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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표결할 때 재미있는 광경이 간혹 눈에 띈다. 일부 의원이 본회의장 전면(前面) 양쪽에 설치된 전광판을 연신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고는 투표한다. 왜 그럴까. 전광판에는 재석의원이 찬성했을 경우 이름 옆에 녹색 원이 켜진다. 반대했을 때는 빨간 원, 기권했을 때는 노란 원이다. 동료 의원들이 찬성이나 반대 어느 쪽을 많이 했는지 확인한 뒤 이른바 대세를 따르기 위해서다. “웬 봉숭아학당?”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의원들이 표결하는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니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이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먼저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법안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인 3일, 2월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올라온 안건은 79건으로 이 가운데 법안은 75건이었다. 이 안건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3시간 31분. 단순히 산술적으로 보면 한 건을 처리하는 데 평균 2분 40여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본회의에 상정될 안건은 주로 본회의 전날 결정된다. 때때로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가 늦어지면 본회의 날 오전에 최종 마무리되기도 한다. “처리할 법안은 많고, 들여다볼 시간은 적어서 일일이 내용을 찾아보고 이해할 겨를이 없다”는 해명이 이해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국회가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데에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급격한 사회변화를 입법이 따라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법안 발의는 늘어만 간다. 19대 국회 종료가 14개월가량 남은 현재 발의된 법률안은 1만3000건을 넘었다. 이미 18대 국회 전체 발의 건수보다 많다. 의원이 아무리 독립된 헌법기관이라 할지라도 그 많은 법안을 완벽히 이해해서 의결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지닌 각 상임위에서 심의해 본회의에 올린 법안을 의원들은 “어련히 잘했을까”라고 믿으며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이 현실 탓만 하다 보니 어린이집에 폐쇄회로(CC)TV 설치와 보조-대체 교사 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부결되는 일이 생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법안이 어린 자녀를 둔 수백만 부모의 바람을 담았으며, CCTV 설치는 논란거리지만 보조-대체 교사 의무화가 더 절실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 토론에 나선 한 의원의 “CCTV 설치는 아동학대의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단선적인 주장에 재석의원 과반이 반대나 기권을 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의원들이 이 법안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야당의 한 초선의원은 “눈치껏 표결하고 본회의장을 나설 때면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모든 법안을 다 알아야 한다는 주문은 아니다. 적어도 국민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법안이라면 사전에 시간을 쪼개서라도 공부를 하자는 말이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은 13일 공천혁신추진단장에 원혜영 의원(사진)을 임명했다. 상근 부대변인 7명도 선정해 문재인 대표 체제의 당직 인선을 모두 마무리했다. 이번 인사는 문 대표와 최고위원들 간의 의견 충돌로 인해 계속 늦춰지다가 전날 저녁 문 대표가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공천혁신추진단장은 내년 4월 총선의 경선 방식과 공천심사위원회 구성 등을 결정하는 요직이다. 당초 문 대표는 이 자리에 박영선 전 원내대표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최고위원 7명 중 일부가 반대해 원 의원으로 수정됐다고 한다. 또 2·8 전당대회까지 3명이었던 부대변인도 최고위원 중 선출직 5인이 각자 추천한 후보자들을 끝까지 고수해 결국 7명으로 늘었다. 상근 부대변인 7명은 대선후보 캠프에서나 볼 수 있는 매머드급으로 “사실상 계파 나눠 먹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부대변인에는 강선아 전 서울시당 대변인, 강희용 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캠프 정책대변인, 김정현 현 수석부대변인, 김희경 전 대표비서실 부실장, 유송화 전 청와대 행정관, 한정우 전 문재인 전대캠프 공보팀장, 허영일 현 부대변인이 선임됐다. 이 밖에 신설된 디지털소통본부장은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선대위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던 윤호중 의원이, 네트워크정당추진단장에는 최재성 의원이 각각 임명됐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은 13일 공천혁신추진단장에 원혜영 의원(사진)을 임명했다. 상근 부대변인 7명도 선정해 문재인 대표 체제의 당직인선을 모두 마무리했다. 이번 인사는 문 대표와 최고위원들 간의 의견 충돌로 계속 늦춰지다가 전날 저녁 문 대표가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공천혁신추진단장은 내년 4월 총선의 경선 방식과 공천심사위원회 구성 등을 결정하는 요직이다. 당초 문 대표는 이 자리에 박영선 전 원내대표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최고위원 7명 중 일부가 반대해 원 의원으로 수정됐다. 또 2·8전당대회까지 3명이었던 부대변인도 최고위원 중 선출직 5인이 각자 추천한 후보자들을 끝까지 고수해 결국 7명으로 늘었다. 상근 부대변인 7명은 대선후보 캠프에서나 볼 수 있는 매머드급으로 “사실상 계파 나눠먹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핵심 당직자는 “문 대표가 (인사와 관련해) 설득하거나 논의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인사안을) 툭 던져놓고 있어 최고위원과 호흡이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문 대표 역시 최고위원들이 인선 등의 각종 제안에 ‘어깃장만 놓는다’며 불편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와 최고위원의 갈등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날 부대변인에는 강선아 전 서울시당 대변인, 강희용 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캠프 정책대변인, 김정현 현 수석부대변인, 김희경 전 대표비서실 부실장, 유송화 전 청와대 행정관, 한정우 전 문재인 전대캠프 공보팀장, 허영일 현 부대변인이 선임됐다. 이밖에 신설된 디지털소통본부장은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선대위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던 윤호중 의원이, 네트워크정당추진단장에는 최재성 의원이 각각 임명됐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17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인 회담에서는 주의제가 ‘민생경제’ 현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정부 여당과 야당이 바라는 민생경제의 핵심은 다르다. 자칫 논의가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 여당은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소득 주도 성장론을 내세우며 서민경기 활성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새누리당은 17일 청와대 회담이 철저히 경제 살리기 회동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일 울산을 방문한 김무성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경제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정부에서 세우고 이것을 국회에서 뒷받침해줘야 할 상황”이라며 “(17일 회담에서) 그런 것에 중점을 둬서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청와대와 정부가 요청한 경제활성화법 30개 중 지금까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관광진흥법 등 8개 법안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김 대표는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한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야당에) 협조를 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같은 정부 여당의 경제활성화 정책은 대기업, 재벌, 고소득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가계소득을 올리는 경제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표는 2월 취임 이후 소득 주도 성장, 조세정의 실현을 핵심 어젠다로 내세우고 있어 17일 회담에서 정부 여당 측과의 공방이 예상된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국민소득을 올리는 경제정책으로 위기를 예방하고 극복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 및 생활임금제 등 임금정책, 일자리와 주거 정책 등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동용 mindy@donga.com·이현수 기자}
