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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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문화 일반40%
음악30%
인사일반17%
문학/출판13%
  • “언덕 오르내리며 삶에 대해 생각했어요”…‘해방촌 시인’ 황인숙

    ‘발목이 더 굵어지고 종아리가 미워진다면/ 얼마나 더 싫을까/ 나는 얼마나 더 힘들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르막길이 많네/ 게다가 지름길 꼭 오르막이지/ 마치 내 삶처럼’(시 ‘내 삶의 예쁜 종아리’ 중) 황인숙 시인(64)은 최근 출간한 9번째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문학과지성사)에서 서울 용산구 해방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1986년 집세가 저렴한 곳을 찾아 해방촌에 들어왔고, 지금은 작은 옥탑방에 살고 있다. 언덕이 많은 동네, 가파른 골목길을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느라 굵어진 종아리를 보고 그는 역설적으로 “예쁘다”고 표현한다. 28일 전화로 만난 그는 “해방촌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담담히 말했다. “평지에 세워진 아파트에서 태어나 잠깐 해방촌에 놀러 오는 관광객은 몰라요. 노인이 폐지가 담긴 수레를 끌고, 상인이 무거운 상자를 옮기는 이 언덕엔 삶이 묻어난다는 걸요. 시집에 해방촌의 모습을 담고 싶었습니다.”그가 시집을 펴낸 건 ‘아무 날이나 저녁때’(2019·현대문학) 이후 3년 만이다. 그는 64편의 시가 실린 신작에 해방촌의 뒷모습을 담아냈다. 시인은 퇴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서남아 사람인 듯 거무튀튀한/ 오십줄 사내가 어깨를 움츠리고/ 외투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긴 의자에 혼자/ 짙고 짙은 암갈색/ 환영처럼 앉아 있었다’(시 ‘어둠의 빛깔’ 중)고 담백하게 관찰기를 쓴다. 물건을 팔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시장 상인을 보곤 ‘세상엔/ 미끄러지고 나동그라지고/ 뒤집힌 풍뎅이처럼 자빠져/ 바둥거리는 맛도 있다우// 누군 죽어 지내는 맛도 있다지만/ 나는 그런 맛 몰라’(시 ‘장터의 사랑’ 중)라고 능청스럽게 노래한다. 1984년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한 그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새벽 3시까지 해방촌을 돌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그러나 ‘동네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고양이 밥그릇이 사라졌다’(시 ‘봄의 욕의 왈츠’ 중)는 일도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1개월에 길고양이 사료만 240kg를 삽니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고양이들 밥을 주죠. 그런데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슬픈 일이죠.” 해방촌에 언제까지 살 것이냐고 묻자 그는 조용히 답했다. “제가 돌보는 고양이만 80마리에 가깝습니다. 이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가 없어 해방촌을 못 떠날 것 같아요.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날 때까지 이곳에 살 겁니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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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는 웃으리”… 쪽방촌 사람들의 ‘희망 노래’

    “여러분의 삶이 보잘것없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은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노경실 동화작가(63)는 올해 4월 7일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 사는 주민 8명을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60, 70대인 주민들은 하나같이 삶의 거친 굴곡을 지나온 이들. 장애를 지녔거나 기초생활수급자인 사람도 있었다. 그런 주민들에게 노 작가가 권한 건 ‘글쓰기’였다. 노 작가는 “글 쓰는 게 어렵게 느껴지면 그냥 말로 인생을 얘기해보라”고 했다. 처음엔 손사래를 치던 주민들도 만남이 늘어가며 조금씩 변해갔다. 타인과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자신감이 없던 한 주민은 용기를 내 글자를 써내려갔다. 글을 모르던 한 어르신도 찬찬히 입을 열고 자신의 과거를 들려줬다. 15일 출간된 그림에세이집 ‘우리들의 인생 책’(서울특별시립 돈의동쪽방상담소)은 4월부터 10월까지 쪽방촌 주민 8명이 노 작가의 도움을 받아 쓴 책이다. 최선관 돈의동쪽방상담소 행정실장이 현대엔지니어링의 후원을 받아 노 작가에게 글쓰기 강의를 부탁해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노 작가는 23일 통화에서 “처음엔 마음을 열지 못하던 주민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한번 써보라고 하자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분들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돌아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엔 모두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잖아요. 그걸 깨달으면 인생을 돌아볼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차분히 기다렸더니 하나둘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았어요.” ‘우리들의 인생 책’엔 그런 주민들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주민 A 씨는 결혼해 가정을 꾸렸던 40대까진 행복했지만, 50대부터 불행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자세한 얘기를 꺼리면서도 “돌아보면 쓴웃음이 난다”며 시 한 편을 지었다. ‘지나온 과거를 묻지 마세요/흘러간 세월에 눈물짓지 마/서러운 시간 속에 이슬이/지내온 과거를 이제는/떨쳐버리고 웃으리.’(시 ‘내 인생의 노래’ 중) 어렵사리 슬픔을 마주한 이도 있었다. 주민 B 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손가락 하나도 작두에 잘려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왔다. 스물네 살에 시집갔지만 남편은 노름에 빠져 재산을 탕진했다. 빚에 시달리다가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 뒤 홀로 식당 일을 하며 아이를 키웠다. 모아둔 돈도 집도 없어 여기까지 흘러들었다. 하지만 B 씨는 “그럼에도 희망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돈의동 쪽방촌은 정이 넘치고 따스함이 있다. 가족에게서도 받지 못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내 인생도 활짝 꽃이 필 것 같다.’(에세이 ‘돈의동과 나, 나의 돈의동’ 중) 친부모에게 버려진 뒤 오래도록 방황한 C 씨. 그는 동물에게 받았던 기억을 발판 삼아 동물들을 돌보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몰락한 집안 사정에 절망했던 D 씨는 “앞으로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품어주며 살겠다”고 노래했다. 알코올의존증에 빠졌던 과거를 털어놓은 이도, 떠나간 부인에게 사죄의 글을 실은 이도 있다. 이제 어엿한 저자가 된 주민 E 씨에게 25일 전화를 걸었다. 프로젝트 이전만 해도 사람을 꺼렸다는 그는 차분하게 책을 펴낸 소감을 말했다. “글 쓰는 동안, 방에 있는 작은 거울에 제 과거가 비치더군요. 거울 속에 있는 제 모습은 삶의 희비(喜悲)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은 인생은 웃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젠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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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은 인생 웃으며 살고 싶어”… ‘우리들의 인생책’ 펴낸 쪽방촌 주민들

