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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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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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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3%
  • [횡설수설/송평인]김무성 ‘사위 잔혹사’

    코카인 5회, 필로폰 5회, 엑스터시 3회, 대마 1회, 스파이스 1회 등 모두 15회 마약 투약. 지난해 11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예비 사위였던 신라개발 회장 아들 이모 씨가 구속 기소된 혐의다. 이 씨는 올 2월 초범임이 참작돼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이 씨와 김 대표의 딸인 현경 씨는 올 8월 워커힐호텔의 연예인 배용준 씨가 결혼했던 장소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 씨가 풀려난 데 대해 ‘권력무죄’ ‘유전(有錢)무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연예인 김성민 씨만 봐도 2011년 필로폰 5회, 대마 3회를 투약한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으로 풀려났다. 김 씨와 비교할 때 이 씨의 선고 형량에 눈에 띄는 차이는 없다. 안철수 캠프에 있었던 검찰 출신의 금태섭 변호사도 비정상적 선고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 대표는 이 씨가 풀려나고 한 달 뒤에야 마약 투약 사실을 알고 딸을 파혼시키려 했으나 딸이 간청해 ‘자식 이기는 아버지 없다’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허락했다고 해명했다. 마약은 중독성이 강해 김 대표에게 사위가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딸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으로 반전을 꾀했다. ▷김 대표 사위의 일이 뒤늦게 공개된 데 대해 권력 암투설도 제기됐다. 유승민 의원을 손본 친박계가 이번에는 김 대표의 흠집을 내기 위해 일부러 흘린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김 대표 사위의 판결 내용을 특종 보도한 언론은 동아일보다. 누가 흘린 것이라면 확인하느라 몇 주간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김 대표가 ‘하객이 몰려드는 사태를 막는다’는 이유로 딸의 결혼식을 비공개로 한 것까지는 좋으나 측근들까지 오는 것을 막으면서 오히려 궁금증을 키웠다. 사위가 준(準)재벌집 아들이라는 것도 결혼에 임박해서야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너무 숨기려 한 김 대표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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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오색 케이블카, ‘설악’은 없고 욕심만 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설악산 대청에 올랐다. 도중에 오색으로부터 케이블카가 놓인다는 끝청에서의 전망을 봤다. 인상적이지 않았다. 한계령휴게소에서 능선(서북능선)에 올라 끝청을 거쳐 대청으로 가는 동안 왼쪽으로는 장관이 펼쳐졌지만 오른쪽으로는 눈길이 거의 가지 않았다. 케이블카는 그 오른쪽을 향하여 놓인다. 대청에서 오색으로 내려왔다. 여름 성수기가 지난 오색은 썰렁했다. 저녁식사 시간 무렵인데도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호텔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유독 한 곳 오색2리 마을회관만 들썩들썩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정문헌 의원님, 고맙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고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지역 유지들이 탄 듯한 외제차가 오가고 취기가 오른 사람들이 서성거렸다. ‘정문헌 의원님’이 케이블카 유치에 힘을 써 사시사철 오색에 사람들이 몰려오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자리였다. 아주 오래전 고즈넉했던 약수터 마을 오색이 기억난다. 그곳에 언제부터인가 약수터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호텔이 들어서고 온천이 들어서고 식당이 들어섰다. 성수기만 지나면 썰렁해지는 오색은 무모한 과잉 투자의 결과다. 잘못된 투자를 잘못된 민원으로 만회하려 한 것이 케이블카다. 이 민원을 해결하는 데 지난 대선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노무현-김정일 비밀대화록을 공개해 현 정권 창출에 기여한 정 의원이 지역구 의원으로서 큰 역할을 했나 보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설악산 대청에 올랐다. 설악산은 내게 국토에 대한 사랑 같은 걸 느끼게 해준 곳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때라 외국에 나가 보지 못해 그랬을까. 아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설악산은 여전히 아름답다. 숲과 어우러진 화강암 바위들의 능선, 초록빛 감도는 맑은 계곡 물…. 알프스에서도, 로키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 산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설악산은 건장한 남성도 오르기 힘든 험한 산이다. 난 산행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근육이 풀리지 않아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의 대중화’를 위해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산행이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설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면 케이블카를 놓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놓으려면 제대로 된 곳에 놓아야 한다. 우리가 보통 설악이라고 부르는 곳은 끝청에서 대청을 바라봤을 때 서북능선의 왼쪽을 말한다. 그쪽으로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있고 더 멀리 울산바위가 있다. 울산바위가 설악이란 성의 바다 쪽 외곽이라면 서북능선은 내륙 쪽 외곽이다. 케이블카는 이 성벽을 등지고 서서 반대쪽을 바라본다. 한마디로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색이 속한 양양군도 끝청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대청봉을, 그 다음에는 관모능선을 원했으나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양양군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출발지는 똑같이 오색이다. 오색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 전제 자체가 틀려먹었다. 설악산은 국민의 공원인 국립공원인데도 오색 케이블카는 애초 국민을 위한 케이블카가 아니라 양양군을 위한 케이블카로 계획됐다. 오색 케이블카 논의 자체가 “속초시가 권금성 케이블카로 큰 이익을 누리고 있으니 양양군에도 하나 허가해 달라”는 요구에서 출발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오색 케이블카는 이해관계의 타협이지 관광 개발과 환경 보전이라는 상반된 가치의 타협이 아니다. 환경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설악산의 진면목을 보게 해주는 명품 케이블카를 놓아 보겠다는 야심 찬 기획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설악의 내부로 밀고 들어오려는 케이블카를 어떻게든 외곽에 묶어 놓는 데 성공했으니 한숨 돌린 것이고, 오색 주민으로서는 그래도 설악의 가장자리에 간신히 케이블카를 놓을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인 것이다. 우리 시대의 합리성이 권금성 케이블카가 허가된 1960년대의 합리성만 못하다. 권금성은 사실상 등산장비 없이는 올라가기 힘든 극히 험난한 곳에 있으니까 케이블카 설치가 의미가 없지는 않다. 오색 케이블카는 지역주민의 이익을 빼놓고는 왜 설치하는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 국립공원위원회의 승인은 아직 조건부다.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으면 되돌리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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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산케이신문의 閔妃망발

