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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이 망자를 놀라게 하려는 듯 두 손을 높이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높이 176cm, 무게 128kg의 거구지만 입을 벌려 웃는 표정은 무섭기보다 천진난만하다. 13∼16세기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번성한 아스테카 문화의 ‘믹틀란테쿠틀리’ 소조상이다. 아스테카인은 인간이 지하세계에서 나온 거인의 뼈로 창조됐다고 믿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고 믿은 것. 멕시코에 2점만 현존하는 믹틀란테쿠틀리 소조상이 3일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특별전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한-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과 독일 린덴박물관 등 11개 해외 박물관 소장품 208점을 선보인다. 아스테카는 마야, 잉카와 더불어 중앙아메리카의 3대 문명으로 꼽힌다. 총 5부로 구성된 전시는 1521년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 전까지 아스테카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1부에서는 아스테카의 걸작 ‘태양의 돌’을 재현한 3차원(3D)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태양의 돌은 16세기 초 아스테카 왕 목테수마 2세가 제작한 지름 358cm, 두께 98cm, 무게 25t의 대형 원형 석조물이다. 3D 조형물 위에 생명의 원천인 태양을 지키기 위한 희생제의 영상을 투사한다. 2부 ‘아스테카의 자연과 사람들’에서는 곡물을 손에 쥔 옥수수의 신 ‘실로넨’ 조각상 등 바람과 곡물을 형상화한 토착 신을 만나볼 수 있다. 3∼5부에서는 아스테카 최대 도시 테노츠티틀란의 위엄을 선보인다. 14∼16세기 테노츠티틀란의 전경을 묘사한 그림을 배경으로 거대한 ‘독수리 머리 석상’이 전시돼 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4배에 달한 테노츠티틀란에는 4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한 20만 명이 모여 살았다. 독수리 머리 석상은 도시 중심부 신전의 건물 외벽을 장식한 조각상으로 아스테카 문화에서 태양을 상징한다. ‘템플로 마요르’ 신전에서 2015년 무렵 나온 봉헌물 80여 점이 발굴 후 처음으로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북, 호루라기 등 악기를 본뜬 석조물과 제사용 토기 위주다. 고고학자들은 아스테카 신화에서 예술의 신을 상징하는 ‘소치필리’에게 바치는 일종의 제물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템플로 마요르 신전은 1521년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에 의해 파괴됐지만 1978년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8월 28일까지. 3000∼5000원.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부처님오신날(8일)을 축하하는 대규모 연등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3년 만에 서울 도심에서 열렸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부처님오신날을 일주일 앞둔 1일과 전날인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등 도심에서 ‘2022 연등회’를 열었다. 연등회의 꽃이라 불리는 연등행렬은 지난달 30일 오후 7시 종로구 흥인지문에서 시작해 종로구 일대를 거쳐 조계사까지 이어졌다. 1일에는 조계사 앞과 안국동 무대 등에서 50여 개 부스가 참여하는 ‘전통문화마당’ 행사가 열려 풍물놀이, 어린이 공연이 거리에서 펼쳐졌다. 코로나19 거리 두기가 풀리면서 이틀간 종로구 일대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다. 2020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뒤 처음 열린 이번 행사의 주제는 ‘다시 희망이 꽃피는 일상으로’. 2019년을 마지막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축소되거나 취소됐던 대규모 연등회를 재개하며 일상 회복에 대한 소망을 담았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장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열린 사전행사에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가 끝나가고 연등회가 빛을 밝혔다”며 “다시 희망이 꽃피는 일상을 위해 연등을 밝히자”고 말했다. ‘전통등 전시회’는 서울 청계천에서 10일까지, 조계사 및 강남구 봉은사에서 11일까지 열린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세상의 끝은 늘 파란색이었다. 인류가 대양을 항해하기 전 푸른 수평선 너머는 미지의 세계를 뜻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비싼 색은 단연 쪽빛 ‘울트라마린’이었다. 13세기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청금석을 빻아 만든 아프가니스탄산 파란 안료를 ‘올트레마레(Oltremare)’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어로 바다 건너에서 왔다는 뜻. 파란색 자체가 다른 세상을 상징한 셈이다. 하지만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이 푸른 하늘 너머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돈 날부터 인류에게 파랑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가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구는 푸른 후광을 갖고 있어요.” 하늘 너머 세상의 끝을 탐험한 인류가 내린 결론은 오랜 세월 다른 세계의 색이라고 여겼던 파랑이 우리 지구의 색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이매뉴얼 칼리지 미술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심리학, 언어학, 고인류학 등을 넘나들며 검정, 하양, 파랑 등 7가지 색에 대한 사회문화사를 풀어냈다. 페르시아 시인의 노랫말과 존 밀턴의 ‘실낙원’, 클로드 모네의 작품 등 색채와 얽힌 예술사도 흥미롭다. 저자에게 “색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책은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가 색에 대해 품었던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색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은 “색은 우리 뇌와 세상이 만나는 장소”라고 말했다. 저자는 색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 색을 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창조물이라고 본다. 일례로 영미권에서 초록은 질투의 색을 의미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공포, 태국에서는 분노, 러시아에선 지루함을 뜻한다. 색의 의미는 시대나 문화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흑백이 대표적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전 우주의 악당 다스베이더는 왜 검정 옷을 입고 그에 맞선 제다이는 흰옷을 입을까. 저자는 흑백 클리셰는 죽음의 신 하데스가 사는 지하세계를 검은색으로 상상했던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애초에 성경에서는 검정이 아닌 핏빛의 진홍색을 악하다고 여겼지만 서기 4세기경 그리스 신화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도들이 “죄가 우리를 검게 만든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기독교 문화권에도 검정이 악을 상징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흑백 논리는 지금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유아를 대상으로 진행한 ‘색 의미 검사’에서 86%의 아이들은 검정을 나쁘다고 인식했다. 