    “여러분 삶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모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올 4월 7일 노경실 동화작가(63)는 처음 만난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 8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60, 70대인 쪽방촌 주민들은 모두 삶의 거친 굴곡을 경험한 이들. 장애를 지닌 이도, 기초생활수급자도 있다. 노 작가가 주민들에게 권한 건 ‘글쓰기’다. 노 작가는 “글을 쓰기 어려우면 내게 말로 인생을 불러 달라”고 귀를 기울였다. 처음엔 손사래를 치던 주민들도 조금씩 변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주민은 말로 자신의 과거를 풀어냈고, 타인과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자신감 없던 주민은 자신의 인생을 적었다.이달 15일 출간된 에세이 ‘우리들의 인생책’(서울특별시립 돈의동쪽방상담소)은 4월부터 10월까지 돈의동 쪽방촌 주민 8명이 노 작가의 도움을 받아 쓴 책이다. 최선관 서울특별시립 돈의동쪽방상담소 행정실장이 노 작가에게 글쓰기 강의를 요청해 이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출간은 현대엔지니어링이 후원했다. 어떻게 주민들의 마음을 열었냐고 묻자 노 작가는 25일 통화에서 담담히 말했다.“처음엔 주민들에게 이름을 써보라고 했어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에 아름다운 뜻이 담겼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인생을 돌아볼 용기가 생기거든요. 그 다음에 귀를 열고 있었더니 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더라고요.”신간엔 쪽방촌 주민들의 인생 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A 씨는 결혼생활을 했던 40 대까진 행복했지만 50대부터 불행이 시작됐다고 고백한다. 그는 “인생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며 자신이 직접 지은 시 한 편을 책에 실었다.‘지나온 과거를 묻지 마세요/ 흘러간 세월에 눈물 짓지 마/ 서러운 시간 속에 이슬이…/ 지내온 과거를 이제는/ 떨쳐버리고 웃으리’(A 씨의 시 ‘내 인생의 노래’ 에서)용기 있게 슬픔을 마주한 이도 있다. B 씨는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작두에 손가락 하나가 잘려 장애인으로 살아왔다. 스물네 살에 시집갔지만 남편은 노름에 빠졌다. 빚에 시달리다 아이를 데리고 도망친 뒤 혼자서 식당 일을 하며 아이를 키웠다. 고생이 끝났다 싶었지만 모아둔 돈도, 집도 없어 집세가 싼 돈의동으로 오게 됐다. 그럼에도 B 씨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돈의동 쪽방촌은 정이 넘치고 따스함이 있다. 가족에게서도 받지 못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내 인생도 활짝 꽃이 필 것 같다.”(B 씨 에세이 ‘돈의동과 나, 나의 돈의동’에서)친부모에게 버려져 방황했다는 한 주민은 동물에게 사랑을 받은 기억을 발판삼아 동물을 돌보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새 꿈을 고백한다. 집안 경제 사정이 힘들어져 절망했다는 다른 주민은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품어주는 인생이 되고 싶다고 노래한다. 알코올중독에 빠진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한 이도, 지금은 헤어진 아내에게 사죄의 글을 실은 이도 있다. 자신을 못살게 굴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털어놓은 이도 있는 반면 지금 키우고 있는 강아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이도 있다.25일 한 주민에게 전화로 ‘글쓰기’ 소감을 물었다. 이 주민은 어엿한 작가처럼 말했다.“글 쓰는 동안 거울에 제 과거가 비치더군요. 거울 속 제 모습은 희비(喜悲)가 엇갈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은 인생은 웃으며 살아보고 싶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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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의 조상? 뼛조각 통해 찾는 중”

    키가 1.2m, 뇌 크기는 자몽처럼 작다. 손은 쥐는 동작에 유리하고 엄지 근육은 강인하다. 송곳니는 침팬지보다 작다. 발 측면에는 직립보행에 적합한 관절이 있다. 침팬지보다 입은 덜 튀어나왔고 머리 모양도 침팬지와 전혀 다르다. 이 생명체의 이름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아르디). 440만 년 전 아프리카 밀림 지대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이다. 한때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졌던 30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루시)보다 과거에 존재했다. 아르디의 뼛조각은 1994년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됐고, 2009년 전체 골격이 공개됐다. 2009년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서 ‘올해의 발견’으로 선정할 정도로 인류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아르디는 인류가 어떻게 직립보행을 시작했고 정교한 손을 진화시켰는지를 연구할 수 있는 증거였다. 초기 인류 조상이 놀라울 정도로 침팬지와 다른 모습이었음을 보여줘 학계를 뒤흔들었다. 올 9월 국내 출간된 ‘화석맨’(김영사)은 아르디 발굴 과정을 한 편의 소설처럼 그려냈다. 저자 커밋 패티슨은 아르디 발굴을 주도한 고인류학자인 팀 화이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생물학과 교수(72)를 8년 동안 취재해 책을 썼다. ‘화석맨’의 주인공 화이트 교수를 서면으로 만났다. ―‘화석맨’은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왜 당신은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나. “인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알고 있나? 내 생각에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정답을 찾는 유일한 길이 고인류학이다. 과거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주는 뼛조각을 발굴하고 이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싶었다.” ―아르디 발굴로 2010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나 혼자 한 일이 아니다. 5, 6명이 한 일도 아니다. 700명이 넘는 동료들과 함께 아르디를 발굴하고 연구했다. ‘화석맨’의 저자가 나를 부각하는 극적인 서사로 글을 쓰느라 많은 동료들의 공헌을 다루지 않았을 뿐이다.” ―3년간 이어진 발굴과 15년 동안 지속된 연구를 통해 뼛조각의 정체를 아르디로 밝혀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모든 현장 연구가 어려운 조건에서 수행된다. 포기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난 오직 고난을 헤쳐 나갈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현재 인류의 조상은 누구인가. “찾는 중이다. 다만 현대 인류 전엔 고대 영장류가 있었고, 그 이전엔 고대 포유류가, 더 이전엔 고대 어류가 있었다.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한 순간부터 생명체는 꾸준히 진화해 왔다.” ―현재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문화유적관리청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 동료들과 뼛조각을 세척하고 분석한다.” ―세월의 풍파에 부서지고 흩어진 작은 뼛조각을 찾고 분석하느라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나. “우주를 탐사하는 우주과학, 심해를 조사하는 해양과학에 드는 비용을 생각해 보라. 고인류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든다. 뼛조각은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증거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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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의 조상은 누구인가”… 기원을 추적하는 ‘화석맨’ 팀 화이트

    키가 1.2m, 뇌 크기는 자몽처럼 작다. 손은 쥐는 동작에 유리하고 엄지 근육은 강인하다. 송곳니는 침팬지보다 작다. 발 측면에는 직립보행에 적합한 관절이 있다. 침팬지보다 입은 덜 튀어나왔고 머리 모양도 침팬지와 전혀 다르다. 이 생명체의 이름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아르디). 440만 년 전 아프리카 밀림 지대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이다. 한때 인류의 조상으로 알려졌던 30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루시)보다 과거에 존재했다.아르디의 뼛조각은 1994년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됐고, 2009년 전체 골격이 공개됐다. 2009년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에서 ‘올해의 발견’으로 선정할 정도로 인류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아르디는 인류가 어떻게 직립보행을 시작했고 정교한 손을 진화시켰는지를 연구할 수 있는 증거였다. 초기 인류 조상이 놀라울 정도로 침팬지와 다른 모습이었음을 보여줘 학계를 흔들었다.올 9월 국내 출간된 교양과학서 ‘화석맨’(김영사)은 아르디 발굴 과정을 한 편의 소설처럼 그려냈다. 저자인 작가 커밋 패티슨은 아르디 발굴을 주도한 고인류학자인 팀 화이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생물학과 교수(72)를 8년 동안 취재해 책을 썼다. ‘화석맨’의 주인공 화이트 교수를 서면으로 만났다.―‘화석맨’은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왜 당신은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나.“인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알고 있나? 내 생각에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정답을 찾는 유일한 길이 고인류학이다. 과거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주는 뼛조각을 발굴하고 이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싶었다.”―세월의 풍파에 부서지고 흩어진 작은 뼛조각을 찾고 분석하느라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나.“우주를 탐사하는 우주과학, 심해를 조사하는 해양과학에 드는 비용을 생각해보라. 고인류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든다. 뼛조각은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증거다.”―현재 인류의 조상은 누구인가.“찾는 중이다. 다만 현대 인류 전엔 고대 영장류가 있었고, 그 이전엔 고대 포유류가, 더 이전엔 고대 어류가 있었다.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한 순간부터 생명체는 꾸준히 진화해왔다.”―아르디 발굴로 2010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나 혼자 한 일이 아니다. 5, 6명이 한 일도 아니다. 700명이 넘는 동료들과 함께 아르디를 발굴하고 연구했다. 고인류학자들은 뼛조각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발굴, 세척, 보존, 촬영 등 길고 고된 연구 과정을 거친다. 책의 저자가 나를 부각하는 극적인 서사로 글을 쓰느라 많은 동료들의 공헌을 다루지 않았을 뿐이다.”―3년 간 이어진 발굴과 15년 동안 지속된 연구를 통해 뼛조각의 정체를 아르디로 밝혀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모든 현장 연구가 어려운 조건에서 수행된다. 포기하려고 한 적은 없었다. 난 오직 고난을 헤쳐 나갈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현재 뭘하고 있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문화유적관리청(Ethiopian Heritage Authority)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 동료들과 뼛조각을 세척하고 분석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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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서로의 상처 보듬고 화해에 이르는 그날이 되길

