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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전통 물옷을 입은 해녀들을 태운 어선이 파란 바다를 가로지른다. 물안경을 쓴 채 물에 첨벙 뛰어든 이들의 손에 들린 건 전복이 아닌 커다란 나무상자들. 상자엔 담배, 청바지, 바셀린 같은 물건이 가득 들었다. 물질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큰돈이 수중에 들어오자 범죄에 가담한 이들은 각자 딴 속셈을 갖기 시작한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일터를 잃은 해녀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이 밀수판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 ‘밀수’가 26일 개봉한다. 영화 ‘부당거래’(2010년) ‘베테랑’(2015년) ‘모가디슈’(2021년)를 연출한 류승완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영화다. 극장가 여름 성수기를 맞아 개봉하는 작품인 만큼 바다를 배경으로 시원한 액션을 선보인다. 조인성(권 상사), 박정민(장도리), 고민시(옥분) 등 쟁쟁한 배우진이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했다. 영화는 서해안 군천 앞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 춘자와 진숙이 등장하며 시작한다. 춘자는 고아 출신으로 식모로 일하다 도망 나온 몸이다. 선주인 진숙의 아버지 밑으로 들어가 해녀가 됐다. 진숙은 그런 춘자를 자매처럼 대한다. 두 사람의 평화로운 일상은 인근 바닷가에 화학공장이 들어서며 급변한다. 바닷속 전복은 속이 비었고, 생선들은 배를 드러내고 죽는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해녀들은 밀수에 손을 댄다. 먼 나라에서 들어온 배가 바다에 각종 생활필수품이 든 상자를 던지면 이를 건져 올려 업자들에게 넘기는 일이다. 하지만 세관 단속으로 진숙은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은 채 철창 신세까지 지게 된다. 가까스로 도망친 춘자는 서울에서 전국구 밀수판에 끼어들게 되고 진숙을 다시 찾아오며 둘 사이는 새 국면을 맞는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9일 만난 김혜수는 해녀 역을 맡기로 한 뒤 걱정이 컸다고 했다. 영화 ‘도둑들’(2012년) 촬영 때 수갑을 찬 채 타고 있던 차가 물에 빠지는 장면을 찍다 공황 상태를 겪었기 때문. 그는 “물을 보면 괜찮을 때가 있고 조금 안 좋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턴 한 번도 공황을 겪지 않았던 것처럼 괜찮아졌다. 다른 배우들과 함께 응원하고 환호하면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김혜수는 촬영 막바지에 물에서 나오다 이마가 ‘V’자로 찢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는 “물에서 나온 나를 보는 스태프들 표정을 보고 ‘좀 많이 다쳤나’ 하고 생각했다. 몇 컷 안 남겨 놓고 다치는 바람에 강제로 촬영이 종료돼 그게 더 속상했다”고 말했다. 호흡을 맞춘 염정아에 대해서는 “내공 있는 배우다. 내 약점을 보완해주는 장점이 있어 좋았다. 제대로 함께 해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연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촬영 현장이었어요. 배우들이 모두 정말로 그 캐릭터가 된 채 현장에 있었거든요. 그런 기운, 호흡은 경이로운 경험이었죠.” 영화의 백미는 종반부 물속 액션이다. 해녀들이 조폭과 물속에서 맞붙는다. 해녀들이 땅 위에서는 밀린다고 해도 홈그라운드인 물속에서라면 힘의 균형이 역전될 수 있다. 류 감독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수중에서 구현되는 액션을 할 수 있어서였다”고 했다. 류 감독은 “해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배경에서 격투 액션을 벌이면 훨씬 경쾌하고 새로운 리듬의 작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결과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가 9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충북 청주시 청주문화제조창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13회째인 이 행사의 주제는 ‘사물의 지도―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 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위원장 이범석 청주시장)는 13일 서울 종로구 한옥 도자공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행사 윤곽을 공개했다. 강재영 예술감독(사진)은 “이번 비엔날레에선 21세기 공예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형도를 그린다”며 “인간을 위한 물건을 만드는 것을 넘어 자연과 공존하는 특별한 공예의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비엔날레는 ‘걷고’ ‘잇고’ ‘만들고’ ‘사랑하고’ ‘감지하는’이란 다섯 가지 세부 주제로 구성됐다. ‘걷고’ 섹션에서는 공예가들이 대지와 호흡하고 마주하며 관찰한 사물을 자기만의 관점을 통해 만든 작품을 보여준다. 환경 친화적인 삶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는 네덜란드 디자이너 유르겐 베이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베이는 자신의 대표작 ‘Tree Trunk Bench’를 리메이크한 작품을 내놓기 위해 청주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작품의 재료가 될 팽나무를 찾았다. 조각 나 죽은 팽나무에 곰팡이와 이끼, 딱정벌레가 붙어 있었다. 나무가 스스로 변화해 마치 조각이 된 듯 보여 멋졌다”고 말했다. 베이를 비롯해 황란, 이상협 등 18개국 작가 96명이 작품을 선보인다. 출품작의 80%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만들어진 신작이다. 강 예술감독은 “지난 비엔날레는 팬데믹 상황이라 전시 위주로 진행했는데 올해는 학술회의나 워크숍 등 현장에서 작가를 만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많이 열린다”고 말했다. 변강섭 집행위원장은 “청주가 한국 공예의 새로운 거점으로 도약해 세계 공예 문화의 허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때리지 말라고 하면, 아닌 걸 아니라고 하면 ‘폐급(쓰레기급) 인간’이 되는 곳. 50년이 지나도 억울한 상황과 괴로운 청년들이 여전히 생겨나는 곳…. 육군 내 탈영병 잡는 군무이탈 체포전담조 DP(Deserter Pursuit) 이야기로 큰 공감대를 이끌어 냈던 넷플릭스 시리즈 ‘D.P.’가 2년 만에 시즌2로 돌아온다. 28일 공개되는 시즌2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총 6부작이다. 일병이 된 안준호(정해인), 전역을 앞둔 한호열(구교환)이 새로운 탈영병들의 흔적을 쫓는다. 전작보다 다양한 상황과 인물을 등장시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거리를 던진다. 새로운 공간으로 전방 감시초소(GP)가 등장한다. 시즌2는 시즌1 결말에서 궁금증을 자아냈던 김루리 일병(문상훈)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시작한다. 가장 친한 동기 조석봉(조현철)의 탈영 사건으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인 김루리는 반복되는 괴롭힘에 결국 자신의 생활관에 총기를 난사하고 무장한 채 탈영한다. DP인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 역시 조석봉 탈영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준호는 죄책감과 함께 바뀌지 않는 군내 문화에 대한 답답함, 분노를 느끼며 지쳐간다. 