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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최근 모바일 메신저나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조건만남’을 갖자고 유혹한 뒤 그 대가만 미리 송금 받는 등의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처럼 음성적인 거래와 관련해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업체들은 채팅앱이나 메신저를 통해 ‘조건만남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무작위로 발송한다. 이를 보고 연락한 사람들에게 선금이나 보증금을 대포 통장으로 입금하게 한 뒤 이를 가로채는 방식이다. 이밖에도 알몸으로 화상채팅을 하자고 유인하고, 확보한 채팅 영상을 지인들에게 전송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몸캠 피싱’도 신종 사기 수법 중 하나다. 현행법 상 용역이나 상품을 제공한다고 속이는 행위는 일반적인 보이스피싱과 달리 지급정지나 피해금 환급 등의 신속한 구제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다만, 형법상 사기죄나 협박죄에 해당하므로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음성적인 거래의 경우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리는 만큼 어떠한 경우에도 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지난해 어머니 수술비를 구하던 20대 이모 씨는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대부업체에 200만 원의 대출을 신청했다. 수수료 명목으로 대출금의 20%를 먼저 떼고 매달 40만 원씩 이자를 내는 조건이었지만, 급한 마음에 일단 대출을 받았다. 최근 빚 독촉에 시달리던 이 씨는 해당 업체가 미등록 업체이며 연리로 따졌을 때 300%가 넘는 고금리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금감원은 법정 최고금리 제한 규정을 담은 대부업법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이 같은 미등록 대부업체들의 불법 행위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고 11일 밝혔다. 금감원과 지방자치단체들은 등록 대부업체를 상대로 기존 최고금리(연 34.9%)를 지키도록 지도하고 있지만 미등록 업체들은 여전히 감독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미등록 대부업체의 영업 행위는 최고 금리의 준수 여부를 떠나 모두 불법으로, 적발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특히 ‘누구나’ 또는 ‘신용불량자 가능’과 같은 광고 문구를 사용할 경우 미등록 업체일 가능성이 높다”며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경우 무작정 대부업체를 찾아가기보다는 금감원이나 한국이지론 등에서 먼저 상담받는 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최근 수년째 지지부진했던 금 가격이 새해 들어 반짝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연초부터 중국 증시가 폭락을 거듭하는 데다 저유가 수렁에 빠진 중동의 정세 불안이 겹치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에 돈이 몰리는 상황이다.○ 시장 불안 속 안전자산 인기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금 가격은 새해 첫 거래일인 4일에 1.4% 오른 온스당 1075.20달러를 나타낸 이후 4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금 가격은 8일 조정을 받으며 1097.90달러로 마쳤지만 1주일 동안 3.6%나 급등했다. 주간 기준으로 지난해 8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국제 금값이 상승하면서 국내 금 거래시장도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1일 금 도매가격은 g당 4만2200원으로 올 들어 6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특히 차익 실현을 위해 매물을 내놓는 투자자도 많아지면서 전체 거래량이 크게 늘었다. 올해 첫 거래일인 4일 1341g이던 거래량은 11일 1만7822g으로 10배 넘게 증가했다. 금값 상승은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안전자산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중국의 경기 침체나 중동의 정정 불안이 단시간 내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당분간 금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보고서를 인용해 “주식시장 호황기가 끝나가는 가운데 2011년부터 침체기를 보냈던 금과 같은 귀금속이 이제 다시 주목받을 시기”라고 분석했다. 다만 올해 미국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금값 상승세가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강유진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지난 주말 발표된 미국의 고용지표가 호조를 보여 3월 금리 인상에 대한 경계심이 다소 높아졌다”면서 “금리 인상이 결정되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며 금값이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현물 투자부터 금 펀드까지 다양 금에 투자하는 이른바 ‘금테크’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골드바와 같은 현물에 투자하는 것이다. 금을 살 때는 10%의 부가가치세와 5% 내외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다른 투자 상품과 달리 시세 차익에 대해서는 별도의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도 제외된다는 장점이 있다. 골드바 투자는 세금이나 보관 비용 등을 고려할 때 15% 이상의 수익을 내야 의미가 있으므로 최소 3년 이상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골드뱅킹이나 금펀드와 같은 금융 상품도 있다. 골드뱅킹은 실물 거래 없이 통장에 돈 대신 금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투자한다. 납입 시점의 금 시세에 따라 통장에 금이 쌓인다. 나중에 투자한 돈을 되찾을 때는 출금 당시 시세로 금을 현금화하기 때문에 금값이 오른 만큼 시세 차익을 누릴 수 있다. 금펀드는 금과 관련된 기업이나 금 지수에 연동되는 선물(先物)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현물과 달리 소액투자가 가능하고 환금성이 좋다. 다만 간접투자다 보니 현물을 직접 구입했을 때보다 금값 상승에 따른 이익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도 있다. 이 밖에 1g 단위로 거래가 가능한 한국거래소 금시장을 이용하면 적은 돈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고 장내에서 거래할 경우 부가가치세도 면제된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경영권 다툼을 벌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주식 다량 보유(전체 주식 중 5% 이상) 공시 의무를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총수익스와프(TRS)’라는 파생금융상품을 활용했다. TRS는 매매에 따른 손익은 투자자에게 귀속되지만, 거래 주식에 대한 보고 의무는 계약자(증권사)가 부담하는 구조다. 