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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대북 인도주의 물품의 제재 예외를 승인하면서 물품에 포함된 한국산 라면 종류와 함께 어느 마트에서 산 것인지까지 살펴본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8월 인도적 대북 지원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유엔 안보리가 ‘돋보기’를 갖다 대며 제재 위반 여부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4일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최근 대북 의료지원 단체인 유진벨재단의 인도주의 물품에 대한 북한 반입 요청을 승인하고 목록을 공개했다. 앞서 유진벨재단은 2월 대북 인도주의 활동 허가 신청서를 위원회에 보내 9개월 만에 승인을 얻었다. 대북제재위원회가 공개한 유진벨재단의 반출 물품은 총 277개 품목에 약 309만 달러(약 34억2000만 원) 상당. 여기엔 구호요원이 먹을 것으로 보이는 식품까지 상세하게 공개됐다. 물품 목록엔 ‘신라면’ ‘삼양라면’ ‘너구리’ ‘짜파게티’ 등 라면이 상자 단위로 공개됐고 일회용 커피 필터와 종이컵 등도 수량이 표기됐다. 이 품목들에 대한 롯데마트, 이마트, 인터넷 상점인 G마켓 등 한국의 제품 구매처까지 명시돼 있다. 라면은 대북 제재 적용을 받지 않는 물품인데도, 북한으로 들어가는 만큼 구입 단계부터 최종 소비까지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유진벨재단이 북한에서 결핵 환자 치료에 집중해온 만큼 결핵 치료제인 피라진아미드와 아미카신, 사이클로세린 등 약품, 심전도 기계, 산소발생기 등 의료용 기계도 목록에 담겼다. 목록엔 품목별 ‘HS 코드’(국제상품분류 기준)가 붙었고 수량과 함께 원산지 정보 등이 담겼다. 한국산이 228개로 가장 많았고 중국 11개, 독일 8개, 인도 6개 순이었다. 허가된 품목 중 최고가는 독일산 결핵 치료제인 델라마니드(총 317병)가 53만8050달러(약 5억9500만 원)였고 가장 저렴한 것은 한국의 삼양사가 만든 설탕 1박스(2달러18센트·약 2400원)였다. 정부 당국자는 “유엔의 인도적 대북 지원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이렇게 상세하게 내용이 공개된 적이 드물었다.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할 때도 이 기준에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미 정상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비핵화에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데 합의하면서 김 위원장의 서울행을 위한 ‘멍석’이 깔렸다. 이제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서울행은 오롯이 김 위원장의 결정에 달린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여전히 답방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다. 무엇이 그를 머뭇거리게 하는 것일까.○ 파격 행보하던 김정은, 서울행엔 조심 또 조심 김 위원장이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서울 답방에 합의한 후에도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은 기대만큼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척되지 못한 데 따른 측면이 크다. 그 결과로 대북제재가 건재하기 때문. 실제 한미 정상은 지난달 30일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환영하면서도 제재는 여전히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북한 주민에게 경제건설 총력에 나설 것을 독려하고 있는 김 위원장으로선 지금 서울에 와도 경협이나 제재 완화와 관련해 얻어갈 게 거의 없다는 얘기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김 위원장이 서울에 내려와도 가져갈 게 별로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서울은 북측이 원하는 통제가 가능했던 판문점, 평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국제도시다. 이미 보수와 진보 단체들이 답방 관련 찬반 집회를 열고 있는 상황에서 답방이 현실화되면 집회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에서 실제 걱정하는 것은 격렬 집회 시 김 위원장의 신변 보장 못지않게 국제사회에 비칠 부정적 이미지”라면서 “격렬한 집회가 열려 사상자라도 나오면 김 위원장이 또 다른 논란의 중심에 서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9월 평양 정상회담 당시 “태극기부대를 이해한다”며 한국 내 보수 세력을 신경 쓰는 듯한 발언을 남측 인사들에게 했다고 한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치 않은 것도 현실적 이유 중 하나다. 정부는 답방 성사 시 고위급 회담이나 실무회담을 연 뒤 ‘김정은의 집사’로 통하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등이 사전 답사를 다녀가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일정까지 감안하면 최소한 이번 주 내로는 답방 여부를 결정해야 연내 답방 추진이 가능하다. 비핵화나 경제 개혁을 반대하는 북한 내 강경파가 서울 답방을 만류한다는 관측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북-미 간 협상 채널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다. 김 위원장은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김 부장을 가리키며 농반진반으로 “저 사람 때문에 안 되는 일이 많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北 답방 협의 진행하면서도 확답은 안 해 아무튼 남북은 김 위원장의 방남 가능성을 열어두고 숙소와 일정 등에 대한 초보적인 대화는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향후 김 위원장이 방남을 결정했을 때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기 위한 것이지, 답방을 전제로 한 사전 협의는 아니었다고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아직 북측의 책임 있는 인사로부터 김 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전해 들은 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김 위원장 답방 시 전 세계에서 몰려들 취재진을 위한 프레스센터 공간도 아직 예약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연말이라 최소 2주 전에는 프레스센터 대관을 해야 하는데, 북측에서 사인을 주지 않으니 못 빌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답방 시 방문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제주 한라산 주변에서도 지난달 원희룡 제주지사의 답사 이후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답방 결정을 못 내리는 북한을 향해 정부 여당은 빨리 결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연내 답방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김 위원장이 이번에도 결단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정부가 향후 5년간 대북 정책의 틀로 잡겠다고 3일 공개한 ‘제3차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2018∼2022년)’을 보면 비핵화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계획에서 “남북 간 분야별 대화 교류를 통해 북-미 대화 및 비핵화 협상을 진전, 촉진시킴으로써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미국이 지난달 한미 워킹그룹까지 가동시키며 대북 문제에 있어 긴밀히 보폭을 맞추자고 요구한 것과는 무관하게 북핵 촉진자 역할에 주력하겠다는 것.