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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잠(SHAZAM)!” 경쾌한 구호를 외치면 평범한 소년이 슈퍼히어로로 변신하는 DC코믹스의 ‘샤잠!’(2019년)이 속편 ‘샤잠! 신들의 분노(샤잠2)’로 돌아왔다. 새로운 DC유니버스(DCU)를 구축할 작품 10개를 내보겠다고 밝힌바 있는 DC스튜디오가 올해 첫 선보이는 첫 영화다. 그동안 부진했던 DC스튜디오가 절치부심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의 세계관)를 누르고 관람객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화는 북미 개봉(17일)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15일 개봉한 ‘샤잠2’는 고등학생인 빌리(애셔 엔젤)가 신의 힘을 나눠가진 위탁 가정 형제자매들과 함께 아틀라스의 세 딸에 맞서 인간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전편이 부모에게 버림받고 위탁가정을 전전하던 빌리가 우연히 만난 마법사의 선택을 통해 솔로몬의 지혜, 헤라클레스의 힘, 제우스의 권능 등 신의 능력을 갖게 된 과정을 보여줬다면 속편에선 ‘샤잠’ 패밀리의 본격적인 활약상을 그린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위기 상황 때 마다 성인 슈퍼히어로로 변신한다는 설정 자체는 전편에 이어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빌리는 프레디(잭 질런 그레이저) 메리(그레이스 펄튼) 달라(페이스 허만) 유진(이안 첸) 페드로(조반 아만드)와 함께 한 팀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 이들은 슈퍼 히어로이면서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고, 위탁가정을 떠나야 하는 나이가 다가오는 것을 걱정한다. 슈퍼 히어로물이자 일종의 청소년 성장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설정으로 전편은 “만화를 잘 고증했다”는 호평과 “어린이용 영화 같다”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속편의 스케일은 전편보다 확실히 커졌다. 영화에서 대거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 속 괴물들은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헤스페리데스 정원을 지키는 용 ‘라돈’은 그 규모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빛을 표현한 컴퓨터그래픽(CG)에 압도된다. 미국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신과 특유의 유머 코드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원더우먼(갈 가도트)의 깜짝 등장 역시 관람 포인트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DCU의 다음 작품을 암시하는 쿠키 영상도 기다리고 있다.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언젠가 윤여정 선생님을 ‘스타워즈’ 은하계에 초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한국인 이민자의 가족애를 담아낸 영화 ‘미나리’(2021년)로 미국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45·사진) 감독이 스타워즈 스핀오프 시리즈 ‘만달로리안’ 시즌3 연출에 참여했다. 정 감독은 국내 취재진과 17일 가진 화상간담회에서 영화 ‘미나리’로 함께 작업한 배우 윤여정을 언급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 감독은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되는 ‘만달로리안’ 시즌3의 총 8개 에피소드 중 세 번째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시즌3는 현상금 사냥꾼 딘 자린(페드로 파스칼)이 포스를 다루는 능력을 가진 그로구를 만나 만달로어 행성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스타워즈 초기작부터 주역이었던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도 이들의 여정에 동참한다. 국내에서 8일 공개된 만달로리안 시즌3는 일주일 간격으로 한 에피소드씩 차례로 공개된다. 정 감독이 연출한 세 번째 에피소드는 22일 공개된다. 그는 “미나리를 편집하던 2019년 저녁 때 만달로리안을 보면서 굉장히 즐겁고 좋았다”며 “어릴 때 스타워즈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고, (미국) 시골에 살면서 내가 언젠가 은하계로 갈 루크 스카이워커라고 상상했다”며 웃었다. 만달로리안은 첫 번째 스타워즈 실사 드라마로 다양한 시각특수효과를 활용한 공상과학(SF) 영화라 ‘미나리’와는 대척점에 있다. 정 감독은 “(제작사 측이) ‘미나리’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극대화한 연출 방식을 좋게 봐준 것 같다”며 “세 번째 에피소드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스스로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시각특수효과가 많이 들어간 작품은 처음이라 배울 게 많아서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정 감독은 윤여정에 대해 언급하며 존경을 표했다. 그는 “윤여정 선생님은 최고의 배우”라며 “다시 한 번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인터뷰 기사를 보고 윤 선생님이 제가 선생님을 언제나 100%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다”며 웃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제 이름이 연진이인 줄 알면 어떡하죠?(웃음) 그래도 ‘연진아!’를 좀 더 오래 외쳐주시면 좋겠어요.” 최근 완결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송혜교(문동은 역)만큼 화제로 떠오른 이가 동은을 괴롭히는 학교 폭력 주동자 박연진 역의 임지연 씨(33)다. 극 중 동은이 외치는 “멋지다 연진아!”는 하나의 ‘밈(meme)’이 됐다. 말끝마다 ‘연진아’를 붙이는 댓글놀이가 유행하기도 했다. 1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임 씨는 “엄마까지도 ‘연진아 찌개 해놨어. 언제 와?’라고 메시지를 보낸다”며 웃었다. 극 중 연진은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절대 악’이자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는 캐릭터를 임 씨는 설득력 있게 소화해 냈다. 임 씨는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 같은 대사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대본을) 보면서 입이 떡 벌어졌다”고 했다. “노력 없이 모든 걸 가졌기 때문일까요. 그냥 모르는 거죠. 자신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그게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 건지.” 이번이 첫 악역 도전이었던 임 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짜 ‘나쁜 ×’이 되어보려고 했다”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연진이를 미워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캐릭터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은숙 작가님이 대본 리딩할 때 저를 두고 ‘천사의 얼굴에 악마의 심장을 가진 사람 같다’고 했다. 제가 순간 그런 모습을 보였나 보다”라며 웃었다. ‘더 글로리’는 16일 현재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 순위가 42개국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임 씨는 영화 ‘인간중독’(2014년)을 통해 데뷔했지만 노출 장면에 주로 관심이 집중됐고, 이후 출연한 일부 작품에선 연기력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더 글로리’의 연진 역을 통해 논란을 일거에 불식했다는 평가다. 임 씨는 “대본을 본 뒤 ‘이걸 씹어먹겠다’는 생각에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촬영 전이 더 바빴다”고 했다. 교도소에 가게 된 감방 신참 연진이 조롱당하는 마지막 장면은 비록 연기지만 특히 힘들었다고 한다. 임 씨는 “연진의 말로는 평생을 감방 안에서 범죄자들에게 당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되돌려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12일(현지 시간)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축제 현장이었다. 아시아계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에올)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7관왕을 차지하며 축포를 쏘았다. 