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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영유권 충돌 이래 식을 대로 식어온 중일 관계가 새로운 단계를 맞이했다. 중국 총리로는 8년 만에 공식 방일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9일 중일 정상회담 모두에 “중일 관계는 최근 몇 년 풍파를 경험했고 나쁜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지금 풍파가 사라지고 맑은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일중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인 올해를 중일 관계의 새로운 출발의 해로 삼고 싶다”고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두 정상은 센카쿠 열도에서 양국 간 충돌을 막기 위한 핫라인 개설 등 ‘해공 연락 메커니즘’을 다음 달 8일부터 운용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은 또 일본에 2000억 위안(약 33조9000억 원) 규모의 위안화 적격 외국인투자자(RQFII) 한도를 부여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 금융기관의 중국 자본시장 투자가 한층 쉬워진다. 양국은 또 아베 총리가 연내에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는 데 합의했다. 일본 측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일을 요청했다. 이 같은 중일 간 해빙은 쌍방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수년간 공들여온 대러시아 외교가 진척되지 않자 대중관계를 새로운 외교전략으로 설정했다. 지난해엔 중국의 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대해 협력 의사를 밝히며 시 주석과의 대화나 연대를 요청했다. 중국은 중국대로 최근 미국과의 무역갈등이 예고되는 가운데 주변국들과도 적대적인 분위기다.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필리핀 베트남 등과 갈등을 빚어왔고 국경을 접한 인도와도 긴장이 높아져 있다. 한국과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충돌했다. 시 주석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 가을 당 대회 후 주변국 외교 개선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중일 해빙은 표면적인 것을 뿐 충돌을 불러일으킬 현안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당장 양국은 9일 열린 3국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에 과거사 문제를 어떤 표현으로 넣느냐를 놓고 심야까지 진통을 겪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국제사회의 (비핵화 관련) 요구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의 실현을 위한 통 큰 합의와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목표를 직접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은 북-미 담판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선 ‘뛰어난 협상가이자 리더’, 김정은에 대해선 ‘솔직하고 실용적’이라고 평가한 뒤 “북-미 간 신뢰를 강화하고 합의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가능한 역할을 다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에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과거 문제 청산에 기반한 북-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전달했고, 김 위원장은 ‘언제든지 일본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죄가 피해자들에게 전달되고 수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6년 반 만에 9일 일본을 찾는 문 대통령은 이날 도쿄 영빈관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한 뒤 아베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와 한중 회담을 잇달아 갖는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도쿄=서영아 특파원}
일본 언론이 남북 정상회담(4월 27일)을 보도하며 가장 궁금해한 것은 “(회담에서) 납치 문제가 거론됐느냐”였다. 물론 이들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 회담에서 납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만 모기장 밖에 있다”는 지적이 따가운 가운데 납치 외에 일본의 존재감을 확인할 대목이 없었다. 그래서 이틀 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해오자 아베 신조 총리는 즉석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를 발표할 정도로 반색했다. ‘일본 배제’에 대한 초조감은 이 정도 선에서 멈춘 것 같다. 대북 접촉에 대해서는 6월에 열린다는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본 뒤 움직이면 된다는 의견이 대세다.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강조해온 노선에서 갑작스러운 선회가 쉽지 않은 데다, 대북 협상에서 실망을 거듭해온 경험도 작동했다. ‘관계국들이 북한에 언제까지 속을지 지켜보자’는 심산도 깔려 있는 걸로 보인다. 물론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수교가 의제가 된다면 일본도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검토할 것이다. 일본에 북-일 수교는 마무리하지 못한 숙제와 같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전격 방북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북-일 수교 협상 재개 등을 담은 ‘평양선언’을 발표했지만 납치 문제에 걸려 좌초했다. 2014년 아베 정권과 북한이 납치문제 재조사를 약속한 ‘스톡홀름 합의’도 결국 흐지부지됐다. 다시 북-일 교섭이 이뤄진다면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북한이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로 100억∼200억 달러의 경제지원을 기대한다는 얘기들도 나오지만, 현지 분위기는 대북 지원을 논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일본이 핵개발의 현금지급기가 돼야 하느냐”며 부정적 기류가 벌써부터 형성되고 있다. 더 큰 고민은 아베 총리가 외쳐온 ‘납치문제 해결’이 실제 가능하냐는 점이다. 그로서는 명분상 이 문제의 진전이 없으면 김정은과 마주 앉기 어렵다. 여론이 납치문제에 대해 맹목적일 정도로 감정적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이를 조장하고 이용하며 인기 관리를 해왔다. 일본이 원하는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일본 정부가 인증한 납치 피해자 12명 중 “8명은 사망, 4명은 입국한 적이 없다”며 “납치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중에서도 상징적 존재인 요코타 메구미 씨의 경우 사석에서 만나는 일본 언론인 대부분은 북한 주장대로 사망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의 비통함을 생각해서도,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여론 때문에도 아무도 기사로 쓰지 못한다. 겉만 보면 이런 일본이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북한은 “(일본이) 제재니 압박이니 하다가는 억년 가도 우리의 신성한 땅을 밟지 못할 것”(6일자 노동신문)이라고 ‘패싱’ 위협을 했다. 적당한 시기에 특이한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고 한국에는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정권이 들어섰다는 점은 북한에 행운이다. 남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을 잘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행운이 이어진다고 해서 마치 남북한이 세계를,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이는 것처럼 자만해서는 안 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탓에 한반도의 운명은 주변국들의 욕망과 간섭에 희롱당해 왔다. 앞으로도 무수한 난관이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이웃국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또 설사 도움까지는 아니어도 장애라도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을 되게는 못해도 안 되게 할 수 있는 존재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게 세상사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역사적인 북-미 담판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이 요구 조건을 높여가며 ‘이상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협상을 위한 막판 줄다리기를 넘어서는 수준이 종종 감지되고 있기 때문. 중재외교를 재가동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은 9일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전화 통화에 이어 22일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잠시 주춤한 듯한 ‘비핵화 모멘텀’ 되살리기에 나선다. 