    일본 언론에는 일왕 및 왕실 비판과 풍자에 금기가 있다. 서양 언론에선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대한 금기가 있긴 하지만 왕실에 대한 금기 같은 건 없다. 영국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은 로열패밀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한다. 일본에서도 일왕가 비판과 풍자가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극우단체들의 폭력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른바 ‘자주규제(自主規制)’라는 것을 두어 스스로 단속한다. ▷일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보도는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남의 나라 국가원수에 대해서는 선정성 오보도 서슴지 않는 것이 극우 신문 산케이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다. “증권가 관계자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과 한 유부남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8월 가토 다쓰야 당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세월호 사고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에 관해 쓴 기사의 일부다. 자기들끼리는 작은 폐라도 끼칠까 조심하다가도 타자를 향해서는 참으로 무례하게 돌변해버리는 것이 일본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다. ▷노구치 히로유키 산케이신문 정치부 전문위원이 지난달 31일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란 제목으로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에 독설을 퍼부으며 ‘민비를 둘러싼 조선도착(倒錯)사’라는 걸 늘어놓았다. “이씨 조선에는 박 대통령과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로 시작해서 “민비는 암살됐다”로 끝난다. ‘되다’체 동사로 암살의 주체를 얼버무린 것은 비열하다. 또 일본이 저지른 암살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그 일을 들어 협박성 선동을 하는 것은 깡패 짓과 다를 바 없다. ▷한국이 다리를 미국에 걸치든 중국에 걸치든, 일본 언론이 자기 나라의 나쁜 유산이나 걱정하지 왜 남의 나라 일까지 걱정하는지 궁금했다.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니 걱정하는 이유가 나와 있다. 한국이 ‘힘센 친구’를 바꿀 때마다 일본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하니까 괜히 ‘힘센 친구들’에게 양다리 걸치는 정부가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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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몰카 사회의 관음증

    피핑톰(Peeping Tom)이란 말이 있다. 여자의 알몸을 몰래 훔쳐보다 그 벌로 눈이 멀게 됐다는 톰이란 사람에게서 유래한 말로 관음증(觀淫症)의 남성을 뜻한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이창(裏窓·Rear Window)’은 사고로 휠체어에 의존해 사는 한 사진작가가 카메라 렌즈로 주변 이웃들을 훔쳐보는 것이 줄거리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처럼 훔쳐보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된다. 영화 속의 망원렌즈 카메라는 몰래카메라의 원조쯤 된다. ▷언제부터인가 TV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은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영화나 드라마 속의 ‘그럴듯한 현실’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의 욕망에 부응한다. 하지만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현실도 따지고 보면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출연자들은 아닌 것처럼 하지만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다. 정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했던 현실 그 자체는 몰래카메라 속에나 들어 있는지 모른다. ▷최근 26세 여성 최모 씨가 워터파크 여성 샤워장에서 샤워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음란물 유통 사이트에 팔았다가 구속됐다. 최 씨는 채팅 앱을 통해 만난 어느 남성으로부터 돈을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휴대전화 케이스형 몰래카메라를 건네받고 185분 분량의 영상을 찍어 넘겼다. 그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워터파크의 여성 샤워장을 훔쳐봤다. 영상에는 성인 전용 휴식 공간의 광고 전화번호가 나와 있다고 한다. 단순히 개인적 호기심이 아니라 사업적 동기에 의해 추진됐다는 게 더 심각한 측면이다. ▷얼마 전 드론 몰래카메라가 누드 해변을 촬영했다는 뉴스를 봤다. 이미 초미니 드론이 개발됐고 이 드론이 몰래카메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벌레나 곤충 형태의 드론이 창문 틈을 통해 몰래 들어가 촬영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불쾌한 상상이지만 그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겨우 몰래카메라의 초창기 시대에 살고 있을 뿐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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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박 대통령 중국 전승절 참석의 明暗

    중국이 9월 3일을 전승절로 지정한 것은 바로 지난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상임위원회에서다. 전승절은 70주년을 앞두고 급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은 장제스의 중화민국에서 전승절이었지만 1949년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 1955년부터는 군인절(군인의 날)로 바뀌었다. 때론 과거 묻지 말아야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 된 것은 제2차 대전의 전승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대국으로 굴기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덴티티의 기원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뒤로 치워뒀던 전승절을 부활한 동기라고 볼 수 있다. 일본과 싸운 연합국의 주역은 미국 영국 중국이었다. 그래서 1943년 카이로선언, 1945년 포츠담선언의 당사자도 이 세 나라였다. 카이로선언에 한국을 적절한 절차를 거쳐 독립시킨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들어갔고 포츠담선언에 계승됐다. 한국의 독립이 포함된 것은 기본적으로 국제연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던 장제스의 도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 영국 소련과 달리 온전한 전승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국은 일본이 항복할 당시 광대한 영토를 일본에 빼앗긴 상태였고 중국이 지배하던 곳마저 장제스의 국민군과 마오쩌둥의 공산군이 양분해 다투고 있었으니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었다. 중국이 한국의 광복에 무슨 실질적 도움을 줬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장제스를 몰아내고 들어선 마오쩌둥의 중국은 6·25전쟁에서 북한을 도와 한반도의 통일을 막았다. 한국은 중국 전승절 행사에 가야 할 이유는 별로 없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확실하다. 그럼에도 외교란 때로 미래를 위해 과거를 묻어둬야 할 때가 있다. 지난 70년 사이 중국의 대표 주자는 중화인민공화국, 한반도의 대표 주자는 한국이 됐다. 중국 외교부는 25일 전승절 행사 참석자들을 공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보다 앞서 첫 번째로 거명했다. 서방 국가 정상들이 한 명도 참석하지 않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참석이 중국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에서 조롱받는 세습국가 북한의 지도자보다는 종전 이후 가장 성공한 한국의 지도자가 와주는 것이 중국이 지향하는 전승절 이미지에 부합한다. 최근 남북 대치 국면에서 우리 군은 확성기에 대고 박 대통령은 중국을 3번이나 방문했지만 김정은은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틀었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북한이 도발로 전승절 행사를 망치려 한다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김정은의 집권과 박근혜의 집권이 겹치는 기간에 마치 쇼트트랙 게임에서처럼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북한을 추월하는 변화가 생겼다. 이 변화가 롱트랙에서도 지속될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지속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美日에 비칠 인상 걱정 다만 일본은 중국의 굴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미국에는 도널드 트럼프처럼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에 무임승차한다는 인식을 가진 대선 후보가 의외의 인기를 얻고 있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나란히 서서 중국 인민군의 열병을 하는 사진은 미국과 일본의 대중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던질 것이다. 그 이미지를 완화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면 우리가 얻는 것 못지않게 잃는 것도 적지 않을 것임을 각오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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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괴담 시장’ 이재명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다. 10대 때 성남의 한 장갑 공장에서 일하다 왼쪽 손목이 골절되는 산재 사고를 입었다. 그의 왼팔은 지금도 구부러져 있다. 공장에서 독한 화학물질을 많이 들이켜 후각도 잃었다. 고입과 대입 모두 검정고시로 통과한 뒤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그의 심심치 않은 도발적 언행은 상식의 편견과 싸운 삶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시장이 최근 ‘북에서 먼저 포격? 연천군 주민들은 왜 못 들었을까’라는 제목으로 쓴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링크해 트위터에 올렸다. 북한이 정말 먼저 포탄을 쏜 것인지 의심하는 뉘앙스가 풍긴다. 그는 지난달 19일 국가정보원 해킹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자살한 국정원 직원의 유서에 대해 “아무리 봐도 유서 같지가 않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12월에는 “세월호의 실소유주는 청해진해운이 아니라 국정원”이라는 주장을 폈다. ▷의심은 그 근거가 공감을 얻지 못하면 괴담이 된다. 북이 포격에 사용해 경기 연천군 야산에 포탄이 떨어진 14.5mm 고사포는 직경이 크지 않아 쏘는 곳에서야 큰 폭발음이 나겠지만 야산에 떨어질 경우에는 ‘푹’ 하는 소리 정도가 날 뿐이다. 그것을 주민들이 듣지 못했다고 해서 포격을 의심한다는 것은 포격훈련도 한번 구경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할 소리다. 의심은 진실을 찾아가기 위한 방법적 의심이어야지 의심 자체가 목표여서는 안 된다. ▷경향신문은 최근 한명숙 전 총리 유죄 확정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정치 재판이라고 비판하는 사설을 썼다. 보수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한겨레신문까지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는 사설을 쓰자 경향신문만 ‘나 홀로’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한 꼴이 돼 버렸다. 이 시장이 과거의 도식에 사로잡혀 젊은 세대에게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시비를 계속 건다면 어느 사이 현실과 동떨어진 괴담이나 퍼뜨리고 있는 한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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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대한항공 부지의 ‘관제 프로젝트’