특히 ‘오스카의 꽃’이라 불리는 여우주연상은 말레이시아 출신 홍콩 배우 양쯔충(楊紫瓊)에게 돌아갔다. 95년의 아카데미 역사상 아시아계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공상과학(SF) 코미디 영화 ‘에에올’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온 이민자인 에블린(양쯔충)이 다중 우주의 존재를 알게 된 뒤 이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이날 시상식에 등장한 양쯔충은 케이트 블란쳇(‘타르’), 미셸 윌리엄스(‘파벨만스’)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오늘 밤 저와 같은 모습(동양인)으로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의 불빛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성들에게 “여러분의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61세에 처음 아카데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그는 상까지 거머쥐었다. 이날 이목을 끈 또 다른 수상자는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브렌던 프레이저였다. 그는 영화 ‘더 웨일’에서 272kg의 초고도 비만 환자로 죽음을 목전에 둔 아빠 역을 맡았다. 좁은 공간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하지만 눈빛으로 풍부한 감정을 전달하며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시상식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프레이저의 수상을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프레이저는 영화 ‘미이라’ 시리즈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며 몸이 망가졌다. 2018년에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장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밝혔다가 점점 배우로서 설 자리를 잃었다. 그가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과 이혼 등 개인사가 퍼지면서 ‘불쌍한 남자’의 아이콘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 그가 이번 작품으로 다시 일어선 것이다. 수상 무대에 선 프레이저는 감정이 북받친 듯 거친 숨을 내쉬면서 울먹였다. 그는 “30년 전 영화업계에 뛰어들었을 당시에는 (큰 인기를 얻었음에도)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지금 이렇게 인정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며 트로피를 연신 매만졌다. 남우조연상은 골든글로브에 이어 ‘에에올’의 키 호이 콴이 받았다. 베트남 전쟁 난민 출신의 그는 생활고 때문에 배우 생활을 중단했다가 이번 작품에서 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 역으로 재기했다. 그는 “(난민) 보트를 타고 긴 여정을 거쳐 이렇게 큰 무대까지 왔다. 이게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감격스러워했다. 여우조연상은 같은 작품에서 연기 변신을 한 제이미 리 커티스가 받았다. 독일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도 선방했다. 이 작품은 국제영화상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러시아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는 알렉세이 나발니의 활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발니’는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윌 스미스가 시상자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자신의 아내를 조롱하는 발언을 하자 무대로 난입해 뺨을 때려 논란이 된 지난해와 달리 올해 시상식에선 잔잔한 웃음과 감동을 주는 장면들이 연출됐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 나온 당나귀 제니가 무대에 등장해 환호를 받았다. 단편영화상을 받은 ‘언 아이리시 굿바이’ 제작진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주연 배우 제임스 마틴을 무대에 오르게 한 후, 이날 생일인 마틴을 위해 할리우드 감독, 배우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 니 인생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지옥이었잖아.”(연진 역·임지연) 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2(9∼16편)가 10일 공개되자마자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12일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더 글로리’는 전 세계 TV부문 3위에 올랐다. 한국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등 26개국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더 글로리’는 파트1이 5주 연속 넷플릭스 세계 톱10에 들며 해외에서도 학교 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등 열풍을 일으켰다. 파트2에서는 동은(송혜교)이 복수를 위해 18년 동안 짜 온 계획이 하나하나 시행되면서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참혹하게 추락한다. 하지만 가해자 중 누구 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은의 복수는 더욱 지독하고 처절해진다.(※이 기사에는 ‘더 글로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죄책감 없는 가해자들, 가속도 붙는 응징 파트2는 8편 전체가 복수를 향해 전력 질주한다. 온라인에는 “한번 틀면 멈출 수 없다. 밤을 꼴딱 새웠다”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김은숙 작가는 9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파트1이 무서울 정도로 반응이 좋아서 파트2 대본을 다시 봤다. 파트2 역시 내가 봐도 무섭도록 잘 썼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반성 없는 가해자들은 복수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경찰에 자수하면 용서하겠다는 동은의 마지막 제안에도 연진은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며 코웃음 친다. 이에 동은은 고교 때 고데기로 온몸에 상처를 입혔던 가해자들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데기’를 들이대며 뜨거운 복수를 펼친다. 연진은 동은의 약점을 찾아내 만만치 않은 반격을 하지만 기상캐스터로 대중의 시선을 즐기던 그의 악행은 결국 온라인에 낱낱이 공개된다. 연진과 불륜 관계인 재준(박성훈)은 끔찍이 아끼는 딸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얼굴과 몸매에 집착하며 상류층 입성을 꿈꾸던 혜정(차주영)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마약에 찌든 사라(김히어라)는 약에 취한 상태로 아버지 교회 신도들에게 발각된다. 연진의 남편 도영(정성일)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자 연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딸을 데리고 떠난다. 연진의 범죄를 덮어주던 엄마마저 자신이 궁지에 몰리자 등을 돌리며 연진은 철저히 혼자가 된다. 연진을 폐허에 혼자 남기겠다는 동은의 오랜 복수는 마침내 완성된다. 피해자들의 연대는 더욱 깊어졌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현남(염혜란)은 파트1에 이어 동은의 눈과 발이 돼 함께 복수를 펼친다. 살인범에게 아버지를 잃은 의사 여정(이도현)은 파트2에서 비중이 커져 동은의 복수를 향한 주요 길목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당신 편 들어주는 사람도 있어야지.” 동은이 세든 빌라의 주인 할머니(손숙)가 남보다 못한 생모를 따돌려준 이유를 묻는 동은에게 한 말이다.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함축하는 것 같다.● 피해자 서사에 공감, 실감 나는 연기에 몰입‘더 글로리’는 폭력과 복수라는 흔한 소재를 뻔하지 않게 다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통상 복수극은 손쉽게 권선징악을 실현하지만 ‘더 글로리’에서는 아주 힘들게 복수한다”며 “피해자의 이야기도 많이 담아 공감을 자아냈다”고 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김은숙 작가가 시대정신을 반영한 시나리오를 썼고, 송혜교와 악역을 실감나게 소화한 임지연을 포함해 여배우들의 활약이 특히 돋보였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공상과학(SF)계의 셰익스피어’라는 찬사를 얻었지만, 생전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으며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비운의 천재. 