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

구자룡 기자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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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자룡 기자입니다.

bonhong@donga.com

취재분야

2024-10-23~2024-11-22
남북한 관계14%
국방13%
국제일반7%
대통령3%
정치일반3%
기타60%
  • 더위와 코로나[횡설수설/구자룡]

    코로나19의 매개체로 지목되는 박쥐는 몸에 200개 이상의 바이러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도 쉽사리 질병을 앓지 않는다. 수평 비행 속도가 시속 160km이고 수천 km를 날 수 있는 왕성한 활동으로 체온이 섭씨 40도까지 올라 바이러스를 제압할 만큼 면역체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올 초 코로나가 세계 각국에서 확산되자 날씨가 따뜻해지면 코로나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던 것은 기후와 바이러스의 일반적인 관계도 있지만 박쥐의 이런 독특한 생리가 알려진 것도 한몫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월에 기온이 높아지면 코로나19가 없어질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북반구에서 통상 11월에 시작돼 이듬해 4월경이면 끝난다. 코로나19에 대해서도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코로나 전파는 2% 감소한다’ ‘평균기온이 5∼11도이고 상대습도가 낮을수록 많이 퍼졌다’는 등 코로나의 ‘계절성’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잇따랐다. 중국 중산대 연구팀은 ‘섭씨 8도의 법칙’도 발표했다. 전 세계 26개국 2만4000여 명의 확진자를 분석해 보니 평균기온 8.72도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첫 발생지 우한은 1월 최고기온이 8도로 ‘바이러스 냉장고’처럼 잘 보존하며 맹렬히 확산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폭염이 시작되면 코로나가 물러날 것이라는 기대는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나고 있다. 평균기온이 30도가 넘는 인도는 한 달 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하루 1만 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연일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하루 3000명 이상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비슷한 위도에서 동서축으로 확산되던 코로나19는 온도를 가리지 않고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러시아 등 남북축으로 퍼지는 형국이다. 확진자가 1000명 이상인 국가와 지역이 120여 곳이다. 온도의 영향을 기대했던 전문가들도 “바이러스 전파는 기온보다 다른 요인이 훨씬 많아 사람이 하기 나름”이라고 물러섰다. ▷코로나19는 지금까지 무증상 감염, 숙주 밖에서 최장 72시간 생존, 완치자 재감염, 높은 치사율과 전파력 겸비 등 기존 바이러스의 생존 원리를 역행하는 특징을 잇달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온도와의 관계도 예측 불허라면 방역전쟁 난도는 더 올라간다. 다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한 가닥 염기서열로 복제하는 속성이 있는 RNA 바이러스치고 코로나19는 변이가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변이가 심해 백신 개발이 안 되는 C형 간염 바이러스만큼 악질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치료약과 백신 개발에 전력투구해야 할 상황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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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의 미래와 서울[횡설수설/구자룡]

    ‘아시아의 4룡(龍)’, 뉴욕 도쿄 런던에 이은 세계 4대 자본시장. 증시 상장 기업 2477개 시가총액 3조5024억 달러(약 4341조 원)로 세계 5위. 세계 7대 항구…. 홍콩이 작은 어촌에서 100여 년 만에 이처럼 성장한 것은 ‘중국 대륙과의 디커플링(분리)’ 덕분이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 항일 전쟁과 국공 내전을 겪지 않았고, 사회주의 혁명의 풍파와 떨어져 초기에는 제조업, 후에는 물류와 금융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랬던 홍콩의 미래가 시계(視界) 제로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사실상 팽개치고,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해 관세와 투자, 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의 한 도시처럼 취급하면 기업 자본 인재의 ‘엑소더스’가 닥칠 가능성이 크다. 홍콩은 반환 협상이 난항을 겪던 1983년, 톈안먼 사태가 벌어진 1989년, 그리고 1997년 반환 때 등 3차례 캐나다 등으로 ‘미니 탈출’을 겪었다. ▷중국이 보안법을 통과시키자 홍콩 곳곳 환전소에는 홍콩달러를 미국달러로 환전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민 서비스업체들은 대만 이민 문의가 평상시의 10배로 늘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홍콩인에게 미 영주권을 부여하자는 사설을 실었다. ▷중국은 완강하다. “홍콩은 중국의 해군 항구 역할만 해도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홍콩이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반환 당시 25%에서 3%까지 줄었다. 하지만 후강퉁(호港通·상하이와 홍콩 증시 동시 상장)과 선강퉁(深港通·선전과 홍콩 증시 동시 상장)으로 대륙 증시를 띄운 것처럼 홍콩은 중국 경제성장의 한 축이었다. 중국 내부엔 시진핑 주석이 홍콩을 섣부르게 제압하려다가 ‘진주’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남아 있다. ▷홍콩의 아시아 금융 허브 위상이 흔들릴 기미를 보이자 벌써부터 “그러면 대체 도시는 어디?” 물음이 나온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조성 계획’, 이명박 정부의 ‘메가뱅크’ 등이 있었으나 진전이 없었다. 싱가포르처럼 영어권이 아니고 분단 상황의 안보 불안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서울은 세계 10위권 경제국의 수도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와 교통, 치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수년 전 용산 국제도시 프로젝트, 용산-여의도 통개발 등의 구상도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미래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홍콩 시민들의 투쟁이 중국 공산당의 강압정책 철회로 이어지길 응원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포스트 홍콩’에 대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생각해 볼 때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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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백신-치료약 ‘빛의 속도’ 전쟁, 한국도 액셀 더 밟아야[논설위원 현장칼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세계 각 지역에 따라 다른 면역체계의 저항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유전학 연구팀이 세계 각 지역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크게 A, B, C 세 유형이라며 내린 진단이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뒤 약 5개월 만에 나타난 현상이다. 국내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이 세 가지가 섞여 들어왔다고 질병관리본부는 밝혔다. 코로나19는 ‘전파력과 치사율이 반비례한다’는 바이러스의 생존 원리와 달리 무증상 감염 등으로 높은 전파력을 보이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10% 넘는 치사율(인플루엔자는 0.1%)까지 보였다. 이제 여기에 인체 면역 방어에 맞서 변신하는 교활함까지 갖추면 ‘최후의 병기’로 여겨지는 백신 개발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코로나19는 언제든 2차, 3차 대량 확산이 나타나 엔데믹(풍토병처럼 감염 반복)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지금 세계 각국은 백신 개발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경쟁 상대는 글로벌 제약사최근 찾아간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의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연구소 5층 ‘생물안전 3등급(BL3)’ 실험실은 내부가 음압 시설로 되어 있다. 4중 문을 통과하고 들어가는 곳이어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실험실에는 방호복을 착용한 연구원이 2인 1조로 들어가고 약 2시간마다 1시간씩 휴식하면서 실험을 한다. 내부 작업은 연구소가 제공하는 사진을 보며 설명으로만 들을 수 있었다. 연구소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1500개 약물 중 24개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SK케미칼의 기관지 천식 치료제 알베스코의 ‘시클레소니드’ 성분은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류왕식 연구소장은 “혈액 항응고제 및 급성 췌장염 치료제 성분 ‘나파모스타트’는 임상 단계 전 세포 단위에서는 렘데시비르보다 수백 배 높은 효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 중인 렘데시비르는 FDA가 최근 코로나19 표준 치료제로 긴급 승인한 약물이다. 아직 렘데시비르처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코로나19 치료에 큰 역할을 할 약물을 국내 연구진이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연구소가 수천 종 약물을 짧은 시간에 대량 검사해 코로나19 항바이러스 성분을 가진 것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로봇까지 활용해 24시간 약물 효과를 영상으로 확인하는 첨단 ‘페노믹 스크리닝(Phenomic Screening)’ 기술과 장비를 갖췄기 때문이다. 한국이 글로벌 제약업체와의 경쟁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백신실용화사업단 예산은 119억 원. 예비비와 추경으로 60억 원이 추가됐다. 미국 제약업체 모더나가 연방정부에서 받는 지원금만 5억 달러(약 6000억 원)다. 백신 임상시험 동참 유엔개발계획(UNDP) 설립 국제기구로 서울에 위치한 국제백신연구소(IVI)는 미국 제약업체 이노비오사와 백신 임상시험을 공동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김재욱 수석연구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한 임상시험 허가가 나오면 국내 대학과 함께 40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먼저 1상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19∼54세 건강한 성인 남녀 지원자를 저농도와 고농도 백신 후보 물질 접종 두 그룹으로 나누고 4주 간격으로 2회 접종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연말까지 3가지 백신 후보 물질 임상시험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연구원은 “1, 2단계 시험이 끝나도 국내에서는 ‘3상 시험’ 결과는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이 크게 줄어 다수의 ‘자연 감염’ 상황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백신 개발이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신규 환자 발생이 많아 대규모의 자연 감염이 필요한 3상 시험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체 유발 반응 시험’ 미국의 제약업체 모더나가 최근 임상 1단계에서 백신 후보 물질 접종 후 8명에게서 항체가 생겼다고 발표했다가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소동을 빚었다. 얼마나 백신 개발에 목말라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문제는 1, 2단계에서 효능이 입증돼도 관건은 3상 시험이다. 대상 인원이 2500∼1만 명으로 늘어나는 데다 접종 후 자연 감염에 노출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약이나 백신 개발에서 3상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을 맞고 인공으로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는 ‘인체 유발 반응 시험(HCT·Human Challenge Trials)’을 위한 지원자가 늘고 있어 주목된다. 미 시민단체 ‘하루라도 빨리(1Day Sooner)’의 HCT 지원자 모집에 102개국 2만5104명(26일 현재)이 등록했다. “나는 젊고 건강한 학생이다. 보다 빠른 백신 개발을 돕고 싶다. 시험의 중요성이 개인적인 위험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영국 서리) “지금 시기는 사람들이 용감하게 보다 큰 사회의 선(善)을 위해 나서주기를 요구한다.”(미국 세인트폴) “나는 개발도상국 출신이다. (시험 참가로 백신이 개발되면) 개도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케냐 나이로비) 몇몇 지원자의 출사표는 비장하다. HCT는 인플루엔자 말라리아 장티푸스 뎅기열 콜레라 백신 개발에도 사용됐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는 위험이 높다. 지원자 범위를 20∼45세(보통 19∼54세)로 좁히고 감염이 확인되는 즉시 최상의 치료에 나서는 등 위험을 줄인다고 하지만 백신 개발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다. 지원자에게 대가는 일절 없다. ‘백신은 인류의 공공재’ 코로나19 감염자가 500만 명을 훌쩍 넘고 하루에도 10만 명 이상이 신규 확진되는 팬데믹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백신 개발 공조 움직임도 활발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4월 국제사회의 백신 공동 개발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128명의 각국 과학자가 서명했는데 WHO가 이 같은 성명을 발표하기는 처음이다. 국내에서는 김재욱 IVI 수석연구원, 지영미 WHO R&D 블루프린트 과학자문위원, 김승택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인수공통바이러스 연구팀장 등 3명이 참여했다. 김승택 연구팀장은 △국제사회의 협력 △북미 유럽 등 선진국에 환자가 많아 시장이 크기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발 벗고 나섰다는 점 △변이가 많다는 RNA 바이러스 치고는 아직은 변이율이 높지 않은 점 △코로나19가 사스, 메르스와 같이 ‘베타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이어서 이미 알려진 정보도 적지 않은 점 등이 백신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라고 말했다.물밑 경쟁과 해킹 논란 빌 게이츠와 각국 지도자들은 코로나19 백신을 ‘인류의 공공재’로 사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백신과 치료제 선점을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전략적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상과학 시리즈에서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에 빗댄 이름의 프로젝트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승인했다. 영국 정부는 옥스퍼드대 제너연구소가 5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겠다는 백신 3상 시험을 1, 2상 시험도 끝나지 않았는데 선(先)승인했다. 세계 각국에서 연구 중인 백신 후보 물질 120여 가지 중 인체 임상시험까지 진행된 것은 10종인데 통상 인체 시험 전 진행되는 동물 실험은 모두 건너뛰었다. 각각 안전과 효능에 중점을 두는 1, 2상 시험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보통 5∼10년이 걸리는 백신 개발 기간을 코로나19는 12∼18개월로 단축하기 위해 곳곳에서 ‘패스트트랙’이 가동되고 있다. 스콧 고틀리브 전 FDA 국장은 “미국이 백신 개발에서 중국을 앞설 것”이라면서 “중국이 임상 단계에 들어간 후보 물질은 4개로 가장 많지만 미국과 유럽이 협력해 개발할 백신보다 면역 수준이 낮을 가능성이 있다”고 신경전을 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해커들이 백신 및 치료제 정보와 기술 훔치기 시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기관이나 연구기관, 제약회사, 학계, 지방정부 등에 해킹 주의보도 보냈다. 중국은 인민해방군의 연구 역량도 동원하고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초기 신속한 검사 진단 시약 개발과 선제적인 검사로 방역에 성과를 거뒀다. 이제 ‘치료약과 백신 개발’을 위한 2라운드 전쟁이 시작됐으나 한국은 여러 가지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성남=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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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국가보안법[횡설수설/구자룡]

