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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문청(文靑)이던 대기업 부장,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꾸던 주부, 웹소설을 즐겨보는 고등학생….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웹소설에 뛰어들고 있다.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으로 성장하고, 인기를 얻은 작가는 연간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수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 본보는 이 시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문학·출판 담당 기자가 직접 웹소설 창작 강의를 12회에 걸쳐 들어봤다. 웹소설에 도전하는 이들과 작가 데뷔 과정 등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현직 작가와의 1 : 1 첨삭 수업을 거쳐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작가로 데뷔할 수 있습니다.” 6월 29일 웹소설 전문 학원 스토리튠즈의 웹소설 창작 강의 입문반 첫 수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이뤄진 강의에서 현직 웹소설 작가인 강사 샤이니크(필명)가 이렇게 말하자 채팅창엔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해야 장학생이 될 수 있냐” “정말 데뷔할 수 있냐” 등 희망에 가득 찬 물음이었다. 이날 수강생은 50여 명. 웹소설 작가의 수입이 웬만한 직장인보다 낫다는 말에 웹소설 강의가 성황을 이룬 것이다. 강사는 “강의를 열심히 듣고 꾸준히 쓰면 누구든 데뷔할 수 있다. 작가로 성공할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워드리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웹소설은 종이책, 전자책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에서 우선적으로 유통되는 소설을 의미한다. 주로 카카오, 네이버가 운영하는 대형 플랫폼을 통해 볼 수 있다. 독자가 100∼200원을 소액결제하면 읽는 데 5분 정도 걸리는 웹소설 1편을 볼 수 있다. 이날 강사는 “웹소설은 타깃 독자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웹소설은 독자의 성별에 따라 작품의 장르가 명확히 갈리기 때문.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주인공이 무술을 펼치는 무협 웹소설은 남성이 주로 읽는다. 반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현대·사극 로맨스 웹소설은 여성 독자가 타깃이다. 강사는 “주인공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소설 초반이나 제목에 드러나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누적 조회수 3000만 회를 넘기고 영상화가 추진 중인 유명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가 막내아들이 경영자가 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웹소설 ‘탑 매니지먼트’가 2018년 동명의 웹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흥행한 것도 초보 매니저가 성장해 나가는 서사를 명확히 드러낸 덕이다. 강사는 시간을 과거로 이동하는 ‘회귀’, 다른 존재에 영혼을 옮기는 ‘빙의’,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나는 ‘환생’ 등 웹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장치를 적절히 활용해 소설적 재미를 높이라고도 했다. 기초적인 글쓰기 실력만 있으면 웹소설 작가 데뷔 가능성은 순문학계보다 높다. 2시간 30분씩 4회가 진행된 입문반 강의만 듣고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승희 씨(36·여)는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전처럼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순문학계와 달리 웹소설 작가는 꾸준히 준비하면 데뷔가 가능한 것 같다”고 했다. 수강생은 연령도, 직업도 다양하다. 장두호 씨(18)는 “자격증이 없어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점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미성년자지만 글쓰기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마음에 도전했다”고 했다. 최진영 씨(31)는 “3년 전 순문학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수입이 사실상 없었다. 반면 웹소설 작가는 밥벌이가 가능하다”며 “시인으로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웹소설을 쓰며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대학 시절 문청이던 대기업 부장,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꾸던 주부, 웹소설을 즐겨보는 고등학생…. 일반인들이 웹소설에 뛰어들고 있다.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으로 성장하고, 유명 작가는 연 1억 원의 수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 본보는 웹소설 시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문학·출판 담당 기자가 직접 웹소설 창작 강의를 12차례 수강해봤다. 이곳엔 정말 대박의 기운이 서려 있을까. 웹소설에 도전하는 이들과 작가 데뷔 과정 등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현직 작가와의 1:1 첨삭 수업을 거쳐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작가로 데뷔할 수 있습니다.” 6월 29일 웹소설 전문 학원 스토리튠즈의 웹소설 창작 강의 입문반 첫 수업에서 현직 웹소설 작가인 강사 샤이니크(필명)가 이렇게 말하자 채팅창엔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해야 장학생이 될 수 있냐” “정말 데뷔할 수 있냐” 등 희망에 가득 찬 물음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된 강의였지만 이날 참석한 수강생은 50여 명에 달했다. 웹소설 작가의 수입이 웬만한 직장인보다 낫다는 말에 웹소설 강의가 바글거린 것. 강사는 “강의를 열심히 듣고 꾸준히 쓰면 누구든 데뷔할 수 있다. 작가로 성공할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워드리겠다”고 자신했다. 웹소설은 종이책, 전자책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에서 우선적으로 유통되는 소설을 의미한다. 주로 카카오, 네이버가 운영하는 대형 플랫폼을 통해 볼 수 있다. 독자가 100~200원을 소액결제하면 읽는데 5분 정도 걸리는 웹소설 1편을 볼 수 있다. 이날 강사는 “웹소설은 타깃 독자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웹소설은 독자의 성별에 따라 작품의 장르가 명확히 갈리기 때문.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주인공이 무술을 펼치는 무협 웹소설은 남성이 주로 읽는다. 반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현대·사극 로맨스 웹소설은 여성 독자가 타깃이다. 강사는 “주인공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소설 초반이나 제목에 드러나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누적 조회수 3000만 회를 넘기고 영상화가 추진 중인 유명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가 막내아들이 경영자가 되는 이야기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웹소설 ‘탑 매니지먼트’가 2018년 동명의 웹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흥행한 것도 초보 매니저가 성장해나가는 서사를 독자에게 명확히 드러낸 덕이다. 강사는 시간을 과거로 이동하는 ‘회귀’, 다른 존재에 영혼을 옮기는 ‘빙의’,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나는 ‘환생’ 등 웹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장치를 적절히 활용해 소설적 재미를 높이라고도 했다. 기초적인 글쓰기 실력만 있으면 웹소설 작가 데뷔 가능성은 순문학계보다 높다. 2시간 30분씩 4회가 진행된 입문반 강의만 듣고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승희 씨(36·여)는 “웹소설 강의가 창작 비법을 족집게처럼 짚어줘 빠른 데뷔에 도움이 됐다”며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전처럼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순문학계와 달리 웹소설 작가는 꾸준히 준비하면 데뷔가 가능한 것 같다”고 했다. 다양한 연령, 직업을 지닌 수강생도 몰려들고 있다. 수강생 장두호 씨(18)는 “자격증이 없어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점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미성년자지만 글쓰기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마음에 도전했다”고 했다. 수강생 최진영 씨(31)는 “3년 전 순문학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수입이 사실상 없었다. 반면 웹소설 작가는 밥벌이가 가능하다”며 “시인으로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웹소설을 쓰며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1930년 독일 바이에른주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를 찾은 포드 창립자 헨리 포드(1863∼1947)는 그리스도 최후의 날을 묘사하는 오버아머가우 수난극을 관람한다. 