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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을 입은 어린이 4명 중 1명만 ‘골든타임’ 내에 응급실에 도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 치료를 전담하는 의료진이 부족해지면서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중증외상 환자의 손상 후 내원 소요시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권역외상센터 응급실에 들어온 9세 이하 중증외상 환자 122명 중 ‘다친 후 1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한 건 30명(24.6%)에 불과했다. 2018년 31.3%에서 3년 만에 6.7%포인트가 되레 떨어졌다. 중증외상이란 교통사고나 낙상사고 등으로 생명이 위독해질 정도의 부상을 입은 경우를 뜻한다. 의료계에선 통상 중증외상 환자의 골든타임을 ‘1시간’으로 본다. 특히 소아 중증외상 환자는 성인에 비해서도 응급실에서 제때 치료받는 비율이 더 낮았다. 전 연령대 중증외상 환자의 1시간 이내 응급실 도착 비율은 34.6%였다. 어린이 환자의 경우보다 10%포인트 더 높다. 이처럼 소아 중증외상 환자가 성인에 비해 응급실을 찾기 더 어려운 건 소아외과 전문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어린이는 성인과 신체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외과 전문의라고 하더라도 추가 수련을 통해 소아외과 전문의가 되지 않으면 소아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응급실 자체에는 병상이 있더라도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어 소아 중증외상 환자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신생아중환자실을 갖춘 병원 중 소아외과 전문의가 있는 곳은 31곳에 불과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다리에 생긴 피부염이 잘 낫지 않는다면 정맥류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특히 40세 이상 여성에게서 발병 확률이 높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세미나실. 서울에서 흉부외과 의원을 운영하는 A 원장이 단상에서 ‘하지정맥류’를 설명했다. 객석을 가득 채운 의사들은 열심히 메모해가며 A 원장의 노하우를 경청했다. 자리가 모자라 강연장 맨 뒤 임시 의자에 앉은 의사도 있었다. 여느 의료 학술대회와 다르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이 있었다. 객석의 의사들은 흉부외과가 아니라 전부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문의였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연 이날 학술대회 명칭은 ‘소아청소년과 탈출(노키즈존)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였다. 어린이 진료로는 병원 유지가 힘든 소청과 전문의들이 다른 진료과목을 배우는 자리다. 소청과 내용 대신 ‘고지혈증 1타 강사의 족집게 강의’ ‘바로 적용하는 보톡스’ 등 소위 ‘돈 되는’ 과목 관련 강연이 이어졌다. 여기에 소청과 전문의 800여 명이 몰렸다. 경기 파주에서 소청과를 운영 중인 A 씨는 “‘10년 뒤에도 소아 환자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강연을 찾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소청과 개원의 연봉(평균 1억875만 원)은 모든 진료과 중 가장 낮았다. “소아과 환자수 하루 10명 안팎… 보톡스 시술로 전업 생각”소아과 탈출 학술대회초저출산 추세에 환자 수 급감비급여 적어 진료비 최하위 수준소아과 의사 20% 간판 바꿔 일해 “(보톡스 시술로) 의미 있는 수익이 창출된다면 소아청소년과(소청과) 간판을 내리고 완전히 ‘전업’할 생각도 있습니다.” 11일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 현장에서 보톡스 강연을 들은 B 원장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서울 구로구에서 15년째 소청과 의원을 운영해 온 ‘베테랑’ 의사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하루 환자 수가 10명 안팎으로까지 떨어지며 소청과 ‘탈출’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B 원장은 “경영난으로 병원이 존폐 위기”라고 털어놨다.● “간판 바꿔야 할지” 소청과 의사들 고민이날 학술대회가 열린 강당은 오전 9시 첫 세션 ‘고지혈증 핵심정리’ 강의부터 772석 규모의 객석이 가득 들어찼다.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10년째 소청과 의원을 운영 중인 C 원장은 “소아과 타이틀을 꼭 유지하고 싶지만 지난 2년간 영업 이익이 거의 없다 보니 수입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C 원장은 소청과를 유지하면서 만성질환이나 미용 환자도 추가 진료할 생각이라고 했다. 일종의 ‘부업’이다. 다른 소청과 전문의는 “일부에서 소아과 오픈런 같은 현상도 있지만 독감 유행 등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현상이고,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환자가 몰린다”며 “동네 의원들은 소아 환자가 너무 적어 병원 운영이 어려운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이날 강연에 앞서 “우리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소청과를 선택했지만 도저히 우리 과를 운영할 수 없게 돼 이런 학술대회를 기획하게 됐다”며 “몇 년 전부터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고령화와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네 의원은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에서 운영 중인 의원은 3만5225개로, 10년 전 2만8328개에 비해 24.3%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소청과 의원은 2200개에서 2147개로 오히려 2.4% 감소했다. 주요 과목 중 의원 수가 줄어든 건 소청과와 산부인과뿐이다. 이미 소청과를 ‘탈출’한 전문의도 적지 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소청과 전문의 중 20%(3338명 중 667명)는 소청과가 아닌 다른 과 간판을 내걸고 일하고 있다. ● 의사들 중 최하위 연봉… “악순환 반복”소청과 의원들의 형편이 어려워진 건 기본적으로 초저출산으로 환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약 24만9000명이다. 86만 명이 넘었던 1980년의 3분의 1 미만으로 줄었다. 소청과 의사들은 “환자 수는 급감하는데 환자 1명을 봐서 벌 수 있는 돈도 업계 최하위 수준”이라고 호소한다. 소청과 진료는 대부분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비교적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비급여’ 항목도 적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맞는 예방 접종이 비급여 항목이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국가예방접종’에 포함되며 건보 적용 대상이 됐다. 임 회장은 “아이 1명당 진료비가 1만3000원 안팎인데, 이 정도면 의사 1명이 하루에 환자 100∼200명을 봐야 직원 월급을 주고 병원 유지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진료비에 대한 소아 가산율이 2∼9% 수준이다. 소아 가산율이란 소아 환자를 진료했을 때 성인 환자 대비 추가로 얹어주는 진료비 비율을 뜻한다. 일본은 소아 가산율이 26∼100%에 달하고, 3세 미만 영아를 야간에 진료하면 진료비를 3∼5배까지 높게 쳐준다. 박양동 아동병원협회장은 “한계에 도달한 아동병원들이 진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소아 진료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정부와 의료계가 2년 9개월 만에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 본격 착수했다. 양측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공감대를 이뤘지만, 확대 규모에 대한 견해차가 커 협의에 난항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8일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적정 의사인력 확충방안을 본격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회의 후 “필수의료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한 의사인력 확충방안을 논의하는 데 합의했다”라며 “이를 위해 이달 중 ‘의사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를 열겠다”고 밝혔다. 또 의사 인력이 확충되면 늘어나는 인력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로 유입될 구체적인 방안과 전공의 수련·근무 환경을 개선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복지부와 의협이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재개한 건 2020년 9월 이후 2년 9개월 만이다. 다만 적정 의사 규모에 대한 양측 이견을 좁히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이날 회의에 정부 측 대표로 참석한 이형훈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모두발언에서 “의협은 더 이상 논의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의협이 산적한 의료 현안에 대응할 해법을 국민 앞에 제시하지 못하면 전문가 단체로서의 신뢰와 존경은 더 이상 의협의 것이 아닐 수 있다”라며 의협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의협 측 이광래 인천광역시의사회장은 “(필수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서는) 젊은 의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법률적인 (면책)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라며 “마치 의대 정원 증원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분위기이지만, 의대생이 필수의료 진료과목에 지원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맞섰다. 양측은 이어진 비공개 회의가 2차례 중단될 정도로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의협은 의사 재배치에 방점을 두며 의견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 “필요 의사 인력의 수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추계하자”며 이달 안에 관련 전문가 포럼을 열기로 했지만, 기존 국책연구원 등의 추계 자료를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였다. 