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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 스푼은 낯설지만 자꾸 생각나는 맛. 취향이 아니라면 손도 대기 싫은 바로 그 맛.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같은 영화 ‘킬링 로맨스’가 14일 개봉했다. ‘민초단’이 될지 ‘반(反)민초단’이 될지 일단 먹어봐야 알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한국 영화사상 전에 없었던, 형용할 수 없는 장르의 영화라는 것. 장르를 굳이 정의하자면 뮤지컬 요소를 가미한 서스펜스 코미디 영화 정도다.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발연기로 국민 조롱거리가 된 배우 여래(이하늬)는 남태평양 ‘꽐라섬’으로 도망간다. 그곳에서 자수성가한 재벌 조나단(존) 나(이선균)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뒤 돌연 은퇴한다. 하지만 여래는 본성을 드러낸 남편에게 결혼생활 내내 가스라이팅과 폭행을 당하며 트로피 아내로 시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4수생이자 여래의 팬클럽 출신인 범우(공명)를 만나게 되고, 조나단의 인형 노릇을 끝내고 스크린 컴백을 하기 위해 함께 조나단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하늬는 “촬영 내내 거의 매일 ‘현타’가 왔다”면서 “계속되는 현타에 맞서 ‘오늘도 살아남으리라’하는 생각으로 임했다”며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대본을 보고 실제로 소리 내 웃은 건 영화 ‘극한직업’ 이후 두 번째”라며 “색깔 있는 영화가 한국 영화판에서 더 없어지고 있는데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조나단 역의 이선균은 영화 출연을 망설였지만 드라마 ‘파스타’(2010년) 등으로 친분이 있던 이하늬가 출연하겠다고 하자 참여를 결정했다고 한다. 가정폭력과 살인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영화는 곳곳에 황당할 만큼 우스운 장치로 가득하다. 조나단을 뜨거운 불가마방인 ‘극열지옥’에 넣어서 죽이려고 할 때 여래와 범우가 ‘푹쉭확쿵’이라는 암호를 주고받으며 갑자기 랩을 한다거나, 가짜 수염을 단 조나단이 과장된 몸짓으로 H.O.T의 행복을 부르며 춤추기도 한다. 영화는 ‘남자사용설명서’(2013년)로 B급 정서 마니아층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던 이원석 감독이 연출했다. 이 감독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최대한 동화적인 설정을 통해 폭력같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요소를 피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못났다고 생각해도 누군가 나에게 조그마한 용기를 줌으로써 두려움의 벽이 무너지기도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 이하늬는 영화를 민트초코 맛에 빗대면서 “처음엔 ‘이게 무슨 맛이지?’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엔 ‘새롭네. 가끔 이런 것도 먹어줘야 해’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69분 동안 쏘고 베고 때려눕히는 장면만 나오는데도 지루하지 않다. 이 어려운 걸 존 윅이 또 해냈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액션 영화 ‘존 윅4’가 12일 개봉했다. 2019년 3편이 나온 후 4년 만이다. 리브스는 미국 뉴욕, 일본 오사카, 프랑스 파리를 오가는 화려한 배경 속에서 러닝타임 내내 우아한 액션 연기를 펼친다. ‘소중한 것을 잃은 킬러의 액션 활극’. 존 윅 시리즈 전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4편도 다르지 않다. 전편에서 큰 부상을 입은 그는 뉴욕 지하의 비밀 거처에서 재활 훈련을 마친다. 그는 거대 범죄 조직 수장으로 결성된 최고 회의의 장로를 찾아가 자신의 결혼반지와 자유를 되돌려 달라고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존 윅은 장로를 죽이고, 최고 회의는 존 윅을 처치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켠다. 존 윅 시리즈 중에서도 이번 편은 특히 말 대신 몸으로 보여준다. 리브스는 169분의 러닝타임 중 단 380단어만 말한다. 스턴트맨 출신으로 시리즈 전편의 연출을 맡은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첫 대본에서 대사를 절반 덜어낸 것”이라고 밝혔다. 리브스 특유의 ‘빠르고도 느린’ 액션 연기는 여전히 눈을 잡아끈다.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사뿐사뿐 날아다니는 나비 같기도, 잘 짜 맞춰진 안무를 하는 댄서 같기도 해서 자연스레 동양 무술이 떠오른다. 리브스는 2015년 존 윅 1편 개봉 때 내한해 “유난히 작품 속에서 동양 무술을 많이 선보였다. 동양 무술을 통해 몸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나 스스로를 통제, 관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번 편은 동양 무술을 액션 장면에 적용하는 데서 더 나아가 홍콩 액션스타 전쯔단(甄子丹)이 존 윅의 오랜 친구 케인 역을 맡았다. 그는 존 윅을 죽이라는 최고 회의의 지시에 목숨을 걸고 그와 승부를 벌인다. 전쯔단과 맞붙는 장면에서 리브스는 쌍절곤을 이용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또 오사카 콘티넨털 매니저 시마즈 코지 역은 일본에서 ‘국민배우’로 불리는 사나다 히로유키가 맡아 검술을 선보이는 등 영화 곳곳에 동양적 요소가 가미됐다.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마지막 액션 장면. 존 윅이 결투장인 파리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킬러들이 그에게 걸린 현상금을 타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든다. 존 윅은 계단에서 힘겹게 차례차례 그들을 무찌른다. 사람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죽이면서 강아지에게는 무한한 연민을 가진 존 윅의 면모는 4편에서도 잠시 등장한다. 영화 스토리상 4편에서 시리즈가 마무리되는 듯하지만 제작사는 5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영화는 미국 개봉(3월 24일) 첫 주말에 735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주말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존 윅 시리즈의 첫 주말 성적 중 최고다. 한국에서도 초반 기세가 좋다. 존 윅4는 개봉 첫날인 12일 11만3147명이 관람해, 개봉 직후부터 36일 연속 1위를 지키던 ‘스즈메의 문단속’을 제쳤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소설 ‘해리 포터’가 TV 시리즈로 만들어진다. 10년에 걸쳐 제작되며, 원작자 조앤 K 롤링(사진)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12일(현지 시간)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는 새 스트리밍 플랫폼 ‘맥스’를 내놓으며 새 콘텐츠 중 하나로 해리 포터 시리즈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너브러더스는 현재 배우를 캐스팅하고 있으며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를 총괄 제작한 데이비드 헤이먼이 제작에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는 해리 포터 책 1권이 시즌 1개가 돼 총 7개 시즌을 만들 것으로 전해졌다. 워너브러더스는 “각 시즌은 원작에 충실할 것”이라며 “관객에게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마법학교) 호그와트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게 돼 기쁘다. 새로운 세대의 팬덤을 이끌 새로운 출연진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69분 동안 쏘고 베고 때려눕히는 장면만 나오는데도 지루하지 않다. 이 어려운 걸 존 윅 이 또 해냈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액션 영화 ‘존 윅4’가 12일 개봉했다. 2019년 3편이 나온 이후 4년 만이다. 리브스는 미국 뉴욕, 일본 오사카, 프랑스 파리를 오가는 화려한 배경 속에서 러닝타임 내내 우아한 액션 연기를 펼친다.‘소중한 것을 잃은 킬러의 액션 활극’. 존 윅 시리즈 전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4편도 다르지 않다. 전편에서 큰 부상을 입은 그는 뉴욕 지하의 비밀 거처에서 재활 훈련을 마친다. 그는 거대 범죄 조직 수장들로 결성된 최고 회의의 장로를 찾아가 자신의 결혼반지와 자유를 되돌려 달라고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존 윅은 장로를 죽이고, 최고 회의는 존 윅을 처치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켠다.