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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극장가에 일본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542만 명), ‘더 퍼스트 슬램덩크’(465만 명)가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관객 수 1, 2위를 차지하자 일본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일본 실사 영화도 줄줄이 개봉하고 있다. 기존에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의 재개봉까지 이어지고 있다. 21일 현재 극장 상영 중인 애니메이션 10편 중 5편이 일본 작품이다. 일별 박스오피스 10위 안에는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57만 명)와 ‘스즈메의 문단속’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25일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년), ‘모노노케 히메’(2003년)의 작화감독 안도 마사시가 연출한 ‘사슴의 왕’이 개봉한다. 31일에는 ‘극장판 포켓몬스터DP: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2009년)가 재개봉한다. 이 작품은 첫 개봉 때 34만 명이 관람해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곧 개봉할 일본 실사 영화 중 가장 관심을 받는 작품은 ‘남은 인생 10년’이다. 일본 인기 배우 고마쓰 나나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멜로 영화로 24일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배우 심은경이 주연한 일본 영화 ‘신문기자’(2019년)의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이 연출했다. 고마쓰 나나는 영화 홍보를 위해 6월 초 한국에 올 예정이다. 일본 대표 청춘 스타인 하마베 미나미와 기시이 유키노 주연의 영화 ‘이윽고 바다에 닿다’도 6월 7일 개봉한다. 재개봉 열풍도 뜨겁다. 2021년 팬데믹 기간에 개봉했다가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는 10일 극장에서 다시 상영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성추행 사건에 휘말린 남성 이야기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7년) 역시 같은 날 재개봉했다. 200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굿바이’는 6월 21일 관객과 다시 만난다. 이 영화의 재개봉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일본 영화 상영 열기는 작품이 재미있고 좋으면 관객들이 일본 영화라도 즐겨 보는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관련 회사들도 일본 영화 수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 수입사인 미디어캐슬 강상욱 대표는 “일본 영화에 관심이 없던 회사들이 수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흥행한 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이 연이어 큰 인기를 끌자 일본 작품에 대한 붐이 일었다”고 했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최근 일본 영화, 특히 애니메이션에 입찰 경쟁이 불붙었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남편이 회사 공장에서 불에 타 숨졌다. 하루아침에 혜정(김선영)의 세상은 결코 전과 같을 수 없어졌다.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지, 회사 잘못은 없는지 알고 싶지만 회사는 폐쇄회로(CC)TV를 보여주지 않고 합의를 종용한다. 열흘, 한 달, 1년…. 함께 죽은 직원들의 유가족과 천막 농성을 하지만 회사는 꿈쩍 않는다. 무엇보다 더 아프게 꽂히는 것은 함께 농성하는 하청 업체 직원 유가족들의 원망 섞인 눈빛이다. “원청 소속 상급자였던 당신 남편이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 해 내 아이가 죽은 것 아니냐”며. 더 버틸 수 없었던 혜정은 회사로부터 남편의 목숨값을 받아 든다. 그 돈으로 ‘드림팰리스’ 아파트를 산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녹물이 나오고 줄줄이 미분양되면서 혜정의 세상은 또 한 번 뒤집어진다. 혜정은 분양이 다 돼야 녹물 수리를 해준다는 건설사의 주장에 직접 분양 전단을 붙이고 다니고, 혜정과 같은 처지에서 함께 농성하던 수인(이윤지)은 건설사의 파격 할인 분양가로 집을 계약한다. 이를 알게 된 입주민들은 “집값을 똥값으로 만들려 하느냐”며 수인의 입주를 막아서고, 혜정이 할인 분양에 연루됐다고 의심하며 몰아세운다. 고통스러울 만큼 현실적인 영화 ‘드림팰리스’가 31일 개봉한다.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인 역의 배우 이윤지는 ‘드림팰리스’가 “입장 차이에 대한 영화”라고 했다. 영화는 같이 농성하면서도 원청 하청 소속에 따라 다른, 같은 입주민이면서도 분양 금액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입장 차이를 베일 듯 날카롭게 맞세운다. 가성문 감독은 “사회적 참사의 책임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피해자들끼리 싸운다. 아파트가 할인 분양을 하는데 입주민이 힘을 합쳐 싸우는 게 아니라 입주민끼리 싸운다. 서로 동떨어진 일이지만 같은 양상의 이야기”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서로를 탓하고 싸우지만 ‘빌런은 따로 있다’는 게 영화의 주제”라고 말했다. 불편하고 힘든 내용이지만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혜정 역의 배우 김선영 덕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년)에서 선영 역으로 잘 알려진 그의 연기력은 이번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남편이 죽은 과정을 알게 되면서 얼굴에 스치는 표정은 그의 연기 인생에서 손에 꼽힐 장면일 것 같다. 그는 이 영화로 지난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제20회 아시안필름페스티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김선영은 “남편 목숨값을 받고 합의한 사람의 삶에 대한 깊은 조명이 울림이 있었다”며 “40대 여배우들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닌, 두 여자의 서사를 펼칠 수 있는 영화라 아주 반가웠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자동차 추격신으로 22년 동안 사랑받은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시리즈 10번째 작품인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가 17일 개봉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시리즈의 완결 파트1로, 사실상 ‘분노의 질주’ 제작진이 펼쳐 놓는 마지막 이야기다. 완결판은 파트2로 마무리할지, 파트3까지 만들지 논의 중이다. 영화는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와 그의 가족, 가족 같은 동료 ‘패밀리’ 앞에 빌런 단테 레예즈(제이슨 모모아)가 나타나며 시작된다. 