 2기라는 소리를 듣는 윤석열 정부다. 부동산 정책도 규제 대폭 완화, 건설업체 연쇄 부도 막기 등 MB정부 판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이젠 ‘뉴시티’까지 제2의 뉴타운이다. 그래도 MB 때는 강북을 강남처럼 개발한다는 선의라도 있었다. 국힘이 “김포를 발전시키겠다”도 아니고 “편입되면 집값 오른다”며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건 책임 있는 정치라고 할 수 없다. 김기현 대표는 “수도권이라는 운동장에 불합리하게 그어진 금을 합리적으로 고쳐 긋자는 것”이라고 참 쉽게 말했다. 이처럼 쉬운 정치로 지금껏 한 번도 보수정당을 찍어본 적 없는 수도권 3040세대 화이트칼라 민주당 지지층, 서울 집값 상승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해서 경기로 이사 간 표심을 끌어모을 요량인 모양인데, 쉽지 않다고 본다. 집 한 채 가진 사람은 집값이 뛰어도 반갑지 않은 법이다. 전·월세를 사는 사람은 더 겁난다. 2020년 총선까지만 해도 김포시에서 민주당이 압승했지만 2022년 대선에서 차이가 좁혀졌고(이재명 51.1%, 윤석열 45.6%) 경기지사 선거에선 이미 역전된 상태다(김동연 47.7%, 김은혜 50.5%). 고양 남양주 하남 군포 안산 등에서도 국힘 단체장이 당선됐다. 문재인 정권 때 매매가는 물론 전세가까지 뛰면서 정치적 불만과 불안이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에선 ‘화곡이 마곡 된다’는 선전에도 민주당으로 표가 넘어갔다. 그런데 서울 편입되면 김포 집값 올라 좋을 거라고? 영끌해 경기도로 전세 간 젊은층은 어쩌란 말인가? 김포 땅부자나 토호들이야 좋겠지만 자칫하면 강서구청장 선거 때처럼 경기 표심이 왼쪽으로 다시 넘어갈 수도 있다. 게다가 국민은 국힘의 속내를 벌써 알아버렸다. 2008년 때도 서울 유권자들 67.6%가 ‘문제 있는 공약’이라고 응답하며 여당에 표를 주기는 했다(동향과 분석). 그러나 15년 후인 지금, 나라를 책임진 집권당이 이제라도 영끌해서 집 사라며 국민을 ‘욕망의 정치’로 타락시키는 건 도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웰빙 정당 국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를 세우고 지켰다고 자부하는 보수정당이라면, 메가시티든 뉴시티든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놓고 ‘수도권 대전략’을 내놓는 정치력을 보여야 했다. 그만한 역량이 안 된다면 김포시가 간절히 원하는 교통 문제 해결책이라도 서둘러 내놓을 수 있어야 했다. 앞으로 가도 시원치 않을 판에 흘러간 인물을 모시는 것도 모자라 15년 전 재미 본 선거 전략이나 내놓는 MB 2기 집권당이 안타깝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아무래도 길게 못 살 것 같다. 독한 글 쓰고 험한 욕 먹으면서 제 명대로 살 리 없다. 26일자 신문에다 ‘정실인사는 부패다’ 칼럼을 쓰고 나서도 나는 속이 쓰렸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알고 보면 ‘김명수가 망친 대법원’을 개혁할 적임자라는 중학교 동창 카톡을 보니 장이 더 꼬이는 듯했다(그는 같은 서울대 법대 80학번이다). 그럼 국회에서 임명동의안 부결당하지 말아야 할 게 아니냐고!또 다른 변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법정상화를 시킬 수 있는 정통 법관이라고 했다. 그들은 공직자 재산등록 누락이나 세금 탈루 같은, 민간인에게 예민한 문제엔 관심도 없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알겠다. 윤석열 정부에서 왜 국민 억장 무너지게 만드는 인사가 자꾸 이어지는지. ‘그들 눈높이’에선 그런 게 문제로 안 뵈는 거다.왜 재산신고 누락, 부동산 보유, 증여세, 이해충돌, ‘부모 찬스’ 문제가 장관 후보자들한테서 계속 나오느냐는 야당 질의에 11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쓸 때는 대개 비슷한 문제가 나오게 돼 있다”고.● 상류층엔 그 정도 부패가 보통인가가히 핵폭탄급이다. 털지를 않아서 그렇지, 이 정도 문제 있는 고위공무원은 수두룩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말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고위공직자의 등록재산을 심사해야 하고 거짓 기재한 경우, 빠트리거나 잘못 기재하는 경우엔 해임까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균용처럼 10년 이상 재산등록을 빠트리는 게 별일 아니라고?검찰 출신 장관이 그리 본다면 검찰 출신 수두룩한 공직기강비서관실, 심지어 윤 대통령도 같은 사고일 게 분명하다. 어쩌면 일만 잘하면 되지, 그까짓 법률 위반이 뭔 문제냐고 생각할지 모른다(같은 ‘패밀리’끼리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그러고 보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이면서도(2022년엔 13등으로 떨어지긴 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 부패인식지수가 OECD 38개국 중 22등, 하위권에서 맴도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경제적 성공이 강조되는 물질주의 문화, 불평등한 사회 속에 부패가 창궐하는데 폐쇄적 사회연결망, 가족주의, 연고주의가 부패의 기회구조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신동준 국민대 교수 2023년 ‘부패의 원인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 그러고 보니 그려지지 않는가. “우리가 남이가” 같은, ‘아는 형님’ 있어 끈끈하고 든든한, 우씨 그들끼리는 살기 좋은 더러운 세상. ● 애들 볼까 겁나는 인사청문회 그러나 평범한 국민들은 그렇게 간이 크지 않다. 한동훈 발언은 정직하게 세금 내며 살아온, 그러면서도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다. 또 다른 원로 법조인도 “사람을 안 찾아서 그렇지 다 그렇진 않다”고 했다.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실에서 추천 후보를 지명하면 1차 검증 자료를 제공할 뿐이라고 했다. 이 말은 즉, 대통령실에서 ‘문제 있는 사람들’만 쓰려 한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최고의 인재들을 폭넓게,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라도 찾아 쓸 생각은 않고 그저 ‘아는 사람’ 속에서만 지명하니(이것이 정실인사이고 부패의 일종이다), 또각또각 말 잘하는 한동훈이 ‘싸가지 없는’ 소리를 한 건 아닌가.설령 대통령 주변에선 다 그렇게 산다 해도 그게 옳은 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이미 공직재산신고 누락, 부동산 보유, 증여세 미납, 업무 관련 특혜와 이해충돌, 부모 찬스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면, 정말 입에 올리고 싶진 않지만 전 법무부 장관 조국은 왜 1심 유죄를 받았는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진짜 그런 문제가 있는데도 처벌은커녕 장관으로 출세하는 ‘윤석열 세상’이 옳다면, 애들 교과서를 바꿔야 할 판이다. 그런 청문회를 볼 때마다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분노하는지, 부모 찬스 없는 청년들이 얼마나 절망하는지 밴댕이 소갈딱지만큼이라도 헤아려본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은 다 그렇다”며 그따위 인사를 계속할 순 없다.● ‘반듯한 장관감’ 폭넓게 왜 못 찾나만일 꼭 필요한 인재인데 국민 눈높이에선 문제 있을 것 같다면, 대통령실에서 쓰기 바란다. 그리고 청문회가 TV로 생중계되는 장관 자리엔 ‘반듯한’ 인물을 앉히는 거다. 그래야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체제 정당성을 믿게 되고, 나도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 장관 후보자가 유능한 사람이면 더 고맙다. 공무원들은 정신을 번쩍 차릴 것이고 청년들 가치관도 달라질 것이다. 이 정부는 연고주의 아닌 능력주의라는 믿음이 생긴다면, 대통령 지지도는 자연히 올라간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북유럽 같은 부패 없는 선진국에서 살 수도 있다.(잠깐 막말을 써도 된다면, 어차피 중요한 일은 대통령실에서 그리고 대통령이 내려보낸 실세 차관이 다 하는 윤 정부다. 장관한테 힘을 실어주지도 않으면서 굳이 문제 있는 인물을 임명해 ‘보수=부패’ 이미지를 부풀린 건 없지 않은가.) 신문 칼럼 끝에 나는 ‘차라리 국민들 속 뒤집히지 않게 인사청문회를 없애는 게 낫다’고 썼다. 인사청문회를 하는 나라는 대통령제인 미국, 필리핀, 우리밖에 없다. 모처럼 전임 대통령 호소를 받아들여 사전 인사검증과 공개청문 2단계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신문 공간이 모자라 못 썼지만 사실, 내가 그 뒤에 붙이고 싶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아니면 반듯하고 유능한 장관감을 갖다 앉히든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한 달이 넘었다. 지난달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임기가 끝나면서 지금껏 비어 있다. 6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35년 만에 국회에서 부결되자 대통령실은 “야당의 일방적 반대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사태를 초래했다”고 야당을 비난했다. 1988년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때는 이러지 않았다. 그때도 여소야대였고 신문에 ‘정권의 사법부 지배 구태에 제동’, ‘다루기 편한 사람 내세운 것부터 잘못’ 제목이 나온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부결 이틀 만에 신망 있는 이일규 전 대법원 판사를 새 후보자로 지명해 사태를 수습했다. 이균용 사태 때는 내내 불편했다. 아니, 장관 인사 청문회를 할 때마다 보수 정부에서 출세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보는 듯해 낯 뜨겁고 민망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 법관도 70억대 자산가가 될 순 있다. 