존 윅 시리즈 중에서도 이번 편은 특히 말 대신 몸으로 보여준다. 리브스는 169분의 러닝타임 중 380단어만 말한다. 시리즈 전편의 연출을 맡았고 스턴트맨 출신이기도 한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은 “첫 대본에서 대사를 절반 덜어낸 것”이라고 밝혔다.리브스 특유의 ‘빠르고도 느린’ 액션 연기는 여전히 눈을 잡아끈다.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사뿐사뿐 날아다니는 나비 같기도, 잘 짜 맞춰진 안무를 하는 댄서 같기도 해서 자연스레 동양 무술이 떠오른다. 리브스는 2015년 존 윅 1편 개봉 때 내한해 “유난히 작품 속에서 동양 무술을 많이 선보였다. 동양 무술을 통해 몸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나 스스로를 통제, 관리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번 편은 동양 무술을 액션신에 적용하는 것을 뛰어넘어 홍콩 액션스타 전쯔단(甄子丹)을 존 윅의 오랜 친구 케인 역에 캐스팅했다. 그는 존 윅을 죽이라는 최고 회의의 지시에 목숨을 걸고 그와 승부를 벌이게 된다. 전쯔단과 맞붙는 장면에서 리브스는 쌍절곤을 이용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스타헬스키 감독은 전쯔단에 대해 “그는 운동 기계”라며 “그렇게 긴 커리어를 가졌는데도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지나치게 몸놀림이 빠르다”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오사카 콘티넨탈 매니저 시마즈 코지 역은 일본 국민배우 사나다 히로유키가 맡아 검술을 선보이는 등 영화 곳곳에 동양적 요소가 가미돼 있다.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액션신이다. 존 윅이 결투장인 파리 사크레쾨르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킬러들이 그에게 걸린 현상금을 타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든다. 존 윅은 계단에서 힘겹게 차례차례 그들을 무찌른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에서 일출과 함께 벌이는 결투 장면도 아름답다. 사람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죽이면서 강아지에는 무한한 연민을 가진 존 윅의 면모는 4편에서도 잠시 등장한다. 영화 스토리 상 4편에서 시리즈가 마무리 되는 듯 하지만 제작사가 5편 제작 의지를 밝힌 상황이다. 영화는 미국 개봉(3월 24일) 첫 주말에 735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주말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랐다. 존 윅 시리즈 전체의 오프닝 스코어 중 최고다. 한국에서도 초반 기세가 좋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존 윅4는 개봉 첫날인 12일 11만 3147명이 관람했다. 매출액 점유율은 62.6%를 차지해 개봉 직후 연속 36일 째 1위를 지키던 ‘스즈메의 문단속’을 제쳤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빠밤 빠바바 밤 밤!’ 영화는 듣기만 해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임 음악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작은 화면으로 보던 마리오를 거대한 3차원(3D) 스크린으로 보는 맛이 있는 영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가 26일 개봉한다. 어린 시절 슈퍼마리오 게임을 즐기다 이젠 부모가 돼 버린 3040세대도, 게임을 모르는 아이도 즐길 수 있을 만한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 뉴욕 브루클린. 배관공 형제인 마리오와 루이지는 시내에 벌어진 물난리를 해결하기 위해 하수도로 들어가지만 정체 모를 배관으로 빨려 들어간다. 루이지는 쿠파가 다스리는 다크 월드에, 마리오는 피치 공주가 다스리는 버섯 왕국에 떨어진다. 루이지를 구출하려는 마리오와, 쿠파가 버섯 왕국을 침략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피치 공주는 손을 잡고 모험에 나선다. 줄거리는 모두가 예상할 만큼 단순하지만 슈퍼마리오 팬이라면 반가울 요소로 가득하다. 마리오는 블록을 요리조리 뛰어넘으며 특별 훈련을 벌이고, 박스를 치면 각종 아이템이 쏟아진다. 레이싱 게임 ‘마리오 카트’ 시리즈의 무지개 로드에서 추격전도 벌어진다. 게임을 어설프게 영화로 만든 게 아니라 무척 공들였다는 인상을 준다. 영화는 ‘미니언즈’ 시리즈를 만든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일루미네이션’이 만들었다. 성우진은 할리우드 톱스타들로 채워졌다. 마리오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편으로 18일 내한하는 배우 크리스 프랫이, 쿠파는 코미디 연기로 사랑받는 잭 블랙이 맡았다. 가수이기도 한 잭 블랙은 극 중 쿠파가 피치 공주를 향해 부르는 세레나데인 ‘피치스’를 맛깔나게 소화했다. 피치 공주 역은 드라마 ‘퀸즈 갬빗’으로 유명한 애니아 테일러조이가 맡았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남자 배우들만 나오는 작품이 많아서 남장하고 출연하고 싶을 정도로 부러웠어요. 여성 서사 작품의 중심을 이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11일 열린 넷플릭스 드라마 ‘퀸 메이커’의 제작발표회에서 주인공 황도희 역을 맡은 배우 김희애가 말했다. ‘퀸 메이커’는 한국 최고 대기업인 은성그룹에서 전략기획실장으로 승승장구하던 황도희가 모종의 사건으로 회사를 나오게 되자 은성그룹과 맞서는 인권변호사 오경숙(문소리)을 서울시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서로 손잡는 정치극이다. 11부작으로 14일 공개된다. 은성그룹 회장 손영심은 배우 서이숙이 맡았다. 정치 장르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주요 인물이 모두 여성이다. 김희애는 “기본적으로 여성 서사지만 성별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라며 “황도희의 노련함과 영리함에 대리 만족하기도 했다. 대본을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황도희에 대해 “한 대 맞으면 두 대로 갚아주는 인물”이라고 했다. 황도희는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냉철해진 인물이다. 그의 ‘갑옷’은 하이힐이다. 김희애는 “황도희는 은성그룹에서 나온 후에도 절대 하이힐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저는 운동화를 주로 신고 언제 하이힐을 신어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여서 촬영할 때 힘들었다”며 웃었다. 황도희의 코치를 받으며 인권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오경숙은 은성그룹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고공 농성을 서슴지 않는다. 문소리는 “여성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오경숙은 ‘이런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은 독특한 지점이 있어서 꼭 내가 해야겠다는 책임감마저 들었다”고 했다. 극 중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오경숙과 경쟁하는 방송사 앵커 출신 백재민 역은 배우 류수영이 맡았다. 류수영은 “2023년인데 남녀 구분하는 것은 촌스럽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지우고 봐도 인간의 욕망이 어떤 바닥을 지니고 어떻게 변해가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오진석 감독은 “대척점에 있는 두 여자가 끝까지 가보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극 중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약자를 위해 싸우느냐’는 황도희의 질문에 오경숙이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라고 답한다. 약자를 보호하는 좋은 세상이라는 말이 낯설게 들리는 시대에 그 가치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동…훈 킴? 동? 동훈? 이름이 킴인가…?” 혼인신고도 하기 전 남편과 사별하고 캐나다로 도망치듯 이민 간 싱글맘 소영(최승윤)과 아들 동현(이든 황, 도현 노엘 황)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가 19일 개봉한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모자가 분투하는 내용은 한국계 캐나다인 앤서니 심 감독의 반(半)자전적 이야기다.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그린 영화 ‘미나리’(2021년)와 닮아 ‘캐나다판 미나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소영은 어린 동현을 먹여 살리기 위해 종일 공장에서 서서 일한다. 