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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걷힐 세금이 당초 예상보다 30조 원 가까이 적을 것이란 전망을 정부가 내놨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실적 악화 탓에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정도로 경기 상황이 심각했지만 이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 탓이다. 올해도 연장을 거듭한 유류세 인하 등 줄 이은 감세 정책도 세수 펑크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역대 최대 세수 펑크에 이어 올해도 수십조 원대 세수 부족이 현실화한 가운데 정부는 빈 곳간을 메울 뚜렷한 재원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휘청이는 내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할 재정 실탄마저 부족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26일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수를 재추계한 결과 국세 수입이 337조70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예산을 짜면서 세금이 367조3000억 원 걷힐 것이라고 봤는데, 이보다 29조6000억 원 낮춰 잡은 것이다. 정부 예상보다 56조 원 넘게 부족했던 지난해 국세 수입보다도 6조4000억 원 세금이 덜 걷히는 셈이다. 세수 오차율도 ―8.1%로 세수가 부족했을 때만 놓고 보면 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크다. 2021년부터 발생한 세수 오차 규모는 200조 원에 육박하며 나라 살림 운용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올해 대규모 세수 펑크의 주요 원인은 법인세였다. 법인세는 예상한 것보다 14조5000억 원 덜 걷힐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지난해 정부가 고수한 ‘상저하고(하반기 경기 반등)’ 전망과 달리 기업경기가 내내 부진했던 탓이다. 법인세 큰손으로 꼽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올 3월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기재부는 소득세, 상속증여세,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다른 세목에 대해서도 세수 예상치를 줄줄이 내렸다. 정부는 기금의 여윳돈을 활용하고 일부 사업에 대해선 편성된 예산 집행을 취소해 세수 부족분을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대책은 국회 등과 논의하겠다는 계획만 밝힐 뿐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진 않았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세수 재추계 현안보고’에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코로나19 이후 4년간 세수 추계 오차가 반복된 상황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올해 예상되는 부족분에 대해서는 정부 내 가용 재원을 최대한 활용해 우선 대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정부, 세수 예측 4년연속 크게 어긋나… 기금 돌려막기할 판올해도 30조 세수 결손법인세 14.5조 줄어 부족분의 절반… 소득세수도 예상보다 8.4조 덜 걷혀국세서 지급하는 교육교부금 5조↓“경기 낙관론, 세수오차 키워” 지적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세수 펑크가 발생한 건 경기 회복 속도가 정부 예상에 못 미친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분석된다. 국채 추가 발행이 힘든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해처럼 각종 기금 등에서 예산을 끌어오는 ‘돌려막기’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올해 세금이 예상보다 30조 원 가까이 덜 걷히면서 국세에서 일정 비율을 떼서 지급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도 최대 5조 원 넘게 줄어들게 됐다.● 지난친 경기 낙관에 감세 정책 남발기획재정부가 26일 발표한 올해 세수 재추계 결과에 따르면 올해 법인세수는 63조2000억 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당초 정부 예상치(77조7000억 원)보다 14조5000억 원 적은 규모다. 전체 세수 부족분(29조6000억 원)의 49%가 법인세수에서 발생하는 것이다.연이은 감세 조치도 세수 부족을 키웠다. 물가 안정을 이유로 유류세율 인하 조치를 이어가면서 올해 교통·에너지·환경세수는 당초 예상(15조3000억 원)보다 4조1000억 원이 줄어든 11조2000억 원에 그칠 것으로 추산됐다. 사과 등 각종 먹거리 물가 급등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할당관세 조치로 관세도 예상보다 1조9000억 원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됐다.가장 대표적인 세목으로 꼽히는 소득세수도 종합소득세와 양도소득세 등이 크게 줄어 당초 예상(125조8000억 원)보다 8조4000억 원 부족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난해 전반적인 경기 둔화와 자산 시장 침체 흐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경기를 예측하고 유류세 인하 등의 조치도 연장하면서 큰 폭의 세수 오차가 발생했다”고 말했다.