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51) 실명계좌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이 16일 기각했다. 검찰은 경찰의 ‘법 절차 무시’를 지적했고, 경찰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당초 경찰은 김 검사가 10억 원의 수상한 자금을 받는 데 쓴 차명계좌에서 거액이 그의 실명계좌로 빠져 나간 사실이 드러나자 돈의 용처를 확인하기 위해 14일 실명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자료 불충분을 이유로 경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차명계좌에 돈을 넣은 사람이 뇌물이라고 시인하거나 그렇게 볼 만한 정황이 있어야 김광준이라는 공직자가 자신의 계좌가 강제로 열리는 불이익을 감수할 만한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수사를 주도했던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50·경무관)은 16일 경찰수사연수원장으로 전보됐다. 경찰 수사권 독립을 앞장서 주장해온 황 기획관에 대해 청와대가 “검경 갈등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며 이선으로 물러나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찰수사연수원은 현장 경찰관을 대상으로 한 수사전문 교육기관이다. 이날 일선 경찰관들은 사실상 집단행동에 나섰다. 100여 명의 경찰관은 이날 오후 7시 충남 세종시 전동면의 한 펜션에서 ‘긴급 현안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펜션 곳곳에 ‘경찰은 국민사랑, 검찰은 조직사랑’ ‘비리검사도, 특임검사도 의사가 아니라 모두 장의사다. 왜? 죽은 권력만 상대하니까’ 등 검찰을 비난하는 문구를 써 붙였다. 식당 한 구석에 프로젝터를 설치해 나치 독일을 소재로 한 영화에 영화내용과 관계없는 검찰 비난 자막을 넣은 동영상을 상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충남경찰청 소속 조대현 경정은 “특임검사를 임명한 것은 명백한 가로채기”라고 말했다. 경찰관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난상토론을 벌이며 울분을 토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김수창 특임검사팀이 유진그룹 계열사인 EM미디어 유순태 사장 등에게서 모두 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51·부장검사급)에 대해 15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검사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19일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김 검사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와 알선수재 혐의가 함께 적용됐다. 공무원이 자신의 업무와 연관된 일로 돈을 받았다면 뇌물수수로, 업무 외 이유로 돈을 받았다면 알선수재로 처벌된다. 검찰은 김 검사가 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일 때 유진그룹 관련 비리 의혹을 내사한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를 확보하고 2008∼2010년 유 사장에게서 받은 5억9000만 원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검사가 당시 유진그룹의 로또 수탁사업자 입찰 비리, 비자금 조성 의혹을 내사했고 이를 덮기 위해 유 사장이 돈을 줬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측근 강모 씨에게서 받은 2억4000만 원에 대해선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검사는 강 씨의 지인을 통해 이 돈을 차명계좌로 건네받았는데 특임검사팀은 최근 이 지인에게서 “(다른 검찰 수사) 사건의 청탁 대가였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 검사가 국가정보원 전 직원 부부의 기업인 협박 사건 등에 개입한 뒤 차명계좌로 받은 수천만 원과 KTF 임원에게서 제공받은 마카오 여행경비 및 도박자금 수백만 원도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밖에 김 검사가 2010년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으로 근무할 때 부속실 여직원 계좌로 또 다른 기업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뒤 여직원을 시켜 전액 현금으로 찾아오도록 한 사실을 확인하고 대가성 여부를 조사 중이다. 또 김 검사가 부산의 C건설에서 받은 돈의 대가성도 수사하고 있다. 한편 경찰이 14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신청한 김 검사 계좌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검찰은 이틀째 아무런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이 영장은 이 사건에 대한 검경 이중 수사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경찰이 검찰에 신청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15일 “혐의를 뒷받침할 소명자료를 충분히 갖춰서 영장을 신청했는데 왜 아무 응답이 없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검찰 관계자는 “증거가 부족해 청구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이다. 특히 차명계좌 입금자에 대한 조사가 안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사를 놓고 평행선을 달려온 검경은 15일 수사협의회를 열어 2시간 넘게 대화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이날 서울 강북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검경은 수사기관 간 이중 수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검찰에서는 정인창 대검 기획조정부장, 김우현 형사정책단장, 이준식 대검 연구관, 경찰에서는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 김영수 수사구조개혁단장, 이형세 전략연구팀장 등 양측에서 모두 6명이 참석했다. 경찰은 특임검사팀 수사를 ‘사건 가로채기’로 규정하고 재발 방지책으로 양 기관이 수사 개시 시점을 형사사법통합망(KICS)에 올리자고 제안했지만 검찰은 신중론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은 다음 주 초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최창봉·신광영 기자 ceric@donga.com}
16일로 예정된 경찰 경무관 보직인사에서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50·경무관·사진)이 현 보직을 계속 맡을 수 있을지 경찰과 검찰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황 기획관은 경찰 수사권 독립 주장의 선봉에 서왔으며 이번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 비리 수사를 주도해왔다. 경찰은 당초 13일 경무관 승진 및 보직인사를 단행할 예정이었으나 승진 내정자만 발표하고 이례적으로 보직인사를 미뤘다. 이는 경찰 수뇌부가 황 기획관의 교체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검경 갈등이 정점에 달한 상황에서 경찰 수사 책임자를 교체할 경우 일선 경찰관들의 상당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 하지만 청와대는 이번 경무관 인사에서 황 기획관을 다른 자리로 보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검사들이 대부분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황운하는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강력한 수사권 독립론자가 경찰 수사 사령탑에 계속 있을 경우 검경 갈등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기류가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4월 퇴임 직후 인터뷰에서 “2011년 초 황운하를 경무관으로 승진시키려 했지만 민정라인의 반대가 많아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유진그룹 등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51·부장검사급)가 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으로 일할 때 유진그룹 관련 비리의혹을 내사한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를 김수창 특임검사팀이 확보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김 