검은 피부에 대한 편협한 사고가 잔존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색의 의미는 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창조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색은 다르게 보려는 자에게 다르게 읽히는 법. 오늘날 기득권에 저항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새로운 검정(the new black)’이라 부르는 이유는 미술사에서 그림자나 악마를 칠하는 데 쓰였던 검은색을 캔버스 전면에 바른 예술가들, 검은색 피부에 대한 차별에 맞선 인권운동가들 덕분이다. 색의 역사는 편협한 사고를 허물며 더욱 다채로워졌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세상의 끝은 늘 파란색이었다. 인류가 대양을 항해하기 전 푸른 수평선 너머는 미지의 세계를 뜻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비싼 색은 단연 쪽빛 ‘울트라마린’이었다. 13세기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청금석을 빻아 만든 아프가니스탄산 파란 안료를 ‘올트레마레(Oltremare)’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어로 바다 건너에서 왔다는 뜻. 파란색 자체가 다른 세상을 상징한 셈이다. 하지만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이 푸른 하늘 너머 지구 궤도를 한바퀴 돈 날 인류에게 파랑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가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구는 푸른 후광을 갖고 있어요.” 하늘 너머 세상의 끝을 탐험한 인류가 내린 결론은 오랜 세월 다른 세계의 색이라고 여겼던 파랑이 우리 지구의 색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이매뉴얼 칼리지 미술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심리학, 언어학, 고인류학 등을 넘나들며 검정, 하양, 파랑 등 7가지 색에 대한 사회문화사를 풀어냈다. 페르시아 시인의 노랫말과 존 밀턴의 ‘실낙원’, 클로드 모네의 작품 등 색채와 얽힌 예술사도 흥미롭다. 저자에게 “색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책은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이 색에 대해 품었던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색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은 “색은 우리 뇌와 세상이 만나는 장소”라고 말했다. 저자는 색이란 그 자체로 존재하기보다 색을 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라고 본다. 일례로 영미권에서 초록은 질투의 색을 의미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공포, 태국에서는 분노, 러시아에선 지루함을 뜻한다. 색의 의미는 시대나 문화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흑백이 대표적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전 우주의 악당 다스베이더는 왜 검정 옷을 입고 그에 맞선 제다이는 흰 옷을 입을까. 저자는 흑백 클리셰는 죽음의 신 하데스가 사는 지하세계를 검정색으로 상상했던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애초에 성경에서는 검정이 아닌 핏빛의 진홍색을 악하다고 여겼지만 서기 4세기경 그리스 신화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도들이 “죄가 우리를 검게 만든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기독교 문화권에도 검정이 악을 상징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흑백 논리는 지금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유아를 대상으로 진행한 ‘색 의미 검사’에서 86%의 아이들은 검정을 나쁘다고 인식했다. 검은 피부에 대한 편협한 사고가 잔존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색의 의미는 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창조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색은 다르게 보려는 자에게 다르게 읽히는 법. 오늘날 기득권에 저항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새로운 검정(the new black)’이라 부르는 이유는 미술사에서 그림자나 악마를 칠하는 데 쓰였던 검정색을 캔버스 전면에 바른 예술가들, 검은 피부에 대한 차별에 맞선 인권운동가들 덕분이다. 색의 역사는 편협한 사고를 허물며 더욱 다채로워졌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올 11월 세계 석학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고발장을 유엔 총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 70주년을 맞은 올해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메디치미디어)를 출간하며 28일 이렇게 밝혔다.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에 면죄부를 준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극복해야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 김 명예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 한국은 아예 서명국에서도 배제됐다”며 “2005년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피해자 중심 원칙’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무효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세계 지식인들의 고발장”이라고 덧붙였다. 신간에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와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 등 국내외 역사, 정치, 국제법 전공 저명학자 23명의 글이 실렸다. 이들은 책에서 “식민지 잔재 미청산을 둘러싼 갈등은 샌프란시스코 체제라는 잘못 끼운 역사의 첫 단추에서 연유했다”고 지적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발효된 1952년 4월 28일부로 연합군의 일본 통치가 끝나고 주권이 일본에 반환됐다. 당시 미국, 영국은 6·25전쟁을 계기로 일본을 동아시아 냉전 대응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식민지배 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을 조약에 넣었다. 예컨대 ‘일본에 대한 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조약 14조는 오랜 한일 배상권 갈등의 뿌리로 지목된다. 문제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이른바 ‘신냉전’이 미일동맹을 골자로 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장은 “중국과 미일 간 신냉전 체제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미일동맹 강화를 계기로 ‘샌프란시스코 체제 2.0’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이 미일동맹을 앞세워 식민지배 책임을 계속 회피하고 있다는 것. 이 소장은 “2015년 8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미국 진주만 공습에 대해 사죄하면서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게 대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저자로 참여한 법학자들은 정의에 어긋난 국제조약은 무효라는 국제법 원칙에 주목하고 있다. 1963년 유엔 국제법위원회(ILC)가 맨리 허드슨 하버드대 법대 교수의 보고서를 인용해 “강제나 협박에 의한 조약의 비준이나 승인, 수용은 모두 무효”라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 2010년 한일 지식인 1139명이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을사조약과 한국 병합조약은 불법으로 무효”라는 공동성명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장호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는 ‘식민주의 청산과 극복은 21세기 국제사회의 과제’라고 선언했다”며 “피지배국인 한국을 배제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명백한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바람이 불어 일렁이는 연못 위에 분홍빛 수련이 떠다닌다. 