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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동생에게 더 정확한 세상을 들려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동생과 함께 웃고, 함께 울고 싶었다. 뇌병변과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은 서른이 넘었지만 정신 연령은 3살이다. 온종일 TV 앞에 앉아 번쩍이는 화면만 바라보는 동생에게 TV 속 세상을 들려주고 싶었다. 영화를 볼 때면 마치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 동생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골라냈다. “왕자님이 하늘에서 구름 타고 궁궐로 내려왔어. 전우치가 그림 속으로 슝 들어 간 거야.” 한 장면이라도 더 들려주고 싶어 동생에게 계속 말을 건네다 보니 자연스레 ‘화면해설 작가’를 꿈꾸게 됐다. 2011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에서 화면해설 작가 양성교육을 받으며 화면해설의 세계에 입문한 임현아 작가(37)는 어느덧 영화 ‘체포왕’(2011년), KBS1 다큐멘터리 ‘동행’ 등을 해설한 12년차 베테랑 작가로 성장했다. 화면해설 작가는 영화, 드라마 등 영상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몸짓과 표정, 때와 장소의 변화를 풀어 쓰는 일을 한다. 11년 전 임 작가와 함께 화면해설 작가의 세계로 입문한 권성아(51), 김은주(46), 이진희(46), 홍미정 작가(51)는 12일 화면해설 작가로서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눈에 선하게’(사이드웨이)를 펴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19일 만난 이들은 “화면해설 작가란 초행길을 찾아오는 친구에게 길을 알려주듯, 시각장애인 등 영상 해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든 것들을 꼼꼼하게 들려주는 사람”이라며 “더 많은 이들에게 화면해설 작가의 세계를 알려주고 싶어 책을 냈다”고 말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403편 가운데 화면해설이 포함된 작품은 3%, 10여 편뿐이에요. 10년 전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수치이지만 아직까지도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선택지가 부족해요. 큰 변화를 바라는 게 아녜요. 보고 싶은 영화를 함께 즐기자는 겁니다.” (홍 작가) 국내 지상파 방송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서비스가 시작된 지 올해로 21년째. 2011년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지상파·보도채널·종합편성채널은 전체 방송의 10%를, 기타 방송사업자도 5~7%를 화면해설방송으로 편성하도록 의무화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 작가는 “방송사에서는 의무 할당량만 채우면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연말쯤 화면해설방송 할당량을 다 채우면 멀쩡히 진행하던 해설 방송이 중단되는 일이 지금도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면 제가 해설하는 방송의 시청률부터 확인해요. 시청률이 저조하면 화면해설방송이 가장 먼저 사라지거든요.” (김 작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지만 화면해설 대본을 살펴본 시각장애인 모니터링 요원이 “해설이 아주 좋아요. 안 봐도 비디오!”라고 칭찬해줄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한다. 권 작가는 “배우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드라마 속 5분을 설명하기 위해 5시간을 고민할 때도 많다”면서도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장 정확한 표현을 골라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특히 권 작가는 올 4월 종영한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해설을 맡았을 때 “막막한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주인공 나희도(김태리 역)와 백이진(남주혁 역)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 나오는 대사는 단 다섯 마디뿐이었다. 이들이 주고받는 눈빛과 몸짓이 대사보다 더 중요한 단서였다. 결국 같은 장면을 수백 번 돌려본 끝에 이런 해설이 나왔다. ‘희도가 지나쳐 가는 이진의 팔을 잡는다. 이진의 눈길이 희도에 손에서 천천히 희도의 얼굴로 향한다. 희도는 이진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이진은 팔을 붙잡힌 채로 희도의 말을 듣고 있다. (중략) 희도는 떨리는 눈빛으로 이진을 올려다본다. 이진의 떨리는 눈동자도 희도만을 향해 있다.’“멜로드라마에서는 대사보다 등장인물의 몸짓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가 많아요. 비시각장애인들은 사소하게 스쳐 지나갈 몸짓 하나도 놓칠 수 없죠.” (권 작가) 이들의 휴대전화 메모는 온갖 사물의 이름들로 빼곡하다. 이 작가는 소설과 시를 찾아 읽으며 하나의 장면을 표현할 다른 말들을 찾아낸다. 그는 “화면해설을 하면서 귀에 착 달라붙는 표현 하나를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을 때가 많다”며 “등장인물들이 눈빛을 주고받는 장면도 ‘시선이 닿는다, 머문다, 향한다, 멈춘다, 고정돼 있다, 시선을 돌린다, 눈길을 거둔다’ 등으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저는 글을 쓰지만 시각장애인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뻔한 표현 말고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아서 등장인물이 느끼는 아주 작은 떨림까지 들려주고 싶어요. 우리는 화면해설사가 아니라 화면해설 ‘작가’이니까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나를 10냥에 팝니다.”1767년 5월 한순재는 용산서원에 자신을 내다 팔며 자매명문(自賣明文·평민이 자신을 노비로 팔기 위해 만든 문서)을 남겼다. 평민 신분이었던 그는 봄에 기근이 닥친 뒤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렸지만 갚을 방도를 찾지 못하자 결국 자기 자신을 내다 판 것. 1801년 선암외라는 사람은 서원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10살과 7살 난 두 딸을 팔며 “형편상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내가 낳은 두 딸을 서원에 영원토록 팔아버린다”는 글을 남겼다. 30만여 점. ‘기록유산의 보고’라고 불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수장고에는 이 같은 조선시대 노비문서뿐만 아니라 양반들이 주고받은 편지, 유서 등 조선시대 민간 고문헌 17만 여 점과 조선 왕실 문헌 12만여 권이 빼곡하게 소장돼 있다. 이곳에서 22년째 고문헌을 탐구해온 정수환 고문서연구실장(48) 등 장서각 소속 연구원 8명이 10일 신간 ‘고문헌에 담긴 조선의 일상’(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을 펴냈다. 20일 오전 전화로 만난 정 실장은 “딱딱한 한문만 가득할 것 같은 고문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 냄새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웃었다. 조선 실학자 황윤석(1729~1791)이 8세부터 62세까지 쓴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 46책 중 1책에는 18세기 중엽 한양 주택시장에 대한 깨알 정보들이 가득 들어 있다. 1769년 41세에 왕실 족보를 관리하는 관청인 종부시의 종7품으로 승진하며 고향인 전북 흥덕을 떠나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시작한 그의 일기 속에 한양 주택 임장기가 담긴 것. 고향 땅을 팔아 40냥을 챙긴 그는 4대문 안에 있는 중소형 주택 10여 곳을 돌며 발품을 팔았지만 끝내 마음에 드는 매물을 찾지 못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7급 공무원 1년 연봉으로는 먹고 살기 빠듯했어요. 결국 황윤석은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하숙생으로 한양에서 살아요. 지방 청년들이 서울서 살아남기 힘들다고들 하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고문헌은 짧은 생을 살다간 충신의 생애를 복원하는 단서가 돼주기도 한다. 정 실장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다 전쟁이 끝난 직후 청나라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오달제(1609~1637)가 남긴 문집 ‘충렬공유고(忠烈公遺稿)’에서 그의 흔적을 찾았다. 1633년 인조 집권 당시 그가 제출했던 과거급제 답안지가 담긴 것. 인조는 국가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동전 유통 정책을 펼치기에 앞서 과거시험에 ‘동전을 유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서술하라’는 문제를 출제했다. 오달제가 25세 때 제출한 답변은 출제자의 의도를 뛰어넘어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었다.