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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련다.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마주쳤다면? 아마 안 골랐으리라. 미안한 말이지만 겉모습이 좀 ‘구리다’. 너무 두껍기까지. 막상 읽어 보면 흥미롭단 말도 차마 못 하겠다. 냉전 시대에 미국 중앙정보국(CIA) 주도로 이뤄진 문화 선전전을 다뤘는데, 방대하고 디테일해서 문외한 입장에선 상당히 버겁다. 그런데 이 책은 왠지 쓰윽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CIA의 첩보전을 관람하는 재미는 없지만, 이들이 얼마나 치밀하고 넓게 그물망을 짜 왔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음모론에나 나오던 얘기가 진짜 현실이었던 거다. 영국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역사학자인 저자가 특히 주목한 인물은 마이클 조셀슨. 에스토니아 유대인 출신으로 미군이 된 그는, CIA에 합류한 뒤 서구의 문화 선전전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성장한다. 그가 주도해 만든 민간단체가 ‘세계문화자유회의’(1950∼67년)다. 세계 35개 지부(한국에도 있었다)를 둔 이 단체는 수많은 세미나 전시회 음악제를 개최했다. 놀라운 건 잭슨 폴록과 버트런드 러셀, 조지 오웰, 해나 아렌트, 아서 밀러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당대 지성들도 이 단체(혹은 CIA)와 직간접적으로 연을 맺었단 점이다. 그들이 이런 정황을 인지했건 아니건. CIA는 엄청난 금전과 막강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들을 입맛에 맞게 활용했다. 물론 그들이 ‘선전선동의 나팔수’는 아니었지만, CIA의 큰 그림 속에서 움직여졌다. 조셀슨과 그의 동료들은 그림자 속에서 이를 설계하고 지휘했다. 요즘 시국에 이런 얘기가 관심을 끌까. 21세기 한반도에선 더한 일도 벌어졌는데. 그나마 CIA는 그들 나름대로 정당성을 갖추고 주도면밀하기라도 했건만. 정양환기자 ray@donga.com}
속았다. 제목만 보고선 새터민이나 북한 얘길 줄 알았다. 뭐, 물론 약간씩 관련 에피소드가 나오긴 하나 큰 상관은 없다. 23일 방영한 KBS 드라마스페셜 ‘평양까지 이만원’은 지난한 삶의 존재 이유를 다루는 작품이다. 대리기사 영정(한주완)은 사제의 길을 걷다 박차고 나와 하루하루를 덧없이 보내는 청년. 술에 취해 “평양에 가달라”는 어르신을 모셔다 드린 뒤 귀가하다 형제처럼 지내던 차준영 신부(김영재)와 마주한다. 포장마차에서 함께 회포를 풀다 차 신부는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에 당황하며 급히 자리를 뜬다. 황당해하며 홀로 술을 마시던 영정 옆에 어디선가 소원(미람)이란 젊은 여성이 나타나 합석하는데…. ‘평양까지…’는 제목에 속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드는 드라마다. 단막극답게 짜임새가 좋고, 장면 장면도 유려하다. 뭣보다 장편으론 다루기 힘든 이런 소재를 TV드라마로 즐길 수 있다니. 인간은 어떤 옷을 걸쳤어도 본질적으로 이성과 본성을 함께 지닌 존재. 그로 인해 외재적 내재적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지 않나. 물론 이 작품이 그 해답을 찾아주진 못하지만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아쉬움도 있다. 이런 무게의 소재였다면 작품이 한 톤쯤 더 무채색에 가까웠어야 하지 않았을까. 따뜻한 결론도 나쁘지 않지만 ‘너무 산뜻했다’고나 할까. 단막극 특유의 연극적 대사도 조금만 버렸더라면 싶다. 현재 국내 유일의 단막극인 KBS 드라마스페셜(10회 예정)은 5화 ‘평양까지…’로 딱 반을 채웠다. 지난 회 시청률은 2.2%(닐슨코리아). 허나 수치론 드러나지 않는 팬이 많다는 걸 기억해주길. 남은 후반전도 응원을 보낸다. ★★★☆(5개 만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2011년 개봉해 인기를 끌었던 영화 ‘써니’가 미국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 CJ E&M은 26일 “2018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 ‘써니’의 미국판 리메이크를 추진하고 있다”며 “최근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한 단계”라고 밝혔다. 리메이크 버전은 CJ E&M과 미국의 랫팩(RatPac)엔터테인먼트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랫팩은 청룽(成龍)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러시 아워’ 시리즈를 연출했던 브렛 래트너 감독이 대표로 있는 회사다. 아직 ‘써니’의 메가폰을 누가 잡을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시나리오는 2004년 국내에서도 개봉했던 코미디 드라마 ‘프리키 프라이데이’를 썼던 헤더 해치 작가가 맡았다. ‘과속 스캔들’(2008년), ‘타짜-신의 손’(2014년)을 연출했던 강형철 감독의 영화 ‘써니’는 국내 개봉 당시 736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며 복고 열풍을 일으킨 작품이다.정양환기자 ray@donga.com}
《 “내가 혼술(혼자 술 마시기)을 하는 이유는, 힘든 날 진심으로 이해해 줄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tvN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지구란 별은 인구가 73억 명이 넘는다. 하나 이토록 바글바글해도 이 행성 토착민들은 쓸쓸해 보인다. 홀로 밥 먹고, 외로이 술 마시고. 한국도 마찬가지. 지난달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520만 가구가 넘어 전체의 27.2%. 1990년보다 5배가 늘어났다. 》 근데 ‘홀로 된다는 것이’ 말처럼 간단치 않다. 최근 ‘혼밥(하기 좋은) 식당’ 소개 글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심지어 공력을 가늠하는 ‘혼밥 레벨 테스트’까지 나왔다. 1∼10단계가 있는데 편의점, 패스트푸드는 초보 수준이란다. 요원들이 상위 레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혼밥 하수인 에이전트2(정양환)가 패밀리레스토랑과 점심 때 줄서는 맛집에, 중수 이상인 에이전트41(김배중)이 고깃집과 뷔페를 체험했다. 혼밥에는 어떤 미학과 고충이 담겨 있을까.○ “여성 가득한 승강기에 홀로 탄 기분” 먼저 에이전트2가 레벨7 ‘맛집 혼밥’에 나섰다. 장소는 서울 중구 유명 냉면집. 낮 12시 언저리라 대기 줄이 길다. 잠시 머뭇거리다 맘을 다잡았다. 의외로 줄 서고 자리 앉는 건 쉬웠다. 딱히 신경 쓰는 이도 없다. “몇 명이세요?” 물을 때 “1명요”에서 목소리가 작아졌을 뿐. 주문 뒤에도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면 된다. 현대문명에 경의를. 후딱 ‘미션 클리어’ 해야지. 사건은 한창 젓가락질하는 와중에 발생했다. “손님, 합석 되죠?”에 답할 겨를도 없이, 여성 2명이 맞은편에 앉았다. 앞자리 남정네가 ‘윌슨’(MBC ‘나 혼자 산다’ 곰 인형)으로 보이나. 온갖 수다를 쏟아냈다. 난 냉면 먹으며 왜 립밤 구입 요령을 배워야 하나. 다음 날, 레벨8 패밀리레스토랑. 역시 점심때라 바글바글. 한 번 해봤다고 성큼성큼 들어섰다. 설마 여긴 합석은 없겠지. 헉, 근데 90% 이상 여성 고객. 이성만 잔뜩 탄 엘리베이터에 발을 내딛는 느낌이랄까. 흘깃흘깃 쳐다본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매력도 있다. 