이 연극은 ‘그리스도의 살해자’인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나치의 프로파간다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다. 반유대주의자였던 포드는 이 연극에서 받은 감동과 기쁨을 표시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연기한 연극배우 안톤 랑에게 자동차를 한 대 선물하겠다며 뮌헨에 가서 그가 좋아하는 차를 고르도록 했다. 서정시 ‘기탄잘리’로 유명한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는 수난극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직접 영어로 ‘어린아이’라는 장시를 지었다. 나치 독일을 떠올리면 수용소와 인종청소, 히틀러의 끔찍한 만행 등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예술이 꽃피운 여행지, 관광지로서의 독일은 쉬이 상상하기 어렵다. 이 책은 히틀러의 만행이 본격화하기 전인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독일을 찾았던 학생, 정치인, 음악가, 외교관 등 여행자들의 기록을 모아 매력적이었던 당시 독일의 모습을 조명한다. 저자는 여행자들의 시선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을 다시 들여다봤다. 당시 독일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마르크화 가치가 폭락해 외국인 입장에서는 숙박비와 식비까지 저렴한 나라였다. 1930년대 독일을 찾는 미국인은 연간 50만 명에 육박했다. 유럽 여행이라는 모험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대다수 미국인은 정치적 문제들을 불청객 취급하며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영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라는 사실보다도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훨씬 큰 영향을 미쳤다. 나치 독일의 선전이 치밀하고 논리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책에 따르면 오히려 당시 나치의 선전은 영토에 대한 야욕과 전쟁에 대한 야망을 그다지 숨기지 않았다. 독일 밖의 언론들은 나치와 히틀러의 야욕을 경계하며 이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연일 실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독일이 그토록 많은 여행자에게 매력적인 땅으로 느껴졌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사람들은 실제보다는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나치 독일 비판 기사를 보더라도 사람들은 “신문이란 게 원래 별것 아닌 일도 대단한 사건처럼 떠들어댄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 같은 마음이 결과적으로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돈과 시간을 벌어다 줬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여행자들 가운데는 작가 사뮈엘 베케트,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생리학자이자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등 유명인사들도 포함돼 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조차 시대의 전체 모습을 조망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에 벌어지는 일의 진상을 파악하고, 나치 당국의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지 않으며, 더 나아가 유대인 대학살을 예견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같은 저자의 통찰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현재 무엇을 조망하지 못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설명한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가 하면, 아주 비극적인 내용”의 책이라고.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플랫폼 업체들의 과다 수수료 논란이 출판계로도 번지고 있다. 웹소설 수익의 상당수를 카카오와 네이버가 운영하는 웹소설 플랫폼이 가져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작가가 쓴 웹소설은 출판사를 거쳐 다듬어진 뒤 플랫폼을 통해 유통된다. 플랫폼은 전체 수익의 30%를 기본 수수료로 가져간다. 플랫폼들은 작품을 화면 상위에 노출하거나 수시 이벤트에 참가하는 대가로 기타 수수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각종 기타 수수료를 합치면 15%에 달해 플랫폼이 가져가는 총수수료는 최대 45%가 되기도 한다. 독자가 1회 대여요금이 200원인 웹소설을 한 편 결제할 경우 많으면 90원을 플랫폼이 가져가는 셈. 남은 110원은 작가와 출판사가 7 대 3에서 9 대 1까지 다양한 비율로 나눠 가진다. 통상 출판사에는 10∼40원, 작가에게는 70∼120원 정도가 돌아간다. 웹소설 플랫폼 수수료 과다 논란이 벌어진 건 카카오와 네이버가 이 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7, 8월 웹소설 이용 경험자 2008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9.9%가 카카오의 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를 주로 이용한다고 답했다. 31.1%는 네이버웹소설, 네이버시리즈 등 네이버의 웹소설 플랫폼을 이용했다. 카카오, 네이버 양대 업체가 웹소설 시장의 71%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출판사들이 소속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14일 ‘카카오와 네이버의 출판 생태계 파괴 행위 시정을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출협 관계자는 “카카오페이지는 독자들에게 웹소설을 공짜로 제공하는 ‘기다리면 무료’라는 마케팅을 펼친다. 이는 결국 출판사와 작가가 무료로 웹소설을 공급하게 만드는 셈”이라고 했다. 플랫폼은 일부 작가에게 1000만∼2000만 원의 선인세를 주고 총수수료를 최대 45%로 높이기도 한다. 웹소설이 많이 팔릴수록 플랫폼의 수익이 커지는 구조다. 웹툰화, 영상화 등 2차 저작권 활용은 해당 플랫폼을 통해 해야 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들어가기도 한다. 작가에게 불리한 조건이지만 유명 작가도 시장을 장악한 플랫폼에서 배제될까 우려해 이를 받아들인다. 물론 플랫폼 업체가 마니아에 치중됐던 웹소설을 대중에게 확대함으로써 시장 자체를 키우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2013년 100억 원에 불과했던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될 만큼 껑충 뛴 것은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인 플랫폼의 공이라는 것. 한 소규모 웹소설 플랫폼 관계자는 “시장 확대 없이 골목상권을 침해한 카카오모빌리티와 달리 웹소설은 플랫폼의 합류로 시장이 커진 점이 차이”라고 했다. 한 웹소설 작가는 “작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세가 10%에 불과한 기존 종이 출판계보다 웹소설의 상황은 오히려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웹소설 창작 전공 교수는 “양적으로 팽창한 웹소설 시장이 해외로 확장해 나가려면 먼저 작가 및 출판사와 수수료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플랫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웹소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인 파란미디어의 이문영 편집주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를 통해 인세 논란에 대응한 것처럼 웹소설 시장에 맞는 별도 표준계약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이호재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플랫폼 업체들의 과다 수수료 논란이 출판계로도 번지고 있다. 웹소설 수익의 상당수를 카카오와 네이버가 운영하는 웹소설 플랫폼이 가져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등 출판 관련 단체들은 웹소설 플랫폼이 출판사와 작가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떠넘긴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작가가 쓴 웹소설은 출판사를 거쳐 다듬어진 뒤 플랫폼을 통해 유통된다. 플랫폼은 전체 수익의 30%를 기본 수수료로 가져간다. 플랫폼들은 작품을 화면 상위에 노출하거나 수시 이벤트에 참가하는 대가로 기타 수수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각종 기타 수수료를 합치면 15%에 달해 플랫폼이 가져가는 총 수수료는 최대 45%가 되기도 한다. 독자가 1회당 대여요금이 200원인 웹소설을 한 편 결제할 경우 많으면 90원을 플랫폼이 가져가는 셈. 남은 110원은 작가와 출판사가 7대3에서 9대1까지 다양한 비율로 나눠가진다. 통상 출판사에는 10~40원, 작가에게는 70~100원 정도가 돌아간다. 웹소설 플랫폼 수수료 과다 논란이 벌어진 건 카카오와 네이버가 이 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7, 8월 웹소설 이용 경험자 2008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9.9%가 카카오의 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를 주로 이용한다고 답했다. 31.1%는 네이버웹소설, 네이버시리즈 등 네이버의 웹소설 플랫폼을 이용한다고 답했다. 