단테는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2011년)에서 도미닉 패밀리에 의해 죽은 마약왕 에르난 레예즈(조아킹 드 알메이다)의 아들이다. 사이코패스인 그는 도미닉을 고통에 빠트리기 위해 평생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해 왔다. 그는 이번 편에서 도미닉의 가족과 동료를 전 세계에 흩어놓으며 그들의 목숨을 인질로 도미닉을 위협한다. 자동차 추격신을 하나의 장르로 만든 첫 영화라는 명성답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특히 이탈리아 로마,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포르투갈 리스본 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신은 마치 관객이 직접 운전대를 잡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짜릿하다. 바티칸을 향해 굴러가는 대형 폭탄을 막으려는 도미닉의 필사적인 레이싱 신, 수직에 가까운 댐을 자동차로 날아서 내려오는 마지막 신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빌런 단테 역의 제이슨 모모아는 비주얼부터 압도적이다. 그는 190cm가 넘는 큰 키와 거대한 근육질 몸 덕에 DC유니버스의 ‘아쿠아맨’, ‘왕좌의 게임’의 칼 드로고 등 거친 남자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흐르는 새틴 셔츠와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특유의 긴 머리를 휘날리며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자유자재로 운전한다. 손톱에는 매니큐어를 바르고, 머리카락은 곱창밴드로 양갈래로 묶은 채로 사람을 죽이고 깔깔대는 모습은 사이코패스 그 자체다. 방탄소년단 지민이 메인 테마곡 ‘Angel Pt.1’ 피처링에 참여해 레이싱 신에 울려 펴지는 배경음악도 귀 기울여 볼 만하다. 다만 영화 소재 특성상 가족애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줄거리가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가 침체된 국내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팬데믹 이후 극장 관객이 줄었지만 팬층이 탄탄한 액션 시리즈물인 ‘존 윅4’(190만 명), 게임 마니아층이 두꺼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08만 명)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대형 화면으로 보는 짜릿함이나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 등 극장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뿐 아니라 팬심을 건드려야 살아남는 추세다.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역시 아이맥스(IMAX), 돌비 극장에서 상영하며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액션”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시리즈는 전편인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2019년)가 230만 명,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2017년)이 365만 명의 관객을 모은 바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지금 이 화상에 접속한 분들 중 제가 제일 건강할걸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매일 노력합니다.”배우 김우빈(34)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로 돌아왔다. ‘택배기사’는 혜성 충돌로 지구가 황폐해진 2071년, 계급에 따라 산소와 생필품을 공급받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우빈은 전설적인 택배기사 ‘5-8’로, 난민들과 함께 자유를 위해 거대 세력에 맞서는 역할을 맡았다. 시리즈는 공개 3일 만에 3122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V 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17일 화상을 통해 만난 김우빈은 “생각보다 많은 분이 봐주셔서 놀랐고 감사하다. 잘 믿기지 않고, 팬 분들이 같이 즐겨주는 느낌이라 행복하다”고 했다.모델 출신 다운 큰 키와 다부진 체격 덕에 김우빈은 ‘세계관 최강자’ 택배기사 5-8 역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었다. 절제된 액션 연기 역시 돋보인다. 특히 작품 속 실감 나는 흡연 연기가 화제가 됐다. 그가 2017년 비인두암을 진단받고 2년간 투병 끝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흡연 장면은 모두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했다.김우빈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5-8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설정이었다. 감독님이 건강이 안 좋았으니 빼자고 했는데 담배를 피우는 설정이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렸다”면서 “CG로 표현이 가능하면 해보겠다고 했고, 팀원들이 도와줘서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했다. 건강에 대한 주변의 우려가 배우로서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몸 상태가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는 소견을 들었고 검진하면 모든 게 정상”이라면서 “몸에 안 좋은 걸 아예 안 한다”고 했다.이번 작품 연출을 맡은 조의석 감독은 김우빈에게 “복귀 후 눈빛이 깊어졌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한 암 투병 경험이 그를 바꿔놓았다. 그는 “밥 세 끼 먹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아침에 일어나 날씨가 좋으면 행복하다. 거창한 목표를 정하지 않고 하루하루 지금의 소중함을 찾고 행복하려 한다”고 했다.“우리 모두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고, 행복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많은 분들이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고 더 많이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2071년 혜성 충돌로 황폐해진 서울. 한강은 사막 모래로 뒤덮였고 남산서울타워는 처참하게 두 동강 났다.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마스크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상황. 살아남은 1%의 사람들은 계급에 따라 산소를 배급받는다. 산소를 통제하는 건 천명그룹. 천명그룹 소속 전설의 택배기사 ‘5-8’(김우빈)은 낮에는 산소와 생필품을 보급하며 살아남은 이들의 생존을 책임지고, 밤에는 ‘블랙나이트’가 돼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6부작) ‘택배기사’가 12일 전 세계에서 동시 공개된다. 이윤균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서울 영등포구 프로보크서울에서 10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연출을 맡은 조의석 감독은 “원작 웹툰의 세계관이 아주 좋았다. 