‘동전을 만드는 것은 임금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위한 것입니까? 나라를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까? 민심이 고통스럽게 여기면 이 법은 성공하지 못하고 폐기될 것입니다.’ 정 실장은 “오달제는 시험에서 임금에게 잘 보이는 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청년은 당돌하게 임금을 향해 동전을 유통함으로써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진 않았는지를 되묻고 있다”며 “이 자료 덕분에 29세 짧은 생을 살다간 오달제의 곧은 성정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오달제의 의리는 임금을 향했다기보다 백성을 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의미 없어 보이는 낙서도 연구하는 이의 ‘안목’에 따라 재발견될 수 있어요. 그 낙서에서 옛 조선의 유머 코드를 읽어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아직까지 이야기를 발견해줄 ‘임자’를 기다리는 고문헌들은 많이 있습니다. 후학들과 함께 앞으로도 저는 옛 문헌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찾아낼 겁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19년 암을 앓고 있던 89세 브래드쇼 퍼킨스 주니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병원에 누워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 자녀는 아버지의 ‘죽음 예정일’에 맞춰 그의 곁을 지켰다. 브래드쇼는 침대 맡에 서 있는 자녀들에게 그동안 “사랑했고 고마웠다”는 작별 인사를 남겼다. 마침내 의사가 건넨 약물을 삼키자, 그는 고통 없이 평온한 죽음을 맞았다. 캐나다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케이티 엥겔하트(사진)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브래드쇼의 마지막 순간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분명 ‘의미 있는 죽음’이었다”고 했다. 올해 8월 국내에 출간된 ‘죽음의 격’(은행나무)을 쓴 엥겔하트는 2015년부터 6년간 세계를 다니며 존엄사를 선택한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과정을 책에 담았다. “브래드쇼가 그런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캘리포니아주가 2015년 존엄조력사법과 같은 의미를 지닌 ‘생애말기선택권법’을 시행했기 때문이에요. 이 법이 시행된 직후부터 캘리포니아에서는 조력사 의료 영업이라는 새로운 의료산업이 주목받고 있어요. 한 사회가 법 시행 뒤 바뀌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엥겔하트는 1994년 미 오리건주에서 세계 최초로 존엄조력사법이 통과된 뒤로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관련법을 도입한 나라를 두루 살폈다. 국내에서는 올 6월 국회에서 존엄조력사법이 발의된 상태다. 엥겔하트는 이 과정에서 ‘지하 안락사 조직’의 실태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던 한 은퇴한 변호사는 안락사용 불법 약물을 사려고 멕시코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며 “현재 세계 곳곳에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약물을 대리해서 구매하거나 대신 투약해주는 조직이 존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고령사회로 접어들수록 불법적인 경로로 약물을 구매해 안락사를 시도하려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질병의 고통에 놓인 이들은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존엄조력사법을 논의할 때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건 종교나 윤리의 잣대가 아니라 병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의 마음이 아닐까요. 고령사회로 접어들수록 정부와 사회가 이들의 고통에 하루빨리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전립선암을 앓고 있는 89세 노인 브래드쇼는 병원 침대에 누워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지역에 살던 자녀들은 그의 죽음 예정일에 맞춰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그의 곁을 지킨다. 브래드쇼는 침대 맡에 서 있는 세 자녀들을 향해 그동안 “사랑했고 고마웠다”는 작별 인사를 남긴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입을 맞춘다. “아버지가 저를 사랑한다는 것은 늘 알았다”고 답하며. 마침내 의사가 건넨 약물을 삼키자, 그는 고통 없이 평온한 죽음을 맞는다. 2015년부터 6년 동안 미국, 캐나다, 벨기에, 스위스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존엄사를 선택한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캐나다 출신 다큐멘터리 제작자 케이티 엥겔하트. 최근 존엄사 현장을 담은 신간 ‘죽음의 격’(은행나무)를 올해 8월 17일 국내에 출간한 그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서면 인터뷰에서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브래드쇼의 마지막 순간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 한다“고 답했다. “죽음이 예정돼 있었기에 그의 자녀들은 직장을 쉬고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생의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멋진 죽음’이었습니다.”브래드쇼가 존엄하게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캘리포니아주가 2015년 미국 최초로 일명 ‘존엄조력사법’이라고 불리는 ‘생애말기선택권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캘리포니아에서는 조력사 의료 영업이 활성화됐다.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 6월 국회에서 ‘존엄조력사법’이 최초로 발의됐다. A 씨처럼 치료가 어려운 말기 환자가 의사에게 요청하면 약물 처방을 받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마련될 수 있는 첫 단추가 꿰어진 셈. 1994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세계 최초로 존엄조력사법이 통과된 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국가를 살펴본 케이티 엥겔하트는 “우리가 존엄조력사법을 논의할 때 가장 중시해야 하는 가치는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잣대가 아니라 실제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와 가족들이 느낄 고통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 힘써온 한 활동가가 제게 해준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지만, 그것을 버릴 수 없다면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죠.” 저자는 책 속에 ‘지하 안락사 조직’의 실태도 담았다. 그는 “맨해튼에 거주하는 한 은퇴한 변호사는 안락사에 이를 수 있는 약물을 사기 위해 멕시코로 안락사 약물 구매 여행을 떠났다. 전 세계 곳곳에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약물을 대리해서 구매하거나 대신 투약해주는 지하 안락사 조직이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존엄조력사법이 합법화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경고다. “고령사회로 접어들수록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불법적인 경로로 약물을 구매해 안락사를 시도하려 할 겁니다. 질병의 고통 속에 놓인 이들은 법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거든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옥에 잘 오셨습니다. 여기는 암흑의 동굴입니다.” 미국 잡지 ‘마더존스’의 기자인 저자가 2014년 루이지애나의 한 민영 교도소에 4개월 동안 교도관으로 위장 취업해 목격한 현실은 지옥 그 자체였다. 2.5m² 남짓한 감방에 재소자 2명을 몰아넣었다. 조명이 나간 채 방치된 복도는 한낮에도 어두컴컴했다. 방바닥에는 음식물 찌꺼기, 쓰레기, 종이 뭉치가 굴러다녔다. 재소자들은 그들을 관리하는 교도관에게 “우리가 개똥만도 못하냐”며 고함을 질러댔다. 하지만 각 층별 교도관 수는 재소자 176명당 1명꼴. 온갖 소란과 열악한 환경을 그저 방기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책은 미 전역의 재소자 150여만 명 가운데 13만 명가량을 책임지는 미국 민영 교정회사(CCA) 소속 교도관으로 근무한 저자가 민영화 교도소의 실태를 고발한 르포르타주다. 비좁은 감방 안에 진동하는 악취와 온갖 쓰레기가 널브러진 열악한 내부를 눈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교도소에서 보고 겪은 생생한 현장뿐 아니라 옛 재소자 회고록, 신문, 역사책을 뒤져 미국 교도소가 민영화된 역사도 담았다. 