그들은 개발독재 시절 정경유착 등으로 치부한 실력자나 재벌 일가도 아니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80학번 이균용은 공부 잘해 제 힘으로 출세했고, 결혼도 잘해 부를 일군 ‘특권 중산층’에 속한다. 특히 ‘사법’(시험 합격자 미혼 남성)들에게는 ‘노블레스’(상류층 미혼 여성)를 연결해주는 마담뚜가 숱하게 접근했다고 한다. 문제는 혼자 잘나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 대한민국 상위 10%의 ‘뉴 하이’ ‘뉴 리치’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공직자 윤리도, 준법의식이나 시민정신도 안 보였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균용은 국회 동의 없이는 임명될 수 없는 대법원장 후보자여서 거기서 끝났지만 윤석열 정부 내각엔 그 못지않은 장관들이 적지 않다. 물론 보수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임 대법원장 김명수는 강남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아들 부부를 관사에 불러들여 살면서 ‘관사 테크’를 시킨 것이 드러나 뻔뻔함엔 좌우 없음을 보여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딸의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1심 유죄 선고를 받음으로써 도덕성을 코에 걸었던 문재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다르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이 내건 공정과 상식에 환호한 게 아니었던가. 인사 검증을 책임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 모든 흠을 알고도 이균용을 인사청문회에 올린 것은 그가 대통령의 친구의 친구였기 때문일 터다. 윤 정부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이 대통령의 초중고교 및 대학 동창, 검찰 특수통, 심지어 영부인의 측근 등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문 정권이 좌파 이념으로 뭉친 이권 카르텔이었다면 윤 정부는 ‘윤석열과 친구들’이다. 첫 내각 19명 중 10명이 서울대, 그중 절반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었으니 말이다. 윤 대통령은 “그럼 전 정권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자부한 바 있다. 그럼 아는 사람을 쓰지 모르는 사람을 쓰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을 출간한 노태우의 비서실장 정해창은 노 대통령이 자기가 모르는 사람을 장관 등 요직에 많이 기용했다고 했다. 비서실에도 출신과 배경을 가리지 않고 한국 최고의 인재들을 썼다는 것이다. 36% 득표율로 취임한 그가 56.8%의 긍정 평가(미디어리서치)로 퇴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용인술 덕분이라고 했다. 올 8월 갤럽 정책 분야별 평가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가장 못한다고 평가받는 것이 공직자 인사다. 잘했다는 응답이 달랑 19%, 북한 문제(40%)나 복지(37%), 외교(36%)에 비해 한참 뒤진다. 더 큰 문제는 공직에 아는 사람을 앉히는 연고주의, 정실인사가 국제투명성기구(TI)에선 뇌물, 공적자금의 횡령, 공직의 사적 이용, 국가포획과 함께 ‘부패’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올 1월 TI가 발표한 2022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63점으로 180개 국가 중 31위다. 전년 대비 점수와 국가순위는 1점, 1등급 올랐지만 공직사회와 관련된 정치 부패 점수가 내려간 것은 심각하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고도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대의 ‘완전한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본다. 윤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람들만 자꾸 세운다면 희망도, 체제 정당성도 주기 어렵다. 대한민국 상위 10%가 탈세, 탈루, 꼼수, 부모 찬스로 혼자 잘살겠다고 난리인데 어떤 청춘이 성실히 노력하며 살겠는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국민들 속 뒤집히지 않게 인사청문회를 없애는 게 낫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동아일보 19일 자엔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당 4역과 오찬 뒤 용산어린이정원을 산책하는 사진이 실렸다. 햇살이 눈 부셨는지 윤 대통령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시커먼 양복을 입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등이 서열대로 뒤를 따르는 맥락 없는 모습이었다. 기사 제목은 ‘윤 “저와 내각 반성하겠다…국민은 늘 무조건 옳아, 민생 챙길 것”’이었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침통하다…우리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콱 막힌 울분이 압력솥 증기처럼 뿜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혹 사진을 잘못 고른 게 아닌가 싶어 대통령실 사진 자료를 찾아봤다. 아니었다. 눈 씻고 봐도 더 나은 사진이 없을 만큼 윤 대통령은 늘 그렇듯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고, 손짓을 하거나 말을 하는 대장 같은 모습이었다(식탁 앞에 다들 와이셔츠 차림으로 앉은 단 한 장의 사진 역시 대통령이 말하는 장면이다). 전임 정권 시절,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모진과 와이셔츠 바람으로 상큼발랄하게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던 사진이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라 괴롭고 슬펐다. 아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실’ 수준이란 말인가.● 너무나 무능한 윤석열 대통령실지난번 ‘도발’에서 나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김명수 대법원장’ 심판이라고 썼다. 윤 대통령의 김태우 특별사면은 공익제보에 대한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김태우의 제보 덕에 문 정권 비리가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국힘은 당초 귀책사유가 있는 강서구청장 보선에 무공천 방침이었지만 윤심에 따라 경선의 길을 열어줬고, 결국 공천했다. 나는 이런 판단이 일리 있다고 봤으나 다수 강서구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오만하다며 ‘정권 심판론’에 손을 들어준 거다. 보선 패배 뒤 국힘의 첫 메시지는 “강서구민과 국민들께서 보낸 따끔한 질책을 무겁게 받아들인다”였다. 그건 됐다 치고, 국민이 궁금해하는 건 대통령 반응이다. 참모진을 통해 전달된 첫 메시지는 이랬다. “정부는 어떠한 선거 결과든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12일)선거 결과를 가볍게 받아들이는 간 큰 정부도 있나? 주어가 ‘나’도 아니고, ‘윤 대통령’도 아니고, ‘정부’라는 건 더 기이하다. 대통령이 행정부에 대고 훈계, 질책, 명령하는 식이어서다. 정말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선에서 대패한 뒤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는 문 전 대통령(이후 文)의 메시지와 대조적이다. 몇 글자만 바꿔도 어감이 얼마나 다른가 말이다. 그래서 윤 정부 대통령실이 무능하다는 거다. ● “안 된다” 말할 수 있는 참모 있나물론 대통령실은 계속해서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13일) “저와 내각이 돌이켜보고 반성하겠다”(17일)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을 해선 안 된다”(18일) “나도 어려운 국민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19일)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를 내놨다. ‘찔끔찔끔’ 답답하다. 그래서야 라면도 매운맛 신라면, 볶음면도 화끈한 불닭면을 좋아하는 우리 국민 성정에 맞을 리 없다. 목욕탕에서도 뜨거운 물에 들어가 “시원하다”는 국민 아닌가. 더 답답한 건 가시적 조치, 즉 비서실 문책 경질 인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이 김태우 사면할 때, 국힘이 윤심대로 공천할 때 “안 된다”고 직언한 참모가 없었다면 문제는 심각하기 때문이다. 또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文은 보선 패배 당일 최재성 정무수석과 정세균 총리의 사표를 받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조치를 했다고 최재성 본인이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비서실장과 정책실장을 문책해야 하는데 유영민 비서실장은 임명 된 지 두 달 밖에 안 됐고 김상조 정책실장은 전셋값 폭등에 책임을 지고 보선 전에 그만뒀기 때문이다(정 총리는 사실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설이 계속 돌았으나 이로써 문책 경질의 모양새가 됐다). 당시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32%였는데(갤럽 조사) 이렇게 ‘반응성’을 보이고도 민주당은 이듬해 정권을 잃었다. ● “말할 용기 없으면 비서실장 관둬라.”대통령의 참모학으로 유명한 ‘럼즈펠드 법칙’ 중 첫 번째가 “대통령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날카롭게 짖어댈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미국 최연소 국방장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이름난 도널드 럼즈펠드(1932~2021)가 정리한 것인데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는다 싶을 만큼 자유롭게 말할 용기가 없다면, 비서실장 자리를 맡지 말라고 했다. 