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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되어버린 사내들 VS 새가 되고픈 여인네들.’ 설의 끝자락. 북적거리던 연휴가 마무리되면 마음도 정리가 필요하다. 이럴 땐 시끌시끌한 영화보다 잔잔하되 무게감을 지닌 영화가 딱. 적은 예산이지만 탄탄한 짜임새를 갖춘 한국영화 2편이 관객을 찾아온다. 26일 개봉하는 ‘조류인간’과 다음달 5일 선뵈는 ‘개: dog eat dog’는 각각 순제작비 1억과 5500만 원을 들인 작품이다. 많게는 수백억 씩 들이는 대작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허나 넘치는 에너지는 남부럽지 않다. 뭣보다 독립영화다운 짙은 사회적 현실이 배어있어 한 입 깨물면 깊은 맛이 우러난다.○삶은 비리도록 슬픈 꿈의 한 자락 “꿈을 꿨어요. 꿈에서 이룰 수 없는 많은 꿈들이 이뤄졌어요. 그래서 알았어요. 꿈이란 걸.”(영화 ‘조류인간’에서 소연의 대사) 소설가 정석(김정석)은 집필도 중단한 채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 까칠하고 사회성도 부족하지만 실은 15년 전 행방이 묘연해진 아내의 행방을 찾고 있다. 홀연히 나타난 소연(소이)이란 여인은 부인을 안다며 길동무를 자처하나 왠지 의심스럽다. 어느 날, 자기처럼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진 이들을 찾는단 실종자 가족들이 진실을 찾을 단서를 제공하는데…. 영화 ‘조류인간’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뒤 러시아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독일 함부르크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로 주목받았던 2013년 ‘배우는 배우다’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의 신작이다. 소규모 영화지만 김정석 소이 정한비 등 낯익은 얼굴들이 친숙함을 더했다. 눈치 빠른 관객은 금방 알아채겠지만, 이 영화는 제목에 사건의 단초가 들어있다. 사라진 실종자들은 ‘진짜로’ 새가 되려고 수술을 받았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다. 허나 이런 판타지적 요소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왜 새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 그들은 왜 인간이란 틀을 벗어나고 싶었을까. 영화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안개처럼 뿌옇던 진실은 자막이 올라간 뒤에도 애매모호하다. 허나 원래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누구나 맘속에 뭔가를 담고 살지만, 그걸 꼭 꼬집어 얘기하긴 힘들다. 어쩌면 새가 되겠단 욕망을 쫓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한 것일지도. 그 진실의 ‘눈빛’과 마주한 순간, 우린 새가 날아가 버린 허공을 멍하니 응시할 수밖에. 15세 이상 관람가.○시큼한 현실을 찢어발기는 악마의 일상 형신(김선빈) 일당은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이들. 해외에서 한국인을 납치해 몸값을 뜯어내던 그들은 급기야 국내로 밀입국해 피해자와 가족들을 괴롭힌다. 같은 조직의 두진(박형준)도 우연히 터키여행을 하다 새로운 먹잇감 준교(정준교)를 감금하고…. 해외에서 저지른 범죄라 증거 확보가 어려운 점을 악용해 맘껏 활개치고 다니는 그들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개: dog eat dog’는 2007년 무렵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필리핀 한인 납치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당시 범인들은 필리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제물로 삼아 4년간 19건의 납치 및 강도 행각을 벌였다. 하지만 영화는 실제 사건 자체보단 그 악행을 저질렀던 이들에 주목했다. 피해자보단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갔단 소리다.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일상은 전율스럽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의 하루는 너무 덤덤해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평범한 직장생활이라도 하듯 타인을 괴롭히고 돈을 뜯는다. 진짜 현실에서 정의란 사전에나 존재하는 단어인 것 마냥. 이를 극대화시키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범죄패거리 지훈(곽민호) 두진의 연기도 좋지만 우두머리 형신은 비열함의 화신이다. 이런 배우가 무명이라는 게 더 놀라울 정도다. 잔인한 장면은 많지 않으나 문득문득 소름이 돋아 불편할 수도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전 연기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게 업(業)인 사람입니다. 숫자는 상관없어요. 한 명이라도 귀 기울여 주면 됩니다. ‘1억 배우’요? 그건 술자리 땅콩 안주 같은 겁니다. 정말 위대한 건 제가 하고팠던 얘기를 기꺼이 들어준 분들이죠.” 배우 오달수는 듣던 대로 술을 좋아했다. 9일 오후, 연이은 인터뷰로 벌써 몇 순배는 돌았을 터. 앉자마자 “일단 한 잔 하시고” 잔을 채운다. “어젯밤 피아니스트인 조카와 인생 상담하느라 새벽 4시까지 달렸다”며 해장술을 마셔야 된다나. 엉겁결에 받고 보니 참 달다. 1000만 영화 ‘국제시장’이 상영 중인데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11일 개봉)도 벌써 100만 명 돌파했다. 그가 내민 술잔엔 무슨 얘기가 담겨 있을까. 》―연달아 작품을 선보인다.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아닌가. “체력이 부칠 때도 있다. 연기란 게 쏟아붓는 일이니까. 아직 마실 수 있어 다행이다, 허허. 역할에 깊이 빠지는 성향이 아니라 다작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추송웅 선생님은 ‘전생에 뭔 죄를 지어 피터(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를 떠나보내게 됐나’라고 하셨다. 그 정도로 몰입한 적이 없었나 보다. 연극은 가끔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런데도 계속 무대에 오른다. 극단(신기루만화경) 대표잖나. “배우에게 연극은 밥이다. 안 먹고 살 순 없다. 영화는 19세기 말 발명된 매체지만, 연극은 인류 초기부터 이어졌다. 본능 같은 거라 할까. 물론 힘들다. 영화는 한 신 찍고 쉬기라도 하지. 연극은 영혼이 빠져나간다. 그래도 막을 올리면 안식을 얻는다. 무대에서 주고받는 호흡, 관객과의 교감은 배우에게 모든 것이다.” ―영화에서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떤가. “김명민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 이어 두 번째다. 안 맞았다면 다시 찍질 않았겠지. 내 연기 인생에서 손에 꼽을 배우다. 최고는 송강호 형 아닐까. 일곱 편을 함께 찍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눈빛만 봐도 안다. 그런데도 ‘변호인’ 때는 많이 놀랐다. 뭔가를 뛰어넘어 버렸다. 그렇게 친한데도 몰입할 땐 근처에 가지도 못하겠더라.” ―본인도 연기의 달인 아닌가. “부탁인데 면전에서 그런 소리 마라. 부끄러워 죽겠다. 어떤 작품이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배우마다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데, 난 ‘거리 두기’를 선호한다. 일상적인 덤덤함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줄곧 그 틀을 지켜 왔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이젠 칭찬도 가끔 듣는다. 역시 뭐든 오래 하고 볼 일이다. 연극판 후배들에게도 ‘버텨라’란 얘길 자주 한다.” ―버틴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나. “목적을 갖고 버티면 거의 실패하더라. 유명해져야지, 돈 벌어야지 하면 맘대로 안 된다. 연기 자체만 봐야 한다. 서른일곱에 ‘올드보이’ 찍고 겨우 얼굴도장 찍었다. 그때까지 어떻게 살았겠나. 최근 영화 ‘쎄시봉’에 나온 조복래(송창식 역)한테도 그랬다. 조급해 마라. 버티면 기회는 온다.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이젠 맘 좀 놓으셨을 텐데….” ―영화 ‘국제시장’ 보셨으면 좋았겠다. “크으…, 장난 아니었겠지. (잠깐 허공을 보더니) 당신 세대 얘기니 더 반가워하셨을 텐데. 윤제균 감독부터 배우들 모두 그랬지만, 아버지 생각 많이 났다. 학교 선생님이셨다. 자식 연기하는 극장 꼴 보기 싫어 퇴근 때마다 빙 둘러서 돌아가셨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기죽지 마라며 술값 찔러 주는 건 아버지였다.” ―1억 배우가 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이 있었는데…. “그런 숫자는 배우에게 독과 같다. 