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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군위안부였다.’ 1991년 8월 고 김학순 할머니(1924∼1997)가 이처럼 아픈 과거를 증언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1975년 10월 일본 오키나와(沖繩)에 배봉기 할머니(1914∼1991)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1970년대에 야마타니 데쓰오(山谷哲夫·71) 감독이 배 할머니를 인터뷰한 기록영화 ‘오키나와의 할머니’를 아는 사람은 더 드물다. 7일 이 영화가 일본 도쿄 시부야의 소형 극장에서 상영됐다. 배 할머니가 원해서 과거를 드러낸 건 아니었다. 1944년부터 오키나와의 외딴섬 도카시키(渡嘉敷)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다가 종전을 맞았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1975년 불법체류로 강제추방 위기에 처하자 당국에 자신의 사연을 밝혔다. 특별영주 자격을 얻은 뒤 현지 신문에 가명으로 응한 인터뷰에서 그는 “전쟁터에서의 일이 부끄러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78년 야마타니 감독이 찾아간 할머니는 사탕수수밭 한가운데 두 평도 안 되는 헛간 같은 집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일 별로 안 하고 돈 버는 곳에 가지 않겠느냐고 해서 속았다. 배를 탄 뒤에야 오키나와로 간다는 걸 들었다.” 할머니는 함께 간 조선 여성 6명과 함께 위안소에서 지내는 동안 ‘아키코’라고 불렸다. 병사들 중 가끔 팁이나 비누를 주는 사람은 있었어도 관리자로부터 돈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영화는 당시 도카시키섬의 위안소 흔적도 찾아갔다. 위안소 옆집에 살던 43세 아들은 “난 그때 8, 9세 때여서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훗날 그게 위안소였다는 걸 알고 나니, 그 누나들이 정말 안됐더라”고 말했다. 69세가 된 그의 어머니는 조선인 위안부 7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으며 그들이 “이런 게 아니었는데”라며 자주 울었다고 전했다. “식당 일 돕는 줄 알고 왔는데 이런 일이었다니, 정말 불쌍했다.” 야마타니 감독이 이 영화를 찍던 1970년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전이었다. 피해자를 수소문하던 중 만난 최창규 전 건축가협회 회장(당시 59세)은 “일본의 제 또래 남성들이 진상을 알면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어 심히 유감”이라며 자신이 보고 들은 위안소의 실상을 증언해줬다. ‘오키나와의 할머니’는 최소한의 편집만 된 다큐멘터리지만 7일 상영회는 58석 전석이 매진됐다. 관객 도야마 고이키(外山小粹·23) 씨는 “전쟁이 여성에게 어떻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했고, 그 폭력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어떻게 이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도토리 다쿠야(都鳥拓也·35) 씨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고 아직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며 “영화의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나는 종군위안부였다.’ 1991년 8월 고 김학순 할머니(1924~1997)가 이처럼 아픈 과거를 공개 증언해 큰 반향을 불렀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1975년 10월 일본 오키나와(沖繩)에서 자신의 과거를 밝힌 배봉기 할머니(1914~1991)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1970년대에 야마타니 데쓰오(山谷哲夫·71) 감독이 그를 인터뷰한 기록영화 ‘오키나와의 할머니’를 아는 사람은 더 드물다. 7일 이 영화가 도쿄 시부야의 소형 극장에서 상영됐다.○“전쟁터에서의 일이 부끄러워 고국에 돌아갈 수 없었다” 배봉기 할머니는 원해서 과거를 드러낸 건 아니었다. 1944년부터 오키나와의 외딴 섬 도카시키(渡嘉敷)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다가 종전을 맞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 남았다. 글을 모르는 처지라 호적도 없이 떠돌다가 1975년 불법체류로 강제추방 위기에 처하자 당국에 자신의 사연을 밝히고 그곳에 살게 해달라고 탄원했다. 결국 특별영주자격을 얻은 할머니는 당시 현지 신문에 가명으로 응한 인터뷰에서 “전쟁터에서의 일이 부끄러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78년 야마타니 감독이 배 할머니를 찾아갔다. 그는 이듬해까지 4차례에 걸쳐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할머니는 사탕수수밭 한가운데 두 평도 안 되는 헛간 같은 집에서 질병과 싸우며 홀로 살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일 별로 안 하고 돈 버는 곳에 가지 않겠느냐고 해 속은 거지요. 일러주는대로 부산에 갔는데 숙소에 여자들이 잔뜩 있더라구요. 70여 명은 됐어요. ‘곤도’라는 사람이 여자들을 계속 모으며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했습니다.(배 할머니)” 일본어를 전혀 모르던 그는 배를 탄 뒤에야 오키나와로 간다는 걸 들었다고 했다. 함께 간 6명의 조선여성들과 함께 도카시키섬의 위안소에서 지내는 동안은 ‘아키코’라 불렸다. 할머니는 “다들 19~20살 전후였고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고 했다. “병사들은 일요일에 몰려왔어요. 모두 용무만 처리하고 갑니다. 입구에서 다른 병사들이 ‘빨리 나와라, 나와라’ 하는데….” 할머니는 병사들 중 가끔 팁이나 비누를 주는 사람은 있었어도 관리자로부터 돈을 받아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배봉기 할머니가 지냈던 도카시키 섬의 위안소 흔적도 담겼다. 1978년 감독이 찾은 이곳에는 위안소 옆집의 가족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43세 중년이 된 옆집 아들은 “난 그때 8, 9살 때여서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병사들이 늘 놀러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한참 지나서 그게 위안소였다는 걸 알고 나니, 그 누나들이 정말 안됐더라”고 말했다. 69세가 된 그의 어머니는 위안소의 조선인 위안부 7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으며 그들이 “이런 게 아니었는데”라며 자주 울었다고 전했다. “식당 일 돕는 줄 알고 왔는데 이런 일이었다니, 정말 불쌍했다.” 배 할머니는 인터뷰에서 늘 “내가 가난했던 탓”이라거나 “내 팔자가 그렇다”고 말했다.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7세 때부터 남의집살이를 시작했고 17세에 결혼했지만 실패한 뒤 조선 각지와 만주 등지를 떠돌아다녔다. 고생이 많았던 탓에 여생을 무서운 두통과 신경통,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두통이 심해지면 며칠을 집안에 틀어박혀서 소리를 질러 동네 아이들은 ‘미친 할머니’라 불렀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침묵하는… ” 야마타니 감독이 이 영화를 찍던 1978년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종군위안부 문제는 관심을 끌기 전이었다. “우연히 종군위안부 관련 사진을 본 뒤 작품 주제로 정했다. 몇 번이나 한국에 가서 피해자를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한국인이 유력한 증언을 해줬다.” 1978년 서울에서 만난 최창규 전 건축가협회 회장이 바로 그다. 그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육군 엔지니어로 중국에 파견돼 직접 위안소를 지은 적도 있다고 했다. “주로 뒷탈이 없을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이 속아서 갔다. 14~40세의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을 모았다. ‘대동아전쟁을 위해 남자는 모두 징용 나갔는데 여자는 가만히 있을 거냐. 군대 가서 세탁도 해주고 야전병원에서 붕대도 감고 하면 된다. 돈도 준다’며 꼬드겨서 대부분 위안부로 집어넣은 거다.”(최창규) 다큐멘터리에 담긴 그의 목격담은 처절할 정도로 생생했다. “위안소라 해도 가설주택이다. 한 평 반 정도의 방이 닭장처럼 이어져 있다. 병사들이 번호표를 사서 바깥에 일렬로 줄을 서서 순서대로 그 방에 출입하는 거다. 각기 시간이 5분에서 10분 정도. 한줄로 서서 ‘으으’하며 바깥에서는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자도 있을 정도다. 지금 우리들의 윤리라거나 이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특별한 환경에서의 남자들의 동물적인 행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실전이 있거나 부대이동이 있을 경우 심할 때는 여성 한명이 하루 17시간, 200명 이상을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감독이 위안부 피해자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최 회장은 “지금(1978년) 그들이 살아 있다면 50~60대다. 