대통령의 비극적 역사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보자면, 윤 대통령 자신이 화를 버럭 내든 말든 할 말은 할 수 있는 사람을 비서실장 자리에 앉혀놔야만 대통령도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곁에 두기 부담스럽지 않은 관료 출신 김대기를 비서실장으로 택했다는 게 정설이다.임명 당시 “경제 전문가이면서 정무 감각을 겸비했다”고 당선인은 설명했지만 믿기 힘들다. 윤 대통령이 경제 과외를 잘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경제 성적은 올라가지 않았다. 이번 보선 패배나 대야관계를 보면 정무 감각은 꽝이다. 올 1월엔 당 중진 나경원을 향해 “대통령께서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대통령 비서가 대놓고 여당 당 대표 선거에 개입하는 전무후무한 모습까지 보였다. ● 대통령 대신 ‘대통령실’ 바꾸라는 것대통령이 대법원장에 친구의 친구를 지명했다가 야당에 비토당했다. 그러고도 헌법재판소 소장에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를 또 지명하는데도 비서실장으로서 “안 된다” 소리를 한 것 같지도 않다. 날카롭게 짖어댈 용기가 있었다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라는 자가 “대학 동기, 저희도 그걸 봤는데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고, 대학 동기라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것도 그렇고…” 따위의 변명은 못 했을 거다. 대통령을 충심으로 보좌하는 비서실장이라면 설령 버럭 화를 좀 듣더라도 “대학 동기라면, 진정한 친구라면, 더구나 정년이 1년밖에 안 남았으면, 이번 자리는 맡지 않는 게 좋겠다”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말 못 하는 비서실장이 계속 윤 대통령 곁에 있는다면, 대통령에게는 독이다.용산사람들을 제대로 통솔하는 것 같지도 않다. 20일엔 영부인의 측근으로 유명한 김승희 의전비서관이 초등학생 자녀 학교 폭력 사건이 불거진 지 7시간 만에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통령 메시지를 저토록 한심하게 내놓는 홍보수석을 비롯해 성과를 내지 못한 수석, 비서관, 행정관등이 문책 경질은커녕 총선 출마에 골몰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는 상황도 용산의 ‘거대한 간덩이’를 말해준다. 뭘 잘했다고,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를 턱걸이하는 주제에, 용산 출신이면 거저 표를 얻을 줄 알고 잘난 척 하는 작태가 우습기 짝이 없다. 국힘당 혁신보다 시급한 건 용산 혁신이었다. 이번 보선은 윤 대통령 심판이고, 윤 대통령을 바꿀 수 없으니 대통령실이라도 달라져야 한다는 거다. 선거에서 교훈을 ‘찾는다’고? 신문을 일별만 해도 단박에 안다. 윤 대통령이 변하라는 것이다. 민생 현장을 파고든다고? 당장 가시적 조치부터 하시라. 이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적어도, 아니 죽어도, 비서실이 문 정권보다 못하단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나 말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차라리 선거에 지는 게 낫다는 말은 대놓고 할 소리는 못 된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수박’으로 찍히기 딱 좋다. 국민의힘 같으면 ‘내부 총질하는 자’로 걸릴 수 있는 불온한 발언이다. 그런 말이 이번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은밀히, 그러나 끈덕지게 나왔다. 물론 표면적으론 윤석열 정권 심판론 대 이재명 거야(巨野) 심판론, 막판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 심판론까지 맞붙은 선거였다. 말 잘하는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강서구청장) 후보가 김태우인가, 사실상 윤석열인가” 외쳤다. 대통령이 김태우를 사면해 공천에 이르게 했다는 의미였을 터다. 민주당은 웃어도 마음놓고 웃을 수 없다. 친명(친이재명)계를 빼놓고는 오히려 이게 아닌데 싶은 눈치다. 국민의힘도 겉보기와 달리 진심으로 낙담한 것 같지 않다. 이겼다고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는 저 당이 저대로 저렇게 폭주하면 내년 총선에선 필패할 공산이 크다. 우리 국민은 여당이건 야당이건 오만한 정치를 반드시 심판하기 때문이다. 국힘이 여당답게 거듭나려면 이번에 패한 게 백번 다행이다. 당과 대통령실의 기울어진 관계부터 바로 세우는 게 최우선이다. ‘깜’도 안 되는 장관 후보자, ‘용산 출마자’를 내려 보내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비상지도체제로 바짝 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니 남들 안 보는 데선 되레 만세를 부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상식적 전망일 뿐이다. 이기든 지든, 이 당이나 저 당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는 이미 일반 국민의 상식을 벗어났다. 바뀌기는커녕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심지어 더욱 가열찬 직진을 할 것 같다. 그게 국힘의 사실상 당수인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고, ‘나는 겁이 없다’고 자서전에 썼던 이재명 스타일이다.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은 묘하게 비슷하다. 지금껏 실패가 없었기에 자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믿는 점, 여론에 반응하는 대신 강성 지지자만 보고 냅다 달리는 정치적 이단아라는 점이 특히 닮았다. 이재명은 ‘개딸 전체주의’를 이용해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으면서 당을 친명 일색으로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윤 대통령에게 ‘윤빠’는 없지만 ‘정치 고관여층’이라는 강성 지지자들이 있다. 지난달 2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9월 국정수행 지지율은 32%였다. 하지만 “평소 정치에 관심 많다”는 고관여층 응답만 보면 긍정 평가는 43%까지 올라간다. 윤 대통령이 ‘법과 원칙의 권위주의’를 밀어붙이는 것도 이들 지지층을 믿기 때문일 터다. 검경과 사정기관을 동원해 지난 정권의 파행을 파헤치고, 공산 전체주의를 비난하며 난데없는 이념전을 펼쳐도 정치 고관여층은 윤 대통령의 국정 방향이 옳다며 애국적으로 지지한다. 그럼에도 개딸이 전체 국민으로 보면 한줌이듯, 정치 고관여층도 다수라 할 수 없다. 이번 보선의 의미는 애써 깎아내려도 어쩔 수 없지만 내년 총선은 나라의 명운을 가를 수 있다. 여당이 또 질 경우, 윤 대통령은 바로 레임덕에 들어설 공산이 크다. 총선 승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보다 대통령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하면 야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문우진 아주대 교수 2022년 논문). 집권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줄고 야당 후보의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는 한, 시간이 갈수록 여당의 총선 승리 가능성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심리적 주기가 짧아지면서 정권 피로도 역시 가속적으로 높아지는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는 세상이 다 안다. 그러나 국힘에 ‘대통령 리스크’가 있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말할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민심을 살피고 인사검증을 꼼꼼히 해낼 민정수석은 없앴으면서 대통령 친인척을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은 두지도 않고, 참모가 무슨 말을 하면 화부터 버럭 내는 것으로 유명한 윤 대통령에게 김건희 여사 말고 누가 감히 할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통령 지지율을 높이는 방법은 있다. 쉽게 올리자면 대통령이 ‘민족주의 카드’를 휘두르거나 반대세력이 이념적 정체성으로 정부에 맞설 때 강하게 맞대응하는 것이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사퇴시키는 등 민감한 정치현안에 민심을 반영하거나, 더 바람직하게는 대통령 자신이 정적을 포용하고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해 국민에게 감동을 줄 때 지지도는 올라간다. 지금처럼 돌진만 하다가는 ‘무도한 전(前) 정권 심판’ 마무리도 못한 채 대통령이 된 뜻 한번 펼쳐 보지 못하고 임기를 마칠 수도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애먼 선거다.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전 구청장이 또 출마한 것이 곱게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5월 대법원 유죄 판결로 자리에서 내려온 선출직 공직자가 석 달 만에 광복절 사면복권을 받고, 두 달 뒤에 바로 그 자리로 보선 공천을 받는것도 전례가 없다. 하지만 김태우가 구청장직을 잃은 이유를 따지고 들면, 이 선거는 달리 보인다. 문재인 정권 때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김태우는 2018년 당시 조국 민정수석의 감찰 무마 사건과 민간인 사찰 등 ‘김태우 리스트’를 폭로한 공익제보자였다(문 정권 국민권익위원회도 인정한 바다). ‘문재인 청와대’는 가만있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흑석거사 맞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 김의겸이다)은 그때도 허랑방탕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더불어 호기롭게 김태우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고 2023년 마침내 ‘김명수 대법원’은 유죄 판결로 구청장직을 박탈했던 거다. ● 강성 좌파 대법관의 “유죄 확정” 김태우의 공익제보는 거짓이 아니었다. 