여야는 4일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를 규정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부결된 데 따른 비판 여론을 의식한 조치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4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영유아보육법의 통과를 기대하던 많은 학부모들을 실망시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법이 부결된 것과 관련해 새누리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나 기권을 한 의원 중에는 CCTV 문제에 대해 본인의 소신이나 철학이 분명한 분이 많았다”며 “4월 임시국회에서 영유아보육법 입법을 재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토론의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 ‘아동학대 근절 특별위원회’ 간사 신의진 의원은 개정안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간사직에서 물러났다. 새누리당은 의원들의 뜻을 모으기 위해 이달 말 정책의원총회를 열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당 의원들의 반대와 기권으로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법안이 부결된 데 대해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우 원내대표는 조만간 공식 회의 석상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유감을 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장택동 will71@donga.com·민동용 기자}
여야는 4일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를 규정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부결된 데 따른 비판여론을 의식한 조치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4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영유아보육법의 통과를 기대하던 많은 학부모들을 실망시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법이 부결된 것과 관련해 새누리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나 기권을 한 의원 중에는 CCTV 문제에 대해 본인의 소신이나 철학이 분명한 분들이 많았다”며 “4월 임시국회에서 영유아보육법 입법을 재추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토론의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 ‘아동학대 근절 특별위원회’ 간사 신의진 의원은 개정안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간사직에서 물러났다. 새누리당은 의원들의 뜻을 모으기 위해 이달 말 정책의원총회를 열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당 의원들의 반대와 기권으로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법안이 부결된 데 매우 당혹스러워 했다. 우 원내대표는 조만간 공식회의 석상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유감을 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CCTV는 감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들이 먼저 모든 것을 보여주고 오해받지 않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이라며 재입법 추진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어 “아동학대의 예방과 좀 더 나은 보육을 위한 장치이며,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장치”라고 강조했다. 당내 일부 의원들이 법안통과 반대 이유로 내세운 “어린이집 CCTV는 (보육교사에 대한) 인권 침해”라는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민동용기자 mindy@donga.com장택동 기자will71@donga.com}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2011년 6월 14일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나’를 처음 꺼내놓자마자 한 장관이 반박했다. “청탁이 아니라 건전한 의사소통으로 볼 수 있는 만남도 있어요.” 다른 국무위원도 “어디까지가 청탁 민원이고 어디까지가 의견 전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거들었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등 검사 관련 비리 사건이 잇따르자 김 위원장이 나를 끄집어냈다. 금품 및 향응을 제공받았지만 직무와 관련된 청탁의 대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공직자를 막으라는 특명이었다. 권익위는 2012년 8월 입법예고를 했지만 국회에 가는 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법무부는 ‘직무 관련성과 관계없이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공직자는 모두 형사처벌’하도록 돼 있는 원래의 내가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했다고 몰아붙였다. 법무부는 “새로 법을 만들지 말고 필요하면 기존 법을 개정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내게 사실상 사망 선고를 내린 셈이다. 검사 출신인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나를 회생시켰다. 2013년 7월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와 관련한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한다는 절충안 덕에 난 국무회의 관문을 넘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도 난 내가 언론사와 같은 민간 영역도 규율할 ‘슈퍼파워’를 갖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간신히 ‘민의의 전당’에 온 나를 선량(選良)들은 한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해당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들이 기껏 한다는 말이 “법의 적용 대상이 너무 넓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타박이었다. 부정 청탁의 범위가 분명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하튼 타박과 무관심 속에 4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상임위에 상정이 됐다. 내가 천덕꾸러기에서 신데렐라로 거듭난 것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계기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안전과 국가 개조를 위한 첫 단추”라며 나를 치켜세웠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쏟아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에 반하는 집단으로 몰릴까 두려웠는지 의원들도 나를 언급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문제는 느닷없이 나의 관할 대상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나를 만들어 낸 어머니(김영란)나 나 자신은 생각조차 못한 일이다. “KBS, EBS뿐만 아니라 언론기관은 다 포함돼야지요.” “그럴 것 같은데 길게 논의하지 맙시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다 넣어야지.” ‘봉숭아학당’을 방불케 할 두서없는 논의 속에 나의 덩치는 공룡처럼 커져갔다. 