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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57)는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로 아버지처럼 대구를 기반으로 한 의원이다. 남경필 경기도 지사(50)는 경기 수원에서 아버지 남평우 전 의원의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김세연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43)은 부산에서 아버지 김진재 전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부자를 합치면 각각 국회의원 5선, 7선, 7선이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아버지들이 모두 보수 정당에 속했고 아들들도 그 계보를 잇는 보수 정당 소속이다.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냈고 자신의 노력보다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권에 진입했다. 중요한 공통점 하나를 더 들자면 지금 보수 정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남 지사와 김 의원은 국회선진화법 처리에 앞장섰다. 유 원내대표는 김영란법 처리에 앞장섰다.집안의 실용적 정서가 중도로 나는 이들의 중도 성향이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정치하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서 배운 오랜 경험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보수적인 아버지와 중도적인 아들의 차이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보수든, 중도든, 무엇이든 시대의 대세를 좇아 선거에서 이기는 게 최선이라는 정치가 집안 특유의 실용적 정서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시대는 중도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중도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도는 원칙 없는 중도여서는 안 된다. 국회선진화법 식의 합의 정치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영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거릿 대처 총리 이전까지를 합의의 시대라고 부르지만 그때의 합의는 여야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한 것이지 다수결의 원칙을 저버리고 한 것이 아니다. 김영란법은 꼭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민간 언론인을 공직자처럼 취급한 김영란법은, 그 법의 국회 통과 직후 1주일간 해외에 나가 자기 발언의 정치적 계산을 하고 돌아온 김영란 씨가 뭐라고 말했든 위헌이다. 언론인은 김영란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운 것은 야당의 법사위원장이 위헌을 외치는데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처리해 버리는 그 행태다.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라는 말이 있다. 흔히 ‘기성체제’로 번역되는 이 말은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쪽의 체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립하는 세력이 교묘히 결합해 하나의 기득권을 형성하는 상황을 표현한다. 기득권 지키는 중도 안 된다 법안 처리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높인 국회선진화법은 정치에서 이스태블리시먼트의 형성을 뜻한다. 이 체제에서는 치열하게 싸워 1등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2등이 돼도 밀려날 가능성이 줄어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버지 대부터 지켜야 할 기득권이 있는 정치인 2세들이 원하는 체제다. 사회가 대립하며 크게 흔들리는 것은 이들의 기득권 유지를 불안하게 할 뿐이다. 이것이 이들이 의식하든 않든 중도를 지향하는 이유다. 그런 체제를 만들 수 있다면 다수결의 원칙을 허물어도, 공적-사적 영역의 구별 같은 건 무시해 버려도 상관없는 것이다. 유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비서관들을 ‘얼라들’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시류에 편승해 간단히 무시해 버리는 정치인 2세들이야말로 우리 정치를 망칠 ‘얼라들’이다. 중도는 원칙을 무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되 그것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보여 줄 때 가능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해 조문록에 영어로 기록을 남겼다.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던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TV로 보면 일단 즉석에서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세 문장을 썼는데 ‘한국 국민들은 (리 전 총리의 죽음에 대한) 모든 싱가포르 국민들의 애도에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로 쓴 마지막 문장 ‘The Korean people join all of Singapore in mourning his loss’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his loss’는 싱가포르 국민이 리 전 총리를 잃은 게 아니라 리 전 총리 자신이 무엇인가를 잃었다는 느낌을 준다. 영어를 일상어로 쓰는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어색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냥 쉽게 his death나 his passing으로 쓰는게 mourn이라는 동사와 자연스럽게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영어 뉴스를 보면 ‘리콴유 씨를 잃은 걸 애도하다(mourn the loss of Mr. Lee Kuan Yew)’란 표현이 많이 나온다. 영문법에 따르면 ‘the loss of Mr Lee Kuan Yew’는 ‘his loss’로 바꿔 쓸 수 있다. his 같은 소유형용사는 의미상 주어로도, 목적어로도 쓰이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쓴다면 못 쓸 바도 아니다. 실제 관용적으로 그런 표현이 많이 쓰인다. ▷박 대통령은 영애(令愛) 시절부터 영어를 잘했다. 1979년 리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찬에서 영어 통역을 했을 정도다. ‘his loss’ 같은 관용적 표현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표현이다. 실제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조문에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도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홍가혜 씨가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 잠수부를 사칭한 사람이 된 것은 방송작가가 “민간 잠수부냐”고 물어서 “네”라고 답한 것이 발단이었다. 홍 씨는 자신이 민간인인데 잠수를 할 줄 아니까 무심코 민간 잠수부라고 답했을 뿐이다. 홍 씨가 방송 인터뷰에서 한 “세월호 안의 생존자들과 교신했다”는 등의 말은 다른 잠수부들로부터 전해 들은 것을 허위라는 인식 없이 전했을 뿐이다. 해양경찰청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홍 씨가 올해 1월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이유다. ▷홍 씨는 과거에도 유명 아이돌 가수의 사촌언니를 사칭했다는 등 상습적 거짓말쟁이임을 주장하는 보도들이 잇따라 나왔으나 재판 과정에서 사실무근으로 확인됐다. 홍 씨는 무죄 선고를 받은 후 “10분의 방송 인터뷰가 내가 살아온 인생 27년을 바꿔놓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홍 씨는 구속돼 101일간 수감생활을 했고 인터넷 등에서 심한 비난에 시달렸다. ▷홍 씨의 복수가 시작됐다. 자신을 향한 비난성 댓글을 올린 인터넷 이용자 800여 명을 모욕 혐의로 무더기로 고소했다. 고소장이 대거 접수돼 일선 경찰서와 검찰청의 업무가 차질을 빚을 정도다. 고소 취하를 조건으로 당사자 간 합의도 이뤄지고 있다. 철없는 자녀들이 올린 댓글에 부모들이 합의에 나서기도 한다. 합의금은 적어도 200만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800명에게 200만 원씩만 받아도 16억 원이다. ▷홍 씨는 확신에 차서 “사람 소리 듣고, 갑판 벽 하나 사이를 두고 신호도 확인했고 대화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뒤를 들어보면 다른 잠수부들의 증언을 전하는 것이다. 홍 씨를 처벌하려면 증언 자체가 허위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당시 세월호 내부 상황은 하늘만이 알고 있어 입증이 불가능하다. 