검사가 유진그룹 측에서 받은 5억9000만 원 가운데 상당액을 내사 무마 청탁과 함께 받은 뇌물로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 검사는 2008년에 유진그룹 계열사인 EM미디어 유순태 사장에게서 차명계좌로 5000만 원을 받고 2010년에도 유 사장에게서 1억 원권 수표 5장, 1000만 원권 수표 4장 등 5억4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가운데 5000만 원이 김 검사가 특수3부에서 유진그룹을 내사하던 때 받은 것이어서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 검사는 당시 유진그룹의 로또 수탁사업자 입찰비리,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해 내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검사가 2010년 유진그룹으로부터 받은 돈은 전세비용으로 빌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검찰은 5억4000만 원이 실제 전세비용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 또한 대가성이 있는 자금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 검사는 살고 있던 아파트가 팔리지 않았지만 2010년 D주상복합아파트로 옮겨 전세로 거주했는데 당시 이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5억∼6억 원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김 검사가 국가정보원 전 직원 부부의 기업인 협박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한 뒤 차명계좌로 수천만 원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또 부산은행에서 차명계좌로 돈을 받은 정황을 잡고 대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14일 오전 김 검사를 두 번째로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이르면 15일 김 검사에 대해 알선수재와 뇌물 수수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김 검사의 차명계좌로 돈을 보낸 부산의 C건설과 양산의 C산업 사무실을 14일 압수수색해 이 돈에 대가성이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검찰과 별도로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김 검사가 차명계좌에서 자신 명의의 계좌로 돈을 보낸 사실을 확인하고 이 계좌를 들여다보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김 검사가 유진그룹 측과 조희팔 측근 등에게서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파헤치기 위해서다. 경찰은 검찰이 이 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검찰이 영장을 기각할 경우 경찰이 재신청할 것으로 보여 소강상태에 접어든 검경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경찰은 김 검사와 관련한 수상한 자금 흐름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1000만 원 이상의 고액 현금거래사실 등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검찰이 FIU를 통해 유진그룹 관계자들에 대한 혐의거래 보고 등을 살펴봤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당초 검찰에 유진그룹을 내사한 적이 있는지 사실조회를 요청했지만 검찰이 답변하지 않자 다른 기관을 통해 직접 확인에 나선 것이다. 경찰은 기초수사를 토대로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뒤 특임검사팀이 해당 혐의를 무혐의 처리하거나 불기소할 경우 그 부분을 집중 수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자체 수사를 진행하면서 검찰 수사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검찰이 혐의가 있는데 덮으려 하면 그 부분을 적극 입증해 형사처벌하겠다”고 강조했다.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51)의 수뢰 의혹 사건을 두고 검찰과 평행선을 달리던 경찰이 13일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자 일선 경찰관들은 “수사가 어려울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너무 싱겁게 꼬리를 내렸다”며 허탈한 반응을 보였다. 검사 연루 사건이란 이유로 검찰이 도중에 끼어든 만큼 경찰은 마지막까지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국의 일선 경찰관들은 16일 세종시의 모처에 모여 특임검사를 지명한 검찰과 미온적으로 대처한 경찰 수뇌부를 비판하는 긴급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독자 수사를 하겠다던 경찰이 주장을 누그러뜨린 표면적 이유는 국무총리실의 검경 갈등 봉합 방침이다. 김기용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김 검사 의혹을 수사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무총리실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검경 갈등을 치유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경찰은 오후에 태도를 바꿨다. 검찰이 수사 중인 혐의는 피해서 수사하겠다는 것. ‘이중 수사’ 논란을 피하면서 어쨌든 수사는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정부 방침이 없었다고 해도 경찰은 수사를 이어가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경찰은 13일 김 검사에 대해 검찰이 두고 있는 혐의 외에 새로운 의혹이 다수 포착돼 검찰과 별도로 수사를 진행할 여지가 적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김 검사가 검찰에 구속되더라도 새 혐의가 나오면 구치소 접견 등을 통해 조사가 가능할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이미 주요 혐의를 검찰이 독점 수사하면서 신병까지 확보하면 이를 능가할 만한 새로운 혐의를 찾기가 어렵다. 구치소 접견 조사 역시 사건 담당 검사가 반대하면 성사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김 검사의 10억 원 수수 혐의 등 당초 경찰이 제기한 김 검사의 핵심 의혹에 대해 검찰이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해 불기소하거나, 기소하더라도 형량이 낮은 혐의만 적용하면 경찰이 이를 뒤집기는 어렵다. 경찰이 추가 증거나 진술을 검찰에 제시하더라도 수사 지휘권을 가진 검찰이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라고 버티면 따를 수밖에 없다. 사건 주요 조사 대상자들이 특임검사팀에 소환돼 조사받은 뒤 경찰 조사에는 거의 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경찰 수사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김 검사에게 6억 원을 제공한 유진그룹 EM미디어 유순태 사장은 12일 경찰에 “이중 수사여서 출석하지 않겠다”라는 의견서를 보내 왔다. 그는 특임검사 소환에는 응했다. 경찰이 김 검사에게 돈을 준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2∼9일 불러들인 참고인 10명은 이후 모두 검찰 조사에 응했다. 이중조사가 이뤄진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조사를 받은 사람은 예외 없이 검찰에 응하고 있다”며 “반면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 중에는 경찰에 안 나오거나 자료를 추가로 내겠다고 해놓고 안 온다고 입장을 바꾸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경찰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경찰 수뇌부가 검찰에 섣불리 주도권을 내줬다는 내부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내 경찰서의 한 과장급 간부는 “필요한 영장을 신청해도 검찰이 막는 등 검찰 방해로 도저히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물러나도 박수를 받겠지만 수뇌부가 총리실이나 청와대 눈치를 보며 갈등 봉합에만 골몰하는 모습은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경찰이 사실상 백기(白旗)를 들었다. 경찰의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51) 비리 수사에 끼어든 검찰이 특임검사팀을 출범시켜 ‘검경 이중 수사 논란’이 벌어진 지 사흘 만이다. 경찰은 “사건 가로채기”라고 검찰을 비판하며 독자적 수사 방침을 세웠으나 ‘검사 연루 사건은 우리만 수사한다’는 검찰의 오랜 고집을 꺾지 못한 것이다. 