    서울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는 대한항공 땅이다.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남의 사유지에 한국 문화체험 공간인 케이-익스피리언스를 짓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조현아의 땅콩 회항 사건과 함께 재산 헌납 같은 시대착오적인 말들이 떠올랐다. 문화융성, 표현부터 졸렬대한항공이 한옥이든 뭐든 7성급 호텔을 지어 ‘부자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데에 나도 반대다. 그곳이 사유지이긴 하지만 서울의 중요한 공간인 만큼 공공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엇을 지을지 결정하고 발표하는 것은 대한항공이어야 한다. 대한항공은 발표장에서 정부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케이-익스피리언스 계획은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와 함께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문화융성 정책의 하나로 발표됐다. 내게 문화융성은 그 표현부터가 졸렬하다. 과거 문화창달이란 복합어만 해도 ‘문화를 창달하자’는 식으로 두 단어가 연결돼 구호의 말로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문화융성은 ‘문화가 융성하다’는 식으로밖에 연결할 수 없어 뭘 하자는 말로서는 어색하다. 이 정부의 조어 실력이 이렇게 형편없다. 오늘날의 상업적인 문화는 정부가 개입해서 융성해지는커녕 쇠락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케이팝이 딱 그렇다. 정부가 개입하면서부터 케이팝의 창의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도움을 준 이상 공무원은 성과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인기가 검증된 노래와 춤을 선호하고 기획사도 따를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것은 실패할 확률이 크기 때문에 배제된다. 창의력을 다퉈야 할 자리에 선정성이 들어섰다. 최근 스텔라라는 걸그룹의 선정적인 의상과 춤을 보고 놀랐다.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식의 싱그러운 매력은 사라졌다. 멤버를 바꿔 돌아온 원더걸스마저 스텔라를 닮아가고 있다. 케이팝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다. 그 내리막길은 문화융성만 거론하면 케이팝 얘기를 꺼내는 박 대통령의 임기와 정확히 겹친다. 미다스의 손은 고철도 황금으로 만들지만 우리 정부 문화부는 황금도 고철로 만들어 버린다. 광화문광장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물을 볼 때마다 옛 문화부 건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 건물은 바로 옆의 미국대사관 건물과 더불어 필리핀 기술로 지은 남국적인 느낌의 아름다운 쌍둥이 건물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개조하면서 쌍둥이 건물 특유의 아름다움과 함께 역사성도 사라졌다. 다른 정부 부처도 아니고 문화부가 한 반(反)문화적 개조에 화가 나기도 한다. 지금 광화문 일대에서 가장 문화적 개조가 필요한 곳은 세종문화회관이다. 강북에서 평일 저녁 공연 시간에 맞춰 강남 예술의전당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세종문화회관이 형편없는 음향시설 때문에 음악공연장으로 기능하지 못한 지 오래다. 세종문화회관은 아예 건물을 새로 짓는 식의 전면적 개조가 필요하다.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 소관이라고 하지만 정부가 정말 문화가 융성하게 하려면 이런 것부터 지원해야 한다. 관제로는 성공 못해 광화문 일대에서 가장 생동적인 문화적 공간은 교보문고이다. 민간이 운영하기 때문에 내버려둬도 끊임없이 쇄신해서 그럴 것이다. 케이-익스피리언스라는 복합문화센터는 대한항공이 관에 떠밀려 짓는 것이다. 지지부진하다가 호텔 얘기가 다시 나올 것이다. 문화라는 게 묘해서 정부가 앞장서 끌고 가려 해서는 절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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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함석헌에게 배우는 겸손한 해방