호열은 사건 이후 실어증을 겪으며 군 병원에서 지낸다. 김루리가 탈영하자 두 사람은 “탈영병을 무사히 데려온다”는 DP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시 뭉친다.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18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한준희 감독은 “짧고 오락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D.P.시리즈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고민했다”며 “시즌1이 ‘뭘 할 수 있는데?’라고 묻는 이야기라면 시즌2는 ‘뭐라도 해보려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어 “시즌2는 개인이 슬픈 시간을 관통하는 이야기다. 어떤 방식으로 그 시간을 지나 결론을 맺게 되는지 주의 깊게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정해인은 “시즌2는 여전히 변한 게 없는 현실과 (준호가) 부딪히며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며 “더 밀도 있고 깊어진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시리즈에 이어서 출연한 김성균(박범구)과 손석구(임지섭)도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 눈길을 끄는 새 출연자는 국군본부 법무실장 구자운 역의 지진희로, 출세와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한다. 그는 “시즌1이 큰 사랑을 받아 시즌2에 어떻게 스며들어야 할지 걱정했다”며 “나만 열심히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5년째 외교부 중동과에 근무하고 있는 민준(하정우). 이번에는 기필코 상급지 공관인 영국 런던으로 파견을 나가리라 다짐했지만 학벌 좋은 후배에게 또 밀리고 만다. 뿔이 난 채 퇴근하려던 때,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온다. ‘툭툭 툭 툭툭….’ 수화기 너머 들리는 소리는 왠지 장난 전화 같지 않다. 홀린 듯 종이와 펜을 들고 해석에 나선 민준 앞에 드러난 글자는 “나는 대한민국의 외교관…”이라는 외무부 전용 암호. 21개월 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납치된 동료에게서 온 전화임을 확신한 민준은 일생일대의 승진 기회라고 생각하며 레바논으로 떠난다. 1986년 레바논 주재 한국 외교관 피랍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비공식작전’이 다음 달 2일 개봉한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간 외교관 민준과 현지에서 불법 체류하며 사기꾼처럼 살고 있는 택시기사 판수(주지훈)의 좌충우돌을 그렸다. 시원한 자동차 추격 장면과 모로코에서 촬영한 이국적인 풍경,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가 돋보인다. 1986년 당시 주레바논 대사관 도재승 서기관은 출근길에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당시 납치한 이들의 연락 창구와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도 서기관은 피랍된 지 1년 9개월 만에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정부가 석방 과정을 속 시원히 밝히지 않은 데다 도 서기관 본인 역시 인터뷰를 꺼려 영화의 상당 부분은 상상으로 채웠다. 영화 ‘끝까지 간다’(2016년),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로 유명한 김성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 감독은 13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실화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영화적으로 각색하는 작업이라 상상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가능한 부분은 그대로 반영했다”고 했다.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 두 편을 함께한 하정우, 주지훈은 5년 만에 재회했다. 하정우는 “촬영 대부분을 모로코에서 했는데 ‘강제 합숙’을 하다 보니 이야기할 시간이 많았다. 함께 사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케미스트리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주지훈은 “(하정우와) 다른 작품에서 깊은 호흡을 맞춰 신뢰가 굳건하다”고 말했다. 다만 치안이 열악한 나라에서 외교관이 자국민을 구출해 낸다는 주제가 영화 ‘모가디슈’(2021년) ‘교섭’(2023년)을 떠올리게 한다. 김 감독은 “주재료가 비슷해도 셰프의 조리방식에 따라 음식은 전혀 다를 것”이라며 “‘비공식작전’은 (동료를) 구하려는 사람들을 통해 서스펜스 유머 액션, 영화적 쾌감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엔데믹 후 첫 여름 성수기를 맞아 극장가에는 ‘비공식작전’ 외에도 한국 영화들이 줄줄이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26일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밀수’가 첫 타자다.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이 주연을 맡았다. 바닷가 마을에 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잃은 해녀들이 밀수판에 뛰어드는 이야기다. ‘신과 함께’ 시리즈의 김용화 감독이 연출한 ‘더 문’은 다음 달 2일,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주연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다음 달 9일 각각 개봉한다. ‘더 문’은 위기에 빠진 달 탐사선에 홀로 남은 대원 황선우(도경수)를 구출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그대로 남은 황궁아파트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혼 뒤 다른 남자를 만나 재혼해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던 다에코(기무라 후미노). 그의 일상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게이타가 불의의 사고로 죽으며 산산조각난다. 가족들은 모두 게이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아이가 없는 세상에 익숙해지려고만 한다. 심지어 다에코가 재혼한 남편의 ‘진짜 아들’을 낳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로까지 여기는 듯하다. 다에코가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여길 때 사라졌던 전남편이 돌아온다. 가까운 가족이라도 ‘눈을 보고’ 대화하지 않으면 사실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알 수 없다는 걸 섬세하게 표현한 일본 영화 ‘러브 라이프’가 19일 개봉한다. 영화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호평받았다. 영화는 속마음을 도통 드러내지 않는 다에코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그는 재혼한 남편 지로(나가야마 겐토)를 사랑하지만 눈을 맞추고 속 깊은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재혼한 자신을 ‘중고’라 부르는 시아버지에게도, 데려온 아들 게이타 말고 “진짜 손주를 안겨 달라”는 시어머니에게도 미소를 지을 뿐이다. 게이타가 죽었을 때마저 가족들에게 장례를 잘 치르게 도와줘 “감사하다”며 예의를 먼저 차린다. 그런 다에코의 감정이 유일하게 폭발하는 장면은 한국인인 전남편 박신지(스나다 아톰)가 게이타의 장례식장에 나타나서 울부짖을 때다. 