다만 양측은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이를 2025학년도에 반영하자는 기본적인 ‘논의 시간표’에는 일정 수준의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는 14일 개최한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스토킹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담은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이 다음 달 1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 보호를 위한 안전망이 크게 부족해 법이 시행돼도 실질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 제3조에 따르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보호시설, 즉 피해자용 임시 거처를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전국 17개 지자체 가운데 10곳에 아직 스토킹 피해자용 임시 거처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스토킹을 비롯한 ‘5대 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강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운 바 있다. 법만 만들 게 아니라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할 인프라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토킹 가장 많은 경기도 보호시설 없어 정부가 스토킹 피해자를 위해 지원하는 임시 거처는 크게 ‘긴급 주거지원’과 ‘임대주택 주거지원’ 등 2가지다. 긴급 주거지원은 피해자가 스토킹 신고를 한 직후 등 급하게 가해자로부터 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7일 안팎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단기 시설이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형태로 제공된다. 반면 임대주택 주거지원은 상대적으로 장기 보호시설이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이사를 준비할 때와 같이 좀 더 긴 기간 동안 쓸 수 있는 집으로, 기본 3개월을 머무르게 된다. 두 시설이 이름은 비슷하지만 용도가 다른 만큼 두 가지 시설이 모두 갖춰져야 기본적인 ‘안전망’이 완비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7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이러한 장·단기 임시 거처를 모두 마련해둔 지자체는 부산과 전남 등 2곳에 불과하다. 이 외에 충남과 전남에는 긴급 주거지원(단기) 시설만, 대전과 강원에는 임대주택 주거지원(장기) 시설만 각각 마련돼 있다. 서울은 이와 별개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중 3곳을 스토킹 피해자 전용 시설로 마련했다. 나머지 지자체 10곳에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스토킹 피해자 임시 거처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특히 지난해 경찰의 스토킹 범죄 검거 건수가 2385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던 경기 지역도 준비된 임시 거처가 ‘0곳’이다. 검거 건수 748건으로 전국에서 3번째인 인천도 마찬가지다.● “가폭-성폭 보호시설, 스토킹 피해자에 안 맞아” 스토킹 피해자 거주 지역에 전용 임시 거처가 없는 경우 피해자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피해자들의 특성이 다른 만큼 이들 시설은 스토킹 피해자가 머무르기에 부적합하다고 말한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가해자가 시설 위치를 알아채는 것을 막기 위해 대부분 입소 기간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킹 피해자의 경우 신고 이후에도 회사나 학교 등 사회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비율이 높아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고립된 시설에는 머무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가부도 스토킹 피해자용 임시 거처를 더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달 말까지 지자체들을 대상으로 보호시설 시범사업 참여 추가 공모를 받았고, 다음 주중 보호시설을 운영할 지자체 5곳을 추가로 선정해 통보한다는 방침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17개 시도 전체에 보호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재정 당국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김지호(가명) 씨, 김지호 씨, 계신가요? 우체국입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허름한 4층짜리 원룸 건물 계단. 서울 용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유인준 씨(57)는 무더위 속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낡은 철문을 향해 여러 번 외쳤다. 반응은 없었다. 문에 귀를 바싹 갖다 대고 숨을 죽여도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문을 손으로 여러 번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걸까. 아니면 안에 누군가 있는데 대답할 힘이 없는 것일까’. 유 씨는 문 틈새로 가만히 코를 갖다 댔다. 냄새를 맡기 위해서다. 그 1, 2초 동안 적막과 긴장이 흘렀다. 혹시라도 ‘낯선 악취’가 코끝에 도달한다면…. 생각하긴 싫지만 그것은 위험 신호다. 굳게 닫힌 철문 너머에서 누군가 쓸쓸하게 홀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는, 말하자면 ‘고독사’다. 이날 유 씨가 생면부지의 김 씨를 찾아다닌 건 ‘복지등기’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복지등기 우편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지역 주민 중 누군가 전기요금을 장기간 체납했거나 병원비 지출이 급증했거나 하는 위기 징후가 보이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포착하고 해당 가구에 복지등기를 발송한다. 그러면 동네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지역 집배원이 이 등기를 들고 직접 그들을 찾아간다. 집배원 유 씨의 가방에는 구청에서 보낸 복지등기 봉투가 가득 들어 있었다. 봉투 속에는 마스크, 관절 통증용 파스 등 기본 의약품,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이 신청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정리된 팸플릿 등이 있었다. 하지만 유 씨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물품을 전달하는 것보다도, 직접 수취인을 만나 눈으로 그들의 생사(生死)를 확인하고, 위기에 처해 있진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21년 3378명이 고독사했다. 한 해 전체 사망자 100명 중 1명꼴이다. 서울 용산구와 강원 삼척시 등 8개 지자체에서 복지등기를 시범 운영한 결과 9개월 동안 위기 가구 1100여 곳을 발견했다. 4월부터는 참여 지자체가 47곳으로 늘었다.“인기척 없는 쪽방촌에 TV소리만 들릴때 고독사 위기 직감” “복지등기 왔습니다” 고독사 막는 집배원들복지등기 배달 현장복지 안내문-기본 의약품 등 배달연락처도 없고 주소도 불분명해집배원 유 씨는 이날 김 씨를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전날에 이어 이틀째다. 유 씨가 전날 김 씨의 집 문에 붙여둔 스티커도 그대로였다. ‘우편물 도착안내서’라고 적힌 스티커에는 ‘5월 24일 13시 04분 방문하였지만 부재중인 관계로 배달 안내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 다녀갔는데 스티커를 못 본 것일까, 봤는데도 떼지 않은 것일까.’ 유 씨는 동행한 동아일보 기자에게 “한 번 나올 때마다 5가구 중 1가구만 직접 만날 수 있어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밖으로 나온 뒤 건물 1층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주인 이모 씨(45)를 불렀다. 이 씨는 이 건물의 건물주이자 부재중인 수취인 김 씨의 ‘30년 지기’다. 이 씨는 친구의 사연을 털어놨다. 김 씨는 1년 전부터 친구 이 씨의 건물에 있는 한 원룸에서 혼자 지내왔다고 한다. 몇 년 전 뇌혈관 수술을 받았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상환에 실패해 신용 불량 상태에 빠졌다.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고 했다. 이 씨는 “친구가 평소 혈압이 200mmHg(수축기)를 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혹여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동네에서 슈퍼를 운영한 5년간 어렵고 외로운 분들을 많이 봤다. 그나마 유 씨 같은 집배원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와 준다니, 이웃으로서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집배원이 ‘위기가구 체크리스트’ 작성 베테랑 집배원인 유 씨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과 동자동 일대 우편 배달을 30년간 담당하고 있다. 스마트폰 지도 없이 봉투에 적힌 주소만 보고도 담당 구역 내 모든 집을 척척 찾아다닌다. 웬만한 주민들은 그와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사이다. 용산우체국 관내에선 매달 200여 통의 복지등기 우편물이 배달된다. 그중 절반 이상은 ‘쪽방촌’으로 불리는 후암동과 동자동 일대로 배달된다. 저소득층 가구가 밀집한 지역이다. 이날 유 씨는 김 씨 외에도 다른 4명에게 복지등기를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만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배원이 근무하는 낮 시간 동안 복지등기 대상자(수취인)들은 주로 무료 급식소에 가서 줄을 서 있거나, 폐지 줍기 등 경제 활동을 하느라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 씨는 다른 수취인들을 찾아다니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했고, 그들이 사는 집의 문을 두드렸고, 그들의 우편함에 우편물이 쌓여 있지는 않은지 살폈다. 운 좋게 이웃들을 마주치면 “아무개 씨 혹시 본 적 있으시냐”며 행방을 물었다. 유 씨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복지등기 수취인을 찾아 나섰다. 그가 도착한 곳은 ‘○○여인숙’이었다. 한 사람이 걷기도 비좁은 여인숙 입구를 지나자 33㎡(약 10평) 남짓한 복도에 공용 세탁실과 화장실을 둘러싼 방 5개가 보였다. “이태우(가명) 씨 계십니까.” 유 씨가 큰 소리로 불렀다. 그의 시선은 문 옆의 우편함, 쓰레기통, 주변 집기들을 빠르게 훑었다. 복지등기 담당 집배원은 우편물을 배달할 때 수취인이 수령하지 않은 우편물이나 재활용품이 많이 쌓여 있진 않은지, 악취가 나진 않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파악한 주거환경과 생활실태를 6개 항목 ‘체크리스트’로 작성해 지자체로 보낸다.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위기 가구를 파악하고, 필요한 공공과 민간 복지서비스로 연계해 지원한다. 이번에도 유 씨의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 씨는 “쪽방촌은 주소지가 하나인데, 한 층에 수십 가구씩 사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때는 집주인을 통해 전달하거나 우체통에 넣어두고 근처에 올 때마다 살펴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을 마칠 때쯤 유 씨의 얼굴은 땀범벅이 돼 있었다.● “우체국이 외로웠던 내게 손 내밀어줘” 복지등기 덕분에 어려운 상황을 빠져나온 사람들도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주거급여(기초생활수급의 한 종류)를 받으며 살고 있던 이은종(가명) 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자신들에게 복지등기를 배달하러 온 집배원을 처음 만났다. 