조국은 유재수 당시 부산 경제부시장의 뇌물수수 감찰 무마가 사실로 인정돼 지난 2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의 주인공 유재수는 3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김태우가 폭로한 환경부 ‘블랙리스트’도 진짜였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2021년 1심에서 법정구속 됐다. 그러니 기막힐 노릇 아닌가. 김태우가 입 다물고 있었으면 문 정권은 비리 없는 순결한 집단으로 역사에 남을 뻔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김명수 대법원’ 심판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영작 전 한양대 석좌교수는 “문재인 정권, 김명수 사법부의 희생양이 김태우”라고 했다. 단순히 “김태우를 다시 구청장으로 뽑아달라”고 할 게 아니라 “문재인, 김명수를 심판해달라”고 해야 한다는 거다. 김태우에게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을 때린 주심 박정화는 2017년 6월 문재인 정권 들어 첫 임명된 대법관이었다. 좌파 성향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퇴임 직전의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 대통령 취향에 귀신같이 맞춘 모양이다. 최근 동아일보와 서울대 한규섭 교수팀이 분석한 대법관 판결지수성향에 따르면, 그는 7월 퇴임하기까지 -1수준의 강한 진보성을 보였다(지수가 낮을 수록 강한 진보). 강성 순위로 따지면 김영란-오경미(현)-전수안-박시환-이흥구(현) 다음이 박정화다. 공익제보자가 공무상 비밀누설을 했다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하급심 판결을 이런 강성 좌파 대법관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 김태우 사면은 윤 대통령의 승부수아무리 사법부 판결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래서 김명수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거다. 공무원들은 정권 비리를 보고도 입 닫고 있어야 몸보신할 수 있다고 사법부는 땅땅땅 방망이를 두드렸다. 입법부, 행정부는 물론이고 사법부까지, 그렇게 삼권분립을,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대통령이 문재인이다. 그래서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은, 이미 끝장났지만 징글맞게도 흔적을 남기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김명수 대법원을 심판하는 선거라는 얘기다.(물론 김태우에게도 문제가 있었음을 기록해 둔다. 대법원은 “범행동기도 좋지 않다”고 적시했다. 문재인 청와대는 김태우가 업자 접대를 받아 감찰받던 중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다며 ‘미꾸라지’라고 했다. 헹. 그렇게 치면 개인 비리로 인한 구속 수사를 막으려 대선에서 지자마자 보선에 나서고, 당 대표로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왕미꾸라지인가.)김태우 특별사면은 이런저런 면을 고려한 윤석열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승부수라고 본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공익제보에 대한 사법부 판단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김명수 대법원은 틀렸다는 뜻이다.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9월 김태우 사면에 대한 국회 답변에서 “(윤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이나 유재수 전 부시장이라든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일부 유죄 확정된 부분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유죄면, 김태우는 깨끗한 거다. 강서구청장 선거에 다시 나가 붙어볼 만하다고 봤을 것이다. 그래서 국힘은 김태우를 공천해 버렸을 터다. ‘일반인의 상식’을 깨고. ● 나라를 구하는 심정으로 심판을 나라를 구하는 심정으로 김명수 대법원을 심판해달라는 주장은, 강서구 주민에게 과한 요구일 수 있다. 먹고사는 일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의 이른바 진보(지겹다. 쉽게 말해 좌파)는 호남을 성지(聖地)로 여긴다. 강서구는 호남 지역세가 강한 곳이다. ‘민주당 식민지’처럼 살아온 광주에 괜찮은 쇼핑몰 하나 있던가? 민주당 구청장을 16년씩이나 모신 강서구는 광주와 얼마나 다른가. 하다못해 바로 옆 양천구나 마포구만큼 발전했는가 말이다. 이번이 변화할 수 있는 획기적 기회라면, 잡을 만하지 않은가.국힘이 하는 일이 매끄럽고 유능한 건 아니다. 윤 대통령이 다 잘하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간 문 정권, 사법부에 대한 믿음을 깨뜨린 김명수 대법원, 심지어 ‘개딸 전체주의’를 추종하는 민주당보다는 낫다고 본다.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은 정부여당을 정신 번쩍 들게 만드는 이벤트였으면 한다. 강서구 주민들만이 그걸 해낼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첫마디는 민생이었다. 27일 새벽 자신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그는 서울구치소 문 앞에서 “이제 모레면 즐거워해야 마땅한 추석이지만 국민들의 삶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없다”고 했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지팡이를 짚고 선 야당 대표의 말은 상투적임에도, 고마웠다. 그는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 나라 미래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정부여당에도, 정치권 모두에도 부탁드린다”고 했다. 24일간 단식 끝에 오로지 나라와 국민만 생각하는 큰 정치인으로 거듭난 듯한 감동이었다. 무조건 정부여당부터 공격할 줄 알았는데 야당 대표한테 꼭 한가위 선물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날이 밝자 이재명과 민주당에선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로 돌변하는 분위기다. 당장 체포동의안 가결파 징계론이 쏟아지고 있다. 개딸들의 ‘수박 쪼개기’ 주장이 속출하고 있고, 한총련 의장 출신으로 이재명 친위대 구실을 하는 강위원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사무총장도 “끝까지 색출해 정치적 생명을 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재명 단식 중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전략공천’된 진교훈 후보가 이 조직에서 나온 사람이다. 앞으로 전개될 피비린내 나는 친명 공천과 숙청 작업을 짐작게 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수호를 내걸고 새 원내대표가 된 홍익표는 어제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치 복원을 촉구하며 “무리한 정치 수사에 대한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실무 책임자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파면이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복원을 절대 하지 말라는 선전 포고나 다름없다. 구속영장 기각이란 구속을 않는다는 것이지, 잘못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대체 왜 대통령이 사과하고 장관을 파면해야 한단 말인가. 민주당은 법원으로부터 이재명 면죄부라도 받은 줄 아는 모양인데 착각이다. 이재명 대표 직인이 찍힌 공천장으로 총선 승리를 하겠다고, 이재명은 개딸들의 지지로 차기 대선 후보까지도 문제없다고 믿는 듯하다. ‘정당정치의 꽃 대의원’도 없애라는 개딸들이 당내 경선을 장악했으니 대선도 좌우할 수 있다고 믿지는 말기 바란다. 말이 좋아 ‘팬덤 정치’이지, 북조선이나 서조선(중국)에선 우상숭배다. 개딸을 이용해 이재명은 반대파를 쉽게 제거할 수 있어 좋다. 충성스러운 반대파를 용납 못 하는 ‘재명 전체주의’, 그 말이 싫다면 ‘개딸 전체주의’다. 그래서 이재명은 그 많은 비리 혐의에도 저토록 당당한 거다.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892자 영장 기각 사유 중 놓쳐선 안 될 대목이 있다. “별건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피의자의 상황,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는 부분이다. ‘별건 재판’은 이재명이 3월부터 받고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을 말한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대장동 사업 수사 중 숨진 채 발견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성남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발언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작년 9월 불구속 기소됐다. 사람을 안다고 할 때 과연 어디까지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을지, 따지고 들면 심란하긴 하다. 하지만 인두겁을 쓴 사람이면, 아무리 정치인이라고 해도 해서는 안 되는 거짓말이 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면 더욱 그렇다. 7월 14일 법정에 나온 고인의 아들은 “식사 도중이나 밤늦게, 주말에도 (아버지는) 방 안에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고 (어머니가) 누구냐고 물으면 성남시장이라고 하셨다”고 증언했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당신 업무 관련해서 거짓말을 하겠나. 