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2000년 옛 농림부 출입기자로서 국내에 처음 발생한 구제역 사태를 취재한 적이 있다. 구제역은 발에 굽이 있는 동물만 걸리는 전염병이다. 당시에도 과민반응이 많아 사람도 감염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육류 소비가 현저히 감소했다.독일 구제역 한글 푯말 하지만 구제역은 사람이 감염되고 싶어 안달이 나도 감염되지 않는 병이다. 발굽을 만드는 유전자가 구제역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학자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그런 얘기가 안 먹혔다는 것이다. 그 후 독일에 출장 갔다가 프랑크푸르트 공항 세관에서 ‘구제역은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습니다’라고 쓰인 한글 푯말을 봤다. 독일 소시지 판매 때문이었는데 한국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에 고맙기보다는 씁쓸했다. 어떤 바이러스는 기침 등의 비말(飛沫)로만 전파되고 어떤 바이러스는 공기로도 전파된다. 그것도 신비로운 과학적 현상이다. 메르스가 공기를 매개로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위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공기 전염이 아닌 한 산발적으로 병원 밖 감염이 일어난다 한들 지역사회 감염으로서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연일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쓰고 정치인은 부채질한다. 이러니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나. 메르스 감염자는 대부분 병원 내 감염이다. ‘대부분’이라 해도 무방한 것은 병원 밖 감염이 있더라도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비말 감염은 말 그대로 비말이 있어야 일어난다. 비말이 있을 정도의 증상이면 병원을 찾아가게 돼 있다. 그래서 병원 밖 감염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병원에서만 일어나란 법은 없다. 비말을 뿜는 환자가 집에 있다면 왜 가족이 감염되지 않겠는가. 다만 그런 감염은 산발적이어서 지역사회 감염의 의미가 없다. 일각에서 연무질에 의한 감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설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비말이 퍼지는 범위를 좀 더 확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변이가 없는 한 지역사회 감염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나 ‘비말 2m 이내’ ‘최대 잠복기 2주’ 등 방역 기준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무제한 방역을 할 수 없으니까 외국 사례를 기초로 한 국제기구의 기준을 따른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 기준을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를 두고 과학을 신뢰할 수 없다는 듯이 몰아가서는 안 된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소통을 학문의 주제로 삼은 독일의 대(大)학자다. 그러나 그가 소통을 강조했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그는 소통 이전에 소통이 그 위에서 이뤄지는 합리화한 일상(lifeworld)을 훨씬 더 많이 강조했다. 합리화하지 않은, 즉 막스 베버의 표현을 따르자면 주술에 사로잡힌 일상에서는 올바른 소통이 이뤄질 수 없다. 과학에 기초할 때 비로소 토론이 가능하고 합의에 이를 수 있다. 억지와 괴담을 받아주는 것이 소통이 아니다.비합리적 일상 언제까지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의 일상은 합리화와는 거리가 멀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없다고 방역당국이 말하고, 전문가들이 말하고, WHO 같은 국제기구가 말해도 믿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광우병 시위 때도, 천안함 폭침 때도 그랬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말해도, 국제 민관합동조사단이 말해도 믿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하나.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1215년은 세계사에서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1789년 프랑스 혁명, 1917년 러시아 혁명, 1990년 구(舊)소련 붕괴 등과 함께 기억해둘 만한 중요한 해다. 그해 6월 15일 영국에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제정됐다. 마그나 카르타는 영어로 그레이트 차터(Great Charter), 우리말로는 대헌장(大憲章)이 된다. 마그나는 원래 위대해서가 아니라 내용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수식어다. 그러나 결국 인류 역사의 위대한 문서가 됐다.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향하면 얼마 안 가 러니미드 초원 위를 지난다. 800년 전 그곳을 날아갔다면 귀족들과 기사들의 천막이 점점이 쳐진 사이로 잉글랜드 왕기(王旗)가 날리는 보다 큰 천막 하나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실지왕(失地王)이라 불린 존 왕의 천막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잃은 땅을 찾기 위한 전쟁의 자금 조달을 위해 세금을 올렸다. 반발한 귀족들이 봉기해 런던을 빼앗고, 캔터베리 대주교의 중재로 러니미드에서 왕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데 그 결과가 대헌장이다. ▷본래 라틴어로 쓰인 대헌장은 처음에는 귀족들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그 후 영어로 번역됐다. 13세기 말엽부터는 농민들도 대헌장을 기억해뒀다가 부정의에 항의할 때 인용했다. 1640년대 영국 의회는 찰스 1세를 몰아내는 법적 근거를 대헌장에서 찾았다. 18세기 미국 독립운동의 혁명가들부터 20세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까지 마그나 카르타에 기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마그나 카르타 제39조에는 ‘자유민은 누구도 그의 동료들의 적법한 재판 또는 그 나라의 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800년 전 마그나 카르타와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이어져 있다. 오, 위대한 문서여.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닥터 하우스(House M.D.)’는 2012년 막을 내린 미국 드라마다. 주인공 닥터 하우스는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Everybody lies)’는 대사로 유명하다. 그는 ‘나는 환자들에게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환자들은 거짓말하고 있다고 그저 상정할 뿐’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1차 유행의 출발점인 1번 환자는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할 당시 바레인을 다녀왔을 뿐이라며 메르스 발병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여행한 사실을 숨겼다. 건양대병원 등에서 22명을 감염시킨 16번 환자는 수술을 거부당할까 봐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숨겼다. 삼성서울병원의 비정규직 환자이송요원은 월급 삭감을 우려해 증상 발현 뒤에도 9일간 숨기고 일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평소 같으면 환자의 거짓말은 환자 자신이 피해를 보는 ‘자기 책임의 원리’로 다루면 되지만 전염병이라면 다르다. 의사는 공공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처럼 ‘취조’를 해서라도 환자에게서 진실을 캐내야 할 의무가 있다. ▷병원이 잘못해 놓고 그 실수를 환자의 거짓말에 뒤집어씌우려 한 경우도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2차 유행의 출발점인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숨겼다고 주장했으나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찍은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입원 시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환자이송요원에 대해서는 14번 환자가 응급실에 있을 때 근무했던 9명을 격리하고 90명 전원을 대상으로 감염을 조사했으나 이 과정에서 1명이 누락돼 환자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락의 책임 소재는 불분명하다. 