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최근 한국 여자바둑 선수들의 실력이 급상승하면서 중국 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가 늘어나고 있다. 올 5월 개막한 중국여자갑조리그에는 총 10개 팀 40명의 선수가 참가하는데 이 중 한국 선수가 3명이다. 한국 여자 기사 순위 2∼4위인 김채영 8단, 김은지 5단, 오유진 9단이 외국인 용병 기사로 참가했다. 한국 여자 기사 순위 1위인 ‘바둑여제’ 최정 9단만 빠지고 최정상 여자 기사가 모두 참가한 셈이다. 일본에서 나카무라 스미레 3단, 대만에서 헤이자자 7단이 출전했다. 특히 김채영은 우승 후보인 장쑤팀에서 뛰며 주목받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중국 리그에 참가하는 건 높은 수입 때문이다. 중국 리그는 대국료나 승리 수당이 한국보다 높다.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판당 받는 승리 수당이 10만 위안(약 18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지더라도 대국료 개념으로 판당 2만 위안(약 35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남성 기사의 사례지만 신진서 9단은 2022년 대국 수입으로 14억4495만 원을 벌어들였는데 이 중 2억400만 원을 중국갑조리그에서 받았다. 실력 상승에도 중국 리그는 도움이 된다. 중국바둑리그는 단단한 체계를 자랑한다. 2004년 출발한 한국바둑리그 역시 중국바둑리그 체계를 따와서 창설됐을 정도다. 또한 중국은 여자 세계 랭킹 1위인 최정을 뒤쫓고 있는 세계 랭킹 2, 3위 위즈잉과 저우훙위 등 선수층이 두껍다. 특히 김채영과 오유진은 올해 5번째로 중국여자갑조리그에 참가한다. 김채영이 이달 7일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에서 한국 여자 기사 중 6번째로 500승을 달성한 뒤 바로 중국여자갑조리그로 이동해 501승에 도전장을 던진 것처럼 한국에서 중국으로의 이동이 어렵지 않다는 점도 중국 리그에서의 활약에 영향을 미친다. 중국바둑리그 내 한국 여자 기사의 성과도 상승세다. 지난해 중국여자갑조리그엔 한국 기사 3명이 활약했는데 오유진이 8판을 둬 모두 이겼다. 조승아 6단은 6승 3패, 김혜민 9단은 3승 6패를 기록해 3명의 합산 전적은 17승 9패로 65.4%의 승률을 기록했다. 4명이 참가해 20승 16패로 승률 55.6%를 거뒀던 2020년에 비해 높아진 수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60년 당시 26세였던 영국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 밀림에서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를 만났다. 이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낚싯대로 만들어 흰개미를 잡고 있었다. 흰개미 둥지에 나뭇가지를 쑤셔 넣으면 흰개미들이 나뭇가지를 따라 기어올랐고 이를 날름 핥아먹은 것이다. 구달은 이 관찰을 자신의 스승인 영국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1903∼1972)에게 보고했다. 리키 박사는 “인간과 도구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며 환호했다. 미국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를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동물’ 15마리 중 하나로 선정했다. 하지만 구달은 60여 년 전 이때를 명성을 얻게 된 순간이 아니라 침팬지와 처음 교감하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회상한다. “나를 믿어 준 첫 번째 침팬지였어요. 녀석이 나를 받아들여 준 덕분에 다른 침팬지들도 내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차츰 납득했어요.” 평생 침팬지를 연구한 세계적 동물학자 구달의 인터뷰집이다. 최근 방한한 구달은 이달 7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만나 “개와 동물을 학대하는 식용 문화의 종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달이 89세까지 걸어온 삶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구달은 어린 시절 소설 ‘타잔’(1914년)을 읽고 야생 동물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학창 시절 성적이 좋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돈을 모아 케냐로 여행을 갔고, 당시 케냐 나이로비 국립자연사박물관장이었던 리키 박사의 비서가 됐다. 구달을 눈여겨본 리키 박사가 “침팬지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덕에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 “매일 동이 트기 전에 깨어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침팬지를 찾았죠. 기어서 접근하다가 덤불에 팔다리와 얼굴이 긁히면서도 침팬지와 마주하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설렜어요.” 구달은 침팬지 연구로 세계적 동물학자가 됐지만, 곧 아프리카 전역에서 침팬지가 사냥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팬지 새끼를 데려가 애완동물로 삼고, 서커스용으로 키우는 인간들을 보며 절망에 빠졌다. 굶주린 사람들이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나무를 베면서 침팬지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야생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했다. 환경에 대한 자세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 강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침팬지를 구할 방법도 없었어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구달이 자연을 살릴 유일한 주체로 제시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다. 여전히 가장 뛰어난 지능을 지닌 인간은 기후 변화와 동식물의 멸종을 늦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동물 아니냐’는 질문에 구달은 이런 답변을 내놓는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간 지구에 끼친 해악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의 창문이 아직 우리에게 열려 있다고 믿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60년 당시 26세였던 영국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곰베 밀림에서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를 만났다. 이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낚싯대로 만들어 흰개미를 잡고 있었다. 흰개미 둥지에 나뭇가지를 쑤셔 넣으면 흰개미들이 나뭇가지를 따라 기어올랐고 이를 날름 핥아먹은 것이다. 구달은 이 관찰을 자신의 스승인 영국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1903~1972)에게 보고했다. 리키 박사는 “인간과 도구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환호했다. 미국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를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동물’ 15마리 중 하나로 선정했다. 하지만 구달은 60여 년 전 이때를 명성을 얻게 된 순간이 아니라 침팬지와 처음 교감하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회상한다. “나를 믿어 준 첫 번째 침팬지였어요. 녀석이 나를 받아들여 준 덕분에 다른 침팬지들도 내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차츰 납득했어요.” 평생 침팬지를 연구한 세계적 동물학자 구달의 인터뷰집이다. 최근 방한한 구달은 이달 7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만나 “개와 동물을 학대하는 식용 문화의 종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달이 89세까지 걸어온 삶을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구달은 어린 시절 소설 ‘타잔’(1914년)을 읽고 야생 동물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학창시절 성적이 좋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가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돈을 모아 케냐로 여행을 갔고, 당시 케냐 나이로비 국립자연사박물관장이었던 리키 박사의 비서가 됐다. 구달을 눈여겨본 리키 박사가 “침팬지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덕에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 “매일 동이 트기 전에 깨어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침팬지를 찾았죠. 기어서 접근하다가 덤불에 팔다리와 얼굴이 긁히면서도 침팬지와 마주하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설렜어요.” 구달은 침팬지 연구로 세계적 동물학자가 됐지만, 곧 아프리카 전역에서 침팬지가 사냥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팬지 새끼를 데려가 애완동물로 삼고, 서커스용으로 키우는 인간들을 보며 절망에 빠졌다. 