한국은 유교의 영향으로 도덕 윤리관이 강하다. 아무도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나서서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유감인 것은 일본의 제 나이 또래 남성들이 진상을 알면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경제대국이 됐지만 정말 대국이 되려면 이런 것들을 오픈하고 당당히 인정해야 한다.”○역사의 수레바퀴에 우롱당한 삶 영화에서 할머니는 패전 당시를 회상할 때 “일본군이 져서 분했다”고 하는 등 거대한 운명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모르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1989년 쇼와(昭和) 일왕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사과도 안하고 죽어버렸느냐”고 말하는 등 전쟁과 자신, 역사에 대한 의식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만년에는 현지의 조선총련 사람들이 할머니를 많이 도왔다고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우롱당한 할머니는 늘 고독했다. 1991년 10월 세상을 떠날 때도 혼자였다. 잠든 듯 세상을 뜬 할머니는 며칠 뒤에야 발견됐다. ‘오키나와의 할머니’는 최소한의 편집만 된 다큐멘터리로 자막조차 없다. 초점이 맞지 않거나 화면이 흔들리는 건 예사다. 하지만 지금도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7일 열린 상영회는 58석 전석이 매진됐다. 지난해 10월과 올 4월에 이은 세 번째 상영이다. 영화를 본 관객 도야마 고이키(外山小粹 ·23) 씨는 “전쟁이 여성에게 어떻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고, 그 폭력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자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도토리 다쿠야(都鳥拓也·35) 씨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고 아직도 보러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영화의 기술적 수준과 무관하게 찍힌 사람과 역사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존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볼 기회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도쿄=서영아특파원 sya@donga.com}
“요즘 젊은이들은요, 따뜻한 노천온천에 몸을 담근 원숭이들 같습니다. 뭔가 활동을 하려면 물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춥고 불편하니 그저 온천물에 잠긴 상태로만 있지요.” 몇 년 전 일본 언론사 고위직에서 은퇴한 지인은 요즘 자국 젊은이들의 소극성을 ‘온천 원숭이’에 빗대 흉봤다.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지적은 고대 파피루스에도 적혀 있다고 하지만 일본 젊은이들의 해외 기피는 좀 우려스러워 보이긴 한다. 27일 나온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 출국자 수는 1996년 1669만 명에서 2016년에는 1712만 명으로 늘었지만, 같은 시기 20대의 출국자 수는 463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줄었다. 일본의 글로벌 상사에서는 해외 근무를 기피하는 직원들 때문에 고심하는 이야기가 흔하다. 강제로 발령을 내면 즉시 회사를 그만둬 버리니 가뜩이나 일손 부족 시대에 인사 관리 어려움만 커진다. 반대로 영어를 잘하고 해외근무에 적극적인 한국 인재에게 찬탄이 쏟아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유학도 잘 안 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5년 통계에 따르면 해외에 나간 일본인 유학생은 5만4700여 명으로, 2004년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 문부과학성은 2014년부터 장학기금 ‘도약하자 유학 저팬’을 설치하는 등 지원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젊은이들은 왜 해외를 기피할까. 모든 게 갖춰진 일본이 편하기 때문이다. 한 대학이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해외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2001년 20%에서 2017년 60.4%로 늘었다. ‘외국어 구사에 자신이 없다’거나 가족 사정, 테러 같은 안전 문제 등이 이유였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기에 태어나 성장 과정 내내 ‘잃어버린 20년’을 목격한 이들 세대의 특성도 작용한다. 이들은 지레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큰 욕심 없이 안분자족(安分自足)하는 자세를 터득해 ‘달관 세대’라고도 불린다. 소비에 관심이 없어 내수시장 비중이 큰 일본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불쑥 닥쳐온 100세 시대도 한몫한 듯하다. 사회 전체가 늙어가는 현실 속에서 너도나도 ‘가늘고 길게 사는 인생’을 택한다는 인상이랄까.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인재가 줄면 가뜩이나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일본의 폐쇄성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급기야 일본 정부가 내년부터 관민 합동 대책협의회를 설치해 청년 해외 보내기 프로젝트에 나선다고 한다. 관광청과 문부과학성 등 관계 부처와 교육계, 경제계, 여행업계 관계자까지 머리를 맞대고 젊은층이 해외로 쉽게 나갈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용도 깨알 같다. 대학 측에는 학생들이 항공권이 싼 시기에 출국할 수 있도록 학기 중 해외 방문을 출석으로 간주하거나 수업 단위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유학 지원제도도 갖춘다. 해외 민간기업에서의 인턴십 참가제도를 적극 추진한다. 여행업계는 해외 자원봉사 등 체험형 여행 프로그램을 적극 만들어내도록 한다 등등. 여기 비하면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등 떠밀지 않아도 필사적으로 해외로 향한다. 이런 헝그리 정신이랄까 에너지가 남아 있는 건 고마운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에게는 일본 청년들처럼 마냥 몸을 담그고 있을 온천 같은 환경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만성적인 취업난을 타개한다며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막상 해외에 나가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게 되거나 다시 돌아와도 자리가 없는 현실이 우려스럽고 서글픈 일이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서일본 폭우로 막대한 침수 피해를 입은 오카야마(岡山)현 구라시키(倉敷)시 마비(眞備)정에서 20대 청년이 수상바이크로 주민 120여 명을 구해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아사히신문이 19일 보도했다. “어머니가 마비정 집에 혼자 남아 계세요. 좀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이미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버린 7일 점심 무렵. 마비정에서 5∼6km 떨어진 곳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던 나이토 쇼이치(內藤翔一·29·사진) 씨는 고향 출신 후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고향의 침수 피해 소식에 스스로도 ‘뭐라도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던 그는 취미로 즐기던 수상바이크를 떠올렸다. 자택에서 마비정은 차로 20∼30분 거리. “얼른 가 볼게.” 친구에게 수상바이크를 빌려 출발했다. 잠시 뒤 도착한 마비정은 흙탕물이 민가 2층 높이까지 차올랐고 수위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헬기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베란다나 지붕 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가 몇 m 지날 때마다 들려왔다. “살려줘요!” “여기 좀 봐줘요!” 그는 목소리를 향해 “좀 이따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외치고는 우선 후배의 어머니부터 구했다. 홍수에 남겨진 사람 대부분이 고령자들이라 바이크에 앉히려면 안아 올려야 하고 달리는 동안에도 뒤를 받쳐줘야 했다. 근처 지붕 위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이와타 씨(73) 부부에게 수상바이크가 다가왔다. 나이토 씨가 “아이들 먼저 옮기고 돌아올게요. 꼭 올 테니까, 그때까진 괜찮을 거니까, 조금만 더 버텨요”라고 외치고는 돌아갔다. 조금 뒤 약속대로 나이토 씨가 왔다. 부부가 바이크에 올라탈 때 그는 “할아버지, 제가 목숨 걸고 구한 거니까 오래 사셔야 해요”라며 어깨를 두드려 줬다. 이와타 씨는 “기뻐서 눈물이 나왔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15시간 동안 나이토 씨 팀은 모두 120여 명을 구조했다. 수상바이크는 상처투성이가 됐고 그사이 연료를 몇 번이나 보충했다. 