카카오, 네이버 양대 업체가 웹소설 시장의 71%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비판에 앞장서는 건 웹소설 출판사들이 소속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다. 출협은 14일 ‘카카오와 네이버의 출판 생태계 파괴행위 시정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출협 관계자는 “카카오페이지는 독자들에게 웹소설을 공짜로 제공하는 ‘기다리면 무료’라는 마케팅을 펼친다. 이는 결국 출판사와 작가가 무료로 웹소설을 공급하게 만드는 셈”이라며 “플랫폼 노출 빈도로 작품 판매량이 결정되는 웹소설의 유통 구조 상 플랫폼이 원하는 대로 계약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물론 플랫폼 업체가 그동안 마니아에 치중됐던 웹소설을 대중에 확대함으로써 시장 자체를 키우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2013년 100억 원에 불과했던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될 만큼 껑충 뛴 것은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인 플랫폼의 공이라는 것. 한 소규모 웹소설 플랫폼 관계자는 “시장 확대 없이 골목상권을 침해한 카카오모빌리티 등과 달리 웹소설은 플랫폼의 합류로 시장이 커진 점이 차이”라고 했다. 한 웹소설 작가는 “작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세가 10%에 불과한 기존 종이 출판계보단 웹소설의 상황은 오히려 나은 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웹소설 플랫폼이 독과점이나 불공정 논란을 걷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때라고 조언했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웹소설 창작 전공 교수는 “양적으로 팽창한 웹소설 시장이 해외 등으로 확장해 나가려면 먼저 작가 및 출판사와 수수료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플랫폼의 상생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웹소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인 파란미디어의 이문영 편집주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를 통해 인세 논란에 대응한 것처럼 웹소설 업계도 웹소설 시장에 맞는 별도 표준계약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배우 이정재 주연의 국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사진)이 미국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로는 2위. 국내 드라마가 미국 넷플릭스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처음이다. 22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게임’은 전날까지 1위였던 영국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를 누르고 이날 1위로 올라섰다. 지금까지 국내 넷플릭스 드라마가 미국 넷플릭스에서 기록한 최고 순위는 지난해 12월 ‘스위트홈’이 달성한 3위였다. 올 7월 공개된 ‘킹덤: 아신전’은 미국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9위에 올랐다. ‘오징어게임’은 한국, 미국을 비롯해 태국, 대만,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14개국에서 1위를 휩쓸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39개국에서는 2위에 올랐다. 드라마는 1970, 80년대 어린이들이 골목길에서 자주 하던 오징어게임에서 제목을 따왔다.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 456명이 우승자 1명에게 돌아가는 상금 456억 원을 놓고 목숨을 건 게임을 벌이는 내용이다. 영화 ‘도가니’와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을 제작한 황동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게임 참가자들은 실직 후 사채를 쓰고 도박에 손대거나, 고객 돈으로 투자를 벌이다 빚더미에 앉는 등 벼랑 끝에 몰린 인물들. 드라마는 극한의 경쟁으로 내모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묘사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넷플릭스가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최우수상을 처음 수상했다. 19일(현지 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73회 에미상에서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이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에 선정됐다. ‘더 크라운’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2세를 주인공으로 1980년대 영국 왕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더 크라운’은 드라마 시리즈 남녀 주연상도 휩쓸었다. 여성 체스 천재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갬빗’은 ‘최우수 미니시리즈’로 뽑혔다. 앞서 넷플릭스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30여 개 작품을 각 부문 최우수상 후보에 올렸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넷플릭스는 이날 작품상과 연기상을 포함해 총 44개 상을 차지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동서양의 대표 영웅전인 ‘삼국지’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자국어로 완역한 세계 최초의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고 나니 어언 80세 가까이가 됐군요.”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79·사진)는 “수십 년간 가슴에 품은 꿈을 이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해 2월 ‘삼국지’(집문당)에 이어 이달 1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을유문화사)을 완역 출간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이자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서기 46∼120)는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한니발 등 역사 인물 52명의 기록을 영웅전에 담았다. 정치학자인 신 전 교수가 고전 번역에 몰두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6일 동아일보 인터뷰 룸에서 그를 만났다. “6·25전쟁 직후 너무 가난해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서울 을지로 구멍가게에서 일했습니다. 고드름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던 그 시절, 두 작품 속 영웅들이 제 꿈과 희망을 지켜줬죠.” 그는 오래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처음 읽은 때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열아홉 살이던 1961년 처음 읽고 그때부터 완역의 꿈을 가졌다”고 말했다. 정치학자가 된 이후에는 틈틈이 13종의 영웅전 판본을 수집해 비교했다. 2007년 번역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교수직 정년퇴직까지 5년간 학교에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집에선 삼국지를 번역했다. 미국 하버드대 출판사 영역본과 대만 상무인서국 출판사 출간본을 각각 원문으로 삼았다.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고 출판사를 찾는 데도 수년이 걸렸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그간 국내에 다양한 번역본이 나왔지만 이번 신간에는 기존 번역본에 포함되지 않은 한니발전과 스키피오전 등 7편을 추가했다. 고전 연구자들이 정본으로 간주하는 프랑스 자크 아미요 주교(1513∼1593) 판본에 나오는 분절 번호도 반영했다. 그는 “성경을 몇 장 몇 절이 아닌 페이지로 인용하지 않는 것처럼 영웅전 같은 고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번역본 중에는 분절 번호가 달린 게 없어 연구자들이 특정 문장을 인용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와 투키디데스(기원전 460∼400)를 포함한 여러 그리스 역사가들 중에서도 플루타르코스의 역사관에 가장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는 다른 역사가들과 달리 영웅을 신격화하지 않고 인간의 곁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한 인물이다. 그는 영웅이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도, 땅에서 솟은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역사가 부르는 순간에 옳은 행동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평범한 사람들도 영웅들의 이야기를 접하고서 그들을 닮겠다는 용기를 낼 수 있다. “플루타르코스가 원래 붙인 책 제목은 ‘영웅전’이 아닌 ‘고결한 삶을 산 사람들(Noble Grecians and Romans)의 생애’입니다. 이들이 보인 충절, 우국심, 신의를 통해 지금을 사는 독자들도 고결한 삶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흔히들 결혼을 모험이라고 하잖아요. 현대인들이 모험에 뛰어들기에 앞서 가입하는 게 보험이고요. ‘결혼보험’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런 발상에서 출발했습니다.”(윤고은) 작품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주목받는 소설가 윤고은(41)이 ‘안심 결혼보험 약관집’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다룬 장편소설 ‘도서관 런웨이’(현대문학)를 최근 펴냈다. 