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을 ‘착수식’으로 부르며 트럼프 행정부에 안심하라는 시그널을 보냈지만, 대북제재 완화 속도 등을 놓고 한미 간 엇박자가 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와 함께 정부는 ‘5대 원칙’에서 ‘우리 주도의 한반도 문제 해결’을 천명하면서 4대 전략의 가장 첫 번째로 ‘단계적 포괄적인 접근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명시했다. 앞서 4월 판문점 정상회담 전만 해도 ‘고르디우스의 매듭 자르기’ 등 일괄타결을 목표로 했던 북핵 해결 방식과는 다른 단계적 해결을 명문화한 것. 이는 북-미가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에도 좀처럼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여전히 대북제재 완화보다는 ‘선(先) 비핵화 조치’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대북 계획에 단계적 접근법을 공식화한 것에 대해선 논란이 여전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핵 관련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5년짜리 계획에 단계적 북핵 해법을 명시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단계적 포괄적 비핵화는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와도 유사한 것이어서 워싱턴에서 다시 한번 “남북 관계 속도가 한미 공조의 그것보다 빠른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황인찬 기자}
30일 오전 굳게 닫혀 있던 경기 파주시 장단면 비무장지대 내 경의선 철도 통문이 오랜만에 활짝 열렸다. ‘남북철도공동조사단’을 태우고 북으로 향하는 남측 열차 옆면엔 ‘서울∼신의주’라는 운행 구간 표지가 선명했다. 앞으로 18일 동안 북한 지역을 ‘H’ 형태로 훑는 약 2600km의 철도 조사 여정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딱 10년 전 개성공단 화물열차 운영이 중단돼 ‘남북 철맥’이 끊긴 날이었다.○ 제재 위반 논란 뚫고 10년 만에 달린 ‘남북 철마’ 이날 시작된 남북의 철도 현지 조사는 2007년 12월 경의선 조사 이후 처음이다. 남쪽 열차가 북측 철도 구간을 달리는 것은 2008년 11월 도라산역∼판문역 화물열차 이후 꼭 10년 만이기도 하다. 4·27판문점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에 합의한 후 7개월 만에 그 이행을 위한 실질적 조치의 첫발을 내디딘 것. 정부는 당초 8월 말 공동조사를 위해 남측 열차를 북에 보내려다 유엔군사령부의 통행 불허로 불발됐고, 이번엔 미국과 유엔의 제재 예외 조치로 조사를 진행하게 됐다. 이번 남북 철도 조사는 11년 전과 비교해 규모가 커졌다. 2007년 12월엔 경의선(개성∼신의주 약 400km)만 7일에 걸쳐 살폈지만 이번에는 경의선(30일∼12월 5일)을 본 뒤 동해선(12월 8∼17일·금강산∼두만강 약 800km)까지 처음으로 조사한다. 서울을 출발한 조사 열차는 이날 오전 9시 반경 북측 판문역에 도착해 전체를 끄는 맨 앞의 기관차를 북측 것으로 교체했고, 북측 열차 3량을 추가로 연결했다. 앞으로 개성을 거쳐 서북쪽 끝의 신의주를 찍고 다시 평양에 돌아온 뒤 동해선 원산으로 이동한다. 이어 러시아 접경 지역인 두만강까지 올라갔다 서울로 복귀하기 때문에 총 이동 거리는 약 2600km에 달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도라산역 환송 행사에서 “(조사단원들은) 누구도 가보지 못한 북한의 기차역과 북녘의 산천을 방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공동조사는) 섬처럼 갇혀 있던 한반도 경제 영토를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장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국토교통부,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 등과 민간 관계자로 구성된 남측 조사단원 28명은 조사 기간 열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이를 위해 무궁화 객차를 개조한 2층 침대칸이 마련됐고,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뿐만 아니라 샤워실도 마련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열차 안 공간이 협소하고 불편해 20일 가까이 머무는 것은 어렵다는 말들이 있어 경의선 조사를 마치고 동해선 때는 대부분의 인력이 교체 투입된다”고 전했다. 이에 경의선 조사를 마친 인력은 버스를 타고 복귀하고 열차는 빈 채로 평라선을 통해 원산으로 향한다. 동해선에 투입되는 남측 인력은 버스를 타고 원산까지 가서 다시 열차를 탄다. ○ 남북 정상 합의한 연내 착공식까지 이어질까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연내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까지는 딱 한 달 남았다. 당초 ‘선(先)조사 후(後)착공식’에 합의한 만큼 정부는 12월 17일 철도 조사가 마무리되기 전 도로 공동조사에 나서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조 장관은 “정부는 앞으로 남북 두 정상이 합의한 착공식도 올해, 연내에 개최할 수 있도록 착실하게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등의 제재 예외 조치가 ‘철도 조사’에 한정되는 만큼 정부는 착공식 장소 및 형식과 관련한 제재 위반 여부를 국제사회와 협의하고 있다. 동시에 이번 조사가 제재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조사 열차엔) 5만5000L의 기름이 실려 있는데 열차 운행과 난방용, 예비용 기름이다. (조사 후) 남는 기름이 있다면 전량 가지고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열차의 일부 시설에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남북 공동조사단의 조사 일정과 대상은 유동적이다. 남측 공동조사단장인 임종일 국토부 철도건설과장은 “육안 검사와 휴대용 장비를 이용한 구조물 테스트가 이뤄지는데, 조사단원들은 전문가들이라 육안으로도 시설 노후화 등을 대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측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얼마만큼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이런 것들(조사)이 잘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파주=공동취재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문재인 대통령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탔던 고급 차량(사진)의 북한 반입 경로를 조사 중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문 대통령이 평양 도착 직후 카퍼레이드를 벌일 때 탑승했던 이 차량은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를 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문제 삼은 이 차량은 과거 유엔 전문가 패널이 제재 위반 대상으로 지목한 적이 있는 차량과 동일한 차종으로 보인다. 전문가 패널은 안보리에 제출한 2016년 보고서에서 복수의 ‘개조된 메르세데스벤츠 S600 리무진’ 차량이 열병식에 동원된 장면이 다수 포착됐다며 “이 같은 차량들의 평양 반입은 안보리 결의 위반일 수 있다”고 적었다. 안보리는 2006년 ‘사치품’의 북한 반입을 금지했고 2013년엔 사치품 범주에 ‘호화 자동차’가 포함됨을 명시했다. 전문가 패널은 당시 보고서에서 해당 차량들을 북한에 반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주체로 ‘시젯 인터내셔널’이란 회사를 운영하는 중국인 마위눙을 지목했다. 미국 상무부는 올 9월 마위눙과 그의 회사가 “미국에서 온(개조된) 방탄 차량들을 북한에 불법으로 반입해 미국의 안보 및 외교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며 이들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RFA는 문 대통령이 9월 평양에서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한 것과 남북이 각각 귤과 송이버섯을 선물 형식으로 교환한 것에 대해서도 안보리가 대북 제재 위반과 관련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밥 코커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은 29일 보도된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중국과 한국이 북한에 대한 입장을 부드럽게 하고 있는 것은 (대북 압박정책이 복잡해지는) 요인 중 하나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문 대통령이 대북 제재 위반 대상으로 보이는 차량을 탄 것과 유엔 제재 대상인 만수대창작사를 찾은 것은 단순 탑승과 관람인 만큼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귤과 송이버섯을 주고받은 것도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29일 기자들을 만나 “정상 간 선물은 경제적 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 제재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한기재 record@donga.com·황인찬 기자}