금감원은 엘리엇이 TRS를 통해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이면서 이 구조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공시 의무를 피해갔다고 보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특수 관계자와 합친 특정 회사 지분이 5%를 넘으면 이를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한다. 이 규정을 어길 경우 금융당국은 해당 투자자에게 주의, 경고 등의 제재를 내리거나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엘리엇에 대한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며 위반 여부와 제재 수위는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서 확정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중동 국부펀드와의 우리은행 매각 협상이 난항을 겪자 정부가 대안 모색에 나섰다. 저유가 쇼크로 투자 여력이 떨어진 중동 대신 자금이 풍부한 유럽에서 새로운 인수자를 찾겠다는 것이다. 10일 윤창현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 민간위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더이상 중동 국부펀드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는 인식이 많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우리은행 매각 협상 전담팀을 구성해 중동 지역 국부펀드들과 지분 매각 협상을 벌여왔다. 하지만 최근 저유가가 계속되자 재정난을 우려하는 중동 산유국들이 해외 투자에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섰고, 우리은행 매각 협상 역시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윤 위원장은 “중동의 투자 여력은 단기간 내에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양적완화로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든 유럽은 상대적으로 투자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가 잇달아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것도 유럽 투자자들의 한국 투자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광구 우리은행장도 다음 달 중순 영국 런던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지역을 돌며 직접 투자설명회(IR)에 나설 예정이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의 자산건전성 지표를 바탕으로 실적 대비 현재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투자자들을 설득할 방침이다. 우리은행 주가는 지난해 4월 말 1만1850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8일 종가 기준 8540원까지 떨어졌다. 다만 아직까지 중동의 아부다비투자청처럼 유럽의 특정 투자자가 우리은행 인수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당장 중동에서 유럽으로 협상 대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면서 “어디가 됐든 매수자가 나타나면 언제든 협상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기존의 경영권 매각 방식에 과점 주주 매각 방식을 결합한 새로운 우리은행 민영화 추진 방향을 내놨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 측은 “매각 기한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경영권 다툼을 벌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주식 다량 보유(전체 주식 중 5% 이상) 공시 의무를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금융당국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총수익스와프(TRS)’라는 파생금융상품을 활용했다. TRS는 매매에 따른 손익은 투자자에게 귀속되지만, 거래 주식에 대한 보고 의무는 계약자(증권사)가 부담하는 구조다. 금감원은 엘리엇이 TRS를 통해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면서 이 구조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공시 의무를 피해갔다고 보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특수 관계자와 합친 특정 회사 지분이 5%를 넘으면 이를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한다. 이 규정을 어길 경우 금융당국은 해당 투자자에게 주의, 경고 등의 제재를 내리거나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엘리엇에 대한 조사가 아직 진행 중이며 위반 여부와 제재 수위는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의 심의와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서 확정될 사안”이라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오른쪽 손바닥을 기계에 가까이 대세요.” “고객님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거래를 계속하세요.” 직장인 박모 씨는 퇴근 후 오후 10시가 돼서야 집 근처의 은행 무인점포에 들렀다. 현금을 인출하고 나가려던 박 씨는 평소 가입하고 싶었던 체크카드가 떠올랐다. 박 씨는 손바닥으로 바이오 인증을 마친 지 10분도 안 돼 체크카드를 발급받았다. 그는 “기존에는 카드를 발급받으려면 업무시간에 은행을 찾아가야만 해 불편했다”며 “자동화기기(ATM)에서 새 카드가 바로 나오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통장이나 신분증은 물론이고 카드도 필요 없이 정말 ‘몸’만 가면 대부분의 은행 업무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손바닥·홍채로 카드 발급까지 ‘OK’ 국내에서 고객이 영업점에 가지 않고 은행 업무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당시 영업점이 아닌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ATM만 설치하는 형태의 무인점포가 처음 생겨났다. 365일, 24시간 언제라도 이용할 수 있는 무인점포를 두고 당시 언론에서는 “꿈의 은행이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비슷한 시기에 텔레뱅킹과 PC뱅킹 등 집에서 계좌이체 등이 가능한 홈뱅킹 시대도 열렸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 정보기술(IT)의 발달은 과거 상상하기 어려웠던 금융 인프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신한은행이 지난해 12월 선보인 셀프뱅킹창구 ‘디지털 키오스크’는 국내 최초로 손바닥 정맥으로 고객의 신분을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사람마다 손바닥에 있는 혈관 형태가 모두 다르다는 점을 이용한 방식으로 손바닥을 인식기에 가까이 대기만 하면 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일란성 쌍둥이조차 손바닥 정맥 형태가 다르다”면서 “다른 사람의 손바닥으로 잘못 인식할 확률은 0.0001%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홍채 인식을 통해 거래가 가능한 ATM 도입을 서두르고 있어 은행권의 인증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인증 수단이 카드에서 신체 일부로 바뀐 게 전부가 아니다. 