    자오쯔양 전 중국 국가주석은 6·4 톈안먼 사태로 실각한 뒤 자택 연금 중 30개 분량의 구술 녹음테이프를 만들어 몰래 반출했다. 그가 사망한 뒤 홍콩에서 회고록 ‘국가의 죄수’가 출간됐고 공항 서점에서 버젓이 팔렸지만 중국 당국은 이를 막지 못했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때는 군 동원 직전까지 갔지만 송환법을 취하하며 물러났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손이 묶여 국제사회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그랬던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안전법)’ 제정에 나서 다시 발톱을 드러냈다. ▷중국 입법기관 전국인대가 22일 제출한 보안법 초안은 △홍콩 내 반역, 내란선동, 국가 분열, 국가 전복, 테러리즘 활동 행위 처벌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 금지 △홍콩에 보안법 집행 기관 설치 등이 골자다. 전국인대가 홍콩 관련 법안 제정에 나서기는 처음이다. 마카오는 2008년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최대 징역 30년이 가능하다. ▷중국은 홍콩 반환 후에도 ‘홍콩 기본법’상 항인항치(港人港治) 취지에 따라 외교 국방 외에는 고도의 자치를 인정했다. 홍콩에는 연락사무소만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직접 보안법 기구를 설치해 운영하면 ‘자치’는 유명무실해지고 홍콩 정부도 빈껍데기가 될 수 있다. 보안법 기구가 반중국 인물 색출에 나서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비판에 익숙한 홍콩 시민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규정에 ‘꼼짝 마라’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고도의 자치권에 대한 조종(弔鍾)’ ‘사실상 일국양제의 사망’ 등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미국은 중국이 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 관세,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홍콩을 중국 본토와 달리 특별대우하는 지위도 박탈하겠다고 나섰다. 법 제정에 관여한 단체나 관리, 심지어 은행 기관도 제재를 당할 수 있다. 미중 갈등이 홍콩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아시아의 금융 중심’ 홍콩의 위상이 흔들리면 ‘자본 엑소더스’가 올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지만 중국은 ‘보안법’ 강수를 두고 있다. 상하이, 선전 등이 커져 홍콩의 효용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홍콩이 중국에는 ‘자본 조달 창구’에 그칠 수 있지만 서방에는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는지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코로나19 발원지로서 감염·전파 경로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밝히는 데 적극 나서야 할 시점에 중국은 ‘통제 본능’을 참지 못하고 세계에 또 다른 혼란의 불씨를 던졌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홍콩에 대한 약속 불이행은 코로나 사태에 대한 무책임과 더불어 국제사회에 대한 배신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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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택트’ 중국 양회[횡설수설/구자룡]

    중국은 의회 격인 전국인대와 정치자문기구인 정협이 매년 3월 초 같은 시기에 열흘 남짓 연례 회의를 개최하는데 이를 ‘양회(兩會)’라고 부른다. 두 기구의 대표와 위원 5000여 명, 31개 성·시·자치구의 공무원과 기업인, 3000여 명의 국내외 취재진 등 줄잡아 1만 명 이상이 집결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2개월 이상 늦게 21일 개막한 올해 양회는 많은 풍경이 달라졌다. ▷양회는 소수 민족 정협 위원들이 다양한 전통 의상을 뽐내며 인민대회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시작하는데 올해는 그 장면이 사라졌다. 대표와 위원은 코로나 진단검사 음성이 나와야 참석할 수 있다. 취재 기자는 초대받은 극소수만 9시간 격리 및 핵산 검사 등을 거친 후 회의장에 들어갔고 지정 공간 외에는 이동이 금지됐다. ▷과거 양회 기간 베이징에서는 3가지 접대가 성행했다. 지방정부 베이징 출장소 직원의 상경 간부 접대, 지방 공무원의 중앙 정부 고위층 관관(官官) 접대, 기업인들의 중앙과 지방 정부 공무원 접대 등이다. 중심가 창안제의 고급 음식점과 술집은 불야성을 이뤘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접대 금지를 위한 ‘레드 카펫, 꽃, 환영 플래카드’ 3무(無) 관철, 사치 풍조 근절을 위한 ‘8항(項) 규정’ 등이 시행됐지만 양회는 낮에는 회의, 밤에는 ‘술과 음식이 어우러진 밀접 접촉’의 잔치였다. ▷취재도 활발했다. 각 부처의 부장(장관) 등 고위층이 인민대회당 복도에 나타나면 수십 명의 중국 기자가 몰려 질문 공세를 폈다. 2015년부터는 ‘부장 통로’ ‘대표 통로’ ‘위원 통로’ 등이 차례로 만들어져 간단하게 즉석 스탠딩 인터뷰를 했다. 고위층 접근이 제한된 중국에서 양회 기간은 제한적이지만 ‘언론 해방구’였다. 베이징 곳곳에서 진행된 소수 정당, 지역 직능 단체, 소수 민족 등의 소회의도 활발했다. 코로나19는 이런 작은 소통 통로마저 좁혔다. ‘언택트 양회’는 14억 중국인과 56개 민족의 단합을 확인하는 ‘한 해 최대 정치행사’라는 의미도 퇴색시킬 수 있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국이 된 뒤 총리가 양회에서 공개하는 한 해 경제성장률 목표치가 매년 세계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반성문’이 나올지가 더 큰 관심사다. 미국이 “중국은 악랄한 독재정권”이라며 날을 세우자 신화통신은 어제 “방역 저격전에서 중대한 성과를 거두며 양회가 열렸다”고 맞섰다.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의 성과를 과시하는 무대이기도 한 양회가 반성 없이 자화자찬으로 흐르면 중국이 세계로부터 ‘언택트’되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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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중 코로나 냉전[횡설수설/구자룡]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터지자 미국은 첨단 제품 판매 금지, 차관 중지 등 제재를 가했다. 그러자 중국은 톈안먼 관련자 일부를 석방하고 장쩌민 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1999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 오폭과 2001년 하이난섬 앞바다 중국 전투기 추락으로 반미 시위가 격화되자 중국 당국이 막았다. 중국은 속으로는 부글부글했지만 달려들지 않았고 미국은 아직 도전국으로 여기지 않아 양국 갈등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요즘 미중 간 말의 공방에는 조금의 자제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과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도 있다”고 하자 중국 언론은 “트럼프가 미친 것” “구석에 몰린 짐승 같다”고 맞받았다. 중국 내에서는 미중 관계가 끊어지면 대만을 즉각 통일해버리겠다는 협박성 주장도 나온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지난 500년간 세계사에서 16번의 패권 교체 중 무력 충돌이 12번 있었다.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는 경쟁국 국력 차가 비슷해지거나 추격이 벌어지면 충돌로 치닫는 역사를 보여준다. 1992년 각각 5816억 달러와 283억 달러이던 미국과 중국의 국방비는 2019년 7317억 달러와 2610억 달러로 좁혀졌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휘청거리는 미국을 ‘종이호랑이’로 여겨 먼저 위안화 국제화로 달러 제국에 도전했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중국이라는 사자는 이미 깨어났다”고 했다. ▷청나라 말기의 경세가 이종오는 아편전쟁 패배 이후 서양 열강에 굴욕을 당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처방전으로 ‘후흑학(厚黑學)’을 내놓았다. 후흑은 면후(面厚·뻔뻔함)와 심흑(心黑·음흉함)을 합친 말로 ‘이익을 위해서는 가릴 것이 없다’는 뜻이다. 개인에게는 악덕이지만 통치자에게는 구국강병책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국이면서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라고 하는 데는 실리를 우선하는 ‘후흑 처세술’이 깔려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중국의 그런 전략을 참지 못한다. 중국을 개도국 대우한 세계무역기구(WTO)와 친중 논란을 빚는 세계보건기구(WHO)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경제 번영 네트워크’라는 친미 경제 블록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해 중국 고립화에 나섰다. 대만의 TSMC가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고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에도 미국 내 공장 확대를 요구하는 등 미중 갈등이 한국에 선택을 강요하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경험 못한 거대한 고래 싸움이 다가오고 있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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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백신 속도전[횡설수설/구자룡]