말도 음식도 낯설지만 아이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씩씩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민 생활 9년 만에 췌장암 4기 진단을 받는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 그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컬러렌즈를 끼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춘기 동현에게 뿌리를 보여주기 위해 죽은 남편의 가족이 사는 한국의 시골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심 감독은 지난달 30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에 대해 “어린아이가 한국에 대해, 한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겪는 정서적인 여정”이라며 “제 인생과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심 감독은 8세 때 부모님과 캐나다로 이민 갔다. 심 감독은 “영화 속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실제 저희 모자 관계와 비슷하다”고 했다. 영화에서 어린 동현은 같은 반 아이들이 자신을 김밥 도시락을 싸온다는 이유로 ‘라이스 보이’라고 놀리자 “두 유 노 태권도?”라고 외치며 주먹으로 반격한다. 심 감독은 “밴쿠버에서 자랄 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당하고 놀림을 받았는데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방법”이라며 웃었다. 인종차별적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때린 동현이 정학을 받자 소영이 교장 선생님에게 강하게 항의하는 부분도 심 감독의 경험을 담았다. 영화는 전반부 캐나다에서의 장면은 과거 브라운관TV 화면 같은 1.33 대 1 비율로 다소 답답하게 연출했다. 후반부 한국 장면은 가로를 더 길게 찍어 시원하게 트여 보인다. 심 감독은 “캐나다는 땅이 아주 크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은 사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아름다운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작은 세상 안에 있다. 한국은 캐나다와 비교하면 작은 나라지만 캐릭터들이 한국에 돌아오면서 마음과 정신이 넓어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소영 역은 무용가 출신의 신인 배우 최승윤이 맡았다. 데뷔작이지만 가녀리면서도 단단한 여성 역할을 몰입감 있게 소화했다. 영화는 지난해 열린 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TIFF)에서 플랫폼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지난달 토론토영화비평가협회(TFCA)로부터 캐나다 최우수 영화상을 받았다. 심 감독은 각본 제작 연출 편집 연기(소영의 남자친구 사이먼 역)까지 1인 5역을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블랙핑크 지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분식집에 가보려고 한국에 왔어요!”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만난 태국인 페리 씨(25)는 초록색 분식 접시에 차려진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사진을 보여주며 활짝 웃었다. 이날 명동 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거리 양쪽에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간이 트럭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고, 앞으로 걸어가려면 줄을 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서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뒤엉켰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은 칼국수집 ‘명동교자’는 오후 6시에 이미 만석이었고, 관광객 4개 팀이 대기 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점포들이 모두 문을 닫아 을씨년스러웠는데, 같은 곳인지 헷갈릴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엔데믹 국면과 한일 관계 개선, 중국발 입국자 유전자증폭(PCR) 검사 해제 등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폭 늘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 2월에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91만367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8만1850명) 대비 5배가량으로 늘었다. 국가별로 일본(16만1293명) 대만(9만7447명) 미국(9만5324명) 중국(7만830명) 태국(5만3965명) 베트남(5만449명) 홍콩(4만3014명)의 순으로 많았다. 특히 홍콩은 춘제 이후인 2월이 관광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년도 2월 대비 관광객이 약 60배로 폭증했다. 대만 역시 한국 관광 수요가 늘어난 데다 2월 평화기념일 연휴의 영향으로 방한객이 전년 동월 대비 56배로 늘었다.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외국인 관광객 대상 매출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1, 2월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1배로 증가했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은 올해 들어 3월 22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외국인 매출이 8.5배로 늘었다. 명동 화장품 가게 점원 김정은 씨(37)는 “문을 닫았던 가게들이 지난해 가을부터 조금씩 다시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주말에는 코로나 이전처럼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매출이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본, 대만 등 22개국 외국인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K-ETA)를 내년 말까지 면제한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5월부터는 유럽, 미국 등 34개국 입국 비자 소지자가 환승 시 지역 제한 없이 최대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7월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양한 한국 콘텐츠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한국관광홍보관 ‘하이커 그라운드’를 열고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박경숙 한국관광공사 관광홍보관운영팀장은 “올해 2월 기준 하이커 일평균 방문객 수는 2088명이며 이 중 외국인이 30% 정도를 차지한다”며 “국제 관광 시장이 정상화되면 한류팬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서울 중구 명동에서 27일 만난 일본인 관광객 아이미 씨(21)와 지히사 씨(21)는 또렷한 한국말로 “트와이스 너무 예뻐요”라고 외쳤다. 한국에 3박 4일 일정으로 놀러온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명동의 한 면세점. 이곳에 트와이스 멤버들의 핸드프린팅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미 씨는 핸드프린팅에 손을 대고 있는 기념사진을 보여주며 “트와이스를 좋아하다 보니 한국도 좋아하게 돼 여행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온 히로 씨(28)는 한손엔 무거운 짐 가방을, 다른 한손에는 핫도그를 쥐고 있었다. 이날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방탄 벤치’ 인증샷을 찍고, 유명 베이글 맛집을 방문해 30분 넘게 줄을 서 베이글을 구입한 뒤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그는 “지난해 방탄소년단(BTS)에 뒤늦게 빠진 뒤 멤버들이 즐겨 먹는 한국 음식이 실제로 어떤지 늘 궁금했다”며 “유명한 관광지도 좋지만 현지인 ‘핫플’에서 한국의 힙한 감성을 느껴보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라고 했다.》