저자는 1800년대 미국 교도소가 민영화된 배경에는 인종차별의 뿌리 깊은 역사가 잔존한다는 사실을 들춰낸다. 민영화 교도소는 노예제가 폐지된 뒤 자유인이 된 흑인들을 사회로부터 분리시켜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실제 1830년대 뉴욕의 죄수 5명 중 1명은 흑인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당시 뉴욕 거주자 중 흑인 비율(2%)의 10배나 된 것이다. 당대 지역의 제조업자들은 교도소 안에 공장을 지어 교도소 한 곳당 현재 기준으로 연간 평균 22만 달러(약 3억1460만 원)에 이르는 수익을 냈다. 교정보다 ‘수익 창출’이 우선시되면서 교도소는 값싸고 열악한 환경에 최대한 많은 죄수들을 몰아넣는 공장이 되어버렸다. 비단 남의 나라 일일까. 추천사를 쓴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법무정책연구실장은 “한국의 교정 현실과도 상당 부분 중첩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2010년 전체 54개 교정시설 가운데 첫 민영교도소 ‘소망교도소’가 등장했다. 비용과 편익, 효율성만 중시한다면 언제든 다른 나라의 교도소도 미국처럼 변질될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그래미 어워즈, 빌보드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 3대 대중음악상으로 꼽히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가 올해 ‘케이팝(K-pop)’에 상을 주는 부문을 새로 만들었다. 미 3대 대중음악상에서 케이팝을 별도 시상하는 부문을 만든 건 처음이다. AMA는 13일(현지 시간) 2022년 시상식의 37개 부문별 후보를 공개하며 “‘페이버릿 케이팝 아티스트(Favorite K-Pop Artist)’ 부문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20일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극장에서 열린다. 해당 부문 후보로는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세븐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트와이스 등 5개 그룹이 선정됐다. 경쟁 팀으로는 콜드플레이와 이매진 드래건스, 원리퍼블릭, 모네스킨 등이 이름을 올렸다. 미 음악 전문매체인 빌보드는 AMA가 케이팝 아티스트 부문을 따로 만든 것에 대해 “한국 대중음악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나는 다만 잘못된 것, 부당한 것에 대해 쓸 뿐입니다.”(압둘라자크 구르나) “아프리카 소녀들처럼, 현실에서 외면당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데이먼 갤것) 전쟁과 기후변화, 전염병…. 세계에 끊이지 않는 위기 속에서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문화교류 시민단체인 ‘아프리카인사이트’가 11일 주최한 ‘2022년 아프리카 문화인적 교류 증진 특별 웨비나’에 화상으로 참석한 탄자니아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4)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가 겸 극작가 데이먼 갤것(59)은 “작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쓰는 이가 아니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낱낱이 기록하는 이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구르나와 갤것은 지난해 각각 노벨 문학상과 부커상을 받았다. 올해 5월 국내에 출간된 ‘낙원’(문학동네)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아프리카 식민지 역사를 통해 인간성을 탐구하는 구르나는 현대 아프리카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지난해 스웨덴 한림원은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며 “식민주의 역사에서 난민이 처한 운명을 타협 없이 연민 어린 시선으로 통찰했다”고 평했다. 그의 작품은 저항적이고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자주 받는다. 구르나는 이에 대해 “정치적인 저항을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저는 역사를 통해 상처받은 이들이 치유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겁니다. 전쟁과 식민 지배, 이주의 아픔이 사람들을 완전히 파괴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회복해 나가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갤것이 부커상을 받은 작품은 남아공에서 1950년부터 1994년까지 이어진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은 한 백인 가족을 다룬 소설 ‘약속’이다. 그는 “소설의 힘은 역사적인 순간에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낱낱이 기록하는 데 있다”며 “그 감정 속에서 인간성을 발견해내는 것이 소설가로서의 책무”라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소설 ‘The Good Doctor’는 다음 달 국내에 출간된다. 갤것은 “최근 서구 출판계에서 아프리카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프리카대륙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남아공의 청년 작가들이 현지에서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담은 작품에도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인종 차별은 한국에서 최근에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에요. 이미 개화기부터 150년 넘게 우리 사회에 깊게 밴 문제라고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흑형’ ‘짱깨’ ‘튀기’…. 한국 사회에서 차별적 혐오 표현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지난달 28일 ‘한 번은 불러보았다’(위즈덤하우스)를 출간한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46·사진)는 우리의 예상보다도 그 뿌리는 훨씬 깊고 오래됐다고 강조한다. 6일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에서 만난 그는 “심지어 일제강점기 ‘독립신문’ ‘한성순보’조차 흑인을 차별하고 백인을 예찬하는 차별적 문장이 가득했다”며 “다소 민망하고 부끄럽더라도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인종 차별이 없는 대한민국’은 소망을 품을 순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땐 허상에 가깝다. “흑인은 동양인보다 미련하고 백인보다 천하다”, “야만스러운 풍속을 지닌 인디언은 백인들과 겨룰 수 없어지자 스스로 외진 곳으로 물러났다”…. 우리가 자긍심을 가졌던 독립신문에 실린 표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안타깝지만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은 서구나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면서도 그들이 내세웠던 인종 차별적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큽니다. 그런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봐요. 당장 이런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인종 차별은 계속해서 번식해 나갈 겁니다.” 정 교수는 최근 인터넷 등에서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흑형’이란 표현도 “친근함의 탈을 쓴 인종 차별”이라고 짚었다. 그는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흑형’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90%가 인종 차별이 아니라고 답한다”며 “하지만 백인에겐 ‘백형’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을 떠올려 보면 특정 인종의 집단화가 왜 차별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 제목에 별다른 주어가 없는 이유도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인종주의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에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성적인 얘기도 담았다. “어릴 때 유난히 까무잡잡했던 저를 친구들은 ‘깜순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어요. 그 어린 마음에도 검은 피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깊이 배어 있었던 겁니다. 그걸 갖고 과연 아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였던 거죠. 부끄럽더라도 이제는 우리 안의 인종 차별주의를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게 제 책의 의도입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경남 진주가 사랑하는 지방문화재 촉석루(矗石樓). 