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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선거 여론조사는 순위 발표에 그치는 ‘경마보도’에 치중해선 안 됩니다. 앞으로 열릴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가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 함께 하는 여론조사 보도가 이뤄져야 합니다.”(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한국언론학회(회장 문철수)가 주최한 세미나 ‘대선 여론조사 보도의 새로운 방향 제시’가 2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언론학계와 여론조사기관이 다수 참여해 그간 효용성이 지적돼 왔던 선거 여론조사의 쟁점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첫 발제를 맡은 송인덕 중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여론조사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진단했다. 먼저 송 교수는 소위 ‘떴다방’처럼 조사업체가 난립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모두 186개 업체가 참여했는데 82.8%(154개)가 한국조사협회나 한국정치조사협회에 미가입한 곳이었다. 전문성이나 윤리의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단 지적이다. 속보 경쟁에 매몰된 언론 환경 탓에 제대로 된 여론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거론됐다. 20대 총선 당시 이뤄진 여론조사는 기간이 겨우 1, 2일에 그치는 것이 61.6%였다. 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가 전체의 75%나 차지하고 있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 ARS는 응답률이 떨어지고 편향성이 커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송 교수는 “비용이 저렴하단 효율성만 고려한 이런 ‘당일치기’식 여론조사는 실제 여론을 반영하기 어렵다”며 “2012년 미국 갤럽은 대선을 포함한 여론조사에서 더 이상 ARS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고 설명했다. 정일권 교수는 두 번째 발제 ‘대선 여론조사 보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언론이 여론조사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책임 있는 보도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여론조사 선진국인 미국을 봐도 1948년 해리 트루먼 vs 토머스 듀이 대선 때부터 지난해 대선까지 언제나 여론조사는 틀릴 가능성이 존재해 왔다. 정 교수는 “현재처럼 여론조사 결과가 중심이 되는 보도를 지양하고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대선 주자 정책에 유권자가 참여할 수 있게 여론조사를 통해 깊이 있는 해석을 전하는 언론보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토론 패널인 박종선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부 수석부장은 “심도 있는 여론조사 분석은 국민이 재미없어 할 거란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며 “학계와 언론, 조사기관이 유기적으로 공조한 연구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토록 극적인 전개가 또 있을까. 드라마를 두고 드라마틱하다니 ‘아재 개그’스럽긴 하다. 그런데 KBS2 ‘김과장’은 이런 수식어가 어울린다. 솔직히 방영 전엔 수목 경쟁작인 SBS ‘사임당 빛의 일기’나 MBC ‘미씽나인’보다 약체로 꼽혔다. 허나 막상 달리기가 시작되니 멀찍이 앞서 나간다. 22일 시청률이 17.8%(닐슨코리아)로 사임당(9.8%)과 실종자(4.1%)를 합쳐도 게임이 안 된다. 내용이나 전개도 그렇다. 조직폭력배의 부정회계를 돕던 사기꾼 김성룡(남궁민)이 우연한 기회에 한탕을 노리며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런데 자꾸 묘한 사건에 휘말리며 의인(義人)으로 등극하더니 거대 악과 맞서는 정의의 사도로 바뀐다. 드라마를 넘어 만화에 가까운 ‘오피스 판타지’랄까. 그럼 ‘김과장’이 진짜 직장인 눈엔 어떻게 보일까. 40대 남성으로 유통회사에 다니는 ‘김 부장’과 금융계에 종사하는 30대 여성 ‘이 대리’에게 드라마 시청을 부탁했다. 둘 다 소시민이라며 가명을 요구했다. ▽김 부장=일단 김 과장의 활극이 속 시원하긴 했다. 하지만 실제 그런 인물이 존재할 가능성은 제로다. 솔직히 우리 조직이 위계질서가 엄하다. 상사한테 대든다는 건 상상도 못해봤다. 하물며 임원 앞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어? 미치지 않고서야. ▽이 대리=경리부장(김원해)처럼 매사에 벌벌 떨거나 회계부장(김민상)처럼 치사하게 구는 것도 리얼하진 않다. 100% 없다곤 말 못해도, 일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대처한다. 상사 말이면 무조건 ‘오케이’ 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김 부장=드라마 설정이 극단적인 건 맞다. 허나 본질은 잘 건드렸다. 결국 대기업은 오너나 핵심 간부들 결정대로 간다. 드라마도 결국 대표이사(이일화)가 회장(박영규)에게 맞서 편을 들어주니까 김 과장과 동료들이 싸울 수 있지 않나. ▽이 대리=진짜 말 안 되는 건 김 과장 입사과정이긴 했다. 그런 스펙으론 아무리 이사 ‘빽’이라도 안 된다. 게다가 사내에서 2번이나 경찰한테 체포되고도 버젓이 회사를 다닌다? 뭐, 김 과장이 엄청 멋있단 건 인정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부장=진짜 능글능글하니 연기는 차지더라. 근데 만약 우리 부서에 그런 과장이 있었다면 정말 골치 아팠을 것 같다. 말도 안 듣고, 계속 일 벌이고. 대체로 그런 부류는 수습은 고스란히 주위 사람들 몫이다. ▽이 대리=요즘 20, 30대는 회사 일에 그리 목숨 걸진 않는다. 정의를 세우겠노라 흥분하지도 않는다. 물론 출세 지향적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 자기 인생 찾을 ‘기회’만 엿본다. 주위에 회사 몰래 열심히 목공예를 배우는 친구도 있다. ▽김 부장=그런데도 묘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더라. 대기발령 떨어진 총무부장(홍성덕)이 ‘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며 우는 장면. 술에 취한 경리부장이 ‘딸 졸업하려면 5, 6년은 더 버텨야 해’라고 읊조리는 모습은 짠했다. ▽이 대리=아마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가겠지? 김 과장이 통쾌하게 악당을 물리치고 근사하게 떠나지 않을까. 사실 회사보단 현 시국에 더 감정이입이 됐다. 누가 영웅인진 모르겠지만, 지들밖에 모르는 추잡한 인간들 누가 확 치워주면 좋겠다. ▽김 부장=회사건 나라건 결국은 시스템이 문제다. 조직이 원활하고 합리적이면 그런 꼼수도 활극도 통하지 않는다. 진짜 김 과장이 후배라면 소주 한잔하며 다독이고 싶다. 영웅이 되지 말고 동료가 되어달라고. 그게 말처럼 쉬울 진 모르겠지만. ★★★☆(★5개 만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난 제대했단 말이야. 왜, 왜 군대를 두 번 가야 해?” 아, 꿈이었구나. 에이전트26(유원모)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아직 낯선 환경이라 그럴까. 