한 번 재밌게 웃을 뿐, 절대 맘에 둬선 안 된다. 그냥 영화를 많이 찍은 거다. 영화계 식구들이 자주 찾아준 게 고마울 뿐이다. 맘에 남는 건 흥행작이 아니다. 오히려 ‘구타유발자들’처럼 안타까운 작품이 눈에 밟힌다. 연기하면서 행복했고, 원신연 감독도 고생 많았는데….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 아, 공포물은 안 된다. 무서우면 아예 시나리오 자체를 읽질 못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전 연기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게 업(業)인 사람입니다. 숫자는 상관없어요. 한 명이라도 귀 기울주면 됩니다. ‘1억 배우’요? 그건 술자리 땅콩안주 같은 겁니다. 정말 위대한 건 제가 하고팠던 얘기를 기꺼이 들어준 분들이죠.” 배우 오달수는 듣던 대로 술을 좋아했다. 9일 오후, 연이은 인터뷰로 벌써 몇 순배는 돌았을 터. 앉자마자 “일단 한 잔 하시고” 잔을 채운다. “어젯밤 피아니스트인 조카와 인생 상담하느라 새벽 4시까지 달렸다”며 해장술을 마셔야 된다나. 엉겁결에 받고 보니 참 달다. 1000만 영화 ‘국제시장’이 상영 중인데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11일 개봉)도 벌써 100만 명 돌파했다. 그가 내민 술잔엔 무슨 얘기가 담겨있을까. -연달아 작품을 선보인다.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 아닌가. “체력이 부칠 때도 있다. 연기란 게 쏟아 붓는 일이니까. 아직 마실 수 있어 다행이다, 허허. 역할에 깊이 빠지는 성향이 아니라 다작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추송웅 선생님은 ‘전생에 뭔 죄를 지어 피터(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를 떠나보내게 됐나’라고 하셨다. 그 정도로 몰입한 적이 없었나 보다. 연극은 가끔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런데도 계속 무대에 오른다. 극단(신기루만화경) 대표잖나. “배우에게 연극은 밥이다. 안 먹고 살 순 없다. 영화는 19세기말 발명된 매체지만, 연극은 인류 초기부터 이어졌다. 본능 같은 거라 할까. 물론 힘들다. 영화는 한 씬 찍고 쉬기라도 하지. 연극은 영혼이 빠져나간다. 그래도 막을 올리면 안식을 얻는다. 무대에서 주고받는 호흡, 관객과의 교감은 배우에게 모든 것이다.” -영화에서 배우들과 호흡은 어떤가. “김명민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 이어 2번째다. 안 맞았다면 다시 찍질 않았겠지. 내 연기인생에서 손에 꼽을 배우다. 최고는 송강호 형 아닐까. 7편을 함께 찍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눈빛만 봐도 안다. 그런데도 ‘변호인’ 때는 많이 놀랐다. 뭔가를 뛰어넘어버렸다. 그렇게 친한데도 몰입할 땐 근처에 가지도 못하겠더라.” -본인도 연기의 달인 아닌가. “부탁인데 면전에서 그런 소리 마라. 부끄러워 죽겠다. 어떤 작품이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배우마다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데, 난 ‘거리두기’를 선호한다. 일상적인 덤덤함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줄곧 그 틀을 지켜왔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이젠 칭찬도 가끔 듣는다. 역시 뭐든 오래하고 볼 일이다. 연극판 후배들에게도 ‘버텨라’란 얘길 자주 한다.” -버틴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나. “목적을 갖고 버티면 거의 실패하더라. 유명해져야지, 돈 벌어야지 하면 맘대로 안 된다. 연기 자체만 봐야 한다. 서른일곱에 ‘올드보이’ 찍고 겨우 얼굴도장 찍었다. 그때까지 어떻게 살았겠나. 최근 영화 ‘쎄시봉’에 나온 조복래(송창식 역)한테도 그랬다. 조급해마라. 버티면 기회는 온다.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이젠 맘 좀 놓으셨을 텐데….” -영화 ‘국제시장’ 보셨으면 좋았겠다. “크으…, 장난 아니었겠지. (잠깐 허공을 보더니) 당신 세대 얘기니 더 반가워하셨을 텐데. 윤제균 감독부터 배우들 모두 그랬지만, 아버지 생각 많이 났다.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자식 연기하는 극장 꼴 보기 싫어 퇴근 때마다 빙 둘러서 돌아가셨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기죽지 마라며 술값 찔러주는 건 아버지였다.” -1억 배우가 될 때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런 숫자는 배우에게 독과 같다. 한번 재밌게 웃을 뿐, 절대 맘에 둬선 안 된다. 그냥 영화를 많이 찍은 거다. 영화계 식구들이 자주 찾아준 게 고마울 뿐이다. 맘에 남는 건 흥행작이 아니다. 오히려 ‘구타유발자’처럼 안타까운 작품이 눈에 밟힌다. 연기하면서 행복했고, 원신연 감독도 고생 많았는데….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 아, 공포물은 안 된다. 무서우면 아예 시나리오 자체를 읽질 못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톱스타 A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최고 수준인 7억 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수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 수익의 5∼7%를 더 받기로 계약했기 때문. 업계에서 ‘지분 할당’이라 부르는 방식으로 A는 정산 후 20여억 원을 더 챙겼다. 영화 1편 찍고 30억 원이 넘는 거액을 번 셈이다. 스타들의 출연료가 치솟고 있다. 본보 설문조사에서 영화인 30.3%(10명·복수 응답)가 ‘과도한 배우 몸값 등 제작비 급증’을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대기업 수직계열화와 시장 독점’(84.45%·28명)에 이어 2번째로 많았다. 출연료 고액 논란은 늘 존재했지만 이젠 한계선을 훌쩍 넘어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배우 출연료는 2013년 개봉한 영화 ‘7번방의 선물’로 인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제작사끼리의 소송 판결문에서 주연을 맡았던 류승룡과 정진영의 러닝개런티가 공개된 것. 관객이 1000만 명을 넘으면서 둘은 각각 10억6000만 원과 5억2000만 원을 보너스로 가져갔다. 한 영화인은 “관객 1인당 얼마씩 계산해서 받는 러닝개런티도 한물 간 방식”이라며 “요즘 특급스타들은 매출이나 수익에서 약속된 몇 %를 가져가는 지분 할당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올해 개봉하는 한 대작 영화에 출연하는 남녀 주연 배우는 아예 총 매출의 5%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제작사 대표는 “배우 몸값을 대느라 컴퓨터그래픽을 줄이는 등 작품 완성도를 포기할 때도 있다”며 개탄했다. 또 다른 제작자는 “스타가 출연하지 않으면 투자를 받기가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싼 개런티를 주더라도 스타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고충을 겪던 프랑스에서는 출연료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는 앞으로 영화진흥기금의 지원을 받는 영화는 배우 출연료가 제작비의 5%를 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또 제작비가 커져도 99만 유로(약 12억4000만 원) 이상 줄 수 없다. 한 제작사 대표는 “할리우드는 배우 몸값이 수천만 달러라도 제작비의 10%를 넘지 않는다”며 “국내도 제작 규모에 맞춰 적정한 출연료를 받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난해 5월 개봉한 영화 ‘인간중독’은 다소 아쉬운 작품이었다. 한류스타 송승헌이 출연한 치정멜로로 입소문을 탔지만 극장가 흥행은 시원치 않았다. 150만 명이 손익분기점이었는데 최종 스코어는 144만 명을 겨우 넘겼다. 하지만 인간중독은 적자를 면한 것은 물론이고 짭짤한 수익까지 남긴 승자로 기억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온라인 시장에서 한몫 단단히 챙겼기 때문. 지난해 디지털케이블 및 인터넷TV(IPTV) 영화 순위에서 8위에 오르며 27억5000만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게다가 컴퓨터로 보는 인터넷 주문형비디오(VOD) 순위는 당당히 전체 1위(매출액 8억 원)를 차지했다. 영화의 부가판권 시장은 2010년만 해도 매출 규모가 1000억 원대였으나 지난해는 2971억 원으로 뛰었다. 4년 만에 덩치가 3배 가까이로 커져 국내 영화시장 규모(2조 원)의 15%를 차지했다. 본보 설문조사에서도 최근 영화계에서 주목할 흐름으로 응답자의 39.4%(13표·복수 응답)가 ‘부가판권 시장의 성장’을 꼽았다. 이렇다 보니 VOD 시장에서 선호되는 에로영화 등은 극장에 거는 시늉만 하고 곧장 IPTV 등으로 넘어가 승부를 거는 경우도 흔하다. 