    “네가 최근 트위터에서 하는 활동에 대해 알고 있어. 한번 (방송에) 출연해볼 생각 있어?”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온 한겨울. 방송작가 지민은 옛 연인 현우에게 장문의 e메일을 쓴다.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이 음식 사진을 보내면 그 식당 이름을 맞히는 것으로 유명해진 현우를 방송에 섭외하기 위해서다. 지민은 “네가 먹는 데 집착이 있기는 했다”고 비꼬면서도 “회사에서 (섭외하라고) 쪼아서 연락해본다”고 구차하게 변명한다. 그렇게 지민은 PD, 후배 작가와 함께 현우를 만나 인터뷰한다. 오랜만에 마주한 옛 연인 사이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쉬는 시간마다 조금씩 얘기를 나누다가 지민과 현우는 과거 크리스마스이브에 함께 부산에 갔던 추억을 회상한다. 연애에 어설펐지만 감정엔 진실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나서야 지민은 진심으로 현우의 행복을 빌 수 있게 된다. ‘크리스마스 타일’은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2018년·창비) ‘복자에게’(2020년·문학동네) 등으로 팬층이 두꺼운 작가가 2009년 등단 뒤 처음 선보인 연작소설집. 작가는 7개 단편에서 성탄절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인심 좋은 산타클로스처럼 꺼내 선물한다. 모든 작품은 앞서 소개한 단편 ‘크리스마스에는’ 속 지민과 같은 방송작가들과 그들의 가족, 지인들로 이어져 나간다. ‘은하의 밤’은 지민의 동료 방송작가 은하가 주인공. 은하는 유방암 항암 치료를 받은 뒤 오랜만에 방송국에 복귀했다. 은하가 열심히 만든 새로운 예능프로그램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방영되기로 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취소된다. 은하는 절망했을까. 아니다. 라면을 후후 불어 먹으며 다음 프로그램은 뭘 찍을까 동료와 대화를 나눈다. 어떤 절망이 와도 좌절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거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아닐까. ‘데이, 이브닝, 나이트’는 사랑 얘기다. 방송작가 소봄의 남동생인 대학생 한가을은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선배 경은의 초대를 받고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에 간다. 안타깝게도 경은은 한가을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한가을 곁엔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미진이 어느새 다가온다. 짝사랑을 떠나보냈지만 새로운 사랑을 찾는 행운이 찾아오는 설렘이 성탄절 흰눈처럼 온몸을 덮는다. 직장생활에 지친 소봄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을 맞는 ‘첫눈으로’와 첫사랑과 얽힌 크리스마스 추억을 떠올리는 진희의 크리스마스를 그린 ‘하바나 눈사람 클럽’에선 연말 분위기가 물씬하다. 유학생 옥주가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는 ‘월계동(月溪洞) 옥주’, 20년을 키운 반려견을 떠나보낸 세미의 크리스마스를 그린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등 다채로운 이야기도 펼쳐진다. 크리스마스에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는 주제는 진짜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만 있어도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처럼 벽난로 앞에서 언 손을 녹이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어느 해보다 가슴이 뻥 뚫린 이들에게 소설처럼 올해 크리스마스는 따뜻한 일만 일어나길 기도해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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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탄절엔 서로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뻥뚫린 가슴 채우는 ‘이야기 선물’

    “네가 최근 트위터에서 하는 활동에 대해 알고 있어. 한번 (방송에) 출연해볼 생각 있어?”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온 한겨울. 방송작가 지민은 옛 연인 현우에게 장문의 e메일을 쓴다.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이 음식 사진을 보내면 그 식당 이름을 맞추는 것으로 유명해진 현우를 방송에 섭외하기 위해서다. 지민은 “네가 먹는 데 집착이 있기는 했다”고 비꼬면서도 “회사에서 (섭외하라고) 쪼아서 연락해본다”고 구차하게 변명한다. 그렇게 지민은 PD, 후배 작가와 함께 현우를 만나 인터뷰한다. 오랜만에 마주한 옛 연인 사이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쉬는 시간마다 조금씩 얘기를 나누다 지민과 현우는 과거 크리스마스이브에 함께 부산에 갔던 추억을 회상한다. 연애에 어설펐지만 감정엔 진실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나서야 지민은 진심으로 현우의 행복을 빌 수 있게 된다.‘크리스마스 타일’은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2018·창비) ‘복자에게’(2020·문학동네) 등으로 팬층이 두터운 작가가 2009년 등단 뒤 처음 선보인 연작소설집. 작가는 7개 단편에서 성탄절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인심 좋은 산타클로스처럼 꺼내 선물한다. 모든 작품은 앞서 소개한 단편 ‘크리스마스에는’ 속 지민과 같은 방송작가들과 그들의 가족, 지인들로 이어져나간다.‘은하의 밤’은 지민의 동료 방송작가 은하가 주인공. 은하는 유방암 항암 치료를 받은 뒤 오랜만에 방송국에 복귀했다. 은하가 열심히 만든 새로운 예능프로그램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방영되기로 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취소된다. 은하는 절망했을까. 아니다. 라면을 후후 불어 먹으며 다음 프로그램은 뭘 찍을까 동료와 대화를 나눈다. 어떤 절망이 와도 좌절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거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크리스마스의 기적 아닐까.‘데이, 이브닝, 나이트’는 사랑 얘기다. 방송작가 소봄의 남동생인 대학생 한가을은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선배 경은의 초대를 받고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에 간다. 안타깝게도 경은은 한가을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한가을 곁엔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미진이 어느새 다가온다. 짝사랑을 떠나보냈지만 새로운 사랑을 찾는 행운이 찾아오는 설렘이 성탄절 흰눈마냥 온몸을 덮는다. 직장생활에 지친 소봄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을 맞는 ‘첫눈으로’와 첫사랑과 얽힌 크리스마스 추억을 떠올리는 진희의 크리스마스를 그린 ‘하바나 눈사람 클럽’에선 연말 분위기가 물씬하다. 유학생 옥주가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는 ‘월계동(月溪洞) 옥주’, 20년을 키운 반려견을 떠나보낸 세미의 크리스마스를 그린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등 다채로운 이야기도 펼쳐진다. 크리스마스에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는 주제는 진짜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만 있어도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마냥 벽난로 앞에서 언 손을 녹이는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어느 해보다 가슴이 뻥 뚫린 이들에게 소설처럼 올해 크리스마스는 따뜻한 일만 일어나길 기도해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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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한국 작품 보고 웹툰 세계에 빠져… 아예 작가의 길로”

