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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출마(출연)도 인사검증에 걸리면 낙마할 수 있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식스맨’ 특집에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 장동민이 설화(舌禍)에 휩싸여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인터넷에선 장동민이 지난해 유세윤 유상무와 진행했던 팟캐스트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옹꾸라)’의 내용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당시 이들은 도가 지나치게 여성을 비하했다. 특히 장동민은 자신의 코디네이터를 거론하며 원색적인 욕도 서슴지 않았다. 이게 문제가 되자 결국 3명은 청취자에게 사과하고 방송을 중단했다. 허나 최근 장동민이 유력한 식스맨 후보로 떠오르자 당시 방송 내용이 다시 주목받았다. ‘기존 멤버가 물의를 빚으며 하차한 자리를 대신하기엔 문제가 크다’는 입장과 ‘이미 사과하고 마무리된 사안을 굳이 끄집어 낼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장동민은 13일 자신이 진행하는 KBS FM라디오 ‘장동민 레이디제인의 2시!’에서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 다시는 그런 과오가 없도록 하겠다”고 용서를 구했다. 누리꾼들은 장동민의 적절치 못했던 언행과 별개로 무한도전의 높은 ‘진입 장벽’에도 관심을 가졌다. “잘 나가던 장동민, 무한도전 ‘청문회’에 그로기 상태” “무한도전은 이제 예능이 아니라 성역. 그만큼 국민이 애정한단 뜻” “기존 무한도전 멤버도 재검증하면 거의 못 버틸 텐데…” “식스맨 경쟁자들이 정보를 흘린 게 아닐까”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사랑을 다룬 영화 4편이 꽃과 함께 다가온다. ‘한번 더 해피엔딩’(8일 개봉) ‘나쁜 사랑’(16일)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9일) ‘엘리노어 릭비: 그남자 그여자’(9일)는 모두 남녀 간의 사랑이 빚는 짧은 즐거움과 긴 고통에 관한 영화다. 모름지기 사랑의 고통은 남녀 간의 차이와 오해에서 발생하는 법. 40대 유부남 기자와 30대 미혼 여기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네 영화를 비교 분석해봤다. 》△정양환=휴 그랜트가 나온 ‘한번 더 해피엔딩’이 제일 좋았어. ‘썩어도 준치’라더니 까칠한 영국 바람둥이 캐릭터는 여전히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더라. △이새샘=좀 짠하기도 하던데. 퇴물 시나리오 작가가 결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초심을 되찾는다는 줄거리가 이젠 중늙은이(56세)가 된 자신의 모습을 담은 거 같기도 하고. △정=사랑 그 자체보다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라고 보면 될 듯해. 조연들이 활약한 것도 그런 점에서 좋았어. 특히 학과장 러너 교수 역의 JK 시먼스는 영화 위플래쉬에서 냉혹한 선생으로 나왔는데 여기선 정말 귀여운 신 스틸러였어. △이=일반적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지. 데이트 장면이나 키스신, 러브신도 거의 안 나오잖아. 오히려 그게 산뜻했어. △정=열정보다는 안정,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택하는 줄거리가 어떻게 보면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휴 그랜트의 나이에 어울리는 로맨스였어. △이=‘나쁜 사랑’은 반대로 열정과 안정 중에 열정을 택한 이야기인데…. 한 남자가 우연히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어쩌다 엇갈리고, 다시 그 동생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 뒤 첫 여자와 재회한다는 줄거리, 솔직히 한국 막장 드라마 같아. △정=결혼해서 애까지 있는데 겨우 반나절 같이 보낸 여자 때문에 흔들린다? 글쎄, 여러 면에서 공감하기 힘들었어. △이=샤를로트 갱스부르 같이 유명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이야기에 허점이 많으니 집중하기가 힘들더라. 그에 비해 일본영화 ‘결혼하지 않아도…’는 드라마로 만들었다면 훨씬 좋았겠다 싶지만 30대 비혼(非婚) 여성들의 일상과 고민을 그려서 공감이 가는 영화였어. △정=남자 입장에선 좀…. 주인공 셋 중 사와코(데라지마 시노부)와 결혼할 남자가 나이가 많으니 임신이 가능한지 검사를 받으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아는 한 어떤 남자도 그렇게 무심하게 말하진 않을걸. △이=그 장면은 시사회에서 여자 관객들이 실소를 터뜨렸던 장면이었는데…. 30대 여자들의 고민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는 대개 사랑이 이뤄지거나 결혼에 골인하면 이야기가 끝나는데 이 영화는 그 이후를 다뤄서 좋았어. △정=난 커리어 우먼으로 살다 직장을 관둔 마이짱(마키 요코)의 에피소드가 와 닿더라. 결혼이 아니라 애를 낳으면 인생이 바뀐다는 점에 공감. △이=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수짱(시바사키 고우)이 “직업도 일도 없이 외롭게 늙으면 어떡하지”하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공감했어. 그냥 혼자 늙어 죽는 것보다 가난하게 늙어 죽는 게 더 무섭다는 얘기 아냐? △정=한국이나 일본에서 젊은층이 할 만한 고민을 다룬 영화야. 혼자 살고 싶지만 그게 맞는 걸까 스스로 의구심이 들고, 사회적 보호망은 아직 부족하고. 또 주변에서도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 △이=‘결혼하지 않아도…’가 사랑과 결혼이 필수인지 묻는 영화라면 ‘엘리노어 릭비’는 사랑만 보고 결혼한 남녀가 충격적 사건을 겪으며 서로 멀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지. △정=주연배우 연기도 좋았고 비틀스 노래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답게 음악도 좋았어. 공감이 가면서, 동시에 보기 힘든 영화이기도 해. 아무리 부부가 서로 사랑해도 그런 사건을 겪으면 사랑만으론 그 공허함을 메워주지는 못할 거 같아. △이=남자, 여자, 그리고 둘 이야기를 묶은 버전까지 총 세 가지 버전을 각각 개봉하는데, 버전마다 조금씩 다른 장면이 있어. 사랑하는 사이라도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힘들다는 걸 보여주지. △정=사실 슬픔을 극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 남녀의 차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차이 아닐까. 우린 흔히 ‘남자라서 이래, 여자라서 저래’라고 하지만 결국 사랑을 지키기 위해선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걸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듯.이새샘 iamsam@donga.com·정양환 기자}
《 “개봉도 하기 전에 1000만 클럽 가입을 예약한 영화?” 23일 선보이는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은 벌써 극장가에서 핫이슈다. 조스 웨던 감독과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 헐크(마크 러펄로)의 16일 내한이 확정돼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다. 비슷한 시기 개봉 예정이던 영화들은 눈치를 보며 개봉 일정을 저울질하고 있다. 》 원래 출연진이 많은 어벤져스지만 2편은 더 복잡하다. 마블 역사상 최강의 적으로 꼽히는 울트론이 등장하고, 퀵실버(에런 존슨)와 스칼릿 위치(엘리자베스 올슨)란 새로운 어벤져스 멤버도 합류한다. 여기에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한국 촬영과 더불어 닥터 조(Doctor Cho·수현)란 한국인 캐릭터도 나온다. 익숙지 않은 관객이라면 헷갈릴 지경. 국내에 출간된 원작만화 마블코믹스를 바탕으로 신규 캐릭터들을 미리 짚어봤다.○ 닥터 조―어벤져스를 돕는 한국인 천재 과학자 지난해 마블과 맺은 양해각서에 따르면 영화 속 한국 분량은 20분 정도. 지금까지 나온 예고편에도 캡틴 아메리카가 한강 세빛섬을 바라보거나 오토바이를 탄 블랙 위도(스칼릿 조핸슨)가 서울의 대로를 질주하는 모습이 담겼다. 닥터 조 역시 여기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작사에 따르면 닥터 조는 유전공학 분야의 천재 과학자로 울트론 발명에 관여했다. 그는 서울 연구실에서 미국 뉴욕 어벤져스 타워와 연결해 헐크와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다른 캐릭터와 달리 닥터 조는 영화에서 새로 만든 인물. 하지만 마블 만화에서 유일한 한국인 슈퍼히어로였던 ‘아마데우스 조(Amadeus Cho)’와 닮은 구석이 많다. 아마데우스 조는 가녀린 외모의 남성이지만 날아가는 미사일 궤적을 몇 초 만에 예측해 무산시키는 천재 수학자. 