필사의 구조를 계속한 탓에 마지막에는 전신이 쑤셔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나이토 씨의 활약상이 사진으로 남은 것은 이날 그에게 구조된 중학생 도미타 이쿠미(富田育海) 군이 “일반인에게 구조받았다”는 제목하에 이들의 모습을 찍어 트위터에 올린 덕이다. 훗날 피난소에서 취사 자원봉사를 하는 나이토 씨를 알아본 고령자들이 줄줄이 다가와 인사했다. 고령자들은 “마을의 영웅, 목숨의 은인”이라고 고마워했고, 나이토 씨는 “이것만으로도 그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에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을 요구한 가운데 일본 정유업계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는 절차에 들어갔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9일 보도했다. 은행과 해운회사들이 가장 먼저 움직이고 있다. 메가뱅크인 미쓰비시(三菱)UFJ은행은 최근 자국 정유회사들에 이란 자금 결제를 여름 내에 순차적으로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미즈호 은행도 결제를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달했다. 일본 정유업체들과 이란 사이의 거래는 메가뱅크를 통해 이뤄지므로 은행이 결제를 정지하면 정유회사들은 대금을 지불하기 어렵게 된다. 유조선을 통해 원유를 운반하는 일본 해운회사들도 자국 정유회사들에 9월까지만 이란산 원유를 운반하겠다고 통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거대 정유회사들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른 산유국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대이란 제재를 재개하는 11월 4일까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할 것을 일본 정유회사들에 직접 요구했으며 거래를 계속하는 기업은 함께 제재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란산 원유는 일본의 전체 수입량의 5%를 차지한다. 수입을 중단하더라도 원유의 안정적 공급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휘발유 가격이 상승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신문은 우려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주의 무역 정책이 거세지면서 ‘미국을 뺀 다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과 유럽연합(EU)은 전날 경제동반자협정(EPA) 체결을 계기로 다각도의 자유무역 포위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17∼19일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11) 수석교섭관 회의를 열어 신규 가맹국 참가 방법 등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태국 콜롬비아 영국 한국 등이 TPP 참가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 16개국이 참가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17일부터 태국 방콕에서 교섭회의를 시작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연내 합의를 목표로 하되 최종적으로는 정치 판단에 맡긴다는 항목을 정리한다. EU는 6월 호주, 뉴질랜드와 FTA 교섭을 시작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남미 4개국 경제공동체인 ‘메르코수르’와의 교섭도 진행하고 있다. 대서양과 태평양 양쪽에서 미국을 둘러싸는 거대한 자유무역권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신문은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미 보호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7월 하순경 미국과의 새로운 각료급 무역협의(FFR) 첫 회의를 앞두고 활발한 FTA를 무기로 미국을 자유무역권에 끌어들일 방침이다. 다국간 협정을 서두르는 것은 일본과 유럽만이 아니다. 남미에서는 멕시코 칠레 페루 콜롬비아 등 4개국이 참가하는 태평양동맹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를 준회원국으로 참여시키는 무역 활성화 논의를 시작했다. 멕시코나 캐나다는 미국으로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양보를 요구받고 있다. 특히 수출의 80%가 미국으로 향하는 멕시코는 무역 다변화를 통해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구조를 만들고 싶어 한다. 다만 다국 간 협정을 둘러싼 세계 상황이 간단치는 않다. 일본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틈새를 노려 중국이 존재감을 높이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은 국가에 의한 개입이 많아 일본과 EU 등이 내거는 자유무역과는 거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선배들이 당연한 듯 올라탔던 버스의 문이 눈앞에서 닫혔다.” 199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버블 경기가 갑자기 붕괴하면서 취업난에 몰린 세대가 있었다. 1970∼1982년생, 사회에 첫발을 디딜 때 취직빙하기(1993∼2005년)를 겪은 소위 ‘로스트 제너레이션’(이하 로스제네)이다. 기업들이 너도나도 채용을 줄여 1991년 90%에 육박하던 대졸 취업률은 3, 4년 만에 50%대로 내려앉았다. 수십 군데 원서를 넣고도 고배를 마신 청년들의 사연이 넘쳐났다.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현상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는 점도 재미있다. 결국 이 세대 상당수가 프리터나 파견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취업도 공부도 하지 않는 젊은이를 뜻하는 니트,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프리터,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 등이 시대를 반영하는 용어로 태어났다. 2000년대 중반, 취업시장은 서서히 회복됐지만 ‘로스제네’들의 절망은 오히려 굳어져 갔다. 새로 온 버스는 다음 세대를 태웠지 별다른 경력을 쌓지 못한 채 나이만 먹은 이들 앞에 서주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는 ‘격차(양극화) 사회’가 유행어가 됐고 ‘워킹푸어’라는 NHK 스페셜리포트가 반향을 불렀다. 지금 30대 중반∼40대 후반이 돼서도 프리터를 전전하는 로스제네의 표준형은 이렇다. 수입은 최대 월 30만 엔(약 300만 원) 수준, 대부분 독신. 의식주에 쓰고 남은 몇만 엔 정도의 여윳돈으로 플라모델을 사거나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등의 ‘작은 사치’를 누린다. 소속도 수입도 불안정하니 연금, 세금은 가급적 납부하지 않는다. 연애, 결혼, 출산은 사치일 뿐이다. 불행은 그 세대로 끝나지 않는다. 일본의 5년 단위 인구 피라미드를 살펴보면 35∼44세 인구는 1696만 명이지만 이들의 자녀 세대인 5∼15세 인구는 1061만 명에 불과하다. 로스제네의 부모 세대인 65∼74세 인구는 1764만 명. 부모 세대와 비슷한 궤적을 보이던 인구 피라미드는 로스제네 세대에 와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과거 눈앞의 효율만을 위해 취업문을 좁혔던 기업들은 경기가 호전되자 허리급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여기에는 베이비붐 세대(1947∼1949년생)가 2012∼2015년에 걸쳐 대량 은퇴한 탓도 있다. 일본 정부도 ‘생활보호 예방’ 차원에서 이들을 정규직으로 흡수할 것을 권한다. 중년 세대를 대상으로 ‘정규직화를 위한 직업교육’이 생기고 이들을 고용하는 기업에 장려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뒤늦게 정규직이 된 로스제네들의 성공담은 별로 들려오지 않는다. 한창 일을 배우고 커리어를 쌓을 시기를 놓친 이들이 10여 년 후배들과 조화롭게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여 년 뒤 이들이 고령자가 됐을 때 사회의 짐이 될 것을 우려한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한국은 청년 취업난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공무원 시험에 쏠리는 현상, 필요 이상의 경쟁에 시달리면서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고 미래가 불안한 현실, 1.0대를 찍은 출산율을 떠올려보면 일본의 로스제네와 겹쳐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부글부글 끓는 분노가 젊은 시절 로스제네들과 닮았다. 그러고 보면 2000년까지 60만 명대를 유지하던 한국의 출생아 수는 2002년 돌연 40만 명대로, 지난해 30만 명대로 내려앉았다. 2020년대 중반이면 취업 연령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얘기다. 그때가 되면 지금 일본처럼 구인난 시대를 맞게 될까.