    제우스가 성대한 파티를 연 어느 날. 저승의 신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감정에 치우친 하데스는 그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예쁘다”고 실언하고…. 화가 난 아프로디테는 둘이 이어지지 못하게 계략을 꾸민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친숙한 이 일화는 2018년부터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는 만화 ‘로어 올림푸스’에선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웹툰에서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게 아니라 정중하게 구애를 펼친다. 대인기피증을 앓는 하데스나 부모의 과잉보호를 벗어나려는 페르세포네란 설정도 새롭다. 평범한 남녀처럼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가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서사는 수준 높은 로맨스 영화 한 편을 마주한 기분이 든다. 작품을 그린 이는 뉴질랜드 만화가 레이철 스마이스(36). 데뷔작인 ‘로어 올림푸스’는 한국어와 영어, 스페인어 등 7개 언어로 연재되며 누적 조회 수 12억 회를 넘어서는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해부터 미국의 양대 만화상으로 꼽히는 ‘하비상’과 ‘아이스너상’을 휩쓸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스마이스 작가를 최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독자와 평단의 호평이 끊이지 않고 있네요. “감사해요. 특히 올해 상을 많이 받았네요. 모든 게 작품을 연재하며 들인 노력에 대한 ‘보너스’처럼 느껴져요.” ―고전인데 현대적 설정이 재밌습니다. 아프로디테는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에로스에게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더군요. “신화를 재해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가급적 원전의 흐름을 지키면서 젊은 독자도 공감할 수 있도록 새로운 설정이나 해석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데스는 파란색으로 우울한 느낌을, 페르세포네는 핑크빛으로 발랄하게 표현했어요. 이런 고유한 색을 부여한 이유가 뭘까요. “색이 각자의 감정을 전달하는 언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 가지 색을 띤 캐릭터는 눈에 잘 띄고 기억에도 남잖아요. 컬러는 이 작품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마케팅 도구인 셈이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로어 올림푸스’의 성공이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스마트폰 웹툰 관람이 늘어난 세태를 반영했다”고 분석했어요. “맞아요. 제 작품이 화제라는 건 미국에서 웹툰이란 장르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걸 뜻한다고 봐요. 요즘 우린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고, 영화를 보고, 식사를 주문합니다. 미국 독자들에게도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는 게 하나의 일상이 되어가는 거죠.” ―원래 그래픽디자이너였다가 웹툰 작가가 됐다면서요. “네. 한국의 유명한 웹툰 ‘기기괴괴’(오성대 작가)를 보고 웹툰에 빠졌어요. 네이버가 운영하는 아마추어웹툰플랫폼 ‘캔버스’에 작품을 올렸다가 정식 연재 제안을 받았습니다. 작품이 갈수록 화제를 모아 정식으로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낯선 경험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신이 났어요.”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데, 한국을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인기가 높아요. “여러 나라에서 ‘로어 올림푸스’를 본다는 건 너무 뿌듯한 일이에요! 영어로 쓴 작품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도 놀랍고요. 이야기가 가진 공감의 힘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은 게 아닐까요. 참고로, 제 컴퓨터 바탕화면은 한국 팬이 직접 그린 ‘로어 올림푸스’ 팬아트예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당분간 ‘로어 올림푸스’ 연재에 집중하고 싶어요. 언젠가 소설도 쓰고 싶지만, 아직 구체적인 건 없어요. 지금 제일 바라는 일은…, 일단 낮잠을 길고 오래 자고 싶네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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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욱 감독-故강수연 배우 은관문화훈장

    영화감독 박찬욱(59)과 배우 강수연(1966∼2022)이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2022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을 열고 훈장을 수여했다. 보관문화훈장은 배우 송강호, 드라마 ‘아들과 딸’ 등을 집필한 작가 박진숙, 작가 허영만이 받았다. 성우 홍승옥, 연주자 변성용, 배우 김윤석, 가수 김현철, 작가 박해영, 음악감독 고(故) 방준석 등 6명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국무총리 표창은 배우 이성민, 가수 장필순, 희극인 박명수, 그룹 자우림, 감독 연상호, 제작자 김지연, 가수 지코, 작가 김보통에게 돌아갔다. 성우 김영선, 뮤지컬 배우 김선영, 제작자 한승원, 배우 전미도, 희극인 홍현희, 안무가 아이키, 가수 폴킴,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에스파는 문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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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기괴괴’ 보며 웹툰에 빠져”…美 만화상 휩쓴 ‘로어 올림푸스’ 레이철 스마이스

    어느 날 주신(主神) 제우스는 신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연다.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는 파티에 갔다가 여신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여신의 이름은 페르세포네. 하데스는 그만 “솔직히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페르세포네가 예쁘지 않아?”라고 실언한다. 화가 난 아프로디테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이어지지 못하게 계략을 벌이는데…. 과연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그리스·로마 신화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웹툰 ‘로어 올림푸스’의 해석은 조금 다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지만 ‘로어 올림푸스’에선 하데스가 정중하게 구애한다. 하데스가 과거 겪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고, 페르세포네가 부모의 과잉보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쓴다는 설정도 추가됐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서로를 이해해가며 상처를 치유하는 서사는 요즘 로맨스 작품 같다. 뉴질랜드 출신 작가 레이철 스마이스(36)가 2018년부터 네이버웹툰 영어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최근 미국의 대표적인 만화상인 하비상(2회), 아이즈너상, 링고상을 휩쓸었다.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독일어 7개 언어로 연재됐고 조회 수 12억 회를 넘겼다.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특히 많은 상을 받은 것 같다. 모든 것이 작품을 연재하며 들인 노력에 대한 보너스처럼 느껴진다.”―아프로디테가 에로스에게 스마트폰 메시지를 보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사이를 갈라놓으라고 지시하는 것처럼 다양한 현대적 설정이 가미됐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재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가급적 그리스·로마 신화를 따르면서 젊은 독자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석과 설정에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했다.”―하데스를 파란색으로 칠해 우울함을, 페르세포네를 분홍색으로 칠해 발랄함을 표현했다. 이처럼 신들에게 고유한 색을 부여한 이유가 무엇인가.“색을 각 신들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언어로 사용했다. 또 여러 색으로 표현된 캐릭터는 눈에 띄고 기억에 잘 남지 않나. 색을 ‘로어 올림푸스’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마케팅도구로 쓰려했다.”―미국 뉴욕타임스는 ‘로어 올림푸스’가 상을 휩쓴 것에 대해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스마트폰으로 보는 웹툰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보도했다.“‘로어 올림푸스’의 인기는 미국 내 웹툰 인기를 반영한다.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고, 뉴스를 읽고, 저녁 식사를 주문한다. 젊은 미국 독자들은 만화를 모두 스마트폰으로 웹툰 본다.”―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일하다가 웹툰 작가가 됐다.“한국 공포 웹툰 ‘기기괴괴’를 본 뒤 웹툰에 빠지기 시작했다. 네이버웹툰의 아마추어 웹툰 플랫폼 ‘캔버스’에 작품을 올렸다가 정식 연재 제안을 받았다. 네이버웹툰 영어 홈페이지에서 작품이 10위 안에 들자 웹툰 작가를 정식으로 한번 해 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낯선 일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신났다.”―그리스·로마 신화에 상대적으로 덜 친숙한 한국 독자도 ‘로어 올림푸스’에 빠져들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로어 올림푸스’가 읽힌다는 것은 매우 뿌듯한 일이다. 영어로 처음 연재된 웹툰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라 놀랍다. 이야기의 힘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 넘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지금 내 컴퓨터 바탕화면은 한국 팬이 직접 그린 ‘로어 올림푸스’의 팬아트(유명 그림을 팬들이 따라 그린 그림)다.”―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현재로선 ‘로어 올림푸스’ 연재에 집중하고 싶다. 언젠가는 소설도 써보고 싶은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우선은 낮잠을 길게 오래 자고 싶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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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쓰겠다는 꿈 있어 ‘파친코’ 완성 30년 버텨”