굶주린 사람들이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나무를 베면서 침팬지 서식지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야생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했다. 환경에 대한 자세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 강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침팬지를 구할 방법도 없었어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한 구달이 자연을 살릴 유일한 주체로 제시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다. 여전히 가장 뛰어난 지능을 지닌 인간은 기후 변화와 동식물의 멸종을 늦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동물 아니냐’는 질문에 구달은 이런 답변을 내놓는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간 지구에 끼친 해악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의 창문이 아직 우리에게 열려 있다고 믿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책 먹는 여우’도 같이 왔나요?” 11일 오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생방송으로 진행된 독일 동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54)과 한국 독자의 만남 행사에서 한 아이는 이렇게 질문했다. 지난달 28일 출간된 ‘잭키 마론과 푸른 눈 다이아몬드’(주니어김영사·사진)의 저자 목록에 비어만과 함께 그의 대표작 ‘책 먹는 여우’(2001년·주니어김영사)의 주인공이 올라가 있자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비어만은 아이에게 “오늘은 같이 못 왔지만, 다음엔 꼭 함께 오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비어만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환한 웃음을 짓는 친절한 ‘독일 아줌마’였다. 그는 “신간은 ‘책 먹는 여우’의 주인공이 책 먹는 일을 넘어 책을 쓰는 일에도 함께 참여했다는 가정으로 썼다”며 “아이들에겐 동화 속 세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어 재밌는 도전을 해봤다”고 했다. 독일 함부르크 디자인전문예술대를 졸업한 비어만은 2000년 발표한 ‘책 먹는 여우’로 세계적 작가가 됐다. 이 작품은 독일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14개 언어로 번역됐다. 특히 한국에서 2001년 출간된 뒤 22년 동안 90만 부가 팔리고 어린이 뮤지컬로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2015년·주니어김영사) 등 한국에 소개된 비어만 작품 15편은 총 150만 부가 팔렸다. ‘당신의 작품이 왜 한국에서 인기를 끄느냐’고 묻자 그는 곰곰이 생각한 뒤 답했다. “‘책 먹는 여우’는 주인공 여우가 책을 너무 좋아해 소금과 후추를 뿌려 닥치는 대로 먹어버리는 이야기예요. ‘책을 먹는다’는 신선한 접근법이 한국 아이들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턱을 낮춘 것 아닐까요. 한국 특유의 교육열도 한몫했고요.” 2017년 이후 6년 만에 방한한 소감을 묻자 그는 “벌써 세 번째 한국에 와서 친숙하다. 경복궁과 광화문 인근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며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신간은 2017년 시작한 ‘잭키 마론’ 시리즈 4편이다. 여우 탐정 잭키 마론이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영국 군주가 대관식에서 드는 십자가 왕홀에 박힌, 세계에서 가장 큰 투명 다이아몬드 ‘컬리넌’에 얽힌 논란을 은유적으로 다뤘다. 그는 “컬리넌은 20세기 초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불법 반출된 것이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동화에는 교육적 성격이 담겨 있는 만큼 사회적 문제를 쉬우면서도 조심스레 다루려고 했다”고 했다. 그는 15일까지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며 한국 아이들을 만난다. 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린 사인회엔 독자 300명이 찾았다. 2시간으로 예정된 행사가 4시간이나 진행될 정도로 비어만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은 여전했다. “한국 아이들과 직접 만나 동화 이야기를 하면 행복해져요. 한국 아이들이 제 책을 사랑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하하.”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책 먹는 여우’ 인형을 매만지며 답했다. “잭키 마론 시리즈로 어린이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잭키 마론도 ‘책 먹는 여우’처럼 동화책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다음에 한국에 올 땐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보고 싶네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초등학생 때 동화 ‘책 먹는 여우’(2001년·주니어김영사)를 읽고 독서에 빠졌습니다. 감사합니다!”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독일 동화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54)에게 사인을 받던 남자 고등학생이 수줍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엄마와 함께 온 한 초등학생은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며 윷놀이 세트를 선물했다. 한 중학생은 “‘책 먹는 여우’ 주인공 같아 준비했다”며 여우 모양의 초콜릿을 비어만에게 줬다. 비어만이 이날 연 사인회를 찾은 독자만 300명이다. 2시간으로 예정된 행사가 4시간이나 진행될 정도로 비어만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은 여전했다. 12일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비어만은 어느 질문에나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답하는 친절한 ‘독일 아줌마’였다. 2017년 이후 6년 만에 방한한 소감을 묻자 그는 “벌써 3번째 한국에 와서 친숙하다. 경복궁과 광화문 인근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며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한국 아이들과 직접 만나 동화 이야기를 하면 행복해져요. 한국 아이들이 제 책을 사랑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하하.” 독일 함부르크 디자인전문예술대를 졸업한 비어만은 2000년 발표한 ‘책 먹는 여우’로 세계적 작가가 됐다. 이 작품은 독일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14개 언어로 번역됐다. 특히 한국에서 2001년 출간된 뒤 22년 동안 국내에서 90만 부가 팔리고 어린이 뮤지컬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2015년·주니어김영사) 등 국내에 소개된 비어만 작품 15편은 총 150만 부 팔렸다. 당신 작품이 왜 한국에서 인기를 끄냐’고 묻자 그는 곰곰이 생각한 뒤 답했다. “‘책 읽는 여우’는 주인공 여우가 책을 너무 좋아해 소금과 후추를 뿌려 닥치는 대로 먹어버리는 이야기에요. ‘책을 먹는다’는 신선한 접근법이 한국 아이들이 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턱을 낮춘 것 아닐까요. 한국 특유의 교육열도 한몫했고요.” 그는 지난달 28일 ‘잭키 마론과 푸른 눈 다이아몬드’(주니어김영사)를 펴냈다. 2017년 시작한 ‘잭키 마론’ 시리즈 4편으로 여우 탐정 잭키 마론이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영국 군주가 대관식에서 드는 십자가 왕홀에 박힌, 세계에서 가장 큰 투명 다이아몬드 ‘컬리넌’에 얽힌 논란을 은유적으로 다뤘다. 그는 “컬리넌은 20세기 초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불법 반출된 것이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동화에는 교육적 성격이 담겨있는 만큼 사회적 문제를 쉬우면서도 조심스레 다루려고 했다”고 했다. 