환자가 교묘히 빠져나갔다는 뉘앙스가 없지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환자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병원도, 방역당국도 책임을 떠넘기려는 유혹을 받고 있다. 비판자들은 거짓 우려를 퍼뜨린다. 닥터 하우스는 ‘진실은 거짓말에서 출발한다(Truth begins in lies)’고 말했다. 거짓은 극복해야 할 상수다. 메르스와의 싸움은 단순히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아니다. 거짓과도 싸워야 한다는 데 이 싸움의 어려움이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공중보건과 관련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중이 과민 반응하는 것은 원시시대 때부터의 생존본능의 발휘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사회지도층의 호들갑은 그렇게만 볼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밤 기자회견을 자청해 ‘35번 메르스 환자’가 접촉한 재건축조합총회 참석자 1500여 명을 자가 격리 조치하겠다고 밝힌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한 명의 감염자도 나오지 않았다. 35번 환자가 총회에 참석한 것은 증상도 없고 확진 판정도 받기 전이었다. 이런 상태로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정부와 전문가의 소견이었고 실제 그렇게 됐다. 불필요하거나 시급성이 떨어지는 방역조치에 서울시 인력과 예산이 과도하게 낭비된 것이다.박원순의 소인배 같은 행동 박 시장의 ‘방역 쿠데타’가 정부의 병원 공개를 이끌어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는 엉뚱한 곳을 타격했는데 때마침 반응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몇 개 병원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돌았고 언론도 공개를 촉구하고 있었다. 정부의 정보 공개가 늦었던 것은 실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는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여야가 협력해 물리쳐야 할 전염병과의 싸움인데 가장 큰 지자체의 수장이 설득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싸우려는 태도를 취한 것은 소인배(小人輩) 같았다.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은 한술 더 떴다. 정부에 의해 자가 격리된 한 주민이 분당구 서현동 한양아파트에 산다는 사실과 그 자녀가 서현초등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나섰다. 한양아파트 주민들로서는 같은 엘리베이터를 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몇 동 몇 호에 사는지까지 추적에 나서 결국 알아냈다. 이 시장의 조치는 주민들의 불안 심리에 편승해 호응을 얻었지만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큰 것이다. 그의 선례를 따른 다른 지자체장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조치의 부당성을 보여준다. 이 시장은 성남시의 다른 자가 격리자의 신상은 공개하지 않아 스스로도 일관성을 잃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3일 보건복지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장 재량에 따른 휴교를 허용했다. 2012년 메르스 원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조차 휴교까지는 가지 않았다. 메르스는 병원 내 감염이 주된 전파경로라는 이유에서 복지부는 반대했지만 같은 정부에 몸담고 있는 교육부 수장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국회선진화법 제정에 앞장섰던 그 포퓰리스트적인 DNA가 어디로 가겠는가.선무당 같은 감으론 안 돼 과잉 대응이 늦장 대응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과잉 대응도 늦장 대응만큼 잘못된 것이다. 방역이든 뭐든 단계별로 적절한 조치가 있는 법이다. 적절했는지는 신이 아닌 이상 사후에나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적절한지 따져보지도 않고 일단 크게 벌이고 보자는 것은 비용 개념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정부는 삼성서울병원을 중심으로 한 메르스 2차 유행에도 불구하고 평택성모병원을 중심으로 한 1차 유행 때와 상황이 질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보고 ‘주의’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 사회 감염이 없다면 다른 병원을 중심으로 3차 유행이 일어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중이 과민 반응할수록 ‘선제적’이라는 빌미의 선무당 같은 감(感)이 아니라 과학에 입각한 대응이 필요하다. 사회지도층이라면 호들갑을 잠재우기는커녕 최소한 먼저 호들갑을 떨지는 말아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민주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3권의 고전이 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로크의 ‘통치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다. 지난해 말 수능 국어에 칸트의 ‘판단력 비판’ 지문이 나온 걸 보고 출제자들이 제정신인가 의아했다. ‘판단력 비판’은 읽고 있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바보가 된 느낌이지만 앞의 책들은 읽으면 똑똑해지는 느낌이 든다.입법독재 막는 권력분립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국가를 계약론으로 설명한 최초의 책이다. 그러나 권력분립의 개념은 없다. 로크의 ‘통치론’이 처음 권력분립을 논했다. 다만 입법과 행정의 이권(二權)분립이었다. 사법을 포함한 삼권분립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 처음 나온다. 이 정도는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책을 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로크와 몽테스키외의 진정한 차이는 이권분립이냐 삼권분립이냐보다는 권력분립에 얼마나 철저했느냐에 있다. 로크는 입법권과 집행권의 분립에도 불구하고 입법권의 집행권에 대한 우월을 주장한 반면 몽테스키외는 두 권력 사이의 팽팽한 균형을 강조했다. 로크라면 ‘유승민-이종걸 조(組)’처럼 ‘국회는 정부가 시행령을 똑바로 만들지 않으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입법부는 그 만들어진 법이 어떤 방법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검사할 권리를 가져야 하지만 이 검사가 어떤 것이든 입법부는 집행자의 행위에 대해 재판하는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썼다. 몽테스키외는 권력분립을 끝까지 밀고 나가 민주정치의 원칙으로 만들었다. 몽테스키외는 의회 우월의 민주주의가 입법독재로 흐를 가능성을 로마사 연구를 통해 예민하게 느꼈던 것이다. 일본 학계의 덴노(天皇)로 불렸던 마루야마 마사오가 지적했듯이 최초의 민주혁명을 일으킨 미국과 프랑스의 헌법이 채택한 것은 로크가 아니라 몽테스키외의 이론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정도로 권력분립을 안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권력분립은 새누리당 유 원내대표처럼 경제학 박사라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새정치민주연합 이 원내대표처럼 사법시험 공부하느라 헌법책 좀 봤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구의 대학에서 하듯이 고전을 읽고 그 함의에 대해 많은 생각과 토론을 해봐야 비로소 깨달아지는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 부족은 오늘날 대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1970, 80년대 ‘운동 아니면 고시’였던 시기에 대학을 다닌 오늘날 정치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몽테스키외를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읽어 보는 게 좋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한국에 수입된 대통령제가 어떤 권력분립의 개념 위에 서 있는지 안다면 국회가 정부에 시행령을 강제한다는 따위의 발상은 할 수 없다. 유 원내대표는 이제 와서 강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조삼모사(朝三暮四)도 아니고 국민을 무슨 바보로 아나.소양 부족한 정치지도자들 몽테스키외는 “집행권은 입법권을 저지하는 식으로 입법에 참가할 수 있다”고 썼다. 로크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다. 법률까지 거부할 수 있는 대통령이 행정입법권 행사에 일일이 국회의 통제를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것은 현재의 대통령이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와는 상관없다. 