다에코와 아들을 버려두고 집을 나간 그는 장례식에 찾아와 다에코의 뺨을 때리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며 자해까지 한다. 다에코는 그에게 맞고 처음으로 소리내 엉엉 운다. 전남편이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에코는 그에게 빈집을 내어주며 게이타의 죽음을 함께 애도한다. 다에코의 마음을 움직인 건 “게이타의 죽음을 극복할 필요는 없다”는 그의 위로다. 이야기는 마음의 진실과 관련된 또 다른 반전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인간의 죄와 욕망, 후회 등을 그린 ‘하모니움’(2016년)으로 2016년 제69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후카다 고지 감독 작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러브 라이프’에 대해 “사람 간의 엇갈림, 거기서 생기는 아픔이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후카다 감독은 14일 내한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전남편 박신지 역의 배우 스나다 아톰은 실제 청각장애인이다. 영화에서는 그의 장애가 특별한 것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에코가 박신지와 수화로 대화할 때 감정이 더욱 풍부하게 표출된다. 후카다 감독은 “(장애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영화계 문화가)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등으로 인간의 속물근성을 까발리며 역사 속 개인의 실존을 탐구한 작가, 진짜 세상을 드러내지 못하는 ‘평범한 소설가들은 경멸당해 마땅한 존재’로 몰아붙였던 천재, 누구보다 전위적이었지만 고전주의적 미학을 추구한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1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고인의 물품을 소장하고 있는 체코 모라비안 도서관(MZK)의 아나 므라조바 대변인은 “쿤데라가 오랜 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위대한 현대 소설가로 꼽히며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자주 거론됐던 고인은 1929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야나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 예술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부터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다. 공산당을 비판하다 당에서 추방되고, 입당과 추방을 반복한 그는 1968년 공직에서 해직되고 저서들을 압수당했다. 결국 197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9년 체코 국적을 박탈당했다가 2019년 국적을 회복했다. 고인은 1967년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첫 장편소설 ‘농담’으로 이름을 알렸다. 작품은 농담마저 할 수 없는 감시가 가득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몰락하는 개인의 삶을 그렸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루이 아라공은 ‘농담’의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역사에 짓눌린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을 다룬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년)은 그를 세계에 알린 대표작이다.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의사 토마스를 통해 인간의 속물근성과 불확실한 삶에 대해 관찰한 소설로 국내에서도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쿤데라 신드롬’을 불러왔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참을 수 없는…’은 1989년 필립 코프먼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었다. 대니얼 데이루이스(토머스 역)와 쥘리에트 비노슈(테레사 역)가 출연해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그는 작품에서 기성의 가치관에 회의를 품으며 개인의 자유와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를 비롯한 현실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문학은 물론이고 예술 전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소설 속에 풀어냈다. 시인, 희곡 작가, 평론가, 번역가로 폭넓게 활동했다.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자유를 주장한 작가로, 소설에 인간의 감정, 사상, 철학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다고 여기며 소설이란 장르의 폭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고독을 다룬 장편소설 ‘불멸’,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삶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본 장편소설 ‘무의미의 축제’도 유명하다. 장편소설 ‘향수’는 체코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레나와 덴마크로 망명한 조제프가 프라하에서 보낸 며칠을 변주곡처럼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삶은 다른 곳에’, ‘배신당한 유언들’, ‘이별의 왈츠’, ‘느림’, ‘정체성’도 사랑받았다. 국내에선 민음사가 15권으로 이뤄진 고인의 전집을 출간한 바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갈리마르는 생존 작가에게는 매우 드물게 할애하는 ‘플레이아드 총서’에 쿤데라 전집을 포함했다. 2020년 체코에서 작가에게 주는 최고 문학상인 카프카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메디치상, 아카데미 프랑세즈상, 프랑스국립도서관상을 받았다. 고인은 인터뷰를 비롯해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살아왔다. 끊임없이 정치적 색깔에 대한 질문을 받아 온 고인은 언제나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갓난아기 때부터 분신처럼 기른 아들의 눈빛이 어느 순간 낯설다. 보기만 해도 삶이 충만해지던 햇살 같은 미소는 간데없다. 아들은 “사는 게 나를 짓누른다”며 울부짖는다. 최선을 다해 키웠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떻게 해야 아이를 도울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우울의 늪에서 아들은 길을 잃고, 부모는 무력하기만 하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더 썬’은 우울증을 겪는 10대 아들과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버지 피터 역을 맡은 배우 휴 잭맨은 이 영화로 올해 1월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 뉴욕의 잘나가는 변호사인 피터는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넓은 집에서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지내고, 둘 사이에는 갓 태어난 아기도 있다.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정계의 러브콜까지 받는다. 완벽해 보이는 그의 일상은 전처가 키우는 10대 아들 니콜라스(젠 맥그래스)에게 문제가 생기며 흔들린다. 