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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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문화 일반40%
음악30%
인사일반17%
문학/출판13%
  • “보고 싶었어”…죽은 자도 되살리는 ‘디지털 클론’의 미래

    “정말 보고 싶었어.”여자가 ‘다시 살아난’ 남편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여자의 남편은 얼마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 여자 앞엔 죽기 전 남편과 똑같이 생긴 인공지능(AI) 남편이 서 있다. 금발에 흰 피부는 남편의 모습 그대로다. 다정하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말투도 똑같다. 남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겼던 데이터를 학습시킨 덕이다.여자는 남자를 끌어안고 함께 밥을 먹는다. 밤에 같이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는 의문이 든다. 정말 지금 여자 곁에서 숨 쉬는 남편은 죽기 전 남편과 완전히 같을까. 넷플릭스 공상과학(SF) 시리즈 ‘블랙미러’의 에피소드 ‘돌아올게’ 이야기다.이 책은 이 같은 드라마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람의 정보를 학습시켜 사람과 유사하게 만든 AI인 ‘디지털 클론’의 세계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미국 에미상 후보에 올랐던 독일 다큐멘터리 감독 2명이 디지털 클론의 명암을 추적했다.저자들이 먼저 만난 건 유족이다. 미국의 변호사 제임스는 디지털 클론 기업을 통해 폐암으로 숨진 아버지의 기억을 AI에게 학습시켰다. 아버지의 평소 습관, 농담, SNS 기록을 AI에게 입력했다. 이렇게 탄생한 ‘데드봇’을 통해 제임스는 아버지와 스마트폰 채팅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물론 AI 아버지는 실제 만질 수는 없다. 하지만 ‘데드봇’은 “거짓말”이라며 장난을 치는 아버지와 똑같은 습관을 지녔다. “선술집에서 먹었던 바비큐가 기억나느냐”며 제임스와의 옛 기억을 꺼내기도 했다. 제임스는 “아버지의 말투와 유머와 기억을 바탕으로 한 데드봇과 대화를 나누며 위로받고 있다”며 “대화할 때마다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한다.디지털 클론이 대두된 건 첨단 과학기술 덕이다. 인간의 기억을 저장해 분류한 뒤 자유롭게 찾아주는 기술인 ‘메멕스’는 최근 빠르게 발전했다. AI가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교감하도록 돕는 ‘감성 컴퓨팅’, 인간의 뇌에서 추출한 정보를 바로 컴퓨터에 옮기는 ‘마인드 업로딩’은 디지털 클론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는 기억을 이식한 챗봇과 대화하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곧 인간의 목소리와 생김새를 지닌 진짜 디지털 클론이 나올지 모른다고 저자들이 예측하는 이유다.슬픈 건 디지털 클론을 만드는 데 돈이 든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0년 죽은 사람의 성격을 모방, 학습할 수 있는 챗봇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현재 챗봇 형태의 디지털 클론을 찾은 유족은 대부분 부유한 남성이다. 가까운 미래에 넷플릭스를 구독하듯 매달 이용료를 내고 고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디지털 납골당’이 등장할지 모른다고 저자들은 예견한다. 모든 일엔 돈이 들지만, 애도하는 데에도 빈부 격차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씁쓸하다.“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모가 변하듯이 우리의 사고방식 또한 변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이며 예전의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나는 오리지널이다.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인간의 디지털 클론을 만들려는 모든 사람에게 결정적인 의문이 아닐까? 만약 인간이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누구를 클론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어느 날 디지털 클론이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간의 구식 버전으로만 남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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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세 소년을 덮친 제주 4·3사건 고통… “이번 장편은 당시 원혼에 바치는 공물”

    “제주 4·3사건 영령(英靈)들이 제게 명령해서 쓴 작품입니다. 4·3사건의 원혼에게 바치는 공물을 한번 제대로 만들어 봐야겠다 하는 결심으로 썼습니다.” 현기영 작가(82)는 29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장편소설 ‘제주도우다’(전 3권·창비)를 출간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1104쪽에 이르는 이 대작을 4년 동안 집필한 건 4·3사건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는 “제주 4·3사건은 대수난이고 대참사였다”며 “고심해서 탐구하듯 쓴 작품인 만큼 독자가 작품을 천천히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주 출신인 그는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아버지’가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그가 1978년 발표한 중편소설 ‘순이 삼촌’은 4·3사건을 널리 알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순이 삼촌’을 발표하고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투옥된 적 있다”며 “풀려난 뒤에도 고문당하는 꿈을 두 번이나 꿨다”고 아픈 상처를 회고했다. “꿈에서 저를 고문하는 주체가 4·3사건 영령이더군요. 영령에게 ‘네가 뭘 했다고 벗어나려 하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4·3사건을 일생의 화두로 삼게 됐습니다.” 그가 2009년 장편소설 ‘누란’(창비) 이후 14년 만에 내놓은 이번 신작은 1943∼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한다. 제주 작은 해변마을에 사는 11세 소년 안창세가 4·3사건이란 광풍과 격변의 현대사를 마주하는 고통을 그렸다. 4·3사건에서 살아남은 안창세가 노인이 된 뒤 살아남은 자로서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성을 취해 현재도 4·3사건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전했다. 이념 투쟁, 학살 등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과 함께 어린 소년의 성장과 사랑을 다뤘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는 “4·3사건이 너무 참혹해서 젊은이의 열정, 연애, 사랑 이야기도 넣었다”며 “참혹한 참사의 이야기만 나오진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올 2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4·3사건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태 의원의 발언은) 그야말로 역사 왜곡이고 지식 왜곡”이라며 “4·3사건은 무지막지한 탄압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그제야 웃으며 답했다. “4·3사건 이야기는 그만 써야죠. 이제부턴 나무와 자연에 관한 글을 써볼까 합니다. 도시에서 시멘트로 둘러싸여 회색 공간에 살다 보니 인간이 자연의 소산임을 잊고 있잖아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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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독자는 미래지향적… 이순신 영감받은 책, 내년 韓서 번역 발간”