부부를 본 집배원은 체크리스트에 ‘수취인의 거동이 불편하다’고 기록을 남겼다. 다리에 장애가 있었던 것을 관찰한 것. 이윽고 집배원은 이 씨 부부에게 “어디가 편찮으시냐, 좀 어떠시냐”고 말을 걸으면서 안부를 물었고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주민센터는 이 씨에게 보행기 등 보조기구를 지원했다. 광주 북구 오치동에 혼자 살던 차윤택(가명) 씨는 실직 후 오랫동안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구직에 실패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지자 점점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사회적 관계도 단절됐다. 올 1월 그의 집을 방문했던 복지등기 집배원은 차 씨의 집에서 악취가 나는 것을 맡았고, 위기 징후를 포착했다. 그 후속 조치로 복지담당 공무원이 차 씨의 집을 방문했다. 차 씨는 저소득 구직자에게 생계비와 일자리를 알선하는 국민취업지원 신청을 안내받았고, 최근에는 취업에 성공해 집 밖으로 나왔다. 차 씨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정말 막막하고 외로워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먼저 손을 내밀어준 우체국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에서 총 7434가구에 복지등기가 배달됐다. 지자체는 이 중 719가구가 생계급여 등 공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도왔고, 443가구에는 생활필수품 지원 등 민간서비스를 연결해 줬다. 복지등기를 받은 가구 중 15.6%(1162가구)가 복지서비스를 지원받은 것이다. 김경일 용산우체국 집배실장(49)은 “복지서비스 연계율이 언뜻 낮아 보일 수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바는 다르다”며 “2주 동안 100가구에 복지등기를 배달했을 때 복지서비스가 절실한 위기가구 15가구가 받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복지등기 우편에는 연락처는 물론이고 정확한 주소조차 적혀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단순히 일반 우편물처럼 배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취인의 위기 징후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4, 5배 더 걸린다. 김 실장은 “복지등기는 배달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일일이 대상자를 살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그래도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배달한다”고 말했다. ● 2030 젊은 ‘위기 가구’ 늘고 있어 복지등기를 배달하는 현장에서는 2030세대, 즉 젊은 청년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 모습도 최근 많이 포착되고 있다. 용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심현석 씨(41)는 용산구 청파동 일대에서 복지등기 배달을 담당한다. 이 지역은 숙명여대 인근이어서 20, 30대 자취생들이 많이 산다. 지난달 24일 오후 심 씨는 복지등기 수취인으로 선정된 20대 초반 이지우(가명) 씨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복지등기 봉투를 받아 든 이 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눈으로 심 씨를 쳐다봤다. ‘이게 무슨 우편물이냐’는 뜻이었다. 심 씨는 이 씨에게 복지등기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하며 눈으로는 재빨리 집 안쪽을 살폈다. 심하게 어지럽혀져 있지는 않은지, 쓰레기가 쌓여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이 씨도 조곤조곤 이어지는 심 씨의 설명에 조금씩 경계를 풀었다. 이 씨가 개인용디지털단말기(PDA)를 받아들고 우편물 수령 확인 사인을 하는 동안 심 씨는 “요즘 잘 지내시냐, 본가에는 자주 가시냐”라며 안부를 물었다. 수취인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지는 않은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배달을 마친 심 씨는 건물 밖으로 나온 뒤 PDA로 복지등기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복지등기를 받아 든 젊은이들은 자신이 대상자로 선정된 것 자체를 의아해하거나 “내 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며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체크리스트도 복지등기 대상자가 기분 나빠 하지 않도록 배달을 마치고 나와서 작성한다. 심 씨는 “보통 위기가구는 누가 봐도 감이 온다. 집 안팎과 우체통, 재활용통 등을 먼저 살피고, 인기척이 없는데 TV가 켜져 있진 않은지 등의 위기 징후를 철저하게 체크한다”고 했다. 그는 “가장 위험한 고독사 위험 징후는 인기척 없는 주택이나 쪽방촌 같은 곳에 TV 소리가 새어나오거나 불빛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수취인이 병으로 쓰러졌거나 최악의 경우 이미 사망한 상태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에서 30대 이하 청년 219명이 고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고독사자의 6.5%에 해당한다. 복지등기 서비스를 통해 실제 청년 위기가구를 찾아낸 적도 있다. 서울 이태원의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장재헌(가명) 씨는 지난해 10월 핼러윈 참사 이후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으며 생계가 막막해졌다. 장 씨는 구직활동을 계속했지만 일자리가 잘 구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취업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시름에 잠긴 그를 본 집배원이 위기 징후를 포착해 복지등기 대상자로 선정됐고, 집배원의 도움을 받아 국가 긴급복지 생계지원 신청 및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위기가구 발굴 ‘총력’, 우리 동네 사회복지사 정부는 지난해 8월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던 ‘수원 세 모녀’가 외롭게 세상을 등진 사건이 알려진 뒤 복지 사각지대 해소 대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단전이나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생계가 어려워진 가구를 찾기 위해 수집하는 위기 정보를 34종에서 39종으로 늘렸고, 12월부터는 44종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전산망에 뜨는 수치화된 정보를 아무리 많이 수집하더라도 사각지대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집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어떤 쓰레기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등은 반드시 현장에 사람이 직접 가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복지등기 서비스를 시작한 건 이러한 ‘현장의 위기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민간 인력을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 활성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지역 주민이 이웃에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방식이다. 위기가구 중에선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럴 때는 오히려 공무원이 아닌 ‘이웃 사람’이 다가가는 게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인천 연수구에서 7년째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하고 있는 서인숙 씨(60)는 “위기가구를 처음 방문할 때는 마음을 닫고 대화를 거부하는 분이 많은데, 실없는 담소도 나누고 전화도 드리면 차차 얼음이 녹듯 문이 열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에선 ‘희망텃밭 가꾸기’ 사업으로 홀몸노인들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자리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민간에 일선 복지 서비스를 일부 맡기는 것은 효율성이 높은 만큼 정부의 활동비 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충남 아산에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하고 있는 박충서 씨(62)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오랫동안 지역 복지 일선에서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협의체 회원들이 사비를 걷어가며 활동을 하고 있다”며 “복지 일선에서 봉사하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주민자치회처럼 식대나 교통비만 지원해도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등기 우편서비스집배원이 단전, 단수, 체납 등에 처한 위기의심 가구를 방문해 복지정보 우편물을 전달하면서 생활 상태 등을 파악해 지방자치단체에 정보를 전달하는 서비스. 복지서비스 연계 지원으로 이어진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3년 넘게 이어온 ‘일일 확진자 발표’가 3일부로 끝난다. 2020년 1월 20일 시작된 지 1231일 만이다. 코로나19 위기경보 단계가 1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되면서 사실상 ‘엔데믹’(풍토병화) 단계로 접어든 데 따른 조치다.2일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누리집을 통해 매일 오전 9시 반에 제공하는 확진자 집계를 3일로 마치고 5일부터는 주간 단위로 매주 월요일 오후 2시마다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5일부터는 확진자 수를 일주일 단위로 모아서 매주 월요일 발표한다. 다만, 질병청 내부적으로는 연말까지 일일 확진자 현황을 계속 집계할 방침이다. 외부 발표만 안 하는 것. 혹시 심각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등 변수가 생기면 대유행이 찾아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지운기자 easy@donga.com}