일평생 16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 ‘토탈 리콜’(1990년)의 원작자이지만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던 작가. 책은 불안과 고독의 우물에서 글을 길어 올린 필립 K. 딕(1928∼1982)의 생전 인터뷰 모음집이다. 인터뷰 내용을 따라 그의 생애를 들여다본다. 딕이 SF에 빠지기 시작한 건 열두 살 무렵이다. 과학잡지를 사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SF 잡지를 집어든 게 계기가 됐다. SF의 매력에 빠진 그는 “눈에 띄는 대로, 닥치는 대로 SF 작품을 읽었다”고 말한다. 그는 1952년 단편 ‘루그’를 통해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약 30년 동안 44편의 장편과 120여 편의 중단편을 발표했다. 다작을 한 이유에 대해 그는 “먹고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출판업계의 대우에 대해 “비인간적이고 수치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평가절하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글 쓰는 게 정말로 좋다. 내가 창조한 등장인물들을 사랑한다. 그들 모두가 나의 친구다. 그래서 책을 탈고하면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정도”라고 고백한다. 딕은 “내 소설의 주인공들은 본질적으로 반(反)영웅”이라며 “내가 강자가 아니라서 약자에게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체주의가 20세기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여겼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전체주의를 경계하는 것을 주요 작품 주제로 삼았다. 딕은 평생 5명의 여성과 결혼했지만 작가로서 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한 배우자는 없었다. 지독한 우울증을 겪으며 그는 신경자극제인 암페타민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약물에 취한 채 장편소설을 써내려갔다. 그는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 내게 위안을 주는 친구들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외로운 천재는 1968년 출간한 자신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년)로 개봉되기 3개월 전 눈을 감았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차세대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50·사진)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8일 개봉했다. ‘너의 이름은’(2016년) ‘날씨의 아이’(2019년)에 이어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3부작의 마지막 시리즈다. 영화는 재난을 부르는 문을 우연히 열게 된 여고생 스즈메가 대학생 소타와 함께 일본 전역에서 마구잡이로 열리는 문들을 닫아 나가는 이야기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빛과 색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감독 특유의 연출 기법이 돋보인다.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카이 감독은 재해 영화 작업을 계속해온 이유로 책임감을 꼽았다. 그는 “‘너의 이름은’이 크게 흥행했다. 그러고 나니 다음 작품을 봐주는 관객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그건 내게 힘인 동시에 책임”이라며 “젊은 세대에게 재해에 대한 기억을 남겨줄 수 있는 건 엔터테인먼트뿐”이라고 했다. 재난 3부작은 모두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덕분에 그는 ‘트리플 1000만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영화 곳곳의 소재는 동일본 대지진을 함축한 것들이다. 문을 주요 소재로 삼은 것에 대해 신카이 감독은 “문을 열면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문을 닫으면서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반복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라며 “재해는 그러한 일상을 단절시키기 때문에 문을 모티브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을 공간 이동 매개체로 활용한 한국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도 했다. 또 다른 소재는 다리 하나가 빠진 어린이용 의자다. 남자 주인공인 소타는 이 의자로 변한다. 그는 기우뚱거리면서도 재해를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리고, 내일을 살고 싶어 하는 캐릭터다. 신카이 감독은 “재해로 마음속에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일지라도 의자처럼 잘 달리고 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의자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영화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큰 비극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만 하면 관객이 너무나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 장소에 있기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귀여운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의자를 골랐다”고 했다. 영화는 불가항력으로 소중한 것을 잃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그럼에도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손 내미는 격려다. 스즈메는 지진해일(쓰나미)로 네 살 때 엄마를 잃고 난 후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소타를 만나면서 살고 싶어진다.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삶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영화는 국내 개봉 첫날 관객 14만3000여 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전작 ‘너의 이름은’은 한국에서 380만 명이 관람하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이어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2위를 지키고 있다. 신카이 감독은 “이번 영화는 일상이 단절됐을 때 사람이 어떻게 회복하고 다시 꿋꿋하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며 “한국 관객들도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토록 아름다운 위로와 격려가 있을까. 차세대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8일 개봉했다. ‘너의 이름은’(2016년) ‘날씨의 아이’(2019년)에 이어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3부작 마지막 시리즈다. 영화는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여고생 스즈메가 대학생 소타와 함께 일본 전역에서 마구잡이로 열리는 문들을 닫아 나가는 이야기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빛과 색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는 감독 특유의 연출기법이 돋보인다. 8일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카이 감독은 또 재해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해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너의 이름은’이 크게 흥행했고 그러고 나면 다음 작품을 봐주는 관객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다. 그건 힘인 동시에 책임”이라면서 “젊은 세대에게 그 기억(재해)을 남겨줄 수 있는 건 엔터테인먼트 뿐”이라고 했다. 그의 재난 3부작은 모두 일본에서 1000만 관객을 넘겨 ‘트리플 1000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영화 곳곳에 쓰인 소재는 동일본 대지진을 함축한 것들이다. ‘문’을 주요 소재로 삼은 것에 대해 신카이 감독은 “문을 열면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문을 닫으면서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반복하는 게 일상”이라며 “재해는 그러한 일상을 단절시키기 때문에 문을 모티브로 했다”고 설명했다. “(문을 공간 이동 매개로 쓴)한국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도 했다. 