요리에 집중하기 좋았다. 브로콜리가 꼼꼼히 씹으면 이런 식감이구나. 육질도 입에 착착 감겼다. 후배에게 온 업무 문자도 반가웠다. 바쁜 짬을 쪼개 여유를 즐기는 문화인. 살짝 우쭐해졌다. 긴장을 놓친 탓일까. 디저트를 기다리며 웹툰을 보다 ‘킥’ 웃음이 터졌다. 아뿔싸. 0.1초 찰나 모여든 눈빛. 땀방울이 피처럼 흘러내렸다. 순간 방심에 치명적인 내상을. 앞으로 혼밥 때 개그 만화는 금기.○ “천하에 홀로 위대(胃大)하리니” 레벨9 뷔페에 나선 에이전트41. 평소 혼밥을 가뿐히 여긴 터라 ‘마실’ 나가는 기분. 일부러 유동인구 많은 홍익대 인근으로 골랐다. 아, 근데 고등학생 단체손님이 있을 줄이야. 교복에 둘러싸인 스타의 꿈을 잡채 앞에서 이루다니. 음식을 담으러 갈 때마다 자꾸 타이밍을 노리게 된다. 너무 많이 담았는지 ‘자기 검열’까지. 테이블에 남겨둔 가방도 신경 쓰인다. 메고 가면 더 이상하겠지? 40대 혼밥 고수 A 씨(자영업자)는 “화장실 등 잠시 자리 비울 때가 가장 불편하다”며 “간혹 음식을 치우기도 하니 종업원에게 말해 두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물론 중수 이상인 에이전트41은 곧 적응을 마쳤다. 커피랑 아이스크림을 가져와 ‘아포가토’도 제조해 먹었다. 그러나 목표량을 채우진 못했다. 혼밥의 다이어트 효과인가. 마지막 레벨10 고깃집 혼술. 난세지웅(亂世之雄). 이번엔 직장인 퇴근시간을 골랐다. 왁자지껄한 삼겹살 집에서 홀로 고기를 굽노라니. 돼지를 평정한 장수가 되었구나. 들락날락거리는 뷔페보다 훨씬 나았다. 3인분에 소주 1병, 밥 한 공기와 된장찌개를 해치웠다. 그러나 묘하게 ‘심리적 압박’이 밀려오는 고비가 있다. 이상하게 고기가 안 익는 불판. 1인분을 3번째 시킬 때 이모의 눈빛. 소주 한잔에 저절로 나온 ‘캬’. 그걸 다 먹고 혼자 계산하는 카운터 앞. 위대(偉大)하고자 했으나 위대(胃大)만 했던 게 아닐까. 왜 그럴까. 또 다른 고수인 30대 직장인 B 씨는 이를 ‘모호한 정체성 탓’이라 진단했다. “게임하듯 접근해서 그래요. 혼밥혼술의 핵심은 ‘자기 위안’에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성가시기 싫고,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스스로 다독거리는 거죠. 거기에 무슨 유별남이나 독특함이 필요할까요? 각자 취향 따라 사는 생활 방식일 뿐입니다.” 그래, 혼밥혼술은 무슨 유행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일상일 뿐. 거기에 색안경을 쓰고 덤빈 요원들이 문제였다. 우리 이제 혼밥을 그냥 내버려두자. (다음 편에 계속) 정양환 기자 ray@donga.com·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이영 세자(박보검) 보러 수천 명이 모였네.” 19일 오후 3시경 서울 종로구 경복궁 흥례문광장이 북새통이 됐다.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출연 배우 사인회에 5000여 명의 인파가 몰리며 시위라도 벌어진 듯 시끌벅적했다. 이날 행사는 배우 박보검의 “시청률 20%를 넘기면 광화문에서 한복 입고 사인회를 하겠다”는 공약을 지키려 미리 온라인에서 선정한 200명을 대상으로 한 행사였다. 하지만 오전부터 유모차를 끈 여성부터 해외 한류 팬까지 몰려들었다. 안전 문제로 행사 시작이 30분 이상 지연되기도 했다. 경복궁에 드라마 주역인 박보검과 김유정 진영 곽동연이 모습을 드러내자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박보검은 “이영이다”라고 인사한 뒤 “약속을 지키게 돼 영광이다.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주인공 김유정 역시 “다 얼굴을 못 뵈어 죄송하다.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란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사인회는 예정됐던 200명과의 만남만 진행하고 1시간 뒤 끝마쳤다. 세자 이영과 남장 내시 홍라온의 궁중 로맨스를 그린 ‘구르미 그린 달빛’은 18일 최종회 시청률 22.9%(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방영 내내 ‘박보검 신드롬’을 일으키며 안방극장을 점령했다.정양환기자 ray@donga.com}
#제례용 '정'을 쓰레기통으로 쓰는 나라. 공공디자인의 창의성은 이런게 아니야!#이렇게 생긴 쓰레기통, 본 적 있으신가요?#사실 이 것은 우리의 전통 그릇 중 제례에 쓰는 정(鼎)입니다. 조상이나 하늘에 바치는 음식을 조리하던 솥의 일종이죠. #이 외에도 장을 담가 보관하는 옹기 항아리, 돌절구 등 우리의 전통 용기들이 길거리 쓰레기통 디자인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리 곳곳엔 전통 문화를 왜곡한 공공디자인이 넘쳐납니다.전통 체험 행사장에서 옹기를 본 외국인이 “한국인은 쓰레기통에 음식을 담그냐”며 경악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됩니다. 옛 것에 익숙지 않은 젊은 세대도 비슷한 실정이죠.#“아마 누군가가 처음 (쓰레기통) 아이디어를 냈을 땐 참신하다고 칭찬받았을 겁니다. 전통의 오용이나 남용이란 인식이 없었을 거예요.창의성을 표출하기 어려운 공직사회의 경직성이 만든 결과물이입니다.”- 공공디자인 전문가 박효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공공디자인은 화려함이나 얼마나 주목받느냐의 외양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의성이 핵심이어야 합니다.최근 가장 많은 간판 정비 사업의 목표도 시민들의 시각공해를 없애고 알아보기 쉽게 만드는 것이죠. #전은경 ‘월간디자인’ 편집장도 “보기에 근사한 벤치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앉아 쉬기 편한 게 진짜 공공디자인이다.” 라고 조언했습니다.#전통 쓰레기통 디자인은 쓰레기통의 ‘본질’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항아리나 절구 형태는 쓰레기의 너저분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정(鼎)은 쓰레기를 버리기 쉽지 않으며 나중에 수거하는 분들도 이용하기 불편합니다.#항아리나 제례용 정에 쓰레기나 담배꽁초가 수북한 모습을 선조들이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요?전통을 살리며 쓰임새도 적절한 공공디자인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본: 정양환 기자기획/제작: 김재형 기자·이고은 인턴}
최근 한 지인이 사진 한 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근사한 풍경? 유명 맛집? 어느 공원에 있는 쓰레기통이었다. 문화재계 인사인 그가 게재한 사연은 이렇다. ‘가끔 공공디자인은 이해하기 힘들다. 대표적 경우가 길거리 쓰레기통이다. 옹기 항아리나 돌절구, 게다가 (제례에 쓰는) 정(鼎)을 그대로 본떠서 만드는 건 우리 전통에 대한 부적절한 왜곡이 아닐까.’ 이런 해프닝도 하나 덧붙였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전통 체험을 갔다가 기겁을 했단다. ‘한국인은 쓰레기통에 음식을 담느냐’며. 길에서 봤던 옹기 항아리가 원래는 음식 보관용이란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단 얘기다. 그는 “외국인은 둘째 치고 옛것에 익숙지 않은 젊은 세대도 헷갈릴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거참, 생각해보니 맞다. 무심코 마주쳤던 그 많은 쓰레기통들. 장을 담그는 항아리, 조상이나 하늘에 바치는 음식을 조리하던 정(鼎)이라니. 쓰레기나 담배꽁초가 수북한 모습을 선조들이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이를 “전통문화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 부족해 아쉽다”고 평했다. “옛날에도 옹기 중에 ‘똥항아리’가 있긴 했어요. 