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한국이 가진 사회적 자본은 취약하기만 한 가운데, 한국의 청년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될까 두렵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과 유럽연합(EU)이 17일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경제동반자협정(EPA)에 서명하고 조기 발효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 색채를 강화하는 가운데 일-EU는 인구 약 6억 명,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30%, 무역총액의 40%를 차지하는 거대한 자유무역권을 형성해 이에 대항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준 셈이다. 서명식은 이날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열렸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EU 측에서는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참석했다. 당초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서명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서일본 폭우 피해로 아베 총리의 유럽 방문이 취소됐다. 일본과 EU는 공동성명에서 “이번 서명은 역사적 일보로, 보호주의에 대항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보호주의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보호주의가 확산하는 가운데 일본과 EU가 자유무역의 기수로서 세계를 주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아베 총리는 2일 이 협정에 대해 “아베노믹스의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 일본 외무성은 일-EU 경제권에서 협정이 실현되면 일본의 실질 GDP가 약 1%(약 5조 엔) 올라가고 고용은 약 0.5%(약 29만 명) 늘어나는 경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측은 내년 3월까지 협정의 조기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 EPA가 발효되면 양측 사이에는 90% 이상의 관세가 없어진다. 일본 정부는 나아가 미국을 제외한 11개국과의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11) 발효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18, 19일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관련 수석협상관 회의를 열고 참가국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일본은 6일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TPP11의 국내 비준 절차를 마쳤다. 앞으로 4개국만 비준을 마치면 TPP11은 이르면 내년에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맞서 보복관세를 부과한 EU와 중국, 캐나다, 멕시코, 터키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다고 16일 밝혔다. 중국은 이미 WTO에 미국을 제소해 미중 간에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월요일인 16일 ‘바다의 날’까지 사흘간의 연휴가 이어진 주말, 폭우 피해를 입은 서일본 피해지에는 일본 전국에서 1만60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들었다. 전국적으로 35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지만 이들은 황금 같은 휴일을 이용해 피해를 입은 이웃을 돕는 데 구슬땀을 흘렸다. 자원봉사 활동은 14일부터 본격화했다. 심각한 침수 피해를 입은 오카야마(岡山)현 구라시키(倉敷)시 마비(眞備)정에서는 수몰된 건물 안에서 버려야 할 가구와 쓰레기들을 끄집어내 쓰레기장까지 옮기는 작업이 이뤄졌다. 가가와(香川)현의 대학 4학년생(21)은 “TV를 보고 뭔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집안이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카펫처럼 젖은 물건들을 끄집어내는 게 큰일”이라고 말했다. 마비정이 침수됐을 때 입원환자들이 남아 있었던 마비기념병원으로 주민들이 달려와 현관 부근에 쌓인 진흙을 삽으로 퍼냈다. 구라시키 시내 병원에서 온 남성 직원(61)은 “조금이라도 평소 상태로 돌아가는 데 보탬이 된다면 기쁘겠다”며 땀을 닦았다. 오카야마현은 15일 37도를 기록한 데 이어 16일과 17일에도 36도가 넘는 고온이 이어졌다. 폭우 피해 현장은 재해로 인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데다 그늘이 거의 없어 땡볕 아래에서 작업해야 한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 자원봉사자들은 불볕더위에 피부를 노출하지 않으려고 긴팔 긴바지에 고무장갑을 끼고 전염병을 우려해 마스크까지 한 채 작업하면서 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자원봉사의 철칙은 현지 피해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이 잘 침낭을 준비하고 자신이 먹고 마실 것을 챙겨 가는 준비성을 보였다. 폭염에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열사병으로 쓰러지자 구라시키시 사회복지협의회에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20분간 작업하면 10분간 휴식하도록 하는 자체 규칙을 만들기도 했다. 서일본 폭우로 인한 피해 집계는 아직 진행 중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6일 현재 사망 219명, 실종자는 21명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번 재해를 ‘특정비상재해’로 지정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유능한 젊은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자구책은 기존 고용제도와 사회 시스템에도 적잖은 변화를 주고 있는 모양새다. 대학 4학년 때 회사를 지망하고 합격 통고를 받으면 졸업과 동시에 입사하는 게 일반적이던 일본의 취업 시장은 첨단기업일수록 대학생 시절부터 사실상의 사원 역할을 시작하는, 이른바 ‘초(超)입도선매’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거의 모든 기업이 일률적으로 연 200만 엔(약 2000만 원)대로 책정하던 대졸 초임도 능력에 따른 연봉제로 바뀌고 있다. 근래 부쩍 비중이 늘어난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사원까지도 붙잡기 위해 연금과 퇴직금을 지원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대학생부터 사실상 실전 전력으로 ‘초입도선매’ 벼가 익기도 전에 푸른 논을 사들이듯 일본 기업들의 젊은 인재 ‘입도선매’가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인턴십으로 방문한 대학생을 아예 사원처럼 활용한다. 연중 내내 1개월 이상 장기인턴을 실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장기인턴전문 사이트 ‘캐리어바이트’는 늘 300건이 넘는 구인정보를 게재한다. 주 2∼3일, 하루 5시간 정도 일하는 자리 중심으로, 학년에 상관없이 대부분 응모할 수 있다. 인재서비스 대기업인 ‘딥’은 5월부터 사원과 대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신규 사업 조직을 설치하고 인공지능(AI)을 사용한 이직(移職) 방지 서비스를 시작했다. 멤버는 사원 7명에 학생 45명. AI 기술자는 수요가 많아 채용이 어려우니 인턴 학생들을 직원으로 활용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우수한 학생들과 접점이 생기고 장래 채용으로 연결된다는 기대가 있다. 인터넷방송국 ‘아메바 TV’ 등을 운영하는 ‘사이버 에이전트’사는 입사 전에 인턴을 경험한 사람이 대졸 신입사원의 50∼60%를 점한다. 1개월 이상 근무하는 장기 인턴이 100명 정도 일하고 있다. 올해부터 연봉제가 실시되면서 이 회사 인턴에 참가하는 엔지니어는 인턴 때 평가에 따라 입사 후 급여도 달라진다. AI 등 고도기술을 가진 신입사원은 720만 엔(약 7200만 원) 이상의 연봉이 보장되기도 한다. 기업은 첨단지식을 가진 우수 인재를 확보하지 않으면 디지털시대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 특히 AI 엔지니어 분야의 경우 이미 일하고 있는 사원보다 관련 전공 대학생이 최첨단 기술을 더 잘 아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인재 확보를 돕는 비즈니스도 확산되고 있다. 4500여 학생의 인턴 이력을 게재해 기업이 눈에 띄는 학생에게 연락할 수 있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도 생겨났다. 학생 입장에서도 인턴십은 기업을 경험하고 기술 향상도 도모하면서 급여도 받을 수 있어 단순 아르바이트보다 훨씬 유리하다. 취직 정보 대기업인 ‘마이나비’의 최근 조사에서 2020년 졸업 예정인 현재 3학년 학생 중 인턴 신청을 했거나 이미 경험한 학생이 69.9%에 이르렀다. ○ 비정규직 인력에도 연금 퇴직금 주며 정착 유도 일손 부족은 기업들의 비정규직에 대한 대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본래 정규직을 중심으로 지급되던 연금이나 퇴직금을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사원이나 퇴직 뒤 재취업한 시니어 사원에게도 주는 회사가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도토루 커피’가 비정규직 사원의 퇴직금 제도를 도입한 이래 비슷한 움직임이 일본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7년 비정규직 노동자(임원 이상 제외)는 2133만 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1일 기준 취업 노동자는 6621만 명. 