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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는 1804년 황제 대관식을 올릴 당시 35세였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후 가장 젊은 프랑스 지도자다. 마크롱은 1977년 12월 21일생이다. 태어난 연도만을 따지는 우리나라 언론의 계산법으로는 40세이지만 월일까지 따지는 서구식으로 계산하면 아직 생일이 되지 않아 한 살을 더 깎기 때문에 39세다. 마크롱은 서구식으로는 아직 30대다. ▷마크롱의 부인 브리지트 트로뇌는 63세로 마크롱보다 24세 연상이다. 트로뇌는 마크롱의 고교 시절 연극 선생이었다. 트로뇌가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자녀 셋 가운데 한 명은 마크롱보다 나이가 많고 한 명은 동갑이다. 나폴레옹이 황제로 취임하던 1804년 당시 부인은 조제핀으로 나폴레옹보다 7세 연상이었다. 잠도 잘 자지 않고 새벽 2시에도 자주 텔레그램에 메시지를 띄우는 마크롱의 부지런함도 나폴레옹을 닮았다. 기록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하루에 3∼4시간 이상 자지 않고 부족한 잠은 말 위에서 틈틈이 자는 것으로 보충했다고 한다. ▷마크롱이 대선에서 극우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를 누른 것은 나폴레옹이 부르봉 왕가를 복원하려는 왕당파의 반(反)혁명 시도를 물리친 것에 비유된다.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의 이념에 동조하면서도 실용적 중도주의로 자코뱅식 좌파 급진 정치에 시달린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듯이 사회당 정부의 각료였던 마크롱의 시장친화적 노선도 노동시장을 옥죈 좌파 경제민주화에 숨 막혔던 국민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다. 마크롱의 신생 정당 ‘앙마르슈’는 전진(前進)을 뜻하는데 어딘지 나폴레옹 군대의 행진 구호 같은 느낌이 난다. ▷새 대통령이 추구하는 노선은 미국의 빌 클린턴,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따랐던 제3의 길의 프랑스판이라고 할 수 있다. 39세라는 나이는 프랑스의 케네디로 포장하기에도 충분한 매력적인 나이다. 나폴레옹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젊은 지도자가 과연 비관적인 분위기에 빠져 있던 프랑스에 위기의 나라를 구할 새 나폴레옹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2일 SBS 8시 뉴스의 ‘세월호 인양 지연에 차기 정권과 거래한 의혹이 있다’는 보도는 해양수산부 공보관실에 근무하는 7급 공무원의 발언을 인용한 것으로 어제 밝혀졌다. 이 보도가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정작 보도보다 더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3일 사과 방송이다. 1분 30초짜리 보도에 대한 사과방송이 무려 5분 30초간 이어졌다. 방송사상 더한 오보도 많았을 텐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으로 방송기자 출신인 박광온 의원의 말에 따르면 5분 30초 사과는 언론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방송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은 오보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사과방송 어디에서도 오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방송사상 최장시간의 사과를 한다는 건 비례가 맞지 않는다. 사과방송은 취재 기자에겐 잘못이 없다고 옹호하고 단지 게이트키핑이 부실했다고 주장했다. 박정훈 SBS 사장은 어제 사과담화문에서 “함량 미달의 보도가 전파를 탔다”면서도 “이 보도를 취재한 부서나 특정 개인을 비난할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뜨는 권력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문 후보 측이 SBS에 압력도 가하지 않고 그저 항의만 했다는데도 SBS는 오보도 아닌 단지 함량 미달의 기사에 최장시간 사과방송을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어제 사장 담화문을 통해 재차 사과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SBS가 진짜 방송을 하고 가짜 뉴스라고 사과했다”며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목을 다 잘라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내가 집권하면 종편 4개 중 2개를 없애버리겠다’고 한 말과 겹쳐 들린다. ▷민주화 이후 정치인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언론사를 업신여기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제1당의 문 후보를 봐도, 제2당의 홍 후보를 봐도 언론의 앞날이 걱정된다. 권위주의 독재 시절에도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언론이 권력과 당당히 맞서려면 방법은 하나다. 최선을 다한 진실 보도만이 펜을 검보다 강하게 만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빅데이터가 어떤 식으로 실생활에 이용될 수 있는지 명쾌하게 보여준 것이 구글 검색 빈도를 통한 독감 발병 예측이다. 구글은 사람들이 독감에 걸렸을 때 온라인에서 검색하는 대표적인 키워드 40개를 뽑은 뒤 검색 빈도를 추적해 독감 발병을 예측하는 ‘독감 트렌드’ 서비스를 2008년 개발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이듬해 구글 검색에서 독감과 관련된 질문의 빈도와 독감에 걸린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빈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논문을 실었다. ▷지난해 미국 대선의 승자는 빅데이터라는 말이 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이 대부분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예측한 가운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넷, 모바일 검색량을 토대로 도널트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한 수치가 실제 결과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분석은 각종 여론조사의 예측을 빗나가게 하는 ‘샤이(shy) 유권자’의 표심까지 읽을 수 있는 수단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에 가장 쉽게 이용되는 것이 구글 트렌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은 그제 ‘구글 트렌드 검색량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선다’는 안 후보 측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안 후보가 지난달 4∼18일 문 후보를 앞선 것은 사실이지만 18일 이후부터는 다시 문 후보가 앞섰다는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어제 질 수 없다며 가세했다. 이달 들어 문재인과 홍준표가 거의 같은 수준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3일부터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공표되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구글 트렌드라도 이용해볼 수밖에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선 빅데이터 조사가 여론조사에 해당하지 않아 공표에 제한이 없지만 왜곡 가능성이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나 구글 트렌드는 여론조사와 달리 누구라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을 치고 비교란에서 안철수나 홍준표를 차례로 입력해 보라. 비교 수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래프가 뜬다. 다만 한국인은 구글 검색을 많이 하지 않아 정확도는 영어권 검색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어제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약 19%,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약 15%의 지지를 얻었다. 선거를 1주일 앞두고 약 40%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앞에서 여전히 연대는 없다는 두 후보는 자신들의 눈에도 뻔한 패배의 길을 가고 있다. 