부가판권 시장의 성장은 영화계에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는 “대기업 자본에 얽매이지 않고 콘텐츠를 제작할 길이 열렸다”며 “최근 다양한 중소 배급사가 등장한 것도 부가판권 시장의 성장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 최근 주목할 흐름 중 ‘다양한 중소 배급사 등장’이 8표를 얻은 것도 이 같은 경향을 반영한다. 그러나 VOD와 온라인 시장이 아직 불투명한 점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 대처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진흥위원회 국내진흥부 양소은 대리는 “오프라인 영화 상영관의 통합전산망처럼 시장의 영화 유통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낼 ‘온라인 상영관 통합전산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한국 영화 시장 2조 원 시대가 열렸다. 지난해 영화계는 2가지 큰 경사를 맞았다. ‘명량’은 관객 1761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흥행 1위에 올랐고 ‘변호인’과 외화 ‘겨울왕국’ ‘인터스텔라’까지 4편의 ‘1000만 영화’가 한 해에 탄생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영화산업 매출은 사상 최초로 2조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 개봉한 ‘국제시장’ 역시 올해 초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외양만 보자면 한국 영화계란 꽃이 만개한 듯하다. 하지만 본보가 영화계 주요 인사 33명에게 설문 및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내부 체감온도는 강추위를 맞고 있었다. 2조 원 시대를 맞은 한국 영화계의 현안을 3회에 걸쳐 진단했다. 》영화계 최고 권력은 과연 누구일까?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또는 개인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3.3%(25명·무응답 3명 제외)가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꼽았다. 2위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2명)와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 1위다.○ 충무로 절대 권력 CJ 응답자 일부는 CJ엔터테인먼트를 “절대 권력”이라고 표현했다. 한 제작사 대표 A 씨는 “CJ는 영화 제작부터 투자와 배급, 심지어 부가판권 시장까지도 휩쓸고 있다”며 “영화계 전체의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고 말했다. 업계 1위인 CJ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관객점유율은 24.9%. 산술적으로 영화 관객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CJ가 배급한 영화를 본 셈이다. 같은 대기업 투자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12.1%)의 2배가 넘는다. 한국 영화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큰손’인 CJ는 계열사인 CJ CGV가 극장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전체 멀티플렉스 295관 가운데 126관(42.7%)을 갖고 있으며, 비멀티플렉스를 포함한 전체 극장 스크린(2281개)의 41.5%(948개)를 차지하고 있다. 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CJ를 비롯한 대기업이 전체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산업을 체계화시킨 건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이윤 추구의 잣대로 영화계가 균형성을 잃고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영화계 현안에 대한 질문(복수 응답)에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와 시장 독점’을 꼽은 응답자가 압도적(84.4%)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영화사 대표 B 씨는 “대기업의 편파적인 상영관 운영 탓에 중소 배급사 영화는 예고편 상영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는 영화 산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낸 ‘2014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투자 수익률은 0.3%로 추정된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플러스 수익이 나긴 했지만 2013년 14.1%와 비교하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대기업이 기획 제작한 대형 영화들은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중소 제작사들이 제작한 영화들의 흥행이 저조했기 때문에 전체적 수익률이 낮아졌다. 영화계에서 흔히 ‘중박’이라 부르는 관객 500만∼800만 명의 한국 영화는 지난해 단 1편도 없었다. ○ 중장년층 위한 텐트 폴(tent pole) 영화 득세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아줄까?” “힘든 세상 풍파를 자식이 아닌 우리가 겪어 참 다행.” 1000만 영화인 ‘명량’과 ‘국제시장’의 이 대사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이 젊은 세대에게 하고픈 얘기를 콕 집고 있기 때문이다. 두 영화의 성공은 제작 단계부터 중장년층 관객을 염두에 둔 기획영화의 힘이란 해석이다. 설문 응답자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최근 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을 묻는 질문에 23명(71.9%)이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티켓파워 상승을 꼽았다. ‘명량’과 ‘국제시장’의 총 제작비는 각각 약 200억 원. 관객이 최소 600만 명을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과거 주요 티켓파워였던 20, 30대를 넘어 40대 이상의 호응이 있어야 가능한 수치다. 투자 배급 상영을 한 손에 쥔 대기업 입장에선 ‘최다 관객의 최대 관람 시기’를 노릴 수밖에 없다. 연말 추석 방학 등 성수기에 개봉할 대형 영화의 경우 기획 단계에서부터 40대 이상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선정한 뒤 다수의 영화관에서 집중적으로 틀어 확실한 흥행을 보장하는 ‘텐트 폴(지지대) 영화’로 삼으려는 것이다. 한 제작자는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앞으로 1000만 영화가 수시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다양성 영화지만 ‘CJ 파워’와 중장년층의 호응이 겹쳐 성과를 냈다. 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인 CGV아트하우스가 상영관을 많이 잡아줬기 때문에 479만 명이란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님아…’를 연출한 진모영 감독은 “소규모 다양성 영화에 균등한 상영 기회를 보장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문 및 인터뷰 참여자 33명 (분야별 가나다순.)▽감독=김한민(대표작 ‘명량’), 김현석(‘쎄시봉’), 윤제균(‘국제시장’), 진모영(‘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제작사=권병균(시네마서비스 대표), 길영민(JK필름 대표), 김미희(드림캡쳐 대표), 남지웅(트리니티 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신규(팔레트픽쳐스 대표), 송은주(빅스톤픽쳐스 이사), 심영(팝콘필름 대표), 심재명(명필름 대표), 엄용훈(삼거리픽쳐스 대표), 이우정(제이필름 대표), 이유진(영화사 집 대표), 주필호(주피터필름 대표) ▽수입 배급사=권미경(CJ E&M 한국영화사업본부장), 김시내(AUD 대표), 서동욱(NEW 부사장), 유정훈(쇼박스 대표), 유현택(그린나래미디어 대표), 이상무(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사업부문 상무), 최낙용(백두대간 부사장) ▽홍보 마케팅=김광현(영화사하늘 대표), 신유경(영화인 대표), 윤숙희(이가영화사 대표) ▽평론가=강유정(강남대 교수), 김시무(한국영화학회장), 남동철(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윤성은(영화평론가협회 출판이사), 전찬일(부산국제영화제 연구소장), 정지욱(Re:WORKS 편집장), 편장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러시아 이민자 집안의 ‘주피터’(밀라 쿠니스)는 목성이란 거창한 이름과 달리 매일 뼈 빠지게 일을 해도 곤궁한 삶을 벗어날 길 없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작스레 외계인들이 찾아오더니 자신을 죽이려 드는 게 아닌가. 