판사가 홍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피고인의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죄는 홍 씨의 진실을 밝힌 게 아니라 거짓을 밝히지 못한 것이다. 홍 씨도 억울한 점이 없진 않겠지만 고소 남발은 자제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유머러스하게 한 말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그렇다. 19일 청와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한 말이다. 그날 아침신문에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라는 기사가 실렸다. 중동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청년들 일자리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중동 근무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아 듣기 거북했다. ▷그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한 카페에서 청년들과 모임을 가졌다. 일부 청년단체 회원들이 영화 ‘친구’의 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를 패러디한 팻말 “청년들을 중동으로 보내라니, 니가 가라”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1970년대 건설근로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술 오락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중동에서 사막의 열기와 싸우며 돈을 벌었다. 그 시절 청와대에서 살았던 박 대통령이 ‘중동 가라’는 말을 할 때는 근로자 가족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봤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가 너무 없다’는 기자의 비판에 배석한 장관들을 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져 웃음을 끌어냈다. 그러고는 기자를 향해 “청와대 출입하시면서 내용을 너무 모르시네요”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기자의 날 선 질문을 유머로 받아넘겼다고 찬사를 보낸 이도 있었지만 그때 장관들이 웃는 것 말고 무슨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박 대통령도 자신이 유머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수첩에 재미난 말을 써가지고 다니면서 들려주곤 했다. 썰렁한 유머여도 나름대로 애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즉흥적인 유머는 공감 능력의 소산이다. 전개되는 상황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고 미묘한 균열의 선을 파고들어가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효과적인 유머를 하고 싶다면 공감 능력부터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이념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프랑스 특파원 시절 캠핑을 간혹 했다. 유럽의 여름은 건조한 데다 해가 길어 캠핑하기에 그만이다. 가격도 싸지만 자연에서 고기 굽고 와인 한잔 하면서 느긋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래도 텐트 생활은 불편하다. 새벽의 텐트 속은 한여름이라도 춥다. 밤중에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정말 귀찮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동터 오는 아침의 기운을 느껴봤다면 캠핑의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나도 은퇴한 뒤에 캠핑장이나 차려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을 때 한국에도 캠핑 열기가 불고 있었다. 캠핑이 하고 싶어 인터넷에서 캠핑장을 찾아봤다. 공영 캠핑장은 연락하는 곳마다 예약이 차서 포기하고 결국 사설 캠핑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예약을 했다. 찾아가 보니 민박집 넓은 마당에 텐트를 치도록 해놓고 장사하는 곳이었다. 캠핑 한번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왔다. 5, 6년 전 일이다. 지난 주말 사고가 난 인천 강화군 캠핑장도 민박집이 있고 앞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이미 텐트가 쳐져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그동안 급속히 늘어난 이른바 글램핑장이다. 캠핑장으로만 제공하면 1박에 1만∼3만 원을 받지만 텐트를 쳐놓고 제공하면 1박에 10만 원도 넘게 받는다고 하니 웬만하면 다 글램핑장으로 바뀌었겠다 싶었다. 글램핑이라고 하니까 과거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생각난다. 사막에서 텐트 치고 생활하는 유목민인 베두인족 출신의 카다피는 외국 순방 때도 텐트 생활을 선호했다. 카다피가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엘리제궁 정원에 텐트를 치고 묵어 화제가 됐다. 이런 게 진짜 ‘호화로운 캠핑(glamorous camping)’인 글램핑이라고 할 수 있다. 글램핑은 과거 귀족이 하인들을 동원해 텐트를 쳐놓고 자연을 즐기던 것을 모방하면서 시작됐다. 캠핑은 돈 없는 서민, 글램핑은 부유층이 시작한 것으로 계통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성행하는 글램핑은 스스로 텐트를 칠 필요가 없다는 점이 글램핑과 같을 뿐 캠핑을 약간 업그레이드한 것에 불과하다. 글램핑을 흉내 낸다고 TV 냉장고 선풍기 컴퓨터까지 다 들여놓았는데, 정작 진짜 글램핑은 자연친화적인 성격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시설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짝퉁 글램핑이다. 불에 잘 견디는 텐트는 어디에도 없다. 텐트 속으로는 손전등 정도나 갖고 들어간다는 것이 상식이다. 텐트 안에 온갖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방치하면 기온차가 심한 야외에서는 이슬이 맺혀 누전이나 합선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라면 짝퉁 글램핑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할 때 이런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느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가고 국민안전처가 출범한 지도 넉 달이 넘었다. 안전처의 촉각에 짝퉁 글램핑의 위험성이 감지되지 않았다면 ‘안전 한국’을 만든다는 막대한 사명을 띠고 출발한 안전처는 실패한 것이다. 안전처는 캠핑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이라고 떠넘긴다. 그런 소관 타령은 캠핑이 짝퉁 글램핑으로 변질돼 숙박시설의 규제를 피하면서 사실상의 숙박시설로 운영된 점을 무시한 것이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더 잘 터지기 마련이다. 안전은 이 정권이 좋아하는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수준을 절대 넘어설 수 없다. 현장을 누비는 말단의 공무원들이 새로운 위험요소를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분권적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우리나라는 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선진국은 그렇지 않다. 선진국의 법관들은 정년 근무를 원칙으로 삼고 중도 퇴직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법관이 정치나 행정으로 외도하는 것은 더 생각하기 어렵다. 선진국 의회에 변호사 출신은 많아도 법관 출신은 거의 없다. 우리 국회에는 법관 출신이 수두룩하다. 대법관 출신은 총리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법관에 대한 상이 잘못 정립돼 있다. ▷한국에 정년까지 근무하는 법관이 거의 없는 것은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있어서다. 고법 부장판사가 못 될 것 같으면 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대법관이 못 될 것 같으면 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옷을 벗는다. ‘용퇴’로 포장하긴 하지만 전관예우를 받을 차례가 온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대법관만큼은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는 풍토가 있었다. 대법관은 종착지로 여겼지 전관예우를 위한 경유지로는 여기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전관예우의 꽃이 대법관 출신으로 바뀌었다. 상고사건이 늘어나면서 대법관 1명이 한 해 처리하는 사건이 3000건이 넘는다. 대부분 사건은 대법관이 훑어보지도 못한 채 재판연구관들 선에서 걸러져 기각된다. 