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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연 지 2주 만인 15일 최소 68명이 숨진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네팔 포카라 국제공항이 중국 경제영토 확장 사업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통해 건설됐다는 사실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일부 외신은 부실 공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2017년 7월 착공해 이달 1일 개항한 포카라 국제공항은 건설 비용을 중국수출입은행 차관으로 충당했다. 중국국가기계공업회사 자회사 중국CAMC엔지니어링이 시공을 맡았다. 인도 일간 더타임스오브인디아는 네팔 매체를 인용해 “네팔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공항 건설 비용으로) 차관 2억1596만 달러(약 2666억 원)를 받았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공항 개항 다음 날인 2일 “포카라 국제공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을 충족하는 (비교적 상위권인) 4D 수준 국제공항”이라며 “양국 정부 핵심 협력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군 사령관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26일 취임한 푸슈파 카말 다할 총리도 1일 개항식에 참석해 “이 공항 개장으로 포카라는 아시아 교통 중심이 될 것”이라며 “중국 지원으로 대형 국가사업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도 매체 뉴스18은 16일 네팔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왕이(王毅) 중국 중앙외사공작위원회(외사) 판공실 주임이 지난해 4월 (포카라 국제공항) 열쇠를 넘긴 뒤 일어난 첫 사고”라며 “공사에 사용된 자재를 조사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왕 주임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취임 이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공항 입지도 문제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네팔 일간 카트만두포스트는 공항이 개장하기 전인 지난해 8월 “공항 인근 매립지가 맹금류를 유인하기 때문에 비행기를 조종하기에 위험한 지역”이라면서 “관계자들은 개항 전까지 매립지를 옮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우려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반면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사고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연식이 15년 된 ‘항공기 노후’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보도를 했다. 이 같은 견해 차이는 네팔을 둘러싼 인도와 중국의 신경전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도와 중국에 둘러싸인 네팔은 전통적으로 인도를 통한 교역에 의존해 왔지만, 최근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하며 대중국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네팔로 이어지는 국제 철도 개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문을 연 지 보름만인 15일 최소 68명이 숨진 여객기 추락사고가 발생한 네팔 포카라 국제공항이 중국 경제영토 확장 사업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통해 건설됐다는 사실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일부 외신은 부실 공사 가능성을 제기했다.2017년 7월 착공해 이달 1일 개항한 포카라 국제공항은 건설 비용을 중국수출입은행 차관으로 충당했다.중국국가기계공업회사 자회사 중국CAMC엔지니어링이 시공을맡았다. 인도 일간 더타임스오브인디아는 네팔 매체를 인용해 “네팔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공항 건설 비용으로) 차관 2억1596만 달러(약 2666억 원)를 받았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공항 개항 다음날인 2일 “포카라 국제공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을 충족하는 4D 수준 국제공항“으로 ”양국 정부 핵심 협력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군 사령관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26일 취임한 푸쉬파 카말 다할 새 총리도 1일 개항식에 참석해 “이 공항 개장으로 포카라는 아시아 교통 중심이 될 것“이라며 ”중국 지원으로 대형 국가사업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도 매체 뉴스18은 16일 네팔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왕이(王毅) 중앙외사공작위원회(외사) 판공실 주임이 지난해 4월 (포카라 국제공항) 열쇠를 넘긴 뒤 일어난 첫 사고”라며 “공사에 사용된 자재를 조사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왕이 주임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취임 이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공항 입지도 문제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네팔 일간 카트만두포스트는 공항이 개장하기 전인 지난해 8월 “공항 인근 매립지가 맹금류를 유인하기 때문에 비행기를 조종하기에 위험한 지역”이라면서 “관계자들은 개항 전까지 매립지를 옮기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우려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반면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사고에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항공기 노후’가 문제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보도를 했다. 이 같은 견해 차이는 네팔을 둘러싼 인도와 중국의 신경전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도와 중국에 둘러싸인 네팔은 전통적으로 인도를 통한 교역에의존해왔지만, 최근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적극 동참하며 대중국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네팔로 이어지는 국제철도 개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에 착수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독일 탄광마을에서 석탄 채굴에 반대하는 기후활동가들이 14일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했다. 스웨덴 출신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시위에 동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급이 막히는 등 에너지 위기를 겪은 독일이 지난해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높인 가운데, 기후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상징적으로 분출된 것이다. 이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탄광마을 뤼체라트 인근에서 석탄 채굴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경찰 추산 약 6000명이 참여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지만 기후활동가들은 2년 전부터 트리하우스(나무 위에 만든 집) 등을 짓고 이곳을 점거해 왔다. 독일 최대의 전력생산업체 RWE가 탄광을 확장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독일 정부 차원 목표보다 8년 앞당긴 2030년까지 탈(脫)석탄을 이루겠다며 관련 조치를 해 왔다. 독일은 탈원전,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이 막혀 가스 가격이 요동치면서 석탄 사용이 크게 늘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지사는 이날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럽 1위의 경제대국인 독일이 에너지 위기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석탄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해졌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 정부와 RWE는 뤼체라트 광산을 더 이상 확장 개발하지 않고 조기에 폐쇄하는 대신, 마을 자체를 철거하고 지하에 남아 있는 석탄은 발전용으로 채굴하기로 합의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13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뤼체라트는 (독일이) 갈탄을 채굴할 최후의 장소”라고 했다. 하지만 기후활동가들은 독일이 석탄 채굴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시위에 동참한 툰베리는 연단에 올라 “석탄 채굴은 현재와 미래 세대에 대한 배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독일이 너무 부끄럽다. 석탄을 캐지 말고 땅속에 그대로 둬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분명하다”고 했다. 시위대는 이날 저녁 대부분 해산했지만 경찰이 시위 통제 과정에서 경찰봉 등을 사용하면서 부상자도 발생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탄광 입구 위험구역에서 울타리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막기 위해 무력 사용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튿날 철거 작업을 다시 이어갈 예정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에너지 위기에 따른 경제난을 우려하는 정치적 흐름과 민심이 활동가들에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영국 왕실 내부의 뒷이야기를 폭로한 해리 왕자의 자서전 ‘스페어’가 발매 하루 만에 영국, 미국, 캐나다에서 140만 부 이상 팔렸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 측은 초판으로 200만 부를 인쇄했고 이미 추가 인쇄에 돌입했다. 날개 돋친 듯한 판매량과 별개로 해리 왕자를 향한 영국 내 여론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책 내용이 왕실에 대한 그의 일방적 비판과 주장으로만 채워진 데다 왕실을 떠났다면서 왕실 얘기로 돈벌이를 하는 그의 행보를 둘러싼 비난이 상당하다. 