과거 행성 HD189733b 인근에서 복무하던 시절이 꿈에 자꾸 나왔다. 쉽사리 다시 잠들지 못하던 그는 TV를 켰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저 어색한 경례 동작은 뭐람. 이름이 김준수(JYJ) 탑(빅뱅·경찰악대 복무 예정)…. 저들은 한국 유명 연예인인데 군대를 간다고? 그런데 의무경찰 ‘경찰홍보단’은 뭐야. 분명 이 나라 연예병사는 폐지됐다 들었건만. 갑자기 나타난 에이전트2(정양환)는 26의 무릎을 탁 쳤다. “자넨 사상 최고의 행정병 출신이잖나. 꼼꼼히 조사해 보도록!” 그래, 드디어 실력을 보여줄 때가 왔군.○ 경찰홍보단은 제2의 연예병사? 경찰홍보단이란 곳엔 이미 슈퍼스타가 즐비했다. 전국 17개 지방경찰청 중 경찰홍보단을 운영하는 곳은 서울 경기남부 전남 등 총 3곳. 특히 2000년 처음 만들어진 서울청 경찰홍보단(구 호루라기 연극단)은 현재 심창민(동방신기 최강창민) 이동해(슈퍼주니어 동해) 최시원(슈퍼주니어 시원) 등이 있다. 몸값만 수백억 원이 넘는 한류스타 집합소란다. 사실 홍보단은 출범 당시엔 연예인이 한 명도 없었다. 직업경찰관 3명이 치안 홍보 활동을 하는 소탈한(?) 조직이었다. 허나 어느 순간 연기·마술·노래·춤 등의 특기를 가진 전·의경을 뽑기 시작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1차 오디션과 2차 의경 적성시험 등을 통해 단원을 선발한다”며 “우수한 자원을 뽑기 위해 연극영화과나 뮤지컬 전공 학과 등에 공문을 보내 오디션에 응해 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런 홍보단이 군미필 연예인의 사랑을 독차지한 시점은 2013년 전후였다. 한때 솔로 남성가수의 쌍두마차였던 비와 세븐의 ‘공’이 컸다. 지난달 배우 김태희와 결혼한 비는 당시 군인 신분임에도 ‘밤마실’을 즐기다 만인의 지탄을 받았다. 세븐은 안마시술소에 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를 계기로 도입 16년 만에 연예병사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언뜻 연예병사 ‘필’이 물씬한 홍보단에 연예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혜 의혹 벗어나야 신뢰 얻어 그렇다면 홍보단은 과연 ‘꿀보직’일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일단 휴가나 외박은 일반 의경과 똑같이 적용한다는 게 서울청의 설명. 서울청 관계자는 “어떤 특혜도 없이 2개월에 3박 4일의 정기외박, 주 1일 외출 등이 주어진다”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논란이 불거지지 않은 이유”라고 했다. 허나 일반 의경만큼 고되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 경찰홍보단 활동 내역을 보자. 한 해 최소 103회에서 최대 136회의 공연을 진행했다. ‘범죄피해 가족 위로 공연’ 등 치안 홍보 활동이 70%였고, 나머지는 경찰 내부 행사였다.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하기 바빴다는 얘기. 이러니 당연히 의경의 주 업무인 시위 진압이나 시설 경비 등에선 제외된다. 지난해 의경을 제대한 김모 씨(23)는 “솔직히 열받는다. 연예인이라고 힘든 업무에서 빠지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의 시각도 그리 곱지 않다. 본보가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과 함께 17∼20일 남녀 240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76.7%가 연예인의 홍보단 입대를 ‘특혜’라고 인식했다. 그렇지 않단 의견은 11.2%에 그쳤다. 심지어 홍보단을 폐지해야 한단 응답도 64.6%로 반대(8.8%)를 압도했다. 이런 부정적 시선 탓인지 배우 주원, 최진혁 등은 홍보단 오디션에 합격하고도 포기했다. 물론 홍보단 존폐는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서울청 관계자는 “홍보단은 위문보단 치안활동 홍보가 설립 명분”이라며 “국방부 연예병사와 생긴 배경이 달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에이전트26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그래, 연예인 적성 살려주고 홍보도 좋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특혜라 여기는지 군과 경찰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단지 그들이 부러워서가 아니다. 군대에서마저 차별받는 기분이 드는 게 서러운 거다. (다음 회에 계속) 유원모 onemore@donga.com·정양환 기자}
“내 평생에 ‘여행’이란 걸 가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것도 (북한 살 때) 세상에서 제일 나쁜 나라라 배웠던 미국에 가다니 얼떨떨하고 꿈만 같아요.”(한송이) 채널A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잘 살아보세’가 방송 100회를 맞아 미국으로 첫 해외 촬영을 떠났다. 새터민의 귀염둥이 막내 한송이가 배우 최수종, 가수 이상민과 함께 왁자지껄한 뉴욕 여행에 나선 것. 18일 100회부터 스페셜 방송 4부작으로 ‘잘 살아보세 in 뉴욕’ 편이 시청자를 찾아간다. 방송을 앞두고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한 씨는 “북한에서 배웠던 게 얼마나 허망한 거짓말이었는지 직접 눈으로 본 ‘충격’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18일 선보이는 ‘…뉴욕’은 송이가 탈북한 뒤 미국에 정착한 조지프 킴의 초청으로 뉴욕으로 가는 준비 과정부터 보여 준다. 여행이라곤 탈북 뒤 한국에 왔던 여정밖에 없던 송이는 비자 신청은 물론 짐 싸는 법까지 하나하나 최수종과 이상민의 도움을 받는다. 최 씨는 “생존을 위해 떠나는 게 아닌 진짜 자신을 위해 세상을 즐기는 여행을 떠나자”고 송이를 따뜻하게 위로한다. 하나 송이의 여행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친다. 경유지로 들른 디트로이트에서 입국 심사를 받다가 문제가 생겼기 때문. 미국 측은 북한에서 태어난 송이가 남한 국적인 점을 이상하게 여겨 몇 시간에 걸쳐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다행히 함께 간 오빠들과 스태프의 도움을 얻어 풀려났지만 마음엔 생채기가 났다. 한 씨는 “무섭기도 했지만 내가 살던 북한을 세상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뼈저리게 느껴 서글프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눈물도 났지만 어렵사리 당도한 송이의 눈앞에 펼쳐진 뉴욕은 처음 겪는 ‘별천지’였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여든 맨해튼은 황홀하다 못해 어지러웠다. 하지만 타임스스퀘어가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호텔 방에서 송이는 우두커니 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데…. 그 설움의 이유는 방송에서 밝혀진다. ‘…뉴욕’은 예능이라기엔 뭔가 뭉클하고 짠한 인생 드라마에 가깝다. 그간 야무지고 쾌활했던 송이가 또 한 뼘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다. 10대부터 밀수로 끼니를 마련하는 극한의 삶을 살았지만 그는 이제 겨우 20대 초반. 살아가야 할 시간이 훨씬 많은 송이는 미국 여행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얻어 왔을까. 