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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당시 세계적 화제를 불러일으킨 O J 심슨 사건을 다룬 드라마 ‘더 피플 vs O J 심슨: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가 에미상 9개 부문을 휩쓸었다. 18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68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더 피플…’은 리미티드 시리즈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코트니 B 밴스), 여우주연상(세라 폴슨) 등을 포함해 9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지난해 방영된 ‘더 피플…’은 1970년대 유명 미식축구 선수이자 영화배우인 O J 심슨이 전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뒤 2년 가까이 벌어진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실화를 담았다. 쿠바 구딩 주니어가 심슨 역할을 맡았고, ‘프렌즈’의 로스로 유명한 데이비드 슈위머도 출연했다. 변호사를 연기한 존 트래볼타는 이번 에미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는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논란의 사건을 다시 되짚어보는 시리즈. 내년에 방영할 시즌2는 2005년 8월 말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둘러싼 문제점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에미상을 휩쓴 시즌1은 내년에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에서도 방영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올해 시즌6까지 이어지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왕좌의 게임’은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12개의 상을 거머쥐며 위용을 과시했다. ‘왕좌의 게임’은 지난해에도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왕좌의 게임’은 조지 R R 마틴의 판타지소설이 원작으로 왕국의 통치권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코미디 부문은 미국 부통령을 소재로 한 ‘빕’이 작품상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은 최근 뜨거운 미국 대선 열기를 반영한 듯 정치적 발언이 무수히 쏟아졌다. 대부분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 관한 조소였다. 특히 공화당 경선 주자였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시상식 오프닝 영상에서 우버택시 운전사로 출연해 사회자 지미 키멀을 태운 뒤 “당신이 긍정적인 (선거) 캠페인을 벌이면 유권자들은 옳은 선택을 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 “농담인 거 알지”라며 자학 개그를 펼쳤다. 인도계 코미디언인 아지즈 안사리도 “앞으로 트럼프와 함께하기로 했다. 지금 시상식장에 있는 무슬림과 라틴계는 모두 나가 달라”고 농담을 던졌다. ‘빕’에서 대통령 역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는 “(트럼프가 등장한) 지금의 정치 풍토에 사과한다”며 “우리 작품은 원래 풍자 코미디였는데 점점 현실을 반영한 다큐멘터리가 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더 피플…’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밴스 역시 “오바마가 가고 힐러리가 온다”며 트럼프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2일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경주 지진 때 공영방송인 KBS가 국가 재난 주관 방송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KBS1 TV는 이날 오후 7시 44분 규모 5.1의 1차 지진에 이어 8시 32분 규모 5.8의 본진(本震)으로 전국이 공포에 휩싸였을 때 정규 편성인 ‘우리말 겨루기’와 드라마 ‘별난 가족’을 방송했다. 중간에 자막과 4분짜리 특보를 내보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9시 뉴스가 시작할 때까지 1시간 10여 분간 KBS는 사실상 ‘재난 방송 공백 사태’였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KBS는 “첫 지진 3분 후 1TV에서 자막을 내보냈다. 드라마 방송을 계속한 것은 (지진과 관련해) 확인된 정보가 한정돼 특보를 길게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KBS를 포함한 69개 방송사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방발법)에 따라 ‘재난 3단계’부터 국민안전처, 기상청 등의 요청을 받으면 ‘재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제공해야 한다. 재난 3단계는 지진 기준으로는 규모 3.5(내륙) 또는 4.0(해역) 이상이다. KBS와 달리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36초 후 경보음과 함께 자막을 내보냈고, 1분 30여 초 만에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전면 특보로 전환했다. 특보를 편성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도 화면의 3분의 1 이상을 그래픽과 자막으로 채워 재난 상황, 대피 요령 등의 정보를 내보낸다. 국내에서는 재난 방송을 얼마나 빨리 내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물론이고 지연 시 제재 수단도 없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강풍, 호우가 많았던 올 2분기(4∼6월) 재난방송 40건 중 상황 발생 2시간 후에야 전파를 탄 비율이 17%나 됐다. 해당 방송사들은 “뉴스 시간이 아니다”, “심야에 인력이 없다”고 지연 이유를 해명했다. 김 의원은 “재해로 통신이 두절되면 정보를 얻을 곳은 방송뿐이지만 이번 지진에서 재난 방송은 신속한 정보 제공에 실패했다. 제도를 정비해 ‘부실 재난 방송’의 오명을 벗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서형석 skytree08@donga.com·정양환·김재희 기자}
김지훈 감독. 설경구 손예진 김상경 출연.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타워스카이의 시설관리팀장 대호(김상경)는 딸 하나(조민아)와 함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대호가 워낙 바빠 대호가 연모하는 매니저 윤희(손예진)가 하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한편 전설로 불리는 여의도소방서 소방대장 영기(설경구)는 결혼 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내와의 데이트를 약속한다. 당일 저녁,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고 있는 타워스카이에서 예기치 못한 화재 사고가 발생하는데….}
칼 린슈 감독. 키아누 리브스, 사나다 히로유키, 시바사키 고 출연. 일본 봉건 시대에 아사노 영주는 군주로서 무사들에게서 존경받는 인물. 어느 날 요괴가 산다는 숲에서 혼혈인 소년 ‘카이’(키아누 리브스)를 발견하고, 주위의 만류에도 그를 수하에 거둔다. 세월이 흘러 영주의 딸 미카(시바사키 고)는 성인이 된 카이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인근 영주 키라의 계략에 빠져 아사노는 명예를 실추시킨 죄로 할복을 하게 된다. 결국 미카는 강제로 키라에게 시집가고, 카이는 노예로 팔려가게 되는데….}