한 조사에서 ‘그의 작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무려 95%가 동의했다.○ ‘해리포터’ 맞먹는 인기펭귄랜덤하우스는 10일 출간된 스페어가 이날 영국에서만 40만 권 이상 팔려 비소설 부문 역대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첫날 90만 부 넘게 판매돼 3개국 합산 판매량이 140만 부가 넘는다는 것이다. 출판사 측은 “성공할 줄 알았지만 기대를 뛰어넘었다. 출간 첫날 더 많이 팔린 책은 ‘또 다른 해리’가 등장하는 책(조앤 K 롤링의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뿐”이라고 했다. 이 책은 ‘덤’이라는 제목답게 해리 왕자가 자신이 형 윌리엄 왕세자의 ‘예비용’에 불과하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는 형과의 다툼, 왕실에 대한 원망, 마약 경험, 성생활 등 시시콜콜한 사생활까지 낱낱이 밝혔다. 특히 일부 내용의 사전 공개 당시 해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 파병 중 탈레반 대원 25명을 사살했고 그들을 ‘체스 판의 말’로 느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투로 발언한 부분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10일 미 피플 매거진에 “사살 인원을 공개한 것은 ‘치유를 위한 여정’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했으나 여론은 싸늘하다. 2018년 흑백 혼혈인 미국 배우 메건 마클과 결혼한 해리 왕자는 이후 부부 모두 각종 구설에 시달렸다. 2020년 왕가의 공식 역할에서 물러나겠다며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2021년 인터뷰에서 왕실 내 인종차별을 주장해 큰 후폭풍을 불렀다. 지난해 12월에는 넷플릭스에서 6부작 다큐멘터리를 공개했고 영미권 언론과의 인터뷰도 줄줄이 이어갔다. 그가 2000만 달러(약 240억 원)에 ‘스페어’를 비롯한 여러 책을 출간하는 계약을 맺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해리 부부 지지” 4% 불과계속되는 폭로에 지친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데일리메일이 이날 독자 20만 명을 상대로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95%는 “왕자 부부가 왕실의 ‘서식스 공작’ 작위를 반납해야 한다”고 답했다. 영국 여론조사업체 유고브 또한 ‘스페어’의 일부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한 5, 6일 양일간 조사한 결과 해리 왕자에 관한 긍정적인 의견이 26%로 2011년 조사 실시 후 가장 낮았다고 9일 밝혔다. 영국 언론 또한 호의적이지 않다. BBC방송은 “해리 왕자는 이제 공식적인 왕실 가족이 아닌데도 부친이 속옷 차림으로 물리 치료를 받았다는 등 무분별한 묘사를 이어가고 있다”며 “왕족이 쓴 가장 이상한 책”이라고 지적했다. 텔레그래프 또한 그가 왕실 비판 일색인 이 책을 쓴 후 가족에게 ‘화해를 위한 대화’를 요구해 가족이 놀랐다며 “왕실은 그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전했다. 더타임스는 이 책에 역사적 사실, 기본 상식을 틀리게 적은 부분이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지난해 미국에서 기상이변 피해 규모가 200조 원을 넘어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3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해양대기청(NOAA)은 지난해 기후 관련 재난으로 입은 경제적 피해가 1650억 달러(약 205조 원)에 육박했다고 10일(현지 시간) 밝혔다. 1980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사망자도 474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NOAA 응용기후학자 애덤 스미스는 CNN방송에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에 미국을 뒤덮은 겨울폭풍 피해를 합치면 총 피해 규모는 수십억 달러 더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NOAA에 따르면 단일 자연재난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경제적 피해가 140조 원을 넘은 허리케인 이안이었다. 미 역사상 이안보다 피해 규모가 컸던 것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2017년 허리케인 하비뿐이었다. NOAA는 지난해 허리케인 발생 횟수는 평년 수준이었지만 초강력 허리케인이 더 자주 찾아와 피해가 컸다고 설명했다. 이상고온과 가뭄도 심각했다. 지난해 미 본토 연간 평균기온은 섭씨 11.9도로 20세기에 비해 0.8도 높았다. 128년 간 통계 기록 중 세 번째로 높았다. 연 강수량은 평년보다 약 40mm 적은 720mm를 기록해 역대 세 번째로 건조한 해였다고 NOAA는 밝혔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기준 미 국토 3분의 2 가량이 강수량 부족에 시달려 2012년 이후 최대 기록을 보였다. 지난해 5월 3일 미 서부 91.3% 지역에서 가뭄이 발생해 정점을 찍었다. 한 지역엔 가뭄이, 다른 지역에는 홍수가 나타나는 현상도 잦아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해 가뭄과 산불이 휩쓸고 간 땅에 지난달부터 폭우가 내리면서 산사태 위험이 커지고 있다. 홍수로 인해 이날까지 17명 이상이 숨졌고 주 전역에 대피령이 내렸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매우 짧은 기간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튀는 ‘쌍둥이 극한 기후’는 경제난과 광범위한 피해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대규모 피해를 낳은 기상 이변은 최근 5년 새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NOAA에 따르면 지난해 10억 달러(약 1조2429억원) 이상 피해를 일으킨 자연재해는 18건으로 2011년, 2017년과 함께 공동 3위다. 가장 많았던 해는 2020년(22건)이며 2021년(20건)이 다음이었다. 기상 이변이 전 세계적으로 유발한 경제적 피해는 지난해 2700억 달러(약 337조 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재보험회사 뮌헨 리가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큰 피해를 일으킨 자연재난은 허리케인 이안이었고, 최소 1700명사망자를 발생시킨 파키스탄 대홍수가 2위였다. 뮌헨 리는 “직접적인 피해 금액은 최소 150억 달러로 추산되지만 대부분 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피해는 더 막대하다”고 말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통령 시절 개인 사무실에서 국가 기밀문서가 발견돼 법무부가 수사에 나섰다고 미 CBS방송이 9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밀문서 반출 혐의로 수사를 받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까지 문서 유출 파문에 휩싸여 정치권 공방이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CBS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 개인 변호사들은 지난해 11월 2일 워싱턴 ‘펜 바이든 외교·글로벌 참여센터’에서 ‘기밀’ 표시가 된 문서를 비롯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문서들을 발견했다. 이 센터는 2017년 부통령에서 물러나고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가 된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대선 출마 전까지 개인 사무실로 사용했다. 바이든 대통령 개인 변호사 리처드 사우버는 이날 언론 보도가 나오자 성명을 내고 “사무실을 비우기 위해 짐 정리를 하다가 잠겨 있던 캐비닛에서 문서를 발견했다”며 백악관이 다음 날 이 문서들을 국립문서보관소에 이관했다고 밝혔다. CNN방송은 “정보원에게서 얻은 민감한 정보를 지칭하는 ‘민감분류정보(SCI)’ 파일이 포함돼 있었다”며 기밀문서 분량은 12장 미만이라고 전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 측 인사가 “실수였다”고 해명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문서 유출 파문은 지난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저택에서 발견된 기밀문서 300여 건과 관련해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수사를 벌이는 상황에서 드러나 미 정치권에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야당 공화당은 민주당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기자들에게 “그들(민주당)이 트럼프 전 대통령 사건을 정치적으로 취급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FBI(연방수사국)는 바이든의 많은 집, 어쩌면 백악관을 언제 수색할 것인가”라고 올렸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 자신의 개인 사무실에서 국가 기밀문서가 발견돼 법무부가 수사에 나섰다고 미 CBS방송이 9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밀문서 반출 혐의로 수사를 받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까지 문서 유출 파문에 휩싸여 정치권 공방이 가열될 전망이다. CBS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 개인 변호사들은 지난해 11월 2일 워싱턴 ‘펜 바이든 외교·글로벌 참여센터’에서 ‘기밀’ 표시된 문서를 비롯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문서들을 발견했다. 이 참여센터는 2017년 부통령에서 물러나고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가 된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대선 출마 전까지 개인 사무실로 사용했다. 바이든 대통령 개인 변호사 리처드 사우버는 이날 언론 보도가 나오자 성명을 내고 “사무실을 비우기 위해 짐정리를 하다 잠겨 있던 캐비닛에서 문서를 발견했다”며 백악관이 다음날 이 문서들을 국립문서보관소에 이관했다고 밝혔다. CNN방송은 “정보원에게서 얻은 민감한 정보를 지칭하는 ‘민감분류정보(SCI)’ 파일이 포함돼 있었다”며 기밀문서 분량은 12장 미만이라고 전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 측 인사가 “실수였다”고 해명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문서 유출 파문은 지난해 트럼프 전 대통령 플로리다 마러라고 저택에서 발견된 기밀문서 300여 건과 관련해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수사를 벌이는 상황에서 드러나 미 정치권에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야당 공화당은 민주당의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기자들에게 “그들(민주당)이 트럼프 전 대통령 사건을 정치적으로 취급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FBI(연방수사국)는 바이든의 많은 집, 어쩌면 백악관을 언제 수색할 것인가”라고 올렸다. 