한류 열풍의 시초 격인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NHK 위성에서 2003년 4월 3일 처음 방영된 지 꼭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제4차 한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BTS가 최근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10관왕을 달성한 데 이어 르세라핌, 스트레이키즈 등 K팝 아이돌 그룹들이 오리콘차트 부문마다 1위에 오르내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류가 재확산되면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다시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역동적 K팝, 고단한 日 MZ세대 탈출구” 제1차 한류는 2003년 ‘겨울연가’를 계기로 일본 중년 여성들이 ‘욘사마’(배용준) 등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 데서 시작했다. 이후 2010년대 동방신기를 비롯한 아이돌 그룹이 현지 투어 공연을 하며 제2차 붐을 일으켰고, 팬데믹 기간 K팝과 함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이 인기를 얻으며 제3차 열풍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가장 보수적인 문화 분야로 꼽히는 음식과 패션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된 추세다. 일본 내 재일교포가 세 번째로 많은 고베 지역에서는 한국 총영사관과 한인 사회가 주축이 돼 효고현과 함께 ‘아시안 파크’ 출범을 준비 중이다. 제1, 2차 한류를 일본 중년층이 이끌었다면 최근 열풍을 주도하는 건 MZ세대다. 이들은 반한 감정이 기성세대에 비해 현저히 낮고, 어릴 적 여행 등으로 한국 문화에 친숙한 세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과거엔 한국과 일본이 수직적 관계로 인식됐지만 일본 경제가 30년간 침체된 반면 한국은 급속 성장하면서 젊은층은 양국을 대등한 관계로 느낀다”며 “1970, 80년대 세계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 문화가 경제적 쇠퇴와 함께 정체되면서 젊은층이 자국 콘텐츠에만 만족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류 열풍의 기저엔 일본 젊은층이 느끼는 불안과 좌절이 깔려 있단 분석도 나온다. 장기적인 불황 속에서 자라난 일본의 20, 30대는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현실적으로 사고해 ‘사토리(득도) 세대’라고 불린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전망이 불투명한 젊은층이 현실의 무기력을 탈피할 수 있는 탈출구로 한류를 낙점한 것”이라며 “동일한 아이돌 문화여도 아기자기하고 소위 ‘소녀풍’인 일본 현지 음악 대신 역동적이고 화려한 K팝 문화를 즐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근현대 문화 코드가 닮아 공감하기 좋다는 점도 작용했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우리나라 근대 문화가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 콘텐츠에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1970, 80년대 이후 국내 문화가 자기 색을 갖고 발전하면서 일본 젊은층이 서로 ‘비슷하고도 다른’ 점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20년 전 ‘욘사마’ 팬들이 지금 2030의 엄마 세대가 되면서 한류는 현지 젊은층에게 더욱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고 덧붙였다. 2, 3년 사이 K콘텐츠가 아시아를 넘어 서구권에서 인기를 얻은 것도 제4차 한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동아시아 문화를 연구하는 김은영 인하대 중국학과 교수는 “통상 ‘문화 수도’로 여겨지는 북미와 유럽에서 K콘텐츠를 즐기는 현상이 일본 내에서 한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자리 잡게 했다”며 “한류가 더 이상 마니아들만 즐기는 소수 문화가 아니라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올 1, 2월 외국인 관광객 중 일본인 비중 최대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 2월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 수는 16만129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4096명)보다 40배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대만인(9만7447명), 미국인(9만5324명), 중국인(7만830명)을 크게 앞질러 일본인 관광객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큰 비중(17.6%)을 차지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거리에서 만난 일본인 나카지마 사야카 씨(22)는 처음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의 한일 보이그룹 ‘트레저’의 팬이다. 그는 “트레저를 좋아하면서 한국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본 학교의 한국 수학여행이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재개되면서 지난달 21일에는 일본 구마모토현 루테루 고등학교 학생 37명과 교사 2명 등 총 39명이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5일간 전북 전주 한옥마을, 서울 경복궁과 롯데월드 등을 구경했다. 최근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일본인 관광객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젊어지고, 방문지가 다양해진 것이 특징이다. 양경수 한국관광공사 일본팀장은 “일본 최대 온라인 여행 사이트 라쿠텐트래블에 따르면 ‘한국 여행’을 가장 많이 검색하는 연령대가 3년 전 40∼60대에서 한류 팬인 10, 20대로 바뀌었다”며 “20년 전 일본 중장년 여성 관광객이 드라마 촬영지를 구경했다면 지금은 젊은 여성들이 한국식 패션과 메이크업으로 꾸미고 성수동 등 서울 곳곳의 핫한 거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5월 8일 일본 정부가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유전자증폭(PCR) 검사 의무를 해제하면 관광객 유입은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일본 다이이치세이메이케이자이(第一生命經濟)연구소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겨울연가’ 열풍으로 유입된 일본인 관광객이 우리나라에서 유발한 경제적 효과는 총 1조1906억 원에 달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한류에 애정을 품고 온 여행객은 기존에 ‘가깝고 싸서’ 오던 이들보다 씀씀이가 큰 편”이라며 “5월 8일 일본 PCR 검사 의무 해제에 앞서 현지 한류 열풍을 관광 수요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장실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일본에서는 한류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방한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중국권에서는 세대별 타깃 마케팅을, 미주에선 한류 콘텐츠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국가별 맞춤형 마케팅을 통해 올해 외래 관광객 1000만 명 유치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사랑하는 동은아, 많이 아팠을 거야. 그런데도 뚜벅뚜벅 여기까지 와줘서 너무 고마워. 어느 봄에는 꼭 활짝 피어나길 바라.”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가 주인공인 학교 폭력 피해자 동은(송혜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29일 밝혔다. ‘더 글로리’는 이날 4억 1305만 시간 누적 시청을 기록하며 넷플릭스TV 비영어 부문 시청 6위로 올라섰다. 파트2는 10일 공개 직후 3주간 비영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김 작가는 ‘더 글로리’가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고있는 것에 대해 “감사 인사는 죽을 때까지 해도 모자랄 것 같다”면서 “대한민국과 전 세계 시청자 여러분, 저 지금 너무 신나요!”라고 드라마 속 동은의 대사를 활용해 소감을 밝혔다. 그는 “드라마를 아껴 봐도되고 한꺼번에 봐도 되고 아주 먼 후일에 봐도 된다. 하지만 마지막 회까지 꼭 봐달라. 그래서 피해자들의 ‘원점’을 꼭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작가가 직접 꼽은 명장면은 모든 복수가 끝난 뒤 경찰서에서 동은이 앉아있던 장면. 형사가 고통 받았던 동은을 향해 “들어야죠. 18년이나 지났지만”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김 작가는 “연기가 너무 좋아서 다 알고 보면서도 눈물이 났다”고 했다. 