“성 김도 가고, 앤드루 김도 가고….” 올해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북-미, 한미를 오가며 전방위로 활약했던 앤드루 김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임무센터(KMC)장의 퇴임이 공식화됐다. 앞서 미국의 북핵 실무협상 대표단을 이끌던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도 실무협상 대표 자리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에게 물려줬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핵심 라인에 있던 50대 후반의 한국계 ‘양 김’이 모두 물러나게 되는 셈이다.○ “백악관과의 은밀한 핫라인 중 하나 끊긴 셈” 지나 해스펠 CIA 국장은 27일(현지 시간) 직접 김 센터장의 퇴임 사실을 밝혔다. 해스펠 국장은 성명에서 “지난 28년간의 복무와 한 번의 은퇴 시도 뒤, 그가 CIA에서 펼친 놀랍고도 잘 알려진 최고의 경력을 마무리하려는 때에 즈음해 김 센터장의 행운을 빈다”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다음 달 20일 CIA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내년 초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비건이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맡으면서 김 센터장의 퇴임은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한국계 인사들은 아무래도 북측 의견을 적절히 수용하고 협상을 지속하는 쪽으로 의견을 냈을 텐데, 이런 의견이 미국의 북핵 강경 라인과 충돌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퇴임으로 ‘양 김’이 북핵 라인에서 빠지는 게 현실화하자 정부 주변에선 아쉽다는 말이 나온다.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만큼 어떻게든 북-미 간에 다시 물꼬를 뚫어야 할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양 김’은 그동안 한국 정관계 인사들과 한국어로 소통하며 우리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도 해왔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중진 의원들과 접촉하며 백악관의 분위기를 직간접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서훈 국정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모두 서울고 동문인 그 사람(김 센터장)을 통해 미국을 설득하고 막힌 것을 풀었는데, 이젠 그런 핫라인 중 하나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 내 대북 협상 추진파의 입김이 이전보다 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정의용 실장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간의 케미스트리가 이전 허버트 맥매스터 보좌관 때만 못하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만큼 최근 들어서는 김 센터장의 ‘정보 라인’에 기대는 비중이 더 높아졌었다. 양 김이 당분간 북핵 무대에 복귀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김 센터장은 한 번 CIA를 은퇴한 후 복귀한 전력이 있어서 사실상 공직 은퇴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성 김 대사도 최근 주변 인사들에게 “나는 필리핀에서의 일이 좋다. 이게 공관장으로서 내 본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중간선거 이후 백악관 및 내각 인사들을 일신하고 있는 만큼 ‘북핵 올드 보이’를 내년에 다시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워싱턴 조야의 관측이다.○ 고위급 이어 실무회담도 ‘도미노 연기’ 이달 말로 예정됐던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연기되면서 내달 워싱턴에서 하려던 북-미 실무회담도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8일 보도했다. 미국의 전직 고위 관리는 RFA에 “당초 다음 달 둘째 주 미 워싱턴에서 비건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 실무회담이 예정돼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비건 대표는 12월 둘째 주까지 일정을 비워놓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위급 회담이 불발되면서 그 후속 회담 성격인 실무회담도 불투명해진 것. 이 전직 관리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12월에 북-미 실무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이제 크지 않다. 현재로선 미국이 고려하는 회담 일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을 추진해 왔던 청와대가 궤도 수정에 나섰다. 북-미 고위급회담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답방이 내년으로 늦춰질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처음 밝힌 것.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미 협상과 관련해 “아직도 여전히 본격적인 해결 단계로는 들어가지 못한 상황에서 우려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며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이 좋을지 후가 좋을지 어떤 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데 더 효과적일지 여러 생각과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밝힌 가장 큰 이유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는 고위급회담 개최에는 합의했지만 정작 마주 앉을 시점도 정하지 못했다. 미국이 북한에 11월 말 고위급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북한의 이 같은 몽니는 선(先) 비핵화를 요구하며 대북제재 완화에 선을 긋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말부터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점을 고려하면 북-미 고위급회담은 빨라야 12월 이후로 넘어갈 듯하다. 