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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자오는 프랑스에 사는 중국 여성이다. 그녀와 파리의 카페에서 바둑을 둔 적이 있다. 9점을 깔고도 졌다. 그녀는 바둑대회에 출전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놓기도 한다. 며칠 전 페이스북으로 구글 알파고에 진 판후이 2단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친구 사이라고 한다. 오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기대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바둑은 4000여 년 전 중국에서부터 시작됐으나 15세기 이후 일본에서 체계화했다. 알파고의 고(go)는 영어에서 바둑이란 뜻으로 일본어 이고(위碁)에서 나왔다. 하지만 한중일이 바둑을 겨루기 시작한 1980년대 말 이후 챔피언은 대개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졌다. 이 9단이 최근 중국 커제 9단에게 지고 있지만 커제를 대세라 부르기는 이르다. 인류를 대표해 알파고를 상대하는 사람이 한국 기사라는 데 자부심도 느껴진다. 구글이나 일부 과학자들이 알파고가 이길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건 흥정을 붙여야 재미를 보는 측에서나 하는 소리다. 알파고와 판후이의 대국을 보면 알파고의 실력으로는 이 9단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이 바둑계의 중론이다. 바둑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복잡한 보드 게임이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 많다고 한다. 체스와는 비교도 하지 말자. 19년 전 컴퓨터가 체스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겼지만 인공지능의 발달에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인공지능이란 말을 만들어낸 미국 과학자 존 매카시는 “바둑이야말로 인공지능의 초파리”라고 말했다. 유전학의 초파리처럼 바둑은 인공지능이 여기서 가장 먼저 성과를 보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야다. 알파고 소식은 갑작스러웠다. 알파고와 판후이의 대결은 지난해 10월 밀실에서 진행됐고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올 1월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프로 기사들은 그동안 컴퓨터에는 4점을 깔아주고 뒀다. 알파고는 호선(互先)으로 프로 기사를 이겼다. 전문가들은 인공신경망이 출현하고 인공신경망을 가동할 엄청난 컴퓨터 파워가 이용 가능해지면서 비약적 발전이 이뤄졌다고 본다. 알파고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라는 신기술을 통해 스스로 수를 익히고 형세 판단 능력을 키운다고 한다. 하지만 바둑의 세계는 학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습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인간은 4000년 이상 바둑을 둬왔지만 여전히 바둑의 10%만을 알 뿐이라고 한다. 조훈현 9단이 최초의 한중일 통합챔피언이 된 1989년 응씨배에서 통상 기피되는 ‘빈삼각’을 두 번이나 둬 이겼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두기 전에는 그 수가 보이지 않았다. 수학자 가우스가 어린 시절 1부터 100까지의 더하기를 반으로 접어 50×101의 곱하기로 만들기 전에는 그 간단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것과 같다. 프로 기사라도 9단의 경지에 오르는 사람은 드물고 9단 중에서도 최고수의 자리는 몇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올라갈수록 결국은 미묘한 창의성 경쟁이다. 알파고가 이번에 이 9단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람도 알파고가 인간을 이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체스에서 딥블루(Deep Blue)가 인간 챔피언에게 졌다가 디퍼블루(Deeper Blue)로 개량돼 몇 년 만에 이기는 식은 아닐 것이다. 무리하지 않는 포석과 행마에 상대방의 패착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면서 끝내기에서는 결코 실수하지 않는, 세계 바둑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프로 기사라고 알파고를 생각해 보자. 이 기사는 심리적 동요 같은 건 모르고 체력의 한계도 없다. 하지만 그도 최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열공’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창의력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창의적인 수도 결국 경우의 수 중 하나일 뿐이다. 언젠가 알파고가 인간을 이긴다면 그날은 인공지능의 초파리 연구가 완성된 날로 기록될 만하다. 바둑의 운명은 그날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를 신이라고 정의해 보자. 알파고는 바둑의 신이 된다. 고대 그리스인이 신전에서 신탁을 구하듯이 사람들은 바둑의 다음 수를 알파고에게 묻게 될 것이다. 이미 인간이 컴퓨터에 패한 체스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도널드 트럼프는 부동산 재벌이지만 미국 NBC 방송의 비즈니스 리얼리티쇼를 진행하면서 “넌 해고야”라는 말로 ‘비호감’의 인기를 끌었다. 그가 1일 미국 12개 주에서 동시에 벌어진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승리했다. 공화당은 이제 트럼프를 ‘해고’하기 힘들어졌다.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된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다. 그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지와 티파티 운동으로 분출했던 공화당 내 밑바닥 정서가 더 과격하게 분출한 것이다. ▷트럼프 하면 독설이다.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멕시코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국경 장벽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권자는 그를 싫어하든가 좋아하든가 둘 중 하나지만 트럼프는 모두에게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그가 슈퍼 화요일의 승자로 결정되자 돌변했다. 평소의 공격적 발언이 사라졌다. 미국 CNN 방송이 “우리가 본 저 사람이 트럼프 맞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강경 이민정책을 뒤집는 발언을 한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경쟁 후보들은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라고 야단이다. 그러나 평소 ‘믿거나 말거나’인 트럼프가 인터뷰 내용이 공개된다고 해서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지 않다. 독설은 전략에 따른 연기였는지 모른다. 다만 독설은 ‘넌 해고야’처럼 트럼프의 성격에 딱 맞는 리얼리티 연기였다. 엔터테이너 기질이 좀 있다고 해서 성격에도 안 맞는 통합주의자(unifier)의 캐릭터까지 잘 연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승세다. 트럼프가 본선에서 클린턴과 맞붙는다면 지는 것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 상황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는 보호무역주의로 미국을 불황으로 몰아넣고, 외교적 고립주의로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서 후퇴해 중국을 신나게 해줄 수도 있다. 한국에 대한 ‘쥐꼬리만 한 방위비용 분담금’이란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우리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대 관심사는 작품상도 감독상도 아니고 영화 ‘레버넌트’에서 열연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남우주연상 수상 여부였다. 디캐프리오는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오히려 출연을 후회했다’는 ‘타이타닉’에서 연기한 게 19년 전이고 숱한 화제작에 출연했지만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했다. 팬들은 시상식에 앞서 그의 수상 탈락을 기원하는 희한한 캠페인을 벌였다. 영화마다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디캐프리오의 모습을 그의 수상을 늦춰서라도 가능한 한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애정 어린 마음에서였다. ▷레버넌트(revenant)는 라틴어 다시(re)와 오다(veno)에서 온 말로 몸은 무덤에 두고 돌아온 혼, 즉 유령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예술에서 주체는 현전하는 것도 아니고 현전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난해한 이론을 펼치면서 팬텀이 아닌 이 고풍스러운 단어를 사용했다. 