문 대통령은 7일 오전 청와대 직원가족 초청행사에 예고 없이 잠시 참석한 것을 제외하면 공개 일정을 비우고 한중일 정상회의 등 외교 현안을 챙기는 데 집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북-미 정상회담에 합의한 뒤 잠잠했던 북-미가 최근 서로를 향한 포문을 연 데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한 것은 남북 정상이 내놓은 ‘완전한 비핵화’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북한으로부터 최대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완전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 내에서 경쟁적인 대북 압박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대북 압박을 위한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초 5월 중하순에 열릴 것으로 보였던 회담 일정을 늦추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성추문으로 수세에 처한 미국 내 정세를 반전시킬 확실한 카드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맞선 북한은 미국과 일본에 대한 비난을 재개하며 서서히 ‘비핵화 청구서’를 내밀고 있는 듯하다. 북한 매체들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 핵동결 조치를 평가 절하한 미국과 일본의 대북제재에 일제히 공세를 집중한 게 대표적이다. 선제적인 핵 동결 조치에도 대북제재를 고수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비판하며 ‘제재 흔들기’로 경제적 보상 요구 명분을 쌓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 역시 자국 이해를 담은 비핵화 해법을 내놓고 있어 비핵화 방정식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은 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연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7일 기자회견에서 “정상회의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핵·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를 확인하겠다”며 “북한에 대한 최대한 압력을 유지하면서 납치문제 해결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중일 정상회의 선언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CVID 원칙과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넣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 동시 추진)’을 거듭 강조하면서 중국의 역할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각국이 쌍궤병행에 따라 정치적 해결 과정을 추진하고 각국의 합리적인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남북미가 하려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통해 중국과 일본을 다독이는 일종의 ‘리스크 관리’를 통해 비핵화 프로세스 동력을 살리겠다는 전략이다. 청와대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CVID를 명시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한중일 정상 특별성명에는 판문점 선언에 대한 지지 내용만 담는다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라고 재확인했다. 북-미의 간극을 더욱 벌릴 수 있는 중일의 정치적 행보에는 분명히 선을 긋겠다는 것이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도쿄=서영아 특파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 7일 노동당 지방조직에 “제2의 고난의 행군은 없다”는 내용의 자필 편지를 보냈다고 6일 일본 아사히신문이 복수의 북한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2월 7일은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을 특사단으로 평창 겨울올림픽에 보내기 이틀 전이다. 신문은 김정은이 이때 미국 한국 중국 등에 대한 외교 전략으로 북한이 처한 국면을 타개할 것을 상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에서는 중국 기업이 50년 개발권을 가졌다는 무산광산의 조업이 1월 정지됐고 연초부터 중국산 곡물 수입도 거의 중단됐다. 그러자 북한 노동당 지방조직에서 연일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는 식의 보고가 당 조직 지도부 앞으로 쏟아졌다. 이에 김정은은 자필로 “제2의 고난의 행군은 없다”며 “머지않아 세계에 자랑할 승리를 경축하는 조선 인민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쓴 편지를 당 지방조직에 보냈다는 것이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의 감축·철수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5일 복수의 미일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7,18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했을 때의 영향에 대해 아베 총리의 의견을 구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동아시아의 군사균형이 깨질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이나 철수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대처 능력을 약화할 것으로 보고 경계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즉석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같은 입장을 설명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등을 검토하는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거래 재료로 삼을 생각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미사일 폐기’를 향한 구체적 행동을 이끌어내려면 어느 정도 양보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평화헌법 개정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개헌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지만 일본 국민 10명 중 6명은 개헌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헌법 시행 71주년(5월 3일)을 앞두고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8%가 “아베 정권에서의 개헌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개헌 찬성은 30%였다. 지난해 같은 질문에 반대 50%, 찬성 38%였던 것에 비해 1년 만에 개헌에 대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유권자 1949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시행 70주년인 지난해 헌법기념일에 자신의 개헌안과 2020년까지 개헌을 완수한다는 로드맵을 공개하며 본격적으로 개헌 작업에 속도를 냈다. 개헌안의 골자는 전력 포기 등의 내용을 담은 현행 헌법 9조를 그대로 두되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조항을 추가한다는 것이었다. 집권 자민당은 이후 자체 개헌안을 만드는 등 개헌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국민 여론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아베 총리가 1년 전 내놓은 헌법 9조에 자위대 조항을 두는 안에 대해서도 반대가 53%로 찬성(39%)을 크게 웃돌았다. 당정이 한목소리로 개헌 당위성을 강조함에도 여론이 따라오지 않는 것은 잇단 스캔들과 그 처리 과정에서 확인된 신뢰 상실 영향이 크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사학재단 모리토모(森友)학원, 가케(加計)학원과 관련된 스캔들에 휩싸이며 지지율 급락으로 고심했지만 10월 중의원 해산에 이은 총선 승부수를 띄워 압승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여기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도 크게 힘을 보탰다. 하지만 올해 3월 불거진 두 번째 사학스캔들이 정국을 강타하며 개헌 드라이브에 다시 급제동이 걸렸다. 실제로 이번 여론조사에서 내각지지율은 36%로 지난해 같은 조사 때의 55%보다 급락했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56%로 35%에서 크게 늘었다. 중동을 순방 중인 아베 총리는 1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개헌 스케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논의를 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1년간 상당히, 비판도 포함해 논의가 깊어졌다. 또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개헌을 계속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아베 총리는 같은 날 도쿄에서 열린 국회 초당파 의원들로 구성된 개헌추진 의원모임 집회에 보낸 메시지에서도 “일본의 독립과 평화를 지키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고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라고 거듭 주장했다. 아베 총리의 한 측근은 아사히신문에 “아베 총리가 개헌 깃발을 내리게 되면 지지기반이 공중분해 돼 버릴 것이란 걱정이 팽배해 있다”고 위기감을 전했다. 