논개의 충절이 밴 벼랑 위 팔작지붕은 도도히 흐르는 남강과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그리고 올해, 남강엔 또 하나의 절경 ‘21세기 촉석루’가 들어섰다. 올해 3월 촉석루에서 약 2km 떨어진 강변 산책로에 ‘빛의 루: 물빛나루쉼터’가 완공됐다. 10일 찾아간 빛의 루는, 강 건너에서 바라보면 바닥에 깐 기단 덕에 흡사 강물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배처럼 보였다. 오목하게 휘어진 지붕은 촉석루의 유려한 곡선미를 닮았다. 지난달 한국목조건축협회의 ‘2022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에서 준공부문 대상을 받은 이유가 절로 수긍이 갔다. 오후 무렵 제법 쌀쌀해진 날씨. 오가던 시민들은 찬 바람을 피해 빛의 루 안으로 모여들었다. 전면을 감싼 통유리창을 통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내부의 나무기둥 6개는 서로 겹겹으로 얽히고설켜 지붕을 받치고 있다. “우와, 예술이네”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동행한 김재경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45)는 “부제인 물빛나루쉼터에서 알 수 있듯, 빛의 루는 모두 함께 누리는 공공건축물”이라며 “특정인만 즐기는 예술품이 아니기에 설계 때부터 조형적으로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목조건축협회 역시 “공공건축물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2020년 처음 건축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부담이 컸다고 한다. 진주가 한국 근현대 건축사에서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김 교수는 “진주는 진주성 촉석루를 제외하면 6·25전쟁 등을 거치며 많은 전통 건축물을 소실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김수근 선생(1931∼1986)과 김중업 선생(1922∼1988)이 전통 건축의 멋을 살린 국립진주박물관과 경남문화예술관을 지어 진주 건축에 깊은 풍미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위대한 선배들이 남긴 유산 위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고심 끝에 가장 전통적인 방식인 목조 구조물을 기본으로, 가장 현대적인 해석을 담은 촉석루를 지어 보자고 결심했어요. 못 같은 금속은 최대한 배제하고, 선조들 방식처럼 목재를 서로 엇갈리게 짜 맞췄습니다.” 나무를 엇갈리게 맞춰 쌓아 올린 ‘다포(多包) 양식’의 기둥들 덕분일까. 철골이나 콘크리트를 전혀 쓰지 않았는데도 빛의 루는 오래 세월 뿌리내린 듯한 견고함이 묻어났다. 실제로 나무기둥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조각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김 교수는 “목재는 엇갈리며 하중을 지탱하면 금속이 없어도 스스로 지붕을 받치는 물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 대신 건축 기간이 오래 걸렸다. 설계도 완성 9개월을 포함해 완공까지 약 2년이 걸렸다. 못질을 최소화하고 나무를 짜 맞추다 보니 일반 건축 공정보다 3배 넘는 시간이 든 셈이다. 특히 하나의 조각이라도 틀어지면 전체적 틀이 망가져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구조를 찾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김 교수는 “진주시는 단 한 번도 언제 완공되느냐고 재촉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더 과감하고 자유롭게 설계해 달라’고 했을 정도”라고 했다. 진주시는 2019년 경남에서 처음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한 뒤 공공건축물의 예술적 시도에 매우 적극적이다. “누군가는 나무기둥이 복잡해서 별로라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런 반응 역시 시민들의 자유죠. 이런 색다른 공공건축물이 늘어나는 건 더 많은 분들이 건축예술을 일상처럼 누릴 기회도 많아진다는 뜻이겠죠. 그럼 우리가 예술을 받아들이는 공감대도 훨씬 커지지 않을까요.”진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경남 진주의 남강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잔잔히 흐르는 강물 속에 ‘21세기 촉석루’가 빛을 밝힌다. 올 3월 남강 산책로에 지어진 ‘빛의 루: 물빛나루쉼터’는 콘크리트 기단으로 건물 하단이 지층에서 떨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강물 위에 떠 있는 누각(樓閣) 같다. 오목하게 휘어진 지붕은 촉석루의 곡선을 닮았다. 유리창으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물 안에는 촉석루를 받치는 기둥처럼 6개의 나무 기둥이 서로 겹겹으로 얽히고설킨 채 지붕을 떠받들고 있다. 한국목조건축협회는 지난달 27일 ‘2022년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에서 이 건축물을 준공 부문 대상으로 꼽으며 “촉석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공공건축물의 예술성을 높였다”고 평했다. 10일 오후 4시경 남강을 거닐던 시민들은 제법 차가워진 가을바람을 피해 물빛나루쉼터에 발을 들였다가 겹겹으로 쌓아올린 나무 기둥을 보고는 “예술이네”라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술 작품과도 같은 이 쉼터는 특정인만 누리는 개인 소유 건축물이 아니라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공공건축물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설계한 김재경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45)는 이날 건물 내부를 촬영하는 관람객들을 바라보며 “누구나 들여다보고 다녀갈 수 있는 공공건축물일수록 조형적으로 더 아름다워야 한다. 건축 예술은 소수의 부유한 건축주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20년 11월 그에게 처음 건축 의뢰가 들어왔을 때에는 부담감이 앞섰다고 한다. 진주라는 도시가 근·현대 건축사에서 갖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진주는 촉석루를 제외한 옛 건축유산 상당수를 잃은 아픔을 간직한 도시였다. 이후 근대 건축의 거장 김수근(1931~1986)과 김중업(1922~1988)이 전통 건축물의 모습을 본 딴 국립진주박물관과 경남문화예술관을 각각 지으며 끊어졌던 진주 건축사의 고리를 이었다. “위대한 선배 건축가들이 남긴 유산 위에 나는 무엇을 더 보탤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가장 전통적인 방식인 목조 구조물로 가장 현대적인 촉석루를 짓기로 했죠. 못과 같은 금속을 최대한 배제하고, 옛 선조들의 방식처럼 목재를 서로 엇갈리게 짜 맞췄어요.” 나무를 엇갈리게 결부시켜 쌓아올린 전통 다포(多包) 양식으로 재현한 6개의 나무 기둥 덕분일까. 건물 내부에 콘크리트나 철골 구조가 없는데도 단단하게 연결된 나무뿌리처럼 견고해 보인다. 나무 기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백 여 개의 나무 조각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빽빽하게 맞물려 있다. 김 교수는 “여러 목재들을 서로 엇갈려 하중을 지탱하면 못이나 철골 구조물 없이도 스스로 서서 지붕을 받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건축가로서 내가 하는 일은 목재의 물성을 최대한 이용한 조형물을 빗는 것”이라고 했다. 못질을 최소화하면서 목조 건축물을 짓기까지 약 2년이 걸렸다. 설계도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만 9개월. 일반적인 건축물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는 “목재 조각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전체적인 틀이 망가지기 때문에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목조 구조를 디자인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진주시에서는 단 한 번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오히려 진주시는 김 교수에게 “더 과감하고 자유롭게 설계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2019년 1월 경남 지역 최초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한 진주시는 건축가가 공공건축물에 예술적인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얽히고설킨 나무 기둥의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는 복잡하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색다른 공공건축물들이 우리 주변에 생겨난다면 더 많은 이들이 건축 예술을 누리고, 더 다양한 건축물이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부자가 되고 싶다면? 복권을 사지 말고 데이터를 들여다보라.