미국에서 의회가 대통령의 행정입법을 통제하려 한 시도는 위헌 판정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 간단히 “노(No)”라고 하면 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인기 있는 어린이 책 중에 ‘두리틀(Dolittle) 의사의 이야기’란 책이 있다. 이 책에 ‘푸시미풀유(push-me-pull-you)’라는 동물이 나온다. 머리가 둘 달려 있고 그 머리들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할 경우 뜻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상의 동물이다. 국회선진화법하의 국회는 푸시미풀유를 닮았다. 그 무능함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do-little)는 뜻의 주인공 의사 이름과도 묘하게 통한다. 국회가 도입한 ‘여야 합의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다. 학자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영국식 다수제와 유럽대륙식 합의제로 구별하곤 한다. 둘 다 단순 다수결을 토대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를 바 없다. 다만 유럽대륙식 합의제는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제1당이나 제2당이 군소정당을 끌어들여 과반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영국식 다수제와 다르다. 멀쩡한 과반 의석 정당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제도는 어느 쪽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푸시미풀유만큼 기괴한 것이다.한쪽은 밀고, 한쪽은 당기고 둘 이상의 정당이 합해 과반을 만드는 것을 의원내각제에서 연정이라고 한다. 연정은 제1당이나 제2당이 군소정당을 끌어들여 과반을 만드는 소(小)연정이 일반적이다. 간혹 군소정당을 끌어들여도 과반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이때 제1당과 제2당이 합해 과반을 만드는 것을 대(大)연정이라고 한다. 대연정은 유럽대륙에서도 독일권 외에는 찾아보기 힘든 예외적인 것인데 국회선진화법은 그런 대연정을 상설화했다. 연정은 소연정이든 대연정이든 연정에 앞서 당대당(黨對黨) 협상을 통해 임기 중 시행할 정책 전반에 대해 사전에 합의한다. 이것을 연정 협상이라고 부른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연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다시 총선을 치르기도 한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하의 사이비 대연정은 여야가 사안마다 협의를 해야 하고, 합의가 안 된다고 해서 다른 해결책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제도다. 푸시미풀유는 머리가 둘 달려 있어 뜻대로 움직이기 힘들 수 있다고 앞에서 말했지만 이 경우 ‘뜻대로’란 말은 애매모호한 데가 있다. 동화에는 머리 둘 달린 동물을 처음 본 누군가가 저 동물도 한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묻는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다행히 푸시미풀유는 천성이 착한 동물이기 때문에 뜻을 하나로 모으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국회는 머리 둘이 하나는 밀고(push), 하나는 당기는(pull) 집단이어서 선의에 의한 합의가 쉽지 않다.할 일 안하고, 안할 일 하고 여야가 5월 임시국회에서 공무원연금법과 관련해 한 일이라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명기하되 결정된 수치가 아니라 논의할 수치로 처리한 것이다. 공무원연금도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으면 내년 총선까지의 정치 일정상 다시 다루기가 힘들다고 하는 판에, 더 결론을 내리기 힘든 국민연금을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하다 보면 시급한 사학연금과 군인연금 개혁은 물 건너갈 게 뻔하다. 왜 갖다 붙였는지 국민은 이해할 수 없는 국민연금이란 혹을 떼 낸 것도 아니고, ‘무늬만 개혁’인 공무원연금 합의안을 뜯어고친 것도 아니고, 고작 이 정도 하려고 또 한 달을 보냈나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하라는 공무원연금 개혁은 똑바로 안 하면서, 시키지도 않은 국민연금 개혁에는 열심인 국회가 삐딱한 사춘기 청소년처럼 고약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일본 정부는 근대화 산업유산 23개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 가운데 나가사키 조선소에는 조선인 강제 징용자가 4700명, 다카시마 탄광에는 4만 명, 하시마 탄광은 600명, 미이케 탄광 및 미이케 항은 9200명, 야하타 제철소에는 3400명이 있었다. 일본은 ‘비서양 세계에서 근대화의 선구’라는 멋진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어두운 측면은 숨기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협약 전문에는 ‘세계의 모든 인민을 위해 독특하고 대체 불가능한 유산을 보호한다’고 되어 있다. 한 국가의 문화유산이 세계의 문화유산이 되려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1868∼1912년)에 한정한 것으로 일제 말기의 강제 징용과는 상관없다는 입장이지만 궤변이다. 나가사키 조선소를 방문해 메이지 시대의 나가사키 조선소를 구별해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방한 중인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조선인 강제징용으로 악명 높은 하시마 탄광 등을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하루 전날 이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보코바 사무총장에게 똑같은 우려를 표명한 마당에 “굳이 대통령까지 나설 필요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등재 여부를 판단하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은 위원국들이 내린다.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사무총장은 개입하기 어렵다. 효과는 기대할 수 없고 일본의 반발만 초래한 우려 표명이었다. ▷우리 외교관들은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자체를 막기는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현실적인 목표는 등재 조건으로 과거 조선인 강제징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독일은 나치 시절 강제노동이 있었던 촐페라인 탄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정부 차원의 추모 시설을 지었다. 아베 신조의 일본이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늘 이 문제로 한국과 일본의 첫 번째 협의가 열린다. 양국이 이 문제로 오래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국회 공무원연금 합의안은 ‘9인 실무기구’란 곳에서 만들었는데 구성원 대부분은 공무원이다. 공무원단체 측에서는 전국공무원노조 공동집행위원장, 공무원노조 총연맹위원장, 한국교총 회장이 참여했다. 정부 측에서 참여한 인사혁신처 차장,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실장도 당연히 공무원이다. 심지어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한 국회 예산정책처 재정정책분석과장과 입법조사처 연구관도 공무원이다. 9명 중 7명이 공무원이다. 남은 2명은 여야가 각각 공동위원장으로 추천한 민간인 교수 2명이다. 민간인 2명 대 공무원 7명이라는 비율 자체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기구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게다가 민간인 교수도 사학연금의 수혜자가 될 사람들로, 다른 건 몰라도 연금 개혁 앞에서는 공무원과 동병상련(同病相憐) 관계에 있다. 민간인 교수와 공무원, 또 공무원단체 대표와 정부 측 인사 간에 입장이 같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 모두 국민연금이 아닌 특별연금의 수혜자라는 대동(大同)에 비하면 입장차는 소이(小異)에 불과하다.국민대타협은 애초 없었다 실무기구 합의안은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나온 결과다. 실무기구라는 이상한 기구가 출현한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가 활동 시한 종료일인 3월 28일까지도 합의안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대타협이 실패하고 실무기구가 가동돼 합의안을 내놓은 것은 5월 1일이다. 이 합의안에 여야 대표가 동의하고 국회 공무원연금개혁특위가 통과시켰다. 국민대타협기구는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한 국민대타협기구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이라는 설립 근거가 있지만 실무기구는 이런 근거도 없다. 