대법관이 한 번이라도 사건을 훑어보려면 상고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이 올라 있어야 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데 그 도장을 서로 받으려 하니 도장 값이 3000만∼5000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불허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관 출신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법률에 근거가 없는 개업 불허는 잘못이다. 하지만 도장 하나 찍어주는 것만으로 수천만 원씩 버는 구조를 뻔히 아는데 대법관 출신이 당연한 듯이 변호사 개업에 나서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대법관 정도 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있어야 한다. 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옛 동료나 후배에게 부담을 주는 소송사건은 수임을 자제하는 것이 법 이전의 도리일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얼마 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된 나경원 의원을 16일 예방한 자리에서 “미인이시다”고 말해 외교적 결례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도 미인에게 관심이 많고 미인이 인기가 많다”는 말을 덧붙였다. 서시 양귀비로부터 장청에 이르기까지 미인이라면 정신을 못 차린 중국 정치인 얘기를 잘 알기에 그가 우리 국회의 외교 수장에게 던진 찬사가 때와 장소를 가린 절제된 말인지 의문이 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가 만찬장에서 날씨가 서늘해지자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의 어깨에 손수 담요를 둘러주어 구설에 올랐다. 이 장면은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를 통해 생중계됐으나 이후 중국 당국의 검열로 인터넷 포털에서 삭제됐다. 중국인에게는 그 얼마 전 부인과 이혼한 푸틴 대통령이 미녀 가수 출신의 펑 여사에게 수작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지난달 애슈턴 카터 신임 국방장관 취임 선서식에서 카터 장관의 부인 스테퍼니 씨의 어깨를 30초가량 주무르며 귓속말을 했다. 카터 장관이 연설 도중 몇 차례 아름다운 부인이 있는 쪽을 돌아봤지만 바이든 부통령의 스킨십은 멈출 줄 몰랐다. 바이든 부통령은 그저 친숙함의 표현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그 장면을 TV로 본 여론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에티켓은 미묘한 데가 있다. 미묘하니까 규칙이 아니라 에티켓이다. 한마디로 결례다 아니다 말하기 어려운 게 많다. 그러나 결례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면 그것으로 에티켓은 실패다. 우리나라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중국보다 못한 나라지만 그렇다고 일로 여성을 만날 때 미인인지 아닌지로 인사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미인’이 여성을 향한 찬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찬사는 여성을 미모로 우선 판단한다는 느낌을 준다. 에티켓은 모자라도 안 되지만 지나쳐도 안 된다. 과공(過恭)이 비례(非禮)이듯 과찬(過讚)도 비례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두뇌’로 불렸던 자크 아탈리 씨를 2007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와 카를 마르크스의 전기를 책으로 냈다. 두 인물을 비교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마르크스는 서구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위험을 간파했던 첫 사상가였고 간디는 서구의 바깥에서, 세계화로 초래된 식민 지배 문제에 ‘비폭력’이라는 예상외의 방식으로 응답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상호보완적이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맞은편 의회광장에 14일 간디의 동상이 세워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제막식에서 “이 동상은 ‘세계 정치’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가운데 한 명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과거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동시대 인물이었던 간디에 대해 “영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반쯤 벌거벗은 선동꾼이 총독청 계단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놀랍고 역겹다”고 비하하고 인도의 독립에 반대했다. 이제 처칠과 간디의 동상이 나란히 의회광장에 서 있다. ▷정작 서구인이었던 마르크스는 세계사적 불평등을 폭력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간디는 그 불평등을 몸소 겪은 식민지 사람이었음에도 비폭력을 들고 나왔다. 간디의 사상은 비슷한 식민 지배를 겪은 우리도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간디의 비폭력은 순응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불평등과 싸우기 위해 폭력 이외의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고 그 핵심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방송된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대국(大局)적인 미래지향 비전’을 강조했다. ‘전체 맥락에서 본다’는 대국은 일본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말이지만 정작 한중일 관계를 대국적으로 보는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것이 요새 일본 정치인들이다. 대국은 캐머런 총리가 말한 ‘세계 정치’와도 울림이 비슷하다. 간디도 위대하지만 인도와의 양국 관계를 넘어 세계사적 맥락에서 간디를 인정한 영국도 옹졸하지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한강은 서울 한가운데를 흐르고 대동강은 평양 한가운데를 흐른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가 어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의 토론회에서 “북한의 현 정권을 인정하고 박정희식 ‘개발독재’ 비전을 이식해 ‘대동강의 기적’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노하우를 김정은 독재 정권에 전수하면 북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그럴듯한데 나이브하다. ▷좌 교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장 출신이다. 보수적인 시장경제학자의 발언을 누구보다도 반긴 것은 진보 진영이다. 박정희 독재를 히틀러 독재에 비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던 진보 진영이지만 박정희 개발독재 노하우를 김정은에게 전수하자는 데는 박수를 보냈다. 이것은 비판만 하던 박정희 개발독재의 성과를 은연중에 인정한 것이긴 하지만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다. ‘박정희나 김정은은 다 비슷한 독재자이고 박정희가 한 것을 김정은이라고 못하겠느냐’는 것인데 사실 진보 진영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전제다. ▷라인 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독일은 통일 후 옛 동독 지역에서 엘베 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오염 물질만 가득했던 엘베 강이 정화되고 엘베 강가의 드레스덴은 현대적인 공업도시로 거듭났다. 그러나 엘베 강의 기적은 동독 독재자 에리히 호네커가 사라졌을 때 가능했다. 개발독재는 말 그대로 경제 개발을 위한 방편으로서의 독재를 의미한다. 이런 독재를 김씨 왕조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일 수밖에 없는 김정은의 3대 세습 독재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월북 작가 이태준의 일제강점기 말 단편소설에 ‘패강랭(浿江冷)’이 있다. 패강은 대동강의 옛 이름이니까 ‘대동강이 얼다’는 뜻이다. 소설은 평양을 배경으로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얼어붙은 대동강이라는 은유적인 제목으로 표현했다. ‘우수 경칩에는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있다. 대동강은 결빙 기간이 길어 뒤늦게 물이 풀린다는 뜻이다. 분단 70년이 흘렀다. 대동강의 기적을 볼 수 있으려면 대동강 물이 먼저 풀려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난 대학 시절 신촌 우리마당에 태평소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칼로 찌른 김기종 씨가 운영자로 있었다. 