택배기사가 산소와 생필품을 나르는 미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주인공 ‘5-8’ 역을 맡은 김우빈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우리 모두 마스크를 썼는데 어쩌면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난민들의 고통을 떠올려 보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제작비가 250억 원으로 알려진 ‘택배기사’는 컴퓨터그래픽(CG)으로 한강대교와 강남대로, 롯데월드타워 등 황폐해진 서울 곳곳을 실감 나게 구현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오징어게임’을 맡았던 시각특수효과 전문 스튜디오 웨스트월드가 CG 작업을 맡았다. 180여 명이 10개월 넘게 후반 작업을 했다고 한다. 천명그룹 후계자로 5-8과 맞서는 류석 역을 맡은 송승헌은 “익숙한 서울의 모습이 CG로 구현된 것을 보면 새롭게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작품 내 다양한 설정도 눈길을 끈다. 산소가 통제되는 세상에서 선택받은 소수는 숨 쉴 걱정 없고 푸르른 나무까지 자라는 ‘코어구역’에, 그 아래 계급의 주민들은 직육면체로 동일하게 지은 컨테이너박스 같은 집에서 산소와 생필품을 배급받으며 살아야 한다. 또 그 아래 계급인 난민들은 일용직과 헌터가 돼 척박하게 산다. 신분은 몸에 새겨진 QR코드로 입증한다. 일각에서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설정, CG 등이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 감독은 “매드맥스와는 다른 결을 가진 이야기”라며 “5-8은 디스토피아에 살면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물로, 세상이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제) 마음이 녹아 있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는 걸 보면 속이 쓰리고 죄책감도 느낍니다. 더 적극적으로 작업할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하니 기다려 주세요.”(김수정 만화가·사진) ‘아기공룡 둘리’가 올해로 탄생 40주년을 맞았다. 둘리는 1983년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에 처음 연재된 이후 큰 사랑을 받으며 한국 대표 만화 캐릭터가 됐다. 최근에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고길동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화되면서 둘리 콘텐츠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둘리 탄생 40주년을 맞아 둘리 시리즈 중 유일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디지털 복원을 거쳐 24일 재개봉한다. 1996년 개봉 이후 27년 만이다.● 둘리 보던 어린이, 이젠 고길동 나이대 ‘둘리 아빠’인 김수정 만화가 겸 감독은 8일 서울 중구 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닌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며 “다시 한 번 둘리를 좋아했고, 추억을 공유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40년 동안 둘리를 사랑해주고 아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은 남극 빙산 조각에 갇혀 있던 둘리가 서울 한강으로 떠내려 왔다가 고길동 집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면서 친구 도우너, 또치, 마이콜, 희동이를 비롯해 고길동과 타임코스모스를 타고 우주의 얼음별로 가서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리마스터링 버전은 4K로 제작해 화질과 색감을 선명하게 살렸다. 그러면서도 옛 감성을 잃지 않았다.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어른이 된 것”이라는 밈답게 세월이 흘러 중년에 접어든 관객들은 고길동에게 더 눈길이 갈 것 같다. 기어 다니는 아기 희동이와 철수, 영희 셋으로도 모자라 둘리, 또치, 도우너라는 객식구가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상황에서 출근까지 해야 하는 고길동의 신세가 처량하다. 인터넷에서는 둘리 때문에 생긴 고길동의 피해액을 정리한 내용이 돌아 웃음을 자아냈다. 김 작가는 “내가 만화가지만 나라도 둘리를 키울 수 없을 것 같다. 어떻게든 쫓아낼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르면 내년쯤 출판 만화로 새로운 둘리를 선보일 예정인데 고길동의 역할을 기대해 달라”고 했다.● “무한한 상상력, 한국 애니메이션의 경쟁력” 김 작가는 최근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크게 흥행하는 것과 비교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김 작가는 “새로운 작품을 계속 보여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며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 여건이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제작비가 만만치 않다 보니 투자자들은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이다. 그러니 가뭄에 콩 나듯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고, 기술적 노하우가 쌓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둘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작가는 “1996년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이 (당시 상영 순위) 4위를 했는데도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투자 빚을 갚는 데에만 5년이 걸렸다”고 했다. 김 작가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경쟁력은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라면서 활발한 웹툰 시장을 언급했다. 그는 “웹툰이 갖고 있는 기발함, 아이디어가 애니메이션으로 넘어오면 멋있는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더 가까워지는 게 두려워 남자인 친구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때가 제게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외로웠어요. 이 외로움을 영화라는 언어로 번역하고 싶었습니다.”(영화 ‘클로즈’의 루카스 돈트 감독) 오랜 친구인 두 소년이 있다.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잘 만큼 가깝고, 눈만 바라봐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만나지 못하면 보고 싶고 모든 걸 함께하고 싶다. 소년들의 마음엔 아직 이름표가 없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또래 중학생들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다. 두 소년을 ‘호모’ ‘계집애’라고 놀리며 쑥덕댄다. 소년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서로에게 거리를 두면서 각자의 외로움 속으로 빠져든다. 