정부의 세수 예측은 2021년부터 크게 빗나가고 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예상보다 50조 원 넘게 세금이 더 걷혔고, 지난해와 올해는 정부가 예산을 짤 때 잡았던 것보다 세금이 부족하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0∼2023년 한국의 평균 세수 오차율을 12.4%였다. 미국(7.8%), 일본(7.3%) 등 세계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세수가 더 많이 들어오면 재정 확장 유인으로 작용해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 악화를 불러올 수 있고, 세수가 예상보다 줄면 당초 계획대로 예산을 쓰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여야, 역대급 세수 오차 일제히 비판팬데믹 이후 기업 경기 예측에 지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부는 세수 추계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세수를 추계하는 전체 과정에서 예산정책처, 조세재정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정부가 가진 정보를 최대한 공유하고 인공지능(AI) 기술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하지만 정부는 올해 세수 부족분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선을 그어 국채 발행을 늘릴 순 없기 때문에 지난해처럼 각종 기금과 회계의 여윳돈으로 부족분을 메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에는 외국환평형기금을 끌어다가 급한 불을 껐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난해 정부는 세수 펑크를 막기 위해 외평기금에서 약 20조 원을 활용했지만 ‘외환 방파제’를 허물었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정치권에서는 ‘경기 낙관론’이 낳은 대규모 세수 오차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건전 재정 기조로 경제가 침체되고 그에 따라 세입 기반이 붕괴되면서 세수 오류가 생기는 문제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이종욱 의원도 “정부가 여러 차례 제도 개선 노력을 다짐했는데도 대규모 세수 오차가 반복되는 것을 무엇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교육부는 올해 세수 재추계 결과에 따라 교육교부금도 하반기(7∼12월) 감액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교육교부금은 내국세 수입의 20.79%와 국세 교육세 일부로 조성되는데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주요 재원으로 활용된다. 줄어드는 폭은 최대 5조3000억 원가량으로 예상된다.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국내 의약품 업체 A사는 자신들의 의약품을 많이 처방해 달라며 병원장 부부 결혼식장 예식비는 물론이고 신혼여행비와 명품 예물비까지 대신 지급했다. 또 다른 의사 집으로는 수천만 원 상당의 고급 가구와 대형 가전 제품을 보내주는가 하면 회사 비용으로 상품권을 사서 병원장과 개업의 등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A사는 여러 해 동안 이런 식으로 쓴 불법 리베이트 비용 수백억 원을 회사 경비로 처리하면서 법인세를 탈루한 것으로 조사됐다. 25일 국세청은 A사처럼 상품이나 용역 대가의 일부를 일종의 뇌물처럼 되돌려주는 불법 리베이트를 일삼은 업체 47곳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7월 강민수 국세청장 취임 이후 처음 진행되는 이번 기획 세무조사 대상에는 의약품 업체 16곳, 건설업체 17곳, 보험중개업체 14곳이 포함됐다. 의약품 업체의 경우 영업대행사를 통한 우회적인 리베이트 제공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제품 판매 등을 대행하는 영업대행사 대표가 고액의 급여를 받으면서 이 돈으로 의료인들을 유흥주점에서 접대하거나 영업대행사에 의사들을 주주로 등재해 배당금을 지급하는 등의 수법을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리베이트를 의약품 업체의 세무상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법인세를 추징하는 동시에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 수백 명에게도 소득세를 물릴 계획이다. 통상 의약품 업체는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을 밝히느니 이들의 세금까지 자신들이 납부하겠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조사에서는 의료인까지 책임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건설 분야에서는 우월한 지위에 있는 시행사와 재건축 조합 등 공사 발주처의 특수관계자에게 뒷돈을 대준 건설업체 등이 대거 적발됐다. 재건축 사업 시공사 선정 대가로 조합 관계자는 물론이고 조합장 자녀에게까지 수억 원의 가공 급여를 지급한 사례 등이다. 이번 조사에 포함된 최고경영자(CEO) 보험 중개업체는 최근 리베이트가 늘어난 분야로 꼽힌다. CEO가 죽거나 큰 사고를 당하면 돈을 지급하는 보험 상품이 법인 비용으로 처리된다는 점을 악용해 보험 가입을 대가로 리베이트를 건네는 것이다. 