    영국 정부는 옥스퍼드대 제너연구소의 지원자 5000명 대상 코로나19 백신 3단계 실험(임상 3상)을 최근 승인했다. 1단계 실험도 끝나지 않았는데 3단계를 미리 승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안전성’ 못지않게 백신이나 치료약의 신속한 공급이 발등의 불임을 보여준다. 전 세계 확진 322만 명, 사망 22만8200여 명(30일 집계)인 방역재난 뒤에서는 치료약과 백신 개발 전쟁이 치열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초고속(Warp Speed)’이란 작전명으로 내년 1월까지 3억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공상과학 시리즈 ‘스타 트렉’에서 ‘빛보다 빠른 여행’을 의미하는 ‘워프 스피드’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속도에 도입됐다. 독일 바이오테크사도 지난달 12명에게 백신 후보 물질인 BNT162를 접종하는 실험에 돌입해 빠르면 올해 말까지 수백만 명에게 백신을 투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국의 속도전을 보면 백신 개발에 수년이 걸린다는 말이 무색하다. ▷영국의 공격적인 백신 개발은 사망자 2만6000여 명으로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3위를 차지해 깎인 체면을 발 빠른 백신 개발로 만회하려는 의도도 있다. 슬픈 얘기지만 영국은 실험에 ‘최적의 조건’이라고 한다. 임상시험 3단계에서는 자연감염 가능성이 큰 피실험자가 많이 필요한데 한때 하루 최대 4000여 명이 확진돼 실험에 유리한 여건이라는 것. ▷치료약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환자의 회복 기간을 31% 단축한 것으로 나타난 렘데시비르에 대해 긴급사용승인을 내줄 계획이다. 신약 개발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효과는 조금 떨어져도 안전성이 입증된 기존 약을 조금 바꿔 활용하는 ‘약물 재창출’ 전략이다. 지난달 말 현재 전 세계적으로 690여 건의 치료약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렘데시비르(에볼라) 클로로퀸(말라리아) 칼레트라(에이즈) 리바비린(C형 간염) 우미페노비르(인플루엔자) 등이 사용됐지만 아직 ‘코로나 치료제’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무증상 감염, 완치 후 재감염 등 정체가 모호한 코로나19가 치료약 개발에도 난적임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제약회사와 벤처기업 등 10여 곳이 백신과 치료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서울의 국제백신연구소(IVI)는 미국 이노비오사의 실험용 백신을 받아 40명을 대상으로 1단계 임상시험을 시작할 예정이다. 진단 시약의 신속한 개발과 검사에 이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서도 한국이 명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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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고의 코로나 검사 역량,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논설위원 현장칼럼]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규모 확산)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은 사태 초기부터 대규모로 신속하게 코로나 감염 여부를 진단해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한국의 코로나19 검사 경쟁력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아! 이래서 대규모 검사가 가능했구나.’ 10일 오전 찾아간 서울 성동구 천호대로 씨젠의료재단 2층 분자진단검사실. 유전자 검사 장비인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검사기 55대가 컴퓨터와 짝을 이뤄 빼곡히 놓여 있었다. 2월 24일 이곳에서는 단일 검사 기관 하루 최대인 10만700여 건을 검사해 437명의 확진자를 찾아냈다. 그날 국내 검사의 60%가량을 맡았다. 최근에는 여러 기관으로 검사가 분산돼 하루 5000여 건으로 줄었지만 일본의 누적 검사 건수 7만여 명분(13일 기준)을 2, 3일 내로도 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있다. 씨젠은 전국 4000여 개 병·의원에서 하루 평균 환자 2만 명의 검체 18만 건을 의뢰받아 24시간 검사하는 검사 전문기관이다. 대규모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이 발등의 불이 되자 진단의 전 과정을 자동화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진단 시약의 ‘타깃 유전자’를 한 튜브에 3개씩 넣는 첨단 기술을 개발해 기존 검사 대비 효율을 수십 배로 높였다. 경기 용인의 SCL서울의과학연구소는 핀란드로부터 1만8000개의 검체 조사를 의뢰받아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핀란드는 인근 에스토니아 등에도 검체를 보냈지만 한국을 선택했다. 검체를 담은 박스 몇 개를 실은 항공기가 10시간 이상 걸려 한국으로 날아와 검사를 맡기고 있다. ‘K방역’ 코로나 검사의 실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내에는 씨젠의료재단 SCL서울의과학연구소 이원의료재단 녹십자 삼광 등 ‘빅5 검사 전문기관’이 있다. 이들을 포함해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 100여 곳의 의료기관이 코로나 RT-PCR 검사를 하고 있다. 전수 검사해야 할 대구의 신천지 신도가 1만 명이 넘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은 데는 이런 막강한 검사 역량이 있었다. 코로나 검사는 시약이 있어야 가능하다. 중국에서 지난해 12월 31일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고 올해 1월 12일 미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가 유전자 염기서열을 공개하자 국내 바이오 업체들은 시약 개발에 착수했다. 국내에서 1월 20일 첫 환자가 나오기 전 이미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대규모 코로나 검사는 첨단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기관과 인원을 양성, 관리해 온 국내 의료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80년대 병리과에서 진단검사의학과가 독립돼 전문의를 포함해 1200여 명의 검사의학 전문가와 1만여 명의 임상병리사가 있다. 환자를 직접 만나 진료하는 임상 의사들에게 혈액, 소변, 조직 검사 등의 결과를 제공했던 진단 분야의 전문화가 코로나 사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는 주기적으로 ‘분자진단검사실’ 인증을 통해 유전자 검사 진단 기관을 관리해 왔다. 전국의 2000여 검사 기관 중 유전자 진단 인증을 받은 곳은 100여 곳에 불과하다. 3월 7일 처음 RT-PCR 검사를 시작할 때 47곳이 1차로 검사 기관으로 선정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 검체 샘플 7개(양성 4개, 음성 3개)를 보내 맞힌 곳 등을 뽑았다. 스포츠에서 저변이 넓어야 훌륭한 선수가 나오듯 높은 수준의 진단 의학 인프라가 코로나 진단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진단검사의학회는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 당일 ‘코로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이틀 후에는 질본 관계자들과 만나 진단 시약 제조 방법 찾기에 나섰다. 당시까지 알려진 시약 제조법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안 등 6, 7가지가 있었지만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질본과 민간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적합한 검사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질본은 29일 한국형 시약 검사법인 ‘RT-PCR 프로토콜’을 업체에 공개했다. 한 전문가는 이를 두고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고 각 업체가 각자 최고의 메뉴를 요리하도록 했다고 비유했다. 민간 바이오 업체나 검사 기관의 역량이 있어도 ‘행정과 규제’의 병목에 걸려 타이밍을 놓치면 무용지물이다. 다행히 2016년 겪은 ‘메르스 트라우마’가 코로나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메르스 이듬해에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새 진단 시약과 검사법에 대해 긴급사용을 승인하는 제도가 도입됐는데 이번에 제때에 발동된 것이다. ‘1월 27일 서울역 회의’가 이번 코로나 방역 전쟁에서 전환점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 한국은 누적 확진자가 4명으로 코로나 불길이 본격화하기 직전이었다. 코로나 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된 날이기도 했다. 오후 3시 서울역 역사 4층 ‘별실’ 회의실에 질본이 소집한 30여 명이 모였다. 하루 전날 긴급히 통보해 소집된 회의다. 질본과 진단검사의학회, 시약 생산업체 20여 곳의 관계자들이 서울과 지방에서 모였다. 이날 질본은 국내외 코로나19 상황을 설명한 뒤 31일까지 진단 시약 긴급승인 신청을 하라고 통보했다. 회의는 1시간여 만에 끝났지만 신속하게 대량의 진단 시약이 개발, 승인되는 계기가 됐다. 시약 업체 4곳이 신청서와 시약을 제출했다. 질본은 밤새워 서류를 심사하고 시제품은 질본과 3개 의료기관에서 교차해 성능 검사를 벌였다. ‘긴급승인’이지만 강도 높은 심사가 진행돼 2월 4일 코젠바이오텍 한 곳의 시약만이 승인을 받았다.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던 심사가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2월 7일 코젠의 시약으로 RT-PCR 검사가 시작됐다. 기존 ‘판 코로나’ 검사는 검체를 18개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에 보내 1차 검사를 한 뒤 질본에서 2차 검사를 했다. 24시간 이상 걸리고 하루 처리 용량도 160여 명분에 불과했다. 이제 6시간 이내로 수천 건의 검사가 가능해졌다. 12일 씨젠에 이어 솔젠트 에스디바이오센서 바이오세움 등 5개 업체의 시약이 3월 초까지 잇달아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다. 국내 진단 시약은 20만 건 이상의 검사를 할 수 있는 물량이 확보됐다. 국내 첫 확진자의 주치의인 인천의료원 김진용 감염내과 과장은 ‘드라이브스루’ 검사의 첫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생물테러가 발생하면 방역 요원이 감염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예방용 항생제를 배분하기 위해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나눠주는 방식을 코로나 검사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감염학회 사이트에 올렸다. 이 내용을 본 경북 칠곡경북대병원의 손진호 원장이 2월 23일 ‘컨테이너 검사’에 도입했다. 사흘 후 경기 고양시는 덕양구 공영주차장에서 지금은 세계에 널리 알려진 ‘드라이브스루’ 검사를 시작했다. 그 후 검사받는 사람이 ‘전화박스’에 들어가 의료진이 전신을 감싸는 레벨D 방호복을 입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나온 데 이어 검사자가 전화박스에 들어가고 피검사자는 바람이 통하는 밖에서 검사를 받는 ‘워크스루’로 진화했다. 한국은 ‘창문 열고 모기 잡는다’는 족보에도 없는 대응 전략으로 대가도 치렀고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발 빠른 진단 시약 개발과 긴급 승인에서 나타난 기민한 대응과 민관 협력이 코로나 창궐의 고삐를 잡게 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시약 업체나 검사 기관은 영리를 추구하지만 정부가 통제하기보다 도와주고 인센티브를 제공할 때 어떤 창의와 열정이 발휘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는 없을까. 지금도 원격 의료나 유전자 치료 등 의료와 바이오 분야에서는 촘촘한 규제로 경쟁력이 옥죔을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지 않도록 한다면 코로나 사태가 주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코로나 치료약과 백신 개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 한번 코로나 검사에서와 같은 민관의 협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해본다. ▽도움말 주신 분 △서울대 의대 송상훈(대한진단검사의학회 총무이사) 성문우 교수(〃 코로나TF 위원) △연세대 의대 이혁민 교수(〃 코로나TF 팀장) △씨젠의료재단 천종기 이사장, 이봉우 행정원장, 성낙문 임상의학연구소 연구소장, 이선화 의료원장, 김덕환 기획본부장 △코젠바이오텍 김수복 상무 △SCL서울의과학연구소 임환섭 대표 원장 △익명 요구한 질병관리본부 고위 관계자 △우영택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김용석 서울역 대외협력팀장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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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와 면역[횡설수설/구자룡]