    “안녕하세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2)는 2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어로 또박또박 인사말을 건넸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은 뒤 프랑스어로 말했다. “한국에 오는 게 정말 즐겁습니다. 친근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 덕에 집에 온 거 같아요.” 장편소설 ‘개미’(1993년), ‘타나토노트’(1994년), ‘뇌’(2003년), ‘신’(2008년) 등으로 특히 한국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은 베르베르가 ‘개미’의 한국 출간 3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2019년 6월 이후 4년 만의 방한으로, 이번이 9번째다. 그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돼 3500만 부가 팔렸는데 이 중 1300만 부를 한국 독자가 샀다. 그는 “평소 한국 영화를 즐겨 보고, 프랑스에서도 한국 식당에서 자주 식사한다”며 “한국 독자들이 미래지향적이라 내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처음 제가 한국에 왔을 때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가 어린 딸을 소개해줬어요. 그 소녀가 지금 이렇게 성장해서 (홍유진 열린책들) 기획이사가 됐네요. 하하.” 1991년부터 32년 동안 30종, 57권의 책을 펴낸 그는 이달 20일 장편소설 ‘꿀벌의 예언’(전 2권·열린책들)을 국내 출간했다. 신작은 꿀벌이 사라진 뒤 인류 멸종의 위기를 다뤘다. 집단을 이뤄 사는 동물을 그린다는 점에서 ‘개미’가 떠오른다. 그는 “나는 항상 사회성을 지닌 동물에 관심이 많았다”며 “개미와 꿀벌이 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은 인간들이 도시와 문명을 세운 과정과 유사하다”고 했다. “꿀벌에 흥미를 느낀 건 인간이 먹는 ‘꿀’을 만들기 때문이에요. 또 최근 환경문제 때문에 꿀벌이 멸종위기에 처했는데, 자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인간들은 꿀벌에게 인사를 해도 모자랄 판에 꿀벌이 사라지게 만들고 있거든요.” 베르베르는 “소설가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미래의 것을 다루지만 인공지능(AI)은 기존에 존재하는 지식 안에서만 작동한다”며 “AI가 이미 존재하는 ‘개미’의 후속작을 쓸 수는 있겠지만 나는 주제, 문체가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에서 열린 ‘파리 디지털비전포럼’에서 프랑스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AI를 선의의 의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윤리를 만들자”고 말한 바 있다. 이 제안은 “원자력으로 전기를 만들 수도, 핵폭탄을 제조할 수도 있는 것처럼 AI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의견을 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프랑스에서 출간해 내년 국내 번역 출간 예정인 장편소설 ‘퀸의 대각선’(가제·열린책들)을 쓸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복잡한 국제 정치 속에서 영웅들이 살아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한국의 역사를 참고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러시아 중국 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어려운 지정학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지켜냈다.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많은 한국 독자가 제 작품을 읽어준 만큼 작가로서 꿈을 이미 이뤘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 젊은 한국 독자에게 다가서고 싶다”고 웃으며 답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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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춘엔 슬픔만큼 기쁨도 존재해요”… 젊은 직장인들 삶 사실적으로 그려

    “안 돼!” 자동차 운전 연수 선생님이 주연에게 소리쳤다. 주연은 분명 깜빡이를 켠 뒤 사이드미러로 뒤차가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핸들을 꺾었다. 그런데 사각지대에서 차가 경적을 울리며 나타난 것이다. 30대 여성인 주연은 원하는 대학에 한 번에 입학했다.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통과하고 대기업에서 일하는 이른바 ‘엄친딸’이다. 하지만 어쩐지 운전대만 잡으면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손이 달달 떨린다. 과연 주연은 무사히 운전 연수를 받을 수 있을까. 또 원하는 삶의 목적지에 안전히 도착할 수 있을까. 단편소설 ‘연수’의 내용이다. 단편 6편이 담긴 소설집 ‘연수’(창비·사진)를 펴낸 장류진 작가(37)는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20대 중반에 운전면허를 땄지만 이후 연수를 여러 번 받으며 고생한 기억이 있다. (주연처럼) 나도 겁이 많아서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며 깔깔 웃었다. 소설에 녹아든 삶의 목적지에 대한 고민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대에 대기업에 다니다 소설가가 된 그의 인생이 반영된 걸까. 장 작가는 “정해진 목적지를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소설가가 된 건 아니다. 난 소설을 쓰는 것도 올바른 목적지를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장 작가는 2019년 젊은 직장인의 애환을 사실적이고 흡인력 있게 그린 첫 단편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으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2021년엔 가상화폐에 투자한 직장인들의 심리를 실감 나게 담은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로 화제를 모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중국 일본 대만 터키 베트남, ‘달까지 가자’는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까지, 각각 5개국에 번역 출간됐다. 그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끄는 덕을 본 것 같다”면서도 “해외 독자들이 ‘한국의 젊은 직장인의 삶에 공감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이번 신간에서도 그는 젊은 직장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살려냈다. 단편소설 ‘펀펀 페스티벌’에선 대기업 입사 합숙면접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투를 그린다. ‘동계올림픽’에선 방송사 인턴사원이 정직원 전환이 가능할지 불안함을 느낀다.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읽는 맛을 살리는 그의 장점은 신간에서 여전히 빛난다. ‘삶의 애환을 달래는 건 월급뿐’이라고 토로했던 전작들과 달리 청춘을 위로하는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이 담겼다. 단편 ‘공모’에서 선배 직원은 회사를 그만둔다며 미안해하는 후배 직원에게 “네 미래가 될 수 없었던 내가 죄송하다”고 말한다. 표제작 ‘연수’의 후반부에서 운전 연수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잘하고 있다”며 용기를 준다. “청춘에게 고통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픔만큼 기쁨도 존재하니까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장 작가는 해맑게 답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나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쓸 뿐이에요. 소설을 쓰면서 고민한 시간이 제 슬픔이라면, 독자가 재밌게 읽어주는 게 제 기쁨입니다. 단편소설집과 경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다려주세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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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전연수에 빗댄 인생 이야기 ‘연수’ 펴낸 장류진 작가