이와 관련해 조명균 장관은 이날 한 불교 관련 강연에서 “(북-미가) 서로 상대방이 먼저 해라, 우리는 거기에 맞춰 하겠다고 하니까 진도가 안 나가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조치까지 들어가야 하고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에 체제 안전을 보장해 주는 상응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단계까지는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북핵 시간표는 없다고 공언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5일(현지 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비핵화 협상에 대해 “그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우리는 인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인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미국이 원하는 ‘선 비핵화, 후 상응조치’라는 대화 조건에 북한이 호응하기까지 얼마든지 더 기다릴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 워킹그룹에 대해서도 “한반도에 평화를 재건하려는 노력이 비핵화 논의와 나란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핵화 진전 없이는 남북 관계 개선이 더는 어렵다며 남북 간 과속에 다시 한 번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다만 청와대는 다음 달로 예정된 남북 철도 연결 착공식을 통해 어떻게든 대화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복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착공식은 남북 교류 본격화를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고, 김 위원장의 답방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이 과거에도 서울 답방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답방 생각이 없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에 따르면 2001년 5월 방북한 요한 페르손 스웨덴 총리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나 서울 방문을 권고했다. 이에 김정일은 회담 후 “페르손이 분명 김대중의 부탁을 받고 온 것 같다. 김대중은 정말 내가 서울에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말 어리석다”고 말했다고 태 전 공사는 전했다.한상준 alwaysj@donga.com·황인찬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남북 철도 연결과 관련한 공동 조사에 대해 전격 제재 예외 조치를 내렸다. 공동 조사, 착공식 등을 거치며 ‘남북 철도’가 늦게만 가고 있는 비핵화 시계를 당기는 마중물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美, 대북 독자 제재도 일시적으로 풀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북한 철도에 대한 남북 공동 조사’와 관련해 대북 제재 면제를 결정한 데 이어 미국도 공동 조사에 동의하고 대북 독자 제재의 예외로 인정했다. 외교 소식통은 24일(현지 시간)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내 철도 공동 조사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와의 협의 절차가 23일 오후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가 안보리 15개 이사국에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내 철도 공동 조사의 제재 면제를 회람했으며 별다른 이견이 없어 전원 동의(컨센서스)로 협의 절차가 완료됐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철도 공동 조사에 한해 미국의 독자 제재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24일 “미국산 부품이 10% 이상 포함된 전자기기가 북한으로 반입되는 것은 미국 국내법 위반이어서 이 문제는 한국 정부와 조율을 마쳐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남북은 7월 경의선과 동해선에서 기존 연결 구간을 점검하는 ‘공동 점검’을 펼친 적은 있지만 이번 공동 조사는 새로운 구간을 연결하기 위한 사업 타당성을 살피는 선행 조사 성격이다. 하지만 실제 철도 연결은 제재 해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까닭에 미국이 철도 공동 조사 제재 예외를 승인한 것은 결국 최근 북-미 고위급 회담에 응답하지 않으며 꿈쩍 않는 북한을 움직일 지렛대로 ‘일시 면제 카드’를 꺼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의 전체적인 대북 압박 기조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 일시적 제재 해제에 임종석, “철도로 중국 가자” 아무튼 청와대는 석 달 가까이 미뤄졌던 철도 공동 조사가 다시 궤도에 오르자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남북의 합의와 인내, 그리고 한미 간 긴밀한 공조로 이룬 소중한 결실”이라며 “비핵화와 함께 (철도 연결에) 속도를 낸다면 당장 2022년에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까지 가서 단둥에서 갈아타고 (중국) 베이징으로 겨울올림픽 응원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인 2022년 2월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임기 내에 남북 철도 연결을 마무리 짓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공동 조사가) 북한 철도의 전 구간을 누빈다는 점에서 남북 협력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주 후반 경의선부터 공동 조사를 시작해 동해선 조사까지 약 보름 내에 마치기로 했다. 또 조사가 끝나는 대로 착공식을 열기로 했는데 장소는 개성 인근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청와대 안팎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별개로 착공식에 남북 정상이 함께 참석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착공식에 남북 정상이 참석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논의는 공동 조사가 끝난 뒤에야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 한상준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생일(1월 8일)이 지금처럼 내년 북한 달력에도 공휴일이 아닌 평일로 표기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내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외국문출판사’가 제작한 2019년 달력에 김 위원장의 생일이 공휴일이 아닌 평일로 표기됐다고 24일 보도했다. 반면 김일성 주석(4월 15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2월 16일)의 생일은 공휴일로 표기됐다. 평안북도의 한 소식통은 “올해 최고 영도자의 위대성으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어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고 사변적 변화가 올 것처럼 떠들더니 지금까지 달라진 게 뭐가 있느냐”며 “지금도 나라에서 공급해 주는 것은 전혀 없고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장사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는데 최고 존엄의 생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고 말했다. 가뜩이나 대북제재로 민심이 악화된 상황에서 김정은이 자기 생일을 국가 명절로 새로 지정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RFA는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4월 13일)과 노동당 제1비서(4월 11일)에 추대된 날은 공휴일로 지정은 안 됐지만, 별도로 관련 설명을 달력에 넣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청와대가 잇따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내 답방 성사 가능성을 띄우고 있다. 2018년을 한 달여 남겨두고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등 굵직한 비핵화 이벤트들이 모두 내년으로 미뤄졌지만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에 대해선 여전히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9일 “김 위원장의 다음 달 서울 방문 여부는 조만간 결정이 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성사되는 것을 기본 시나리오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만나 “조만간 김 위원장의 답방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그동안 남북 간 물밑접촉을 통해 김 위원장 연내 답방에 대한 의사를 꾸준히 