하지만 형태를 길게 하고 입구를 좁게 만들어 생김새가 달랐습니다. 이런 쓰레기통을 두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면 속 좁은 배격이겠죠. 하지만 옛것을 참조하되 변화를 꾀했다면 어땠을까요.” 공공디자인 전문가인 박효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박 교수는 “공공디자인에서 창의성을 표출하기 어려운 공직사회의 경직성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진단했다. “아마 누군가가 처음 (쓰레기통) 아이디어를 냈을 땐 참신하다고 칭찬받았을 겁니다. 전통의 오용이나 남용이란 인식이 없었을 거예요. 요샌 지방자치단체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공공디자인 사업을 벌입니다. 근데 화려함에 치중해 얼마나 주목받을지만 신경 쓰는 듯해요. 공공디자인은 외양이 아니라 ‘사용자의 편의성’이 핵심입니다.” 편의성이라. 쉽게 말해 이렇다. 최근 지자체가 가장 많이 벌이는 공공디자인 사업이 간판 정비다. 근데 길거리가 지저분하니 보기 좋게 만들자는 공공디자인의 목표가 아니다. 시민들의 시각공해를 없애고 알아보기 쉽게 만드는 것. 이게 근본 취지고 철학이어야 한다. 쓰레기통으로 돌아가 보자. 항아리나 절구 형태는 쓰레기가 담긴 너저분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鼎)은 뭔가 버리기 쉽지 않고 나중에 수거하는 분들도 불편하다. 쓰레기통의 ‘본질’에 적합하지 않단 소리다. 전은경 ‘월간디자인’ 편집장은 “벤치는 보기에 근사한 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앉아 쉬기 편한 게 진짜 공공디자인”이라고 조언했다. 옹기에서 소재를 가져왔어도 새로운 해석이 담긴 쓰레기통. 전통을 적당히 살리며 쓰임새도 적절한 공공디자인. 우리도 길거리에서 이 정도는 누릴 때가 되지 않았나.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4일 소유권과 관리운영권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프레스센터에 대한 5개 언론단체의 건의문에 대해 “프레스센터의 설립 취지에 맞도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날 한국신문협회(회장 이병규)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황호택) 등 5개 언론단체는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조 장관을 만나 대정부 건의문을 전달했다. 언론단체들은 “언론의 공동 자산인 프레스센터와 남한강연수원의 소유권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에서 국가로 귀속시키고, 언론정책의 총괄부처인 문체부 및 산하기구가 관리 운영하는 방식으로 언론인의 공익시설로 돌려달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이에 대해 “두 시설은 자산적 가치를 놓고 다툴 것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발전, 언론이라는 상징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해결해야 한다”며 “부처 간 협업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을 문체부 업무의 중요한 의제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프레스센터 문제는 2012년 미디어법이 제정돼 코바코가 무자본 특수법인에서 주식회사형 공기업(공영미디어렙)으로 바뀌면서 시작됐다. 프레스센터 소유권을 가진 코바코와 언론계 환원을 촉구해온 언론계가 해법을 찾지 못하고 갈등을 빚어온 것. 코바코는 6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관리권 관련 부당이익금(157억여 원)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이에 신문협회 등 11개 언론단체는 7월 8일 ‘코바코는 언론의 공익시설인 프레스센터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연예인 아빠와 자녀의 이야기를 담는 채널A 예능프로그램 ‘아빠본색’이 한국우편사업진흥원과 함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는 ‘아빠에게 편지로 말해요’ 캠페인을 펼친다. 채널A는 “12월 15일까지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보내 오면 특별 제작된 ‘아빠본색’ 우표를 붙여 무료로 편지를 발송한다”고 12일 밝혔다. 김구라 김흥국 이창훈 등이 출연하는 ‘아빠본색’은 연예인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담는다는 취지를 시청자와 공감하자는 뜻에서 이런 캠페인을 마련했다. 편지는 접수된 다음 달 일괄 발송하며, 매달 편지 20통을 뽑아 아빠본색 기념우표와 고급 문구용품을 선물한다. 연말엔 채널A 사장상과 한국우편사업진흥원장상도 시상할 예정이다. 이춘호 한국우편사업진흥원장은 “아버지와 자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 편지로 디지털 시대에 점점 잊혀가는 따뜻한 감성을 되새겨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빠에게 편지로 말해요’ 접수 사이트(www.postlette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채널A ‘아빠본색’은 매주 수요일 오후 9시 반에 방영한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 에이전트2(정양환)가 지구에 온 지도 꽤 오래. 허나 그는 지금도 헷갈린다. 이 행성의 ‘엄마’란 존재는 정말 초능력이 없는 걸까. 평소엔 연약하다가도 아이만 관련되면 헐크가 되는데. ‘모성(母性)’은 초자연이 부여한 원기옥(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필살기)이 아닐지. 그런데 요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면 이 초인들은 또 하나 묘한 성향을 보인다. “나는 ‘나쁜 엄마’인가요?” “난 ‘나쁜 엄마’인가 봐요”란 글들이 무수히 많다. 아니 슈퍼히어로인 줄 알았더니 ‘빌런’(악당)이었단 말인가. 그런데 눈 씻고 찾아봐도 “나는 나쁜 아빠입니다”란 글은 없다. 아빠들은 착한데 엄마들만 나쁜가? 에이전트2는 이 ‘잘못된 만남’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 ○ 자녀 문제에 가슴 졸이는 엄마들 ‘나쁜 엄마 고해성사’는 특히 육아나 주부 커뮤니티에서 많이 발견된다. 내용은 주로 엇비슷하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다 짜증을 냈어요.” “하루만이라도 다 잊고 친구들과 놀고 싶어요.” “회사 다니느라 아이에게 소홀했네요.” 확실히 엄마들은 전업주부건 맞벌이건 아이에게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최근 조사업체 ‘엠브레인’에 의뢰해 현재 육아 중인 30, 40대 남녀 200명에게 모바일 설문조사를 벌였더니, ‘스스로 나쁜 엄마(아빠)라 느낀 적 있느냐’는 질문에 여성은 65%가 “(가끔 또는 자주) 그렇다”고 대답했다. 물론 남성도 같은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반응이 52%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들은 15%가 “자주”라고 대답해 아빠들 3%의 5배에 달했다. 육아 커뮤니티에 ‘나쁜 엄마’임을 토로한 적 있다는 40대 여성 A 씨(자영업)는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을 때 엄마는 ‘내가 뭘 잘못했나’란 생각부터 덜컥 든다”고 털어놨다. 