카드나 통장에 비해 분실 위험이 적고, 복제가 어려운 수단을 적용한 만큼 기존보다 더 많은 업무가 가능해졌다. ‘디지털 키오스크’의 경우 신규 계좌를 개설하거나 카드를 발급받는 등 100가지가 넘는 창구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규제 완화로 날개 단 핀테크 국내에서 인터넷뱅킹이 활성화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다만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 이용 등 번거로운 절차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제 핀테크의 확산으로 이런 불편함마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뱅크월렛카카오 등 소액 송금 애플리케이션(앱)은 앱을 켜서 돈을 받을 친구와 금액을 입력하고 비밀번호만 누르면 바로 송금이 가능하다. 기존 모바일뱅킹에서처럼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나 보안카드 번호, 상대방의 계좌번호를 입력하지 않아도 돼 훨씬 간편하다. 올해부터는 법이 개정돼 네이버페이, 트랜스퍼와이즈 등 국내외 모바일 결제서비스를 통해 건당 3000달러, 1인당 연간 2만 달러까지 외화도 송금할 수 있다. 올해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하면 핀테크 경쟁은 더욱 달아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점포 없이 온라인과 모바일만 이용하는 인터넷은행 특성상 기존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라며 “시중은행들도 젊은 고객을 뺏기지 않도록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대부업법이 일몰(日沒)돼 최고 금리 제한이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대부업체 사무실에 서울시 대부업체 현장점검반 4명이 들이닥치자 대부업체 직원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16.5m²(5평) 남짓한 주거용 오피스텔에는 책상 2개가 전부였다. 벽에는 대부업체 등록증과 ‘대출 금리는 월 2.9%, 연 34.9% 이내’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직원은 “우리는 법정 최고 금리를 준수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점검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출 계약서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봤다. 점검 결과 기존 법정 최고 금리(34.9%)를 넘긴 거래는 적발되지 않았지만 대출 계약서를 작성할 때 의무적으로 명시해야 할 연체 이자율을 표기하지 않은 계약서가 발견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표준계약서가 아닌 다른 양식의 계약서를 쓴 사례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시정할 것을 지시한 현장점검반은 또 다른 업체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대부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서민들이 고금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부업체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관내 대부업체들에 기존 법정 최고 금리를 지켜 달라는 협조 공문을 발송한 데 이어 이날 대대적인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 법무부, 행정자치부, 공정위 등 관련 부처와 ‘긴급 대부업정책협의회’를 열었다. 정부는 우선 일일점검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행자부는 시도별 점검 실적을, 금감원은 여신금융회사 및 대형 대부업체에 대한 점검 결과를 매일 집계해 매주 2회 금융위에 통보하는 방식이다. 34.9%가 넘는 대출금리를 적용하는 등 행정지도를 위반한 사례가 발생하면 시정 권고를 내린 뒤 필요한 경우 즉각 지자체·금감원이 주도해 현장검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신고센터 운영도 강화한다. 금감원이 이미 운영 중인 불법사금융신고센터(1332) 외에 광역 지자체에 별도의 신고센터를 마련해 고금리 영업행위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협의회에서 “대부업법의 조속한 개정 등을 위해 국회와 최대한 협조해 나갈 것”이라며 “입법 지연에 따른 비상 상황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과 협조를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행자부는 7일 중앙·지방 정책협의회를 열어 대부업 감독권을 쥐고 있는 지자체의 협력을 다시 한 번 요청할 계획이다. 한국대부금융협회 이재선 사무국장도 “대형 대부업체들도 일시적 실효 상태를 이용해 금리를 올리는 등의 영업은 하지 않기로 뜻을 모은 상태”라고 강조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규제를 소급 적용해 실효 기간에 과도하게 높은 수준의 금리로 체결된 계약에 대해서도 현행법상 최고 금리 한도가 적용될 수 있도록 여야와 합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대응과 민간의 협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여전하다. 대부업체가 아무리 높은 금리를 받아도 법적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만큼, 법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면 고금리 대출 영업이 활개를 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상황이 어려운 중소 대부업체가 문제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올해 최고금리가 인하될 것을 우려한 업체들이 지난해 말 영업을 강화해 12월 대부업계 대출액이 급증한 것으로 안다”며 “이처럼 영세 업체들은 금리 1%에도 민감한 만큼 고금리 영업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철중 tnf@donga.com·장윤정 기자}
2013년 말 회사를 그만둔 최모 씨(61)는 지난해 초 동네의 상가건물을 임차해 낙지 전문점을 차렸다. 개업 초기만 해도 손님들이 어느 정도 북적댔지만 시간이 갈수록 식당은 썰렁해져만 갔다. 최 씨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고 아들과 며느리까지 데려다 함께 일을 했다. 하지만 한 달에 수백만 원인 임차료조차 내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최 씨는 결국 개업한 지 1년도 안 된 지난해 말 사업을 접었다. 임대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최 씨가 은행에서 빌린 3000만 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최근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이 생계형 창업에 뛰어들면서 자영업자들의 대출 규모가 총 520조 원에 육박했다. 이 대출이 최근 음식·숙박업 등 경기민감 업종에 몰리면서 부실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5일 발표한 ‘가계부채의 구조적 문제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519조5000억 원으로 추정됐다. 