또 하나는 다리 하나가 빠진 어린이용 의자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인 소타는 의자로 모습이 변해버린다. 그는 기우뚱거리면서도 재해를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리고, 내일을 살고 싶어 한다. 신카이 감독은 “재해로 마음속에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이라도 의자처럼 잘 달리고 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의자를 택한 것에 대해서는 “영화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큰 비극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만 하면 관객의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 장소에 있기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귀여운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의자라는 소재를 골랐다”고 했다. 영화는 불가항력으로 소중한 것을 잃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그럼에도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손 내미는 격려다. 스즈메는 쓰나미로 4살에 엄마를 잃고 난 뒤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지만 소타를 만나면서 살고 싶어진다.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삶이라는 걸 깨닫는다. 영화는 개봉 첫날 관객 14만3000여 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신카이 감독은 “일상이 단절됐을 때 사람이 어떻게 회복하고 다시 꿋꿋하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며 “한국 관객들도 즐겁게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매일 오후 2시면 함께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절친’이었다. 어느 날 친구는 “이제 네가 지겹다”며 절교를 선언한다. 왜일까. 이유를 몰라 친구에게 말을 걸지만, 돌아온 답은 “자네가 싫다”일 뿐…. 재차 대화를 시도하지만, 친구는 “한 번만 더 말을 걸면 내 손가락을 잘라 보내겠다”고 통보한다. 이 둘의 관계, 끝은 어딜까. 15일 개봉하는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의 외딴섬 이니셰린에 사는 두 친구 파우릭(콜린 패럴)과 콜름(브렌던 글리슨)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12일(현지 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1923년 아일랜드 본섬에서는 내전이 한창이지만 이니셰린의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평온하다. 파우릭의 일과는 소를 몰고 마을에서 가장 친한 친구 콜름과 펍에서 맥주를 한잔 하는 것이 전부다. 어느 날 콜름이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 때부터 파우릭의 하루는 ‘대체 왜?’라는 의문에 갇혀 엉망진창이 된다. 콜름은 파우릭을 아끼지만, 그와 더 이상 의미 없는 농담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콜름은 파우릭이 계속 곁을 맴돌자 손가락을 잘라 그에게 던져버린다.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싸움은 계속된다. 절교하자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자신의 손가락을 자른 콜름. 그의 행동만 보면 이야기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아일랜드 내전이 벌어진 1923년이란 점에서 둘의 대립은 아일랜드 내전과 오버랩된다. 영화는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간들의 대립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아일랜드 내전은 영국의 지배를 인정하고 자치권을 얻자는 이들과 완전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이들이 충돌하며 벌어졌다.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지만 이들은 서로 지독히 미워하게 됐다. 서로 물어뜯다가 종국에는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만 남았다. 파우릭과 콜름의 끝나지 않는 싸움과 닮았다. 다소 멍청하지만 다정한 파우릭 역의 배우 콜린 패럴과 후세에 무언가 남기는 일을 중시하는 콜름 역의 브렌던 글리슨의 섬세한 연기는 몰입도를 높인다. 패럴은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유력 수상 후보로 꼽힌다. 영화 속 아일랜드의 절경도 관람 포인트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오후 2시면 맥주를 마시며 늘 같이 시간을 보내던 절친이 하루아침에 절교를 통보했다. “그냥 이제 네가 지겹다”는 말과 함께.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자꾸 말을 걸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자네가 싫다”는 것 뿐.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또 다가가자 “한번 만 더 말을 걸면 내 손가락을 잘라서 보내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받는다. 두 남자의 관계, 끝은 어딜까? 15일 개봉하는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의 외딴 섬 이니셰린에 사는 파우릭(콜린 파렐)과 콜름(브렌단 글리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는 12일(현지 시간)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밴시’는 아일랜드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어떤 이의 죽음을 미리 알고 슬피 우는 초자연적 존재다. 1923년 아일랜드 본섬에서는 내전이 한창이지만 이니셰린의 하루는 지루할 정도로 평온하다. 파우릭의 일과는 소를 몰고 여동생 시오반(케리 콘돈)과 식사를 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고 나서 마을에서 가장 친한 친구 콜름과 펍에서 맥주를 한 잔 하는 것이 낙이다. 어느 날 콜름이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 때부터 파우릭의 하루는 ‘대체 왜?’라는 의문에 갇혀 엉망진창이 된다. 콜름은 파우릭을 아끼는 마음은 남았지만 그와 더 이상 의미 없는 농담을 나누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콜름은 파우릭이 계속 곁을 맴돌자 화가 나 협박대로 그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던져버린다. 콜름의 행동으로 의도치 않게 파우릭이 아끼는 당나귀 ‘제니’가 죽게 되고, 분노한 파우릭은 콜름의 집을 불태워 버린다. 둘도 없던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싸움은 계속된다. 절교하자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보내다니, 콜름의 행동만을 보면 이야기는 괴상하고 황당하다. 하지만 영화는 아일랜드 내전이라는 배경과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간들의 대립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아일랜드 내전은 영국의 지배를 인정하는 가운데 자치권을 얻어내자는 세력과 완전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세력 사이의 충돌이었다. 조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지만 이들은 서로를 지독히 미워하게 됐다. 서로를 물고 뜯다가 종국에는 무엇 때문에 충돌했는지도 불분명해졌다. 그리고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만 남았다. 파우릭과 콜름의 끝나지 않는 싸움과 닮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며 생각해볼만한 거리를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멍청하지만 다정한 파우릭과 후세에 무엇인가 남기는 일을 중요시 여기는 콜름을 통해 어떤 태도로 살지 돌아보게 한다. 영화와 어우러지는 아일랜드의 절경도 관람 포인트다. 영화는 호평을 받으며 영화제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주·조연배우 4명이 모두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파우릭 역을 맡은 콜린 파렐은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 중 하나다. 