전직 우주전사 케인(채닝 테이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목숨을 구하면서 주피터는 엄청난 진실과 맞닥뜨린다. 자신이 단순한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아브라삭스 가문과 관련 있다는 것. 지구인을 하찮은 벌레로 여기는 그들과 엮이며 주피터는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5일 개봉하는 ‘주피터 어센딩’은 2013년 배두나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클라우드 아틀라스’ 이후 라나와 앤디 워쇼스키 남매 감독이 2년여 만에 선보이는 신작. ‘매트릭스’부터 꾸준히 매진해 온 SF(공상과학) 액션영화의 계보를 여실히 잇는다. 매트릭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가상현실이란 설정이었다면, 주피터 어센딩은 지구는 ‘진짜 인류’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농장 같은 존재라는 설정을 깔고 있다. 주피터 어센딩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영화다. 일단 워쇼스키 감독의 전작들처럼 비주얼이 화려하다. 환상 속 고대 도시 같은 우주제국의 풍채는 3차원(3D) 아이맥스로 보면 더욱 근사하다. 액션 역시 흠 잡을 데 없다. 특히 시카고의 밤하늘을 무대로 펼쳐지는 전투신은 몰입도가 매우 높다. 쿠니와 테이텀을 비롯한 출연진도 맡은 역에 꽤나 잘 어울리는 편. 다만 주피터는 절대자의 환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나약하고 주위에 기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살짝 떨어진다. 전작에 이어 다시 출연한 배두나는 짧은 분량만 소화했으나 인상적이다. 아쉬운 건 전체적인 얼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이 뻔한 데다 전 우주를 호령한다는 가문이 왜 이렇게 허술한지.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다소 난해한 구성이었다면, 주피터 어센딩은 훨씬 간결해져 보긴 편해졌으나 이음매가 헐겁다. 공을 들여 퍼즐을 다 맞춰 놓았는데 중요한 피스 몇 개가 빠져 어색한 기분이다. 매트릭스 이후 꽤나 부침이 심했던 워쇼스키 감독의 흥행 성적이 이번엔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12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러시아 이민자 집안의 ‘주피터’(밀라 쿠니스)는 목성이란 거창한 이름과 달리 매일 뼈 빠지게 일을 해도 곤궁한 삶을 벗어날 길 없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작스레 외계인들이 찾아오더니 자신을 죽이려드는 게 아닌가. 전직 우주전사 케인(채닝 테이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목숨을 구하면서 주피터는 엄청난 진실과 맞닥뜨린다. 자신이 단순한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아브라삭스 가문과 관련 있다는 것. 지구인을 하찮은 벌레로 여기는 그들과 엮이며 주피터는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5일 개봉하는 ‘주피터 어센딩’은 지난해 배두나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클라우드 아틀라스’ 이후 라나와 앤디 워쇼스키 남매 감독이 1년여 만에 선보이는 신작. ‘매트릭스’부터 꾸준히 매진해온 SF(공상과학) 액션영화의 계보를 여실히 잇는다. 매트릭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가상현실이란 설정이었다면, 주피터 어센딩은 지구는 ‘진짜 인류’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은 농장 같은 존재라는 설정을 깔고 있다. 주피터 어센딩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영화다. 일단 워쇼스키 감독의 전작들처럼 비주얼이 화려하다. 환상 속 고대도시 같은 우주제국의 풍채는 3D 아이맥스로 보면 더욱 근사하다. 액션 역시 흠 잡을 데 없다. 특히 시카고의 밤하늘을 무대로 펼쳐지는 전투신은 몰입도가 매우 높다. 쿠니와 테이텀을 비롯한 출연진도 맡은 역에 꽤나 잘 어울리는 편. 다만 주피터는 절대자의 환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나약하고 기대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살짝 떨어진다. 전작에 이어 다시 출연한 배두나는 짧은 분량만 소화했으나 인상적이다. 아쉬운 건 전체적인 얼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이 뻔한데다, 전 우주를 호령한다는 가문이 왜 이렇게 허술한지.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다소 난해한 구성이었다면, 주피터 어센딩은 훨씬 간결해져 보긴 편해졌으나 이음새가 헐겁다. 공을 들여 퍼즐을 다 맞춰놓았는데 중요한 피스 몇 개가 빠져 어색한 기분이다. 매트릭스 이후 꽤나 부침이 심했던 워쇼스키 감독의 흥행 성적이 이번엔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12세 이상 관람가.정양환기자 ray@donga.com}
“어르신들에게 ‘쎄시봉’이란 이름은 분명 그리운 추억일 겁니다. 하지만 영화 ‘쎄시봉’은 어느 세대라도 가슴에 간직하고 있을 ‘설렘’이 가득한 작품이기도 해요.” 90년대 쓰레기(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60년대 포크가수로 돌아왔다. 5일 개봉하는 ‘쎄시봉’은 당시 서울 무교동에 실존했던 동명의 음악 감상실을 무대로 한 작품. 조영남, 이장희, 그리고 트윈폴리오(윤형주 송창식)가 실명으로 등장한다. 배우 정우는 트윈폴리오와 함께 노래하다 데뷔 직전 잠적한 오근태란 가상 인물을 연기했다. 최근 만난 그는 “우연찮게 옛 시절을 그린 작품을 연달아 했는데 왠지 엄마 품 같은 푸근함이 가득해서 좋다”고 말했다. ―응사 이후 1년여 만의 복귀다. “벌써 시간이 그리 됐다. 계속 영화 촬영하느라 쉬진 않았는데 공백기처럼 보인다. 대중에게 어떻게 비칠까 긴장된다. 첫 시사 때 경직돼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연기도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어찌나 많은지…. 중장년의 근태 역을 맡은 김윤석 선배가 잘 표현해주셔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 내가 나온 부분은 다 맘에 걸린다, 하하.”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근태와 사랑에 빠지는 한효주(민자영 역)는 근사했다. 열정도 가득하고 캐릭터에 제대로 몰입하더라. 강하늘(윤형주 역)과 조복래(송창식 역)는 심성이 맑고 밝은 친구들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가장 친하게 나오는 진구(이장희 역)와는 대화를 많이 나눴다. 마음을 열고 친구처럼 지냈다. 그런 분위기가 스크린에도 묻어난다.” ―영화에 추억의 명곡들이 쏟아진다. “그 세대는 아니지만 노래들이 정말 멋졌다. 원래도 올드 팝을 즐겨 듣는 편이다. 루이 암스트롱이나 나나 무스쿠리를 좋아한다. 영화에서도 암스트롱의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이 기억에 남는다. 트윈폴리오가 발표한 번안곡 ‘웨딩케익’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음악들이 있었기에 영화가 풍성하고 따뜻해졌다.” ―응사에 이어 또 사랑에 빠지는 무덤덤한 경상도 사내다. “차기작 ‘히말라야’에서도 사투리를 쓰는데…. 이젠 좀 벗어나야겠다, 하하. 특정 지역을 선호한 건 아니다. 설정보단 작품이 가진 메시지에 주목하는 편이다. 영화가 지닌 온도랄까. ‘쎄시봉’만 해도 단순한 러브스토리면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에 대한 그리움과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담겨 마음이 움직였다. 아, 물론 삶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이 첫 번째긴 하다.” ―응사 이후 주목받는 연기자로 삶이 바뀌었다. “고맙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배우로서 많은 시나리오와 출연 제안을 받을 수 있는 건 영광이다. 급하게 서둘진 않으려 한다. 요즘은 자주 푸른 하늘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때 잔디밭에 누워 멍하니 바라봤던. 모자란 게 많지만 여유를 가지고 한 발씩 내딛고 싶다. 관객들이 ‘이 친구가 아무렇게나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구나’ 하고 알아주면 바랄 게 없겠다. 참, 뭣보다 출연을 결정했을 때부터 반가워하신 어머니가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다. ‘쎄시봉’은 공중전화에 동전 넣던 시절을 살던 그분들의 이야기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어르신들에게 ‘쎄시봉’이란 이름은 분명 그리운 추억일 겁니다. 