이 중 담보인정비율(LTV)이 70%를 넘는 고위험 대출이 전체의 18.5%를 차지했다. LTV가 높으면 부동산 가치가 하락했을 때 담보를 내놔도 나중에 빚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일반 가계부채에 이어 자영업자 대출이 금융시장의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업종별로 보면 전체 사업자 대출(작년 9월 말 기준) 가운데 34.4%가 부동산 임대업에 몰려 있었고, 도소매업(16.9%), 음식·숙박업(10.2%) 등의 비중이 높았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업자 대출이 주로 경기를 많이 타고 소득 흐름이 불규칙한 업종에 몰려 있어 일반 가계 대출에 비해 부실 위험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빚을 얻어 자영업에 뛰어들어도 사업을 지속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치킨집, 커피숍을 포함한 음식·숙박업처럼 상대적으로 창업이 쉬운 일부 업종에 자영업자들이 몰리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창업 기업의 3년 생존율은 38.2%에 그쳤다. 10개 기업 가운데 6개 기업은 창업한 지 3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뜻이다. 특히 음식·숙박업종의 3년 생존율은 28.5%로 예술·스포츠·여가(27.6%)를 제외한 전체 업종 가운데 가장 낮았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금융당국이 1만 명에 달하는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의 주식 보유 현황을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일부 회계사들이 회계감사 대상 회사의 미공개 정보로 주식 투자에 나섰다가 적발된 데에 따른 후속 조치다. 4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한국공인회계사회를 통해 국내 회계법인에 소속된 회계사들의 주식 보유 내용을 취합 중이며, 이 자료를 넘겨받아 신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검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공인회계사는 총 1만8117명이며 이 중 절반가량인 9517명이 회계법인에 소속돼 있다. 현행 공인회계사법상 파트너 이상의 임원은 자신이 소속된 회계법인이 감사하는 전체 기업에 투자할 수 없고, 부장 이하 회계사는 자신이 감사 중인 기업에 한해 투자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금감원 측은 “이번 조사를 통해 자신이 감사를 맡은 회사의 주식을 보유한 회계사는 현행법에 따라 강력히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검찰은 감사 대상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빼돌린 회계사 32명을 적발한 바 있다. 이들 가운데 2명은 이 정보로 주식 투자에 나서 억대의 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각 회계법인들에 내부 통제 기준을 강화하도록 주문했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정부는 지난해 10월 말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대우조선해양에 총 4조20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한다고 밝혔다.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 측은 “대우조선이 파산할 경우 한국 경제와 조선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커 불가피하게 지원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 방안 발표 전 대우조선이 생산직 직원들에게 1인당 100만 원씩 격려금 잔치를 벌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공분(公憤)을 샀다. 대우조선을 국민의 혈세를 갉아먹는 ‘부실 덩어리’로 키운 것은 강도 높은 구조개혁과 민영화에 나서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 ‘개혁’ 아닌 ‘몸 사리기’가 우선 대우조선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공적자금 2조9000억 원이 투입돼 회생했다.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대우조선의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08년에는 한화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양측이 인수대금 조달 방안에 이견을 보이다 협상이 결렬됐다. 이에 대해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가치 극대화에만 매달리다 적절한 매각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13년 금융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던 대우조선해양 지분 5%(957만 주)를 ‘블록세일’(가격과 물량을 미리 정해 놓고 특정 주체에게 일정 지분을 묶어 일괄 매각하는 것) 방식으로 주당 3만5520원에 처분한 바 있다. 관가에서는 최근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5000원대까지 떨어지자 당시 매각에 관여했던 관료들이 ‘이제 헐값 매각 얘기는 듣지 않겠다’며 오히려 안도감을 나타냈다는 말까지 나돈다. 민영화가 늦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오히려 대우조선에 낙하산 인사를 포진시키는 데 급급했다. 2004년부터 최근까지 특별한 자문 실적도 없이 대우조선으로부터 평균 8800만 원의 연봉을 받은 자문역이 60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을 정도다. 자문역 중에는 산업은행 출신이 4명이나 포함됐다. 관료들이 기업회생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두는 사이 정부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산은,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만성적 한계기업’에 빌려준 신용공여액은 2011년 22조8000억 원에서 지난해 6월 말 43조7000억 원으로 약 2배로 급증했다. 만성적 한계기업이란 3년 연속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를 못 갚는 상태가 2005년 이후 최근 10년간 2차례 이상이었던 기업이다.○ 정쟁에 가로막힌 구조개혁 지난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노동, 공공, 금융, 교육 등 4대 개혁은 정치권에 가로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파견근로자법 개정안 등 노동개혁 5대 법안은 국회에 제출됐지만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최근에는 여당이 노동개혁 법안을 선거구 획정안과 연계하는 카드까지 꺼내들며 셈법이 더 복잡해졌다. 이와 관련해 한 경제학자는 “과거 여야 모두 노동개혁에 대해서는 대기업과 노동조합의 눈치만 보더니 이제는 정쟁의 도구로 여기는 것 같아 정치권의 진정성마저 의심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공무원연금 개혁도 당초 국민들의 눈높이에는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온 데다 금융, 교육 개혁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특히 총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부와 정치권의 ‘개혁’이 단지 구호에만 그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은 “한국이 서로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개혁에 실패하고 결국 일본을 닮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흘러나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자산의 거품이 꺼지면서 은행 도산과 기업들의 자금난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대신 지방과 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다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다.