미국 만화 전문인 이규원 번역가는 “2005년경 탄생한 아마데우스 조는 ‘어벤져스 2세대’ 인기 캐릭터”라며 “최근엔 신체능력을 강화시키는 슈트를 입고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울트론―인류를 말살하려는 인공지능 로봇 울트론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1968년 만화에 처음 등장한 악역으로 자신을 창조한 인류를 지구의 해악으로 여기고 말살하려 든다. 원작에선 어벤져스의 또 다른 멤버 ‘앤트맨(Ant-Man)’ 행크 핌 박사가 만들었다. 허나 어벤져스2에선 헐크와 아이언맨이 개발했다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그간 마블월드에선 울트론에게 목숨을 잃은 초인 캐릭터도 꽤 된다. 물론 부활했지만. 시공사가 지난달 내놓은 동명만화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선 울트론이 지구 정복에 성공하고 슈퍼히어로들은 지하에 숨어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는 상황에 처한다. 만화는 오히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연상시킨다. 엑스맨의 울버린이 과거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설정이 비슷하다. 1930년대 시작된 마블 세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벤져스는 엑스맨은 물론이고 ‘판타스틱 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과도 인연이 깊다.○ 퀵실버·스칼릿 위치―초인세계 확장의 열쇠 어벤져스2의 신규 캐릭터가 퀵실버와 스칼릿 위치란 점은 의미심장하다. 두 사람이 엑스맨 희대의 악당 매그니토가 낳은 자식들이기 때문. 이 번역가는 “최근 판권 문제가 해결돼 어벤져스 합류가 결정된 스파이더맨처럼 엑스맨도 연결 고리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본명이 피에트로와 완다 맥시모프인 두 초인은 원작에서도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 퀵실버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고, 스칼릿 위치는 시간과 공간을 조작하는 혼돈마법을 쓴다. 예고편에 깜짝 등장한 또 다른 초인 ‘비전’은 울트론이 만든 인조인간이나 결국 어벤져스에 합류한다. 만화에선 스칼릿 위치와 결혼하고, 캡틴 아메리카가 죽은 뒤 어벤져스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개봉도 하기 전에 1000만 클럽 가입을 예약한 영화?” 23일 선보이는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은 벌써 극장가에서 핫이슈다. 조스 웨던 감독과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헐크(마크 러팔로)의 16일 내한이 확정돼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다. 비슷한 시기 개봉 예정이던 영화들은 눈치를 보며 개봉 일정을 저울질하고 있다. 원래 출연진이 많은 어벤져스지만 2편은 더 복잡하다. 마블 역사상 최강의 적으로 꼽히는 울트론이 등장하고, 퀵 실버(애런 존슨)와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란 새로운 어벤져스 멤버도 합류한다. 여기에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한국 촬영과 더불어 닥터 조(Doctor Cho·수현)란 한국인 캐릭터도 나온다. 익숙지 않은 관객이라면 헷갈릴 지경. 국내에 출간된 원작만화 마블코믹스를 바탕으로 신규 캐릭터들을 미리 짚어봤다.●닥터 조-어벤져스를 돕는 한국인 천재과학자 지난해 마블과 맺은 양해각서에 따르면 영화 속 한국 분량은 20분 정도. 지금까지 나온 예고편에도 캡틴 아메리카가 한강 세빛섬을 바라보거나 오토바이를 탄 블랙 위도우(스칼릿 조핸슨)가 서울의 대로를 질주하는 모습이 담겼다. 닥터 조 역시 여기서 등장할 전망이다. 제작사에 따르면 닥터 조는 유전공학 분야의 천재 과학자로 울트론 발명에 관여했다. 그는 서울 연구실에서 미국 뉴욕 어벤져스 타워와 연결해 헐크와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다른 캐릭터와 달리 닥터 조는 영화에서 새로 만든 인물. 하지만 마블 만화에서 유일한 한국인 슈퍼히어로였던 ‘아마데우스 조(Amadeus Cho)’와 닮은 구석이 많다. 아마데우스 조는 가녀린 외모의 남성이지만 날아가는 미사일 궤적을 몇 초 만에 예측해 무산시키는 천재 수학자. 미국만화 전문인 이규원 번역가는 “2005년경 탄생한 아마데우스 조는 ‘어벤져스 2세대’ 인기 캐릭터”라며 “최근엔 신체능력을 강화시키는 수트를 입고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울트론-인류를 말살하려는 인공지능 로봇 울트론은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1968년 만화에 처음 등장한 악역으로 자신을 창조한 인류를 지구의 해악으로 여기고 말살하려 든다. 원작에선 어벤져스의 또 다른 멤버 ‘앤트맨(Ant-Man)’ 행크 핌 박사가 만들었다. 허나 어벤져스2에선 헐크와 아이언맨이 개발했다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그간 마블월드에선 울트론에게 목숨을 잃은 초인 캐릭터도 꽤 된다. 물론 부활했지만. 시공사가 지난달 내놓은 동명만화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선 울트론이 지구 정복에 성공하고 슈퍼히어로들은 지하에 숨어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는 상황에 처한다. 만화는 오히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연상시킨다. 엑스맨의 울버린이 과거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설정이 비슷하다. 1930년대 시작된 마블 세계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벤져스는 엑스맨은 물론 ‘판타스틱 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과도 인연이 깊다.●퀵 실버·스칼렛 위치-초인세계 확장의 열쇠인 남매 어벤져스2의 신규 캐릭터가 퀵 실버와 스칼렛 위치란 점은 의미심장하다. 두 사람이 엑스맨 희대의 악당 매그니토가 낳은 자식들이기 때문. 이 번역가는 “최근 판권 문제가 해결돼 어벤져스 합류가 결정된 스파이더맨처럼 엑스맨도 연결 고리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본명이 피에트로와 완다 맥시모프인 두 초인은 원작에서도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 퀵 실버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고, 스칼렛 위치는 시간과 공간을 조작하는 혼돈마법을 쓴다. 예고편에 깜짝 등장한 또 다른 초인 ‘비전’은 울트론이 만든 인조인간이나 결국 어벤져스에 합류한다. 만화에선 스칼렛 위치와 결혼하고, 캡틴 아메리카가 죽은 뒤 어벤져스를 이끄는 리더가 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누구나 해봤으니 알고 있으리라. 거짓말은 하다 보면 는다. 허나 점점 걷잡을 수 없어져 끝은 좋지 않다. 그런데 또 하게 된다. 장삼이사에겐 부담스러운 행위. 그런 거짓말에 도통한 이를 우린 사기꾼(범죄와 상관없이)이라 부른다. 이 책은 그 ‘마스터’들에 대한 이야기다. 1920년대 프랑스에 살았던 빅토르 루스티그란 인물을 보자. 당시 파리의 랜드마크 에펠탑은 1889년 건립된 이래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녹이 많이 슬었다. 빅토르는 이를 돈벌이 기회로 여겼다. 전국 고철거래상을 근사한 호텔에 초대해 자신을 정부관리라 소개한 뒤 에펠탑을 철거할 거라 발표했다. 7000t에 이르는 철근 덩어리를 입찰에 붙여 뇌물까지 받아가며 팔아먹었다. 봉이 김선달 뺨칠 정도다. 사례들만 나열해도 재밌겠지만 이 책은 사기꾼들의 근원을 짚어보려 노력한다. 왜 그들은 남을 속일까. 책에선 크게 4가지 경우로 나눴다. 타인이 누리는 부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질투’가 첫 번째요, 자신의 사기능력을 인정받고 주목받고 싶은 ‘자만’이 두 번째다.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고픈 ‘현실도피’도 주요 이유. 마지막으로 스파이 ‘간첩’들까지. 이 책이 흥미로운 건 100가지도 넘는 모든 사례들이 실제 일어났었단 점이다. 영화보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일들이 세상엔 널려있다니. 제3자 입장에선 흥미진진하다. 다만 명심하자. 이런 사기는 결코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남이 속을 땐 혀를 차겠지만, 우리 역시 언제든 당할 수 있다. 당신이 사기꾼이 아닌 이상.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저도 영화 ‘스물’ 치호(김우빈)처럼 딱히 하고픈 게 없는 잉여인간이었죠. 그래도 찬찬히 살피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하다가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청춘은 그래도 되는 때잖아요. 세상이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넘어져도 일어설 여유를 줬으면 좋겠어요.” 영화 ‘스물’이 빵 터졌다. 일단 재밌어서 웃음이 터졌다. 반응도 터졌다. 