신간에서 독특한 건 저자 목록에 비어만과 함께 ‘책 먹는 여우’가 올라가 있다는 것이다. ‘책 먹는 여우’의 주인공이 책 먹는 일을 넘어 책을 쓰는 일에도 공동 작업에 참여했다는 가정으로 쓴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겐 동화 속 세상과 현실이 뒤섞여 있어 재밌는 도전을 해봤다”며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했는데 한 한국 아이가 ‘책 먹는 여우도 같이 왔냐’고 묻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웃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잭키 마론 인형을 매만지며 답했다. “잭키 마론 시리즈로 어린이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잭키 마론도 ‘책 먹는 여우’처럼 동화책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다음에 한국에 올 땐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보고 싶네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등으로 인간의 속물근성을 까발리며 역사 속 개인의 실존을 탐구한 작가, 진짜 세상을 드러내지 못하는 ‘평범한 소설가들은 경멸당해 마땅한 존재’로 몰아붙였던 천재, 누구보다 전위적이었지만 고전주의적 미학을 추구한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1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고인의 물품을 소장하고 있는 체코 모라비안 도서관(MZK)의 아나 므라조바 대변인은 “쿤데라가 오랜 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위대한 현대 소설가로 꼽히며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자주 거론됐던 고인은 1929년 체코슬로바키아 브르노에서 야나체크 음악원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야나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프라하 예술아카데미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감독 수업을 받았다. 1963년부터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했다. 공산당을 비판하다 당에서 추방되고, 입당과 추방을 반복한 그는 1968년 공직에서 해직되고 저서들을 압수당했다. 결국 197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9년 체코 국적을 박탈당했다가 2019년 국적을 회복했다. 고인은 1967년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첫 장편소설 ‘농담’으로 이름을 알렸다. 작품은 농담마저 할 수 없는 감시가 가득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몰락하는 개인의 삶을 그렸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루이 아라공은 ‘농담’의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역사에 짓눌린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을 다룬 장편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년)은 그를 세계에 알린 대표작이다.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의사 토마스를 통해 인간의 속물근성과 불확실한 삶에 대해 관찰한 소설로 국내에서도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쿤데라 신드롬’을 불러왔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참을 수 없는…’은 1989년 필립 코프먼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었다. 대니얼 데이루이스(토머스 역)와 쥘리에트 비노슈(테레사 역)가 출연해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그는 작품에서 기성의 가치관에 회의를 품으며 개인의 자유와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를 비롯한 현실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문학은 물론이고 예술 전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소설 속에 풀어냈다. 시인, 희곡 작가, 평론가, 번역가로 폭넓게 활동했다.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자유를 주장한 작가로, 소설에 인간의 감정, 사상, 철학을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다고 여기며 소설이란 장르의 폭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고독을 다룬 장편소설 ‘불멸’,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삶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본 장편소설 ‘무의미의 축제’도 유명하다. 장편소설 ‘향수’는 체코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레나와 덴마크로 망명한 조제프가 프라하에서 보낸 며칠을 변주곡처럼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삶은 다른 곳에’, ‘배신당한 유언들’, ‘이별의 왈츠’, ‘느림’, ‘정체성’도 사랑받았다. 국내에선 민음사가 15권으로 이뤄진 고인의 전집을 출간한 바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인 갈리마르는 생존 작가에게는 매우 드물게 할애하는 ‘플레이아드 총서’에 쿤데라 전집을 포함했다. 2020년 체코에서 작가에게 주는 최고 문학상인 카프카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메디치상, 아카데미 프랑세즈상, 프랑스국립도서관상을 받았다. 고인은 인터뷰를 비롯해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리며 살아왔다. 끊임없이 정치적 색깔에 대한 질문을 받아 온 고인은 언제나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가수 나훈아(76)가 새 앨범 ‘새벽’(사진)을 10일 발표했다. 지난해 2월 55주년 기념 앨범 ‘일곱 빛 향기’를 발표하고 수록곡 ‘맞짱’ ‘Change(체인지)’의 뮤직비디오를 내놓은 지 1년 5개월 만이다. 새 앨범에는 ‘삶’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사랑이야’ ‘아름다운 이별’ ‘타투’ ‘가시버시’ ‘기장갈매기’ 등 총 6곡이 담겼다. 음원 플랫폼에 6곡의 음원, 유튜브에 뮤직비디오 6편이 공개됐다. 소속사 예아라는 “CD와 USB 음반은 추후 발매한다”고 밝혔다. 나훈아는 소속사를 통해 “새벽 별이 보이면 별을 헤며 시를 짓고, 새벽 비 내리면 빗소리 들으며 오선지에 멜로디를 담아 보기도 하고, 신곡 여섯 이야기는 모두 잠 못 드는 하얀 새벽에 지었다”고 밝혔다. 이어 “‘새벽’은 저에게 기타를 잡게 하고 피아노에 앉히기도 한다. 또는 눈 뜬 채 꿈을 꾸게도, 아픔을 추억하게 하여 술 한잔 하게도 만든다”고 했다. 또 “그렇게 오랜 세월을 ‘새벽’은 저를 잠 못 들게 했다”며 “늘 그랬듯이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신곡을 발표하면서 이 신곡들이 여러분께 작은 위로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걸그룹 마마무 멤버 화사(본명 안혜진·28·사진)가 대학 축제 공연 중 선정적인 안무를 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사실이 10일 알려졌다. 학부모 단체인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는 지난달 22일 화사를 공연음란 혐의로 서울 광진경찰서에 고발했다. 화사가 올해 5월 12일 성균관대 축제 무대에서 곡 ‘주지마’를 부를 때 대학생들이 보기 부적절한 안무를 했다는 것이다. 화사는 tvN 프로그램 ‘댄스가수 유랑단’ 촬영 중이었고, 해당 장면은 방송에서 편집됐다. 신민향 학생학부모인권보호연대 대표는 “변태적 성관계를 생각나게 하는 화사의 안무가 대학생에게 수치심과 혐오감을 줬다”고 밝혔다. 광진경찰서는 화사의 거주지를 담당하는 성동경찰서로 사건을 넘겼다. 성동경찰서는 화사의 안무가 음란행위에 해당하는지 검토한 뒤 화사에 대한 출석 조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화사 소속사인 피네이션 관계자는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마케터의 역량에 따라 책 판매량이 달라지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최근 출판계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책의 내용이나 만듦새만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 방식이 중요해져 젊은 마케터의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다. 다른 출판사 대표는 “출판사 근무 경력은 짧아도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지닌 젊은 마케터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했다. 최근 출판계에서 MZ세대 마케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마케터는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책을 소개하거나 행사를 기획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참신함을 무기로 온라인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MZ세대 마케터의 강점은 특히 SNS에서 발휘된다. 출판사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며 신간 소개를 하는 건 기본이다. 자신이 책을 마케팅한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회사와 관련된 일상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 구독자 14만 명인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선 마케터들이 즐겨 먹는 도시락이나 비타민 등 직장 생활에 필요한 물건과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한다. 조회 수가 38만 회에 이르는 영상도 있다. 홍보 수단을 바꾸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문학동네 임프린트 출판사 이야기장수는 메타의 새로운 SNS 스레드가 출시된 다음 날인 6일 바로 스레드 계정을 만들었다. 