지난해와 달리 북풍몰이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회도 여론도 차갑게 식어가는 현실은 아베 총리에게 엄혹하기만 하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외교 성과인 이란 핵 합의 파기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이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내 말이 100% 옳았다는 점이 진실로 입증됐다”고 맞장구치며 핵 합의 파기를 시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3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국방부에서 TV연설을 통해 “이란이 아주 큰 거짓말을 했다”며 이란이 2015년 핵 합의에 서명하기 전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감춘 사실을 입증할 방대한 자료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주 전에 5만5000쪽에 달하는 문서와 5만5000건의 파일이 담긴 CD 183장을 입수했다”며 “이것들은 2017년 테헤란 비밀 장소로 옮겨졌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올해 1월 테헤란의 비밀 창고를 급습해 ‘프로젝트 아마드’로 불리는 이란 핵무기 프로그램의 자료들을 손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프로젝트 아마드는 핵무기를 고안하고 실험하기 위한 포괄적 프로그램”이라며 “이란이 핵 합의에 서명한 뒤 이를 숨기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비난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영어로 진행한 이날 프레젠테이션은 TV로 생중계됐다.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은 12일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관련 중대 결정을 앞두고 핵 합의 파기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옳은 일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가 내놓은 자료들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수전 멀로니는 “네타냐후가 언급한 어떤 것도 이란 핵 합의에 대한 근거를 약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모하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내가 어떤 일을 할지는 다 알고 있을 것”이라며 핵 합의 파기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다만 “탈퇴를 하더라도 진정한 합의를 위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미국의 요구들이 반영된 새로운 핵 합의를 위한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란은 네타냐후 총리의 주장은 거짓이라며 맹비난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거짓 경고를 멈출 수 없는 늑대소년이 또 말썽을 피우고 있다”며 “합의 파기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이미 처리된 해묵은 의혹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차관도 “네타냐후 총리의 연설은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쇼”라고 비난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중동을 다시 뒤흔들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시도에 대해 일본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근 중동 순방(4월 29일∼5월 3일)에 나선 것도 중동 평화 유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순방에 앞서 “중동 평화와 안정에 공헌하고 싶다”고 밝혔다. 일본은 미국이 최근 북-미 정상회담에 전향적으로 나오는 배경에는 중동과 동아시아 두 지역에서 동시에 분쟁이 터지는 것을 피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달 중하순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교섭에서 ‘쉬운’ 타협을 하면서 일본에 리스크를 남길 가능성도 경계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정권이 중동 평화를 측면에서 지원해 미국의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안보에 대한 관여를 유지하게 하려 한다”고 전했다.카이로=박민우 minwoo@donga.com / 도쿄=서영아 특파원}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북한 불신론이 여전히 뿌리 깊다. 하지만 한반도를 아는 전문가일수록 회의론이 급격히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교정치학자이자 한반도 전문가인 기무라 간(木村幹) 고베(神戶)대 교수는 29일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 실현을 최우선으로 하며 미국이 ‘노’라 말할 수 없는 선언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이번 움직임에서 한국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반면 일본 정부는 어젠다 설정에 제대로 관여하지 못했다”며 “이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이 변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전후(戰後) 일본에서는 미국이 한반도와 관련한 중요한 일로 움직일 때는 일본에 사전에 설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미국이 서방 보스라면 일본은 ‘동아시아의 지배인’ 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드러난 ‘일본 배제’는 이제 일본이 ‘동아시아의 여러 지점장’ 중 한 명에 그친다는 현실을 보여줬다는 게 그의 평가다. 기무라 교수는 일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움직임에 끼지 못한 이유는 한반도 문제에 일본이 어떻게 관여하고 싶은지 관계국들에 명료하게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이번 남북 정상회담 성과는 동아시아 지역의 중요 과제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4개국에 의해 개선된 ‘실적’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일본이 이 같은 흐름에 편승하지 않은 대가는 작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미국과의 양호한 관계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정책의 그랜드 디자인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일본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외교 방침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선택지는 앞으로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미국과 한국을 신뢰한다는 자세로 지켜보든지, 아니면 한국이나 중국에 날아가 일본의 이해를 강하게 어필하든지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慶應)대 명예교수도 앞으로 벌어질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북-미 간 인식차가 우려되지만 회담 성공 가능성은 70% 이상”이라고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최대 목적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성공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일본 내에서 ‘비핵화 방법이나 시기 등 구체적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자꾸 나오지만 이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개인적인 습관이지만 상황이 복잡할수록 그 상황을 핸들링하는 ‘사람’의 욕구가 무엇인지 짚어보곤 한다. 그러면 맞건 틀리건 그 나름대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가령 예측불허로 악명 높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의 모든 판단과 선택은 11월로 다가온 중간선거 승리와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남을 업적’에 연동된다고 해석하니 상황을 이해하기 쉬웠다. 평소 “군사옵션도 불사하겠다”며 북한에 호전태세였던 그는 지난달 9일 전격적으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하겠다고 나섰다. 마침 전직 포르노 여배우의 성추문 폭로 방송이 임박해 신경이 곤두선 상황이었다. 이후 그는 백악관 핵심에 강경파만을 포진시키며 김정은을 압박하면서, 한편으론 북한과 물밑교섭 작업을 해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혹은 일본 외교가는 이 같은 트럼프의 이기적 욕구를 읽지 못했던 듯하다. 트럼프가 그날 아침 전화로 “신조, 굿 뉴스다”라며 북-미 정상회담 추진 방침을 밝히자 충격에 빠진 아베는 즉석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미국 플로리다까지 날아간 아베가 트럼프에게서 건진 것은 “일본인 납치문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구두 약속뿐이다.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양국 간 무역협상의 방식을 놓고 두 정상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간 밀월을 유지해온 트럼프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지만 오산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웃는 얼굴로 트럼프를 대하는 아베의 모습에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묻어났다. 상대적으로, 김정은은 트럼프의 욕구를 간파해 제대로 파고들었던 것 같다.