지난달 25일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일주일 만에 135만 명을 넘었다. 이병헌 감독(35)은 의외로 심드렁해 보였다. “배우들이 잘한 거죠. 저야 뭐….” 첫 장편영화로 ‘성공적’ 데뷔전을 치른 그의 속내엔 뭐가 들어 있을까. ―이렇게 잘 될 줄 예상했나. “무대인사 돌 때 분위기가 뜨겁긴 했다. 상당 부분 주연들 덕이다. 치호 경재(강하늘) 동우(이준호)는 다들 요즘 지구에서 제일 바쁜 친구들 아닌가. 근데 모이기만 하면 깔깔대고…. 셋이 동갑내기라 현장에서 호흡이 워낙 좋았다. 그런 느낌이 스크린에 잘 전해졌다.” ―탁월한 배우 선택도 감독 능력 아닌가. “김우빈 이준호는 시나리오 쓸 때부터 염두에 뒀다. 우빈은 생김새도 근사하지만 목소리 톤이 좋았다. 준호는 2PM 시절부터 팬이었다. 강하늘은 첫 만남 때 인사하는데 딱 경재구나 생각했다. 여배우는 고민이 컸다. 자칫 비호감일 수 있는 캐릭터라. 소민(정소민) 소희(이유희) 은혜(정주연) 진주(민효린)…. 고맙게도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이만하면 연출력은 몰라도 배우 보는 안목은 만족스럽다, 흐흐.” ―초쳐서 미안한데, 여성 캐릭터는 남성보다 매력적이지 않던데…. “끙…, 다 감독 탓이다. 세 남성 주인공은 내 분신과도 같다. 치호보다 더 멍 때리며 세월 보냈고, 경재처럼 대학 시절 짝사랑에 힘들었다. 동우만큼 알바 뛰며 고생도 했다. 아무래도 더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더라. 헌데 여성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배우들한테 되게 미안하다.” ―그래도 다들 예뻤다고 한다. “그렇담 다행이다. 감독이 뭘 어떻게 한 건 없다. 타고난 거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미모들 아닌가.” ―요즘 세대 얘긴데 중장년층도 좋아한다. “진짜로? 제일 듣고 싶던 말이다. 몇몇 스태프가 이 영화는 시대가 언제냐고 묻더라. 옛날 감성이 ‘찐’하다고. 기획 때부터 의도했다. 누구나 겪는 스무 살 청춘은 10대와 60대도 통하는 키워드라고 믿었다. 코미디란 장르도 그런 뜻에서 유용했다. 나이 떼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마지막 소소반점의 격투 장면(?)이 웃기긴 한데 꽤 길다. “16초쯤 거둬냈는데도 4분가량 된다. 에어서플라이 ‘위드아웃 유(Without You)’ 거의 전곡이 나간다. 개인적으로 이 신은 매우 소중했다. 여기서 소소반점은 스무 살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꾀죄죄하지만 어른이 되는 지점. 깡패들은 세월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길 수 없는 존재. 결국 반점에서 쫓겨나듯 나이를 먹는다. 그 심정을 생각하면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무 살 때로 돌아가고 싶나. “흠, 리셋하고 새로 살 자신은 없다. 지금 정신상태 그대로라면 잠깐 가보고 싶다. 첫사랑을 한 번쯤 만나고 싶은 바람이랄까. 그립긴 한데 막상 돌아가면 또 아옹다옹하겠지. 그게 인생이니까. ‘스물’은 나이 들어도 별것 없으니 어깨 처져 있지 말자고 술잔 건네는 영화다. 지금 그 시절을 살건 지나왔건. 대단치 않아도 각자에겐 소중한. 그게 청춘 아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상영 중인 영화 ‘뷰티풀 라이’는 1980년대 아프리카 수단의 내전에 휩쓸려 부모형제를 잃고 난민이 된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어렵사리 케냐 난민촌으로 피신했다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깊은 상처로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은 담담해서 먹먹하다. 특히 흑인 주인공 배우들은 실제 난민 출신이라 울림이 크다. 콩고민주공화국 난민인 욤비 토나 광주대 자율융복합전공학부 교수(48)는 “난민들이 겪는 역경은 사실적이나 아프리카인을 문명과 동떨어진 미개인으로 그린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토나 교수는 2002년 한국에 와서 2008년 행정소송을 거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과 핏줄 중시해 반군을 피해 도망친 마메르(아널드 오셍) 일행은 끊임없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보살핀다. 형은 동생을 위해 대신 잡혀가고, 미국에서 법적 문제로 헤어진 남매는 끝내 함께 살게 된다. 토나 교수는 “영화에서 조상 이름을 외우는 게임이 자주 나오는데 아프리카에선 흔한 놀이”라면서 “뿌리를 소중히 여기고 가족을 자신보다 아끼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받는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반군은 성인은 무차별 사살하면서도 어린 소년들은 잡아간다. 인도적인 이유가 아니다. 토나 교수는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아 맘대로 다루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약을 먹여 움직이는 건 모두 쏘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리거나 ‘총알받이’로 쓰는 일도 흔하다. 천신만고 끝에 해외로 탈출해도 고생은 끝나지 않는다. 마메르는 난민촌에서 의료교육을 받았지만 미국에선 허드렛일만 해야 했다. 토나 교수도 콩고민주공화국 내 부족인 키토나왕국 왕자 출신으로 경제학을 전공했다. 정부기관에서 일한 엘리트였지만 한국에선 인쇄나 동물사료 공장을 전전했다.○ 전화도 쓸 줄 모른다는 건 과장 영화에서 미국에 처음 도착한 난민들은 거실에서 전화가 울려도 뭔지 몰라 우두커니 쳐다본다. 주방기구도 쓸 줄 모른다. 토나 교수는 “아프리카를 원시 사회 수준으로 보는 편견이 빚어낸 촌극”이라며 “서구사회만큼은 아니어도 문명의 이기에 대한 웬만한 지식은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이런 인식에선 별반 다를 게 없다. 얼마 전 같은 아파트 주민이 ‘아프리카 이웃이 생겨 기쁘다’는 쪽지와 함께 헌옷들을 두고 갔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프리카 사람은 가난하지 않냐. 도와주고 싶다”고 답했다. 좋은 뜻인 줄은 알지만 가족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토나 교수는 “이 영화를 단순한 동정보단 아프리카의 현실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상영 중인 영화 ‘뷰티풀 라이’는 1980년대 아프리카 수단의 내전에 휩쓸려 부모형제를 잃고 난민이 된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어렵사리 케냐 난민촌으로 피신했다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깊은 상처에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은 담담해서 먹먹하다. 특히 흑인 주인공 배우들은 실제 난민 출신이라 울림이 크다. 콩고민주공화국 난민인 욤비 토나 광주대 자율융복합전공학부 교수(48)는 “난민들이 겪는 역경은 사실적이나 아프리카인을 문명과 동떨어진 미개인으로 그린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욤비 교수는 2002년 한국에 와서 2008년 행정소송을 거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과 핏줄 중시해 반군을 피해 도망친 마메르(아놀드 오셍) 일행은 끊임없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보살핀다. 형은 동생을 위해 대신 잡혀가고, 미국에서 법적 문제로 헤어진 남매는 끝내 함께 살게 된다. 욤비 교수는 “영화에서 조상 이름을 외우는 게임이 자주 나오는데 아프리카에선 흔한 놀이”라면서 “뿌리를 소중히 여기고 가족을 자신보다 아끼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 받는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반군은 성인은 무차별 사살하면서도 어린 소년들은 잡아간다. 인도적인 이유가 아니다. 욤비 교수는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아 맘대로 다루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약을 먹여 움직이는 건 모두 쏘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리거나 ‘총알받이’로 쓰는 일도 흔하다. 천신만고 끝에 해외로 탈출해도 고생은 끝나지 않는다. 마메르는 난민촌에서 의료교육을 받았지만 미국에선 허드렛일만 해야 했다. 욤비 교수도 콩고 내 부족인 키토나왕국 왕자 출신으로 경제학을 전공했다. 정부기관에서 일한 엘리트였지만 한국에선 인쇄나 동물사료 공장을 전전했다.●전화도 쓸 줄 모른다는 건 과장 영화에서 미국에 처음 도착한 난민들은 거실에서 전화가 울려도 뭔지 몰라 우두커니 쳐다본다. 주방기구도 쓸 줄 모른다. 욤비 교수는 “아프리카를 원시 사회 수준으로 보는 편견이 빚어낸 촌극”이라며 “서구사회만큼은 아니어도 문명의 이기에 대한 웬만한 지식은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이런 인식에선 별반 다를 게 없다. 얼마 전 같은 아파트 주민이 ‘아프리카 이웃이 생겨 기쁘다’는 쪽지와 함께 헌옷들을 두고 갔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프리카 사람은 가난하지 않냐. 