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로 구글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경력을 쌓은 그는 복권 당첨 확률보다 더 높은 확률의 ‘부자가 될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미국 국세청이 납세자 전체를 익명으로 전산화한 데이터에 따르면 상위 0.1%의 부자 가운데 급여로 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20%뿐이다. 84%는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회사에 다닐 게 아니라, 회사를 차려야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어떤 업종을 차려야 망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이 또한 데이터에 답이 있단다. 미 노동통계국 데이터를 보면 음반 매장이나 오락실, 장난감 매장과 같은 업종은 영업기간이 3년 내외로 짧았다. 이에 비해 부동산 임대업과 자동차 판매업이 사업 유지 기간이 가장 길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 업종에서 백만장자도 가장 많이 나왔다. 이렇게 하나씩 위험 확률을 지워 나가면 부자가 되는 길이 보인다. 돈을 버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직감이 아니다. 성공 확률을 예측하고 실패 위험을 낮출 데이터를 들여다봐야 한다. 저자는 “데이터주의야말로 21세기 종교혁명”이라 강조한다. 중세 시대엔 성경이 인간의 선택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물론이고 누구와 결혼할지, 외모를 어떻게 가꿔 나갈지 등 삶의 모든 갈림길에서 데이터가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선택지를 제공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연애나 결혼, 자녀 양육 등에서 발생하는 선택지도 가장 믿을 만한 데이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은 7장 ‘데이터광의 외모 대변신’을 꼼꼼하게 읽어보길 권한다. 간단한 변화만으로도 곧장 ‘유능해 보이는’ 외모를 가질 수 있다. 저자가 헤어스타일과 피부색, 눈썹, 안경, 턱수염 등을 다양하게 바꾼 얼굴 사진 6장을 갖고 측정한 결과, 안경을 쓰고 적당히 턱수염을 기른 외모가 1∼10 척도에서 7.8로 가장 유능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경 하나가 신뢰할 만한 외모를 만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납세자의 유년 시절 거주 지역 분포 데이터를 보면 도움이 된다. 미 국세청이 발표한 납세자 데이터에서 어릴 때 자란 지역과 현재 소득 수준을 추려 보면, 어느 지역에서 자란 이들이 평균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는 시애틀에서 자란 이들이 타 지역보다 평균 11.6% 이상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의 출신 지역, 지역별 최종 학력 수준 등의 데이터까지 고려하면 아이가 자라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가진 도시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당신의 직감을 믿지 말라(Don‘t Trust Your Gut)’. 물론 데이터의 예측 성공률은 100%가 아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는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된 데이터가 넘친다. 위에서 언급한 데이터도 실은 모두 ‘공짜 데이터’였다. 이렇게 참고할 게 많은데 왜 직감만 믿고 일을 저지르느냐고 저자는 충고한다. 어쩌면 앞으로의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숱한 통계 속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뽑아내는 ‘안목’일지도 모르겠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부자가 되고 싶다면? 복권을 사지 말고 데이터를 들여다보라.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더퀘스트)의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로 구글에서 데이터과학자로 경력을 쌓은 그는 복권 당첨 확률보다 더 높은 확률의 ‘부자가 될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미국 국세청이 납세자 전체를 익명으로 전산화한 데이터에 따르면 상위 0.1%의 부자 가운데 급여로 소득을 올리는 사람은 20%뿐이다. 84%는 자신이 소유한 회사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회사에 다닐 게 아니라, 회사를 차려야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어떤 업종을 차려야 망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이 또한 데이터에 답이 있단다. 미 노동통계국 데이터를 보면 음반매장이나 오락실, 장난감매장과 같은 업종은 영업기간이 3년 내외로 짧았다. 이에 비해 부동산 임대업과 자동차 판매업이 사업 유지 기간이 가장 길다고 한다. 게다가 이들 업종에서 백만장자도 가장 많이 나왔다. 이렇게 하나씩 위험 확률을 지워나가면 부자가 되는 길이 보인다. 돈을 버는데 가장 필요한 건 직감이 아니다. 성공 확률을 예측하고 실패 위험을 낮출 데이터를 들여다봐야 한다. 저자는 “데이터주의야말로 21세기 종교혁명”이라 강조한다. 중세 시대엔 성경이 인간의 선택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물론 누구와 결혼할지, 외모를 어떻게 가꿔나갈지 등 삶의 모든 갈림길에서 데이터가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선택지를 제공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연애나 결혼, 자녀 양육 등에서 발생하는 선택지도 가장 믿을 만한 데이터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은 7장 ‘데이터광의 외모 대변신’을 꼼꼼하게 읽어보길 권한다. 간단한 변화만으로도 곧장 ‘유능해 보이는’ 외모를 가질 수 있다. 저자가 헤어스타일과 피부색, 눈썹, 안경, 턱수염 등을 다양하게 바꾼 얼굴 사진 6장을 갖고 측정한 결과, 안경을 쓰고 적당히 턱수염을 기른 외모가 1~10 척도에서 7.8점으로 가장 유능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경 하나가 신뢰할 만한 외모를 만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납세자의 유년시절 거주지역 분포 데이터를 보면 도움이 된다. 미 국세청이 발표한 납세자 데이터에서 어릴 때 자란 지역과 현재 소득 수준을 추려 보면, 어느 지역에서 자란 이들이 평균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는 시애틀에서 자란 이들이 타 지역보다 평균 11.6% 이상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의 출신 지역, 지역별 최종 학력 수준 등의 데이터까지 고려하면 아이가 자라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가진 도시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당신의 직감을 믿지 말라(Don‘t Trust Your Gut).’ 물론 데이터의 예측 성공률은 100%가 아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는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된 데이터가 넘친다. 위에서 언급한 데이터도 실은 모두 ‘공짜 데이터’였다. 이렇게 참고할 게 많은데 왜 직감만 믿고 일을 저지르느냐고 저자는 충고한다. 어쩌면 앞으로의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숱한 통계 속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뽑아내는 ‘안목’일지도 모르겠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긋지긋하다. 그들에게, 모두에게, 문화,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소설 ‘빈 옷장’에서) 아니 에르노는 최근 국내 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1974년 등단한 뒤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몇 년 새 ‘에르노 붐’이 일며 많은 작품이 쏟아졌다. 출판계에 따르면 에르노 소설은 올해에만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카사노바 호텔’ 등 8권이 출간됐다. 2019년부터 계산하면 데뷔작 ‘빈 옷장’(2020년)을 포함해 15권에 이른다. 책을 내놓은 출판사도 6곳이 넘는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혀온 작가지만 다소 이례적인 상황.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페미니즘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에르노도 함께 각광받은 것으로 본다. 에르노의 문장은 여성을 둘러싼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칼로 도려내고 파헤치고 해부하는 듯한” 자전적 소설로 유명해 최근 독자들이 선호하는 경향에 잘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내 여성 작가나 문학평론가들이 에르노 작품을 단골 추천 목록으로 올려온 것도 인기에 한몫했다. 유상훈 민음사 편집자는 “여성주의에 바탕을 둔 실천적 글쓰기가 에르노 소설의 큰 장점”이라며 “많은 출판사가 출간 경쟁을 벌일 정도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화제를 모은 작품은 2000년에 발표한 ‘사건’이었다. 