태평소 강습이 끝난 뒤 종종 뒤풀이 자리가 있었고, 김 씨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지만 자주 동석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단소 하나 제대로 불지 못하는 실기맹(盲)이었다. 그렇다고 뛰어난 이론가도 아니었다. 말은 감정이 앞서 산만했으며 논리라는 것도 맹목적 ‘우리 것’ 주의에 가까웠다. 그가 남다른 점은 열정이었다. 다만 온갖 우리 것에 대한 관심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여놓고는 수습은 잘하지 못했다. 그를 다시 본 것은 기자가 되고 나서다. 예전 친분으로 문화 행사 관련 보도를 간혹 요청받았다. 그중에서 그가 재현을 위해 뛰어다니던 애오개본산대놀이가 기억난다. 그런 사이 우리마당은 문을 닫았다. 아마도 운영난이었을 것이다. 그는 본래 운영 같은 것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고는 정말 오랜만인 지난해 그가 신문사로 연락을 해왔다. 개량한복은 예전과 같았으나 수염을 기르고 헌팅캡을 쓴 게 달라졌다. 처음엔 눈치를 못 챘으나 손에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심한 화상이 있는 걸 보고는 놀랐다. 분신을 시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옷으로 가린 곳의 상태는 어떠한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는 2007년 노무현 정권 말기에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우리마당은 1980년대 군사정권에서 민주화 운동의 모임 장소로도 종종 이용됐다. 우리마당은 1988년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습격당한 적이 있다. 그는 ‘노무현의 민주 정권’이 진상을 밝히지 못하면 영원히 묻히고 만다면서 분신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다행히 경찰의 제지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지난해 네이버 카페에 ‘우리마당 30주년 소식’이란 글을 올렸다. “우리마당에서의 제 노력에 대해 일반 사회에 존재하는 표창, 아니 감사장 하나 마련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오히려 따돌림 당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자랑하듯이 옛일들을 떠들어보면 왜 옛날얘기를 하느냐고, 오히려 핀잔을 받는 것이 제가 당하는 현실입니다.” 그의 좌절감이 느껴진다. 울분도 깔려 있다. 다른 글에서는 우리마당을 거쳐 가 진보 정권에서 총리 장관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눈에 띈다. 자신에게 보상은커녕 표창 하나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마당은 1988년 피습 사건 이후에도 정상적으로 운영됐고, 더 이상 열정으로 끌어가는 게 한계에 이르렀을 때야 문을 닫았다. 지난해 그와 헤어진 후 우리마당통일문화연구소로부터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받았다.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를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외세 배격 자주통일론은 맹목적 ‘우리 것’ 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과거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의 집에서 친북 서적이 나올 수 있고 그의 발언 중에 친북 발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배후세력이 있다면 그 배후세력은 가장 부적합한 사람을 실행자로 택한 것이다. 리퍼트 대사 사건은 배후세력을 포함해서 모든 가능성을 조사해야 한다. 다만 아무리 엄중한 사건이라도 틀을 미리 정해놓고 꿰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집에서 쓰던 과도를 들고 돌진한 것에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혁명가의 주도면밀한 실행보다는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주인공의 정신적 광기가 느껴졌다. 사실 현대의 많은 암살 혹은 암살 기도 사건이 정신적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이런 경우도 이념이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때 이념은 광기를 표출하는 통로가 될 뿐이다. 공안적 사고방식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올바른 대책도 나올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월마트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회사다. 대표적인 저임금 기업으로 비판받는 월마트가 4월부터 시간당 최저임금을 연방 최저임금인 7.25달러보다 많은 9달러로 올리고 내년 2월에는 10달러로 올린다고 지난달 밝혔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2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월마트의 보이는 손(Walmart‘s visible hand)’이 소득불평등을 완화시키고 중산층 형성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 1월 신년 국정연설에서 “1만5000달러(약 1647만 원)로 한 해 동안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해보라”며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월마트가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기조에 앞장서 호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손(invisible hand)에 강조점을 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미국 경기가 회복하면서 기업들 사이에 노동자 구하기 경쟁이 치열해지자 월마트가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최저임금을 지난해 7% 올렸는데 올해는 더 빠른 속도로 올리겠다”고 말하고 기업 측에 근로자 임금 인상도 독촉했다.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처럼 해보겠으니 우리나라 기업도 월마트처럼 해보라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 부총리의 발언이 있은 바로 다음 날 올해 적정 임금인상률을 1.6% 이내로 제시했다. 적정 임금인상률을 제시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 이후 최저치였다. ▷회복세가 역력한 미국 경제와 달리 우리 경제는 아직 암중모색이다. 대기업은 임금을 올려도 버틸 여력이 있겠지만 순이익도 나지 않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에 임금을 올리도록 압박하면 오히려 고용을 줄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임금 인상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소비 및 투자 진작 효과가 나타나기는커녕 상황이 더 나빠지기 쉽다. 우리 사정에 맞는 적절한 임금 인상의 수준을 고민해야지 미국을 무비판적으로 따라 하다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발소 사인(sign)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빨강 하양 파랑의 선이 줄무늬를 이루고 있는 원통 모양의 사인은 이발소를 가리키는 만국 공통의 디자인이다. 18세기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세비야의 이발사’의 무대에서도, 오늘날 미국 뉴욕과 서울에서도 이발소 사인은 같다. 중세 서양에서 이발사는 동시에 외과의사였다. 면도칼은 수염만 깎는 데 쓰인 것이 아니라 다리를 절단하는 데도 쓰였던 것이다. 이발사가 외과의사와 분리된 후에도 과거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게 이 사인이다. 빨강은 동맥, 파랑은 정맥, 하양은 붕대를 의미한다. ▷수세식 변기는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최초의 수세식 변기는 1775년 조지프 브라마란 사람이 만들었다. 뚜껑이 달리지 않았을 뿐이지 오늘날 쓰이는 수세식 변기와 큰 차이가 없다. 수세식 변기가 중산계층에까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851년 영국 런던 수정궁의 만국박람회에서 전시되면서부터다. 얼마 뒤 세라믹 소재의 수세식 변기가 처음 등장했다. 이 백색의 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달아 변기 그대로를 예술작품으로 제시한 것이 마르셀 뒤샹이다. 이른바 레디메이드 예술의 기원이 됐다. ▷코카콜라 병이 태어난 지 올해로 100년이 됐다. 코카콜라는 비밀스러운 제조법만큼이나 아름다운 디자인이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까지 성장한 비결이다. 코카콜라는 모방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실루엣만으로도 다른 회사 제품과 확연히 구별되는 코카콜라 콘투어(contour·윤곽)병을 만들었다. 