임원을 제외한 피고용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38.2%였다. 이 중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종사자가 1472만 명, 계약직 사원이 303만 명, 파견노동자가 142만 명이었다.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의 인력시장에서 비정규직의 역할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비정규직 증가는 퇴직 후 재취업을 하는 고령층 노동자와 여성 취업자가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에 대한 복리후생 확충으로 직장의 매력도를 높이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 경영의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일본 기업들의 최근 전략이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도쿄 도심의 신주쿠(新宿)구청에 가면 전입 수속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마치 입국관리소라도 되는 듯 구청 안에서는 영어와 중국어 등 갖가지 언어가 들린다고 한다. 구청 직원은 “근처에 일본어학교가 여러 군데 있어 유학생이 많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신주쿠구에 사는 20대 일본인은 5년 전에 비해 7% 줄었지만 같은 기간 신주쿠의 외국인 수는 48% 늘었다. 20대만 놓고 보면 외국인 비율이 40%를 넘어선다. 일본 내 거주 외국인 수가 급증하면서 일본의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이 11일 발표한 인구동태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 기준으로 일본 내 자국민과 외국인을 합한 인구 총계는 1억2770만7200명이다. 이 중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약 1억2521만 명으로 2009년 이후 9년 연속 줄었다. 지난해에 비해 37만4000여 명이 감소했다. 지난 1년간 94만8000여 명이 새로 태어나고 134만여 명이 사망해 인구의 자연감소분은 39만여 명에 달했다. 반면 일본에 주민등록을 한 외국인(3개월 이상 체류비자 소유자)은 249만7600여 명으로 전년 대비 17만4000여 명 늘었다. 5년 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도 약 128만 명(2017년 10월 말 기준)에 이른다. 중국인이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베트남이나 네팔인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가 많다. 20대 외국인이 74만8000명으로 20대 일본 총인구의 5.8%를 차지하고 있다. 도쿄만 놓고 보면 20대 거주자 10명 중 1명이 외국인이다. 전국적으로도 나가사키(長崎)현을 제외한 46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에서 전년과 대비해 외국인 인구가 늘었다. 외국인 증가율 77%를 기록한 홋카이도(北海道) 유바리(夕張)시는 관광시설들이 늘어난 것이 외국인 거주자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 전국에서 가장 외국인 비율이 높았던 홋카이도 시무캇푸(占冠)촌은 총인구 1449명 중 외국인이 22.7%를 차지했다. 2017년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은 ‘클럽메드 홋카이도 도마무’를 개장하면서 스키 강사 등 외국인 종업원을 대거 채용했다. 외국인들은 일본 사회를 지탱하는 일손 역할을 하면서 갈수록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매업 등 일손이 부족한 업계는 외국인 노동력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 저팬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약 3만5000명으로 전 종업원의 7%를 차지한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베트남 인력이 없으면 건설 현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외국인 단순노동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으나 인구 감소와 일손 부족에 시달리면서 단순노동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지난달에 정리된 경제재정운영기본방침에 따르면 건설, 농업, 개호(간병), 조선, 숙박업 등 5개 업종을 대상으로 2019년 4월부터 새로운 체류자격을 만들어 2025년까지 50만 명 넘게 받아들일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는 다른 선진국이나 신흥국과 인재 쟁탈전이 매년 치열해질 공산이 크다”며 “일본에 오는 우수한 외국인을 늘리기 위해 대우를 개선하는 등 ‘선택받는 국가’가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9월에는 일본의 장래를 점칠 선거가 있다. 동지 여러분의 힘을 결집할 것을 부탁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9일 시즈오카(靜岡)에서 열린 자민당 니카이파 주최 파티에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출마 선언도 안 했지만 9월로 다가온 자민당 총재 선거를 의식한 지지 요청이다.○ ‘안면 몰수’의 ‘버티기’ 전략 주효 자민당 총재 선거를 향한 아베 총리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연일 당내 파벌 수뇌들과 모이고 지방 순회방문을 통한 표밭 다지기에도 나서고 있다. 서일본에서 폭우 피해가 발생하자 유럽 중동 순방을 출발 이틀 전에 취소하는 등 행여 생길 돌발변수에도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한때 당내에서 “아베 총리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추락했던 지지율은 지난달 후반부터 회복되고 있다. 9일 NHK에 따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44%로, 전달보다 6%포인트 올라 4개월 만에 “지지하지 않는다”(39%)를 뛰어넘었다. 앞서 지난달 25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서는 52%를 기록해 전달보다 10%포인트 상승했다. 5월만 해도 당내에서는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자민당 제3파벌인 ‘다케시타파’의 다케시타 와타루(竹下亘) 총무회장이 “반년 전만 해도 아베 총리의 3연임이 당연해 보였지만 현재는 공기가 바뀌었다”고 했을 정도다. 아베 정권 지지율 하락의 원인인 모리토모(森友), 가케(加計) 학원 문제는 이후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버티기’가 주효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숱한 국회 집중 심의에서 아베 총리는 군색한 답변을 이어갔을지언정 답변을 회피하지 않았다. 말하는 내용보다는 ‘성의 있는 자세’로 어필한 것이다. 그의 내용 없고 초점을 피해 가는 답변에 항간에서는 ‘밥 논법’(“밥 먹었냐”에 빵만 먹었으므로 “안 먹었다”고 답하는 식)이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안면 몰수’로 돌파했다.○ “역시 아베” 배경에는 경기 호황+대체세력 부재 2012년 집권 이래 이어지는 경기 호황도 장기 집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젊은층은 고용 활성화로 수년 전보다 수월해진 취업 시장의 혜택을 입으면서 아베 지지를 고수한다. 고령자를 중심으로 한 자산가나 기업들도 무엇보다 안정적인 주가 움직임을 중시한다. 아베 총리를 대체할 세력이 없다는 점도 아베 1강(强)의 이유다. 야당은 6개로 갈라져 단결하지 못하고 자민당 내에도 아베 지지 파벌의 힘이 막강하다. 자민당 내에서 ‘다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특히 야당이 정권을 맡은 2009년부터 3년간 겪은 혼란은 일본인들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권은 집권 직후부터 미군기지 문제로 미국과,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었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도 일본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결국은 2021년까지 아베 총리?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는 다수당 총재가 일본의 총리가 된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1차로 지방 표(405표)와 국회의원 표(405표)를 합친 810표 투표에서 과반을 얻은 사람이 총재가 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2명으로 결선투표에 들어가는데 이때는 국회의원 표 405표, 지방 표 47표(광역자치단체 1표씩) 등 452표로 겨룬다. 