반면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대통령 측은 문건 발견 즉시 당국에 통보했다는 점에서 문서 반환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큰 차이가 있다”고 두둔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브라질 대선에서 1.8%포인트 차로 패배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자들이 8일(현지 시간) 취임한 지 일주일 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브라질 연방의회와 대통령궁, 연방대법원을 습격했다. 미국 ‘1·6 의사당 난입 사태’가 벌어진 지 2년 만에 브라질에서도 극단적인 ‘대선 불복’ 세력이 폭동을 일으켜 국가 중추인 입법·사법·행정을 마비시키려 한 것이다. 1·6사태의 판박이인 이번 폭동에 대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재부상에 따른 극단적 정치 분열이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브라질 입법·사법·행정 ‘3부 기관’ 침탈 AP통신 등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 수천 명은 이날 수도 브라질리아 의회 정문을 부수고 난입해 카펫에 불을 지르고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브라질 정치인 후이 바르보자의 흉상 등을 파괴했다. 시위대 상당수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었고,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국기를 들기도 했다. 현장을 목격한 의회 청소부 아드리아나 레이스(30)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시위대가 밀물처럼 들어왔다. 숨기 위해 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대통령궁인 플라나우투궁을 침탈한 뒤 총기를 훔쳐 무장하고 대통령 집무실 문서를 훔쳐 불을 질렀다고 대통령실 대변인은 밝혔다. 청사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났고, 가구와 전자기기 등은 건물 밖으로 내던져졌다. 시위대는 대통령궁 근처에서 기마경찰을 끌어내려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 시위대는 대법원에도 들이닥쳐 청사 유리창에 흰색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내부 전시물을 파괴했다. 앞서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근소하게 패배한 뒤 선거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승복 선언을 하지 않았다. 이어 1일 룰라 대통령의 취임 이틀 전 미국 플로리다로 떠나 취임식에도 불참했다. 브라질 대통령 취임식에선 전임자가 ‘브라질 국민’을 상징하는 대통령 띠를 후임자에게 매주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지만 이를 거부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부정 선거’를 암시하자 그의 지지자들은 그간 브라질 곳곳에서 고속도로를 봉쇄하는 등 폭력 시위와 테러 위협을 이어왔다. 이들은 몇 달 전부터 미국의 1·6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룰라 정권 퇴진’을 위해 군부에 쿠데타를 요구했던 이들은 이날도 ‘(군부) 개입’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었다.○ “브라질 분열 상상 이상…사회통합 난망” 브라질 군·경찰은 이날 오후 진압 작전을 개시해 의회 대통령궁 대법원에 있던 시위대를 쫓아내고 통제권을 되찾았다. 시위대 난입 약 7시간 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400여 명이 체포됐고, 경찰 다수와 기자 8명 이상이 다쳤다. 대통령 전속 사진사는 여권과 9만5000달러(약 1억1800만 원) 이상 나가는 장비를 도난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홍수 현장을 방문했다가 폭동 소식에 바로 브라질리아로 복귀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이다. 폭도들은 모든 법을 동원해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는 시위대를 ‘파시스트’라고 칭하며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반복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이번 사태를 부추겼다”고 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책임론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평화 시위는 민주주의 일부지만 2013, 2017년 좌파 시위와 마찬가지로 공공건물 약탈은 규칙을 벗어난 것”이라고 이번 폭동과 거리를 뒀다. 국제사회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규탄한다”며 “브라질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브라질 국민의 의지는 절대 훼손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민주적으로 선출된 룰라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NYT는 “이번 사태는 브라질 사회의 분열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뜻한다”며 “룰라 대통령이 1일 취임식에서 사회통합을 핵심 목표로 제시했지만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폭동은 단순한 좌우 대결이 아니라 민주적 선거 결과를 거부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브라질에서는 ‘예고된 반란’을 막지 못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중남미의 유력 싱크탱크인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FGV) 정치학자 자이루 니콜라우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침묵은 이번 시위를 촉발시킨 불꽃이었다”고 지적했다.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제 아빠를 찾아주세요. 1980년대에 아프리카에 왔고 성은 강씨예요.”2019년 3월 경기 안산시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아빠를 만나고 싶다”며 30대 초반의 남성이 찾아왔다. 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라이베리아 출신인 그는 ‘서관우’라는 이름도 자기 스스로 지은 것이라고 했다. 관우는 피부색이 흑인에 가까웠지만 분명 한국인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는 라이베리아식 억양의 영어로 나직하게 말했다. “당시 대우건설에서 라이베리아로 파견을 왔던 한국인 강모 씨를 찾고 있어요.”“정보가 그게 다예요?” 박선영 변호사가 그에게 물었다. 관우는 서류 3장을 책상 위에 내려놨다. 라이베리아에서 가져온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자신과 어머니의 출생증명서였다. 아버지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박 변호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에서 김철수 찾기보다 막막하네.”》아버지 찾아온 ‘아프리칸 한국인’라이베리아. 이 낯선 아프리카 나라에 한국인 혼혈 청년들이 있다. 30여 년 전 건설 현장에 일하러 왔다가 자신의 핏줄을 남긴 채 한국으로 떠나버린 아버지…. ‘아프리카판 코피노’들의 힘겨운 ‘아빠 찾기’ 여정을 따라가 봤다.○ “엄마, 나 왜 이렇게 생겼어요?” 1988년 라이베리아에서 태어난 관우는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 사진조차 없다. 1980년대 대우건설과 협력사들은 라이베리아에 도로 등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공사를 하며 노동자들을 현지에 파견했다. 관우의 아버지 강 씨는 그때 파견된 노동자였다. 강 씨는 한국에 처자식이 있었지만 당시 18세의 고교생이던 라이베리아인 여성을 6개월간 만났다. 이 여성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강 씨는 “고향에 가족이 있어서 배 속의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1988년 관우가 태어났을 때는 강 씨가 이미 한국으로 돌아간 뒤였다. 강 씨는 이듬해 라이베리아에서 내전이 시작되자 관우의 어머니와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 당시 라이베리아에는 독일과 레바논 등 여러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이 있었고 현지 여성과의 사이에 자녀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 상당수는 그렇게 낳은 아이들을 책임진 반면 한국 남성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관우는 자라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점점 더 닮아갔다. 학교에서 아시아계 혼혈아는 관우가 유일했다. 동급생들은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밝은 그를 “주인과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고 놀렸다.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1847년 세운 나라인 라이베리아에서 이 말은 심한 욕이었다. “엄마, 나 왜 이렇게 생겼어요?” 관우는 아홉 살이 되던 해 어머니에게 물었다. 친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어머니는 극심한 내전 속에서 간신히 생계를 꾸리며 관우를 키웠다. 관우는 “도망간 아버지가 평생 원망스러웠고 동시에 그리웠다”고 했다.○ 유전자 검사 가는 길,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라이베리아에서 대학을 졸업한 관우는 29세가 된 2017년 한국행을 결심했다. “자라는 내내 없었던 아버지를 꼭 찾고 싶었어요. 나의 절반을 이루는 한국의 문화도 경험하고 싶었고요.” 한국에 가기 위해 몇 년간 돈을 모았지만 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하는 항공권을 사고 나니 남은 돈은 30만 원이었다. 일단 라이베리아인 지인이 있는 광주로 내려갔다. 여러 관공서를 전전했지만 아버지 성이 강씨라는 것 외엔 아무 정보가 없어 도움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선 돈부터 벌어야 했다. 공장 일, 과수원 일, 택배 상하차, 치킨 배달 등 가리지 않고 했다. 광주, 경기 안산시, 경남 밀양시, 서울 충무로 등 전국을 오갔다. 