은은한 빛이 잠긴 연못을 그린 영상이 전시장 바닥에 흐르듯 재생되고, 벽에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원화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년)이 그윽한 자태를 드러낸다. 연못 영상에 나온 그림은 모네의 수련 연작에서 따왔다. 아내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여든 무렵의 모네가 프랑스 지베르니 정원에서 얻은 위로가 관람객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28일 개막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느 수집가의 초대’ 특별전에서는 모네가 말년에 그린 이 작품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이번 특별전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942∼2020)의 기증 1주년을 맞아 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했다. 선사시대 토기부터 21세기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이건희 컬렉션’ 355점을 선보인다. 지난해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전시 규모(135점)의 3배에 가까운 규모다. 규모가 커진 만큼 손에 꼽히는 걸작들이 다수 선정됐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1751년) 등 국보 13점과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 등 보물 20점이 포함됐다. 총 1, 2부로 나뉜 전시실은 수집가가 관람객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개념으로 구성됐다. 다과상이 차려진 거실과 두 개의 작은 방, 중정으로 이뤄진 1부는 ‘가족과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채워졌다. 화가 자신과 부인, 아들이 단란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담은 장욱진의 ‘가족’(1979년)과 일터에 나간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는 소녀를 그린 박수근의 ‘아기 업은 소녀’(1962년)는 가족사진을 보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서예작품 ‘정효자전’(1814년)과 ‘정부인전’(1814년)에도 부모의 애틋한 마음이 담겼다. 당시 전남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다산이 마을 주민 정여주의 부탁을 받아 쓴 작품들로, 정효자전은 일찍 세상을 떠난 정 씨의 아들을 기렸다. ‘네가 한 번 죽음으로써 나는 아들을 잃고, 친구를 잃고, 스승을 잃었다’는 글에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슬픔이 절절이 녹아 있다. 2부는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등을 주제로 시대에 얽매이지 않고 전시품을 자유롭게 구성했다. 15세기 후반 분청사기 3점과 현대 작가 강요배(70)가 꽃망울을 틔우려는 붉은 매화를 표현한 ‘홍매’(2005년)를 나란히 전시하는 식이다. 만들어진 시대나 형태는 다르지만, 백토를 긁은 분청사기의 거친 무늬와 캔버스에 겹겹이 덧칠한 아크릴의 질감은 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 닮았다. 박물관은 전시 기간 중 사계절의 정취를 담은 서화를 한 달 간격으로 교체 전시할 예정이다. 조명으로 인해 작품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여름의 인왕산을 담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28일부터 다음 달 31일까지 선보인다. 6월에는 가을 정취를 담은 김홍도의 ‘추성부도’, 7월에는 박대성의 ‘불국설경’(1996년), 8월에는 이경승의 ‘나비’(1919년)가 차례로 전시된다. 기증 후 이건희 컬렉션을 가장 큰 규모로 소개하는 전시인 만큼 예매 열기가 뜨겁다. 온라인 예매는 한 달 치만 가능한데, 다음 달 관람권 4만여 장이 이미 매진됐다. 6월분 온라인 관람권은 다음 달 2일 오후 2시부터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수 있다. 현장 관람권은 오전 10시부터 30분 간격으로 30장씩 판매한다. 8월 28일까지. 3000∼5000원.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부다비 왕실로부터 한국을 가장 위대하게 표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문화재 복원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민중 씨(35·사진)는 2020년 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으로부터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아랍에미리트(UAE)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종이의 역사’ 특별전에 한지(韓紙)를 소개하겠다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것. 이에 따라 20일 개막한 특별전에는 한지를 집중 소개하는 전시공간이 따로 마련됐다. 이곳에는 아이의 탄생을 알리는 종이 금줄과 망자에게 입히는 종이 수의, 한옥에 붙이는 창호지 등이 전시됐다. 그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종이와 함께 태어나 쓰고, 입고, 메고, 신고, 죽는 한국인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개막 전 전시실을 방문한 UAE 문화장관이 한지로 만든 옷과 신발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어요. 종이를 꼬아 옷을 지을 정도로 한지에는 끈질긴 힘이 있어요. 그 힘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뿌듯했죠.” 루브르가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7년.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품 보존·복원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복원 전문가로 활동하던 그가 한지를 이용해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1527∼1576)의 책상 손잡이를 복원하면서부터다. 그는 “루브르를 비롯해 세계 유명 박물관들은 그동안 일본의 화지(和紙)를 사용해 문화재를 복원했지만 2017년부터 화지보다 접착력과 강도가 뛰어난 한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김 씨는 형 김성중 씨(40)와 함께 사단법인 ‘미래에서 온 종이협회’를 세워 외국 박물관에 문화재 복원용 한지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루브르의 ‘부르봉가의 역사’ 전시에 선보인 18세기 프랑스 풍속화가 샤를 르모니에의 왕실 초상화 등 18점이 김 씨가 제공한 한지로 복원됐다. 그는 “언젠가 라파엘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을 한지로 복원하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부다비 왕실로부터 ‘대한민국을 가장 위대하게 표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한지의 우수성을 세계무대에 제대로 알릴 기회잖아요. 놓칠 수 없었죠.” 프랑스에서 문화재 복원전문가로 활동하는 김민중 씨(35)에게 2020년 봄 한 통의 e메일이 닿았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주최하고 아랍에미리트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종이의 역사’ 전시에서 한국의 전통 종이 한지(韓紙)를 소개하는 전시관을 기획하겠다는 김 씨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 “한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김 씨의 바람대로 이달 20일부터 7월 23일까지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종이의 역사’ 특별전에는 한지를 소개하는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전시실에는 아이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부터 망자에게 입히는 종이 수의 등 한국인의 생과 사 모든 순간에 함께 하는 한지를 선보였다. 