안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양당 기득권 체제를 깨는 제3당을 만들었다고 자랑하지만 국민의당에서 그는 호남 의원들 위에 떠 있는 부초(浮草) 같은 존재다. 국민의당은 안철수라는 간판용 지도자와 중간의 호남 의원들, 바닥의 지지층의 생각이 각각 다르다. 안 후보가 이번 대선에 실패한다면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나고 호남 의원들은 민주당에 흡수되거나 소수 지역정당 소속으로 쪼그라들 것이다. 안 후보는 스스로를 보수도 아니고 중도도 아니고 진정한 진보라고 여기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착각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의 등에 타 있는지 모른다. 지난 총선에서 안 후보를 지지하고 국민의당을 제3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보수에서 중도로 움직여간 사람들이다. 이들은 문 후보가 싫어서 반(反)문재인 영역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정당을 극복하고 진정한 제3당으로 태어날 길은 안 후보가 대선에서 이기고 호남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구시대 의원들과 결별하고 전국에서 이른바 중도를 지향하는 인물들로 판을 새로 짜는 길밖에 없다. 안 후보가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시 그런 기회는 오지 않는다고 본다. 정치는 연대다. 좋아하면 사랑을 하거나 우정을 나누지 연대를 하지 않는다. 연대란 싫어도 더 싫은 편 앞에서 차이를 뒤로 돌리고 하나인 척하는 것이다. 안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문 후보가 좋아서 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싫어도 더 싫은 상대인 박근혜를 이기기 위해 연대한 것이다. 프랑스 같은 결선투표도 없고, 미국 같은 플랫폼 양대 정당도 없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연대는 정치공학이 아니라 불가피하다. 역대 대선이 그걸 증명한다. 연대는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린 것이 아니라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홍 후보는 선거에서 져도 잃을 게 없다. 이것이 모든 것을 잃는 안 후보와의 차이다. 홍 후보처럼 계산이 빠른 사람이 정말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선거에 나왔다고 보지 않는다. 며칠 후 안 후보를 골든크로스로 제친들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아 이길 수 없다는 걸 그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의 내심에는 문 후보가 집권하면 자신은 당권을 쥐고 적대적 공존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마음이 있는지 모른다. 떨어져도 잃는 게 없는 사람이 선거에 나와 있는 것만큼 선거를 맥 빠지게 하는 것도 없다. 그의 지지자들 중에는 정체성 투표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질 때 지더라도 탄핵 정국에서 쪼그라든 세를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정의당이나 바른정당 같은 소수 정당이라면 정체성 투표를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100석 안팎의 거대 정당이 정체성 투표를 하겠다는 건 집권을 미리 포기한 소수 정당의 패배 의식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다. 선거는 가능한 한 많은 유권자가 참여해야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압도적 1위 후보 지지자도, 그 밖의 후보 지지자도 반드시 투표하러 갈 이유가 없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안 후보와 홍 후보가 엇비슷한 지지도를 얻는 지금은 2, 3위도 분명치 않아 전략적 투표도 어렵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한쪽이 다른 한쪽에 흡수될 염려 없이 대등하게 연대를 모색할 호기(好機)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에 잘난 척하는 육상선수가 있었다. 그가 로도스 섬에 다녀와 거기선 올림픽 선수를 뺨칠 기록이 나오더라고 자랑하며 제 땅을 욕하자 사람들이 말했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봐라.’ 안 후보도 홍 후보도 혼자 집권할 능력은 없다. ‘국민만 믿고 뚜벅뚜벅’ ‘삼분지계(三分之計)’ 같은 허황된 소리 하지 말고 현실적이 되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를 뒤집겠다고 정계 복귀 선언을 하면서 “이제 다시 내 손을 더럽히려 한다”고 말했다. 독일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는 때로 악마와 거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악마로 보일지라도(실은 악마도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 정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검찰이 권력형 비리로 구속 기소한 사건 가운데 10.1%가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데이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2013년 중수부 폐지 이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나 특별수사본부에서 구속 기소한 주요 권력형 비리사건 피의자 가운데 형이 확정된 119명의 대법원 판결 결과를 추적한 결과 이 중 12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기간 일반 형사 합의사건 무죄율(2.3%)을 크게 웃돈다.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거나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과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적인 피해자다. 황 전 총장은 2009년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 재직 시 성능이 미달된 음파탐지기를 통영함에 납품하도록 업체의 시험평가 보고서 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2015년 구속 기소됐으나 1, 2심 무죄에 이어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 전 청장은 2012년 제일저축은행 회장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역시 2013년 대법원에서 1, 2심과 마찬가지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7년)에는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오인받아 체포된 주인공의 변호인이 “기소되면 유죄 판결을 받을 확률은 99.9%”라며 차라리 죄를 인정하고 벌금형을 받자고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99.9%는 영화 속에나 나오는 수치가 아니라 일본의 형사 기소사건의 실제 수치다. 구속 불구속 사건을 다 포함해서 이 정도이니 구속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는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구속 기소한 사건의 무죄율이 10%가 넘는다는 것은 굳이 청구하지 않아도 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얘기다. 법원에서 유무죄를 다툴 소지가 큰데도 여론이나 정치적 외압에 휩쓸려 사전 처벌 개념으로 구속하거나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등 구속 요건과 무관하게 검찰의 수사 편의로 구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찰의 구속=유죄’라는 도식은 버려야 한다. 법원도 구속영장 발부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남자친구 쫓아다니다가 운동권이 됐고, 구로공단에 ‘공활(공장활동)’ 갔다가 너무도 열악한 여성 노동자들의 생활을 보고 연민을 감당할 수 없어 노동운동가가 됐다”고 자신의 책 ‘심상정, 이상 혹은 현실’에 썼다. 서울대 사범대에 다니던 그는 1980년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배후 주모자로 지목돼 이후 9년 동안 지명수배자로 지내며 노동운동가의 운명적 삶을 살게 됐다. ▷어제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서 심 후보의 지지율은 7%를 기록했다. 한 주 전보다 3%포인트 올랐다. 그는 TV토론의 최대 승자다. 