도와주고 싶다”고 답했다. 좋은 뜻인 줄은 알지만 가족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욤비 교수는 “이 영화를 단순한 동정보단 아프리카의 현실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저도 영화 ‘스물’ 치호(김우빈)처럼 딱히 하고픈 게 없는 잉여인간이었죠. 그래도 찬찬히 살피다보니 하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하다가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청춘은 그래도 되는 때잖아요. 세상이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넘어져도 일어설 여유를 줬으면 좋겠어요.” 영화 ‘스물’이 빵 터졌다. 일단 재밌어서 웃음이 터졌다. 반응도 터졌다. 지난달 25일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일주일 만에 135만 명을 넘었다. 이병헌 감독(35)은 의외로 심드렁해보였다. “배우들이 잘 한거죠. 저야 뭐….” 첫 장편영화로 ‘성공적’ 데뷔전을 치른 그의 속내엔 뭐가 들어있을까. -이렇게 잘 될 줄 예상했나. “무대인사 돌 때 분위기가 뜨겁긴 했다. 상당 부분 주연들 덕이다. 치호 경재(강하늘) 동우(이준호)는 다들 요즘 지구에서 제일 바쁜 친구들 아닌가. 근데 모이기만 하면 깔깔대고…. 셋이 동갑내기라 현장에서 호흡이 워낙 좋았다. 그런 느낌이 스크린에 잘 전해졌다.” -탁월한 배우 선택도 감독 능력 아닌가. “김우빈 이준호는 시나리오 쓸 때부터 염두에 뒀다. 우빈은 생김새도 근사하지만 목소리 톤이 좋았다. 준호는 2PM 시절부터 팬이었다. 강하늘은 첫 만남 때 인사하는데 딱 경재구나 생각했다. 여배우는 고민이 컸다. 자칫 비호감일 수 있는 캐릭터라. 소민(정소민) 소희(이유희) 은혜(정주연) 진주(민효린)…. 고맙게도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이만하면 연출력은 몰라도 배우 보는 안목은 만족스럽다, 흐흐.” -초쳐서 미안한데, 여성 캐릭터는 남성보다 매력적이지 않던데? “끙…, 다 감독 탓이다. 세 남성주인공은 내 분신과도 같다. 치호보다 더 멍 때리며 세월 보냈고, 경재처럼 대학시절 짝사랑에 힘들었다. 동우만큼 알바 뛰며 고생도 했다. 아무래도 더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더라. 헌데 여성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배우들한테 되게 미안하다.” -그래도 다들 예뻤다고 한다. “그렇담 다행이다. 감독이 뭘 어떻게 한 건 없다. 타고난 거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미모들 아닌가.” -요즘 세대 얘긴데 중장년층도 좋아한다. “진짜로? 제일 듣고 싶던 말이다. 몇몇 스태프가 이 영화는 시대가 언제냐고 묻더라. 옛날 감성이 ‘찐’하다고. 기획 때부터 의도했다. 누구나 겪는 스무 살 청춘은 10대와 60대도 통하는 키워드라고 믿었다. 코미디란 장르도 그런 뜻에서 유용했다. 나이 떼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마지막 소소반점의 격투 장면(?)이 웃기긴 한데 꽤 길다. “16초쯤 거둬냈는데도 4분가량 된다. 에어 서플라이 ‘Without You’ 거의 전곡이 나간다. 개인적으로 이 신은 매우 소중했다. 여기서 소소반점은 스무 살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꾀죄죄하지만 어른이 되는 지점. 깡패들은 세월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길 수 없는 존재. 결국 반점에서 쫓겨나듯 나이를 먹는다. 그 심정을 생각하면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했다.” -스무살 때로 돌아가고 싶나. “흠, 리셋하고 새로 살 자신은 없다. 지금 정신상태 그대로라면 잠깐 가보고 싶다. 첫사랑을 한번쯤 만나고 싶은 바람이랄까. 그립긴 한데 막상 돌아가면 또 아옹다옹하겠지. 그게 인생이니까. ‘스물’은 나이 들어도 별 것 없으니 어깨 쳐져 있지 말자고 술잔 건네는 영화다. 지금 그 시절을 살건 지나왔건. 대단치 않아도 각자에겐 소중한. 그게 청춘 아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000만 감독, 노년의 사랑으로 돌아오다.’ 강제규 감독(53)은 한국영화 흥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은행나무 침대’(1996년), ‘쉬리’(1999년),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등 내놓는 작품마다 신드롬을 일으켰다. 특히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효시로 꼽히는 ‘쉬리’는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11년 ‘마이 웨이’는 반응이 신통찮았어도, 강 감독 하면 언제나 대작이 떠오른다. 그가 4년 만에 새 영화를 들고 나왔다. 다음 달 9일 개봉하는 ‘장수상회’다. 70대 평범한 노인들의 사랑 얘기를 다뤘다.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꼽혀 온 강 감독은 변두리의 흔하디흔한 마트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화려한 전투 대신 따뜻한 사랑 70대 성칠(박근형)은 혼자 사는 까칠한 노인네. 장수마트에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심통 맞기만 할 뿐 친절은 찾아볼 수 없다. 온 동네에 재개발 열풍이 불었지만 혼자 동의하지 않아 이웃들 원성까지 자자하다. 그런 성칠에게 어느 날 일생일대의 사건이 찾아온다. 앞집에 단아한 할머니 금님(윤여정)이 이사 온 것. 관심 없는 척 굴었지만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는 금님에게 성칠의 심장은 쿵쾅거리고…. 이를 알게 된 장수마트 사장(조진웅)과 주민들은 재개발 건을 앞두고 그의 호감을 사려 두 사람의 만남을 적극 밀어준다. ‘장수상회’는 외연만 놓고 보면 히트할 조건이 풍족한 작품은 아니다. 두 주인공이 tvN 예능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로 ‘핫’한 배우지만 티켓파워를 지녔다고 말하긴 힘들다. 조진웅 한지민이 출연하지만 조연에 그친다. 순제작비는 37억 원. 지난해 상업영화 1편당 평균 순제작비 43억 원보다 적은 것은 물론이고 전작 마이웨이 280억 원에 비하면 매우 약소한 금액이다. 당연히 눈길을 사로잡을 총질이나 칼싸움도 없다. 허나 장수상회는 ‘알면서도 당하는’ 확실한 무기를 품고 있다. 바로 박근형과 윤여정이란 배우다. 특히 기자간담회에서 “1950년대 청년 연극학도 때로 돌아간 심정으로 연기했다”고 술회한 박근형은 이제 겨우 봄이지만 일찌감치 ‘올해의 남우주연상’에 강력한 후보로 올릴 만하다. 버럭버럭 온갖 성질을 부리면서도 마음 한편에 지닌 따뜻함을 은근슬쩍 들키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네 아버지. 윤여정 역시 연기를 쥐락펴락,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두 배우는 1971∼72년 방영한 MBC 드라마 ‘장희빈’의 숙종과 장희빈 이후 43년 만에 연인으로 재회했단다.○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 그래서 더 아름다운 강제규 감독의 ‘변신’은 사실 지난해 단편 ‘민우 씨 오는 날’로 전초전을 치렀다. 28분짜리 짧은 분량이지만 애절한 사랑 얘기를 짜임새하게 담아냈다. 자신의 모든 걸 잊어가면서도 오랜 연인 민우(고수)를 기다리는 여인 연희(문채원 & 손숙)의 이야기. 다소 정형화된 방식이긴 했어도 울림은 컸다. 장수상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인간의 평생을 지배하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감독은 되묻는다. 장수상회엔 성칠과 금님만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사랑이 그려진다. 통통 튀는 10대 민성(그룹 엑소 멤버 찬열)과 아영(문가영), 상처한 홀아비 장수(조진웅)와 터프한 여걸 박 양(황우슬혜). 그들의 사랑은 말투와 주름살만 다를 뿐이다. 똑같이 두근거리고 조바심 내고 행복하고 상처 입는다. 왜? 사랑하니까.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2015년 또다시 찾아온 노년의 사랑에 관객들은 얼마나 반응할지. 지난해 조병만 강계열 부부를 담은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480만여 명이 봤다. 박근형과 ‘꽃보다 할배’에 같이 출연하는 이순재 주연의 2011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저예산(11억 원)인데도 164만여 명이 관람했다. 장수상회는 국제시장 꽃분이네만큼 장사가 잘될까. 다음 달 23일 ‘어벤져스’의 미국산 초인들이 몰려오기 전에. 12세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000만 감독, 노년의 사랑으로 돌아오다.’ 강제규 감독(53)은 한국영화 흥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은행나무 침대’(1996년) ‘쉬리’(1999년),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등 내놓는 작품마다 신드롬을 일으켰다. 