정부가 한국형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에 나섰다. 미국 보스턴은 글로벌 제약회사들과 매사추세츠공대(MIT), 하버드대 등이 밀집해 있는 세계 대표 바이오 클러스터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서울 강서구 서울창업허브 엠플러스에서 ‘첨단산업 글로벌 클러스터 전략회의(제5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해 ‘혁신 클러스터’에 바이오를 포함하고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클러스터 조성 시 입주 업종 제한 규제를 완화해 법률, 회계, 벤처캐피털(VC) 등 사업지원 서비스기업도 입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간 클러스터 성격에 맞지 않는 기업은 입주가 제한돼 클러스터 내에서 투자 및 컨설팅 기관과의 연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유시장 경제에 기반한 공정한 보상체계 법제화,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풀고, 시장에 활력을 주는 정책을 위해 노력하고, 정부 재정으로 선도적 투자를 함으로써 민간의 관심과 투자가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바이오 클러스터로 육성할 수 있는 핵심 분야인 디지털바이오의 인프라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디지털바이오 인재 양성 및 글로벌 협력 강화 방안 등이 주요 골자다. 과기정통부는 국내 연구기관과 보스턴의 선도 연구기관 간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핵심인력을 양성하는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서울대병원의 의료 빅데이터와 MIT의 연구역량을 더해 암 조기진단 연구를 하거나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등의 협력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국내 디지털바이오 인재 양성을 위해 바이오 특화 인공지능(AI) 대학원을 신설하고 의과대학 내 의료 AI 정규과정 개설도 추진한다. 바이오 전문지식과 디지털 기술을 모두 갖춘 ‘양손잡이형 융합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차세대 신약을 설계하는 ‘항체설계 AI’, GPT를 활용한 ‘마음건강앱’ 등 AI를 활용한 7대 연구개발(R&D) 선도 프로젝트도 지원한다. 향후 3∼5년 내에 선도 기술을 개발해 산업계와의 연계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디지털바이오 외에도 동물세포 배양과 정제기술 등 바이오의약품 관련 핵심기술도 육성할 방침이다. 연내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바이오의약품 핵심 기술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해 설비투자 기업에 최대 35%의 세액공제를 제공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를 위해 의료 임상, 유전체 정보 등 바이오 빅데이터를 2032년까지 100만 명 규모로 수집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기관이 갖고 있는 진료기록 등 환자의 의료 데이터를 환자의 동의하에 민간 기관에 전송할 수 있게 하는 ‘제3차 전송요구권’도 순차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경보가 1일부터 ‘경계’ 단계로 낮아졌다. 사실상 ‘엔데믹(풍토병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임숙영 중앙방역대책본부 상황총괄단장은 31일 “3년 4개월 가까이 이어온 비상 대응의 긴 터널을 끝낼 수 있어서 방역 당국의 일원으로서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1일부터 바뀌는 내용을 질의응답으로 정리했다. ―1일 현재 격리 중인 사람은 어떻게 되나. “이날부터 확진자 자가격리는 ‘7일 의무’가 아니라 ‘5일 권고’로 바뀐다. 때문에 기존 격리자도 1일 0시부터는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다. 단, 방역 당국은 진료나 경조사, 시험 등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집에 머물러 달라고 권고했다. ―확진된 학생도 등교할 수 있나. “확진자 학생이 자가 격리(5일)를 선택해 학교에 나가지 않는 기간은 ‘출석인정 결석’으로 처리된다. 불가피하게 등교한 경우에는 교실에서도 마스크를 늘 착용하고 다른 친구, 선생님과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 ―병원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없어도 되나. “어떤 기관이냐에 따라 다르다. 간판에 ‘의원’이라고 적힌 대부분의 동네 의료기관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권고’로 완화된다. 약국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진다. 그보다 큰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과 요양원 등 감염취약시설에서는 입원·입소자의 안전을 위해 계속 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간 이들 시설에서는 입소자가 가족이나 보호자 등과 면회를 할 때 음식물 섭취가 금지됐지만 1일부터는 허용된다.” ―백신과 치료제는 유료화되나. “올해까지는 누구나 코로나19 백신을 무료로 맞을 수 있다. 특히 백신 미접종자는 기존에 구형 백신을 2차례 맞아야 했는데, 이제는 개량 백신을 한 번만 맞으면 ‘기초접종’이 완료되는 만큼 되도록 빨리 접종하는 것이 좋다. 50세 이상,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 확진자에게 처방되는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도 올해까지는 무료로 제공된다. 내년부터는 백신과 치료제 모두 일부 환자 본인부담금이 생길 전망이다.” ―격리 의무가 없어지면 격리자 생활지원비도 없어지나.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 지급되는 10만 원(1인 가구 기준)의 생활지원비는 당분간 유지되는데, 지원비를 받으려면 보건소에 ‘격리참여자’로 등록해야 한다. 확진 이후 보건소에서 받은 문자메시지에 기재된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에 접속하거나, 보건소에 직접 전화해 신청하면 된다. 확진된 직원에게 유급 휴가를 제공한 30인 미만 사업장에 하루 4만5000원 지급되던 유급 휴가비 지원 제도도 유지된다.” ―확진자 수 집계도 중단되나. “집계 자체는 계속되지만 지금처럼 방역 당국이 매일 아침 전날 확진자 수를 발표하지는 않고 일주일 단위로 모아서 발표한다.” ―코로나19 유행은 끝났다고 생각하면 되나. “아니다. 31일 0시 기준 신규 확진자는 2만4411명으로, 아직도 하루 2만 명 안팎의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일상적인 체계 안에서 코로나19 유행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게 방역 당국의 판단이다. 다만 방역 당국은 앞으로도 심각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등 변수가 생긴다면 다시 대유행이 찾아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엔 다시 위기 경보가 ‘심각’으로 상향될 수도 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2021년 5월 23일은 이상준 씨(48)에게 ‘인생 2막’이 열린 날이다. 마약 중독자였던 그는 그날 서울 영등포구 중앙중독재활센터의 문을 처음 두드렸고, 이후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자조 모임에 참여하면서 이 씨는 30년 넘게 자신을 옭아매 온 마약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최근 단약(마약 복용 중단) 2주년을 맞은 그는 현재 센터에서 중독 회복 강사 양성 교육을 받으며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경찰청이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 1만2387명 중 절반(49.9%)인 6178명이 재범자였다. 마약 범죄 재범률을 낮추고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단순히 마약사범을 적발, 처벌하는 수준을 넘어 체계적 재활 프로그램이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 씨처럼 중독재활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중독재활센터가 전국에 2곳뿐이기 때문이다.● 중독재활센터 전국 2곳뿐… 비수도권 소외 정부 재원으로 운영되는 중독재활센터는 중독자의 상황에 따라 심리 상담, 단약 동기 상담 등 맞춤형 회복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센터에선 중독자의 가족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회복자들끼리 모임을 가지면서 서로 지지하는 자조 모임도 이곳에서 운영된다. 동아일보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독재활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사람은 815명이다. 이 중 수도권 거주자가 전체의 69%(562명)를 차지했다. 비수도권 거주자 중에서는 69.6%(176명)가 경남권(부산·울산·경남)에 사는 사람이었다. 중독재활센터가 서울(중앙)과 부산(영남권)에만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반면 이 외 지역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중독재활센터에 등록한 마약 회복자 중 광주·전남 지역에 사는 사람는 4명에 불과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 지역에서 확인된 마약 사범은 적발된 것만 778명에 이른다. 마약을 투약했지만 적발되지 않은 사람의 비율, 즉 ‘암수율’이 29배에 이른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서 재활이 필요한 마약 중독자는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젊어지는 중독 환자… 절반 이상이 2030 전문가들은 국내 마약 중독자의 연령대가 점차 젊어지고 있으며, 고학력자 비율도 빠르게 늘고 있다고 진단한다. 가톨릭대가 보건복지부 의뢰로 2009년 수행한 ‘마약류 중독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마약류 중독자 중 2030 청년층은 27.7%에 불과했다. 그런데 2021년 실태조사에선 2030의 비율이 2배에 가까운 53.7%로 늘었다. 같은 기간 마약 중독자 중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의 비율도 12.8%에서 29.1%로 늘었다. 역시 중앙중독재활센터에서 회복 강사 양성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20대 후반 김상필(가명) 씨도 이러한 ‘젊은 고학력 중독자’ 중 하나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는 21세 때 지병으로 인한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처방받기 시작한 오피오이드(펜타닐, 모르핀 등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되고 말았다. 센터를 찾기 전까지 4년 동안 하루도 약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김 씨는 “센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마약 부작용으로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 김혜린 과장은 “요즘 마약 중독 문제를 겪는 사람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분들은 센터가 집이나 직장에서 멀면 도저히 다닐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마약 중독자 추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중독재활센터를 전국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약처 “17개 시도에 1곳씩 확충 목표”정부도 마약 재활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7월 충청권(대전)에 세 번째 중독재활센터를 열기로 했다. 충청권 중독재활센터는 청소년 마약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최근 경향을 반영해 청소년 중심 센터로 운영될 예정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전국 17개 시도에 1곳씩 중독재활센터를 운영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센터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운영 중인 센터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중독재활센터의 경우 상담 프로그램 운영 첫해인 2018년 99명이었던 한 해 등록자 수가 지난해 626명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상담사는 여전히 박영덕 센터장을 포함해 3명뿐이다. 