한 씨는 “북한이건 남한이건 지금까진 ‘생존’ 자체가 목표였다면 이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타인을 위한 봉사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깨닫는 기회였다”고 귀띔했다. 2015년 3월 12일 첫 방송을 시작한 ‘잘 살아보세’는 채널A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인기를 얻은 새터민 미녀들이 남성 연예인들과 함께 남북한의 실생활을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 최수종 이상민은 물론 가수 김종민과 아나운서 김일중 등이 출연해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해 왔다. 새터민 출연자들이 선보인 북한식 ‘인조 고기’ 등은 방송 바깥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박세진 PD는 “단순히 낯선 남북한 생활 방식을 체험하는 수준을 넘어서 서로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는 ‘가족’으로 정서적 공감대를 넓혀 나간 점을 시청자들이 좋게 봐 주신 것 같다”고 자평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드라마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사진)을 봤다. 2005년 짐 캐리 주연 영화로도 국내에 선보였는데, 드라마가 훨씬 낫다. 부모를 잃은 보들레어가(家) 삼남매와 유산을 뺏으려는 올라프 백작의 공방이 얼개인데 찰떡처럼 쫄깃하다. 원작소설이 지닌 독특한 환상동화 기운이 한껏 넘실댄다. 이 작품엔 ‘은행가 포’란 캐릭터가 나온다. 보들레어가 유산관리자인데 답답하기 그지없다. 나쁜 놈은 아닌데, 애들도 안 믿는 올라프의 뻔한 속임수에 줄곧 당한다. 극단적 무능력의 화신. 심지어 삼남매조차 “심성은 착하지 않냐”며 자위한다. 그를 보노라면 국정 농단 관련자들이 떠오른다. 주야장천 “몰랐다”만 되뇌던 이들. 범죄를 감추려 뻔뻔스레 미숙자를 자처했다. 포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 안위와 권세에 몰두하느라 타인의 고초는 관심 밖이었겠지. 능력 없으면서 책임도 안 지는 건 최악의 탐욕이다. 이 드라마의 주제가는 ‘Look away(눈길을 돌려요).’ 그걸로 되겠나. ‘Get away(꺼져)’라 외치련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젠 ‘착한 식당’을 넘어 ‘착한 농부’다.” 맛있고 건강한 식문화를 위해 달려온 채널A ‘먹거리 X파일’이 5주년을 맞아 또 한 번 도전에 뛰어든다. 이번엔 좋은 음식 재료를 생산하는 ‘착한 농부’ 편을 방송한다. 지금까지 ‘먹거리 X파일’이 엄선한 ‘착한 식당’은 별 다섯 개를 받은 곳이 73곳. 별 네 개를 받은 ‘준(準)착한 식당’(25곳)을 합쳐도 5년 동안 100곳이 안 된다. 그만큼 신중히 뽑았다. 그런 프로그램이 왜 ‘착한 농부’까지 영역을 넓히려는 걸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순서였습니다. 착한 식당은 다들 최고의 신선한 재료를 쓰려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그게 음식의 기본이니까요. 착한 농작물이란 무엇일까. 몇 해 전부터 고민하고 연구한 결실을 이제야 선보이는 겁니다.”(MC 김진 기자) 허나 목표가 높을수록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특히 농작물은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이 길어 시간과 비용이 몇 배로 투입됐다. 남상효 PD는 “단순히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다고 ‘착한 농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자신만의 철학을 가졌는지, 토종 종자를 지키려 노력하고 소비자까지 생각하는지 등 엄격한 기준으로 보니 더 품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12일 방영하는 ‘착한 농부’의 첫 번째 주제는 ‘착한 사과’다. 사과는 병충해에 워낙 약해 대부분의 농가에서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 등을 많게는 1년에 20번가량 살포한다. ‘때깔’이 좋게 만들려고 착색제와 반사필름까지 사용한다. 백정현 작가는 “사과는 소비자가 색깔과 모양새를 워낙 중시해 농부들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다”며 “그래서 착한 사과 농장을 찾는 데 4개월 이상 걸렸다”고 전했다. 첫 ‘착한 농부’는 충북 단양군의 권구희 농부. 소백산 산골짜기에서 사과를 키우는 권 씨 일가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제초작업도 닭을 풀어 자연적으로 해결한다. 10여 년 전 귀농한 부모님에 이어 권 씨가 사과밭을 땀 흘려 가꾼 끝에 지난해부터 질 좋은 사과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권 씨는 “사과나무도 하나의 생명체다. 즐겁고 행복해야 좋은 열매도 맺지 않겠느냐”며 “누군가 믿어준다는 자체가 고맙고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다음 주엔 ‘착한 귤’을 선보인다. 남상효 PD는 “착한 농부를 뽑는다고 다른 농부는 나쁘단 뜻이 아니라 소비자도 다 함께 생각할 기회를 갖자는 취지”라며 “농작물 성격상 매주 방송하긴 어렵겠지만 제작진 모두 사명감을 갖고 뚝심 있게 밀고 가겠다”고 밝혔다. 착한 식당이 착한 농부를 지나 착한 세상으로 나아갈 때까지 그 맘 변치 않길. ‘먹거리 X파일’은 매주 일요일 오후 9시 40분 시청자를 찾아간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으음, 여기가 어디지?” 에이전트26(유원모)은 겨우 실눈을 떴다. 오늘은 MIC(맨 인 컬처) 지령 아래 지구에 온 첫날. 우연히 요상한 책 ‘우리가 만드는 피임사전’을 발견한 뒤 조사에 나서려던 참인데. 뭔가 뒤통수가 찌릿하더니 깡그리 기억을 잃었다. 막 정신 차린 지금, 일단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야 깼군. 당신 정체가 뭐지? 왜 우리 ‘말씀자료’를 뒤적였나.” 갑작스레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 흐릿한 실루엣에 요원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성이라 부르는 종족 같은데. 지구방위군 같은 건가?’ “우린 결사조직 ‘연건대’다. 염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삐뚤어진 성(性)인식을 지닌 남성염색체가 틀림없군.” “무, 무슨 소리냐? 난 자웅동체라서….” 아차, 1급 기밀을 누설하다니. 잠깐. 아까 보던 책 집필진이 분명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줄여서 연건대? 아니 이 ‘노잼’ 작명은 뭐람. 근데 이들, 왜 점점 신문하는 척하며 강의를 하는 거지. 다단계 신종 수법인가. 요원은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다. 》 ○ 이성 친구와 단둘이 있지 마라? 지난해 말 출간한 ‘…피임사전’은 원래 서울시 여성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비매품으로 500부만 세상에 나올 예정이었다. 허나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으로 1000부를 늘려 찍었다. 그래도 주문이 쇄도해 곧 2쇄 발간을 검토 중이다. 이 수상한 사전은 왜 이리 인기일까. 연건대 조직원인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선진국은커녕 세계 꼴찌 수준인 한국 사회의 피임 인식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자평했다. “대표적 사례가 콘돔이지. 