니콜라스가 매일 등교한다며 집을 나서지만 사실 두 달째 결석했고, 공원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 니콜라스는 엄마 케이트(로라 던) 대신 아빠와 살겠다며 집까지 옮기지만 증세는 깊어진다. 피터는 “어려움 없이 자란 네가 도대체 뭐가 문제냐”며 아들을 다그치기도 하고, 그 마음을 이해해주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혼한 부모를 향한 원망이다. 피터는 어렸을 적 가족을 버려두고 성공만을 좇은 아버지를 혐오하며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지만 실패자가 된 것 같아 함께 무너진다. 잭맨은 자식의 우울증을 마주하는 아버지의 당혹감과 무력감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그는 연출을 맡은 플로리앙 젤레르 감독에게 e메일을 보내 “이 배역을 꼭 맡고 싶다”고 밝혔다고 한다. 영화는 극작가이기도 한 젤레르 감독의 ‘가족 3부작’ 중 두 번째로 영화화됐다. 2021년 영화로 만들어진 ‘더 파더’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주연인 앤서니 홉킨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3부작 가운데 ‘더 마더’는 아직 영화화되지 않았다. 젤레르 감독은 “(이번 영화는) 죄책감과 가족 간의 유대감, 궁극적으로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며 “정신 질환에 대한 대화의 폭을 넓히고 싶었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우리 멤버들 다 ‘또라이’다. 미친놈들만 가득 있어서 독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뷔가 멤버들에 대해 평가한 말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마음이 아무리 무너져도 무대를 사랑하는 감정은 더 커지는 사람들끼리 모인 것 같아 너무 좋다.” 방탄소년단이 데뷔 10주년을 맞아 9일 발간한 첫 공식 인터뷰집 ‘비욘드 더 스토리: 텐 이어 레코드 오브 BTS’(빅히트뮤직)에 이들의 속내와 10년간 겪은 좌절 및 환희의 순간을 생생하게 담았다. 책은 한국어를 포함해 총 23개 언어로 발간된다. 이날은 BTS 팬클럽 아미(ARMY)의 공식 창단일이다. 지민은 “아직도 저희 첫 무대 때 방송 카메라 옆에 있던 그 단 한 줄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 ‘단 한 줄’은 2013년 6월 13일 그들의 첫 TV 음악 프로그램 출연을 응원하러 온 팬들의 규모다. “사람들이 자꾸 언제 데뷔하냐고 물어보는 게 정말…. 칼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줘요.” 제이홉은 연습생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세계적인 스타인 그들에게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까 봐 두렵고 불안한 시절이 있었다. 데뷔 후에도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음악을 들어보지도 않고 그룹 및 멤버 이름, 외모, 실력을 조롱하는 이들이 있었다. RM은 활동 초기 몇 년의 시간을 “인정 투쟁의 역사였다”고 했다. 이들은 2015년 두 앨범 ‘화양연화 pt1’ ‘화양연화 pt2’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슈가는 인기가 치솟을 당시를 떠올리며 “갑자기 무협지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살인적인 스케줄은 번아웃을 가져왔다. 앨범 제작과 공연을 무한 반복하던 2017, 2018년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슈가는 “‘그만두자’는 말을 다들 하고 싶은데 꺼내질 못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이들은 재계약을 앞두고 위기를 맞았다. 제이홉은 “지옥 같았다. 처음으로 우리가 이걸 계속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심각한 분위기였다”고 했다. 지민도 “팀 자체가 되게 위험한 상황이었다. 새 앨범을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반전은 2018년 5월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찾아왔다. 전년도에 이어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받은 BTS는 한국 가수로는 처음 빌보드 뮤직 어워즈 무대에서 공연했다. BTS는 이 자리에서 정규 3집 ‘LOVE YOURSELF 轉 ‘Tear’’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FAKE LOVE)’를 공개했다. 힘들지만 꾸역꾸역 좋은 무대를 만들려는 멤버들과 오랜만에 외친 구호 “방탄, 방탄, 방방탄!”은 그들을 다시 하나로 묶었다. 제이홉은 멤버들에 대해 “피 안 섞인 가족”이라고 했다. 2020년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오르던 순간 진은 “체감이 잘 안 됐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받은 상이나 순위 중에 제일 안 다가왔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있는 현장과 멀어져서 그랬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제이홉은 “사실 무섭기도 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뭐든 해 보자’며 계속 달려 나가겠다”고 밝혔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현대인에게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 가능할까. 일요일 오후부터 시름시름 월요병 증세가 도지고, 큰맘 먹고 해외로 떠난 휴가엔 중요한 업무 연락을 놓칠까 봐 휴대전화 로밍 서비스를 신청한다. 누워서 쉬면서도 문득 ‘이렇게 뒹굴다가 인생이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몰려온다.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오른 저자는 심각한 번아웃을 겪었다고 고백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등단한 그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글을 썼고 단기간에 책을 두 권 내며 3년 만에 ‘투잡’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창조력에 과부하를 가져왔다. 저자의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는 “언제나 맹수에게 쫓기거나 최선을 다해 사냥을 하고 있는 몸 상태”라며 생각을 멈추고 완벽한 휴식을 취하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신에게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다. 그 대신 여행을 통해 ‘단 1퍼센트’의 빈틈이라도 찾아 휴식의 즐거움을 누려 보겠다고 다짐한다. 저자가 휴식하고 여행하면서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탐구와 감상을 담은 에세이다. 그는 “사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더 예민해진 그의 감각이 독자에겐 읽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꾸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열렬히 일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그의 고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여기 유쾌한 여덟 ‘언니’가 있다. 평균 연령 75세인 이들은 강원 강릉의 구도심 명주동에 사는 이웃사촌 사이다. 짧게는 35년, 길게는 70년간 명주동에 산 이들은 동네 텃밭 가꾸기 수업을 계기로 뭉쳤다. 함께 배워 볼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휴대전화로 사진 찍기 수업을 꾸렸다. 