    “안 돼!” 자동차 연수 선생님이 주연에게 소리쳤다. 운전 중인 주연은 분명 왼쪽 깜빡이를 켠 뒤, 사이드미러를 봤다. 뒤차가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핸들을 꺾어 좌측 차선을 밟았다. 그런데 사각지대에서 나타난 차가 경적을 울리며 등장한 것이다. 사고가 날뻔하자 선생님은 주연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여기는 자동차전용도로잖아요. 차가 쌩, 쌩, 달리는 데란 말이야.” 30대 여성인 주연은 원하는 대학에 한 번에 입학했다.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통과해 대기업에서 일하는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다. 하지만 어쩐지 운전대만 잡으면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손이 달달 떨린다. 과연 주연은 무사히 운전 연수를 받을 수 있을까. 또 원하는 삶의 목적지에 안전히 도착할 수 있을까. 단편소설 ‘연수’의 내용이다. 23일 6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단편소설집 ‘연수’(창비)를 펴낸 장류진 작가(37)도 초보 운전자일까 궁금했다. 장 작가는 2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도 겁이 많아서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며 깔깔 웃었다. “스무 살에 운전면허 시험을 봤다가 여러 번 떨어졌어요. 운전면허 시험을 신청했다가 무서워서 시험을 안 본 적도 있습니다. 20대 중반에 운전면허를 땄지만 이후 운전 연수를 여러 번 받으며 고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하하.” 그는 2019년 젊은 직장인의 애환을 사실적이고 흡인력 있게 그린 첫 단편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로 단숨에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2021년엔 가상화폐에 투자한 젊은 직장인들의 심리를 실감 나게 담은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로 화제를 끌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중국 일본 대만 터키 베트남, ‘달까지 가자’는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에 각각 5개국에 번역 출간될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해외 독자들이 ‘한국의 젊은 직장인의 삶에 공감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해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끄는 덕에 한국이 배경인 제 소설도 해외에서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신간에서도 그는 젊은 직장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살려냈다. 단편소설 ‘펀펀 페스티벌’에선 대기업 입사 합숙면접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사투를 그린다. ‘동계올림픽’에선 방송사 인턴사원이 정직원 전환이 가능할지 불안함을 느낀다. 정 작가가 20대에 직장생활을 했던 경험 때문일까 묻자 그는 조심히 답했다. “청춘의 삶을 그려낸다는 말은 감사합니다. 다만 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쓸 뿐이에요. 사과나무에 사과가 나듯이요.”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읽는 맛’을 살리는 그의 장점은 신간에서 여전히 빛난다. 삶의 애환을 달래는 건 월급뿐이라 토로했던 전작들과 달리 청춘을 위로하는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단편소설 ‘공모’에서 선배 직원은 회사를 그만둔다며 미안해하는 후배 직원에게 “네 미래가 될 수 없었던 내가 죄송하다”고 말한다. 단편소설 ‘연수’의 후반부에서 연수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잘하고 있다”며 용기를 전한다. “청춘에게 고통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픔만큼 기쁨도 존재하니까요.” 계획을 묻자 그는 해맑게 답했다. “소설을 쓰면서 고민한 시간이 제 슬픔이라면, 독자가 재밌게 읽어주는 게 제 기쁨입니다. 단편소설집과 경장편소설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다려주세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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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속 가, 괜찮을 거야”… 코맥 매카시를 기리며[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13일(현지 시간) 향년 90세로 별세한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코맥 매카시에겐 늦둥이 아들이 있다. 64세에 낳은 아들 존 매카시다. 작가는 2009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존과 함께 있는 시간을 빼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아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내곤 했다. 한마디로 ‘아들 바보’인 셈이다. 코맥 매카시의 장편소설 ‘로드’는 대재앙이 일어난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에서 문명은 파괴되고, 생명체는 대부분 멸종했다. 하늘은 온통 재로 뒤덮여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사라진 땅에서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걷는다. 둘은 살아남기 위해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해 간다. 아버지와 아들이 왜 남쪽을 향해 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뿐이다. 여행은 쉽지 않다. 인간을 사냥하는 이들을 피해 조심히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 아버지는 매일 밤 피를 토하며 잠에서 깰 정도로 몸이 좋지 않다. 위험에 처할 때마다 아버지는 고민한다. 더 큰 고통을 겪기 전에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아버지는 두려움에 떠는 아들을 다독이며 버틴다. “그래도 우리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우린 아직 여기 있잖아.” 소설은 코맥 매카시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아들이 아홉 살일 때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낡은 호텔에 머무르던 밤 그는 창가에서 마을을 내려다봤다. 어둠에 가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고 오직 기차 소리만 들렸다. 그는 100년 후엔 마을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했다. 산 위로 불길이 치솟고 모든 것이 다 타버린 풍경이 떠올랐다. 그는 잠든 아들을 바라보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려는 아버지의 투쟁은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로드’는 2007년 미국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영화 ‘더 로드’(2010년)로 만들어졌다. ‘핏빛 자오선’(1985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5년)로 명성을 얻은 그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섰다. ‘로드’ 서문엔 “이 책을 존 매카시에게 바친다”고 썼다. 작가는 ‘로드’ 250부에 자신의 서명을 남긴 뒤 아들에게 물려줬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서명한 ‘로드’는 모두 존의 것”이라고 했다.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던 코맥 매카시가 자택에서 사망한 사실을 출판사에 알린 것도 그의 아들 존이다. ‘로드’에서 아버지가 죽는 순간 아들에게 남겼던 말이 마치 코맥 매카시의 유언처럼 읽힌다. “나는 같이 못 가. 하지만 넌 계속 가야 돼. 길을 따라가다 보면 뭐가 나올지 몰라. 그렇지만 우리는 늘 운이 좋았어. 너도 운이 좋을 거야. 가보면 알아. 그냥 가. 괜찮을 거야.”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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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고통이 극에 달하는 밤, 詩가 돋아나는 밤

    “저는 지금도 자다가 눈을 뜨면, 엄마가 계시던 병동의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김혜순 시인(68)은 지난해 4월 14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를 펴낸 계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2019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시집을 썼고, 아직도 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엄마가 앓고 있을 때, 엄마가 돌아가실 무렵, 그 후 엄마의 집을 정리하던 시간에 시를 적었다”며 “죽음이란 우리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국제부문,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을 받은 김 시인의 인터뷰집이다. 황인찬 시인(35)이 김 시인을 6개월 동안 인터뷰해 정리했다. 젊은 시인과 오래 시를 써온 시인의 대화라는 점에서 시에 대한 스승과 제자의 문답 같다. 김 시인은 학창 시절부터 ‘문학소녀’였다. 할머니가 불을 끄고 자라고 해도 이불 속에서 플래시를 켜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 밤을 새우고, 다음 날 학교에 지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가득 쌓인 책들을 볼 때마다 ‘저 책들은 내 것이야’라고 생각했다”고 추억했다. 1970년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김 시인은 책의 번역자 주소를 알려달라는 형사의 요구를 거절한 뒤 뺨을 7대 맞았다. 자신이 느낀 슬픔을 ‘두 뺨에 두 눈에 두 허벅지에/마구 떨어지는 말 발길처럼’(시 ‘그곳1’ 중)이란 시구로 적으며 버텼다. 2015년부터 앓고 있으나 병명조차 모르는 신체적 고통에 대해 ‘영혼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아플 때 영혼은 어디 숨어 있을까’(시 ‘리듬의 얼굴’ 중)라고 쓰며 자신을 다독였다. “저는 제 고통이 극에 달한 밤, 제 몸에 돋는 거대한 날개를 목도합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여자의 어깨에 투명한 날개가 돋았다고 씁니다. 오직 즉각적인 상상력에 의해서만 우리의 고통을 쓸 수 있을 뿐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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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이현세가 그린 ‘공포의 외인구단’… 어떤 작품일지 나도 궁금”