    다른 감염성 질환이 그렇듯 코로나19도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의 치사율이 높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면역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코로나19는 아직 치료약도 백신도 없어 인체 면역이 최후의 방패다. 면역력을 높여준다는 제품 판매가 늘고 운동과 균형 있는 영양 섭취, 7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이 도움을 준다는 등의 조언이 넘쳐난다. 그런데 코로나19는 나이가 젊고 질환이 없어도 안심할 수 없는 특징도 나타나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14일 21세의 건강한 남성 축구팀 코치가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사망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조사에 따르면 최근 한 달여간 환자 4226명 중 705명(16.7%)이 20∼44세였고 140여 명은 입원했다. 중국에서는 감염 후 중증이 된 환자의 41%가 50세 미만이었다. 의료계는 이를 ‘과(過)면역’ 반응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면역체계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정상 조직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면역력이 강해서 나타나는 부작용의 극단적인 현상이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다. 사이토카인은 외부 병원체가 들어오면 면역체계에 적색경고 신호를 보내는 신호전달 물질이다. 그런데 실제 위험보다 월등히 많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면 문제가 된다. 면역체계가 바이러스만 ‘정밀타격’하지 않고 ‘숙주(host)’까지 융단폭격한다. 20세기 초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5000여만 명 중 70% 이상이 25∼35세의 젊은이인 것도 ‘사이토카인 폭풍’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성인은 오랜 세월 온갖 바이러스와 산전수전 겪어 낯선 병원체가 들어오면 민감하고 격렬하게 반응해 과면역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반면 영유아 등 미성년자는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증세가 심하지 않고 중증으로 악화되는 경우도 적다. 이는 면역력이 약해서 ‘면역 부작용’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19일 현재 국내 20세 미만 환자는 535명(6.2%)으로 중증은 없다. 18일 대구에서 급성폐렴으로 사망한 17세 청소년도 ‘사이토카인 폭풍’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는 음성으로 판정됐다. ▷코로나19는 사스나 메르스 바이러스와 유전자가 유사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무증상 감염, 완치 후 재발, 들쭉날쭉한 잠복기 등 변형된 특질이 방역에 혼선을 주고 있다. 게다가 인체 면역력이 강하다고 해도 안전하지 않거나, 예외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탈이 되게 할 수도 있는 별종 바이러스는 아닌지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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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스크 못구해 난리인데 왜 충분히 만들지 못할까[논설위원 현장 칼럼]

    지난겨울 국내 미세먼지 농도는 높지 않았다. 일부 약국에서는 의료용품 유통업체에 마스크를 반품해 가라고 요구해 실랑이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 1월 초까지도 계속됐다.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고 중국 보따리상들의 싹쓸이 쇼핑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싸움만도 벅찬데 ‘마스크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국민들이 기진맥진이다. 제조업체가 생산한 마스크의 80%를 ‘공적 공급’하고 있지만 수요가 치솟아 턱없이 부족하다. 분배의 공평성을 위해 초유의 마스크 5부제까지 시행됐지만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많다. 제조업이 주력인 10대 경제 강국, 미세먼지가 심해 마스크 사용이 많은 한국에서 ‘마스크 대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니 불가항력적인 일이라고만 할 수 있나. 지난달 26일 시작된 마스크 공적 공급이 18일로 3주째다. 마스크 난맥상은 왜 벌어지고 있는 걸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달 28일부터 매일 발표하는 공적 공급 물량을 기준으로 추산한 국내 1일 마스크 총생산량은 1002만 장에서 3월 16일 1038만 장으로 크게 늘지 않았다. 식약처는 “주말 보급이나 학교 비축용 등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 생산량은 더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식 발표되는 공적 공급 물량으로만 추산하면 2월 초 평일 기준 1163만 장보다 오히려 100만 장가량 줄었다. 마스크 수요가 폭발해 없어서 못 파는데 생산은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마스크 업계는 생산을 제한하는 세 가지 병목을 꼽고 있다. 원자재 부족, 설비 부족이나 인력난, 두 가지 모두 아니면 생산자가 의욕이 없어서다. 필자는 마스크 공적 공급 비율이 50%에서 80%로 확대되고 이틀 뒤인 7일 부산 사하구의 마스크 생산 중견업체 네오메드 공장을 찾았다. 1층 330m²(약 100평) 남짓의 공장에 설치된 11개 라인 중 2개만이 KF94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나마 오후 5시경 생산을 마쳤다. 지난 한 달여간 휴일 없이 24시간 공장을 돌렸고 8일 처음 하루 휴무한다고 했다. 모든 생산 라인을 풀가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유영호 대표는 “핵심 원자재인 ‘멜트블론(MB)필터’만 있으면 하루 40만 장 생산도 가능하지만 MB필터를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근근이 구하고 있는데 언제 생산이 중단될지 모른다고 했다. 7일 작업을 이른 시간인 오후 5시에 마친 것은 계약된 공적 공급 물량 4만 장과 자체 판매용 1만 장 생산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 생산하면 빼돌리기 의혹만 사고, 당국에 설명하기만 복잡해진다고 한다. 유 대표는 “한쪽 얼굴 일부가 마비가 와 침을 맞을 정도로 밤낮없이 만들었다”며 직원들 피로도 누적돼 하루 쉬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적 공급이 시작된 뒤 정부는 생산을 늘리도록 돕기보다 생산업체가 물건을 빼돌리지 않는지 반(半)범죄자 취급을 하며 채찍만 드는 것 같다는 불만이 높다. 전국 130여 개 마스크 생산업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찰, 국세청 직원들이 상주하며 입고된 원자재와 출고된 마스크 수량, 공적 공급으로 보내는 물량은 물론 자체 판매하는 마스크도 어디에 얼마가 공급되는지 점검하고 있다. 네오메드에 파견됐던 식약처 직원도 8일 공장이 정말 쉬는지 와봐야 한다. 한 생산업체 관계자는 “작은 숫자 오류라도 나면 실수가 아니라 범죄가 되는 때”라며 “원자재를 더 구해 생산을 늘리는 것보다 숫자를 맞추고 설명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기업은 이윤 동기만 있으면 밤을 새워 국내외를 뒤져서 원료를 구해다 생산하는데 일부 마스크업체는 ‘공적 공급 통제’에 의욕이 떨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서울의 한 업체는 “생산 원가의 50% 정도만 인정하면서 하루 생산량 10배에 달하는 생산수량 계약을 요구한다”며 생산을 중단해 버렸다. 부직포와 귀걸이 끈, 안면 부착 철심 그리고 필터로 구성 요소가 단순한 마스크는 필터 공급이 생산량에 결정적인 요인이다. 정부가 최근 MB필터 생산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장기 재고물량 약 4.4t을 재고 소진으로 생산이 중단될 9개 업체에 공급하기로 했지만 생산량이 100만 장 남짓에 불과하다. 정부는 “필터를 조기 수입하고 다변화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가장 규모도 크고 품질도 좋은 수입처인 중국에서는 공안이 공장에 총을 들고 와서 감시할 정도로 원자재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MB필터의 주 생산기지가 코로나19 발원지로 일찌감치 봉쇄된 후베이(湖北)성에 몰려 있는 것도 물량 조달을 어렵게 한 요인이 됐다고 한다. 외부 도입이 여의치 않자 국내에서 필터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MB필터는 마스크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공기청정기, 자동차 에어필터, 냉난방기 등에도 사용된다. 긴급한 경우 다른 품목에 생산되는 것을 일시적으로 돌리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화학제품 만드는 기술을 응용해 마스크 200만 장을 만들 수 있는 MB필터를 만들어 기증하고 있다. 대만은 정부가 투자 리스크가 큰 생산 라인 제작을 발주한 뒤 민간에 기증해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국내 모 반도체 장비업체는 제조장비 50대 제작에 착수해 이르면 다음 달 초 하루 300만 장을 생산할 수 있지만 정부 지원은 없다고 한다. 업계는 제조업 강국 한국에서 마스크 생산을 늘릴 여지는 많다며 정부가 쥐어짜내기보다 업계와 실질적인 소통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 방역 전쟁에서 마스크는 전략 물자가 됐지만 당국의 관리는 초기부터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중국 보따리상들이 1월 설날 연휴 전부터 대량 사재기에 나섰지만 정부는 2월 6일에야 개인 휴대 반출을 300장으로 제한하고 1000장 이하는 간이 신고, 1000장 이상은 정식 수출 신고를 하도록 했다. 여행객 손에 들린 마스크 장수는 세면서 정작 대량으로 수출하는 대문은 열어 놓은 꼴이다. 1, 2월 대중 마스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배와 63배 늘었다. 2월 초 정부가 “국내에서 하루 1000만 장을 생산하고 재고도 2400만 장이 있어 공급에 문제없다”고 여유를 부릴 때 마스크 대란은 예고됐다. 3월 초 수출을 전면 중단했지만 이미 많게는 수억 장이 빠져나갔다는 추산도 있다. 중국 알리바바 마윈이 일본에 기부한 100만 장도 이 시기 한국으로부터 사들인 것이었다. 국내 마스크 재고가 거의 동난 상태에서 공적 공급과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다 보니 허덕일 수밖에 없다. 마스크 품귀로 아우성이 이어지자 공평하게 분배하는 문제는 한 개원 약사가 제안한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맞았다. 하지만 약국을 통한 초유의 마스크 5부제 판매는 약사도 소비자도 지치게 하고 있다. 소비자는 10곳을 다녀도 허탕을 치고 약사들은 하루종일 밀려드는 문의에 답하느라 지치고 있다. 마스크 생산자가 생산을 포기하는 것처럼 약사들도 판매를 포기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전국적인 의약품 유통망 1, 2위 업체인 지오영 컨소시엄과 백제약품을 공급처로 정한 것은 긴급하게 마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했다. 하지만 장당 100∼200원인 유통 마진에 대한 특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통 선두 업체가 비상 상황을 이용해 공급망과 이윤을 독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코로나19 및 마스크 사태가 장기화하면 기존 유통 라인을 복원하거나, 유통 마진을 줄이고 공급 시간을 맞춰 소비자들의 편익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가 마스크 대란으로 이어진 데는 마스크 사용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시가 오락가락한 것도 큰 요인이었다. 1월 29일엔 일반인도 보건용 최고 등급인 KF94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발표했다가 3월 초에는 “일반인은 보건용 마스크를 재사용할 수도 있다”며 “면 마스크도 쓸 수 있다”고 권고안을 수정했다. 과학적으론 옳은 얘기일 수 있지만 “마스크가 부족하니 하는 말”이라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식약처가 마스크 사용 권고 수정안을 고지하면서 ‘비상 상황에서 한시적 지침’이라고 한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바람직하지 않지만 (마스크가 부족한) 비상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좀 더 근거를 갖추고 자신감 있게 마스크 가수요를 줄일 수 있도록 재사용이나 면 마스크 사용을 권고했어야 했다. 이번 마스크 대란은 신종 바이러스와의 전쟁만큼이나 예기치 않은 상황이어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마스크 공장을 현장 취재하고 유통 등 관련 업자들을 만나보면서 필자가 내내 떨치기 어려운 생각은 ‘이번 마스크 대란은 정책 담당자들이 다가오는 위기 상황에서 정말 국민에게 필요한 물품이 무엇일지를 한 치 앞만 내다보고 대책을 세웠어도 훨씬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었다. 비상 상황을 맞아 ‘전략 물자’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도 던졌다.  부산=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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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성 목장터에 세운 ‘영재교육의 판타지’ 존폐 기로에 서다[논설위원 현장 칼럼]