전시실 한편에는 전북 전주시에서 직접 운송한 한옥이 설치됐다. 장판과 창호 등 건축자재로 사용될 만큼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24일 오후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김 씨는 “종이와 함께 태어나 쓰고, 입고, 메고, 신고 죽는 한국인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웃었다. “전시 개막 전 한지 전시실에 방문했던 아랍에미리트의 문화부 장관이 한지로 만든 옷과 신발 등 공예품 앞에서 10분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어요. 종이를 꼬아 옷을 지어 입었을 정도로 한지에는 끈질긴 힘이 있죠. 한지가 지닌 힘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뿌듯합니다.” 루브르박물관이 전통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7년. 파리1대학에서 미술품보존복원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문화재 복원전문가로 활동하던 김 씨가 전통 한지를 이용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막시밀리안 2세(1527~1576)가 사용하던 책상의 부서진 손잡이를 복원하면서부터다. 전통 한지를 이용해 외국의 문화재를 보존한 세계 최초의 사례였다. 김 씨는 “그동안 루브르박물관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유명 박물관에서는 일본의 화지(和紙)를 사용해 문화재를 복원해왔다”며 “그런데 2017년 이후부터 화지보다 접착력, 강도 등이 뛰어난 한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외국 문화재 보존업계에서 한지의 잠재력을 입증하며 물꼬를 튼 것. 이후 김 씨는 친형 김성중 씨(40)와 함께 사단법인 ‘미래에서 온 종이협회’를 설립해 외국 박물관에 문화재 복원용 전통 한지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부르봉가의 역사’ 전시에서 선보인 프랑스 풍속화가 샤를 르모니에의 작품 등 18점은 모두 김 씨 형제가 설립한 협회에서 제공한 전통 한지로 복원됐다. 현재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그는 올 11월 루브르박물관과 협업해 한지 관련 학술대회를 기획하고 있다. 김 씨는 “아직까지 일본 화지가 외국 문화재 복원시장의 99.9%를 차지하고 있다”며 “한지의 우수성을 알려 한지 점유율을 1%씩이라도 점차 확대해나가는 것이 목표”라며 웃었다. “언젠가 라파엘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작품을 한지로 복원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러시아는 과연 세계 패권 경쟁에서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의 수석 외신 특파원으로 세계를 누빈 저자는 2017년 출간한 이 책에서 러시아가 제국의 야망을 버리지 못할 것임을 예측했다. 책에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된 10여 개의 국가들 사이에 둘러싸인 러시아 지도가 나온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국경선은 러시아가 나토에 포위돼 있음을 한눈에 보여준다. 저자는 포위의 공포감에 사로잡힌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러시아 문명의 발원지로 여기는 만큼, 우크라이나만큼은 반드시 손에 쥐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러시아, 독일 등 21세기 세계 각국의 정세가 지도 위에 펼쳐진다. 구글맵을 켜면 세계의 모든 길목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에 저자는 지도 위에 붉은 선을 그려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세계 지도를 인터넷 보급률과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검열 수준으로 재구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국가의 검열은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만큼 검열을 강화한 것과 반대다. 저자는 단 한 장의 지도로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이 미국에서 나온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가 재구성한 세계 지도에는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21세기 패권경쟁의 흐름도 담겼다. 중국의 세계 무역로를 붉은 선으로 그려낸 신(新)실크로드 지도 위에는 중국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향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상무역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으로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반면 세계의 군대를 자처한 미국은 세계 각지에 주둔한 군 기지에 대한 막대한 비용 부담을 호소하는 자국민의 반발에 직면했다. 군 동맹으로 연결된 미국의 군사 패권이 점차 줄어드는 반면 중국의 무역망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것. 저자가 붉은색 선으로 재구성한 지도에는 세계 패권의 미래가 담긴 셈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여든이 넘은 저는 그동안 충분히 누렸으니 이제는 전통유산을 잇는 예술인을 위한 공간을 남기고 싶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인 이영희 씨(84·사진)는 경기 성남시 금토동에 있는 자신의 집과 주변 땅 5474m²를 19일 문화재청에 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 2월 기부를 결정하며 문화재청에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전통 예능 유산을 잇는 보유자와 이수자들을 위한 전수교육관을 지어달라는 것. 이 씨가 기부한 땅의 공시지가는 현재 약 54억 원이다. 그는 “비좁은 자택에서 전수 활동을 해온 예능인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해당 토지에 연면적 8246m² 규모의 수도권 국가무형문화재 예능전수교육관을 2027년까지 짓기로 했다.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에는 이 씨의 바람대로 예능인들을 위한 교육공간뿐 아니라 공연장과 전통 예능 체험공간이 마련된다. 1938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이 씨는 1958년 가야금 명인 김윤덕 선생(1918∼1978)으로부터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1962년 대학 졸업 후 국악예술학교 교사, 서울대 및 중앙대 국악과 강사를 지내며 60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1991년 스승의 뒤를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로 지정된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주말마다 제자 10여 명에게 가야금산조를 가르치고 있다. 늘 자신보다 제자들을 생각한 삶이었다. 그는 2018년부터 김윤덕류 가야금산조를 공부하는 후학들을 위해 매년 2000만∼3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2018년에는 자택 근처의 초등학교 4곳에 4000만 원 상당의 가야금 160대를 기증했다. 그는 “죽기 전까지 후학들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자꾸만 줄고 있어요. 그런데도 제게 와서 국악을 배우려는 제자들이 있으니 얼마나 고맙고 예뻐요. 힘닿는 데까지 이들을 밀어주고 끌어줘야죠.”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여든이 넘은 저는 그동안 충분히 누렸으니, 이제는 전통 유산을 잇는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이영희 씨(84)는 자신이 일평생 일궈 소유한 집과 주변 토지 5474㎡(약 1700평)를 문화재청에 기부했다. 올 2월 기부 결단을 내린 그는 문화재청 측에 단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 땅에 국악 등 우리의 전통 예능 유산을 잇는 보유자와 이수자들을 위한 교육관을 지어 달라”는 것. 