그런 기분이 들 때 해결법도 남녀가 미묘하게 차이를 드러냈다. 아빠 엄마 모두 “반성하고 문제점을 찾으려 노력한다”를 최우선 순위로 꼽았는데 각각 75.8%, 52.7%였다. 하지만 “주위 사람이나 인터넷에서 의견을 구한다”는 방식도 여성은 20.9%나 선택했다. 남성은 5.5%에 불과했다. 30대 여성 B 씨(전업주부)는 “여전히 한국 사회는 자녀 문제는 엄마 책임이란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며 “남편과 얘기해도 잘 공감을 못해 친구나 커뮤니티를 찾는다”고 했다.○ 끝없는 애정 vs 인내와 절제 사실 여성들의 이런 고민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 건너 미국도 최근 ‘나쁜 엄마’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7월 19일 개봉한 영화 ‘배드 맘스(Bad Moms)’를 통해서다. 총제작비가 2000만 달러(약 222억 원)로 할리우드 영화치곤 소품이었으나 북미에서만 1억7100만 달러(약 1900억 원) 수익을 거뒀다. 내용은 단순한 편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 전념하던 여러 엄마들이 고단한 육아에 지쳐가다 일탈(?)에 나선다는 줄거리.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 밀라 쿠니스가 한 인터뷰에서 “아이를 카시트에 앉혀 놓곤 안전벨트도 안 채우고 운전한 적 있다”며 “엄마들은 누구나 ‘나쁜 엄마’란 생각을 하는 때가 있다”고 고백한 게 이슈가 되기도 했다. 현지에서 전문가들은 이 영화의 흥행을 두고 “이제 엄마들이 환상을 벗어던질 때”라고 조언했다. 러네이 크레이머 드레이크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모성은 완벽한 육아를 지향한다는 통념을 벗어던져라”라며 “타인의 육아법에 신경 끄고 자신과 아이의 유대감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마들의 고백’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미국 사회학자 비앙카 저못 씨는 “아빠가 인스턴트식품을 데워 먹이면 대단하다고 칭찬하면서 엄마가 그랬다면 힐난하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은 에이전트2는 앞선 조사 결과에서 씁쓸한 대목을 발견했다. ‘좋은 아빠(엄마)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뭔가’란 질문에 남녀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48%가 ‘끝없는 애정’을 최고로 꼽은 반면, 엄마의 48%는 ‘인내와 절제’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어쩌면 당신의 아내가 몰래 베갯잇을 적셨던 눈물을 남편들은 사랑이라 착각하고 산 건 아닐는지. 진짜 빌런은 엄마가 아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감에서는 미르재단과 관련한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 회의록 공방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문예위가 국회에 제출한 회의록 삭제 의혹을 제기했다. 도 의원 측이 이날 문예위로부터 제출받은 지난해 11월 6일 제173차 회의록은 도 의원이 별도로 확보한 45쪽짜리 원본에서 14쪽이 누락돼 있었다. 삭제된 내용 중에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미르재단 설립을 위한 모금 과정과 관련해 “전경련이 대기업 발목을 비틀어 450억∼460억 원을 내도록 하고 있다”는 부분도 들어 있다. 도 의원은 이를 근거로 “문예위원 중 포스코 사외이사를 겸임하는 분(박 회장)이 ‘포스코에서 미르재단에 30억 원을 낸다고 했는데 이사회에서 추인만 하는 것이라고 해 부결 못하고 왔다’는 등의 내용을 뺐다”며 은폐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도 의원은 회의록 원문을 어떻게 입수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박명진 문예위원장은 “관례적으로 회의록은 속기 초벌본이 아니라 정리본으로 보존한다”며 “실무자들 얘기로는 여담이었고, 안건과 상관이 없어 삭제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CF 감독 출신인 차은택 씨가 본부장을 맡았던 문화창조융합센터를 집중 거론했다. 더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문화창조융합센터의 예산을 지원한 송성각 콘텐츠진흥원장에 대해 “원장 공모 당시 1차 평가에서 2등, 2차 평가에서 3등을 했는데도 원장으로 선정된 것부터 문체부의 특혜 의혹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유은혜 의원은 “차 씨가 2015년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 전시총괄 감독을 맡은 후 전시대행사인 시공테크는 5억 원짜리 영상 제작 용역 중 하나를 머큐리포스트에 맡겼다”며 “머큐리포스트는 송 원장이 대표로 있었던 업체”라고 했다. 송 원장은 “차 씨와 한때 아주 친했다”면서도 콘텐츠진흥원장 취임 후 유착 의혹은 부인했다. 한편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은 차 씨 후임으로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임명된 뒤 한 달 만에 사퇴한 이유에 대해 “단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결재권이 없는 구조적인 문제로 사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kimje@donga.com·이지훈·한상준 기자}
10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 대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는 지난해 복사판을 보는 듯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산주의자”라고 말했던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사진)을 향한 야권의 성토가 거셌다. 특히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이 “문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3000만 원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자, 고 이사장이 6일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서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 더민주당이 판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한 게 도화선이 됐다. 박홍근 더민주당 의원 등은 “이런 황당한 발언이 건전한 상식 아래 나왔다고 보기 힘들다”며 “일국의 대통령 후보였던 문 전 대표를 여전히 공산주의자라 확신하는 고 이사장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보수의 가치가 발전하길 원하는 이들도 고 이사장의 수위 조절이 안 된 발언에 부담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 이사장은 ‘문 전 대표를 지지한 국민은 공산주의자를 지지한 것이냐’는 질문에 “아마 국민들이 몰랐을 테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도 지지했다면 문제가 있다”며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사회가 주목하는 사건을 편향적으로 판결할 줄 몰랐다”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쌍방향(interactive) 소통’이 ‘하태핫태’(열광적이란 뜻의 신조어)하다. 21세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당연한 일일지도. 