박 센터장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인력이 부족한 탓에 1명이 프로그램 딱 1개씩에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중독재활센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정신보건복지센터가 전국에 69곳 있다. 중독자들이 입소해 공동생활을 하며 재활하는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도 10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독재활센터와 다르크를 합쳐도 6곳뿐인 한국에 비하면 30배에 가까운 재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최근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이 방역 당국의 통계 작성 이후 가장 거센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독감 유행은 초중고교 개학 직후인 3, 4월에 정점을 찍고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데, 올해는 여름을 눈앞에 둔 5월 말까지도 환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28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5월 셋째 주(14∼20일) ‘독감 의사환자 분율’은 25.7명이다. 질병청은 의료기관을 찾는 외래 환자 1000명당 ‘38도 이상 발열’과 인후통, 기침 등 독감 의심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비율을 집계해 독감 유행 규모를 파악한다. 이를 ‘독감 의사환자 분율’이라고 한다. ‘25.7명’이란 수치는 질병청이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0년 이후 같은 시점 기준 가장 높은 수치다. 통상 5월 셋째 주의 독감 의사환자 분율은 ‘5명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번째로 의사환자 분율이 높았던 2019년 5월 셋째 주(11.3명)와 비교해도 올해는 2배 이상으로 독감 의심환자 수가 많다. 특히 최근 독감은 초중고교생 사이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고교생(13∼18세)의 경우 5월 셋째 주 의사환자 분율이 52.6명, 초등생(7∼12세)은 49.1명에 이른다. 이는 올해 독감 유행주의보 발령 기준(4.9명)의 10배에 이르는 수치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가 독감 환자 증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독감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아 국민들의 ‘자연 면역’이 떨어진 상태에서 방역수칙이 해제되자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독감 유행은 대중교통 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3월 넷째 주(19∼25일)를 기점으로 급증세로 돌아섰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현재 고등학교 2학년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이 적어도 351명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추가로 확보되는 의사 인력 일부를 비수도권 병원이나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 도입도 검토된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4일 제9차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본격 논의한다. 2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의대 정원에 대해 복지부는 현행 3058명에서 약 500명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에 원칙적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의약분업 이후 줄어든 351명을 증원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2004∼2007학년도에 걸쳐 351명을 감축했는데 이를 원상 복구시키는 것까지 반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 의협 내부 분위기다. 복지부와 의협은 늘어난 의대생 중 상당수를 비수도권 거점 대학 등에 배치하고 해당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거나, 흉부외과 등 수술 의사 전문과목에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단순히 배출 의사 수만 늘려서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데 양측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은 그간 의대 정원 확대에 강하게 반발해 왔다.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는 의대 정원을 400명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의협 등이 집단 휴진에 돌입하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안정화될 때까지 이를 보류하기로 했다. 하지만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데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 사실상 의협 등의 손을 들어주자 의료계에서도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 요구에 응하는 대신 5년마다 의료 수요를 다시 평가해 의대 정원을 늘리거나 줄이는 방안을 복지부에 요구하기로 했다. 복지부도 이에 화답해 ‘의사 수급 평가 위원회’(가칭)를 꾸리고 필요한 의사 수를 과학적 근거로 평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심의, 의결할 방침인 가운데 간호 단체와 의사 단체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계 갈등 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당정의 설명에도 보건의료계 직역 갈등이 ‘2라운드’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대한간호협회는 15일 보도자료에서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가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흑색선전에 근거해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를 공식화했다”고 비판했다. 간협은 간호법 제정이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내용이 맞으며, 간호법이 ‘의료체계 붕괴법’이라는 당정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간협은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사상 초유의 단체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간협은 이른바 ‘진료 보조 인력(PA)’ 간호사가 업무를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PA 간호사는 주로 종합병원급 이상의 큰 의료기관에서 처방이나 수술 등 의사 업무의 일부를 대신하는데, 간호사는 의료법상 이런 업무를 수행할 근거가 없다. 전국에 PA 간호사가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이들이 일손을 놓게 되면 의료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 한편 당정이 사실상 손을 들어준 대한의사협회 등 보건복지의료연대 측도 17일 총파업가능성을 닫지 않고 있다. 당정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사 면허 취소법(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선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6일 오후 총파업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 보건복지의료연대의 다른 직역들과 필수·응급의료의 핵심 인력인 전공의들은 파업 동참에 미온적인 분위기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5일 “PA 간호사분들이 환자 곁을 계속 지켜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며 “(보건복지의료연대가 총파업에 나설 경우) 법과 매뉴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의료인이 파업에 나설 경우 정부는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 한편 여야는 이날도 설전을 이어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의료직역 간 대립과 갈등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특정 의료직역을 일방적으로 편들어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반면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간호법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공약으로 표를 얻고 이제는 ‘의료체계 붕괴법’이라며 압박하는 분열 정치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고 받아쳤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선언과 함께 확진자의 격리 의무를 권고로 전환하는 등의 방역 완화 방안을 발표한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 발생 이후 약 3년 4개월 만에 코로나19의 끝이 보이는 셈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엔데믹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 수 있는 또 다른 신종 감염병, 이른바 ‘감염병X’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종 감염병 발생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만큼 코로나19 극복 경험을 바탕으로 감염병X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짧아지는 신종 감염병 발생 주기 국내외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감염병X는 예상보다 일찍, 코로나19보다 더 큰 규모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신종 감염병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다. 국내 첫 환자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주기가 6년 2개월→6년→4년 8개월로 짧아지고 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겪은 세대가 다시 팬데믹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구는 감염병이 퍼지기에 유리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김남중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인간이 동물의 서식지를 계속 침범하고 있어 인수공통 감염병 발생과 확산이 쉬워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21년 미국 싱크탱크인 글로벌개발센터는 “다음 팬데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며 앞으로 25년 안에 코로나19만큼 치명적인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최대 57%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최장 기간 ‘등교 중지’ 후유증 커 정부가 자랑하는 낮은 코로나19 사망률 등의 방역 성과는 아이들의 ‘배울 권리’를 희생한 결과이기도 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국이 학교를 폐쇄한 기간은 79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한국보다 더 오랜 기간 학교를 폐쇄한 곳은 멕시코(81주)뿐이다. 