실제로 특정 보험사에 소속되지 않은 채로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중개 업체 다수가 보험에 가입한 CEO 본인이나 그 배우자, 자녀 등을 보험 설계사로 허위 등록하고 모집수당 명목으로 수억 원씩의 리베이트를 준 것으로 조사됐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리베이트로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으면서도 납세 의무를 회피한 최종 귀속자를 찾아 과세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지난해 예산을 짜면서 국토교통부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을 예방하겠다며 신규 사업 두 개에 190억 원을 편성했지만 실제로는 1억1000만 원을 집행하는 데 그쳤다. 150억 원 규모의 층간소음 성능보강 사업은 저소득층이나 자녀가 있는 중산층 가구가 소음매트를 구입, 설치할 때 저금리로 그 비용을 빌려주는 사업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직접 지원이 아니라 융자 사업이라는 점 때문에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해 실제 집행액이 1억1000만 원에 불과했다. 건설사들에 연 4% 금리로 공사비를 빌려주는 층간소음 개선 리모델링 사업에는 4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지만 금리 혜택이 작은 융자 사업이라는 한계로 집행이 전무해 한 푼도 쓰지 못했다.● 나라 살림 빠듯한데 곳곳에서 대규모 불용24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 등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예산이나 기금을 집행하면서 국토부 사업처럼 편성한 예산을 쓰지 않고 불용(不用) 처리한 사례가 다수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예산 불용액 규모는 10조8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보였다. 세금이 덜 걷히면서 지난해 56조 원이 넘는 역대급 ‘세수 펑크’가 발생해 허리띠를 졸라맨 정부가 정확한 예산 수요 예측에 실패해 비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 지난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해 식품매장의 개방형 냉장고에 문을 달고 소상공인들의 낡은 냉난방기를 고효율 냉난방기로 교체하는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100억 원의 기금을 편성해서 추진한 문 달기 사업은 올 3월까지 10억100만 원을 집행하는 데 그쳤다. 300억 원의 기금을 편성했던 노후 냉난방기 교체 사업도 올 3월까지 111억1800만 원만 집행해 실적이 저조했다. 문 달기와 냉난방기 교체 비용의 40%까지만 보조해 주는 구조여서 인기가 낮았던 것이다. 구 의원은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에 비해 전기요금 절약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간과하면서 수요 예측에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예산 불용, 11조 육박하며 사상 최대청년이나 장병들의 목돈 마련을 돕기 위한 사업들에서도 대규모 불용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번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청년도약계좌의 경우 지난해 신규 계좌 개설이 예측했던 306만 명에 크게 못 미치는 51만1000건에 그쳐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한 재원 3440억여 원 가운데 432억 원만 실제 집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현역 병사들이 가입하는 장병내일준비적금과 연계해 추가적인 돈을 지급하는 병내일준비지원 사업도 지난해 6584억 원의 예산을 마련했지만 5014억 원만 집행돼 1500억 원 이상의 불용액이 발생했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실제 가입률과 가입 금액 등을 부정확하게 계산하면서 발생한 불용 사례”라고 말했다. 중소·중견기업이 청년을 정규직으로 추가 채용할 경우 지원금을 지급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추진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사업 역시 지난해 2294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지만 홍보 부족 등으로 704억 원만 집행해 집행률이 30% 수준에 그쳤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애초에 수요가 부족한 사업이 들어가면 정작 필요한 사업은 예산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서울 은평구에 사는 권모 씨(69)는 23일 동네 마트에서 겉절이용 포기 배추를 사려다가 가격표를 보고 배추를 내려놨다. 3포기가 든 배추 한 망 가격은 4만5000원. 권 씨는 “추석 대목에는 한 포기에 2만 원이 넘던 게 1만5000원까지 내려온 거라는데 그래도 선뜻 사기엔 부담이 된다”고 했다. 배추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추석 연휴까지 이어진 유례없는 폭염으로 작황이 나빠지자 일부 소매점에선 배추 한 포기당 가격이 2만 원을 넘나들 정도다. 이에 정부는 중국산 배추 수입 등을 통해 가격 안정화에 나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날 배추 1포기의 평균 가격은 9321원이었다. 평년 가격 6823원보다 2498원(36.6%) 올랐다. 이미 금(金)배추였던 지난달(7248원)보다도 28.6% 비싸다. 산지 공급 상황이 보다 빠르게 반영되는 도매가격 상승세는 더 가파르다. 이날 배추 10kg 기준 도매가는 4만1500원으로 4만 원을 돌파했다. 평년(2만785원)의 2배가량이다. 