타진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역시 김 위원장의 12월 서울 방문 가능성을 닫아놓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위원장인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김 위원장 답방에 대한 준비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이달 내에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리면 빠른 시일 내에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는 다름 아닌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전에) 이행 상황을 서로 점검하기 위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여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다만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 여부와 시기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라는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고위급 회담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 일정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만약 북-미가 1월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은 오히려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김창선 노동당 서기실장 등 서울 방문을 준비해야 할 핵심 실세들이 모두 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직전에 서울에 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북-미 정상회담이 2월 이후로 늦춰질 경우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가능성은 올라갈 수 있다. 핵·미사일 시설 사찰·검증 강화와 제재완화를 놓고 북-미가 고위급 회담에서도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면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으로 비핵화 모멘텀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9월 평양 방북으로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흔들리던 북-미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되살린 것처럼 김 위원장 답방으로 다시 한번 남북관계를 통한 비핵화 촉진 방안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남북 간 의지가 중요하지 2, 3주의 준비기간만 주어져도 서울 답방에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가 일각에선 “국제사회로부터 사실상 외면당한 대북제재 완화론처럼 우리만 김 위원장의 연내 방문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감지되고 있다.문병기 weappon@donga.com·황인찬 기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사진)가 제주산 귤이 평양 시민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배경엔 야당의 역할이 컸다는 해석을 내놨다. 태 전 공사는 18일 개인 블로그에 글을 올려 “제주산 귤이 평양시민들의 입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우선 정부가 귤을 보내주어 가능했고, 북한에 간 귤이 핵심 계층에게만 ‘김정은 선물’로 들어가지 않도록 야당 측에서 논란을 일으킨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해당 귤을 “청소년 학생들과 평양시 근로자들에게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언론들이 선물로 받은 귤의 용처를 밝힌 것은 남측 정치권 등에서 귤이 어디로 돌아갈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 등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측에서 온 귤이 귀한 과일로 여겨져 과거엔 ‘하사품’으로 쓰이기도 했지만 이번엔 남측의 여론을 감안해 용처를 밝혔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북한에 있을 때 남한에서 보낸 제주산 귤을 공급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북한은 평양시 중심 구역 주민들에게 가구별로 사람 수에 맞게 동 식료상점에서 귤을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보낸 귤 200t을 가구별로 1kg씩 공급한다면 평양시 중심 구역의 20만 가구 정도에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용 렌즈 등을 생산하는 유리 공장을 찾아 “더 좋은 광학 유리와 측정 설비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 만에 ‘첨단전술무기’ 개발 현장을 방문한 지 이틀 만에 군수품 생산시설 시찰에 나선 것을 공개하며 미국을 겨냥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공장은 군수용품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한국 정부의 독자 제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노동신문은 18일 김 위원장이 평안북도 대관유리공장을 시찰하고 생산공정 현대화와 신기술 도입을 독려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공장에서 만든 유리제품들과 광학기재들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면서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며 발전해가고 있다. 현대화 사업과 새 기술 도입 사업에 계속 힘을 집중하여 더 좋은 광학유리와 측정설비들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독려했다. 김 위원장의 대관유리공장 시찰은 2014년 5월 이후 4년 6개월 만이다. 한편 신문은 김 위원장이 ‘건설 자재가 보장되지 못해 건설을 다그치지 못하고 있는 실태’와 관련한 대책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대북제재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건설 개발 현장의 불만을 잠재우는 한편 제재를 뚫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던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방미 중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4일(현지 시간) “아직까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을 낙관할 수 없다. 시간만 끌다 갈 수도 있고, 일부만 폐기하고 체제 안정만 받으려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고 말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데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북한이 최소 13곳의 비밀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고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의구심을 표시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조 장관은 이날 워싱턴 인근의 한 식당에서 동포 간담회를 하고 “핵무기 완성을 가지고 북한 체제 안정을 보장받겠다는 것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계산 아닌가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조 장관은 김 위원장에 대해선 “(30대인) 김 위원장은 적어도 사람 연령으로 보면 30, 40년 이상 북한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스위스 유학 때 세상에 관심도 많고, 그런 관점에서 북한을 제대로 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핵 카드와 체제 생존을 협상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북제재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에 대해서는 “지금 상황에서는 남북 경제협력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제재(위반)에 걸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제재 위반하고 싶어도 우리는 못 한다. (남북 경협도) 국제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지 한국 정부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 어쩌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해선 “우리가 준비는 해 둬야 한다. 