경찰청은 13일 오후 “김 검사에 대한 수사는 계속하되 검찰과 같은 내용의 ‘교집합’은 빼고 검찰이 하지 않는 ‘여집합’을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빼고 부스러기만 수사하게 될 공산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을 또 불러내면 인권 침해 논란이 일 수 있고 검찰에 구속이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도 받아들여지겠느냐”며 “김 검사의 새로운 비리 혐의는 계속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기용 경찰청장은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계속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뒤 경찰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이중수사 논란의 주된 책임이 검찰에 있으므로 독자수사를 강력히 밀고 나가겠다던 경찰이 이렇게 타협적 태도로 돌아선 것은 검경 갈등을 신속히 봉합해야 한다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권재진 법무부 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경찰의 수사개시권과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규정한 형사소송법에 근거해 신속하고 엄정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게다가 경찰은 사실상 수사의 돌파구가 막힌 상태다. 경찰이 16일 소환조사받으라고 요구한 김 검사는 이날 특임검사팀이 꾸려진 서울 서부지검에 출석했다. 김 검사에게 6억 원을 준 유진그룹 EM미디어 유순태 사장은 13일 경찰에 출석하기로 해놓고 하루 먼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뒤 경찰 출석을 거부했다. 돈의 대가성 여부를 밝혀 줄 다른 주요 참고인 역시 경찰 소환에 줄줄이 불응할 개연성이 높다. 어차피 김 검사 사건에 대한 ‘독자적 수사’를 관철할 동력이 없다.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는 처지라 검찰에 맞설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에서만 수사하겠다는 건 경찰의 어쩔 수 없는 ‘출구전략’으로 보인다. 경찰은 김 검사의 차명계좌와 대가성을 보여 주는 진술을 확보해 “이번만큼은 우리 손으로 검사 비리를 밝히겠다”라고 나섰지만 ‘검찰의 벽’과 자신의 한계를 재확인했을 뿐이다. 하지만 맥없이 물러선 경찰 수뇌부에 대한 일선 경찰들의 분노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돼 논란은 제2막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경찰이 서울고검 김모 검사(51·부장검사급)의 수뢰 의혹 사건을 수사하자 뒤늦게 별도 수사에 나선 검찰이 경찰보다 한발 먼저 주요 피의자를 소환하는 방식으로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경찰이 16일 출석을 요구한 김 검사를 사흘 앞선 13일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김 검사에게 6억 원을 준 유진그룹 유경선 회장과 유순태 사장도 경찰이 13일 불러 조사할 계획이었지만 검찰이 하루 먼저 소환조사했다. 수사 속도 경쟁에 나선 검경이 피의자 소환 시기를 두고 또다시 충돌을 시작한 것이다. ○ “검찰이 ‘경찰 조사 나갈 필요 없다’더라” 경찰은 당초 김 검사가 출석 요구에 계속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구인까지 불사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검찰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가 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12일 “김 검사 소환 일정을 뻔히 알면서 며칠 먼저 불러 조사하겠다는 건 경찰 수사를 방해해 사건을 완전히 빼앗아 가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경찰 역시 핵심 정보를 가진 주요 참고인을 먼저 부르기 위해 검찰과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검경이 수사 성과를 의식해 사건 관계인을 따로 조사한 뒤 타 기관에는 비협조를 권유하는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초 경찰에 출석하기로 한 주요 참고인을 검찰이 아침에 데려가 조사하고는 ‘경찰에는 나갈 필요 없다’고 했다더라”라고 말했다. 수사는 뒷전이고 검경 갈등만 보이는 대목이다. 검경 중복 소환으로 인한 피의자 인권 침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건 관련자들이 경찰과 특임검사팀에 번갈아 불려 다니면 그 자체가 인권 침해”라며 “검경이 서로의 수사를 비난하면서 국가기관의 공신력을 깎아먹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향후 수사 과정에도 이 같은 갈등 요소가 산재해 있다. 우선 경찰의 협조 요청을 검찰이 묵살할 개연성이 크다. 김 검사가 받은 돈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검찰 내부 정보가 필요한데 이미 자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이 순순히 확인에 응할지 불투명하다. 경찰은 12일 서울중앙지검에 유진그룹을 내사했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사실 조회 및 자료 요청에 나섰다. 하지만 검찰이 “특임에서 이미 확인한 내용이라 공개가 불필요하다”고 버티면 별 도리가 없다. 압수수색이나 체포영장도 “구체적 혐의도 수사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영장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기각시켜도 역시 경찰엔 뾰족한 수가 없다. 검찰이 사건을 검찰에 넘기라며 송치지휘를 내릴 가능성도 있지만 경찰은 사건 관계인의 이의제기가 없었고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서면서 이중수사가 된 만큼 송치지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경찰은 송치지휘가 내려올 경우 사건을 뺏기지 않으려고 계속 재지휘를 건의하며 ‘시간 끌기 작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돈 준 사람 상당수 대가성 인정” 유례없이 중복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경은 12일 표면적인 갈등은 피한 채 각자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김 검사에게 돈을 준 사람 상당수가 수사 편의를 받기로 하는 등 대가성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유진그룹과 조희팔 측 외에 김 검사의 차명계좌로 수백만∼수천만 원을 보낸 참고인들을 조사한 결과 2, 3명에게서 “김 검사가 ‘수사를 잘 봐주겠다’고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대가성 있는 돈이었다는 것이다. 김 검사와 함께 마카오로 여행 가면서 수백만 원의 경비를 제공한 KTF 임원 역시 경찰 조사에서 “김 검사가 수사 편의 제공을 약속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유진그룹과 조희팔 측근을 제외하고 돈을 보낸 개인 및 회사 관계자 3, 4명은 대부분 김 검사로부터 수사받은 사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2008년 중순 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일 당시 검찰이 유진기업을 내사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그 시점에 유진그룹 측이 김 검사에게 6억 원을 줬기 때문에 그 돈이 내사 무마용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다른 검사가 수사하던 사건에 김 검사가 부당하게 개입한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 검사는 2, 3년 전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으로 근무할 때 이 같은 혐의로 사건 당사자에게서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고소 내용의 진위를 조사 중이다. 특임검사팀도 대가성 입증에 초점을 맞추고 전날 김 검사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2008년 김 검사가 KTF 측으로부터 마카오 여행 경비와 도박자금을 제공받은 것은 대가성이 있다고 본다. 