그는 전작 ‘밤의 여행자들’(2013년)에선 재난 여행 프로그램을, ‘1인용 식탁’(2010년)에선 혼자 식사하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을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신작에서 윤고은은 영원한 사랑의 서약으로 여겨지는 결혼을 소비상품의 잣대 위에 올려놓고 현대사회에서 결혼이 갖는 의미를 재해석했다. 신작 해설은 2017년 평론으로 등단한 소설가 염승숙(39)이 썼다. 두 사람은 동국대 문예창작과 선후배로 소문난 절친이다. 이들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필 과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염승숙은 “해설을 써달라는 말에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윤 선배가 진지하게 부탁해 즐거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고은이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을 지켜봐 온 염승숙은 ‘뜻깊은 해설을 써 줄 평론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해설 제의를 받고 나선 평소 애정을 담아 해설을 써 내려갔다. 윤고은은 “학교 후배, 동료 소설가여서가 아니라 평론가로서 염승숙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고민 없이 그를 선택했다”고 했다. 윤고은의 작품들을 염승숙이 줄줄이 꿰고 있는 덕에 해설은 깊이 있고 짜임새 있게 쓰일 수 있었다. 염승숙은 “첫 장편 ‘무중력 증후군’에서부터 드러났던 재기발랄한 화술과 색다른 상상력이 윤고은의 매력”이라며 “곳곳에서 나오는 윤고은만의 서사는 그가 열정을 다해 심어 놓은 표식과도 같다”고 썼다. 염승숙은 “윤고은이라는 작가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문제의식, 이를테면 인간 존재의 가난함이나 인생의 부조리 같은 것들이 이번 소설에도 툭툭 튀어나왔다. 그걸 잘 포착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윤고은은 올 7월 ‘밤의 여행자들’로 영국추리작가협회(CWA)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을 아시아 최초로 수상했다. 등장인물들이 멀리 떨어진 재난을 찾아가는 내용의 작품이 팬데믹 와중에 수상한 게 작가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윤고은은 “지금은 반대로 주문하지 않은 재난이 배달된 상황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밤의 여행자들’에 쓴 재난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현재 정말로 추리해내고 싶은 주제일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문법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소설을 쓸 생각이라고 했다. 장르는 출발점일 뿐 어디로 뻗어 나가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얼마든지 다른 장르로 흐를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장르를 가로지르는 작품들, 그래서 서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어느 분야에 책을 비치해야 할지 고민하는 책들이 궁금해요. 궁극적으로는 모든 작가가 각자 하나의 장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윤고은)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당신이 속도를 계속 높이고 있는 열차 위에서 평생 살았다고 가정해 보자. 갑자기 열차에 제동이 걸리는 걸 느낀다. 열차는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지만 예전처럼 무서운 속도로 달리지는 않는다. 당신은 “열차가 다시 속도를 낼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이 책은 이 같은 기대감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느려진 열차가 훨씬 안전하고 편안할 것”이라고 다독인다. 저자는 세계의 인구, 경제, 기술 등 사회를 구성하는 전반적인 요소들의 성장속도가 더뎌졌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 인구학자들은 세계 인구가 매년 최소 2%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 정도 증가율은 전쟁이 일어났거나 천재지변이 있었던 곳에서나 드물게 발견될 뿐이다. 일본의 경우 연간 인구증가율이 1950년 2%에서 1958년 1%, 1986년 0.5%로 점차 줄다가 2012년부터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2010년 말 미국 주택시장은 회복되는 듯했지만 2011년 붕괴됐다. 2012년과 2013년 미국 주택경기가 소폭 회복됐지만 다시 무너졌다. 2018년 3분기 미국 주택시장 대출액은 9조 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이는 2008년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2019년부터 미국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중개업자들은 향후 집값 폭락에 대비하고 있다. 산업기술 분야의 발전만큼은 눈부시다는 생각도 착각이다. 테크 기업들은 스마트폰이 접히고 노트북이 얇아지며 세탁기 위 건조기가 합체된 것을 엄청난 혁신인 양 발표하지만 이는 전화기, 컴퓨터, 세탁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에 비하면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저자는 모든 분야에서 성장을 멈춘 세계에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거라고 주장하는 걸까. 사실은 그 반대다. 지난 100여 년간 세계에서 벌어진 폭발적 성장은 인류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인류는 수천 년간 아주 느리게 살아왔고, 수백 년에 걸쳐 비슷한 삶의 방식을 지속했다. 느려진 열차는 디스토피아가 아닌 오히려 ‘정상 상태’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인구 증가 속도가 느려지면 빈부 격차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많은 인구를 기반으로 한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지 못하면 독과점 대기업들이 경제를 좌우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에 밀린 낙오자들은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는 효율성 우선의 논리도 폐기될 것이다. 또 자그마한 변화를 혁신이라 주장하는 제품 대신 더 오래 쓸 수 있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며 폐기물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면 소비 수준의 향상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속도가 느려져 부모와 자식 세대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게 나쁘기만 할까. 가족이나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라면 이는 분명 축복일 것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해당 직무 경험이 없는 관리자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못하고 직원을 애먹이는 경우가 있어요.”(팟캐스트 활동명 이 과장·39) “이 과장이 한번 부장 돼 봐….”(〃 김 부장·48) ‘김 부장’이 ‘이 과장’에게 던진 한마디에 팟캐스트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언슬조) 출연자들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이 과장이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랫사람한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상사가 더 믿음직하다”고 하자 김 부장도 “맞다. 관리자도 새로 맡은 직무라 모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 일이 더 잘 풀리더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이 부장에게 어떻게 이런 ‘직언’을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이들은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 2018년 2월부터 언슬조를 진행하고 있는 김 부장과 이 과장(본명 미공개), 박 사원(본명 박주현·31), 박 PD(본명 박성미·42)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나이와 직업, 직급이 모두 다른 이들은 2016년 독서모임에서 만나 서로의 고충을 나누다 친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자는 뜻이 팟캐스트로 이어졌다. “직장 상사의 갑질에 아주 힘들어하던 청취자가 ‘수렁에 빠진 신입사원에게 한 줄기 희망과 같은 방송’이라는 반응을 남긴 적이 있어요. 그런 소감을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껴요.”(박 PD) 3년 반을 넘긴 팟캐스트는 어느새 164회를 맞았다. 이쯤 되면 직장인으로서 맞닥뜨리는 거의 모든 문제를 다뤘을 법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작자나 청취자의 고민이 계속 바뀐다고 한다. 여성 시니어 직장인의 경우 팟캐스트 초창기에는 남성 위주 사회에서 소수자로 사는 데서 오는 고민이 컸다면 요즘 고민은 ‘80년대생이 온다’가 주류다. 김 부장은 “여성 관리자로 살며 남성 동료들보다 늘 위기감이 컸는데 이제 80년대생 부장이나 임원이 생기니 위기감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신세대 간부들에게 밀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는 얘기다. 