영화 속 디캐프리오는 유령은 아니지만 죽음에서 돌아온 자다. 치명적 부상을 입고 무덤에 버려졌으나 살아 돌아와 복수하는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사진작가 애니 리버비츠가 찍은 디캐프리오의 흑백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서 디캐프리오는 죽어가는 백조의 긴 목을 자신의 목에 두른 채 안고 있다. 어릴 적 꿈이 해양생물학자였던 디캐프리오는 2000년 영화 ‘비치’를 찍으면서 환경주의자가 됐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레버넌트는 인간과 자연의 호흡을 그린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촬영한 2015년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 온난화로부터 우리의 아이들을 지키자”고 역설해 공감을 끌어냈다. ▷디캐프리오는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연 출연으로 일약 1990년대 청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그러나 그는 아이돌이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2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갱스 오브 뉴욕’으로 호흡을 맞춘 이후 2013년 ‘위대한 개츠비’에 이르기까지 갱단두목 밀수꾼 증권브로커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팬들은 꽃미남 디캐프리오를 잃는 대신 시대를 넘어 기억될 한 배우를 얻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TV에 매일 등장하는 장관이나 정치인은 아무래도 신언서판(身言書判)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나 글, 그 속에 담긴 판단력도 중요하지만 역시 눈에 보이는 모습이 우선이다. 이런 장관이나 정치인이 입술이 부르트거나 얼굴에 염증이 생기면 곤란해진다. 이 정도로 공개석상에 등장하지 않을 수도 없고 등장하자니 위엄이 안 선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고군분투한다는 인상을 줘 오히려 좋은 점수를 얻기도 한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폐쇄 발표를 하면서 코 밑에서 오른쪽 입술 사이가 크게 부르튼 모습으로 나타났다. 설 직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한 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다. 본래 약해 보이는 인상인 데다 염증이 나자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한 신문은 홍 장관이 개성공단 폐쇄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에서 엄청 깨진 것처럼 보도했다. 거기에 홍 장관 사진을 붙여놓으니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럴듯해 보였다. ▷최근에는 체구도 건장하고 혈색도 좋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왼쪽 윗입술이 터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국회는 공전을 거듭하고 당내에서는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의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 업무를 시작하자 심한 압박을 받는 듯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얼마 전 왼쪽 아랫입술이 부르텄다. 신당 창당 이후 정점을 쳤다가 끝없이 하락하는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강행군을 하느라 피로가 첩첩이 쌓이는 모양이다. ▷“난 사람의 얼굴만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영화 ‘관상’에 관상쟁이로 등장하는 주인공 송강호가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아니라 시대로 눈을 돌려보면 지금 입술이 부르튼 건 우리 정치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는다고 밤낮으로 필리버스터를 하느라 피곤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하다 하다 못해 필리버스터까지 하며 법안 통과를 막는 국회 모습에 책상을 10차례나 내려칠 정도로 화가 난다. 뾰족한 처방전도 없으니 더 답답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내일 취임 3주년을 맞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일 뒤 취임 3주년을 맞는다. 북한은 3년 전 두 정상이 취임하기 직전 3차 핵실험을 했다. 당시 중국 외교부는 “북한의 핵실험을 결연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094호’의 통과에 찬성했다. 올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중국 외교부는 “북한의 핵실험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유엔안보리 제재가 논의되고 있다. 중국은 뒷문을 열어놓고 결국 찬성할 것이다. 완벽한 기시감(旣視感)이 3년이란 시간차를 잊게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중국이 변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중국이 변했다고 주장한 이들은 중국의 본심을 드러낸 작지만 중요한 해프닝 하나를 간과했다. 중국 공산당교 기관지 ‘쉐시(學習)시보’의 덩위원(鄧聿文) 부편집장이 ‘중국은 북한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글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했다가 직위에서 해제됐다. 이번에는 덩위원같이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시진핑 집권 3년 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다면 이것이 변화다. 한중 수교와 북핵의 역사는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했고 북한은 이듬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한국은 한중 수교 이후 굴곡이 있었지만 대체로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길을 걸어왔다. 지난해 중국 전승 70주년에 서방 지도자들의 불참 속에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 선 것은 한중 관계의 정점이었다. 한국의 보수 정권마저 한미 관계의 균열을 감수하더라도 중국과 협력하겠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중국으로서는 북핵이 아니라 북한의 급작스러운 붕괴가 걱정거리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급작스러운 붕괴는 중국만큼이나 한국도 바라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한국이 북한의 발전을 지원하면서 통일을 향해 나아간다는 발상은, 그것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중국에도 한국에도 유익한 것이다. 시진핑은 이미 손안에 쥔 확실한 것(북한)을 놓으면서까지 새 것(미국에도 중국에도 치우치지 않은 통일 한국)을 추구할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다.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은 잔인했지만 ‘사기’와 ‘자치통감’을 끼고 살 만큼 역사적 안목이 깊었다. 프랑스 파리 유학파인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의 통찰력으로 공산주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갔다. 시진핑에게는 그런 역사적 안목이나 통찰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진핑은 태자당 출신이다. 자기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후광으로 칭화대에 들어갔다. 관료로서 승승장구한 것도 태자당의 인맥 덕분이다. 시진핑은 안보에 관해서는 아주 보수적이다. 칭화대 졸업 이후 국방장관 부관으로 3년 일한 이후 군 관련 일을 계속 해왔다. 중국의 ‘핵심 이익’, 즉 주권과 영토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시 주석이 집권 이후 센카쿠 열도, 스프래틀리 군도, 파라셀 군도에서 강도를 높여온 도발을 상기해 보라. 한반도의 군사적 완충지대 북한을 쉽게 버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북한을 6·25전쟁에서 함께 피를 흘린 혈맹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장쩌민 이래 중국 지도자의 임기는 10년이다. 시 주석은 2022년까지 집권한다. 그를 앞으로도 7년을 더 상대해야 한다. 7년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난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중국 미몽(迷夢)에 잃어버린 20년’이란 칼럼을 통해 중국이 북한을 움직여 줄 것이라는 미몽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중국 지도자들의 노회한 페인트 모션에 속지 말라고도 당부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처럼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그 결과 너무나 중요한 3년을 허비했다. 중국은 이번엔 평화협정을 들고 나왔다. 슬슬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할 태세다. 우리로서는 평화협정을 지금 논할 아무런 실익이 없는데도 평화협정에 호응하는 이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평화협정은 한미일 동맹으로 북한과 중국에 최대한의 압박을 가해본 뒤에도 북핵 저지에 실패하면 그때 가서 검토하되, 한국의 핵무장이라는 상반된 옵션과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검토할 일이다.송평인 논설위원}