두 소년의 혼란과 외로움, 성장을 담은 영화 ‘클로즈’가 3일 개봉했다. 영화는 지난해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영화는 침대에 나란히 누운 13세 소년 레오(에덴 당브린)와 레미(귀스타브 드 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우정과 사랑이 담겼다. 이들의 관계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남자끼리 사귀느냐”는 비아냥거림에 레오는 아이스하키를 배우며 남성성에 집착하고 레미를 밀어낸다. 레미는 변해버린 레오를 보며 괴로워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영화는 두 아이들이 겪는 감정의 폭풍과 죄책감, 이들을 외로움으로 몰아넣은 사회의 시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벨기에 시골의 달리아 꽃밭 사이로 달리는 두 소년, 새빨간 벽지가 발린 레미의 방으로 들어오는 빛 등 아름다운 연출이 돋보인다. 벨기에 출신 신예인 루카스 돈트 감독(32·사진)은 최근 국제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데뷔작 ‘걸’(2018년)로 제 71회 칸영화제에서 감독 신인상인 황금카메라상과 퀴어종려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클로즈’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성 소수자인 돈트 감독은 “나 역시도 두려움 때문에 밀어낸 몇몇 친구들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은 물론, 그들이 느꼈어야 할 사랑 역시 빼앗은 것”이라며 “영화는 그들에게 부치는 시”라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은둔과 고독의 시인’ ‘뉴잉글랜드의 수녀’ ‘베일에 싸인 미국 문학계의 천재’….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을 수식하는 표현이다. 1800편에 달하는 시를 짓고도 생전에 단 10편, 그것도 익명으로 내놓은 미지의 시인. 사람에 대한 상처로 세상을 떠나기 전 35년 동안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자신이 만든 정원 속으로 침잠한 여인. 그러면서도 그는 사랑과 삶, 죽음에 대한 사색을 통해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소설가인 저자는 미국이 사랑하는, 그러나 여전히 삶의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는 시인 디킨슨의 흔적을 좇는다. 디킨슨의 삶을 살펴보는 전기문학이지만 소설과 산문,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형식을 띤다. 저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한 자신의 삶과 디킨슨의 삶을 ‘집’을 매개로 포갠다. 디킨슨에게 집은 곧 자기 자신이었다. 이 때문에 저자는 그녀가 살았던 미국 매사추세츠 애머스트의 붉은 벽돌집과 그녀가 사랑한 사람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동시에 상상력을 보태 한 편의 소설처럼 책을 구성했다. 디킨슨의 삶을 영화처럼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보는 듯하다. 저자는 “독자들이 내 상상의 결과물과 실제 디킨슨 삶의 일화를 구분할 수 없다면 잘된 일”이라고 했다. 책은 참신한 형식과 문학성을 인정받아 2020년 프랑스 르노도상 에세이 부문을 수상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4대 장편 중 하나인 ‘악령’ 고급 한정판(사진)이 나왔다.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의 ‘지만지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한정판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가격은 29만 원이다. 2020년 ‘죄와 벌’, 2021년 ‘백치’ 한정판에 이어 내놓은 ‘악령’(1130쪽) 한정판은 가죽 장정 하드커버에 앞면과 뒷면, 책등에 24K 금박 문양을 입혔다. 케이스에도 금박 문양을 넣었고, 책등에 고유번호를 찍었다. 제작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지난달 17일부터 예약 판매 중인 한정판은 150권 가운데 1일 현재 절반 넘게 팔렸다. 출판사는 2025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출간해 4대 장편 시리즈를 완간할 계획이다. 김정아 번역가는 4대 장편을 모두 번역한다. 최정엽 지식을만드는지식 편집주간은 “독자들이 도스토옙스키의 사상과 독특한 문체를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김 번역가가 단독으로 번역한다”고 밝혔다. 4대 장편은 보급판도 함께 판매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제76회 칸영화제 개막(현지 시간 5월 16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공식 초청된 한국 장편영화는 총 5편이지만 경쟁부문에는 한 편도 입성하지 못했다. 지난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배우 송강호가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아쉽다는 평가다. 올해 칸에 가는 한국 영화 중 눈에 띄는 작품은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송강호 임수정 주연의 ‘거미집’이다. ‘반칙왕’(2000년) ‘달콤한 인생’(2005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의 작품으로, 197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한다.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거라는 강박에 빠진 김 감독(송강호)이 검열을 일삼는 정부 당국의 방해와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블랙 코미디다. 이 영화로 김 감독은 세 번째, 배우 송강호는 여덟 번째 칸영화제 초청을 받게 됐다. 이선균 정유미가 주연한 ‘잠’(연출 유재선)은 비평가 주간에 초청됐다. 행복한 신혼부부였던 수진(정유미)과 현수(이선균)의 삶이 현수가 수면 중 이상행동을 보이며 끔찍한 공포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선균 주지훈이 출연한 재난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연출 김태곤)는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이선균은 ‘기생충’(2019년)에 이어 출연한 작품 2개가 동시에 칸에 초청돼 눈길을 끈다. 송중기 주연의 ‘화란’(연출 김창훈)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홍상수 감독의 ‘우리의 하루’는 감독 주간 폐막작에 선정됐다. 홍 감독의 연인인 배우 김민희가 출연했다. ‘기생충’ ‘헤어질 결심’을 잇는 영화가 올해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해 영화계에서는 팬데믹으로 한국 영화 생태계가 일부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팬데믹으로 영화 제작이 지연되면서 좋은 시나리오와 투자금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드라마로 몰렸고, 이에 따라 감독과 배우들 역시 활동 영역을 옮기며 영화 제작 여력이 바닥났다는 것.