    “많은 한국 사람들이 서울대에 입학하길 꿈꾸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서울대에서 강연을 하게 돼 기쁩니다. 저도 여기서 공부하고 싶어지네요(웃음).” 서울 관악구 서울대미술관 오디토리엄에서 22일 열린 북토크에서 장편소설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54)는 단상에 오르자마자 서울대 학생 200여 명에게 농담을 던졌다. 이날 ‘소설 파친코의 저자, 이민진 작가와의 대화’는 삼성행복대상,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온 그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가 초대해 열렸다. 그가 한국에 온 건 올해 8월 후 3개월 만이다. 그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어떻게든 순두부찌개를 먹으려 한다”는 글을 올리며 방한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 그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위로로 강연의 말문을 열었다. “짧은 시간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속상했습니다. 참담했고요. 왜 어린 친구들이 희생됐는지, 왜 사람들이 모이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게 됐는지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학생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이 작가는 솔직하게 답했다. 한 남학생이 ‘파친코’에서 재일교포에 대한 남북의 지원 문제를 다루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다루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한 재일교포들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그 의사를 존중했다”고 말했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인 그가 2007년 남편이 일본에서 근무할 때 재일교포들을 인터뷰한 뒤 쓴 작품이다. 한 여학생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면서 차별당한 적이 있냐고 질문하자 그는 “그렇다. 하지만 이민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다”고 했다. 또 다른 여학생이 “‘파친코’를 쓰는 데 30년이나 걸렸는데 그 세월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나. 난 매번 무언가를 하다가 관두고 싶다”고 묻자 그는 학생을 바라보며 차분히 답했다. “다들 ‘파친코’로 성공한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는데요, 전 20대 후반에 변호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남들이 모두 말리는 작가의 길을 선택했어요.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경험한 것과 느낀 것, (재일교포에 관한) 역사에 대해 쓰고 싶다는 꿈이요.” 그는 현재 집필 중인 장편소설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에 대해 말하며 학생들에게 숙제 같은 말을 던졌다. “교육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다 새 작품을 쓰게 됐어요. 여러분이 학원에 가는 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그 목표가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건지 생각하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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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좋은 교육은 밥상 차려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

    경남 하동군에 사는 오인태 시인(60·사진)은 저녁이면 손수 밥상을 차린다. 씨감자를 쪼개 넣고 바지락을 듬뿍 넣은 뒤 쑥을 올리면 밥 한 그릇은 뚝딱 비울 수 있는 바지락감자쑥국 완성. 따끈한 밥과 함께 두릅을 데쳐 초장에 찍어 먹으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어쩐지 오 시인은 행복하다가도 밥상 앞에서 울컥 목이 멘다. 씨감자가 귀했던 어릴 적 보릿고개도 떠오르고, 혼자 밥 먹는 것도 서글퍼서다. 그럴 때마다 오 시인은 차린 밥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글도 썼다. 오늘 난 이렇게 밥상을 차려 먹었다고. 떨어져 있더라도 함께 밥 먹는 것처럼 함께 살아가자고. 지난달 에세이 ‘밥상머리 인문학’(궁편책)을 펴낸 오 시인은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멀리 사는 친구들과 함께 밥 먹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2012년부터 소셜미디어에 저녁 밥상을 찍어 올렸다”고 했다. 1991년 등단한 오 시인은 36년 동안 객지를 떠돌며 초등학교 교사와 장학사 등으로 일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직업이 교사다 보니 경남 거창군과 남해군, 하동군 등에서 가족과 떨어져 떠돌이 생활을 많이 했어요. 덕분에 여러 고장 제철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도 있었죠. 한국인은 인사말로 ‘밥이나 먹자’고 하잖아요? 음식을 차린 뒤 친구들에게 같이 밥 먹자란 인사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책에는 오 시인이 2012년부터 차린 수천 개의 밥상 가운데 52개를 골라 이에 대한 단상을 정리했다. 결을 살려 찢은 송이를 넉넉히 넣어 송잇국을 끓이곤, 호박잎으로 겹겹이 싸서 송이를 구워주던 아버지의 사랑을 회고한다. 멸치를 우려 낸 뒤 다진 마늘, 쪽파, 통깨,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올린 잔치국수를 차려낸 뒤 잔치국수 먹으니 잔칫날이라고 너스레 떤다. 개다리소반 위에 소담하게 올린 밥상을 보다 보면 오 시인의 진솔한 마음이 전해진다. “혼자 밥상을 차리다 보면 들에서 일하다 돌아와 앞치마를 두르고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생각나요. 어머니를 보면서 사랑을, 인생을 배웠죠. 함께 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 나누던 옛날처럼 밥상을 매개로 공동체 의식도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오 시인은 현재 전교생이 35명인 하동군 묵계초 교장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다시 밥상 얘기를 꺼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가장 좋은 교육은 밥상을 차려주고 함께 밥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다른 것보다 먼저 아침밥부터 챙겨주세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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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다리소반에… 저녁 밥상 차리는 시인