    강원 횡성군 안흥면 덕고산 자락에 있는 민족사관고의 ‘민족교육관’은 국어 음악 서예 분야 캠퍼스다. 묵향당(墨香堂) 함영당(함英堂) 풍월당(風月堂) 등의 이름이 붙은 1층 기와지붕 한옥 몇 채가 모여 있어 조선시대 향교 같은 분위기다. 섬돌에 신발을 벗고 삐걱 소리가 나게 문고리를 당겨 들어가니 한쪽 벽 가득 책이 꽂혀 있다. 한 국어 교사의 연구실 겸 교실로 쓰는 이곳에 동그란 책상 3개가 올망졸망 놓여 있다. ‘문학 창작과 수용’을 수강하는 학생 4, 5명이 두툼한 책과 컴퓨터를 들고 들어왔다. 코로나19로 휴업하기 전 지난달 찾아가 본 민사고의 한 수업 장면이다. 교육부가 1일부터 일부 마이스터고에서 시범 시행에 들어간 고교학점제, 그리고 앞으로 도입을 검토 중인 ‘교과교실제’를 민사고는 1996년 설립 이래 오래전부터 해왔다. 학생이 수강 과목 교실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미국 영국 등 명문대 합격생을 수백 명 배출한 것도 이런 창의성 교육에서 나왔다. 교육부는 민사고를 비롯한 자율형사립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며 그 이유 중 하나로 ‘다양한 인재 양성에 미흡하다’는 점을 들었는데, 민사고 교육 현장에서 그런 교육부 논리를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자사고 설립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관련 조항이 지난해 11월 교육부 조치로 삭제된 뒤 지난달 25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사흘 후 전격 공포됐다. 이제 정부가 방향을 선회하지 않는 한 2025년 3월 1일 민사고는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 민사고 개교 30년을 맞는 날이다. “일반고로 전환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겁니다.” 학교에서 만난 한만위 교장은 민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할 수 없어 폐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먼저 민사고가 설립 허가를 받을 때 ‘전국 모집’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강원도는 이미 학생 수가 부족해 기존 학교도 줄여야 할 형편이었다. 일반고로 전환해 한 해 150여 명의 입학생을 강원도에서만 모집하는 건 다른 학교에도 피해를 주는 일이다.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강의했던 석·박사 학위를 가진 선생님들은 일반고로 전환되면 수업을 할 수 없고 급여를 올려서 붙잡을 수도 없다. 교사 한 명당 학생 6.4명으로 이뤄지던 차별성 있는 교육도 없어진다. 더욱이 강원 원주에서만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이곳에 비싼 기숙사비를 내면서 오려는 학생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04년 민사고와 상산고, 해운대고 등 6개가 시범학교로 지정된 뒤 자사고는 46곳이 됐다. 다른 학교들은 일반고에서 자사고로 전환됐지만 민사고만은 자사고 제도가 생기기 전부터 전국 단위 모집 등 ‘태생이 자사고’였다. 다른 학교는 자사고가 폐지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일반 학교로 돌아간다지만 민사고는 돌아갈 곳이 없다. 한 교장은 “무엇보다 법인은 ‘민족정신으로 무장한 세계적 지도자 양성’이란 설립 이념을 추구하지 못하는 학교를 운영할 뜻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걸리는 민사고는 최명재 전 파스퇴르 회장이 학교 설립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횡성에 조성한 옛 성진목장 터에 세워졌다. 파스퇴르우유 공장과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다. 오래전 롯데푸드에 매각된 우유 공장 구내를 지나면 다산 정약용과 충무공 이순신의 동상이 좌우 기둥에 세워진 학교 정문이 나온다. 학교 진입로에 들어서면 오른쪽 화단에 ‘본교 출신 노벨상 수상자의 동상’이라는 글씨가 앞면에 새겨진 15개의 화강암 좌대가 줄지어 있다. 세계적인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학교의 꿈을 대변한다. 다산관(자연계 강의실)과 충무관(인문계 강의실) 샛길에는 수학경시대회 등 각종 세계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의 이름과 수상 기록 등이 돌에 새겨져 전시돼 있다. 노벨상 좌대에 올라갈 예비 후보들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최 전 회장은 영국의 이튼스쿨을 방문했을 때 마침 이 학교 출신인 넬슨 제독의 전승기념식이 열리는 것을 보고 “한국에는 넬슨보다 훌륭한 이순신 장군이 있는데, 이튼 같은 학교가 없다”고 느껴 민사고를 설립했다고 한다. 설립자의 뜻은 개교일을 3월 1일로 잡아 3·1만세운동을 잊지 않게 하는 것에도 담겨 있다. 학교 헌장에 내건 두 가지 교육 목표 중 민족 주체성 교육이 처음이고 그 다음이 영재 교육이다. 강의실이나 사무실에는 어디에나 태극기와 ‘祖國(조국)’ 두 글자가 걸려 있다. ‘전국 각 학교 상위 1%, 입학생 30명, 전원 장학금과 기숙사 생활, 한복 교복을 입고 영어로 수업, 국궁과 가야금을 배우는 전인격 교육.’ 민사고가 문을 열 때 마치 ‘꿈의 학교’처럼 보였다. 하지만 1기생 30명 중 19명이 2학년에 오르기 전 그만뒀다. 내신이 불리하고 교과 과정이 ‘서울대 가기 어렵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최명재 당시 법인 이사장은 “서울대 가려거든 오지 말라”고도 했다. 하지만 학생이 오지 않는 학교는 존립할 수 없었다. 이창규 사무국장은 “점차 국내 대학 입시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했다. 2019년까지 하버드대 12명, 예일대 17명, 프린스턴대 22명, 옥스퍼드대 30명 등 901명이 해외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생 2347명의 38%다. 홈페이지에는 국내외 수학 물리 환경 천문 등 각종 이공계 대회 수상자 133명이 소개돼 있다. 국내 대학 진학자도 점차 늘어 지난해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입학이 62명으로 졸업생의 42%였다. 한때 학원에 민사고 대비반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교육부가 ‘자사고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 위주 교육으로 고교 서열화를 유발했다’고 지적하는 대목이다. ‘별종’ 민사고는 세계를 무대로 한 인재만 키울 수도, 그렇다고 국내 대학 입시에 주력하기도 힘든 정체성의 혼돈 속에 ‘일반고 전환’이라는 낭떠러지를 만났다. 최 전 회장이 ‘저온 살균’ 논란과 파동 속에 파스퇴르유업에서 번 돈과 사재 등 1000억 원가량을 투자해 세운 민사고는 곡절도 많았다. 개교 이듬해 외환위기가 터져 1998년 1월 파스퇴르가 부도났다. 2004년 파스퇴르가 매각되면서 학교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민사고는 학생 수를 늘리고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학비를 받아 자립에 나섰다. 최 전 회장은 2000년 7월 휴가차 내려간 제주도의 한 호텔 사우나에서 뜨거운 물에 풍덩 뛰어들어 85% 화상을 입었다. 수개월간 사경을 헤매다 그해 말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생 기숙사에 머물며 학교를 지켰다. 2002년 2월 ‘4대 교장’에 올라 1년간 재직하면서 평생 숙원인 ‘교장 선생님’이란 꿈도 이뤘다. 최 전 회장의 장남인 최경종 학교 행정실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교장 임명장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사립학교 교장은 법인 이사장이 임명하는 것이지만 축하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됐다. 민사고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2012년 전 세계 유명 고교 모임인 ‘G20 하이스쿨’(현 G30 하이스쿨)에도 초대돼 가입했다. 현재 미국의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하버드 웨스트레이크 스쿨, 영국의 이튼 칼리지, 웰링턴 칼리지 등 20개국 50곳가량이 회원 학교다. 화상 후유증 등으로 쇠약해진 최 전 회장은 2016년 2월 개교 20주년 행사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것이 마지막 외부 활동으로 알려졌다. 최 전 회장은 현재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해 일반고 일괄 전환 결정으로 민사고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소식은 알지 못한다고 최 실장은 전했다.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으로 일반고로 전환해야 하는 고교는 자사고 46곳을 포함해 외국어고 국제고 등 79곳이다. 이들 학교의 교장연합 대표를 맡고 있는 한만위 교장은 교육부 조치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다. 최 실장은 “끝내 일반고로 전환하게 되면 폐교하기 전 설립자가 처음 쓰려고 했던 ‘민족주체고’로 이름을 바꿔 문을 닫을 계획”이라고 했다. 최 전 회장은 ‘20년 후 너희들이 말하라’란 자서전에서 “민사고의 긴 역사에서 나의 역할은 우주 대기권 밖으로 우주선을 밀어 올리는 1단계 로켓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밝혔다. 민사고가 오래 유지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훗날 민사고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도 수상자의 동상을 올려놓을 좌대가 있는 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했을 것 같다. 민사고는 설립 때부터 횡성의 목장에 세운 판타지 같았다. 판타지는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지만 민사고가 한때의 신기루처럼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파국의 시나리오다. 횡성=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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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흔적’[횡설수설/구자룡]

    냉전시대 소련의 스탈린 체제 비판을 위해 조지 오웰이 1949년 출간한 ‘1984’에 등장하는 ‘빅브러더’는 시민을 24시간 감시하는 걸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감시 수단만 보면 ‘텔레스크린’ 화면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코로나19는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등 정보화사회의 필수품들을 이용해 개인의 사생활을 24시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어디 어디 다녔나?’ 지난달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시민들은 확진자나 밀접 접촉자들이 어디에 다녔는지 검색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확진을 받아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길게는 보름 이상의 행적이 공개되고 언론에도 자세히 소개된다. 확진자들이 다녀간 지역이나 지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트나 휴대전화 앱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추가 감염 및 확산을 막기 위해 시급한 일이지만 확진자로서는 갑자기 프라이버시가 속속들이 공개되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감염병은 치료받으면 낫지만 사생활 정보가 공개돼 입은 피해는 되돌리지 못할 수도 있다. ‘감염되거나 확진자와 접촉하면 나의 동선도 저렇게 낱낱이 공개되겠다’는 공포감을 가질 만하다. ▷16일 확진 판정을 받은 29번 환자(82)는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등 ‘디지털 흔적(Digital Footprint)’을 남기지 않아 이동 경로 추적이 힘들어 방역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시민은 대중교통 이용이나 식당 결제 등에 카드 사용이 보편화돼 일상 곳곳에서 ‘디지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카드 추적에서 놓치는 행적은 스마트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거리와 건물 등에 촘촘히 설치된 폐쇄회로(CC)TV로도 파악된다. 확진자 경로 파악에는 이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바이러스 피해자가 마치 범죄자 수준으로 행적이 파악되고, 정보가 방역이라는 공익을 위해 일반에 공개되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는 개인정보를 담은 생체칩을 인체에 이식해 신분증 신용카드 전자키 등 다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생체칩 이식을 거부하면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등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변종 감염병의 습격이 빈번해지면 방역을 위한 ‘디지털 흔적’ 파악을 위해 생체칩이 필요하다는 소리까지 나오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바이러스로 인해 정보사회의 이기(利器)들이 감시에 사용돼 사생활을 까발리는 ‘빅브러더’로 변모하는 상황이 자주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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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PCR 진단[횡설수설/구자룡]