○ “구조개혁에 대한 의지 필요” 핀란드는 국내총생산(GDP)의 25%까지 차지하던 노키아의 몰락을 딛고 국가 차원에서 산업 구조조정을 이뤄내 성공적인 구조개혁 사례로 꼽힌다. 핀란드의 대표 기업이던 노키아는 2012년 6월 본사 직원 중 20%인 1만 명을 감원한다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핀란드 정부와 노키아는 경쟁력이 떨어진 휴대전화 제조 분야를 과감히 포기하고 대체 분야에 눈을 돌렸다. 핀란드 정부는 핀테크와 모바일 게임 등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며 노키아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변화에 뒤처진 산업을 살리는 데 매달리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맞춰 산업 구조를 바꾼 덕분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강국으로 재도약했다는 평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출한 정책이 아니라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라며 “얼마 남지 않은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기업구조조정촉진법 공백에 비상이 걸린 금융당국이 4일 시중은행 및 각 금융협회 실무진과 첫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기촉법을 대신할 ‘운영협약’ 추진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연말 신용위험평가 결과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에 오른 기업이 법정관리 위기에 처하는 등 혼란이 현실화되자 이를 막기 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한시적 성격의 이 협약에는 △채권금융기관의 75% 이상 동의를 얻으면 구조조정 개시 △채권금융기관 이견 조정을 담당하는 조정위원회 설치 등 기존 기촉법과 유사한 내용이 담긴다. 그러나 이번 협약을 둘러싼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자율적인 협약으로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된다. 협약에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했다가 중간에 발을 뺀다고 해도 이를 제재하기 어렵다. 여기에 증권, 보험, 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도 미지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야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마지못해 참여하겠지만 수십 곳의 2금융권 회사들이 순순히 참여할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7년 기촉법 실효(失效) 당시에도 기촉법을 대신하는 구조조정 협약이 추진됐으나 이 협약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참여율은 약 75%에 그쳤다. 제2금융권의 참여가 줄어들면 구조조정의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은행권보다 2금융권에 더 많은 빚을 진 기업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동부제철은 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채무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2금융권이 제외된 자율협약에서 워크아웃으로 구조조정 방식을 바꿨다. 금융당국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든 제2금융권도 이 협약을 따르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운영 협약 마련을 위한 TF에 시중은행 외에도 저축은행중앙회, 신협중앙회, 여신금융협회 등 2금융권 협회들을 다수 참여하게 한 것도 이 때문이다.장윤정 yunjung@donga.com·김철중 기자}
최근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은행 정기예금 가운데 만기가 1년 미만인 상품의 비중이 늘고 있다. 은행권의 전반적인 금리가 낮아져 단기와 장기 예금 간의 금리 차가 좁혀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현재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571조5566억 원) 가운데 만기 1년 미만 상품이 191조2459억 원으로 33.4%를 차지했다. 지난해 1월 26.5%였던 1년 미만 정기예금 비중은 6월(30.5%)에 30%대를 넘어선 뒤 9월 32.4%, 10월 33.4%로 빠르게 증가했다. 만기가 1년 미만인 상품 비중이 33%를 넘은 것은 2002년 8월(33.7%) 이후 13년 2개월 만이다. 반면 고객들이 안정적으로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이 찾았던 만기 3년 이상 정기예금 상품은 크게 줄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만기 3년 이상 상품 잔액은 17조5085억 원으로 전체 정기예금 잔액의 3.0%에 그쳤다. 작년 1월 말(18조6043억 원)과 비교하면 9개월 만에 약 2조 원이 빠져나갔다. 저금리 속에 만기에 따른 금리 격차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자 고객들이 돈을 은행에 오랫동안 묵혀둬야 하는 3년 이상 만기 상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등 불확실한 금융 환경도 장기형 상품의 가입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은행 관계자는 “국내 금리가 미국 금리를 따라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고객들을 중심으로 장기보다는 단기 예금 상품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김철중 기자 tnf@donga.com}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함에 따라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당장 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 결과 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된 3개 대기업이 관련법의 미비로 법정관리 위기에 내몰렸다. 금융당국이 비상 체제를 가동해 기촉법 공백에 따른 혼란을 최대한 막겠다고 나섰지만 힘에 부치는 양상이다. 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평가 결과 C등급을 받아 워크아웃 대상에 오른 11개사 중 3개 업체는 연말까지 워크아웃 신청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연내 신속한 워크아웃 돌입을 촉구했지만 끝내 3곳은 기업들의 의사결정 과정이 길어져 워크아웃 신청을 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며 “구조조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촉법의 효력이 사라짐에 따라 당장 이 기업들은 워크아웃 대신 모든 채권 금융회사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자율협약이나 법정관리를 선택해야 한다. 기촉법 공백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는 셈이다. ▼ 금융당국 비상… “채권단 협약으로 구조조정 추진” ▼금융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위 사무처장이 이끄는 상황 대응팀을 구성해 매주 구조조정 상황을 점검할 방침이다. 