    오인태 시인(60)은 저녁이면 손수 밥상을 차린다. 씨감자를 쪼개 넣고, 바지락을 듬뿍 넣은 뒤 쑥을 올리면 밥 한 그릇은 뚝딱 비울 수 있는 바지락감자쑥국 완성. 따끈따끈한 밥과 함께 두릅을 데쳐 초장에 찍어 먹으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어쩐지 오 시인은 밥상 앞에서 울컥 목이 멘다. 씨감자가 귀했던 어린시절 보릿고개도 생각나고,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서글퍼서다. 그럴 때 마다 오 시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밥상 사진을 찍어 올리며 글을 썼다. 오늘 나는 이렇게 밥상을 차려먹었다고, 떨어져있더라도 함께 밥을 먹는 것처럼 살아가자고. 최근 에세이 ‘밥상머리 인문학’(궁편책)을 펴낸 오 시인은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떨어져있는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2012년부터 SNS에 저녁 밥상을 찍어 올렸다”고 했다. 그는 1991년 등단한 시인이자 36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 장학사로 일한 교육자다. “교사라는 직업 때문에 경남 거창군, 남해군, 하동군, 진주시 등 홀로 떠돌이 생활을 많이 했어요. 덕분에 여러 고장의 제철음식을 맛보고 차려먹게 됐죠. 한국 사람들이 인사말로 ‘밥이나 먹자’고 하듯 음식을 차리곤 친구들에게 같이 밥 먹자 해보고 싶었습니다.” 신작엔 그가 2012년부터 쓴 수백 개의 밥상 중 52개 밥상과 이에 대한 단상이 담겼다. 그는 결을 살려 찢은 송이를 넉넉히 넣어 송잇국을 끓이곤 호박잎으로 겹겹이 싸서 송이를 구워주던 아버지의 사랑을 회고한다. 멸치를 우려 낸 뒤 다진 마늘, 쪽파, 통깨, 고춧가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올린 잔치국수를 차려낸 뒤 잔치국수 먹는 날이 잔칫날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개다리소반 위에 밥, 반찬, 국 한 그릇만 올린 밥상을 보다보면 오 시인의 진솔한 마음이 전해진다. “혼자 밥상을 차리다보면 들에서 일하다 돌아와 앞치마를 두르고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생각나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사랑을, 인생을 배웠죠. 함께 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옛날처럼 밥상을 매개로 공동체 의식도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전교생이 35명에 불과한 경남 하동군 묵계초 교장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다시 밥상을 꺼내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가장 좋은 교육방법은 밥을 차려주고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다른 것이 아니라 아침밥부터 챙겨주세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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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도 안 나가던 그 책, 그래픽노블로 나왔네[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1944년 12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군 병사 빌리는 낙오된다. 추위에 떨면서 독일군을 피해 다니던 빌리는 나무에 기대 잠시 쉬다 갑작스레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다. 빌리는 1945년 포탄이 쏟아지는 독일 드레스덴에 숨어 있다가, 1955년 미국 뉴욕에서 성공한 사회인으로 대중 연설을 하고, 1976년 병원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다가 다시 1944년 12월로 돌아온다. 빌리는 자신이 어느 시공간으로 흘러갈지 통제할 수 없다. 다음에 인생의 어떤 부분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에 빌리는 늘 두려워한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이 1969년 발표한 장편소설 ‘제5도살장’의 내용이다. 전쟁을 겪은 사람은 전쟁이 끝나도 고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전쟁에 갇혀 있다는 점을 ‘시공간 여행’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쟁의 야만성을 고발한 ‘제5도살장’은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미국에서 한창이던 때 발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명작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빌리가 마치 정신분열을 겪는 것처럼 서술돼 읽기 난해한 작품으로도 불렸다. 하지만 ‘제5도살장’을 기반으로 만든 이 책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만화와 소설의 중간인 그래픽노블 형식을 취하면서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각색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각 등장인물의 성격은 에피소드가 담긴 세 컷의 만화로 표현한다. ‘롤런드 위어리’라는 인물이 과거에 타인을 때렸던 사건을 보여주면서 폭력적인 성향을 지녔다는 점을 전달하는 식이다. 그림 역시 훌륭하다. 흰 눈이 가득한 벌판을 초록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걸어가는 쓸쓸한 모습, 연합군의 폭격 직후 드레스덴이 달 표면처럼 황폐하게 변해버린 끔찍한 광경은 원작자의 글만큼 생생하다. 빌리가 갑작스럽게 외계 행성의 동물원에 전시되고, 외계인들이 빌리와 대화하는 장면처럼 원작자의 독특한 상상도 그림으로 그럴듯하게 살아났다. 최근 작품성은 높지만 가독성이 낮았던 명작의 그래픽노블이 국내에 출간되는 것도 이 같은 장점 때문일 것이다. 미국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1920∼1986)의 ‘듄 그래픽노블’(황금가지)은 지난해 2월 1권에 이어 지난달 14일 2권이 소개됐다. 러시아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죄와 벌 그래픽노블’(미메시스)도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최근 출간되는 그래픽노블은 ‘만화로 만든 ○○○’ 같은 책과는 다르다. 글의 분량이 만만치 않아 읽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작화 역시 수준이 높다. 어린이, 청소년보다는 성인 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외에선 이미 주류로 자리 잡은 그래픽노블이 국내 출판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명작 그래픽노블이 속속 출간돼 인기 끌기를 기대해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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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프랙털처럼… 위로는 아주 작은 단위에서 시작된다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수학에선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1975년 프랑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1924∼2010)가 처음 쓴 개념이다. 사실 자연에서도 프랙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안선의 한 부분을 가까이에서 보면 멀리서 봤던 전체 해안선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고사리의 커다란 잎은 작은 고사리 잎과 똑같이 생겼다. 프랙털을 인생에도 적용해 보자. 우리는 아침에 깨어나 오늘 뭘 할지 생각한 뒤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할 일을 끝내며 ‘하루’를 마감한다. 길게 보면, 봄부터 겨울까지 ‘1년’도 이렇게 흘러간다. 인생은 어떤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계획하고 준비하고 성년기에 열심히 일하다 노년기엔 ‘생애’를 되돌아본다. 하루와 인생은 어쩌면 프랙털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가 아닐까. 미국 예일대의 수학과 교수였고 망델브로의 ‘절친’이었던 저자(사진)는 “수학을 들여다보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독한 슬픔을, 이를 버텨낼 위로를 수학이 준다고 한다. 학창 시절 내내 우리를 힘겹게 했던 수학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잡념을 없앨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주장은 아니다. 수학은 자연에 숨겨진 법칙을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요지다. 저자는 프랙털을 거론하며 “큰 상실 안엔 작은 상실이 겹겹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 크게 슬퍼하는 건 그와 공유했던 사소한 일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함께 밥 먹고, TV 보며, 수다 떠는 작은 일상의 상실이 모여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는 커다란 상실을 이룬다. 마치 프랙털처럼. 이 때문에 우리가 인생의 큰 상실을 극복하려면 하루하루의 자그마한 상실부터 먼저 회복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x축과 y축으로 이뤄진 수학적 공간에 그린다면 어떻게 나타날까. x축은 시간이라 가정하고, y축은 두려움이나 슬픔, 화남 같은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그래프를 그리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는 감정을 제대로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 슬픔이 이 그래프에서 하나의 선을 그린다고 치자. 이때 이 선과는 만나지 않는 하나의 ‘불연속적인 경로’가 더 있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슬픔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감정의 선으로 슬픔의 무게를 덜어내자는 시도다. 수학에서 도형이나 입체를 다른 평면으로 옮긴다는 개념인 ‘투영’처럼 다른 곳으로 감정을 투영해 현재의 삶을 유지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수학 개념은 전공자나 수학에 해박한 이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감을 잡기 힘든 대목도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수학을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연관지어 설명해 읽는 이의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파고든다. 그래프로 인간의 감정을 그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다가도, 어머니를 잃은 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수학에서 감정이란 어떤 것인지 해답을 구하려는 모습은 울림이 컸다. 7년이 지난 뒤 아버지마저 여의고선 삶의 관심을 ‘투영’할 곳을 찾아 헤맸다는 고백은 괜스레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올해 7월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8월 서울대 학위수여식 축사에서 “수학은 어떤 무(無)모순적 정의도 허락한다”고 했다. 수학으로 인생을 정의해 보려고 했던 저자는 과연 ‘모순이 없는 정의’에 다다랐을까. 철학자들이 수학을 파고든 건, 어쩌면 수학이 인생에 대한 학문이란 걸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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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랙털 이론으로 인생을 이해할 수 있을까’…美 수학자의 진심 어린 조언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수학에선 ‘프랙털’이라고 부른다. 1975년 프랑스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1924~2010)가 처음 쓴 개념이다. 사실 자연에서도 프랙털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안선의 한 부분을 가까이에서 보면 멀리서 봤던 전체 해안선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 고사리의 커다란 잎은 작은 고사리 잎과 똑같이 생겼다.프랙털을 인생에도 적용해보자. 우리는 아침에 깨어나 오늘 뭘 할지 생각한 뒤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할 일을 끝내며 ‘하루’를 마감한다. 길게 보면, 봄부터 겨울까지 ‘1년’도 이렇게 흘러간다. 인생은 어떤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계획하고 준비하고 성년기에 열심히 일하다가 노년기엔 ‘생애’를 되돌아본다. 하루와 인생은 어쩌면 프랙털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가 아닐까.미국 예일대의 수학과 교수였고 망델브로의 ‘절친’이었던 저자는 “수학을 들여다보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지독한 슬픔을, 이를 버텨낼 위로를 수학이 준다고 한다. 학창시절 내내 우리를 힘겹게 했던 수학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고 있으면 잡념을 없앨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주장은 아니다. 수학은 자연에 숨겨진 법칙을 찾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요지다.저자는 프랙털을 거론하며 “큰 상실 안엔 작은 상실이 겹겹이 놓여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 크게 슬퍼하는 건 그와 공유했던 사소한 일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함께 밥 먹고, TV 보며, 수다 떠는 작은 일상의 상실이 모여 누군가를 떠나보냈다는 커다란 상실을 이룬다. 마치 프랙털처럼. 때문에 우리가 인생의 큰 상실을 극복하려면 하루하루의 자그마한 상실부터 먼저 회복해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x축과 y축으로 이뤄진 수학적 공간에 그린다면 어떻게 나타날까. x축은 시간이라 가정하고, y축은 두려움이나 슬픔 화남 같은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그래프를 그리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드러나는 감정을 제대로 파악해볼 수 있지 않을까.슬픔이 이 그래프에서 하나의 선을 그린다고 치자. 이때 이 선과는 만나지 않는 하나의 ‘불연속적인 경로’가 더 있다고 상상해보면 어떨까. 슬픔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감정의 선으로 슬픔의 무게를 덜어내자는 시도다. 수학에서 도형이나 입체를 다른 평면으로 옮긴다는 개념인 ‘투영’처럼 다른 곳으로 감정을 투영해 현재의 삶을 유지하자고도 저자는 말한다.책에 등장하는 수학 개념은 전공자나 수학에 해박한 이가 아니라면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감을 잡기 힘든 대목도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수학을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연관지어 설명해 읽는 이의 머리보다 가슴을 먼저 파고든다. 그래프로 인간의 감정을 그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다가도, 어머니를 잃은 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수학에서 감정이란 어떤 것인지 해답을 구하려하는 모습은 울림이 컸다. 7년이 지난 뒤 아버지마저 여의고선 삶의 관심을 ‘투영’할 곳을 찾아 헤맸다는 고백은 괜스레 뭉클해지기까지 한다.올해 7월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8월 서울대 학위수여식 축사에서 “수학은 어떤 무(無)모순적 정의도 허락한다”고 했다. 수학으로 인생을 정의해보려고 했던 저자는 과연 ‘모순이 없는 정의’에 다다랐을까. 철학자들이 수학을 파고든 건, 어쩌면 수학이 인생에 대한 학문이란 걸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 202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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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국아_같이먹짱… MZ들의 신박한 맛집 찾기 ‘아이돌 #’