오전 1시에 퇴근해 눈만 붙이고 오전 5시에 출근하기 일쑤였다. 짬짬이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들과 단체를 수소문해 메일을 보냈다. 2년 만인 2019년 기회가 찾아왔다. 공익 사건에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세계한인법률가회였다. 관우를 담당했던 박 변호사는 “성만 아는 30년 전 인물이라면 영영 못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3개월이 되도록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박 변호사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경찰관의 말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출입국관리소 기록은 거의 영구적으로 남아 있어요.” 강 씨의 출입국 기록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부랴부랴 법원에 출입국관리사무소(현 출입국·외국인청)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시점도 특정하기 어려워 1980년부터 1989년까지 10년간 라이베리아에 입국한 모든 한국인의 이름을 조회하기로 했다. 2주 뒤 결과가 나왔다. 1980년대 라이베리아를 오간 강씨 성을 가진 남성은 딱 한 명이었다. 박 변호사는 특정된 강 씨의 현재 주소를 찾아 관우가 친자임을 입증하는 소송의 소장을 보냈다. 관우는 마침내 아버지를 찾을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6개월 뒤 열린 첫 재판에 아버지는 출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생 나를 만나고 싶었던 적이 없었구나 싶어서 좌절감이 들었어요.” 법원은 서울대 의대 법의학연구소에 관우 부자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강 씨에게도 검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연락했지만 그가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검사 당일인 2020년 2월 관우가 법의학연구소 검사실로 가는데 누군가 불쑥 말을 걸어 왔다.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노년의 남성이었다. “혹시 한국말 잘해요?” “조금 알아요. 그런데 Who are you(누구세요)?” “I am your 아버지(내가 너의 아버지야).” 관우 입에서 “진짜?”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강 씨는 눈물을 흘리며 관우를 껴안았다. 강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얼굴이 나를 닮아 내 핏줄이란 걸 보자마자 알았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이 집에 소장이 온 것을 숨겨서 재판에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관우는 “아버지를 만나면 ‘당신을 30년간 미워했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너무 반갑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전 재산 처분한 돈으로 한국 왔는데… 관우처럼 한국인 친부를 만나는 일은 기적에 가깝다. 라이베리아에는 최소 수십 명의 한국계 사생아들이 있지만 한국 땅을 밟는 것조차 어렵다. 역시 한국인 아버지를 둔 라이베리아인 프린스 현보 심 씨(30)도 가까스로 2018년 한국에 도착했지만 이후 여정은 순탄치 않다. 현보는 1993년 라이베리아에서 의류 사업을 하던 아버지 심모 씨와 라이베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작 15세였던 어머니는 당시 40대였던 심 씨가 어머니의 가족들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하며 결혼을 밀어붙이자 부모의 요구에 못 이겨 심 씨와 결혼했다. 어머니는 현보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싶었지만 남자에게 갇히고 말았다”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는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 남매를 낳았다. 심 씨는 남매에게 한국 이름을 붙였다. 어머니는 공주와 왕자처럼 자라라며 ‘프린세스’와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내전과 함께 무너졌다. 심 씨는 내전이 터지자 홀로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갔고 연락은 영영 끊겼다. 현보의 어머니는 내전 속에서 어린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구걸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동네 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했다. 현보는 “누나와 여동생은 다른 집에 맡겨졌다. 삼남매가 흩어져 살면서 남은 음식을 받아먹는 등 개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현보에게 “너희 엄마는 하얀 남자와 결혼했는데 왜 그렇게 가난하냐”고 놀렸다. 학교도 중퇴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현보는 직업훈련을 알아보다 한국에서 이뤄지는 연수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한국에 가서 아버지를 찾을 절호의 기회였다. 현보는 갖고 있던 차와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자신이 운영하던 사업장의 기계를 4000달러(약 508만 원)라는 헐값에 몽땅 처분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아버지를 찾아 묻고 싶었다. “왜 우리를 이런 고통 속에 살게 했나요. 우리가 100% 한국인이었어도 버렸을 건가요.” 현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은 이름 석 자와 부산 출신이라는 점뿐이었다. 2018년 11월 연수생들의 공동 숙소가 있는 경기 의정부시에 도착하자마자 현보는 부산으로 향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영하의 한기와 낯선 풍경이 그를 맞았다. 현보는 “라이베리아에서는 사람을 찾을 때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건너건너 금방 알 수 있었다. 한국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모두 바빠 보였다”고 말했다. 현보는 부산역에 내린 뒤 한동안 역 앞 광장에 멀뚱거리며 서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용기를 내 근처 옷 가게에 들어갔지만, 말문이 막혔다. 점원은 가만히 서 있는 그를 수상하게 쳐다볼 뿐 말도 걸지 않았다. 결국 현보는 역 주변을 한두 시간 서성이다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그는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가까워진 한국인 동료들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냉담했다. “한국에선 혼외자식이 드러나는 걸 싫어해. 너희 아버지도 그럴 거야.” 전 재산을 처분하고 한국에 왔던 현보는 3개월의 연수 기간 동안 아버지에게 단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한 채 라이베리아로 돌아갔다.○ “한국어 공부하고는 싶지만 돈은 언제 벌어요” 법적으로 친자임을 인정받는 데 성공한 관우는 이제 또 다른 벽 앞에 서 있다. 아버지 강 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국적은 라이베리아다. 두 부자는 일주일에 한두 번 통화를 하지만 강 씨의 부인과 자녀들은 관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관우의 ‘멘토’이자 경기 평택시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라이베리아 여성 크리스티나 도 씨는 기자에게 “관우가 거둔 건 슬픈 승리”라며 “현실에선 절대 만날 수 없는 서류상 가족”이라고 말했다. 그녀 역시 내전 이전에 한국인 남성을 만나 딸을 낳았지만 홀로 양육하다 2008년 딸을 데리고 한국에 왔다. 관우의 다음 목표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그는 “평생 고생하신 어머니를 한국에 모셔오려면 안정적인 신분과 직장,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행법상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면 미성년 자녀에게 자동으로 한국 국적이 주어지지만, 성인이 된 이후 한국인의 자녀로 확인된 경우는 다르다. 관우가 한국 국적을 얻으려면 한국어 능력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평가하는 귀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해운업체에서 일주일에 많게는 6, 7일 일하는 관우에겐 만만치 않은 시험이다. 그는 “일이 불규칙해 새벽에 나가야 할 때도 많고 지방 곳곳을 다닌다”며 복잡한 일정표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귀화 시험 응시자용 교육 프로그램도 주로 주말에 열리다 보니 주말 근무가 잦은 관우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아직 초급 수준에 머물러 있다. 3년 전 관우가 일했던 평택시의 주점 사장 윤인철 씨는 “여직원들이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걸 보고 관우도 나를 오빠라고 부르곤 했다”며 웃었다. 현재 관우의 직장 상사인 박청진 씨도 “관우는 성실한 직원이지만 가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어렵다”고 했다. 관우는 “저도 한국어 공부에 전념하고 싶지만 그러면 돈을 벌 수가 없다”고 했다. 관우가 사는 원룸의 책상에는 기초 한국어 학습서가 10권 넘게 쌓여 있지만 끝낸 책은 거의 없었다.○ “두 돌 아들은 고통 안 겪게 해주고 싶어요” 관우는 2년 전부터 아프리카계 한국 혼혈아들을 알음알음 초대해 일상과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관우와 라이베리아에 있는 현보를 연결하는 것도 바로 이 그룹이다. 가입자는 어느덧 30명을 넘었다. 관우는 아버지를 찾기까지의 과정, 한국의 비자 발급 방법, 한국계 사생아 관련 기사 등을 매주 공유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실태 파악을 전혀 하지 않고 않다. 법무부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아프리카 국가별 한국계 사생아 현황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한국 국민의 잘못으로 고통받아 온 청년들이 가족을 찾고 싶어도 문화적 언어적 제도적으로 거의 길이 막혀 있다는 건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보에겐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아들이 있다. “제 아들만큼은 제가 겪었던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 자랐으면 해요. 저는 전혀 누리지 못했던 한국의 교육, 복지 혜택을 제 아들은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한국에 가서 정착하고 싶은 이유예요.” 