옆 부서에서 진행하던 수사에 대해 “수사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았다면 알선수재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유진그룹 측에서 받은 6억 원에 대해서도 뇌물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현직 부장급 서울고검 검사의 금품수수 의혹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사상 유례없이 동시 수사를 진행하는 ‘이중 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의혹이 불거진 검사에게 곧바로 소환을 통보했고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 신청 등 강제구인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임검사팀도 구성된 지 이틀 만에 사건 관계자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특히 김기용 경찰청장이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계속하겠다”라고 밝히면서 이 사건의 수사 지휘를 둘러싸고 검경 갈등이 최고조로 달아오르고 있다. 김 청장은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수사를 계속하겠다”라며 “우리가 수사를 진행 중인 사안을 검찰에서 수사하겠다는 것은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른 (경찰의) 수사 개시·진행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침에 따라 이 사건을 처음부터 수사해 오던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0일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측근과 유진그룹 계열사인 이엠미디어 유모 사장에게서 거액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모 서울고검 검사(51·부장검사급)에게 16일까지 경찰청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김수창 특임검사팀도 11일 김 검사의 자택과 서울고검 사무실, 유 사장의 자택, 서울 마포구 유진그룹 본사, 경기 부천시 이엠미디어 사무실 등 5, 6곳을 압수수색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한국에서 검사의 범죄를 수사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검찰뿐이다. 경찰도 수사기관이지만 검사를 수사한 전례가 없다. 경찰이 혐의 확인을 위해 검사의 사무실이나 집을 압수수색하려고 영장을 신청하면 검찰은 ‘사건을 넘기라’는 지휘를 내리곤 했다. 무기력에 빠진 경찰은 검사 비리 관련 첩보가 들어와도 알아서 사건을 ‘상납’했다. 검사는 어떤 죄를 지어도 ‘친정’에서 조사받는 유일한 직군인 것이다. 경찰이 유진그룹과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측근에게 8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서울고검 김모 검사(51)를 수사하는 지금 상황은 초유의 일이다. 흥미로운 건 경찰 수사의 목표가 처음부터 김 검사였다면 수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희팔의 은닉자금이 흘러든 정체불명의 계좌를 뒤지는 과정에서 우연히 김 검사가 걸려들었다. 경찰이 “김 검사의 계좌를 열어 보겠다”고 했다면 검찰은 또다시 “사건을 넘기라”고 했을 것이다. 검사만 영장청구권한이 있고 경찰은 검찰의 통제를 받는 현 제도 덕분에 검찰은 사실상 수사의 성역에 있다. 웬만한 중죄가 아니면 감찰을 받는 정도에서 사건이 무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이 야심 차게 칼을 뽑았지만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해 수사에 착수하면서 이번 사건도 주도권은 검찰로 넘어가 버렸다. 경찰 총수의 결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수사를 이어가기 어렵게 됐다. 특임검사가 김 검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마당에 검찰이 뒤진 곳을 다시 수색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 검사가 소환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신청해도 검찰이 기각할 가능성이 크다. 김수창 특임검사는 “검찰이 직접 수사하겠다고 하는 건 이번 사건을 더 중요시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현직 부장검사가 연루된 사건이라면 ‘제 식구 감싸기’란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기관이 수사해야 한다는 일반 상식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다. 검찰에겐 ‘그들만의 상식’이 따로 있는 것 같다. 검찰에게 경찰 지휘 권한이 부여된 건 경찰 수사가 잘 진행되도록 관리하라는 뜻이지 경찰을 마음대로 부릴 권리까지 준 것은 아니다. 검찰은 김 검사 사건을 수사할 기회가 예전에도 있었다. 경찰이 2008년 검찰에 송치한 조희팔 수사 기록에는 김 검사의 비리 의혹이 포함돼 있었다. 검찰은 4년이 지나도록 가만히 있다가 경찰이 본격 수사를 시작하고 그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우리가 수사하겠다’며 뒤늦게 나섰다. 검사가 동료 검사를 수사한 결과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검찰은 ‘그랜저 검사’와 ‘벤츠 여검사’ 사건 때도 특임검사에게 수사를 맡겼지만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미 제기된 혐의만 일부 확인하는 데 그쳤다. 특임검사가 실체 규명용이 아닌 ‘특검 방지용’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 간부가 연루된 의혹이 있었던 2010년 ‘서울 대원외고 불법 찬조금 수사’는 검찰이 경찰 수사를 중단시켜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이 학교 교장과 이사장이 학부모에게 찬조금 21억 원을 모금한 경위와 사용처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4차례 검찰에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검찰은 경찰에 이례적으로 “기소 불기소 판단도 하지 말고 즉시 송치하라”고 요구해 사건을 넘겨받은 뒤 “찬조금에 대가성이 없다”며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수사를 한 경찰은 “찬조금을 낸 학부모 중 검사장급 검찰 간부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검찰이 사건을 가로채 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김 부장검사 외에도 검사 2, 3명이 추가 의혹에 휩싸인 이번 사건을 검찰이 직접 수사할 경우 검찰이 ‘꼬리 자르기’를 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스스로 들춰내기 꺼렸던 사안을 경찰이 수사한다고 하자 가로채는 검찰을 보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아직 험난해 보인다.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서울고검 김모 검사(51·부장검사급)가 유진그룹과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측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것과 관련해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하면서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 간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독자적 수사권으로 의혹을 철저히 수사할 방침이지만 경찰은 “경찰의 수사 개시 및 진행 권한을 침해하는 수사방해 행위이자 사건 가로채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 검사와 관련된 비리 의혹이 확산되자 대검찰청은 9일 김수창 법무연수원 연구위원(50·사법시험 29회)을 특임검사로 지명했다. 김 특임검사는 10일부터 서울서부지검에 독자 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그는 검찰 내에서 조희팔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검사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시절 “조희팔이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경찰 발표를 믿지 말고 사건을 계속 수사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검찰 발표에 대해 경찰은 “검찰 고위 간부가 경찰에서 피의자로 조사받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수사권을 남용하고 있다”며 “검찰 수사와 상관없이 경찰은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경 대립이 이어질 경우 동일 사건에 대해 2개 수사기관이 동시에 사건을 수사하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섬세하다. 그리고 소박하다. 정육각형의 누각은 선이 고운 여인의 모습. 평소엔 보듬어 주고 싶을 만큼 외로워 보이는 향원정이 강렬한 단풍의 색채와 함께 가을 향기를 내뿜는다. 