작가 존 리드는 1917년 러시아 특파원으로 혁명을 목격하고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쓴 미국 사회주의자다. 이해 미국에서도 노동자 중 5분의 1이 파업에 참가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미국에도 강한 사회주의적 흐름이 있었다. 1905년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을 창립한 사회주의 노동운동가 유진 데브스가 그 선구자다. ‘미국 민중사’를 쓴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나 버몬트 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등 오늘날의 미국 사회주의자들에게 데브스의 고향 인디애나 주 테러호트를 다녀오는 것은 일종의 순례다. ▷‘자본주의는 고장났다.’ 샌더스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보다 강력한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란 말로 자신의 이념을 표현한다. 그는 2010년 공화 민주 양당이 합의한 부자 감세 법안에 항의해 상원에서 8시간 35분에 걸친 의사진행 방해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월가 점령 운동으로 표출된 민심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의 동력으로 삼았다. ▷샌더스는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압승했다. 앞서 첫 경선인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도 근소한 차로 지긴 했지만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샌더스가 정말 대세인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음 달 1일 13개 주 예비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을 지켜봐야 한다. 미국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앞서 최초의 사회주의자 대통령을 보는 날이 올지 모른다. ▷공화당에서는 막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본가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뉴햄프셔에서 압승했다. 샌더스는 민주당으로 나오긴 했지만 이전까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무소속으로 활동했다.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신대륙 정치가 구대륙의 이데올로기적 보혁(保革) 구도에 오염되지 않은 것을 축복으로 여겼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은 미국 정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두 아웃사이더 중 하나가 대통령이 되는 건 두고 볼 수 없다며 링 밖에서 몸을 풀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북한이 설 연휴 인공위성이라 주장하는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북한 탄도미사일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갖췄는지 의문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핵탄두를 실은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할 때까지 시간이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북핵 폐기를 위한,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보수정권 8년 동안의 대중 설득 외교는 실패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종적 판단을 유보하고 있을 따름이다. 중국이 대북 경제제재의 뒷문을 걸어 잠글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인지, 김정은이 중국 말도 듣지 않으니 중국도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의 태도를 보면 판가름 날 것이다. 중국이 뒷문을 잠그지 않아 대북 경제제재가 효과가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다.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을 가지려 하는 것은 북한의 내재적 논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나서도 북한은 아무 렇지도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북한의 내재적 논리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김정은이 중국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는 것이 합의된 연기(演技)가 아닌가 의심해본다.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가 북핵 협의를 위해 방북한 날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 계획을 발표했고, 우다웨이의 만류에도 결국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의 태도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최소한의 외교적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어서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 뒤에서 중국이 “봐라. 북한은 우리 말도 안 듣는다. 우리한테 책임을 미루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말을 안 들으면 말을 안 듣는다고 탓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중국은 뒷문을 잠그길 주저함으로써 자기 말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중국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날 한미 간 사드 배치 협의를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틀 전 박 대통령이 한 달 전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그토록 고대하던 전화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뒤늦게 걸어왔다. 그것은 북핵이나 탄도미사일 실험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기보다는 한국의 사드 배치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막아보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한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경제·외교·군사적인 모든 조치를 강구하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중국은 태평양 쪽으로 일본이라는 강력한 나라가, 그것도 더 강력한 미국을 배경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는 예전보다 강력해진 북한을 이용해 방어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옛 소련이 중국의 핵 보유를 허용했듯이 중국도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는 않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가진 유엔 안보리 제재에 대한 기대는 애초 갖지 말았어야 한다. 물론 다음과 같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이 유엔 안보리 제재 논의 중에 또 다른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은 한국의 분노를 촉발해 한중 관계에 균열을 초래하고 동북아를 냉전 구도로 돌려놓아 그 속에서 핵 보유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한국이 한미일 동맹을 더 강화하는 순간 바로 그 의도에 말려든다. 그럼에도 중국은 설득만으로는 안 되고 압박이 필요한 나라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사실 냉정한 국제관계에서 압박 없는 설득은 설득력도 없다. 2006년 이후 거듭된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국에 매달리기만 했지 중국을 압박해본 적이 없다. 