그는 1월 열린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마틴 맥도나는 이번 작품으로 ‘21세기의 셰익스피어’라는 명성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는 맥도나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을 거머쥔 그는 이번 아카데미에서도 다관왕을 노린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록키’ 시리즈의 팬이라면 기다렸을 스핀오프 영화 ‘크리드’ 3편이 1일 개봉했다. 경쾌한 타격 소리와 가슴을 쿵쿵 뛰게 하는 음악, 관중으로 가득 찬 화려한 경기장까지…. 작품은 스포츠 영화 특유의 쾌감을 선사한다. ‘크리드3’는 챔피언 벨트를 딴 뒤 은퇴하고 평온하게 살던 록키의 후계자 크리드(마이클 B 조던)가 어릴 적 친구인 데미안(조너선 메이저스)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데미안은 엄청난 복싱 실력을 가진 소년이었지만 크리드와 함께 범죄에 휘말렸다가 총기를 꺼내 든 죄로 감옥에서 18년간 복역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재빨리 도망친 크리드와 달리 데미안은 경찰에 잡히면서 둘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진다. 데미안은 감옥에 있는 자신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크리드에게 원망과 질투를 느끼고, 그가 가진 모든 걸 빼앗기 위해 링 위에 오른다. 내용은 다소 진부하지만 스포츠 영화로서의 재미는 확실히 잡았다. 록키 시리즈와 스핀오프인 크리드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관람할 만한 영화다. 다만 시리즈 중 처음으로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하지 않아 그의 팬이라면 허전할 수 있다. 데미안 역을 맡은 메이저스의 선 굵은 연기가 인상적이다. 메이저스는 올해 첫 마블 영화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악당 ‘정복자 캉’ 역을 맡아 데뷔 이래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크리드가 잘 다듬어진 조각 같은 복서의 몸이라면 데미안의 몸은 감옥에서 18년간 와신상담한 설정에 맞게 투박하지만 압도적이다. 메이저스는 복수심에 불타는 데미안 역을 설득력 있게 소화했다. 둘이 관중으로 가득 찬 경기장 링에서 벌이는 혈투는 영화의 백미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피아니스트 임윤찬 씨(19·사진)가 내년 2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데뷔한다. 임 씨는 지난해 최연소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밴 클라이번 콩쿠르의 준결승 연주곡인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카네기홀은 임 씨가 2024년 2월 21일 아이작스턴 오디토리엄에서 독주회를 가진다고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밝혔다. 아이작스턴 오디토리엄은 카네기홀에서 가장 큰 주 무대다. 카네기홀은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최연소 피아니스트인 임윤찬이 이제 카네기홀에서 가장 유명한 무대에 데뷔한다”고 밝혔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심사위원장 마린 올솝이 “깊은 음악성과 엄청난 테크닉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연주자”라고 임 씨를 평가한 내용도 함께 소개했다. 카네기홀은 임 씨의 공연을 2023, 2024시즌 ‘건반 거장’ 시리즈에 포함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스타 피아니스트 5명이 차례로 독주회를 연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29)도 포함됐다. 미국의 피아노 거장 이매뉴얼 액스, 러시아의 다닐 트리포노프, 우즈베키스탄의 베흐조트 압두라이모프도 연주자로 선정됐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968년 미국 시카고. 유능한 변호사 남편을 둔 주부 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는 늦둥이 아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돌연 기절해 병원에 실려가고, 심근병증 진단을 받는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유일한 치료 방법은 임신을 중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으로만 이뤄진 병원 이사회는 “아이를 건강하게 낳을 확률도 있다”며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남편마저 “법을 어길 수는 없다”며 반대한다. 절망한 조이는 유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다가 여성들로만 이뤄진 비밀 단체 ‘제인스’를 만나게 된다. 미국 여성들의 임신중단권 이야기를 담은 영화 ‘콜 제인’의 도입부 줄거리다. 8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미국에서 낙태가 법으로 허용되기 전 1만2000여 명의 여성이 안전하게 시술받도록 도운 실존 단체 ‘제인스’를 모티브로 했다. 영화는 낙태권을 위해 과격한 방식으로 시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에 낙태와는 거리가 멀 것 같았던 중산층 주부 조이가 겪게 되는 변화를 따라가며 관객이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임신 중절을 선택할 때 그녀를 관통하는 정서는 외로움이다. 사랑하는 남편조차 낙태를 꺼리는 상황에서 조이 앞에 놓인 선택지는 암담하다. 시궁창 같은 무허가 아파트에서 불법 시술을 받거나, 유산을 바라며 스스로 계단을 구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겪는 마음과 몸의 고통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하지만 제인스를 만나며 그녀의 삶은 바뀐다. 제인스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여성들의 사연을 받아 최대한 안전한 공간에서 시술을 받도록 돕는다. 시술이 끝난 후에는 따뜻한 스파게티를 만들어주며 어려운 선택을 한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조이는 이 단체에서 일하게 되면서 여성 낙태권 운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돕게 된다. 제인스를 창립한 버지니아 역은 배우 시고니 위버가 연기했다. ‘콜 제인’은 최근 낙태권 논쟁으로 들끓는 미국 사회에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낙태권의 역사는 ‘콜 제인’ 배경인 1960,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연방대법원은 1973년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가 헌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념비적인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이다. 이 판결로 미국 여성들은 임신 첫 3개월 동안은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완전히 보장받아 왔고, 그 이후 3개월 동안은 제한적으로 낙태가 가능했다. 영화가 모티브로 삼은 제인스는 이 판결 이전까지 여성들이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며 각 주마다 법을 제정해 낙태를 전면 금지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 판결에 대해 “비극적 오류”라며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가 보장 받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우마 서먼, 밀라 요보비치 등 할리우드 스타들도 자신의 임신 중단 경험을 고백하며 낙태권을 지지하고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1968년 미국 시카고. 유능한 변호사 남편을 둔 주부 조이(엘리자베스 뱅크스)는 늦둥이 아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돌연 기절해 병원에 실려가고, 심근병증 진단을 받는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유일한 치료 방법은 임신을 중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으로만 이뤄진 병원 이사회는 “아이를 건강하게 낳을 확률도 있다”며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남편마저 “법을 어길수는 없다”며 자신의 편이 아니다. 절망한 조이는 유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다가 여성들로만 이뤄진 비밀 단체 ‘제인스’를 만나게 된다. 미국 여성들의 낙태권 이야기를 담은 영화 ‘콜 제인’이 3월 8일 개봉한다. 미국에서 낙태가 법으로 허용되기 전 1만2000여 명의 여성들이 안전하게 시술받도록 도운 실존 단체 ‘제인스’를 모티브로 했다. 영화는 낙태권을 위해 거리를 행진하거나 과격한 방식으로 시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낙태와는 거리가 멀 것 같았던 중산층 주부 조이가 겪게 되는 변화를 따라가며 관객에게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만든다. 