    “만화에서 인공지능(AI)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AI가 생각해내지 못하는 작가만의 오리지낼리티(예술의 독창성과 신선함)가 필요한 때죠.” ‘공포의 외인구단’(1983년) ‘아마게돈’(1988년) 등으로 한국 만화계를 이끈 이현세 화백(67)은 19일 서울 강남구 작업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AI가 창작의 세계마저 잠식하고 있다는 만화계의 우려를 넘어서기 위해선 AI를 활용하거나 맞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웹툰이 등장했을 때 종이만화 시장이 줄어들 것을 예측하지 못한 만화가는 다 사라졌다”며 “소비자가 마트에서 로봇이 재배한 농산물을 사 먹듯, 독자는 재미만 있다면 AI가 그린 웹툰을 찾아 읽을 것”이라고 했다. 이 화백은 옛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정통 만화가다. 이날 방문한 그의 작업실엔 컴퓨터 대신 커다란 나무 작업대가 있었다. 책상엔 붓, 펜, 가위처럼 손으로 만화를 그리기 위한 화구(畫具)가 가득했다. 연필통엔 종이로 몽당 연필 뒷부분을 감아 잡기 편하게 한 연필 수십 자루가 꽂혀 있었다. 가난한 시절 연필값을 아끼기 위해 들인 습관이 남은 탓이다. 그는 “요즘 웬만한 만화가들은 컴퓨터로 그리고 채색한다. 하지만 난 섬세한 그림체를 지키기 위해 손으로만 그린다”고 말했다. 이런 이 화백이 AI와는 이미 손을 잡았다. 지난해 10월 만화기획사 재담미디어를 통해 그가 44년 동안 창작한 만화책 4174권을 컴퓨터에 학습시켜 자신의 그림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철완아톰’(우주소년 아톰)으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1928∼1989)의 신작 ‘파이돈’이 사후 31년 만인 2020년 발표되는 등 해외에선 이미 AI와의 협업이 시도됐지만, 한국 만화가로선 첫 도전이다. 이른바 ‘AI 이현세’ 프로젝트다. 그가 AI에 끌린 건 창작욕 때문이다. 그는 “과거 작품을 보니 내 그림체가 10년 단위로 바뀌었다”며 “젊은 시절 나의 힘 있는 선으로 최근 작품을, 현재 나의 원숙한 그림체로 초창기 작품을 그리면 어떨지 욕심이 났다”고 했다. ‘AI 이현세’가 만든 ‘공포의 외인구단’은 이르면 올가을 공개된다. 아직 정확한 모습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성공적으로 완성된다면 주인공인 까치 오혜성이 투구하는 모습과 표정을 60대 이 화백의 그림체로 볼 수 있다. 이 화백이 몇 년에 걸쳐 하나씩 내던 작품을 1년에 여러 편 내는 식의 다작도 가능하다. 최근작인 ‘늑대처럼 홀로’를 이 화백의 젊은 시절 화풍으로 제작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건 AI가 과거를 모방하는 걸 넘어 미래의 이 화백이 어떻게 그릴지 예측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0세가 된 이 화백의 시각과 그림체를 담아 새로운 ‘공포의 외인구단’이 탄생하는 식이다. “제가 200세가 돼서 그림을 그리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궁금했죠. 죽어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호기심이 제 발길을 이끌었습니다. AI에 내 그림을 학습시키면 ‘불멸’ ‘영생’ 할 수 있는 셈입니다.” 다만 미완성본에서 AI는 까치의 팔을 세 개로 그리는 등 오류를 낸다. 학습량과 시간에 따라 AI 이현세의 성공 여부가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성공한 만화가인데, 왜 다른 만화가가 주저하는 일에 도전했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만화를 그리면서 한 번도 기존 이야기를 이어가는 후속편을 낸 적이 없었습니다. AI의 학습력을 뛰어넘을 만화가의 경쟁력도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도전정신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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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석 교수 “행복이 머무르는 곳은 언제나 현재뿐”

    “주고받은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103)는 15일 출간한 에세이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2’(열림원·사진)에서 이렇게 말한다. 100년 넘게 살아보니 행복의 바탕은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행복은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에서 온다”며 “선한 인간관계는 서로 존경하고 위해 주는 마음의 자세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간은 지난해 11월 출간된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열림원)의 후속작이다. 김 교수가 그동안 행복을 주제로 쓴 글들을 골라 묶었다. 김 교수는 “오래 사느라고 누구보다도 고생을 많이 했다. 하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이었기 때문에 행복했다”며 삶을 돌아본다. 그는 “행복이 머무르는 곳은 언제나 현재뿐”이라며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김 교수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구성원들이 어른으로서 모범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학생보다도 열심히 공부하는 교수가 훌륭한 스승이 된다”며 “사원보다도 성실히 노력하는 윗사람이 돼야 그 회사가 발전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또 “뚜렷한 목표와 희망이 있어야 한다”며 청년에게 당부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대한민국이 나의 남은 소원”이라는 말에서 김 교수의 진심이 오롯이 느껴진다. 1만6800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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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세 “AI에 내 만화책 4174권 학습시켜…불멸 영생하고 싶어”