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OTT나 드라마로 간 좋은 창작자들이 현재 맡은 작품을 끝내고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단편 영화를 선보이는 경쟁부문 라시네프에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 과정을 졸업한 황혜인 씨의 ‘홀’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서정미 씨의 졸업 작품인 ‘이씨 가문의 형제들’이 초청됐다. 칸영화제는 16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이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저항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한국 것, 일본 것이라서가 아니라 재미있는 걸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을 연출한 일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50·사진)이 27일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지난달 8일 국내 개봉한 후 26일까지 49일 만에 497만 명이 관람해, 한국에서 상영한 역대 일본 영화 중 관람객 1위에 올랐다. 신카이 감독은 지난달 초 방한했을 때 “관객 300만 명이 넘으면 다시 오겠다”고 말했고, 영화의 흥행 덕분에 쾌속으로 약속을 지키게 됐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감독이 동일본 대지진을 모티브로 만든 ‘너의 이름은.’(2017년) ‘날씨의 아이’(2019년)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신카이 감독은 “일본 재해 이야기를 이렇게 많은 한국 관객이 봐줄 줄 상상하지 못했다.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살면서 자신을 크게 변화시킬 만한 사건을 만나는데 제겐 그게 동일본 대지진이었다”며 “12년 동안 계속 그 재해를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해 많은 해외 관객들이 호응을 보낸 것에 대해 그는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바라보는 것이 타인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어지며, 제 작품에 공감을 하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흥행한 데 대해 “K팝이나 한국 드라마가 하나의 장르로 인기 있는 것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 장르로 사랑받는 건 좋은 일”이라고 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국내 영화계에 시나리오가 그야말로 전멸한 상황입니다. 창작자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관객이 극장을 찾는 선순환 구조가 회복되지 않으면 1, 2년 후 한국 영화계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한 대형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현재 영화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올해 한국 영화 성적은 참담하다. 올해 첫 1000만 영화가 된 ‘아바타: 물의 길’(누적 관객 1080만 명)의 열기와 엔데믹 국면, 설 연휴 특수에 힘입어 영화계가 되살아날까 기대했지만, 우려만 짙어지고 있다.● 1000만은 이제 꿈의 숫자?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관객이 100만 명을 넘은 영화는 ‘교섭’(172만 명)뿐이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21일 개봉한 영화 ‘영웅’이 관객 326만 명을 넘겼다. ‘스위치’는 42만 명, ‘유령’은 66만 명에 그쳤다. ‘대외비’도 관객이 75만 명에 불과해 모두 손익분기점 달성에 실패했다. ‘카운트’(39만 명) ‘소울메이트’(20만 명) ‘웅남이’(23만 명) 등 중소형 영화도 마찬가지다. 관람객 수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4월 극장 관람객은 6800만여 명이었지만 올해는 같은 기간 3000만 명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 데에는 크게 오른 티켓 값이 영향을 미쳤다. 현재 영화 티켓 값은 주중 1만4000원, 주말 1만5000원이다. 커플이 콜라,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려면 4만 원 넘게 써야 한다. 네 명이 함께 쓰는 넷플릭스 프리미엄 멤버십 요금이 월 1만7000원인 것과 비교하면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 한국 영화 생태계 ‘빨간불’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넘쳐나는 콘텐츠를 뒤로하고 극장에서 볼만한 한국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은 각각 누적 관객 수 400만 명을 넘겼다. 작품이 좋으면 관객이 온다는 걸 보여준다. ‘똘똘한’ 한국 영화가 나오지 않는 건 팬데믹을 겪으며 한국 영화 생태계가 망가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영화 개봉이 미뤄졌고,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투자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이어 “영화계 창작자들이 OTT 드라마로 대거 이동하면서 자금과 좋은 시나리오도 OTT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민식, 송강호 등 영화에만 출연한 톱 배우들이 드라마로 옮겨가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한국 영화가 한 편도 없다는 것은 한국 영화의 부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영화계에서는 올해 2, 3분기(4∼9월)를 반등의 기회로 보고 있다. ‘범죄도시 3’(5월 31일 개봉) ‘밀수’(7월 26일 개봉) 등 기대작이 개봉하는 데다 전통적인 극장 성수기인 여름을 맞아 분위기가 반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한 투자배급·제작사 관계자는 “OTT로 간 뛰어난 창작진이 영화계로 돌아오게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대박 영화가 나오면 경색된 투자 자금도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관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티켓 값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개봉 촉진 지원금을 비롯해 인력 양성을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아이폰 페이스타임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노트북에 5년간의 연애 사진을 차곡차곡 저장해 공유 폴더를 만든다. 유튜브 영상으로 연인이 어제 파티에서 누구와 얼마나 즐겁게 놀았는지 확인하고 헤어진 후에는 인스타그램으로 근황을 염탐한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없으면 불가능한 ‘요즘 것들’의 연애를 실감 나게 스크린으로 구현한 영화 ‘롱디’ 이야기다. 다음 달 10일 개봉하는 ‘롱디’(‘Long Distance’의 줄임말)는 5년간 만난 연인 도하(장동윤)와 태인(박유나)이 갑작스레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로맨스 영화다. 밴드 보컬이었던 태인은 밴드가 해체되면서 음악 작업에 매진하겠다며 부모님이 계신 경남 거제도로 향한다. 