14일 마지막 회를 앞두고 있는 MBC 드라마 ‘W(더블유)’를 집필한 송재정 작가(43)가 W의 대본을 모두 공개했다. 송 작가는 12일 새벽 드라마 홈페이지의 시청자의견 게시판에 “드라마에 애정을 갖고 봐주신 시청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작은 깜짝 선물로 드라마 W의 1∼15회 대본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 16회 대본 역시 14일 방송이 끝나는 대로 올릴 예정이다. 드라마 작가가 방송 대본을 모두 공개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송 작가는 “낯설고 복잡해 (시청자들에게) 의도치 않게 불친절하게 전개돼 송구하다”며 “대본을 읽고 나면 마지막 회를 보는 데 이해가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작가 지망생과 시청자 모두에게 흥미로운 선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한 번도 정확히 밝힌 적이 없는데 ‘W’는 주인공 강철(이종석)이 누가(who) 왜(why) 가족을 죽였는지 찾는다는 의미와 작품의 소재인 만화 속 세상을 뜻하는 ‘원더 월드(Wonder World)’를 일컫는다”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채널A 예능 ‘개밥 주는 남자’에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 양세형 양세찬 씨 형제가 반려견을 위한 노래 ‘견습생’을 만들었다. 채널A는 8일 “양 씨 형제가 ‘개밥…’에서 유명 뮤지션들과 협업해 만든 힙합곡 ‘견습생’을 9일 정오 멜론과 벅스 등 모든 음원 서비스에서 동시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 곡은 양 씨 형제의 반려견 옥희, 독희를 위한 노래로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음역 대를 고려해 만들었다. ‘견습생’은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조PD가 프로듀싱을 담당했고, 작곡가 윤일상 씨가 작곡했다. 작사는 양 씨 형제와 최근 해체된 걸그룹 ‘포미닛’ 멤버 전지윤 씨, 조PD가 공동 작업했다. 전 씨는 ‘견습생’ 피처링에도 참여했다. 뮤직비디오는 그룹 ‘UV’의 멤버이자 개그맨인 유세윤 씨가 연출을 맡았다. 양 씨 형제는 음원 출시를 기념해 이날 오전 11시 40분 인터넷 생방송인 ‘네이버 V-Live방송’도 진행한다. 전 씨와 래퍼 딘딘 등이 출연하며, 옥희, 독희는 물론 전 씨의 반려견들도 함께한다. 채널A ‘개밥 주는 남자’는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에 방송하는 예능 프로그램. 연예인들과 반려견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양 씨 형제를 비롯해 방송인 주병진 씨, 걸그룹 아이오아이 등이 출연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우리는 초인(超人)을 원한다. 이젠 부정하지 말자. 우린 슈퍼히어로만 보길 바란다. 보통 인간이어선 안 된다. 한국에서 연예인은 그 이상이어야 한다. 대중문화가 ‘초인의 세상’이 될 낌새는 이미 보였다. 진작부터 할리우드 영화는 내다봤으리라. 만화 속에나 살던 이들이 스크린을 지배했다. 한국도 뒤따랐다. 웹툰을 넘나들고(MBC드라마 ‘W’), 과거와 통화하며(tvN ‘시그널’), 속마음까지 들을 수 있거나(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수백 년간 살아 있다(SBS ‘별에서 온 그대’). 한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현실과 가상의 멜팅폿(melting pot) 효과’라고 불렀다. “1차적으론 대중문화 소재를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많이 가져오기 때문이겠죠. 기존 장르 구분이 무너진 데다, ‘만화적 상상력’에 소비자들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한국 시청자는 원래 ‘만화 같은 드라마’에 적응된 상태기도 해요. 김치로 귀싸대기 때리고, 허구한 날 출생의 비밀에 백혈병에…. 게다가 이젠 사이버 공간이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잖아요. 주인공이 초능력 좀 발휘한다고 뭐가 놀랍겠습니까.” 맞다. 아무리 가난해도 재벌 2세(혹은 실장님)가 사랑해주는 그들은 원래부터 특별했다. 평범하지 않으니, 그런 역할 맡아도 어색하지 않은 거다. 그런 초인적 능력에 감화한 시청자들이 그들은 현실에서도 슈퍼히어로가 돼야 한다고 믿는 거다. 이 때문에 초인들의 실수에 무섭도록 엄격하다. 소녀시대 티파니 사건이 그렇지 않을까. 광복절에 욱일기 이모티콘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다니. 금방 내렸다는 건 대중에게 변명으로 받아들여졌다. 반성문도 진정성 논란만 키웠다. 결국 그는 출연하던 KBS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하차했다. 딱히 두둔할 생각은 없다. 연예인은 누리는 만큼 책임이 뒤따른단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 TV 프로그램 관둔다고 생활이 어려워질 리도 없다. 허나 한 ‘20대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한 번쯤 돌이켜봤으면. 성 차별적 요소는 잠시 접어두고 상상해보자. 내 누이가 뭔가 잘못을 저질러 회사에서 쫓겨났다. 숱한 비난과 멸시를 받으며. 그럼 우린 “나가라는데 어쩌겠어. 먹고살 만하니 괜찮아”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언젠가부터 연예인을 분노 표출의 표적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모르긴 해도 조카가 독립투사를 몰랐다고 해서 매국노라 부르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연예인에겐 쉽게 인격모독을 저지르죠. 그런데 이번 사건만 봐도, 욱일기 이모티콘을 만든 ‘스냅챗’을 향한 비난은 크게 들려오지 않습니다. 요즘 연예인을 보는 도덕 기준은 정치인이나 종교인보다도 높아요. 온갖 회한을 그들에게 푸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 힘들어서 그렇다. 삶이 하도 팍팍해서. 세상은 불공평하지. 억울한 일 많지. 근데 어디 가서 하소연도 잘 못한다. 슈퍼히어로들이여, 당신들이 이해해 달라. 초인답게. 다만 우리도 잊지 말자. 계속 초인으로 대하는 한, 그들이 복면을 벗는 날은 오지 않는다. 우릴 믿지 않을 테니.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이돌이 이 땅에 자리 잡은 지 20년, 대한민국의 일상은 아이돌에 둘러싸여 있다. 백화점과 화장품가게, 편의점 등 어디에서나 그들의 미소와 마주한다. TV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수지(미쓰에이)와 설현(AOA), 빅뱅과 EXO 등으로 가득하다.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는 “아이돌 문화가 상품화된 게 아니라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경제이자 문화”라고 했다.○ 10대 팬 문화가 글로벌 한류의 주역으로 1996년 ‘10대들의 승리(High-five of Teenagers·그룹 H.O.T.)’를 외치던 아이돌은 20년 새 세대를 넘어섰다. 당시에도 H.O.T.를 비롯한 젝스키스, S.E.S., 핑클 등의 폭발력은 엄청났다. 허나 2016년 아이돌은 문화를 넘어 산업적 영향력까지 갖춘 ‘한류의 중심’이 됐다. 초기 한류는 아이돌과 크게 상관없었다. ‘사랑이 뭐길래’(1997년 중국중앙(CC)TV 방영)나 ‘겨울연가’(2003년 일본 NHK 방영)처럼 콘텐츠나 배우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러나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이 상황을 변모시켰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은 보고서 ‘싸이, 그 이후의 한류’에서 “2010년대 초반 한류3.0 시대에 접어들며 케이팝이 핵심 키워드가 됐다”며 “아이돌이 외국 공연 등 음악 수출로만 2015년 기준 약 3억5000만 달러(약 3926억 원)를 벌어들였다”고 전했다. 전문가 역시 한류 위상의 제고를 아이돌 최고의 공적으로 꼽는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현재 해외의 한글과 한국 문화 사랑은 아이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며 “H.O.T.나 god 등이 마련한 아이돌 산업의 발판 위에 현 아이돌이 세계인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반대로 한류가 있어 초기 ‘가내수공업’ 수준이던 아이돌이 글로벌 대기업 시장으로 바뀌었다”며 “이젠 아이돌이란 콘텐츠로 산업 다각화와 해외 투자 유치를 이루는 시대”라고 했다.○ 아이돌 지망생 100만 명 시대… 청소년 일탈 완충재 역할도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 등록된 기획사만 1700개가 넘고 잠재적 연예인 지망생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을 꿈꾸며 한국에 거주하거나 입·출국을 반복하는 중국인 지망생도 1000명이 넘는다(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자료). 이렇다 보니 아이돌과 연습생의 근로 환경이나 인권 논란은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이슈가 됐다. 