응답자의 30%가 TV토론을 가장 잘한 후보로 그를 꼽았다. ‘돼지 흥분제’로 논란이 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세게 몰아붙여 여성의 관점을 확인시키고, 당내에서 단일화 압박을 받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게는 ‘굳세어라 유승민’으로 한 방 있는 응원을 보내고, 군 동성애와 동성혼 불가를 외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는 동성애 차별 반대로 진짜 진보가 뭔지 보여줬다. ▷심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문 후보의 지지율이 압도적 선두에 서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진보좌파 유권자들 사이에 이제 문 후보를 찍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심리가 있다. 멀리 보면 정의당이 2012년 통합진보당과 결별함으로써 더 이상 종북(從北) 정당이라는 의심을 받지 않게 된 것이 심 후보 지지율의 안정적 토대가 됐다. ▷심 후보를 직접 보면 노동운동가 출신이라고 하기에는 푸근한 아줌마의 인상과 여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남성적인 말투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역대 진보정당 후보 중 최다 득표율은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얻은 3.9%였다. 심 후보의 애초 목표는 사퇴 압력을 잠재울 5%였는데 이런 추세라면 진보정당의 염원인 꿈의 10% 달성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심 후보의 약진은 우리나라에서도 진보정당이 노동 현장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도 뿌리를 내려가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록밴드 들국화의 일원이었던 가수 전인권은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덕분에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드라마에 나와 인기를 끈 이적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가 본래 전인권의 곡이다. 전인권은 박근혜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의 초청 가수가 돼 특유의 록 창법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도 세월을 이기진 못하고 있었지만 그의 노래는 1980년대 상극(相剋)이었던 서울 종로 파고다극장의 록과 대학가 민중가요가 악수하는 듯한 훈훈함을 느끼게 해줬다. ▷전인권이 그제 공연 홍보 기자간담회에서 “안철수는 스티브 잡스처럼 완벽증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얘기가 안 통할 수 있지만 나쁜 사람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새 대통령은 깨끗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적폐세력’으로 몰렸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전인권의 공연 예매를 취소하겠다”는 등의 글을 올리며 격렬히 비난했다. 전인권은 이 비난에 오히려 화가 난 듯 어제 안 후보를 만나 안 후보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대선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자 적폐청산 대신 국민통합을 외치고 있다. 그의 본심은 ‘(지지자들의) 문자폭탄은 양념’이란 말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문 후보가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식의 행태를 조장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려스러운 것은 그가 조장도 하지 않지만 통제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문 후보 자신이 적폐청산을 외치는 홍위병 같은 지지자들 위에 떠있는 존재일 수 있다. ▷옛 동독은 록 가수까지도 감시하는 체제였다. 록은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다. 록 가수마저 맘 놓고 발언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옛 동독 체제와 다를 바 없다. 공연기획자 측은 “평소보다 예매 취소 건수가 훨씬 많은 편”이라면서도 “취소 건수를 상쇄할 정도는 아니지만 신규 예매도 늘었다”고 전했다. 그의 자유를 응원해주는 기분으로 전인권의 공연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5월 6,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 액수가 592억 원으로 정해져 기소됐다. 592억 원이나 되는 뇌물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에게 몰수 추징해야 할 돈은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특이한 뇌물이다. 검찰 기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SK에 89억 원의 뇌물을 요구했으나 받지 못했다. 롯데로부터는 70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 이게 제왕적이라는 대통령의 수뢰 시도가 맞나 싶다. 어쨌든 여기 적용된 박 전 대통령의 정확한 혐의는 제3자 뇌물이다. 제3자는 최순실 씨가 아니라 미르·K스포츠 재단이다. 자신이 마음대로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에 돈을 넣도록 했다면 그것은 직접 받은 뇌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제3자 뇌물은 한 단계 더 복잡하다. 미르·K스포츠 재단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최 씨가 좌지우지했다. 따라서 제3자 뇌물이 성립하려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 사이에 경제공동체 관계가 성립하고, 최 씨가 재단의 돈을 개인 용도로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다는 두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경제공동체 관계는 말 자체가 생소하고 재단 출연금 중 실제 사용된 돈도 최 씨가 개인 용도로 마음대로 꺼내 썼다고 보기 어렵다. 검찰의 논리가 억지스럽다는 것은 다음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낸 출연금은 모두 774억 원이다. 검찰은 이 중 삼성이 낸 출연금 204억 원만 뇌물로 보고 나머지 570억 원은 뇌물로 보지 않았다. 기업들이 각각의 재력에 비례해 다 같이 출연금을 냈는데 어떤 회사가 낸 돈은 뇌물이고 어떤 회사가 낸 돈은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건 누가 봐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검찰도 삼성의 출연금이 뇌물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앞선 특검의 공소 유지에 혼란을 끼치지 않기 위해 특검의 논리를 따랐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삼성의 출연금 204억 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 원에 SK와 롯데가 요구받은 추가 출연금 159억 원을 더하면 379억 원이 된다. 뇌물 총액 592억 원에서 이 379억 원을 빼면 213억 원이 남는다. 213억 원은 최 씨 딸 정유라를 위한 삼성과 코레스포츠의 후원계약 액수다. 그마저도 실제 지급된 돈은 77억 원이다. 삼성같이 돈 많은 회사가 대통령이 나서 그 회사로서는 가장 중요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도와주겠다는데도 화끈하게 돈을 주지 못하고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레이저까지 맞을 정도로 우물쭈물했다는 건 우리가 통상 떠올리는 뇌물의 전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 돈은 미르·K스포츠 재단이 아니라 최 씨가 받은 돈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돈을 박 전 대통령이 최 씨로 하여금 받도록 한 제3자 뇌물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구성했다. 왜 그랬을까.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를 이미 경제공동체로 봤는데 갑자기 최 씨를 제3자로 본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모든 뇌물 혐의는 그와 최 씨가 경제공동체임이 입증되지 않으면 다 무너지게 설계돼 있다. 경제공동체 관계가 입증된다 해도 뇌물이 성립하려면 대가가 있어야 한다. SK 회장의 사면은 그가 형기를 거의 다 채운 시점에 이뤄져 특혜라고 할 수도 없다. SK와 롯데 면세점 허가에 대해서는 5년이란 짧은 주기로 허가와 불허를 오가는 시스템이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승인에 대해서도 여론은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것도 대가라고 우기면 우길 수 있겠지만 최소한 뇌물을 받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해준 것은 아니다. 