올해 1월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이성보 국가권익위원장까지 장단을 맞췄다. 언론 종사자를 포함시키자는 내용에 위헌적 요소가 적고 국회가 정책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는 데 동의했다. 그렇게 3일 본회의를 통과한 나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즉 김영란법이다. 원래 이름에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라는 대목이 슬그머니 빠졌다. 1년 6개월 후면 난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 탄생 당시 들렸던 국민들의 환호가 그때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2·8전당대회 경선 과정은 새로웠다. 당 대표 후보로 나선 문재인 박지원 이인영 등 세 의원 누구도 박근혜 대통령을 ‘거대 악(惡)’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내 선거였지만 대통령이 공격의 주요 과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야당에서 특기할 만하다. 2007년 정권을 놓친 이래 야당에 정부와 여당은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을 ‘독재자의 딸’, ‘유신의 잔당’이라고 불렀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나,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도 야당에서는 ‘박근혜 퇴진’ 소리가 나왔다. 임기 5년을 채우면 물러날 정권을 향해 당장 퇴진을 외친 내면에는 정권을 여전히 독재로 보는 과거의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1960∼80년대 반체제 민주화 운동가들이 주축이었던 야당의 기억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독재든 권위주의 정권이든 상대를 거대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은 ‘반대’라고 하면 국민은 동정하고 응원했다. 그러나 10년 동안 두 차례나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피압박자를 자처한다면 문제다. 국민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스스로를 압박받는 처지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코스프레(복장을 뜻하는 영어 코스튬·costume과 놀이를 뜻하는 플레이·play의 합성어로 대중 스타나 만화 주인공과 똑같이 분장해서 흉내 내는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2·8전대에서 잠시 자취를 감췄던 새정치연합의 피압박자 코스프레가 다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의원의 발언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보이콧을 통해서다. 이 의원은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세월호 참사를 두고 “국가가 아무런 손을 안 썼기 때문”이라며 “국가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행위”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는 “헌재가 나라를 망친다”고도 했다. 격문 혹은 독설로 피압박자의 언어를 ‘코스프레’했다. 새정치연합은 박 후보자가 1987년 신진 검사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에 동참했다고 주장하며 인사청문회의 2월 국회 개최를 반대했다. 박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소속 의원 중 486의원들의 부정적 반응이 심했다고 한다. 박종철 사건은 486의원들의 정치 인생에서 분수령과 같다. 그럼에도 당시 수사팀 말단이던 박 후보자가 사건 축소·은폐를 알았는지, 만약 알았다면 책임을 그에게 지울 수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할 무대인 청문회 자체를 반대하는 건 지나치다. 시간을 1987년으로 되돌리려는 듯한 코스프레이기 때문이다. 피압박자 코스프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다. 스스로를 ‘악의 반대’로 규정하지 않는 대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민은 정치에서 악의 반대를 언제나 선(善)으로 보지 않는다. 문재인 대표가 경제정당 강화를 강조하고 중도통합 행보를 계속하는 까닭도 ‘코스프레는 그만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
여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아특법)의 2월 국회 통과 마지노선인 24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처리를 앞두고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운영 주체를 공무원으로 할지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의 9월 개관을 위해 2월 국회에서 아특법이 반드시 통과되도록 원내대표부가 각별히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24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와의 주례회동에서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할 방침이다. 아특법은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 터에 건립된 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문화도시 건립을 목표로 하는 법. 운영 주체를 일부 공무원 조직으로 규정한 아특법 개정안이 이달 처리되기 위해선 24일 교문위 전체회의에 상정돼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당의 핵심 텃밭인 광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법안 통과에 승부를 걸고 있다. 문제는 운영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는 점이다. 아특법 개정안은 아시아전당 ‘운영의 일부’를 법인에 위탁할 수 있고 이를 위탁받는 기관에 국가가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공무원이 운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새정치연합의 안과 “운영 주체가 민간법인 형태여야 한다”는 새누리당 주장이 절충된 셈이다. 새정치연합은 아시아전당이 국가기관 소속으로 규정된 원안을 근거로 공무원 조직을 밀어붙였다. 그 속내는 처음부터 민간법인으로 운영하면 재정난에 빠져 존립이 어려울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아특법 개정안을 합의해 주고서도 ‘국가가 운영 주체가 될 수 없다’며 교문위 전체회의 상정을 거부해 갈등을 빚고 있다. 2006년 국회를 통과한 아특법 원안에는 운영주체로 공무원 조직을 상정하지 않았다. 당시 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은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건립까지 10년간은 정부가 2조 원을 주고 그 후 재단법인화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새누리당이 새정치연합의 뜻을 받아줘 사달이 난 셈이다. 교문위 새누리당 간사인 신성범 의원은 통화에서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도 반대하는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부처 간 조율이 됐다고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정부 예산으로만 하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새정치연합 측이 수정안을 만들지 않는다면) 내일(24일) 상정은 없다”고 밝혔다. 문체부 소속 및 산하 예술기관 단체 가운데 직원이 일반 공무원 신분인 곳은 문체부 직속기관인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 직원뿐이다. 두 단체의 기관장은 계약직 공무원 신분이다. 이들을 제외하고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등 문체부 산하 예술기관과 단체는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민동용 mindy@donga.com·이현수·김윤종 기자}