아이돌을 향한 열망을 나쁜 쪽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돌이 청소년 일탈행위에 완충작용을 하는 ‘에어백’ 역할을 해왔다고 봤다. “극단적인 양상을 띠는 극성 팬까지 옹호할 순 없겠죠. 하지만 청소년 마약이나 미혼모 문제가 극심한 해외 상황과 비교할 때, 아이돌은 한국 10대들의 욕구를 해소시켜 주는 창구로서 순기능을 했습니다. 자신의 우상과의 연계를 통해 사회적 건강함을 유지하는 겁니다.” 20년 동안 아이돌 문화가 주류로 올라서며 기성세대의 시각 역시 달라졌다.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이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9.3%가 ‘아이돌이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응답했다. 이솔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는 “20년 전 자식의 연예계 진출을 꺼리던 부모들이 요즘은 적극 지원하는 분위기”라며 “청소년은 물론이고 기성세대도 아이돌을 더이상 ‘딴따라’가 아닌 ‘꿈의 직장’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정양환 ray@donga.com·이지훈 기자}
뻔한 말이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스무 해를 맞은 아이돌 역사에서도 무수히 많은 일이 벌어졌다. 동아일보는 아이돌 전문 비평 웹진 ‘아이돌로지’와 함께 ‘아이돌 20년, 20대 사건’을 뽑았다. 대중문화를 넘어 사회적 파장이 컸던 이슈에 주로 초점을 맞춰 시기순으로 정리했다. [1]H.O.T. 데뷔(1996년)한국 아이돌 역사의 시작. 이전에도 ‘만들어진’ 뮤지션이 없진 않았지만 명확한 타깃을 갖고 철저한 기획 아래 체계적으로 양성된 첫 사례였다. 이후 젝스키스와 S.E.S., 핑클, 베이비복스 등이 등장하며 초기 아이돌 시대를 열었다.[2]SM 코스닥 상장(2000년)소속 아이돌의 성공에 힘입어 SM엔터테인먼트는 업계 최초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이후 YG, JYP 등도 상장하며 아이돌 시장은 문화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3]god 아이돌 최초 앨범 100만 장 돌파(2000년)10대 취향 중심이던 기존 아이돌과 달리 god는 ‘국민그룹’이라고 불리며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누렸다. 2000년 3집은 184만 장, 2001년 4집은 171만 장 이상 판매됐다.[4]젝스키스 & H.O.T. 해체(2000, 2001년)두 그룹의 해체는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을 일으켰다. 반발한 팬들은 시위에 나섰고, 일부 폭력사태도 벌어졌다. 뭣보다 이들의 해체로 불거진 ‘부당계약’ 논란은 지금까지 회자된다.[5]god 박준형 퇴출 번복(2001년)박준형의 열애를 문제 삼아 소속사가 그의 퇴출을 선언했다. 팬들은 신문에 반대 광고를 싣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고, 10일 만에 퇴출이 번복됐다. 아이돌의 사생활이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고, 소속사를 상대로 팬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킨 최초의 사례.[6]보아 오리콘 차트 1위(2002년)현재의 한류를 이끈 선구자. 일본 첫 정규앨범은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앨범차트 1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만 1000만 장 이상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당시 일본에선 “보아의 경제적 가치는 2000억 원”이라고 평가했다.[7]이효리 ‘텐미닛’ 열풍(2003년)핑클 이후 첫 솔로앨범 타이틀곡 ‘10 minutes’의 성공은 그를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 아이콘으로 등극시켰다. 아이돌 출신으론 처음으로 2009년 TV 연예대상도 받았다. 아이돌 이후의 방향을 성공적으로 제시한 모델이란 평가를 받았다.[8]비 타임지 100인 선정(2006년)가수와 배우를 병행하며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2006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돼 한국 아이돌의 위상을 떨쳤다.[9]빅뱅 ‘거짓말’ 발표(2007년)데뷔 이듬해 내놓은 ‘거짓말’이 큰 인기를 얻으며 본격적인 보이그룹의 세대교체를 알렸다. 리더 지드래곤은 작사·작곡을 통해 음악적 역량을 선보여 ‘진화한 아이돌’의 모델이 됐다.[10]원더걸스 ‘Tell Me’ 열풍(2007년)복고풍 음악과 귀여운 소녀의 결합이란 2세대 걸그룹의 성공 공식을 제시했다. 향후 ‘삼촌팬’으로 불리는 성인 남성 팬의 등장을 이끌었다. 2009년 미국 데뷔 싱글 ‘Nobody’는 한국 최초로 ‘빌보드 핫100’ 76위에 올랐다.[11]동방신기 전속계약 소송(2009년)세 멤버가 7월 SM을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제기했다. ‘노예계약’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했고, 표준계약서 도입의 계기가 됐다.[12]슈퍼주니어 한경 탈퇴(2009년)같은 해 12월 슈퍼주니어의 중국인 멤버 한경이 전속계약을 문제 삼고 탈퇴했다. 2014, 2015년엔 EXO의 세 중국인 멤버 역시 계약무효 소송을 벌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13]2PM 재범 탈퇴(2010년)아이돌 ‘2PM’ 리더 박재범이 데뷔 전 인터넷에 썼던 글이 한국 비하로 받아들여져 공분을 샀다. 자진 탈퇴로 마무리됐지만 당시 ‘제2의 유승준 사태’로 불리며 사회적 논란을 만들었다.[14]파리 플래시몹(2011년)SM타운의 프랑스 공연 당시 표를 구하지 못한 팬 수백 명이 루브르박물관 앞에 모여 연장 공연을 요구해 성사시켰다. 이후 유럽과 북·남미로도 플래시몹이 번지며 한류의 세계화를 확인시켜 준 상징적 사건.[15]동방신기 일본 5대 돔 투어(2012년)동방신기가 한국 가수 최초로 일본 도쿄, 오사카 등에서 돔 콘서트를 개최했다. 해외 가수로는 본조비와 이글스, 빌리 조엘에 이어 4번째. [16]티아라 ‘왕따’ 논란(2012년)당시 최고 인기였던 티아라는 7월 일본 도쿄 부도칸 무대에 섰다. 그러나 현장에서 주고받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이 ‘왕따’ 의혹을 일으키며 인기가 추락했다. 연예계 SNS의 위력을 보여준 사례.[17]카라 도쿄돔 입성(2013년)카라가 한국 걸그룹 최초로 일본 도쿄돔 콘서트를 개최했다. 첫 일본 싱글 ‘미스터’는 아시아 여성 그룹 최초로 오리콘 싱글 차트 주간 톱10에 들어갔다.[18]EXO 앨범판매 100만 장 돌파(2013년)첫 정규앨범 ‘XOXO’가 150만 장 이상 팔렸다. 아이돌이 100만 장을 넘긴 건 god 이후 12년 만. 타이틀곡 ‘으르렁’의 인기도 컸지만 370만 명에 이르는 팬클럽의 위력을 보여줬다.[19]레이디스코드 사고(2014년)9월 새벽 교통사고로 걸그룹 ‘레이디스코드’ 멤버 은비와 리세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 사건은 지속적으로 지적됐던 아이돌의 과도한 스케줄과 관리 부족 문제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20]트와이스 쯔위 논란(2016년)대만 출신 쯔위가 한 방송에서 대만기를 흔들었다가 중국의 공분을 샀다. 아이돌 산업이 국제 정치이슈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10대 소녀는 고개를 조아렸고, 미성년 연예인에 대한 처우 논란도 이어졌다. 정양환 ray@donga.com·임희윤 기자}
‘H.O.T.’부터 ‘빅뱅’, 그리고 ‘트와이스’까지. 세계에서 유례없는 한국의 ‘아이돌’ 문화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국내에서 아이돌은 통상 철저한 기획 아래 체계적으로 양성된 10, 20대 남녀 가수를 일컫는다. 최초의 아이돌로 불리는 H.O.T.가 1집 앨범 발표와 함께 TV에 처음 출연한 때가 1996년 9월 7일이었다. 한류의 확산은 아이돌이 주역으로 이뤄낸 ‘문화적 혁명’이었다. 지난해 한류의 직간접 영향을 받은 수출 총액은 8조 원이 넘는다. 대표적 연예기획사인 SM과 YG, JYP, FNC, 큐브의 시가총액은 현재 약 1조6000억 원에 이른다. 아이돌은 사회적 인식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은 ‘연예인’(약 40%)이 1위다. 일부 청소년 문화로 폄하하던 시각도 바뀌었다. 설문조사업체 엠브레인이 국민 2000명에게 휴대전화를 통해 조사한 결과 79.3%가 ‘아이돌이 한국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특히 팬덤(fandom·특정 인물이나 분야에 몰입하는 집단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40대와 50대 이상도 각각 80.3%, 77.3%가 아이돌 문화를 긍정적으로 여겼다. 3회에 걸쳐 시리즈를 게재한다. 정양환 ray@donga.com·임희윤·이지훈 기자}