김수인 문학동네 마케터(25)는 “인스타그램보다 스레드가 마케팅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출판계에선 편집자에 비해 마케터 지망생이 적어 양질의 마케터 양성에 어려움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운영하는 출판인 예비학교인 서울북인스티튜트(SBI)에서 24명을 선발하는 편집자 과정에 올해 170명이 지원했다. 반면 24명을 뽑는 마케터 과정엔 60명만 지원했다. 경쟁률이 편집자 7 대 1, 마케터 2.5 대 1로 상당히 차이가 난다. 이광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다른 콘텐츠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능한 마케터를 스카우트하거나 신입 마케터를 키우는 것이 출판사의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장미를 작품에 자주 활용했다.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주인공 줄리엣은 “우리가 장미를 어떻게 부르든, 이름이 무엇이든 그 향기는 달콤할 것”이라고 말하며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한다. 소네트(짧은 정형시) 109번에선 “나의 장미여, 그대는 이 세상에서 나의 전부”라는 고백이 나온다. 보통 독자들은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읽으며 진한 자줏빛 꽃잎과 밝은 노란색 수술을 지닌 루고사 장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루고사는 18세기 후반에야 유럽에 전해졌다.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쓸 때 영국엔 여러 송이가 뭉쳐서 피는 아르테미스 장미나 꽃잎이 넓게 펼쳐지는 모스카타 장미가 많았다. 또 희곡 ‘한여름 밤의 꿈’엔 “향기 달콤한 머스크 장미”에 대한 예찬이 나오는데, 당시 영국 기후에서 머스크 장미는 늦여름에 개화했다. 식물학적으론 오류인 셈이다. 영국 출신 미술작가인 저자는 장미의 역사와 설화를 정리했다. 인류가 장미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건 기원전 22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다. 특유의 향기와 색으로 인간을 매료시킨 덕에 장미는 세계 곳곳에서 재배됐다. 영국 장미전쟁(1455∼1485년)에선 날카로운 가시로 인류를 위협했고, 밸런타인데이엔 달콤한 향기로 사랑을 전했다. 장미는 특히 예술가에게 사랑받았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장밋빛 손가락과 같은 새벽”이라는 문장으로 장밋빛을 자연에 비유했다.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는 그림 ‘잠자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성모’에서 가시를 제거한 장미를 그려 성모 마리아의 따뜻함을 강조했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화병에 담긴 장미를 담은 그림 ‘장미’를 통해 심신을 회복했다. 저자는 인류 역사와 예술 작품 곳곳에 자리 잡은 장미를 파고든다. 책장을 덮으니 장미 한 송이를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작가님 아니에요?” 지난달 30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2)를 우연히 만난 관람객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관람객들은 베르베르에게 사인을 요청하고, 함께 셀카를 찍었다. 이날 베르베르는 서울에서 ‘뮤지엄 산’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관람객들과 인사하곤 했다. 피곤하지 않냐고 물으니 베르베르는 능청스럽게 답했다. “문제없어요.” ‘베르베르의 조각들’은 장편소설 ‘개미’(1993년), ‘타나토노트’(1994년), ‘뇌’(2003년), ‘신’(2008년) 등으로 한국 독자에게 사랑받은 베르베르를 조명한 인터뷰집이다. 출판사 비미디어컴퍼니 직원들이 베르베르와 인연을 맺은 이들을 인터뷰해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가장 눈에 들어온 건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의 인터뷰다. 홍 대표는 1993년 ‘개미’를 출간할 때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책을 알렸다. 신문 형태의 16쪽짜리 홍보용 잡지를 만든 것이다. 신문 광고로 ‘개미’와 작가에 대한 퀴즈를 내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문의 전화가 쏟아져 업무를 못 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홍 대표는 1994년 ‘타나토노트’를 출간했을 땐 베르베르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당시 중소 출판사였던 열린책들로선 큰 비용을 들인 홍보 방식이었다. 교보문고 사인회에 독자 800명이 모일 정도로 화제가 됐다. ‘베르베르 현상’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홍 대표는 “마케팅이 없었으면 책이 5000부 정도 팔렸을까”라고 회고한다. 숭고한 영역일 것만 같은 문학 번역도 판매량 증가에 일조했다. 베르베르의 작품을 15년 동안 번역한 전미연 번역가는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번역가는 마케팅팀의 일원”이라고 단언한다. 독자의 연령, 성별, 직업을 고려해 문체를 바꿔 번역한다는 것이다. 특히 베르베르처럼 어려운 과학 이론을 쉬운 언어로 풀어쓰는 작가의 작품은 ‘가독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전 번역가는 강조한다. 베르베르 작품이 3500만 부가 팔렸는데 이 중 1300만 부를 한국 독자가 산 데엔 번역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가의 스킨십이다. 책 인터뷰에서 베르베르는 “책 홍보를 위해 떠나는 여행이 내겐 바캉스”라며 독자를 만나는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베르베르가 방한한 건 이번이 9번째다. 지난달 26일 한국에 온 베르베르는 이달 6일 출국할 때까지 여행, 사인회뿐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수백 명의 독자를 만났다. 꿀벌 그림을 그리고, 이름을 써주는 베르베르의 사인을 받은 독자라면 지난달 20일 출간된 장편소설 ‘꿀벌의 예언’(전 2권·열린책들)을 사지 않을 수 있을까. 베르베르에 대해 “한물갔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꿀벌의 예언’ 1권이 출간 직후 교보문고 종합 6위를 차지한 데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1998년 행정고시 재경직에 차석 합격했다.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며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배운 ‘지식’은 세계무대에선 쓸모없었다. 공무원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참석했다가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나 경제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다른 학생들과의 토론에 밀리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뭘 배웠냐”는 자괴감이 들었다.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다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20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하는 학생부원장으로 일하며 기업에서 채용할 만한 학생들을 추천해 달라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뜻 추천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이 상태니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고민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김영사·사진)를 지난달 25일 펴낸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47) 이야기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4일 만난 이 교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책을 쓴 이유를 묻자 “내가 기업인이면 한국 대학생들을 뽑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졸업을 늦추며 시간을 허비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어요. 학생들에게 아무리 조언해도 안 바뀌기에 학부모를 상대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책에서 그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취업시장은 급변하는데 아직도 소위 명문대 입시에 목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학벌 지상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깨달았다”며 “서울대를 나와도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전문성이 낮으니 해외 취업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가 제시하는 건 ‘투자수익률’이다. 대학에 진학할 때 상위권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아무 학과나 선택하는 게 아니라, 공학 등 취업률이 높은 과에 진학하라는 것이다. 