또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에서 여정(이도현)과 동은이 서로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서로를 핑계로 살고 싶은 여정이와 동은의 ‘사랑해요’는 ‘살고 싶어요’의 다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복수를 예고한 동은과 여정에 대해서는 “그들의 행보는 결국 복수와 파멸이 맞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수의 과정에서 이미 그들도 가해자가 되고 그래서 또 다른 지옥인 교도소를 향해 가는 것 말고는 살아갈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여정과 동은은 둘이 함께니까 천국을 향해 가듯 지옥을 향해 간다. 참으로 미친 사랑”이라며 두 사람의 앞날에 여운을 남겼다. 김 작가는 동은을 향해 “많이 울고 더 많이 죽고 싶었을 거다. 힘들었겠지만 네가 걸어온 그 모든 길이 누군가에겐 ‘지도’가 되었단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마지막 한 마디를 전했다.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언더도그(약자)가 승리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짜릿하다. 심지어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은 슈퍼 루키가 언더도그의 손을 잡아준다면? 짜릿함은 배가 된다. 아디다스, 컨버스에 밀려 만년 3위였던 나이키가 1984년 신예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을 스카우트해 ‘에어 조던’ 라인을 생산하게 된 과정을 담은 영화 ‘에어’가 다음 달 5일 개봉한다. ‘에어 조던’ 라인은 출시 첫해 1억6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나이키를 단숨에 업계 1위로 만들었다. 영화는 할리우드 대표 절친인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이 만들었다. 두 사람은 영화 ‘굿 윌 헌팅’(1998년)을 비롯해 총 9편의 작품을 같이 찍었다. 영화 연출과 나이키 대표 필 나이트 역을 맡은 애플렉은 27일(현지 시간)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제작을 허락받기 위해 조던의 집을 찾아 그를 만난 일을 털어놓았다. 그는 “마치 올림푸스(신전)에 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조던을 만나고 나와 주인공인 나이키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 역을 맡은 데이먼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떨었다’고 털어놨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소니는 회사를 일으켜 세울 ‘슈퍼 루키’를 찾아 헤매다 노스캐롤라이나대 농구부에서 신입생으로 뛰던 조던의 영상을 발견한다. 아직 미국프로농구(NBA) 무대에서 한 번도 뛰지 않았지만 소니는 조던의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결승 슛 장면을 보자마자 그가 전설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사실 조던은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데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제작진의 끈질긴 설득 끝에 조던은 몇 가지 조건을 내걸고 영화 제작을 허락했다. 먼저 시나리오에는 빠졌지만 ‘에어 조던’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나이키 임원 하워드 화이트를 등장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영화에서 빠지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 역에는 코미디 배우 크리스 터커가 발탁돼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 다른 조건은 조던의 어머니 델로리스 조던 역에 배우 바이올라 데이비스를 캐스팅해 달라는 것. 데이비스는 영화 ‘펜스’(2016년)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애플렉은 “조던이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얼굴에는 경외, 사랑, 감사, 천진난만함이 스쳐갔다”고 했다. 델로리스는 나이키와의 계약을 내키지 않아 했던 조던을 설득하고, 나이키에는 ‘에어 조던’ 라인 전체 판매 수익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해 ‘세기의 딜’을 만들어냈다. 소니가 어렵게 얻은 미팅 자리에서 조던을 설득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그는 조던에게 “좋은 선수를 넘어 위대한 선수가 되려면 그에 걸맞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당신은 누구인가? 이 질문이 당신을 정의할 것”이라고 말한다. 조던이 위대한 선수가 될 재목임을 알아보고 그 길을 같이 걸을 준비가 돼 있는 나이키로 오라는 것. 계약을 위해 설득하는 장면이지만 강도의 손에 아버지를 잃고, 야구 선수로 활동했지만 고전하는 등 굴곡 많았던 조던의 인생이 회상 장면으로 삽입돼 감동을 준다. 농구 경기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도 러닝타임 내내 긴박감에 숨죽이고 보게 된다. 다만 조던은 뒷모습이나 옆모습이 스치듯 나온다. 애플렉은 “진짜 조던이 아닌 그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몰입이 깨질 것이기 때문에 극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로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 버라이어티지는 이 영화를 ‘탑건: 매버릭’과 비교하며 “벤 애플렉 필모그래피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나를 이해해주던 단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건 무엇일까. 삶의 의미를 잃은 한 노인이 천방지축인 이웃을 만나 웃음을 되찾는 영화 ‘오토라는 남자’가 29일 개봉한다. 주인공 오토(톰 행크스)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 인생을 총천연색으로 만들어주던 아내 소냐(레이철 켈러)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삶은 흑백영화로 변했다. 아내가 없는 세상엔 예의 없고, 짜증스러운 사람들만 득실거린다. 오토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깐깐하고 괴팍하기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꼰대 할아버지’ 오토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주변 정리에 나선다. 집 안 전기를 끊고, 전화도 해지한다. 남은 청구 비용도 꼼꼼히 챙긴다.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천장에 로프를 매달고 올라서려는 순간, 오토의 심기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초보운전자가 맞은편 길에 마구잡이로 주차하려 한 것. 동네를 어지럽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오토는 그길로 뛰쳐나간다. 그렇게 오토는 새로 이사 온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뇨) 가족과 맞닥뜨리게 된다. 붙임성 좋고 싹싹한 마리솔과 그의 남편, 그리고 두 딸은 오토의 인생에 서서히 스며든다. 오토는 임신한 마리솔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고 손녀 같은 그의 아이들을 봐주면서 삶의 기쁨을 되찾는다. 마리솔 가족 덕분에 오토의 삶은 다시 형형색색으로 물든다. ‘오토라는 남자’는 스웨덴 소설 및 동명 영화 ‘오베라는 남자’의 미국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이다. 오토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무게감 있는 연기로 감동을 더한다. 올해 67세인 그는 괴팍한 노인 오토 그 자체로 보일 만큼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 깐깐하지만 미워할 수 없다. 심지어 사랑스럽다. 영화는 화사한 봄 날씨처럼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영화 제작은 톰 행크스의 부인 리타 윌슨이 맡았다. 리타는 스웨덴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보고 남편에게 “당신이 꼭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젊은 오토 역을 맡은 배우는 톰 행크스의 아들 트루먼 행크스다. 그는 아내가 될 소냐와 사랑에 빠지는 젊은 청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나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남겨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건 무엇일까. 삶의 의미를 잃은 노인이 천방지축 이웃 가족을 만나 웃음을 되찾는 영화 ‘오토라는 남자’가 29일 개봉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다가오는 봄 날씨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토(톰 행크스)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다. 