16일 오후 1시 45분경 국회 본관 246호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표결을 앞두고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박수현 의원(충남 공주)이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충청권 의원이고 이 후보자와 지역구가 겹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계신 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충청 총리를 뽑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총리를 뽑는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표결에 참여하자.” 당 지도부의 큰 걱정은 ‘표결 참여’ 여부가 아니었다. ‘이탈 표를 얼마나 최소화 하느냐’였다. 문재인 대표 체제의 첫 시험대였기 때문이다.○ ‘찬성 표’를 막아라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전날 원내대책회의와 심야 최고위원회의에서 ‘표결 참여’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한 최고위원은 “최고위원 5명 중 ‘3 대 2’로 찬성이 많았다. 반대하는 쪽도 ‘다수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동의한 문 대표는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표 단속에 들어갔다. 이날 의총에서도 의원들이 얼마나 본회의장에 모일지 점검한 뒤 당내 이탈 표가 거의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들어가서 표결하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시모상 중인 진선미 의원과 출산한 지 닷새밖에 안 된 장하나 의원까지 표결에 참여할 정도였다. 새정치연합이 표결에 참여한 배경엔 ‘장기적 대치 국면’으로 갈 경우 출구가 마땅치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 관계자는 “이 문제를 갖고 어떤 원내 투쟁을 할 수 있겠으며, 그로 인한 국회 공전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의원총회에서도 “본회의에 안 들어가고 버틴다면 지리멸렬하고 무기력해 보일 수 있다”며 “국민이 우리에게 실망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의견이 다수의 지지를 얻었다. 새정치연합이 투표를 보이콧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석도 있다. 수도권 재선 의원은 “첫날 보이콧을 하고 여론을 우리 쪽으로 끌고 왔어야 했다”며 “16일로 본회의를 연기한 마당에 보이콧을 한다는 건 야당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라고 했다. 새정치연합이 본회의 표결에 참여한 건 달라진 야당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과거처럼 소수 강경파가 의총 분위기를 휘어잡고 침묵하는 다수를 억누르지 않았다는 것. 우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많은 분이 변화된 야당의 모습을 보이자, 반대를 하더라도 당당히 전원이 들어가 투표에 참여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권노갑 김원기 상임고문 등 원로들도 “본회의에 들어가 반대하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文, 여론조사 발언 비판에 표결 참여 시각도 정의당 의원 5명이 이날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불참을 전격 선언하자 새정치연합은 허를 찔린 모습이었다. 내부 단속에 집중하느라 정의당을 붙잡지 못해 반대표 전략에 일부 구멍이 난 것이다. 그래도 문 대표는 리더십의 첫 시험대를 통과했다는 평가가 많다. 당 소속 의원 참석자 124명(전체 의석 130석) 전원의 반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당대회 과정에서 나온 문 대표의 ‘호남총리론’ 발언과 13일 여야 공동 여론조사를 통해 총리 인준을 결정하자는 ‘돌출 제안’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충청권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동정 여론이 높아지자 문 대표가 표결 참여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특히 여론조사 발언 이후 “대의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표결 참여가 이 후보자 인준 통과를 의미하는 상황에서 ‘의회정치의 틀’로 복귀해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충청 표심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문 대표 측은 “문 대표가 줄곧 표결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고 여론조사 제안도 민심을 활용해 여당을 압박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표의 이 같은 행보에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리더는 여론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여론을 추종하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고민이 반영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호남총리론, 여론조사 제안은 정부·여당 지지층의 역(逆)결집을 부른 전략적 실수”라며 “야당은 정부와 대결하기보다 정부에 대한 평가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민동용 mindy@donga.com·배혜림·황형준 기자}
‘한국 정치는 본질적으로 계파정치’라는 주장에 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국 정치를 읽는 가장 유력한 틀이 바로 계파정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70년대 이래 오랜 세월 야권을 양분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를 언급하지 않고 민주화 과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후 한국 정치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3당 합당 및 민주자유당의 창당(1990년 1월) 역시 정권 창출을 위한 계파정치가 만들어 낸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을 장악한 최대 계파인 친노(친노무현)계가 야권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인 2002년 이후다. 현 여권은 1997년 대선 이래 유력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주류 세력이 재편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2002년 대선까지는 친이회창계, 2007년 대선 이후에는 친이(이명박)계가 주류가 됐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영원할 것 같았던 친박(친박근혜)계의 파워는 어느새 쇠락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국회의장 선거, 당 대표 선거에 이어 올해 원내대표 선거까지 3연패(連敗)를 하면서 새누리당 주도권은 어느덧 비박(비박근혜) 차지가 된 느낌이다. “차라리 새누리당 의원들과 말하는 게 낫겠다”지난해 6월경 그전까지 새정치연합 고위 당직을 맡았던 한 의원이 사석에서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보고 불통이라고 하는데 정말 불통은 이 당 의원들이라고. 어떻게 그렇게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 말이 안 통해.” 이 의원이 분통을 터뜨린 대상은 당내 계파였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각 계파의 집단적 반발에 뜻을 이루지 못하거나 처리가 지체된 기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 같았다.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차라리 새누리당 의원들하고는 말이 돼도 ○○계 의원들과는 얘기가 안 된다”는 얘기를 곧잘 한다. 계파 간 불화가 화해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는 방증이다. 8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의원이 당일 기자회견에서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역설적으로 계파 갈등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표는 줄곧 ‘친노’의 실체는 없다고 했다. 문 대표 측근들도 “문 대표가 2012년 대선 이후 단 한 번도 이른바 계파 의원들에게 어떠한 오더(명령)도 내린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보스가 조직원에게 지시를 내려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집단을 계파라고 한다면 친노는 그런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당대회 수개월 전부터 문 대표의 측근 의원이라 불리는 의원 10여 명이 이리저리 모여서 당 대표 경선을 준비해 왔고, 이번 인선도 이들 중 핵심 의원이 관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문 대표의 당직 인사를 바라보는 비노(비노무현) 진영 의원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처럼 계파는 여당보다 야당에서 더 뿌리 깊고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야당 정치를 이해하려면 계파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1970, 80년대 야당 정치를 양분했던 양김(兩金)은 YS의 상도동계, DJ의 동교동계라는 계파로 대표됐다. 