이 병은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시사주간 타임의 커버를 장식했고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에게 영감을 줘 그의 작품 소재로 사용됐다. ▷스마트폰 디자인의 원형은 애플이 제시했다. 후발 주자들은 애플의 아이폰을 흉내 냈다고 해서 소송을 당했다. 디자인은 단순한 외양이 아니라 기능의 효율적인 표현이다. 특히 정보기기는 기능과 외양이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섞여 있다. 기술과 문화가 앞서야 디자인도 선도한다. 사물인터넷, 로봇, 드론의 시대에 한국도 세계의 기준을 정하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얼마 전 별세한 역사소설가 진순신(陳舜臣)은 부모가 대만인이지만 일본에서 자라고 배워 중국과 일본을 모두 잘 안다. 그가 어느 책에선가 일본인은 욕할 때도 소심해서 일본어에는 욕이 적고 그마저도 중국인이 보기에는 욕 같지도 않은 수준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중에는 ‘사슴인지 말인지조차 구별 못하는 바보’라는 뜻의 욕도 있다. 지난해 5월 김영란법 관련 정무위 심사소위 속기록을 보면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국회의원 ‘나으리’들의 대화가 나온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언론 부분을 얘기하시지요.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 논리적인 연장선상에서 보면 KBS, EBS뿐만 아니라 언론기관은 다 포함돼야 하는 게 아닌가. 강기정 새정치연합 의원: 그럴 것 같은데요. 길게 논의하지 맙시다. 이상직 새정치연합 의원: 그래요. 강기정 의원: 종편이고 뭐고 전부. 인터넷 신문, 종이 신문도 넣고.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다 넣어야지. 이렇게 간단히 전 언론은 김영란법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김기식 의원은 “언론사는 공공성(公共性)이 크므로 당연히 김영란법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공공성이란 말을 심각히 오해하고 있다. 똑같이 공공성이라고 써도 언론의 공공성은 국가의 공공성과는 범주 자체가 다르다. 국가는 전근대사회에서 군주의 것이었으나 시민혁명 이후 공공의 것이 됐다. 국가의 지도자를 국민이 뽑고 운영비는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의 것이 됐다. 오늘날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공립학교는 당연히 공공의 것이다. 우리나라 사립학교는 말만 사립학교지 예산의 90%가 국가 돈으로 운영된다. 사실상 공공의 것이다. 대학병원도 그 직원은 사학연금의 큰 혜택을 받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공의 것이다. 언론은 전혀 공공의 것이 아니다. 언론의 공공성은 공공의 관심사를 다룬다는 것뿐이지 공공의 것이란 말이 아니다. 언론은 민간에 속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의 것도 아니면서 공공의 관심사를 다루는, 이 모순적인 것이 언론이다. 언론은 부정한 대접을 받고 기사를 쓰면 그것이 형법으로 처벌할 수준에 못 미치더라도 시장에서 신뢰를 상실하고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국가는 그런 부정한 대접을 받고 도로를 깔아주고 다리를 놓아줘도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의 돈이 들어가는 곳은 김영란법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방송은 신문과 달리 국가의 것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민영화하면서 뒤늦게 언론의 모습을 갖췄다. 여전히 수신료에 의존하는 KBS와 EBS는 언론보다는, 민간에 맡겨서는 제작이 잘 안 되는 교양 프로그램으로 활로를 삼아야 하는 방송 공기업인 것이다. 그런 방송 공기업을 김영란법에 포함시킨다고 해서 민간 언론사를 줄줄이 엮어 들인 것이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별 못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별 못하는 바보’란 말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에서 나왔다. 진시황이 죽은 후 그 어린 아들 호해를 황제로 삼아 환관 조고가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가 호해에게 사슴을 선물로 바치며 말이라고 하자 신하들은 두려워 진실을 말하지 못했고 호해는 사슴이라는 판단에 자신을 잃었다. 지록위마는 사슴인지 말인지도 구별 못하는 바보의 호응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 교수신문이 지난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꼽았다. 그게 뭘 두고 한 말인지 애매모호해서 교수신문답지 않았다. 김영란법의 언론사 끼워 넣기 같은 것이 지록위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게 쏟아지는 갖가지 의혹은 일단 제쳐 놓자. 그의 이력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노라면 남다른 생존과 적응능력이 느껴진다. 유신 시절 경제기획원 사무관에서 경찰 관리로, 민주화된 이후 지방경찰청장에서 국회의원으로, 여야 권력 교체가 시작된 이후 신한국당에서 자민련으로, 다시 한나라당으로 소속을 바꿔가면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이적할 때마다 오히려 입지를 강화하는 수완을 보여줬다. 감탄할 만한 수완이지만 기분 좋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뭐라고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자기 이익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털끝만큼도 손해 보지 않은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볼 때 느껴지는 불편함이라고나 할까. 그는 김영삼 정권에서 집권당인 신한국당 의원이 됐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자민련에 입당해 DJP(김대중+김종필)연합에 의해 다시 집권당의 일원이 됐다. DJP연합이 깨질 때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당시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노무현 집권기에는 야당이긴 했지만 충남도지사가 됐다. 박근혜 정권에서 다시 집권당인 새누리당 의원이 됐다. 그가 총리 후보로까지 낙점된 데는 세종시를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과의 협력이 결정적이다. 세종시는 한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합리적 선택에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세종시는 노무현 정권이 ‘재미 좀 본’ 수도 이전 공약을 지킨다고 정말 법을 만들었을 때 실패했고, 헌법재판소가 그때까지 소수의 법학자 외에는 듣도 보도 못한 ‘관습헌법’을 들어 수도 이전을 위헌으로 판단했을 때 더 큰 실패의 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이 찬성해서 수도 이전을 수도 분할로 변경했을 때 더 큰 실패가 실현됐고, 이명박 정권이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할 때 박 대통령이 반대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세종시는 오로지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서는 성공이었는데 그 성공을 위한 충청권 파트너가 이 후보자였다. 이 후보자가 권력에 항의해 사표를 던진 적(충남도지사 임기 만료 1년을 앞두고 사퇴한 것)이 한 번 있는데 이명박 정권에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할 때다. 세종시가 없었다면 이완구도 박근혜도 현재의 자리에 없다. 지금 박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총리의 자질은 한 나라를 경세할 만한 식견도, 내각을 다잡는 리더십도 아니다. 식견은 자신의 식견으로도 충분하고, 장관은 대면(對面)도 없이 통솔한다고 자부하는 박 대통령이다. 그에게 절실한 것은 청와대 정무수석의 역할을 내각 차원에서 해줄 수 있는 정치기술이다. 박 대통령 자신에게는 물론 없고, 그의 비서실장에게도 없고, 또 새로 낙점할 후임 비서실장에게도 분명히 없을 그런 기술 말이다. 이 후보자는 오늘 시작되는 청문회에서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시도할 것이다. 안 봐도 뻔한 것은 이런 것이다. 언론 보도통제 압력에 대해서는 불찰이었다고 사과하고 억대 연봉 차남의 건강보험료를 떼먹은 일은 미처 몰랐다고 하면서 뒤늦게 납부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 의혹은 지루한 공방으로 무슨 말인지 모르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본인의 병역 기피 의혹이나 경기대 조교수 특혜채용 의혹은 오래전 일이라 의혹을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완강히 부인하면서 버틸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사욕(私慾)을 의리(義理)에 앞세운다고 비판하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공직자의 공적 마인드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이 후보자의 삶에서는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순간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는 기회는 모조리 활용해 자기 이익을 실현한 순간은 너무도 많이 눈에 띈다. 