대다수 국내 남성, 심지어 일부 여성도 콘돔을 착용하면 성감이 떨어진다고 믿어. 벌써 그렇지 않단 조사 결과(2009년 미국 내셔널서베이)가 수두룩하게 나왔는데. 해외에선 꼬마도 아는 상식인데 말이야.” 요원은 발끈했다. 지구에 첨 왔다고 바보로 아나. 애들이 그걸 어떻게 아나. “당신, 어느 별에서 온 거지? 독일이나 네덜란드는 5세부터 성교육을 시켜. 당연히 콘돔·피임약 사용법도 가르치지. 물론 한국도 초등학교부터 교육과정은 있어. 그런데 내용이 ‘성폭력 대처법―이성 친구와 집에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2015년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수준이거든. 캐나다에선 이런 비과학적인 시각을 가르치는 교사는 해임은 물론이고 법정에 서게 돼.”(이유림·인류학 전공) 뭐, 그렇다 치자. 그래도 ‘한국적 상황’이란 게 있으니까. 피임도 알아서들 잘하잖나. “진짜 외계인 맞나 본데? 해부를 할까 보다. 현재까지 나온 가장 안전한 피임법 가운데 하나가 경구피임약 복용이야. 헌데 한국은 이용률이 2.9%밖에 안 돼. 대다수가 약 먹다 영영 불임되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 하아, 복용을 중단한 뒤 1년 안에 79.4%가 임신해. 아무 상관 없단 소리야.”(윤 전문의) ○ 21세기에 비닐봉지 콘돔 찾는 10대들 도대체 한국은 왜 이렇게 성교육 후진국이 됐을까. 실제로 포털사이트 검색어를 찾아보면 ‘랩 콘돔’ ‘비닐봉지 콘돔’이란 말까지 나온다. 콘돔 구매가 제한적인 청소년이 나름 찾아낸, 정말 웃음도 안 나오는 ‘자구책’이다. “이런 얘길 하면 ‘그럼 청소년 성생활을 권장하잔 소리냐’는 반발이 나와. 이런 편견이 문제를 키우는 건 인정하질 않고. 미국은 청소년에게 무료로 콘돔을 나눠주고, 성상담도 자유롭게 받게 해줘. 덕분에 낙태율이 역사상 최저로 떨어졌어. 한국은 높은 양반이 점잔 빼고 있는 동안 어린 여성들만 온몸으로 피해를 입고 있단 소리야.”(윤 전문의) 그때 갑자기, 우당탕 소리와 함께 뒷문을 박차고 들어온 에이전트2(정양환). “잠깐, 모두 손들어! 무기를 버리고 투항….” ‘몹시 난감하군.’(tvN ‘도깨비’ 대사) 구금된 줄 알았던 에이전트26이 함께 둘러앉아 다정히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는 이미 계면쩍은 웃음과 함께 가입신청서에 날인을 마친 상태였다. “아, 또 다른 포획감이군. 그럼 첨부터 다시 설명해 볼까. 당신, 정관수술 하면 정력이 약해질까 아닐까.” 젠장,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마취는 아파요.’ 이러다 MIC가 연건대 산하기관이 되는 건 아닌지. 하긴, 좋은 취지라면 뭔들 못 하겠냐만.(다음 회에 계속) 유원모 onemore@donga.com·정양환 기자}
‘급성구획증후군’으로 응급수술을 받아 주변을 놀라게 했던 배우 문근영이 4일 추가 수술을 받은 뒤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문근영은 1일 갑작스러운 오른팔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구획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다. 근육과 신경조직의 혈류가 급속하게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질환으로 주로 골절이나 근육 타박으로 인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응급수술 뒤에도 1, 2차례 추가 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근영이 주연을 맡았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4, 5일 대전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대구(18, 19일)와 안동(25, 26일) 등 지방 일정도 소화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소속사 나무엑터스는 “어떻게든 무대에 서겠다는 배우의 의지가 강하지만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관객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밝혔다.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쾌유를 비는 글이 많았다. “아프지 말고 얼른 퇴원해 웃는 모습을 보여 달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길 꼭 기다리겠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MBC 수목드라마 ‘미씽나인’은 여러모로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다. 한국판 ‘로스트’(미국 ABC·2004∼2010년)라고나 할까.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살아남은 이들의 숨겨진 진실. 누가 봐도 절박함이 넘치는 설정은 한국 드라마에선 찾아보기 힘든 도전이지 않나. 시청자로서 기대가 컸다. 허나 현재 흥행스코어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시청률이 4∼6%를 맴돌고 있다. 심지어 점점 떨어지는 추세. 동시간대 경쟁작인 SBS ‘사임당 빛의 일기’야 이영애 컴백이란 화제성에서 다소 밀린다 치자. KBS2 ‘김과장’마저 입소문을 타며 시청률이 12%대까지 치솟았다. 이 드라마가 ‘미씽(missing·행방불명된)’한 건 도대체 뭐였을까. 한마디로 시점이 너무 널뛰고 있다. 일단 여주인공 라봉희(백진희)가 살아 돌아온 현재와 생존자들의 무인도 생활이란 과거, 여기에 비행기 사고 이전의 관계와 봉희가 최면 등으로 보는 환상까지. 꽤나 정교하게 엮었지만 몹시도 분주하게 이야기 공간이 바뀌며 오히려 산만해져 버렸다. 더 아쉬운 건 분위기도 널뛰었단 점. 이런 미스터리 장르라면 대개 기대하는 건 긴장감 아닐까. 근데 초반에 콩트나 로맨스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러다 보니 점점 궁금증이 쌓이며 집중도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갈수록 흐름이 늘어지고 짐작 가능해졌다.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다행히 ‘미씽나인’은 5회부터 그 나름대로 곁다리를 많이 쳐내고 강약 조절도 명확해졌다. 최약체로 내려앉았지만 그래서 더 시원하게 질러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미드 ‘로스트’처럼 뒤로 갈수록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길. 이래저래 무인도는 참 생존하기 어렵나 보다.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설날에 온갖 화제가 밥상머리에 오르내렸을 겁니다. 근데 어떨 땐 별 ‘시답지’ 않은 얘기에 폭소가 터지곤 하잖아요. 채널A ‘도플갱어쇼―별을 닮은 그대’는 그런 공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예능입니다. 얼마나 닮았나를 따지는 게 아니라 ‘닮았네, 안 닮았네’ 수다 떨며 시청자와 살가운 스킨십을 나누는 거죠.” 무협지 속 절대 고수가 이럴까. 24일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도플갱어쇼’ MC 신동엽은 마주할수록 우유에 젖은 카스텔라가 된 기분이었다. 장시간 녹화 뒤인지라 그의 목소리도 한참 갈라졌을 정도. 한데 슬금슬금 풀어내는 대화에 나도 모르게 스르륵 무장해제 당했다. 게다가 가벼운 농담으로 휩쓸린 상대의 맥을 탁탁 잡아주기까지. 역시 그는 괜히 ‘진행지왕(進行之王)’이 아니었다.》 ―‘연예인 닮은꼴 찾기’ 식상하지 않나. “뻔하다 여겼으면 MC를 맡지 않았을 거다. 방송은 편안함과 새로움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성공한다. 