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맞붙은 이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갈등은 1990년 3당 합당 전까지 야권의 최대 갈등 요인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의 엄혹했던 정치 상황은 명망가 유력 정치인에게 돈과 사람이 모이도록 했다. 국고로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가 지나서다. 이 때문에 호남과 부산·경남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두 전 대통령은 정치자금과 공천권이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계파를 유지했다.친노의 탄생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이른바 친노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당시의 친노는 계파적 패권을 드러냈다기보다는 강경함과 ‘싸가지 없음’으로 더 각인됐다.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안희정 현 충남도지사가 ‘친노는 폐족(廢族)’이라고 밝히면서 친노는 정치 무대 밖으로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한 뒤 친노의 응집력이 커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2011년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대표로 있던 민주당과 친노·시민사회 중심의 ‘혁신과 통합’이 통합하면서 야당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현재 새정치연합의 비노 의원들이 주장하는 친노의 폐해는 2012년 4월 총선 공천의 실패, 그해 6월 전당대회에서의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론(이른바 담합)’, 그리고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비노 의원들을 소외시킨 것 등이 주를 이룬다. 새정치연합에서 친노의 수는 대략 ‘20-40-60’의 법칙을 따른다고 본다. 문 대표와 끝까지 같이 갈 의원이 20명, 그렇지는 않지만 문 대표와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까지 범위를 넓히면 40명, 더 넓은 의미에서 문 대표 행보를 지지하는 의원까지 포함하면 60명이라는 것이다. 당내 최대 계파임에는 틀림없다.같은 듯 다른 여권의 계파정치여권에서 나타나는 계파정치의 양상은 야권의 그것과 같은 듯 다른 모양이다. 정치적 계파라고 하면 보스를 중심으로 한 종적인 서열구도 외에 횡적인 연대가 동시에 있어야 하지만 여권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한나라당은 1997, 2002년 대선 후보였고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 보였던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두 번의 실패로 장악력을 상실한 자리를 두고는 자연스럽게 이명박(MB)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과 박근혜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벌였던 친이계와 친박계의 권력투쟁은 여권의 정당정치 사상 가장 치열했던 건곤일척의 승부라고 부를 만했다. 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를 선정하기 위해 치러졌던 당내 경선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당시 선거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버락 오바마) 혹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힐러리 클린턴)의 탄생을 예고한 역사적인 의미가 있던 선거였다.박 대통령 “친박이란 말 언제 떼어 낼지” ‘친박’이란 용어가 처음 나온 건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당시 불법 대선자금 모금사건으로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쓴 데 이어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의 후폭풍으로 침몰 직전 상태까지 간 한나라당의 대표에 오른 시기다. 2004년 3월 열린 임시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의원은 처음으로 한나라당 대표가 된다. 지체 없이 천막당사로 간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한나라당에 기회를 한 번 더 달라”며 읍소해 4월 총선에서 121석을 건졌다. 자연스럽게 ‘친박’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진영-유승민 비서실장, 김무성 사무총장 등 박근혜 대표가 임명한 당직자들이 중심이 됐다. 이후 2006년 6월까지 2년 3개월의 재임기간에 박 대표 체제에서 당직을 맡았던 주요 인사들이 이른바 원조 친박이다. 사무총장을 지냈던 김무성 허태열, 비서실장 출신인 유승민 유정복을 비롯해 최경환 서병수 김재원 이혜훈 등이 핵심 중의 핵심을 이뤘다. 박 대통령 집권 이후 새누리당의 권력지도는 지속적으로 변화했고 현재는 비박계 지도부와 친박계가 당의 권력을 나눠 갖고 있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1월 1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지난해 12월 19일 대선 승리 2주기를 맞아 청와대에서 친박계 중진 의원들과 비공개 만찬을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벌어졌던 일을 상기시키며 “지금도 친박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데 이걸 언제 떼어 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것.친이계의 뒤안길 그동안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걸어온 길을 반추(反芻)해 보면 박 대통령이 궁금해하는 답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한다. 지금 현재 어느 누구도 이회창계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현재 친이계가 유명무실하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끝나기도 전인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는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2008년 총선 당시 친이계가 단행한 친박에 대한 ‘공천학살’이 그대로 되풀이된 격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결국 친이계는 구심점을 잃은 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당내에는 변변한 친이계 계파 모임도 없다고 한다. 18대 국회 당시 당일 전화를 돌려도 40∼50여 명의 현역 의원이 모이던 것과 달리 이제는 결속력이 없어졌다는 것. 매년 12월 19일 이 전 대통령의 생일 때 모이는 정도다. MB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가 성공으로 끝난 만큼 이제는 발전적 해체를 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5년 단임제라는 우리의 권력구조 속성상 친박 역시 박 대통령의 임기가 마무리될 경우 친이계와 비슷한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다. 계파정치 극복은 가능할까?계파 없는 정치가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많은 정치인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정치하는 사람의 로망은 대통령”이라며 대권 도전 의사를 감추지 않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난달 지역에서 가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우호세력을 결집해 천천히 대권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한나라당 당 대표에서 조기 하차할 당시 “계파가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말도 했다. ‘안철수 현상’을 일으키며 정가에 들어온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민주당과 통합한 뒤 다른 계파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진 것도 자신의 계파를 등에 업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손쉬운 분석이다. 8일 막을 내린 새정치연합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가 승리한 것을 친노의 승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고, 2일 치러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역시 친박 대 비박 프레임으로 설명하는 것이 편리하다. 정치권에서는 결국 계파란 필요악 아니냐는 평가를 한다. 정치란 것이 결국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권을 창출해 나가는 과정인데 그 결사체 격인 계파를 없앨 수 있겠느냐는 것. 하지만 앞으로는 전통적인 의미의 계파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이제는 친박, 비박 등의 전통적인 계파정치의 틀로는 현실 설명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세론 대 복지개혁론, 개헌론 대 반(反)개헌론 같은 정책노선의 차이에 따른 정치세력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의 눈높이에서도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학연, 지연과 같은 ‘원초적인’ 인연을 넘어서 정책지향성과 같은 좀 더 세련된 뜻의 결사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연적으로 세력 간의 다툼일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면 계파의 힘은 결국 궁극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한 알파요 오메가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정치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존재가 계파라면 계파행동의 합리화를 꾀하는 것이 정치발전의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하태원 triplets@donga.com·민동용·고성호 기자}