기촉법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4일 시중은행 등과 첫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채권 금융기관 자율의 ‘기업 구조조정 운영협약’ 제정도 추진한다. 기촉법과 유사한 내용의 협약을 만들어 구조조정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79개 저축은행과 지역단위 농·수협 등 수천 곳에 이르는 금융사들에 일일이 동의를 구하려면 협약 마련까지는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우려된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약이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기촉법이 실효(失效)됐던 2007년에도 운영협약 제정을 추진했지만 금융회사들의 참여가 저조해 어려움을 겪었다”며 “국회에서 기촉법이 신속하게 개정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기업 구조조정 수요도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은 61개로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기촉법뿐 아니라 대부업법도 지난해 말로 일몰(日沒)을 맞아 서민금융 시장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당장 1일부터 최고 이자율 규제가 사라지면서 급전을 빌리는 서민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에 기존 이자 상한선(연 34.9%)의 준수를 요청했지만 이는 올해부터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6일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관계부처 차관들이 참석하는 긴급 대부업정책협의회를 개최한다. 행정자치부도 같은 날 전국 시도 부(副)단체장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시장 점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장윤정 yunjung@donga.com·김철중 기자}
2015년 12월 22일 울산 남구 석유화학공단의 한 중소 화학업체. 중국 회사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급감한 이 회사의 세밑 분위기는 무거웠다. 2015년 이 회사의 평균 공장가동률은 35∼40%에 그쳤다. 이 회사 대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직원들을 다 내보내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 1위의 자부심이 넘쳐났던 울산 조선업계에는 연쇄 도산의 불안감만 남아 있다. 대기업 조선사의 구조조정으로 일감이 준 하청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얼마 전 한 하청업체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중국 등의 추격과 잦은 파업에 시달리는 자동차업계도 힘든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울산 북구 효문공단 내의 현대자동차 협력사인 A사의 공장 생산 라인은 일주일째 멈춰 2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현대차 노조가 하루 4시간씩 부분파업에 돌입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조업 중단을 선택했다. A사 대표는 “울산은 조선, 자동차, 화학의 3대 산업 중 1개가 어려워지면 나머지 2개로 버티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3개 업종 모두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싸여 있다”고 말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발표와 함께 특별공업지구로 지정돼 ‘한강의 기적’을 이끈 산업수도 울산의 현주소는 경제개발 50여 년 만에 성장판이 닫혀 가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 한국 경제가 세계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12월 31일 기획재정부와 민간 경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2015년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올해도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L자형’ 저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주력 업종의 부진은 대기업과 수많은 하청 회사로 구성된 한국형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2014년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0.6% 느는 데 그쳤다. 가계소득 증가율은 10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같은 ‘땜질 처방’으로 버틸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다고 지적한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시대에 맞게 주력 산업을 바꿔 나가는 경제 구조 개혁과 산업 재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인들이 고 이병철 정주영 등 한국 경제 1세대 창업가의 도전정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으로 틀을 깨는 과감한 혁신에 나서는 기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규제의 벽을 허무는 일도 중요하다. 조철 산업연구원 주력산업연구실장은 “한국은 주력 산업의 정체로 마이너스 성장까지 고민해야 할 위기”라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특단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울산·포항=손영일 scud2007@donga.com·김철중 기자}
《 지난해 12월 말 찾아간 경북 포항시 연일공단은 간간이 들려오는 ‘땅’ 소리를 빼고는 적막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한산했다. 중소 철강업체들이 몰려 있는 이곳은 철강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육중한 기계 소리와 작업지시 소리로 가득 찼었다. 10여 개 업체가 빼곡히 들어찬 골목마다 한두 개 업체를 빼고는 제대로 가동되는 곳이 없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일을 마감한 곳도 있었다. 한 업체의 사장은 “일거리가 없다 보니 공장 문만 열어놓고 있다”며 “열 명 남짓한 직원도 대부분 출근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오가는 발걸음이 분주했을 음식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아 가게 앞에는 신문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임대 문의’라는 전단도 전봇대마다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 철강, 공급과잉으로 수익성 급락 12월 31일 포항시에 따르면 2015년 1분기(1∼3월) 시의 산업생산지수는 94.4로 전년 동기보다 5.0% 감소했다. 철강산업의 부진으로 수출입이 줄어든 탓이다. 한때 세계 철강업계를 이끌었던 한국 철강산업이 부진의 늪에 빠진 것은 구조조정에 실패한 게 직격탄이 됐다. 세계 경기가 악화되면서 수요가 전반적으로 줄어든 데다 기술력을 키운 중국이 저가 물량공세에 나섰지만 국내 철강업계는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공급 과잉에 따른 수익성 하락이 극심해지자 2015년 하반기(7∼12월)부터 포스코특수강, 포스화인 같은 계열사를 매각한 포스코를 필두로 철강업계는 군살 제거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구조조정이 1, 2년만 더 일찍 추진됐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타이밍이 늦었다”는 반응이 많다. 