국민대타협기구 자체에 이미 너무 많은 공무원이 들어가 있다. 그래도 국민대타협기구에는 여야 의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고 민간인 교수도 더 있었지만 실무기구는 거의 공무원 일색이다. 실무기구가 근거가 있건 없건 여야가 받아들였으니 그 안(案)이 국회의 안이 틀림없다. 다만 이것을 국민대타협의 결과라고 강변한다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국민대타협 대신 입장이 약간씩 다른 공무원들의 대타협이 있었다. 공무원은 공무원연금에서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아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무원들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인 만큼 공무원들이 옵서버로 참여해 협의 과정을 지켜볼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입안자가 되는 것은 합의된 결과가 어떤지를 떠나 그 형식부터가 잘못됐다.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개혁 공무원연금 합의안이 나온 이후 나라는 떠들썩한데 공무원 단체들은 조용하다. 5월 1일까지만 하더라도 주말마다 도심을 시위로 얼룩지게 했던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시위’라는 것이 5월 2일 이후로는 쏙 들어갔다. 공무원연금 적자를 70년 동안 333조 원을 줄이는 것이 어느 정도 의미있는 개혁인지는 일반인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반응을 보면 공무원들이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미미한 개혁에 그쳤음에 틀림없다. 공무원연금 합의안은 국민연금과 연계됐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합의안 자체가 실패한 것이다. 하나의 원칙이 무너지면 다른 원칙도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나니까 이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개혁 원칙도 무너지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히틀러는 정치인의 거짓말에 관한 ‘명언’을 잘도 쏟아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승리다.’ ‘성공은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는 유일한 재판관이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쉽게 넘어간다.’ 히틀러는 마키아벨리의 추종자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때로 개인적 차원의 미덕을 접어두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마키아벨리가 상정한 군주는 진실로든 거짓으로든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이 히틀러와 다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이후 민정 이양 약속을 깨고 대통령이 됐다. 내게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선거 패배 후 눈물을 흘리며 정계 은퇴를 선언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는 1997년 대선에 나와 당선됐다. 언젠가 기자가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이 궤변이라면 궤변이고 걸작이라면 걸작이다.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진실을 이기는 것은 없다”며 검찰에 출두한 날, 김종필(JP) 전 총리는 기자들에게 “정치를 하려면 때로는 편의상 말도 바꿀 수 있지만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말 바꾸기와 거짓말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어봤을 것이지만 기자들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JP는 거짓말이 아닌 한에서의 말 바꾸기만 했다는 것인가. 역시 DJ의 말처럼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다. ▷JP와 ‘포스트 JP’로 불렸던 이 전 총리의 관계가 묘하다. 같은 충청 출신이긴 하지만 이 전 총리는 2002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으로 이적하면서 JP가 이끈 자민련의 몰락을 재촉하고 새누리당에서 포스트 JP로 커왔다. JP만큼 정치 자금의 현실을 잘 아는 사람도 없다. JP의 말은 “내가 당신도 알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도 아는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대중이란 정계 은퇴 같은 큰 거짓말은 봐줄지라도 받은 돈 안 받았다든가, 혼외자식 모른다고 하는 거짓말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학부모는 자녀가 어떤 한국사 시험을 치르는지 잘 모른다. 2015학년도 수능 한국사 시험 문제 하나를 소개해 보겠다. 그림 속에 제복을 입은 멋진 교관이 이렇게 말한다. “오랜 투쟁 끝에 ‘본교’가 설립되었고, 다음 달에는 한국 대일 전선 통일 동맹이 출범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한국 독립과 만주 탈환이다. 제군들은 이를 위해 학업과 군사훈련에 힘쓰라.” 해답은 이 본교가 어디인지 알아야 풀 수 있다. 참고자료로 ‘정치학-한일래, 철학-김원봉, 사격 교범-김종, 폭탄 사용법-이동화’라고 쓴 이 학교의 교관 목록이 제시돼 있다.조선혁명학교까지 알아야? 학생들은 대부분 김원봉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다. ‘본교’는 그가 1932년 설립한 조선혁명간부학교(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말한다. 김원봉은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다녔고 조선공산당 간부였던 안광천과 함께 조선공산당재건동맹을 결성해 잡지 ‘레닌주의’를 발행하고 레닌주의정치학교를 설립한 적이 있다. 조선혁명간부학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세웠다. 김원봉은 현대사의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그가 택한 노선에 대한 평가는 다른 것이다. 대부분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그가 안광천과 조선공산당재건동맹 활동을 하고 해방 정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에 참여한 뒤 북한에서 고위 각료를 지내다 숙청된 사실은 나와 있지 않다. 교과서에도 시험에도 멋진 무장 독립투사 김원봉만 나온다. 수능 한국사시험 문항은 모두 20개다. 2015학년도에는 20개 중 14개가 개항 이후의 근현대사에서 출제됐다. 개항 이전의 전(前)근대사 문항은 조선시대 2개를 포함해 고작 6개뿐이다. 현 한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와 전근대사를 50 대 50의 비중으로 다룬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이런 비중은 별 의미가 없다. 학생들이 수능을 보기 위해서는 70 대 30의 비중으로 근현대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 학교에서도 근현대사를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그제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토론회에서 앞으로 교과서의 근현대사와 전근대사의 비중을 4 대 6으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옳은 방향이다. 다만 그런 방향을 지향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그동안은 수능이 교과서 비중과는 달리 제멋대로 출제되는 것을 보고는 뭘 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이념편향 극복 어려워 근현대사와 전근대사를 배우는 비율은 50 대 50이 적절하고 근현대사의 비중을 더 높여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외국 역사 교과서에서 전근대사의 비중은 여전히 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서구처럼 장기간의 의미 있는 근대사를 갖지 못했다. 최근대사인 현대사 서술은 분단된 현실에서 통일이 될 때까지는 좌든 우든 이념적 편향에 대한 비판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근현대사의 비중을 줄여 큰 맥락만 가르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고등학생이 김원봉의 조선혁명간부학교까지 알아야 하는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 역사 공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는 다른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정신과학의 방법인 ‘이해(Verstehen)’는 후자에 더 잘 어울린다. 