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중간선거 승리와 재선까지 거론하며 미국이 바라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문재인 정권이 올림픽의 성공 개최나 남북대화의 공을 모두 트럼프에게 돌린 ‘칭송 외교’도 주효했다. 트럼프의 성격을 잘 파악해 분위기를 맞춰주며 지금의 대화국면을 만들어온 한국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한국 정부 주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트럼프 노벨평화상’ 아이디어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아베 정권은 왜 트럼프의 속내를 읽지 못했을까. 그 자신이 자국에서 이기적인 강자 역할에 젖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막상 일본에서는 아베의 사적 이해에 공적 영역이 휘둘리고 있다. 2대 학원 스캔들로 일본의 관료조직이 만신창이가 된 것이 그 전형이다. 아베 정권은 자신을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관료들에게 ‘벼락출세’로 보답했다. 그러고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들을 ‘꼬리 자르기’에 사용하고 있다. 공(公)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의 행태를 사(私)의 논리로 이해하는 게 빠르다면 그건 바람직한 세상은 아니다. 이런 곳에서는 갑질이 통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고 권력에 기생하려는 세력이 번성한다. 약자는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트럼프와 아베의 경우에서 보듯, 지금은 강자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대다. 그리고 그 강자 트럼프에게 한반도의 운명이 상당부분 달려 있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트럼프 사심의 잣대가 갑자기 바뀌지 말란 법이 없다. 자타 공히 ‘맹우(盟友)’로 여겼던 아베가 트럼프에게 당하는 것을 보며, 더 힘없는 처지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더 조심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선다. 강자의 이기심이 작동하면 정의도, 대의명분도, 체면도 따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진정한 한반도 평화가 시작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응은 신속했다. 북한이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 중지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발표한 지 1시간여 만에 트위터로 환영 입장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북한과 세계에 매우 좋은 소식이자 큰 진전이다.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적었다. 북-미 정상회담 전망을 밝게 하는 긍정적 신호로 평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 5시간 뒤 한 번 더 트위터에 “모든 이들을 위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글을 올리며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환영과는 달리 한반도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왔던 백악관 관리들의 반응은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 인사들이 이번 발표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놓은 덫일 수 있다는 경계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의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1999년 북한을 방문해 핵실험 중단과 경제 지원을 골자로 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어냈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온갖 비난과 굴욕 속에서도 완성시킨 핵능력인데 이를 쉽게 포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김정은은 비핵화 일정을 크게 늦춰 나중에는 흐지부지되는 것을 노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벤저민 실버스타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외교학)는 WP와의 인터뷰에서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자신감과 능력 과시가 이번 발표의 숨은 의미”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국장이었던 존 울프스탈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스에 “북-미 대화 의도를 밝힌 뒤부터 김정은은 타협과 양보의 제안을 줄지어 하고 있고, 미국은 그냥 받는 입장이다”며 “이는 북-미 정상회담 실패 시 책임은 자신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는 것을 공고히 하려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내 회의론 확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오전 트위터에 “일들(북한 비핵화)이 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오래전에 해야 했던 것”이라며 전임 행정부들을 비난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북한 발표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충분하지 않다는 복잡한 반응을 보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1일 기자들에게 “긍정적인 움직임”이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핵과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로 이어질 것인지 여부다. 확실히 주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최대한의 압력으로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하게 하겠다는 일본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21일 “북한의 결정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동북아시아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한 단계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정미경 전문기자 mickey@donga.com / 뉴욕=박용 / 도쿄=서영아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 시간) 미일 정상회담 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48분이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회견을 주도했다. 취임 이후 외국 정상과 회담한 뒤 가진 회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기자들에게 할애했다. 국민들에게 회담 성과를 상세하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자신감을 보인 분야는 북핵 문제였다. 그는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도록 뭐든지 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는 승부사 기질이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 발언들 중 가장 확신에 찬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미국과 북한이 한 달 넘게 양측의 권력 핵심부 인사를 통해 진행해 온 물밑 조율에서 기존의 불신을 해소해 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어느 정도 확인했고, 북한 역시 미국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에 대해서는 신중한 기류를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미 간에 주고받을 내용에 대한 조율이 상당 부분 진행됐거나 논의되고 있다는 관측이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선언에 더해 실질직으로 이를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 경제적 지원 방안을 제시해 공감대가 형성되는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해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평화체제 구축에는 논리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가 포함될 수 있고, 실질적인 체제 보장을 원하는 북한도 이를 강력히 원하고 있지만, 태평양 패권을 노리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협상은 미국이 유리한 고지에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철수 논의가 아니라) 주한·주일 미군이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고난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성과 없는 회담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내가 가 있는 동안 회담에서 결실이 없으면 나는 정중하게 회담장을 떠나 우리가 해온 것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성공을 거두겠다”는 발언이 국내 정치용이었다면,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발언은 북한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른 외교 소식통은 “북한과 이야기가 되기 시작한다고 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제재를 푸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비핵화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최대의 압박’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억류된 3명의 미국인 석방을 위해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대화가 아주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미 정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후보자가 김 위원장에게 북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은 김동철, 김상덕, 김학송 씨 등 3명으로 모두 한국계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가능한 일을 하겠다”며 “난 아베 총리에게 이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의) 조기 해결을 요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발언을 높이 평가한다”고 화답했다. 워싱턴=박정훈 sunshade@donga.com / 도쿄=서영아 특파원}