특히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효시로 꼽히는 ‘쉬리’는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11년 ‘마이 웨이’는 반응이 신통찮았어도, 강 감독하면 언제나 대작이 떠오른다. 그가 4년 만에 새 영화를 들고 나왔다. 다음달 9일 개봉하는 ‘장수상회’다. 70대 평범한 노인들의 사랑 얘기를 다뤘다.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꼽혀 온 강 감독은 변두리의 흔하디흔한 마트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화려한 전투 대신 따뜻한 사랑 70대 성칠(박근형)은 혼자 사는 까칠한 노인네. 장수마트에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심통 맞기만 할 뿐 친절은 찾아볼 수 없다. 온 동네에 재개발 열풍이 불었지만 혼자 동의하지 않아 이웃들 원성까지 자자하다. 그런 성칠에게 어느 날 일생일대의 사건이 찾아온다. 앞집에 단아한 할머니 금님(윤여정)이 이사 온 것. 관심 없는 척 굴었지만 우연히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는 금님에게 성칠의 심장은 쿵쾅거리고…. 이를 알게 된 장수마트 사장(조진웅)과 주민들은 재개발 건을 앞두고 그의 호감을 사려 두 사람의 만남을 적극 밀어준다. ‘장수상회’는 외연만 놓고 보면 히트할 조건이 풍족한 작품은 아니다. 두 주인공이 tvN 예능 ‘꽃보다 할배’와 ‘꽃보다 누나’로 ‘핫’한 배우지만 티켓파워를 지녔다고 말하긴 힘들다. 조진웅 한지민이 출연하지만 조연에 그친다. 순제작비는 37억 원. 지난해 상업영화 1편당 평균 순제작비 43억 원보다 적은 것은 물론 전작 마이웨이 280억 원에 비하면 매우 약소한 금액이다. 당연히 눈길을 사로잡을 총질이나 칼싸움도 없다. 허나 장수상회는 ‘알면서도 당하는’ 확실한 무기를 품고 있다. 바로 박근형과 윤여정이란 배우다. 특히 기자간담회에서 “1950년대 청년 연극학도 때로 돌아간 심정으로 연기했다”고 술회한 박근형은 이제 겨우 봄이지만 일찌감치 ‘올해의 남우주연상’에 강력한 후보로 올릴 만하다. 버럭버럭 온갖 성질을 부리면서도 마음 한 편에 지닌 따뜻함을 은근슬쩍 들키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네 아버지. 윤여정 역시 연기를 쥐락펴락,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두 배우는 1971~2년 방영한 MBC 드라마 ‘장희빈’의 숙종과 장희빈 이후 43년 만에 연인으로 재회했단다.●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 그래서 더 아름다운 강제규 감독의 ‘변신’은 사실 지난해 단편 ‘민우 씨 오는 날’로 전초전을 치렀다. 28분짜리 짧은 분량이지만 애절한 사랑 얘기를 짜임새하게 담아냈다. 자신의 모든 걸 잊어가면서도 오랜 연인 민우(고수)를 기다리는 여인 연희(문채원 & 손숙)의 이야기. 다소 정형화된 방식이긴 했어도 울림은 컸다. 장수상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인간의 평생을 지배하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감독은 되묻는다. 장수상회엔 성칠과 임금만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사랑이 그려진다. 통통 튀는 10대 민성(그룹 엑소 멤버 찬열)과 아영(문가영), 상처한 홀아비 장수(조진웅)와 터프한 여걸 박 양(황우슬혜). 그들의 사랑은 말투와 주름살만 다를 뿐이다. 똑같이 두근거리고 조바심 내고 행복하고 상처 입는다. 왜? 사랑하니까.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2015년 또 다시 찾아온 노년의 사랑에 관객들은 얼마나 반응할지. 지난해 조병만 강계열 부부를 담은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480만여 명이 봤다. 박근형과 ‘꽃보다 할배’에 같이 출연하는 이순재 주연의 2011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저예산(11억 원)인데도 164만여 명이 관람했다. 장수상회는 국제시장 꽃분이네만큼 장사가 잘 될까. 다음달 23일 ‘어벤져스’의 미국산 초인들이 몰려오기 전에. 12세 관람가.정양환기자 ray@donga.com}
13세 소녀 릴리(프소터 조피어)에게 가장 큰 친구는 애완견 하겐.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조테르 산도르)에게 잠시 와있는 동안 하겐은 이리저리 구박받는다. 헝가리엔 순수혈통이 아닌 잡종견에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정책이 있기 때문. 결국 딸과 개 문제로 갈등을 빚던 아버지는 하겐을 내다버리고…. 홀로 남겨진 하겐은 길을 잃고 헤매다 노숙자에게 붙잡힌 뒤 어디론가 팔려간다. 릴리는 하겐을 애타게 찾지만 하겐은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들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컴퓨터그래픽(CG) 효과 없이 만든 가장 위대한 개 영화”라는 영국 신문 ‘더 타임스’의 평처럼 다음 달 2일 개봉하는 헝가리 영화 ‘화이트 갓’은 위대한진 몰라도 확실히 개 영화다. 주인공 하겐을 비롯해 온통 개 천지다. CG도 사용 안 하고 이 많은 개를 카메라에 담았다니. 일단 애견인들은 필히 보시라. 잠깐. 권하긴 했으나 막상 보고 나면 짱돌을 던질지 모르겠다. 하겐이 겪는 고통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탓이다. 말 못하는 짐승이란 이유로, 인간의 잣대로 가른 잡종이란 이유로 개들을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특히 불법 투견장에 팔려가 동족과 피를 보며 싸워야 하는 하겐의 처연함은 정면으로 응시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인가. 후반부 하겐이 유기견들과 함께 보호소를 탈출해 인간을 습격하는 장면은 꽤나 통쾌하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묘하게 하겐의 눈빛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유인원을 이끌던 시저와 닮았다. 살짝 억지스러운 대목도 있다. 제 주인 릴리도 못 찾을 정도로 길을 헤매던 개가 분노로 각성했다고 갑자기 인간보다 똑똑해지다니. 그냥 동유럽 개그라 치고 넘어가기엔 헐거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화이트 갓’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영화다. 제목(‘White God’) 자체가 그렇다. 과거 백인들이 유색인종을 차별하며 신처럼 굴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린 인간이란 우월성에 사로잡혀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거리가 개들의 공격으로 텅 비어버릴 때, 인간이 세운 문명이란 게 과연 다른 생물들이 보기에도 위대할지 자문하게 된다. 지난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 수상작. 15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배우는 삶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쪼개서 보여주는 직업입니다. 영화 ‘화장’은 인간에겐 숙명인 죽음과 사랑에 대한 질문이 담겨있죠. 삭발이나 노출은 이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인간적으론 힘들어도 당연히 해야죠.” 다음 달 9일 개봉하는 영화 ‘화장’은 이래저래 주목도가 높다. 거장 임권택 감독에 원작 소설은 김훈 작가, 거기에 배우 안성기까지. 허나 영화를 보고 나면 또 하나의 ‘배우’가 또렷이 새겨진다. 바로 오상무(안성기)의 아내를 연기한 배우 김호정(47)이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율곡로의 한 찻집에서 만난 그는 요즘 세간의 관심에 기쁨보다 안타까움이 커보였다. 김호정은 “(노출은) 꼭 필요한 신이라 자연스레 찍었는데 너무 자극적으로 다뤄진다”며 “많은 배려를 해준 감독님과 동료 배우, 스태프에게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역할이 이름도 없이 ‘아내’다. “원작부터 그랬다. 그런데 연기할 땐 이런 익명성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나 자기 일처럼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내는 원래는 커리어우먼이었지만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로 설정됐다. 그런데 덜컥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주위에 이런 어머니들 참 많지 않나.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운명 앞에 좌절하는. 촬영 내내 마음이 쓰라렸다.” ―진짜 시한부처럼 연기가 리얼했다.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끝까지 숨기려 했는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미 알려졌으니…. 2000년대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다. 병명은…, 그냥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병이라고만 해두자. 그래서 죽음을 앞에 둔다는 게 뭔지 안다. 