인생을 총천연색으로 만들어주던 아내 소냐(레이첼 켈러)가 세상을 떠난 뒤 삶은 흑백영화 같다. 아내가 없는 세상은 예의 없고, 짜증스러운 사람들 투성이다. 사랑하는 사람조차 남아있지 않다. 오토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순 없다. 깐깐하고 괴팍하기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꼰대 할아버지’인 오토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주변 정리부터 한다. 집 전기를 먼저 끊고, 전화도 해지한다. 남은 청구 비용도 꼼꼼히 챙긴다. 목을 매달기 위해 필요한 로프 길이를 정확히 재서 한 푼도 더 지불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고 천장에 로프를 매달고 올라서려는 순간, 오토의 심기를 거슬리는 자동차가 동네에 들어선다. 차의 운전자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오토가 주차 순찰을 돌던 자리에 엉망으로 주차를 하려 한다. 동네를 어지럽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오토는 도로로 뛰쳐나간다. 그렇게 새로 이사 온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뇨) 가족과 맞닥뜨리게 된다. 마리솔은 괴팍한 오토에게 기죽지 않는 유일한 동네 주민이 된다. 붙임성 좋고 싹싹한 그녀와 남편, 마리솔의 두 딸은 오토의 인생에 스며든다. 오토는 임신한 마리솔을 위해 운전을 가르치고, 손녀같은 아이들을 봐주면서 오토는 살아갈 이유를 점점 되찾는다. 새로 태어난 마리솔의 아이에게 유산돼 태어나지 못한 자기 아이의 침대를 선물하면서 오토는 마리솔 가족의 일원이 된다. 오토의 삶이 다시 형형색색으로 돌아온다. ‘오토라는 남자’는 ‘오베라는 남자’라는 동명 스웨덴 소설과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미국 버전은 원작을 충실하게 따랐지만 톰 행크스라는 배우의 무게감이 감동을 더한다. 올해로 67세인 그는 괴팍한 노인 오토 그 자체로 보일 만큼 꼭 맞는 옷을 입었다. 깐깐하지만 미워할 수 없고, 영화가 끝날 땐 사랑스럽기까지 한 오토 역기가 훌륭하다. 영화 제작은 톰 행크스의 아내 리타 윌슨이 맡았다. 리타는 스웨덴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보기 시작한지 20분 만에 리메이크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남편에게 “당신이 꼭 이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젊은 오토 역을 맡은 배우는 톰 행크스의 아들 트루먼 행크스다. 트루먼은 촬영 감독으로 일한 경험은 있지만 배우 데뷔는 처음이다. 어리숙하지만 아내가 될 소냐와 사랑에 빠지는 젊은 청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톰 행크스는 1월 미국 상영회 후 인터뷰에서 아들 캐스팅을 도왔느냐는 질문에 “트루먼은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고 13살 때부터 영상을 찍었다. 촬영 감독이 꿈인 아이”라면서 “감독(마크 포스터)이 ‘당신의 젊은 시절 역할을 캐스팅해야 하는데 막내를 만날 수 없겠냐’고 물어서 자리를 만들었고, 캐스팅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에게 연기 조언을 해줬냐는 질문에 “습관적인 제스처와 화가 났을 때 걸음걸이를 조금 이야기 했는데 26살 때 내 모습과 꼭 닮았다”면서 “기저귀를 갈아준 아이와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건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교황청이 성직자뿐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도 교회 내 성학대 추문이나 책임자의 사건 은폐, 미온적 대처 등을 인지할 경우 즉각 신고하도록 교회법을 개정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교황청은 25일(현지 시간) 성명을 내고 “(성학대 문제 관련) 개정 교회법은 성직자와 교황청이 인정하거나 창설한 (평신도) 단체의 멤버, 국제단체의 중재자에게도 적용된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은 2019년 발표한 교회법에서 가톨릭교회의 모든 성직자가 교회 내 성학대 추문을 즉각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번 교회법 개정은 이 같은 의무를 평신도 지도자에게까지 확대한 것이다. 가톨릭교회 내 성학대 문제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교황청이 더욱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개정안에서는 교회법이 다루는 피해자의 범위도 넓혔다. 기존에는 피해자를 ‘미성년자 및 취약한 사람’으로 규정했는데, 개정 교회법에서는 ‘이성이 불완전한 사람’을 추가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각 교구는 교회 내 성비위 혐의를 인지한 즉시 교황청에 보고해야 하고, 교황청은 한 달 안에 조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개정안은 4월 30일부터 발효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개정안은 가톨릭교회 내 성직자들의 성비위 사실이 우후죽순 밝혀지자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지만 조사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여전하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물건에 매겨진 돈의 가치, 가격은 우리 삶에 밀접한 영향을 준다. 가격은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지역에 살지, 자녀를 몇 명이나 가질 수 있고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 언어와 기후가 다르고,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지구 곳곳의 사람들은 가격으로 서로 묶여 있다. 문제는 가격이 급변할 때다.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로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는 대규모 난민 사태와 식량 위기, 폭동과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경제 혼란의 본질에는 ‘가격 전쟁’이 있다고 진단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특히 원자재 가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식량, 원유 같은 필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 경제 위기가 촉발되고, 그 위기는 다시 시장 가격에 반영된다. 그 결과 또 다른 가격 급등과 위기가 잇따른다. 경제 위기는 곧 정치 위기, 사회 위기를 부른다. 저자는 원자재 시장이 어떻게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지 추적하기 위해 다양한 나라와 전문가들을 취재했다. 그는 아랍의 봄과 이라크 내전, 브렉시트,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일련의 사건이 원자재 가격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저자는 혼란을 증폭시키는 원인으로 금융 자본을 지목한다. 원자재가 금융 상품이 되면서 헤지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파생 상품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원자재 가격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2008년 식량위기가 벌어지기 1년 전인 2007년, 세계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식량을 생산했다. 하지만 투기자본의 영향으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됐고 식량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위기가 발생했다고 말한다. 식량뿐 아니라 원유 가격과 세계 분쟁의 상관관계도 분석한다. 저자는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더라도£와 € 같은 기호가 찍힌 종잇조각이 가치를 잃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인간에겐)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시장의 진정한 광기”라고 진단한다. 이 같은 탐욕의 피해는 결국 힘없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온다고 비판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죠스’(1975년), ‘E.T.’(1982년), ‘쥬라기 공원’(1993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양손으로 다 꼽기도 어려울 만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77)이 잔잔한 자전 영화 ‘파벨만스’로 돌아왔다.