사드 배치가 중국을 향한 최초의 압박이다. 중국은 넓다 해도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동북아와 동남아에서 포위되면 군사적으로 옹색한 처지에 놓인다. 한국만으로는 중국을 압박하기 힘들지만 한미일 동맹으로는 가능하다. 사드 배치에서 나아가 한미일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등으로 강도를 높여야 한다. 중국의 태도에 따라 철회될 수도 있다는 조건하에서 우리가 가진 옵션의 전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이 자극받게 해야 한다. 평화로운 북핵 폐기는 설득이든 압박이든 중국을 통한 길밖에 없다. 실패한다면 그때는 군사적으로 북핵 폐기에 나서는 길밖에 남지 않는다. 동북아의 평화를 깰 수 있는 군사적 북핵 폐기는 중국도 원하지 않으리라 믿는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골프에서 파(par)보다 하나 적은 타수인 버디(birdie)는 버드(bird)에서 왔다. 미국 애틀랜타시티CC에는 1903년 버디란 말이 기원했다는 홀이 있다. A 스미스란 사람이 이곳 파4홀에서 거의 홀에 붙이는 세컨드 샷을 친 후 스스로 감탄해서 ‘a bird of shot’이라고 외쳤다. 여기서 버드는 당시 미국 속어로 그냥 ‘뛰어난 것’을 의미했지만 이 표현이 골퍼들에게는 새처럼 멋지게 날아가는 샷이란 의미로도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이후 파보다 적은 타수에는 모두 새의 이름이 붙었다. 파보다 2타 적은 것은 이글, 파보다 3타 적은 것은 앨버트로스로 불렸다. 그냥 새보다는 이글이 보기 어렵고 이글보다는 앨버트로스가 보기 어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파보다 4타 적은 것은 전설의 새 이름을 따 콘도르라고 한다. 파5홀에서 홀인원을 해야 콘도르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앨버트로스가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냥 홀인원이라고 하면 파3홀 홀인원, 즉 이글을 의미한다. 파4홀 홀인원은 앨버트로스다. 앨버트로스를 할 확률은 200만분의 1로 번개에 맞을 만큼 낮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파5홀의 세컨드 샷이나 파6홀의 서드 샷에서 이뤄진다. 파4홀 홀인원은 미국프로골프(PGA)에서는 2001년 앤드루 매기의 피닉스 오픈에서의 기록이 유일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는 한국 선수 장하나가 지난달 31일 처음으로 바하마 클래식에서 기록했다. ▷운도 따랐다. 홀의 기준 타수는 그린에서의 퍼트 2회를 상정하고 정해진다. 미국골프협회는 여자 선수의 평균 티샷 거리를 210야드, 두 차례 샷의 평균 합계를 400야드로 보고 파4홀의 길이를 210∼400야드로 정해놓았다. 장하나가 기록을 세운 홀은 원래 310야드인데 이날은 218야드로 짧게 세팅됐다. 장타자 장하나는 드라이버보다 정교한 3번 우드를 잡았다. 그린 위에만 올려도 성공인데 그린 바로 앞에 떨어진 공은 몇 번 튕긴 뒤 홀 안으로 기적같이 빨려 들어갔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바둑은 동양, 체스는 서양을 대표하는 보드게임이다. 바둑은 돌을 두는 착점이 361개다. 첫수를 주고받는 경우의 수만 12만9960가지다. 체스는 첫수를 주고받는 경우의 수가 400가지다. 바둑 한 판의 경우의 수는 수학적으로 단순히 계산해도 700자리 수가 되어 계산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바둑을 기록한 역사가 200년이지만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똑같은 바둑은 없었고 이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체스에서는 오래전에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다. 1997년 IBM 슈퍼컴퓨터 ‘디퍼 블루’가 러시아인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이 탄생한 지 51년 만이다. 카스파로프는 당시만이 아니라 약 1500년 체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카스파로프는 2003년 업그레이드된 ‘딥 주니어’와의 대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설욕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2005년 은퇴했다. ▷바둑에서는 프로 기사가 컴퓨터와 둘 때 최소한 4점을 깔아주고 둔다. 조훈현 9단은 지난해 낸 책 ‘고수의 생각법’에서 “이 네 점은 프로 기사의 창의성과 기풍의 차이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흉내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썼다. 그러나 27일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맞바둑에서 프로 기사를 이겼다. 다만 상대는 유럽 바둑 챔피언인 중국계 판후이 2단이었다. 유럽 프로 바둑계의 실력은 바둑의 본고장인 한중일에 못 미친다. ▷바둑은 조 9단의 1989년 응씨배 제패 이래 한중일 중에서도 한국이 세계 최강이다. 이창호 9단에 이어 지금은 이세돌 9단이 10년째 최고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냈다. 3월 서울에서 사상 처음으로 컴퓨터와 인간 바둑 지존의 대결이 벌어진다. 바둑계에서는 알파고가 과거 수준보다 나아졌다 하더라도 이 9단과의 맞바둑은 무리이며 2, 3점 접바둑이 적절하다고 본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심적 부담도 피곤함도 느끼지 않고 복잡한 계산을 해내는 컴퓨터와의 대결인지라 결과는 속단하기 어렵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서울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아서 패터슨에 대한 선고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선고에 앞서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 19년 전 처음 사건을 맡았던 당시 박모 검사다. 그는 미군 수사대도 한국 경찰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던 패터슨 대신 에드워드 리를 기소했다. 그가 철로를 잘못 바꾸면서 이 사건은 긴 세월을 허비하고 이제야 비로소 진실의 순간 앞에 섰다. 1997년 4월 3일 밤 미군 헌병 당직 사관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태원의 버거킹 햄버거 가게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은 패터슨이라는 제보였다. 미군 범죄수사대(CID)가 수사에 착수했다. 패터슨의 행적을 추적하는 한편 햄버거 가게에 함께 간 친구들로부터 패터슨이 의심 간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패터슨이 미 8군 영내 배수구에 숨긴 흉기도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찾아냈다. CID가 패터슨을 체포하려 영내 고등학교를 찾았을 때 그는 두 달 전 한 친구를 심하게 때린 일로 무기정학 상태였다. 그는 친구를 때린 사실이 부대에 알려질까 봐 그 친구에게 병원비를 쥐여주며 한국 병원에 가라고 할 정도로 주도면밀했다. 그의 손등엔 갱단 표시 문신도 있었다. CID는 사건 3일 만에 패터슨을 체포하고 서울 용산경찰서에 넘겼다. 이 사건은 단순하다. 리 아니면 패터슨이 범인이다. 살인 현장인 비좁은 화장실에는 피해자 외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 리는 국적은 미국이지만 부모 모두 한국인이다. 패터슨은 어머니는 한국인이지만 아버지는 미국인인 데다 미군 군무원이다. CID가 리를 보호하기 위해 패터슨을 대신 넘길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한국 경찰도 패터슨이 범인이라고 여겼다. 박 검사만 이상하게도 리를 고집했다. 패터슨은 여러 차례 진술에서 무의식적으로 진실을 드러냈다. 한 가지만 들자면 패터슨은 “리가 피해자의 오른쪽 목을 3번, 왼쪽 목을 4번, 가슴을 2번 찌르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의 상처 부위와 정확히 일치한다. 반면 리는 전혀 상세한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범죄학자들은 예상치 못한 살인을 보고 놀란 목격자라면 리가 정상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수사의 전문성도 없는 검사가 수사를 지휘하는 구조로 돼 있다. 지금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이런 게 아니다. 수사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순리를 따르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결론에 오직 박 검사만 도달하지 못했다. 미국이 한 것은 못 믿겠다는 맹목적인 반감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2009년 제작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박 검사를 정의감에 불타 고뇌하면서 진실을 추구하는 검사로 묘사하고 있다. 현실의 박 검사는 1999년 검찰 내부 통신망에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공소권이 없다고 했다가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 부끄러워 울었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자기가 속한 조직이 한 일이 부끄러워 울 정도라면 자신이 기소한 리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일에 대해서는 더 부끄러워하며 울었어야 했다. 