화학공학, 컴퓨터공학 등 미국 취업시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 과에 진학하는 것도 해외 취업에 도움이 된다. 그는 2021년 구글이 주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 AI 개발자 기술 경연대회 ‘캐글’에서 우승하며 이런 점을 깨달았다. “졸업 후 삼성에 취업하고 싶다고 막연히 말하는 학생이 많아요. 하지만 삼성에 가서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정한 학생들은 거의 없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하면 삼성이 아니라 애플에서도 일할 수 있어요.” 그는 영어 유치원 등 영어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가계 경제에 무리가 돼 부부싸움을 벌이지 않는 수준으로만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또 “스스로 자산을 투자하고 대출받는 성인에게 통계 지식이 필수인 시대라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초고난도 ‘킬러 문항’을 내지 못하게 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보단 이상하게 꼬고 또 꼬아서 아이들이 못 풀도록 넘어뜨리려는 질 낮은 문항이 출제되는 상황을 바꿔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부모에게 당부했다. “학교 성적만큼 자녀의 정신적 건강도 생각해 주세요.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는다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어도 대학원 진학, 취업,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1998년 행정고시 재경직에 차석 합격했다.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며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배운 ‘지식’은 세계무대에선 쓸모없었다. 공무원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참석했다가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났지만, 다른 학생들과의 토론에 밀리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뭘 배웠냐”는 자괴감이 들었다.미국 메릴랜드주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다 2016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2020년부터 서울대 국제대학원 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하는 학생부원장으로 일하며 주위 기업에서 채용할만한 학생들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선뜻 추천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이 상태니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고민이 들었다. 지난달 25일 대중교육서 ‘대한민국의 학부모님께’(김영사)를 펴낸 이수형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47) 이야기다.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이 교수는 질문에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똑순이’ 자체였다. ‘왜 학부모를 대상으로 책을 썼냐’고 묻자 그는 “내가 기업인이면 한국 대학생들을 뽑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대학에서 졸업을 늦추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어요. 학생들에게 아무리 조언해도 안 바뀌기에 학부모를 상대로 책을 쓰자고 생각했죠.”신간에서 그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취업 시장은 급변하는데 소위 명문대 입시에 목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학벌 지상주의’의 폐해를 여실히 깨달았다”며 “서울대에 나와도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전문성이 낮으니 해외 취업도 불가능하다”고 했다.그가 제시하는 건 ‘투자수익률’이다. 대학에 진학할 때 학교 순위를 높이기 위해 무분별하게 과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공학 등 취업률이 높은 과에 진학하라는 것이다. 화학공학, 컴퓨터공학 등 미국 취업 시장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 과에 진학하는 것도 해외 취업에 도움이 된다. 그는 2021년 구글이 운영하는 세계 최대 규모 AI 경진대회 ‘캐글’ 데이터 분석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런 점을 깨달았다.“졸업 후에 삼성에 취업하고 싶다고 막연히 말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하지만 삼성에 가서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정한 학생들은 거의 없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하면 삼성이 아니라 애플에서도 일할 수 있어요.”그는 영어 유치원 등 영어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가계 경제에 무리가 돼 부부싸움을 벌이지 않는 수준으로만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스스로 자산을 투자하고 대출받는 성인에게 통계 지식이 필수인 시대라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고교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초고난도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정책에 대해선 “질이 떨어지는 문항이 출제되는 상황을 바꿔야한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부모에게 당부했다.“학교 성적만큼 정신적 건강을 생각해주세요.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는다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어도 대학원 진학, 취업, 사회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유명 소설가이자 독일 철학자인 페터 비에리(필명 파스칼 메르시어)가 최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79세. 독일 방송사 NDR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달 27일 독일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출판사가 고인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알려졌다. 1944년 스위스 베른 출생인 고인은 버클리대, 하버드대, 베를린자유대 등에서 연구 활동을 했고 베를린자유대 언어철학 교수를 역임했다. 1995년부터 파스칼 메르시어란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해온 고인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된 계기는 2004년 출간된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고전문학을 강의하던 교수 그레고리우스가 낯선 여인을 구한 뒤 그녀가 남긴 책에서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발견하고, 그 열차에 몸을 실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세계 40여개 이상 언어로 번역 출간돼 수백만 부 판매됐다. 특히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2013년 빌리 어거스트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 외에도, 철학자였던 그는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자유의 기술’ ‘자기 결정’ ‘삶의 격’ 등을 출간했다. 특히 고인은 인간의 존엄성을 주목한 ‘삶의 격’으로 독일 최고의 철학 에세이에 주어지는 트락타투스상을 받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형식으로 인공지능(AI)의 문제점을 꼬집고 싶었습니다.” 한국계 미국 작가 류진선(43·사진)이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4일 열린 그래픽노블 ‘파워 온’(한길사)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AI의 부정적 측면을 미래 AI 사용자인 청소년에게 알리고 싶어 책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10대들은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딥페이크 기술로 만들어진 허위 조작 정보를 접한다”며 “미국이나 한국 모두 어느 때보다 AI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시각환경을 공부하고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UCLA에서 교육 연구원으로 인종 다양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UCLA 동료 연구원인 제인 마골리스와 관련 연구를 진행하다 함께 신간을 쓰게 됐다. “최근 미국 청소년들을 상대로 AI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연구한 적이 있어요. 