아베 총리를 배출한 호소다파는 당내 최대 파벌(95명)이고 44명 파벌의 영수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이 아베 지지를 선언했다. 2012년 2차 집권 이래 동고동락 중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의 아소파 59명에 더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무소속 72명 중 30여 명의 스가그룹을 통솔하고 있다. ‘아베의 사람들’이 확보한 표만으로도 이미 국회의원 표의 절반을 넘어서는 것이다. 9월 20일경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3연임을 확정한다면 그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수행해 역대 최장수 총리로 기록될 것이다. 현재 분위기로는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하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LG디스플레이의 대형 액정 패널, 현대중공업의 조선 부문 등 한국 기업의 7개 제품이 지난해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0일 보도한 ‘2017년 주요 상품·서비스 시장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D램,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 액정 TV 등에서도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삼성은 또 조선에서 현대중공업에 이어 세계 2위, 금속산화반도체(CMOS) 센서와 태블릿 단말기 시장점유율도 2위를 기록했다. LG디스플레이는 대형 액정 패널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중소형 OLED, 중소형 액정 패널, 액정 TV에서 2위, 냉장고 부문 3위를 차지했다. 중소형 OLED의 경우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을 합치면 세계 시장의 98%에 이를 정도로 독점하고 있다. 조선 부문은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1∼3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D램 부문 2위에 올랐으며 1위인 삼성전자와 합치면 전체 시장점유율의 70% 이상을 한국제가 차지했다. 신문은 품목별 조사기관의 추계와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16년과 2017년 시장점유율을 비교해 순위를 매겼다. 조사 대상 품목은 지난해 57개였으나 올해 71개로 늘었다. 올해 조사 대상 71개 품목 중 미국 기업이 24개 품목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일본 10개, 중국 9개, 한국 7개 순이었다. 유럽에선 스위스가 5개 품목으로 가장 많았다. 대상 품목 수가 달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미중이 1위 품목을 늘린 데 반해 한국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중국은 이동통신 인프라(기지국)에서 화웨이(華爲)가 스웨덴 에릭손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스마트폰에서도 화웨이, OPPO, 샤오미(小米)가 3∼5위에 랭크돼 2위인 미국 애플을 추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3사의 합계 점유율은 24.3%로 1위인 삼성전자의 21.6%를 넘어선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서부를 덮친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폭우가 광범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린 탓에 직접적인 홍수 피해는 물론이고 지반이 물러져 산사태와 가옥 도로 다리 붕괴 등도 잇따랐다. 일본 정부는 피해지역 복구 지원을 위해 특별재해지역 지정 검토에 착수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유럽 중동 순방을 취소했다. 9일 NHK통계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오후 10시 반 현재 123명이 사망하고 61명이 실종됐다. 인명 피해는 히로시마(廣島), 오카야마(岡山), 에히메(愛媛)현에서 가장 컸다. 구조와 수색 활동이 이어지고 있어 희생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1개 광역자치단체에 내려졌던 호우 특별경보는 8일 오후 모두 해제됐다. 그러나 기상청은 이번 폭우로 지반이 약화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8일 총무성 집계에 따르면 20개 지역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인원은 3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 언론은 폭우 피해가 발생하는 동안 곳곳에서 벌어진 구조 작업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7일 새벽 인근 제방이 터지면서 마을 면적의 3분의 1이 침수된 오카야마현 구라시키(倉敷)시 마비(眞備)정에서는 4600여 채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에 한때 1850명이 고립돼 건물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했다. 지인이나 가족을 구하겠다며 스스로 보트를 타고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2층 베란다에서 구조된 70대 주민은 “수건을 7시간 동안 계속 흔들었다”며 “한신(阪神) 대지진을 경험했지만 이번 폭우는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2층 벽장에서 이틀 밤을 보낸 뒤에야 구조된 같은 마을의 50대 회사원은 “1층까지는 침수돼도 괜찮다고 보고 방심했는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히가시히로시마(東廣島)에서는 산사태로 무너진 집에 갇혔던 일가족 4명이 27시간 만에 구조됐다. 에히메현에서는 7일 오전 뒷산이 주택을 덮치면서 30대 엄마와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인 두 딸이 희생됐다. 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교장은 “전교에 아동 6명, 교사 5명이 있었다”면서 “특히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 딸은 오랜만의 신입생이라 교내에서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며 비통해했다. 구조 과정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맹활약했다. 마비정에선 “아파트 2층에 2명이 남겨졌다”, “부탁한다. 아이들과 가족을 살려 달라” 등 구조를 요청하는 트위터 글이 잇따랐고, 구라시키시 측은 “구조를 요청했으니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 달라”는 댓글을 달아 이재민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한편 9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번 폭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5일 밤 자민당 동료 의원들과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드러나 구설에 오르고 있다. 아베 총리는 폭우 피해 대응을 위해 11∼18일로 예정됐던 유럽과 중동 순방 계획을 취소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죽음의 간호사.’ 환자를 돌봐야 할 간호사가 환자 연쇄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드러나면서 일본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별다른 증상이 없던 환자가 갑작스럽게 숨지는 미스터리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인 2016년경. 그해 9월 14일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濱)시 오구치(大口) 병원에 입원한 야마키 씨(88)는 입원 6일 만인 20일 숨진 채 발견됐다. 환자에게 연결됐던 링거병을 살피던 한 간호사는 링거액에 평소보다 거품이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병원 측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주로 노인들을 위한 요양병원이라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7월부터 불과 석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4층 입원병동에서만 무려 48명이 사망하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하루 5명이 숨을 거둔 날도 있었다. 간호사복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발견되거나 음료수에 이물질이 섞인 사실이 발견되기도 했다. 야마키 씨에 대한 부검 결과 링거병과 환자의 체내에서 소독용 계면활성제 성분이 발견됐다. 야마키 씨가 숨지기 이틀 전 같은 병실에서 사망한 니시카와 씨(88)에 대해서도 부검을 실시하자 시신에서 같은 계면활성제 성분이 나왔다. 동일 수법에 의한 계획적인 살인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2명에게 사용된 링거액은 2016년 9월 17일 오전 10시경 1층 제약부에서 4층 간호스테이션에 운반됐다. 경찰은 누군가가 링거에 주사기로 소독액을 넣어 자행한 연쇄 살인 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을 특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병원 안에는 방범카메라도 없었다. 