학생들은 설령 감염돼도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게 밝혀진 이후에도 한국은 코로나19 지표가 나빠지면 손쉽게 학교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소득에 따라 학력 및 건강 격차가 벌어지는 등 후유증이 남았다.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미래 세대에게 중대한 문제를 이렇게 조치할 수밖에 없었던 건지, 다시 팬데믹이 오기 전 논의와 정확한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해관계자들이 의사 결정에 함께 참여하는 ‘참여형 거버넌스’를 미리 정비하고 학교 문을 불가피하게 닫을 때를 대비한 돌봄 시스템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기 시스템, 중환자 병상 확보가 핵심 전문가들은 감염병X가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는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에 따라 과거 상하수도 시설을 개선해서 장티푸스, 콜레라 등 수인(水因)성 감염병을 예방했듯 ‘깨끗한 실내 공기’를 만들어야 호흡기 감염병을 막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깨끗한 실내 공기를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환기다. 환기를 하면 깨끗한 새 공기가 들어오고 바이러스에 오염된 공기는 밖으로 빠져나간다. 환기를 자주, 오래 할수록 호흡기 감염병에 걸릴 위험이 줄어들지만 지금껏 환기의 중요성이 등한시됐다. 배상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작은 건물에도 냉난방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환기 시설도 마찬가지”라며 “현재 건축법상 환기 시설 설치가 의무인 다중이용시설 대상이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병상 준비도 중요하다. 방역 당국은 ‘의료 여력’에 따라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 단계를 조정했다. 의료 여력의 핵심은 중환자를 입원시킬 병상이 몇 개나 비어 있는지였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병상 동원령을 내렸지만 차출된 병상은 늘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시설과 장비가 있어도 중환자를 돌볼 수 있는 숙련된 의료인력은 갑자기 구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국내 인구 10만 명당 중환자 병상은 10.6개로 OECD 평균(12개)에도 못 미친다. ● 아프면 쉴 권리 제도화해야 코로나19 유행 시기 아프면 쉬는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됐지만 이 문화는 아직도 정착하지 못했다. 감염된 채 외부 활동을 할 경우 전염병 확산도 빨라진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등 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없는 병이나 부상으로 쉬어도 수당을 지급해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3월 말까지 상병수당 총지급액은 35억5400만 원에 그쳤다. 상병수당에 배정된 분기별 예산이 약 45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예산 대비 지급률이 26%에 그친다. 질병청은 3월 “격리 의무를 해제하되 병가 활용, 출석 인정 등 아프면 쉬는 문화 활성화를 위해 사업장과 학교 등에 자체 지침 마련 및 시행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의 자발적 참여에만 기댄다면 한계가 명확하다. 중소·영세기업이 직원에게 병가를 줄 경우 정부가 사업장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극심한 직역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의료 대란’ 우려까지 유발한 간호법 제정안이 기본 서식에서부터 오류가 있는 채로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뒤늦게 오류를 발견해 수정했지만, 이 법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돼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심사가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가 된 조항은 간호법의 적용 대상인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개념을 정의한 제2조다. 여기서 간호법은 간호사를 ‘제4조’에 따른 면허를 받은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전문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각각 ‘제5조’와 ‘제6조’에 따른 자격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제2조의 내용과는 달리 실제 간호사 면허에 관한 내용은 제4조가 아닌 ‘제3조’에 있다. 전문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자격 인정에 관한 내용도 각각 제5조와 제6조가 아닌 ‘제4조’와 ‘제5조’에 있다. 이 법의 ‘앞과 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특히 제5조는 간호조무사에 대한 학력 차별 논란이 있는 핵심 쟁점 조항이다. 이 같은 오류를 지닌 채 발의된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해 5월 17일 야당 주도로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이후 법안의 완결성과 오류 여부를 검토하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됐다. 법사위는 두 차례 회의에서 이 법안을 검토했지만 “무조건 통과”를 외치는 야당과 이에 반대하는 여당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졌을 뿐 법안 오류는 잡아내지 못했다.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야당은 2월 9일 복지위에서 간호법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해 바로 본회의에 회부시켰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오류가 있는 법안을 그대로 가결시켰다. 여야가 정쟁에 매몰돼 정작 중요한 법안 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날 가결된 간호법은 4일 정부로 이송됐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의결된 법안을 정부에 보내기 전 오류가 발견돼 바로잡은 후 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가결된 법안을 확인할 수 있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는 5일까지도 ‘틀린’ 법안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법학계에선 이번 해프닝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소한 실수로 볼 수 있지만, 국회가 ‘핵심 업무’인 입법 활동에서 오류를 냈다. 국회, 나아가서는 정치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세계보건기구(WHO)가 5일(현지 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내린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해제했다. 2020년 1월 30일 코로나19 PHEIC를 선언한 지 3년 3개월여 만이다.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날 비상대책위원회가 15번째 회의를 열고 비상사태 종식을 선언할 것을 권고해 그 충고를 받아들였다”며 “큰 희망을 가지고 코로나19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종식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내 방역 당국도 방역 추가 완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이날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방역 당국은 다음주 후반 위기평가회의를 열고 방역을 추가로 완화하는 조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낮추고 확진자 격리 의무도 7일에서 5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방역 당국은 7월부터는 확진자 격리 의무를 없애고 마스크 착용 의무도 전면 해제할 계획이다. 코로나19 법정 감염병 등급은 현재 2급에서 인플루엔자(독감) 같은 4급으로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내년 코로나19 관련 모든 방역 조치를 폐지하는 ‘완전 엔데믹(풍토병화)’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WHO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7억6500만 명을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사망자는 약 7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사망자가 2000만 명에 이를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사망자는 2021년 1월 주당 10만 명을 기록하며 정점에 올랐으나 지난달 말 350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극심한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의료 대란’ 우려까지 유발한 간호법 제정안이 기본 서식에서부터 오류가 있는 채로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지난해 5월 이 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를 통과한 뒤 2월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회부될 때까지 8개월 넘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오류가 수정되지 않았고, 결국 지난달 27일 야당 주도로 본회의까지 통과했다.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뒤늦게 오류를 발견해 수정했지만, 이 법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돼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심사가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앞뒤 안 맞는’ 간호법 문제가 된 조항은 간호법의 적용 대상인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개념을 정의한 제2조다. 여기서 간호법은 간호사를 ‘제4조’에 따른 면허를 받은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전문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각각 ‘제5, 6조’에 따른 자격인정을 받은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제2조의 내용과는 달리 실제 간호사 면허에 관한 내용은 제4조가 아닌 ‘제3조’에 있다. 전문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자격인정에 관한 내용도 각각 제5, 6조가 아닌 ‘제4, 5조’에 있다. 