문화재청은 “이 씨가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립을 위해 경기 성남시 금토동 일대 1700평에 이르는 토지를 기부했다”고 19일 밝혔다. 이 씨의 자택이 위치한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는 54억여 원에 달한다. 이 씨는 18일 오후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전통 예술인들의 삶은 늘 넉넉하지 못했다”며 “후학을 양성할 공간이 부족해 비좁은 자택에서 전수활동을 해온 예능인들에게 보탬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 씨의 기부로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예능인들의 전수활동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서울 지역에는 강남구에 위치한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한 곳뿐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전통공연·예술 보유자 77명을 전부 수용할 전수교육시설이 부족해 50여 명은 자택에서 전수활동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할 때예요. 문화재청에는 여생 동안 머물 20평 남짓한 공간만 전수교육관 한편에 내어달라고 했어요. 생을 떠난 뒤에는 이 땅에 납골함을 묻어달라고도 당부했죠. 저는 이 정도면 충분해요.” 1938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이 씨는 1958년 가야금 명인 김윤덕 선생(1918~1978)으로부터 가야금산조를 배웠다. 1962년 대학 졸업 후 국악예술학교 교사, 서울대 및 중앙대 국악과 강사를 지내며 60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1991년 김 선생의 뒤를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로 인정된 그는 아직까지도 주말마다 제자 10여 명에게 가야금산조를 가르치는 현역이다. 그에게서 가야금산조를 배운 이수자는 50여 명에 이른다. 늘 자신보다 제자들을 생각했다. 이 씨는 2018년부터 스승인 김윤덕류 가야금산조를 공부하는 후학들을 위해 매년 2~3000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까지 10여 명의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았다. 2018년 경기 성남시와 연계해 자택 근처 초등학교 4곳에 4000만 원 상당의 가야금 160대를 기증하기도 했다. 이 씨는 “일평생 나를 위해 사치를 부려본 적이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을 제자들과 나눌 때 가장 큰 기쁨을 얻었다”며 웃었다. 문화재청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해당 토지에 2027년까지 연면적 8246㎡ 규모의 수도권 국가무형문화재 예능전수교육관을 지을 계획이다.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 건물에는 이 씨의 바람대로 예능인들이 전수활동을 펼칠 교육공간뿐 아니라 공연장과 전통 예능 체험공간도 마련된다.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어요. 그런데도 제게 와서 배우려고 하는 제자들이 얼마나 고맙고 예뻐요. 제가 힘닿는 데까지 이들을 밀어주고 끌어줘야죠.”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경북 경주시 금척리 고분군이 대릉원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보다 1세기 앞선 4세기부터 조성된 사실이 발굴조사 결과 밝혀졌다. 신라 6부(六部·건국 주체가 된 6개 정치단위체) 중 하나인 모량부(牟梁部)가 5세기 등장한 신라중앙의 마립간(麻立干·신라시대 왕의 칭호)에 앞서 금척리 일대를 지배한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학계는 이번 조사 결과를 신라 6부 체제를 규명할 핵심 자료로 보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981년 실시한 금척리 고분 18기 발굴조사 결과를 최근 40년 만에 보고서(‘경주 금척리 신라묘’)로 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고분에서 발견된 유물 1065점을 토대로 무덤 조성 시기를 4세기 초엽부터 6세기 중엽까지로 추정했다. 이 중 덧널무덤(목곽묘)인 10호분은 내부에서 4세기 초엽의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표면에 격자무늬나 끈 무늬가 새겨진 토기) 4점이 나와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으로 분석됐다. 10호분과 맞붙어 조성된 2, 4호분이 목곽묘보다 늦은 시기의 묘제(墓制)인 5세기 적석목곽묘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금척리는 모량부의 중심지로 신라 중앙의 대릉원에서 북서쪽으로 17km 떨어져 있다. 5세기 후반 적석목곽묘인 1호분에서 94.5cm 길이의 은 허리띠가 출토되는 등 금척리 고분군에 모량부 지배층이 묻혔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부족 연맹체였던 진한(辰韓)에서 씨족 집단으로 구성된 6부 체제가 등장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6부에는 모량부 외에도 급량부, 사량부, 습비부, 본피부, 한기부가 있었지만 현재까지 고분이 확인된 곳은 모량부가 유일하다. 신광철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금척리 고분군을 통해 마립간 등장 전 모량부의 규모와 위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계는 모량부 연구를 통해 중앙집권을 추구한 마립간 시기가 도래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립간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이미 4세기 이전부터 지배력을 행사한 모량부 등 6부 세력이 점진적으로 중앙에 귀속되는 과정을 밟았다는 것. 삼국유사에 따르면 지증왕비와 진흥왕비 모두 모량부 출신이다. 신라 김씨 왕조가 모량부 지배층과 혼인관계를 맺어 중앙집권의 기틀을 다졌다는 것이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금척리 고분군은 4세기 목곽묘에서 5∼6세기 적석목곽묘로 바뀌는 무덤 축조 양식의 변천을 볼 수 있다”며 “이는 경주 외곽의 지배세력이 성장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모량부 핵심세력이 교체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풀이했다. 금척리 고분군 연구를 토대로 신라 6부 체제 내부의 지배세력 변화도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학계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가 신라 초기 지배층 고분의 조성 시기를 더 올려볼 여지를 줬다고 보고 있다.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고고학)는 “금척리 고분군 일대를 추가로 조사하면 2∼3세기에 조성된 목곽묘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주시내로 한정된 조사연구를 외곽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김재홍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는 “그동안 대릉원 등 경주 중심에 집중된 신라사 연구 흐름을 외곽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서라벌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6월 금척리 고분군의 남쪽 경계에서 목곽묘 1기와 적석목곽묘 6기, 석곽묘 1기를 추가로 확인했다. 국가사적에 포함된 고분 52기 외에도 지배층 묘역이 더 넓게 분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세계화의 시계를 1492년이 아닌 1000년으로 되돌려놓은 책이다. 1492년은 역사학계가 유럽의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기준점으로 꼽는 해다. 그해 크리스토퍼스 콜럼버스는 스페인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책은 첫 장부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서사를 뒤집는다. 콜럼버스보다 약 490년 먼저 신대륙에 온 사람이 있었다. 노르웨이 바이킹 레이프 에리크손이다. 바이킹 전설에 따르면 에리크손은 1000년경 북아메리카 동해안에 도착했다. 