“다른 분들은 제 목소리라고 하는데, 저는 제 목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18일 오후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사진) 일본 재무성 사무차관의 설명을 듣던 기자들 사이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지난주 한 주간지의 폭로로 여기자들에게 상습적인 성희롱을 한 의혹을 받던 후쿠다 차관은 이날도 “그렇게 지독한 말은 한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다만 그런 보도가 나온 것 자체가 부덕으로 직책을 완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늘어놓으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지난주 시사주간지 슈칸신초(週刊新潮)는 후쿠다 차관이 밤에 여기자들을 불러내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 “호텔에 가자”, “키스하자” 는 등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후쿠다 차관은 부인했고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말로 충분히 주의를 줬다”며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13일 주간지 측이 인터넷에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녹음파일에서 후쿠다 차관이 “오늘 안아도 되느냐”, “손을 묶어도 되느냐”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쿠다 차관은 “업무가 끝난 뒤 가끔 여성이 접대하는 장소에 가서 말장난을 한 적은 있다”고 변명했으나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재무성은 16일 출입 언론사에 공문을 보내 “피해를 본 여기자가 있으면 조사에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재무성 사무차관 낙마 사건은 성범죄에 대한 일본의 뒤처진 인식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무풍지대였던 일본에서도 운동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자사 기자의 피해를 묵살한 언론사, 증거가 나와도 일단 부인하고 보는 가해자, 2차 피해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 등이 사태를 키웠다는 것이다. 야당들이 아소 부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가운데 마이니치신문은 19일 “재무성 해체론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성희롱 사무차관의 사임으로 인한 후폭풍은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도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아베 총리가 급히 미국 방문길에 오른 것은 국내적으로는 모리토모(森友), 가케(加計) 등 사학스캔들 재점화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반전시키고 국제적으로는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저팬 패싱(배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였다. 방미는 지난달 9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과의 전격 회담 의향을 밝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결정됐다. 하지만 17, 18일 이틀에 걸쳐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별장에서 이뤄진 정상회담을 끝낸 아베 총리의 손에 남은 결과물은 “(5월 말∼6월 초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 하나인 셈이 됐다. 안보 분야에선 작은 선물을 챙겼지만 통상 분야에서는 ‘커다란 혹’을 붙인 채 귀국하게 됐다. 일본이 내심 기대했던 수입철강 고율관세 대상국 제외 요청을 사실상 거절당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에 못 이겨 일본이 꺼리는 미일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논의를 위한 협의체 마련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 미일 통상 문제로 아베 총리를 몰아붙였다. 이미 회담 전 워킹런치 자리에서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크다”라며 “그것을 제거하고 가능한 한 가까운 미래에 균등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일 FTA 요청을 경계하며 미국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촉구할 방침이었으나, 트럼프는 전날 밤 자신의 트위터에 “일본 및 한국은 미국의 TPP 복귀를 바라겠지만 미국에는 양자협상이 더 좋다”고 적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아베 총리와의 오찬장에서 “우리는 북한과 매우 높은, 극도로 높은 수준의 직접 대화를 나눴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후보자가 이달 초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과 면담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간 대북 강경 일변도를 주장해 온 아베 총리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아사히신문은 19일 아베 총리가 한반도 문제에서 향후 대북 정책의 방향성을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서영아 특파원}
미일 간의 무역 문제는 회담 이틀째에 집중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간) 미일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 기자들 앞에서 “내일은 무역에 대해서도 논의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일본은 미국에서 많은 방위장비품을 구입하고 미국은 일본에서 많은 차를 사고 있지만 무역에 대해서는 논의해야 할 게 있다”며 통상 문제에 대해 집중 논의할 생각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무역 불균형 문제에 관한 한 일본에 대해 비판을 거두지 않아 왔다.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 제한 조치에서는 일본이 동맹국인데도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고 철강 알루미늄 등의 수입 제한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기존 미일 경제대화와 별도로 무역이나 투자 문제에 관해 대화하는 새로운 논의의 틀을 만들자고 제안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밤 미일 정상 간의 만찬이 끝난 뒤 트위터에 “일본은 우리에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요구하지만 양국 간 협의 쪽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만일 TPP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만일의 사태가 너무 많고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며 “양자 간 거래가 우리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효율적이고, 이익이 되며, 더 좋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얼마나 미국에 나쁜지 보라”고 덧붙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의를 다시 요구해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 소유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을 위해 납치 문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날 5월 또는 6월 초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 대응 방안으로 북한 핵·미사일 계획의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폐기’를 지향한다는 방침을 확인하고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날 회담은 처음 양 정상 간에 55분간 진행된 뒤 1시간 10분 동안 소인수 회담으로 진행됐다. 