결국 닮은꼴 찾기란 익숙한 소재를 얼마나 재밌게 뒤틀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뜻에서 ‘도플갱어쇼’는 첫 삽을 잘 떴다.” ―치열한 경쟁(토요일 밤 11시)에도 시청률(2% 안팎)이 괜찮아 자평도 좋은 건가.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그게 평가 기준은 아니다. 방송은 현장의 ‘감’이란 게 있다. 특히 ‘도플갱어쇼’처럼 방청객 많은 예능은 더 중요하다. 솔직히 그리 닮지 않은 출연자도 상당했다. 그런데 그게 더 웃기고 분위기도 좋았다.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서랄까. 이상하면 타박하고 놀리기도 하고. 원래 친구끼리도 면박 주며 웃고 떠드는 게 재밌지 않나.” ―현장에서 방청객도 하나하나 잘 챙기더라. “세상사가 그렇다. 사소한 친절도 언젠간 복으로 돌아온다. 내 입장에선 수많은 청중이지만 그들에겐 ‘신동엽’ 1인과의 특별한 경험이다. 어느 날 피곤해서 누군가에게 좀 냉랭했다 치자. 그 사람에겐 오랫동안 나쁜 기억으로 남는다. 게다가 방청객 분위기가 안 좋으면 TV 화면에 티가 난다.” ―다작인데 활기가 넘친다. 체력은 괜찮나. “요샌 몸 ‘걱정’ 좀 한다. 30대엔 숙취가 뭔 말인지 몰랐다. 몸이 회사 직원이라면 악덕 사장이었다고나 할까. 힘든 신호를 보내도 ‘불만 갖지 말고 일해’ 윽박질렀다. 지금은 직원 얘기에 귀 기울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도 한다. 게다가 이렇게 녹화가 잘되면 몸은 지쳐도 마음이 개운하다.”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제작진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고생하는 게 눈에 보이는 경우다. 스튜디오 촬영은 물론 출연자 섭외, 야외촬영, 몰래카메라까지…. 이렇게 공이 많이 들어가는 예능도 흔치 않다. 방송이 ‘때깔 좋게’ 나오니 기쁘면서도 한없이 미안하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이 정성껏 차려진 밥상을 행복하고 맛있게 먹는 게 아닐까.” ―PD가 보고 있어 너무 칭찬하는 거 아닌가. “그럼 시원하게 욕을 해줄까, 하하. 근데 진심으로 즐겁다. 어릴 땐 솔직히 돈 벌려 방송했다. 얼른 목돈 모아 딴 일 하고 싶었다. 지금은 ‘재밌어서’ 한다. 새로운 예능에 대한 목마름이 끊이지 않는다. ‘도플갱어쇼’에서도 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드디어 불만이 나오나. 뭔가. “불만이 아니라 기대하는 바다. 출연자 영역을 넓히고 싶다. 요즘 같은 시국이라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이들 닮은꼴이 나오면 어떨까. 시청자가 보며 분노도 할 수 있는…. 정치 이슈도 그렇게 풀어내면 훨씬 다채롭지 않겠나. 다만 아직 국내 정서상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긴 하다.” ―확실히 개그맨들은 ‘정치 코미디’ 욕구가 있나 보다. “어떤 의식이나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만큼 흥미로운 소재가 어디 있을까. 조선시대 광대가 왜 양반이나 임금 흉을 봤겠나.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농담만큼 통렬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도플갱어쇼’는 보여주고 개척할 땅이 무궁무진하다.”정양환기자 ray@donga.com}
"설날에 가족이 모여 온갖 화제가 밥상머리에 오르내렸을 겁니다. 그런데 어떨 땐 예상치 못했던, 별 시답지 않은 꺼리에 폭소가 터지곤 하잖아요. 채널A '도플갱어쇼, 별을 닮은 그대'는 그런 공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예능입니다. 누구랑 얼마나 닮았나를 따지는 게 아니라 '닮았네 안 닮았네' 수다를 떨며 시청자와 살가운 스킨십을 나누는 거죠." 무협지 속 절대고수가 이럴까. 24일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도플갱어쇼' MC 신동엽은 마주할수록 자꾸 우유에 젖은 카스텔라가 된 기분이었다. 장시간 녹화에 모든 걸 쏟아낸 그는 목소리도 한참 갈라졌을 정도. 헌데 슬금슬금 풀어내는 대화에 빠져 저도 모르게 스르륵 무장해제 당해버렸다. 게다가 그때마다 가벼운 농담으로 휩쓸린 상대의 맥을 탁탁 잡아주기까지. 역시 신동엽은 괜히 '진행지왕(進行之王)'이 아니었다. ―채널A지만 좀 따져 묻겠다. '연예인 닮은꼴 찾기' 식상하지 않나. "뻔하다 여겼으면 아예 MC를 맡지 않았을 거다. 제작진도 기존 포맷의 답습은 원치 않았다. 방송은 편안함과 새로움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성패가 갈린다. 결국 닮은꼴 찾기란 익숙한 소재를 얼마나 재밌게 뒤틀 수 있느냐가 관권인 셈이다. 그런 뜻에서 '도플갱어쇼'는 첫 삽을 잘 떴다고 본다." ―치열한 경쟁시간대(토요일 밤 11시)에 괜찮은 시청률(2% 안팎)로 출발했기에 내리는 자평인가.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그게 평가의 기준은 절대 아니다. 오래 방송하다보면 현장의 '감'이란 게 있다. 특히 '도플갱어쇼'처럼 연예인패널에 방청객까지 많은 예능은 그게 중요하다. 솔직히 누가 봐도 그리 닮지 않은 출연자도 상당했다. 그런데 그게 더 웃음이 많이 터지고 분위기는 살았다.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면 타박도 하고 놀리기도 하고. 원래 친구들끼리도 '쟤 좀 이상하지 않니' 이러며 웃고 떠드는 게 재밌지 않나." ―실제로도 녹화현장에서 출연자는 물론 방청객까지 하나하나 잘 챙기더라. "세상사가 다 그렇겠지만 사소한 친절도 언젠간 다 복으로 돌아오더라. 내 입장에선 수많은 방청객이지만 그들에겐 '신동엽' 1명과의 특별한 경험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피곤해서 누군가에게 좀 냉랭하게 대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오랫동안 그 기억이 나쁘게 남지 않겠나. 연예인이라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누리는 것도 많으니까. 게다가 방청객 분위기 안 좋으면 그거 TV화면에도 다 티가 난다. 시청자들의 '감'도 굉장히 수준이 높다." ―엄청 다작인데도 활기가 넘친다. 체력은 괜찮나. "그래도 요샌 몸 '걱정'도 좀 한다. 30대엔 숙취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몸이 한 회사의 직원이라면 악덕사장이었다고나 할까. 뭔가 힘들다 호소해도 '불만 갖지 말고 일해' 윽박질렀다. 요즘은 직원 얘기에도 귀 기울이고 달래주려 노력한다. 일주일에 2,3번 운동도 하고. 나름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 이렇게 녹화가 잘 되면 몸은 지쳐도 마음이 가뿐하다." ―MC가 방송이 즐겁다니 다행이다. 그래도 아쉬운 점도 있지 않겠나. "방송을 하다보면 제작진이 안쓰러울 때가 있다. 너무 고생하는 게 눈에 보이는 경우다. '도플갱어쇼'가 그렇다. 스튜디오촬영은 물론 출연자 섭외, 야외촬영, 몰래카메라에…. 이렇게 공이 많이 들어가는 예능은 흔치 않다. MC입장에선 방송이 '때깔 좋게' 나오니 기쁘지만 (제작진에) 한없이 미안하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이 정성껏 차려진 밥상을 최고로 행복하고 맛있게 먹는 게 아닐까." ―저쪽에서 PD가 보고 있다고 너무 칭찬하는 거 아닌가. "그럼 한번 시원하게 욕을 해줄까, 하하. 근데 진심으로 너무 즐겁다. 어릴 땐 솔직히 방송을 돈 벌려고 했다. 얼른 많이 벌어서 딴 일하고 싶었다. 근데 지금은 '재밌어서' 한다. 계속 새로운 예능에 대한 목마름이 끊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젠 재미없으면 안 한다. 