12일 오후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 표결 여부로 긴박하게 움직이던 새정치민주연합 공보실에 일순 찬바람이 불었다. 지난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의 흙집에서 은거 중인 손학규 전 상임고문(사진)이 문재인 대표와의 만남을 고사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이날 오전 문 대표가 14일 손 전 고문을 찾는다는 기사를 확인해준 공보실이 ‘오보(誤報)’를 전한 셈이 됐다. 당 내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손 전 고문이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문 대표에게 패하면서 쌓인 앙금 때문이다” “문 대표의 ‘뻔한 화해 행보에 손 전 고문이 뭐 하러 들러리를 서겠느냐”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사실을 확인한 결과 중간 연락을 맡았던 한 의원의 실수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드러났다. 문 대표 측 핵심 A 의원은 전당대회 직후 손 전 고문과 가까운 B 의원에게 “문 대표가 찾아뵙겠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했다. 손 전 고문은 11일 B 의원의 연락을 받고 수락했다. 이 의원은 이를 문 대표 측에 전달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손 전 고문이 B 의원에게 “생각해보니 정계 은퇴를 하고 내려왔는데 문 대표를 만나면 정치 행보로 비칠 것 같다”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곧바로 문 대표 측에 전달하지 않고 12일 오전까지 미루다 오보 사건이 터진 것이다. B 의원은 “14일까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 여유를 부리다가 그만 일이 터졌다”며 멋쩍어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11일 핵심 당직 ‘빅3’ 인선을 했다. 당의 재정과 인사를 책임지는 사무총장에 3선의 양승조(충남 천안갑), 정책위의장에는 역시 3선의 강기정 의원(광주 북갑)을 임명했다. 수석대변인으로는 재선의 김영록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이 임명됐다. 당 요직에 충청과 호남 인사를 배치한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친노’ 인사들이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다. 양 사무총장은 친노인 이해찬 의원과 가깝고, 2·8전당대회 경선 과정에선 지역에서 문 대표를 도왔다. 하지만 당내에선 손학규계로 분류된다. 강 정책위의장은 정세균계다. ‘범친노’로도 분류된다. 특히 김 수석대변인은 문 대표와 박빙의 승부를 벌인 박지원계다. 김 수석대변인의 등용에는 박 의원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전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명직 최고위원 2명 중 1명의 지명권을 박 의원에게 주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문 대표가 친노 독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당내 주요 계파 인사들을 두루 중용한 탕평인사를 시도한 셈이다. 9일 대표비서실장과 대변인 인사에 이어 계파와 지역 안배가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현미 비서실장과 유은혜 대변인 모두 지역구가 수도권(경기 고양)이다. 문 대표의 지역인 영남권 인사는 아직 없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1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법정구속된 지 이틀 만이다. 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판결로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이 확인됐다”며 “이명박 정부 당시 발생한 일이지만 박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중 국정원 대선 개입의 일단이 드러났을 때 ‘문재인 후보 측의 모략이며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 유린’이라며 오히려 저를 비방했다”며 “정부 출범 후에는 진실을 은폐하고 검찰의 엄중한 수사를 가로막았던 만큼 이제 드러난 진실에 대해 박 대통령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표는 원 전 원장이 실형 선고를 받은 9일에는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문 대표 측은 “문 대표는 민생과 경제에 집중할 것이며 원 전 원장 등 정치적 이슈는 원내에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문 대표는 “이 문제를 말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야당 대표로 이 중요한 사안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노릇이다”라고 밝혔다. 새정치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계속 정쟁화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표가 경제 이슈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 이슈로 전면전의 전선을 넓히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표는 12일 민생·경제 관련 간담회를 열 예정이었지만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관련 긴급 의원총회 때문에 취소했다. 한편 문 대표는 최고위원들과 함께 11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당 대표 경선에서 진 박지원 의원과 호남 민심에 대한 화해의 행보로 보인다. 이 여사는 전당대회 경선 막바지에 박 의원 선거 캠프를 직접 방문해 응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것을 두고 당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과 정청래 최고위원은 10일 문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천 전 장관과 정 최고위원의 비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문 대표의 참배는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독재자고 가해자며, (그와 유족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용서를 구한 적도 없는데 먼저 화해하자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문 대표가 박 전 대통령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한 건 그동안의 행보로 봤을 때 뜻밖이었다. 그는 2012년 민주통합당(현 새정치연합) 대선후보로 선출됐을 때 두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지 않았다. 당시 야권 후보로 단일화 협상을 벌였던 안철수 후보는 참배를 해서 더욱 대조적이었다. 8일 전당대회 이전까지도 문 대표는 두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부정적이었다. 당연히 문 대표의 참배 행위는 ‘전략적’이다. 중도·보수 진영에 대한 구애이고, 과거와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강조하는 대선주자로 거듭나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다. 뺄셈정치가 아닌 덧셈정치를 하지 않으면 또 패배한다는 절박감까지 읽힌다. 그러나 의도야 어떻든 포용과 화합이라는 정치인의 기본 덕목을 엿볼 수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국제정치학)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도로서의 대통령’이라는 글을 올렸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나온 것처럼 군사정권 시절 권위주의적인 국기 하강식에서 애국기가 사용되고 애국가가 울렸다고 해서 우리는 애국기와 애국가를 증오하지 않는다. 애국기와 애국가는 하나의 국가 제도로서 예우를 받고 있다. 대통령 역시 대한민국의 하나의 제도다. 제도로서의 대통령은 예우를 받아야 한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참배는 박정희,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참배가 아니라 1∼3대 대통령, 5∼9대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견해에 공감한다. 국회의원도 헌법기관이자 제도다. 이젠 좀 더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가 됐다. 두 전 대통령의 공과는 대부분 드러났다. 평가는 역사에 맡기는 게 좋다. 언제까지 국민 절반을 적으로 돌리면서 집권을 꿈꿀 것인가.민동용·정치부 mindy@donga.com}