    “만화에서 인공지능(AI)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AI가 생각해내지 못하는 작가만의 ‘오리지널리티’(예술의 독창성과 신선함)가 필요한 때죠.”‘공포의 외인구단’(1983년) ‘아마게돈’(1988년) 등으로 한국 만화계를 이끈 이현세 화백(67)은 19일 서울 강남구 작업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AI가 창작의 세계마저 잠식하고 있다는 만화계 우려를 넘어서기 위해선 AI를 활용하거나 맞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웹툰이 등장했을 때 종이만화 시장이 줄어들지 예측하지 못한 만화가는 다 사라졌다”며 “소비자가 마트에서 로봇이 재배한 농산물을 사 먹듯, 독자는 재미만 있다면 AI가 그린 웹툰을 찾아 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이 화백은 옛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정통 만화가다. 이날 방문한 그의 작업실엔 컴퓨터 대신 커다란 나무 작업대가 있었다. 책상엔 붓, 펜, 가위처럼 손으로 만화를 그리기 위한 화구(畫具)가 가득했다. 연필통엔 종이로 몽당 연필 뒷부분을 감아 잡기 편하게 한 연필 수십 자루가 꽂혀 있었다. 가난한 시절 연필값을 아끼기 위해 들인 습관이 남은 탓이다. 그는 올 3월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한 ‘늑대처럼 홀로’도 손으로 그린 뒤 스캔해 올렸다. 그는 “요즘 웬만한 만화가들은 컴퓨터로 그리고 채색한다”며 “하지만 난 섬세한 그림체를 지키기 위해 손으로만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하지만 그는 AI와는 이미 손을 잡았다. 지난해 10월 만화기획사 재담미디어를 통해 그가 44년 동안 창작한 만화책 4174권을 컴퓨터에 학습시켜 자신의 그림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철완아톰(우주소년 아톰)’으로 유명한 일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1928∼1989)의 신작 ‘파이돈’이 사후 31년 만에 발표되는 등 해외에선 이미 AI와의 협업이 시도됐지만, 한국 만화가로선 첫 도전이다. 이른바 ‘AI 이현세’ 프로젝트다.그가 AI에게 끌린 건 창작욕 때문이다. 그는 “과거 작품을 보니 내 그림체가 10년 단위로 바뀌며 달라졌다”며 “젊은 시절 나의 힘 있는 선으로 최근 작품을, 현재 나의 원숙한 그림체로 초창기 작품을 그리면 어떨지 욕심이 났다”고 했다.‘AI 이현세’가 만든 ‘공포의 외인구단’은 이르면 올 가을 공개된다. 아직 정확한 모습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성공적으로 완성된다면 주인공인 까치 오혜성이 투구하는 모습과 표정을 60대 이 화백의 그림체로 그려낼 수 있다. 이 화백이 몇 년에 걸쳐 하나씩 내던 작품을 1년에 여러 편 내는 식의 다작도 가능하다. 최근작인 ‘늑대처럼 홀로’를 이 화백의 젊은 시절 화풍으로 제작할 수 있다.주목할만한 건 AI가 과거를 모방하는 걸 넘어 미래의 이 화백이 어떻게 그릴지 예측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0세가 된 이 화백의 시각과 그림체를 담아 새로운 ‘공포의 외인구단’이 탄생하는 식이다.“제가 200세가 돼서 그림을 그리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궁금했죠. 죽어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호기심이 제 발길을 이끌었습니다. AI에게 내 그림을 학습시키면 불멸, 영생할 수 있는 셈입니다.”다만 미완성본에서 AI는 까치의 팔을 세 개로 그리는 등 오류를 낸다. 학습량과 시간에 따라 AI 이현세의 성공 여부가 갈릴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성공한 만화가인데, 왜 다른 만화가가 주저하는 일에 도전했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만화를 그리면서 한 번도 기존 이야기를 이어가는 후속편을 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그리느라 매번 신인 작가처럼 살았어요. AI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AI의 학습력을 뛰어넘을 만화가의 경쟁력은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도전정신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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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개혁가 혹은 독재자… ‘미스터 에브리싱’을 말하다

    “당장 오십시오.” 2017년 1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 장관, 군부대 사령관 등 핵심 인물 200여 명은 왕실의 전화를 받았다. 국왕이 수도 리야드의 리츠칼튼호텔로 집합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호텔에 모인 이들은 즉각 구금됐다. 이들은 거액을 헌납하고 충성 서약을 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고문, 구타, 협박을 당했다는 이도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작업을 이끈 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의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2명이 빈 살만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저자들은 해외에 잠시 나와 감시를 피한 사우디 관계자들을 2017년부터 극비리에 취재했다. 빈 살만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한국과 26개 사업에 290억 달러(약 37조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한 인물이다. 38세 젊은 왕세자의 진면목에 한국 독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1985년 태어난 빈 살만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걱정거리였다. 지금은 훤칠한 용모를 지녔지만 과거엔 맥도널드 햄버거를 너무 좋아해 살이 많이 쪘다. 게임에 빠져 공부도 등한시했다. 군복을 차려입고 슈퍼마켓에서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주식투자를 하다 잔액이 0원이 된 적도 있다. 빈 살만이 본격적으로 사우디 정치에 등장한 건 불과 26세 때인 2011년이다. 아버지가 국방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그는 특별보좌관이 된다. 아버지가 왕세자가 될 땐 궁정실장에 취임했다. 2015년 당시 국왕이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가 국왕이 되자 그는 실권을 차지한다. 그는 아버지의 셋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다. 위로 배다른 형제가 여럿이다. 아버지 역시 첫째가 아니라서 할아버지는 원래 왕세자로 사촌 형 빈 나예프를 낙점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빈 나예프에게 부패 혐의를 뒤집어씌워 2017년 물러나게 했다. 이후 사우디에서 금지됐던 미혼 남녀의 교제, 영화관 출입을 허용하며 젊은 층의 인기를 얻었다. 왕세자가 된 빈 살만은 거침이 없었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기 일쑤였다. 위협이 될 만한 인물에겐 돈을 뿌리거나 협박해 아버지 편으로 포섭했다. 롤 모델이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는 빈 살만을 총애했다. 서열이 중요한 왕국에서, 적자생존의 권력투쟁에서 빈 살만의 잔혹한 행동은 어쩌면 그 자신에게는 당연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가 권력을 쥐면서 사우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점도 있다. 그는 ‘비전2030’이란 경제 정책을 발표해 오일 달러에 의존한 기존 사우디 경제를 탈바꿈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를 탄압한다.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숨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을 사주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군사협력합의서를 체결해 세계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사우디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가 88세로 고령인 만큼 빈 살만의 집권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빈 살만은 사우디의 경제 부흥을 이끄는 젊은 지도자가 될까, 아니면 무자비한 독재자가 될까. 두 얼굴 속에 숨겨진 진실을 그가 언제 드러낼지 궁금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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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하 초판 재킷 살린 LP 발매, 음원은 1987년 원본 리마스터링