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과정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렸다. 그는 촬영 내내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영화는 어린 새미(머테이오 조리언)가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 아빠 버트(폴 데이노)와 함께 처음 극장에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상영됐던 영화는 스필버그 감독이 처음 관람한 영화라고 밝혔던 ‘지상 최대의 쇼’(1952년)다. 기차가 자동차와 충돌하는 장면은 새미의 뇌리에 충격적일 만큼 생생하게 박힌다. 이후 장난감 기차와 아빠의 8㎜ 카메라로 그 장면을 똑같이 재현해낸다. 꼬마 스필버그의 첫 영상 제작이었다. 가족사의 어두운 부분도 가감 없이 담았다. 새미는 가족 캠핑 촬영 영상을 편집하다가 아빠의 동료이자 친구 베니(세스 로건)와 엄마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어 엄마에게 보여준다. 결국 엄마는 가족을 떠난다. 거장에게 이 영화는 각별하다. 어린 시절 겪은 부모의 이혼과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이 영화에 잘 드러난다. 그는 이 이야기를 60년 넘게 엄마와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했다고 한다. 스필버그 감독은 미국 CBS 인터뷰에서 부모님 분장을 한 배우들을 보고 “눈물이 터지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울어버렸다”고 했다. 완성된 집 세트장을 보고도 울컥했고, 음악감독이 만든 엄마와 아들 테마곡을 들을 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죠스’(1975년) ‘E.T.’(1982년) ‘쥬라기 공원’(1993년)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양 손에 다 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이 내놓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자전 영화 ‘파벨만스’로 돌아왔다. 영화는 그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과정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렸다. 그는 촬영 내내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영화는 어린 새미(마테오 조리안)가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 아빠 버트(폴 다노)와 함께 처음 극장에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스필버그 감독이 자신의 첫 영화 경험이라고 밝혔던 ‘지상 최대의 쇼’(1952년)다. 기차가 화면을 뚫고 지나가며 자동차와 충돌하는 장면은 새미의 뇌리에 충격적일 만큼 생생하게 박힌다. 이후 장난감 기차와 아빠의 8㎜ 카메라로 그 장면을 똑같이 재현해낸다. 꼬마 스필버그의 첫 영상 제작이다. 새미의 영상 사랑을 가장 든든하게 지원해 준건 엄마 미치였다. 공학도인 아빠가 영화의 24프레임 원리를 알려줬다면, 피아니스트인 엄마는 “영화는 잊히지 않는 꿈”이라며 새미의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춘다. “우리집엔 과학팀과 예술팀이 있는데 새미는 나를 닮은 예술팀”이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보이스카우트 친구들을 동원해 전쟁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폭파나 섬광 같은 원초적인 수준의 시각효과를 연구하고, 부상도 실감나게 분장한다. 가족사의 어두운 부분도 가감 없이 영화에 담았다. 새미는 가족 캠핑 촬영 영상을 편집하다가 아빠의 동료이자 가족처럼 지냈던 친구 베니(세스 로건)와 엄마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장면을 빼놓고 아름답게 캠핑 영상을 만들어내지만 엄마에 대한 애증으로 영화 제작에 대한 열의를 잃어버린다. 그리고는 자신이 발견한 베니와 엄마의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엄마에게 보여준다. 이후 새미의 가족들은 베니와 먼 캘리포니아로 이사하지만, 엄마는 가족들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거장 스필버그 감독에게도 이 영화는 각별하다. 그는 지난 1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이 영화로 작품상·감독상을 받고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여서 영화화 하는 것을 주저했다”고 인정했다. “이것을 영화화하기로 한 결정은 내가 넘어야 할 선 중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고도 했다. 어린시절 겪은 부모님의 이혼과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엄마에 대한 뒤엉킨 사랑과 원망 등이 영화에 잘 드러난다. 그는 이 이야기를 60년 넘게 아버지나 여동생과 나누지 않고 엄마와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했다고 한다. 자전영화인 만큼 고증에도 공을 들였다.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스필버그의 집을 그의 여동생들의 기억까지 되살려 그대로 구현했고, 부모님역 배우들의 의상과 겉모습도 유사하게 분장했다. 그 탓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를 촬영하면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CBS 인터뷰에서 “미셸(엄마 역)과 폴(아빠 역)이 분장을 마치고 왔다고 해서 뒤를 돌아보니 우리 부모님이 서있었다”며 “눈물이 터지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울어버렸다”고 했다. 그는 완성된 집 세트장을 보고서도 울컥했고, 음악 감독이 만든 엄마와 아들 테마곡을 들을 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캐스팅에도 공을 들였다. 스필버그 감독은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가 새미 역에 누구를 캐스팅할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캐스팅에 앞서) 내가 과연 나를 얼마나 잘 아는지 스스로 질문해야만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미 역의 신예 가브리엘 라벨은 3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배역을 따냈다.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배우 전도연(50)이 킬러로 변신했다. 31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에서 그는 청부살인 업계의 전설적인 킬러이자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 길복순을 연기했다. 전도연의 첫 액션 영화다.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21일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전도연은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은데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액션 영화를 제안 받아 기뻤다”고 했다. 이어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웠지만,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 세뇌를 많이 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이벤트 회사이지만 청부살인 업계 1위인 MK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킬러 길복순이 재계약을 앞두고 다른 킬러들과 얽히며 한판 승부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밤에는 킬러지만 낮에는 말 안 듣는 사춘기 딸 재영(김시아)과 입씨름하는 설정이 흥미롭다. 연출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년), ‘킹메이커’(2022년)의 변성현 감독이 맡았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반적 순서와 다르게 ‘길복순’은 전도연을 캐스팅한 뒤 시나리오를 썼다. 변 감독은 “전도연 배우의 오랜 팬이었고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만든 영화”라며 “(전도연의 출연작 중에선) 무겁고 좋은 작품이 많아 측면승부를 하자는 마음으로 액션 영화를 택했다. 배우 전도연 필모그래피에 액션 영화가 없어서 액션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킬러를 연상케 하는 ‘길(Kill)’ 씨에 ‘복순’은 전도연 이모의 실제 이름이다. 변 감독과 이야기하던 중 전도연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름이 인상 깊어 따왔다고 한다. 