저는 들은 그대로 진실만을 이야기했고, 아버지가 저한테 거짓말을 했을 것이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그의 말을 나는 믿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정말인 줄 알더라”던 이재명 같은 정치인에게 더는 속고 싶지 않다. 1심 판결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나올 경우, 가볍게 볼 수 없다. 최종 확정되면 민주당은 선거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 434억 원을 당사를 팔아서라도 반납해야 한다. 이재명은 향후 5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최종 확정까진 안 가더라도 이런 당 대표를 제1 야당이 언제까지 떠안고 갈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재판부는 속히 판결하기 바란다. 민주당이 자격 없는 당 대표의 총선 공천장을 받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이건 거의 국민 기억력 테스트다. “언제 그런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파탄 난 지금의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착잡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 더해 최근의 외교행보까지 한반도의 위기를 키우고 있다.”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서울 여의도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로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집권할 때는 남북관계가 보드랍기 한량없었는데 최근의 외교행보가 위기를 키웠다고, 윤석열 정부에 대놓고 도발했다. 부탁한다. 그렇게 잘했다면 정계 복귀하시라. 그리하여 과거의 태평성대를 재현하시라고 말이다. ● 남북관계 파탄은 문 정권 때다사실을 적시하건대, 남북관계가 파탄 난 것은 문재인 정권 때였다. 이건 역사왜곡이고 뭐고 없다. 문 당시 대통령(너무 길므로 이후 文으로 표기)이 애면글면 노심초사 성사를 원했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비핵화 협상이 ‘노딜’로 끝난 다음, 북한 김정은이 관계를 끊어버린 거다. 북-미 회담장에 김정은이 들고 나간 건 영변 핵시설 해체, 달랑 한가지였다. 낡아빠진 영변 시설 폐기를 대가로 미국한테 대북 제재 해제와 김정은 체제 보장 등 자기네가 원하는 걸 모조리 얻어낼 심산이었지만 트럼프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영변 말고도 더 많은 핵을 제조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음을 훤히 꿰고 있어서다. 북에 복귀하자마자 김정은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북측 인사들을 철수시켰다(2020년 6월엔 시설 폭파). 그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文이 “남북 평화경제”를 외치자 바로 다음날 북조선은 그 유명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하늘을 보고 크게 웃을) 노릇”이란 조롱을 퍼부었다. ● 삶은 소대가리는 왜 북을 감쌌나 그 소리에 文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하는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이고. 대통령이 그 반의반이라도 나라의 안보와 국민안전을 걱정했다면 그딴 소리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 공무원이 서해에서 북측에 피살당한 것이 2020년 9월 22일, 꼭 3년 전이었다. 그 시각 文은 관계장관회의 결과 보고를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녹화 방송된 유엔 연설을 통해 북이 오매불망하는 종전선언을 선전하고는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잠꼬대같은 종전선언에 국제여론이 호응할 리 만무다. 퇴임 전까지 文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며(개뿔이다), 영변 핵시설만 폐기되면 북핵 비핵화는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거라며(이 역시 못 믿는다), 한미동맹이 거의 와해될 만큼 미국에 끈질기게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그때 만일 트럼프가 문-김에 넘어갔다면, 아니 만에 하나,내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북조선은 꼴랑 영변 폭파로 대북제재 해제 등 모든 걸 얻어내고, 우리는 발가벗은 채로 북한과 맞서게 될 판이다. 그래서 정말 궁금한 거다. 자유지수로 치면 세계 끝에서 세 번째인 북조선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 소리까지 들음으로써 文은, 그를 안 뽑은 국민까지 삶은 소대가리 밑에 산다는 치욕감을 갖게 만들었다(프리덤하우스 2023년 세계자유보고서. 210개 국가 중 꼴찌는 남수단과 시리아, 꼴찌에서 두 번째는 투르크메니스탄). 삶은 소대가리는 왜 애먼 국민에게 굴욕감까지 주면서 그토록 북한을 싸고돌았던 걸까. ● “리영희 제자들이 남측 쥐고 흔든다” 여기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을 했던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민·형사재판에서 2022년과 올해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음을 굳이 언급하고 싶진 않다(훗날을 위해 기록해두자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부는 2023년 9월 8일 파기환송심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지칭이란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문 전 대통령의 사회적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했다).다만 文이 ‘대학 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라고 했던 리영희가 2007년 북측 인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내가) 20~30년 길러낸 후배·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나중에 대통령이 된 文이라면? 文이 존경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 통일혁명당 연루자 신영복이고 새천년민주연합이란 당명도 그가 작명한 대로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꿨다면(그의 저서 ‘더불어숲’에서 따왔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따왔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운동가로 위장”스무 살 안팎에 좋아했던 음악은 평생 심장을 뛰게 만든다. 젊은 날 빠졌던 이념도 마찬가지다. 중국 문화혁명을 찬양한 리영희처럼 文은 대통령 시절 중국 주석 시진핑에게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우리는 작은 나라”라고 속국같은 소리를 했다. “레닌은 소련인민에게 빵을 제대로 주지 못했으나 삶의 의욕과 꿈을 주었고 스딸린은 빵과 함께 이데올로기를 입에 넣어주었다”고 ‘전환시대의 논리’에 썼던 리영희처럼 文은 “한반도와 유라시아 공동번영”을 외치며 남북러 삼각 경협에 골몰했다.같은 의식, 같은 이념을 지닌 친문세력이 아직도 곳곳에서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의도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연구기관, 노동계와 일부 매체까지 먹이사슬을 놓치지 않으려 죽을 힘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공산전체주의’ 소리가 나오는 거다. 윤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거칠게 공격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文은 현 대통령의 이런 공격에 마침내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하필 북한과 손잡았던 9·19 기념식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정부에서 안보 성적도, 경제 성적도 월등 좋았던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를 했다. 전술적 착오다. ● 총선-대선에 나와 평가 받으라집권능력이 그렇게 출중했다면, 文은 책방이나 하기엔 아까운 초능력자다(드라마 ‘무빙’ 보셨는지? 북한 기력자들은 우리 초능력자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바란다. 정치 1번지 종로도 좋고, 당신의 본거지 양산도 좋다. 어차피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체제로 총선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게 여의도로 복귀한 뒤 대통령 중임제로 개헌을 주도해 다시 이 나라를 맡아도 될지, 국민 평가를 받기 바란다. 말이 안 된다고? 전직 대통령이 막대한 연금까지 받으면서 현실 정치에 따박따박 훈수 놓는 전례는 있었던가? 자신 없으면 제발 입을 닫으시라. 그게 싫다면 월 1400만원에 세금 한 푼 안 내는 연금이라도 반납하시라. 안 그래도 피곤한 다수 국민의 눈과 귀를 더 괴롭히진 말란 말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야당 대표 김대중(DJ) 평민당 총재의 단식장에 여당 대표인 김영삼(YS)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찾아온 건 단식 4일째였다. 1990년 10월 DJ는 ‘3당 합당 비밀각서’에서 드러난 내각제의 포기,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주장하며 당사 총재실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터였다. 