여야는 10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언론 외압’ 논란을 빚은 녹음파일 공개를 놓고 정면충돌했다. 청문회장에서 공개하자는 야당의 요구를 여당이 거부하자 야당 의원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1시간 반 분량의 녹음파일 중 일부를 전격 공개했다. 이 때문에 청문회는 두 차례 정회하는 등 파행했고, 이 후보자 국회 인준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이날 청문회에서 지난달 말 일부 기자들과 오찬을 하면서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통과를 빌미로 기자들에게 ‘협박성’ 발언을 했느냐는 점 등을 따지며 이 후보자의 언론관을 비판했다. 이 후보자가 “그런 발언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총리 지명자가 그런 말을 했겠느냐”며 부인하자 야당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은 오후 4시 20분경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이 파일에는 이 후보자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되겠어, 당해 봐. 이제 안 막아 줘”라고 발언한 내용이 들어 있다. 뒤늦게 이 후보자는 “과장됐거나 흥분된 상태에서 말을 한 것”이라며 “평소 가까운 기자들 앞에서 편안한 마음에서 반어법으로 한 것이지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날 청문회를 계기로 여야는 대응 전략 수립에 부심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핵심 관계자는 “이제는 인준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11일 청문회까지 보고 의총을 열어서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택동 will71@donga.com·민동용 기자}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9일 오전 열린 취임 후 첫 번째 당 최고위원회 회의석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전날 대표 수락연설에서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 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하겠다”는 발언을 이어가는 강경 기조다. 문 대표는 “국민의 삶을 무너뜨리는 박근혜 정부의 폭주를 반드시 막아내겠다”며 현 정부의 조세·복지 정책을 ‘폭주’로 표현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의 서민 증세 꼼수에 맞서 국민의 지갑을 지키겠다”며 “복지 줄이기를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복지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평균 수준까지 늘리고 법인세 정상화 등 부자 감세 철회를 기필코 이뤄내겠다”고 주장했다. 문 대표가 취임 후 첫 공식 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향후 경제, 민생에 더 방점을 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 대표 측 인사는 “2·8전당대회 경선 과정에서 문 대표가 한 발언을 살펴보면 경제를 강조하는 흐름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8일 전당대회 마지막 정견발표에서 “당을 유능한 경제 정당으로 바꿔 경제로 박근혜 정권을 이기겠다”고 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연말정산 논란과 건강보험료 개편 취소 논란’ 같은 조세-복지 문제였고, 이에 대해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을 때 문 대표의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새정치연합의 최고위원회 직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증세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자 문 대표는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유은혜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며 복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씀은 백번 지당하다”며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해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바란다”고 에둘러 비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9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 선고를 받자 정치권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당사자’ 격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날 공식 언급을 자제했다. 문 대표 측은 “대변인 논평으로 갈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치적인 문제는 원내에 일임하겠다는 게 문 대표의 기본 생각”이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유은혜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당연한 결과)”이라며 “법치주의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준 뜻 깊은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해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만큼 이 전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권력기관의 대선 개입에 대한 입장과 재발 방지를 위한 분명한 대책을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문 대표는 2013년 당시 이 사건에 대해 “박 대통령이 알았든 몰랐든 새누리당의 집권 연장을 위해 자행된 일이고 박 대통령이 그 수혜자”라며 “박 대통령이 직접 선거운동에 악용했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대선 불복’ 논란이 빚어졌다. 2013년 당 대표로 서울광장 노숙투쟁을 했던 김한길 의원도 성명을 내고 “만시지탄(晩時之歎·시기가 늦어 한탄한다)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며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들고 대선 결과의 정당성에 큰 상처를 내는 국기문란 사태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대선 막바지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이 사건의 계기가 된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의원은 “오늘 다시 수사과장이 된 듯 보람차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 ‘국정원 대선개입 무죄공작 저지 특별위원회’ 소속 신경민 서영교 배재정 의원도 국회에서 성명을 내고 “사건 초기에는 ‘그런 일 없다’고 하다가 증거가 나오자 ‘개인적 일탈’이라 치부하고 기소가 되자 ‘재판 결과를 보자’던 박 대통령은 이제 국민의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어떤 경우에도 사법부 판단은 존중돼야 하지만 2심이 1심과 다르게 (실형으로) 판결된 것은 한마디로 정의해 말씀드리긴 어려운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영우 대변인도 논평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국정원은 이 같은 잘못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심기일전하고 재발 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2013년 국회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국정조사특위 여당 간사였던 권성동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은 원 전 원장에게 선거를 도와달라는 뜻을 전달한 바가 전혀 없다”고 야당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어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 자체가 정치공세”라며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민동용 mindy@donga.com·홍정수 기자}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의원을 차기 당 대표로 선택했다. “유력 대선주자를 떨어뜨려서야 되겠느냐”는 문 대표 측의 논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표는 8일 오후 1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서 45.30%의 득표율로 박지원 의원(41.78%)을 눌렀다. 