    “해방은 도적같이 온 것이다. 고로 하늘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미신이라 하는 자는 이 조선에서 그림자도 없어져라.” 함석헌의 말이다. 그의 방점은 흔히 생각하듯이 도적같이 온, 예상할 수 없었던 해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해방이 하늘에서 왔다는 데 있다. 해방은 “어느 파(派)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 아니다. 해방은 “선물”이다.해방은 대가없이 주어졌다 해방은 이승만이 루스벨트나 스탈린의 마음을 움직인 까닭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독립군이나 빨치산이 일본군과 싸워 이겨 얻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함석헌은 “해방은 자기네가 투쟁한 결과로 되었다”고 하는 자들은 “그림자도 없어져라”고 일갈하고 있다. 함석헌은 마흔 다섯의 원숙한 나이에 해방을 맞았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오산학교 교사를 지내고 옥고도 치른 적이 있는 총명하고도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해방은 선물이었다. 하늘에서 온 선물이라는 것은 미신이 아니다. 거기에는 ‘내가 내 적공(積功)으로 받은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해방을 대하는 겸손한 마음이 거기서 시작된다. 이국땅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싸운 독립유공자들의 정신은 고결한 것이다. 그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많아야 고작 수백 명에 불과했던 병력으로 일본의 패망에 무슨 기여나 한 것처럼 억지를 부려선 안 된다. 망명 자유 폴란드군은 수십만 명이 연합군의 편에 서서 싸웠는데도 자기 나라를 대가로 받지 못했다. 연합군이 ‘코리아’라고 부른 나라의 해방은 그 말의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선물이었다. 해방정국의 혼란도, 오늘날의 역사전쟁도 해방이 어느 파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한쪽에서는 이승만을 치켜세우고 한쪽에서는 김구를 내세우고 또 한쪽에서는 김일성이나 박헌영, 아니면 여운형 같은 중도파에서 정통성을 찾는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역사관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 건국에 동참하면서도 이승만의 독재와 싸웠던 세력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싶다. 다만 어떤 역사관을 갖든지 해방을 직접 맞았던 당대인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 된다. 나의 할아버지는 해방 때 서른 무렵이었다. 그는 더 젊을 때 만주에도 갔었으나 돌아와 가난한 농민으로 해방을 맞았다. 오래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해방은 어떤 것인지 미처 물어보지 못했지만 함석헌의 다음 말에서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이 해방에 관련된 자가 있다면 그는 무지한 민중뿐이다. 무지한 한 가지 원인으로, 맘이 못 생긴 한 가지 탓으로, 황국신민(皇國臣民) 노릇도 잘 못하고, 출세도 잘 못하고, 외국으로 도망(逃亡)도 못하고, 시세(時勢)에 맞출 줄을 몰라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조선을 못 놓고 조선 땅을 못 떠난 민중이다.”해괴한 역사전쟁 집어치워라 선물은 그 선물을 어떻게 간수했느냐에 의해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값없이 주어진 나라를 얼마나 먹고살 만하고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논점에서 벗어난 역사전쟁은 해괴한 것이다. 함석헌이 살아 돌아온다면 다시 한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해방이 어느 파나 어느 인물의 노력에서 온 것이라고 하는 자는 이 조선에서 그림자도 없어져라.”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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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진보의 ‘反헌법행위자’

    최근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헌법’을 자주 거론한다. 강만길 서중석 함세웅 씨 등 지식인들은 어제 ‘광복 70년, 역사와 헌법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선언문을 냈다. 이들은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제헌헌법과 민주화운동 정신에 기초해 개정된 현행 헌법의 핵심 가치들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비판하고 분단 극복을 외치던 이들이 대한민국의 토대인 헌법을 강조했다는 게 눈길을 끈다. ▷오늘 서울 백범기념관에서는 ‘누가 반(反)헌법행위자인가’라는 주제로 ‘반헌법행위자 열전’(가칭) 제정을 위한 1차 토론회가 열린다. 기조발제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맡는다. 특이한 것은 반헌법행위자 열전에 수록되려면 일단 공직자이거나 공권력의 위임을 받아 직무를 수행한 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인 1981년 부림사건 당시 고영주 검사,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 등도 수록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공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로서는 반헌법행위자라고 하면 대한민국을 폭력으로 전복하려고 선동했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통진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위헌 정당으로 해산됐다. 1968년 통일혁명당 간첩 사건에 연루돼 형을 산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는 무슨 이유인지 재심도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 임명직 공직자가 아니면 모두 빠져나가는 반헌법행위자 열전을 누가 공정하다고 할까. ▷진보좌파진영은 같은 주장을 해도 헌법에 근거한다는 인상을 주면 지지를 얻기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광우병 시위부터 ‘변호인’을 거쳐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원내대표 고별사에 이르기까지,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지닌 호소력을 체감한 탓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과 헌법을 얘기하는 진보가 색다른 것만은 틀림없지만 헌법에마저 편협한 이념을 덧씌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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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

    70년 전 1945년 오늘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다. 사흘 후인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다. 그리고 15일 정오 쇼와 일왕이 라디오방송을 통해 항복을 선언한다.가해는 잊고 피해만 기억 당시 쇼와가 녹음한 선언 원본이 최근 공개됐다. 70년 전 그 녹음은 라디오 전파의 잡음이 심한 데다 난해한 한문 투여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내용보다는 신으로 추앙받던 일왕이 국민 앞에서 처음으로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패전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선명한 녹음에 기초해 현대 일본어로 풀어 쓴 전문(全文)을 보니 전쟁을 개시한 데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일본의 독립과 동아시아 제국(諸國)의 안전을 위해 미국에 전쟁을 선포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항복의 계기는 ‘적국이 새로운 잔악한 무기(원자폭탄)로 죄 없는 사람들을 살상해 그 비참한 피해가 미칠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몰라서’라고 돼 있다. 히로시마만 기억하고 히로시마 이전을 망각하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약 열흘 전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이 나왔다. 일본이 ‘전멸의 문턱(threshold of annihilation)’에서 벗어날 최후의 기회를 준다는 통첩을 보낸 것이었는데 일본이 응답하지 않아 원폭이 투하됐다. 올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05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포츠담 선언은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 일본에 참상을 일으킨 뒤 ‘어떠냐’고 일본에 내민 것”이라고 말한 것이 뒤늦게 논란이 됐다. 아베의 머릿속에 포츠담과 히로시마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었다. 히로시마를 통해 가해의 역사는 잊고 피해의 역사만 기억하는 심리를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이라고 불러보자. 흥미로운 것은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이 아베 같은 일본 보수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의 진보진영에서 ‘히로시마 센티멘털리즘’은 단순한 망각을 넘어 도덕적 반전을 꾀한다. 히로시마 피폭으로부터 반핵(反核)·평화의 도덕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가해의 과거사가 주는 죄책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폐허가 된 히로시마 원폭 돔 앞에 서면 숙연해지지만 가해의 과거사는 알 수 없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버섯구름에서도 환경을 중시하는 메시지는 읽히지만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다. 최근 아사히신문이 히로시마 피폭을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의 비극과 연관해 다룬 종전 70주년 기획을 읽으면서도 비슷하게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가해의 과거사가 주는 죄책에서 탈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럼으로써 과거사는 똑같이 망각되고 마는 것이다.일본, 값싼 感傷 벗어나야 히로시마에 인류의 보편적 심정에 호소하는 비극적 요소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히로시마는 나가사키와 함께 원폭이 실제로 투하된 지구상의 특별한 장소로 기억돼야 한다. 수만 명의 조선인도 함께 피해를 봤으므로 우리에게도 남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나도 피해자’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 일본이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감상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직시할 때 성숙한 일본이 될 수 있고 히로시마도 반핵·평화의 상징으로 올바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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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박근령 리스크