급격히 오른 도매가에 물건을 확보한 농협하나로마트 일부 지점에서는 배추 한 포기가 2만2000원, 3포기가 든 한 망이 5만9800원의 가격표를 붙인 채 매대에 올랐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하나로마트 본사 직영점 등은 별도 물류센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산지에서 확보한 물량을 상대적으로 싸게 팔 수 있다. 이들 마트에선 지금도 할인 행사를 통해 포기당 7000∼8000원에 판매할 수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도매가격은 통상 며칠 뒤 소매가에 반영되기에 배추값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롯데마트는 현재 9990원인 배추 한 포기를 농림축산식품부 할인쿠폰(농할·20%)을 적용해 7992원에 팔고 있다. 그러나 주 후반에는 현재의 정가보다 20%가량 가격을 올릴 예정이다. 19일부터 내린 비가 배추 가격을 더 자극할 수도 있다. 농식품부는 22일 오후 6시 기준 농작물 1만2386ha, 가축 폐사 22만여 마리 등의 피해가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중 배추 피해는 678ha였다. 가을 김장 배추의 경우 9월까지는 어린 배추를 밭에 옮겨 심는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달 생육 상황이 중요하다. 일단 지켜봐야겠지만 호우 피해가 김장철 배추값을 더 밀어올릴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정부는 검역 문제가 걸려 있는 사과와 달리 배추는 수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배추는 다음 달까지 관세 없이 배추를 수입할 수 있는 할당관세 조치가 이미 취해져 있는 상황”이라며 “aT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배추를 수입하는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배추는 한 포기에 3000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수입 배추는 24일 이후 순차적으로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전해진다.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세종=이호 기자 number2@donga.com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이달 들어 중순까지의 수출이 지난해보다 소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추석 연휴로 조업일수가 감소해 수출이 줄었지만 월간 수출은 12개월 연속 플러스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23일 관세청에 따르면 1일부터 20일까지의 수출액은 355억8300만 달러(약 47조55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359억6900만 달러)보다 1.1%(3억8600만 달러) 감소했다. 품목별로 보면 승용차(―8.8%), 석유제품(―5.0%), 철강제품(―9.5%) 등의 수출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26.2% 증가했고 컴퓨터 주변기기 수출도 75.6%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5.9%), 유럽연합(EU·―15.1%), 일본(―12.4%) 등으로의 수출이 감소한 가운데 중국(2.7%), 베트남(1.2%) 등으로의 수출은 늘어났다. 이 기간 무역수지는 7억9900만 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정부는 월간 기준의 수출액도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추석 연휴로 인해 이 기간 조업일수가 13.0일로 지난해(15.5일)에 비해 2.5일 줄어 수출이 소폭 줄었지만 일 평균 수출액은 18.0% 늘어 견조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서울 은평구에 사는 권모 씨(69)는 23일 동네 마트에서 겉절이용 포기 배추를 사려다가 가격표를 보고 배추를 내려놨다. 3포기가 든 배추 한 망 가격은 4만5000원. 권 씨는 “추석 대목에는 한 포기에 2만 원이 넘던 게 1만5000원까지 내려온 거라는데 그래도 선뜻 사기엔 부담이 된다”고 했다.배추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추석 연휴까지 이어진 유례없는 폭염으로 작황이 나빠지자 일부 소매점에선 배추 한 포기당 가격이 2만 원을 넘나들 정도다. 이에 정부는 중국산 배추 수입 등을 통해 가격 안정화에 나섰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날 배추 1포기의 평균 가격은 9321원으로 1만 원에 육박했다. 평년 가격 6823원보다 2498원(36.6%) 올랐다. 이미 금(金)배추였던 지난달(7248원)보다도 28.6% 비싸다. 산지 공급 상황이 보다 빠르게 반영되는 도매가격 상승세는 더 빠르다. 이날 배추 10kg 기준 도매가는 4만1500원으로 4만 원을 돌파했다. 평년(2만785원)의 2배가량이다. 급격히 오른 도매가에 물건을 확보한 농협하나로마트 일부 지점에서는 배추 한 포기가 2만2000원, 3포기가 든 한 망이 5만9800원의 가격표를 붙인 채 매대에 올랐다.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하나로마트 본사 직영점 등은 별도 물류센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산지에서 확보한 물량을 상대적으로 싸게 팔 수 있다. 이들 마트에선 지금도 할인 행사를 통해 포기당 7000~8000원에 판매할 수 있는 배경이다.하지만 도매가격은 통상 며칠 뒤 소매가에 반영되기에 배추값은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롯데마트는 현재 9990원인 배추 한 포기를 농림축산식품부 할인쿠폰(농할·20%)을 적용해 7992원에 팔고 있다. 