젊은 여성 직장인들의 고민도 바뀌었다. 박 사원은 “또래 20대 후반, 30대 초반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 대신 비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쉽게 선택하지는 못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중간 관리자인 이 과장은 “요즘 신입사원들은 텍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 그런지 보고서에 구어체가 마구 등장해 당황스럽다.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니 지적하지 말자고 생각하다가도 ‘이러다 보고서를 틱톡 영상으로 받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들은 언슬조가 답을 가진 곳이 아니라, 답을 함께 고민하는 플랫폼이라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한 청취자의 고민을 다른 청취자가 해결해 줄 때 보람을 느낀다. 이들은 팟캐스트에 이어 1일 자기계발서 ‘회사에서 나만 그래?’(콜라주)를 펴냈다. 책은 여성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할 만한 26가지 문제에 대해 나름의 답안을 제시했다. 24일 오후 7시에는 독립서점 최인아책방에서 열리는 온라인 저자 북토크를 통해 독자들과 라이브로 만난다. 요새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 기존 주제가 조직 생활에만 쏠려 있었다면 앞으로는 조기 퇴사 이후 삶이나 싱글 직업인의 모습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조직을 이해하고 있는 방식대로 조직과 사회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젊은 직업인들을 조금 더 이해해 보려는 게 다음 목표입니다.”(박 PD)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021 서울국제도서전이 8일 서울 성동구 에스팩토리에서 열려 12일까지 진행된다. 올해로 27회를 맞는 도서전 주제는 ‘긋닛’(끊겼다가 이어졌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전시 규모는 줄었지만 책에 대한 사랑으로 열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전시는 서울국제도서전 역사를 조망하는 ‘긋닛’과 각국의 다양한 책 디자인을 선보이는 ‘BBDWK’, 웹툰과 웹소설 특별전 ‘파동’의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주최 측은 방역수칙에 따라 2개 전시장에서 동 시간대 관람 인원을 최대 300명으로 제한했다. 이날 도서전 주제 강연을 맡은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생태보호 필요성을 발표했다. 이어 9일 공연예술가 이자람, 10일 건축가 노은주, 11일 소설가 정세랑, 12일 영화배우 문소리가 강연에 나선다. 해외 작가들의 온라인 강연도 마련됐다. 8일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을 시작으로 9일 중국 작가 우샤오러(吳曉樂), 11일 독일 작가 유디트 샬란스키, 12일 미국 작가 에릭 와이너 순으로 진행된다. 온라인 강연은 유튜브 서울국제도서전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이번 도서전에서는 작가들과 각 분야 전문가 200여 명이 40여 회에 걸친 강연과 대담에 참여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해당 직무 경험이 없는 관리자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못하고 부하직원을 애먹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활동명 이 과장·39) “이 과장이 한번 부장 돼 봐….”(김 부장·48) ‘김 부장’이 ‘이 과장’에게 조용히 던진 한 마디에 일순간 멤버들의 박장대소가 터졌다. 이 과장이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랫사람한테 도와 달라, 같이 하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사가 더 믿음직하다”고 부연하자 김 부장도 이내 “맞다. 관리자도 새로 맡은 직무라 모를 수 있다는 게 공유되고 나면 일이 더 잘 풀리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이 어떻게 부장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들이 아니니 걱정 내려 놓으시라. 이들은 2018년 2월부터 팟캐스트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을 진행하고 있는 ‘언슬조’ 멤버들이다. 2016년 한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서로의 고충을 나누다 보니 나이도, 직급도, 고용 형태도 전부 다른 여성 직업인 6명이 모이게 됐다. 김 부장, 신 차장(활동명·40), 이 과장, 문 대리(활동명·35), 박 사원(박주현·31)이 팟캐스트 제작을 맡은 박 PD(박성미·42)의 지휘 아래 그렇게 모였다. 이들은 1일 자기계발서 ‘회사에서 나만 그래?’(콜라주)를 펴냈다. 여성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26가지 문제를 엄선해 현실적인 답을 담았다. 7일 김 부장과 이 과장, 박 사원, 박 PD를 줌 화상회의로 만났다. “직장 상사의 ‘갑질’에 아주 힘들어 하시던 청취자가 ‘수렁에 빠진 신입사원에게 한 줄기 희망과 같은 방송이다’라는 반응을 남겨주신 적이 있어요. 그런 소감을 전해주실 때마다 큰 보람을 느껴요.”(박 PD) 3년 반을 넘긴 팟캐스트는 어느새 164회를 맞았다. 이쯤 되면 직업인으로 살며 맞닥뜨리는 거의 모든 문제를 다뤘을 법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언니들’도, 청취자들도 고민이 계속해서 변한다고 한다. 과거 김 부장과 또래 청취자들은 남성 위주의 계급 사회에서 소수파로 살아가는 데서 오는 고민이 컸다면 지금 이들의 고민은 ‘80년대생이 온다’라고. 김 부장은 “여성 관리자로 살며 남성 동료들보다 늘 위기감이 컸는데, 이제 80년대생 부장, 임원이 슬슬 생기니 그 위기감이 훨씬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고민도 달라졌다. 박 사원은 “제 또래인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 대신 다른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만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쉽게 선택을 감행하지는 못하는 단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간관리자 급인 이 과장은 “신입 사원들은 텍스트보다 영상 매체가 익숙한 세대라 그런지 보고서를 보면 구어체가 마구 등장해 당황스럽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니 지적하지 말까’ 생각하다가도 ‘이러다 보고서를 틱톡으로 받게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며 웃었다. 이들은 ‘언슬조’가 답을 가진 곳이 아니라, 답을 함께 고민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청취자의 고민을 다른 청취자가 해결해 줄 때 보람이 크다고 한다. 이들은 24일 오후 7시 최인아 책방에서 열리는 온라인 저자 북토크를 통해 1년 여 만에 청취자들과 생방송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요새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신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기존의 논의가 조직생활에 쏠려 있었다면 이를 퇴사 이후의 삶, 싱글 직업인의 모습 등 전반적인 삶의 양태로 확장해보자는 것. “지금 젊은 세대들이 조직을 이해하고 있는 방식대로 조직과 사회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좀더 젊은 직업인들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게 저희의 다음 목표입니다.”(박PD)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지난주부터 새로운 부서로 출근하게 된 당신. 그곳에서 만난 상사에게 일주일 만에 질려 아침마다 출근길이 고통스럽다. 상사는 제멋대로 지시를 바꾸고는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듣냐”며 도리어 당신을 탓하기도 하고, “이걸 볼 때마다 지시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는 걸 상기하라”며 요상한 팔찌를 채우기도 한다. 대뜸 다가와 성적 매력을 뽐낸 적도 있다. 지시가 부당하게 느껴져 한번은 “이 팔찌를 차고 싶지 않다”고 저항해 봤지만 “내가 너에게 팔찌를 하고 싶은지 아닌지 물어봤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상사가 싫어서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 책의 저자라면 아마도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는 조언을 보낼 것이다. 질타가 아닌 응원과 지지의 의미에서다. 저자는 “소시오패스를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이라며 “25명 중 1명이 소시오패스”라는 경고를 보낸다. 책은 교묘하게 남을 조종해 주변 사람들의 정신건강과 심리를 파탄시키는 소시오패스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숙지해야 할 지침서다. 소시오패스는 ‘양심과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양심은 있는 나르시시스트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소시오패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시오패스를 ‘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가길 원하며 체포되거나 감옥에 가는 걸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도덕적으로 부정한 행위도 사람들에게 지적받지 않을 범위 내에서 저지른다. 많은 사람들이 소시오패스를 치명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자일 거라 생각하지만 오해다. 