그는 한국에서 친부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찾아서, 내가 당신 때문에 겪은 그 모든 역경에도 무너지지 않고 좋은 사람으로 자랐다는 걸 보여줄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가 제 아내와 아들을 만났으면 해요.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손자에게 증명할 기회를 주고 싶어요.”평택=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평택=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제 아빠를 찾아주세요. 1980년대에 아프리카에 왔고 성은 강씨예요.” 2019년 3월 경기 안산시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 “아빠를 만나고 싶다”며 30대 초반의 남성이 찾아왔다. 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라이베리아 출신인 그는 ‘서관우’라는 이름도 자기 스스로 지은 것이라고 했다. 관우는 피부색이 흑인에 가까웠지만 분명 한국인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는 라이베리아식 억양의 영어로 나직하게 말했다. “당시 대우건설에서 라이베리아로 파견을 왔던 한국인 강모 씨를 찾고 있어요.”“정보가 그게 다예요?” 박선영 변호사가 그에게 물었다. 관우는 서류 3장을 책상 위에 내려놨다. 라이베리아에서 가져온 가족관계증명서, 그리고 자신과 어머니의 출생증명서였다. 아버지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박 변호사는 한숨을 내쉬었다.“서울에서 김철수 찾기보다 막막하네…”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한국으로 떠난 아버지1988년 라이베리아에서 태어난 관우는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 사진조차 없다. 1980년대 대우건설과 협력사들은 라이베리아에 도로 등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공사를 하며 노동자들을 현지에 파견했다. 관우의 아버지 강 씨는 그때 파견된 노동자였다. 강 씨는 한국에 처자식이 있었지만 당시 18세의 고교생이던 라이베리아인 여성을 6개월간 만났다. 이 여성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강 씨는 “고향에 가족이 있어서 배 속의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1988년 관우가 태어났을 때는 강 씨가 이미 한국으로 돌아간 뒤였다. 강 씨는 이듬해 라이베리아에서 내전이 시작되자 관우의 어머니와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 당시 라이베리아에는 독일과 레바논 등 여러 국가에서 온 노동자들이 있었고 현지 여성과의 사이에 자녀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 상당수는 그렇게 낳은 아이들을 책임진 반면 한국 남성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2004년 라이베리아에서 만난 한국인 남성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출산도 하기 전 이 남성이 한국으로 떠나버려 홀로 딸을 키워왔던 크리스티나 도 씨(41)는 “한국 남성들은 한국에서 결혼을 한 상태였음에도 현지 여성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애가 태어나면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혼외자식을 특히 수치스러워하는 문화 때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유전자 검사 가는 길,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관우는 자라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점점 더 닮아갔다. 학교에서 아시아계 혼혈아는 관우가 유일했다. 동급생들은 피부색이 상대적으로 밝은 그를 “주인과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고 놀렸다.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1847년 세운 나라인 라이베리아에서 이 말은 심한 욕이었다.“엄마, 나 왜 이렇게 생겼어요?” 관우는 아홉 살이 되던 해 어머니에게 물었다. 친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어머니는 극심한 내전 속에서 간신히 생계를 꾸리며 관우를 키웠다. 관우는 “도망간 아버지가 평생 원망스러웠고 동시에 그리웠다”고 했다. 라이베리아에서 대학을 졸업한 관우는 29세가 된 2017년 한국행을 결심했다. “자라는 내내 없었던 아버지를 꼭 찾고 싶었어요. 나의 절반을 이루는 한국의 문화도 경험하고 싶었고요.” 한국에 가기 위해 몇 년간 돈을 모았지만 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하는 항공권을 사고 나니 남은 돈은 30만 원이었다. 일단 라이베리아인 지인이 있는 광주로 내려갔다. 여러 관공서를 전전했지만 아버지 성이 강 씨라는 것 외엔 아무 정보가 없어 도움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선 돈부터 벌어야 했다. 공장 일, 과수원 일, 택배 상하차, 치킨 배달 등 가리지 않고 했다. 광주, 경기 안산시, 경남 밀양시, 서울 충무로 등 전국을 오갔다. 오전 1시에 퇴근해 눈만 붙이고 오전 5시에 출근하기 일쑤였다. 짬짬이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들과 단체를 수소문해 메일을 보냈다. 2년 만인 2019년 기회가 찾아왔다. 공익 사건에 무료 조언을 해주는 세계한인법률가회였다. 관우를 담당했던 박 변호사는 “성만 아는 30년 전 인물이라면 영영 못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3개월이 되도록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박 변호사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경찰관의 말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출입국관리소 기록은 거의 영구적으로 남아있어요.” 강 씨의 출입국 기록이 아직 남아있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부랴부랴 법원에 출입국관리사무소(현 출입국·외국인청)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시점도 특정하기 어려워 1980년부터 1989년까지 10년간 라이베리아에 입국한 모든 한국인의 이름을 조회하기로 했다. 2주 뒤 결과가 나왔다. 1980년대 라이베리아를 오간 강 씨 성을 가진 남성은 딱 한 명이었다. 박 변호사는 특정된 강 씨의 현재 주소를 찾아 관우가 친자임을 입증하는 소송의 소장을 보냈다. 관우는 마침내 아버지를 찾을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6개월 뒤 열린 첫 재판에 아버지는 출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생 나를 만나고 싶었던 적이 없었구나 싶어서 좌절감이 들었어요.” 법원은 서울대 의대 법의학연구소에 관우 부자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강 씨에게도 검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연락했지만 그가 응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검사 당일인 2020년 2월 관우가 법의학연구소 검사실로 가는데 누군가 불쑥 말을 걸어 왔다.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노년의 남성이었다.“혹시 한국말 잘해요?”“조금 알아요. 그런데 Who are you(누구세요)?”“I am your 아버지(내가 너의 아버지야).” 관우 입에서 “진짜?”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강 씨는 눈물을 흘리며 관우를 껴안았다. 강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얼굴이 나를 닮아 내 핏줄이란 걸 보자마자 알았다”고 했다. 그는 가족들이 집에 소장이 온 것을 숨겨서 재판에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관우는 “아버지를 만나면 ‘당신을 30년간 미워했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니 너무 반갑고 행복했다”고 말했다.전 재산 처분한 돈으로 한국 왔는데… 관우처럼 한국인 친부를 만나는 일은 기적에 가깝다. 라이베리아에는 최소 수십 명의 한국계 사생아들이 있지만 한국 땅을 밟는 것조차 어렵다. 역시 한국인 아버지를 둔 라이베리아인 프린스 현보 심 씨(30)도 가까스로 2018년 한국에 도착했지만 이후 여정은 순탄치 않다. 현보는 1993년 라이베리아에서 의류 사업을 하던 아버지 심모 씨와 라이베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작 15세였던 어머니는 당시 40대였던 심 씨가 어머니의 가족들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하며 결혼을 밀어붙이자 부모의 요구에 못 이겨 심 씨와 결혼했다. 어머니는 현보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싶었지만 남자에게 갇히고 말았다”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는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 남매를 낳았다. 심 씨는 남매에게 한국 이름을 붙였다. 어머니는 공주와 왕자처럼 자라라며 ‘프린세스’와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내전과 함께 무너졌다. 심 씨는 내전이 터지자 홀로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갔고 연락은 영영 끊겼다. 현보의 어머니는 내전 속에서 어린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구걸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동네 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했다. 현보는 “누나와 여동생은 다른 집에 맡겨졌다. 삼남매가 흩어져 살면서 남은 음식을 받아먹는 등 개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현보에게 “너희 엄마는 하얀 남자와 결혼했는데 왜 그렇게 가난하냐”고 놀렸다. 학교도 중퇴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현보는 직업훈련을 알아보다 한국에서 이뤄지는 연수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한국에 가서 아버지를 찾을 절호의 기회였다. 현보는 갖고 있던 차와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자신이 운영하던 사업장의 기계를 4000달러(약 508만 원)라는 헐값에 몽땅 처분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아버지를 찾아 묻고 싶었다. “왜 우리를 이런 고통 속에 살게 했나요. 우리가 100% 한국인이었어도 버렸을 건가요.” 현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은 이름 석 자와 부산 출신이라는 점뿐이었다. 