정유라 승마를 비롯한 최 씨의 각종 민원에 해결사 역할을 한 박 전 대통령의 행동은 분노를 자아낸다. 강요 행위만으로도 그는 탄핵되고도 남는다. 다만 뇌물 혐의는 억지스러운 데가 많다. 국회는 탄핵소추에서 수사도 안 된 뇌물죄를 집어넣었다. 특검은 사후적으로 이를 보완하느라 경제공동체라는 말까지 만들어 뇌물 혐의를 쥐어짜냈다. 헌법재판소는 뇌물죄 판단을 유보하고 기업 재산권 침해라는 헌법 위반으로 결정했다. 검찰은 특검에서 인계받은 뇌물죄를 이어받지 않을 경우 거센 후폭풍을 맞을 것이 두려웠다. 이것이 592억 원 뇌물죄에 이른 경과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르재단에 쓰여 때를 타고 말았지만 용을 뜻하는 미르란 말이 한글로 처음 쓰인 곳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미리내 시나브로 쌈지 같은 다른 아름다운 우리말도 나온다. 한글 발음 설명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7월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견됐다.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에게 해례본을 팔려는 사람이 나타나 그가 구입비 8000원에 중개비 1000원을 주고 샀다고 전한다. 당시 1000원은 서울의 기와집 한 채 값이었다. ▷2008년 7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경북 상주의 고서적 수집가 배익기 씨가 “집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왔다”고 쓴 글이 게시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문화재청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확인했더니 진품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배 씨는 골동품 수집가 조영훈 씨에 의해 절도 혐의로 고소됐다. 배 씨는 2014년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소유권은 2011년 민사소송에서 이긴 조 씨에게 있었다. 조 씨는 수중에 없는 해례본을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10일 배 씨는 9년 만에 상주본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2015년 배 씨 집에 난 불로 책 아랫부분이 일부 탄 모습이었다. 그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상주본을 국보로 등재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무소속 출마했다. 간송본은 국보 70호로 등재돼 있다. 상주본은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어졌지만 간송본에는 없는 연구자의 주석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 씨는 국회의원 후보자 재산 등록을 하면서 상주본의 가치를 1조 원으로 등록하려 했으나 선거관리위원회가 거부했다. 배 씨는 2년 전 1000억 원을 받고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소유권이 국가에 있는데 돈 주고 구입할 이유가 없다”며 “배 씨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해 소유권을 가져가면 그때 가서 매매든 뭐든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소유권은 차치하고 귀중한 문화재를 간수도 못 하면서 꽉 움켜쥔 채 1000억 원, 1조 원을 부르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설 자격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선거에서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는 게 네거티브 선거운동이다. 그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64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린든 존슨 측은 들판에서 데이지 꽃잎을 하나 둘 세던 여자아이의 모습을 핵무기 발사 카운트다운과 교차 편집하면서 핵폭발과 함께 여자아이가 화면에서 사라지는 선거광고를 만들었다.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가 집권하면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과장된 공세였지만 존슨의 압도적 승리에 큰 보탬이 됐다. ▷‘안철수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上王) 된다’나 ‘문재인 찍으면 도로 노무현 정권 된다’는 언급은 관점에 관한 것이므로 할 수도 있는 네거티브다. ‘안철수 딸의 재산을 밝히라’든지 ‘문재인 아들의 원서를 내놓으라’는 주장은 검증이므로 의혹이 남지 않을 때까지 해야 한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에 기초한 네거티브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것이 걱정이다. 그렇게 되면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무너뜨린 병풍(兵風) 공작 같은 흑색선전이 될 수 있다. ▷나쁜 효과라도 거두기는커녕 안 한 것만 못한 ‘찌질한’ 네거티브도 있다. 후보가 조직폭력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공세가 그렇다. 정말 조폭인지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치인은 잘 모르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한쪽이 세월호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고 공격하고, 다른 한쪽이 너희도 같은 사진을 찍지 않았느냐고 역공세를 펼치는 것도 와 닿지 않는다. 이런 네거티브로 매일 아침을 여니 굿모닝 대신 ‘문모닝’이니 ‘안모닝’이니 조롱하는 말까지 들린다.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맞붙은 윤보선은 간첩 황태성이 박정희를 만나러 내려왔다가 잡혔다는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이 네거티브는 박정희가 일찍 좌익 의혹을 불식시키려 노력했기 때문에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실을 알려줬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다.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는 네거티브가 없으면 유권자는 후보가 전하고 싶은 정보만 얻게 될 것이다. 네거티브를 굳이 한다면 조금은 가치 있는 정보나 관점이 담긴 네거티브였으면 좋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독일어로 직접 인용되는 몇 안 되는 말 중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란 말이 있다. 남의 불행(샤덴)은 나의 기쁨(프로이데)이라는 뜻이다. 고약하지만 인류사에서 정의(正義) 실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 감정이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벌을 받을 때 기쁨을 느낄 수 없다면 정의는 성립할 수 없다는 뜻에서 이런 말이 쓰인다. 촛불시위 때 창살 달린 모형 감옥을 만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코스프레를 하던 사람들은 그의 수감에서 이런 희열을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건 반대했건 인간적 정리(情理)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호송차를 타고 구치소로 향할 때의 표정을 보면서 우울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이 우울함은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사 중 자살하지 않고 살아 부인과의 ‘경제공동체’ 관계로 엮여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면 기뻤을까. 그를 지지했건 안 했건 우리 전체를 대표하던 대통령이 수감된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어제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안철수 전 대표는 얼마 전 ‘사면위원회’를 만들어 거기서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논의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발언에 더불어민주당이 맹폭을 가했다. 안 후보의 강조점은 사면을 엄격히 한다는 데 있기 때문에 민주당의 비난은 트집 잡기에 가깝다. 