우리는 지나간 다른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때 다가오는 다른 미래에 대해서도 보다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 전근대사를 근현대사 못지않게 배워야 하는 이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술을 회화나 조각이 아니라 설치 작품이 주도한 지는 오래됐다. 언제부터인가 어두컴컴한 데서 갑갑하게 봐야 보이는 영상 작품도 많아졌다. 그 최초의 형태는 백남준이 창시한 비디오 아트다. 요즘은 비디오 아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영화에 가까운 작품도 많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영화와 미술의 구별이 없어지고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와 베니스 비엔날레(미술제)도 따로 열 필요가 없는 때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Factory Complex’(한국어 제목 ‘위로공단’)가 9일 개막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최고상으로 황금사자상이 있고, 그 아래 은사자상, 다시 그 아래 특별상이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전수천, 강익중, 이불이 각각 1995년, 1997년, 1999년에 특별상을 수상한 적이 있지만 은사자상은 처음이다.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아니라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감독이 탔다는 것이 더 놀랍다. ▷임 감독의 작품은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판타지적인 영상이 결합되어 있다. 인터뷰에 주목한다면 다큐멘터리 영화이고, 영상에 주목한다면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는 가발 공장 모습을 보여 주는 2분짜리 부분 영상을 볼 수 있었을 뿐이지만 가발 공장의 즉물성을 판타지와 결합해 보여 주는 감각이 놀라웠다. 주제의식도 묵직해서 구로공단에서 사라진 장면을 베트남 캄보디아의 공장을 통해 보여 줌으로써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이 시대 차를 두고 겪는 공통의 경험을 부각시켰다. ▷미술로서의 영화는 우리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분류할 때의 예술영화와도 다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샤넬 한복쇼를 연 카를 라거펠트는 패션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도 만든다. 물론 그것은 상업영화도 예술영화도 아니고 미술로서의 영화, 혹은 패션으로서의 영화다. 그러고 보니 미술과 영화의 경계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 어수선한 변경지대에서 우리 작가가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게 더 큰 기쁨이라 하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여러 차례 막말 논란을 빚었다. 2012년 새해의 사자성어로 ‘명박박명’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미인박명(美人薄命)에 빗대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빨리 죽으라는 저주의 말을 퍼부은 것이다.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을 비판하면서 ‘바뀐 애는 방 빼, 바꾼 애들은 감빵(감방)으로’라는 글을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와 비슷한 ‘바뀐 애’라고 비하해 부르면서 물러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는 어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비죽거렸다. 주 위원이 4·29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려다 번복한 것을 공격한 것이다. 화가 난 주 위원은 문재인 대표가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나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 문 대표는 정 위원에게 사과할 것을 주문했으나 정 위원이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한 새정치연합이 하루 종일 막말 소동으로 어수선했다. ▷정치인의 수준은 곧 말의 수준이다. 정치인이 신랄한 비판을 하고 싶다면 위트를 사용할 수도 있다. 촌스러웠던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도 ‘정치인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아준다’ 같은 멋진 말을 할 줄 알았다. 정 위원이 말로만 사퇴를 떠든 주 위원을 비판하고 싶었다면 ‘사퇴는 말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비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공갈’ 같은 거친 표현은 한판 붙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누군가의 면전에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정 위원은 문 대표가 2월 취임 직후 첫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자 “독일이 유대인의 학살을 사과했다고 유대인이 히틀러 묘소를 참배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두 전 대통령이 독재를 하긴 했지만 유대인 600만 명 이상을 죽인 히틀러에 비유한 것은 균형감이 없다. 당시 새누리당은 정 위원을 ‘최고위원 아닌 최악위원’이라고 비꼬았다. 최고위원다운 말의 품격을 갖추라는 것 자체가 정 위원에게는 무리일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공무원연금 개혁은 국회 본회의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실패다. 그럼 노동개혁은 성공할 것인가. 공공부문, 금융, 교육 개혁은 또 어떨 것인가. 장담할 수 없다. 쟁점 안건은 모두 여야 합의로 처리하도록 한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이 나라는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가 됐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개혁이란 기득권층의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그런 개혁이 합의로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사회학에서 사회를 보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있다. 사회가 합의로 돌아간다는 통합 모형은 탤컷 파슨스 같은 보수적 학자들의 주장이다. 개혁적 학자들은 사회는 일부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을 강제하는 것에 바탕을 둔다는 갈등 모형을 택한다. 다만 그 강제가 소수가 다수에게 강제하는 것이면 권위주의이고, 다수가 소수에게 강제하는 것이면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합의의 비민주적 대가 합의가 과반을 넘어 일치에 접근할수록 합의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비용은 늘어난다. ‘불어 터진 국수’란 비판은 다름 아니라 합의에 걸린 과도한 시간을 말한다. 더 큰 문제는 비용, 바로 합의를 위한 흥정에 드는 비용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는 그 자체로도 초라하지만 뒷문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국민연금 수정안을 끌어들였다. 사실 합의는 단지 시간이 걸려 성사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걸리는 흥정 끝에 결국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성사되는 것이다. 그 대가가 주로 법안 연계 처리다. 이런 방식으로 50% 지지도 얻지 못하는 비(非)민주적 안건이 민주적 안건에 섞여 관철된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정부와 여당에서 누리과정 예산 집행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을 요구하자 이를 통과시켜 주는 대가로 광역의원 유급보좌관 신설안을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지방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지만 2006년부터는 연 수천만 원씩 의정비를 받고 있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과 달리 겸직도 제한 없이 가능하다. 그런 마당에 유급 보좌관까지 둔다는 데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다. 더러운 법안 연계 처리는 이제 상습적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야 합의가 소수가 다수에게 의사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미끼를 던진 것은 새정치연합이지만 그걸 덥석 문 것은 새누리당 쇄신파들이다. 