2018년 11월 연수생들의 공동 숙소가 있는 경기 의정부시에 도착하자마자 현보는 부산으로 향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영하의 한기와 낯선 풍경이 그를 맞았다. 현보는 “라이베리아에서는 사람을 찾을 때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건너건너 금방 알 수 있었다. 한국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모두 바빠 보였다”고 말했다. 현보는 부산역에 내린 뒤 한동안 역 앞 광장에 멀뚱거리며 서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용기를 내 근처 옷 가게에 들어갔지만, 말문이 막혔다. 점원은 가만히 서 있는 그를 수상하게 쳐다볼 뿐 말도 걸지 않았다. 결국 현보는 역 주변을 한두 시간 서성이다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그는 산업연수생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가까워진 한국인 동료들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냉담했다. “한국에선 혼외자식이 드러나는 걸 싫어해. 너희 아버지도 그럴 거야.” 전 재산을 처분하고 한국에 왔던 현보는 3개월의 연수 기간 동안 아버지에게 단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한 채 라이베리아로 돌아갔다.“한국어 공부하곤 싶지만 돈은 언제 벌어요”관우는 법적으로 아버지 강 씨의 친자임을 인정받는 데 성공했지만 이제 또 다른 벽 앞에 서있다. 강 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오르긴 했으나 여전히 그의 국적은 라이베리아다. 두 부자는 일주일에 한두 번 통화를 하지만 강 씨의 부인과 자녀들은 관우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관우의 ‘멘토’이자 경기 평택시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라이베리아 여성 크리스티나 도 씨는 기자에게 “관우가 거둔 건 슬픈 승리”라며 “현실에선 절대 만날 수 없는 서류상 가족”이라고 말했다. 그녀 역시 내전 이전에 한국인 남성을 만나 딸을 낳았지만 홀로 양육하다 2008년 딸을 데리고 한국에 왔다. 관우의 다음 목표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그는 “평생 고생하신 어머니를 한국에 모셔오려면 안정적인 신분과 직장,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행법상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면 미성년 자녀에게 자동으로 한국 국적이 주어지지만, 성인이 된 이후 한국인의 자녀로 확인된 경우는 다르다. 관우가 한국 국적을 얻으려면 한국어 능력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평가하는 귀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해운업체에서 일주일에 많게는 6, 7일 일하는 관우에겐 만만치 않은 시험이다. 그는 “일이 불규칙해 새벽에 나가야 할 때도 많고 지방 곳곳을 다닌다”며 복잡한 일정표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귀화 시험 응시자용 교육 프로그램도 주로 주말에 열리다 보니 주말 근무가 잦은 관우에겐 ‘그림의 떡’이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아직 초급 수준에 머물러 있다. 3년 전 관우가 일했던 평택시의 주점 사장 윤인철 씨는 “여직원들이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걸 보고 관우도 나를 오빠라고 부르곤 했다”며 웃었다. 현재 관우의 직장 상사인 박청진 씨도 “관우는 성실한 직원이지만 가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어렵다”고 했다. 관우는 “저도 한국어 공부에 전념하고 싶지만 그러면 돈을 벌 수가 없다”고 했다. 관우가 사는 원룸의 책상에는 기초 한국어 학습서가 10권 넘게 쌓여 있지만 끝낸 책은 거의 없었다.“두 돌 아들은 고통 안 겪게 해주고 싶어요.”관우는 2년 전부터 아프리카계 한국 혼혈아들을 알음알음 초대해 일상과 정보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관우와 라이베리아에 있는 현보를 연결하는 것도 바로 이 그룹이다. 가입자는 어느덧 30명을 넘었다. 관우는 아버지를 찾기까지의 과정, 한국의 비자 발급 방법, 한국계 사생아 관련 기사 등을 매주 공유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실태 파악을 전혀 하지 않고 않다. 법무부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아프리카 국가별 한국계 사생아 현황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한국 국민의 잘못으로 고통받아 온 청년들이 가족을 찾고 싶어도 문화적 언어적 제도적으로 거의 길이 막혀 있다는 건 분명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보에겐 아직 두 돌이 되지 않은 아들이 있다. “제 아들만큼은 제가 겪었던 고통을 경험하지 않고 자랐으면 해요. 저는 전혀 누리지 못했던 한국의 교육, 복지 혜택을 제 아들은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한국에 가서 정착하고 싶은 이유예요.” 그는 한국에서 친부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를 찾아서, 내가 당신 때문에 겪은 그 모든 역경에도 무너지지 않고 좋은 사람으로 자랐다는 걸 보여줄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가 제 아내와 아들을 만났으면 해요.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손자에게 증명할 기회를 주고 싶어요.”평택=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평택=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사진)이 과거 여성 편력이 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마키노 요시히로(牧野愛博) 일본 아사히신문 전 서울지국장은 지난해 12월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저서 ‘김정은과 김여정’에서 김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기 전인 2000년대 중반(20대 초반) 고려호텔에 저녁마다 여성들과 함께 나타났다고 전했다. 고려호텔은 출입구가 적어 보안에 용이해 북한 고위층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마키노 전 지국장은 당시 김 위원장과 형 김정철 씨가 고려호텔에 나타나면 입구가 봉쇄됐고 투숙객도 이동이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정일은 형제에게 고려호텔 출입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시를 따른 김정철과 달리, 김 위원장은 여성들과 계속 호텔을 드나들다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다는 것. 책은 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도 자세히 다뤘다. 특히 김정남이 2001년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위조여권 소지 혐의로 체포된 사건은 집안 ‘권력투쟁’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정일의 셋째 부인이자 김 위원장의 생모 고용희가 자신의 지위를 굳히는 과정에서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간다는 사실을 싱가포르 정보기관에 흘렸고, 일본 정보기관이 이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이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과거 평양 고려호텔에 여성들과 자주 출입하는 등 여성편력이 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마키노 요시히로(牧野愛博) 일본 아사히신문 전 서울지국장은 지난달 국내에 번역 출간된저서 ‘김정은과 김여정’에서 김 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기 전인 2000년대 중반 고려호텔에 저녁마다 나타났다고 전했다. 외국 방문객 숙소로 주로 이용되는 고려호텔은 출입구가 적어 보안에 용이해 북한 고위층에 인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마키노 전 지국장은 당시 김 위원장과 형 김정철 씨가 고려호텔에 나타나면 입구가 봉쇄됐고 투숙객도 이동이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형제에게 고려호텔 출입금지령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시를 따른 김정철과 달리, 김 위원장은 여성들과 계속 호텔을 드나들다 아버지와 갈등을 겪었다는 것. 마키노 전 지국장은 책에서 김 위원장 이복형 김정남 암살도 자세히 다뤘다. 특히 김정남이 2001년 일본 나리타(成田)공항에서 위조여권 소지 혐의로 체포된 사건이 집안 ‘권력투쟁’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정일 셋째 부인이자 김 위원장 모친 고용희가 지위를 굳히려는 과정에서 싱가포르에 정보를 흘렸다고 그는 밝혔다. 홍정수기자 hong@donga.com}
미국의 정치 리스크 연구 및 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이 올해 세계의 가장 큰 위협요소가 ‘악당(Rogue) 러시아’라고 지적했다. 유라시아그룹은 3일 발표한 ‘2023년 10대 리스크’ 보고서에서 러시아에 대해 “최고 수준의 지정학적 위기”라며 “우크라이나 민간인은 물론이고 세계 안보와 서구의 정치체제, 사이버 공간, 우주, 식량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러시아가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특히 러시아가 지난해 자국 천연가스 등 자원 수출을 통제하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서방 국가들이 분열되기를 기다렸지만, 유라시아그룹은 “(이 조치가) 미국과 유럽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해는 그렇게 신중할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러시아가 핵 위협을 강화하고 가짜뉴스나 사이버 공격 등 비대칭적 수단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분석했다. 이어 주요 위협요소 2위에는 지난해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꼽혔다. 유라시아그룹은 그가 “마오쩌둥 이후 가장 독보적인 권력을 쥐었다”며 “현대판 황제”라고 평가했다. 또 “시 주석을 견제할 세력들이 사라져 중국의 권위주의가 강화됐다”며 “시 주석이 큰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중국이 최근 방역정책을 급격하게 완화한 것을 ‘독단적 결정’의 대표 사례로 들며 “공중보건, 경제, 외교 세 영역에서 폐해가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밖에 △인공지능(AI) 등 기술 혁신에 따른 혼란 △인플레이션 충격 △반정부 시위로 궁지에 몰린 이란 정권 등이 뒤를 이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요동쳐 에너지 위기를 경험한 유럽 각국이 풍력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내면서 지역사회와의 마찰이 커지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산티아고 순례길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풍력발전 단지가 대표적이다. 