처음에는 “남사스럽다”며 꽃 사진만 잔뜩 찍던 할머니들은 매주 숙제로 셀카를 찍었다. 사진에 자신이 붙은 할머니들은 한술 더 떠 영상 촬영에 도전했다. 유쾌한 명주동 할머니들의 일상과 영화 촬영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작은 정원’이 12일 개봉한다. 영화는 5월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출을 맡은 이마리오 감독은 “작품을 만들면서 나 자신이 20, 30년 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고민을 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각자 나이 들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 감독과 명주동 할머니들은 사진 찍기 수업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사진 전시회까지 마친 뒤 새로운 걸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영화 작업에 도전했다. 직접 찍은 셀프 동영상에는 “할아버지가 저녁밥은 직접 좀 차려 먹었으면 좋겠다”는 귀여운 볼멘소리와 “시집 안 가고 엄마랑 살걸 그랬어”라는 딸의 푸념 등 미소 짓게 만드는 장면이 곳곳에 담겼다. 이날 시사회에는 문춘희(77) 김희자(77) 김혜숙(78) 최순남(76) 할머니가 참석했다. 문 할머니는 “영화도 안 보던 우리가 영화를 찍는다는 게 즐거웠다. 여러 추억을 만든 좋은 시간이었다”며 웃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어두운 방 안에서 백발의 노인이 텅 빈 악보 앞에 앉아 있다. 이마를 짚은 노인은 손에 쥔 연필로 신중하게 음표를 그려 나간다. 피아노도 기타도 없다. 책상에 앉아 오로지 머릿속에 흐르는 멜로디만을 종이에 옮긴다. 음표를 노려봤다가 돌연 허공에 지휘를 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운동을 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은 노인에 대해 “음악 말고는 안중에도 없는, 늘 다른 세상에 가 있는 기이한 천재였다”고 평가한다. 영화 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가 5일 개봉한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년) ‘미션’(1986년) ‘시네마 천국’(1988년) 등 귀를 사로잡는 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에는 늘 모리코네가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네마 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67)이 메가폰을 잡았다. 두 사람은 ‘시네마 천국’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후 평생 동료이자 친구로 지냈다. 영화는 모리코네의 육성으로 그의 어린 시절부터 영광의 순간까지 긴 여정을 돌아본다. 192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 아래서 자랐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트럼펫을 잡았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트럼펫을 연주하는 건 굴욕적인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넘치는 재능이 그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스승 고프레도 페트라시(1904∼2003)를 만나 작곡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 하지만 취직이 녹록지 않았다.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음반사에 취직해 대중음악 편곡을 시작한다. 1961년 루치아노 살체 감독(1922∼1989)의 ‘파시스트’로 처음 영화음악을 시작한 뒤 ‘황야의 무법자’(1964년)로 이름을 알렸다. 휘파람 소리를 절묘하게 사용한 테마곡이 당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편곡으로 일을 시작해 영화음악으로 넘어간 그는 오랫동안 정통 클래식 음악 작곡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저평가받기도 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5번이나 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실패했다. 결국 2016년 88세의 나이로 6번의 도전 끝에 트로피를 거머쥔 그는 시상대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곡을 참 쉽게 썼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막바지에 거장은 먼 곳을 응시하며 말한다. “작곡을 시작할 때면 빈 악보 앞에서 늘 괴로웠다.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완벽한 비율에 탐스러운 금발, 쭉 뻗은 다리와 한 손에 잡히는 가느다란 허리로 완벽을 뽐내는 바비 인형. 근심 걱정 없는 바비랜드에서 남자친구 켄과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은 바비가 냉혹한 현실 세계를 알게 된다면 어떨까.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면 발바닥에 불이 나고, 완벽하다 믿었던 외모와 몸매에서도 서서히 결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면 몸은 천근만근, 세월이 흐르면 늙고 죽는다는 사실까지…. 바비가 ‘매운맛 현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바비’가 19일 개봉한다. ‘바비’에서 바비 역을 맡은 마고 로비는 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팬들이 열광적으로 환대해줘서 눈물이 날 뻔했다”고 했다. 그는 전날 내한해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팬들을 만났다. 마침 이날이 그의 생일이라 팬들로부터 축하와 선물 세례를 받았다. 그는 “생일을 이렇게 기념한 적이 없다”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고 했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어글리 베티’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아메리카 페레라(글로리아 역)는 한국어로 “대박!”이라고 말한 뒤 “아름다운 도시 서울에 와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바비’는 마텔사의 바비 인형을 소재로 한 실사 영화다. 모든 것이 완벽한 바비랜드에 사는 바비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장난감 인형집처럼 내부가 노출된 드림하우스에서 생활하는 바비는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나 샤워를 하면 알맞게 구워진 빵이 저절로 접시에 날아온다.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듯 계단을 밟지 않고 사뿐히 날아 2층에서 내려온다. 다른 바비들과 함께 예쁜 옷을 입고 매일 밤 파티를 연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항상 하이힐을 신도록 고정됐던 까치발이 무너지면서 온 발바닥이 땅에 닿고, 허벅지에선 울퉁불퉁한 셀룰라이트가 보인다. 완벽한 모습을 잃은 바비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켄(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현실 세계로 떠난다. 