그러나 궁극적 책임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이들의 행동을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제동을 걸지 않은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국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비판해야 하고,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을 비판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비판해야 한다.단순 과반으로 돌아가야 여야 합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민주주의를 저해한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소수자의 보호가 특별히 요구되는 사안이 아닌 한, 단순 과반이 민주주의를 가장 확실히 보장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나라의 국회가 단순 과반을 의결 방식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개혁 불가능 국가에서 벗어나려면 이 단순 과반의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길이 막혀 있다. 건너올 수는 있었는데 건너갈 수는 없다. 여야 합의를 만든 것은 단순 과반의 의결로 가능했지만 단순 과반으로 되돌리는 것은 여야 합의의 의결로만 가능하다. 국회 스스로 그런 의결을 할 가능성은 없다. 헌법재판소는 되돌릴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빠져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여류 작가는 보지도 못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 대목들이 있다. 그런 시오노가 현대 남성 중에서 으뜸으로 꼽는 이는 미국 배우 게리 쿠퍼다. 잘생기고 교양 있는 데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서부의 사나이 역할을 누구보다 멋지게 소화한 배우다. 미국이 세계의 선망을 받던 시절, 멋진 미국 남자의 이미지 그 자체라고나 할까. ▷시오노는 아베 신조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고대 로마에 빗대기 좋아하는 그의 상상력은 간혹 황당해서, 카이사르에서 아우구스투스로의 승계가 팍스 로마나의 시대를 열었듯이 고이즈미 준이치로에서 아베 신조로의 총리 승계가 일본을 구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했다. 그도 아베가 직구만 던질 줄 알았지 변화구는 던질 줄 모른다는 데는 불만이다. ▷아베 총리가 미국 상·하원 연설에서 에이브러햄 링컨과 게리 쿠퍼를 언급했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을 언급해 환심을 사려는 것이지만 두 사람 다 아베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아베는 시오노와는 달리 쿠퍼와 동시대를 살았다고 보기 어렵다. 쿠퍼가 죽었을 때 아베는 고작 일곱 살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시절 하숙집 여주인이 사별한 남편에 대해 ‘쿠퍼보다 잘생겼다’고 자랑한 사실을 인용했을 뿐이다. 쿠퍼를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말하지 않았다. ▷영화 ‘하이 눈’에서 쿠퍼가 분(扮)한 보안관 윌 케인은 결혼하기 위해 은퇴하고 마을을 떠나려는 순간 자신이 감옥에 보낸 악당이 마을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계획을 바꿔 마을에 남아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인다. 케인 보안관은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의 표상이다. ‘하이 눈’을 보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아베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의문이다. 케인 보안관이라면 말로만 무라야마와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끝까지 사죄하지 않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외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동맹이다. 우리나라는 천 년간 동맹국을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한국에 외교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이유다. 삼국시대만 해도 나당(羅唐)연합이니 백왜(百倭)연합이니 하는 게 있었으나 이후로는 주로 중국과의 조공 관계가 이어졌다. 중국도 전국시대에 합종연횡(合從連衡) 같은 치열한 외교가 있었으나 진시황의 천하통일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과 주변국은 오랫동안 외교를 잊고 살았다. 중국이 서양과 접촉해 아편전쟁을 당한 것은 외교를 잊은 채 조공만 고집했기 때문이다. 일본만 중화의 세계에서 떨어져 번(藩)으로 나뉘어 자기들끼리 경쟁하면서 동맹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 일본도 개국 이후 열강에 끼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 간섭에 호되게 당한 뒤, 러일전쟁에서 영일동맹으로 러시아에 보복하면서 동맹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한국엔 낯선 동맹 경험 조선은 개국 이후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동맹을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또 광복과 동시에 한반도 북쪽은 소련, 남쪽은 미국과의 동맹의 틀 속에 사실상 강제로 편입됐다. 그러고 나서 중국의 부상과 함께 천 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에게 동맹의 선택지(選擇肢)가 주어졌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동맹의 경험이 풍부한 나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를 미일의 ‘신(新)밀월관계’ 정도로 보는 것은 핵심을 찌르지 못한다. 신밀월관계는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로널드 레이건과 20년의 격차를 둔 고이즈미 준이치로-조지 W 부시의 관계에나 적절한 표현이다. 아베가 한 것은 미일동맹의 성격을 바꾸는 질적인 변화다. 아베의 궁극적 목표는 일본 미국 호주의 동맹에 인도를 끼워 넣는 ‘민주적 다이아몬드 동맹(democratic security diamond)’이다. 미국 하와이에서 시작해 연결하면 다이아몬드가 그려지는 네 나라가 민주주의를 공동 가치로 중국에 맞선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국(大國)이고 앞으로 더 큰 대국이 될 것이지만 주변국이 포위하면 일본이 싸워볼 만한 상대다. 전 세계를 관리하는 데 점점 더 힘이 부치는 미국으로서도 바라는 바다. ‘민주적 다이아몬드 동맹’ 구상에 한국은 들어 있지 않다. 일본의 생각은 한국이 들어와 주면 좋지만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최근 들어 일본은 한국과의 가치 공유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중국과 가까워진 한국이 들어오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투키디데스를 읽어라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국 우선순위에서 일본에 밀린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런 냉엄한 현실이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동맹으로 함부로 기울 수도 없다. 중국은 여전히 반(反)중국 세력에 비하면 큰 차이로 열세다.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고 우세를 열세로, 열세를 우세로 바꿀 수 있는 균형자도 아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생존을 위한 동맹이 눈물겹다. 동맹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경쟁하는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행복한 상황이 아니다. 진정한 외교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동맹은 이기는 동맹에 서야 하고 이기는 동맹에 서기 위해 때론 억울함을 감수해야 한다. 최소한 왕따가 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외교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탈리아 호화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는 2012년 질리오 섬 부근에서 좌초해 승객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은 승객을 버려둔 채 탈출했다가 기소됐다. 이탈리아 법원은 올 3월 스케티노 선장에게 징역 16년 1개월을 선고했다. 