유럽에서도 바람이 가장 강한 곳으로 꼽히는 갈리시아에서는 이미 4000기가 넘는 풍력 터빈이 있다. 지역 당국은 최근 터빈을 200기 이상 더 설치하겠다는 미 알루미늄업체 알코아 계획을 승인했다. 관광업에 지역경제를 크게 의존하는 주민들은 소음이 극심하고 풍광을 망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여관을 운영하는 주민은 WSJ에 “내 일은 물론이고 삶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갈리시아 환경단체 ‘아데가’는 지난해 8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풍력발전소 건설이 환경성 검토와 여론 수렴 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제소했다. 하지만 호세 안토니오 산 알코아 노조위원장은 “스페인엔 기름이나 가스는 없지만 바람은 많다. 이를 활용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제련업 같은 에너지 대량 소비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붐을 이끌고 있다. 에너지 값 급등이 생존을 위협하는 기업들이어서 신재생에너지 업체와의 계약을 서두른다. WSJ는 “과거엔 신재생에너지 회사가 제조업체에 장기 계약을 구애해야 했지만 이제는 에너지 집약 제조업체의 계약 체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각국 정부도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동조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EU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현재 20%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45%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고대 유적과 경관 보존 책무를 지닌 문화부가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설치를 막지 못하도록 부(部)의 권한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 프랑스 독일 등 의회에서도 풍력 및 태양광 산업 투자를 촉진하고, 관련 사업 추진을 늦추는 단체들을 막는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지난해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반도체지원법’이 통과됐지만 미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 시간) “지출 확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기술인력 확보 같은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법을 통한 지원만으로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27년까지 527억 달러(약 69조 원)를 지원하는 반도체지원법에 지난해 8월 서명했다. 대만이 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유한 가운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미중 무역갈등이 심해지거나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반도체 공급망이 교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NYT는 “업계에서는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이 (공급망) 불균형을 일부 바로잡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라는 것이다. NYT는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지원을 받아) 새 공장을 짓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린다”며 “정부 보조금이 줄어들 경우 기업이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이 실제로 미국에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지도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기술인력 부족도 미국 ‘반도체 자급자족’ 노력에 제동을 걸 수 있다. NYT는 “첨단 반도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 27만7000명을 단기간에 고용하는 건 쉽지 않다”고 짚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법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합니다.” 브라질 최초의 3선 대통령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78)이 1일(현지 시간)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취임 일성으로 ‘희망’과 ‘재건’을 강조하면서도 대선 결과에 불복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과 지지자를 겨냥한 발언도 내놓아 브라질 정국이 향후 격랑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룰라 대통령은 이날 수도 브라질리아의 연방 하원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이번 투표의 가장 위대한 승자는 민주주의”라며 재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2003∼2010년 대통령을 지낸 그는 지난해 10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불과 1.8%포인트 차로 눌렀다. 룰라 대통령은 폐기물 수집가 겸 시민단체 활동가인 흑인 여성 알리니 소자가 대통령 띠를 걸어줄 때 눈물을 흘렸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전 대통령이 후임자에게 이 띠를 넘겨주는 관행을 깨고 취임식에 불참했다. 지난해 12월 30일 미국으로 떠난 그는 줄곧 대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날 상파울루 등 주요 도시에서도 환호하는 룰라 대통령의 지지자와 대선 불복을 주장하는 반대파들이 팽팽히 대치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지난해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반도체지원법’이 통과됐지만 미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 시간) “지출 확대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기술인력 확보 같은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법을 통한 지원만으로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27년까지 527억 달러(약 69조 원)를 지원하는 반도체지원법에 지난해 8월 서명했다. 미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16개 주에서 35개 이상 반도체 기업이 공장 신·증설에 약 200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NYT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 제조업 투자”라고 설명했다. 대만이 세계 첨단 반도체 생산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유한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미중 무역갈등이 심해지거나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반도체 공급망이 교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NYT는 “업계에서는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이 (공급망) 불균형을 일부 바로잡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불확실성이라는 것이다. NYT는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지원을 받아) 새 공장을 짓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린다”며 “정부 보조금이 줄어들 경우 기업이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이 실제로 미국에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지도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기술인력 부족도 미국 ‘반도체 자급자족’ 노력에 제동을 걸 수 있다. NYT는 “첨단 반도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 27만7000명을 단기간에 고용하는 건 쉽지 않다”고 짚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남미 좌파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사진)이 1일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브라질 최초의 3선 대통령인 그는 2003∼2010년 집권했고 지난해 10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대통령을 1.8%포인트로 꺾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측은 아직도 대선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고 양측 지지자들의 반목도 심각해 그의 재집권이 브라질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법원은 이날 취임식을 앞두고 전국에 총기 소지 금지령을 내렸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층이 잇단 폭력 시위와 테러 위협 등을 감행하면서 극심한 혼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취임식을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30일에만 경찰이 전국 8개 주에서 32개의 수색 및 체포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전 대통령이 후임자에게 대통령 띠를 넘겨주는 관행을 깨고 취임식에 불참했다. 30일 유튜브를 통해 지지층에게 남긴 연설을 공개한 후 미국 플로리다주로 떠났다. 그는 룰라 대통령이 취임하는 1일에 세상이 끝나는 것을 보지 않겠다며 “‘전투’는 졌지만 ‘전쟁’에서는 지지 않겠다. 