시청자 혹은 누리꾼의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는다. 지난달 MBC 추석 특집 ‘상상극장 우.설.리’는 아예 댓글 따라 드라마를 진행하는 방식까지 선보였다. 세 지상파 방송사 모두 쌍방향 소통 예능을 방영 중이다. 지난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을 시작으로 올해 5월부터 시작한 KBS2 ‘어서옵SHOW’, 7월 파일럿으로 처음 선을 보인 SBS ‘꽃놀이패’까지. 지난달 ‘꽃놀이패’가 론칭에 성공하며 드디어 삼국지 구도가 완성됐다. 서로 활을 쏘아대진 않겠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는 모양새다.○ 레알 소통 or 쌍방향 코스프레 셋 다 쌍방향 소통을 주 종목으로 내세웠지만 ‘요리법’은 다르다. ‘원조국밥’ 격인 마리텔은 기존 인터넷 방송 형식 그대로다. 출연자가 채팅창을 통해 시청자와 소통하는데 참가 수에 따라 순위를 겨룬다. 어서옵SHOW는 홈쇼핑 스타일을 빌려왔다. 다양한 출연진을 모셔 실시간으로 시청자에게 재능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꽃놀이패는 야외 버라이어티에 쌍방향 소통을 가미한 형태다. 여행을 떠난 출연진이 누리꾼 선택에 따라 ‘꽃길’(호화여행)과 ‘흙길’(생고생)로 간다는 설정이다. 쌍방향 소통이란 기존 취지만 보자면 후발 주자들은 마리텔을 따라올 수 없다. 쌍방향성 자체가 프로그램의 근간이다. 아무리 흥미로운 주제를 준비한 출연자도 소통에 실패하면 순위가 곤두박질친다. 다만 누리꾼 반응에 절대적 영향을 받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심심찮게 나온다. 반면 다른 두 예능은 ‘왜 굳이 이런 포맷을 하는 거지’란 의문이 든다. 특히 어서옵SHOW는 딱히 누리꾼 반응이 영향을 끼칠 일도 없다. 댓글도 효과음이나 자막과 별 차이가 없다. 꽃놀이패는 꽃길, 흙길을 결정한다는 측면에선 좀 더 시청자 개입이 두드러지긴 한다. 하지만 아직은 ‘1박 2일’의 복불복 게임 수준인 데다 그마저도 야무지게 풀어내질 못한다. 한 예능 PD는 “현재로선 쌍방향 소통의 역할이 프로그램 주목도를 높이는 ‘불쏘시개’에 그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본질은 재밌어야 불쏘시개면 어떤가. 활활 타오르기만 한다면야. 근데 그게 쉽지 않다. 최근 방송 시청률을 보면 마리텔이 5.4%(TNMS 기준) 정도고, 어서옵SHOW와 꽃놀이패는 각각 3.4%, 3.3%로 잔잔하다. 어서옵SHOW는 방영 5개월이 지났는데 지금도 산만하다. 16회에 출연했던 박명수 말마따나 뭔가 중심이 잡히질 않았다. 이서진 김종국 노홍철 등 베테랑이 호스트인데, 이제 갓 데뷔한 김세정이 진행을 이끈다. 게스트의 재능 기부가 대체로 뻔하게 흘러가는 것도 아쉽다. 확실히 웃겨주든가 해야 하는데 전문적이질 않고, 어디선가 본 듯하다. 심지어 18회에 등장한 최민수의 가죽공예는 신선한 소재인데도 신변잡기 토크에 치중하다 배가 떠내려간다. 꽃놀이패는 이음매가 느슨하다. 이 예능은 출연진의 ‘합(合)’이 의외로 좋다. 유병재 조세호는 별것 아닌 걸로도 웃길 줄 안다. 서장훈 안정환이란 ‘아재 스포츠맨’ 조합도 상당히 재미있다. 그런데 이걸 편집과 자막이 못 살린다. 추성훈이 게스트로 나온 4회부터 다소 나아졌으나 ‘다큐’ 같은 속도감은 분명 개선할 대목. 마리텔의 적은 마리텔이다. 1년 이상 방영되며 시청자들은 애정만큼 익숙함도 커졌다. 물론 편집도 근사하고, 최근 우주소녀 성소의 사례처럼 폭발력도 여전하다. 하지만 백종원 김영만 같은 대박 스타가 오래 부재하면 ‘예전만 못하다’는 인상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달 초, 동아일보가 3회 시리즈 를 연재한 뒤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정년퇴직한 60대라고 밝힌 어르신은 “요즘 가요시장을 알게 돼 반갑다”면서도 약간의 푸념을 털어놓았다. 노래도 용어도 너무 생경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룹 이름이야 그러려니 합니다. 근데 웬 외래어가 그리 많소. 인터넷도 찾아봤는데, 몇몇은 도저히 모르겠습디다. 손자 놈은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만 주네요.” ‘나쁜 손자 놈’(글에 적힌 호칭이다). 그리고 더 나쁜 기자 놈. 워낙 요즘 한국 가요가 ‘케이팝(K-pop)’이라 불리며 국제적인지라. 다시 들춰봐도 확실히 영어식 표현이 많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그 대신 해외 팬들은 좀 편안하지 않을까. 근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최근 미국 인터넷 매체 ‘데일리닷’은 ‘케이팝 A-Z: 초보자 용어사전’이란 기사를 게재했다. 우린 쉽게 쓴 말도 그들 눈에 희한한 모양. 그중 몇 가지만 보자. ①컴백(comeback)=망했거나 은퇴했다가 나타난다는 의미의 복귀나 재기가 아니다. 케이팝에선 ‘새 노래를 발표하며 공식 활동에 나서는 것’을 컴백이라 부른다. 한 가수가 수십 번씩 복귀하는 셈이다. 쉰 것도 아니다. 발표 몇 달 전부터 뮤직비디오 촬영, 군무 연습, 사진 촬영과 배포 등으로 정신없다. 주야장천 일하는데 ‘돌아왔다’고 한다는 것이다. ②눈웃음(eye smile)=당장 유튜브에 ‘eye smile’만 쳐봐도 이게 왜 케이팝 문화인지 안다. 한국 걸그룹의 눈웃음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데일리닷은 “눈웃음이란 아이돌이 기쁨을 표현하며 눈이 초승달(crescent) 형태로 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역시 영어엔 없는 표현이다. ③네티즌(netizen)=이것도 외국인은 낯설다. “정확한 뜻은 인터넷 시민”이란 설명까지 붙였다. 그들에게 한류 ‘네티즌’은 부정적 뉘앙스가 강한가 보다. “아이돌에 대한 비난으로 악명 높은데 때론 악독(toxic)하기까지 하다. 외모와 몸무게, 성형수술, 데이트나 스캔들까지 모든 걸 문제 삼는다.” ④여장(X-dressing)=데일리닷은 “보이그룹이라면 꼭 한 번씩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콘서트나 TV쇼에서 소녀 차림으로 유명 걸그룹 노래를 따라하는 무대를 선보인다. 한류에 빠지고 싶거든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단다. 한국에선 이를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를 둘러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거론하지 않는다며. 한류는 참 멋진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해도 쉽지 않던 한국 알리기가 아이돌 노래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퍼진다. 그런데 한류의 확산은 외국인도 우리를 더 꼼꼼히 들여다본다는 뜻일 터. 이젠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데일리닷은 케이팝의 ‘서열’에 대한 해설도 곁들였다. “한국 아이돌 그룹엔 꼭 ‘리더’가 존재한다. 주로 나이가 많거나 연습생 생활을 오래한 멤버가 맡는다. 리더는 그룹을 통솔하며 대변자 역할도 한다. ‘막내’도 있다. 노래 중간에 팬들은 멤버 이름을 외치는데, 주로 나이순이다. 아이돌은 이르면 12세부터 시작하는 연습생 시절부터 엄격한 예절교육까지 받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유, 이젠 연예인이라 부르는 것도 너무 어색하네요. 방송 안 한 지도 오래됐고, 10년째 목사로 활동했으니…. 