격차가 3.52%포인트에 불과해 힘겨운 승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의원(45%), 권리당원(30%), 국민(15%), 일반당원(10%)으로 이뤄진 투표에서 문 대표는 대의원과 국민 여론조사, 박 의원은 권리당원과 일반당원 여론조사에서 각각 앞섰다. 문 의원은 민심(民心)에서 앞섰지만 박 의원이 당심(黨心)에서 우위를 차지해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그대로 보여줬다. 경선 막판 경선 룰 변경 논란이 불거지자 ‘친노(친노무현)의 횡포’라며 문 대표를 공격했던 박 의원은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의원을 지원한 비노 진영의 불만은 당분간 갈등 요인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 신임 대표는 이날 대표 수락연설에서 “박근혜 정권에 경고한다. 민주주의,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 낸다면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핵심 측근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진 상황에서 정국은 박근혜 대 문재인 대결구도로 흘러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문재인’ 일대일 구도가 3년 만에 재연되는 셈이다. 문 대표가 당분간 대정부·여당 투쟁 수위를 높이겠다고 밝히면서 정국 긴장은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문 대표는 “9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당선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의 공이 있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의 공로가 있다”며 “그분들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으로 모시고 기념하겠다”고 했다. 친노의 폐쇄성 논란을 불식하고 통합의 리더십을 구현하려는 첫걸음으로 해석된다. 이날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주승용 정청래 전병헌 오영식 유승희 의원(득표순)이 선출됐다.민동용 mindy@donga.com·황형준 기자}
문재인 의원=이렇게 계속 ‘나는 그렇게 하면 못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건 결국 경선 룰에 불복하시는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이게 벌써 몇 번째입니까? 박지원 의원=옳지 않은 일을 하면서 ‘내가 당 대표가 되겠다’, ‘내가 대권 후보가 되겠다’는 건 진정으로 안 되는 겁니다. 문 의원=어떻게 토론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지금 (여론조사) 룰 이야기를 계속…. 심지어 오늘 을지로위원회 토론회에서도 룰에 대한 불만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박 의원=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5일 한 라디오 방송 주최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후보자 마지막 토론회도 결국 후보끼리 낯을 붉히며 끝났다. 박 의원은 당 대표 경선의 여론조사 룰 변경 논란을 다시 제기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문 의원은 한숨을 몰아쉬며 반박했다. “저질 토론”(문 의원), “정치인이 아니라 여전히 변호사 같다”(박 의원)는 등 날 선 말들이 오갔다. 미래를 위한 청사진은 없었다. 새정치연합의 새로운 당 대표와 최고위원 5인을 뽑는 전당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전대는 8일 오후 1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리고 오후 5시경 당선자 발표가 예정돼 있다. 당 대표 경선은 문재인, 박지원 의원 측이 서로 우위를 주장하며 박빙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 의원은 6일 ‘마지막 지지 호소 메시지’에서 “국민에게 지지받는 당 대표, 그래서 국민에게 지지받는 정당, 그 길을 선택하면 된다. 그래야 총선에서 이길 수 있고 정권 교체 희망도 생긴다”며 “그 일에 저를 다 버릴 각오다. 죽기를 각오하고 그 뜻을 받들겠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당원과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제가 대표가 되면 즉시 당의 통합을 위해 ‘총선·대선 승리 위원회’(가칭)를 구성하겠다”며 “당내 모든 세력과 소중한 자산이 함께 참여하는 거당적인 당 운영 체제를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인영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혁신 없는 문재인, 박지원은 무서운 거품일 수 있다”며 “두 후보를 거부하는 부동층 40%의 분노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전의를 불태웠다. ▼ “지지받는 黨으로” “文-朴 무서운 거품” “거당적 당 운영할것” ▼새정치연합 전당대회 D-1지난달 7일 당 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 예비 경선을 치른 뒤 한 달 동안 선거운동이 진행됐다. 당 대표 후보들은 ‘당이 위기’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며 정당 개혁, 계파 해체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들은 경선 과정에서 수권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전략, 정책, 비전을 제시하진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대를 열흘가량 남기고는 여론조사 경선 룰 변경 논란이라는 수렁에 빠지며 토론회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바뀌었다. 한 TV 토론회에서는 문, 박 의원이 서로의 발언을 “저질”이라고 공격하는 민망한 장면이 연출됐다. 해체하겠다던 당내 계파는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고, 상대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전략이 판쳤다. 새정치연합이 거듭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전대에서 당을 제1 야당 자격이 있는 정당으로 환골탈태하게 할 대표를 뽑는 일이 그것이다. 전체 투표의 45%를 차지하는 대의원 투표가 8일 현장에서 이뤄진다. 전국의 1만5000여 대의원에게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는 책임이 부여됐다. 대의원들이 지역, 이념의 한계를 뛰어넘는 리더십, 뿌리 깊은 계파 갈등을 봉합하고 당을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당 대표를 ‘밝은 눈’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이 건강해야 그 나라 정치가 건강하다”는 말이 정설로 통한다. 야당이 정부를 정확하게 비판하고 견제해야 국정이 바로 설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의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을 통해 ‘진짜 야당’은 새정치연합이 아니라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중심의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 지도부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회자된다. 새정치연합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부자 감세 철회’만 외쳐서는 제1 야당의 지위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전문가들은 대의원들이 ‘계파 보스’가 아니라 수권 정당의 면모를 갖추도록 당을 혁신할 수 있는 리더십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발목 잡기 정당이 아니라 정책 대안 제시 능력을 갖춘 정당으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국민이 수긍하고 납득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을 만드는 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도 “이념 지향적인 투쟁보다 실생활과 관련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당 대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