야마키 씨 사망으로부터 1년 10개월이 지난 이달 7일, 가나가와현 경찰은 사건 발생 당시 수간호사였던 구보키 아유미(久保木愛弓·31)를 전격 체포했다. 8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구보키는 2016년 9월 18일 링거를 통해 계면활성제 성분의 소독액을 투여해 80대 입원환자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결정적인 증거는 간호사복에서 나왔다. 당시 4층을 담당한 모든 간호사의 간호사복을 조사한 결과 구보키의 옷에서만 주머니 부근에서 계면활성제 성분이 나왔다. 또 소독액을 투여한 날로 특정된 9월 18일은 용의자 구보키가 야간당번이었다. 경찰이 6월 말부터 구보키에게 임의 청취를 한 결과 둘째 날부터 관여를 인정했다. 또 체포 직전 임의 조사에서는 “내가 한 일을 죽어서 갚고 싶다. 사형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은 구보키를 일단 2건의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하지만 구보키 본인이 “약 20명의 환자에게 링거를 통해 소독액을 투입했다”고 진술함에 따라 다른 환자들도 살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용의자 구보키가 손이 많이 가는 환자를 노려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링거를 통해 소독액이 투여된 80대 환자들은 모두 심박수가 저하돼 사망했다. 9월 18일 사망한 환자의 경우 링거 튜브에 주사기로 직접 약제를 투입하는 ‘원 샷’ 방식을 사용한 데 비해 9월 20일 사망한 환자의 경우는 링거액 자체에 소독액을 섞은 것으로 보인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경찰이 비슷한 시기에 숨진 다른 남녀 입원 환자 2명에 대해 조사한 결과 역시 같은 성분이 검출됐다. 구보키는 범행 동기에 대해 “환자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는 것을 보기 싫었고, 내가 없는 사이 사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망자 유족에게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힘들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구보키는 피해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한다. 뒤늦게 이뤄진 용의자 체포에 대해 한 피해자의 부인은 “왜 남편이 대상이 됐는지, 누구라도 좋았다는 건지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오구치 병원은 사건 이후 2016년 말 입원병동을 폐쇄하고 외래진료만을 계속하다가 2017년 12월 병원 이름을 바꾸고 올 2월부터 입원환자도 받기 시작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남서부를 덮친 폭우로 8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안전대국’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자연재해 대비가 잘돼 있었지만 몇 달치 강우량이 한꺼번에 내리는 기록적인 폭우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NHK에 따르면 8일 오후 10시반 현재 83명이 숨지고, 6명은 의식불명의 중태 상태다. 안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도 57명으로 집계됐다. 일부 지역에선 구조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기후(岐阜)현 구조(郡上)시는 5일부터 총 1058mm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에히메(愛媛)현에 최고 744.5mm, 히로시마(廣島)시에도 최고 453.5mm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는 각 지역 평년 7월 한 달분 강우량의 1.7배에서 3배에 달한다. 폭우를 내리는 장마전선이 한곳에 사나흘씩 꼼짝도 않고 머물며 불과 며칠 동안 몇 달 치 물폭탄을 쏟아낸 형국이다. 일본 기상청은 태풍 7호 ‘쁘라삐룬’(태국어로 비의 신)이 남기고 간 대량의 수증기를 동반한 습기로 인해 넓은 범위에 구름이 발달했고 태풍이 동쪽으로 빠져나간 뒤 장마전선이 남하한 곳에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와 폭우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진 태풍 등에도 큰 피해가 없었던 일본에서 폭우만으로 이토록 많은 피해가 발생한 것에 당혹해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일본 기상청은 6일 밤부터 “수십 년에 한 번꼴로 오는 (엄청난) 재해가 임박해 있다”며 9개 부현(府縣·광역지방자치단체)에 대해 폭우특별경보를 발표하고 860만여 명에 대해 대피 지시나 권고를 내렸다. 그러나 폭우로 불어난 물은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전에 주택을 집어삼켰다. 비가 오는데도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물에 휩쓸리거나 자동차에 탄 채로 급류에 휩쓸려 숨지는 사례가 속출하는 등 안전불감증도 지적되고 있다. 또 비로 인해 지반이 물러지면서 산사태나 지반 붕괴, 도로와 주택 붕괴가 발생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 이번 폭우 피해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의 재해 대응 시스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의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폭우는 일부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8일 저녁부터 9일에 걸쳐 규슈(九州)와 시코쿠(四國)를 중심으로 1시간에 50∼70mm의 매우 강한 비가 천둥 번개를 동반해 내릴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1995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사건으로 일본을 전율시켰던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본명 마쓰모토 지즈오·63·사진)에 대해 6일 아침 사형이 집행됐다고 NHK 등 일본 언론이 전했다. 이 사건 공범으로 기소돼 사형 선고를 받은 교단 간부 6명도 이날 형이 집행됐다. 옴진리교에 의한 맹독성 사린가스 살포사건과 관련한 사형 선고 확정자는 모두 13명으로 형이 집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쓰모토 사형수에 대한 형 집행은 1995년 5월 체포 이후 23년 만, 2006년 9월 사형 확정으로부터는 약 11년 10개월 만이다. 옴진리교는 1986년 만들어진 신흥 종교로, 1995년 3월 20일 도쿄 도심 지하철 3개 노선에서 승객들에게 사린가스를 뿌려 13명을 숨지게 했다. 부상자는 6200여 명에 이르렀다. 출근길 직장인과 공무원들이 무차별 테러에 피해를 입어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마쓰모토 사형수는 이 밖에도 1989년 11월 변호사 일가족 3명 살해 사건, 1994년 6월 나가노(長野)현 마쓰모토(松本)시 사린가스 살포사건 등 모두 13건의 범죄에 관여한 것으로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 사건들로 인한 사망자는 27명, 부상자는 6500여 명에 이른다. 사린가스 사건의 마지막 피고인이었던 다카하시 가쓰야(高橋克也)에 대한 무기징역 판결이 1월 확정되면서 옴진리교 관련 재판은 22년 만에 종결됐다. 이어 사형선고를 받은 13명 중 7명이 3월 도쿄구치소에서 전국 5곳의 구치소로 이감되자 이들에 대한 형 집행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일본 미디어들은 호외를 발행하는 등 형 집행 소식을 급히 전했다.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로 남편(사건 당시 50세)을 잃은 다카하시 시즈에 씨(71)는 “형 집행은 당연한 일”이라며 “다만 테러 대책을 위해 진상을 좀 더 알려줬으면 했다. 그게 불가능해졌다는 점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마쓰모토 사형수가 사건의 진상에 대해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사히신문은 “사건의 진상이 영원히 어둠에 묻혔다”고 지적했다. 마쓰모토 사형수는 1955년생으로, 1986년 옴진리교를 창시했다. 요가 수행이나 초능력을 내세워 신자들을 모았고 1990년에는 신도들과 함께 중의원에 입후보했으나 전원 낙선했다. 신도의 이탈이나 고액 기부 강요 등으로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 사건 이후 옴진리교는 해체됐으나 일본 공안심사위원회는 1650여 명이 3개의 후계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1993년 이래 거의 매년 사형이 집행되고 있다. 2008년에는 15명, 2010년 이후로도 매년 3, 4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이뤄져 왔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쿄에서 기사를 쓰다 보면 일본식 표현을 쓴다는 핀잔을 자주 듣곤 했다. 가령 요즘은 문제없이 사용되는 단어 ‘입장(立場)’은 10년 전만 해도 ‘자세’ ‘처지’ ‘주장’ 등으로 바꾸라는 주문을 받았다. ‘존재감’도 기계적으로 ‘영향력’으로 바뀌었다. 영어로 ‘presence’인 존재감은 영향력과는 어감이 다르지만 상관없었다. 그때마다 조금 억울했던 게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한국어로 알고 사용하는 서구어 대부분이 일제 번역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번역어를 통해 근현대 개념을 수용했다는 점도 일본에 빚지고 있다. 