중국인 관광객 커플은 동양화 같은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미소를 지었다. 9일 서울 경복궁의 한때. 캐논 EOS 1D Mark4, 24-105mm, 1/250초, f16, ISO 2000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 등을 놓고 의견 차를 키우고 있다.김 위원장은 9일 동아일보 종합편성방송인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등에 나와 “(경제민주화에 대해 박 후보가) 유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 주변에 경제민주화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조언 그룹 중 재계와 연관돼 있는 사람들과 얘기하다가 박 후보가 동화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까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로비도 있고 하니까”라며 재계의 로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순환출자를 기업자율에 맡기겠다’는 박 후보의 전날 발언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자율적이라는 건 의미가 없다”며 “의결권 제한이 문제가 된다면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고 반박했다. 순환출자 문제뿐 아니라 경제민주화 전반에 대한 박 후보의 의지에 의구심을 나타낸 것이다.이날 부산을 방문한 박 후보는 기자들에게 “(순환출자에 대한 발언은) 제가 그동안 쭉 그렇게 얘기해왔던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 것”이라며 자신의 소신임을 분명히 했다. 또 “(당내에) 이런저런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부산=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서울고검 김모 검사(51·부장검사급)가 유진그룹과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 측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김 검사 소유로 추정되는 차명계좌에 입금된 돈이 10억 원에 이르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진그룹 외에 다른 기업들에서도 억대에 달하는 돈이 흘러든 정황을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이와 함께 김 검사가 유진그룹 주식을 매매해 단기간에 2억 원의 시세차익을 올리고 기업으로부터 해외여행 비용을 일부 제공받은 의혹도 제기했다.○ 김 검사, 유진 주식 시세차익 2억 경찰은 김 검사가 지난해 유진그룹의 계열사인 유진기업 주식을 사들인 뒤 3∼8개월간 보유하다 되팔아 2억 원의 시세차익을 올린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 검사가 미공개 공시 정보를 유진 측에서 넘겨받아 높은 수익을 올렸을 개연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 검사는 이와 별개로 2008년에도 후배 검사 2, 3명과 함께 해당 주식을 사들였다가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검사가 수사과정에서 ‘유진의 자회사가 매각된다’는 정보를 포착해 주가가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했다고 보고 있다. 매각이 이뤄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손해를 봤지만 직위를 통해 얻은 기업 내부 정보를 개인 투자에 활용했다면 처벌 대상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 검사에 대한 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며 “아직 김 검사가 받은 돈의 대가성 유무를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추가 조사를 거쳐 소환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김 검사의 차명계좌를 분석한 결과 10억 원에 가까운 자금이 들어왔다. 유진그룹 6억 원, 조희팔 측근 2억40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몇몇 중소기업에서 수백만, 수천만 원씩 입금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문제의 계좌로 돈을 보낸 기업들을 상대로 대가성이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김 검사가 국내 대형 통신사 임원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김 검사가 2008년 이 회사 임원 A 씨와 마카오로 4박 5일 여행을 갈 때 항공료 등 일부 여행비를 A 씨가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이었고 옆 부서인 특수2부에서 이 회사의 납품 비리를 수사 중이었다. 이에 대해 김 검사는 9일 검찰 기자실에 서면 해명자료를 보내 “2008년 5월경 가정 사정 때문에 고교 동기(조희팔 측근 강모 씨)에게서 돈을 빌려 사용한 사실은 있지만 차용증과 이자 약정 등 적정한 절차를 거쳐 2009년까지 갚았고 객관적 증빙도 있다”고 밝혔다. 유진그룹에서 받은 것으로 의심받는 돈에 대해선 “처의 암 투병 등으로 급하게 집을 옮겨야 할 상황에서 친분이 있는 사회 후배에게서 돈을 빌려 전세금으로 썼는데 돈을 갚기 위해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지만 팔리지 않아 아직 변제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경찰은 “유진 측에서 수표로 5억5000만 원을 주고 5000만 원은 김 검사의 차명계좌로 입금했는데 이때 사장의 친척과 회사 직원, 직원 가족 등 6명의 명의로 나눠서 돈을 보냈다”며 “정상적으로 빌려 주는 돈이라면 주는 쪽이 왜 명의자를 쪼개며, 김 검사 역시 왜 굳이 차명계좌를 썼겠느냐”고 말했다. 김 검사가 강 씨에게서 빌린 돈을 갚았다는 주장에 대해선 “강 씨가 김 검사에게 돈을 주고 몇 달 뒤 수사를 피해 중국으로 밀항했는데 어떻게 돈을 갚았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실제 돈을 갚았다면 수배 중인 용의자에게 자금을 제공한 것이어서 도피자금 제공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희팔 수사 때 망신당한 경찰의 반격 김 검사의 것으로 의심되는 차명계좌의 존재는 경찰이 조희팔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조희팔의 자금을 관리했던 강 씨가 거액을 입금한 수상한 계좌를 발견했고 계좌의 실사용자가 김 검사란 사실을 알아냈다. 당초 검찰과 별도로 조희팔의 다단계 사기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검찰에게 망신을 당했다. 경찰은 5월 중국에 잠적한 조희팔이 2011년 말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얼마 뒤 검찰은 “조희팔이 생존해 있다는 제보를 입수해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경찰은 “조희팔을 수사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했다. 검찰과 수사권 조정 문제로 갈등을 빚어 온 경찰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절치부심해 조희팔 은닉 재산의 행방을 캐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고 그 결과 김 검사 관련 의혹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 특임검사 : :검사의 범죄 혐의와 관련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됐을 때 검찰총장이 임명할 수 있는 한시적 소추(공소 제기 및 소송 수행)기관이다. 특임검사는 직무와 관련해 누구의 지휘·감독도 받지 않으며 수사결과만 검찰총장에게 보고한다. 특임검사가 가동된 것은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경찰이 대기업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서울고검 검사(부장검사급)를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4조 원에 이르는 희대의 다단계 사기를 저지른 조희팔 측으로부터도 이 검사에게 2억4000여만 원이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청은 8일 “서울고검 김모 검사(51)가 2008년 5월경 유진그룹 측으로부터 차명계좌와 수표를 통해 6억 원을 받은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조희팔 은닉자금 수사 과정에서 뭉칫돈이 흘러들어간 계좌가 나왔고 추적 결과 김 검사의 차명 계좌로 확인됐다”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해당 계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진그룹에서 거액이 입금된 정황까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계좌에는 유진그룹 이외에 다른 기업으로부터도 억대의 돈이 입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유진그룹은 노무현 정부 때 급성장한 배경에 대해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에 휩싸여 있었다. 