그러나 주 후반에는 현재의 정가보다 20%가량 가격을 올릴 예정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날씨 때문에 작황이 부진해 물량은 없는데 수요가 폭증하는 김장철이 돌아오니 어쩔 수가 없다”고 전했다.19일부터 내린 비가 배추 가격을 더 자극할 수도 있다. 농식품부는 22일 오후 6시 기준 농작물 1만2386ha, 가축 폐사 22만여 마리 등의 피해가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중 배추 피해는 678ha였다. 가을 김장 배추의 경우 9월까지는 어린 배추를 밭에 옮겨 심는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달 생육 상황이 중요하다. 일단 지켜봐야 하겠지만 호우 피해가 배추값을 더 밀어올릴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정부는 검역 문제가 걸려 있는 사과와 달리 배추는 수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배추는 다음 달까지 관세 없이 배추를 수입할 수 있는 할당관세 조치가 이미 취해져 있는 상황”이라며 “aT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배추를 수입하는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배추는 한 포기에 3000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수입 배추는 24일 이후 순차적으로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전해진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세종=이호 기자 number2@donga.com세종=김도형기자 dodo@donga.com}
세계적인 주가 지수 제공 업체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이 현재 선진시장으로 분류하고 있는 한국을 관찰대상국에 지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국내에서 공매도가 전면 금지되면서 시장 접근성과 신뢰 훼손을 이유로 일종의 ‘경고장’을 받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의미다. 관찰대상국에 지정되면 향후 선진시장에서 탈락해 신흥시장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2009년 선진시장 진입했지만 ‘관찰대상국’ 우려22일 정부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까지 여러 차례 영국, 호주 등에서 FTSE 러셀 측과 직접 접촉하면서 한국 증시의 시장 접근성 관련 우려를 해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FTSE 러셀이 다음 달 8일(현지 시간) 글로벌 지수 분류 연례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금융 당국이 공매도 전면 금지로 한국이 선진시장 지위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FTSE 러셀 측이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는 않지만 선진시장 유지를 전제로 한 관찰대상국 지정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는 공매도 금지 조치가 내년 3월 말에는 종료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하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과 함께 양대 글로벌 지수 제공 업체로 꼽히는 FTSE 러셀은 주로 유럽계 자금의 투자 벤치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MSCI에서는 여전히 신흥시장으로 분류돼 있지만 FTSE 러셀에서는 2009년 선진시장에 진입한 바 있다. 2004년 FTSE 러셀이 한국을 선진시장 편입을 위한 관찰대상국에 포함시키자 정부는 장외거래 확대와 공매도 관련 규제 완화 등의 제도 개선에 나서면서 지위 상향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문제는 선진시장 편입 당시에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았던 국내의 공매도 관련 규제가 최근 정부의 뜻에 따라 요동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가가 급락하자 금융 당국은 2020년 3월 국내 증시 전 종목에 대한 공매도 금지에 나선 바 있다. 이후 금융 당국은 공매도 관련 제도 개선이 완료됐다며 2021년 5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허용했지만 지난해 11월 다시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동안 한국 증시에서는 정부의 뜻에 따라 공매도 금지와 허용이 되풀이돼 왔다”며 “글로벌 투자자의 눈으로 보자면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즉흥적인 공매도 금지로 리스크 떠안아”정부는 FTSE 러셀이 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더라도 실제 선진시장에서 제외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한시적인 조치에 그칠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다른 금융 당국 관계자는 “설혹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되더라도 내년에 공매도를 재개하면 1년간의 한시 조치에 그치게 될 것”이라며 “선진시장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 충격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주요 