외신에 따르면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살인(murder)이 아니라 고의성이 없는 과실치사(manslaughter)다. ▷어제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살인죄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이 선장의 행위는 고층빌딩 화재 현장에서 책임자가 먼저 헬기를 타고 탈출하거나 유일한 야간 당직의사가 병원에서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며 이 선장이 탈출 전 승객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은 데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봤다. 1심에서 유기치사상 등 죄목으로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던 이 선장의 형량은 무기징역으로 높아졌다. ▷참사가 대형이라도 살인죄가 적용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법률가에 따라서는 ‘1심 판결이 옳다’ ‘항소심 판결이 옳다’ 의견이 갈린다. 1970년 326명이 희생된 남영호 침몰 사고에서 선장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배가 화물 과적이 심하긴 하지만 선장 스스로 그 배에 탔는데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남영호는 당시 세 번의 파도를 맞고 순식간에 배가 뒤집어져 선장이 승객을 구조할 시간이 없었던 반면 세월호는 사고 후 배가 80도 이상 기울기까지 1시간 20분의 시간이 있었다. ▷우리나라 형법에서 살인죄는 살인죄 하나뿐이다. 독일만 해도 살인을 모살(謀殺·Mord)과 고살(故殺·Totschlag)로 구별한다. 모살은 계획적인 살인을 말하고, 고살은 충동 등 다른 요인이 개입된 우발적인 살인을 말한다. 미국에서 1급 살인과 2급 살인을 구별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형법 체계가 현대 사회의 대형 참사를 예방하는 데 적합하지 않게 돼 있다. 애매모호한 미필적 고의를 남용하기보다는 살인죄를 좀더 세분할 필요성이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명숙 전 총리와 이완구 전 총리를 비교한다면 양쪽 다 화를 낼지 모르겠다. 한 전 총리는 첫 여성 총리였고 이 전 총리는 충청권 대선주자로 오르내렸으니 양쪽 다 자부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받았다는 불법 정치자금의 액수는 9억 원 대 3000만 원으로 한 전 총리 쪽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9억 원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지 않았고 3000만 원은 검찰이 아직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정치인 출신 총리가 많지 않은 터에 두 사람 다 정치인 출신으로 총리가 됐고 또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연루됐다. 한 전 총리는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한 전 총리같이 민주화 운동의 전력을 자랑하는 사람이 뇌물을 받았다고 믿고 싶지 않다. 다만 정치자금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두 사람 다 학자나 관료 출신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시도지사에 출마한 정치인이다 보니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에서 자유롭기는 어렵겠다 싶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그제 “새정치민주연합이 부정부패로 새누리당을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며 한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으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꼬집었다. 자살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폭로로 시작된 정치권 다툼에 애먼 한 전 총리까지 불려 나왔다. 하지만 결국 새정치연합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반대하는 것이야 새정치연합의 자유지만 인준 표결 자체를 막고 있으니 ‘한명숙 구하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2심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2013년 9월이다. 그때로부터 1년 7개월이 지났다. 기소된 때로부터 따지면 4년 9개월이다. 그 사이 한 전 총리의 19대 국회의원 임기는 3년이 지나갔다. 이러다가 내년 임기가 끝날 무렵에나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연착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새정치연합은 박 후보자 인준 표결에 협조하고 대법원도 궐원을 채우게 되면 정치권 눈치 보지 말고 신속하게 판결을 내려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역사상 가장 많은 비용을 들여 인양한 선박은 2012년 이탈리아 질리오 섬 해안에서 좌초한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로 기록됐다. 10억 유로(약 1조1615억 원)가 들었다. 예인과 폐선 비용을 빼고 인양 비용만 그렇다. 그러나 누구도 이 인양 작업에 대해 왈가불가하지 않았다. 비용을 선주가 댔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경우 인양 비용은 전액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 국가가 지금까지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 등에 쓴 비용이 1800억 원인 반면 현재 법무부가 동결한 세월호 선주 유병언 씨 일가의 재산은 겨우 1282억 원이다. 1282억 원을 전액 환수한다 해도 이미 쓴 비용 1800억 원도 회수하지 못한다.선주의 돈, 국민의 돈 콩코르디아호의 인양 비용은 5억 유로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2배까지 늘었다. 정부는 어제 세월호 인양에 1000억∼1500억 원이 든다고 밝혔다. 앞서 2000억 원 얘기가 흘러 나왔기 때문에 1500억 원은 마사지한 느낌이 드는 숫자다. 어찌됐건 남은 9명의 실종자를 수습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앞서 295명의 실종자를 수습하는 데 든 비용을 넘어설 수도 있는 상황이다. 비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은 유해를 수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있는가. 콩코르디아호는 섬에 인접한 낮고 잔잔한 바다에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반쯤 잠겨 있다가 1년 8개월 만에 인양됐는데도 최종 남은 실종자 2명 중 1명의 일부 유해만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세월호는 붕괴가 진행 중인 채로 조류가 거센 바다 한가운데 잠겨 있다. 인양 작업이 계획대로 된다 해도 침몰로부터 2년 반쯤 지난 시점에 인양이 이뤄진다. 인양 자체의 기술적 불확실성도 크지만 인양 시점에 어떤 유해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비용이 얼마가 들어가건 온정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온정이 필요할 때와 냉정을 찾아야 할 때를 구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탈무드에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세상을 구한 것’이란 말이 있다.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한 생명이라도 온 세상과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 지금 냉정한 말을 하고 있는 나를 포함해 모두 세월호 침몰 직후에는 배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살려낼 수 있다면 1500억 원이 아니라 15조 원을 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맹골수도의 위험한 인양 환경을 고려하면 인양을 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희생을 막는 길이다.중립성 잃은 인양결정 콩코르디아호는 유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인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섬 바로 옆에 물 밖으로 우현을 드러내고 기울어진 거대한 배를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1조 원을 넘게 들여서도 인양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는 인양하면 좋지만 꼭 인양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인양 비용을 누가 대느냐, 인양의 목적은 얼마나 달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종 인양 결정에 앞서 인양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전문가 집단의 중립적 결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례적이었다. 