주연과 제작을 맡은 로비는 “금발 머리에 스트라이프 수영복까지, 전형적인 모습의 바비는 현실로 나가 인간 글로리아와 만난다”며 “(세상이) 여성들에게 엄마, 동료, 친구로서 완벽한 모습을 요구하지만 글로리아를 통해 이것이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페레라는 영화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가 자신의 ‘최고 버전’이라는 점을 아는 것, 우리는 모두 아름답고 완벽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날씬한 백인 바비도 나오지만 살찐 바비, 흑인 바비, 장애인 바비 등 실제 세계를 반영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그레타 거위그 감독도 두 배우와 함께 내한했다. 거위그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떠오르는 여성 감독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2017년)로 골든글로브 영화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고, ‘작은 아씨들’(2019년)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화 ‘결혼 이야기’(2019년)의 노아 바움백 감독이 ‘바비’의 공동 각본을 맡았다. 두 사람은 연인 사이다. 거위그 감독은 “어릴 때 들어가고 싶었던 바로 그 세계인 바비랜드를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신났다”고 말했다. 그는 “바비는 (진취적인 여성상으로) 세상을 앞서 나간 적도 있지만 (완벽한 외모를 강요하며) 세상에 뒤처지기도 했다”며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바비라는 캐릭터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정체성을 넘어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고 밝혔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 ‘범죄도시3’가 1000만 관객을 1일 돌파했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처음이다. 역대 국내외 개봉작 중에서는 30번째이며, 한국 영화로는 21번째다. 범죄도시 1편부터 주연과 제작을 맡은 마동석(52)은 “더욱 발전된 범죄도시 시리즈를 위해 정진하겠다”고 밝혔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범죄도시3’는 개봉한 지 31일 만인 1일 1000만 관객을 넘어, ‘범죄도시2’(2022년)에 이어 1000만 관객을 달성했다. 한국 시리즈 영화가 연속 1000만 관객을 넘은 것은 ‘신과 함께’ 시리즈에 이어 두 번째다. 마동석은 범죄도시 시리즈 두 편과 ‘부산행’(2016년) ‘신과 함께-죄와 벌’(2017년) ‘신과 함께-인과 연’(2018년)까지 총 5편의 1000만 영화에 출연한 ‘5000만 배우’로 등극했다. 범죄도시 2, 3편을 연출한 이상용 감독은 국내 다섯 번째 ‘쌍천만 감독’이 됐다. 기존 쌍천만 감독은 ‘신과 함께’ 시리즈의 김용화를 비롯해 봉준호(‘괴물’, ‘기생충’) 윤제균(‘해운대’, ‘국제시장’), 최동훈(‘도둑들’, ‘암살’)이다. 마동석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8년 전 작은 방에 앉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 영화의 기획을 시작했다”며 “세 번째 기적이 찾아왔다”고 밝혔다. 범죄도시는 총 8편까지 예정돼 있다. 4편은 완성 단계로 내년 개봉할 계획이다. 형사 마석도가 온라인 불법 도박 조직을 소탕하는 이야기로, 김무열과 이동휘가 악당을 연기한다. 이 시리즈 1~3편의 무술감독인 허명행 감독이 연출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제가 겁이 없는 게 아닙니다. 저도 극한의 액션 연기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두려워서 연기를 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두려움에 맞서고 싶어요.” 환갑을 넘긴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61)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액션 연기로 또 한 번 돌아왔다. 다음 달 12일 개봉하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7번째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그는 특유의 환한 미소로 한국 취재진 앞에 섰다. 지난해 6월 ‘탑건: 매버릭’ 홍보차 내한한 지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올 때마다 환대받는 기분”이라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이 벌써 11번째 내한이다. 29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수퍼플렉스관에 남색 피케 티셔츠를 입고 편안한 차림으로 등장한 크루즈는 새 영화에 대해 “항상 관객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과 모험,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제 인생의 열정이다. 그 모든 게 한데 어우러진 게 이 영화”라고 말했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은 에단 헌트(톰 크루즈)와 그의 동료들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위험한 무기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벌이는 여정을 담았다. 이번 영화의 백미는 크루즈가 노르웨이의 절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뛰어내리는 부분이다. 그는 절벽을 빠른 속도로 달려가 뛰어내리고 낙하산을 펼치는 모습을 대역과 컴퓨터그래픽(CG) 처리 없이 직접 연기했다. 생생한 액션 연기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에 엄청난 스케일의 액션 연기를 CG 없이 소화한 걸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자 크루즈는 “제 휴대전화에 증거 사진이 다 있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스카이다이빙을 수년간 해왔고 오토바이도 어릴 때부터 탔다. 제 평생 해온 것들이 누적된 결과”라며 “이 장면을 위해 5개월간 별도로 훈련했다”고 강조했다. 팬들이 극한의 액션에 도전하는 그를 두고 “톰 형이 자연사했으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지만 그는 실제로 아주 신중하게 촬영 준비를 한다. 함께 내한한 벤지 던 역의 사이먼 페그는 “톰이 (과감하지만) 무모하지는 않다. (액션신에)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준비를 많이 한다. 모든 것을 다 계획하에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전문가들과 함께 한다”고 했다. 크루즈는 기자간담회 내내 동료 배우, 제작진과의 호흡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60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화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처음 영화 캐스팅 오디션에 도전했던 18세 소년 같은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크루즈는 “저는 정말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면서 “영화를 찍기 위해 전 세계의 호텔을 전전하며 살았지만 모험으로 가득 찬 인생이었고 그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크루즈는 한국에서 특히 사랑받는 할리우드 배우다. 친근한 팬 서비스와 열린 태도로 ‘톰 아저씨’ ‘톰 형’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는 전날 송파구 방이동 인근 먹자골목에서 목격되기도 했다. 그와 셀카를 찍은 사람들이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화제가 됐다. 