    가수 유재하(1962∼1987)의 1집 앨범이자 유작인 ‘사랑하기 때문에’(1987년)의 초판 재킷을 그대로 살린 LP앨범(사진)이 21일 발매된다. 담배 연기로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글씨를 형상화한 초판 재킷은 홍보용으로 소량 제작됐지만 나중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유 씨 얼굴로 수정됐다. 알레스뮤직은 “21일 선보이는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스페셜 바이닐 에디션’에 담긴 음원은 유 씨가 1987년 녹음했던 원본을 리마스터링해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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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소설 ‘동조자’엔 박찬욱이 좋아하는 주제 가득”

    “201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제 집에서 박찬욱 감독(60)과 저녁 식사를 하며 장편소설 ‘동조자’(2018년·민음사)의 영상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는데 드디어 드라마로 만들어지니 영광이네요.” 베트남 출신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52)은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환하게 웃으며 박 감독과의 만남을 회상했다. 이어 박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배우 샌드라 오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해 내년에 공개되는 동명의 HBO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복수는 나의 것’(2002년), ‘올드보이’(2004년), ‘친절한 금자씨’(2005년) 등 ‘복수 3부작’을 다 봤을 정도로 박 감독의 열렬한 팬”이라며 “기억 복수 폭력 등 박 감독이 다뤄 왔던 주제가 ‘동조자’에도 가득하다. 뛰어난 이야기꾼인 박 감독이 제대로 영상화할 거란 굳은 믿음이 있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그는 만 4세이던 1975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보트피플’이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영문학과 민족학을 전공했고, 현재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문학과 교수이자 작가로 활동한다. 그는 “이방인 출신 미국인으로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며 아픈 기억을 회상했다. “열한 살 때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에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옆 식료품점에 ‘베트남인 때문에 망한 미국인 가게’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겁니다. 충격이었죠.”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동조자’엔 그가 느낀 고민이 고스란히 담겼다. 소설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북베트남의 스파이로 미국으로 건너간 뒤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돼 이중간첩으로 살아간다. “집에선 미국인으로서 베트남인(부모)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고, 밖에선 베트남인으로서 미국인과 살아가는 이중간첩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았어요. 실제로 베트남 출신 스파이도 미국에 있었고요. 다만 전쟁과 식민지배 등 무거운 주제를 액션과 유머가 가득한 스릴러로 풀어내려 했습니다.” 그는 2008, 2010년 두 차례 한국에 방문했다. 그는 “베트남전쟁을 다루는 한국의 시각을 알고 싶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가고,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1988년·창비)도 읽었다”며 “식민 지배를 경험하고 동족 간 전쟁을 겪은 가슴 아픈 과거가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과 한국은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15일 장편소설 ‘헌신자’(민음사)도 펴냈다. ‘동조자’의 주인공이 아버지의 나라인 프랑스로 건너온 뒤 고민하며 방황하는 이야기를 담은 후속작이다. “‘동조자’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에 모두 동조하는 주인공의 고민을 담았다면, ‘헌신자’는 무엇에 헌신하며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는 과정을 그렸어요. ‘헌신자’에 이어지는 3번째 장편소설도 구상 중입니다.” 응우옌은 서울국제도서전 행사의 일환으로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강연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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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이 ‘나도 그림 그려보고 싶다’는 꿈 꿨으면”

    “모형을 만들고 그 사진을 찍는 그림책 작업은 ‘노가다’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젊을 때 창작하고, 나이 들면 개인전을 열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형을 제가 나이 들 때까지 온전히 보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처럼 큰 공간에서 전시하는 기회도 흔치 않고요.”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의 한 작업실.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 헐렁한 셔츠와 바지를 작업복으로 걸쳐 입은 백희나 작가(51)가 말했다. 주위엔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연이와 버들 도령’ 등 그의 대표작에 등장하는 입체 모형이 가득했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스웨덴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2020년 수상한 백 작가가 첫 개인전 ‘백희나 그림책’을 22일부터 10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연다. 개인전을 여는 이유를 물으니 그는 “이번에 안 하면 평생 못할 것 같았다”고 멋쩍어하며 답했다.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있어요. 첫 개인전이니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죠. 하하.” 개인전엔 백 작가의 그림책 11권에 등장하는 모형 약 140점이 전시된다. ‘알사탕’에서 친구들이 먼저 말 걸어 주길 바라며 구슬치기를 하는 소년은 종이인형으로 구현했다. ‘나는 개다’에서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골목은 골판지에 색칠하고 자동차 같은 소품으로 표현했다. ‘꿈에서 맛본 똥파리’는 바닥에 조명을 설치하고, 투명한 아크릴판에 그린 그림을 올려 발밑에 올챙이와 개구리가 가득한 연못이 펼쳐진 듯 보인다. 실제 그림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키가 작은 아이들에게 맞춰서 전시물의 높이를 정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림책 전시를 보고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알사탕’은 지난달 27일 이탈리아 대표 아동문학상인 프레미오 안데르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수상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됐어요. 정말 기뻤죠. ‘알사탕’의 배경이 1970, 80년대 한국인데 서양 독자가 공감했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한국 그림책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낍니다.” 백 작가는 신인 시절인 2003년 그림책 ‘구름빵’을 출간했다. 출판사 한솔교육과 2차 콘텐츠까지 모든 저작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850만 원에 ‘매절(買切)계약’을 했다. 책은 ‘대박’이 났지만 그 탓에 지원금을 포함한 백 작가의 총수입은 고작 1850만 원에 그쳤다. 같은 처지에 처한 이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와의 저작권 분쟁 도중 올 3월 세상을 등진 일을 언급하자 백 작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작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 가슴 아프고 힘들었어요. 이 작가는 떠나고, 나는 살아남았구나 싶었죠. 창작자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하기보단 출판사와의 파트너로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전을 마친 후에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서울 용산구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바비인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튜브 드라마를 만들어 공개할 계획이에요. 매체 환경이 변화하면서 콘텐츠가 책 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어졌고, 영상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림‘책’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계속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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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부흥 이끈 젊은 지도자? 무자비한 권력 실세?… ‘미스터 에브리싱’의 두 얼굴