    미국의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는 1983년 극소량의 유전자(DNA)만 있어도 대량으로 복제할 수 있는 ‘중합효소 연쇄반응(PCR)’ 기법을 개발했다. PCR 기법은 DNA 활용과 조작을 가능하게 해 ‘생명공학의 연금술’로 불린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공룡 복제 같은 유전자 복제나, 화성 연쇄살인 같은 장기 미제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는 유전자 지문 대조 등이 모두 PCR 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친자 확인 DNA 검사에도 PCR가 활용된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규명한 이후 최대의 혁명적 발견이란 평가와 더불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 PCR 기법이 7일부터 국내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를 가려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 PCR 검사는 유증상자의 침과 가래 등 검체를 채취해 배양한 뒤 시약을 묻혀 바이러스 유무를 밝혀낸다. 검체에 바이러스가 3∼5마리만 있어도 잡아낼 수 있으며 6시간이면 된다. 기존 ‘판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는 17개 시도보건환경연구원과 질병관리본부에서만 할 수 있었고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제 PCR 진단 시약을 이용해 전국 40여 개 지정 민간 의료기관에서도 검사할 수 있다. 옛 검사법으로는 하루 160여 명을 진단할 수 있었으나 이 기법을 활용하면 3000명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PCR 기법은 이미 에이즈나 독감 인플루엔자 같은 바이러스 질환 진단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감염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으면 16만 원짜리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지난 주말 보건소와 병원에는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검사를 요청하는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혼잡을 이뤘다. 실제로 검사를 받은 인원은 약 700명. 정부는 이달 안으로 하루 1만 명까지 진단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물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PCR 기술이 있으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새로 등장해도 염기서열 등을 파악해 신속 간편하게 진단할 수 있는 시약 개발이 가능하다. 이번 신종 코로나 PCR 시약을 한국이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개발해 실전에 투입한 데는 국경을 넘는 과학자들의 네트워크와 국내 민관의 협업이 있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공식적으로 환자 발생을 발표하기 전에 중국 과학자들은 새로 등장한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을 타국 과학자들에게 알렸다. 2015년 메르스 트라우마가 있는 국내 방역 당국과 의료계, 바이오업계는 상륙에 대비해 ‘적(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해 가며 시약 개발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세를 보여주지만 과학이 극복하지 못할 난적은 아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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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러스 공기 감염[횡설수설/구자룡]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은 상당 기간 백신도 약도 없어 치명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에이즈바이러스는 혈액과 체액으로만 옮겨져 스스로 조심하면 예방이 가능하다. 그런데 바이러스 가운데는 공기 중에 떠돌다 아무나 감염시키는 가공할 전파력을 지닌 것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병원 감염’의 주범인 EB바이러스다. 다행히 이 바이러스는 감염되어도 증상 없이 지나가거나 가벼운 편도선염 등을 유발하는 정도다. ▷이처럼 병원체의 전파력과 질병의 심각성(숙주의 치사율)은 통상 반비례한다. 이는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 자신도 살 수 없는 생존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어떤 바이러스가 ‘공기 감염’이 가능하다면 이는 일반적인 병원체 생리를 거스르는 것이며 인류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중국 보건전문가는 그제 관영TV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빠르게 공기 감염이 되는 인플루엔자와 비슷하다고 발표했다. 그는 “밀폐된 공간에서 감염자가 남긴 비말(飛沫)이나 에어로졸(미세 자나 물방울)을 통해 전염이 이뤄졌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한 달여 만에 확진자가 1만여 명에 이르고 감염원이 불분명한 ‘미스터리 환자’가 속출하는 데 대한 분석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1967년 처음 발견된 뒤 사스, 메르스 등 우한 폐렴에 앞서 6가지 변종이 나왔지만 공기 감염 사례는 없었다. 공기 감염 병원체로 확인된 바이러스는 홍역이나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그리고 감기의 원인인 아데노바이러스 등이 있다. 세균 가운데도 결핵이나 디프테리아 등은 공기 감염이 가능하다. 공기 감염이 무서운 것은 매년 독감 사망자가 숱하게 발생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2019∼2020년 독감 시즌에 미 전역에서 1500만 명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되고 820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인간의 건강을 위협해 온 장티푸스, 콜레라, 일본뇌염 등 많은 전염병은 물, 음식, 동물, 곤충 등 전파 경로가 확인됐으며 백신이나 약이 개발돼 인류가 통제하고 있다. 우한 폐렴은 ‘무증상 전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만약 공기 감염마저 가능하다면 방역 전쟁의 난도가 몇 곱절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학계는 우한 폐렴의 공기 감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없으면 오래 남아 있지 못한다. 감염자가 며칠 전에 다녀간 곳의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살아남아 떠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방역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지만 아직은 공기 감염 공포에 떨 단계는 아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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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포의 ‘무증상 전염’[횡설수설/구자룡]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병원체다. 미생물인 세균은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 같은 ‘스타 항생제’가 있지만 바이러스는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 바이러스는 인체의 세포 속으로 쏙 들어가 증식해 세포를 죽이지 않는 한 약을 쓰기도 어렵다. 에이즈와 헤르페스가 쉽게 제압되지 않고 인플루엔자, 아시아독감, 신종플루 등이 맹위를 떨치는 것은 원인 바이러스가 변종이 많아 백신 개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염성 질병은 통상 증상이 나타난 이후에야 타인에게 전염을 시킨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이었던 사스와 메르스의 경우 치사율이 매우 높지만 증상 없는 상태에서 남에게 전염시킨 사례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한 폐렴을 일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타인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못된 특징’까지 지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한 폐렴 바이러스는 사스 및 메르스 바이러스와 유전자 염기서열 유사성이 각각 85%와 50%에 달하는데 유독 ‘무증상 전염’이라는 ‘스텔스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공포를 더하는 것이다. ▷독일을 방문했던 중국인 여성은 귀국할 때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었지만 독일 체류 중 접촉한 3명의 독일인이 2차 감염자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우한에 다녀온 선전의 10세 소년은 자신은 별다른 증상이 없으면서 가족 4명에게 전염시켰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무증상 감염자의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확인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무증상 감염자’를 ‘걸어 다니는 폐렴(Walking Pneumonia)’이라고 불렀다. 바이러스 가운데 무증상 전염이 이뤄지는 것은 홍역과 인플루엔자 정도였는데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주기적으로 바이러스의 공습을 받는 인류가 새로운 ‘악마’적 속성에 직면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사스보다 더 많은 감염자를 내며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우한 폐렴의 ‘무증상 전염’ 가능성은 방역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검역 대상을 찾을 수 없어 전선(戰線)이 더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우한 폐렴 바이러스는 1명이 감염시키는 인원수인 재생산지수가 1.4∼2.5로 사스(4.0)보다는 작지만 메르스(0.4∼0.9)보다는 매우 높다. 우한 폐렴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나오는 물방울인 비말(飛沫)을 통해 전파된다. 무증상 감염자의 경우 기침이나 재채기 같은 증상이 없으므로 전파 가능성이 다소 낮아지기는 하지만 위험성은 상존한다. ‘무증상 전염’의 정체를 파악해 ‘무증상 슈퍼 전파자’에 의한 ‘팬데믹(pandemic·대규모 전염)’의 출현을 막아야 하는 중대한 고비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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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한 폐렴과 박쥐[횡설수설/구자룡]