프랑스가 낙태를 법으로 금지했던 1960년대에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걸고 시도했던 임신중절 경험을 풀어내 발간 당시에도 큰 논란을 일으킨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레벤느망’의 원작으로 더 유명해졌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모두가 이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며 극찬했다. 출판계에서는 오랜만에 ‘노벨 문학상 특수’를 맞을 것이란 기대도 크다. 교보문고는 발표 직후 온라인서점의 에르노 작품에 ‘2022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문구를 달고 홍보에 나섰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지난해 수상자인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 2020년 수상자인 시인 루이즈 글릭은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없었다”며 “에르노는 20,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국내에도 팬층이 두꺼워 출판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조재룡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에르노는 프랑스 문단에서 현존하는 최고이자 최후의 소설가란 평을 받는 인물”이라며 “절대적인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소설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진실 가득한 문장을 쓰는 ‘글쓰기의 실천적 측면’을 이룬 대가”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일생 동안 변치 않는 한 가지를 남겨라.” 일제로부터 우리말을 지켜낸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은 생전 손자인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69)에게 이런 친필을 남겼다고 한다.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연구한 외솔은 “훈민정음은 발음기관 모양을 본뜬 과학적인 문자”라는 걸 밝혀내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음성의학의 관점에서 풀려고 시도했던 선구자였다. 9일 제576돌을 맞는 한글날도 외솔이 제정을 주도했다. 연세대 의대에서 이비인후과 교수와 음성언어의학연구소장을 지낸 최 회장은 4일 본보 기자와 만나 “할아버지의 과제를 푸는 것이 일생 동안 해왔고 앞으로 해야 할 단 하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발음기관을 본뜬 한글의 과학성이야말로 한글이 가진 힘이자 강력한 뿌리라 믿으셨다”며 “외솔의 후손으로서 더 정확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우리말의 기원을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가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훈민정음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건 2012년 무렵. 당시 외솔회 이사장을 맡아 1941년 출간된 외솔의 훈민정음 연구서 ‘한글갈’을 처음 접했다. 외솔은 중성자(‘·’, ‘ㅡ’, ‘ㅣ’)는 하늘과 땅,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떠 만든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본뜬 것이라 해석하는 기존 학계의 견해와 달리, 중성자 역시 발음기관을 본뜬 상형문자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비인후과 전공이라 실제 인체의 발음기관 구조를 연구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한글을 발음할 때 발음기관의 모양을 컴퓨터단층촬영(CT) 등으로 분석하면 할아버지가 품었던 의문을 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최 회장이 최근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중성자 제자해에 대한 음성언어의학적 고찰’에는 2015년부터 6년 동안 파고든 노력의 결과가 담겨 있다. 그는 논문에서 중성자(‘·’, ‘ㅡ’, ‘ㅣ’)를 발음할 때 구강과 인후두강의 모습을 CT로 촬영해 “중성자 역시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라는 주장을 펼쳤다. 외솔이 약 80년 전 ‘한글갈’에서 처음 제시했던 걸 손자가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는 “내년에는 자기공명영상(MRI) 기법으로 발음기관을 연구해 더 정확한 분석 결과를 내놓겠다”고 다짐했다. “KAIST와 협업해 한글을 말할 때의 발음기관 모양을 3D로 입체화하는 연구도 할 계획이에요. 음성의학과 컴퓨터공학을 융합한 저만의 방식으로 할아버지가 사랑한 한글의 우수성을 계속해서 밝혀내고 싶습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일생 동안 변치 않는 한 가지를 남겨라.”일제로부터 우리말을 지켜낸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은 생전 그의 손자인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69)에게 이런 친필을 남겼다.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연구하고 한글날을 제정한 외솔은 “훈민정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딴 과학적인 문자”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음성의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려 시도했던 선구자였다.외솔의 손자인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69)은 “할아버지가 남긴 과제를 푸는 것이 일생 동안 제가 남겨야 할 변치 않을 한 가지”라고 말했다. 이비인후과 의사이기도 한 그는 4일 오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할아버지는 발음기관을 본 딴 한글의 과학성이야말로 우리말이 가진 힘이자 강력한 뿌리라고 말씀하셨다”며 “외솔의 후손인 나는 그보다 더 정확하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할아버지가 지켜낸 우리말의 뿌리를 잇고 싶다”고 했다.이비인후과 의사인 그가 할아버지를 쫓아 훈민정음을 연구하기 시작한 건 2012년 무렵이다. 외솔회 이사장을 맡아 조부가 1941년 처음 출간한 ‘한글갈’을 처음 접하면서다. 외솔은 이 책에서 중성자(·, ㅡ, ㅣ)는 하늘과 땅,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떠 만든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본 딴 것이라고 해석하는 기존 한글학계 견해와 달리 중성자 역시 발음기관을 본 딴 상형문자일지 모른다는 새로운 의문을 제기했다.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발음기관의 구조를 연구해온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 글자를 발음할 때 발음기관의 모양을 컴퓨터 단층 촬영(CT) 등 음성의학적인 방식으로 분석한다면 할아버지가 품었던 의문을 밝혀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최 회장이 최근 대한후두음성언어의학회지에 발표한 ‘중성자 제자해에 대한 음성언어의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에는 2015년부터 6년간 이어온 연구의 결과가 담겼다. 이 논문에서 최 회장은 중성자(·, ㅡ, ㅣ)를 발음할 때 구강과 인후두강의 모습을 CT로 촬영해 “중성자 역시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 딴 상형문자”라고 주장했다. 1941년 외솔이 저서 ‘한글갈’에 품었던 의문을 그의 손자가 밝혀낸 것. 그는 “내년에는 자기공명영상(MRI) 기법으로 발음기관을 연구해 지금보다 더 정확한 분석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더 나아가 카이스트(KAIST)와 협업해 우리 글자를 말할 때 발음기관의 모양을 3D로 입체화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음성의학, 컴퓨터공학을 융합한 저만의 방식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밝혀내고 싶습니다.”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한국 사회를 위해 늘 올곧은 말씀을 해주신 스승 같은 분이셨습니다.”(김동건 아나운서) 4일 세상을 떠난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김옥길기념관에는 5일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트레이드마크인 안경과 콧수염,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환하게 웃는 고인의 영정 사진이 조문객을 맞았다. 이날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등이 조문했다. 김옥길기념관은 문교부 장관을 지낸 고인의 누나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1921∼1990)을 추모하기 위해 고인이 1999년 자택 마당에 건립했다. 