서울에 남겨진 도하는 매일 태인을 그리워하면서 메신저와 영상통화로 연애를 이어간다. 5주년 기념일을 맞아 프러포즈를 하려던 날, 도하는 초등학교 동창이자 유명 유튜버인 친구 파티에 잠시 들렀다가 만취해 연락이 두절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과 바람을 피우는 듯한 모습이 영상으로 찍혀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실망한 태인은 도하에게 영상통화로 이별을 통보한다. ‘롱디’에는 아버지가 잃어버린 딸을 찾는 과정을 디지털 기기 화면만으로 구현한 영화 ‘서치’(2018년) 제작진이 참여했다. 러닝타임 내내 노트북 스크린과 스마트폰, 폐쇄회로(CC)TV 등 화면으로만 구성해 디지털 기기로 일상을 공유하는 연인의 모습을 표현했다. ‘서치’ 시리즈가 서스펜스 스릴러물이라면 로맨스물에 같은 연출 방식을 사용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임재완 감독은 25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스크린 라이프 형식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국빈 방미 첫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에 25억 달러(약 3조3000억 원) 투자를 유치했다. 윤 대통령은 27일에는 ‘글로벌 영상콘텐츠 리더십 포럼’에서 파라마운트,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NBC유니버설, 소니픽쳐스, 월트디즈니, 넷플릭스 등 미국 6대 콘텐츠 기업과 만나 ‘K콘텐츠’에 대한 해외 투자 유치를 이어갈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숙소로 머물고 있는 미 정부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에서 넷플릭스 임원들을 접견했다. 부인 김건희 여사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서랜도스 CEO는 향후 4년간 한국 드라마·영화·리얼리티쇼 등 K콘텐츠에 2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투자한 1조5000억 원의 2배가 넘는 규모다. 한 투자배급·제작사 관계자는 “한국 대통령이 K콘텐츠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이 인지하게 돼 이들이 한국 투자를 더 긍정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서랜도스 CEO는 넷플릭스와 한국 콘텐츠 기업의 관계가 마치 한미 동맹과 같다고 말했는데 100% 공감한다”며 “한미 동맹은 자유를 수호하는 가치동맹인데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필수요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서랜도스 CEO는 “한국 작품에는 엄청난 스토리가 있으며 우리는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미 전부터 서랜도스 CEO와 접촉하며 대통령실 참모진에게 “(투자 유치를) 강력하게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김 여사도 이번 과정에 적극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간중간에 진행되는 부분을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고 콘텐츠와 관련해 관심이 꽤 많았던 김 여사에게도 진행 상황을 보고한 적 있다”고 밝혔다. 다만 윤 대통령과 서랜도스 CEO는 인터넷망 사용료 문제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국내에선 통신사인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지급 문제를 두고 2019년부터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누구나 ‘처음’ 늙는다. 조그맣게 굽어진 어깨와 삐걱대는 걸음걸이, 희미해지는 기억력이 내게도 다가올 일이라고 머리로는 알지만, 내가 노인이 된다니….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공동대표인 저자는 누구에게나 ‘처음으로 자리를 양보받는 날’이 오지만 우리 사회가 노인에 대해 갖는 인식이 일천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각계 11명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늙어감’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 그리고 사회의 역할에 대해 성찰한다. 저자는 늙는 일을 ‘선행 학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인은 외계인 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신체적 변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선행 학습을 위해서는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질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성찰은 노인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깊어질 수 있다. 1부 ‘다리 놓는 사람들’에서는 주거복지 서비스 관리자, 요양보호사 등 노인과 직접 연결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도 언젠가 될 수 있는 홀몸노인과 치매노인이 겪는 어려움 등을 엿본다. 저자는 이를 통해 ‘노인의 삶에 다른 연령대의 주민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인과 청년의 관계가 구체적일수록 청년들이 노인들의 삶의 질이 자신들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선행 학습이자 상생인 셈이다. 2부 ‘테두리를 넓히는 사람들’에서는 장애 여성 인권활동가, 노숙인을 위한 행동가 등 불평등과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의 사례는 ‘늙어감’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노숙인들은 훨씬 젊은 나이에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장애인 역시 신체적 특징이 노인과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이 겪는 차별과 혐오를 통해 우리 사회가 노인에게 가하는 차별에 대해 다시금 고찰하는 한편 성찰을 촉구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2020년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2019년)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한 수상 소감은 현실이 됐다. 이후 ‘미나리’(2021년) 등 영화뿐만 아니라 ‘오징어게임’(2021년), ‘파친코’(2022년), ‘사랑의 불시착’(2020년) 등 드라마도 줄줄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며 한국 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줬다. 이들 작품이 세계 콘텐츠의 산실인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K콘텐츠는 이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즐기고 후속작을 기대하는 콘텐츠로 도약했다.●K콘텐츠, 미국의 심장을 쏘다 2020년 영화계는 그야말로 ‘기생충의 해’였다.