김 검사는 당시 기업 비리 수사를 주로 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유진그룹 측은 “회장의 동생이 김 검사와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다. 전세자금으로 쓴다고 해 빌려준 것”이라며 “회사와는 무관하고 대가성도 없다”도 해명했다. 김 검사는 이후 4년이 지나도록 돈을 갚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검사는 언론과의 통화에서 “돈을 받은 일이 없다.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돈의 대가성 유무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또 지난해 말 중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조희팔의 최측근인 강모 씨(51)의 은닉자금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2008년 초 2억4000만 원이 김 검사의 계좌로 흘러들어간 것을 발견했다. 김 검사는 2009년 8월 해당 사건을 수사한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으로 부임했다. 경찰은 김 검사가 은행에서 직접 돈을 인출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와 거래명세를 확보했다. 하지만 김 검사는 이 혐의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현직 검사를 내사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정식으로 수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고요? 막연히 ‘남들도 다 이렇게 살 것’이란 생각에 갈등을 방치하면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상처를 주고받습니다.”부부 상담과 치료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하빌 헨드릭스 박사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하는 능력’만 있고 ‘듣는 능력’은 전혀 훈련되지 않은 부부가 많다”며 “부부싸움은 피할 수 없는데 서로 마음의 문을 열 열쇠가 없다면 결혼 생활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사단법인 한국가족상담협회 초청으로 이날 방한한 헨드릭스 박사는 이혼율이 50%에 이르는 미국에서 ‘이마고(IMAGO·이미지의 라틴어)’라는 대화법을 개발해 이혼 위기 부부를 획기적으로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심리학자다. 부부치료 분야에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냈고 유명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17차례 출연했다.○ ‘다름’ 받아들이고 ‘상처’ 보듬어야헨드릭스 박사는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는 한국에 대해 “미국이 30∼40년 전 겪었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며 “부부간 문제를 드러내놓고 대화하기보다 개인사로 치부해 속으로 삭이는 문화가 갈등을 더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관계의 질을 중시하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남편이 뒤늦게 관계 회복을 시도해도 허사인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경험이다.헨드릭스 박사는 “부부 갈등의 90%는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나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와 긴밀히 연관돼 있고 남편과 아내에겐 각자 상처받았을 때의 ‘내면 아이’가 잠재해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메워줄 것 같은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고 ‘저 사람이라면 내 상처를 어루만져 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고 결혼하는데 그 꿈이 깨지면 ‘서운함→실망→분노’의 과정을 밟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늘 아내는 서운하고 남편은 억울한, 악순환이 계속된다.“상대가 ‘틀렸다’가 아닌 ‘다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실천이 안 되는 이유는 왜 그 차이가 생기는지 근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꺼내놓지 않았던 내면의 상처를 알게 되면 배우자가 왜 그렇게 나와 다른지 알게 되고 그래야 대화가 시작됩니다.”헨드릭스 박사는 “제대로 된 대화법을 익히지 못하고 이혼하면 재혼한 후에도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된다”며 “‘이 사람은 안 된다’는 생각에 매몰되지 말고 스스로 갈등 관리 방법에 문제가 없는지 먼저 돌이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파악-인정-공감의 세 단계이마고 대화법은 부부가 서로의 상처를 공유해 부정적인 대화를 없애는 방법이다. 이 대화법은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우선 부부가 무릎을 대고 마주 앉은 뒤 어느 한쪽에 발언권이 기울지 않도록 동등하게 번갈아가며 이야기한다. 서로를 비난하거나 탓하는 말은 금물.“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안심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갈등이 심한 부부는 대부분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대화해본 적이 없습니다.”대화는 3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첫 번째는 배우자의 마음을 거울에 비춰 보기(Mirroring). 상대가 왜 불만을 갖게 됐는지 설명하면 이를 정확히 이해할 때까지 경청한 뒤 자신이 파악한 내용을 직접 말하는 것이다. 평소 ‘적’으로만 느꼈던 남편이나 아내가 내 마음을 그대로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적대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2단계는 배우자의 마음을 인정하기(Validation). 상대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단계다. 기존에 “당신이 왜 그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면 이제는 “당신으로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며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다. 헨드릭스 박사는 “부부들이 흔히 서로에게 맞추려 노력하는 걸 사랑이라고 착각하는데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며 그걸 기대하기 때문에 싸움이 생긴다”며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게 최선의 관계”라고 설명한다.3단계는 배우자의 마음에 공감하기(Empathy). 상대의 상처를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괴롭히고 깎아내리는 줄만 알았던 상대가 내 편이 되어줄 때 곪았던 감정이 치유되는 효과가 있다.헨드릭스 박사는 “Happy Wife, Happy Life(아내가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하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아내의 행복은 남편뿐만 아니라 자녀의 인생도 좌우한다고 했다. “불행한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는 범죄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부부관계를 잘 관리하는 것은 각종 범죄로 발생할 사회적 비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길이기도 합니다.”헨드릭스 박사는 9∼14일 서울 광진구 능동 세종대에서 부부관계 상담가와 일반 부부를 대상으로 이마고 대화법에 대한 세미나를 연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3일 미얀마 접경지역인 태국의 치앙라이 국경관리소. 한 한국 여성이 내민 여권을 보고 태국 이민국 직원은 숨을 죽였다. 여권에 적힌 이름은 시○○(46). 한국 경찰이 주고 간 메모지에서 봤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직원은 태연한 표정으로 출국 허가 도장을 찍어줬다. 