그런 폭력적인 소시오패스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우리의 삶을 가지고 잔인하게 심리적, 정치적 게임을 벌이는 위험한 거짓말쟁이나 심리 조종자일 가능성이 많다. 소시오패스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의 7가지 심리나 행동 중 그가 몇 개에 해당되는지 살펴보자. △타인을 조종하기 위한 조작 △기만 △타인의 문제에 냉담 △빈번한 적대 △의무 및 약속에 대한 무책임 △충동적 행동 △불필요한 위험 감수. 이 중 3개 이상에 해당되는 경우라면 그를 소시오패스로 규정하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야 한다. 누군가가 소시오패스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책은 ‘도망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천성 자체가 다른 소시오패스를 변화시킬 묘안 따위는 일반적인 수준의 양심과 공감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 상사나 가족처럼 관계를 끊어버릴 수 없는 사람이 소시오패스인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는 우리의 목적이 소시오패스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표면에 드러난 목표 이외에 또 다른 자신만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 가령 소시오패스 직장 상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하나의 서류가 있다면 그가 고약하게 굴 경우를 대비해 두세 개의 선택지를 만들어두는 식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그와의 싸움은 전투에서 패배해야 승리하는 전쟁과 같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소시오패스한테는 도망치거나 져 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는 소시오패스에게 단 하나의 가치를 마지막까지 내어주지 않는 방식으로 그를 낙담시키고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의 존엄이다. 누군가의 교묘하고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스스로의 판단능력과 인격을 의심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 책을 통해 훼손된 영혼을 치유하는 건 어떨까.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013년 말, 미대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최지영 씨(30)는 졸업 전시를 앞두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최 씨와 그의 동기들이 공들여 그린 회화 작품들을 드디어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는 날이기 때문. 하지만 전시 당일 최 씨의 기대감은 무너지고 말았다. 길게는 반년씩 걸려 그린 작품들을 관객들이 감상하는 시간은 3초 남짓. 졸업 후 2014년 타 대학 미대생들과 단체전을 열었을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최 씨는 3∼6개월씩 걸리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한 작업물이 많아 더욱 깊이 낙담했다. 고급 갤러리를 찾는 이들은 그림을 보다 촘촘히 뜯어보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 보였다. 시간과 돈을 써 가며 미술을 즐기는 계층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던 것. 왜 미술을 배웠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으로 학벌이나 계층, 나이, 인종 간 경계를 허물겠다’는 오랜 계획이 떠올랐을 때 그는 붓을 내려놓고 세계 애니메이션의 중심지인 미국 캘리포니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2015년 유학길에 오른 최 씨는 올 7월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사인 드림웍스의 시각 개발 아티스트(visual development artist)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새로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언어 장벽 속에 ‘맨땅에 헤딩’하듯 미국에 간 지 6년 만에 얻은 성과다. 지난달 31일 화상통화로 만난 최 씨는 “뼈를 갈아 넣는다는 생각으로 그림만 그리던 세월이었다. 유학 생활을 힘들게 했던 경제적 부담과 추방 위기를 떠올리면 아찔하다”며 웃었다. 최 씨는 당초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리타에 있는 예술전문학교인 캘리포니아예술대(Calarts) 입학을 목표로 미술과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월트 디즈니가 세운 이 ‘꿈의 학교’만 나오면 어디든 애니메이션 디자이너로 취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미국에 가보니 소위 ‘학벌’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는 한국과 전혀 달랐다. 유학생 신분이라 돈을 못 버는 상황에서 2억 원에 이르는 캘리포니아예술대의 학비도 부담이었다. 최 씨는 “노력 끝에 캘리포니아예술대에 합격했지만 2018년 캘리포니아주립대에 진학해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쌓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모든 인턴십과 취업문이 막혔다. 미국의 팬데믹 상황이 극심해지는 와중에 행정부가 “대면 수업을 받지 않는 유학생은 모두 추방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혀 공포 속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수많은 회사에 돌렸다. 포트폴리오가 드림웍스 미술감독의 눈에 들어 연락이 올 정도로 긍정적 신호가 이어졌다. 입사 후 그가 참여한 첫 작업물은 영화 ‘트롤’의 TV 버전인 ‘트롤스토피아(TrollsTopia)’. 10월부터는 새로 론칭하는 TV 프로그램에 투입될 예정이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막막했죠. 지금은 순수미술을 전공하며 배웠던 이론과 미술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 제 선택에 후회는 없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013년 말, 미대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최지영 씨(30)는 졸업 전시를 앞두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최 씨와 그의 동기들이 공들여 그린 회화 작품들을 드디어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날이기 때문. 하지만 전시 당일 최 씨의 기대감은 무너지고 말았다. 길게는 반년 씩 걸려 그린 작품들을 관객들이 감상하는 시간은 3초 남짓. 졸업 후 2014년 타 대학 미대생들과 단체전을 열었을 때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최 씨는 3~6개월 씩 걸리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한 작업물이 많아 더욱 깊이 낙담했다. 고급 갤러리를 찾는 이들은 그림을 보다 촘촘히 뜯어 보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 보였다. 시간과 돈을 써 가며 미술을 즐기는 계층이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던 것. 왜 미술을 배웠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으로써 학벌이나 계층, 나이, 인종 간 경계를 허물겠다’는 오랜 계획이 떠올랐을 때 그는 붓을 내려놓고 세계 애니메이션의 중심지인 미국 캘리포니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2015년 유학길에 오른 최 씨는 올 7월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사인 드림웍스의 시각 개발 아티스트(visual development artist)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새로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언어 장벽 속에 ‘맨땅에 헤딩’하듯 미국에 간지 6년 만에 얻은 성과다. 지난달 31일 화상통화로 만난 최 씨는 “뼈를 갈아 넣는다는 생각으로 그림만 그리던 세월이었다. 유학 생활을 힘들게 했던 경제적 부담과 추방 위기를 떠올리면 아찔하다”며 웃었다. 최 씨는 당초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리타에 있는 예술전문학교인 캘리포니아예술대학(Calarts) 입학을 목표로 미술과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월트 디즈니가 세운 이 ‘꿈의 학교’만 나오면 어디든 애니메이션 디자이너로 취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미국에 가보니 소위 ‘학벌’이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한국과 전혀 달랐다. 유학생 신분이라 돈을 못버는 상황에서 2억 원에 이르는 Calarts의 학비도 부담이었다. 최 씨는 “노력 끝에 Calarts에 합격했지만 2018년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진학해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쌓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모든 인턴쉽과 취업문이 막혔다. 미국의 팬데믹 상황이 극심해지는 와중에 행정부가 “대면 수업을 받지 않는 유학생은 모두 추방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혀 공포 속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수많은 회사에 돌렸다. 포트폴리오가 드림웍스 미술 감독의 눈에 들어 연락이 올 정도로 긍정적 신호가 이어졌다. 입사 후 그가 참여한 첫 작업물은 영화 ‘트롤’의 TV 버전인 ‘트롤스토피아(TrollsTopia)’. 10월부터는 새로 론칭하는 TV프로그램에 투입될 예정이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막막했지요. 지금은 순수미술을 전공하며 배웠던 이론과 미술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어서 제 선택에 후회 없답니다.”전채은기자 chan2@donga.com}