하지만 영화 ‘쎄시봉’은 어느 세대라도 가슴에 간직하고 있을 ‘설렘’이 가득한 작품이기도 해요.” 90년대 쓰레기(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60년대 포크가수로 돌아왔다. 5일 개봉하는 ‘쎄시봉’은 당시 서울 무교동에 실존했던 동명의 음악 감상실을 무대로 한 작품. 조영남, 이장희, 그리고 트윈폴리오(윤형주 송창식)가 실명으로 등장한다. 배우 정우는 트윈폴리오와 함께 노래하다 데뷔 직전 잠적한 오근태란 가상인물을 연기했다. 최근 만난 그는 “우연찮게 옛 시절을 그린 작품을 연달아 했는데 왠지 엄마 품 같은 푸근함이 가득해서 좋다”고 말했다. -응사 이후 1년여만의 복귀다. “벌써 시간이 그리 됐다. 계속 영화 촬영하느라 쉬진 않았는데 공백기처럼 보인다. 대중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긴장된다. 첫 시사 때 경직돼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연기도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어찌나 많은지…. 중장년의 근태 역을 맡은 김윤석 선배가 잘 표현해주셔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 내가 나온 부분은 다 맘에 걸린다, 하하.”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근태와 사랑에 빠지는 한효주(민자영 역)는 근사했다. 열정도 가득하고 캐릭터에 제대로 몰입하더라. 강하늘(윤형주 역)과 조복래(송창식 역)는 심성이 맑고 밝은 친구들이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가장 친하게 나오는 진구(이장희 역)와는 대화를 많이 나눴다. 마음을 열고 친구처럼 지냈다. 그런 분위기가 스크린에도 묻어난다.” -영화에 추억의 명곡들이 쏟아진다. “그 세대는 아니지만 노래들이 정말 멋졌다. 원래도 올드 팝을 즐겨 듣는 편이다. 루이 암스트롱이나 나나 무스꾸리를 좋아한다. 영화에서도 암스트롱의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이 기억에 남는다. 트윈폴리오가 발표한 번안곡 ‘웨딩케이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음악들이 있었기에 영화가 풍성하고 따뜻해졌다.” -응사에 이어 또 사랑에 빠지는 무덤덤한 경상도 사내다. “차기작 ‘히말라야’에서도 사투리를 쓰는데…. 이젠 좀 벗어나야겠다, 하하. 특정지역을 선호한 건 아니다. 설정보단 작품이 가진 메시지에 주목하는 편이다. 영화가 지닌 온도랄까. ‘쎄시봉’만 해도 단순한 러브스토라면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에 대한 그리움과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담겨 마음이 움직였다. 아, 물론 삶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이 첫 번째긴 하다.” -응사 이후 주목받는 연기자로 삶이 바뀌었다. “고맙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배우로서 많은 시나리오와 출연 제안을 받을 수 있는 건 영광이다. 급하게 서둘진 않으려 한다. 요즘은 자주 푸른 하늘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때 잔디밭에 누워 멍하니 바라봤던. 모자란 게 많지만 여유를 가지고 한발씩 내딛고 싶다. 관객들이 ‘이 친구가 아무렇게나 작품을 선택하진 않는구나’ 하고 알아주면 바랄 게 없겠다. 참, 뭣보다 출연을 결정했을 때부터 반가워하신 어머니가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다. ‘쎄시봉’은 공중전화에 동전 넣던 시절을 살던 그분들의 이야기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마트에서 일하는 맥콜(덴절 워싱턴)은 동료에게 은퇴한 노인네 취급받는 인물.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의 유일한 낙은 홀로 심야카페에서 책 읽는 것이다. 우연히 카페에서 친해진 콜걸 테리(클로이 머레츠)가 러시아 마피아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불합리한 세상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던 맥콜은 오랫동안 숨겨 왔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28일 개봉한 영화 ‘더 이퀄라이저’는 국내 팬이라면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줄거리만 들어봐도 2010년 6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 ‘아저씨’가 떠오르니까. 워싱턴이 원빈이라면, 머레츠는 김새론쯤 되는 셈. 물론 올해 61세인 워싱턴은 원빈보다 훨씬 나이가 많긴 하다. 그래도 ‘인물값’ 했던 걸로 치자면 그도 한때 엄청났다. 아저씨 표절인가 의심도 들겠지만, 사실 ‘더 이퀄라이저’는 1980년대 미국의 동명 인기드라마가 원작이다. 국내에서도 ‘맨하탄의 사나이’란 제목으로 방영돼 꽤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는 전직 미 정보부 요원이었던 맥콜이 정의로운 사립 탐정으로 활약하는 내용. 반면 영화는 아내를 잃은 뒤 모든 걸 등지고 초야에 묻혔던 그가 다시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러’ 돌아오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더 이퀄라이저’는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는 영화다. 좀 늙었어도 여전히 연기력은 출중한 워싱턴의 액션을 즐기면 된다. 청소년 관람 불가인 만큼 꽤나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할리우드 여동생’이라 불리는 머레츠의 성인 연기 변신도 눈길을 끈다. 전형적인 다 때려 부수는 영화이니 개연성 같은 걸로 딴죽 걸진 말자. 18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마트에서 일하는 맥콜(덴젤 워싱턴)은 동료에게 은퇴한 노인네 취급받는 인물.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의 유일한 낙은 홀로 심야카페에서 책 읽는 것이다. 우연히 카페에서 친해진 콜걸 테리(클로이 모레츠)가 러시아 마피아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불합리한 세상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던 맥콜은 오랫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28일 개봉한 영화 ‘더 이퀄라이저’는 국내 팬이라면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줄거리만 들어봐도 2010년 600만 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 ‘아저씨’가 떠오르니까. 워싱턴이 원빈이라면, 모레츠는 김새롬 쯤 되는 셈. 물론 올해 61세인 워싱턴은 원빈보다 훨씬 나이가 많긴 하다. 그래도 ‘인물 값’했던 걸로 치자면 그도 한때 엄청났다. 아저씨 표절인가 의심도 들겠지만, 사실 ‘더 이퀄라이저’는 1980년대 미국의 동명 인기드라마가 원작이다. 국내에도 ‘맨하탄의 사나이’란 제목으로 방영돼 꽤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는 전직 미정보부요원이었던 맥콜이 정의로운 사립 탐정으로 활약하는 내용. 반면 영화는 아내를 잃은 뒤 모든 걸 등지고 초야에 묻혔던 그가 다시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 돌아오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더 이퀄라이저’는 복잡하게 생각할 게 없는 영화다. 좀 늙었어도 여전히 연기력은 출중한 워싱턴의 액션을 즐기면 된다. 청소년 관람불가인 만큼 꽤나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할리우드 여동생’이라 불리는 모레츠의 성인연기 변신도 눈길을 끈다. 전형적인 다 때려 부수는 영화이니 개연성 같은 걸로 딴죽 걸진 말자. 18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28일 개봉한 영화 ‘내 심장을 쏴라’는 여러모로 1975년 미국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떠오른다. 둘 다 탄탄한 소설이 원작인 데다 정신병동을 무대로 했다. 강압에 맞서 탈출을 꿈꾸는 전개나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도 닮았다. 물론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수상한 ‘뻐꾸기…’의 내공과 비교하긴 무리겠지만, 그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배어 있다.○ ‘내 심장을…’에 있는 것 ①청춘=‘뻐꾸기…’의 잭 니컬슨도 젊긴 했다. 그러나 거의 마흔이었다. 앳된 이민기(30·승민 역)와 어린 여진구(18·수명 역)에 비할 바는 아니다. ‘내 심장을…’은 이러한 청춘들이 현실에서 몸부림치는 뒤틀림에 초점을 맞춘 작품. 끊임없이 세상을 뛰쳐나가고픈 승민. 분출구를 찾지 못해 안으로만 숨는 수명. 둘 다 우리네 청춘의 표상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어떤 젊음에게나 세상은 갑갑한 새장이니까. ②브로맨스=소설과 달리 맥머피(니컬슨)를 원 톱으로 세웠던 ‘뻐꾸기…’. ‘내 심장을…’은 원작 그대로 투 톱의 무게중심을 잘 유지한다. 