기적적으로 회복됐지만, 처음 출연 제의를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는 게 너무 두려웠다. 허나 거장의 작품에 참여하는 건 배우로서 영광 아닌가. 고심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 ―출연하길 잘한 거 같은가. “물론이다. 내가 정말 얼마나 연기를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영화 ‘나비’(2001년)로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 청동표범상(여우주연상) 받던 시절엔 절실함이 없었다. 특히 2003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방황이 심했다. 게다가 중병까지 얻고…. ‘화장’은 철저히 신인으로 돌아가 초심으로 찍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훌륭한 감독과 동료배우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나 보다. “물론 임 감독님은 현장에서 엄하시다. 그런데 촬영장 바깥에선 굉장히 인자하셨다. 배우의 고충을 잘 이해해 주셨다. 안성기 선배는 알려진 대로 친절했다. 그런데 너무 젠틀맨 이미지가 강조돼 그가 가진 연기의 열정이 묻히는 것 같다. 함께 연기해 보니 남은 1%라도 더 짜내서 연기에 밀어 넣는 배우였다. 게다가 상대 배우의 연기까지 끌어올리는 힘을 지녔다. 김규리는 보석 같았다. 통통 튀는 에너지 덕분에 나까지 힘이 났다.”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도 출연하고 있다. “너무 즐겁다. 비중도 크지 않고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배우는 게 많다. 배우에겐 주연 조연이 없다. 마찬가지로 매체도 상관없다. 7월부터는 명동예술극장의 러시아 연극 ‘아버지와 아들’(9월 개막) 준비에 들어간다. 논문(동국대 대학원)을 끝내고 나면 연극 연출도 준비할 계획이다. 연기 할 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시간이 갈수록 깨닫는다. 배우는 무대에 서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 ‘화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투병하는 아내를 돌보면서 젊은 동료 직원 추은주(김규리)에게 흔들리는 오상무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베니스와 토론토, 밴쿠버 영화제 등에 초청돼 “죽음과 욕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았다”는 평을 받았다. 주연 안성기 김규리는 각각 ‘취화선’(2002년)과 ‘하류인생’(2004년) 이후 10여 년 만에 임 감독과 함께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3세 소녀 릴리(조피아 프소타)에게 가장 큰 친구는 애완견 하겐.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산도르 즈소테르)에게 잠시 와있는 동안 하겐은 이리저리 구박받는다. 헝가리엔 순수혈통이 아닌 잡종견에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정책이 있기 때문. 결국 딸과 개 문제로 갈등을 빚던 아버지는 하겐을 내다버리고…. 홀로 남겨진 하겐은 길을 잃고 헤매다 노숙자에게 붙잡힌 뒤 어디론가 팔려간다. 릴리는 하겐을 애타게 찾지만 하겐은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들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컴퓨터그래픽(CG) 효과 없이 만든 가장 위대한 개 영화”라는 영국 신문 ‘더 타임스’의 평처럼 다음달 2일 개봉하는 헝가리 영화 ‘화이트 갓’은 위대한진 몰라도 확실히 개 영화다. 주인공 하겐을 비롯해 온통 개 천지다. CG도 사용 안 하고 이 많은 개를 카메라에 담았다니. 일단 애견인들은 필히 보시라. 잠깐. 권하긴 했으나 막상 보고나면 짱돌을 던질지 모르겠다. 하겐이 겪는 고통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탓이다. 말 못 하는 짐승이란 이유로, 인간의 잣대로 가른 잡종이란 이유로 개들을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특히 불법 투견장에 팔려가 동족과 피를 보며 싸워야 하는 하겐의 처연함은 정면으로 응시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인가. 후반부 하겐이 유기견들과 함께 보호소를 탈출해 인간을 습격하는 장면은 꽤나 통쾌하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묘하게 하겐의 눈빛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유인원을 이끌던 시저와 닮았다. 살짝 억지스런 대목도 있다. 제 주인 릴리도 못 찾을 정도로 길을 헤매던 개가 분노로 각성했다고 갑자기 인간보다 똑똑해지다니. 그냥 동유럽 개그라 치고 넘어가기엔 헐거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화이트 갓’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영화다. 제목(White God) 자체가 그렇다. 과거 백인들이 유색인종을 차별하며 신처럼 굴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린 인간이란 우월성에 사로잡혀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름다운 부다페스트 거리가 개들의 공격으로 텅 비어버릴 때, 인간이 세운 문명이란 게 과연 다른 생물들이 보기에도 위대할지 자문하게 된다. 지난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 수상작. 15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배우는 삶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쪼개서 보여주는 직업입니다. 영화 ‘화장’은 인간에겐 숙명인 죽음과 사랑에 대한 질문이 담겨있죠. 삭발이나 노출은 이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인간적으론 힘들어도 당연히 해야죠.” 다음달 9일 개봉하는 영화 ‘화장’은 이래저래 주목도가 높다. 거장 임권택 감독에 원작 소설은 김훈 작가. 거기에 배우 안성기까지. 허나 영화를 보고나면 또 하나의 ‘배우’가 또렷이 새겨진다. 바로 오상무(안성기)의 아내를 연기한 배우 김호정(47)이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율곡로의 한 찻집에서 만난 그는 요즘 세간의 관심에 기쁨보다 안타까움이 커보였다. 김호정은 “(노출은) 꼭 필요한 신이라 자연스레 찍었는데 너무 자극적으로 다뤄진다”며 “많은 배려를 해준 감독님과 동료 배우, 스태프에게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역할이 이름도 없이 ‘아내’다. “원작부터 그랬다. 그런데 연기할 땐 이런 익명성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나 자기 일처럼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내는 원래는 커리어우먼이었지만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이란 설정이다. 그런데 덜컥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주위에 이런 어머니들 참 많지 않나.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운명 앞에 좌절하는. 촬영 내내 마음이 쓰라렸다.” -진짜 시한부처럼 연기가 리얼했다.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끝까지 숨기려 했는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미 알려졌으니…. 2000년대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다. 병명은…, 그냥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병이라고만 해두자. 그래서 죽음을 앞에 둔다는 게 뭔지 안다. 기적적으로 회복됐지만, 처음 출연 제의를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는 게 너무 두려웠다. 허나 거장의 작품에 참여하는 건 배우로서 영광 아닌가. 고심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 -출연하길 잘 한 거 같나. “물론이다. 내가 정말 얼마나 연기를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영화 ‘나비’(2001년)로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 청동표범상(여우주연상) 받던 시절엔 절실함이 없었다. 특히 2003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방황이 심했다. 게다가 중병까지 얻고…. ‘화장’은 철저히 신인으로 돌아가 초심으로 찍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훌륭한 감독과 동료배우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나 보다. “물론 임 감독님은 현장에서 엄하시다. 그런데 촬영장 바깥에선 굉장히 인자하셨다. 배우의 고충을 잘 이해해주셨다. 안성기 선배는 알려진 대로 친절했다. 그런데 너무 젠틀맨 이미지가 강조돼 그가 가진 연기의 열정이 묻히는 것 같다. 