실제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픽노블이라면 아이들도 문제를 인지할 수 있을 것 같아 책을 썼죠.” 신간은 AI를 공부하는 미국 고등학생 4명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AI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깨닫는 과정을 다뤘다. 고등학생들은 AI가 심사한 미인대회에서 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참가자가 탈락하고, 하얀색 가면을 써야만 AI가 흑인의 얼굴을 인식하는 문제를 깨달으며 위험성을 인지한다. 백인 이미지 위주로 AI 학습이 이뤄지면서 생겨난 문제였다. 그는 “과학기술을 이용한 얼굴 인식 시스템에서 흑인이나 아시아인의 얼굴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AI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하니 차별과 불평등한 요소가 있어도 이를 걸러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출신 어머니와 엘살바도르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크리스틴이 인종 문제에 분노하는 책 속 장면에서는 작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나의 개인적 경험과 생각이 녹아들었다”며 “AI 개발을 하는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에 다양한 인종이 일하지 않는다면 AI에 담긴 인종차별은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AI를 설계하는 컴퓨터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도 당부했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컴퓨터 과학자가 만들어 낸 기술에 윤리적 문제가 있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나쁜 기술에 이용당하지 않고, 제대로 된 기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3일 서울 성동구 복합 문화공간 에스팩토리.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미디어아트 전시 ‘생각 지상주의자들의 요람’에 들어서자 책으로 쌓은 거대한 탑이 눈에 들어왔다. 중고서적 약 6000권으로 쌓은 ‘생각의 탑’이다. 장편소설 ‘1Q84’(2009∼2010년·문학동네), 인문서 ‘팩트풀니스’(2019년·김영사) 등 중고책 하나하나엔 독자들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예스24의 창립 24주년을 기념해 이날 개막한 전시의 주제는 ‘요람’으로, 작가 7명이 책에 관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미래 작가는 A4용지 33만6000장을 쌓은 작품을 내놓았다. 관객들이 종이를 자유롭게 가져가면 형태가 변하도록 설계된 이 작품은 독자와의 소통을 상징한다. 김선익 작가는 소설가 박완서(1931∼2001)의 장편소설 ‘나목’(1970년)을 읽고 영감을 받아 찍은 나무 사진을 전시했다. 빠키 작가는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의 소설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2016년·민음사)를 읽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설치미술 작품을 만들었다. 김태중 작가는 대형 스피커 표면에 책 표지를 그렸고, 가수 나얼은 LP앨범을 자르고 분리해 책 모양으로 다시 구성했다. 예술그룹 소효소는 분홍, 파랑, 노랑 등 다양한 조명을 활용해 책의 상상력을 상징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에는 독자들이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전시를 관람하도록 곳곳에 빈백(모양이 자유롭게 변하는 1인용 소파)이 배치됐다. 최세라 예스24 대표는 “책에 대한 예술작품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독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16일까지, 2400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앙샹테!” 지난달 30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 남색 면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2)가 등장하자 독자 40명이 ‘반갑다’란 뜻의 프랑스어 인사말을 외쳤다. 베르베르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답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장편소설 ‘개미’(1993년), ‘타나토노트’(1994년), ‘뇌’(2003년), ‘신’(2008년) 등으로 사랑받은 베르베르가 한국 독자와 함께 뮤지엄 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곳은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82)가 설계했다. 행사는 접수 시작 하루 만에 40명의 정원이 마감됐고 “추가 신청을 받아 달라”는 문의가 쏟아졌다. 12세 아들, 10세 딸과 함께 참가한 이정민 씨(43)는 “아이들에게 베르베르와 만나는 기회를 주고 싶어 재빠르게 신청했다”고 했다. 베르베르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돼 3500만 부가 팔렸다. 이 중 1300만 부가 한국에서 판매됐을 정도로 그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이 뜨겁다.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9번째다. 가장 어린 참가자는 18개월 남자아이, 최연장자는 61세 여성이었다. 18개월 아들과 행사에 온 강시연 씨(36)는 “독특한 과학적 상상력에 베르베르의 작품에 빠졌다. 아이가 크면 그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딸과 함께 참여한 권경숙 씨(59)는 “베르베르의 작품은 읽기가 쉬워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베르베르와 독자들은 뮤지엄 산의 대표 공간인 제임스터렐관을 둘러봤다. 미국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80)이 빛을 다양하게 해석한 곳이다. 실제로는 낭떠러지지만 멀리서 보면 벽처럼 보이는 호라이즌룸에 들어서자 베르베르는 “흥미롭다”며 감탄했다. 베르베르는 함께 셀카를 찍자고 요청하는 독자들과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었다. ‘개미’가 한국에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어린 독자도 여럿 눈에 띄었다. 한지수 양(12)은 “부모님 없이 혼자 참석했다. 3년 전 ‘개미’를 읽고 작가에게 빠졌다”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온 박우진 군(11)은 “집 책장에 있는 ‘개미’를 쓴 작가를 만나니 책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웃었다. 카페로 이동한 베르베르는 즉석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베르베르는 20일 국내 출간한 장편소설 ‘꿀벌의 예언’(전 2권·열린책들) 집필 계기에 대해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늦은 저녁 헤어졌다. 베르베르는 “한국을 사랑하는 작가로서 한국 팬들과 함께 여행하는 건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독자들과의 소통 덕에 영감이 마구 솟아나는 것 같다”고 했다. 베르베르는 1일 또 다른 독자 40명과 제주 송악산 둘레길을 걸었다. 홍유진 열린책들 기획이사는 “독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베르베르를 만나는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원주=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앙샹떼(Enchanté)!” 지난달 30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 남색 면바지에 흰 티셔츠를 걸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2)가 등장하자 독자 40명이 두 손을 흔들며 ‘만나서 반갑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인사말을 외쳤다. 베르나르가 한국어로 또박또박 “안녕하세요”라고 답하자 독자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장편소설 ‘개미’(1993년), ‘타나토노트’(1994년), ‘뇌’(2003년), ‘신’(2008년) 등으로 한국 독자의 사랑을 받은 베르베르가 한국 독자와 함께 뮤지엄 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뮤지엄 산은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가 건축 설계한 공간이다. 행사는 지난달 17일부터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하루 만에 40명의 정원이 마감됐다. 가격은 16만2000원이지만 “더 신청을 받아달라”는 문의가 쏟아졌다. 12세 아들, 10세 딸과 함께 참가한 이정민 씨(43)는 “어릴 적 읽었던 ‘개미’를 보물처럼 집에 보관하고 있다”며 “아이들에게 베르나르와 만나는 기회를 주고 싶어 재빠르게 신청했다”고 했다. 이날 오전 서울에서 출발한 독자들은 원주시 소금산 출렁다리를 관광한 뒤 오후 뮤지엄 산에서 베르나르를 만났다. 환영 인사를 나눈 베르나르와 독자는 함께 뮤지엄 산의 대표 공간인 ‘제임스터렐관’을 둘러봤다. 미국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80)이 빛을 다양하게 해석한 이곳은 일부 공간에 조명이 없다. 