승민이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면, 수명이 이를 쓸어 담는다. 승민의 날선 눈매와 수명의 깊은 눈빛이 엮어 낸 묘한 앙상블. 때론 브로맨스를 넘어서는 코드로 읽히기도 한다. 그나저나 머리를 곱게 묶은 여진구는 극중 ‘미스 리’란 별명이 어울린다. ③액션=정신병원이 주 무대니 자칫 갑갑할 수 있었을 터. 영화는 이들의 반복된 탈출에 액션을 가미해 돌파구를 찾는다. 창공을 가르는 패러글라이딩이나 물살을 가르는 모터보트 신이 조미료 역할을 한다. 특히 여진구는 촬영을 위해 ‘동력 수상레저기구 조종 면허’도 땄단다.○ ‘내 심장을…’에 없는 것 ①잭 니컬슨=당연히 어디서 쉽게 구할 아이템이 아니다. 이민기도 그 나름으로 분투했지만, 어찌 비할 수 있겠나. 어느 작품에서나 존재감을 뿜어내는 니컬슨은 ‘뻐꾸기…’에선 맥머피를 위해 태어났단 찬사까지 받았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역시 그의 몫이었다. 함께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수간호사 래체드를 연기한 루이스 플레처도 대단했다. 다른 작품은 떠오르지도 않는 ‘인생 연기’였다. ‘내 심장을…’에선 최 간호사(유오성)가 중심을 잘 잡아 주나 비중이 크진 않다. ②저항정신=물론 ‘내 심장을…’도 갈수록 각박한 사회에 어깨가 처진 청춘을 위한 다독임이 엿보인다. 그러나 ‘뻐꾸기…’가 지닌 폐부를 찔러 오는 날카로움은 찾기 어렵다. 집단이란 체제에 순응을 요구하는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부딪히던 맥머피.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동료의 맘속에 살아남는다. ‘내 심장을…’에서도 승민이 수명의 변화를 이끌지만 다소 흐름이 헐겁다. 문제용 감독은 “영화 속 정신병원은 사회의 축소판”이라며 “관객들이 자기 자신을 찾는 힘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얼마만큼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28일 개봉하는 영화 ‘내 심장을 쏴라’는 여러모로 1975년 미국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떠오른다. 둘 다 탄탄한 소설이 원작인데다 정신병동을 무대로 했다. 강압에 맞서 탈출을 꿈꾸는 전개나 그 속에 피어나는 우정도 닮았다. 물론 아카데미 작품상 포함 5개 부문을 수상한 ‘뻐꾸기…’의 내공과 비교하긴 무리겠지만, 나름 독특한 매력이 배어있다.●‘내 심장을…’엔 OOO이 있다. ① 청춘=‘뻐꾸기…’의 잭 니컬슨도 젊긴 했다. 허나 거의 마흔이었다. 앳된 이민기(30·승민 역)와 어린 여진구(18·수명 역)에 비할 바는 아니다. ‘내 심장을…’은 이러한 청춘들이 현실에 몸부림치는 뒤틀림에 초점을 맞춘 작품. 끊임없이 세상을 뛰쳐나가고픈 승민. 분출구를 찾지 못해 안으로만 숨는 수명. 둘 다 우리네 청춘의 표상이긴 마찬가지 아닌가. 어떤 젊음에게나 세상은 갑갑한 새장이니까. ② 브로맨스=소설과 달리 맥머피(니컬슨)를 원 톱으로 세웠던 ‘뻐꾸기….’ ‘내 심장을…’은 원작 그대로 투 톱의 무게중심을 잘 유지한다. 승민이 이야기를 펼쳐놓는다면, 수명이 이를 쓸어 담는다. 승민의 날선 눈매와 수명의 깊은 눈빛이 엮어낸 묘한 앙상블. 때론 브로맨스를 넘어서는 코드로 읽히기도 한다. 그나저나 곱게 머리를 묶은 여진구는 극중 ‘미스 리’란 별명이 어울린다. ③ 액션=정신병원이 주 무대니 자칫 갑갑할 수 있었을 터. 영화는 이들의 반복된 탈출에 액션을 가미해 돌파구를 찾는다. 창공을 가르는 패러글라이딩이나 물살을 가르는 모터보트 신이 조미료 역할을 한다. 특히 여진구는 촬영을 위해 ‘동력 수상레저기구 조종 면허’도 땄단다. ●‘내 심장을…’엔 OOO이 없다. ① 잭 니컬슨=당연히 어디서 쉽게 구할 아이템이 아니다. 이민기도 나름 분투했지만, 어찌 비할 수 있겠나. 어느 작품에서나 존재감을 뿜어내는 니컬슨은 ‘뻐꾸기…’에선 잭머피를 위해 태어났단 찬사까지 받았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역시 그의 몫이었다. 함께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수간호사 랫체드를 연기한 루이스 플레처도 대단했다. 다른 작품은 떠오르지도 않는 ‘인생 연기’였다. ‘내 심장을…’에선 최 간호사(유오성)가 중심을 잘 잡아주나 비중이 크진 않다. ② 저항정신=물론 ‘내 심장을…’도 갈수록 각박한 사회에 어깨가 쳐진 청춘을 위한 다독임이 엿보인다. 허나 ‘뻐꾸기…’가 지닌 폐부를 찔러오는 날카로움은 찾기 어렵다. 집단이란 체제에 순응을 요구하는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부딪히던 잭머피.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동료의 맘속에 살아남는다. ‘내 심장을…’에서도 승민이 수명의 변화를 이끌지만 다소 흐름이 헐겁다. 문제용 감독은 “영화 속 정신병원은 사회의 축소판”이라며 “관객들이 자기 자신을 찾는 힘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얼마만큼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은 다시 관객의 마음을 훔칠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31일 개봉한 ‘개훔방’이 26일까지 모은 관객은 약 24만 명. 수치만 보자면 당장 극장에서 내려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영화를 제작한 삼거리픽쳐스의 엄용훈 대표는 27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 영화를 돌아봐 달라’는 글을 올리며 대기업에 장악된 영화계 현실을 비판했다. ○ “100m 경주에서 족쇄 차고 뛰는 격” 이날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난 엄 대표는 “개봉하고 (속이 상해) 불면증에 걸렸는데 글 쓰며 또 며칠 밤을 새웠다”며 “그냥 박 대통령이 영화를 한번 봐주면 좋겠다. 이게 진짜 망할 만한 작품인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엄 대표가 말하려는 바는 간명하다. 개훔방이 대기업 위주의 독과점 시장구조에 짓눌려 제대로 경쟁조차 해보지 못했단 주장이다. 개훔방은 총 제작비 38억 원이 들어갔다. ‘명량’처럼 200억 원씩 들어간 대작에 비하면 소품이다. 하지만 “100m 경주에서 20m 뒤로 물러나 발에 족쇄까지 달고 뛰라고 하면 게임이 되느냐”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개훔방은 개봉 첫날 205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외화 ‘테이큰3’(613개)와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의 펭귄’(509개)보다 훨씬 적다. 이에 앞서 ‘국제시장’은 913개로 출발했다. 예매율 저조 등의 이유로 개봉관이 적었던 것. 하지만 엄 대표는 “보통 큰 영화는 1∼2주 전 예매가 시작되는데 개훔방은 5일 전쯤에야 오픈했다”며 “예매가 가능한 곳도 5개 관뿐이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 개봉한 ‘테이큰3’의 예매 가능 극장은 67개 관이었다. 게다가 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게만 틀어주는 상영관도 많았다. 26일 현재 개훔방의 상영관은 30개에 그친다.○ 대안배급사 경계인가 단순한 착시현상인가 지난해 국내 영화 개봉작은 1117편. 평균 하루 세 편 이상 쏟아지는 상황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작품이 부지기수다. 개훔방은 평단 지지도 높았고, 관객 반응도 좋았다. 미국 작가 바버라 오코너의 원작이 탄탄한 데다, 김혜자 최민수 강혜정 등 배우들의 연기도 근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연예인들의 극찬도 속속 올라왔다. 포털사이트엔 상영 확대 청원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각에선 개훔방의 시련을 “영화를 망치는 완벽한 방법”의 표본이라 부른다. 작품과 별개로 외부 요소가 작용했단 시각이다. 우선 배급사가 ‘리틀빅픽쳐스’였던 점을 꼽는 이가 많다. 리틀빅픽쳐스는 2013년 9개 제작사가 대기업 배급사에 맞서기 위해 공동 설립한 회사.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배급사와 영화관을 함께 갖고 있는 대기업 입장에선 리틀빅픽쳐스의 배급 영화에 극장을 많이 내줄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 대표는 최근까지 무급으로 리틀빅픽쳐스 대표로 활동했으나, ‘카트’ ‘개훔방’의 흥행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CGV와 롯데시네마 측은 이에 대해 연말연초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 좌석이 텅텅 비는 영화에 무한정 기회를 줄 순 없다는 반응이다. 또 SNS 반응이 좋다고 해서 점유율이 높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한 극장 관계자는 “명량이나 국제시장 흥행 탓에 생기는 착시현상”이라며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들도 지난해 숱하게 망했다. 특정 영화에 불이익을 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피아니스트였던 케이트(힐러리 스왱크)는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인생. 