과제로 내세운 정부가 실익이 거의 없는 공매도 금지 조치로 위험을 떠안은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공매도 금지가 일부 투자자의 주장에 따른 정치적 결정으로 진행된 점이 문제”라며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는 복합적인 원인은 외면한 채 즉흥적인 정책으로 불필요한 리스크를 마주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관찰대상국 지정만으로도 일부 외국계 자금은 유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세종=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올 6월 24일 국제 우편을 활용해 태국에서 밀반입하려던 케타민 193g이 적발됐다. 마약은 신발 깔창 안에 숨겨져 있었다. 이날 이뤄진 마약 적발은 ‘사이렌 3’라는 이름으로 한국과 태국이 함께 벌인 3차 마약류 합동단속 작전의 성과 가운데 하나다. 1, 2차 합동단속을 통해 축적한 정보를 기반으로 태국발 우편물 발송지에서 마약 유의 지역을 선정하고 ‘우범 화물’을 별도 검사하는 방식으로 마약 밀수를 막았다. 국내 마약 사범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관세청은 최근 국제 공조를 통한 마약 밀수 단속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각종 마약의 주요 출발국 관세당국과 협력해 마약이 한국으로 오는 것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올 6월부터 8월까지 약 2개월 동안 태국 관세총국 내에 합동단속 작전 통제본부를 설치해 놓고 진행한 단속에서 두 나라는 태국발 마약류 27건, 123kg을 적발하는 실적을 거뒀다. 특히 이렇게 적발한 121kg의 필로폰은 관세청이 8월까지 적발한 전체 필로폰 밀수 중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지난해 49건, 72kg의 마약을 적발한 2차 작전보다 두 달 짧은 작전 기간에도 불구하고 3차 작전이 더 큰 성과를 거둔 상황. 관세청은 마약 밀수 정보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보다 효율적인 단속이 진행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1, 2차 단속에서 가방 내피와 외피 사이에 마약을 숨기는 수법을 확인한 관세청은 이번 작전에서도 태국 전통 가방 안감에 마약을 은닉한 사례를 찾아냈다. 해외 국가들은 한국과의 공조 과정에서 자국의 마약 사범을 검거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엑스레이 활용 마약 단속 노하우 등을 익힐 수 있다는 점을 선호한다는 것이 관세청의 설명이다. 태국의 경우 관세청이 지난해 8월 국내에서 훈련시킨 마약 탐지견 2마리를 기증하면서 돈독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마약 사범을 적발하기 위한 관세당국 간 공조는 물밑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올 6월 인천공항세관은 우표 형태로 제작된 신종 마약을 책 속에 숨겨서 밀반입하려던 미국인을 붙잡아 구속 송치했다. 이 경우도 캐나다에서 출발해 미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향하는 특송 화물에 마약이 은닉됐다는 정보를 미국 관세당국이 한국에 제공하면서 덜미를 잡혔다. 관세청 관계자는 “주요 마약 공급국에는 정보 요원을 파견해 해외 관세당국으로부터 마약 밀수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등 마약 단속과 관련한 국제 공조를 계속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인천=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더 교묘해진 마약 밀수와의 전쟁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마약범죄 척결을 위해 고강도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마약 밀수는 이어지고 있다. 수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는 가운데 365일 마약과 씨름을 벌이고 있는 관세청의 단속 현장을 찾았다.》“지난해 6월에는 이불 솜 사이에 필로폰 덩어리를 붙여 밀수하려던 경우까지 있었어요. 국내에서 검거한 마약 사범 앞으로 온 특송 화물을 살펴보다가 하얀 가루가 눈에 띄어서 성분 분석을 의뢰했더니 필로폰이더라고요.” 지난달 28일 인천공항 제2터미널 입국심사장에서 만난 신동윤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1과장은 최근 점점 교묘해지는 마약 밀수 사례 중 ‘이불 솜 필로폰’ 밀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998년 김포세관 특수조사과 시절 마약수사팀의 ‘막내’로 마약 수사 경력을 시작한 신 과장은 30년의 관세청 재직 기간 가운데 절반가량을 마약 조사·수사 경력으로 채운 대표적인 마약 수사통이다. 그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방식의 마약 밀수 시도가 늘어나면서 ‘마약과의 전쟁’ 2년 차를 맞은 전국 세관의 마약 단속도 더욱 치열해졌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비교적 한산한 시간대로 분류되는 이날 오전 6시부터 입국심사장 한쪽에서는 세 살 난 마약 탐지견 ‘밀리’가 수하물에 연신 코를 들이대고 그 옆으로 입국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지난달부터 대표적인 마약 밀수 우려국인 멕시코에서 하루 1편씩 직항 항공편 운항이 재개되면서 멕시코 입국객에 대해서는 전수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멕시코발 항공편 입국객 201명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인체 은밀한 곳에 숨긴 마약까지 탐지할 수 있는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를 통과했다.