그는 반성도 없이 이듬해 “동양철학을 공부할 계획”이라며 사표를 냈다. 지금은 변호사로서 채식주의의 전도사가 돼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미 국방부 과학수사관리관 데이비드 젤리프 씨의 증언을 들었다. 그는 19년 전 CID 초동수사를 지휘한 수사관이었다. 오후 11시까지 이어진 증언 뒤에 젤리프 씨와 피해자의 어머니가 만났다. 어머니는 “내 아들 죽인 미국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부터 증언하러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젤리프 씨는 “나도 하나뿐인 아들이 당신 아들만 한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 그 맘을 잘 안다”고 위로했다. 무슨 꿍꿍이는 없다. 이 사건은 미국인이 한국인을 죽인 사건이고 그 미국인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미국의 태도다. 이 사건은 한 선량한 대학생이 봄날 밤 여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에 놀러갔다가 시비가 붙은 것도 아닌데 만용(蠻勇)을 보이던 생면부지의 미국 청소년의 칼에 9차례나 잔혹하게 찔려 희생된 사건이다. 패터슨에게 유죄가 선고된다면 19년간 지연된 정의의 실현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새삼 검사 자리 하나가 참으로 중요한 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영어에 업스커트 포토(upskirt photo)라는 말이 있다. 스커트 아래에서 위로 올려 찍는 사진을 말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몰래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찍은 사진을 일반화해서 이렇게 지칭한다. 이런 사진을 불법으로 볼지 확립된 기준은 아직 없다. 미국 텍사스 주와 오리건 주, 워싱턴에선 설혹 남성의 성적 만족을 위해 그런 사진을 찍었더라도 불법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매사추세츠 주에서만 지난해부터 불법으로 취급했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엄격해서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촬영 행위를 처벌한다. 업스커트 포토는 말할 것도 없고 여름철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의 여성을 찍었다가 처벌받을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다만 피해자가 주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신체 부위의 노출 정도나 부각 여부, 촬영 각도나 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제3자의 관점으로 판단한다. ▷최근 대법원은 호감을 느낀 여성을 엘리베이터까지 쫓아가 몰래 얼굴 없는 상반신을 찍은 한 남성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재판을 다시 하도록 돌려보냈다. 피해 여성은 수치심과 공포를 느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촬영한 가슴 부위가 노출은커녕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아 객관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정도가 아니라고 봤다. 애초 이 정도 사진을 몰카의 범위에 넣은 것이 무리였다. 다만 생면부지의 남성이 엘리베이터까지 쫓아온 행동에 여성이 공포를 느꼈다면 달리라도 처벌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남성이 섹시한 여성을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은 아내나 여자친구로부터 힐난을 받을 수 있어도 법적으로는 문제없다. 그렇다면 공개된 장소에서 통상적인 앵글로 찍은 사진은 눈으로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사진 중의 일부가 불법이라면 왜 불법이고 어디서부터 불법인가. ‘포르노를 정의할 수 없지만 보면 안다’는 말처럼 몰카도 보면 아는 것인가. 스마트폰이 법의 영역에 던지는 새로운 고민거리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신영복의 첫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나왔을 때 무기수가 감옥에서 그런 맑은 생각을 끌어낼 수 있다는 데 놀랐다. 소주 ‘처음처럼’이 나왔을 때는 정겨운 글씨체가 신영복의 것이라는 데 대해 다시 놀랐다. 그의 ‘강의’나 ‘담론’을 읽으면서는 동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신선한 해석에 거듭 놀랐다. ▷신영복은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만든 철학자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의 활동으로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됐다. 중앙정보부의 수사는 가혹했을 것이다. 신영복이 실제보다 더 깊이 연루된 것처럼 기소됐을 수 있다. 무려 20년이나 가두는 바람에 그는 철학자가 됐다. 한학자 이구영과 감옥에서 한 방을 쓰면서 한학을, 감옥으로 교육 나온 서예가 조병호에게 글씨를 배웠고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신영복은 한홍구와의 인터뷰에서 통혁당 주범 김질락이 혁명을 지지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온다. 신영복은 친노 정치인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의 ‘상부선’이었다. 통혁당 사건은 함께 연루된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가 실체를 증언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의 많은 사상범이 민주화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신영복은 재심을 청구하지 않았다. 신영복은 통혁당 사건이 부풀려졌다고 주장하지만 그가 혁명을 꿈꾸었던 사실 자체를 구질구질하게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는 볼셰비키에 적대적인 누군가가 “인간적으로는 볼셰비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신영복이 싫어서 소주 ‘처음처럼’은 마시지도 않는다는 사람도 없진 않지만 대체로 신영복의 정신세계는 이념을 뛰어넘어 사랑받았다. 세상을 바꾸는 데 냉철한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이, 따뜻한 가슴보다는 실천하는 발이 중요하다는 식의 잠언(箴言)은 현대인에게 매력적이었다. 다만 그는 저세상으로 떠날 때까지 그가 원한 세상을 정치경제학의 용어로 말한 적이 없다. 그것을 묻는 것이 환상을 깨는 것처럼 느껴져 아무도 묻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중민(中民)론을 주장한다. 운동권의 민중론으로는 한국의 민주화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중산층과 민중을 결합한 중민이란 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근대화의 실패로 인해 빈곤과 소외가 가중된 무산층(민중)이 이끈 것이 아니라 근대화의 성공으로 형성된 중산층이 개혁을 지향했기 때문에 이뤄졌다는 논리다. 근대화를 성공으로 본 것은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전제한다. ▷한 교수가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 자격으로 4·19 민주묘지를 참배한 자리에서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언급했다가 억지에 가까운 논란에 휩싸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 시점으로 보는 것은 뉴라이트 사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상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인식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건국이 아니라면 임시정부 수립은 더욱 건국이 아니다. 망명정부는 원래 있던 정부가 옮겨간 것이지만 임시정부는 정부가 생기기 전 단계를 말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건국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은 건국되지도 않았다는 이상한 말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의당은 한 교수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어제 김구 묘역도 참배하겠다고 밝혔다. 김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김일성과 합류하거나 협력한 박헌영 김원봉 여운형과는 달랐다. 