《열림원 출판사에서 2015년 3월 출간한 윤이수 작가의 장편소설 ‘구르미 그린 달빛’ 시리즈(전 5권)는 책일까? 대부분의 독자들이 “당연히 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네이버시리즈에서 2016년 11월부터 유료로 서비스하고 있는 해당 시리즈 5권의 전자책은 책일까? 이름부터가 전자‘책’이니 종이책의 물성을 띠고 있지는 않더라도 콘텐츠의 특성상 책으로 분류해도 무리는 없을 테다. 그렇다면 이 두 버전의 모태라고 볼 수 있는 웹소설은? 네이버웹소설에 연재됐던 이 작품은 2013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총 131화에 걸쳐 서비스됐다. 책일까? 아니면 ‘웹소설’이라는 또 다른 콘텐츠로 분류해야 할까. 대한출판협회(출협)는 다음 달 8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성동구에서 개최되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올해 처음으로 웹소설·웹툰 특별전을 연다. 26년간 개최된 전통 있는 도서전에 처음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콘텐츠가 ‘책’으로 입성한다. 주일우 출협 부회장은 “출판계에서는 최근 수년간 웹 콘텐츠도 출판시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이어졌다”며 “웹소설이 단행본이 되고, 영화나 드라마가 되고, 넷플릭스 등 플랫폼을 통해 국경도 넘어가는 지금은 이야기의 힘이 어느 때보다 더 큰 시대”라고 말했다.》 출협은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인 ‘출판시장 통계’에 올해부터 웹소설과 웹툰을 연재하는 플랫폼 기업을 포함시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리디, 디앤씨미디어, 레진엔터테인먼트 등 굵직한 웹소설 출판사와 전자책 플랫폼이 대거 들어갔다. 출판계가 전자책뿐 아니라 웹소설도 책으로 편입시킨 것이다. ○ 모바일 만나 폭발적 성장 바야흐로 ‘웹소설의 시대’다. 2019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2013년 약 100억 원에서 2018년 약 4000억 원으로 껑충 뛰어 40배로 커졌다. 지난해 웹소설 시장 규모는 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출협이 발표한 ‘2020년 출판시장 통계’를 보면 웹소설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 중 영업이익이 가장 컸던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380억 원으로 2019년에 비해 26.3% 증가했다. ‘출판시장 전체가 성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난달 ‘2020 출판산업 실태 조사’에서 밝힌 국내 단행본 시장의 매출액은 2015년 7602억 원에서 2019년 7133억 원으로 줄었다. 전체 출판시장이 쪼그라드는 가운데서도 웹소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 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웹소설에 대한 수요는 국내에 컴퓨터가 도입되던 시절부터 꾸준히 존재했다. 이우혁의 소설 ‘퇴마록’은 1993년 PC통신 하이텔에 연재돼 뜨거운 반응을 얻은 판타지 소설로 2013년까지 외전이 출간될 정도로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다. 1997년 ‘드래곤 라자’를 쓴 이영도도 이 분야의 대표주자다. 이 장르는 2000년대 들어 ‘인터넷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독자층도 낮아져 10대 소녀들이 로맨스 장르의 주요 독자가 됐다.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이상 귀여니), ‘내사랑 싸가지’(이햇님)가 대표적이다. 이들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며 활발하게 영상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대 포털 사이트가 이 분야 사업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웹소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모바일로 웹소설을 읽는 이들이 급증했고 팬픽, 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 출판계 웹소설 간 긍정적 피드백 기대 웹소설이 출판계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을 바라보는 관계자들의 시각은 양가적이다. “오랜 기간 출판의 한 종류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를 무시하다가 시장 규모가 커지니 이제 와서 ‘인정’해 주는 모양새”라는 토로와 “웹소설이라는 장르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동시에 나온다. 이미 커질 대로 커져 버린 웹소설 시장이 진통 없이 기존의 출판계에 편입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당장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도 발급받지 않는 웹소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일부 회차는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 웹소설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할 수 있을까?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현재 법이나 정부 지원은 전통적인 종이책 중심으로 마련돼 있다. 이를 개편하거나 웹 콘텐츠만을 위한 제도와 지원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기대감이 더 크다. 기존 출판계와 웹소설 시장 간 긍정적인 피드백을 전망하는 시선이 많다. 이를테면 웹소설을 통해 긍정적인 독서 경험을 축적한 독자는 웹소설과 결이 비슷한 장르문학의 독자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그동안 한국은 미국의 스티븐 킹 같은 ‘고급 중간 문학’이 없었다”며 “웹소설 독자들이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의 새로운 독자로 유입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한국에도 중간 문학 작가들이 다수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판계에서 웹소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평론이 활발히 이뤄지며 웹소설 전반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0년대 웹 기반 소설을 향유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가 젊은 평론가로 새롭게 유입되고 있어 탄력을 받기에도 적기다. 웹소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의 이문영 편집주간은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소설을 활발히 접했던 젊은 평론가들은 웹소설 같은 장르에 훨씬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며 “이 장르의 변천을 오래 지켜봐 온 입장에서 볼 때 이 시장은 연구자에게도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국내 출판계 저변 확대 전망 웹소설 ‘해를 품은 달’(정은궐), ‘김 비서가 왜 그럴까’(김경미 정경윤),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까페라떼, JINHA)는 각각 2012, 2018, 2021년 드라마화됐다. 이후 원작을 각색한 소설이나 포토에세이 등 단행본 출간까지 이어졌다. 소비자들이 웹소설, 드라마, 단행본 중 한 가지 콘텐츠로만 유입이 돼도 같은 이야기의 다른 버전을 궁금해할 여지가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구조다. 순문학과 그 외의 문학 간 경계가 뚜렷했던 한국 출판계에 웹소설은 분명한 균열을 내고 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나 미국 뉴욕 도서전같이 전통 있는 도서전에서는 순문학뿐 아니라 라이트노벨(라노벨)과 만화책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가 한자리에 모인다. 코스프레 복장을 한 만화책 애독자가 독일 문단에 한 획을 그은 페터 한트케(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책을 뒤적이는 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는 가능하다. 어쩌면 앞으로 국내 도서전에서도 웹소설과 장르문학, 순문학 독자들이 한데 섞여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웹소설과 출판계의 만남은 각종 진통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 출판계의 저변을 넓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채은 문화부 기자 chan2@donga.com}