이런 인터뷰도 쑥스럽습니다, 허허.”‘밥풀때기’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김정식(57). “이젠 알아보는 이도 별로 없다”는 말마따나 젊은 세대에겐 생경한 이름이다. 허나 중장년층이라면 그가 출연했던 ‘도시의 천사들’ ‘동작 그만’ 개그 코너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1981년 KBS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그는 임하룡과 콤비로 1990년대까지 콩트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세월 저편으로 잊혀져 갔던 그가 최근 또 한 번 주목받는 일이 생겼다. 지난달 패션쇼핑몰 ‘엔터식스’에서 주최했던 ‘제1회 재치 있는 불효(不孝) 사연 공모전’ 수상자에 포함된 것. 치매에 걸려 고생하다 2010년 작고한 모친의 사연을 담은 글 ‘어머님의 절친, 뚫어 뻥 여사’가 금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이, 그는 목회에 전념해 현재 경기 파주시에 있는 ‘예온교회’ 담임목사로 변해 있었다. 최근 전화로 그를 인터뷰했다. ―이젠 정말 ‘목사님’이란 호칭이 더 어울립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하하. 누가 ‘김 목사’ 해야 돌아보지, 개그맨 그러면 긴가민가해요. 2007년 목사가 됐으니 시간 빠르네요. 장애인 사역을 한 지 20년 가까이 됐고요. 일부러 방송도 인터뷰를 자제했는데, 괜히 공모전에 응모했다가 더 민망해졌네요.” ―굳이 대외활동을 피한 이유가 있습니까. “선입견을 벗고 싶었습니다. 전 정말 장애인을 사랑하고, 목회 일이 행복해서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직업을 가졌던 탓에 색안경을 쓰고 보는 분도 있어요. 물론 제가 감당할 몫이지만 ‘과거를 지우는 작업’이 녹록지 않습디다. 전문가가 아니란 지적에 지난해 서울기독교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도 취득했어요.”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냥 어렸을 때부터 정이 갔어요. 초등학교 3학년 짝이 소아마비였는데 참 친했습니다. 코미디언 때도 아무리 바빠도 장애인 팬은 그냥 못 지나쳤어요. 장애인을 위한 교회인 예온교회 담임목사가 된 것도 그냥 그들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피붙이였던 것처럼…. 실은 제가 최근 사재를 털어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교육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공모 글을 보니 어머님이 치매로 고생했다는데요. “네, 병세가 심하셨죠. 빗자루랑 ‘뚫어 뻥’을 친구라며 이불 깔고 눕혀 놓으실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엔 속상해서 눈물로 애원한 적도 많았습니다. 근데 한번은 큰 결심하고 빗자루한테 ‘아이고, 이모님 오셨어요’ 하고 절을 했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엄청 기뻐하며 그날 밤 잘 주무시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기왕 완치가 불가능하다면 맘이라도 편하게 해드리자. 그렇게 생활하니 웃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나중에 제 품에서 정말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떠나셨어요.” ―효자셨네요. “에휴, 아닙니다. 막내가 연예인 한다고 맘고생 많이 시켜 드렸어요. 그냥…. 말년에 치매건 아니건 어머님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 평생 홀로 자식들 수발하셨는데 그 정도도 못하나 싶어서요. 그렇게 맞춰 드리면 어머니와 뭔가 통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한테 마음을 여시는 느낌이랄까. 제가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맘도 그와 비슷한 건가요. “장애인 부모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소원이 똑같습니다. ‘우리가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협회도 그런 의미에서 만든 겁니다. 장애인 가족이 함께 생활하며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예요. 이런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도 기뻐하시겠죠?”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좀비, 너 어디서 왔니?” 올해 약 115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부산행’은 알려진 대로 좀비 영화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로 변한 시민들이 떼거리로 달려드는 장면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원래 역사 속 좀비는 지금 대중문화에서 비치는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어원적으로 아프리카 말인 ‘은잠비(Nzambi·신)’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좀비는 아이티를 비롯한 서인도제도에서 성행하는 민간신앙인 부두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위키피디아 등에 따르면 좀비는 부두교 사제가 마술로 인간에게서 영혼을 뽑아낸 존재다. 지성과 인성을 빼앗긴 좀비는 사제의 명령에 복종하는데, 대체로 고통스러운 노동에 동원된다. 초기 좀비는 ‘자아를 잃고 끊임없이 일을 하는 노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랬던 좀비가 현재의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컸다. ‘호러 영화의 거장’인 조지 로메로 감독(미국)의 1968년 첫 상업영화 데뷔작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그 출발이다. 로메로 감독은 다시 살아난 시체에게 인간을 죽이고 먹어치우는 흡혈귀나 악마 같은 면을 부여해 공포를 극대화했다. 두 번째 작품인 ‘시체들의 새벽’(1979년)에선 본격적으로 좀비란 용어를 유행시켰다. 게다가 이후 좀비는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1982년) 뮤직비디오에서 근사한 댄스(?)까지 선보이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드높였다. 이후 좀비는 수많은 영화에 재등장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왔다. 사실 ‘부산행’처럼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능력’은 21세기 들어 새로이 장착됐다. 기존 영화 속 좀비는 썩은 몸을 지닌 시체이다 보니 다소 행동이 느릿느릿했다. 하지만 영국의 대니 보일 감독은 ‘28일 후’(2002년)에서 인간이 분노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가 된다는 설정 아래 강력한 신체능력을 가진 존재로 그렸다. 이후 2007년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선 사랑과 의리 같은 감정을 지닌 좀비가 등장했고 2013년 ‘웜바디스’에선 멋들어진 외모를 지니고 인간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좀비(니컬러스 홀트)까지 나왔다. 한국에서도 ‘부산행’이 첫 좀비 영화는 아니다. 