사전 설계 등에 철도도 몇 년 걸린다. (제재 해제 뒤) 바로 공사할 수 있게 준비는 해두자는 측면”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 놨다. 조 장관은 “가능하다고 우리는 보고 있다. 북한(김 위원장 등)이 직접 와서 우리 사회 모습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내년 1월에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한 번 개최돼 서로 조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 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방한 이틀째인 15일 판교테크노밸리 등 경제 시찰에 나선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이 대북제재 국면으로 인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날 ‘아시아 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참석 차 방한한 리 부위원장과 만찬을 마친 뒤 “(남북 간에)실질적 교류협력이 돼야 하는데 제재 국면 때문에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 지사는 또 “교류협력의 확대에 대해서 아주 관심이 높고 좀 더 빠른 진척을 원하는 느낌이었다”고도 말했다. 북측 인사로는 11년 만에 남한 경제 시찰에 나선 리 부위원장 등 대표단은 앞서 이날 오전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와 스마트팜 등을 찾았다. 판교테크노밸리에서 경기도가 제작한 자율주행 11인승 미니버스인 ‘제로 셔틀’을 1.5km 구간에서 10여 분간 탑승한 뒤 리 부위원장은 “마침 (제로 셔틀이) 시험단계니까 우리가 실험동물이 된 셈이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여당 관계자는 “(리 부위원장이) 다소 긴장이 많이 됐지만 흥미로웠다는 소감을 전했다”고 귀띔했다. 북측 대표단은 수시로 남북경협에 대한 속도감을 여러 번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산림 협력은 물론 향후 백두산 관광이 재개됐으면 좋겠다”는 의사도 비쳤다고 설명했다. 송명철 아태위 정책부실장은 “남측이 행사를 많이 열고 나무를 많이 심는 게 아니라 시설 같은 것들을 지원해 달라. 물고기를 주지 말고 낚시대와 배 같은 걸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정부 측 인사와의 만남도 자제한 리 부위원장은 방한 내내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한 논의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이날 환영만찬에 함께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만찬 이후 리 부위원장과 배석자 없이 20여분 간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남북 국회회담이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등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면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그런(남북 국회회담) 이야기는 없었다.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문희상 국회의장이 하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 고위급 대표단 5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14일 방남했다. 북측은 당초 대표단에 포함됐던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겸 아태위 정책실장 등 2명의 방문을 도착 당일 취소했다. 리 부위원장 일행은 이날 오후 7시 40분경 중국 선양을 경유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이들은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가 16일 여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진상 규명과 21세기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참석차 방남했다. 리 부위원장은 이날 공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건 두 수뇌분들이 결정하실 문제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왈가왈부할 형편이 못 된다”고 했다. ‘교황 방북과 관련해 염수정 추기경을 만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는 “교황 방문하고는 저하고 아무런 인연도 없다”고 답했다. 방남단은 15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개막하는 ‘제2회 자율주행 모터쇼(PAMS) 2018’ 행사장과 화성시 경기농업기술원을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16일 국제대회에 참석한 뒤 17일 중국을 거쳐 귀국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만찬에 참석하는 데 이어 16일 국제대회 현장에서 축사한다. 한편 해외 한인 상공인의 방북도 추진된다. 통일부는 해외 한인 상공인 등 97명(선발대 2명 포함)이 ‘2018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해외동포 기업인 평양대회’ 참가를 위해 15∼18일 3박 4일간 방북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방북 신청 건을 유관 기관을 통해 미국 측에 전달했다. (미 측으로부터) 별다른 이의 제기는 없었다”고 했다.황인찬 hic@donga.com / 수원=이경진 기자}
정부가 11일부터 이틀간 평양에 제주산 귤 200t을 보내는 것은 북-미 비핵화 협상이 꼬여버린 상황에서 남북 대화 기조만이라도 유지하자는 제스처로 풀이된다. 9월 평양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북한산 송이버섯 2t에 대한 답례로 제주 귤을 평양에 보내면서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북-미 대화의 모멘텀도 어떻게든 살려내겠다는 것이다. ○ 5·24조치 이후 8년 만에 北에 간 제주 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9월 평양정상회담 당시 북측이 송이버섯 2t을 선물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남측이 답례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9월 20일 우리 화물수송기 편에 북한산 송이버섯을 보내왔고,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 4000여 명에게 500g씩 나눠 줬다. 북으로 간 귤은 모두 10kg 상자 2만 개 분량. 상자당 귤 개수는 100개 내외여서 귤 200만 개 분량이고, 평양 시민(약 300만 명)의 3분의 2가 1개씩 먹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에는 북한 식료품 및 농산품의 공급 등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으나, 북한으로 유입되는 식품에 대한 규정은 없어 이번 귤이 제재 위반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군 수송기(C-130) 4대를 제주∼평양 직항노선에 동시 투입시켰다. 11일 오전 귤을 싣고 평양을 다녀온 뒤 오후에 다시 평양에 다녀왔다. 12일에도 두 번 더 가서 총 4번 왕복한다. 제주 귤이 공식적으로 북에 간 것은 8년 만이다. 제주도는 1998년부터 귤 북한 보내기 운동을 벌여 12년간 총 4만8328t을 보냈지만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인한 5·24조치 이후에는 보내지 않았다. 