    중국 베이징 왕푸징의 ‘간식 먹거리’ 골목인 샤오츠제(小吃街)를 찾는 외국인들은 불가사리, 작은 전갈, 큰 전갈, 해마, 도롱뇽, 메뚜기 꼬치구이를 보고 깜짝 놀란다. 하지만 광둥성 등 남방 요리 본고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곰발바닥, 모기눈알, 비둘기, 들쥐 요리 등 ‘엽기’가 끝이 없다. 살아있는 원숭이를 묶어 놓고 생골을 파먹는 데는 기겁을 할 만하다.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이런 ‘몬도가네’와 무관치 않다. ▷우한은 중국 대륙 한가운데이자 양쯔강 중하류에 있는 도시다. 인구 약 1100만 명으로 항공 철도 등 교통 허브이며 대학 도시이기도 하다. 여름철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돌고 습도가 높아 중국의 4대 화로(火爐) 중의 한 곳으로 불리는 우한에도 온갖 엽기 요리가 성행한다. ▷‘우한 폐렴’의 진원지 화난시장에서는 오소리, 여우, 산 흰코사향고양이, 악어, 대나무쥐, 기러기, 뱀, 코알라 등 야생동물이 거래됐다. 이 중 특히 뱀과 사향고양이는 박쥐의 바이러스를 옮기는 2차 숙주로 의심받는다. 사스는 사향고양이, 메르스는 중동의 낙타가 원인이었지만 사실은 사향고양이와 낙타가 박쥐에게서 바이러스를 옮겨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스와 메르스 외에도 21세기 들어 지구촌을 흔든 니파 바이러스, 에볼라, 마르부르크, 헤니파 감염병은 모두 박쥐가 1차 숙주였다. ▷이번 우한 폐렴의 유전자도 박쥐 내부의 바이러스와 96% 일치한다. 음습한 동굴에서 살아 온몸에 기생충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박쥐 몸속의 바이러스가 박쥐를 잡아먹은 2차 숙주를 거쳐 사람에게 전염된 것이란 추론이 나온다. 박쥐를 탕이나 튀겨서 직접 요리로 먹기도 한다고 한다. 박쥐가 인간에게 질병을 옮긴 것은 1930년대 흡혈 박쥐가 광견병을 옮긴 것이 처음이다. 지금도 미국이나 남미에서 광견병은 주로 박쥐 때문에 걸린다고 한다. 박쥐 몸에는 최대 200개 바이러스가 있지만 박쥐 자신은 질병에 무적이다. 특유의 면역체계 때문이다. 수평 비행속도가 무려 시속 160km에 달해 날 때 체온이 올라가면서 면역계가 활성화된다. ▷돌기 모양 입자 표면이 왕관을 연상시켜 라틴어 왕관을 뜻하는 ‘코로나’에서 이름을 따온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와 메르스에 이어 인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인간 병원체의 58%는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야생동물과 접촉하거나 식용으로 하면서 야생동물 속에 있던 병원체가 넘어오면서 전염병을 유발한다. 인간의 탐욕과 자연환경 파괴가 억제되지 않으면 바이러스의 역습이 계속될 것이라는 경고가 아닌지 되새겨 봐야 한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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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엄궁동 살인 30년만의 재심 결정… 인권유린 징비록 삼아야[논설위원 이슈 칼럼]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에서 30년 전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21년간 옥살이를 했던 장동익(62) 최인철 씨(59)에게 법원이 6일 재심 결정을 내렸다. 화성 연쇄살인 8번째 사건 범인으로 20년간 수감됐던 윤모 씨(56)도 이춘재의 범행 자백을 계기로 14일 재심이 결정됐다. 두 사건 모두 경찰이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게 인정된다는 것이 재심 결정의 주요 근거다. ○ 경찰의 가혹행위로 ‘강간살인 자백’ 부산 을숙도에서 ‘자연보호 명예감시관’을 하던 최 씨는 1991년 11월 6일 무면허 운전교습을 하던 한 남성이 눈감아 달라며 내미는 3만 원을 받았다. 자동차 운전석 앞 유리에 경찰 마크를 달고 다니던 최 씨를 경찰로 생각한 것. 이틀 후 ‘공무원 사칭 금품 수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됐다. 최 씨는 ‘3만 원’으로 구속된 사흘 후 1, 2년 전 각각 발생한 별건의 차량 강도 사건과 ‘엄궁동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행을 친구 장 씨와 함께 저질렀다고 추가로 ‘자백’하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파출소 3층 옥탑방과 경찰서 별관 등에서 코에 손수건을 덮고 물을 붓거나 쇠파이프에 다리를 끼워 거꾸로 매다는 등의 고문을 이기지 못한 진술이었다. 출소 후 진해의 한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 씨는 “장 씨를 공범이라고 자백한 것도 가혹 행위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3만 원’으로 체포된 지 불과 10일 만에 두 사람은 강도 및 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엄궁동 낙동강변 강간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오전 2시경 각각 35세, 30세 남녀가 길에 세워 놓은 차에서 밀회하던 중 여성은 강간 후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미제 사건이었다. 장 씨와 최 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감형돼 21년을 복역하다 2013년 출소했다. 그러나 부산고법은 6일 “경찰 조사 과정에서 폭행과 물고문 등을 당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결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과 가족들에게 응답이 늦어진 것에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며 폐정하며 묵례를 했다. 앞서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지난해 4월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장 씨가 연행될 때 18개월이었던 딸은 장 씨가 출소한 얼마 후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고 최 씨가 잠깐 다녀온다며 경찰을 따라 나설 때 일곱 살이던 아들은 자신이 연행될 때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 검찰과 법원에서도 거부된 ‘허위자백’ 호소 장 씨와 최 씨는 검찰 조사는 다를 줄 알았으나 더 큰 절망을 안겨 주었다. 최 씨는 “고문 때문에 경찰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호소했지만 경찰에서는 시인해 놓고 왜 부인하느냐며 검사가 두꺼운 법전으로 머리를 치고, 검찰 수사관은 신고 있던 슬리퍼로 뺨을 때렸다”고 했다. 검찰 청사에서 조사를 기다릴 때도 경찰이 자신을 책상 밑에 밀어 넣고 구타했다. 최 씨의 처와 처남은 엄궁동 사건 당일 최 씨가 대구의 처가를 다녀왔다는 알리바이를 법원에서 증언했다가 오히려 위증교사와 위증죄로 각각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1년,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의 처벌을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뒤틀린 치아 치료 등을 위해 서울에 머물다 16일 필자와 만난 장 씨는 “최 씨의 진술로 엮여 들어왔고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고 검찰 1차 조사 때부터 줄곧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나마 당시 1차 조사 장면은 이례적으로 녹화되어 있었고 검찰 과거사위원회 조사에서 발견돼 이번 재심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 ‘옥중일기’와 신앙생활로 달랜 21년 ‘그 많은 일들이 마치 남의 이야기였으면, 아니 꿈이었으면 합니다’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그날의 일들을 도무지 잊을 수 없어 이렇게 적습니다’…. 최 씨는 수감 중 자신의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경찰에 연행된 뒤 고문을 당할 때 상황을 자세히 기록했다. 처음에는 영치금 영수증과 편지지 조각 등 어떤 종이라도 있으면 적어 두었다가 후에는 성경을 필사하기 위해 재소자에게 지급되는 두꺼운 노트에 적었다. 출소할 때쯤에는 2권 분량이 됐다. 그는 “출소 후 결백을 입증하고, 고문 경찰에 대한 복수의 마음도 새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재소자 교화로 널리 알려진 박삼중 스님에게 편지를 쓰며 마음을 달랬다고 했다. 그는 “스님이 찾아와 ‘잠시 쉬었다 나간다고 생각하라’고 말했지만 잠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출소 직후엔 자신을 고문했던 경찰을 찾아 복수라도 하고 살인자 소리를 듣자는 울분도 있었지만 지금은 불교에서 가르치는 팔고(八苦)의 하나인 ‘원증회고(怨憎會苦)’를 새기며 산다고 했다. 인생에는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서 함께 살 수밖에 없는 고통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최 씨는 “당시 4명의 경찰 중 3명은 퇴직하고 한 명은 현직인데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사과 없이는 용서 없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재심 불씨 된 어머니의 ‘분홍색 보자기’ 유품 장 씨가 출소해 동생을 찾아가자 이미 10년 전에 작고한 어머니의 유품이라며 ‘분홍색 보자기’ 하나를 건넸다. 어림잡아 2000장 이상 되는 경찰, 검찰 조사 및 재판 관련 기록 복사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법인 부산’ 소속 변호사로 장 씨와 최 씨 항소심과 상고심을 맡다 무기징역 선고로 사건이 종결되자 의뢰인에게 남긴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30여 년 변호사 생활에서 가장 한이 남는 사건이라고 했다. 장 씨의 어머니가 남긴 ‘분홍색 보자기’는 재심 청구의 불씨가 됐다. 장 씨는 출소 후 자신을 공범으로 지목한 최 씨를 수소문해 찾아가 “억울한 세월을 어찌 할 거냐”며 주먹질을 했고 덩치가 더 큰 최 씨는 그대로 맞기만 했다. 최 씨는 “맞아야지 어떡하느냐”며 자신도 고문 때문에 진술한 것이지만 장 씨가 억울해도 더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힘을 합쳐 억울함을 벗자고 뜻을 모았다. 두 사람은 법률구조공단과 국가인권위 지역사무소를 찾아갔지만 “재판이 끝나 도울 게 없다” “증거가 있으면 재심을 신청하라”는 말만 듣고 실망하던 중 2016년 ‘재심 전문 무료 변론’을 하던 박준영 변호사를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박 변호사는 두 사람이 사하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기 두 달 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다른 강도사건 피의자에게도 가혹행위가 있었으며 그 피의자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을 찾아냈다. 이 사건의 피의자 홍모 씨가 당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가혹행위 내용들이 최 씨와 장 씨가 당했다는 가혹행위 내용과 일치해 재심 결정의 주요 근거가 됐다고 재판부는 명시했다. ○ 시각장애 있는데 야밤에 범행?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자술서에는 소아마비를 앓아온 윤 씨가 열린 대문을 두고 ‘담장을 넘어 들어가 범행했다’는 구절이 ‘엉터리 조작’ 사례의 하나로 지목됐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조서에도 의혹이 적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시신경 위축’을 앓은 1급 시각장애인인 장 씨가 가로등도 없고 달도 뜨지 않은 칠흑 같은 밤에 길에서 대상을 물색하며 기다리다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경찰 조서는 장 씨가 35세 피해자 남성과 몸싸움을 벌이고 테이프로 묶어 물에 빠뜨렸다가 10분간 물에서 격투도 벌였다고 했다. 장 씨는 시력이 나빠 초등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고 군은 면제됐다. 안경이나 렌즈로도 교정이 불가능하다. 그는 3시간 넘게 인터뷰를 할 때 기자의 메모를 전혀 읽지 못했다. 휴대전화는 숫자판에 감촉이 있는 폴더폰에 시각장애인용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아 음성 인식 도움을 받아 사용했다. 경찰 조서에 따르면 장 씨와 몸싸움을 벌이다 물에 빠진 35세 남성, 즉 엄궁동 사건 현장의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남성 A 씨는 사건이 난 뒤 인근 공장에 숨어 있다 공장 직원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갔고 의사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간파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엄궁동 살인사건 발생을 경찰에 신고한 이는 A 씨가 아니라 A 씨를 담당한 의사였던 것이다. A 씨는 사건 발생 2년 후 지병으로 사망했다.화성 8차 사건의 윤 씨와 엄궁동 사건 재심 재판 결과 모두 빠르면 올해 나온다. 법원의 재심 결정문으로만 봐도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 앞장서 유린했거나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징비록(懲毖錄)으로 남길 부끄러운 사건이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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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이잉원과 ‘중국風’[횡설수설/구자룡]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양안 교류’를 내건 야권 후보에게 20년 텃밭 가오슝(高雄) 시장을 내주며 참패하자 선거 당일 당 주석에서 물러났다. 불과 2년 전 당선될 때 ‘당나라 측천무후 이후 첫 중화권 여성 최고지도자’라는 말까지 들었으나 냉혹한 심판을 받은 것이다. 2020년 총통 선거 출마도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그제 선거에서 차이 총통은 압도적 표 차로 재선됐다. 두 차례 총통 당선과 지방선거 패배 모두 가장 큰 변수는 ‘중국풍(風)’이었다. ▷차이 총통의 탈원전 등 이념을 앞세운 정책, 중국의 여행 제한 및 수입금지 보복 등으로 대만 경제는 지난해 성장률이 2%대로 떨어져 ‘저혈압 경제’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해 초반 총통 지지율은 역대 최저로 추락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역대 총통 선거 사상 최다 득표에 20%포인트에 가까운 큰 차이로 당선된 것은 ‘홍콩의 눈물’이 빚어낸 ‘공감 홍콩, 반감 중국’의 정서가 일등공신이다. 지난해 홍콩 시위에서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민낯을 본 대만 민심이 친중파 야당 후보에게 등을 돌렸다. ▷대만의 ‘반(反)중국’ 정서는 중국이 자초했다. 2008년 선거 당시 중국과 교류를 원했던 유권자들은 친중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동남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몰려왔다. 그러나 양안 간 3통(通·통상 통항 통우·서신왕래)이 실현되는 등 밀월기 8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중국 경제에 예속되고 빈부 격차가 커졌다. 2016년 총통 선거 직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마 총통과 만나 국민당 후보를 간접 지원했지만 차이 총통 당선을 막지 못했다. 1996년 첫 총통 선거 때는 독립을 주장한 리덩후이(李登輝) 후보를 압박하기 위해 가오슝 앞바다에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역효과만 났다. ▷대만인들 의식 속의 ‘탈(脫)중국화’도 분명해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각각 ‘대만인’과 ‘중국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015년 59.5%와 3.3%에서 2019년에는 83.1%와 1.1%로 바뀌었다. 고등학생 중 ‘중국인’ 응답은 0.8%에 불과했다. 이번 선거에는 외국에 나가 있던 대학생들이 대거 귀국해 ‘앵그리 영맨’의 표심을 보여줬다. 홍콩인의 ‘중국인’ 응답도 2.7%에 불과하다. 55개 소수민족을 용광로에 녹이는 중국이 자치와 민주주의 가치를 외면하고 강권으로 제압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게 할 뿐임을 홍콩 시위와 대만 총통 선거가 웅변하고 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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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야 산다는 충고 듣지 않으면 보수는 희망이 없다”[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붓을 던지고 창을 들어야 할 때다.” 지난해 12월 23일 보수 진영 단결을 위한 명분을 내걸고 출범한 국민통합연대의 공동대표 5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이문열 작가가 던진 화두다. 이 작가가 과거 야당의 공천심사위원을 맡거나 지난해 하반기 보수 단체 집회에 몇 차례 참가하기는 했지만 정치 단체에 공식 직함을 맡은 것은 처음이고 발언 수위도 이례적이다. 그의 사재로 세운 경기 이천의 ‘부악문원(負岳文院)’을 지난주 찾았다. 부악문원은 아이를 업은 모습을 닮았다는 부아악산(負兒岳山) 자락에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20년 넘게 문학 강좌나 문인들의 창작 집필실로도 활용되는 곳이다. 》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데 문필을 대표하는 분이 ‘붓을 던지고 창을 들라’고 했다. “국운이 기울 때 조선 고종이 안동 지역 지사들에게 내탕금을 보내면서 선비들에게 했던 말을 인용했다. 글의 힘만으로는 안 통하는 사회가 됐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말이다. 한가하게 글만 쓰고 구경꾼으로 훈수로 그치지 않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다소 격앙된 표현이라는 생각도 든다.” ―‘절박한 심정’은 무슨 뜻인지. “예전에도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었으나 그렇다고 글을 못 쓴 적은 없다. 그런데 지난 1년간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쓰다가도 써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다. 그런 심정에서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국민통합연대에는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김진홍 목사, 최병국 전 의원, 권영빈 전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이 작가 등 5명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원로자문단으로 참가하는 등 보수 인사 500여 명이 참여했다. ―통합연대 출범식에서 이재오 전 의원이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은 한국당이나 황교안 대표에게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 ‘통합연대가 오히려 보수 분열 작용을 할 수도 있는데 이 작가가 멋모르고 참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외에 있다가 직접 뛰어들어 대표가 되고 무슨 선언의 주인공이 되는 주동적인 역할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신중을 다했다. 보수 진영 통합이 절실한 만큼 그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섯 번, 여섯 번 확인하고 결정했다.” ―통합연대가 출범한 뒤 한국당과의 접촉 등 별다른 진전된 움직임은 없는 것 같다. “황교안 대표가 단식 후유증과 피로로 다시 입원했을 때 공동대표단이 문병을 가려고 접촉했는데 방문하려는 날 퇴원해서 이뤄지지 못했다. 통합연대가 뜻을 이루려면 한국당과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 통합연대를 공천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무슨 자리를 만들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한국당과 무슨 ‘통합공천연대’ 같은 것을 만들자고 하면 ‘콧등 까이기(심하게 비판받는다는 의미) 좋을 것’이다. 통합연대 참여 인사들은 ‘선거 안 나간다. 무슨 당도 만들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언해서 의심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6월 황 대표가 부악문원에 찾아왔을 때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정책을 호되게 비판하는 등 대화가 냉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블랙리스트는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황 대표에 대해서는 어떤 불신이나 비호감을 드러낸 적 없다. 지금도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 1시간 넘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그 부분만 부각됐다.” ―‘창을 들 때’ 발언은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촛불 민심이 높아지고 있을 무렵 한 언론에 ‘보수가 죽어야 한다’고 한 기고 이후 가장 격렬한 표현이다. “당시 ‘진박(眞朴)’계는 자신들을 겨냥한다고 여겼다. 보수 진영으로부터 그때만큼 무시를 당한 적이 없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안 지고 있다. 죽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것이다. 지금도 누구 한 명 백의종군하면서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겠다는 사람이 없다. 잘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면 이 나라는 사람이 없는 나라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주로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세상에 쓴소리를 해 온 이 작가는 지난해 10월 3일 100만 명이 모인 광화문 집회에 얼굴을 비쳤다. 세 번째 광화문 주말 집회 때는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도의 모임에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그는 “조국 전 장관을 구한다며 공지영 이외수 황석영 등의 말이 잇따라 나온 뒤 ‘우파 작가들은 어디 갔냐’고 할까 봐 올라가서 한마디했다”고 했다. 이 작가는 5년 선배인 황석영 씨와 개인적으로는 친한 사이다. ―2004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아 ‘이문열이 정치를 하나?’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번 통합연대 참가 권유도 그렇지만, 집안의 가까운 친척이자 고향 선배인 재오 형(이재오 전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유증으로 ‘100석도 못 건지게 생겼다’며 와달라고 해서 갔다. 선거가 끝난 후 다시 저술 활동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후에 내 이력에 그 많은 소설은 한 편도 거론하지 않아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은 꼭 들어갔다. 나를 강렬하게 낙인찍는 데 사용될 줄 몰랐다.” ―지난해 신동아에 연재하던 ‘둔주곡(遁走曲) 80년대’를 쓸 때는 신장암 투병으로 절박한 마음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 “2년여 전 신장 한쪽의 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다른 부위로 전이는 없었다. 4년 6개월 만에 신장암은 끝났다고 최근 병원에서 얘기해줬다.” ―이문열은 필명이고, 부친이 이름에 열(烈)자를 붙여준 계기가 있다고 하는데…. “모친이 임신했을 때 좌익 활동을 하는 부친을 도와 전단지를 돌리다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갔다. 부친이 ‘배 속에서부터 치열하게 싸우는 투사’라며 이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좌익 투사 이름을 타고난 내가 ‘보수 우파 꼴통’ 소리를 듣는 상황이다.” ―필명 ‘문열(文烈)’은 어떤 계기로 쓴 것인가. “사법시험 준비한다고 절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만난 역술인이 ‘사법시험은 안 되니 그만두라’고 잘라 말하더라. 그러더니 ‘열(烈)’자는 황제나 왕의 시호에나 쓰는 거라 기세를 눌러주는 글자를 보태라고 했다. 이등렬(李等烈) 이여열(李與烈) 등을 얘기했다. 내가 앞으로 글을 쓸 생각이니 문(文)자를 넣겠다고 했다. 지금도 신분증 이름은 ‘이열’이다.” ―부친의 월북 그리고 남쪽에 남은 모친과 5남매 등 가족이 ‘빨갱이 집안’이라며 쫓겨서 옮겨 다니며 산 이야기는 ‘영웅시대’ 등 여러 작품에 투영됐다. “부친(이원철)은 6·25 때 월북 후 박헌영과 연관돼서 사실상 숙청됐다. 원산의 대학에서 자리를 얻었다는 것은 헛소문이다. 아오지 탄광이 있는 회령의 협동농장에서 평농장원으로 30년 넘게 살았는데 탈북자들 말을 들으면 아오지 탄광 광원과 농장원이 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 작가는 대구 매일신문 기자이던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이 당선돼 등단했다. 발표한 작품은 장편 30편, 중단편은 60편이 넘는다.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변경’ ‘젊은 날의 초상’ ‘황제를 위하여’ ‘영웅시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쏟아냈다. ‘평역 삼국지’는 2000만 권 넘게 팔렸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그이지만 독자들로부터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초조감도 솔직히 털어놨다. ‘천하의 이문열도 이런 걱정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 어디에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기간을 ‘생존 기간’으로 친다. 그가 잊혀진 날이 죽은 날이다. 내가 살아 있는 채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 작가가 인터뷰 말미에 ‘달아난 악령’ ‘사로잡힌 악령’ 등 요즘 미투 운동과도 관련 있는 자신의 ‘악령 시리즈’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는 생기가 넘쳤다. 정치 활동이나 분열된 사회에 대해 얘기할 때의 침울함과는 대조적이었다. ‘문원(文院)’이라는 문패에 걸맞게 문학과 삶, 세계 등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천=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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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 온난화의 역습[횡설수설/구자룡]