일부 전문가는 무덤이 갈라지며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1967년)를 한국 좀비의 원형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서양 좀비의 특성을 잘 살린 1980년 강범구 감독의 ‘괴시’가 한국 좀비 영화의 출발로 인정받는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존재의 출현은 알 수 없는 힘에 위협받는 집단구성원의 심리적 불안정을 파고들었다”며 “한국 관객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좀비 영화가 이런 흥행 성적을 거둔 것도 우리 사회의 현실이 잘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산 넘어 산이다. 남성들 입장에서 그렇다. 젊은 여성들은 물론 중년층까지 상반기에는 ‘유 대위’(KBS2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란 허리케인에 ‘중병’을 앓았다. 좀 낫나 했더니 이종석에 김우빈이 몰아쳤다. 그런데 또 휘몰아쳤다. 박보검이란 태풍이. 도대체 ‘구르미 그린 달빛’(KBS2)의 왕세자 이영(박보검)의 매력은 뭘까. 물론 작품의 흥행이 그만의 덕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이 배우는 이리도 오글거리는 드라마를 찾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목소리, 얼굴 전문가 등의 분석을 통해 세자 저하의 번쩍이는 곤룡포를 스르륵 벗겨 봤다. 》①옥음(玉音·왕의 목소리)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교수에 따르면 박보검의 목소리는 성대진동 주파수가 평균 108메가헤르츠(MHz). 외모와 달리 중저음이다. 그런데 소리발성기관인 코에서 나는 비음이 많이 반영돼 부드럽고 매끄럽다. 배 교수는 “혀를 감아 치며 발음하는 말투가 있어 상대방에게 끌림(애착)을 느끼게 만든다”고 성문을 분석했다. 충북도립대 생체신호분석연구실의 조동욱 교수는 음폭에 주목했다. 편차가 120MHz로 적어 신뢰감을 준다. 음성분석요소도 높은 점수를 차지했다. 성대 떨림(지터 1.88%)과 힘을 싣는 방식(1.10 데시벨)이 규칙적이라 상대방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좋다. 조 교수는 “음성이 조화롭게 들리는지 살피는 배음비도 매우 훌륭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②용안(龍顔·왕의 얼굴)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세련되게 조화를 이룬 얼굴.”(조용진 한국얼굴연구소장) 박보검의 얼굴은 딱 ‘무슨 형’이라 말하기 힘들다. 두상이 각지고 턱이 뾰족해 남방계에 가깝지만, 코가 길고 입술이 얇은 북방계 특징도 지녔다. 조 소장은 “어떤 국적이라 해도 어울리는 ‘범동양적’ 스타일의 국제적 외모”라고 평가했다. 권위적이지 않고 반듯한 인상은 요즘 가치에도 잘 부합한다. 코가 긴 편이지만 콧등이 낮고 코끝이 둥글어 친밀한 기운을 머금었다. 윗입술이 얇아 지적이면서도, 아랫입술이 두꺼워 차가워 보이지 않는다. 가는 쌍꺼풀과 얇은 피부는 여성스럽지만, 진한 눈썹의 남성성도 갖췄다. 조 소장은 “뚜렷한 생김새가 아닌데도 보는 이의 뇌를 절묘하게 자극하는 미남”이라고 말했다.③안정(眼精·왕의 눈빛) “여린 듯한데도 사연 있어 보이는 눈빛.”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말이다. 소년처럼 웃지만 왠지 슬픔이 담겨 있다. 연약하지만 내적인 강단을 지녔다. 이 때문에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해맑지만 꿋꿋한 석현 역이 무척 잘 맞았다. 윤 교수는 “캐릭터 ‘선구안’이 좋고 소화력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도 박보검의 강점으로 “속내에 감춘 비밀을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보통 사연이 많으면 뭔가 감추는 인상을 주기 쉽다. 허나 그는 상대가 얘기를 건네고픈 기분을 전한다. 강 평론가는 “왁자지껄한 친근함이 아닌 조용히 밀담을 나누기 좋은 느낌”이라며 “tvN ‘응답하라 1988’의 택이 역시 ‘저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할까’ 시청자가 먼저 다가서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④성덕(聖德·왕의 덕) 박보검은 인성(人性)이 좋다는 평판이 자자하다. 명지대 교수인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은 ‘제자’ 박보검을 “예의가 바르고 스타라고 특별 대접을 바라지도 않는다”며 “스케줄 없을 땐 출석도 열심이다”고 말했다. 올해 3학년 첫 수업 때 누가 강단에 커피를 올려놔 기분 좋게 마셨는데, 알고 보니 그 제자는 박보검이었다. ‘구르미…’의 강병택 CP는 “겸손하지만 상당한 악바리”라고 했다. 2014년 KBS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의 윤후 역으로 출연했을 때 주연급이 아닌데도 오케스트라 지휘 장면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왔다는 것. 강 CP는 “지휘 경험이 있는 줄 착각했을 정도였다”며 “그때부터 박보검은 성공할 재목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떠올렸다.⑤즉위(卽位·왕위에 오름) 박보검은 김수현처럼 왕좌에 오를 수 있을까.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윤 교수) “모든 세대가 좋아할 이미지”(강 평론가) “시기가 문제일 뿐 충분히 갖춘 배우”(강 CP)라는 칭찬이 이어졌다. 하지만 스승인 박 예술감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세밀한 호흡이 다소 달리고 발성은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비범한 캐릭터를 만났을 때 잘 소화할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배우로서 호흡과 발성은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 하고요. 그 대신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매우 훌륭합니다. 시청자들도 그런 부분을 좋게 봐주는 게 아닐까요.”(박 예술감독) 정양환 ray@donga.com·이지훈 기자}
《 “외계인이 어디 있어?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누리꾼 p○○○) 이런 식빵. 에이전트41(김배중)은 눈이 튀어나오려다 가까스로 참았다. 그렇게 외계 요원이라 떠들어댔는데도 믿질 않다니. 게다가 우리 행성에선 진짜 개돼지도 웃는단 말이다! 강철 같은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에 ‘현피 뜨자(인터넷에서 다투다 실제 만나 싸우는 것)’를 두드리는 순간…. 배바지를 추어올리던 에이전트2(정양환)가 쓰윽 백 허그, 아니 백 초크(뒤에서 목을 조르는 주짓수 기술)를 건다. “말실수로 골로 가는 연예인들 못 봤어? 그간 쌓은 업적 다 무너져.”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든 41. “근데… 우린 유명하지도, 잃을 공적도 없잖아요.” 하긴. 그렇담 간만에 남 걱정 좀 하자. 셀럽(유명인·celebrity의 줄임말)들이 입(혹은 손가락) 잘못 놀려 망신살 뻗치는 세상. 천재지변은 못 막아도 인재는 줄여야 하지 않겠나. 말로 먹고사는 스피치 전문가와 연예인 입 관리에 바쁜 기획사 대표, 허구한 날 말실수 솎아내느라 눈에 불을 켠 TV 예능PD 등을 불러 모았다.》 ○ 한번 삐끗하면 평생 꼬리표 될 수도 전문가에 따르면 말실수가 나오는 상황은 크게 두 가지. 첫째, ‘실수’다. 긴장하거나 평정심을 잃고 말이 잘못 나왔을 때다. 