    얼마 전 영국 타블로이드판 신문 ‘더 선’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일곱 살 때 팔을 뻗쳐 나치 식 경례를 하는 영상자료 사진을 실어 관심을 끌었다. 이 사진에는 엘리자베스의 동생 마거릿도 보인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평생 근엄하게 산 데 비해 마거릿 공주는 ‘여성 돈 후안’이라고 할 만큼 많은 염문을 뿌렸다. 언젠가 마거릿 공주는 “두 자매가 있는데 한 사람이 여왕이면 다른 하나는 가장 창조적으로 못된 일을 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근령 씨는 2007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에 14세 연하의 신동욱 당시 백석대 교수와 약혼식을 올려 세간의 화제가 됐다. 신 씨는 2009년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을 강탈했다고 비방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2011년에는 처남인 지만 씨가 살인교사를 했다고 무고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가 2013년 풀려났다. 이런 신 씨와 근령 씨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근령 씨는 남들 앞에서 박 대통령을 ‘언니’라 부르지 않고 ‘형님’이라 부른다. 그 호칭은 두 자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나타낸다. 언니는 동생보다 두 살 위일 뿐이지만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하면서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서거한 후에 엄한 가장 노릇까지 했다. 근령 씨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언니의 그늘을 벗어나야 했을 것이다. 그런 관계가 1990년대 들어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둘러싼 다툼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근령 씨가 일본은 한국인 위안부에게 보상할 필요가 없다느니, 한국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니 하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일관계 정상화 회담 당시 위안부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고 신사 참배는 일본이 A급 전범을 뒤늦게 합사해 문제가 됐다는 점에 무지한 발언이다. 근령 씨 부부는 그간의 행적에 비추어 정치에도 뜻이 있어 보인다. 박 대통령에게는 ‘박지만 리스크’에 못지않게 ‘박근령 리스크’도 있는 것 같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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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저신뢰사회 본색 보여준 롯데 ‘형제의 난’

    인류가 형제애를 강조한 것은 실상은 형제간 싸움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형제간 싸움은 성경의 첫머리에 등장한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두 아들이 갈등을 빚어 가인이 아벨을 죽인다. 고대 로마의 건국 신화에서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형제가 힘을 합해 나라를 세우지만 동생이 형을 죽이고 왕이 된다. 신화에는 실제 역사가 비친다. 중국 당 고조 이연의 아들 이세민은 형제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조선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도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된다. 왕자의 난이란 말은 이런 고사들에서 연유했다. 왕이 사라진 오늘날 그 싸움은 기업으로 옮아갔다.나눌 수 없는 기업 권력 우리나라는 대기업에 가족기업이 많다.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따르면 저신뢰사회일수록 가족기업이 번성한다. 선진국에도 중소기업은 가족기업이 많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가족기업이 남아 있더라도 가족은 경영에는 손을 떼고 소유만 하는 추세다. 소유와 경영을 모두 가족이 하는 재벌은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재벌은 ‘chaebol’로 영역돼 영어권에서 그대로 쓰일 정도다. 부모의 재산이 수억 원대만 돼도 부모가 돌아가실 때 형제간 싸움이 벌어지고 소송까지도 가는 게 인간사다. 부모의 재산이 수천억, 수조 원대 회사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정도 액수라면 왕이 되기 위해 벌이는 왕자의 난과 별다를 바 없다. 그래도 단순히 재산이라면 나누면 된다. 그것도 균등하니 안 하니 하면서 싸움이 벌어지지만 일단 나눌 수 있으면 분쟁의 소지는 줄어든다. 그러나 경영권은 권력과 같아서 쉽게 나눌 수 없다. 저신뢰사회는 신뢰의 범위를 최소화하는 사회다. 단순히 가족끼리만 신뢰한다는 차원을 넘어 가족의 규모가 커지려고 할 때 그 일부를 쳐내는 것도 필연적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사회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기업이 자식대로 넘어오면 자식 간의 협의로 운영하기보다는 그중 하나가 독차지할 때만 편안함을 느끼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형제애는 어느 시기가 오면 반드시 파탄에 이른다. 그것이 재벌가 형제의 난이다. 가족에서 씨족이 나오고 씨족에서 부족이 나왔다. 그렇게 사회가 형성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을 뜻하는 단어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서 형제애를 필리아(philia)라고 불러 가장 고귀하게 여겼다. 형제애를 확장하면 사회에서의 우정이고 더 확장하면 인류애다. 유교는 효제(孝悌)를 중시했다. 공자는 효제는 인을 행하는 근본(爲仁之本)이라고 했다. 여기서도 가족애를 확장하면 공동체의 윤리가 된다.형제애도 파탄내는 재벌 형제애와 가족애에서 인류애가 나오듯이 가족에서 형성된 신뢰를 사회로 확장하는 것이 고신뢰사회다. 고신뢰사회에서는 가족기업이라도 대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자손이 참여해 결국 가족의 의미가 희박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혈연을 벗어난 협력의 더 넓은 길이 열린다. 재벌은 근대화에서 앞선 일본에서 먼저 등장했다. 일본어로 재벌을 의미하는 자이바쓰(zaibatsu)도 그대로 영어로 쓰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에서 재벌은 거의 사라졌다. 오늘날 일본은 고신뢰사회에 속한다. 롯데그룹은 한일에 걸쳐 있고 형제의 난은 일본 쪽 롯데에서 터졌다. 고신뢰사회 한가운데서 저신뢰사회의 본색을 보여준 ‘골육상쟁’이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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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정보위 선수교체, 김광진 빼고 안철수 넣어라