함께 연기해보니 남은 1%라도 더 짜내서 연기에 밀어 넣는 배우였다. 게다가 상대배우의 연기까지 끌어올리는 힘을 지녔다. 김규리는 보석 같았다. 통통 튀는 에너지 덕분에 나까지 힘이 났다.”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도 출연하고 있다. “너무 즐겁다. 비중도 크지 않고 육체적으론 힘들지만 배우는 게 많다. 배우에겐 주연 조연이 없다. 마찬가지로 매체도 상관없다. 7월부터는 명동예술극장의 러시아연극 ‘아버지와 아들’(9월 개막) 준비에 들어간다. 논문(동국대 대학원) 끝내고나면 연극 연출도 준비할 계획이다. 연기할 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시간이 갈수록 깨닫는다. 배우는 무대에 서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영화 ‘화장’은::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투병하는 아내를 돌보면서 젊은 동료직원 추은주(김규리)에게 흔들리는 오상무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베니스와 토론토, 밴쿠버 영화제 등에 초청돼 “죽음과 욕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았다”는 평을 받았다. 주연 안성기 김규리는 각각 ‘취화선’(2002년)과 ‘하류인생’(2004년) 이후 10여 년 만에 임 감독과 조우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TV 예능·정보 프로그램, ‘소소한 사치(small luxury)’에 빠지다.” 지난해 하반기 LG경제연구원은 ‘절제된 소비의 탈출구, 작은 사치가 늘고 있다’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여기서 작은 사치란 목돈이 드는 상품 대신 소비자가 감당할 만한 비용의 아이템을 구매하며 만족감을 얻는 행위를 일컫는다. 명품업계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로 고가의 의류나 가방 대신 부담이 적은 유명 브랜드의 립스틱이나 스타킹을 사는 경우다. 최근 방송가에도 이런 소비 경향이 짙게 드리웠다. 고급 맛집 안내보다는 직접 음식을 해먹는 ‘쿡방(요리 방송)’이 대세다. 뷰티 프로그램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제품을 앞다퉈 소개하고, 화려한 해외관광보다는 저렴한 배낭여행이나 국내 가족여행을 주로 다룬다.○ 외식보다 집밥, 브랜드보다는 칩 시크(cheap chic) ‘스몰 럭셔리’가 가장 도드라진 분야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 화제의 tvN ‘삼시세끼’나 올리브TV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는 직접 만드는 요리가 메인 소재다. 지상파 예능에도 ‘집밥’이 빠지지 않는다.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MBC ‘나 혼자 산다’ 등은 음식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출연자의 요리 장면을 줄기차게 보여준다. 채널A ‘잘 살아보세’도 남한 남성과 탈북 여성이 가족을 이뤄 생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정작 시청자는 출연자들이 만든 ‘오징어순대’ ‘토끼탕’ 등 북한 요리에 관심이 뜨겁다. ‘신동엽…’을 연출하는 석정호 PD는 “특급주방장의 일품요리 레시피나 유명 레스토랑을 소개하던 포맷은 줄어드는 추세”라며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드는 음식이나 대를 이어 내려오는 점포(노포·老鋪)를 발굴하는 게 요즘 예능 트렌드”라고 말했다. 뷰티 프로그램도 ‘소소한 사치’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온스타일 ‘겟 잇 뷰티’나 올해 시즌5를 맞은 패션N ‘팔로우 미’가 대표적. 최근 이들의 화두는 ‘칩 시크’(저렴하나 세련된) 제품. 올해 초 ‘겟 잇 뷰티’는 ‘만원의 행복’이란 코너를 통해 1만 원 이하 미용제품을 방송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팔로우 미’의 김현아 PD는 “시즌1 방송 땐 명품과 고가브랜드가 주목받았다면 최근엔 적은 비용으로 만족도가 높은 제품에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지상파로도 확장됐다. KBS2는 지상파에서는 최초로 뷰티 프로그램 ‘어 스타일 포 유’를 다음 달 5일 방송한다. 역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 초점을 맞춘다. 여행이나 건강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국내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캠핑이나 낚시 여행을 다루는 내용이 많다. 건강 역시 최소 비용을 추구한다. 최근 시청률 4∼5%가 나오며 수요일 밤의 강자로 등장한 채널A ‘나는 몸신이다’는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법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비싼 한방 침이나 약선(藥膳·약이 되는 요리)을 다루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경기불황이 주요인, 과한 소비엔 반발 ‘소소한 사치’가 방송가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명확하다. 저성장시대가 이어지며 체감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실제 명품업계도 스몰 럭셔리 현상이 일어나는 시기는 불황과 맞물린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시청자들이 적은 비용으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방송에도 요구하는 셈.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현재를 즐기는 아이템에 몰입하고 있다”며 “소비를 통한 찰나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아끼고 저축하던 20세기와 결이 다르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도가 과할 땐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요즘 대세인 육아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쓰는 육아용품이나 외출 장소는 방송에 나올 때마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삼둥이가 쓰는 턱받이는 없어서 못 팔 지경. 허나 일부 출연자가 입은 프리미엄 패딩이나 특급호텔 캠핑장은 지탄을 받았다. 어느 정도의 사치는 받아들이되 선을 넘는 ‘빅 럭셔리’엔 강하게 반발한다. 간과해선 안 될 대목도 있다. 소소한 사치 역시 상업성이란 토대 위에 자라났다. 스몰 럭셔리의 핵심 분야는 화장품이나 아웃도어 제품, 주방용품. 최근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고 큰 시장이다. 정 평론가는 “시청자에겐 ‘작은’ 구매일지 몰라도 관련업계는 소비에 집중한다”며 “방송과 연계된 시장이 확실해 서로 이득을 얻는 구조라 이런 흐름이 발 빠르게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TV 예능·정보 프로그램, ‘소소한 사치(small luxury)’에 빠지다.” 지난해 하반기 LG경제연구원은 ‘절제된 소비의 탈출구, 작은 사치가 늘고 있다’란 보고서를 내놓았다. 여기서 작은 사치란 목돈이 드는 상품 대신 소비자가 감당할만한 비용의 아이템을 구매하며 만족감을 얻는 행위를 일컫는다. 명품업계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로 고가의 의류·가방 대신 부담이 덜한 유명 브랜드의 립스틱이나 스타킹을 사는 경우다. 최근 방송가에도 이런 소비경향이 짙게 드리웠다. 고급 맛집 안내보단 직접 음식을 해먹는 ‘쿡방(요리 방송)’이 대세다. 뷰티프로그램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제품을 앞 다퉈 소개하고, 화려한 해외관광보단 저렴한 배낭여행이나 국내 가족여행을 주로 다룬다.●외식보다 집 밥, 브랜드보단 칩 시크(cheap-chic) ‘스몰 럭셔리’가 가장 도드라진 분야는 음식 관련 프로그램. 화제의 tvN ‘삼시세끼’나 올리브TV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는 직접 만드는 요리가 메인 소재다. 지상파 예능도 ‘집 밥’이 빠지지 않는다.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MBC ‘나 혼자 산다’ 등은 음식프로그램이 아닌데도 출연자의 요리 장면을 줄기차게 보여준다. 채널A ‘잘 살아보세’도 남한 남성과 탈북 여성이 가족으로 생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정작 시청자는 출연자들이 만든 ‘오징어순대’ ‘토끼탕’ 등 북한 요리에 관심이 뜨겁다. ‘신동엽…’을 연출하는 석정호 PD는 “특급주방장의 일품요리 레시피나 유명 레스토랑을 소개하던 포맷은 줄어드는 추세”라며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드는 음식이나 대를 이어 내려오는 노포(老鋪)를 발굴하는 게 요즘 예능 트렌드”라고 말했다. 뷰티프로그램도 ‘소소한 사치’를 지향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온스타일 ‘겟 잇 뷰티’나 올해 시즌5를 맞은 패션N ‘팔로우 미’가 대표적. 