김구의 남북통일 의지는 고귀한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김구 묘역 참배를 계획했으면 모르되 예정에 없던 참배를 부랴부랴 끼워 넣는 모습은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의원이 한 강연에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대해 “국방군과 인민군이 힘을 합쳐 미군과 싸우는 내용을 보면서 시대정신을 읽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질겁한 적이 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류의 공부에 빠져들었을 때나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광복 이후 임시정부 요인 중 사망 혹은 질환자를 뺀 26명 가운데 북으로 간 김원봉 등 6명, 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않은 김구 등 3명을 빼고 나머지는 대한민국 정부에 계승됐다는 사실 정도는 안 의원이 이미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과 경영학을 가르치는 폴 브래컨 교수는 ‘제2차 핵 시대’란 책에서 핵무기의 위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민 폭격으로 독일인과 일본인 각각 50만 명씩 사망했다. 4년간(1942∼1945년)의 전쟁을 가로축으로 놓고 이 사망자들을 표시해 보자. 이제 그림을 수직으로 세워 이 전쟁이 한나절 만에 치러질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하루에 100만 명이 사망하는 것이다.” kt(킬로톤·TNT 화약 1000t)급 핵무기를 사용했을 때의 위력이 이 정도다. 수소폭탄 같은 Mt(메가톤·TNT 화약 100만 t)급 핵무기를 사용했을 때의 위력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북한이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핵폭탄을 개량하는 실험이었다고 해도 그 끔찍함은 마찬가지다. 2004년 미국 환경기구 NRDC의 매슈 매킨지와 토머스 코크런 박사의 발표에 의하면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의 경우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15kt급 핵무기가 지상 500m에서 공중폭발하면 62만 명, 지상 100m면 84만 명, 지면에서 폭발하면 125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핵무기는 사람을 죽이거나 건물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은 방사능으로 오염돼 한동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핵무기에 대해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이 핵무기는 실제 사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억지(deterrence)를 위한, 다분히 심리적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북한이 수소폭탄 시험을 했다고 해도 국민들이 좋게 말하면 동요하지 않고 나쁘게 말하면 무감각한 것은 그런 주장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억지력으로 보는 관점은 미국과 소련이 세계를 주름잡던 냉전 시기에서 비롯됐다. 미국과 소련 단둘이 추던 탱고에 중국 영국 프랑스가 끼어들 때까지도 그런 안이한 관점은 어느 정도 타당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북한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시대에도 그런 안이한 관점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핵무기에 관한 한 브래컨이 ‘제1차 핵 시대’라고 부른 때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시기였다. 핵무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동맹 규칙하에 철저히 관리됐다. 그러나 지금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이스라엘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북한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관리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핵무기에 관한 한 ‘제2차 핵 시대’는 더 불안한 시기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는 탈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렸고, 2006년 10월 9일 북한 핵실험은 훨씬 문제가 많은 포스트 탈냉전 시대로의 돌입을 알리는 서막인지 모른다”고 썼다. 이 저널리스트의 감각으로는 북한의 핵 보유는 불안한 ‘제2차 핵 시대’ 내에서도 더 불안한 단계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의 ‘핵 탱고’는 상대방이 예측할 수 있는 스텝을 따르지 않고 혼자 추는 것이어서 더 위험하다. 갓 30세를 넘은 수령이 ‘유일체제’로 지배하는 북한에서 수령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핵폭탄의 스위치를 누르려 할 때 비겁한 졸개들이 그를 제거할 용기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런 국가의 핵무기는 단순한 억지력이 아니라 실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견해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우리의 보복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으로 한반도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화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반도의 안전을 위해 북한 요구에 끌려다니는 비겁한 굴종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중국이란 뒷문이 열려 있는 한 경제 제재로는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오래전에 증명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경사(傾斜) 외교도 전혀 소득이 없지는 않았는데 중국이란 뒷문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런 상태로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강화한다고 해도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제 경제 외교 군사의 구별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 봐야 할 시점이다.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여기서 저지에 실패하면 미래는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970년대 이상무의 야구만화 ‘독고탁’은 허영만의 ‘각시탈’과 함께 초등학교 시절 내 또래를 사로잡았던 만화다. 교과서 외의 책은 별로 읽어 본 적이 없는 우리가 뜻밖에도 출판물에서 발견한 재밋거리였다. 만홧가게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많은 만화를 봤지만 두 만화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더 좋아했던 쪽을 들자면 독고탁이다. 각시탈에서는 좋은 각시탈과 나쁜 일본 경찰이라는 대립이 자꾸 보다 보면 지루하게 느껴지는 데 비해 독고탁에서는 반항적이지만 다감한 독고탁과 성실하지만 냉정한 독고준의 갈등이 보다 다층적인 울림을 갖는다. ▷우리 만화사에도 간혹 불쑥 솟아오른 황금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독고탁과 각시탈 이후 그렇게 큰 관심을 끄는 만화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학생 시절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박봉성의 ‘신의 아들’이 나왔을 때 다시 한번 만화에 빠져들었다. 특히 공포의 외인구단은 처음 몇 권인가를 빌려 보다가 끝까지 보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어 밤늦게 셔터를 내린 만홧가게 문을 두드려 나머지를 모두 빌려 본 기억이 난다. ▷만화는 제9의 예술로도 불린다. 각 세대에는 그 세대마다의 만화가 있다. 요즘은 웹툰이 만화를 대신한다. 윤태호의 ‘미생’이나 최규석의 ‘송곳’ 같은 인기 웹툰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독고탁과 각시탈 이전에는 김용환의 ‘코주부’나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같은 네 컷짜리 신문 만화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여성들에게는 순정만화 ‘캔디’ ‘베르사이유의 장미’ ‘북해의 별’ 등에 대해 저마다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독고탁은 내 또래에게 단순한 만화 이상이었다. 영국 소년은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 프랑스 소년은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 미국 소년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역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 나가는 의지를 배웠다. 우리에게는 그에 필적하는 소년 소설이 없었다. 독고탁의 분투가 그 공백을 일부 채웠다. 