국민의 존경을 받을 총리감이 아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금리생활자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 법학도 라스티냐크는 같은 하숙집에 살고 있는 빅토린 양과 결혼하면 100만 프랑의 재산을 손에 쥔다. 그러면 스무 살에 매년 5만 프랑의 이자소득(금리 5%)을 얻는다. 그것은 당시 파리에서 잘나가는 변호사가 온갖 수완을 발휘해 쉰 살이 되어서야 얻을 수 있는 소득이었다. 빅토린 양이 매력적이진 않았지만 라스티냐크는 그녀와 서둘러 결혼해야 했다. ▷독일 경제학자 힐퍼딩은 ‘금융자본’이란 책을 썼다. 그는 자본가와 노동자 외에 금리생활자의 출현에 주목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를 지나 금융자본주의 시대가 되면 직접 기업을 운영하는 대신 저축으로 안정적인 이자를 추구하는 기생적인 계층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주장했고, 그 방법으로 저금리 정책을 제안했다. 그의 저금리는 물가 상승으로 금리 효과를 상쇄하는 사실상의 제로 금리를 지향했다. ▷유럽 일본은 오래전에 실질 제로 금리를 지나 실질 마이너스 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올해 실질 마이너스 금리가 예상된다. 한은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연 2.0%로 떨어지면서 은행에는 연 1%대 1년 정기예금 상품이 속속 등장했다. 한은이 예측한 올해 물가상승률은 1.9%다. 금리가 연 1.9%인 정기예금에 가입하더라도 이자에서 떼는 이자소득세와 주민세를 고려하면 금리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질 마이너스 금리는 금리생활자에게 은행에서 돈을 빼내 다른 투자처를 찾지 않으면 ‘안락사’를 당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다. 일본은 실질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이나 주식 또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어느 사회나 저금리 시대부터 재테크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지만 그때만 해도 재테크는 선택이었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엔 재테크는 필수가 된다. 예전보다 더 머리를 굴리지 않으면 안 되는 힘든 세상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차기 대한변호사협회장으로 선출된 하창우 변호사(61)는 직선제하에서 두 번째로 선출된 협회장이다.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던 시절인 1986년 연수원을 수료한 뒤 바로 변호사업계에 들어섰다. “하 변호사는 연수원 출신 변호사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 말에는 법원이나 검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변호사를 하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숨어 있다. 이런 설움을 딛고 30년 변호사 외길을 걸어왔다. 하루에 버스 몇 번 들어오지 않던 경남 남해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독하게 공부해서 명문 경남중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그가 사법시험 존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데는 가난을 딛고 일어선 자신의 배경이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시절인 2008년 ‘법관평가제’를 도입했고 이제 ‘검사평가제’도 시작할 계획이다.말이 온화하고 신중한 가운데 강단이 있다. 하 변호사는 23일 취임한다. 》 숫자 늘면 권위 떨어진다는 대법원―변협 회장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다. “최근 6년간 변협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협회장들이 회장 자리를 개인의 명예를 위해 이용했지 실제 되고 나서 국민을 위해 한 게 없다. 변협의 존재감마저 없어졌다. 심각한 문제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게 급선무다. 변호사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깨져 변호사 배출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변호사 업계에 높다. 그러나 변협이 요구만 해서는 안 된다. 먼저 변협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지 않고 사법 개혁이다 검찰 개혁이다 외쳐봐야 국민이 들어주지 않는다.” ―대법원이 추진하는 상고법원은 어떻게 보는가. “위헌이라고 본다. 헌법에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고 돼 있다. 최고법원은 대법원이고 각급 법원은 대법원의 하급심을 말한다. 상고법원은 상고심에 대법원 외에 별도의 법원을 둔다는 것이다. 상고법원은 헌법상 위치가 없다.” ―대법원이 처리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아 상고법원안이 나온 것 아닌가. “대법관 수를 안 늘리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잘못이다. 대법원 사건을 대법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대법관 12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당 한 해 3000건이다. 대법관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다. 그러다보니 심리불속행이라는 꼼수가 나왔다. 사건 중 70%를 판결 이유도 쓰지 않고 기각해버리는 것이다. 대법원까지 갔는데 심리불속행으로 사건이 종결되면 당사자는 분노한다. 대법관 수를 늘려 심리를 충실히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독일은 우리나라 대법관에 해당하는 인원이 100명도 넘는다. 대법관 수를 3배인 38명으로 늘려 대법관 한 명당 사건을 1000건으로 줄이고 장기적으로 4배 정도인 50명으로까지 늘려야 한다.” ―대법원은 왜 대법관 수를 늘리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대법관 수가 많아지면 권위가 떨어진다고 대법원은 생각한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은 9명에 불과한데 대법관이 30명, 50명이 되면 대법관 가치가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상고법원을 따로 두자는 것은 대법원은 한 해 100건 정도의 주요 사건만 다루고 나머지는 모두 상고법원에서 처리하도록 함으로써 대법원을 헌재에 버금가는 정책 법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권위도 높이면서 자기네 일도 편하게 하겠다는 얘기인데 사법 개혁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추진돼야지 법관들의 이익을 위해 추진돼서는 안 된다.”상고법원, 대법관 위한 제도여서 반대 ―요즘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전관예우의 꽃이라는데…. “상고심은 숫자가 얼마 안되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수임료가 비쌀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면 나도 안 할 수 없다는 식이 된다. 항소심 변호사가 상고이유서를 써도 상고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 도장 하나 받는데 과거 300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5000만 원이다. 로펌 내부에서도 변호사들이 자기 사건을 자기 로펌에 와 있는 대법관 출신변호사에게 맡기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한다.” ―전관예우 금지법이 별 소용이 없는가. “변호사법은 종전 근무지에서의 변호사 영업을 1년간 금지하고 있지만 별 소용이 없다. 전관 변호사가 사건을 맡으면서도 선임계는 로펌에 있는 다른 변호사가 내는 식으로 우회한다. 검찰 쪽이 더 심해 검사장급 이상 출신의 변호사는 선임계도 안 내고 전화 변론을 해주는 것만으로 억대 수임료를 받는다. 이것은 단순히 탈법만이 아니라 탈세가 된다. 수입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세금을 매길 수도 없다. 취임하면 전관비리 신고센터를 만들 생각이다.” ―서울변호사회장 시절 도입한 법관평가제를 자평하자면…. “2008년 서울변호사회를 시작으로 2013년 가장 보수적인 대구변호사회까지 14개 지방변호사회 모두가 참여하고 있다. 법관평가가 막말 판사를 걸러내는 등 법정 민주화에 기여했다. 실제로 예전에 고법부장 승진에서 연거푸 탈락했던 한 부장판사는 2번 베스트(best)에 뽑힌 뒤 승진한 경우가 있고 최근 워스트(worst)에 3년 연속 선정된 어느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성적은 좋았으나 고법부장 승진에 탈락하고 서울지법 부장에서도 좌천됐다.” ―변협 회장에 취임하면 검사평가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는데…. “법관평가가 7차례 이뤄지면서 정착 단계에 들어섰고 이제 검사평가를 할 시점이 왔다.” ―법관은 형사소송의 검사-변호사 대립구도에서 제3자에 해당하지만 검사는 변호사의 상대방이다. 