다만 '도플갱어 쇼'에서도 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드디어 불만이 나오나. 뭔가, 뭔가. "불만이 아니라 기대하는 점이다. 닮은꼴 찾기 범주를 연예인에서 벗어나고 싶다. 예를 들어 요즘 같은 시국이라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주범들 닮은꼴이 나오면 어떨까. 시청자들이 보며 분노도 할 수 있는. 오히려 정치적인 이슈도 그렇게 풀어내면 훨씬 재밌지 않겠나. 다만 아직 정서상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지 걱정이긴 하다." ―확실히 개그맨들은 '정치 코미디'에 대한 갈증이 있나보다. "그게 무슨 의식이나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그만큼 재밌는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광대가 저작거리에서 왜 양반이나 임금 흉내를 내며 우스갯소리를 했겠나. 기존 권위에 얽매지 않는 농담만큼 통렬한 게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도플갱어 쇼'는 여전히 보여주고 개척할 소재가 무궁무진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 선배가 말했다. “기사란 1000자를 쓰면 1000자를 덜어내는 작업”이라고. 실제로 그랬다. 많은 취재가 활자화되지 못한 채 걸러졌다. 본보 25일자 A10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유독 더했다. 많은 일반인 인터뷰가 흐름상 담기지 못했다. 아쉽지만 마음엔 남는 게 있었다. 만난 이 모두 이런 불평등을 인지했다. ‘흙수저’ 취업준비생은 기회마저 빼앗긴다 여겼다. 한 주부는 애들 학교의 지나친 호구조사를 염려했다. 30대 미혼 여성은 가난한 연인과 사귀다 아버지가 진짜 “무전유죄”라며 반대했단다. 그들은 결국 헤어졌다. 없는 이만 느끼는 게 아니다. 한 직장인은 빵빵한 집안 덕에 편하게 군 생활 했노라 털어놨다. 경찰 A 씨는 “돈이 있어야 출중한 변호인을 선임해 형량 혜택도 본다”고 인정했다. 50대 자영업자는 “치킨가게도 ‘좀 가진’ 사장한테 본사가 더 챙겨준다”고 말했다. 얼마 전 한 후배는 “지금껏 ‘대도무문(大道無門)’이 ‘대도무문(大盜無門)’인 줄 알았다”고 뜬금없이 고백했다. 큰 도둑은 거칠 게 없단 통념이 퍼진 세상. 죄 지으면 빠져나갈 문이 없단 해석으로 바뀌려면 얼마나 걸릴까.정양환기자 ray@donga.com}
설·추석 명절이면 돌아오는 ‘아이돌 육상 양궁 리듬체조 에어로빅 선수권대회(아육대)’가 올해도 찾아왔다. 올해로 8년째를 맞는 아육대는 전현무 이수근 콤비와 함께 걸그룹 에이핑크의 정은지가 MC로 새롭게 합류했다. 올해 아육대는 그간 지적돼 왔던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게 노력했다. 자주 부상 논란을 일으켰던 남성 종목인 풋살을 폐지하고, 큰 위험이 없는 남성 에어로빅댄스를 신설했다. 제작진은 “의료팀 인력도 대폭 보강하고 앰뷸런스도 경기 내내 대기시키며 응급사태 대응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지난해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걸그룹의 리듬체조는 올해도 안방을 찾아간다. 지난해 선수급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았던 우주소녀의 성소도 출전해 2연패를 노린다. 올해 아육대는 엑소를 비롯해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AOA, 여자친구 등 최정상 아이돌이 대거 참가했다. 사진은 지난해 설 특집 아육대에서 벌어진 여성 육상 60m 달리기 준비 모습.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최근 한국 사회는 기회의 문은 좁아지고 불공정한 경쟁이 만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는 이런 불공정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표현이 됐다. 거의 30년이 지나도 그의 말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현상을 설문조사를 통해 분석했다. 》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지강헌 사건을 다룬 2006년 영화 ‘홀리데이’ 삽입곡) 눈 온 뒤라 그런가. 요즘 하늘은 참 뿌옇다. 비지스의 ‘홀리데이’라. 참, 묘한 노래다. 당신은 휴일 같다며 멜로디는 이리 애달프니. 설날을 맞은 주부 심정을 읊조린 건가. 요즘 세상도 우울하긴 ‘도 긴 개 긴’. 시국은 어수선하고 도깨비(tvN 드라마)는 끝나고. 차례상 차리기 버겁도록 물가까지 치솟았다. 진짜 돈 없어 조상님께 죄짓게 생겼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서울올림픽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탈주범 지강헌은 세상에 무시무시한 한 방을 날리고 떠났다. 올해로 이 말이 나온 지 30년째. 강산이 3번 바뀐 2017년, 한국 사회는 그의 외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돈 없고 ‘빽’ 없으면 서러운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1988년 10월 16일.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발생한 ‘지강헌 사건’은 당시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한 가정집에서 벌어진 인질극이 TV로 생중계됐을 정도였으니. 당시 탈주범 3명이 자살 혹은 사살이란 참혹한 결과로 끝맺은 ‘지옥의 14시간’(동아일보 1988년 10월 17일자)이었다. 그리고 경찰과 대치하며 들었다는 노래 ‘홀리데이’와 함께 그가 남긴 한마디는 길고 긴 여운을 남겼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용서받기 힘든 범죄자긴 했어도 그들의 항변은 그 나름의 옹호를 받기도 했다. 당시 지강헌은 “어떻게 전경환 형량이 나보다 낮을 수 있나”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556만 원을 훔친 혐의로 17년 형(징역 7년+보호감호 10년)에 처해졌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은 수백억 원을 ‘꿀꺽’하고도 7년을 선고받았고 실제론 2년 정도만 실형을 살았다. 문제는 당시 공감했던 불평등을 국민은 지금도 느끼고 있단 점이다. 동아일보가 여론조사회사인 엠브레인과 함께 20대 이상 남녀 1000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무려 91%가 한국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는 사회라고 응답했다. 심지어 71.4%는 “매우 그렇다”라고 답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등을 감안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1년 법률소비자연대 설문조사에서 약 80%가 동의했던 결과와 비교해도 더 나빠졌다. 게다가 지강헌 사건 당시와의 변화를 묻는 질문엔 ‘당시보다 오히려 나빠졌다’가 35.6%, ‘별 차이 없다’가 58.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국정 농단 사태가 정치와 경제,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매우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라며 “지난해 시끌벅적했던 ‘수저 계급론’과도 일맥상통한 결과”라고 말했다.