소인수 회담엔 일본 측에서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관방부(副)장관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이, 미국 측에선 존 설리번 국무장관대행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그리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참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베 총리와 같은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넥타이를 매고 기자들 앞에 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등 대화 국면에서 일본이 소외되고 있다는 ‘저팬 패싱’ 우려를 해소하려는 듯 자신과 아베 총리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매우 매우 특별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시종일관 ‘도널드’로 부르며 친분을 과시했다. 아베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과 일본이 국제사회를 리드해 압력을 최대한으로 높인 결과, 북한이 대화를 요청해왔다. 우리의 접근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결단한 대통령의 용기를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미국은 북한 문제에서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납치문제 제기를 요청하자 “납북 일본인 문제를(북-미 정상회담에서) 제기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해결해야 할 때다. 일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기쁜 표정으로 “일본이 납북자 문제를 얼마나 걱정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외에 일본인 납북자와 억류 미국인 등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방침이다.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인 김동철, 김상덕, 김학송 씨 문제가 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의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 앞에서 “혹 가능하다면, 시간이 된다면 우리는 내일 아침 살짝 빠져나가 (아베 총리와) 골프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 회동 요청을 한 차례 거절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차 제안하자 미일 간 밀월 분위기를 깰 것을 우려해 받아들였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얘기를 꺼내자 옆에 서 있던 아베 총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상회담을 끝낸 뒤 만찬을 앞두고 두 정상은 부부 동반으로 별장 앞 잔디밭을 함께 거닐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직 포르노 여배우와의 스캔들로 인한 불화설을 불식하듯 멜라니아 여사의 손을 잡고 등장했다. 아베 총리는 사학재단 모리토모(森友) 스캔들의 주인공 아키에(昭惠) 여사와 손을 잡지는 않았으나 아키에 여사가 잔디밭에서 나올 때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내밀기도 했다. 소인수 회담에 참석한 니시무라 관방부장관은 이날 회담에 대해 “대부분 북한 문제였다”며 이틀째가 되는 18일 워킹런치에서는 통상문제가 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sya@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고령화가 진행되면 인지증(치매) 환자도 늘기 마련이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제대로 알고 대응한다는 자세로 인지증과의 공존을 모색 중이다. 아사히신문은 15일 인지증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당사자나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인지증 서포터’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제도를 이끄는 ‘전국 캐러밴 메이트 연락협의회’에 따르면 서포터는 3월 말 현재 1015만1600여 명으로 처음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20세 미만 서포터만 210만 명에 이른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단위로 서포터 양성 강좌를 수강하는 경우가 늘어난 덕이다. 인지증 서포터가 되려면 약 90분의 무료 강좌를 들어야 한다. 인지증 원인이나 증상에 대해 설명을 듣고 ‘놀라게 하지 않는다, 서둘지 않는다, 자존심에 상처 주지 않는다’ 등 인지증 환자에게 접근하는 자세를 배운다. 서포터 제도는 후생노동성이 2005년 당시 치매라는 단어가 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여 인지증으로 바꾼 직후 도입했다. 인지증에 대해 잘 모르면서 편견에 찬 시선이 많다는 평가에 따라 제대로 알고 불안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서포터 확산이 조기 대응이나 치료로 연결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32.6%에 달하는 후쿠이(福井)현 와카사(若狹)정은 인구 1만5000명 중 1만2000명이 서포터 양성 강좌를 수강했다. 간호사들이 고령자 집을 방문해 뇌의 모형을 사용하며 일대일로 설명하거나 부인회나 지역 모임을 찾아갔다. 그 결과 과거 인지증을 숨기려던 분위기가 확 달라져 “우리 아버지가 이상해 보이면 알려 달라”고 이웃에 부탁하는 등 개방적으로 변했다. 이 지역 병원 조사에 따르면 와카사정은 인근 지역보다 조기에 인지증 검진을 받는 사람이 늘었고 그만큼 병세도 가벼웠다. 초진 단계에서 경증 이하인 사람이 와카사정은 75%였던 데 비해 주변 지역은 50∼64%에 불과했다. 아키타(秋田)현 우고(羽後)정에서도 서로 돕는 정신이 확산되고 있다. 이 지역 인지증 서포터 협회 회원은 약 60명. 환자와 주민이 교류하는 카페를 열고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트레이닝도 도입했다. 협회가 상담창구 역할을 맡고 상점이나 택시회사, 학부모회 등이 속속 참가하면서 “같은 물건을 몇 번이나 사가는 사람이 있다”거나 “길을 헤매는 할머니가 있다”는 정보들이 빈번하게 들어오고 있다. 한편 총무성이 14일 발표한 인구추계(2017년 10월 기준)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는 3515만 명으로 인구의 27.7%를 차지했다. 인지증 환자도 갈수록 늘어 2025년에는 약 7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3연임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15일 일본 언론이 전했다. 아베 총리는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을 노리고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전날 이바라키(茨城)현 미토(水戶)시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모리토모(森友)학원과 가케(加計)학원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총리의 자세를 지적하며 “이제 신뢰가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들린다”며 “3연임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전 문제로 갈라서기 전까지 아베 총리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15년 야나세 다다오(柳瀨唯夫) 당시 총리비서관이 에히메(愛媛)현 직원 등과 만나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 문제가 ‘총리안건’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나왔음에도 “면회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그는 “많은 국민은 기억보다는 기록을 믿을 것이다.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 모두가 상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14일 오후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아베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집회가 3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참석자들은 “제대로 된 정치를 하라” “아베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일하는 기쁨을 누구에게나.” 일본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에 자리한 분필제조회사 ‘니혼리카가쿠(日本理化學)공업’. 4일 찾은 공장은 오전 8시 반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언뜻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공장이지만 종업원 85명 중 63명이 지적장애인이다.특히 제작라인 직원 15명은 전원이 지적장애인이다. 》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없지 않았으나 이 회사는 현재 일본 내 분필업계에서 시장점유율 1위(60%)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매년 성장하고 있기도 하다. 비결은 남다른 집중력이다. 지적장애인은 보통 사람의 10배가 되는 집중력으로 일할 수 있다. 물론 공장 직원들은 남들보다 모자란 부분이 적지 않다.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 글씨를 못 읽는 사람, 눈으로 본 것은 따라 해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이런 결점들이 약간의 연구와 배려를 통해 메워지자 여느 인재들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여줬다. 회사 측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래시계를 제공하고 색색 그림으로 이뤄진 공정표를 만드는 등 각자에게 맞는 업무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애써 왔다. 