    “당장 오십시오.”2017년 1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 장관, 군부대 사령관 등 핵심 인물 200여 명은 왕실의 전화를 받았다. 국왕이 수도 리야드의 리츠칼튼호텔로 집합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호텔에 모인 이들은 즉각 구금됐다. 이들은 거액을 헌납하고 충성 서약을 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고문, 구타, 협박을 당했다는 이도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작업을 이끈 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의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다.신간 ‘빈 살만의 두 얼굴’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2명이 빈 살만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저자들은 해외에 잠시 나와 감시를 피한 사우디 관계자들을 2017년부터 극비리에 취재했다. 빈 살만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한국과 26개 사업에 걸쳐 290억 달러(약 37조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한 인물이다. 38세 젊은 왕세자의 진면목에 한국 독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1985년 태어난 빈 살만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걱정거리였다. 지금은 훤칠한 용모를 지녔지만 과거엔 맥도날드 햄버거를 너무 좋아해 살이 많이 쪘다. 게임에 빠져 공부도 등한시했다. 군복을 차려입고 슈퍼마켓에서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주식투자를 하다 잔고가 0원이 된 적도 있다. 빈 살만이 본격적으로 사우디 정치에 등장한 건 불과 26세 때인 2011년이다. 아버지가 국방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그는 특별보좌관이 된다. 아버지가 왕세자가 될 땐 궁정실장에 취임했다. 2015년 당시 국왕이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가 국왕이 되자 그는 실권을 차지한다. 사실 그는 아버지의 셋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다. 위로 배다른 형제가 여럿이다. 또 아버지 역시 첫째가 아니라서 할아버지는 원래 왕세자로 사촌 형 빈 나예프를 고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빈 나예프에게 부패 혐의를 뒤집어씌워 2017년 물러나게 했다. 이후 사우디에서 금지됐던 미혼 남녀의 교제, 영화관 출입을 허용하며 젊은 층의 인기를 얻었다.왕세자가 된 빈 살만은 거침이 없었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기 일쑤였다. 위협이 될만한 인물에겐 돈을 뿌리거나 협박해 아버지 편으로 포섭했다. 롤 모델이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빈 살만을 총애했다. 서열이 중요한 왕국에서, 적자생존의 권력투쟁에서 빈 살만의 잔혹한 행동은 어쩌면 그 자신에게는 당연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가 권력을 쥐면서 사우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점도 있다. 그는 ‘비전2030’이란 경제 정책을 발표해 오일 달러에 의존한 기존 사우디 경제를 탈바꿈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를 탄압한다. 2018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숨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을 사주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군사협력합의서를 체결해 국제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현 사우디 국왕이 88세인 만큼 빈 살만의 집권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빈 살만은 사우디의 경제 부흥을 이끄는 젊은 지도자가 될까, 아니면 무자비한 독재자가 될까. 두 얼굴 속에 숨겨진 진실을 그가 언제 드러낼지 궁금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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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이 ‘나도 그림 그려보고 싶다’는 꿈 꿨으면 좋겠어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고 있어요. 첫 개인전이니 이를 악물고 중노동을 버티고 있죠. 하하.” 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의 한 작업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헐렁한 셔츠와 바지를 작업복으로 걸쳐 입은 그림책 작가 백희나(51)는 이렇게 말했다. 주위엔 ‘구름빵’ ‘장수탕 선녀님’ ‘연이와 버들 도령’ 등 그의 대표작에 등장하는 입체 모형이 가득했다. 그는 “힘들다”며 한숨을 푹푹 쉬었지만 생애 첫 개인전을 앞둔 설렘 덕인지 표정은 어느 때보다 해맑았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스웨덴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백 작가가 첫 개인전 ‘백희나 그림책展’을 이달 22일부터 10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연다. ‘왜 개인전을 결심했냐’고 물으니 그는 “이번에 안 하면 평생 못할 것 같았다”고 멋쩍어하며 답했다. “모형을 만들고 사진을 찍는 그림책 작업은 ‘노가다’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젊을 때 창작하고, 나이 들면 개인전을 열려고 했어요. 그런데 모형을 제가 나이 들 때까지 온전히 보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술의전당처럼 큰 공간에서 전시하는 기회도 흔치 않고요.” 개인전엔 백 작가의 11개 작품에 등장하는 약 140점의 모형이 전시된다. ‘알사탕’에서 친구들이 먼저 말 걸어 주기 바라며 구슬치기를 하는 소년의 모습은 종이인형으로 구현했다. ‘나는 개다’에서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골목은 골판지에 색칠하고 자동차 같은 소품을 놓아 살려냈다. ‘꿈에서 맛본 똥파리’는 바닥에 조명을 설치하고, 투명한 아크릴판에 그린 그림을 올려 발밑에 올챙이와 개구리가 가득한 연못이 펼쳐진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실제 그림책 속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키가 작은 아이들에 맞춰서 전시의 높이를 정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림책 전시를 보고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27일 백 작가의 ‘알사탕’이 이탈리아의 대표 아동문학상인 프레미오 안데르센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그는 “‘알사탕’의 배경이 1970, 80년대 한국인데 서양 독자가 공감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확실히 한국 그림책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백 작가는 신인 시절인 2003년 그림책 ‘구름빵’을 출간했다. 출판사 한솔교육과 2차 콘텐츠까지 모든 저작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850만 원에 ‘매절(買切)계약’을 했다. 이 때문에 지원금을 포함한 백 작가의 총수입은 고작 1850만 원에 그쳤다. 같은 처지에 처한 이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업체와의 저작권 분쟁 도중 올 3월 세상을 등진 일을 언급하자 백 작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작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 가슴 아프고 힘들었어요. 이 작가는 떠나고, 나는 살아남았구나 싶었죠. 창작자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하기보단 출판사와의 파트너로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전이 끝나면 그는 무슨 일을 벌일까. “서울 용산구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바비인형이 등장하는 유튜브 드라마를 공개할 계획이에요. 시골에 살던 여성이 서울에 상경해서 순박한 남자를 사랑하지만, 현실적 여건 때문에 부잣집 아들과 결혼하는 ‘통속 드라마’죠. 앞으로도 그림‘책’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계속할 겁니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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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美작가 매카시 별세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인 코맥 매카시(사진)가 미국 뉴멕시코주 샌타페이 자택에서 1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미국 테네시대에서 물리학과 공학을 전공하다 1953년 공군에 입대해 4년간 복무한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 고인은 인간의 삶과 죽음, 운명을 냉정하게 파고들며 ‘핏빛 자오선’을 비롯해 특유의 어둡고 묵시록적인 작품을 남겼다.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5년)는 코언 형제가 동명 영화(2008년)로 만들어 널리 알려졌다. 미국 퓰리처상 수상작인 ‘로드’(2006년)는 대재앙이 벌어진 후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해 나아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을 간결한 문체와 감성이 응축된 대화로 그린 작품이다. ‘국경 3부작’으로 불리는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은 서부 장르 소설을 수준 높은 문학으로 승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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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위보도 척결 위해 글로벌 연대를”… 세계최대 팩트체크 행사 첫 국내개최