이 법의 ‘앞과 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 제28조 1항에도 ‘제4조에 따른 간호학을 전공하는 대학’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또한 ‘제3조에 따른’을 잘못 쓴 것이다. 특히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서술한 제5조는 간호조무사에 대한 “학력 차별” 논란이 있는 핵심 쟁점 조항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와 정부는 이 조항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사람을 ‘고졸’로 제한해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을 역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간호법 제정안은 김민석 서정숙 최연숙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3개의 법안을 반영해 만든 대안이다. 기존 원안들에는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규정한 제3조가 있었고, 이때는 각 직역의 자격 기준에 대한 내용이 제4~6조가 맞았다. 복지위가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3조가 빠지면서 뒷 조항들의 번호가 하나씩 당겨졌는데, 제2조에선 이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탓에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패스트트랙 오르며 ‘부실 심사’한 듯 간호법 제정안이 복지위를 통과한 건 지난해 5월 17일이다. 당시 복지위에선 야당 주도로 이 법을 통과시켰고, ‘체계·자구 심사’를 하는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됐다. 체계·자구 심사란 법안의 완결성을 검토하고, 오류가 있을 경우 이를 수정하는 절차다. 법사위는 올해 1월 16일과 2월 22일, 두 차례 회의를 통해 이 법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앞뒤가 다른’ 오류를 잡아내지 못했다. 법사위 전문위원이 올린 체계·자구 검토보고서에도 이 오류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법사위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야당은 2월 9일 복지위에서 간호법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해 바로 본회의에 회부시켰다. 간호법 제정 과정에 대해 잘 아는 한 국회 관계자는 “법사위 1월 회의에선 간호법을 ‘법안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로 넘길지 말지가 쟁점이었고, 2월 회의는 이미 간호법이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넘어간 후여서 큰 의미가 없었다”고 전했다. 여야 의원들이 간호법을 통과시키느냐, 막느냐를 두고 힘겨루기만 하다 정작 중요한 법안 심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날 가결된 간호법은 4일 정부로 이송됐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의결된 법안을 정부에 보내기 전 명백한 조문 인용 오류가 발견돼 바로잡은 후 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가결된 법안을 확인할 수 있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는 5일까지도 ‘틀린’ 법안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한편 법사위 체계·자구 검토보고서에선 △이 법에 쓰인 ‘의료기관’의 정의를 명확히 할 것 △간호조무사협회를 ‘설립할 수 있다’가 아닌 ‘설립한다’로 고칠 것 등의 지적이 나왔지만, 이 지적은 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정치 불신 증폭 우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국회 사무처가 의원들의 실수를 바로잡으면서 큰 문제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법학계에선 이번 해프닝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떻게 보면 사소할 수 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국민을 대신해 입법을 하는 국회가 ‘핵심 업무’인 입법 활동에서 오류를 냈다. 국회, 나아가서는 정치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간호법 통과를 밀어붙여 온 야당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충분한 숙의 과정이 법안 심의 때부터 이뤄졌다면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간호법 통과를 정쟁이 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각 조문이 의료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의미를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이지운기자 ea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서울 노원구에 사는 40대 김모 씨는 최근 인플루엔자(독감) 검사비로만 18만 원을 썼다. 초등생 막내아이를 시작으로 네 자녀가 고열 증세를 보이더니, 자신과 남편까지 같은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동네 의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온 가족이 ‘A형 독감’ 양성 판정을 받았다. 독감 검사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인당 3만 원을 냈다. 반면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처방받는 데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1인당 7000원밖에 내지 않았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이후 ‘봄 독감’이 빠르게 퍼지자 “독감 검사비가 부담된다”며 건강보험을 적용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반면 독감 검사 수요가 폭증하는 등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될 우려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1인당 3만 원 부담… “건보 적용해야”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주 외래 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 환자 수는 23명으로 집계됐다. 올봄 ‘독감 유행주의보’ 발령 기준(4.9명)의 5배에 가깝다. 초등생(만 7∼12세)은 이 수치가 43.1명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독감 검사를 받는 환자도 급증했다. 검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RAT)와 비슷하게 이뤄진다. 면봉으로 콧속에서 검체를 채취해 검사 키트에 떨어트리면 10∼15분 안에 결과가 나온다. 검사료는 통상 3만 원 안팎.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검사를 제외하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자녀가 있는 가정은 가족들이 한 번 검사를 받으면 그 비용만 10만 원 안팎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부담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A 씨는 “치료약은 건보 적용이 되는데 그 약을 처방받기 위한 검사비는 비급여라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검사 결과가 양성인 경우에 한해서라도 건보 적용을 해주는 게 맞다”고 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타미플루는 드물지만 환각 등 부작용이 보고되는 약이기 때문에 처방 전 검사가 요구된다”며 건보 적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 반대 측에선 “건보 재정 낭비” 우려건보 적용을 반대하는 쪽에선 비용은 큰 반면, 효과는 낮은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환자 부담금이 줄면 가벼운 감기 증상에도 사람들이 독감 검사를 받으려 할 것이고, 불필요한 건보료 지출로 이어질 수 있다. 한정된 건보 재정을 상대적으로 가벼운 병인 독감 검사에 추가 투입하기보다 중증, 응급 등 위중한 환자를 위한 ‘필수의료’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다. 동네 의원급 병원들도 건보 적용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급여화했을 때 수가(건강보험을 통해 병원에 지급되는 돈)가 지금 검사료보다 크게 깎일 가능성이 크고, 이는 병원 수입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현재로선 독감 검사 급여화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독감 유행주의보 발령 기간에는 65세 이상 고령자와 9세 이하 어린이 등 ‘고위험군’은 검사를 받지 않고 의심 증상만 있어도 타미플루 처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타미플루는 독감 환자의 중증 악화를 막아주는 약”이라며 “건강한 젊은층 등 저위험군은 굳이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고 치료약도 일반 감기약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대통령실이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부분 파업에 나서는 등 간호법으로 인한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이 의료대란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거부권 행사로 기울고 있는 것.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3일 “간호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이 대통령실 내부에서 커지고 있다”며 “직역 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어 재의요구권 행사 기준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초 대통령실은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엔 매우 조심스러운 기류였다. 간호법을 여야 합의 없이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달 양곡관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상황에서 잇따른 거부권 행사가 국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일 총파업을 예고한 의협,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 단체가 이날 연가 투쟁에 나서는 등 의료 현장의 파행이 현실화하면서 대통령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한 대통령실 참모는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상황까지 번진다면 정부 입장에선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은 4일 정부로 이송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정부로 이송된 날부터 휴일을 제외한 15일 이내에 간호법을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대통령실은 이 기간 동안 여야가 중재안을 바탕으로 간협과 다시 협의해 거부권 행사와 동시에 새로운 간호법 입법을 예고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간호사가 일하는 영역을 기존 의료기관에 더해 ‘지역사회’로 확대한 데 있다. 