○ “곳곳에서 암약하는 ‘수많은 최순실’ 몰아낼 때” 그렇다면 국민은 돈이 죄를 있고 없게 만드는 가장 심각한 분야는 어디라고 여길까. ‘정계’(57.6%)라는 답변이 가장 많아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여전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재계(18.6%) 법조계(17.6%)가 그 뒤를 이었다. 문항 없이 주관식으로 답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단체)’을 묻는 질문엔 ‘재벌(대기업)’이 24.4%로 지강헌(21.2%)을 근소한 차로 앞섰다. 현 시국의 영향을 받은 응답도 많았다. 최순실(혹은 정유라·15.5%)과 전두환 전 대통령(5.5%), 박근혜 대통령(4.2%) 등의 순서였다. 지난해 겨우 풀린 미국 메이저리그 ‘염소의 저주’처럼 ‘지강헌의 저주’라도 계속되는 걸까.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보다 훨씬 더 법 집행 등이 공정해졌더라도 결국 국민의 인식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문제”라며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등으로 일반 시민에겐 윤리 규범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권력형 비리가 쏟아져 더 큰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설문에서도 이 같은 인식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 52.2%가 ‘사회지도층과 기득권층의 개선 의지 실종’을 꼽았다. 씁쓸하다. 그럼 30년 뒤에도 여전히 ‘유전무죄’를 곱씹고 있어야 하나.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이렇게 다독였다. “한국 사회에는 어떤 의미에서 너무도 많은 최순실이 존재해 왔습니다. 엘리트나 부유층이 존대받지 못하는 건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죠. 하지만 국민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한다고 본다는 건 이제 더는 이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겼다고 봅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그만큼 소중한 첫발을 내디딘 게 아닐까요.”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
‘편의점 하루 방문자 1049만 명.’ 뭐가 더 필요하겠나. tvN 예능 ‘편의점을 털어라’(금요일 오후 9시 20분)는 이것만으로도 존재 가치를 지닌다. 서울 인구(약 993만 명)보다 많은 수가 들락거리는 공간. 살짝 뻥(?)쳐서 이젠 안방만큼 친숙해진 편의점을 예능 무대로 꾸민 건 영리한 선택이었다. 좀 시들긴 했어도 여전히 한 방 있는 ‘먹방’ 테마도 나쁘지 않다. 이 프로그램은 편의점에 파는 재료만 갖고 나름 ‘요리’를 만드는 포맷. 한마디로 묘하게 익숙한데 참신하다. 물론 ‘편의점…’은 솔직히 어디서 ‘갖다 쓴’ 냄새가 짙다. 요리 선정 과정을 미리 인터넷으로 중계하며 누리꾼과 소통하는 방식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이후 하도 나와 소유권을 따지기도 뭣하다. 제한시간 안에 요리하고 판정하는 포맷도 이젠 멋쩍다. 근데 이걸 쫄깃한 출연진 궁합으로 커버한다. 박나래와 딘딘 조합은 요즘 이들이 왜 바쁜지 딱 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강타와 토니도 이젠 40대에 접어든 오랜 벗의 시너지가 은근하다. 뭣보다 ‘편의점…’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장삼이사의 폐부를 건드리는 뭔가가 있다. 바쁜 데다 곤궁한 일상. 편의점은 그저 ‘끼니를 때우러’ 들른다. 그 무미건조한 반복 속에서 잠시라도 나만의 소소한 사치를 누릴 수 있다면. 이 예능은 의도했건 아니건 짠한 위로의 기운이 물씬하다. 허나 ‘똑같은’ 이유로 태생적 한계도 뚜렷하다. 1회에 소개한 ‘핫카동 정식’을 보자. 홈페이지에 공개한 재료대로 편의점 장을 보니 대략 1만6000원쯤 나온다. 2인분이라 쳐도 두당 8000원꼴. 요리 시간도 혼자 하면 꽤 걸린다. 차라리 동네 국밥집을 갈걸. 짬 없고 주머니 빈약한 이를 위한 방송인 줄 알았더니.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크다. ‘편의점…’의 미래도 아직은 녹록잖다. tvN 대표 상품 ‘나영석표’ 예능 사이에 끼인 처지. ‘삼시세끼’가 끝난 뒤 다음 달 3일 선보이는 ‘신혼일기’ 때까지 3주만 허락돼 있다. 희망적인 건 첫 회 시청률이 4.2%(TNMS)로 선방한 편. 지금 거긴 아니더라도 저 골목을 돌면 만나지려나. 그게 우리네 편의점 아닌가.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유치원생 아들은 비행기에 열광한다. 어찌 아셨을꼬. 지난해 산타 선물도 레고 비행기였다. 요즘은 종이비행기에 꽂혔다. 손재주 없는 아비 닮았나. 얼기설기 만져 힘껏 날려봤자 툭. ‘쓸쓸하고 찬란하신’ 체공. 그래도 우아 감탄하는 아이. 발그레한 뺨이 무척 탐스럽다. 기껏해야 종이비행기 아니냐고? 연탄불처럼 함부로 무시하지 마라. 세계기록을 가진 미국 존 콜린스 씨는 70m나 날렸다. 공기역학까지 배우며 하루 5시간씩 훈련했다. 물건을 배달하는 종이비행기 드론도 미국에서 나왔다. 일본의 한 교수는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로 날려 보내는 연구를 진행한 적도 있단다. ‘winds of revenge(복수의 바람·사진)’란 플래시게임도 있다. 종이비행기로 얄미운 직장상사를 맞히는 놀이다. 주말 촛불집회에선 국민의 분노가 담긴 종이비행기 날리기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담긴 마음 따라 종이비행기는 천변만화한다. 사소한 건 없다. 하찮게 여기는 편견이 있을 뿐. 어디로 얼마큼 날아갈진 알 수 없겠지만.정양환기자 ray@donga.com}
정말 도깨비 방망이는 뭐든 이뤄주는 마법을 부릴까. tvN 16부작 드라마 ‘도깨비’가 이번 주말 마지막 회를 앞두고 과연 어떤 성적표를 얻을지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신드롬을 보면 초유의 기록 세우기도 불가능하지 않단 관측이 나온다. 일단 13일 방영한 13회 시청률(15.5%·닐슨코리아)만 해도 케이블채널 드라마 순위 역대 2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화제를 모았던 ‘시그널’(12.5%)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흥미로운 건 18.8%로 역대 1위인 ‘응답하라 1988’이 3회를 남겨두고 기록했던 시청률이 15.5%로 도깨비와 똑같았다는 것이다. 촬영 문제로 1회를 쉬며 방영한 특집 ‘도깨비 스페셜: 모든 날이 좋았다’마저 9.6%란 높은 시청률을 올려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반응을 수치화한 ‘화제성’ 기록 경신 여부도 주목된다. 온라인 분석업체 ‘굿데이터 코퍼레이션’(대표 원순우)이 발표한 도깨비의 화제성 누적점수(15일 기준)는 56만3537점. 이 업체가 2015년 2월부터 조사한 드라마 가운데 2위를 차지한 KBS2 ‘태양의 후예’(64만9953점)를 넘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태양…’이 종영 1주 전 기록한 누적점수는 48만7551점이었다. 원 대표는 “다만 76만9745점으로 최고 누적점수 타이틀을 보유한 ‘응답…’(종영 1주 전 62만8585점)을 따라잡긴 어려워 보인다”며 “그럼에도 ‘응답…’이 20부작이고 중간에 일주일을 쉬었던 시간을 감안하면 도깨비의 기록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관련 상품도 덩달아 신이 났다. 현재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인 멜론차트 순위는 도깨비판이다. 