어둠이 가득한 곳을 살을 맞댄 채 걸으니 독자와 작가 사이의 거리감이 사라졌다. 실제로는 낭떠러지지만, 멀리서 보면 벽처럼 보이는 ‘호라이즌룸’에 들어서자 베르나르는 “흥미롭다”고 감탄을 내뱉었다. 옆을 걷던 한 독자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치자 베르나르는 웃었다. 베르나르는 함께 셀카를 찍자고 요청하는 독자들과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었다. 이후 베르나르는 독자들과 카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로 이동했다. 베르나르는 카페에 있는 피아노로 즉석 연주를 시작했다. 능숙하고 감미로운 선율이 울려 퍼지자 독자들은 박수를 쏟아냈다. 베르나르는 카페에 앉아서 이달 20일 국내 출간한 장편소설 ‘꿀벌의 예언’(전 2권·열린책들) 집필 계기에 대해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늦은 저녁 독자들과 헤어졌다. 베르나르는 “한국을 사랑하는 작가로서 한국 팬들과 함께 여행하는 건 독특한 경험이었다”며 “독자와의 소통 덕에 영감이 마구마구 솟아나는 것 같다”고 했다. 가장 어린 참가자는 생후 18개월 남자아이, 최연장자는 61세 여성이었다. 18개월 최연소 참가자의 엄마인 강시연 씨(36)는 “어릴 적부터 베르나르의 책을 10종 이상 읽은 독자”라며 “남편과 18개월 아들을 데리고 참가했는데, 아이가 크면 베르나르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려 한다고 했다”고 했다. 권경숙 씨(59)는 “베르나르를 좋아해 33세 딸과 함께 참가했다”며 “작가만 일방적으로 말하는 강연과 달리 이번 행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소통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개미’가 한국에 출간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어린 독자도 많았다. 한지수 양(12)은 “부모님 없이 혼자 행사에 참석했다”며 “3년 전 ‘개미’를 읽고 베르나르에게 빠졌는데 작가가 내 곁에 있다니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박우진 군(11)은 “엄마와 행사에 참가했다”며 “집 책장에 있는 ‘개미’를 쓴 작가를 만나다니 책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웃었다. 베르나르는 1일엔 다른 독자 40명과 제주 송악산 둘레길을 걷고 이야기를 나눴다. 홍유진 열린책들 기획이사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인 만큼 새로운 기획에 독자들의 호응이 뜨거웠다”며 “앞으로도 독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베르나르를 만나는 행사를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원주=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정말 보고 싶었어.” 여자가 ‘다시 살아난’ 남편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여자의 남편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 여자 앞엔 죽기 전 남편과 똑같이 생긴 인공지능(AI) 남편이 서 있다. 금발에 흰 피부는 남편의 모습 그대로다. 다정하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말투도 똑같다. 남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겼던 데이터를 학습시킨 덕이다. 여자는 남자를 끌어안고 함께 밥을 먹는다. 밤에 같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는 의문이 든다. 정말 지금 여자 곁에서 숨 쉬는 남편은 죽기 전 남편과 완전히 같을까. 넷플릭스 공상과학(SF) 시리즈 ‘블랙미러’의 에피소드 ‘돌아올게’ 이야기다. 이 책은 이 같은 드라마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람의 정보를 학습시켜 사람과 유사하게 만든 AI인 ‘디지털 클론’의 세계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미국 에미상 후보에 올랐던 독일 다큐멘터리 감독 2명이 디지털 클론의 명암을 추적했다. 저자들이 먼저 만난 건 유족이다. 미국의 변호사 제임스는 디지털 클론 기업을 통해 폐암으로 숨진 아버지의 기억을 AI에게 학습시켰다. 아버지의 평소 습관, 농담, SNS 기록을 AI에게 입력했다. 이렇게 탄생한 ‘데드봇’을 통해 제임스는 아버지와 스마트폰 채팅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AI 아버지는 실제 만질 수는 없다. 하지만 ‘데드봇’은 “거짓말”이라며 장난을 치는 아버지와 똑같은 습관을 지녔다. “선술집에서 먹었던 바비큐가 기억나느냐”며 제임스와의 옛 기억을 꺼내기도 했다. 제임스는 “아버지의 말투와 유머와 기억을 바탕으로 한 데드봇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받고 있다”며 “대화할 때마다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디지털 클론이 대두된 건 첨단 과학기술 덕이다. 인간의 기억을 저장해 분류한 뒤 자유롭게 찾아주는 기술인 ‘메멕스’는 최근 빠르게 발전했다. AI가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교감하도록 돕는 ‘감성 컴퓨팅’, 인간의 뇌에서 추출한 정보를 바로 컴퓨터에 옮기는 ‘마인드 업로딩’은 디지털 클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는 기억을 이식한 챗봇과 대화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곧 인간의 목소리와 생김새를 지닌 진짜 디지털 클론이 나올지 모른다고 저자들이 예측하는 이유다. 슬픈 건 디지털 클론을 만드는 데 돈이 든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0년 죽은 사람의 성격을 모방, 학습할 수 있는 챗봇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현재 챗봇 형태의 디지털 클론을 찾은 유족은 대부분 부유한 남성이다. 가까운 미래에 넷플릭스를 구독하듯 매달 이용료를 내고 고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디지털 납골당’이 등장할지 모른다고 저자들은 예견한다. 모든 일엔 돈이 들지만, 애도하는 데에도 빈부 격차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씁쓸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공연예술로 영역 넓히는 AI ‘로봇’은 100여 년 전 체코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처음 사용됐다. 허무맹랑하다고 여겼던 상상은 오늘날 로봇이 지휘하고, 인공지능(AI)이 희곡을 쓰며 현실이 됐다. 인간의 창조적 영역인 예술을 기술이 대체할 수 있을까.》가장 ‘아날로그적’인 예술로 꼽히는 공연계에도 로봇과 인공지능(AI) 바람이 불고 있다. 소설, 만화, 음악 등에 이어 사람과 현장이 핵심이라 여겨지던 공연 장르에서 신기술을 적극 시도하기 시작한 것. 지난해 생성형 AI인 챗GPT가 공개된 이후 인간의 가장 창조적 활동으로 여겨진 종합예술의 영역을 AI가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담론이 급속히 확산 중이다.● AI가 제작에 참여한 무용과 연극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한 무용수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반대편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이를 지켜보던 이영철 국립발레단 지도위원은 안무 AI ‘리빙 아카이브’를 켜고 카메라로 무용수의 몸짓을 찍었다. 무용수의 골격을 인식한 AI가 해당 동작과 연결하기 좋은 동작들을 순식간에 추천해줬다. 안무가마다 1명씩 붙는 어시스턴트 역할을 일부 대신해준 것이다. 이 위원은 그중 가장 매끄럽게 이어질 움직임끼리 조합해 무용수에게 제시했다. 거울 앞에 선 무용수는 춤을 따라 춰보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낼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국립발레단이 1,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이는 ‘KNB 무브먼트 시리즈8’의 ‘피지컬 싱킹+AI’는 이런 방식을 거쳐 창작됐다. 전반적인 콘셉트는 챗GPT가 구상했다. 챗GPT에 ‘탄생, 연결, 여행자’ 등의 키워드를 주고 ‘한 사람의 인생과 AI의 탄생을 엮은’ 짧은 이야기를 써달라고 한 것. 이를 토대로 이 위원이 구글 리빙 아카이브와 아이바(AIVA·작곡 프로그램) 등 AI를 활용해 안무와 음악을 구성했다. 이 위원은 “안무가들도 자기 스타일을 벗어난 동작을 상상하는 데 한계가 있다. AI가 나열한 수만 개의 동작을 보면서 안무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어 “AI가 전문 안무가의 수준까진 따라잡지 못했지만, 비전공자를 비롯해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는 데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연습실에선 푸른 불빛이 깜박이는 로봇 지휘자가 양손을 부드럽게 들어 올리자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 60여 명의 시선이 동시에 그의 손끝을 향했다. 로봇 지휘자는 국내 최초로 공연의 연주를 지휘하는 안드로이드 ‘에버6’다. 에버6는 단원들의 연주를 이해한다는 양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관현악단 대표 레퍼토리인 ‘말발굽 소리’를 차분하게 이끌었다. 북이 울리고, 국악기 선율이 휘몰아치는 절정에 치닫자 에버6의 지휘봉은 더 높은 곳을 찌르며 빠르게 움직였다. 깔끔한 비팅(beating·박자 젓기)과 정확한 템포는 마치 인간 지휘자를 보는 것 같았다. 