그제 작업실에서 작품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 작가에게 늦었지만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정명훈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정명훈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활약하는 두 한국인 음악가 정명훈과 백건우의 인간적 정감이 자주 비교된다. 백건우가 100점이라면 정명훈은 글쎄,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럼에도 정명훈은 연주가 있을 때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찾아가 듣고 싶은 지휘자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정 씨가 박현정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와 빚은 갈등에 대해 어제 ‘문명사회에서 용납하지 못할 박해를 당했다’며 서울시향 예술감독직을 사임했다. ▷하루 전날 서울시향 이사회는 정 씨와의 재계약을 보류했다. 정 씨의 부인 구순열 씨가 박 전 대표 음해를 직접 지시한 정황을 검경이 포착했다는 보도에 따른 것이다. 정 씨가 인심을 얻지 못한 데는 가족과 인척이 설친 탓도 있다. 구 씨는 정트리오의 멤버이자 정 씨의 누나인 첼리스트 정명화 씨의 시누이다. 구 씨가 겹사돈 관계에서 오는 남다른 영향력으로 매니저 일에 개입하는 데다 인척들이 부수적인 업무를 편의적으로 맡았다고 한다. ▷동아시아 출신의 세계적 마에스트로로는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와 한국의 정명훈을 두 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오자와의 음악은 유려하지만 디테일에 집착하는 반면 정 씨의 음악은 선이 굵고 구조가 강하다. 그럼에도 오자와가 세계적인 지휘자로 더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오자와에게는 일본이라는 클래식 음악 강국의 후원이 있었다. 정 씨에 대한 한국의 후원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오자와 같은 겸손한 인간적 매력도 정 씨에게선 잘 보이지 않는다. ▷정 씨가 박 전 대표에게 억울하게 걸려든 측면도 없지 않다. 본래 서울시향 갈등은 박 전 대표와 사무국 소속 직원 사이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교묘하게 대표와 예술감독의 불화로 갈등의 프레임을 바꿔 시향 직원들의 인권 문제로 시작된 일이 정 씨의 부적절한 처신의 문제로 쟁점이 바뀌었다. 정 씨가 서울시향을 떠나게 된 것은 정 씨에게도, 서울시향에도, 그를 좋아하는 음악 팬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학생들이 뽑은 올해의 신조어에 ‘금수저’가 꼽혔다. 소셜미디어의 유행어가 흔히 그렇듯이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은 과장됐지만 그럼에도 우리 시대의 경제적 어려움을 최첨단에서 겪는 젊은이들의 예민한 인식을 담고 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인 ‘응답하라 1988년’의 시대는 지금과 달랐다. 그때도 빈부 격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이 느끼는 격차라는 게 기껏해야 나이키(Nike)를 신느냐 짝퉁 나이스(Nice)를 신느냐 정도였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전까지만 해도 취업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뉘 집 자식은 좀 나은 회사에 취직하고 뉘 집 자식은 좀 못한 회사에 취직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사촌이나 이웃이 잘돼서 배 아픈 건 있었지만 좌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꼭 재벌의 자녀여서 금수저가 아니다. 작은 문구 수입업체를 운영하는 한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다. 자식이 있는데 공부를 안 해 고민이라면서 시원찮은 대학에 가면 졸업이나 시킨 뒤 자기 회사에 나와 돕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상위권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안 되는 세상에 수십 군데 취업원서를 내보다가 안 될 경우 비빌 언덕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나이키와 나이스의 차이와는 비교가 안 된다. 한국은 광복 이후 세계적으로 봐도 유난히 평등한 사회로 출발했다. 조선시대 지배계급 양반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 70년의 긴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계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형성됐다. 개발독재 시대에 제 능력 이상으로 부를 축적한 소수의 재벌만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이웃과 사촌 중에서도 부동산 혹은 주식 투자로 한몫 잡은 이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에서 벌어졌던 자산의 차이가 1995년 세계화 선언 무렵부터 증폭되기 시작했고 이후 칸막이는 점점 뛰어넘기 어려워졌다. 지금은 교육 기회가 평등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영어 능력에는 외국 생활 경험이 결정적이고 기타 사교육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로스쿨을 둘러싼 ‘현대판 음서제’ 논란은 교육의 기회뿐 아니라 취업의 기회마저 불평등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반영한다. 윤후덕 신기남 의원의 사례를 로스쿨만의 문제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취업문이 좁아지자 부모가 자녀의 취업에까지 개입하는 더 일반적인 현상의 특수한 사례로 봐야 한다. 18세기 조선 영조 때 유수원이란 실학자가 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은 본래 천민이 아닌 한 누구나 벼슬아치가 될 수 있는 사회로 15세기 건국 초에는 시골구석에서도 명신(名臣)과 재상(宰相)이 많이 나왔으나 16세기 후반 벼슬아치의 세습성이 높아지기 시작해 17세기에 이르러 양반 중인 평민의 계층구조가 확립됐다. 한영우 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2013년 ‘과거, 출세의 사다리’란 책에서 과거 합격자들의 명단인 방목(榜目)을 분석해 유수원의 지적을 통계적으로 증명했다. 유수원은 조선 사회의 세습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전환점을 사림이 뿌리내린 명종∼선조 때로 봤다. 조선 건국으로부터 160년 정도가 흘렀을 때다. 그때는 퇴계와 율곡이 활약한 유교 문화의 전성기였다. 사림이 표방한 도덕정치의 이상(理想)은 높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 속에서 불평등이 자라고 있었다. 조선 시대 향교는 농사철에는 방학을 하고 추수 뒤에 개학을 했다. 향교에 입학하면 관비(官費)로 배우므로 학비가 필요 없었다. 조선 초기 젊은이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정승과 판서에 오를 수 있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 전 교수는 주장한다. 서원의 설립은 사림이 중심이 돼 유교 교육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인 개혁이었으나 거기서 공부하려면 쌀 수십 가마니를 갖다 줘야 했다. 한미한 집안에서 자란 젊은이들의 꿈이 사라지면서 조선은 패망으로 이끌려 갔다는 분석이 있다. 독일 학자 빌헬름 훔볼트는 “역사적 진실이란 마치 구름과 같아서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때만 그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우리도 지금 광복 70년 만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전환기로 들어서고 있지는 않은지 좀 떨어져 바라볼 필요가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참신함에 대한 나의 정의는 처음엔 어색한데 왠지 좋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영복의 책 ‘더불어 숲’이 1998년 처음 나왔을 때 제목이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부사형 동사 ‘더불어’와 명사 ‘숲’을 병치시킨 것이 문법적으로 말은 안 되지만 그래서 더 절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안철수 탈당 이후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새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정했다. ‘더불어 숲’의 모방 같은 느낌은 들지만 그런 이름을 당명에 쓴다는 건 역시 과감한 시도다. ▷손혜원 당 홍보위원장은 다른 후보 당명인 ‘민주소나무당’에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홍보 전문가의 감각과 정치인의 감각이 달랐다. 내가 보기에는 둘 다 불필요하게 감상적인 이름이다. 그저 민주당이라고 하면 좋을 텐데 그 이름의 다른 정당이 이미 있어 할 수 없었나 보다. 다만 약칭 ‘더민주당’은 소셜미디어에서처럼 무조건 줄여 쓰는 방식도 문제지만 ‘더 민주적인 당’으로 이해되기보다는 ‘더(the) 민주당’ 같은 느낌을 줘 경박하다. 