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에 올랐고, 역시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기생충의 잇단 수상은 영화 산업의 메카인 미국에서 K콘텐츠가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국과 캐나다를 합친 북미 영화시장의 박스오피스 수익은 2021년 약 45억 달러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였다. 같은 해 미국 내 자국 영화 점유율은 88.6%에 달했다. 오징어게임은 K콘텐츠 열기를 그야말로 폭발시켰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긴장감 높게 그린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에서 공개 17일 만에 1억 유료 가입 가구가 시청했다. 넷플릭스 역사상 첫 1억 가구 돌파다. 오징어게임은 특히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공개 후 첫 일주일간 누적 시청시간 기준으로 30억 분을 넘었고, 2021년 핼러윈 때는 드라마 속 트레이닝복을 코스튬으로 입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달고나’는 인기 간식으로 떠올랐다. 오징어게임은 지난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관왕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비영어권 드라마가 에미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오징어게임이 최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시는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9월 17일을 ‘오징어게임의 날’로 선포하기까지 했다. 한국 작품이 미국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력을 기리기 위해서다. 배우 현빈 손예진이 출연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한국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애플TV 플러스 드라마 ‘파친코’도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한국 배우들, 할리우드 러브콜 잇달아 K콘텐츠가 흥행하자 자연스레 한국 배우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국 배우들이 속속 할리우드 영화에 캐스팅됐다. 오징어게임에서 주인공 성기훈 역을 맡았던 배우 이정재는 디즈니플러스가 제작하는 스타워즈 시리즈 ‘어콜라이트’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또 미국 3대 에이전시 중 하나인 CAA와 계약했다. 이 에이전시에는 배우 브래드 피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소속돼 있다. 오징어게임에서 강새벽 역을 맡았던 배우 정호연도 할리우드에서 주눅 들지 않고 통통 튀는 모습을 보여줘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애플TV플러스 드라마 ‘디스클레이머’와 조 탤벗 감독 신작 영화 ‘더 거버니스’의 주연으로 캐스팅돼 할리우스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배우 박서준 역시 ‘캡틴 마블’(2019년)의 후속작 ‘더 마블스’에서 캡틴 마블의 남편인 얀 왕자로 캐스팅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전략연구소 소장은 “20년 전 할리우드에 진출한 K콘텐츠가 이제 꽃을 활짝 피우게 된 것”이라며 “할리우드 콘텐츠보다 새롭고, 날것 그대로의 상상력을 잘 구현하는 것이 K콘텐츠가 지닌 힘”이라고 분석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24시간 내내 쪼아대는 직장 상사가 있다. 당장 사표를 쓸 법도 하지만 무서워서 그럴 수가 없다. 상사는 막강한 힘을 가진 ‘드라큘라’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나를 부르고 내키면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수족으로 무려 100년을 살았지만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 반항을 감행하기로 한다.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가 바가지 긁는 드라큘라 상사로 변신한 영화 ‘렌필드’가 19일 개봉했다. 유혈이 낭자하고 사지가 절단되는 고어물이지만 웃음 코드를 놓치지 않았다. 영화는 부동산 사업을 하던 렌필드(니컬러스 홀트)가 드라큘라 성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건실한 그를 눈여겨본 드라큘라(니컬러스 케이지)는 자신의 밑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다. 그 대가로 곤충을 먹으면 상대의 팔을 뽑아버리거나, 머리를 터뜨릴 수 있는 엄청난 힘과 영생을 얻게 된다. 드라큘라가 지시한 가장 중요한 일은 순결한 제물을 구해 자신에게 바치는 것. 밤낮으로 신선한 제물을 바라는 드라큘라의 요구에 렌필드는 나날이 창백해져 가지만 “네 삶의 목적은 나를 섬기는 것”이라는 드라큘라의 가스라이팅에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제물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밤, 한 식당에서 마약 조직을 소탕하려는 정의로운 경찰 레베카(아콰피나·본명 노라 럼)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도우면서 “이제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퇴사 소망을 갖게 된다. 하지만 드라큘라는 분노하며 사직서를 내려는 그를 막아서고, 퇴사를 둘러싼 육탄전이 벌어진다. ‘렌필드’는 드라큘라를 재치 있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드라큘라를 직장 상사이자 인간의 피에 중독된 중독자로, 렌필드를 가스라이팅 당하는 직원에 빗댔다. 또 우울증과 동반의존증(자신을 필요로 하는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상대방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 등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불안을 녹여냈다. “더는 이런 갑질을 참지 않을 거야”, “난 행복할 자격이 있어” 같은 대사와 함께 막강한 힘으로 상대를 때려눕히는 ‘을’ 렌필드의 모습에서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케이지의 드라큘라 분장도 인상적이다. 제작진은 실감 나는 드라큘라를 만들기 위해 케이지의 신체를 본을 뜬 뒤 그에 맞게 뾰족한 치아, 기다란 손톱 등을 3차원(3D) 프린터로 제작했다. 케이지는 3D 프린팅 된 틀니를 끼기 위해 자신의 치아를 갉아낼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가 청와대 개방 1주년(5월 10일)을 앞두고 청와대 일대에 역사, 예술 등 주제별로 도보 관광코스 10개를 만들겠다고 19일 밝혔다. 문체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 청와대 대정원에서 ‘청와대 K관광 랜드마크, 내가 청와대 관광가이드다’ 선포식을 열고 10개 도보 관광코스 가안을 공개했다. 왕과 왕비 옷을 입고 경복궁과 청와대, 사직단을 둘러보는 ‘조선 왕실 체험 코스’, 조계사와 한옥, 전통주 갤러리를 다니는 ‘전통문화 체험 코스’ 등이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청와대와 그 일대는 역사와 예술, 자연, 전통 문화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이라며 “이곳을 세계인이 가고 싶어하는 버킷리스트로 만들겠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최근 10년 동안 세계 영화계에서 한국이 최고였습니다. 