임신 중절을 선택할 때 그녀의 마음을 관통하는 정서는 외로움이다. 사랑하는 남편조차 낙태를 꺼리는 상황에서 조이 앞에 놓인 선택지는 시궁창 같은 무허가 아파트에서 불법 시술을 받거나, 유산을 바라며 스스로 계단을 구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겪는 마음과 몸의 고통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하지만 ‘제인스’를 만나며 그녀의 삶은 뒤바뀐다. 제인스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여성들의 사연을 받아 최대한 안전한 공간에서 시술을 받도록 돕는다. 시술이 끝나고 나서는 따뜻한 스파게티를 만들어주며 어려운 선택을 한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조이는 이 단체에서 일하게 되면서 여성 낙태권 운동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게 된다. ‘제인스’를 창립한 버지니아 역은 배우 시고니 위버가 연기했다.‘콜 제인’은 미국 사회가 낙태권 논쟁으로 들끓는 상황에서 시의 적절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낙태권 역사는 ‘콜 제인’ 배경인 1960~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연방대법원은 1973년 여성들의 임신 중단 권리가 헌법에 의해 보호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념비적인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이다. 이 판결로 미국 여성들은 임신 첫 3개월 동안은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완전히 보장받아 왔고, 그 이후 3개월 동안은 제한적으로 낙태가 가능했다. 영화가 모티브로 삼은 ‘제인스’는 이 판결 이전까지 1만2000여 명의 여성들이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도록 도왔다.하지만 지난해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며 각 주마다 법을 제정해 낙태를 전면 금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 판결에 대해 “비극적 오류”라며 여성들의 임신 중단 권리가 보장 받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우마 서먼, 밀라 요보비치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도 자신의 임신 중단 경험을 고백하며 낙태권을 지지하고 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 ‘호모 픽투스(Homo Fictus)’다. 이야기는 인류가 찾아낸 가장 효과적인 소통 방법이자,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야기는 인류를 광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유포할 수 있게 되자 이야기가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는 것이다. 영문학자로, 과학적 인문학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저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는 정치인들의 날 선 말이 정치적 양극화를 만든다고 진단한다.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악마화하면서 무책임한 선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이 같은 갈등이 벌어지게 된 것은 마음을 미혹하는 이야기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통령 선거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지지자들을 현혹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시하는 부정선거 근거는 빈약하지만, 지지자들은 그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갈라놓는 이야기를 재생산한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럴싸한 이야기, 믿고 싶은 이야기에 마음이 끌린다. 아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는 이야기 역시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정확하지 않은 사실이 퍼져나가고 사회의 균열은 더욱 심해진다. ‘스토리텔링 편향’에 갇히는 것이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의심하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이를 ‘입 냄새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자신의 입 냄새를 스스로 맡기 어려운 것처럼 내가 하는 이야기에 과장, 위조, 비논리가 있어도 스스로 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입 냄새를 우려하며 상대방과 거리를 두고 냄새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다음 달 12일(현지 시간) 열리는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여우주연상 후보에 각각 오른 영화 두 편이 잇달아 국내 개봉한다. ‘미이라’ 시리즈로 잘 알려진 배우 브렌던 프레이저가 시한부 폭식증 환자로 열연한 ‘더 웨일’과 영화 ‘블루 재스민’(2013년), ‘캐롤’(2015년) 등에서 탄탄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분한 ‘타르’다. 두 배우 모두 인생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눈감기 전 딸에게 사랑 전하는 ‘더 웨일’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더 웨일’에서 주인공 찰리(브렌던 프레이저)는 동성 연인을 잃은 슬픔과 분노로 폭식증에 걸린 환자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그는 연인의 죽음 이후 음식을 입에 구겨 넣으며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거대한 고래처럼 그는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렇게 찰리는 체중이 272kg까지 불어나 심장이 망가지고, 건강은 점점 악화돼 살날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는 8년 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딸 엘리(세이디 싱크)를 집으로 초대하지만 엘리는 그에게 “역겹다”고 쏘아붙인다. 10대 소녀인 엘리는 엄마와 자신을 버린 아빠에 대한 분노로 세상 모든 것을 혐오한다. 찰리는 죽기 전, 엘리에게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어 한다. 그는 딸에게 매일 자신을 찾아와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제안하고 엘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빛나는 존재인지 알려주기 위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 프레이저는 거동이 불편한 거구의 비만 환자로서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잃고 무너져 내린 찰리의 내면을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촬영 때마다 약 45kg의 보철 모형을 입었고, 분장에만 4시간이 걸렸다. 비만 분장이 얼굴과 눈의 움직임을 해치지 않도록 특수 기법을 활용해 모공 크기와 주름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프레이저의 굴곡 많은 개인사도 영화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그는 영화 ‘미이라’ 시리즈를 촬영하며 반복되는 수술과 재활로 몸이 안 좋아졌고, 2018년에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장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밝혔다가 할리우드 밖으로 밀려나며 잊혀지고 있었다. 이번 작품의 감독인 ‘블랙 스완’(2011년)의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그를 캐스팅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그는 지난달 미국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애러노프스키 감독에게 “내가 방황할 때 나를 발견해줬다”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 몰락하는 천재 지휘자 ‘타르’22일 개봉한 영화 ‘타르’는 세계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초 여성 수석지휘자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가 성추문에 휩싸이며 몰락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타르는 에미상, 그래미상, 오스카상을 모두 탄 천재적인 음악가다.