    겨울철 강원도 앞바다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명태잡이가 한창이었지만 지금은 명태는 자취를 감추고 제주가 주산지인 방어가 풍어를 이룬다. 방어가 붉은대게, 오징어와 함께 동해안의 3대 수산물이 될 정도다. 채널A 예능 프로 ‘도시어부’의 강태공들도 최근 독도 인근에서 ‘방어 사촌’ 부시리를 잡아 올렸다. 지난 100년간 평균 기온 1.5도가 올랐다는 한반도의 아열대화가 가속화하면서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계절을 헷갈리고 삶의 터전을 옮기고 있다. 여수 오동도의 명물 동백꽃이 서울에서 핀 지는 10년이 훨씬 넘었다. ▷최근 영국 BBC방송은 북극에서 물범을 잡아 주식으로 하는 북극곰이 캐나다 북동부 허드슨만에 나타나 해수면 위로 나온 흰고래 벨루가의 등을 덮쳐 사냥하는 장면을 방영해 충격을 줬다. ‘남극 빙하의 버팀목’인 빙붕(氷棚)은 기후 온난화로 더욱 심해진 엘니뇨(적도 부근 해수 온도 상승)로 녹아서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1978년 이후 북극 해빙(海氷)이 10년마다 13%씩 줄어 21세기 중반에 모두 없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극지방 빙하 감소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를 맞는 섬나라가 44개국에 이른다.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난민’은 1998년 전쟁 난민을 넘었고 2050년에는 1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영화 ‘겨울왕국 2’의 배경인 노르웨이의 서부 순달쇠라 마을 최고기온이 2일 19도로 1월 기온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예년 이 지역 1월 평균기온보다 25도 높은 것이다. 지난해 말 이후 서울 면적의 80배 이상을 태우고 있는 호주 최악의 산불도, 낮 최고기온이 40도까지 오른 폭염이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유럽은 기후변화 재앙 예고에 가장 민첩하게 반응하고 있다. 의석이 전혀 없던 오스트리아 녹색당이 지난해 총선에서 26석을 얻은 데 이어 1일 연정 파트너가 됐다. 연립정부는 204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영(0)으로 줄이는 ‘탄소 중립국’을 선언했다. 지난해 유럽의회와 스위스 등에서도 ‘녹색돌풍’이 불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2006년 저서 ‘불편한 진실’에서 “우리가 논박의 여지없이 인정해야 할 것이 세 가지 있다. 죽음, 세금 그리고 인류가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점이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해 세계 2위 탄소 배출국의 책임을 내팽개쳤다. 그 대가는 후손들이 지금보다 더 혹독하게 치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 20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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