징하고도 질긴 정적(政敵)관계임에도 DJ가 “단식은 선배니까 경험담을 좀 들려 달라”고 하자 YS가 “내 경험으로는 4일에서 10일 사이가 제일 고통스럽고 매 시간 배가 아파오더라”고 말해준 과거사는 지금 돌아보면 낭만적이다. 무도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 YS가 ‘정치활동 규제 전면 해금, 구속 인사 전원 석방’ 등을 내걸고 23일간 목숨 건 단식투쟁을 벌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의외로 덜 알려진 것은 단식의 고통이다. 아무리 죽을 각오라 해도 단식을 하려면 식사도 줄이고 숙변도 없앤 뒤 시작해야 한다. 당시 56세였던 YS는 1983년 5월 18일 비장하게, 그러나 무모하게 단행했다. 그래서 잔변이 창자벽에 말라붙으면서 온몸을 데굴데굴 구를 만큼 극심한 복통으로 고생했던 거다. 5공 정권도 정치적 쇼로 보는 눈치였다. 정치공작에 이골이 난 그들은 남들 안 볼 때 YS도 적당히 먹을 줄 알았다. 결국 단식 8일째 경찰은 YS를 강제 입원시켰다. 10일째부터 민정당 대표가 사흘 연거푸 YS를 찾아온 것도, 동아일보가 ‘보도지침’을 깨고 6월 9일 ‘김영삼 단식 중단’을 보도한 것도, 그리하여 온 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깨어난 것도 삿되지 않은 YS의 진정성 덕분이었다. 1990년 당시 66세였던 DJ는 단식 닷새가 지나자 화장실까지 4m 거리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래도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유신 치하도, 5공 폭력체제도 아니고 언론과 집회의 자유도 상당 수준 누리는 상황에서 야당 총재는 보다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정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동아일보 사설은 지적했다. 단식 8일째 DJ는 의사의 위험경고에 병원으로 실려 갔다. 10일째 되는 날 여당 총무로부터 ‘대통령의 해결 의사’를 전달받고, 13일 만에 단식을 풀면서 DJ는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단식의 결실인 1991년 6월 시도의원 선거는 야권 참패였다. DJ가 “노태우 정권 3년 중간평가”라고 유세했음에도 국민은 투쟁보다 안정과 성장을 선택했던 것이다. 과거 두 대통령의 본을 받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 지 오늘로 15일째다. 당 대표 취임 1주년인 지난달 31일 그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일본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천명, 국정쇄신과 개각을 요구하며 출퇴근 단식에 들어갔다. 이런 요구 조건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개딸 중에서도 거의 없다. 윤 대통령 아니라 하늘에 있는 두 대통령도 들어주기 힘든 조건이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대표가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시작한 단식”이라며 “중간에 그만둘 생각이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재명도 속으론 언제까지 계속하란 소리인가 싶어 그가 미울 듯하다. 어떤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그런 사과를 할 것이며, 중국 빼고 반대하지 않는 오염수 방류 반대를 뒤늦게 하겠는가 말이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은 13일 국방, 문화체육부, 여성가족부 장관을 교체했다. 개각 요구가 진심이었다면 이재명은 이제라도 단식을 푸는 게 맞다. 그의 진심이 불체포 특권 또는 ‘불구속 재판 보장’이라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재명은 단식을 끝낼 수 없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사건 검찰조사를 받으러 가는 모습을 보며 “단식 13일째 제 발로 걷는 당뇨 의심 환자는 처음 본다”고 했다. 항간에선 “이재명이 단식한다고 했더니 정말인 줄 알더라”는 소리가 나돈다. 대선 때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정말 존경하는 줄 알더라”를 패러디한 소리다. 신뢰성과 도덕성에서 이재명은 대선 때 이미 평가 받았다. 단식의 진정성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최대한 빨리 영장을 청구하면 21일 또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25일이면 단식 26일째, 이때까지는 당사에서든, 병원에서든 이재명은 곡기를 끊고 있어야 할 것이다. 단식하며 드러누운 당 대표를 잡아가도록 찬성표 던질 의원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직 물러나라”는 주장도 쑥 들어갔다. 단식 문안인사가 총선 공천 눈도장 찍기라는 소문도 나돈다. 그 점에서 이재명의 단식 정치는 성공했다. 나라 전체와 개딸 아닌 국민으로선 불행이다. 대선 패장에 휘둘려 1년 반이 허무하게 갔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무기한 단식투쟁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페북에 썼다.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망가지고 있다. 군부독재의 군홧발이 사라진 자리를 검사 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이 대신하고 있다”고. 현 정부가 다 잘한다고 쉴드 치진 않겠다. 그러나 이재명 자신이 피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처럼 단식투쟁 벌이는 건 기이한 일이다.그는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에 기여한 게 없다.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2017년)에서도 중앙대 법대 시절(1982~86년) 운동권 친구의 권유에 “이런 건 부잣집 애들이 좀 하면 안 되냐”며 사법고시로 방향을 정했다고 밝혔다. ‘물론 영달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나약함과 기회주의적 요소가 있었던 점도 인정한다’고, 뜻밖의 솔직함까지 드러냈다. ‘검사 독재’를 백 사람이 비판한대도 이재명이 언급하면 ‘이해충돌’이다. 기소된 사건도, 앞으로 수사를 받을 사안도 수두룩해서다. 물론 당 대표 아니라 잡범도 단식투쟁을 할 순 있다. 단, 구속될까 겁나 민주주의를 끌어들이는 건 땡깡이다. ● 이재명-문재인이 뭔 민주화운동?문재인 전 대통령도 신년 초 이재명이 양산을 찾았을 때 “우리가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들은 마치 그들끼리 민주화를 이룬 것으로 믿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흔히 1987년 1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보도가 6월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거나, 문 정권 주변 86운동권이 민주화운동을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해 ‘2·7 추도회’가 있기까지 엄혹했던 80년대, 문재인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신문에 등장한 적이 없다. 실제 민주화를 이끈 것은 83년 목숨 건 단식투쟁을 벌인 김영삼(YS)이었고, 보도지침을 깨고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였다. 문재인이란 이름은 동아일보 87년 2월 9일자에 처음 나올 뿐이다. ‘검찰과 경찰은 9일 서울대 박종철 군을 추모하는 2·7추도회와 관련…’ 기사 맨 끝 ‘부산지검은 연행자 1백81명 중 金光一 盧武鉉 文在寅변호사와 金영수 金기수 목사 등을 포함, 10여 명을 구속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에서다. ● ‘보도지침’ 가장 많이 깨뜨린 신문 5공 시절 게릴라전을 하듯 온몸으로 신군부의 반민주 폭거와 언론통제에 저항했던 언론인이 4일 세상을 떠났다. 이채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이다. 그 뒤 주필, 일민문화재단과 인촌기념회 이사, 화정평화재단 이사장을 지냈지만 내겐 여전히 각별한 ‘국장’이었다. 83년 5월 1일 편집국장이 된 다음 12월 15일 첫 수습기자 시험에서 나를 뽑아줬기 때문이다(뒤에 쓰겠지만 개인적으론 고마운 일만 있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암흑기라고 불리는 시대가 있었다’고 이 국장은 저서 ‘언론통제와 신문의 저항’(2003년) 머리말에 썼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언론의 역할을 신군부는 ‘보도지침’으로 막은 무도한 정권이다. 어떤 기사는 1단, 어떤 기사는 사진 없이. ‘동아일보는 보도지침을 가장 많이 어긴 신문이었다. 보도지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저항은 끝내 6·10항쟁의 폭발력을 키워온 요소라고 할 수 있다’고 맺음말에 소개돼 있다. ‘암울했던 시절 어느 편집국장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의 풍경과 묘하게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야당 지도자가 단식투쟁을 벌였고, 국가 명운을 건 총선이 열렸으며, KBS 편파보도를 놓고 시청료 거부 논란이 벌어졌다. 이 국장은 ‘한마디로 품격을 잃어버린 사회’라고 했지만 내 눈엔 40년 후인 현재가 더 품격 없어 보인다. 적어도 그때는 야당 대표가 자신의 ‘방탄’을 위해 쇼 같은 단식을 하거나, 국가기간방송이 이념적 왜곡방송으로 국민을 호도하진 않았다. ● 동아일보 없이 민주화 가능했을까80년대 우리가 희망했던 나라가, 정치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만 분명한 것은, 83년 5월~86년 말 이 국장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특종보도나 6월 민주화항쟁은 성공 못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저서엔 ‘한 신문은 그 신문 발행인의 인격과 품격과 세계관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고도 적혀 있다). 