한국의 또 다른 주력산업인 화학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동안 화학업체들은 최대 시장인 중국으로 수출물량을 늘리면서 사업을 키워왔다. 하지만 중국이 화학제품 자급률을 높이자 상황이 급변했다. 전선이나 기계부품에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 페트병과 필름을 만드는 고순도텔레프탈산(TPA)을 중국이 자급하기 시작하면서 수출이 급감했다. 나일론수지의 주원료인 카프로락탐은 2012년부터 중국이 생산을 크게 늘렸고 이후 중국 수출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화학업계는 여전히 구조조정에 미적대고 있다. 주력산업의 위기는 한국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위기를 실감한 기업들은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인건비 부담이 큰 간부사원은 물론이고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고, 청년층 사이에서는 “취업하기도 어렵고, 취업해도 버티기는 더 어렵다”는 한탄마저 나온다. 고용불안 때문에 자칫 ‘소비위축→내수시장 붕괴→경제성장률 추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통계청의 ‘2015년 3분기(7∼9월)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계의 소비성향은 71.5%(100만 원을 벌어 71만5000원을 지출한 것)로 역대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2012년 상반기(1∼6월)까지 가계 소비성향은 77% 안팎을 오르내렸다.○ “구조개혁과 서비스산업에서 활로 찾아야” 한국 경제가 이런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주력산업이 경쟁력을 되찾고, 서비스산업을 키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선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하고, 민간이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적기에 진행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건설업, 제조업보다 많은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는 일에 박근혜 정부가 매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되면 2030년까지 일자리 69만 개가 창출되고, 잠재성장률이 0.2∼0.5%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부문장은 “가뜩이나 수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내수마저 부진할 경우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깊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며 “규제 완화를 통해 서비스산업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울산·포항=손영일 scud2007@donga.com·김철중 기자}
앞으로 여행사들은 온라인에서 여행상품을 판매할 때 유류할증료, 가이드 비용 등 필수 경비를 포함한 상품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또 여행 일정에 선택 관광이 포함될 경우 선택 관광을 원하지 않는 여행객을 위한 대체 일정도 함께 알려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1일 이 같은 내용으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상품 등의 정보제공에 관한 고시’를 개정했다고 밝혔다. 개정된 고시는 3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4월 1일부터 시행된다. 지금까지 여행사들은 온라인을 통해 여행상품을 팔면서 가이드 경비, 현지 관광 입장료, 공항 이용료 등을 따로 표기해 왔다. 이에 따라 필수 경비를 뺀 상품 가격을 부각시켜 소비자들을 현혹시킨다는 지적이 많았다. 개정된 고시가 시행되면 여행사들은 모든 필수 경비를 포함해 여행상품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또 소비자가 선택 관광 일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가이드에게 얼마의 팁을 줄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세종=김철중 기자 tnf@donga.com}
“청년들로부터 ‘취직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퇴직하고 싶었는데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어 주지 못하고 떠나는 점이 경제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가장 미안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송년 간담회에서 조만간 경제정책 수장(首長)직을 내려놓는 소회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최 부총리는 “(부총리를) 그만두면 며칠만 좀 쉬고 싶다”면서 “내년 우리 경제에 큰 파도가 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격랑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국회에서 돕겠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유일호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이후인 다음 달 중순 부총리직을 넘기게 된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 당시를 떠올리며 “세월호 사태로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부총리 지명 소식을 듣고 ‘이 십자가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분위기를 반전시켜 (경제 회복의) 시동을 걸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책을 폈다”고 덧붙였다. 다만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최 부총리는 “처음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을 때 욕을 많이 먹었지만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경제가 더이상 헤쳐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구조개혁에 대해 100% 만족할 수 없지만 첫 단추를 끼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노동 개혁 관련 입법이 뒷받침되면 점차 성과들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세종=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당장 이틀 남은 연내에 4607억 원어치의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삼성그룹처럼 시간 외 주식대량매매(블록딜)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뒤늦게 처분 사실을 통보받아 아직 마땅한 매각 상대는 물론이고 매각 주간사회사도 선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기간 내에 해당 주식을 처분하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식 처분 명령과 함께 처분해야 할 신규 지분의 최대 1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 계열 출자 회사 대표를 검찰에 고발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현대차는 수개월 전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합병이 순환 출자 고리가 더 강화됐는지 문의했지만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현대차가 합병으로 인해 순환 출자 관련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기 때문에 주식 처분 명령을 내릴 때 처분 기간을 수개월 미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도, 공정위도 난감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가 합병하기 전 현대자동차그룹에는 총 6개의 순환 출자 고리가 있었다. 