노르웨이 고고학자 안네 스티네 잉스타드는 1960년대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섬 최북단에 있는 랑스 오 메도즈 일대를 발굴 조사하며 전설을 역사적 사실로 밝혀냈다. 유적지에서 바이킹 시대 유물인 청동 옷핀을 발굴한 것. 외투의 목 부분을 채울 때 사용된 일자형 청동 핀은 10∼11세기 노르웨이에서 제작된 형태와 일치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최초의 탐험가가 아니었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서구 관점에서 쓰인 세계화의 역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2015년 발표한 ‘실크로드 7개의 도시’(소와당)에서 유라시아로 연결된 실크로드 교류사를 조명한 그는 신간에서 서구 열강이 경쟁하듯 항로 개척에 뛰어든 15세기보다 약 500년 먼저 대륙 간 교역이 일어난 사실에 주목한다. 1000년경 세계화 무대는 유럽이 아니라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이었다. 세계화는 유럽이 만들어낸 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정교한 무역망으로 연결돼 있었다. 1502년 콜럼버스의 아들 페르난도는 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과하나섬 인근에서 카누 한 척을 마주친 기록을 남겼다. 마야인 선원 25명이 몰던 배 위에는 채색된 의류와 목검, 흑요석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페르난도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물건들”이라고 기록했을 정도. 멕시코 남부 유카탄반도에 있는 마야 문명 유적지 치첸이트사에서 90km 떨어진 세리토스섬에서는 11세기에 제작된 터키석과 금 장신구 등이 출토되고 있다. 현대 고고학자들은 세리토스섬이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를 잇는 항구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마찬가지로 포르투갈 왕국의 엔히크 왕자가 15세기 서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하기 전부터 아프리카는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다. 아프리카의 여러 왕국은 이슬람권으로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국교로 선택할 정도로 무역을 중시했다. 15세기 전 유럽과 아시아로 흘러간 금의 3분의 2가량은 아프리카산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지브롤터해협을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항로뿐 아니라 중국과 연결되는 무역로가 이미 존재했다. 1000년경 세계 최대 무역도시는 중국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에 있었다. 당시 취안저우는 프랑스 파리 인구(2만 명)의 50배에 달하는 거대 국제도시였다. 저자는 세계화 시계를 500년 앞당겼을 뿐 아니라 세계화의 진정한 주역을 모색한다. 서구 역사에서 세계화의 객체로 여겨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이 이 책에서는 주체로 다뤄진다. 잉여 생산물을 교류한 세계무역의 흐름은 1000년경 세계 각지에서 태동했다. 항로 개척은 서구 열강의 전유물이 아니라 바다를 품고 살아온 여러 토착 민족들의 일상이었다.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바다 너머로 진출한 이들이야말로 세계를 연결한 주인공이었던 셈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신간 ‘1000년’(민음사)은 세계화의 시계를 1492년이 아닌 1000년으로 되돌려놓은 책이다. 1492년은 역사학계가 유럽의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기준점으로 꼽는 해다. 그해 크리스토퍼스 콜럼버스는 스페인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책은 첫 장부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서사를 뒤집는다. 콜럼버스보다 약 490년 먼저 신대륙에 온 사람이 있었다. 노르웨이 바이킹 레이프 에리크손이다. 바이킹 전설에 따르면 레이프는 1000년경 북아메리카 동해안에 도착했다. 노르웨이 고고학자 안네 스티네 잉스타드는 1960년대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섬 최북단에 있는 랑스 오 메도즈 일대를 발굴조사하며 전설을 역사적 사실로 밝혀냈다. 유적지에서 바이킹 시대 유물인 청동 옷핀을 발굴한 것. 외투의 목 부분을 채울 때 사용된 일자형 청동 핀은 10~11세기 노르웨이에서 제작된 형태와 일치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최초의 탐험가가 아니었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 발레리 한센은 서구 관점에서 쓰인 세계화의 역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2015년 발표한 ‘실크로드 7개의 도시’(소와당)에서 유라시아로 연결된 실크로드 교류사를 조명한 그는 신간에서 서구 열강이 경쟁하듯 항로 개척에 뛰어든 15세기보다 약 500년 먼저 대륙간 교역이 일어난 사실에 주목한다. 1000년경 세계화 무대는 유럽이 아니라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이었다. 세계화는 유럽이 만들어낸 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정교한 무역망으로 연결돼 있었다. 1502년 콜럼버스의 아들 페르난도는 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에서 북쪽으로 70㎞ 떨어진 과하나섬 인근에서 카누 한 척을 마주친 기록을 남겼다. 마야인 선원 25명이 몰던 배 위에는 채색된 의류와 목검, 흑요석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페르난도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물건들”이라고 기록했을 정도. 멕시코 남부 유카탄 반도에 있는 마야 문명 유적지 치첸이트사에서 90㎞ 떨어진 세리토스섬에서는 11세기에 제작된 터키석과 금 장신구 등이 출토되고 있다. 현대 고고학자들은 세리토스섬이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를 잇는 항구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마찬가지로 포르투갈 왕국의 엔히크 왕자가 15세기 서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하기 전부터 아프리카는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다. 아프리카의 여러 왕국들은 이슬람권으로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국교로 선택할 정도로 무역을 중시했다. 15세기 전 유럽과 아시아로 흘러간 금의 3분의 2가량은 아프리카산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항로뿐 아니라 중국과 연결되는 무역로가 이미 존재했다. 1000년경 세계 최대 무역도시는 중국 푸젠(福建)성 취안저우(泉州)에 있었다. 당시 취안저우는 프랑스 파리 인구(2만 명)의 50배에 달하는 거대 국제도시였다. 저자는 세계화 시계를 500년 앞당겼을 뿐 아니라 세계화의 진정한 주역을 모색한다. 서구 역사에서 세계화의 객체로 여겨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이 이 책에서는 주체로 다뤄진다. 잉여 생산물을 교류한 세계무역의 흐름은 1000년경 세계 각지에서 태동했다. 항로 개척은 서구 열강의 전유물이 아니라 바다를 품고 살아온 여러 토착 민족들의 일상이었다.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바다 너머로 진출한 이들이야말로 세계를 연결한 주인공이었던 셈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구상에 이민족이 없던 고대국가는 없었어요. 오히려 이민족을 포용하며 발전했죠.” 이성시 일본 와세다대 문학부 교수(70)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민족의 틀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이민족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를 해석한 신간 ‘고대 동아시아의 민족과 국가’(삼인)를 15일 펴낸다. 앞서 그는 한중일 삼국의 고대사가 현대의 민족국가관에 따라 만들어진 역사라고 지적한 ‘만들어진 고대’(삼인)를 2001년 발간했다. 이번 신간은 1970∼90년대 발표한 그의 논문 14편을 엮은 것이다. 