우리 집 근처에는 ‘더빠’도 있고 ‘더노래방’도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 제목을 ‘수도원의 살인’으로 달려다가 ‘장미의 이름’으로 바꿨다.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책을 읽어봐도 알쏭달쏭하다. 에코는 책 말미에 라틴어로 된 시구를 단서로 남겼다. ‘지난날의 장미는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역시 알쏭달쏭하지만 한국 제1야당이 남긴 덧없는 이름들이 떠오른다. 신민당-신한민주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민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공자는 정명순행(正名順行), 이름을 바로 해야 만사가 잘된다고 했다. 쉽게 정명이라고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올해 미얀마에서 선거혁명을 일으킨 아웅산 수지 여사는 셰익스피어를 인용해 ‘장미는 무엇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뒤집어서 개명을 쇄신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이런 경계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장미도 아닌데 장미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향기로운 것은 아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의 권위 있는 영어사전 메리엄웹스터는 올해 대표 단어로 접미사인 ‘-ism(주의)’을 꼽았다. 올 한 해 메리엄웹스터 웹사이트의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찾은 단어가 사회주의(socialism), 인종주의(racism), 공산주의(communism), 자본주의(capitalism), 테러리즘(terrorism)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 금지를 제안한 후에는 파시즘(fascism)을 검색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는 올해 일본에서 벌어진 일을 대표하는 한자로 ‘安(안)’을 선정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이름에 ‘安’이 들어 있고 아베 정권이 추진한 안보법(安保法)을 둘러싸고 국론이 양분됐으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나라의 평안(平安)을 기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는 것이다. ‘안’이 추천된 여러 이유 중에는 일본군 위안부(慰安婦)가 자주 거론된 것도 들어가 우리로서는 씁쓸한 느낌이 든다. ▷한국에는 이런 걸 뽑는 단체가 없지만 올해 한국을 대표하는 단어를 꼽아보라면 ‘-포’ ‘헬-’을 꼽고 싶다. 청년들을 가리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여기에 인간관계와 주택 구입을 더한 ‘5포’를 넘어, 개인의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다고 해서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예 포기하는 항목의 수를 개방해 놓은 ‘n포’란 말도 있다. 개인적인 포기를 넘어 우리나라를 더 이상 희망 없는 땅이라고 자조해서 부르는 ‘헬(hell)조선’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올 연말 개봉한 한 영화의 제목은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다. 누군가 ‘열정을 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니까 상대방이 말을 끊으며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쏘아붙인다. 힘든 일에 비해 형편없는 보수를 지칭하는 ‘열정페이’란 말이 이미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게 불과 4년 전인데 어느새 이런 식의 위로조차도 냉소적인 반응으로 돌아오는 시대로 바뀌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일본에서 로스쿨 학생들도 고시학원에 다닌다는 흥미로운 얘기를 읽었다. 미국 ‘위스콘신 국제법 저널’에 사이토 다카히로라는 일본인 변호사가 기고한 ‘일본 법 교육의 비극: 일본의 미국식 로스쿨’이란 글에서다. 대한변협 김태환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로스쿨에도 학습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 강사들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사법시험 체제’의 폐해로 지목돼 로스쿨이 없애고자 한 것이 법대의 일방적 수업 방식과 고시학원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로스쿨 학생이 고시학원에 가서, 그것도 교수도 아닌 학원 강사의 강의를 듣는 장면은 로스쿨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다. 사이토 변호사의 비판은 신랄하다. 일본 한국이 속한 대륙법계 국가와 미국은 법을 공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주로 성문(成文) 법전 대신 판례가 있는 미국에서는 교수와의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판례 연구를 통해 법적 추론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대륙법계에서는 민법이면 민법전, 형법이면 형법전을 읽어 법조문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공부이고 그래서 시간을 아끼다 보니 토론보다는 일방적 강의가 선호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시험에 합격한 적이 없는 교수들의 아카데믹한 강의보다는 변호사 출신 학원 강사의 맞춤형 강의가 더 시간을 절약해 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흩어져 있는 수많은 판례를 섭렵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률가로서의 기본을 갖추는 데는 3년이면 충분하고 그 이후는 알아서 하는 것으로 본다. 대륙법계에서는 법률가로 활동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주요 법의 기본서가 있다. 로스쿨 3년은 이런 기본서를 읽고 이해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인데 실무교육까지 받아가면서 해야 한다. 여기에 학부 때 전공을 바탕으로 한 특기 개발까지 요구받는다.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로스쿨은 실무교육 겸비를 표방했지만 실무교육을 시킬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판검사나 변호사 출신이 일부 충원되긴 했지만 실무 경험 없는 법대 교수들이 그대로 로스쿨 교수가 돼 교수진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로스쿨이 실무교육을 시킬 여유도 능력도 없다는 건 로스쿨 교수들이 가장 잘 안다. 로스쿨 교수들이 여론을 의식해 크게 떠들고 있지 않지만 사시가 폐지되고 나면 일본처럼 로스쿨 출신 합격자를 위한 1년짜리 사법연수 과정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 뻔하다. 사법시험 체제의 결정적 폐해는 3%대의 낮은 합격률이다. 법대생만이 아니라 문과생 전체가 사시 공부에 매달려 대학이 황폐화하고 상당수가 사시 낭인이 돼 인재가 사장된다. 우리나라도 2001년부터 응시자격을 법학 35학점 이수자로 제한했다. 그것으로 모자랐다면 독일처럼 법대 출신에게만 응시자격을 주는 방식으로 갔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개천에서 용 나기’를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이지만 입학 자체가 변호사 자격을 상당 정도 보장하기 때문에 들어가기가 바늘구멍 같은 로스쿨 체제보다는 훨씬 낫다.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로스쿨 도입을 망설이다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도입을 결정했다. 일본이 2004년 도입한 것이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쫓아간 계기가 됐다. 그러나 사이토 변호사에 따르면 일본의 사법개혁자문위원회도 미국식 로스쿨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도입했고 일본 국민도 무지해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더 몰랐지만 일본이 어련히 알아서 했겠나 싶어 따라하다가 낭패를 본 꼴이다. 일본은 2011년 구(舊)사법시험의 폐지와 동시에 예비시험을 도입해 투 트랙(two track)을 유지했다. 물론 예비시험은 해결책도 아니었을뿐더러 로스쿨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로스쿨이라는 근원적 실패를 고치지 않고 보완하려다 발생한 부차적 실패일 뿐이다. 우리나라 로스쿨 측 주장은 ‘로스쿨은 도입됐고, 도입됐으니 살아야 하고, 따라서 사시 유예나 예비시험 도입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 예비시험이 실패라고 하면서도 로스쿨의 실패는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그 실패의 원인을 사시 존치에서 찾는다. 일본은 유턴을 고민하는데 우리는 실패의 열차에 올라타 직진(直進)만을 고집하는 꼴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