북한에선 귤이 재배되지 않아 ‘귀한 과일’로 여겨진다. ○ ‘제주 귤’로 ‘서울 답방’ 논의 속도 붙나 문재인 대통령이 답례품으로 제주 귤을 선택한 것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특히 한라산 방문을 고려했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제주도는 김 위원장의 외조부인 고경택의 고향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도 있으니 (김 위원장이) 원한다면 한라산 구경도 시켜 줄 수 있다”고 했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서호 대통령통일정책비서관도 11일 오전 8시 출발한 첫 번째 귤 수송기로 평양에 갔다. 북측 관계자들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남북 현안을 의논했을 가능성도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천 차관 등은 오후 1시 귀환 편에 돌아왔다”고 전했다. 북에 전달된 귤은 모두 서귀포산으로 한 달 전쯤 농협중앙회에서 서귀포 시내 농협 4곳에 50t씩 고품질 귤을 확보해 달라고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가에는 3, 4일 전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하얀색 귤 박스가 전달됐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11일 한 제주 행사에서 해당 귤에 대해 “당도 12브릭스(brix) 이상으로 엄선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원 지사는 10일 사전답사 차원에서 한라산을 방문했다. 제주 현지에선 김 위원장이 헬기를 이용한다면 백록담 분화구에 직접 착륙하거나 백록담 동릉 정상 헬기장을 이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분화구에 직접 내리면 백두산 천지 물과 백록담 물을 합수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지만 환경 훼손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동릉 정상 헬기장은 안전을 위해 착륙장 확장이 필요하다는 게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측의 설명이다. 황인찬 hic@donga.com / 제주=임재영 기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사진)가 리선권의 ‘냉면 목구멍’ 발언에 대해 “북에서는 늘 하는 말이다. 북한에 공식 사죄를 받아내거나 리선권의 인사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8일 개인 블로그에 글을 올려 “북한에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가’라는 발언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상급이 하급에게 늘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듣고 불쾌해하거나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했다. 이어 “(리선권 발언이) 사전에 계획된 ‘의도적인 도발’은 아니라고 본다. 좋은 의도에서 웃자고 한 말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리선권의 냉면 막말이 논란이 된 것을 김정은도 다 알 것이다. 리선권도 자극을 받았을 것이며 앞으로 남북회담에서 주의할 것”이라며 “이제는 북남(남북) 화해의 견지에서 이 정도 수준에서 정리하고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통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앞서 9월 평양정상회담 기간 중 옥류관 오찬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대기업 총수들 앞에서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져 큰 논란이 됐다.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우려도 나왔다. 일각에선 평소 대북 강경 발언을 이어가던 태 전 공사가 “이 정도 수준에서 정리하자”고 나선 것은 다소 의외란 평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핵심이 아닌 주변 문제들로 남북 간 논란이 커지는 것을 걱정한 게 아니겠냐”고 했다. 하지만 태 전 공사의 설명과 달리 ‘목구멍’이란 말은 북에서도 저속한 용어라 자주 사용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한 탈북민 연구원은 “통상 ‘밥이 넘어가냐’고 하지,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는 표현은 잘 안 쓴다. 허물없는 친한 사이에 농담처럼이나 하는 말”이라고 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형 초상이 공개 석상에 처음 등장했다. 영국 BBC는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내외가 4일 평양국제비행장(순안공항)에 도착해 열린 환영행사에 김 위원장과 디아스카넬 의장의 대형 초상이 나란히 걸렸다고 6일(현지 시간) 전했다. BBC는 “김 위원장의 사진이나 비공식 ‘팬 아트(fan art·캐리커처 등 특정인 그림)’ 외에 공식 대형 초상이 걸린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 초상은 6일 환송식에도 등장했다. 김 위원장의 초상은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안경을 낀 채 웃는 모습이었다. 인민복을 입었던 김정일이 아니라 양복 차림의 김일성 초상화를 따라 한 것. 김 위원장의 초상 공개로 우상화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현재 북한 관공서, 가정 등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만 걸려 있다. NK뉴스의 애널리스트 올리버 호덤은 “김정은 초상이 등장한 것은 (북한) 체제가 김정은 개인숭배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초상은 그림처럼 보이면서도 사진을 확대해 그림처럼 보이도록 처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에 대한 호칭은 2016년 12월 17일 김정일 5주기를 맞아 ‘최고영도자’에서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로 격상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위대한 수령’(김일성) ‘위대한 영도자’(김정일)처럼 ‘위대한’이란 수식은 붙지 않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 초상이) 이번 행사를 위해 한시적으로 공개된 것인지, 앞으로 계속 걸릴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잇따라 ‘쌍끌이 외교’에 나섰다. 8일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의 고위급 회담에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보내는 데 이어 14∼17일 경기도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 리종혁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북측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파견할 의사를 밝혔다. ○ 김영철, 5월 방미보다 하루 더 묵어 미 국무부는 5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폼페이오 장관과 김 부장이 8일 뉴욕에서 만나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달성이 포함된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의 4가지 합의사항의 진전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뉴욕을 방문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김영철이 7일 밤 뉴욕에 도착해 8일 폼페이오 장관과 회담한 뒤 주말까지 미국에 머물다가 일요일 새벽 귀국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1차 방북 때보다 하루 더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았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김영철의 뉴욕행에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동행한다. 