전두환 시대 신문 제작은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가 반복된 게릴라전 같았다고 이 국장은 썼다. 편집국장들이 청와대로 불려가 점심 먹는 자리에서도 “말 안 듣는 사람은 거꾸로 매달아 몽둥이로 때릴 수도 있소”라는 무지막지한 말도 들었다고 했다(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도 벌어졌다). 83년 5월 18일 전 신민당 총재 YS가 ‘정치활동 금지 해제’를 요구하며 단식을 시작해도 기사 한줄 나갈 수 없었다. 동아일보는 ‘정치현안’ ‘재야문제’라고 암호처럼 보도했다. 6월 9일 끝내 YS가 병원으로 실려가자 1면 2단, 사진 없이 쓰라는 보도지침이 내려왔다. 이 국장은 초판 5단 크기로 ‘단식 중단’을 보도했다가 다음 판에 줄이는 ‘치고 빠지기’ 게릴라 전법을 썼다. 충격파는 컸다.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으로, 85년 총선 신당 돌풍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85년 1월 1일 1면 톱 제목은 ‘국민심판 총선의 해 열리다’였다. 선거는 한개 면, 그것도 여당인 민정당과 관제야당 민한당 중심, 신당인 신민당은 거의 못 쓰는 보도지침이 내려와 있었다. 이 국장은 2월 1일 서울 첫 합동연설회부터 수습기자들까지 몽땅 현장 투입해 2, 3면을 털어 지상 중계했다. ● 법대 위에 육사, 맨 위에 여사 있던 시절 “지금 시대가 유신시대와 달라진 것은 대통령 선출 장소가 장충체육관에서 잠실체육관으로 옮긴 것뿐” “야당은 1중대 2중대 모두 사쿠라” “군은 군으로 돌아가라.” 지금 보면 별 것 아닌 듯해도 당시로선 충격적 유세 발언이었다. “법대 위에 육사 있고 육사 위에 보안사 있고 보안사 위에 여사(女史) 있다”는 말은 끝내 못 나갔으니 5공 서슬이 얼마나 시퍼랬는지 안 봐도 유튜브다.‘동아일보가 2월 1일 저녁부터(당시는 석간이었다) 대담하게 합동연설회 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더라면 총선 열기도 그처럼 타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 국장은 저서에 썼다. 타지들도 이틀간 침묵하다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민정당 총 148석, 원내 과반수는 확보했으나 총 유효득표율 35.2%로 사실상 패배였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토론의 장도 열렸다. 이 국장이, 동아일보가 역사를 바꾸는 데 일조한 셈이다. 저서엔 내 얘기도(창피하지만) 한 대목 들어가 있다. ‘김순덕 기자가 2월 1일 오후 3시경 서울 동대문구 공릉동 묵동국민학교에서 합동연설회를 취재하던 중 태릉경찰서 소속 한 사복경찰관에게 신분증을 뺏기는 등 취재를 방해 당했다고 사회면 1단 기사로 보도된 것은 이 때의 일이다’(너무 분해 팔짝팔짝 뛰었던 장면,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총선 보도 때문에 안기부에서 고문총선 뒤 이 국장과 이상하 정치부장은 안기부에 끌려갔다. 8월 29일 2판 1면 중간 톱 6단 기사 ‘중공기 조종사 대만 보내기로’가 엠바고 위반이라는 구실인데 실은 총선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남산 안기부에 도착, 지하실로 내려갔다. 아마도 지하 2층쯤인 것 같았다. 군청색 군복으로 갈아입은 다음부터 상당한 시간 동안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 주황빛 전구가 괴물의 눈처럼 침침하게 비추는 방에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참기 어려운 폭행을 당했다(중략)…중공폭격기 승무원 송환기사에 대한 심문은 간단히 끝났다. 그때부터 2·12 총선 때의 보도 태도에 대해 오랫동안 심문 당하였다.’안기부 간부가 “동아일보 편집국장의 인신처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각하도 양해한 사실이다” 라 했다는 대목에선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때 주황빛 전등 아래 당한 고문 때문에 이 국장은 한동안 악몽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았다고 들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안보를 빙자한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은 갔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 본성은 외려 퇴락하는 듯하다(86년 동아일보 기획 시리즈로 ‘인간선언 사람답게 살 권리-교권 침해, 당하기만 해야하나’ 기사가 실렸는데 교사의 ‘극단적 선택’이나 스마트폰 문자 욕설 사례만 없을 뿐, 명예훼손 폭행 폭언 같은 슬픈 현상은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 ‘땡전뉴스’ KBS, 친북좌파, 그때 그 사람들 독재 아래 국영방송은 어용기관으로 전락한다. 86년 초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중심으로 KBS 왜곡 편파보도에 항의하는 시청료 거부운동이 일어났다. 동아일보는 “KBS 시청료 거부운동, 편파보도 때문 아닌가” 제목으로 국회 질의답변까지 상세히 보도했다. KBS는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이용해 동아일보를 공격했다. 그러나 시청자 눈은 밝다. ‘땡전 뉴스’로 유명한 KBS 편파보도를 세상은 다 알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동아에 싸움을 걸어 시끄럽게 된 책임을 물어 KBS사장이 그만두었다’고 이 국장은 썼다(그 분이 2003년 고희의 나이로 출가한 백련사 주지 스님이다. 법명은 지연. 속명은 박현태). 당시는 전두환 때여서 어용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치자. 군부독재도 아닌 좌파정권 시절 KBS는 왜 정파적 방송을 했던 걸까.이젠 다 알려졌지만 그때는 잘 알 수 없었던 친북좌파, 또는 86그룹에 대한 고뇌 또한 저서 에 담겨 있다. ‘80년대 초반부터 중반, 적어도 87년 6월 항쟁까지는 맑스-레닌주의가 강하게 부각되었다. 군부독재타도만 부르짖으면 어떤 사상적 배경에서였든 모두 민주투사라고 불렸던 것이 당연했던 시대였다.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독재정치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껏 징하고도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게 아닌지. ● 고맙고도 미운, 존경스런 국장님 개인적인 느낌을 말해도 된다면, 이 국장은 내게 고맙고도 미운 분이다. 수습기자 11명 중 유일한 여기자로 날 뽑아준 각별한 분이지만 이 국장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도발’을 유심히 본 독자들은 기억할 수도 있는데 “기자는 이코노미스트를 보는 기자와 안 보는 기자가 있다”고 말해준 편집국장이 바로 이 분이었다. 정통파 경제기자 출신으로 늘 정상(頂上)을 강조한 엘리트주의자였다(그래서 기자들 사이엔 인기 없는 국장이었다). 나의 평생 아킬레스건이 경찰기자 한 번 못해봤다는 거다. 수습기자 한 달쯤 돼선가 “생활부에서 책상 배치를 하니 들어와 앉으라”며 이 국장이 불러들였기 때문이다(물론 내가 제대로 못하긴 했다). 심지어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이 국장은 편집국 아닌 다른 부서로 6개월 파견 명령을 내렸는데 기간이 지나도 복귀시켜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안했다며, 4층에서 떨어져 죽을까(편집국이 4층) 5층에서 떨어져 죽을까(건물 꼭대기가 5층) 고민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결국 내가 편집국에 돌아온 건 국장이 바뀐 다음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국장을 기자로서 존경한다. 그는 어두운 시절 언론의 책무가 젊은이들에게 자유로운 미래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었느냐고 했다. 이 국장은 최선을 다했다. ‘그때의 모든 기억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신문과 주황빛 전등 아래서의 혹독한 고문의 기억’이라고 저서에 남겼기에 나는 이 국장을 기억하는 ‘도발’을 쓴다. 그가 가져다주려던 자유로운 미래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고 믿고 싶다. 삼가 명복을 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당신들은 모르실 거예요/이 땅에 태어난 여자들은/누구나 한때 군인을 애인으로 갖는답니다’. 시인 문정희는 ‘군인을 위한 노래’에서 이렇게 썼다. 소녀 때는 군인에게 위문편지를 쓰고 처녀 때는 군대로 면회를 가고 어느 중년의 오후 군복 벗은 그를 우연히 만나 속으로 조금 울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 아들” 하면서 아들을 애인처럼 여기는 군화모(군인 아들을 둔 부모님 카페) 회원들은 요즘 아들이 무탈하게 제대할 수 있을지 끌탕을 한다. 7월 19일 경북 예천군 석관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을 하던 스무 살짜리 채모 상병이 흙탕물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육중한 장갑차도 5분을 못 버티고 철수하는 급물살 속을 ‘귀신 잡는 해병대’는 구명조끼도 없이 명령에 따라 허리 높이까지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변을 당했다. 세상에 귀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는 부모님이 결혼 10년 만에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외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을 해병대 배치 두 달 만에 떠나보냈음에도 유족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아들이 사랑했던 해병에서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런 비통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과연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2일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을 적시해 경찰에 이첩했지만 국방부는 곡절 끝에 해병대 수사를 뒤엎고 대대장 2명만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넘겼다. 