박 전 대통령 사면 논의 언급은 ‘사면위원회’ 언급에 이어서 상식선에서 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마저 두고 볼 수 없다는 쪽이야말로 단단히 비꼬인 것이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4년 워터게이트 도청 은폐 의혹으로 하원에서 탄핵소추되기 직전 사임했다. 미국 정부가 닉슨을 수사 단계에서 사면해 그는 기소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는 형이 확정돼야 사면이 가능하지 수사나 재판 단계에서 사면은 불가능하다. 사면 논의가 이른 것은 틀림없다. 게다가 사면은 해주겠다는 쪽보다 받아야 할 쪽의 법정 투쟁 고집으로 한참 뒤에나 가능한 일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 사면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수감에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정서적 차이다. 보수 진영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놓고는 확연히 갈라섰지만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수감에 최소한 유쾌한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호남 쪽 국민의당 의원들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제3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유권자들은 대체로 보수에서 움직여간 사람들이다. 안 후보는 보수는커녕 중도라는 평가도 거부하고 자신이야말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다른 진짜 진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의 자기 인식이 어떻든 그를 지탱하는 힘은 호남이라는 지역과 보수에서 옮겨간 유권자들이다. 연대를 위한 중요한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사면, 때가 되면 논의할 수 있다’는 측은 ‘사면, 말도 꺼내지 말라’는 측에 맞서 심리적 연대를 이룰 수 있다. 연대는 서로 다른 점을 감추고 서로 같은 점을 가능한 한 많이 찾아 부각시키는 과정이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김동인 소설의 주인공처럼 닮은 발가락이라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안 후보의 사면 발언에 보수 진영을 넘보는 얼치기 좌파라고 공격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사드 배치 논란도 그렇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사드 배치 반대를 표명한 적이 없는데도 그 당의 의원들은 중국에 ‘조공(朝貢) 외교’를 펼치면서 사드 반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국민의당은 당론으로 사드 배치를 반대하긴 했으나 말뿐이었고 안 후보는 사드 배치는 이미 한미(韓美) 간에 합의된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안 후보가 종착점을 잘 찾아왔으면 됐지, 오락가락한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연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결선투표가 없다는 맹점이 있다. 투표는 사실상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 하는 것이 유권자의 사표(死票) 방지를 위해 바람직하다. 일대일 구도를 위해서는 최강자에 맞서 다른 후보들이 연대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연대는 단일화일 수도 있고 암묵적인 상호교감일 수도 있다. 자신이 역부족이다 싶으면 알아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는 1968년 암살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 6개 예비선거 중 5개에서 승리를 거뒀다. 캘리포니아 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날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개인 경호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파로 북적이던 주방을 지나 프레스룸으로 가던 중 총격을 받고 다음 날 사망했다. 범인은 친(親)이스라엘 정책에 불만을 품은 팔레스타인 출신 이민자였다. 그의 사망 이후 미 경호실(SS)은 의회로부터 모든 대선 주자를 경호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우리나라는 과거 이회창 이명박 대선 후보에 대한 계란 투척 사례가 있었을 뿐이지만 위협 강도는 커지는 추세다. 2006년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예상된 박근혜 전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 도중 ‘커터칼 테러’를 당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특전사 출신 지지자 5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팀의 경호를 받고 있다. 나머지 주자들은 경호원을 두지 않고 있다. ▷주요 정당의 후보가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 결정된다. 공식 후보가 되면 경찰의 직접 경호를 받을 수 있다. 대선은 특성상 후보가 신변 위협에 많이 노출된다. 후보의 일정은 대부분 공개되고 그 일정도 대개 대중과 접하는 일정이다. 탄핵 이후 보수와 진보 후보 지지층 사이에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김정남 테러에서 보듯 북한이 혼란을 조성하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 대선 후보는 통상 대선일부터 120일 이내에서 SS의 경호를 받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인종차별주의자의 암살 위협으로 1년 6개월 전부터 경호를 받았다. 우리도 경찰과 대통령경호실의 합동 경호를 시도해볼 때가 됐다. 경호실은 지금 경호해야 할 현직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 있다. 폭발물 검측, 독극물 검식, 도·감청 탐지 등의 장비를 갖춘 최고급 경호 전문 인력을 놀릴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초(秒)치기 대선인데 후보들의 신변 변화가 대선 결과를 왜곡할 가능성만은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부유한 좌파를 나타내는 말이 어느 나라에나 있다. 프랑스에서는 캐비아 좌파(la gauche caviar), 영국에서는 샴페인 좌파(champagne left)라고 한다. 독일에서는 햇볕 좋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좌파라고 해서 토스카나 분파(Toskaner Fraktion)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부자들의 주거지인 뉴욕 센트럴파크 인근 5번가에 산다고 해서 5번가 리버럴(5th avenue liberal)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소년 노동자 출신의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보편적 복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는 좌파 정치인이다. 그제 공개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산변동 신고 명세에 따르면 이 시장의 재산은 26억여 원이다. 우리나라 50대 가장 가구의 평균 자산이 많이 잡아도 4억 원대다. 50대 국회의원의 평균 자산도 10억 원대에 불과하다. 이 시장은 변호사 시절 모은 돈이 재산을 늘리는 토대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시장의 주요 재산은 14억8000만 원 상당의 본인과 배우자 명의의 주식이다. 지난해 주식 가액 11억7000만 원보다도 3억1000만 원가량 더 늘었다. 현대 LG SK 두산 등 재벌기업 주식을 주로 보유하고 있다. 재벌기업에 투자해 한 해에만 3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이 시장은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대선에 출마해서는 재벌기업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족벌경영 체제를 없애자는 것이 본의라고 한다. ▷‘오리엔탈리즘’을 쓴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팔레스타인 출신 좌파 지식인은 입만 열면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하면서도 평생 미국에서 살았다. 이 시장을 ‘강남좌파’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는 힘든 생활을 겪었기 때문에 힘든 사람들의 바람을 잘 안다. 