이들을 채용할 때 회사는 ‘5가지 약속’을 요구한다. △혼자 힘으로 회사에 출퇴근할 수 있을 것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것 △인사를 잘 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할 것 △열심히 일할 것 △주변 사람의 얘기를 잘 들을 것 등이다. 입사하면 대부분 정년까지 일하는 충성도를 보인다. 대개 18∼19세에 입사하니 직원의 나이가 곧 경력인 경우가 많다. 항상 웃는 얼굴인 나카야마 후미아키 씨(39)는 20년 경력이다. 분필을 프레스로 절단해 건조 공정에 넣는 일을 한다. ‘뭐가 그렇게 즐거우냐’고 묻자 더듬으면서도 “모두 함께 일하니 늘 즐겁다”고 말했다. 38년 경력의 하라 나오미 씨(57)는 분필을 상자에 넣는 일만을 해 왔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손놀림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가나가와현의 최저시급인 시간당 956엔. 주 40시간, 한 달 20일 일하면 15만여 엔(약 150만 원)을 받게 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땀 흘려 번 돈이다. 일본 정부에선 1인당 월 2만1000엔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193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원래 ‘보통’ 분필공장이었다. 일본 최초로 탄산칼슘에 가리비 껍데기 가루를 섞은 분필을 개발해 ‘인체에 무해한 분필’로 문부성 추천을 받은 게 자랑인, 평범한 회사였다. 장애 직원을 고용한 것은 1960년 회사 인근 장애인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여학생 2명을 실습생으로 받은 일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장애인학교 교사가 근처 공장들을 찾아가 제자들의 취직을 부탁했다. 두 번을 거절했지만 교사는 세 번째 찾아와 “취직이 아니어도 좋다. 제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일하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며 며칠만이라도 실습을 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일본에서 지적장애인은 15세에 장애인학교를 졸업하면 지방의 장애인시설로 보내져 평생을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대 사장으로 당시 전무였던 오야마 야스히로(大山泰弘) 회장은 순전한 동정심에서 두 여학생을 2주간 실습생으로 받아들였다. 아이큐 70 이하로 읽고 쓰기도 못하는 소녀들은 상품에 스티커 붙이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인 것처럼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려도 옆에서 흔들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침이면 공장 문을 열기 2시간 전부터 출근해 문 앞에서 기다렸다. 2주일이 끝나는 날, 직원들이 ‘우리가 돕겠다’며 2명의 채용을 회사에 건의했다. “아이들이 열심인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일에 더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거였다. 두 소녀는 그 뒤 정사원으로 채용돼 65세 정년퇴직 때까지 무지각 무결근으로 회사를 다녔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과정에서 회사로서도 고민이 없지 않았을 터. 당시 오야마 전무는 우연히 한 스님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이렇게 물었다. “장애인을 몇 명 고용하고 있는데 실수도 많고 가르쳐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매일 야단을 맞고서도 다음 날이면 출근 시간보다 빨리 회사에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왜 힘들게 회사에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돌아온 스님의 답에 그는 무릎을 쳤다. “당신은 돈 많고 물건을 많이 가지면 행복합니까. 아닐 겁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 칭찬받는 것, 도움이 되는 것,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 사랑받는 것을 제외한 3가지가 충족됩니다.” 이후 회사는 장애인 고용을 늘려 왔다. 3대 사장은 이때 ‘기업의 존재 가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훗날 밝혔다. ▼ 2008년 책으로 소개… 日 총리도 국회연설서 언급 ▼2008년 4대 사장에 취임한 오야마 다카히사(大山隆久·사진) 사장 또한 입사 초기에 고민이 많았다. 20대 후반까지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입사한 그는 “저출산 시대에 분필시장은 갈수록 좁아진다. 기업은 효율을 높이고 이윤을 창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업종을 바꾸고 장애인 고용도 줄여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수년간 회사에서 일을 해본 뒤 “이 회사에서 장애인 고용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함께 일해 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절대 하루 8시간을 그렇게 집중해서 일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저희 회사를 장애인을 돕는 사회공헌기업이라 하지만 사실은 장애인들 덕에 회사가 운영되는 겁니다.” 이 회사는 2008년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라는 책에 소개된 뒤 2009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총리가 국회 연설에서 언급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매출은 연 6억∼8억 엔 정도지만 매년 늘고 있다(표 참조). 어디에나 그릴 수 있고 물로 지울 수 있는 고형 분필 ‘키토파스’를 개발하는 등 시대 변화에 맞는 제품 개발에 힘을 쏟은 게 주효했다. 4대 사장은 “저희는 일반 회사다.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가 일할 터전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필사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기업’의 저자는 “복지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1명에게 국가가 들이는 돈은 연간 500만 엔 선이다. 20∼60세까지 1인당 2억 엔이 들어간다는 얘기”라며 “1인당 연간 100만 엔 정도만 기업에 지원해줘도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에 적극 나설 것이고 국가도 엄청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가와사키=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하는 기쁨을 누구에게나.” 일본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에 자리한 분필제조회사 ‘니혼리카가쿠(日本理化學)공업’. 4일 찾은 공장은 오전 8시 반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언뜻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작은 공장이지만 종업원 85명 중 63명이 지적장애인이다. 특히 제작라인 직원 15명은 전원이 지적장애인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도 있지만 이 회사는 현재 일본 내 분필업계에서 시장점유율 1위(60%)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매년 성장하고 있기도 하다. 비결은 남다른 집중력이다. 지적장애인은 보통 사람의 10배가 되는 집중력으로 일할 수 있다. 물론 공장 직원들은 남들보다 모자란 부분이 적지 않다.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 글씨를 못 읽는 사람, 눈으로 본 것은 따라 해도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이런 결점들이 약간의 연구와 배려를 통해 메워지자 여느 인재들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여줬다. 회사 측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래시계를 제공하고 색색 그림으로 이뤄진 공정표를 만드는 등 각자에게 맞는 업무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 애써 왔다. 이들을 채용할 때 회사는 ‘5가지 약속’을 요구한다. △혼자 힘으로 회사에 출퇴근할 수 있을 것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것 △인사를 잘 하고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할 것 △열심히 일할 것 △주변 사람의 얘기를 잘 들을 것 등이다. 입사하면 대부분 정년까지 일하는 충성도를 보인다. 대개 18~19세에 입사하니 직원의 나이가 곧 경력인 경우가 많다. 항상 웃는 얼굴인 나카야마 후미아키 씨(39)는 20년 경력이다. 분필을 프레스로 절단해 건조 공정에 넣는 일을 한다. ‘뭐가 그렇게 즐거우냐’고 묻자 더듬으면서도 “모두 함께 일하니 늘 즐겁다”고 말했다. 38년 경력의 하라 나오미 씨(57)는 분필을 상자에 넣는 일만을 해 왔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손놀림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가나가와현의 최저시급인 시간당 956엔. 주 40시간, 한 달 20일 일하면 15만여 엔(약 150만 원)을 받게 된다. 스스로의 힘으로 땀 흘려 번 돈이다. 일본 정부에선 1인당 월 2만1000엔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193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원래 ‘보통’ 분필공장이었다. 일본 최초로 탄산칼슘에 가리비 껍데기 가루를 섞은 분필을 개발해 ‘인체에 무해한 분필’로 문부성 추천을 받은 게 자랑인, 평범한 회사였다. 