다만 에버6는 실제로 소리를 듣지 못하는 데다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움직일 수 있어 연주자들과 실시간 호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에버6의 지휘로 화제가 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Ⅳ―부재(不在)’가 30일 1200여 석 규모의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됐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에버6는 먼저 대표 레퍼토리 2곡(말밥굽 소리, 깨어난 초원)을 단독으로 지휘한 뒤 지휘자 최수열이 이끄는 즉흥곡 ‘감’의 패턴 지휘를 도왔다. 애버6를 개발한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정예지 지휘자를 학습모델로 삼은 에버6는 모션 캡처, 모션 최적화 등 기술을 통해 지휘봉의 궤적을 학습했다”며 “로봇 특유의 딱딱한 관절 움직임이 ‘불쾌한 골짜기(The uncanny valley·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를 불러일으키는 것과 달리 에버6는 인간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따라 할 수 있어 정서적 교감이 비교적 쉬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극작가와 연출가의 상상력을 토대로 살아 있는 배우, 스태프들이 무대를 완성하는 연극 역시 AI의 밀물을 막을 수 없다. AI가 쓴 시를 연극으로 만든 ‘인공지능 시극 파포스 2.0’이 다음 달 10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코트’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시 창작 AI ‘시아’가 주어진 시제에 맞춰 시를 쓰고, 챗GPT가 이를 대본화하면 연출가와 소설가가 다듬어 극을 완성한다. 배우 3명이 연기하고, 무용수 2명과 연주자 5명이 퍼포먼스를 곁들인다. 작품의 연출가인 김제민 서울예대 공연학부 교수는 “AI의 논리적인 사고방식과 시극 창작이 대척점에 놓여 있을 것 같지만, 사람이 시를 쓸 때 언어적 규칙이 깨지는 양상은 AI에 오류가 발생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AI 창작, 인간 감수성 대체하기엔 한계하지만 공연계 현장에서는 ‘AI가 예술가를 대체하기엔 아직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글쓰기, 작곡 등 혼자서도 가능한 창작 영역과 비교해 다수가 출연하는 연극 무용 등의 장르는 언어 너머 교감을 통한 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로봇 에버6와 함께 관현악단 연주를 이끈 최수열 지휘자는 “정확한 박자 계산은 로봇이 유리하더라도 순간적으로 박자를 밀고 당기는 루바토, 시선 교환을 통한 단원들과의 소통은 인간을 능가하지 못함을 체감했다”고 했다. 이어 “리허설 초반 에버6의 지휘가 자꾸만 빨라진다고 느꼈는데 오류가 아니었다. ‘인간’ 단원들의 자연스러운 호흡 속도에 맞출 줄을 몰랐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립발레단의 ‘피지컬 싱킹+AI’ 역시 작곡AI인 아이바가 만든 음악의 완성도가 떨어져 결국 기본 선율은 쓰되 별도의 작곡가가 곡을 완성시켰다. 2017년 지휘 로봇 ‘유미’가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와 호흡을 맞춰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를 공연했을 때 유미의 학습 모델이었던 지휘자 안드레아 콜롬비니는 “팔만 갖고 있을 뿐 영혼이 없어 인간 지휘자의 감수성을 대체할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판도가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는 전망과 함께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제민 교수는 “불과 2, 3년 전만 해도 공연 제작에 AI를 들인다는 건 엉뚱한 시도로 여겨졌지만 최근 AI의 학습 속도, 데이터 수집 방식 등이 급격히 발전하며 공연계에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있다”며 “AI를 인간과 대립하는 존재로 치부하기보단 창작 영역을 확장하는 도구로 보고 어떻게 활용할지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AI를 관객 수요나 유행을 분석하는 보조자로서 활용한다면 공연 한 편을 올리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효율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동안 가장 호응이 높았던 조명 작동 방식’을 쉽고 빠르게 찾아내는 것”이라며 “작곡과 노래는 사람이 하되 반주는 AI가 하는 식으로 인간이 기술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공연계가 강조해왔던 ‘인간성’의 정의를 재정립하는 작업이 선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연은 무대 위 신체의 등장, 관객과 동시에 호흡하는 현장성이 중요한 장르인 만큼 작품 주제 선정과 제작 방식 모두 인간 중심적 사고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은경 연극평론가협회장은 “향후 AI가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사고를 하게 된다면 단지 인간의 수단으로만 볼 수 없다. 기술 발전이 어차피 당면해야 할 과제라면 AI가 우리 삶과 어떻게 상생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맞다”며 “지금까지의 예술이 로봇과 동식물 등 인간 외의 존재들을 배제한 채 인간성을 논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문학-웹툰-음악… 예술 분야 급속히 퍼지는 ‘AI 창작’ 바람 인공지능 활용 창작, 어디까지 왔나“효율성에 창의성 북돋워” 평가 속가짜 음원-작가 파업 등 논란도 커신기술 창작 활용 규정 속속 마련 최근 인공지능(AI)은 공연계뿐 아니라 예술 창작 전반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문학이다. 질문을 던지면 답을 내놓는 대화형 AI ‘챗GPT’를 활용해 글을 짓는 방식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2012년 중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모옌은 지난달 19일(현지 시간) 챗GPT를 활용해 시상식에서 발표할 글을 작성했다고 고백해 충격을 줬다. 7명의 인간 작가가 챗GPT로 창작한 단편소설집 ‘매니페스토’(네오북스)가 올 4월 출간되는 등 국내 작가도 활발히 AI를 활용하고 있다. 웹툰 업계에서도 AI는 화두다. 네이버웹툰이 2021년 10월 출시한 ‘AI페인터’는 웹툰 30만 장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배경 등에 자연스럽게 색상을 입혀주는 기능을 갖췄다. 명령어를 쓰면 10초 만에 이미지 여러 장을 만드는 ‘노블AI’도 웹툰 작가를 돕는다. ‘공포의 외인구단’(1983년) 등으로 한국 만화계를 이끈 이현세 화백은 지난해 10월부터 44년 동안 창작한 만화책 4174권을 컴퓨터에 학습시켜 자신의 그림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는 ‘AI 이현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화백은 “AI에 내 그림을 학습시키면 (내 작품 창작이) ‘불멸’, ‘영생’할 수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음원 창작 분야에서도 AI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음원 서비스 기업인 지니뮤직은 28일 AI 기술을 활용한 악보 기반 편곡 서비스 ‘지니리라’를 선보였다. 노래 음원을 입력하면 AI가 즉석에서 악보를 따 주고 편곡까지 가능하게 해 준다. 김형석 작곡가의 대표곡을 AI로 편곡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김 작곡가는 “AI는 효율적인 제작 방식을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북돋는 영감까지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AI 활용에 따른 논란도 일고 있다. 네이버웹툰에 지난달 22일 처음 공개된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은 AI를 활용해 보정 작업을 거친 사실이 알려져 독자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올 4월 유명 가수 드레이크와 위켄드가 함께 부른 것처럼 보이는 신곡이 음원 플랫폼에 올라왔다가 AI로 만든 음원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삭제되기도 했다. 미국작가조합(WGA) 소속 작가들이 지난달 17일(현지 시간) “AI는 문학(대본 창작)에 사용될 수 없고, 작가들의 작업물은 AI 학습 훈련에 쓰이면 안 된다”며 파업을 벌일 정도로 반발도 적지 않다. AI 활용을 일부 제한하는 규정도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의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는 17일(현지 시간) 인간의 기여가 크지 않은 AI 곡이라면 상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네이버웹툰은 정식 연재 작가들에게 생성형 AI를 활용하지 말아 달라고 권고하고, 공모전 도중 ‘생성형 AI 활용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새로 세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9월까지 ‘저작권 관점에서의 AI 산출물 활용 가이드’(가칭)를 마련해 AI 기술 발전에 따른 저작권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