의협은 “간호사가 헬스케어센터 등을 단독 개원할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간협은 “의료법상 의사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돼 있어 확대해석은 억지”라고 반박하고 있다.대통령실 “간호법 갈등에 국민 피해 우려… 거부권 대상 해당” 尹, ‘간호법 거부권’ 행사 가닥“의료 현장과 조율”서 입장 변화, 의협 등 연가투쟁 돌입… 갈등 폭발잇단 거부권 부담… 與, 새 법안 검토‘간호사 업무 범위’ 쟁점 조정이 핵심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신중한 입장이던 대통령실이 거부권 행사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의사와 간호사 간 직역 갈등이 파업 등 집단행동으로 이어져 의료계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초 대통령실은 지난달 말 간호법이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된 뒤에도 줄곧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며 “의료 현장과 조율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등이 3일과 11일 연가투쟁을 예고하고, 17일엔 연대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 “거부권 행사하고 새 간호법 처리” 3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간호법은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고 이해관계가 엇갈려 직역(職域) 간 갈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법안이라 거부권 행사 대상에 해당한다”며 “의료계 현장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재의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실 입장에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이어 거부권을 행사하기엔 “국회 입법권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첫 거부권을 행사했고 앞으로도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 방송법 등 야당 주도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 카드를 꺼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 여당은 야당 및 대한간호협회(간협)와 추가로 논의를 거쳐 새로운 간호법 제정안을 입법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강행 처리된 간호법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대신 여당이 야당과 협의해 새 법안을 내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정이 냈던 중재안을 바탕으로 야당, 간호협회와 다시 협의할 예정”이라며 “여야가 서로 타협해서 새 법안을 처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핵심 쟁점은 ‘간호사 업무 범위’ 의협과 간무협 등 13개 의료계 직역단체가 연합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각각 다른 배경에서 간호법 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의협은 간호법이 제1조에서 간호사가 일하는 영역을 의료기관과 ‘지역사회’로 규정한 탓에 “간호사가 의사 없이 단독 개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간호사가 의사 없이도 ‘헬스케어 센터’ 등을 열어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대한응급구조사협회와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등 의료계 소수 직역 단체들도 ‘지역사회’라는 단어 때문에 엑스레이 촬영이나 응급구조 등 기존 자신들의 업무 영역이 간호사에게 침해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간협은 “가짜 뉴스”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간호법상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의 지도하에’ 수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단독 개원이나 타 직역 업무 침해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간무협은 “간호법은 고학력자가 간호조무사가 되는 것을 막는 차별적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간호법상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은 ‘특성화고 간호 관련 학과 졸업자 또는 학원의 간호조무사 교습과정 이수자’로 돼 있다. 이에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간호조무사가 되는 걸 막는 ‘학력 상한’이 존재한다는 것이 간무협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간협은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라 해도 별도의 교육 과정을 거친 경우엔 간호조무사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기므로 차별이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간호법 제정안의 국회 통과에 반발하는 의사단체 등이 3일과 11일 연가투쟁 등 집단행동에 나선다. 간호법 재논의(거부권 행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17일에는 연대 총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당장 ‘의료 대란’이 일어나진 않겠지만 간호법 거부권 행사를 압박하면서 의원→중소병원→대형병원 순으로 파업 수위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 3일 연가투쟁 돌입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등 13개 보건의료 관련 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쟁 로드맵’을 발표했다. 박명하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3일 오후 전국 각 시도에서 ‘간호법·면허박탈법 강행 처리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를 개최하겠다”며 “이를 위해 각 직역들이 소속 의료기관에 연가를 내거나 기관 차원에서 단축 진료를 시행하는 등 집회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당장 3일 국민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이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투쟁 로드맵이 지난 연휴(4월 29일∼5월 1일)에 정해진 뒤 이튿날인 2일 발표된 만큼 의료기관의 참여율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이 의협 비대위의 설명이다. 의협 비대위 관계자는 “3일 연가투쟁은 주로 의원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연가투쟁이 예정된 11일에는 의료기관 이용에 불편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의협 비대위 관계자는 “11일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의원과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문을 닫아달라고 독려할 생각”이라며 “(3일이) 간호조무사 중심이라면 11일은 의료기관 원장들도 함께해 달라는 쪽으로 권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17일 연대 총파업이 현실화되면 환자들의 큰 불편이 우려된다. 중환자실과 응급실 등 필수의료 분야의 ‘핵심 인력’인 전공의도 이때까지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단체행동에 동참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간호사 처우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간호법이 (통과되면) 앞으로 대리 수술, 대리 처방이 합법적으로 승인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일단 총파업에 동참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의료 현장 지켜달라” 요청보건복지의료연대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열리는 9일과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4일 정부로 이송될 예정이다. 대통령은 간호법을 이송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이의가 있으면 이의서를 첨부해 국회로 되돌려 보내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그 법률안을 재의에 부치고,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일 경우 재의결된다. 거부권이 현실화되면 간호법 제정에 찬성하는 대한간호사협회(간협)의 큰 반발이 예상된다. 다만 간협은 거부권이 행사되더라도 파업으로 맞대응하지는 않겠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2일 제3차 긴급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보건의료인 여러분께서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의료 현장을 지켜달라”며 “휴진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복지부는 지방 의료원, 보건소, 보건지소 등을 통해 환자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노력할 방침이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정부가 전국 주요 국립대 병원의 소아 담당 의료진 증원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서울대 어린이병원 등 10개 국립대 병원에서 소아 담당 의료진이 얼마나 추가로 필요한지를 조사했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인력 156명이 더 필요하다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확한 충원 규모는 관련 부처와 기획재정부 간의 협의를 거쳐 확정된다. 어린이 진료는 주요 필수의료 분야 중에서도 병원 입장에서 적자가 가장 심한 분야다. 성인 환자를 볼 때보다 환자당 의료진이 더 많이 필요한 반면에 수가(건강보험으로 병원에 지급되는 진료비)는 낮게 책정돼 있기 때문이다. 중증, 희귀난치성 질환을 가진 어린이가 가장 많이 찾는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경우 연간 적자가 1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1월 내놓은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 어린이병원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정부 재원으로 보전해주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사후보상 시범사업’과 입원 진료 수가 개선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만성적인 어린이병원 인력난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호소가 많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방문했을 당시 인력을 충원해 달라는 건의가 있었고, 이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