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 파트너와 함께 난민 고아를 입양해 키우며 사회적 존경까지 받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 그녀의 완벽한 삶은 오케스트라 단원과 은밀한 관계를 맺었다가 권력을 이용해 해당 단원을 무자비하게 밟아버리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타르의 방해로 어떤 오케스트라에서도 일할 수 없게 된 단원이 자살하면서 그녀의 추악한 행실이 드러난다. 이로 인해 타르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지휘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영화는 타르의 몰락을 보여주며 예술과 예술가의 삶이 분리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블란쳇은 완벽을 향한 집착과 집념, 그 대가로 얻은 병적인 청각 과민증을 갖고 있는 타르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지휘대를 잃는 장면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길이 남을 만한 명연기로 꼽힐 것 같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영화 ‘서치’(2018년)가 5년 만에 2편으로 돌아왔다. 1편은 아빠가 실종된 딸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렸고, 2편에선 10대 딸이 사라진 엄마를 찾아 나선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서치2’의 주인공 준(스톰 리드)은 아빠가 뇌암으로 세상을 떠나 엄마 그레이스(니아 롱)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준은 아이폰 페이스타임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인터넷 심부름 업체를 불러 광란의 파티 흔적을 치우는 평범한 10대다. 어느 날 새 남자친구 케빈(켄 렁)과 콜롬비아로 여행을 떠난 준의 엄마가 실종된다. 돌아오기로 한 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케빈 역시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준은 심부름 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콜롬비아 현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지만 엄마의 모습은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준은 두 사람의 구글 계정에 접속해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케빈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서치2’의 연출은 전작의 편집 감독 출신인 닉 D 존슨과 윌 메릭이 맡았다. 각본은 전작의 감독인 어니시 차건티가 썼다. 2018년 개봉한 1편은 유독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88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였지만 한국에서 295만 명이 관람하며 226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북미 매출 총액과 맞먹는 규모다. 관객이 직접 노트북을 통해 딸을 추적하는 듯한 신선한 연출은 국내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편 역시 이러한 연출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다소 기시감이 들 수 있다. 가족애라는 주제도 새롭지 않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를 뇌와 손처럼 사용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Z세대 준의 모습은 영화에 속도감을 준다.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끝에는 상상하지 못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 대부분이 유색인종이라 최근 북미 영화계가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이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인공 모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엄마의 남자친구 케빈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조사관은 한국계인 다니엘 헤니가 연기했다. 1편이 한국에서 워낙 큰 사랑을 받아 감독이 한국계인 다니엘 헤니에게 러브콜을 보냈다.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아빠가 실종된 딸을 추적하는 과정을 노트북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신선한 연출로 흥행했던 영화 ‘서치’(2018년)가 5년 만에 2편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10대 딸이 사라진 엄마를 찾는다. 전작 연출 기법은 그대로지만 Z세대답게 디지털 기기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모습이 재미를 더한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서치2’의 주인공 준(스톰 리드)은 아빠가 뇌암으로 죽고 엄마 그레이스(니아 롱)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준은 페이스타임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인터넷 심부름 업체를 불러 광란의 파티 흔적을 치우는 평범한 젠지(Z세대)다. 어느 날 준의 엄마는 새 남자친구 케빈(켄 렁)과 콜롬비아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로 한 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케빈 역시 연락이 두절된다. 준은 심부름 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콜롬비아 현지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지만 엄마의 모습은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준은 두 사람의 구글 계정에 접속해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게 되면서 점점 케빈의 정체를 향한 의심이 커진다. ‘서치2’는 전작의 편집 감독이었던 닉 D 존슨과 윌 메릭이 연출을 맡았다. 각본은 전작 감독인 어니시 차건티가 썼다. 2018년 개봉한 서치 1편은 유독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88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였는데도 한국에서 관객 295만 명이 극장을 찾으며 226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북미 매출과 맞먹는 규모다. 관객이 직접 노트북을 통해 딸을 추적하는 듯한 연출이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2편이 이 같은 연출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다소 기시감이 들 수 있다. 가족애라는 주제도 새롭지 않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를 뇌와 손처럼 사용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Z세대 준의 모습은 영화에 속도감을 준다. CCTV 화면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도 전작과 차별화 되는 점이다.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끝에는 상상하지 못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등장인물 대부분이 유색인종이라 북미 영화계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흐름을 이어갔다는 평가다. 주인공 모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엄마의 남자친구인 케빈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FBI 조사관은 한국계인 다니엘 헤니가 연기했다. 1편이 한국에서 워낙 큰 사랑을 받아 감독이 한국계인 다니엘 헤니에게 러브콜을 보냈다고 한다.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현대인은 최선을 다하는데도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품고 산다. 일 돈 사랑 관계 등 모든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결핍감이 스스로를 자극한다. 이런 마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세상에서 주변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끊임없이 커진다. ‘부족하다는 느낌’은 소모적인 사회를 만든다. 뒤처질까 봐 겁먹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서로를 이기기 위해 싸운다.