장애 직원을 고용한 것은 1960년 회사 인근 장애인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여학생 2명을 실습생으로 받은 일이 계기가 됐다. 당시 장애인학교 교사가 근처 공장들을 찾아가 제자들의 취직을 부탁했다. 두 번을 거절했지만 교사는 세 번째 찾아와 “취직이 아니어도 좋다. 제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일하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며 며칠만이라도 실습을 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일본에서 지적장애인은 15세에 장애인학교를 졸업하면 지방의 장애인시설로 보내져 평생을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대 사장으로 당시 전무였던 오야마 야스히로(大山泰弘) 회장은 순전한 동정심에서 두 여학생을 2주간 실습생으로 받아들였다. 아이큐 70 이하로 읽고 쓰기도 못하는 소녀들은 상품에 스티커 붙이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인 것처럼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려도 옆에서 흔들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침이면 공장 문을 열기 2시간 전부터 출근해 문 앞에서 기다렸다. 2주일이 끝나는 날, 직원들이 ‘우리가 돕겠다’며 2명의 채용을 회사에 건의했다. “아이들이 열심인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일에 더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거였다. 두 소녀는 그 뒤 정사원으로 채용돼 65세 정년퇴직 때까지 무지각 무결근으로 회사를 다녔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과정에서 회사로서도 고민이 없지 않았을 터. 당시 오야마 전무는 우연히 한 스님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이렇게 물었다. “장애인을 몇 명 고용하고 있는데 실수도 많고 가르쳐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매일 야단을 맞고서도 다음 날이면 출근 시간보다 빨리 회사에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왜 힘들게 회사에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 돌아온 스님의 답에 그는 무릎을 쳤다. “당신은 돈 많고 물건을 많이 가지면 행복합니까. 아닐 겁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 칭찬받는 것, 도움이 되는 것,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 사랑받는 것을 제외한 3가지가 충족됩니다.” 이후 회사는 장애인 고용을 늘려 왔다. 3대 사장은 이때 ‘기업의 존재 가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훗날 밝혔다. 2008년 4대 사장에 취임한 오야마 다카히사(大山隆久) 사장 또한 입사 초기에 고민이 많았다. 20대 후반까지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입사한 그는 “저출산 시대에 분필시장은 갈수록 좁아진다. 기업은 효율을 높이고 이윤을 창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업종을 바꾸고 장애인 고용도 줄여 나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수년간 회사에서 일을 해본 뒤 “이 회사에서 장애인 고용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함께 일해 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절대 하루 8시간을 그렇게 집중해서 일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저희 회사를 장애인을 돕는 사회공헌기업이라 하지만 사실은 장애인들 덕에 회사가 운영되는 겁니다.” 이 회사는 2008년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회사’라는 책에 소개된 뒤 2009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당시 총리가 국회 연설에서 언급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매출은 연 6억~8억 엔 정도지만 매년 늘고 있다. 어디에나 그릴 수 있고 물로 지울 수 있는 고형 분필 ‘키토파스’를 개발하는 등 시대 변화에 맞는 제품 개발에 힘을 쏟은 게 주효했다. 4대 사장은 “저희는 일반 회사다.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가 일할 터전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필사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가장 소중한 기업’의 저자는 “복지시설에 수용된 장애인 1명에게 국가가 들이는 돈은 연간 500만 엔 선이다. 20~60세까지 1인당 2억 엔이 들어간다는 얘기”라며 “1인당 연간 100만 엔 정도만 기업에 지원해줘도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에 적극 나설 것이고 국가도 엄청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가와사키=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나는 안락사로 가고 싶다’고 선언한 93세 노작가 하시다 스가코 씨. 그의 저서를 두 권 읽고도 인터뷰 신청을 할지 오래 망설였다. 이미 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죽음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럽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안락사라는 주제가 너무 쇼킹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인터뷰 기사(본보 3월 30일자 A32면)에 달린 댓글들은 그런 망설임이 기우였음을 보여줬다. 대부분이 하시다 씨의 안락사론에 공감을 표하는 내용이다. 솔직히 놀랐다. 특히 “내가 나일 수 있을 때라는 말이 뼛속 깊이 다가온다”거나 “안락사라는 보험이 있다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글들이 그랬다. 죽음이란 과거에는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이었다. 어른들은 때가 되면 늙고 자연의 한 과정으로서 죽어갔다. 그 바로 곁에서는 아이들이 새로 태어났다. 하지만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의술이 발전하면서 죽음은 병원 안에 가둬졌다. ‘삶’과 ‘숨만 쉬는 상태’의 괴리는 더 이상 보이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게 됐다. 우리는 막상 자신의 일로 맞이하기 전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생활한다. 그런 점에서 분게이괴주(文藝春秋) 지난해 3월호가 명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명 설문조사 내용도 공감이 갔다. 60명 중 33명이 적극적 안락사에, 20명이 존엄사에 찬성한 가운데 고령자일수록 안락사에 찬성하는 비중이 높았다. 이들은 질문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답을 하고 있었다. 안락사는 회복할 가망이 없는 환자가 약물 등을 복용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고, 존엄사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연명치료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걸 뜻한다. 안락사에 찬성한 82세의 각본가는 “지금까지의 내 생에 납득하고 있다. 이별의 슬픔은 있겠지만 주위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고 적었다. 91세의 모친을 얼마 전 여읜 70세 평론가는 “마지막 1년은 불안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죽여 달라고 호소하는 엄마를 보며 정말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84세의 작곡가는 “자신이 자신으로 있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들었다. 75세의 전 방위청장관은 존엄사에 한해 찬성하면서 “태어난 것도 운명이고 죽을 때도 죽음을 회피하려 말고 운명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82세의 전 NHK 회장도 “자연의 흐름에 맡겨 종말을 맞고 싶다”며 존엄사에 찬성했다. 하시다 씨는 일본에서 ‘셀럽(유명인)’이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평생 미친 듯이 극본을 써낸 덕에”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매일 오전 가정부 5명이 집으로 와 살림을 돌봐주고 매년 호화 크루즈 여행에 나선다. 이런 하시다 씨가 ‘안락사로 가고 싶다’며 일본 내에서 관련 논의를 해달라고 문제 제기한 것은 작가로서 사회현상에 대해 그만큼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 무거운 주제를 아주 가볍게 꺼낸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안락사라는 ‘보험’이 있으면 더 맘껏 현재를 즐길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가령 저는 매년 해외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데, 어느 날 이렇게 돈을 써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혹시라도 100세를 넘겨 산다면? 그때 돈이 다 떨어져 버리면? 이런 생각을 하면 돈도 쓸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최후를 자신이 정한다는 것. 그에겐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저는 평생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90을 넘어서 죽을 때 존엄하게 죽을 권리 정도는 가져도 되는 것 아닐까요. ‘이젠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