    국가정보원 리스크는 국회 정보위원회 리스크이기도 하다. 국회 정보위가 국정원의 비밀을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국정원도 가능한 한 정보위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탱자가 된 국회 정보위 정보기관은 본래 의회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미국도 1970년대 와서야 중앙정보국(CIA)의 불법 활동이 쟁점이 되면서 상하원에 정보위가 신설됐다. 정보위가 비밀을 지켜준다는 조건하에 정보위에서만 비밀을 공개해 민주적 통제를 받는다는 일종의 타협책이었다. 그래서 미국 상하원 정보위는 창문도 하나 없이 이중벽이 설치된 특수 회의실에서 모임을 갖는다. 위원들은 회의장에서 노트를 할 수도 없다. 위원들은 정파를 떠나 정보업무를 다뤄야 한다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는다. 국회 정보위는 미국의 정보위를 본떠 만들어졌으나 태평양을 건너온 뒤 탱자가 됐다. 위원들이 회의만 끝나면 브리핑 내용을 다 적어 나와 앞다퉈 공개하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위원들이 신뢰할 만하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은 국회에서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만주군 장교였다는 이유로 민족 반역자라고 불러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역사도 균형 있게 보지 못하는 사람이 정파를 떠나 일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과 함께 이런 사람을 정보위에 배정한 새정치연합은 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국정원의 내국인 해킹 의혹을 국회가 다룬다면 특위가 아니라 정보위가 다뤄야 한다. 비밀 유지가 필요한 그런 일을 다루라고 우리나라도 1994년 뒤늦게 정보위를 만들었다. 정작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임위라면 그런 상임위는 있어 뭐 하겠는가.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이 사이버 보안의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이 의혹을 다루려면 국민정보지키기 위원회라는 새정치연합 내부의 의미 없는 위원회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국회에서 정보위에 들어가야 한다. 마침 정보위에는 들어내 버리고 싶은 의원도 있다. 생각 같아서는 몇몇 의원을 더 들어내고 싶지만…. 오늘날 방첩은 디지털 공간에서 더 절실하다. 안 의원이라면 정보위의 전문성 부족을 보완할 수 있는 데다 덜 정파적인 정보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정보위 활동을 하다 보면 국정원 보고 일개 정당의 위원회에 뭉텅이로 자료를 내놓으라는 요구가 얼마나 무리한지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은 안 의원이 이 의혹을 다룰 경우 안랩 주식의 백지신탁을 요구하고 있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걸고넘어지는 것은 뭔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안 의원으로서는 새누리당이 정 백지신탁을 원한다면 백지신탁을 해서라도 이 의혹을 다루지 못할 게 없다. 안 의원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만나기 드문 기회다.경계선상의 얼룩들 정보기관이 늘 깨끗한 일만 할 수 없다. 국정원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을 대신해 때로 ‘더티 워크(dirty work)’를 수행하기도 한다. 세상사 늘 경계선상의 것이 문제가 된다. 간혹 우리 편인지, 저쪽 편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 유서의 ‘오해를 일으킬 자료’라는 표현에서 벌써 그런 것이 느껴진다. 정보위 위원 정도 되면 세상을 김광진 의원처럼 단선적으로 봐서는 안 되고 겹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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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조직을 위한 희생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정보기관에는 자살의 문화가 있다. 그것을 굳이 문화라고 부른 것은 특정한 자살에 어떤 명예로움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정보원은 적에게 발각됐을 때 평소 갖고 다니던 독약을 입에 털어 넣거나 휴대하던 총을 스스로에게 쏴 자살을 시도한다. 개인적으로는 극심한 고문을 피하기 위한 것이면서 국가를 위해서는 공개해서는 안 되는 정보의 공개를 막기 위한 것이다. ▷국가정보원에서는 자살이나 그 시도가 때로는 정상적이 아닌 일탈적 정보활동을 숨기기 위해서도 나타난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해 3월 유우성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 권세영 당시 국정원 대공수사국 과장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 2005년 11월에는 안기부 불법 감청 사건 수사에서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청을 한 안기부 ‘미림팀’을 이끈 공운영 씨도 수사 도중 흉기로 자해를 시도했다. ▷서구에서는 정보원이 불법행위를 한 조직을 보호하려고 희생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반대로 조직이 정보원을 희생시켜서 스캔들이 되는 경우는 있다. 2003년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국방부 정보국을 위해 일하던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신원을 공개해 자살에 이르게 한 사건이나 2002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인 밸러리 플레임의 신원을 드러나게 한 리크게이트 사건이 그렇다. ▷국정원에서 휴대전화 해킹프로그램 RCS를 도입하고 직접 운용을 담당한 직원 임모 씨가 자살했다. 그는 죽기 전 관련 전산기록을 모두 삭제했다. 국정원은 그의 자살로 불필요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삭제된 파일은 100% 복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완전한 복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운영자가 없으면 잘못이 모두 운영자 개인의 일탈로 돌아갈 수 있다. 그가 삭제한 자료는 유서에 썼듯 ‘대북 공작 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자료들’이다. 오해라 해도 불식시킬 수 없으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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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북한은 이란이 아니다

    이란 핵협상 타결 후 북한과 이란의 차이에 대해 많은 얘기가 나온다. 이란의 핵 보유는 중동의 핵무기 경쟁을 촉발시키고 테러집단의 핵무기 접근 가능성을 높여 세계적 위협이 되지만 북한의 핵 보유는 상대적으로 동북아에 국한된 위협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란의 핵 포기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이미 사실상 핵보유국인 반면 이란은 아직 우라늄 농축 단계에 있다. 가진 핵을 포기하게 하는 것보다는 개발 중인 핵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강온파가 공존하는 이란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북한에는 이란처럼 핵협상을 내부로부터 압박할 만한 정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란은 이슬람 신정 국가라고 하지만 그 내부에 자유와 실용을 중시하는 세력이 남아있다. 그 씨앗은 가까이는 1979년 이란 혁명에 의해 쫓겨난 친서구적인 왕조에서 뿌리를 내린 것이고 멀리는 교양과 관용을 존중하는 페르시아 문명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이란 정치권에는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이번 협상을 성사시킨 온건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도 있다. 호메이니를 잇는 시아파 원리주의자의 지배하에서도 온건파 세력은 말살되지 않았다. 이란의 시아파는 원리주의라 하더라도 아랍 세계에서 기원한 수니파 원리주의 집단인 탈레반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등처럼 극악하지 않다. 온건파 세력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이 2004년 유럽연합(EU)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에 착수한 이후 이란인들은 큰 고통을 느꼈다. 온건파는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인 강경파와 달리 점점 더 심해진 경제적 고통을 참지 못했다. “이란 내부의 온건파를 활용해 이란의 안보 이익을 존중하면서 이란을 설득해야 한다”는 협상론은 거기서 근거를 찾았고 그 주장이 옳았음이 이번에 입증됐다. 한반도의 북쪽에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자유주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 왕조에서 바로 일본 식민 지배로 넘어갔고 다시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소련 공산당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어렵게 싹을 틔운 일부 자유주의 세력은 대거 월남해버렸다. 이란과 비교해보면 북한을 한편으로 경제제재로 압박을 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들여 핵 문제를 푸는 것이 왜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동독 시위는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됐다. 라이프치히의 월요 시위는 이른바 ‘교양시민층’이라고 불리는 작가 교사 등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라이프치히대학을 나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그런 부류였다. 동독 공산당도 비밀경찰 슈타지도 그들의 삶에서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연유한 인간 기본권 존중의 기풍을 지울 수 없었다.자유의 기억이 없는 북한 북한은 이란처럼 호메이니 혁명 전의 친서구적인 시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동독처럼 바이마르공화국 시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반도의 북쪽은 조선의 왕, 총독이 대리한 일본 덴노(天皇), 그리고 김씨 1, 2, 3세를 섬긴 기억밖에 없다. 북한은 헤겔식으로 말하면 계속 한 사람의 자유만 존재한 곳이다. 북한은 이란도 독일도 아니다. 북한과의 핵협상도 북한과의 통일과정도 매우 다른 경로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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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공화춘(共和春)은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음식점 이름이다. 말 그대로 공화의 봄이란 뜻이다. 공화춘은 본래 산동회관이었으나 1912년 이름을 바꿨다. 그해 쑨원이 청나라 왕조를 타도하고 세운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중화민국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도 공화국이다. 공화국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보다 무엇이 아니라고 정의하는 것이 그 뜻을 쉽게 파악하는 방법이다. 공화국은 무엇보다 왕정이 아니다. ▷2013년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역의 송강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라고 외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2008년 미국산 수입쇠고기 광우병 논란 때 시위대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그것을 떠올리면서 영화를 보도록 감독이 의도한 것이다. 이번에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그제 사임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쳤다. 야당도 아니고 여당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왕조국가가 아니며 박근혜 대통령의 압박으로 새누리당 의원들이 선출한 원내대표가 물러나는 것이 잘못됐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의원들의 총의 없이 원내대표를 쫓아내는 것은 잘못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임의 변을 아무리 읽어봐도 그가 왜 사퇴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변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즉 사퇴하고 싶었다는 사람으로서는 어색한 화법이다. 어쩔 수 없이 사퇴하긴 하지만 내심으로는 수긍할 수 없다는 뜻이 읽힌다. ▷공화국의 어원은 라틴어 ‘res publica’로 공공의 것이란 뜻이다. 영국처럼 왕이 있는 민주국가는 공화국보다는 코먼웰스(commonwealth)란 표현을 쓴다. 그 말도 역시 공공의 것이란 뜻이다. 공화국에서 나라는 공공재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를 이용해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사적 감정을 풀어놓는 것도, 여당 원내대표란 사람이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시작된 국정 혼란의 책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은 것도 공화국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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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영리하지만 정치력 없는 민족, 한국과 그리스