다정한 남편 에번(조시 더멜)과 함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그러나 35세 생일날 몸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이상신호.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판정을 받는다. 가수 지망생 벡(에미 로섬)은 모든 게 엉망진창인 20대. 학업도 사랑도 제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우연한 기회에 덜컥 케이트의 간병인으로 채용되나 모든 게 실수투성이. 그런 벡을 케이트는 묘하게도 맘에 들어 하는데…. 22일 개봉하는 영화 ‘유아 낫 유(You‘re not you)’는 미국 여성작가 미셸 와일드젠이 쓴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원작 소설은 뉴욕타임스 등 여러 매체에서 극찬을 받았다. 오프라 윈프리 매거진은 “낯선 사람들이 서로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며 친밀감을 형성하는지 보여 주는 이야기”라고 평했다. ‘유아 낫 유’는 브로맨스(Bromance·남성 사이의 우정)의 반대인 ‘우맨스(Womance·여성 사이의 우정)’를 다룬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년) 이래 그리 색다른 주제는 아니다. 다른 인생을 살던 두 여성이 첨엔 삐걱대다가 점차 맘을 연다는 전개는 고리타분할 정도다. 그런데 뻔한 것조차 뻔하지 않게 만드는 힘. 바로 두 여배우의 연기다. 이젠 ‘믿고 보는 배우’라 불러도 좋을 스왱크는 감탄을 넘어 존경스럽다. 수개월 동안 루게릭 환자를 만나며 작은 근육 떨림까지 고민했다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단순히 시한부 환자를 완벽하게 재현한 게 아니다. 환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닌 감정과 욕망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로섬 역시 만만치 않다. 2004년 영화 ‘투모로우’ 이후 다양한 작품으로 친숙해졌는데,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였나 싶다. 영화 흐름상 스왱크와의 투 샷이 많은데 딱히 기울질 않는다. 하나 더 보태고 싶은 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그저 두 여성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다소 심심했을 터. 케이트와 벡은 “네 모습 있는 그대로 봐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건, 앞으로 창창하건 상관없이 말이다. 그걸 진정 원한다면, 먼저 내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려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길. 15세 이상 관람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피아니스트였던 케이트(힐러리 스웽크)는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인생. 다정한 남편 에반(조쉬 더하멜)과 함께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허나 35세 생일날 몸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상신호.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루게릭 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판정을 받는다. 가수지망생 벡(에미 로섬)은 모든 게 엉망진창인 20대. 학업도 사랑도 제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우연한 기회에 덜컥 케이트 간병인으로 채용되나 모든 게 실수투성이. 그런 벡을 케이트는 묘하게도 맘에 들어 하는데… 22일 개봉하는 영화 ‘유아 낫 유(You’re not you)‘는 미국 여성작가 미셀 와일드젠이 쓴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원작 소설은 뉴욕타임스 등 여러 매체에서 극찬 받았다. 오프라 윈프리 매거진은 “낯선 사람들이 서로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며 친밀감을 형성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평했다. ‘유아 낫 유’는 브로맨스(Bromance·남성 사이의 우정)의 반대인 ‘워맨스(Womance·여성 사이의 우정)’를 다룬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년) 이래 그리 색다른 주제는 아니다. 다른 인생을 살던 두 여성이 첨엔 삐걱대다가 점차 맘을 연다는 전개는 고리타분할 정도다. 그런데 뻔한 것조차 뻔하지 않게 만드는 힘. 바로 두 여배우의 연기다. 이젠 ‘믿고 보는 배우’라 불러도 좋을 스웽크는 감탄을 넘어 존경스럽다. 수개월 동안 루게릭 환자를 만나며 작은 근육 떨림까지 고민했다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단순히 시한부를 완벽하게 재현한 게 아니다. 환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닌 감정과 욕망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로섬 역시 만만치 않다. 2004년 영화 ’투모로우‘ 이후 다양한 작품으로 친숙해졌는데,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였나 싶다. 영화 흐름 상 스웽크와의 투 샷이 많은데 딱히 기울질 않는다. 하나 더 보태고 싶은 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그저 두 여성의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다소 심심했을 터. 케이트와 벡은 “네 모습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건, 앞으로 창창하건 상관없이 말이다. 그걸 진정 원한다면, 먼저 내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려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길. 15세 이상 관람가.정양환기자 ray@donga.com}
“‘워터 디바이너’는 참혹한 전쟁의 상처 속에서도 더욱 또렷해지는 아버지와 자식의 유대감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도 전쟁의 아픔을 겪었다고 알고 있는데 더 많이 공감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년)의 근육질 장군은 어디로 갔을까. 19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 배우 러셀 크로(51)는 살짝 ‘치킨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푸근한 인상이었다. 이번이 그의 첫 방한이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워터 디바이너’는 크로가 주연은 물론이고 메가폰까지 잡은 감독 데뷔작. 워터 디바이너(Water Diviner)란 광활한 호주의 척박한 땅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고 지하수를 찾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영화에서 크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에서 벌어진 갈리폴리 전투에서 세 아들을 잃은 뒤 아들 시신이라도 찾으려는 워터 디바이너 조슈아 코너 역을 맡았다. 그는 “길고도 험한 여정에도 부정(父情)을 잃지 않고 인생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과정을 담담히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명 받으면 작품을 선택한다”는 크로는 “이 작품을 어떻게 책임질까를 고민하다 연출까지 맡았다”고 떠올렸다. 그간 함께 작업한 리들리 스콧과 론 하워드 감독 등을 지켜보며 자연스레 연출의 길도 생각해왔단다. ‘워터 디바이너’ 촬영을 앞두고 “두 감독이 ‘감독이란 직업에 푹 빠질 것’이라며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할리우드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해 온 비결도 들려줬다. 그는 연기에서 중요한 3가지로 “집요한 노력과 협력적 태도, 세밀한 표현력”을 들었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고, 부족한 부분을 열심히 채우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대에 끊임없이 연극 공연을 하면서도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공원에 갔습니다. 거기서 연기에 대한 소망을 다짐하곤 했죠. 별것 아닌 행동이지만 그런 절제와 노력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게 아닐까요.”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목만 봐도 주장하는 바를 딱 알 수 있다. 부제도 명확하다. ‘부와 건강, 지속가능성에 대한 해답.’ 