최근 이들의 화두는 ‘칩 시크(저렴하나 세련된)’ 제품. 올해 초 ‘겟 잇 뷰티’는 ‘만원의 행복’이란 코너를 통해 1만 원 이하 미용제품을 방송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팔로우 미’의 김현아 PD는 “시즌1 방송 땐 명품과 고가브랜드가 주목받았다면 최근엔 적은 비용으로 만족도가 높은 제품에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지상파로도 확장됐다. KBS2는 지상파에서는 최초로 뷰티프로그램 ‘어 스타일 포 유’를 다음달 5일 방송한다. 역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 초점을 맞춘다. 여행이나 건강프로그램도 마찬가지. 국내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캠핑이나 낚시 여행을 다루는 내용이 많다. 건강 역시 최소 비용을 추구한다. 최근 시청률 4~5%가 나오며 수요일 밤의 강자로 등장한 채널A ‘나는 몸신이다’는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운동법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비싼 한방 침이나 약선(藥膳·약이 되는 요리)을 다루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경기불황이 주 요인, 과한 소비엔 반발 ‘소소한 사치’가 방송가에서 인기 끄는 이유는 명확하다. 저성장시대가 이어지며 체감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실제 명품업계도 스몰 럭셔리 현상이 일어나는 시기는 불황과 맞물린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시청자들이 적은 비용으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방송에도 요구하는 셈.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현재를 즐기는 아이템에 몰입하고 있다”며 “소비를 통한 찰나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아끼고 저축하던 20세기와 결이 다르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도가 과할 땐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요즘 대세인 육아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쓰는 육아용품이나 외출 장소는 방송에 나올 때마다 포탈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삼둥이가 쓰는 턱받이는 없어서 못 팔 지경. 허나 일부 출연자가 입은 프리미엄 패딩이나 특급호텔 캠핑장은 지탄을 받았다. 어느 정도의 사치는 받아들이되 선을 넘은 ‘빅 럭셔리’엔 강하게 반발한다. 간과해선 안 될 대목도 있다. 소소한 사치 역시 상업성이란 토대 위에 자라났다. 스몰 럭셔리의 핵심 분야는 화장품이나 아웃도어제품, 주방용품. 최근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고 큰 시장이다. 정 평론가는 “시청자에겐 ‘작은’ 구매일지 몰라도 관련업계는 소비에 집중한다”며 “방송과 연계된 시장이 확실해 서로 이득을 얻는 구조라 이런 흐름이 발 빠르게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내용도 결말도 다 안다. 그래도 보러 가고 싶을까. 19일 선보인 영화 ‘신데렐라’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단 해외 반응은 뜨겁다. 북미에선 개봉 첫 주 7000만 달러(약 790억 원) 넘게 벌어들였다. 박스오피스 1위. 중국도 장난 아니다. 나흘 만에 1억7900만 위안(약 323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줄거리는 소개하기도 민망하다. 그 ‘재투성이 아가씨’ 얘기 그대로다. 몇 군데 좁쌀만 한 양념을 빼면 다음 장면이 뭔지 맞힐 수 있을 정도. 계모와 의붓 자매에게 시달리던 신데렐라가 요정의 도움을 얻어 왕자의 사랑을 얻는다. 유리구두도 호박마차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말하다 보니 알쏭달쏭하다. 외국에선 왜 이리 열광하는 거야. 아마도 그건 ‘신데렐라’가 집밥 같은 작품이라서가 아닐까. 정통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그간 실사영화는 기존 동화를 뒤튼 작품이 많았다. 지난해 말 나왔던 뮤지컬 영화 ‘숲속으로’는 종합선물세트였다. 신데렐라는 물론이고 ‘라푼젤’ ‘잭과 콩나무’ ‘빨간 모자’ 등이 버무려진 푸짐한 퓨전 요리. 허나 산해진미도 거듭되면 질리는 법. 엄마 혹은 아내가 끓인 찌개가 훨씬 군침 도는 경험을 ‘신데렐라’는 선사한다. 이 집밥이 한층 돋보이는 건 정성 들여 꾸민 식탁과 식기 덕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에비에이터’ ‘영 빅토리아’로 미국 아카데미 의상상을 3번이나 받은 샌디 파월. 역시 ‘에비에이터’와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로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은 단테 페레티. 두 의상·미술감독이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현실동화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배우도 근사하다. 남녀 주인공은 국내에서도 방영된 영국, 미국 드라마로 친숙한 이들. 영드 ‘다운턴 애비’로 주목받은 릴리 제임스가 신데렐라를, 미드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리처드 매든이 왕자를 맡았다. 계모와 요정 대모는 완벽하다. 케이트 블란쳇과 헬레나 보넘 카터가 제대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블란쳇은 “우린 ‘햄릿’의 결말을 알아도 계속 연극을 보러 가고 싶어 한다. 좋은 영화는 관객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멋진 배우는 말도 잘한다. 관객을 유혹하는 볼거리는 영화 바깥에도 존재한다. 본편 상영 전에 지난해 국내에서도 천만 관객을 동원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단편 ‘프로즌 피버(Frozen Fever)’를 선보인다. 전체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내용도 결말도 다 안다. 그래도 보러가고 싶을까. 19일 선보인 영화 ‘신데렐라’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단 해외 반응은 뜨겁다. 북미에선 개봉 첫 주 7000만 달러(약 790억 원) 넘게 벌어들였다. 박스오피스 1위. 중국도 장난 아니다. 나흘 만에 7900만 위안(약 322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줄거리는 소개하기도 민망하다. 그 ‘재투성이 아가씨’ 얘기 그대로다. 몇 군데 좁쌀만한 양념을 빼면 다음 장면이 뭔지 맞출 수 있을 정도. 계모와 의붓 자매에게 시달리던 신데렐라가 요정의 도움을 얻어 왕자의 사랑을 얻는다. 유리구두도 호박마차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말하다보니 알쏭달쏭하다. 외국에선 왜 이리 열광하는 거야. 아마도 그건 ‘신데렐라’가 집밥 같은 작품이라서가 아닐까. 정통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그간 실사영화는 기존 동화를 뒤튼 작품이 많았다. 지난해 말 나왔던 뮤지컬영화 ‘숲 속으로’는 종합선물세트였다. 신데렐라는 물론이고 ‘라푼젤’ ‘잭과 콩나무’ ‘빨간 모자’ 등이 버무려진 푸짐한 퓨전 요리. 허나 산해진미도 거듭 되면 질리는 법. 엄마 혹은 아내가 끓인 찌개가 훨씬 군침 도는 경험을 ‘신데렐라’는 선사한다. 이 집밥이 한층 돋보이는 건 정성들여 꾸민 식탁과 식기 덕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 ‘에비에이터’ ‘영 빅토리아’로 미국 아카데미 의상상을 3번이나 받은 샌디 파웰. 역시 ‘에비에이터’와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로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은 단테 헤레티. 두 의상·미술감독이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현실동화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배우도 근사하다. 남녀주인공은 국내에서도 방영된 영국, 미국 드라마로 친숙한 이들. 영드 ‘다운튼 애비’로 주목받은 릴리 제임스가 신데렐라를, 미드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리처드 매든이 왕자를 맡았다. 계모와 요정 대모는 완벽하다. 케이트 블란쳇과 헬레나 본햄 카터가 제대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블란쳇은 “우린 ‘햄릿’의 결말을 알아도 계속 연극을 보러가고 싶어 한다. 좋은 영화는 관객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멋진 배우는 말도 잘한다. 관객을 유혹하는 볼거리는 영화 바깥에도 존재한다. 본편 상영 전에 지난해 국내에서도 천만 관객을 동원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단편 ‘프로즌 피버(Frozen Fever)’를 선보인다. 전체 관람가.정양환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