이 가운데 7월 1일 자로 합병한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에 관련된 고리는 ①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제철 ②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하이스코→현대제철 ③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현대제철 ④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현대하이스코→현대제철 4가지다. 공정위 해석에 따르면 ②번과 ④번 고리는 현대하이스코, 현대제철의 합병으로 고리가 단축되므로 신규 순환 출자 금지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①번과 ③번 고리는 공정위 가이드라인 상 순환 출자가 강화된 사례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유예기간을 늘려 달라는 기업들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다만 공정위 관계자는 “합병에 의해 출자가 강화된 경우는 적용 과정이 복잡하고 법 해석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던 사안”이라며 “최종 처분 명령을 내릴 때 이런 점을 감안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6개월 이내에 증가한 지분을 해소하지 못한 기업에 대해서는 주식 처분 명령을 내린다. 이때 처분 시한을 처분 명령일로부터 수개월 뒤로 미룰 수 있다. ○ 재계 “졸속 입법이 빚어 낸 결과” 재계에서는 신규 순환 출자 금지 제도가 향후 기업들의 사업 재편 움직임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계열사 간 합병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의도에 관계없이 순환 출자 고리가 강화되는 사례가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 출자 금지 제도는 2013년 말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2014년 7월부터 시행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박근혜 정부 첫해에 신규 순환 출자 금지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관련 법안들이 잇달아 도입됐다. 당시에도 재계에서는 신규 순환 출자에 대해서만 규제를 하더라도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한 신규 투자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기업의 잠재성장력을 갉아먹게 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하지만 야당이 기존 순환 출자까지 전부 해소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했고, 신규 순환 출자만 규제하는 선에서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경제민주화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것을 우려해 법 개정에 따른 기대 효과나 부작용을 면밀히 살피지 않은 채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마다 계열사 간 시너지 강화가 기대되는 방향으로 사업 재편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기업들의 자율적인 구조조정 움직임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며 “졸속 입법이 빚어 낸 결과”라고 말했다.김지현 jhk85@donga.com / 세종=김철중 / 김성규 기자}
7월 1일 합병한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가 올해 안에 합병으로 늘어난 4600억 원 상당의 추가 지분을 처분하라는 통보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받은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27일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9월 1일 통합 삼성물산 출범 과정에서 삼성그룹 일부 계열사의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며 관련 지분을 내년 3월 1일까지 처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경우는 수천억 원어치의 합병 지분을 팔아야 하는 시한을 불과 5일 앞둔 27일에서야 이 내용을 통보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저성장 국면에서 기업들이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사업 구조조정을 하는 가운데 신규출자 금지제도가 기업들의 보폭을 축소시키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9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재계 순환출자 고리를 분석한 결과,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가 관련된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고리 4개 중 2개가 합병으로 인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가 갖고 있던 현대제철 주식이 합병 전 917만 주에서 1492만 주로 늘었고, 기아차가 갖고 있던 현대제철 주식도 합병 전 2305만 주에서 2611만 주로 늘었다. 합병에 따라 늘어난 지분은 총 881만 주로 4607억 원(29일 종가 5만2300원 기준)에 해당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합병으로 인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된 경우 늘어난 지분을 6개월 안에 모두 처분해야 한다. 두 회사의 합병일이 7월 1일이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2016년 1월 1일까지 이를 모두 처분해야 한다. 삼성그룹이 유예기간 연장을 요청한 가운데 현대차도 올해 안에 이를 모두 처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고 공정위에 급히 유예기간 연장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장 법률사무소의 황창식 변호사는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순환출자 관계는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법 취지임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엄격한 법 집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관련법 시행 1년 반 만에 뒤늦게 발표됨으로써 현대자동차처럼 주가 하락을 감수하고 급하게 사업 재편 관련 지분을 팔아야 하는 기업들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김지현 jhk85@donga.com / 세종=김철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