    세계 최대 팩트체크 행사인 ‘제10회 글로벌 팩트 체킹 서밋’이 28∼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 각국 팩트체크 기관들이 모여 글로벌 기준을 논의하고 연대를 모색하는 이 행사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행사는 2014년 시작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러시아의 허위 정보 확산을 보도한 핀란드 기자 제시카 아로가 29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을 정지시켰던 요엘 로스 전 트위터 신뢰 및 안전 책임자가 30일 연설한다. 구글, 유튜브 등 플랫폼 기업 관계자 등 약 60개 국가에서 1500여 명이 참석한다.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은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허위 조작 정보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AI 시대 팩트체크가 나아가야 할 방안도 논의한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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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국제도서전 오늘 개막… 참가 출판사 3배로 늘어

    서울국제도서전이 14일부터 18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 주제는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다.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기후 변화, 인공지능(AI) 등 인간이 당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논의하자는 취지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14일 재앙으로 인류가 사라진 뒤 지구의 모습에 대해 강연하며 도서전의 개막을 알린다. 주빈국은 아랍에미리트(UAE)의 토후국 샤르자다. 주목할 만한 국가를 뜻하는 ‘스포트라이트 컨트리’에는 한국과 수교 60주년을 맞은 캐나다가 선정됐다. 올해 도서전엔 한국을 비롯해 36개국 530개 출판사가 참가한다. 15개국 195개 출판사가 참여했던 지난해보다 출판사 수가 2.7배로 많아졌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되면서 국내외 여러 출판사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며 “한국 웹소설, 웹툰에 특히 관심을 보이는 해외 출판사도 많다”고 했다. 작가는 국내 190명, 해외 25명으로 총 215명이 참여한다. 15일 김연수 김애란 최은영 소설가, 16일 나태주 안도현 시인, 17일 장편소설 ‘고래’(2004년·문학동네)로 올해 영국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천명관 소설가가 독자를 만난다. 18일엔 장편소설 ‘동조자’(2018년·민음사)를 쓴 베트남 출신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이 강연한다. ‘동조자’는 박찬욱 감독이 연출을 맡아 내년에 공개되는 동명 드라마의 원작이다. 만 19세 이하 5000원, 성인 1만 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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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기업 총수가 소설 읽어야 그들의 꿈이 악몽 안 돼”

    “아들과 함께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투어를 다녀왔어요. 자본주의(관광상품)와 비극(전쟁)이 공존하는 공간을 여행하면서 국가가 어떻게 전쟁이란 상처를 안고 가는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캐나다 작가 얀 마텔(59)은 13일 서울 중구 주한 캐나다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한국에 온 소감을 묻자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그는 “7일 한국에 입국해 한옥에서 머물고, 강원 설악산 울산바위도 올라가며 한국을 두루 둘러봤다. 특히 DMZ에서 극명하게 다른 두 국가(남한 북한)가 국경을 맞댄 모습을 본 경험이 인상 깊었다. 전쟁과 비극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해 보려 한다”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는 장편소설 ‘파이 이야기’(2004년·작가정신)로 유명하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인도 소년과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던 중 배가 침몰하자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표류하다가 구조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50개 국가에서 출간돼 1200만 부가 팔린 이 소설로 그는 2002년 영국 부커상을 수상했다. 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소설을 바탕으로 리안(李安) 감독이 연출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3년)는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휩쓸었다. ‘파이 이야기’의 집필 계기를 묻자 그는 추억에 잠겼다. “언젠가 인도를 여행하다가 한 노인을 만나 힌두교에 대해 듣게 됐어요. 왜 힌두교엔 하나의 신이 아닌 다양한 신이 존재하는지, 종교는 왜 다양한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죠. ‘파이 이야기’에서 다양한 신적 존재(상상 속 동물)가 등장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는 2006∼2015년 캐나다 총리를 지낸 스티븐 하퍼에게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지도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야기하며 2007∼2011년 서평을 쓴 편지와 함께 추천한 책을 격주로 꾸준히 보냈다. 그 편지를 모은 에세이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2013년·작가정신)를 펴내는 등 현실 참여적인 발언도 적극적으로 해 왔다. 이 책이 국내 출간될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해 “소설이나 시집 혹은 희곡을 항상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놓아두는 걸 잊지 마시라”라고 쓴 편지를 함께 실어 화제가 됐다. 이 책은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국내에 재출간됐다. ‘독서가 왜 중요한지’ 묻자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책 읽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며 “대통령, 총리 등 국가지도자나 기업 총수가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그들이 꾸는 꿈이 최악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항상 현명한 스승들에게 둘러싸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손쉽게 현명해질 수 있는 길은 바로 책을 읽는 것이죠. 특히 소설을 읽으면 타인의 삶에 공감할 수 있어요.” 그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장편소설 ‘선 오브 노바디(Son of Nobody·가제)’를 내년 영미권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호메로스의 트로이 전쟁 서사시 ‘일리아드’를 읽다가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게 됐다. ‘일리아드’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은 왕이나 귀족이지만 내 소설은 평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룬다. 권력이나 돈이 많은 사람이 발언권을 독차지하는 사회에 대한 비유”라고 했다. 그는 14,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16일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에서 강연을 통해 한국 독자를 만난다. 강연 주제를 묻자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인생은 공동창작’이란 주제로 청중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합니다. 그런데 사실 강연 10분 전쯤에야 강연 내용을 확정할 것 같아요. 하하.”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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