변호사가 검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법관도 마찬가지다. 민사소송에는 원고와 피고가 있고 승소 측에도 패소 측에도 모두 변호사가 있지만 이긴 변호사든 진 변호사든 법관을 평가한다. 한 검사가 여러 사건을 다루고 각각의 사건마다 다른 변호사와 다툰다. 이 검사를 상대했던 변호사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부당하지 않은 평가가 나올 수 있다.”사법시험 그대로 두는 게 서민정책 ―사법시험을 존치시키겠다는 선거 공약은 현재의 로스쿨을 흔드는 것 아닌가. “로스쿨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학비가 비싸고 학사관리가 잘 안되고 장학금은 부족하다. 로스쿨 교수가 법대 시절보다 3배 증가하면서 인건비가 로스쿨 유지비의 45%나 차지해 25개 로스쿨이 거의 대부분 심각한 적자 상태에 있다. 이것은 로스쿨 자체의 문제이지 사시 존치와는 상관이 없다. 로스쿨은 일본이 도입한 뒤 우리도 들여온 것이다. 일본도 로스쿨 통폐합, 로스쿨 인가 자진반납 등 파행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은 로스쿨을 도입했다 폐지했다. 로스쿨은 기본적으로 영미법제 제도다. 우리 토양과 맞지 않는다. 제도적인 보완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사시를 존치시키자는 것이다. 일본도 로스쿨과 함께 예비시험이란 제도가 있다.” ―사시 존치는 현 위철환 회장도 주장했던 공약이지만 큰 진전이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진전시킬 것인가. “내가 할 일은 국회에 발의된 사시 존치 관련 변호사법 개정안 4건을 통합해 통과시키는 것이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내게 사시 존치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와 깜짝 놀랐다. 내년엔 총선이 있다. 사시 존치는 서민정책이고 지지하는 국민이 70%에 이른다. 정치인들이 여론을 무시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은 사시 존치 쪽으로 거의 와 있다. 다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노무현 정권에서 로스쿨을 도입한 당사자여서 반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당이 당론으로 정하면 통과될 것으로 믿는다. ―최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의 과거사 수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나는 아직 취임 전이라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변호사법은 공무원으로서, 또는 중재위원으로 활동했던 변호사의 해당 사건 수임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수임은 검찰의 형사처벌 대상일 뿐 아니라 변협의 징계사안이기도 하다. 국가의 돈을 받고 국가를 위해 일했던 사람이 자기가 다뤘던 사건을 맡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기소권 준 변협 세월호법안은 잘못 ―법무법인 혹은 법무법인의 다른 변호사 이름으로 수임하는 것은 어떤가. “변호사법은 법무법인도 하나의 변호사로 본다. 어느 로펌의 변호사가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다면 그가 로펌에 돌아갔을 때 그 로펌이나 로펌 내의 누구도 그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 실제 수임료를 누가 받았는지가 중요하다. 형식적으로 다른 변호사가 수임했더라도 의뢰인은 누가 실제 변호했는지 알 수 있다. ―일부는 과거사위의 조사관을 브로커로 고용했다고 한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변호사가 변호사 아닌 사람과 이해를 나누지 못하도록 돼 있다. 조사관들이 사건을 소개해주고 돈을 받았다면 변호사법 위반이 된다.” ―대한변협은 최근 묵비권 행사와 허위진술을 강요한 민변 변호사 2명에 대한 검찰의 징계 신청을 기각했다.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변호사라면 당연히 피의자에게 묵비권을 행사하라고 할 수 있다. 변협이 기각할 수 있는 사안이다.” ―단순히 묵비권 행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허위진술을 하도록 한 것이라면….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수사기관에서 한 피의자의 허위진술을 처벌하는 허위진술죄가 없다. 변호사가 피의자에게 허위진술을 시키는 것이 법을 위반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다만 변호사윤리규정을 위반했다고 볼 여지는 있다. 이것도 역시 허위진술을 정말 시켰는지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위철환 회장 체제의 현 변협이 민변에 끌려 다닌다는 평가가 있다. “지난해 세월호특별법을 두고 나오는 말인 것 같다. 변협이 피해자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법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근대 형사법의 대원칙인 ‘자력구제 금지(피해자는 수사 기소 재판을 할 수 없다)’의 원칙에 위배된다. 변협은 민감한 사안에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 임기에 변협이 여야 정쟁에 휘말려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듣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황석영의 한국 명(名)단편 101’이 10권으로 출간됐다. 누군가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선집류는 흔치 않다. 그렇다 보니 황석영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뽑는 다소 민망한 일도 발생했다. 광복 이전 작가로는 염상섭 이기영 현진건 채만식 김유정 이태준 박태원 강경애 이상 김사량 등 모두 10명의 작품이 선정됐다.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을 쓴 이광수의 작품은 없다. ‘먹고 마시고 훌쩍이는 사람의 일상이 잘 안 보인다’는 게 그가 내건 이유다. ▷이광수와 동시대에 그 점을 격렬히 비판한 작가는 김동인이다. 그런 기준이라면 이광수는 아니더라도 김동인은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도, ‘감자’도, ‘배따라기’도 없다. 이외수의 작품은 아무리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도 한국대표문학선집에 들어갈 만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외수의 작품 ‘고수’는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수는 있는데 이광수도 김동인도 없는 문학선집은 공정하지 않다. ▷이광수와 김동인이 친일을 했다 해도 문학은 문학이다. 이광수의 ‘무정’은 ‘홍길동전’ 같은 조선시대 소설과도, ‘혈의 누’ 같은 개화기 신소설과도 완전히 다른 소설의 길을 열었다. 김동인은 이광수 소설에 남아 있는 도덕적 요소까지 제거하고 이미 1930년대에 단편이 이를 수 있는 최상의 경지까지 갔다. 이광수와 김동인을 문학사에서 빼는 것은 마르틴 하이데거가 나치에 동조했다고 그의 철학을 독일 철학사에서 빼는 것과 마찬가지다. ▷황석영은 근대문학의 기점을 이광수의 ‘무정’이 아니라 3·1운동 이후 염상섭의 소설부터로 잡았다. 염상섭은 식민 상황에 대한 인식을 처음으로 작품화한 작가다. 그러나 그는 첨예한 의식에 비해 그것을 형상화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염상섭의 소설들이 술술 읽히지 않는 이유다. 사실 황석영의 소설도 그런 면이 있다. 작가가 나이 72세 정도 되면 세상을 아우르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의 컬렉션을 보면 여전히 속 좁은 황석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대법원의 이석기 판결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내용과 다르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헌재 결정은 항소심 판결 후에 나왔다. 항소심은 내란 선동 혐의만 인정하고 내란 음모 혐의를 부인했다. 헌재는 대법원 판결도 그 정도 선에서 내려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헌재는 마리스타 회합에 대해 내란 선동이란 표현도, 내란 음모란 표현도 쓰지 않고 ‘내란 관련’ 회합이라고 불렀다. 헌재 결정문 어디에도 체계를 갖춘 범죄조직으로서의 RO에 대한 언급은 없다. 헌재가 RO의 실체를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측도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만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연합의 구성원들이 주도세력’이라는 등의 표현을 두고 RO의 실체를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내란 음모, RO의 존재를 주장한 것은 헌재가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이다. 