메이지유신(1868년)을 전후해 일본에서는 대대적인 번역 붐이 일었다. 서구 문물을 접한 일본인들이 네덜란드어 독일어 영어를 어떤 한자어로 옮길 것인가를 놓고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듭한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가령 후쿠자와 유키치는 ‘speech’를 처음에는 ‘演舌’로 번역했다가 어감이 나쁘다 하여 ‘演說’로 바꿨다. ‘會社’란 말이 상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을 뜻하게 된 것은 1866년 후쿠자와의 저서 ‘서양사정’부터다. ‘society’는 처음에는 ‘교제(交際)’ ‘세상(世間)’ 등으로 번역되다가 1875년 도쿄니치니치신문에 ‘社會(소사이어티)’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심지어 중국의 정식 국가명인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순수한 중국 유래 한자는 중화(中華)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인민’도 ‘공화국’도 영어 개념을 번역해 한자어를 만든 것은 일본인이고 그것이 중국에 역수입됐다. 그런데 ‘치매’라는 일제 단어는 늘 저항감이 느껴진다. 관련 기사를 쓸 때마다 이 단어를 기피하기 위해 애쓰곤 했다. 주로 ‘알츠하이머’를 썼지만 글자 수를 너무 잡아먹는다. 최근엔 ‘인지증(認知症)’이라 쓰되 처음에만 괄호를 붙여 ‘치매’라고 설명해주는 일이 많아졌다. 치매의 한자는 미치광이 치(癡), 어리석을 매(태·‘태’라고도 읽는다)로 구성된다. 글자 그대로라면 ‘어리석은 미치광이’란 뜻이다. 메이지 초기 의학용어집에서는 라틴어 ‘Dementia(정신이 없어진 사람)’를 ‘광(狂)의 일종’이라고 번역했다. 그 뒤 치광(痴狂), 풍전(풍癲), 치매 등으로 번역되다가 1900년대 초반 유명 의학자가 ‘狂’이란 글자를 피한다는 취지로 ‘치매’로 쓰기로 했다. 한반도에도 그 단어가 들어간 것이다. 아마도 항간에서 쓰이는 ‘노망(망령)’보다는 의학용어 냄새가 난다고 봤을 것이다. 정작 일본에서는 치매가 차별적 표현이라 하여 2004년 후생성이 나서 ‘인지증’으로 싹 바꿨다. 고령이나 혈관 장애, 알코올, 파킨슨병 등으로 인지 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증세를 통틀어 말한다. 한국에서 환자의 인권을 존중해 정신분열병을 조현병, 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꿔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장수대국 일본은 당연히 인지증 환자도 많다. 인지증은 안락사를 주장하는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 등 고령자들이 가장 겁내는 증세이기도 하다. 자신이 자각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몸만 살아 망신스러운 일을 벌일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인지증 환자와 그 가족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진단 뒤에도 자의식이 있고 논리정연한 사람이 적지 않다. 완치는 어려워도 약물과 주변의 도움으로 진행 속도를 늦추고 증세를 완화하는 길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 ‘치매 안심센터’를 만든다거나 ‘치매 국가책임제’를 시행한다는 등의 뉴스를 볼 때마다 그 취지가 반가우면서도 신경이 거슬린다. 치매 대신 다른 표현을 쓰면 안 될까.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를 청각장애인, 말을 못 하는 사람을 언어장애인으로 바꾼 걸 감안하면 ‘인지장애’ 정도가 어떨까. 장수화가 진행될수록 이 단어를 쓸 일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북한 방문을 마치고 7, 8일 일본에 들르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따로 만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7일 도쿄에 도착해 8일 오전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과 회담한 뒤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강경화 외무장관도 참석한다. 이 기간 아베 총리는 규슈(九州)의 가고시마(鹿兒島)현과 미야자키(宮崎)현 방문이 예정돼 있다. 아베 총리는 4월 27일 열렸던 첫 남북 정상회담 땐 다음 날 서훈 국정원장의 방일을 요청해 직접 설명을 들었고 6월 북-미 정상회담 전에는 미국에 달려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는 등 북한 문제를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번엔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을 만난 직후에 일본에 오는 데도 지방 방문을 이유로 도쿄를 비울 계획이다. 이를 놓고 아베 총리가 미국과의 거리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마이니치신문은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에 소극적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양 정상은 다자간 정상회의가 있는 경우 반드시 양자 회담을 갖자는 원칙을 지켜왔으나 이번만큼은 이를 적극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 미일 통상문제와 관련해 무슨 요구를 들이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촉을 피하고 싶은 속내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 더해 아베 총리는 9월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지방 순회를 하는 것이 더 긴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가고시마와 미야자키는 2012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에게 졌던 지역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은 2040년이면 인구 3명 중 1명이 고령자(65세 이상)가 된다. 이에 대비해 일본 정부 차원에서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한 지역 만들기 방안이 마련된다. 그 핵심은 지방 행정단위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인력의 재활용이다. 일본 정부는 공공시설이나 병원, 상업시설 등을 지방의 대규모 도시에 집중시키고 복수의 지자체로 구성된 ‘권역’별 마을 만들기를 촉진하기 위한 법 정비에 들어간다고 요미우리신문이 4일 보도했다. 인구 감소가 진행되더라도 지방 도시 기능을 유지하려는 고육책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2040년의 지방자치제도’를 검토해온 총무성 전문가회의(좌장 세이케 아쓰시·淸家篤 전 게이오대 총장)는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상에게 제출했다. 보고서는 “지방자치단체를 인구 감축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게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2040년이 되면 일본의 고령화율은 35.7%로 정점을 찍게 되고 인구 감소도 본격화된다. 반면 15∼64세의 현역 세대는 현재 7558만 명에서, 2040년에는 5978만 명으로 격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이때가 되면 일본이 직면할 과제로 △지방에서 일손이 부족해지고 도쿄권에서 의료 개호(간병) 분야 수요가 팽창한다 △표준적인 인생 설계가 통용하지 않고 고용이나 교육의 기능이 악화된다 △인구 감소로 도시 밀도가 줄어드는 ‘도시의 스펀지화’가 진행된다 등 3가지를 들었다. 이 같은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료나 개호, 보육 등의 분야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행정단위를 권역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지자체마다 이뤄지던 행정단위를 20만 명 이상의 중핵시를 중심으로 인근 소규모 자치단체가 연대하는 ‘연대중추도시권’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중앙정부의 지방교부세 배분도 권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서는 시설 통폐합 등 ‘고통’을 동반하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고 읍면동 등 소규모 지자체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아예 폐지되는 경우도 생겨날 수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방자치단체들은 현재의 절반 직원으로도 업무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주민등록표나 세금 등 자치단체별로 다른 시스템이나 서류를 통일하고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사무를 효율화할 것이 요구된다. 또 급격한 일손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고령자들도 현역으로 활용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5일 설치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자문기관 ‘지방제도조사회’에서 이와 관련한 제도 설계 논의가 본격화된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