신간은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 한국 고대사를 다뤘지만 제목은 그보다 넓은 동아시아를 담았다. 고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속에서 고대사를 바라보기 위해서다. 재일교포라는 이 교수의 정체성은 경계인의 시각으로 동아시아를 조망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동아시아는 특정 국가의 문화적 우월성을 비교하는 경쟁의 장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가 오간 교류의 장이라는 게 그의 시각. 4세기 초 고구려가 낙랑군 출신의 중국인 동수(冬壽)를 내치지 않고 군신관계를 맺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낙랑군은 기원전 108년 한나라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평양 일대에 설치한 행정구역. 이 교수는 “고구려는 평양 일대에 머물던 중국 이민족 등 낙랑 유민을 지배층에 적극 포용하면서 세력을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340년 무렵 중국 연나라 왕조 모용(慕容) 씨의 공격으로 압록강 유역에서 평양 일대로 후퇴한 고구려가 이민족을 품으며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백제도 세력 확장을 위해 고구려, 신라뿐 아니라 왜(倭) 출신 인재들을 등용했다. 이 교수는 “북쪽으로 고구려, 동쪽으로 신라 사이에 자리 잡은 백제는 주변국을 견제하기 위해 다국적 인재를 권력층에 적극적으로 포섭했다”며 “왜인들도 능력에 따라 중앙정부 최고위직에서 일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화 시대에는 일국 관점에서 바라본 단면적 역사가 아니라 주변국과의 이해관계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술에는 그 어떤 위계도 없거든요.” 우산, 냉장고, TV…. 일상 속 평범한 사물들이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81·사진)에게는 예술이 된다. 그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돼 누구나 소유할 법한 사물에 낯선 색을 입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예상하지 못한 색으로 채워진 분홍색 감자튀김처럼 그의 손을 거친 사물은 어쩐지 낯설고 특별해 보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8일 개막한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展’에서는 그의 1973년 초기작부터 올해 최근작까지 회화와 디지털 미디어, 판화 등 원화 150여 점을 선보인다. 7일 전시장에서 만난 크레이그마틴은 “내 생애 가장 큰 규모로 여는 회고전이다. 전시장이 내 인생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원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출신인 크레이그마틴은 ‘영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1974년부터 2000년까지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 교수로 재직하며 데이미언 허스트, 줄리언 오피 등 젊은 영국 예술가들(YBA·Young British Artists)을 양성했기 때문이다. 그가 제자들에게 강조한 건 단 한 가지.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라”는 것이었다. 검은 윤곽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사물 위에 강렬한 색을 채워 넣는 건 크레이그마틴의 스타일이다. 전통회화의 원칙을 고수하지 않는 파격성도 지녔다. 가로 208.3cm, 세로 289.6cm 크기의 거대한 알루미늄판 위에 아크릴로 작업한 ‘카세트’(2002년)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네 면의 가장자리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카세트테이프를 그렸다. 새빨간 배경에 비스듬히 세워진 카세트테이프는 진한 초록색으로 가득 채웠다. 오브제를 캔버스 정중앙에 배치하거나 가장자리에 치우치게 그려서는 안 된다는 전통회화의 원칙을 비튼 것. 그는 일상의 사물을 톡톡 튀는 색으로 채우는 반복성을 추구하면서도 오브제를 변주하며 예술세계를 확장해 왔다. 1990년대 와인 따개, 안경, 의자 등 평범한 사물을 소재로 삼았던 그는 2000년대 글자에 주목했다. 그는 “단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을 하나씩 떼놓고 보니 고유의 윤곽선과 공간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글자회화에서는 알파벳이 열을 맞추지 않는다. 서로 엇갈린 채 뒤섞인 글자회화 연작의 제목은 ‘무제’. 관람객이 각자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팬데믹이 불러온 세상은 그에게 새로운 오브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격리가 즐거웠다”고 말한다. 반쯤 열린 랩톱 컴퓨터 4대를 지그재그로 엇갈리게 배치해 알파벳 ‘Z’를 표현한 ‘줌(Zoom)’(2020년)은 격리 기간 중 완성했다. 출구에 설치된 디지털 자화상 ‘무제’(2022년)는 가장 최신작이다. 액정표시장치(LCD)에 그의 얼굴을 상징하는 검은 윤곽선을 그리고 선 사이사이를 형형색색으로 채우는 영상이 흐른다. 단 한순간도 같은 색으로 채워지지 않아 살아 있는 그림 같다. 전시의 주제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처럼 81세 노장은 우리가 무심하게 놓친 순간의 아름다움을 색으로 기록해 왔다. 8월 28일까지. 1만3000∼2만 원.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문화재위원회가 60년간 사용한 ‘문화재’ 명칭을 ‘국가유산’으로 바꾸는 개선안을 11일 확정했다.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로 나뉜 기존 분류는 △문화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으로 각각 바뀐다. 문화재청도 국가유산청으로 변경된다. 이는 문화재 용어에 재화 개념이 포함돼 사람(무형문화재)이나 자연(기념물)까지 아우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새 용어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역사와 정신을 총칭하는 유네스코의 유산(heritage) 개념을 감안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검은 물체가 보였다. 분명 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거대한 몸집 사이사이 깃털이 박혀 있고 측면에 뾰족한 부리가 있다. 이것은 곰인가, 새인가. 수심 깊은 강물마저 얼어붙은 2000년 겨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숲에서 하이킹을 하던 저자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새를 만났다. 그는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 사진을 찍어 러시아 조류학자 세르게이 수르마흐에게 보냈다. 새는 100년간 어떤 과학자도 러시아 남쪽에서 관찰한 적 없는 멸종위기종 ‘블래키스톤물고기잡이부엉이’였다.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 새들이 아직 숲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저자의 인생을 바꾼 첫 만남이었다. 2005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벌목이 블라디보스토크 명금류(鳴禽類·참새목에 속하는 새의 총칭)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박사논문 주제로 5년 전 우연히 만난 새를 떠올린다. 이 책은 그가 2006년부터 5년간 진행한 ‘물고기잡이부엉이 보존 프로젝트’를 담은 탐사기다. 날개를 펼치면 2m에 이르는 물고기잡이부엉이는 1980년 무렵 멸종위기를 맞았다. 강 하류 곳곳에 댐이 건설돼 먹이인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게 됐고, 벌목으로 생의 터전마저 잃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러시아 동부지역에서 1000여 마리에 이르던 개체 수는 1980년대 10분의 1로 급감했다. 이에 조류학자 수르마흐 등과 팀을 꾸린 저자는 5년간 네 차례에 걸쳐 블라디보스토크로 탐사를 떠난다. 목표는 새의 몸통에 동선을 추적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를 다는 것. 