    그리스와 한국은 멀리서 보면 닮은 점이 많다. 유럽행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 쪽에서 유럽으로 들어서면 러시아의 평원 지대와 대조적인 발칸 반도의 쭈글쭈글한 산악 지형이 내려다보인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 한국의 지형과 흡사하다.빨치산 숨기 좋은 지형 비슷 역사도 그렇다. 산이 많은 곳이 빨치산이 숨기 좋다. 그리스는 터키 식민 지배 때부터 빨치산으로 이름 높다. 공산 빨치산은 그리스에서 나치를 몰아내는 데는 자유진영과 협력했으나 냉전 체제에서는 위협이 됐다.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은 그리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나왔다. 그 무렵 지구 반대편에서도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그리스는 분단을 겪진 않았지만 좌우 세력은 서로를 나치협력자와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며 대립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이 공산국가로 떨어져 나갔으나 한국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 속에서 불안한 정치를 이어갔다. 그 결과 두 나라 모두 민주주의가 싹을 내리지 못하고 군사 쿠데타를 맞았다. 그리스는 1974년 군사정권을 종식시켰다. 한국은 1987년에 민주화를 이뤘다. 그리스는 민주화 이후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경제적 급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성장이 주춤해지자 파이를 나누는 갈등이 시작됐다. 그리스의 좌우 양대 정당은 집권만을 위해 무책임한 선심 공약을 남발하다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한국도 큰 스펙트럼에서 보면 그리스보다 조금 늦을 뿐 비슷한 경로를 가고 있다. 그리스는 예술의 나라다. 마리아 칼라스 같은 불멸의 소프라노를 낳았고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같은 뛰어난 작곡가도 배출했다. 게오르기오스 세페리아데스, 오디세우스 엘리티스 등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이름이 낯설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떠올려볼 수 있다.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 가수 나나 무스쿠리 같은 연예인도 있다. 그리스는 국민 개개인은 뛰어나지만 정치의 그리스는 아니다.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이긴 하지만 그 민주주의는 아테네 지역에 한해 페리클레스 시대를 전후한 짧은 기간 나타났을 뿐이다. 고대 로마인의 눈에 이미 그리스는 예술에는 유능했지만 정치에는 무능한 민족으로 비쳤다. 그리스와 한국이 근대사회에 포섭된 것은 시간적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스는 400년간 터키 지배하에 있다가 1827년 독립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도, 계몽주의 시대도 비켜갔다. 그리스인이 다른 유럽인에 비해 합리적 사고와 규율이 몸에 배지 않은 이유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독일 베를린에 갔을 때 훔볼트대 앞에서 누군가가 내게 전단을 하나 건넸다. 그 전단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 그리스부터 끊어내자.’정치지도자 부재도 같다 한국도 영리한 민족이지만 정치의 한국은 아니다. 광복 70년을 앞둔 지금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내세울 지도자도 없다. 훌륭한 지도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지도자에 대해서건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 자체가 약점이다. 권위주의 정권의 강제 조정력이 민주화 이후 힘을 잃고 가신(家臣)정치의 지도자들마저 사라진 뒤 정치력 부재 현상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마침 이런 때 성장률은 둔화하고 복지 요구는 폭증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일이 남 일 같지 않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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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한국인 세계 해양대통령