미래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을 구축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룰라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 다시 지지층을 규합해 정치적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룰라 대통령은 복지예산 삭감, 총기 소유, 친미 등 보우소나루 정권의 정책 기조를 대대적으로 뒤엎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그는 취임 전부터 “보우소나루 정부가 많은 것을 망쳤다”며 공교육 및 공공의료 강화, 저소득층 주거복지 등을 공약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또한 그의 집권 1, 2기 때 실시했던 ‘보우사 파밀리아’ 등 직접 보조금 지급 정책 등을 복원할 뜻을 밝혔다. 빈곤을 이유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저소득층 가정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 생계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당시 저소득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그의 재집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룰라 3기 정부 출범으로 브라질을 포함해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 콜롬비아 등 중남미의 주요 6개국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온건 좌파의 도미노 집권을 뜻하는 ‘핑크타이드’(분홍 물결)가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룰라 대통령은 집권 1, 2기 때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브라질은 미국 등 서방이 주축인 러시아 경제 제재에도 동참하지 않고 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2022년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긴 터널에서 비로소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코 평화롭거나 안정적이지 못했다.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전 세계 에너지 대란과 물가 급등,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의 후폭풍이 크다. 영국 콜린스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영구적 위기’를 뜻하는 신조어 ‘퍼마크라이시스(permacrisis)’를 선정했다. 미국 CNN 방송은 “삶이 때때로 너무 이상해져서 그걸 설명할 새로운 단어를 발명해야 했다”라고 돌아봤다. 올해 등장한 신조어 중 한 해를 되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들을 소개한다.》2022 세상을 달군 단어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에너지 위기,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이 부른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신(新)냉전 심화에 따른 군비 경쟁과 기후위기로 점철된 올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조용한 사직 (quiet quitting)“필요 이상 일 않겠다” 핫이슈 해야 할 일만 한다. 필요 이상으로는 일하지 않는다.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많은 외신과 트렌드 분석 매체들은 ‘조용한 사직’을 올해 최고의 유행어로 꼽았다. 올해 3월 소셜미디어 ‘틱톡’에 올라온 한 영상으로 크게 확산된 이 표현은 회사를 완전히 떠나는 대신 최소한의 일만 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조용한 사직’을 불 지핀 것은 코로나19다.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원격근무가 일반화면서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 미 경영 컨설턴트 크리스틴 스파다포는 CNBC에 “기업 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진단했다.영구적 위기(permacrisis)에너지 대란 등 끝나지 않을 위기감 영국 콜린스사전은 ‘영원하다(permanent)’와 ‘위기(crisis)’를 합친 ‘영구적 위기’를 올해의 단어로 꼽았다. 전 세계 에너지 대란과 물가 상승, 이상 기후, 군비 경쟁등이 쉴 틈 없이 이어졌던 올해가 많은 이에게 괴로운 한 해였음을 보여준다. 영국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샤리아트마다리는 “모퉁이를 돌면 어떤 새로운 공포가 있을지 지친 마음으로 궁금해하는 느낌, 전례 없는 사건에서 또 다른 사건으로 쉬지 않고 넘어가는 어지러운 느낌을 완벽하게 구현한 단어”라고 설명했다.가스라이팅 (gaslighting)‘교묘한 심리 조종’ 일상 곳곳에 뿌리1938년 영국에서 초연된 연극 ‘가스등’에는 교묘한 심리 조종으로 아내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파국으로 몰고 가는 남편이 나온다. 여기에서 유래된 표현 ‘가스라이팅’은 80여 년 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오도하는 행위’라는 의미로 확대됐다. 미 미리엄웹스터 사전은 가스라이팅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며“올해 온라인검색량이 1740% 급증했다. 1년 내내 자주 검색되는 단어였다”고 했다. 거짓 정보와 속임수 등에 의한 가스라이팅은 일시적 현상을 넘어 이제 인간 삶의 깊은 곳에 뿌리내렸다고 외신들은 우려했다.여성,생명,자유이란 反히잡 시위 상징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이란의 쿠르드족 여성 마사아미니의 죽음 후 반정부 시위대는 “진, 지얀, 아자디”를 외치고 있다. 쿠르드어로 ‘여성, 생명, 자유’를 뜻한다. 이 말은 40여년 전 터키 거주 쿠르드족의 독립 운동 때 처음 등장했다. 아미니의 장례식에 쓰이면서 순식간에 시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당국은 체포한 일부 시위대에 공개 처형까지 자행하며 거세게 탄압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시위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세 단어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 현대사가 걷고 있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상징한다”고 평했다.전(戰)과 안(安)우크라 전쟁-엔저 불안 日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발표한 올해의 한자는 ‘戰(싸울 전)’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5년 만에 일본 열도를 통과한 북한 미사일 등 안보 불안의 여파가 컸다. 코로나19와 고물가 대응,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일본 축구대표팀의 선전 등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 올해의 한자로 ‘戰’이 선정된 것은 9·11 테러가 터진 2001년 이후 21년 만이다. 2위에 오른 한자는 ‘편안하다’, ‘싸다’는 뜻을 지닌 ‘安(편안할 안)’이었다. 올해 엔화 가치가 20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지고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엔저(円安)’와 ‘불안’이란 단어가 여기저기서 쓰였다. 상위 5개 중 긍정적인 한자는 3위 ‘樂(즐거울락)’ 하나뿐이었다.기후위기 스티커(klimaatklever)고흐 ‘해바라기’에 토마토소스 시위네덜란드의 사전 출판사 ‘판달러’는 “기후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상징적 가치가 있는 대상에 손 등 신체 일부를 접착제로 붙이는 활동가”를 뜻하는 신조어 ‘기후위기 스티커(klimaatklever)’를 올해의 단어로 골랐다. 영국 환경단체 ‘저스트스톱오일’은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걸린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에 토마토소스를 부었다. 기후위기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데도 각국의 대책이 미흡하다며 “예술보다 삶이 중요하다”고 외쳤다. 이런 거친 행동에 대한 논란이 상당했지만 미뉴욕타임스(NYT)는 “적어도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게 만들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지난해 3월 상어의 공격으로 손목 힘줄이 끊어지는 중상을 입었던 미국의 10대 소녀가 꾸준한 재활 끝에 최근 미국 위스콘신주 수영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위스콘신주 지역 매체 ‘TMJ4’ 등은 28일(현지 시간) 주 수영선수권대회의 24세 이하 50야드(약 46m) 자유형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루시 아트 양(18)을 조명했다. 그는 대회를 약 20개월 앞둔 지난해 3월 플로리다주 해안에서 사촌들과 해수욕을 하던 도중 상어의 공격을 받았다. 다리에 무엇인가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지만 사촌들이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곧바로 상어 한 마리가 물 위로 뛰쳐나와 그의 오른쪽 손목과 다리를 물어뜯었다. 반사 신경이 좋았던 그는 침착하게 왼손으로 상어를 때려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손목의 동맥과 힘줄 4개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다리에도 상어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다행히 해변 인근에서 산책하고 있던 의사가 응급처치를 해줬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동해 찢어진 부분의 긴급 봉합수술도 받았다. 그는 “구급차 안에서 손을 영영 잃을까 봐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이후 6개월간 물리 치료와 재활 훈련에 집중한 끝에 다시 수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불편한 손목으로 수영 훈련을 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과거 그의 최고 기록은 50야드 기준 25초 13이었다. 부상 여파로 복귀 후 첫 경기인 올 9월의 기록은 25초 79에 그쳤다. 의지를 잃지 않고 꾸준하게 훈련에 매진한 결과 성적이 점차 올랐다. 지난달 대회 결선에서는 23.37초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우승 후 언론 인터뷰에서 “손이 다시는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영 경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결과적으로는 상어의 공격이 대학 진학 후에도 수영을 계속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해 준 것 같다”고 했다. 아직 손목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만큼 기존 주 종목이었던 자유형보다 단거리 접영을 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