박 대령은 국방부와 국가안보실 외압을 주장하며 “해병대는 정의와 정직을 목숨처럼 생각한다”고 해병대 정신을 강조했다. 그런 박 대령에 대해 30일 국방부 검찰단은 ‘항명’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제 군화모들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해병대가 어떤 군대인가.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군대와 거리가 먼 나도 배우 현빈이 나이 30에 자원입대했던 해병대는 안다. 국가전략기동부대로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의 선봉에 섰듯, 가장 위험한 곳에서 찬란한 해병 정신을 발휘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충성스러운 군대다. 그 해병대의 신뢰를 누군가 깨뜨리고 있다. “지라시를 보니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느냐’고 했다고 그러더라.” 16일 국회에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발언은 27일 MBC ‘스트레이트’, 29일 공개된 국방부 검찰단 제출 박 대령의 진술서 핵심과 거의 일치한다. 물론 30일 국회에서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은 일제히 외압설을 부인했다. 그러나 25일 국회에 출석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안보실 2차장이 상황 파악을 위해 저에게 전화를 해서 관련 경과에 대해 잠시 말씀드렸다”고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그가 위증한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무소불위 대통령실이라 해도 수사 관여는 위법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도 9일 방송 인터뷰에서 “안보실은 수사 개입을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수사 기록을 요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과연 밝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로써 이번 일은 채 상병 사망 원인 규명을 넘어 국방부와 대통령실까지 연루된 수사 개입과 외압, 심지어 국회 위증 및 대(對)국민 기만 사태로 본질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채 상병의 순직은 매우 불행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구명조끼만 입었다면 희생되지 않았을 수 있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다. 군 관계자들 사이에선 사고사로 인해 사단장까지 업무상 과실치사로 단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우리는 알고 싶지 않은 것을 너무 많이 알게 됐다. 휘하 사병들의 안전과 생명보다 윗분과 홍보에 신경 쓰는 지휘관들도 있었다. 확신도 없이 결재하는 국방부 장관의 무능함도 드러났다. 이래서야 대통령이 암만 한미동맹에 한미일 안보협력을 굳건히 한들 군인들이 지휘관을 따를지, 그리하여 국방이 철통같아질지 걱정스럽다. 군화모들이 정부를 못 믿고 아들에게 “제발 네 한 몸만 챙기라”고 통사정하는 판이어서다. 무엇보다 정무기능, 법무기능이 마비된 가운데 대통령 앞에서 “그건 아닙니다” 말 못 하는 대통령실 정황이 더해간다는 게 겁나고 두렵다. 방향은 맞을지 몰라도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다면, 이 나라는 자유로운 게 아닌 것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말은 참 잘한다. 24일 일본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를 하루 앞두고 그는 “일본 핵 오염수 방류는 제2의태평양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25일엔 “무책임한 윤석열 정권의 행태를 국민과 역사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역사는 일본 정부와 기시다 내각을 반인류적 오염수 테러를 자행한 환경전범으로 기록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재명의 말이 틀림없다면, 태평양 전쟁을 겪은 다른 나라들도 분연히 맞서야 마땅하다.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도 절대 안 먹어야 한다. 정말 그런지 궁금해 구글 뉴스로 외신을 뒤져보았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가깝지만 후쿠시마는 일본 동쪽 해안 쪽에 있다. 일본이 진짜로 제2의 태평양 전쟁을 도발했다면, ‘오염수 핵폭탄’은 후쿠시마 해저터널로 방류돼 구로시오 해류를 만나 북태평양으로 흘러가선 미국 알래스카주, 캘리포니아주, 그리고 태평양 국가에서 먼저 터질 수밖에 없다. 오염수가 태평양을 한바퀴 돌아 우리나라 해역까지 되돌아오는데 4~10년걸리는데 아무리 일본이라도 해류까지 바꿀 순 없어서다. 이재명 말이 맞다면 말이다. ● 반대는 한국 야당과 중국, 북한뿐조용했다! 구글 영문 뉴스에서 검색창에 ‘Fukushima’를 치면 ‘Fukushima wastewater’가 자동 완성되는데 주로 오염수 방류를 소개하는 내용이지 반대한다는 내용은 단 두나라, 중국과 한국 밖에 없다.아…북한까지 치면 셋이다. 북한은 24일 오염수 방류가 인민 건강과 글로벌 환경에 해를 끼치는 ‘비인간적 범죄’라고 비난했다. 이재명의 논평이 북한과 거의 비슷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각자 판단한 일이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대한 공포가 일고 있다’는 기사가 8월 5일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 방영됐다는 게 있어 얼른 봤다. 대본을 읽어보니 일본 어부들이 수산물 수출을 걱정하는 가운데 “몇몇 인접 국가, 중국과 한국에서 오염수 방류 반대의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면서도 “2년에 걸친 독립적 국제원자력기구(IAEA)보고서에 따르면 방류 계획은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공영방송답게 친절한 해설을 덧붙여놓았다. ● 후쿠시마 수산물 금지는 5개국뿐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보다 먼저 닿는 미 국무부는 이미 2월 “우리는 IAEA가 옹호하는 핵 안전과 보안 기준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일본이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원자력 안전 기준에 부합하는것으로 보이는 방식으로 처리수(오염수) 방류를 준비하는 데 따른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이 오염수는 태평양을 한 바퀴 돈다. 태평양 섬나라인 미크로네시아의 데이비드 파누엘로 대통령도 2월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의 의도와 기술력을 신뢰하기때문에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우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지 않는다. 저스틴 헤이허스트 주일 호주 대사도 23일 ”이번 방류가 사람이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IAEA의 평가를 지지한다“고 했다. 뉴질랜드 나나이나 마후타 외무부 장관 역시 7월 “뉴질랜드 정부는 IAEA 보고서에 대해 완전한 신뢰를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우리 국민의 건강과 우려를 고려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철통같이 막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쩌랴. 식품 규제에 까다롭기 그지 없는 유럽연합(EU)이 3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금껏 유지해 온 후쿠시마 현 등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를 폐지했으니. 식약처에 따르면 이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막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홍콩 마카오 대만까지 달랑 5개국뿐이다. 이걸 과연 자랑이라고 해야할지, 북조선과 서조선 그리고 후기 조선 만세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 잼버리 화장실 수준의 민주당 주장영국 BBC가 소개한 ‘한국은 어떻게 후쿠시마 물을 정치화 했나’ 기사를 보면 새만금 잼버리 화장실처럼 창피하다. “한국에선 일본과 관련된 모든 사안이 그렇듯 이번 사안도 격렬하게정치적 쟁점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첫 대목부터 이 영국 기자는 한국 야당의 속셈을 꿰뚫어 보는 듯하다.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거의 승인했고, 이 물이 안전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기 위해 기자회견도 열고 유튜브 동영상을 제작해 알리고 있는데, 야당은 격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과의 긴장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한미일 정상회담에 성공했으나 야당은 바로 이 관계를 위해 정부가 국민 건강을 해쳤다는 것이고, 정부에선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야당이 국민을 겁박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중국과 한국의 민주당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에선 IAEA가 제공해준 독립적이고 과학에 기반한 기술 조언을 대체로 신뢰하고 있다. 그러면 답은 분명하지 않은가? 25일 와이셔츠를 입고 반대 시위에 나선 이재명과 민주당 일당들은 크게 실수한 것이다. 다음 번엔 거리에 나설 때는 부디 갓과 도포를 쓰고 나가시라. 그래야 후기 조선시대로 돌아간 당신들 주장에 조금은 귀를 기울일 수 있을 테니.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