그보다는 소년 노동자 출신이 변호사가 되고 기업에 투자해 26억 원대의 재산가가 된 사회를 ‘기회주의가 판친 역사’라고 폄훼하면서도 자신이 모순에 빠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정문에 단 보충의견을 읽으면서 헌법재판관의 교양 수준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옛 성현의 말, 플라톤의 ‘국가론’, 성경의 아모스서에서 한 구절씩을 인용하고 있다. 안 재판관이 언급한 옛 성현의 말은 ‘범금몽은하위정(犯禁蒙恩何爲正)’이다. “지도자가 위법한 행위를 했어도 용서한다면 어떻게 백성에게 바르게 하라고 하겠는가”라고 풀이하고,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는 일반인의 위법보다 더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금몽은하위정’은 옛 성현의 말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 말은 지난해 12월 탄핵정국에, 한 신문사의 주필을 지낸 사람이 그 신문에 연재한 글에 중국 춘추전국시대 재상 관중(管仲)의 말로 소개한 것이다. 풀이도 안 재판관과 똑같다. 그러나 관중의 언행을 기록한 관자(管子) 어디를 뒤져도 그런 말은 나오지 않는다. 글쓴이에게 전화를 걸어 전거(典據)를 물었으나 회피하는 답변만 들었다. 할 수 없이 관자를 완역한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그런 말은 없다고 했다. 다른 문헌에 혹시 그런 말이 있지 않을까 중국어 사이트까지 검색하는 수고를 자처해 해준 뒤 찾지 못했다는 전화를 해왔다. 헌법재판소는 안 재판관이 전거가 불명확해 옛 성현으로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그러나 그 뜻이 통하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관자에 범금(犯禁)이란 말은 자주 나온다. 그러나 법가(法家)적 성격이 강한 관자에서 범금은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의 위법을 이른다. ‘범금몽은하위정’을 관자의 뜻에 따라 해석하면 ‘백성의 위법을 지도자가 봐주면 어떻게 백성을 바르게 하겠는가’로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안 재판관은 또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통치하는 것이 쟁취의 대상이 되면 이는 동족 간의 내란으로 비화하여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다른 시민들마저 파멸시킨다”는 구절을 인용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권력공유형 분권제로의 개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언급했다. 국가론의 이 구절은 권력 독점의 경계로 삼기에는 맥락이 크게 어긋나 있다. 플라톤은 철인(哲人)들이 통치하는 국가를 이상으로 제시한 반(反)민주주의자다. 인용 구절은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등장하는 국가론 7권에 나오는 말로, 동굴 밖의 밝은 세상을 보고 온 철인들 대신 어두운 동굴 속에서만 산 백성이 통치를 하겠다고 나서면 국가가 파멸한다는 뜻이다. 안 재판관은 정치학에서 플라톤의 국가론이 차지하는 위치를 잘 모르는 듯하다.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열린사회의 제1의 적이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전체주의 국가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포퍼의 비판은 과장된 면이 있지만 국가론의 정치적 함의가 대개는 불쾌하고 때로는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안 재판관은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는 성경 구절도 인용했다. 좋은 말이지만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나라의 헌재에서 특정 종교의 경전을 인용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안 재판관이 다수 의견에 묻혀있을 수 있는데도 굳이 보충의견을 달겠다고 고집해 전거가 불명확하거나, 맥락과 동떨어진 인용을 한 덕분(?)에 재판정 법대에 근엄하게 줄지어 앉은 헌법재판관의 교양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내게는 이것이 흥미로웠다. 18세기 말 영국 사상가이자 의원인 에드먼드 버크는 인도 총독 워런 헤이스팅스를 탄핵소추하는 장문의 글을 남겼다. 미국이 헌법을 만들 때 탄핵 사유에서 ‘실정(失政·maladministration)’을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배제하고 ‘중대한 범죄와 비행(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을 넣은 것은 동시대 버크의 영향이다. 읽는다면 관자나 플라톤보다는 버크를 읽었으면 한다. 헌재가 바다 건넌 탄핵심판을 탱자로 만든 측면이 있다. 국회가 소추한 탄핵 사유인 뇌물죄와 강요죄를 헌법의 재산권 보호 위반으로 바꾸도록 한 것이 그렇다. 어느 나라든 공직자가 뇌물죄 강요죄로 소추되면 그걸 놓고 유무죄를 판단하지, ‘일부러’ 바꿔 덜 명확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뇌물이라고도 강요라고도 하지 않고 막연히 재산권 침해라고 하면 누가 살아남겠나. 탄핵은 결론은 맞지만 풀이가 엉망인 해답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가 맡고 있으니 헌법재판이라는 주장은 틀리지는 않지만 동어반복으로 들린다. 탄핵심판은 전형적인 헌법재판과는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미국은 전형적인 헌법재판인 위헌법률심사를 우리의 헌재 기능을 하는 연방대법원이 맡지만 탄핵심판은 상원이 맡는다. 프랑스는 위헌법률심사는 헌법위원회가 맡지만 탄핵심판은 탄핵심판소가 맡는다. 다른 나라를 볼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한때 탄핵심판을 탄핵심판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관이 맡았다. 지금은 현행 헌법에 따라 헌재가 맡고 있는 것이다. 탄핵심판이 태어나고 발전한 영미권에서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 비슷한 외양을 띤다. 미국의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연방대법원장의 인도로 상원의원들이 탄핵 사유별로 유무죄를 결정한다. 그 구조가 판사의 인도로 배심이 유무죄를 결정하는 사실심 형사재판과 유사하다. 위헌법률심사 같은 전형적인 헌법재판은 일종의 법률심이기 때문에 법률 전문가인 재판관들끼리 한다. 탄핵심판은 사실심이니까 비법률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실심까지도 재판관이 하는 대륙법 국가이다 보니 그 점이 우리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재가 증인 소환 하나 제대로 못하는 걸 보고 놀랐다. 오랫동안 행방을 감췄다 법원 재판에 나타난 고영태 씨에게 헌재가 출석요구서를 직접 전달하고도 소환에 실패한 데서는 헌재가 탄핵심판에 필요한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지 강한 의문이 들었다. 헌법재판관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헌재가 법률심에 적합하게 돼 있지, 사실심에 적합하게 돼 있지 않은 탓일 것이다. 물론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에 가까울 뿐이지 형사재판은 아니다. 영미에서 탄핵심판에는 형사재판의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 요구되지 않는다. 대신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였던 찰스 블랙은 이 분야의 영향력 있는 저서 ‘탄핵 핸드북(Impeachment: A Handbook)’에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보다는 약하지만, 민사재판의 ‘증거 우세’보다는 훨씬 엄격한 ‘압도적 증거 우세(overwhelming preponderance of the evidence)’의 기준을 제시한다. 51 대 49 정도의 증거 우세로는 부족하고 80 대 20 정도는 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국은 상원의 탄핵 관련 규칙에 명시적인 증거 기준이 없다. 블랙 교수의 기준도 법학적 제안일 뿐이다. 상원의원 각자가 실제 어떤 기준을 적용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헌재법에 형사소송절차를 준용한다는 명시적 규정을 갖고 있다. 또 대통령 탄핵은 형사상 소추가 불가능한 대통령을 일단 자리에서 쫓아내기 위한 긴급조치적 성격을 띤다. 우리나라에서도 탄핵심판은 준(準)형사재판의 성격을 갖는다. 헌법 위반은 법률 위반과 함께 우리 헌법이 규정한 탄핵 사유다. 이 점이 탄핵심판을 헌법재판이라고 하는 근거라면 근거다.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헌법 위반을 위주로 소추했고 헌재도 거기에 맞춰 심판하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헌법 위반 위주의 심판에는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성문헌법이 있는 나라 중에서 헌법 위반으로 탄핵한 사례를 아직 보지 못했다. 