그는 “어젯밤에 한국 바비큐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산책하면서 많은 분을 만나 인사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애칭에 대해 “정말 자랑스러운 별명”이라면서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 ‘유전’(2018년), ‘미드소마’(2019년)로 호러 장르에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아리 애스터 감독이 세 번째 장편 ‘보 이즈 어프레이드’(사진)로 돌아왔다. 영화 ‘조커’(2019년)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주인공 ‘보’ 역을 맡았다. 한국을 찾은 애스터 감독은 27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작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12년 전에 각본을 썼지만 영화로 만들 여건이 안 됐다”며 “영화 ‘미드소마’를 끝내고 1년 정도 다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보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커서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하고 공허하다”고 했다. 다음 달 5일 개봉하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강박과 불안 속에 사는 중년 남성 보가 아버지 기일을 맞아 어머니 모나(패티 루폰)를 만나러 가면서 겪는 일을 그렸다. 어머니 모나는 보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은 집착과 통제로 번진다. 강압적인 어머니 밑에서 보는 겁먹은 어린아이의 내면을 지닌 중년이 돼 버렸다. 영화는 17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현실과 상상을 마구 뒤섞은 독창적인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애스터 감독은 이번 영화를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는 “제가 좋아하는, 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유머가 이번 작품에 많이 들어가 있다. 영화를 본 친구들이 ‘영화가 꼭 너 같다’고 말한다”고 했다. 보 역의 호아킨 피닉스는 혼란스러운 보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해 냈다. 보의 내면을 표현하는 장면이 난해하지 않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애스터 감독은 “피닉스는 생생하고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배우”라며 “그와 작품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했다”고 말했다. 애스터 감독은 소문난 한국 영화 팬이다. 그는 “한국 고전 영화 중에서는 ‘오발탄’(1960년)을 좋아하고, 최근 작품 중에선 이창동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좋다”며 “한국 영화만의 특별함이 있다. 자유자재로 장르를 해체하고 실험적인 영화가 많아 인상적이다”라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미국 포크 음악의 전설적 듀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폴 사이먼(82·사진)이 왼쪽 귀 청력을 거의 잃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기타를 치고 곡 작업을 할 만큼은 들을 수 있다”며 열정을 보였다. 사이먼은 25일(현지 시간)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2년 반 전부터 왼쪽 귀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8% 정도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먼은 2018년 9월 미국 뉴욕에서 고별 공연을 하며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2021년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시티즌 라이브 공연에 나왔고, 지난해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도 깜짝 공연을 하며 무대로 돌아왔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BIFF) 이사장이 26일 사의를 표명했다. 최근 불거진 인사 파동과 영화제 사유화 논란에 책임을 진 것이다. 이날 BIFF 이사회 임시총회에서는 논란의 중심인 조종국 운영위원장 해촉 안건이 가결됐다. 석 달여 남은 영화제가 파행 위기를 수습하고 정상화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이사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내부 개혁과 저항, 일부 불만 세력과 본말이 전도된 무차별한 공격 등 모든 사태는 저의 무능과 부덕 때문”이라며 “제가 물러남으로써 구성원 모두가 참혹하게 유린당하고 있는 암담한 상황이 극복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이사장은 BIFF가 위기에 놓인 발단이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의 무책임한 잠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 것은 (허 전) 집행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표명과 잠적 때문”이라며 “이후 오해와 억측으로 빚어낸 유언비어가 확대 재생산됐고, 정치적 언행까지 더해지며 영화제는 끝내 내외부의 갈등과 진영논리가 판을 치는 이전투구의 장이 됐다”고 주장했다. BIFF 내홍은 지난달 이사회가 새로운 직제인 운영위원장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BIFF는 집행위원장 1인 체제였다. 하지만 예산, 행정 등 업무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며 운영위원장석을 만들었고, 이 자리에 이 이사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조종국 전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이 위촉됐다. 이 결정이 내려진 직후 허 전 위원장이 사의를 표하고 업무를 중단하며 혼란이 시작됐다. 인사 파동으로 영화제 준비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지자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등 영화계 단체들은 조 위원장 해촉과 혁신위원회 구성을 요구해왔다. 여기에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이 이사장이 BIFF를 사유화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논란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자 이 이사장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BIFF는 이날 제6차 이사회 및 제2차 임시총회를 열고 조 위원장에 대한 해촉안을 가결했다. 현재 공석인 집행위원장 직무는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가, 조 위원장 직무는 강승아 부집행위원장이 대행하는 체제를 확정했다.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이야기로 ‘미국의 건국신화’에도 비견되는 스타트렉 시리즈의 스핀오프 ‘스타트렉: 스트레인지 뉴 월드’ 시즌2가 방영을 시작했다.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 이전의 USS 엔터프라이즈호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전작들의 설정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스타트렉 입문작’으로 꼽힌다. 총 10부작으로 티빙 내 ‘파라마운트플러스 브랜드관’에서 16일부터 매주 1회씩 공개되고 있다. 이번 시즌은 크리스토퍼 파이크 선장(앤슨 마운트)과 우나 친 라일리 부선장(리베카 로메인) 및 선원들이 엔터프라이즈호를 타고 여러 행성과 외계인을 만나는 여정을 그렸다. 