‘I‘m so sorry but I love you 다 거짓말….’(빅뱅 ‘거짓말’)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No No No….’(소녀시대 ‘Gee’) 최근 서울 한 대학의 시위 현장에서 투쟁가 대신 소녀시대의 노래가 불렸다. 지난달 빅뱅 데뷔 10주년 기념공연엔 6만여 관객이 몰렸다. 이달 10, 11일 열리는 젝스키스의 재결합 공연 입장권은 이미 매진됐다. 7일은 H.O.T.가 데뷔하며 한국 아이돌 역사가 시작된 지 꼭 20년 되는 날이다. 아이돌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는 즈음에 동아일보는 20년간 최고 아이돌 가수와 노래를 뽑았다. 7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일반 시민 2000명, 대중음악 전문가 30명을 상대로 설문했다. 일반인 설문은 웹진 ‘아이돌로지’, 조사업체 엠브레인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H.O.T. 이후 현재까지 아이돌과 노래들을 대상으로 했다.○ 30대는 H.O.T., 50대 이상은 god 선호일반인과 전문가 모두 약속한 듯 빅뱅과 소녀시대를 최고의 남녀 아이돌로, ‘거짓말’(빅뱅)과 ‘Gee’(소녀시대)를 남녀 아이돌 노래 중 최고로 지목했다. 성(性)과 연령을 막론하고 압도적이었다. 전문가들은 빅뱅에 대해 “대중성과 음악성, 솔로와 그룹 활동, 시각적 매력과 창작 능력을 두루 갖추고 10년 이상 생명력을 지켰다”는 점을 높게 쳤다. 소녀시대에 대해서는 “성별을 불문하고 지지할 만한 걸 그룹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조사 결과 아이돌이 태동한 1990년대에 10대를 보낸 30대는 ‘원조 아이돌’에 대한 향수가 여전했다. H.O.T.와 ‘캔디’, 젝스키스와 ‘커플’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2000년은 아이돌 역사에서 또 한 번 전기가 마련된 해였다. god가 ‘거짓말’이 담긴 음반을 180만 장 판매하며 ‘국민 그룹’이란 신조어를 만든 해. 아이돌의 지위가 ‘10대들의 별난 우상’에서 ‘보편적 유명인’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각인된 30대 이상 전 연령대는 10, 20대와 달리 god를 최상위권으로 꼽았다. 50대 이상은 빅뱅이 아닌 god의 ‘거짓말’을 최고 남성 아이돌 노래로 쳤다. 10대는 빅뱅의 ‘거짓말’ 다음으로 ‘으르렁’(EXO), ‘쏘리 쏘리’(슈퍼주니어)에 표를 던졌다.○ 여성은 이효리의 ‘10 Minutes’, 남성은 트와이스에 지지 몰려 여성 아이돌과 노래에서 남녀의 선호도 차가 두드러졌다. 여성 아이돌 최고의 노래로 여성은 ‘Tell me’(원더걸스)를 꼽은 반면 남성은 ‘Gee’를 선택했다. 씨스타와 트와이스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드러나는 일종의 리트머스였다. 여성은 씨스타, 남성은 트와이스에 2배 가까운 지지를 보낸 것. 당찬 여성상을 내비친 ‘10 Minutes’(이효리) ‘Bad Girl Good Girl’(미쓰에이)에도 여성의 선호도가 높았다. 특히 ‘10 Minutes’는 여성 응답자 사이에서 ‘Tell me’, ‘Gee’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었다. ‘CHEER UP’(트와이스)은 귀엽고 발랄한 멤버들의 인기와 맞물려 남성의 지지가 몰렸다. 평단은 샤이니, f(x)의 독특한 음악에 무게감을 실어줬다. 투쟁가처럼 불려 화제가 된 ‘다시 만난 세계’(소녀시대)도 이들이 특히 주목한 노래였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빅뱅의 ‘거짓말’, 원더걸스의 ‘Tell me’가 히트하고 소녀시대 원더걸스 샤이니가 데뷔한 2007, 2008년이 아이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면서 “아이돌이 소수 팬덤 문화에서 국민적 관심사로 확실히 올라섰고, 현재의 케이팝 붐의 씨앗을 심은 기반이 이때 만들어졌다”고 평했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 30명 명단 ::강일권 김경진 김봉현 김성환 김영대 김윤하 남성훈 박준우 배순탁 서정민갑 송기철 송명하 이경준 이대화 차우진 최규성 최지선 한동윤 한명륜(이상 대중음악평론가), 마두식(Mnet ‘엠카운트다운’ PD), 미묘(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 박정규(MBC TV ‘쇼! 음악중심’ CP), 신형관(Mnet 콘텐츠부문장), 안동진(MBC FM4U ‘두 시의 데이트 박경림입니다’ PD), 윤의준(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PD), 한경천(KBS 2TV ‘뮤직뱅크’ CP), 정양환 임희윤 장선희 이지훈(이상 동아일보 문화부 트렌드팀 기자) 임희윤 imi@donga.com·정양환·이지훈 기자}
《 ‘취준생(취업준비생) 100만 명 시대.’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15∼29세)은 65만2000명. 허나 전문가들은 나이나 이직자 등을 고려하면 실제 취준생은 10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본다. 일하고 싶어도, 일해야 하는데도 일하지 못하는 심정은 얼마나 괴로울까. 채널A에서 31일 오후 8시 20분 첫 방송되는 드라마 ‘나는 취준생이다’는 고단한 취준생들을 위로하고 조금이나마 도움 되는 정보를 전하는 작품이다. 고용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채널A의 첫 웹드라마로 30일 오후 10시 네이버TV캐스트를 통해 앞서 공개되며 큰 관심을 받았다. 》○ “아이돌 연습생도 취준생과 마찬가지”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나는 취준생이다’ 기자간담회에는 아이돌 걸그룹 ‘러블리즈’의 이미주와 배우 한재석 김윤배 이영훈이 참석해 출연 소감을 밝혔다. 이번 작품이 첫 연기 도전인 이미주는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연습생 시절 힘든 순간이 많았는데 취준생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공감하며 많이 배웠다”며 “‘안 되는 일은 없다’는 열정을 갖고 좋은 결과를 이뤄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러블리즈는 2014년 데뷔해 ‘아츄(Ah-Choo)’ ‘데스티니(Destiny)’ 등으로 인기를 얻은 8인조 걸그룹. 이미주는 ‘열정페이’를 받으며 고단한 사회생활을 하는 영희 역을 맡았다. tvN ‘SNL 코리아’에서 친숙해진 배우 한재석은 치열한 취업 경쟁을 헤쳐 나가는 청년 영규 역을 맡았다. 한재석은 “배우가 작품에서 역할을 맡기 위해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치르고 준비하는 과정이 취준생의 고단한 삶과 많이 닮았다”며 “주위에 취준생 친구도 많고 실제 커피숍 아르바이트도 오래 해 봐서 그런 경험을 녹이려 애썼다”고 말했다. 이미주에 대해서는 “극중 여동생으로 나오는데 진짜 친동생처럼 발랄하고 귀여워서 촬영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취준생… 서로가 다독여줬으면” ‘나는 취준생이다’는 모두 5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준비 △지원 △면접 △취직 △이직 등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을 주제별로 담았다. 김건준 PD는 “제작에 앞서 고용노동부 자료를 많이 참조하고 실제 취준생을 수없이 만나 취재했다”며 “나 스스로를 언제 잘릴지 모르는 잠재적 취준생이라 여기며 제작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에서 ‘스펙맨’을 맡은 이영훈은 “높은 학력과 뛰어난 외국어 실력이 취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여기는 역할”이라며 “이번 작품을 통해 (스펙 외에도) 다양한 취업의 길이 있다는 걸 배웠다”고 털어놨다. 한재석도 “열정만으로 맨땅에 헤딩할 순 없겠지만 현실적인 준비와 정보를 바탕으로 끈기 있게 버틸 수 있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드라마에서는 청년 말고도 중장년 취준생도 함께 다룬다. 배우 조형기가 정년퇴직 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아빠, 개그우먼 박미선이 가정주부 생활로 경력이 단절됐다가 재취업을 꿈꾸는 엄마로 출연했다. 김 PD는 “취업을 고민하는 모든 세대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웃음에는 퇴직이 없소. 나 죽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오.”