    “이 음식점요? ‘아이돌 해시태그(#)’로 검색해서 찾아왔어요.” 서울 마포구의 한 고깃집에서 지난달 29일 만난 대학생 김태희 씨(20)는 맛집 찾는 요령에 대해 별거 아니라는 듯 해맑게 웃었다. 맛집과 아이돌이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김 씨는 “요즘 10대, 20대에겐 꽤나 알려진 방법”이라며 “소셜미디어에서 아이돌 해시태그가 달린 음식점을 검색했다”고 귀띔했다. 고깃집 사장인 이범 씨(40)도 “주말엔 고객의 80%가 아이돌 해시태그를 달기 위해 온 팬이거나 그 글을 검색해 찾아온 이들”이라고 했다. MZ세대의 맛집 찾기 방식이 달라졌다. 포털 사이트에서 주변 맛집을 검색하는 건 하수들. 소셜미디어에서서 아이돌 해시태그를 활용한다. 방법은 이렇다. 예를 들어, 갈비가 먹고 싶다면 소셜미디어에 갈비를 검색한 뒤 여기에 아이돌 이름이 달린 해시태그가 있는지 확인한다. 적중률을 높이려면 아이돌 굿즈가 들어간 사진이 있는지도 봐야 한다. ‘찐’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포토카드나 캐릭터 인형과 함께 음식이나 식당을 찍어 올리면 더 맛있는 음식점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돌 해시태그 맛집’은 팬들의 아이돌 사랑에서 비롯됐다. 약 1, 2년 전부터 좋아하는 가수의 음식 취향을 파악한 뒤 그들에게 어느 식당이 맛있는지를 알려주고픈 마음으로 해시태그를 달았다고 한다. ‘#승연아_우즈야_여기야’ 식이다. 이런 팬 문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같은 세대에겐 ‘직접 발품 팔아 찾은 진심의 맛집’이란 인식이 퍼진 것이다. 동아일보가 최근 MZ세대에게 ‘신상 맛집’으로 떠오른 음식점 8곳을 찾아보니 해시태그의 용도는 좀 더 구체화됐다. 고급 레스토랑의 경우 경제력이 있는 30대 이상 팬이 많은 강다니엘의 팬이 달아놓은 해시태그를 참조한다. 중국 요리가 먹고 싶을 땐 중국 국적 멤버가 많은 아이돌 그룹을 검색한다. 마포구의 한 떡볶이 가게에서 만난 윤정민 양(16)은 “보이그룹 NCT를 검색해 왔다. 멤버가 23명이라 게시물도 많은 게 NCT 해시태그의 장점”이라고 했다. MZ세대에게 이런 유행이 퍼지면서 아이돌 해시태그만 따로 모아둔 온라인 검색 사이트가 등장했을 정도다. 요즘엔 아이돌 해시태그로 미술전시나 여행 장소를 찾기도 한다. 대학생 김소민 씨(23)는 “9월에 아이돌 해시태그 검색 사이트에서 ‘강릉’을 검색해 팬들이 추천한 강릉의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아주 좋았다”며 “아이돌 해시태그 맛집에 대한 신뢰가 높아 자연스레 다른 분야 추천도 믿고 찾아가게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돌과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청년 세대의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는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팬들의 추천은 좋아하는 아이돌 이름을 걸고 올리기 때문에 진실성과 신뢰성이 담보된다고 여긴다”며 “온라인에 광고나 다름없는 낚시성 후기가 넘쳐난다는 현실에서 젊은 소비자들이 디지털 리터러시의 새 활용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돌 해시태그 활용도가 높아지자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아이돌 해시태그로 위장한 광고가 조금씩 생겨나는 추세”라며 “MZ세대의 문화를 돈벌이로 악용하면 이 역시 결국 신뢰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원영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졸업}

    •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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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연아_여기야”… MZ는 ‘찐 맛집’ 찾는 방법도 다르다