박인용 국가안전처 장관은 세금 1500억 원 쓰는 일을 마치 커피 값 1500원 결제하는 일처럼 물은 시중의 여론조사 결과로, 당초 약속한 공론 수렴 과정을 대체했다. ‘1500억 원+α’는 세월호 인양 비용이라기보다는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도 없고, 그 결정을 국민 설득을 통해 밀고 나갈 능력도 없는 무능한 정부의 생존비용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잘 만들어진 비극은 비극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끌어낸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가 뛰어난 것은 오셀로의 의심이 오셀로의 비극을 낳은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로 박근혜 대통령 측이 처한 예상치 못한 곤경도 이런 구조를 갖고 있다. 이완구 총리가 사정(司正)의 팡파르를 울렸을 때 느닷없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박 대통령이 팡파르까지 울리며 사정에 나서는 걸 원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총리가 자신이 익숙한 흘러간 정권의 방식으로 사정을 포장해 내놓은 것은 확실하다. 난 ‘이완구는 총리감이 아니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사정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사정을 외칠 때만 해도 한 편의 소극(笑劇)이었다. 칼날이 거꾸로 이 총리와 박 대통령을 겨누면서 그것은 웃지 못할 비극으로 바뀌었다. 성공에 예정된 실패오셀로는 베네치아의 무어인 용병이었다. 그는 무어인의 자질로 위대한 장군이 됐지만 무어인이었기에 갖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것이 아내를 의심한 비극의 씨앗이었다. 박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의 딸로 살아온 삶이 성공의 원인이자 지금 처한 곤경의 원인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판에 들어왔으나 그 후광에 눈이 부셔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정치는 아무리 아껴 써도 돈이 들어가는 분야인데 그에게만 돈을 써야 돌아가는 현실의 정치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돈에 대해서는 ‘고귀한’ 보스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니 측근들이 각자 모아서 쓸 수밖에 없었다. 측근들은 그것이 진정한 충성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박 대통령도 영리한 사람이니까 측근들이 부정한 돈을 받는 것은 아닌가 의심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돈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측근들도 알아듣는 시늉을 했으니 믿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믿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도 자신이 옷을 입지 않았음을 알았다. 신하들이 다 옷을 입었다고 하니까 입었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박 대통령은 ‘나야말로 돈에 대해서는 깨끗한 사람’이 됐다. 잘 만들어진 비극에서는 성공의 정점에서 실패가 시작된다. 박 대통령은 집권 3년 차를 맞아 세월호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경제 활성화와 부패 척결에 시동을 걸었다. 앞의 것 하나도 어려운데 두 가지를 다 하겠다는 것은 좋게 보면 자신감의 표현이고 나쁘게 보면 의욕 과잉이다. 거기서 운명은 예상과 다른 경로로 진행해 성 회장을 불러들이고 비극이 시작됐다. 대통령의 딸인 박 대통령이 아는 정치판과 자수성가한 성 회장이 아는 정치판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두 관점이 부닥치고 진실의 순간이 다가왔다.대통령이 자초한 레임덕 성 회장의 메모와 인터뷰 내용이 다 맞다고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일부는 똥물을 퍼붓는 심정으로 끼워 넣은 허위일 수도 있다. 문제는 검찰 수사로는 메모와 인터뷰 내용의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이다. 정치자금은 교묘하게 주고받는 것이라 주고받은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사법적으로 입증하기 쉽지 않다. 그게 입증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돈이 오간 사실이 없다고 믿지 않는다. 망자(亡者)가 죽음에서 돌아와 자신의 메모를 철회해 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게 망자의 메모가 갖는 비극적 성격이다. 정면 돌파한다 해도 극복할 수 없다. 박 대통령 자신이 원인을 제공한 사정발(發) 레임덕이 이미 시작됐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난 일본 역사교과서 2권을 갖고 있다. 1997년 짓쿄(實敎) 출판사의 고등학교용 교과서와 2001년 후쇼샤(扶桑社)의 중학교용 교과서다. 앞의 것은 역사교과서 논란이 일기 이전의 책이고 뒤의 것은 역사교과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로 그 책이다. 그러나 두 책 모두 독도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딴판이다. 일본의 모든 역사교과서에 ‘독도는 1905년 일본 시마네 현에 편입됐다’ 같은 기술이 들어갔거나 들어간다. 일본인들은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변곡점(變曲點)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 명기 작업은 그전부터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없었어도 그 작업은 차근차근 진행됐을 것이다. 전략에 말려든 대통령 방문 사실을 말하자면 일본이 2005년부터 ‘독도의 날’을 정하면서 도발 수위를 꾸준히 높여왔기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참지 못하고 독도를 방문했다. 문제는 일본 쪽에서 볼 때 그의 독도 방문이 자신들의 도발로 한국이 반응하리라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잘못은 독도에 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일본의 시나리오에 딱 들어맞는 행동을 해줬다는 것이다. 독도는 위안부와 달리 ‘조용한 외교’로 계속 갔어야 했다. ‘조용한 외교’를 했더라도 독도 도발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기 나라 교과서에 자기가 넣겠다는데 무슨 수로 막겠는가. 그러나 독도는 일본의 모든 교과서가 ‘일본 땅’이라고 해도 일본 땅이 되지 않는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한국에 속했고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독도에서 우리는 더 얻을 게 없고 일본은 더 잃은 게 없다는 게 ‘조용한 외교’의 근거다. 우리가 일관된 노선을 지키지 못하는 사이 일본은 일로매진(一路邁進)해 일단 자국 내에서 분쟁지역화에 성공했다. 조용한 외교는 가만있는 외교가 아니다.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설명하면 될 것을 요란하게 맞대응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독도는 사정을 알면 알수록 한국 땅이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일본근대사상비판’을 쓴 사상가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는 “일본에서 다케시마 연표는 러일전쟁의 역사를 구성하는 일 없이 1905년만을 떼어낸 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말로 일본 쪽 주장의 약점을 집어냈다. 러일전쟁의 틀에서 일본의 독도 편입을 본다면 제국주의적 침탈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조용한 외교’ 확고히 지켜야 우리가 다시 2012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다. 다만 일본이 모든 교과서에 독도를 명기하기로 했으니 우리도 입도지원시설을 짓자는 식의 대응은 하지 말자. 그냥 무시해 버리자. 그리고 우리가 꼭 필요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우리 땅에서 하자. 대통령까지 독도를 다녀왔는데 못할 게 뭐가 있는가. 좋게 보면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우리 마음속의 한계 같은 것을 깨버린 측면도 없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조바심으로 망치고 있는 독도의 경관이다. 일본이 도발할 때마다 독도에 덕지덕지 시설을 지어 난민촌처럼 만들지 말자. 독도를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독도의 주인답게 독도를 스마트하게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진짜 독도전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주인다운 위엄을 가지고 독도를 다루는 것이 진짜 독도전에서 독도를 제대로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