(1997년 자서전 ‘코미디 위의 인생’에서) 영원한 ‘막둥이’, 한국 코미디의 큰 별 구봉서(具鳳書) 씨가 27일 세상에 은퇴를 고(告)했다. 향년 90세. 유족 측은 구 씨가 폐렴으로 열흘 전쯤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상태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1945년 악극단 희극배우로 시작해 배삼룡 서영춘 곽규석 등과 함께 텔레비전 코미디의 기틀을 잡은 1세대 코미디언이다. 400여 편의 영화와 980여 편의 방송에 출연했으며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등의 유행어로도 인기를 얻었다. 구 씨는 2009년 목욕탕에서 넘어지며 뇌출혈을 일으켜 뇌수술을 받은 뒤 휠체어 신세를 져왔다.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27일과 28일 고인의 절친한 친구인 송해 씨(89)를 비롯해 윤복희, 서수남, 엄용수, 이홍렬, 심형래, 유재석, 강호동 등 연예계 동료와 후배들이 찾아와 희극계 대부의 영면을 슬퍼했다. 평소 대중에게 웃음을 주던 코미디언, 개그맨들은 이날만큼은 침통한 얼굴로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다. 특히 고인보다 한 살 적은 송해 씨는 28일 오전부터 밤 12시까지 세 차례나 빈소를 들러 조문했다. 송 씨는 “두 달 전에 고인을 만나 뵀는데 그때도 그렇게 밝은 웃음을 지으셨다”며 “오늘도 오후에 비가 왔는데 병원 근처에 무지개가 뜬 모습을 보니 구 선생이 우리에게 끝까지 웃음을 짓게 해주신 것 같다”고 추모했다. 송 씨는 또 “구 선생이 돌아가셔서 이제는 내가 코미디언계에서 최고령이 됐다”며 “코미디언 후배들에게 늘 ‘책을 읽으라’고 말씀해 주셨던 고인처럼 후배들을 잘 챙기겠다”고 말했다. 고인을 따랐던 후배인 엄용수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은 “코미디는 물론이고 영화 악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보여준 출중한 연기는 후배들이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며 “코미디언 중에 어려운 사람이 많으니 ‘조의금을 받지 마라’는 유언을 하셨던 가슴 따뜻한 분”이라고 말했다. 1926년 11월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세에 ‘태평양 악극단’의 단원이 되며 희극 무대에 데뷔했다. 고인은 1956년 영화 ‘애정 파도’에 출연하며 활동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그에게 ‘막둥이’란 별명을 안겨준 작품은 코미디언 이종철 김희갑 양훈과 출연한 영화 ‘오부자(五父子·1958년)’였다. 이후 희극영화 전성시대를 열며 1960년대 중반까지 배우로 활동했다. 그가 출연한 유현목 감독의 영화 ‘수학여행’(1969년)은 국내 최초로 테헤란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도 받았다. 방송에서 MBC ‘웃으면 복이 와요’는 고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1969년부터 1985년까지 15년 8개월간 한 회도 빠짐없이 개근했다. 고인은 1963년 동아방송 개국 라디오 프로그램인 ‘안녕하십니까? 구봉서입니다’를 진행하며 사회 풍자도 선보였다. 5분간 원맨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그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코미디는 그냥 웃고 마는 게 아니다.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말초적인 개그는 사람들을 잠깐 웃길 수 있지만 생각하게 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찰리 채플린처럼 웃음의 이면에 슬픔이 묻어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고인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고인은 2009년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기 전까지 “웃음을 주는 직업이 진정 보람되다”며 왕성한 무대 활동을 이어갔다. 2002년에는 평생지기 배삼룡과 함께 ‘그때 그 쑈를 아십니까’란 작품도 선보였다. 그는 2010년 2월 배삼룡이 세상을 뜨자 “(같이 활동하던 사람 중) 두 사람밖에 안 남았는데 한 사람이 갔으니 이젠 내 차례인가 싶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13년엔 대중문화예술상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구봉서를 떠올리며 ‘그래 옛날에 구봉서가 있었지. 그 사람 코미디할 때 좋았어. 지금은 살았나 죽었나’ 그래주면 고맙고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과 네 아들이 있다. 발인은 29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재파탈? ‘줌마렐라’가 한참 먼저야.” 최근 중년 남성의 매력을 상찬하는 말 ‘아재파탈’이 화제지만 중년 여성 ‘아줌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유행어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2000년대 후반 돌풍을 일으켰던 ‘줌마렐라’다. 아줌마와 신데렐라를 합친 줌마렐라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는 기혼 여성”(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을 일컫는다.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아줌마는 억척스럽고 무례하고 외모에 둔감하다’는 차별적 통념을 뒤집는 의미가 담겼다. 아재파탈과 마찬가지로 줌마렐라 역시 대중문화 쪽에서 먼저 통용됐다. 2008년 고 최진실이 출연했던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신드롬을 촉발시켰던 작품이다. 당시 인기가 다소 하락세였던 최진실은 이 작품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듬해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 출연했던 배우 김남주는 줌마렐라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인기 연기자였지만 다소 어정쩡한 이미지였던 그는 ‘기혼 여성의 워너비(Wannabe·닮고 싶어 하는) 스타’로 등극했다. 이후 아줌마 관련 유행어는 ‘줌마 파워’ ‘줌마 파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됐다. 최근엔 tvN 드라마 ‘굿 와이프’의 전도연이나 SBS 드라마 ‘끝에서 두 번째 사랑’에 출연한 김희애 등이 선두주자들. 다만 아재와 비교할 때 ‘줌마…’ 배우들은 20대 때부터 외모가 뛰어났고 40대 들어서도 ‘여전히’ 이를 유지하는 여성이다. 한 교수는 “젊었을 때부터 자기관리를 철저히 잘해온 여배우들이 주로 주목받는다”며 “모든 면에서 특출한 ‘능력자’ 기혼 여성을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내재돼 있다”고 말했다. ‘개저씨’(개념 없는 아저씨를 비하한 말)와 같이 중년 여성을 비하하는 신조어도 많다. 운전이 서툰 중년 여성을 비꼬는 ‘김 여사’나 지나치게 자기 자식만 감싸는 엄마를 뜻하는 ‘맘충(蟲)’ 등이다. 한 심리학자는 “다른 성(性)이나 연령대, 계층을 폄하하는 유행어는 자기도 모르게 왜곡된 차별의식에 젖어들게 만들어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대한민국의 ‘아재’가 달라졌다. 국어사전에 오른 아재의 뜻은 짧고 명료하다. ‘아저씨의 낮춤말.’ 주로 중년 남성을 예사롭게 부르는 이 말엔 10년 전만 해도 꽤나 폄하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2016년 한국사회에서 아재는 상반된 뉘앙스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대중문화 분야의 유행어 ‘아재파탈’ ‘아재개그’ 등을 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아저씨한테서 치명적인 매력을 느끼고 그들의 농담 코드를 받아들인다. 심지어 20대 초반 걸그룹 여성이 스스로를 “아재스럽다”고 칭하며 털털하고 편안한 성격임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를 보면 이런 성향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조사 전문업체 ‘엠브레인’과 최근 2일간 1000명에게 모바일 설문을 벌인 결과, ‘아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촌스럽다”(35.5%)와 “다정하다”(27.2%)가 “답답하다”(9.8%)나 “권위적이다”(8.9%)보다 3배가량 높았다. 