새들의 동선 데이터를 분석해 터전을 지키는 해법을 찾겠다는 계획이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광활한 자연에서의 여정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420쪽 분량의 탐사기에서 저자가 새와 극적으로 만난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오히려 만남보다 훨씬 긴 기다림이 생생히 담겼다. 탐사대는 얼어붙은 강을 건너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기 일쑤. 통나무와 바위가 뒤엉킨 강 하류에는 익사한 시신이 뒤엉켜 있다. 하지만 성인 몸집보다 큰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거센 바람도 이들을 막을 순 없었다. 물고기잡이부엉이를 코앞에서 놓치기를 수차례. 탐사대는 2007년 2월 먹이를 찾아 강 하류에 온 새를 포획해 립스틱 크기의 GPS 장치를 등에 다는 데 성공한다. 이후 4년에 걸친 연구 끝에 탐사대는 러시아 일대에 물고기잡이부엉이 735쌍이 서식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들의 동선을 바탕으로 서식 분포도도 그렸다. 그 결과 수백 쌍의 물고기잡이부엉이가 사는 서식지의 절반가량이 벌목 회사가 임대한 지역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벌목을 중단시켜야 할까. 고민 끝에 저자는 부엉이와 지역경제가 공존하는 해법을 찾아낸다. 벌목 회사와 협의해 물고기잡이부엉이가 둥지로 삼는 황철나무와 난티나무를 베지 않기로 합의한 것. 벌목으로 생계를 지탱하는 지역민의 삶을 유지하면서도 새의 터전을 지켜낸 합리적인 해법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8년 다시 숲을 찾은 저자는 2년 전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휩쓴 태풍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물고기잡이부엉이 한 마리를 만난다. 인간의 도움 없이도 꿋꿋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새를 보며 자연의 자생력에 감탄하는 저자의 모습이 5년의 힘겨운 여정과 겹쳐 감동으로 다가온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웹툰 ‘그녀의 심청’에서 심청은 더는 희생당하지 않아요. 위기를 극복할 힘을 가진 캐릭터로 나오죠. 다시 쓴 고전소설에는 변화하는 사회상이 담겨 있습니다.” 신간 ‘여성의 다시 쓰기’(오월의봄)를 최근 펴낸 노지승 인천대 국어국문학과 교수(49·사진)는 6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간은 고전소설 속 여성 이야기의 개작(改作) 양상을 분석했다. 노 교수는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춘향전, 장화홍련전, 심청전 등의 고전소설을 개작한 소설, 영화, 웹툰을 분석했다. 그는 21세기 들어 가장 큰 변화를 맞은 캐릭터로 심청을 꼽았다. 그는 “남성 문인들이 개작한 심청전은 성폭력 피해자인 심청을 구하지 못한 남성 조력자들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1978년 발표된 최인훈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가 대표적이다. 극중 타국으로 인신매매를 당한 뒤 성노예로 살아가는 심청은 아무런 힘없이 폭력에 휘둘리는 인형으로 묘사된다. 몇몇 남성이 심청을 구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심청은 끝내 눈먼 노파가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온다. 노 교수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겪는 폭력을 적나라하게 비췄다는 의의가 있지만 여성 캐릭터를 극도의 폭력에 방치했다는 한계점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21세기 심청은 더 이상 피해자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2017∼2019년 저스툰에 연재된 웹툰 ‘그녀의 심청’은 원작에서 심청을 위해 공양미 300석을 내주는 대신 수양딸로 삼으려 하는 승상 부인과 심청의 관계에 주목했다. 원작에선 심청이 아버지를 저버릴 수 없다며 승상 부인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웹툰에선 심청과 승상 부인이 연대한다. 노 교수는 “21세기 심청전은 단편적이던 여성 서사에 입체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여성들이 힘을 합쳐 가부장사회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광복 후 남성 작가들이 개작한 춘향전은 정절을 지킨 춘향을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묘사했다. 1930년대 여성작가 이선희는 장화홍련전에서 악녀로 등장하는 계모를 중심으로 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 노 교수는 “신여성이던 저자의 관점에서 다시 쓴 장화홍련전은 모성을 강요하는 가부장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다”고 설명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기념 파티. 영국 배우 겸 가수 리타 오라가 검은 드레스에 인상적인 무늬의 가운을 입고 나타났다.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흰색 가운 위로 산과 소나무, 사슴이 그려진 한국 전통민화가 수놓여 있었다. 드레스를 제작한 패션디자이너 박소희 씨(26)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민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민화는 이름 없는 평범한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이다. 한국 민속예술의 멋을 공유하고 싶다”고 썼다. 18∼20세기 초 조선시대 서민층에서 유행한 민화가 21세기 세계 예술계에 영감을 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퀸스칼리지 아트센터는 한 달간 민화 전시를 열었다. 앞서 2016년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과 뉴욕 찰스왕센터,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이 1년 넘게 ‘조선민화 특별전’을 연 데 이어 2020년 미국 뉴욕 패션공대(FIT) 미술관이 민화 전시를 개최했다. 시카고미술관은 2017년 발간 도록에서 폴 세잔의 정물화와 민화 ‘책거리’를 나란히 선보이며 ‘한국의 정물화’로 소개했다. 지난해 9월 디지털 아티스트 해더림은 장수를 기원하는 민화인 십장생도를 형상화한 배경에 전자제품을 배치한 일러스트를 내놓았다. 변경희 FIT 교수는 “민화는 한류를 이끌 K아트의 선두주자”라고 했다. 최근 주목받는 민화의 매력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개인의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는 민화의 진솔함이 현대예술 흐름과 부응한다고 말한다. 민화는 백성의 그림이라는 뜻처럼 태생부터 사대부의 전유물이던 문인화와 결이 달랐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민간 화가들이 조선후기 평민의 수요에 맞춰 주문 제작한 게 민화의 시초. 19세기 상업 발달로 부를 축적한 평민이 등장한 결과였다. 문인화가 절제된 색상의 수묵화로 유교의 충효사상을 담았다면 민화는 백성들의 욕망을 거침없이 다뤘다. 파랑, 빨강, 노랑, 검정, 흰색의 오방색을 자유롭게 활용했고 거창한 사상이 아닌 개인의 행복을 기원하는 욕망을 반영했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은 “19세기 평민이 예술 향유의 주체가 되면서 민화 주제도 평범한 개인의 욕망으로 옮겨갔다”며 “민화는 문인화와 반대로 색을 자유자재로 표출하는 저항성을 내재하면서도 오방색만 사용한 ‘미니멀리즘’이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민화가 갖는 개방성도 빼놓을 수 없다. 모란, 까치, 호랑이 등 유사한 소재를 활용하되 틀에 갇히지 않는 표현으로 재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것. 예컨대 책장에 진열된 사물을 그린 책거리는 당대 흔히 볼 수 있는 민화 양식이지만 그림 속 사물은 제각각이다. 책장에 반짇고리와 은장도, 비단신 등 여성의 물건을 배치한 작품들은 당시 예술을 향유하던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준다. 정병모 경주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책거리, 모란도 등 반복되는 소재를 파격적으로 표현하는 민화의 개방성은 그래픽아트 같은 현대예술과 접목해 활용하기가 용이하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