비가 15일 ‘최고의 선물’로, 수지가 17일 ‘행복한 척’으로 1위에 올라서긴 했으나 도깨비 OST는 17일 오후 2시 기준 10위 안에 5곡이나 들어 있다. 극중에서 공유가 읽었던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예담) 역시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도깨비에서 김신(공유)과 지은탁(김고은)이 거닐었던 캐나다 퀘벡 관련 여행상품 문의가 이전보다 70%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도깨비 검 앱’도 화제의 검색어다. 다양한 사진합성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김신에게 꽂혀 있던 검을 따라한 사진을 만들어 SNS 등에 게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이 내려진 중국 ‘웨이보’에도 도깨비 검을 합성한 사진이 숱하게 올라오며 인기를 방증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채널A 시사예능 ‘외부자들’(화요일 오후 11시)이 3회 만에 시청률 4%를 넘어서며 화요일 밤 새로운 강자로 올라섰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는 11일 “‘외부자들’ 3회 시청률이 4.287%(전국 유료가입가구 기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분당 최고시청률은 5.19%까지 치솟았다. 패널들이 정유라 씨의 덴마크 인터뷰에 대해 “변호사와 함께 공을 들여 ‘피해자 코스프레’ 리허설을 준비한 티가 난다”고 지적한 대목 등이 큰 화제를 모았다. 첫 회부터 3.68%를 기록하며 이미 종합편성채널 동시간대 1위에 오른 ‘외부자들’은 이날 일부 지상파 방송마저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KBS2가 지난해 11월 야심 차게 론칭한 ‘살림하는 남자들’(2.7%)을 훌쩍 뛰어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외부자들’에 대한 누리꾼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패널들이 답답한 정치 이야기를 시원하게 풀어서 좋다” “특히 ‘보이스피싱 핫라인’ 코너가 재미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10일 방송된 핫라인 3회는 덴마크에서 정 씨와 인터뷰한 박훈규 독립PD와 전화를 연결해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연말부터 채널A ‘외부자들’(매주 화요일 오후 11시) 잘 봤다는 인사를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올해 뭔가 될 것 같단 기운을 느꼈습니다. ‘저승사자’도 재미있단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하하.” 저승사자?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개그맨 남희석은 “저승의 비선 실세가 보냈다”며 킥킥거렸다. 그가 보여준 휴대전화 속 주인공은 배우 이동욱. 최근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사자 역할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영계(靈界)와 친해서 그런가. 9일 저녁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남희석은 참 신묘했다. 인터뷰 요청에 ‘쐬주’ 한잔 하자더니 혼을 쏙 빼놓았다. 합석했던 채널A의 김군래 PD도 “MC로 희석이 형을 가장 먼저 떠올린 건 누구와도 얘기를 재밌게 풀어내는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부자들’은 채널A의 첫 시사 예능이다. MC를 맡은 소회가 어떤가. “언젠간 정치 토크쇼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좀 더 경륜을 쌓은 뒤가 되리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그 때가 빨리 왔다. 다행인 건 나름대로 꾸준히 준비는 해왔다는 거다. 신문은 물론이고 시사 잡지까지 열심히 챙겨 읽는다. 외연을 확장하려고 여러 분야의 인물들과 친분을 쌓아왔다. 정·관계도 가리지 않았다. 배우는 입장에서 열심히 귀 기울인다.” ―누가 보면 정계 진출에 관심 있는 줄 알겠다. “에구, 절대 아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건 예인(藝人)의 숙명이자 특권이다. 예를 들면 김탁환 소설가와 친해진 것도 직접 수소문해서 찾아뵈면서다. 책을 읽다 보니 저자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더라. 연예인인지라 감사하게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하면 흔쾌히 응해주는 편이다. 만나면 끊임없이 질문한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니까. 아마 소설가에게 뜬금없이 전화해 맞춤법 물어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속으론 싫어하려나, 하하.” ―그래서인가. ‘외부자들’이 주로 정치 얘기가 많은데 자연스럽다. “일단 요즘 한국에서 정치만큼 주목받는 소재가 어디 있겠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현 상황에 대한 우려와 바람이 있다.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게 아닌가 싶다. 다만 그저 시사만 논하며 점잔 빼는 건, 개그맨인지라 참질 못한다. ‘외부자들’ 2회에서 ‘출연자 가운데 이 밥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콩밥’ 같은 농을 던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행히 정봉주 전 의원을 비롯한 패널들이 웃어넘겨 주신다.” ―패널들과의 호흡이 좋은가 보다. “안형환 전 의원은 오래전부터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던 사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인연을 맺어 친분을 쌓았다. 정 전 의원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말 유쾌했다. 농담을 던져도 넉넉하게 품어준다. 솔직히 전여옥 전 의원은 만나기 전엔 좀 무서웠다. 근데 막상 직접 보니 편안하고 ‘소녀’ 같은 구석도 있더라. 물론 네 분 다 촬영에 들어가면 굉장한 공력을 내뿜는다. 그 흐름을 끊지 않되 적확한 방향으로 물길을 내주는 게 제가 할 일이다.” ―아직 초기라 그런지 거센 논박이 오가진 않더라.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일단 어떤 방송이건 초반 탐색전이 필요하다. 게다가 현재 국정 농단 사태는 이견이 있을 게 없다. 보수 진보를 떠나 모두 분노하고 상처 입었으니까. 아마 3, 4회를 지나면서 달라질 거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중국 방문 같은 주제는 꽤나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지 않겠나.” ―저승사자와도 친분이 있으니 올 한 해를 전망해 달라. “아니, 희망 얘기해 달라고 만나자더니 왜 무거운 짐을 지우나. 일단 ‘외부자들’은 정말 잘 될 것 같다. 이렇게 ‘씹을’ 일이 많으니. 하지만 더 큰 바람은 ‘외부자들’이 별로 얘깃거리가 없는 날이 오는 거다. (김 PD가 “그럼, 우리 망해”라고 하자) 패널들 모시고 콩트라도 할 테니 걱정은 나중에 하자. 아주 작은 목소리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올 때까지 ‘외부자들’도 열심히 달리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