다소 시대에 뒤떨어지는 면이 있어도, 아재 하면 소통에 취약한 ‘꼰대’를 떠올리던 과거와 달리 긍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다. 바뀐 것은 이미지뿐만이 아니었다. 이 시대 아재들은 ‘외모’부터 달라졌다. 엠브레인 설문조사에서도 43.9%가 ‘요즘 아재들은 과거보다 미용이나 패션에 훨씬 신경을 많이 쓴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28%에 그쳤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지금 아재들은 소비문화가 절정이던 1980, 9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다 보니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회 문화적 주체로 활동한다”고 분석했다.● 오빠보다 더 멋진 아저씨… ‘아재파탈’ 매력에 열광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재우 씨(47)는 최근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큰누나네 조카가 자신을 자꾸만 ‘아재’라고 불렀기 때문. 서울 출신이라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몇 번 웃어넘기다가 결국 기분이 상해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고 점잖게 타일렀다. 그랬더니 중학생인 조카는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 대꾸했다. “삼촌, 뭘 모르시네. ‘아재’는 좋은 뜻이에요. 요새는 멋진 아저씨를 아재라 불러요.”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아재는 이제 낮춰 부르는 말이 아니다. 최근엔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 크다. 옛날 같으면 ‘꽃미모’가 아니라서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중년 연예인들이 ‘소년보다 아재’라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생활로도 확장됐다. 엠브레인 설문조사에서 34.2%가 “주위에 ‘아재파탈’이라 부를 만한 중년 남성이 많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2016년 한국은 왜 아재에 열광하고 있을까. 진짜 우리 사회의 아재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온 것일까. 대중문화와 SNS에서 촉발된 아재 열풍 전문가들은 최근 아재 신드롬은 주로 대중문화에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이전에도 온·오프라인에서 아재란 표현을 써 왔지만, 아재와 옴파탈(치명적 매력을 가진 남성)이 결합한 아재파탈이란 신조어가 등장하며 폭발력을 얻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올해 1∼3월 방영했던 tvN 드라마 ‘시그널’에 출연한 배우 조진웅은 아재파탈의 ‘원조국밥’에 해당한다. 기존 한국 드라마 속 남성 주인공은 주로 탁월한 외양을 기본으로 근사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우위를 차지해 왔다. 그러나 조진웅이 연기한 형사 이재한은 비교적 평범한 외모에 인간적이면서도 불의에 맞설 줄 아는 캐릭터였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40대 조연 이미지가 컸던 그가 화려한 스타성에 기대지 않고 단단한 연기력과 친근함만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단 뜻에서 아재파탈이란 찬사가 뒤따랐다”고 말했다. 이후 아재파탈은 광범위하게 회자됐다. 울퉁불퉁 근육질 몸매와 달리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마동석,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까칠하지만 잔정을 드러낸 배우 이서진 등에게도 ‘아재파탈’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이렇다 보니 유행에 기대 여기저기 갖다 쓰는 ‘범람’ 현상까지 보인다. 다양한 주제로 연예인 순위를 매기는 tvN 예능 ‘명단공개 2016’은 5월 ‘오빠보다 매력 터지는 아재파탈 스타’에서 배우 정우성이나 에릭도 아재로 뽑았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초기 아재파탈은 진짜 아저씨이면서 매력 있는 이를 지칭하는 용어였지만 최근엔 기존 꽃미남까지 나이만 좀 있으면 다 아재파탈로 엮는 ‘남용’이 생겨났다”고 했다. 아재파탈과 함께 아재 열풍을 이끈 또 하나의 키워드는 ‘아재개그’다. 원래 아재개그는 흔히 ‘쌍팔년도 개그’라 불렀던 철 지난 언어 유희를 가리켰다. ‘늘 배고픈 나라는 헝가리’, ‘제일 오래된 다리는 구닥다리’라는 식이다. 주로 중년 아저씨들이 즐기는 말장난이 재미없고 고루하단 비하의 뜻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만나며 아재개그는 ‘환골탈태’의 상황을 맞았다. 호흡이 긴 문장보단 짤막한 글을 선호하는 SNS에서 간단명료한 말장난은 궁합이 잘 맞는 놀이였다. 이는 아재 연예인의 개그도 새로이 조명받는 밑거름이 됐다. 대표적 사례가 가수 김흥국이다. 사실 그는 오랜 세월 비슷한 어투로 농담만 반복하는 막무가내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개그맨 조세호에게 던진 “안재욱 결혼식 때 왜 안 갔어” 한마디로 ‘흥궈신(흥국+예능 신)’이란 애칭까지 얻었다. 사실 이 ‘맥락 없는’ 대화는 지난해 벌어진 일이지만, 온라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소비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번 엠브레인 조사 ‘아재 하면 떠오르는 연예인’ 질문에서도 김흥국이 50.8%의 지지를 얻으며 조진웅(19.7%) 마동석(11.5%)을 제치고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기성세대 풍자 강하지만 소통의 기회 될 수도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아재 홀릭(holic)’은 어떤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일단 아재의 ‘쪽수’가 확연하게 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행정자치부와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40, 50대 남성은 870만여 명. 417만 명을 살짝 웃돌던 1990년보다 453만 명이 늘어,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남성 전체 인구는 1990년 2178만 명에서 2015년 2576만 명으로 398만 명밖에 늘지 않았다. 다른 연령대가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는 동안 ‘아재’들이 잔뜩 불어난 셈이다. 아재의 양적 확산은 같은 연령대 여성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40, 50대 여성인 ‘아줌마’는 1990년 478만 명에서 2015년 848만 명으로 370만 명 정도가 늘어났다. 25년 동안 아재가 아줌마보다 84만 명이 더 많아진 것이다. 1990년엔 아줌마가 아재보다 61만 명이 많았는데, 2015년엔 오히려 아재가 아줌마보다 22만 명이나 더 많아졌다. 인구 증가에 비례해 사회적 영향력도 자연스레 커졌다. 2012년 대선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50대 투표였다. 예전 같으면 대중문화에서 주류에서 밀려났던 40, 50대가 지금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대중문화는 과거엔 10, 20대를 주류로 보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젠 다양한 계층이 목소리를 내는 시대”라며 “현재의 중년은 TV와 영화, 가요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주류 소비층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에서 변방으로 취급됐던 아재의 목소리가 커질 환경이 조성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우리 사회에서 아재의 위상까지 올려놓았다고 보긴 아직 힘들다. 아재파탈, 아재개그와 비슷한 시기에 크게 유행한 ‘개저씨’란 신조어만 봐도 알 수 있다.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로 주로 약자에게 ‘갑질’ 하는 중년 남성을 뜻하는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아재를 ‘꼰대’로 보는 시각 또한 여전함을 짐작게 한다. 