    “여기요? ‘아이돌 해시태그’로 검색해서 찾아왔어요.”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갈비 음식점에서 만난 대학생 김태희 씨(20)는 어떻게 이곳을 찾아왔냐는 질문에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김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갈비’를 검색한 뒤 아이돌 해시태그가 있는 글을 참고해 음식점을 정했다”며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 음식 사진과 함께 아이돌 가수 팬만 가지고 있는 ‘포토카드’를 음식 사진과 함께 찍어 올린 글을 주로 찾았다”고 했다. 음식점 사장인 이범 씨(40)는 “주말 저녁 손님의 80%가 아이돌 해시태그를 달기 위해서 온 팬이거나, 팬이 올린 글을 검색해서 찾아온 손님”이라고 했다.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은 이른바 ‘아이돌 해시태그’를 활용해 음식점을 찾는다. 포털사이트가 각종 광고로 뒤덮이면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는 MZ세대가 아이돌 팬덤을 이용하고 있는 것. 아이돌 가수 ‘우즈’의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게 음식점을 추천하기 위해 해시태그 ‘#승연아_우즈야_여기야’를 달아놓는 문화를 활용하는 식이다.지난달 29일 동아일보는 ‘아이돌 해시태그’로 MZ세대 사이에서 맛집으로 떠오른 서울 시내 8곳의 음식점을 방문했다. 그 결과 아이돌 가수에 따라 해시태그의 용도는 다양했다. 예를 들어 고급 레스토랑을 찾을 땐 경제력을 갖춘 30대 이상의 팬이 많은 가수 강다니엘의 팬이 달아놓은 해시태그를 찾았다. 그룹 ‘NCT’ 중국 국적 멤버 윈윈의 팬은 마라탕, 훠궈 등 중식을 많이 추천했다. 마포구 떡볶이 가게에서 만난 윤정민 양(16)은 “보이그룹 ‘NCT’ 해시태그로 이곳을 찾았다”며 “멤버 수가 23명이라 게시물 수가 많은 점이 ‘NCT’ 해시태그의 장점”이라고 했다.아이돌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 중에서도 각종 ‘굿즈’로 인증한 글이 신뢰도가 높다. 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캐릭터 인형, 엽서, 포토카드를 함께 올리면 팬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미쉐린(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이 많은 음식점을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마포구 피자집 직원 김동욱 씨(26)는 “손님 중 30% 이상이 SNS에서 ‘아이돌 해시태그’를 이용해 찾아온다”며 “아이돌 팬은 도착 직후나 음식 나왔을 때 굿즈를 꺼내서 사진 찍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유행이 급속히 퍼지면서 올 초엔 수백 개의 아이돌 해시태그를 모아둔 온라인 검색 사이트가 등장했다. 또 미술전시, 서점, 여행지를 찾는 방식으로 아이돌 해시태그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대학생 김소민 씨(23)는 “올 9월 아이돌 해시태그 온라인 검색 사이트에 ‘강릉’을 검색해 미술관에 다녀왔다”며 “아이돌 해시태그로 맛집을 찾아간 뒤 실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식당 아닌 다른 장소도 찾게 됐다”고 했다.전문가들은 아이돌 해시태그 검색법이 진화된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의 일종이라고 해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포털사이트는 광고성 후기들로 점령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워졌다는 걸 경험적으로 확인한 소비자들이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이라며 “팬들의 후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의 이름을 걸고 적는다는 점에서 진실성과 신뢰성이 상당히 담보된다”고 했다. 임종수 세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최근 검색법이 알려지면서 아이돌 해시태그를 위장한 광고도 생겨나고 있다”며 “포털사이트처럼 아이돌 해시태그도 신뢰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최원영 인턴기자 고려대 미디어학부 졸업}

    • 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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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율성의 시대서 벗어나 회복력의 시대로 나아가야”

    “먼저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애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사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보다 엄격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노동의 종말’(1996년·민음사) ‘소유의 종말’(2001년·민음사) ‘육식의 종말’(2002년·시공사) 등으로 유명한 미국 경제·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77·사진)이 1일 ‘회복력 시대’(민음사)를 전 세계 동시 출간했다. 출간을 맞아 7일 e메일 인터뷰한 리프킨은 “인류는 효율성에만 매몰돼 각종 부작용에 시달렸다”며 “천연자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도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1만 년 동안 인류는 자연을 인간에 적응시키며 멸종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이제 다시 인류가 자연에 적응할 차례입니다. (심각한 위기지만) 지구의 생명을 재생시킬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리프킨은 신간에서 “효율성만 추구하던 진보의 시대에서 벗어나 회복력의 시대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글로벌 그린 뉴딜’(2020년·민음사)에서 기후변화가 초래한 위기를 지적했다면, ‘회복력 시대’에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소한 환경 분야에선 이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10년 내 인류는 태양과 바람을, 20년 내 바다를 공유할 것입니다.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프라도 2040년이면 회복력 시대의 인프라로 바뀔 거예요. 새 인프라는 기존처럼 중앙집권적인 게 아니라 ‘완전 분산’적 형태로,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될 겁니다.” 리프킨은 생태계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라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초국적 협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계의 경계는 인간이 설정한 경계와는 무관합니다.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적 재난은 특정 국가나 정부가 홀로 감당할 수 없어요.” 압축 성장의 길을 걸어온 한국이 이런 회복력의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리프킨은 오히려 긍정적 요소가 많다고 내다봤다. “동양 문명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강점을 가졌어요. 특히 한국은 오랜 기간 주변 강국의 영향을 받으며 외부에 대한 ‘반응성’에 민감합니다. 서양보다 훨씬 빨리 회복력 시대로 전환할 수 있을 겁니다.” 리프킨은 한국 청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도 있다고 했다.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밖으로 나가 자연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으세요. 온라인 속 아바타에 갇혀 실제 발 딛고 있는 지구로부터 분리되는 건 파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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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노랫말에 담긴 인생을 읽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물에 빠져 죽었으니/장차 임을 어이할꼬.’ 에세이 ‘인생의 역사’(난다·사진)를 지난달 31일 펴낸 문학평론가 신형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46)는 책에서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를 문헌이 아닌 하나의 시로 읽어낸다. 보통 문헌연구자들은 주인공인 백수광부를 무당으로 보지만 신 교수는 그를 ‘삶이 힘들어 자주 강가에 서 있는 남성’으로 상상한다. 어쩌면 백수광부의 처는 위태로운 남편을 말리러 강가로 달려간 적도 여러 번 있지 않을까. 백수광부의 죽음을 지근거리에서 목도한 뱃사공이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노라 고개를 저으며 처의 애달픈 절규를 노래로 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 교수는 “수천 년 전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들어본 적 없는 그 먼 노래가 환청처럼 들린다”고 고백한다. 1일 전화 인터뷰를 한 신 교수는 글처럼 말투도 무척 차분했다. 한마디 한마디마다 적확한 표현을 찾으려고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그는 “공무도하가는 현대 예술가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작품이란 점에서 현재성이 풍부한 시”라고 말했다. “가수 이상은(52)은 노래 ‘공무도하가’를 불렀죠. 작가 김훈(74)은 장편소설 ‘공무도하’(문학동네·2009년)를 썼고요. 진모영 감독(52)은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찍었습니다. 공무도하가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감동을 주는 만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는 문학이란 뜻인 거죠.” 신 교수는 ‘인생의 역사’에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시 25편과 이에 얽힌 작품들을 다뤘다. 황동규(84)와 최승자(70), 나희덕(56) 등 국내 시인의 작품뿐만 아니라, 밥 딜런(81)과 윤상(54) 등 국내외 대중음악가의 노랫말도 시로 해석한다. 일반인에겐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한강(52)의 시를 다루기도 했다. “한강은 시로 먼저 등단했어요. 사실 소설조차 시적으로 쓰는, 경계가 없는 작가죠. 시집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2013년) 단 한 권이지만 의미 있는 시를 골라 넣은 시인입니다.” 신 교수는 문학평론가와 에세이스트로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2008년 펴낸 문학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는 물론이고 에세이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2011년)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2014년) 등도 인기를 끌며 ‘스타 문학평론가’로 불린다. 이번 신작 역시 출간 일주일 만에 2만 부가 넘게 팔렸다. “스타란 말이 부끄럽지만 평론가로서 개념을 정리하는 훈련을 받음과 동시에 문학 작품을 읽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배운 것 같아요. 문학 작품을 읽은 뒤 이를 개념화하기보단 느낀 감정을 문장으로 쓰는 데 성취감을 느낍니다. 평론가지만 작가적인 색채가 강한 점을 독자들이 인정해주신 게 아닐까 싶네요.” 신 교수는 책에서 “인생은 시처럼 행과 연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학은 그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답변은 역시 무척 담담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 데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그야말로 ‘직업’이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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