엄마이자 킬러라는 설정은 전도연의 실제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변 감독은 “대화를 나눠 보니 엄마 전도연과 배우 전도연의 간극이 컸다. 사람을 키우는 직업과 죽이는 직업으로 치환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 전도연에게는 중학교 3학년 딸이 있다. 전도연은 “아이 엄마와 배우로서의 삶,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서 (길복순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데 큰 이질감은 없었다”고 했다. 전도연에게 촬영 내내 이어진 강도 높은 액션은 큰 도전이었다. 전도연은 “마음은 날아다니고 싶은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며 “잘하고 싶어서 몸이 좀 고장 나더라도 쉬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극복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MK엔터테인먼트 대표 역을 맡은 설경구(차민규 역)는 “전도연은 역시 전도연”이라면서 “한계를 넘으려는 모습이 안쓰럽고 걱정됐는데 결국 그 한계를 넘더라. 전도연만이 할 수 있는 액션”이라고 했다. 구교환은 길복순의 후배인 킬러 한희성 역을, 이솜은 차민규와 함께 회사를 운영하는 동생 차민희 역을 맡았다. 영화는 지난달 열린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메인 섹션인 ‘베를리날레 스페셜’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배우들의 화려한 액션 연기와 변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눈을 사로잡는다. 사람을 죽이는 일과 아이를 키우는 일을 병행하는 길복순이 엄마로서 겪는 마음의 변화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칸의 여왕’ 전도연은 처음 베를린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전도연은 “길복순이란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의 성격과 맞을지 궁금했는데 시사 후 관객들 반응이 감동적이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황홀했고 놀라웠던 순간”이라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배우 전도연이 킬러로 변신했다. 31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에서 그는 청부살인 업계의 전설적인 킬러이자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 길복순을 연기했다. 전도연의 첫 액션 영화 도전이다. 21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전도연은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은데 기회가 많지 않아 장르 영화라는 제안에 기뻤다”면서 “잘 할 수 있을지 무섭고 두려웠지만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 세뇌를 많이 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길복순’은 청부살인 업계의 1위 회사 MK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킬러 길복순이 재계약을 앞두고 다른 킬러들과 얽히며 한 판 승부를 하는 이야기다. 밤에는 킬러지만 낮에는 말 안 듣는 딸 재영(김시아)과 입씨름 하는 이중생활 설정이 흥미롭다. 전도연을 비롯해 설경구 구교환 이솜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연출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년) ‘킹메이커’(2022년)의 변성현 감독이 맡았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반적 순서와 다르게 ‘길복순’은 전도연을 캐스팅한 뒤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을 택했다. 변 감독은 “전도연 배우의 오랜 팬이었고 전도연을 출연시키기 위해 만든 영화”라며 “(전도연이 출연한) 무겁고 좋은 작품이 많아서 측면승부를 하자는 마음으로 장르영화를 선택했다. 전도연 필모그래피에 액션 영화가 없어서 액션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 킬러를 연상케 하는 ‘길(Kill)’ 씨에 ‘복순’은 전도연의 이모가 전화온 핸드폰 화면을 보고 인상 깊어 따왔다고 한다. 엄마이자 킬러라는 설정은 배우 전도연의 실제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 변 감독은 “아이디어를 만들려고 대화를 나눠보니 엄마 전도연과 배우 전도연의 간극이 컸다. 사람을 키우는 직업과 죽이는 직업으로 치환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실제 전도연에게는 중학교 3학년 딸이 있다. 전도연은 “아이 엄마와 배우로서의 삶이라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서 받아들이는 데 큰 이질감은 없었다”고 했다. 뛰어난 연기력의 전도연에게도 영화 내내 진행되는 강도 높은 액션 신은 큰 도전이었다. 전도연은 “사실 마음은 날아다니고 싶은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많이했다”며 “잘 하고 싶어서 몸이 좀 고장 나더라도 쉬지 않고 저를 채찍질하면서 극복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길복순이 소속된 청부살인 회사 MK 엔터테인먼트 대표 역을 맡은 설경구(차민규 역)는 “전도연은 역시 전도연”이라면서 “한계를 넘으려 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걱정됐는데 그 한계를 결국 넘더라. 전도연만이 할 수 있는 액션”이라고 칭찬했다. 영화는 지난달 열린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메인 섹션인 ‘베를리날레 스페셜’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화려한 액션신과 변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칸의 여왕’으로 불리는 전도연은 처음 베를린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전도연은 “길복순이란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의 성격과 맞을지 궁금했는데 스크리닝 후 관객들 반응이 감동적이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황홀했고 놀라웠던 순간”이라고 말했다.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샤잠(SHAZAM)!” 경쾌한 구호를 외치면 평범한 소년이 슈퍼 히어로로 변신하는 DC코믹스의 ‘샤잠!’(2019년)이 속편 ‘샤잠! 신들의 분노’(샤잠2)로 돌아왔다. 새로운 DC유니버스(DCU)를 구축할 작품 10개를 내보겠다고 밝힌 바 있는 DC스튜디오가 올해 선보이는 첫 영화다. 그동안 부진했던 DC스튜디오가 절치부심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의 세계관)를 누르고 관람객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화는 북미 개봉(17일)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15일 개봉한 ‘샤잠2’는 고등학생인 빌리(애셔 에인절)가 신의 힘을 나눠 가진 위탁 가정 형제자매와 함께 아틀라스의 세 딸에게 맞서 인간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전편이 부모에게 버림받고 위탁가정을 전전하던 빌리가 우연히 만난 마법사의 선택을 통해 솔로몬의 지혜, 헤라클레스의 힘, 제우스의 권능 등 신의 능력을 갖게 된 과정을 보여줬다면 속편에선 ‘샤잠’ 패밀리의 본격적인 활약상을 그린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위기 때마다 성인 슈퍼 히어로로 변신한다는 설정 자체는 전편에 이어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빌리는 프레디(잭 딜런 그레이저), 메리(그레이스 풀턴), 달라(페이스 허먼), 유진(이언 첸), 페드로(조반 아만드)와 함께 한 팀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 이들은 슈퍼 히어로이면서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고, 위탁가정을 떠나야 하는 나이가 다가오는 것을 걱정한다. 슈퍼 히어로물이자 일종의 청소년 성장 영화라 할 수 있다. 속편의 스케일은 전편보다 확실히 커졌다. 영화에서 대거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 속 괴물들은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헤스페리데스 정원을 지키는 용 라돈은 그 규모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빛을 표현한 컴퓨터그래픽(CG)에 압도된다. 미국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과 특유의 유머 코드도 재미를 더한다. 원더우먼(갈 가도트)의 깜짝 등장 역시 관람 포인트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