버스로 미얀마에 넘어간 시 씨는 예상대로 몇 시간 뒤 다시 이민국 심사대에 왔다. 체류 기간 연장을 위해 외국인들이 주로 쓰는 수법이다. 국경관리소를 나간 그에게 이민국 직원 5명이 따라붙었다. 태국 주재 한국 경찰관이 “여자가 나타나면 잡지 말고 몰래 추적해 달라”고 당부한 터였다. 2명은 시 씨가 탄 버스에 동승했고 3명은 승용차로 뒤따랐다. 버스에서 내린 그는 치앙라이 외곽의 한 커피숍에 들어갔다. 모자를 쓴 채 귀퉁이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향했다. 5년 전인 2007년 7월, 경기 안양시 비산동의 환전소에서 20대 여직원 A 씨는 최세용 씨(46) 일당에게 ‘신고하지 않을 테니 살려만 달라’고 빌었다. 현금 1억 원을 빼앗아 환전소를 나서는 순간 최 씨는 여직원이 몰래 긴급 신고 버튼을 누르는 장면을 봤다. 발길을 돌린 최 씨는 여직원을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경찰이 범인 신원을 확인했을 때 최 씨 일당은 이미 필리핀으로 도주한 뒤였다. 수천 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 숨은 범인을 잡기란 쉽지 않다. 사건 이듬해인 2008년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을 납치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필리핀 여행을 앞둔 한국인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여행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접근한 뒤 납치해 돈을 뜯어내는 수법이었다. 한국에서 여러 차례 강도짓을 저지른 최 씨는 필리핀으로 도주한 뒤에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 윤모 씨는 그해 여름 마닐라 공항에서 최 씨 일당을 만났다. 그들은 “한국 분을 만나니 기쁘다. 형 동생 하자”며 환대했다. 하지만 공항 앞에 세워진 승합차에 함께 타자마자 총과 칼을 꺼냈다. 윤 씨는 4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택 지하로 끌려가 폭행당할 때 이들이 총을 두 발 쐈고 한 발은 어깨를 스쳤다”며 “빨랫줄로 온몸이 묶인 채 맞았고 머리에서 피가 쏟아져 눈을 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 씨 일당은 윤 씨 지갑에서 그의 초등학생 아들 사진을 꺼내 보며 “1000만 원을 당장 보내지 않으면 너도 죽이고 네 아들도 불러서 죽일 테니 가족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최 씨 일당은 이런 수법으로 이후 4년간 13명에게 2억7000만 원을 뜯어냈다. 지난해 9월 납치된 홍모 씨 등 피해자 중 2명은 아직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피랍 과정에서 최 씨 일당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어렵게 공범 2명을 잡았지만 최 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5월 국내에 송환된 공범 김모 씨(40)는 “최 씨는 신출귀몰하는 양반이다. 능력껏 잡아보라”며 조롱했다. 지난달 필리핀에서 잡힌 또 다른 공범은 현지 유치장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경찰은 최 씨의 아내를 주목했다. 그가 바로 시 씨다. 시 씨는 올해 1월 한국에 들어와 최 씨 동생 명의로 여권을 만든 뒤 5월 태국으로 떠났다. 며칠 뒤 최 씨 동생 여권을 소지한 사람이 태국에 들어온 사실도 확인됐다. 최 씨가 동생 여권으로 신분을 속이고 태국에 숨어 지낸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3개월인 점을 감안해 경찰은 8월 최 씨가 머무는 태국 치앙라이 국경관리소에 형사들을 급파했다. 장기체류를 할 수 있는 비자가 없는 시 씨가 남편과 계속 지내려면 3개월마다 체류 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국경관리소를 찾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첫 시도는 시 씨가 우리 경찰이 도착하기 하루 전 체류 기간을 연장해 버려 실패했다. 다시 3개월 뒤인 이달 3일, 우리 경찰은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태국 이민국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시 씨가 탄 버스를 쫓고 있다”는 전화였다. 이민국 직원들이 이날 시 씨를 따라 커피숍에 들어섰을 때 시 씨와 마주앉은 남자는 사진과 달리 뿔테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기른 얼굴이었다. 직원들이 그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 “최세용 맞지?” “저는 최○○인데요.” 최 씨는 동생 이름을 대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때 커피숍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민국 직원에게 우리 경찰의 전화가 걸려왔다. “들키면 분명히 동생 이름을 댈 겁니다. 무조건 잡으세요.” 최 씨의 도피 행각은 5년 4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태국 경찰은 최 씨를 여권 위조 혐의로 조사한 뒤 한국으로 추방할 예정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여섯 살 어린아이의 시신은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아들을 잃고 그 충격으로 한국을 떠났던 엄마는 몇 달 만에 발견된 아들의 시신 앞에 섰다. 마지막 순간, 장난감을 사달라며 애교를 부렸던 아들의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부검을 마친 의료진은 그 광경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아들 시신을 끌어안고 “왜 이제야 왔느냐”며 울부짖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정낙은 법의관(55·사진)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후 시신 수습을 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뒤 인생의 경로를 바꿨다. 대학병원 의사에서 법의관으로 전향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삼풍 사고 당시 500여 명이 죽었는데 100명 이상의 신원을 결국 확인해주지 못했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 기막힌 사연이 그렇게 많았는데…. 과학수사와 대형사고 처리체계가 잘 갖춰졌다면 가족의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아픔은 덜했을 겁니다. 망자의 인권을 지키는 게 의사로서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의학에 투신한 정 법의관은 18년간 4000여 건을 부검했다. 특히 대형 참사 때 시신의 신원을 최대한 빨리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진력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2007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등 재난재해 때마다 그는 국과수 법의관들과 함께 왕성한 활약을 보였다. 그는 인도네시아 쓰나미 당시 숨진 우리 국민 20명의 신원을 피해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확인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시신을 빨리 찾아 유족에게 넘기는 게 희생자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유족을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정 법의관은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2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과학수사의 날’ 기념식에서 법의학 분야 대상을 받았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50평형대(171.6m²) 아파트에 사는 배모 씨(63)는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지지자다. 중견기업을 운영하다 지난해 회사를 넘기고 은퇴한 배 씨는 경북 출신으로, 정치 성향은 보수다. 그러나 그는 몇 년 전부터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포기했다. 그는 “여야 정당이 자기 이익만 좇아 사사건건 대립하는 모습에 질려버렸다”며 “뭐 하나 국민을 위해 해놓은 게 있느냐”고 물었다. 배 씨가 안 후보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정치 경험이 없다는 것. 당론에 구애받지 않고 정치적 빚을 진 것도 적어 소신 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그는 “정치 경험이 없어 불안하다고들 하는데 정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고 말했다. 