둘째, 배려심 결여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가 부족해 상처를 입히는 경우다. ‘떨지 말고 말 잘하는 법’의 저자인 송원섭 다이룸센터 원장은 “대체로 전자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오작동했을 가능성이 높고, 후자는 자기중심적 상황 판단으로 적절한 대처를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입길에 오르내리는 2005년 가수 김상혁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가 전자의 대표적 사례다. 모 배우의 매니저 A 씨는 “아마 ‘조금밖에 안 마셔 음주운전 수치를 넘을지 몰랐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당황해서 일단 사과가 먼저라는 걸 놓친 게 컸다”고 말했다. 심각한 말실수는 세월이 흘러도 ‘주홍글씨’로 남는다. 최근 배우 하연수나 박신혜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논란은 후자에 해당한다. 똑똑한 ‘개념 연예인’으로 통했던 두 사람은 누리꾼들의 지적에 대해 정색하며 다소 까칠한 말투로 응했다가 거센 후폭풍을 맞았다. 모 기획사 대표 B 씨는 “두 사람의 반응은 20대 여성이 울컥했을 때 충분히 표출할 법한 수위”라며 “허나 본인이 셀럽이고 결국 여러 입과 매체를 거치며 확대 재생산될 여지가 크다는 판단을 못한 건 경험 미숙”이라고 지적했다.○ 참을 인(忍)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 그렇다고 셀럽이 ‘묵언(默言)수행’을 할 순 없는 일. 전문가들이 꼽는 주의사항 몇 가지를 눈여겨보자. ▽열심히 공부하세=웬 씻나락(볍씨) 까먹는 소리냐고? 아니다. 안중근 의사 보고 ‘긴도깡’이라 했다간 만시지탄이다. 최소한 회피 기술을 익혀라. 어려우면 출연 말고, 모르면 끼지 말자. 금기어도 익혀 두길. 최근 몇몇 아이돌은 적절치 못한 신조어를 무심코 썼다 혼쭐이 났다. 지난해 ‘일베용어사전’을 공개했던 이두희 프로그래머(멋쟁이사자처럼 대표)는 “자신이 쓰는 말이 최소한 어떤 배경을 지녔는지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일단 데뷔 전 SNS는 다 지워라. 당시 말은 셀럽에게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공개 계정도 위험하다. 지드래곤을 보라. 혹시 모르니 비공개 계정도 ‘고운 말’만 쓰는 게 좋겠다. 가족 친지도 교육해라. 누가 개고기를 먹든 말든 신경 꺼라. 셀럽에겐 연좌제가 적용된다. ▽김흥국이 돼라=말실수 안 할 자신이 없다고? 그럼 김흥국을 본받아 끊임없이 자잘한 말실수를 쏟아내라. ‘원래 그런 인간’이 돼야 한다. 다만 무지하단 평은 감수할 것. 배우는 일정 배역은 포기해야 할지도. 예능PD C 씨는 “도박에 가깝지만 이게 경지에 오르면, 역사나 정치를 건드리지 않는 한 편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납작 엎드려라=그래도 실수는 벌어진다. 쏟아진 물이라면 선(先)사과 후(後)해명이다. 사과는 빠르고 구체적일수록 효과가 크다. 한동안 ‘손편지’가 유행했는데 요샌 인기 없다. B 씨는 “상황이 심각하다면 적잖은 기부나 사회봉사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송 원장은 “셀럽은 상대의 입장과 제3자가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다음 편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김배중 기자}
#.1존중해 주세요 제발.#.2I can‘t handle people anymore.나는 더 이상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다.지드래곤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한장의 사진으로 심경을 밝혔는데요.#.3요즘 지드래곤과 일본 배우 고마츠 나나의 열애설을 둘러싸고’사생활 침해‘ 논란이 거세지고 있죠.#.4지난 18일 인터넷과 SNS에 지드래곤과 고마츠 나나가 함께 찍은 사진여러 장이 올라왔는데이 사진들은 팬이 지드래곤의 비공개 SNS 계정을 해킹해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5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지드래곤은 공식 계정 이외에 가까운 지인들과 자신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비공개 계정을 만들어 활동했는데 이 계정이 한 팬에 의해 누출된 것이죠.현재 이 계정은 삭제됐습니다#.6(댓글 사진)누리꾼들은 한일 톱스타의 열애설에 놀라워하면서도사생활 침해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을 했는데요.#.7연예인들의 사생활 침해 문제는 심각합니다.얼마 전 크리스탈과 카이가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CCTV 사진이 유포됐었죠.#.8이후 자신이 유포자라 주장하는 한 네티즌이SNS에 사과문을 공개하며 사건은 일단락 됐습니다.#.9빅뱅의 또 다른 멤버인 탑도 사생활 침해 피해자 입니다.지난 16일 탑은 자신의 SNS에 집 앞에 찾아오는 중국 사생팬에게저격글을 날렸죠.#.10이 외에도 많은 연예인들이 ’사생활 침해‘에 홍역을 앓았는데요.(정경호 태연 SNS 해킹의 피해 사진)#.11팬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먹고 사는 스타들.팬들은 스타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는지.궁금한것이 당연합니다.그러나 그들도 스타이기전에 ’사람‘입니다.그들의 사생활도 존중받아야 하는게 마땅합니다. 원본/ 정양환 기자기획·제작/ 김재형 기자·김미리 인턴}
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본명 권지용·28)과 일본 배우 고마쓰 나나(20)의 열애설을 둘러싸고 사생활 침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18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지드래곤과 고마쓰가 함께 찍은 것으로 짐작되는 사진 여러 장이 유출돼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지드래곤의 비공개 SNS 계정이 해킹돼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지며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현재 지드래곤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아티스트의 사생활은 확인해 줄 수 없다. 고발 여부도 아직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 고마쓰는 기존에 운영하던 블로그를 폐쇄한 상태이며, 지드래곤은 다른 SNS 계정에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다(I can‘t handle people anymore)’는 말로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혔다. 누리꾼들은 한일 톱스타의 열애설에 놀라워하면서도 사생활 침해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팬이라고 불법까지 저지르는 짓은 용서받아선 안 된다’ ‘연예인은 연애도 SNS도 맘대로 못 하냐’ ‘한류에 찬물 끼얹는 국제적 망신’ 등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고마쓰는 2014년 국내에서도 개봉한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영화 ‘갈증’에 출연한 일본의 유명 배우이자 모델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