이번 영화는 한국 액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이 많아요.”(제임스 건 감독)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오갤)가 6년 만에 3편으로 돌아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같이 인지도 높은 히어로들이 나오진 않지만 2014년 첫선을 보인 후 깨알 같은 유머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로 마니아층에게 사랑받은 ‘가오갤’ 시리즈는 이번 편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주연을 맡은 크리스 프랫(스타로드·피터 퀼 역), 캐런 길런(네뷸라 역), 폼 클레멘티에프(맨티스 역)와 건 감독 등 ‘가디언즈 팀’은 5월 3일 한국에서 진행되는 전 세계 첫 개봉을 앞두고 18일 한국을 찾았다. 한국은 이들의 월드투어 첫 행선지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서울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건 감독은 “한국 영화 광팬”이라며 “‘기생충’, ‘마더’를 배출한 영화의 고장에 오게 돼 기쁘다”고 했다. 그는 “이번 영화를 만들며 한국 영화 ‘악녀’(2017년)의 액션 장면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퀼 역의 프랫은 “한국이 영화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리더가 되고 있다. 블랙핑크가 최근 코첼라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뉴진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한국계 캐나다인인 클레멘티에프는 “멸치볶음은 달고 짠맛이 섞여 특히 좋아한다. 프랑스어로 ‘고맙습니다’인 ‘메르시 보쿠’와 발음이 비슷해 그렇게 외우고 있다”며 웃었다. ‘가오갤3’에서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라쿤 ‘로켓’(브래들리 쿠퍼)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건 감독은 “로켓은 사랑하는 나의 분신”이라며 “로켓은 분노로 가득 차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운 아웃사이더다. 그 기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죽은 줄 알았던 연인 가모라(조이 살다나)와 다시 만난 퀼의 모습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프랫은 “퀼이 평생을 사랑한 가모라를 다시 만났지만 그녀는 퀼을 사랑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사랑에 빠지기 이전의 그녀로 돌아왔다는 게 그에겐 아픔”이라고 새로운 러브스토리의 관람 포인트를 설명했다. 프랫은 “퀼은 1편에서 어머니, 2편에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 마지막 3편에서는 자아를 발견한다. 1, 2편보다 많은 감정을 연기할 수 있게 해준 감독의 대본과 연출 능력에 감사하다”고 했다. ‘가오갤3’가 MCU 영화들의 부진을 끊어낼지 관심이 높다. MCU는 2월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앤트맨3)로 새롭게 다섯 번째 페이즈(큰 스토리라인을 단계별로 구분한 것)를 열었지만 전 세계 수익이 5억 달러를 밑돌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건 감독은 MCU가 부진을 타개할 방향에 대해 “‘가오갤’은 작품 사이즈는 크지만 캐릭터들의 감정과 연결에 집중하는 ‘작은 영화’였다”며 “MCU에서 캐릭터들이 이야기가 중심이 돼 영화에 더 많은 감정을 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디언즈 팀은 이번 작품으로 관객들과 작별해야 한다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건 감독은 “1, 2편 때 한국 팬들이 많은 지지를 보내준 덕분에 마지막 (월드투어) 기회가 주어져 한국에 왔다. 함께한 출연진과 가오갤 시리즈를 마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네뷸라 역의 길런은 “씁쓸하지만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자랑스럽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첫 한 스푼은 낯설지만 자꾸 생각나는 맛. 취향이 아니라면 손도 대기 싫은 바로 그 맛.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같은 영화 ‘킬링 로맨스’가 14일 개봉했다. ‘민초단’이 될지 ‘반(反)민초단’이 될지 일단 먹어봐야 알겠지만 한국 영화 중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란 건 분명하다. 장르를 굳이 정의하자면 뮤지컬 요소를 가미한 서스펜스 코미디 영화다.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발연기’로 국민적 조롱거리가 된 배우 여래(이하늬)는 남태평양 꽐라섬으로 도망간다. 그곳에서 자수성가한 재벌 조나단(이선균)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뒤 돌연 은퇴한다. 하지만 본성을 드러낸 남편은 결혼생활 내내 가스라이팅과 폭행을 하며 여래는 트로피 아내로 시들어간다. 어느 날 옆집 4수생이자 여래의 팬클럽 출신인 범우(공명)를 만나게 되고, 조나단의 인형 노릇을 끝내고 스크린으로 컴백하기 위해 함께 조나단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4일 만난 이하늬는 “촬영 내내 거의 매일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계속되는 현타에 맞서 ‘오늘도 살아남으리라’ 하는 생각으로 임했다”며 웃었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선 “대본을 보고 실제로 소리 내 웃은 건 영화 ‘극한직업’ 이후 두 번째”라며 “색깔 있는 영화가 한국 영화판에서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선균은 망설이다가 드라마 ‘파스타’(2010년) 등으로 친분이 있던 이하늬가 출연하겠다고 하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영화는 곳곳에 황당할 만큼 우스운 장치로 가득하다. 조나단을 뜨거운 불가마방인 ‘극열지옥’에 넣어서 죽이려고 할 때 여래와 범우는 암호를 주고받으며 갑자기 랩을 하고, 가짜 수염을 단 조나단은 과장된 몸짓으로 H.O.T.의 ‘행복’을 부르며 춤을 춘다. ‘남자사용설명서’(2013년)로 B급 정서 마니아층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던 이원석 감독이 연출했다. 이 감독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최대한 동화적 설정을 통해 폭력 등 관객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요소를 피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못났다’고 생각해도 누군가 조그마한 용기를 줌으로써 두려움의 벽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하늬는 영화를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에 빗대며 “처음엔 ‘이게 무슨 맛이지?’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엔 ‘새롭네. 가끔 이런 것도 먹어줘야 해’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