실제로 엠브레인 조사에서도 ‘아재가 지닌 단점’(복수 응답)에 대해 ‘시대에 뒤처진다’(64.0%)와 함께 ‘소통이 부족하다’(55.8%) ‘고집이 세다’(44.4%) ‘자기 중심적이다’(33.2%)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한 사회학자는 “현재 아재 코드는 존경보단 기성세대에 대한 풍자의 의미가 강해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TV나 인터넷에서 아재에 주목하는 이유도 지금 이 순간 ‘상품 가치’가 높기 때문일 뿐이란 의견도 있다. 아재의 사회적 인식 변화에 반응한 게 아니라 대세를 좇았단 얘기다. 실제로 파일럿으로 화제를 모은 뒤 26일부터 정규 편성된 SBS ‘다시 쓰는 육아일기! 미운 우리 새끼’나 순간 최고 시청률이 7%를 넘으며 화제몰이 중인 채널A ‘아빠본색’을 보면 대중문화가 아재를 소비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 준다. 김흥국 김구라 김건모 등 아재 연예인들은 최신 트렌드에 익숙하지 않고, 헛헛한 농담을 즐기며,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 예능 PD는 “요즘 아재 소재의 유행은 단발성 화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물의를 일으키는 아재 연예인이 나오거나 중년 남성과 관련된 사회적 논란이 생기는 순간 거품은 그대로 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풍조가 어려웠던 세대 간의 소통 창구를 마련할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카에게 아재라 불렸던 김재우 씨는 “오해가 풀린 뒤 옛날에 유행했던 말장난을 몇 개 들려줬더니 조카가 엄청 좋아했다”며 “왠지 모를 공감대를 형성한 기분이었다”고 귀띔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아재 문화가 하나의 고유한 영역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쩌면 아재 신드롬은 의도했건 아니건 누군가가 다른 세대에게 내민 손일 수도 있다. 그걸 굳이 내칠 까닭은 딱히 없지 않나. ‘나는 아재 마흔 넘은 아재/결혼도 안 했고 집도 없지만/걱정은 No 나만 믿어 봐/한 번만 털어주면 다 쓰러지니까… 내가 부끄럽니/내가 실수했니/나는 너희가 좋아/우리랑 계속 놀아 주라.’ (그룹 노라조의 노래 ‘아재’에서)정양환 ray@donga.com·김정은·이지훈 기자}
간만이다.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들기는. 22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연출 김성윤 백상훈)은 ‘정통 로맨틱코미디’다. 조선 궁궐이 무대인 사극 아니었냐고? 아니다. 그냥 한복 입고 말투만 그럴 뿐. 이젠 하도 써서 신선도가 떨어지는 ‘퓨전 사극’이란 말에 속지 말자. 소개 글부터 보라. “츤데레(무뚝뚝하나 속정 깊은 이를 일컫는 일본식 신조어) 왕세자 이영과 남장 내시 홍라온의 예측불허 궁중위장 로맨스.” 남장한 여성 주인공을 감싸주는 ‘금수저’ 남성 주인공. 언뜻 떠올려도 윤은혜(커피프린스1호점) 박민영(성균관스캔들) 박신혜(미남이시네요) 문근영(바람의 화원)…. 조만간 축구팀도 만들 기세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2013년 연재 당시 조회 수 1위였던 웹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가벼운 기운이 옹골차다. ‘그녀는 예뻤다’(박진영)가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모자이크가 등장하며, 패러디와 최신 유행어가 넘친다. 집어 던진 뱀이 TV 화면에 부딪혀 떨어지는 장면은 개그만화를 보는 착각마저 든다. 웃자고 만든 작품에 왜 정색하느냐고? 문제는, 안 웃기니까 하는 말이다. 물론 매력도 있다. tvN ‘응답하라 1988’의 택이가 이렇게 능청스러운 연기자였다니. 박보검(이영)은 화면을 찢고 나와 “나 보여줄 게 정말 많아”라고 외친다. 17세 김유정(홍라온)은 왜 저리 어려도 주연이 되고 넘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두 주연을 비롯해 배우들에게 작품이 너무 기댄다. 화면에 예쁘게만 잡아주는 게 다는 아닐 텐데.★★☆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 ‘황야의 결투’는 모두가 승자였다.” 이게 뭔가. 올림픽도 아니고 다 이겼다니. 에이전트41(김배중)은 자기가 써 놓고도 헷갈렸다. 하나 올해 여름 영화시장은 확실히 그랬다. 4대 배급사가 총출동해 500억 원(총제작비) ‘전쟁’을 벌였는데 패자가 없다. 물론 22일 기준으로 ‘부산행’(약 1125만 명)이 가장 크게 웃었지만, ‘인천상륙작전’(679만 명) ‘터널’(524만 명) ‘덕혜옹주’(490만 명)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요원 모두 ‘손에 손잡고’(서울 올림픽 주제가)라도 부르려 했으나, 찜찜한 대목은 남아 있다. 영화계 단골손님인 ‘국뽕’ 논란 때문이다. ‘나라 국(國)’과 ‘히로뽕’을 합친 말로 지나친 애국주의를 비하한단 설명도 이젠 머쓱할 정도. 영화계 일각에서는 올해 6·25전쟁이 소재인 ‘인천…’이 바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다. ‘국뽕에 기댄 졸작’이란 평과 ‘국뽕으로 폄훼된 수작’이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 뽕에 취했건 안 취했건 다들 ‘뽕 타령’이다. 불끈한 에이전트2(정양환)는 우악스럽게 41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도 뽕 따러 가자.”○ 진짜 영화계 좀비는 국뽕 논쟁 뽕밭의 발원지는 요원도 찾기 어려웠다. 2012년 전후 한 인터넷 커뮤니티로 알려졌으나 명확하진 않다. “한민족이 수메르 왕국을 세웠다” 같은 국수주의적 역사관에 대한 조롱이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영화계에선 이 용어 등장 전부터 ‘국뽕’ 사태가 존재했다. 2007년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본격적인 발화점이었다. 애국심 호소와 작품성 논란으로 뒤범벅된 영화는 관객 785만5474명(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이 들며 흥행했으나 170억 원의 적자를 봤다. 옳건 그르건, ‘디 워’가 증명한 애국의 티켓 파워는 쭉 이어졌다. 역대 흥행 1, 2위인 2014년 ‘명량’(약 1762만 명)과 ‘국제시장’(약 1426만 명)은 모두 국뽕 논란이 불거졌던 작품. 지난해 600만 명이 넘은 ‘연평해전’도 마찬가지다. 한 영화제작자는 “과거엔 이런 논란을 불편해했으나 요즘은 하나의 마케팅 기법으로 인식된다”며 “인천상륙작전이나 덕혜옹주는 기획 단계부터 이를 활용할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천…’도 수혜자일까. 한 배급사 관계자는 “‘천만 영화’를 5편이나 내놓은 CJ로선 순제작비가 147억 원이나 들어간 대작에 더 높은 기대를 했을 것”이라며 “수익은 내겠지만 ‘국뽕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 홍보대행사 대표는 “개봉 전부터 워낙 욕을 먹어 현재 스코어에 가슴을 쓸어내린단 후문”이라며 “중장년층이 찾게 만드는 ‘애국심 코드’는 여전히 위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결과를 놓고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형국이다.○ 누굴 위하여 논란을 불태우나 문제는 ‘국뽕’ 딱지가 붙는 순간 다른 요소는 논외가 된다는 점이다. 요원들이 접촉한 ‘인천…’을 보지 않은 이들은 대다수가 ‘국뽕’에 거부감이 컸다. 대학생 박준형 씨(27)는 “취업과 결혼 등 현실적 문제로 벅차 애국심 얘기만 거론해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 50대 주부는 “나라 사랑을 되새긴 교훈적 작품”이라며 “무조건 뒤떨어진 보수우익으로 모는 분위기가 싫다”고 답했다. 한 영화평론가는 “‘디 워’ 때처럼 무 자르듯 찬반으로 갈려 생산적 토론을 벌일 기회조차 없다”고 아쉬워했다. 평단이 사람들의 취향을 살피는 데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연예기획사 이사는 “평론가는 만듦새에 집중해 흥행 전망에 취약한 경향이 있다”며 “자기반성 없이 700만 관객의 선택을 국뽕 잣대로 판가름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이 갈등만 키운단 우려도 컸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양극화되고 소속감이 붕괴된 상태에서 무조건적 애국심 강조는 간극을 더 깊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정부나 사회지도층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이런 논쟁도 잦아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에이전트2는 다시 ‘인천…’을 봤다. 실은 그도 개봉 전 무지 박한 평점을 줬다. 무엇을 놓쳤기에 ‘병론가(평론가 비하)’가 됐나. 근데 대통령도 20일 영화를 관람했단다. 아, 흥행 예측은 실패했던 한 평론가 이건 또 맞히다니. “아마 곧 대통령이 ‘인천…’을 볼 겁니다. 칭찬도 하겠죠.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죠. 이런 상상을 해봐요. 대통령이나 여당이 ‘부산행’이나 ‘터널’을 보는 겁니다. 그리고 ‘세월호, 메르스가 떠올랐다. 재발 방지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란 메시지를 남기는 거죠. 그럼 이런 국뽕 논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다음 편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김배중 기자}