남이 가보지 못한 첫걸음을 내디디려 할 때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 탄핵 결정에는 불복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탄핵심판은 단심(單審)이다. 하지만 법률 위반 부분은 박 대통령이 일반인으로 돌아가 형사 소추를 받고 법원에서 다툴 여지가 열려 있다. 물론 법원 판결이 헌재 결정과 다르게 나온다고 탄핵 결정이 번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회적으로 한 번 더 심판을 받아볼 길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헌법 위반 부분은 그런 길마저 차단된다. 헌법 위반은 법원이 아니라 헌재가 최종 판단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헌재가 어쩌면 헌재 역사상 가장 어려운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헌법재판관들은 더 겸손해져야 한다. 감히 헌법재판관들에게 인성에 관한 훈계를 하는 것이 아니다. 헌재는 자기 임무의 범위와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최고기구다. 스스로 정하면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헌재에 제도적인 차원의 겸손을 요구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영어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모 작가의 번역과 대조해 읽어본 적이 있다. 그가 굳이 이 책을 번역한 것은 원서의 생동감이 기존 번역에서 다 사라졌다는 아쉬움에서다. 그의 번역에는 원작의 묘사를 실감나게 잡아낸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영어 해독 능력에서 비롯된 오역이 꽤 있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는 그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번역을 비판하고 개정판을 새로 내기도 했다. ▷21일 서울 세종대에서 국제통역번역협회 주최로 인간 번역사 대 인공지능 번역기의 번역 대결이 있었다. 인간 번역사가 문학지문 30점, 비문학지문 30점 만점에 평균 합계 49점을 받아 19.9점을 받은 인공지능을 압도했다. 인공지능의 번역 능력은 특히 문학지문에서 떨어져 전체의 90%가 문장조차 되지 않았다. 제품별로는 구글 번역기가 28점으로 1위, 네이버 번역기가 17점으로 2위, 시스트란 번역기가 15점으로 3위를 차지했다. ▷대결은 한글-영어 번역 대결이었다. 그러나 같은 알파벳 언어권에서의 번역 대결, 예를 들어 영어-스페인어 번역 대결이었다면 인공지능의 점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았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언어권끼리라도 구글은 영어-일본어 번역에는 데이터가 많이 축적돼 있고 일본어-한글은 친근성이 높다.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다시 한글로 번역하거나, 한글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다시 영어로 번역하는 방식이었다면 결과는 또 달랐을 것이다. ▷‘Time flies like an arrow’를 잘못 번역하면 ‘시간 파리는 화살을 좋아한다’가 된다.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간다’로 번역하려면 이렇게 번역되는 사례가 쌓이고 그것이 패턴으로 인식돼야 한다. 패턴화하기 쉬운 일상 언어부터 점차 인공지능이 장악해갈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인간이 세운 바벨탑을 무너뜨린 후 인간의 언어를 나눠 소통을 차단했다. 문학까지 인공지능이 다 번역하는 날은 인간이 다시 금단의 바벨탑을 세우는 날이다. 그러나 아직 인공지능이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볼 날은 멀어 보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 언론계 대선배가 대학생 한 명의 입시부정으로 대학 총장부터 교수까지 5명을 구속하는 게 정상이냐고 물었다. 요새 분위기가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에도 이화여대 체육학과에서 입시부정이 있었지만 교수 한 명이 구속됐을 뿐이다. 그때 부정입학한 학생은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도 없었다. 정유라 입시부정이 드러났을 때 모두 최순실이 정권을 움직여 개입한 것처럼 흥분했다. 그러나 그 일로 어떤 교육부 관계자도 처벌되지 않았다. 교육부만이 아니라 어떤 정부 관계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박영수 특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김종 전 차관이 당시 김경숙 체육대학 교수에게 부탁전화를 했다고 하면서도 김 전 차관에게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어서일 것이다. 정유라 입시부정은 최 씨와 학교 측 사이의 일로 일단락되고 있다. 특검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고위관료 5명을 구속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은 2015년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터뜨려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수사하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비판할 실정(失政)이지 수사할 범죄라고 여기지 않았다. 김기춘은 잡아넣어야 하겠고 뒤지다 뒤지다 걸리는 게 없으니까 특검이 찾아낸 것이 블랙리스트다. 문체부는 문예진흥기금의 일부를 문체부 사업을 위해 쓰는 대신 나머지는 각 문예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쥔 세력이 심의 과정을 장악해 나눠 먹도록 방치했다. 그것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 블랙리스트다. 다만 그 방식이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과 마찬가지로 조급하고 과격해 마땅히 철회하도록 비판해야 할 것이지만 사람을 잡아넣을 사안인지 의문이다. 특검은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우 전 수석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구속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뭘로 구속하는지는 관심도 가지 않는다. 처음 우 전 수석 처가와 넥슨의 서울 강남 빌딩 매매 의혹에서 시작해 가족기업 정강의 횡령, 아들의 의경 꽃보직 혜택 등으로 번지더니 정윤회 문건 수사 축소 압력 의혹까지 나왔다. 이런 의혹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무슨 말인지 기억에도 남지 않을 온갖 직권남용 혐의만 난무한다. 특검의 지상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입증이다. 국회에서 야당이 입증도 되지 않은 뇌물죄를 입도선매 식으로 포함해 탄핵 소추하는 바람에 그 근거를 기필코 마련하는 것이 특검에 주어진 지상목표가 됐다. 특검은 영장 재청구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한 것으로 존재 이유를 입증한 것처럼 보이지만 글쎄 그럴까. 법원의 영장 발부 사유를 보고 어떤 언론은 추가된 국외재산도피와 범죄수익 은닉 혐의가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어떤 언론은 새로 증거를 보강한 뇌물죄 혐의를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뇌물죄 인정 여부가 초미의 관심인 상황에서 이런 엇갈린 해석이 나오는 영장을 발부한 판사는 용감한 것도 뭐도 아니고 무책임하다. 기업이 100만 원, 1000만 원도 허투루 쓰지 않는데 430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면 뇌물로 보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러나 뇌물인지 여부도 사회적 관행을 무시할 수 없다.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 최초의 인도 총독이었던 워런 헤이스팅스를 탄핵 소추했다. 영국에 앉아 인도를 보는 버크의 눈에 헤이스팅스가 인도 부족들로부터 받은 것은 다 뇌물이었지만 인도의 관행에 따르면 그것은 선물이었을 뿐이다. 헤이스팅스의 탄핵은 기각됐다. 지금 대기업들은 평창 겨울올림픽을 위해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의 10배가 넘는 돈을 내고 있다. 또 정부는 기업에 법으로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도 혜택을 줬다고 여기고 뭔가 대가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관행 혹은 강요인지, 아니면 뇌물인지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불구속으로 기소해 법원에서 다투는 게 정상이다. 