시즌1의 10부작은 지난해 공개됐다. 마운트는 22일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파이크 선장을 연기하면서 매일 리더십에 대해 배우고 있다”며 “(파이크 선장은) 나와 아주 비슷한 감성과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면 안팎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 내 일이고, 나와 비슷한 파이크를 연기하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도 했다. 파이크 선장은 스타트렉 팬인 ‘트레키’에게서 사랑받는 캐릭터다. 선원들을 믿어주고 따뜻한 리더십으로 감싸 ‘캡틴 대디’(선장 아빠)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미스티크 역으로도 유명한 리베카 로메인은 “스타트렉이 다른 공상과학(SF) 영화들과 다른 점은 외계인을 두려워하거나 그들과 싸우려는 게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포용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두 배우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마운트는 “정말 대단한 한국 작품이 많다. (상상력을 돋우는) 뭔가를 마시고 만드는 게 분명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로메인은 “팬데믹 기간 남편(배우 제리 오코넬)과 매일 밤 공포영화를 봤는데 한국 영화가 그중 최고였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조사 현장에 서면 늘 생각한다. 왜 이 고래는 죽어야만 했는가. 우리 인간의 생활이 고래의 사인(死因)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드넓은 바다에서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거대한 고래.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고 경외심마저 느끼게 하는 고래는 아직도 그 종류와 번식 형태가 낱낱이 밝혀지지 않은 종(種)이다. 저자는 고래가 죽어 육지로 떠밀려 오면 어디든 달려가는 해양 동물학자다. 20년 동안 2000마리가 넘는 고래를 부검했다. 인간과 같은 포유류인 고래가 육지로 올라와 잘 살다가 어째서 다시 바다로 돌아갔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저자는 고래가 바다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진화를 거쳤는지, 어떤 문제가 생겨 폐사하고 해안가로 떠밀려 오게 됐는지 남겨진 사체를 통해 되짚어 본다. 저자는 2018년 5월 일본 가나가와현 유이가하마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된 젖먹이 대왕고래를 가장 기억에 남는 개체로 꼽는다. 일본 최초의 대왕고래 좌초 사례였다. 대왕고래 성체는 몸길이가 25m에 이른다. 발견된 고래는 몸길이 10.52m의 수컷으로 생후 수개월 정도로 추정됐다. 고래는 생후 2년까지 모유를 먹기 때문에 이 개체 역시 위는 비었고, 장에만 내용물이 남아 있었다. 충격적인 것은 젖먹이 개체인데도 체내에 환경오염 물질이 축적된 것이었다. 위에서 지름 7cm의 비닐 조각이 발견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나가와현에서는 ‘가나가와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 선언’을 발표했다. 고래 부검이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 사례다. 저자는 고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재밌는 사실을 알려준다. 고래가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젖을 먹기 위한 뺨 부위의 ‘표정근’이 있기 때문이다. 고래에게도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있다. 샤넬 ‘넘버5’ 등의 향수에 사용되는 재료 ‘용연향’은 고래의 장에서 만들어지는 결석이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지금까지 한국에서 넷플릭스가 해온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향후 4년 동안 25억 달러(약 3조2300억 원)를 투자해 전 세계와 한국 관객들이 사랑하는 콘텐츠를 제대로 만들겠습니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22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 창작자들과의 좌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앞서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했던 윤석열 대통령에게 밝혔던 계획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날 서랜도스 CEO는 한국 콘텐츠의 저력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의 60% 이상이 한국 콘텐츠를 시청했고, 한국 콘텐츠 시청(량)은 지난 4년 동안 6배로 늘었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카터’ ‘지금 우리 학교는’ ‘더 글로리’ 등 한국 콘텐츠가 90개국 이상에서 넷플릭스 톱10에 들었다”며 “‘오징어게임’(2021년)이라는 드라마 하나가 미국에서 초록색 운동복을 유행시키고 반스 운동화 매출을 8000% 올리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느냐”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스토리텔링은 힘이 대단하다. 역사를 반영하고, 음악과 음식 등 다양한 것들이 이야기 속에 묻어나고, 정해진 공식이 없다”고 분석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용필름 임승용 대표와 퍼스트맨스튜디오 김지연 대표, 클라이맥스스튜디오 변승민 대표, 시작컴퍼니 김수아 대표가 참석했다. 서랜도스 CEO는 창작 생태계를 위해 적극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뿐 아니라 창작 시스템과 교육 등 카메라의 안팎 모든 분야에서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며 “차세대 창작자들을 위한 교육 지원도 하겠다. 한국전파진흥협회와 함께 젊은 창작자들이 경력을 쌓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넷플릭스가 창작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질문엔 “경쟁이 심한 업계이기 때문에 시장 최고 수준으로 보상하며 창작자들과 협업할 기회를 잡고 있다”고 답했다. 또 “(흥행한 작품의 창작자들과) 새로운 작품을 하거나 시즌2를 진행할 경우 그 인기를 다 계산해서 보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에 1조 원 이상의 수익을 안겨 줬지만 창작자들에겐 추가 보상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서랜도스 CEO는 ‘계정 공유 금지’ 정책이 한국에서는 언제 시행되느냐는 질문에 “전 세계적으로 지속할 예정”이라고만 했다. 한편 통신업계의 망 사용료 분담 요구에 대해선 “10억 달러(약 1조2900억 원)가량을 투자해 전 세계에 오픈커넥트 어플라이언스(OCA)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OCA는 넷플릭스가 구축한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다. 자체 투자를 통해 통신사의 전송량 부담을 줄이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국내외에선 넷플릭스 등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기업들이 인터넷망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투자 비용을 분담하라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