대법원은 내란 음모와 RO의 존재를 부인했고 헌재는 판단하지 않았다. 헌재는 개인의 처벌이 아니라 정당의 해산을 다루기 때문에 ‘내란 관련’ 회합의 존재와 그 회합을 주도한 것이 이석기 중심의 세력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봤다. 이 차이에 대해 헌재에서도 대법원에서도, 심지어 법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검찰만 내란 음모가 인정되지 않아 다소 불만이 있을 뿐이다. 내란죄는 워낙 세분화돼 있어 어디까지가 내란 선동인지, 내란 음모인지, 내란 예비인지, 내란 미수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이런 때는 전문가들의 개념을 건너뛰어 팩트 그 자체로 향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건망증으로 잠시 잊고 있던, 마리스타 회합의 대화를 일부라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석기: (지금은) 준전시가 아니라 전쟁이다. …남녘의 우리 혁명가는 조선혁명이라는 전체적 관점에서, 남쪽의 혁명을 책임진다는 관점에서 현 정세를 바라봐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군사적 준비, 구체적으로 물질기술적 준비를 해야 한다. 이상호: 혜화동과 분당에 전화국이 있는데 거기에는 진공 형태가 돼야 하기 때문에 몇 개의 문을 통과하는 문제가 있으며 이런 것들은 목숨을 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전선은 (전시에) 예비검속되면 사실은 별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무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이영춘: 북부에는 발전이나 지하철 철도 등 국가기간산업들이 많이 포진돼 있는데 그런 곳과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전시 후방교란을 잘해야 된다는 의견과 예비역 중심으로 팀을 꾸리고 군사적 대응 매뉴얼을 짜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이런 팩트이지 내란 선동이니 음모니 하는 사태 규정이 아니다. 이런 대화가 녹음됐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다. 내란 선동인지 음모인지 구별할 수 없는 사람도 위험천만한 내란 관련 회합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알 수 있었다. 헌재의 ‘내란 관련’이란 말이 바로 그런 것, 내란 선동이나 음모로 개념화하기 이전에 즉각적으로 우리의 공분을 자아낸 그 무언가를 지칭한다. 대법원이 내란 음모를 부인하면서도 “내란 선동은 내란 음모에 준(準)하는 불법성이 있다”고 굳이 밝힌 것도 그런 공분을 거스르지 않으려 한 것이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언어가 진실에 이르는 것을 도와주기보다는 방해할 때 그 언어를 시장의 우상(Idola Fori)이라고 불렀다. 지금 내란 선동이니 음모니, RO의 실체가 있니 없니 하는 논란이 진실을 가리는 우상이다. 진실은 단순하다. 대다수 국민이 공분했고 그 공분에 값하는 통진당 해산과 이석기 처벌을 얻어냈다는 것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외로운 늑대(lone wolf)는 오늘날 조직 밖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개인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되지만 본래는 그렇지 않았다. 트로츠키의 별명이 ‘외로운 늑대’였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달리 어떤 조직도 손에 넣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조직의 힘을 빌려서 명령으로 사람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고 오로지 말과 글로 설득하려 했다. 그 자신이 어떤 조직에도 복종하지 않다가 결국 스탈린이 보낸 자객의 도끼에 맞아 살해됐다. ▷외로운 늑대는 일견 모순적으로 들린다. 늑대는 보통 떼를 지어 다닌다. 늑대가 좋아하는 먹이는 대형 포유류인데 이것은 혼자 사냥하기 어렵다. 하지만 늑대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신의 무리를 만들기 위해 무리를 떠나야 한다. 늑대에게는 이때가 큰 시련기다. 이성의 늑대를 만나 새로운 무리를 형성하면 다행이지만 그런 과정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 외로운 늑대들이 모여 평균적 늑대들보다 더욱 공격적인 무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터키-시리아 접경도시 킬리스에서 실종된 18세 김모 군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했다는 것이 확인되면 한국인 중에서는 자생적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된 최초의 외로운 늑대로 기록될 것이다. IS는 알카에다와 달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세계 각지로부터 가담자를 모집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IS에 가담한 외국인은 1만5000여 명이다. 중국인과 일본인도 각각 100명, 1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군은 교우 관계 때문에 중학교를 그만둔 뒤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가까이 있는 부모나 친구보다 비밀 SNS로 대화한 터키의 하산이란 친구가 더 솔직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였는지 모른다.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회에서 홀로 인생의 의미를 암중모색하면서 뭔가 강렬한 것에 이끌렸을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IS의 영향력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악(絶對惡) 사우론의 자장처럼 멀리 극동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이 예수의 처형을 요구한 이유는 신성모독이었다. 성경에 따르면 분노한 군중이 예수를 대제사장 앞으로 데려왔다.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물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예수가 대답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인자(人子)가 전능하신 자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자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했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무함마드(마호메트) 만평은 이슬람권에서 신성모독으로 여겨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조롱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잔인한 종교전쟁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서로 다른 믿음은 존중돼야 한다. 다만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종교가 다른 종교를 조롱한 것이 아니라 세속 언론이 종교를 풍자한 것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가톨릭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다. 교황도 종교인이라 타 종교인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리는 듯하다. ▷근대 문화는 하나의 신성에서 다른 신성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어떤 신성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특징이 있다. 이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싹텄다. 종교의 자유에서 사상의 자유가 나오고 표현의 자유가 나왔다. 예수도 무함마드도 조롱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정신이 근대 언론의 기반이다.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데 연대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의 정신이다.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 어느 사회든 사람을 죽이라고 선동하는 발언을 놔두지 않는다. 또 각 나라의 역사적 경험에 따른 한계도 있다. 서유럽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발언은 처벌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북한 체제를 찬양 고무하는 발언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적 신성과 관련해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근대 문화는 신성모독적이다. 비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종교적 신성이 생기는 순간 다시 전근대로 돌아갈 위험에 빠질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