    세계 최대 재보험회사인 로이드사는 1688년 에드워드 로이드가 영국 런던에 연 ‘로이드 커피하우스’로부터 출발했다. 선주들이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당시로서는 손실이 가장 큰 범선 사고 대책을 논의했다. 보험을 중심으로 해운이 발전하다 보니 해사 관련 국제기구만은 뉴욕이나 제네바가 아니라 런던에 몰려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도 런던에 본부를 둔 유엔 기구로 선박 안전과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규범 제정을 목적으로 한다. ▷세계 해양대통령으로 불리는 IMO 사무총장에 임기택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선출됐다. 이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활약하고 있지만 작고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배출한 유엔 전문기구 수장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IMO는 WHO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버금가는 큰 유엔 전문기구다. 뛰어난 보건전문가나 농업전문가가 아니면 WHO나 FAO에서 활약할 수 없듯이 뛰어난 해사전문가가 아니면 IMO의 이너서클에 낄 수 없다. ▷임 사장은 해양수산부 관료 중에서도 보기 드문 마도로스 출신이다. 1977년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뒤 외항선 항해사로 배를 탔고 선장 자격도 갖고 있다. 1986년 해운항만청 사무관으로 특채된 뒤 순환 보직을 마다하고 해사안전 분야 한길만 뚫었다. IMO 연락관으로 3년, 주영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3년 IMO를 담당하면서 IMO 전문가가 됐다. 덕분에 수십 년간 IMO 일을 해온 외국의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잔칫상에 젓가락을 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정부가 임 사장 당선에 아무런 협조를 하지 않다가 내가 모처에 특별히 부탁하고 나서야 협조가 이뤄졌다”며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을 겨냥했다. 해수부가 반박하자 김 대표 측은 지난해 일이라며 물러섰다. 그러나 임 사장의 출마는 현 IMO 사무총장이 신병으로 연임을 포기하면서 올 초 결정된 것이다. 좋은 일에는 모두가 공을 다투고 불리한 일이 터지면 숨기 바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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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유승민이 사퇴해야 하는 이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로 초래된 사태를 박근혜 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개인적 관계로 몰아가는 것은 본질을 흐린다. 물론 박 대통령이 간단히 ‘노’라고 하면 될 것을 ‘배신의 정치’ 운운한 결과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누구를 배신자로 지목했건 그것은 새누리당 내에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다.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두 권력, 즉 국회와 대통령 사이의 균형이 깨질 뻔했고 그 책임을 묻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 속이려한 與원내대표 박 대통령은 제왕처럼 노기를 부렸지만 제왕이 아니었다. 여당 내 소수파에 불과한 친박 의원들만으로는 유승민을 강제 사퇴시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유승민은 힘 대결에서 밀리지 않는다. 다만 그가 밀리는 것은 정당성 싸움이다. 비박도 그의 국회법 개정안 처리가 옳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유승민은 국회법 개정안이 강제성이 없으며 위헌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럼으로써 이미 있는 권고 규정을 왜 개정하느냐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그는 강제성 논란이 계속되자 ‘요구’를 ‘요청’으로 딱 한 글자 고쳐놓고는 남은 우려마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국민을 조삼모사(朝三暮四)로 속일 수 있는 원숭이 정도로 취급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야권에서는 강제성이 있다고 위헌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왔다. 유승민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됨에도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했다. 이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다시 통과시킬 책임도 그에게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총회는 재의 표결에 불참하기로 했다. 유승민은 재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표를 얻는다면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의원총회는 그런 길을 막아버리고 대통령의 거부권을 받아들였다. 유승민은 사실상 불신임을 받은 것이다. 의원총회가 그의 강제 사퇴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이 메시지를 읽지 못하면 모자란 사람이다. 유승민은 속으로 이렇게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야당이 원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주지 않았으면 공무원연금법 개정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국회선진화법하에서는 때로 대통령 거부권까지 감수하고 야당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회법은 법률이지만 그중에 헌법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지닌 규정이 적지 않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규정이 그렇고 이번 개정안도 그렇다. 원내대표 정도 되는 국회 지도자라면 국회법의 어느 규정이 그런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해서는 아무런 법안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연계처리 법안으로 받아들일 게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있다. 국회의 행정입법 강제 규정은 설혹 위헌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법안에 연계하는 식으로 다룰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 정도 식견이 없다면 원내대표의 자격이 없다. 그가 더 위험한 일에 개입되기 전에 그를 사퇴시켜야 한다.야윈 돼지가 뛰기 전에 주역에 야윈 돼지가 뛰려고 하는 모양의 괘가 있다. 야윈 돼지가 우리를 뛰쳐나와 사방을 뛰어다니며 엉망으로 만들려는 순간에 그 돼지를 제지한 것이 이번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본질이다. 그 야윈 돼지가 꼭 유승민이 아니라 누가 됐더라도 제지했어야 한다. 제때 제지하지 못할 때 어떤 혼란이 벌어지는가는 국회선진화법이 이미 잘 보여주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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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의 시사讀說]한 번만 하고 마는 표절은 없다

    작가 신경숙의 사과가 어딘가 불안하다. 신 씨는 단편소설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미시마는) 오래전에 그의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이 없는 작가로 우국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의식 못하는 표절 더 위험 신 씨는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나 역시 오래전 금각사와 우국을 읽어봤지만 금각사만 기억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금각사의 제목만 기억했다. 우국은 제목조차 기억하지 못하다가 얼마 전 김항의 ‘제국 일본의 사상’이란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 나오는 우국의 내용을 보고서야 ‘아, 그 책’ 하며 떠올린 경험이 있다. 신 씨가 쓴 “여자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표현은 시인 김후란의 1983년 번역본에만 나온다. 원작에는 ‘레코(여주인공)는 기쁨을 알았고…’라고 밋밋하게 돼 있다. 신 씨가 금각사를 읽은 게 그 번역본이었다면 우국도 봤을 것이다. 그 번역본에는 특이하게도 금각사가 우국과 함께 실려 있다. 우국은 단편이어서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는다. 미시마의 대표작은 금각사라고 하지만 미시마 자신은 금각사보다 우국을 더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신 씨가 우국이란 작품의 중요성을 몰랐다면 제목까지 기억해둘 필요를 못 느꼈을 수 있다. 다만 우국은 플롯이 선명하고 표현이 강렬해서 작가 지망생이라면 뭔가 적어두고 싶었을 책이다.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은 어떤 것일까. 읽고 필사하면서 기억에 담아두었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대로 끄집어냈다는 식의 설명은 비현실적이다. 번역본 아니면 그것을 필사한 노트를 앞에 놓고 ‘전설’을 썼다고 본다. 다만 지금은 번역본도, 필사한 노트도, 심지어 그것을 필사했다는 기억마저도 남아있지 않을 뿐이다. 신 씨의 말을 믿는다. 하지만 표절하는 사람이 한 번만 표절하는 법은 없다.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표절한 사람은 반드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또 표절하게 돼 있다. 책을 읽은 기억도, 필사한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면 신 씨가 의식하지 못하는 더 많은 표절이 신 씨의 작품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다른 표절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표절이라고 해서 의식하는 표절보다 덜 위험한 것은 아니다. 창작과비평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보니 이런 글이 올라 있다.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는 ‘예스터데이’를 작곡해 놓고도 너무 귀에 익어 다른 누군가가 과거에 만든 노래가 아닐까 의심하고 주변에 계속 물어봤다고 한다. 신 씨는 절필을 거부하며 “문학이란 땅에서 넘어졌으니 그 땅을 짚고 일어나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독자가 그의 절필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정말 문학이란 땅을 짚고 일어서고 싶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기작을 내서는 안 된다. 그 전에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표절을 가능한 한 최대로 복구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작가가 일반인과 다른 점 ‘의식하지 못하는 표절’은 중요한 철학적 주제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인용으로만 된 글을 써보려 했다. 우리의 생각 중에 정말 우리 자신의 생각은 얼마나 있을까. 대부분은 어디선가 보고 들은 것이다. 어디서 습득했는지 일일이 찾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작가는 자기 생각과 남의 생각을 구별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다른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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