“지금의 나는 베테랑이다. 처음에는 물을 마시지 않고 자연스레 올라오는 것을 게워낸다. 왼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기는 하지만 구토가 가능한 위장의 상태를 느낌으로 알고 있다. 그 상태로 위장을 준비시키고, 곧바로 토해낸다.” 20년간 거식증을 겪어 온 박지니 씨는 23일 펴낸 에세이 ‘삼키기 연습’(글항아리)에 기나긴 투병 기간 동안 탐구했던 ‘질병과의 공생법’을 풀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거식증 환자 중 절반은 완치되지만 30%는 부분적으로만 회복되고 20%는 고질적인 환자로 남는다. 30%에 속하는 저자는 “그것(거식증)은 병이지만 내 존재 방식이기도 했다. 그것을 버리고도 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고 고백한다. 정신질환 투병기를 고백한 에세이들이 줄줄이 출간되고 있다. 그동안 정신질환을 주제로 한 책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전문가의 시각에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해당 질병을 완치한 이들의 극복기가 주를 이뤘다. 최근 서점가에 쏟아지는 책들은 여전히 질병을 앓고 있는 저자들이 쓴 경우가 많은 데다 질병을 극복이 아닌 공생의 대상으로 다룬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요즘 독자들은 가르치는 필자보다 소통, 공감하는 필자에게 더 큰 호응을 보낸다. 일반인들의 직업 에세이가 인기를 끄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라고 분석했다. 개인적인 맥락에서의 정신질환 투병 경험을 담다 보니 질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달 출간된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휴머니스트)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일하는 여성 임상심리학자인 신지수 씨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은 경험을 풀어놓은 에세이다. 신 씨는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검사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ADHD 환자라는 것을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던 이유를 젠더화된 질병 이미지에서 찾았다. 그는 책에서 “ADHD 환자가 흔히 ‘정신없는 남자아이’로 묘사되어 왔기 때문에 여아, 성인 여성은 진단에서 소외돼 치료 시기를 놓쳐 왔다”고 지적한다. 같은 질병을 다룬 ‘젊은 ADHD의 슬픔’(민음사)의 저자 정지음 씨는 10대부터 ADHD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질병에 대한 편견 탓에 26세에 이르러서야 ADHD 진단을 받게 된 경험을 털어놓으며 “10대의 내가 껌 대신 처방전을 뗐더라면 인생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남는다”고 썼다. 5월 출간된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가나)의 저자 김세경 씨는 공황장애 투병기를 정리했다. 공황장애는 ‘연예인병’, ‘나약하고 한가한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는 대기업에 근무하며 5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 씨는 하루하루 바쁘고 치열하게 살던 중 퇴근길 지하철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킨 경험을 시작으로 질병에 대한 편견을 벗기고 “공황장애를 돌볼 줄 아는 법을 터득하면 발병 전보다 불안과 스트레스를 더 잘 관리할 수 있게 된다”고 조언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먼 옛날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가 숲속을 헤매다 오두막을 발견했다. 빈 오두막에서 소녀는 죽 세 그릇이 놓인 식탁을 발견하고 이 중 온도가 가장 알맞은 세 번째 그릇을 맛있게 먹어 치운다. 식사를 마치고 피로가 몰려오자 세 개의 의자 중 가장 편안한 의자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어 세 개의 침대 중 가장 잘 맞는 침대에서 잠이 든다. 잠에서 깬 골디락스를 맞은 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집 주인 ‘세 마리 곰’. 골디락스는 곧바로 멀리 도망친 뒤 오두막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 짧은 이야기는 서구권에서 ‘세 마리 곰’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설화다. 철학을 주제로 한 소설 ‘소피의 세계’의 저자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요슈타인 가아더는 이번 신작 소설에서 골디락스 이야기를 모티브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다룬다. 주인공인 알버트는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걸 알고 난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추억이 깃든 오두막으로 향한다. 오두막은 그가 아내 에이린과 연애하던 시절 우연히 발견해 주방을 쓰고 하룻밤을 묵은 곳. 책은 그가 오두막에서 이틀에 걸쳐 쓴 유서로 이뤄져 있다. 알버트는 오두막에서 가족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며 삶과 죽음, 질병과 공포에 대해 사유한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은 결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오두막을 둘러싸고 풍기던 퀴퀴하고 달짝지근한 냄새는 오랜 생명이 썩어 들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는 냄새였다. 책의 해설을 쓴 철학자 강신주는 “가아더의 이 묘한 소설은 두 번 읽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적었다. 알버트의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독자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에 빠지게 된다. 소설에서 알버트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제 독자들을 향한다. “중요한 질문을 할 때가 왔다. 나는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불명예스러운 시간을 살아내야 할까? 아니면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끝내 버리는 게 더 나을까?”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대학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사서로 일하며 접한 그림책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결혼 후 유치원생 아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다 가사노동과 육아에 지친 자신의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꼈다. 이후 4년간 그림책 낭독 모임에 참석하며 그림책 애독자가 됐지만 그뿐이었다. 상담심리학을 깊이 배우고 싶어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던 찰나 갑상샘에 문제가 생겨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글을 써야겠다.’ 그리고 ‘책방을 내야겠다, 그림책방으로.’ 2017년 서울 성동구에 ‘카모메 그림책방’을 연 정해심 씨(45)가 그림책 ‘덕후’로 거듭난 과정이다. 그는 최근 출간한 에세이 ‘오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삽니다’(호호아)에서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파는 책방지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그를 25일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만났다. ―문학작품과 그림책의 매력이 어떤 점에서 차별화되나. “그림책은 ‘빈 공간이 많다’고 표현하고 싶다. 서사를 그림으로 전달하는 부분이 많아 독자가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 활자화된 글을 읽다 보면 내 생각의 저변을 확대하기보다 저자의 생각을 흡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림책은 하나의 이야기로 독자들이 느끼는 점이 매우 다양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그림책을 고르나. “그림책도 서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림이 얼마나 예쁜지를 살피지는 않는다. 그림책을 오랫동안 보면 ‘우정’ ‘용기’ 등 어린이 책에 자주 나오는 소재들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는지 경향을 알게 된다. 같은 소재를 갖고 책을 엮더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 그림책이라면 고르게 된다.” ―그림책에도 트렌드가 있나. “물론 있다. 15년 전에는 일본이나 영국, 미국 책들이 그림책 코너의 대부분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유럽 작가들의 책이 인기를 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우정에 대해 다루더라도 모든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결론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친했던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생겨도 상처받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런 책들이 어른에게도 위로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어린이를 타깃 독자로 둔 그림책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요즘은 아예 성인 독자를 염두에 둔 책도 많이 나온다. 만화책도 성인용이 있지 않나. 지금의 추세라면 어른을 위한 그림책도 좀 더 다양하게 출간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최근 나온 그림책 중에서는 라트비아 작가 아네테 멜레세의 ‘키오스크’(미래아이)를 2030세대에 추천한다. 자신의 한계나 상처가 오히려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의 책이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한 권 꼽는다면….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화가 와다 마코토가 1976년에 펴낸 그림책 ‘구덩이’(북뱅크)를 꼽고 싶다. 인간에게 자기만의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