조선 선조 때 기축옥사(己丑獄事)라고 있다. 서인이 동인을 정여립 반란에 연루시켜 가족들까지 수백 명을 처형한 사건이다. 동인의 영수 이발 등 많은 관료가 정여립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하게 처형됐다. 기축옥사는 이후 서인과 동인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당쟁을 몰고 왔다. 특검의 정유옥사도 더 무리하면 나중에 당한 쪽이 재집권해 또 어떤 보복을 하겠다고 나설지 모른다. 특검 연장 안 된다. 이제 됐다. 그만해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혁명에 참여했다가 스위스로 도망가 부유한 사업가 오토 베젠동크의 집에서 신세를 지면서 그의 부인 마틸데와 사랑에 빠졌다. ‘베젠동크 가곡집’은 마틸데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승화시킨 연가곡이다. 지휘자 한스 뷜로의 부인은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였다. 코지마는 바그너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았다. 뷜로는 이 사실을 알고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초연했다. 2막에는 성애(性愛) 장면이 연상되는 남녀 이중창이 나온다. 코지마는 바그너의 두 번째 부인이 됐다. ▷작가 김동리는 평생 3명의 여자를 뒀다. 그는 생전 “첫 번째 여자에게서는 자식을, 두 번째 부인에게서는 재산을, 세 번째 여자에게서는 사랑을 얻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세 번째 여자 서영은은 두 번째 부인과 혼인 중에 만난, 30세나 어린 후배 작가여서 문단의 화제였다. 쉬쉬하던 스캔들은 두 번째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뜬 뒤 널리 알려졌다. 서영은은 이후 김동리와 결혼하고 김동리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8년간 부부로 살았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은 1945년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를 본 뒤 “감동을 받았다”는 편지를 보냈고 둘은 이탈리아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버그먼은 유부녀였고 로셀리니 역시 부인과 별거 중인 유부남이었다.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는 보수적이어서 어떤 영화제작사도 버그먼이 불륜을 계속하면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기로 했다. 버그먼은 사랑을 택해 10년간 할리우드에서 자취를 감췄다. ▷여배우 김민희가 18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김민희는 이 작품에서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 영희를 연기했다. 작품 속의 “왜들 가만히 놔두질 않는 거야”라는 대사는 두 사람의 스캔들을 떠올리게 한다. 김민희는 수상 소감에서 “감독님, 감사합니다” 대신 “감독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했다. 홍상수 영화는 너무 현실 같은 영화라는 평을 받는데 지금 벌어지는 것은 너무 영화 같은 현실이라고나 할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성경에서 인류 최초의 살해는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형제살해에서 시작된다. 고대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왕권을 다투다 서로가 서로의 칼에 찔려 죽은 얘기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신화에 따르면 고대 로마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 형제가 건국했다. 나중에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나라를 독차지했다. ▷신화만이 아니다. 실제로도 인류의 정치사는 수많은 형제살해로 얼룩져 있다. 형제는 가까운 만큼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이복동생 방석과 방번을 죽이고 결국 태종이 됐다. 유학자들은 태종을 대놓고 비판하지는 못했지만 중국 당(唐) 태종 이세민을 깎아내림으로써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세민 역시 친형제 이건성과 이원길을 죽이는 현무문(玄武門)의 변(變)을 저질렀다. 광해군은 인목대비를 폐하고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귀양 보내 죽였다. 광해군의 폐모살제(廢母殺弟)는 이후 수백 년간 그의 평가를 격하시킨 결정적 명분이었다. ▷북한 김일성 세습독재에도 형제살해의 유전자가 잠재해 있다가 김정일에서는 이복동생 김평일에 대한 해외 유배라는 온건한 형태로, 김정은에서는 아주 뚜렷이 이복형 김정남 살해로 표현됐다고나 할까. 프랑스 혁명의 3대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 중 박애는 원래 ‘프라테르니테(fraternit´e)’다. 형제애로 번역해야 정확하다. 형제살해(fratricide)를 형제애, 즉 형제들 간의 권력분점으로 바꾸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고대 로마 전문가인 미국 바드 칼리지의 제임스 롬 교수는 2014년 3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북한은 기원후 65년 로마와 닮았다’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는 “김정은이 고모부이자 후원자인 장성택을 죽인 것은 로마 네로 황제가 스승이자 조언자였던 철학자 세네카를 살해한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복형까지 살해하면서 어머니와 이복동생까지 살해한 네로를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유사한 광기가 로마를 불 지른 것처럼 한반도를 핵으로 불 지르지나 않을까 걱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당은? 패거리당. 이것은 아재개그에 불과하지만 불모의 정치를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풍자하는 이름의 실재 정당이 있다. 일본에서 2014년 중의원 선거에 앞서 ‘지지정당없음’당이 화제였다. ‘지지정당없음’당은 그해 중의원 선거에서 10만 표,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64만 표를 얻었다. ‘지지정당없음’이 정당 이름인지 모르고 정말 지지정당이 없어 표기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해서 논란도 일었지만 정치에 대한 혐오의 세태를 반영한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일 뿐 아니라 이름도 부모로부터 받는다. 자식에게 이름은 만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주어진 이름을 계속 쓰지 않고 바꾸는 사람이 특이하다. 최순실 재판부는 6일부터 그의 이름을 개명 후 이름인 최서원으로 부르기로 했다. 개명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좋게 말하면 운명을 개척하고 싶어 하고 나쁘게 말하면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숨기고 싶어 한다. 어제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2011년 10·26 재·보궐선거 뒤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새누리당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꾼 것은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과의 결별 의지를 담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김영삼의 신한국당, 이회창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당의 실권자가 바뀔 때마다 이름이 바뀌었다. 차라리 김영삼당, 이회창당, 박근혜당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뻔했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100년 이상 같은 이름을 쓴다. 새누리당의 이름이 바뀌면서 창당 5년도 안 된 정의당이 5대 정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약 3년, 국민의당이 약 1년, 바른정당이 약 보름 됐다. 지금으로부터 5년이 지난 후에 이 이름 중 몇 개나 살아남아 있을까. 제헌국회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나 아직도 정당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