야권 단일화 문제가 나오자 그는 “단일화가 되면 그 나물에 그 밥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후보든 문재인 후보든 다 구태 정치인 아니냐. 두 사람 중에 굳이 고르라면 안정적 국정 운영이 가능할 것 같고 첫 여성 대통령이란 의미가 있는 박 후보를 찍을 것 같다”고 했다.○ 단일화 필요성 두고 시각차 안 후보 지지자 중에는 배 씨처럼 후보 단일화에 반대하는 사람이 46%에 달했다. 기존 정치권에 ‘오염’되지 않은 안 후보가 단일화 이후 민주통합당과 한배를 탈 경우에는 투표 자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지자도 적지 않았다. 경기 구리시에 사는 정모 씨(28·여)는 “정치 혐오증으로 투표를 안 하려 했던 사람들이 경쟁력 있는 무소속 후보가 있어 관심을 갖게 됐다”며 “안 후보마저 기존 정당의 간판을 갖게 되면 선택할 후보가 없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에 사는 유모 씨(41)도 “단일화는 정치적 목적의 꼼수 아니냐”며 “안 후보가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지 않고 기존 정치권과 손을 잡는다면 개혁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문 후보 지지자 대다수는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필수조건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들에겐 단일화에 실패해 표가 분산되면 결과적으로 박 후보 당선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는 위기감이 강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전모 씨(24)는 “새누리당 지지층은 확고한데 지지기반이 겹치는 두 야권후보가 분열되면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며 “정치 경험이 부족한 안 후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석모 씨(44)도 “안 후보가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면 정치쇄신보다 정권교체가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안 후보 지지자들은 문 후보 역시 정당정치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한 ‘청산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반면, 문 후보 지지자들은 안 후보에 대해 정권교체를 위해 끌어들여야 할 동반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후보 지지자들은 꼭 문 후보가 아니더라도 정권교체를 이뤄 줄 후보를 택할 수 있지만 일부 안 후보 지지자들에게 차선의 선택은 투표 포기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단일화 후 표심 예측 어려워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 지지자는 이명박 정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경제민주화에 적극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속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안 후보 지지자 60%는 지지 정당이 없거나 새누리당 지지자이고, 중도 또는 중도보수 성향이어서 문 후보나 주변 참모들이 친노 또는 친북적 정책을 펼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반면 문 후보 지지자 74%는 민주당을 지지하며 과반이 진보 성향이다. 문 후보로 단일화가 되면 안 후보 지지자의 34%가 야권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답한 것은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에 문 후보에 대한 거부감이 겹친 결과로 보인다. 중도나 중도보수 성향의 안 후보 지지자가 문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충북 청주시에 사는 이모 씨(31·여·안철수 지지)는 “문 후보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고스란히 답습할까 우려되는 데다 최근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 북한 눈치만 살피는 듯한 정책을 내놓고 있어 반대한다”며 “정권교체 그 자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후보 지지자는 안 후보로 단일화가 되더라도 76%가 지지 의사를 밝혔다. 대선 승리가 최우선 목표이고, 일단 안 후보가 야권 후보로 당선되면 야권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경남 김해시의 노모 씨(45)는 “정치력 검증이 안 된 안 후보가 달갑지는 않지만 단일 후보가 되면 진보뿐 아니라 중도세력까지 흡수할 수 있어 경쟁력이 있다”며 “안 후보가 당 조직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당선되면 자연스럽게 입당해 민주당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부장은 “단일화가 성사되더라도 두 후보 지지기반의 성향이 꽤 달라 현재 두 후보의 지지율을 단순 합산한 수치보다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며 “박 후보를 근소하게 앞서거나 접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11월부터 운전면허 도로주행시험 코스가 2개에서 4개로 늘고 채점관 대신 내비게이션이 주행 코스를 안내하는 등 시험방식이 크게 바뀐다. 경찰청은 합격률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찰청은 이 같은 내용의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한다고 30일 밝혔다. 우선 도로주행 ‘출제 범위’가 늘어난다. 기존에는 후보 코스가 2개뿐이었지만 앞으로는 4개 중 1개 코스로 시험을 본다. 응시자가 탑승할 때마다 시험관이 태블릿 PC에 입력된 주행코스 4개 가운데 1개를 무작위로 고르는 방식이다. 경찰은 후보 코스 4개를 시험 20일 전 운전면허시험장 사이트 등을 통해 공개한다. 주행 시험은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에 따르면 된다. 동승한 시험관이 육성으로 안내하는 현행 방식은 시험관 성향과 안내 타이밍에 따라 편차가 생겨 시험 조건이 균등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내비게이션을 많이 이용하는 실제 운행조건과 비슷한 상황에서 운전 능력을 평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점 방식도 투명해진다. 채점관이 태블릿 PC에 실시간으로 점수를 입력하면 그 결과가 시험장 전산망에 자동 송출된다. 지금처럼 시험관이 손으로 점수를 매기면 채점 기록을 사후에 수정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 같은 사후 수정 시비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응시자가 원하면 어느 부분에서 감점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태블릿 PC 자동채점은 한 달간 시험운영한 뒤 12월부터 도입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현직 경찰관들이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전북 군산경찰서 오승욱 경감은 29일 “일선 지구대 파출소 경찰관들이 휴일에 초과근무를 해도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3년간 초과근무수당 미지급분 청구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는 현재까지 경찰관 5000여 명이 참여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청구액을 1인당 100만 원으로 정했고, 연말까지 원고를 더 모집해 청구액을 다시 계산할 예정이서 액수가 더 커질 수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일선 경찰관들은 근무시간 중 휴일 주간근무에 대해선 휴일 근무수당을 받는다. 하지만 휴일에 정상 근무시간(오전 9시∼오후 6시)을 초과해 일해도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한다. 현재 휴일 근무수당(경위 기준)은 하루 7만4183원이고 시간외수당은 시간당 9229원이다. 하지만 경찰청은 행정안전부 공무원 보수 등의 업무지침상 “휴일 근무수당과 시간외근무수당을 함께 지급할 수 없다”는 ‘병급 금지’ 규정이 있어 휴일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방관들은 2009년 같은 취지의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전례가 있다. 교도관들 역시 5월 미지급 초과근무수당 지급 청구 소송을 내 재판이 진행 중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