더워도 너무 덥다. 어디 나가기조차 버겁다. 아빠 엄마가 허덕이니 다섯 살 사내아이는 심심하다 난리. 지난 휴일, 아이스크림 하나 쥐여 주곤 TV를 켰다. 마침 좋아라 하는 만화영화 ‘출동! 슈퍼 윙스’ 시간. 겨우 숨 좀 돌렸다. 허나 아이는 가만히 보질 않는다. 이것저것 조잘댄다. 쟤는 누구고, 저 친구는 어떻고. 근데 한마디가 귀에 콕 박혔다. “아빠, 아리는 여자라서 저렇게 인사하는 거야.” 슈퍼 윙스는 택배 비행기들이 주인공. 아리는 헬리콥터인 여성 캐릭터다. 온몸이 핑크라 얼핏 봐도 안다. 아리 인사는 확실히 달랐다. 걸그룹 안무처럼 다리 꼬고 윙크한다. 나머진 쩍 벌리고 경례하는데. 유아 애니메이션에서 왜 이렇게까지. 이런 불편함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최근 인터넷 청원사이트 ‘아바즈’엔 EBS를 상대로 “애니메이션의 성(性) 차별적 내용을 줄이자”란 주장이 올라왔다. 현재 1000명 넘게 서명하며 적지 않은 이가 공감했다. 내용은 이렇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과 TV 만화를 봤더니,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대목이 많았단다. 먼저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등의 평균 남녀 성비는 3 대 1. 행정자치부의 7월 기준 남녀 인구수가 각각 약 2580만 명으로 1 대 1(심지어 여성이 2만9234명 많다)인 현실과 동떨어진다. 복장이나 성격도 고루하다. 여아 캐릭터는 주로 핑크 계열로 치마와 머리핀을 착용한다. 뽀로로나 타요는 ‘씩씩’ ‘명랑’한데, 루피 엠버는 ‘상냥’하다. ‘뭐, 이게 대수냐’고 할 수 있다. 그럼 에피소드를 들여다보자. ‘로보카 폴리’ 시즌1 15회엔 청소를 도맡아 힘겨운 엠버가 나온다. 폴리와 로이는 마을 순찰을 간다며 훈련장 정리를 당연한 듯 부탁한다. “왜 나만 치우나”며 속상한 엠버. 친구들이 달래는 말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똑같이’ 하자가 아니고. 정리는 여전히 엠버 몫이다. ‘꼬마버스 타요’는 어떤가. ‘공주님이 되고 싶어요’에서 라니는 예쁜 드레스를 부러워하며 공주를 꿈꾼다. ‘하나누나의 외출’에선 타요 로기는 뛰어노는데, 라니는 TV만 본다. ‘뽀롱뽀롱 뽀로로’ 시즌2 10회는? 루피는 예쁜 머리핀을 칭찬받고 싶은데 다들 몰라봐 속상하다. 끝내 알아본 건 같은 여성 캐릭터 패티였다. EBS 측 설명을 들어보자. “전체를 봐주면 좋겠어요.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올바른 의식을 담은 애니메이션도 꽤 있습니다. 요즘엔 제작 때부터 남녀 구분하지 않고 ‘또래 어린이’라 불러요. 앞으로도 고착화된 성역할을 전달하지 않도록 유념하겠습니다.” 어쩌면 이건 좋은 징조일지 모른다. 예전 만화는 더 심각했으니. 황중환 조선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도 “결국 어린이 만화도 그 사회의 인식 수준을 반영하는데 과거엔 이런 문제 제기조차 드물었다”며 “이런 논의가 애니메이션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부모는 걱정이다. 한 심리학자는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왜곡된 인식을 지니는 ‘고정관념의 위협(Stereotype threat)’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앞으로도 만화는 볼 텐데. 그때마다 눈에 쌍심지 켜고 지켜야 하나. 에고, 오늘 저녁엔 아이에게 핑크가 얼마나 근사한 색깔인지 일러줘야겠다. 나부터 한걸음씩.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에이전트5는 실종, ‘덕후’도 겸하는 7은 연락두절. 41은 타 행성 출장. ‘우먼 인 컬처’의 23과 31은 ‘염색체’ 운운하며 데면데면. “그래, 요원은 원래 혼밥(혼자 먹는 밥)이지.” 그러나 허세는 찰나. 문득 에이전트2(정양환)는 지구에 온 후 처음으로 이 바글바글한 별이 휑해 보였다. 혜리 도시락 들고 퇴근한 3일. 적막이나 깰 겸 TV를 켰다. 채널A를 틀자 ‘아빠본색’이란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불쑥 ‘들이대는’ 콧수염 아저씨. “호랑나비 김흥국? 나비족이면 ‘깐따삐야’ (둘리 친구 도우너 고향) 근처 별 외계인인데….” 아, 요원의 짐작은 빗나갔다. 그는 곤충이 아니라 조류였다. ‘기러기 아빠.’ 어떻게 나는지 알 수 없으나 울음이 구슬픈. 문득 눈시울이 붉어진 에이전트2는 변진섭 1집 ‘홀로 된다는 것’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틀었다. 저 요상한 생명체를 캐보리라 다짐하며. 》○ 날개는 없다, 왼손은 (돈) 부칠 뿐 놀랍게도 기러기 아빠는 한반도 전역에 서식한 지 오래였다. 1990년대 조기유학 열풍 이후 국립국어원의 ‘2002년 신어’ 보고서에 실렸으니 최소 ‘막걸리 17년’급.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도 2005, 2009년 대서특필했다. 위키피디아엔 ‘Gireogi appa(혹은 goose dad)’로 등재됐을 정도다. 허나 현재 개체 수는 적어졌단 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 등에 따르면 2014, 2015년 조기유학생은 약 1만 명으로 2006년 2만9500여 명의 3분의 1 수준. 통계청의 이지연 인구동향과장은 “비슷한 시기 10대 이하 인구수가 1205만 명에서 1018만 명으로 약 15% 줄어든 점 등도 고려해야 하지만 어쨌든 기러기 아빠가 감소했단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 조기유학이 줄다니. 이건 한국 교육환경이 나아졌다는 긍정적 신호란 말인가. 하지만 에이전트2가 학부모로 가장해 상담받은 한 유학알선업체 실장은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젠 명확하게 걸러진 거죠. 첫째, 성적 나빠 떠나던 ‘도피유학’이 사라졌습니다. 어정쩡하게 갔다 와봤자 국내 적응만 어렵거든요. 둘째, 제대로 돈 들여서 갑니다. 1, 2년씩 준비해 사립 기숙사 명문으로 진학하죠. 고객님처럼 ‘한 번 알아나 볼까’ 식 상담자는 비용에 놀라 다신 연락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상수지도 이를 우회적으로 반증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유학·연수 지급 항목을 보면 2015년 해외 학생에게 보낸 돈은 36억9000만 달러(약 41560억 원)로 2000년대 후반 40억∼44억 달러보다 다소 감소했다”고 알려왔다. 학생은 70% 가까이 줄었지만 비용은 8∼15%만 줄어든 셈이다. 에이전트2는 한숨을 내쉬며 보고서를 이렇게 끝마쳤다. “기러기 아빠. 점점 사라지는 추세. 다만 ‘금수저’ DNA가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 ‘독수리 아빠’(재정적 여유가 넘치는 아빠)와 커져 버린 부담에 가랑이 찢어진 ‘기러기 환자’로 양극화됐다.”○ 첨부파일=2016년 잔존 세력은… 사실 에이전트2는 사전에 이 조류 3마리를 포획했다. 갖은 ‘약물(술)’ 투입으로 속마음을 털어놓게 했다. 그 결과를 요약본으로 전송한다. “김흥국 딸이 ‘강아지가 더 편하다’고 하더군. 우리 애 페이스북도 개 껴안고 웃는 사진뿐이야. 내 얼굴은 없지. 엄마 몰래 돈 필요할 때나 연락해. 예전엔 아양이라도 떨더니 요샌 문자로 ‘아빠, 돈’. 목소리라도 들으려 늦게 송금한 적도 있어. 아내는 올해 초 돌아오기로 했는데 자꾸 핑계를 대네.”(자영업 기러기·51·6년차) “와이프가 자꾸 통화하며 웁니다. 어머니가 몇 번 타박하셨거든요. 아범 고생하는데 손자 성적 좋아야 한다고. 살가운 고부였는데 못 보니 오해만 커졌습니다. 불안하니까 애 과외를 늘렸나 봐요. 여기 사교육 싫어서 보낸 건데 이게 뭔 짓인지….”(법무사·41·2년차) “가족 관계는 괜찮아. 사춘기 아들도 더 애틋해졌어. 세상 좋아져 영상통화도 쉽게 하고. 딸내미는 엄마한테 말 안 한 비밀도 털어놔. 다만 금전적으로 걱정이지. 지난해 월세로 옮겼어. 아내와 애들은 마당 딸린 이층집 사는데, 난 컵라면으로 끼니 때울 땐 기분이 묘해. 그래도 내 새끼들 웃는 거 보면 배불러. 기러기 이전에 아빠잖아.”(회사원·48·3년차) (다음 편에 계속)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