걷기 좋은 도시로 만들면 건강해지고 부자도 된단 얘긴가 보다. 게다가 후손이 살기 좋은 터전으로 만드는 지속가능성도 높인단다. 미국의 도시계획가인 저자가 보기에 현대 도시는 그간 도보의 편의성을 무시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차도는 넓어지고 인도는 좁아졌다. 가로수는 사라졌고 주차장만 거대해졌다. 보행자보단 자동차가 중심이 된 지 오래란 얘기다. 저자는 전기자동차도 결코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걷거나, 최소한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10가지 단계별 과정을 제시한다. 몇 가지 눈여겨볼 만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가로수는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해 교통에 불편을 끼치는 장애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로수가 조밀한 지역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훨씬 낮다. 게다가 도시의 하수도 범람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또 도시는 눈앞에 닥친 교통체증을 해소하려 도로를 늘리는데, 실제로는 도로 건설이 오히려 교통량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한다. ‘걸어 다닐…’은 솔직히 고개가 갸웃거려지긴 한다. 과연 미국적 식견이 좁디좁은 한반도 사정에 적합할는지 의구심이 드니까.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보행 친화적 도시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곳이 다름 아닌 이탈리아 로마란다. 인도와 횡단보도가 부족하고, 가파른 경사와 울퉁불퉁한 도로로 악명 높은 그곳이? 이유는 사람들이 걷고 싶게 만드는 ‘호감’이란다. 어쩌면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는 인프라가 해답이 아닌가 보다. 도시를 사는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변화시키는 게 먼저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런 인식의 변화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허삼관’(12세 이상 관람가)은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 영화의 국내 영화화 계약이 성사된 건 16년 전. 하지만 원작의 무게감 때문인지 그동안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모두가 꺼리던 일을 하겠다고 나선 이는 저예산영화 한 편이 연출 경력의 전부인 신인감독이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자, 감독과 여배우인 하정우와 하지원을 만났다.》○ 하정우“그동안 여러 작품을 하며 수없이 인터뷰를 해왔는데 이번엔 정말 낯설어요. 잘 모르는 건 감독님한테 물어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그럴 수도 없고….” 말과는 달리 하정우(37)는 특유의 달변으로 인터뷰 내내 영화에 대해 쉼 없이 얘기했다. 위화의 소설 ‘허삼관매혈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허삼관’에서 그는 주인공과 감독의 1인 2역을 맡았다. 2013년 저예산영화 ‘롤러코스터’ 이후 두 번째 연출작이자 본격 상업영화로는 사실상의 데뷔작이다. “시나리오 작업 3개월 만에 능력 밖의 일이라는 걸 알았다”는 그는 “배우 하정우의 이름을 만든 방법, ‘엉덩이 힘’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원작이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부담이 컸겠다. “모두가 말렸지만 단 하나, 주인공 허삼관의 캐릭터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다. 영화 속 허삼관은 아버지로 완성된 인물이 아니다. 결혼 뒤에도 엉뚱하고 어린애 같던 삼관이 장남 일락이가 실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점점 더 아버지로 성장해나가는, 일종의 우화 같은 이야기다.” ―옥란 역의 하지원을 비롯해 조진웅 이경영 김영애 윤은혜 등 캐스팅이 화려하다. “소설 속 문어체 대사를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소화할지 고민이 많았다. 훌륭한 배우, 이름 있는 배우가 갖는 신뢰감과 연기력에 기대려 한 면이 있다. 너무 사실적으로 가지 않고 판타지를 가미한 것도 그 때문이다.” ―‘롤러코스터’는 정말 원하는 대로 했다면 이번에는 대중성을 많이 고려한 것 같다. “흥행을 위해 내 스타일을 타협하지는 않았다. ‘노팅힐’ 마지막 장면에서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만나 사랑이 이뤄지는 장면처럼 짜릿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이제 한두 작품 더 찍어보면 진짜 내 스타일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는 허삼관 홍보 일정 틈틈이 영화 ‘암살’(최동훈 감독)도 촬영하고 있다. “이제 기간 내에 촬영을 마쳐야 하는 감독의 애타는 마음을 아니까 스케줄이 빡빡해도 말을 못 하겠다. 굉장히 마음이 너그러워졌다”며 웃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2월 28일 개인전도 연다. “그림도 건강한 배우가 되기 위해 시작했고, 결국 모두 영화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는 일이에요. 감독을 해보고 나니 이젠 좋은 영화를 보면 ‘내가 나중에 저런 영화를 찍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신이 나요. 그런 마음이 절 계속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하지원“언젠간 엄마 연기에 도전할 날이 오리란 건 알고 있었죠. 그런데 영화 ‘허삼관’처럼 따뜻함이 넘치는 작품에서 그런 역할을 하게 돼 정말 기뻤어요.” 14일 개봉한 영화 ‘허삼관’에서 주인공 허삼관(하정우)의 아내 허옥란을 연기한 하지원은 앳된 소녀 같은 구석이 있었다. 연말 TV 시상식에 나온 모습을 보고 평소 진중하던 아버지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셨다”며 자랑(?)하는데 눈웃음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억척스러운 엄마 역은 어떤 도전이었을까. ―삼형제의 엄마 역이 힘들지 않았나. “처음엔 거절하려 했다. 당시 드라마 ‘기황후’ 촬영 탓에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그런데 시나리오가 무척 재밌었다. 게다가 하 감독이 이 역에 잘 맞는다며 열심히 설득했다. 왜 잘 어울린다고 할까,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뭔가를 발견할 기회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선 현장 분위기가 좋아 부담감이 확 사라졌다. 그냥 전형적인 캐릭터보단 하지원이 보여줄 수 있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담으려 했다.” ―1950, 60년대 시대극도 처음이다. “그때라 해서 특별히 사람의 감성이 다르지 않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물론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이란 건 고려했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에 몰입해 선입견을 갖지는 않으려 했다. (당시 문예소설처럼) 문어체를 쓰는 연기도 출연배우가 다 함께 하니 전혀 오글거리지 않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문어체 말투가 확 와 닿았고. 세 아들로 나오는 아역 배우들과 사이가 좋아 촬영장에 아이들과 소풍 가는 기분으로 찍었다.” ―하지만 옥란은 내면이 복잡한 캐릭터다. “맞다. 대본 역시 설명이 디테일하지 않아 쉽진 않았다. 그래서 시나리오엔 없는 옥란의 상황이나 심경을 직접 만들어봤다. 예를 들어, 삼관이 야밤에 옥란에게 만두를 사준다며 찾아온 신이 있다. 그때 낮부터 밤까지 옥란은 뭘 했는지 ‘또 하나의 시나리오’를 써서 혼자 연기해보곤 했다. 카메라에 담기진 않아도 그런 흐름을 이어가니 훨씬 느낌이 살았다. 쉬는 시간은 줄었지만 연기가 더 즐거워졌다.” ―액션에 멜로도 잘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고마울 따름이다. 액션도 멜로도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다만 그간 착한 역만 해서 이젠 악역을 하고 싶다. ‘허삼관’에서 나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것처럼,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면을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일상은 참한 유치원 선생인데, 뒤로는 유괴를 일삼는 악마라든가. 너무 과한가, 호호.”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