조문객은 한국 정치를 비판하며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긴 고인을 회고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 늘 깊은 영감을 줬다”고 애도했다. 안 의원은 “한국 정치사와 지성사에 남긴 족적은 길이 기억될 것”이라며 추모했다. 고인은 올해 1월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였던 안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고인은 1970, 80년대 민청학련 사건 등에 연루돼 연세대에서 두 차례 해직됐다가 복직됐다. 이후 강연과 칼럼으로 주목받았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96년 정계 은퇴 뒤 보수 논객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이승만 대통령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 경제를 이만큼 만든 건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세간에 회자됐다. 2019년 유튜브 채널 ‘김동길TV’를 개설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7일까지 치러지며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연세대 의대에 기증된다. 서대문구 자택은 김옥길 전 장관이 총장을 지낸 이화여대에 기부하기로 했다. 유족으로 여동생 옥영 수옥 씨가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한국스카우트운동의 마중물이 된 ‘조선소년군’ 창립 100주년을 맞아 5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중앙고에서 ‘조선군 창설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조선소년군은 1922년 10월 5일 중앙고등보통학교(현 중앙고)에서 시작됐다. 조선소년군을 창설한 이는 독립지사 관산 조철호 선생(1890∼1941)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평안북도 오산학교 체육교사였던 그는 전교생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은 1921년 그를 중앙고 체육교사로 임명했다. 조 선생은 1922년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조선소년군을 만들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너희는 민족의 화랑이다. 민족을 구하는 선봉이 되라”고 당부했다. 창립 첫해 8명으로 시작한 조선소년군은 4년 만에 전국 학생 1만여 명이 참여한 학생운동 조직으로 성장했다. 조 선생은 1926년 중앙고 학생들을 이끌고 6·10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렀다. 1937년에는 조선소년군을 일본 보이스카우트에 병합하려는 일제에 대항하다 또다시 감옥에 끌려갔다. 조선소년군은 일본 보이스카우트와 강제 병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해 자진해산했다. 조선소년군 총사령장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조 선생은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1년 세상을 떠났다. 조선소년군은 광복 후 ‘대한소년단’으로 다시 출발했고, 그 뒤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조 선생은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중앙중고교는 조선소년군 창설을 기리기 위해 2008년 교정에 ‘한국스카우트발상지비’를 세웠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올해 탄생 40주년을 맞은 이모티콘은 이미 모바일 세상에선 ‘제2의 언어’로 자리매김했다. 카카오톡이 이모티콘으로 10년간 벌어들인 수익은 약 7000억 원에 이를 정도. 최근 인종·문화 다양성 논의도 벌어지는 이모티콘의 변천사를 들여다봤다.언젠간 세상에 이런 속담이 생길지도 모르겠다.‘이모티콘 한마디로 대출 빚 갚는다.’ ‘잘 키운 이모티콘, 열 자식 배부르다.’이미 스마트폰에선 문자와 동급. 가끔은 글자보다 표현이 다양하고 상황을 묘사하는 데 더 적확하다. 이모티콘은 21세기 현대사회에선 일상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이모티콘이 올해 탄생 40주년을 맞았다. 1982년 9월 19일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스콧 팔먼 컴퓨터과학과 교수가 학내 온라인 게시판에 ‘:-)’을 올렸을 때 과연 이런 영향력을 상상이나 했을까. 기네스북에 ‘최초의 디지털 이모티콘’으로 기록된 이 사건에 대해 팔먼 교수는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에 글만 쓰던 시대엔 상대의 표정이나 몸짓을 알 수 없어 진의를 구별하기 힘들었다”며 “이모티콘이란 수단이 온라인 세상에서 ‘감정의 교감’을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특히 한국은 이모티콘에 더욱 열광했다. 미 소프트웨어 회사 어도비의 지난해 보고서 ‘2021년 글로벌 이모지 트렌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호주보다 이모티콘 사용빈도가 10%포인트 이상 높다. ‘카카오톡(카톡)’을 만든 카카오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출시된 이모티콘은 약 30만 개나 되며, 메신저로 발신한 이모티콘은 2200억 건이 넘는다. 한국의 생활 문화는 물론이고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컬처 자이언트’ 이모티콘의 이모저모를 짚어봤다.》‘마흔살 이모티콘’ 변천사○ “감정 맥락 중시하는 한국말에 적합”한국인의 이모티콘 사랑은 어도비의 보고서에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설문에 응한 이들의 76%가 “글자보다 이모티콘 사용을 선호한다”고 답했을 정도다. 나머지 6개국 평균은 55% 정도다. 한국인은 친구나 연인, 가족 같은 사적인 소통은 물론이고 직장 등 조직생활에서도 이모티콘을 스스럼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한국인은 이토록 이모티콘을 사랑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는 대화에서 ‘분위기’를 중시하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조현용 경희대 한국어교육전공 교수는 “영어나 프랑스어는 문자 그대로 의미를 전달하는 ‘직관적’ 성격이 강하지만 한글은 어떤 상황이나 맥락인지를 봐야 하는 ‘복합적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밥 먹었느냐’는 말은 실제 식사 여부에 대한 질문이기보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 인사로 쓰이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한국인이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감정 단어’는 430여 개로 다른 언어보다 월등히 많다. 의성어나 의태어의 비율 역시 높다. 이 때문에 비대면 문자로는 소통에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한국 사회의 상호 교감을 중시하는 문화도 이모티콘의 인기에 한몫했다. 딱딱한 문장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윤활유 역할도 할 수 있고, 대답하기 애매한 상황을 적당하게 넘기기에도 요긴하다. 조 교수는 “기분이나 상황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을 쓰면 글로는 어려운 전체적인 분위기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어 이모티콘의 쓰임새가 확장됐다”고 설명했다.○ 누적 구매 2100만 명…초등생도 제작이런 배경은 국내 이모티콘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었다. 카톡이 국내 소셜미디어 시장에서 이모티콘을 처음 선보인 건 2011년 11월경. 이듬해인 2012년 월간 평균 이모티콘 발송량은 약 4억 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월 이용자 수가 5000만 명에 이르는 카톡은 한 달 평균 발송하는 이모티콘이 24억 건에 달할 정도다. 자연스럽게 이모티콘 구매자들도 늘었다. 2012년까지 이모티콘을 한 번이라도 구입한 누적 이용자는 약 280만 명에서 지난해 약 2400만 명으로 8.6배로 늘었다. 약 10년 동안 카톡 이모티콘의 총 수익 규모도 약 7000억 원에 이른다. 카카오 관계자는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하면 카톡 이용자 가운데 매달 2900만 명이 최소한 한 번은 이모티콘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모티콘 산업의 성장은 새로운 직업군도 낳았다. 국내에서 현재 ‘이모티콘 작가’라 불리는 이들은 1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게 일상이었던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많다. 지난해 이모티콘 작가들의 나이를 살펴보면 20대가 49.9%로 가장 많고 30대가 34.5%로 두 번째다. 최연소 작가인 12세 초등학생도 있다고 한다.○ MZ세대, 이모티콘은 자기표현 수단이모티콘은 이제 젊은 세대에겐 ‘문화의 용광로’로 자리 잡는 추세다. 인기 있는 영화나 드라마, 웹툰이 곧장 이모티콘으로 제작되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다. 이모티콘 자체가 하나의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최근 다양성에 관심이 많은 MZ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이모티콘도 많다. 