비건 대표와 최 부상의 실무급 회담이나 ‘폼페이오 장관과 비건 대표-김 부장과 최 부상’이 참가하는 ‘2+2 회담’이 입체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회담에서 지난달 초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답보상태에 빠진 협상의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북한 비핵화 문제와 더불어 내년 초로 미뤄진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시기 및 장소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검증, 북한 측이 바라는 제재 완화, 종전선언 등 상응 조치가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5월 말 1차 방미 때 3박 4일 일정으로 뉴욕과 워싱턴까지 방문했던 김영철이 이번에도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친서 외교’를 펼칠지도 주목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6일 브리핑에서 “미국 중간선거 이후 새롭게 조성되는 환경과 정세 속에 북-미 협상도 새로운 접근법을 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염수정 추기경 “교황 방북할 때 같이 가겠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돼 북한의 ‘대남통’들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는 14∼17일 경기 고양시에서 열리는 ‘아시아 태평양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리종혁 대의원,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 등 7인의 대표단이 참석하는 것과 관련한 방남 승인을 6일 통일부에 요청했다. 올해 82세인 리종혁은 ‘원로 대남통’으로 1994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뒤 활발한 대남 활동을 펼쳤다. 특히 김일성, 김정일에게 북한 종교 정책의 개방성을 강조한 ‘종교통’이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김정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전달받고 “초청장을 보내주면 갈 수 있다”고 밝힌 것을 감안하면 리종혁이 이번에 염수정 추기경을 만나 초청장을 전할 가능성도 있다. 염 추기경은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어 교회법상 김정은의 초청장을 바티칸에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염 추기경은 이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교황이 방북할 때 같이 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여정의 최측근’인 김성혜 실장은 앞서 평창 올림픽 개막식 때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방남한다. 평창 방문 때 김여정이 김 위원장의 친서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4·27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만큼 이번엔 김성혜가 연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놓고 사전 답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황인찬 hic@donga.com·신나리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10·4선언 11주년 기념식’ 참석차 방북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을 향해 “배 나온 사람한테 예산을 맡기면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4일 알려졌다. 9월 평양 정상회담 후 오찬장에서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해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이번엔 여당 핵심 인사에게까지 막말을 던진 것. 일각에선 농담 수준을 넘어선 리선권 특유의 거친 언사가 남북 경협에 악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리선권, ‘냉면 목구멍’에 이어 ‘복부 비만’ 막말 4일 민주당과 통일부에 따르면 리선권은 지난달 5일 10·4선언 기념 공동행사 후 평양 고려호텔 만찬에 참석해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과 식사를 했다. 우리 측 인사가 리선권에게 김태년 의장을 소개하자 “(굶주린) 인민을 생각하면 저렇게 배가 나오는 부유한 사람이 예산을 맡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 리선권은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김 의장의 넉넉한 풍채를 보고 ‘배 나온 사람’이란 말을 면전에서 내뱉은 것이다. 김 의장과 민주당 인사들은 이 말을 술자리 농담 정도로 여기고 웃어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만찬에 참가한 한 민주당 인사는 “(리선권이) 곧이어 자신도 배가 나왔다는 식으로 말해서 당시엔 아무 문제 없이 웃고 지나갔다”고 상황을 전했다. 김 의장은 4일 고위 당정청협의 후 기자들이 리선권 발언의 진위를 묻자 “본질을 흐리는 말을 하지 말라. 자꾸 가십을 만들어내지 말라”고 말했다. 리선권 발언이 확산되면 남북 관계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것이지만, 동시에 리선권의 해당 발언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리선권의 막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리선권은 ‘냉면 목구멍’ 발언 말고도 지난달 5일 고위급회담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약 3분 지각을 하자 “자동차라는 게 자기 운전수를 닮는 것처럼, 시계도 관념이 없으면 주인을 닮아서 저렇게…”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사전 계획된 발언인 듯 리선권은 올해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측 단장으로 나서 대남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선봉에 섰다. 군 출신인 그는 천안함 폭침 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오른팔’이지만 출신 배경은 더 좋아 김영철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남북 장성급회담부터 회담 대표를 맡아 대남 협상에 익숙하다. 이런 까닭에 리선권의 막말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일회성 농담이라기보단 한국 측을 압박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됐다는 평가가 많다.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기 원하는 북측이 리선권을 통해 여당이나 재계에 직접적인 불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정치적 논란에도 리선권이 막말을 이어가고 있는 건 결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과거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말을 들어보면 북측에서는 치밀하게 역할 분담을 해서 협상을 이끌어간다. 이번에는 리선권이 ‘배드 캅’ 역할을 맡아 남측 주요 인사들을 윽박지르고 압박하는, 정교하게 계산된 발언들을 쏟아내는 것 같다”고 했다. ‘냉면 목구멍’ 발언의 진화에 나섰던 정부는 또 다른 ‘리선권 악재’가 터지자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당국자는 “전체적으로 발언 맥락과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 쪽도 (비공개적으로) 북측에 할 말은 하고 있다. 정부가 저자세라는 일련의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정부는 리선권의 일련의 행위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고 북한 당국이 리선권을 교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황인찬 hic@donga.com·유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