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미국 휴스턴대 연구교수이자 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이런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사람들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취약성(vulnerability)은 ‘상처 입다’라는 뜻의 라틴어 ‘vulnerate’에서 유래했다. 취약성은 불확실성 때문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움이 생기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푹 빠진 마음은 취약하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나를 똑같이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예고 없이 나를 떠나버릴 수도 있다. 작품이나 글,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는 일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취약해진다. 우리는 취약성을 부정하고 숨기는 것에 훨씬 익숙하다.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취약성은 곧 나약함으로 여겨진다. 나의 연약해진 마음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두렵다. 때문에 “나는 취약하지 않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고 정말 그런 척 ‘가면’을 쓴다. 마음의 갑옷을 입는 셈이다. 저자는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용기 있게 진짜 인생을 사는 밑거름이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상대방의 취약성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여줄 수 있다. 저자는 이것이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이라고 명명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취약성이 노출될 때 느끼는 수치심을 다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자존감에 깊은 흉터가 남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성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가장 보편적 원인은 외모와 모성애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훌륭하게 길러내면서도 날씬하고 젊은 외모를 유지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멋지게 일을 해내야 한다. 여성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 남성들이 수치심을 느낄 때는 ‘약한 사람으로 보일 때’다. 남성들이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상사가, 가정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오는 든든한 아빠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선 안 되는 ‘상자’ 속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다. 수치심을 다루는 방법은 용기를 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가 취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취약성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이 보내주는 공감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안도감을 줄 것이다. 저자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길 권한다. “그래 나는 불완전하고 취약한 존재야. 그래도 내가 용감한 사람이라는 진실은 바뀌지 않아. 나는 사랑과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야.”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현대인은 최선을 다하는데도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품고 산다. 일 돈 사랑 관계 등 모든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결핍감이 스스로를 자극한다. 이런 마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세상에서 주변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끊임없이 커진다.‘부족하다는 느낌’은 소모적인 사회를 만든다. 뒤처질까봐 겁먹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서로를 이기기 위해 싸운다. 누구도 행복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미국 휴스턴대 연구교수이자 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신간 ‘마음가면’(웅진지식하우스)에서 이런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사람들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취약성(vulnerability)은 ‘상처 입다’라는 뜻의 라틴어 ‘vulnerate’에서 유래했다. 취약성은 불확실성 때문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움이 생기는 마음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랑에 푹 빠진 마음은 취약하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나를 똑같이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예고 없이 나를 떠나버릴 수도 있다. 작품이나 글,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는 일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리라는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취약해진다.우리는 취약성을 부정하고 숨기는 것에 훨씬 익숙하다.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취약성은 곧 나약함으로 여겨진다. 나의 연약해진 마음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두렵다. 때문에 “나는 취약하지 않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고 정말 그런 척 ‘가면’을 쓴다. 마음의 갑옷을 입는 셈이다.저자는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용기 있게 진짜 인생을 사는 밑거름이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되면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상대방의 취약성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여줄 수 있다. 저자는 이것이 ‘온 마음을 다하는 삶’이라고 명명한다.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취약성이 노출될 때 느끼는 수치심을 다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수치심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자존감에 깊은 흉터가 남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여성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가장 보편적 원인은 외모와 모성애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훌륭하게 길러내면서도 날씬하고 젊은 외모를 유지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멋지게 일을 해내야 한다. 여성들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남성들이 수치심을 느낄 때는 ‘약한 사람으로 보일 때’다. 남성들이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상사가, 가정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오는 든든한 아빠가 되어야 하는 동시에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선 안 되는 ‘상자’ 속에 갇혀 있다고 진단한다.수치심을 다루는 방법은 용기를 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가 취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취약성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이 보내주는 공감은 “나는 혼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안도감을 줄 것이다.저자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길 권한다. “그래 나는 불안전하고 취약한 존재야. 그래도 내가 용감한 사람이라는 진실을 바뀌지 않아. 나는 사랑과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야.”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