이선영 백석문화대 초빙교수는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이모티콘 시장을 더욱 다양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모티콘 산업이 성장하면서 그동안 소수라는 이유로 배제돼왔던 이미지들까지도 상품성을 갖게 됐다”며 “나를 닮은 이모티콘을 쓰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 특성상 피부색부터 머리 모양, 패션 등 다채로운 이모티콘이 쏟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모티콘 속에 문화 다양성이 반영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2017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라이우프 알후메디 양(당시 15세)이 미 애플사에 “히잡을 쓴 ‘무슬림’ 이모티콘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알후메디 양은 “친구들과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할 때 이슬람교도인 날 표현할 이모티콘이 없다. 히잡을 쓴 여성이 뉴스에만 나올 게 아니라 이모티콘에도 등장해 우리 모두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리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애플은 이에 응답해 같은 해 히잡을 쓴 여성 이모티콘을 선보였다. 최근 MZ세대에게 화제를 모은 이모티콘 시리즈 ‘와다다다 흥겹다곰’을 만든 전진주 작가(34)도 이에 공감했다. 전 작가는 “돈보단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이모티콘 작가가 됐다”며 “가장 나다운 감정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반응이 클 줄 몰랐다”고 했다. 2020년 3월 평범한 직장에 다니던 전 작가는 이모티콘을 자체 제작해 카톡에 선보였다. 그는 “친구들과 메신저로 대화할 때 ‘힘들다’ ‘좋다’는 글자만으로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그의 이모티콘 시리즈는 ‘카카오 이모티콘 플러스’에서 10위 안에 드는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 품는 이모티콘 월드이모티콘이 하나의 국제 통용어로 성장하다 보니 이모티콘의 국제표준을 정하는 움직임도 있다. 세계의 모든 문자를 다루도록 설계된 표준 문자 전산 처리 방식인 ‘유니코드(Unicode)’를 규율하는 유니코드 컨소시엄은 2019년부터 해마다 ‘다양성 이모티콘’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유니코드 컨소시엄은 만국 공통의 문자 코드를 제정해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1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최근 유니코드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친숙한 ‘좋아요’(엄지손가락 치켜세우기) ‘하이파이브’(손바닥 마주치기) 등의 이모티콘을 3가지 피부색과 성별에 따라 모두 만들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컨소시엄 측은 “남녀는 물론이고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을 다양하게 표현한 이모티콘이 인종과 민족, 성별의 벽을 허물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유니코드의 이모티콘에선 ‘이모티콘 강국’인 한국의 영향력도 엿볼 수 있다. 올해 유니코드는 ‘손가락 하트’를 만국 공통의 이모티콘으로 발표했다. 유니코드 컨소시엄은 “손가락 하트는 세계에서 올해 나온 신생 이모티콘 31개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글이 남성으로만 제작했던 과학자, 용접공, 정비공, 농부 등의 이모티콘을 여성으로도 만든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구글은 “어린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모티콘도 사회윤리 국제규범 지켜야이모티콘의 파급력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이모티콘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이모티콘의 사회적 윤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는 올해 1월 내부 가이드라인인 ‘이모티콘 창작자 윤리 지침’에 증오발언 근절 원칙을 추가했다. 카카오는 “창작자들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발언과 사회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을 경계하도록 하자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윤리 지침에는 구체적인 제한이 담겨 있다. △특정 개인·집단을 멸시하거나 조롱하는 표현 △학교폭력 등 집단 괴롭힘 관련 표현 △외모를 평가하거나 비하하는 표현 △특정 질병·장애를 희화화하는 표현 △특정 종교를 희화화하는 표현 등이 담긴 이모티콘은 출시 자체를 금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해당 윤리 지침 마련에 참여한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가장 큰 원칙은 ‘이모티콘을 통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특정 집단을 차별하는 표현이 강화돼서는 안 된다’는 데 초점을 뒀다”며 “다른 메신저 플랫폼들도 하루빨리 협의해 공통의 윤리 지침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도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도 “이모티콘은 이제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세계인을 연결하는 만국공통어로 자리 잡았다”며 “각국 대표가 참여하는 ‘이모티콘 컨소시엄’을 구축해 인종과 종교, 문화적 차별을 막고 다양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문화재청은 백제 시조 온조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남한산성 숭렬전’(사진) 등 문화재 10건을 29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남한산성 숭렬전은 병자호란 때 임금이 남한산성에 머물며 온조왕에게 제사를 지낸 것을 계기로 1638년 세워졌다. 1795년 정조가 직접 ‘숭렬전’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단종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 등 충신 10명에 대한 제사의례 목적으로 1685년 세워진 강원 영월군 창절사,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경주 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등도 보물로 지정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조상 묘소에 있어야 할 묘지(墓誌·고인 신분이나 행적 등을 기록한 돌판)가 일본에서 거래되고 있었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두고 볼 수만은 없었어요.” 일본 도쿄에서 고미술업체를 운영하는 김강원 씨(54·사진)는 지난해 8월과 12월 현지에서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던 ‘백자청화김경온묘지(白磁靑畵金景溫墓誌)’와 ‘백자철화이성립묘지(白磁鐵畵李成立墓誌)’를 사들였다. “사비를 써서라도 묘지를 본래 있어야 할 고향으로 돌려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김 씨는 매입 직후 곧바로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아무 조건 없이 해당 묘지의 후손에게 기증하고 싶다”고 밝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8일 경북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김 씨가 기증한 묘지 2건을 공개하고 기증·기탁 기념식을 열었다. 김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묘지는 성격상 무덤에서 무단으로 파헤쳐 불법 반출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후손이라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이다”고 말했다. 1755년에 제작된 ‘백자청화김경온묘지’는 1726년 조선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뒤 고향인 안동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한 김경온(1692∼1734)의 묘지다. ‘백자철화이성립묘지’는 조선 무관이던 이성립(1595∼1662)의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묘지는 개인사는 물론이고 시대사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라며 “해당 묘지들이 어떻게 일본으로 반출됐는지는 현재로선 파악되지 않았다”고 했다. 묘지를 돌려받은 후손은 김 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해당 묘지를 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 기록유산 전문연구기관인 국학진흥원은 해당 묘지들을 시대사 연구에 활용할 방침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