● 콘크리트 속에 숨기고 선박 밑에 붙여 오기도20일 관세청과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에 따르면 관세청의 마약 밀수 적발 건수는 2014년 308건에서 지난해 704건으로 늘었다. 또 같은 기간 전체 적발 중량은 71kg에서 769kg으로 급증했다. 10년 전에는 마약 밀수 적발이 하루 한 건에 못 미쳤고 건당 중량도 평균 0.2kg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2건가량의 밀수가 적발되고 건당 평균 1.1kg의 마약이 적발된 것이다.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크게 늘었던 국제 우편이나 특송 화물을 이용한 마약 밀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신 과장은 “올해도 전자 기타나 스피커, 시리얼처럼 통상적인 해외 직구 품목 안에 마약을 숨긴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며 “식품을 포장할 때 함께 포함되는 방습제 봉지에서 방습제를 빼고 마약을 채워 수입하거나 간이 테이블이라며 수입한 콘크리트 블록 안에 대마초를 압착해서 밀봉해 놓은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지난해 국내에 들어온 특송 화물과 국제 우편은 각각 1억3144만 건과 427만 건에 이른다. 반입 경로별로 보면 건수를 기준으로 국제 우편이 328건(46.6%), 특송 화물이 194건(27.6%)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여행자(177건·25.1%)가 그 뒤를 이었다. 이 같은 마약 밀수 사례에는 사탕이나 견과류에 마약을 섞어서 함께 들여오는 경우는 물론 필로폰을 알루미늄 포일로 감싼 다음 노트북 내부에 숨겨서 들여오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다. 올해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선박을 활용한 마약 밀수 시도다. 올 4월 울산 온산항에서는 화물선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던 잠수부가 선박 바닥의 해수 흡입구(시체스트·Sea Chest)에서 수상한 물체를 발견했다고 마약밀수신고 ‘125’로 신고를 했다. 울산세관과 검찰이 조사한 결과 28kg에 이르는 코카인이 비닐로 포장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올 1월 부산신항에서도 정박해 있던 7만 t급 화물선의 시체스트에서 코카인 100kg이 발견된 바 있다. 마약 수사 당국에서는 선박 시체스트에 마약을 숨겨 이동하는 일명 ‘기생충’ 수법이 국제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발신자와 수신자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숨겨놓은 마약을 찾아내더라도 마약 사범을 검거하기는 힘든 밀수 수법이다.● “몸에 마약 숨겨 들여오는 ‘보디 패커’ 다시 증가”엔데믹(풍토병화) 이후 여행객을 통한 마약 밀수 역시 다시 늘어나고 있다. 신 과장은 “팬데믹 이전에는 60% 정도가 마약 조직이 운반책을 통해 배달하는 직접 밀수로 알려져 있었다”며 “여행객이 급감한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늘어난 비대면 밀수가 그대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입국객이 직접 마약을 숨겨 들여오는 사례도 다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체나 옷, 소지품에 직접 마약을 숨겨서 들여오는 마약 운반책은 이른바 ‘보디 패커’라고 불린다. 보디 패커를 활용한 여행객 직접 밀수는 통상 1명의 감시책에 5명 안팎의 운반책이 하나의 팀으로 꾸려져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약 운반 비용을 일컫는 ‘지게값’을 받는 현지인 혹은 한국인 운반책을 여러 명 동원하면 일부가 적발되더라도 나머지 운반책을 통해 일부 마약은 반입할 수 있다. 신 과장은 “허벅지나 복부는 물론이고 사타구니를 비롯한 은밀한 부분에 마약을 붙인 채로 교묘하게 숨겨서 들어오면 통상적인 세관 검색으로는 적발이 쉽지 않다”며 “이런 ‘보디 패커’를 막기 위해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 설치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이날 멕시코발 항공편 전수조사에 활용된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는 몸에 숨겨 놓은 금속, 비금속 물품을 3초 만에 스캔한 후에 감지해 화면에 빨갛게 표시해준다. 한정된 인력이 여행객의 신체를 직접 검색하는 데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마약 밀수 대응 방안으로 꼽힌다. 관세청은 올해 전국 공항, 항만에 13대를 배치해 운영할 계획이다. 신 과장은 “과거에는 멕시코산 필로폰은 순도가 워낙 낮아서 국내에 반입돼도 판매가 쉽지 않은 것으로 봤는데 최근 멕시코에서도 순도 높은 마약이 제조되고 있어서 경계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했다.● “효과 극대화한 칵테일 마약, ‘시장 원리’ 확산 보여줘” 국내 마약 시장에선 일종의 ‘시장 원리’가 확산되는 모습도 감지된다. 감시망을 피해 마약을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약 사범들이 원하는 종류의 마약을 공급하고 과거보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약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신 과장은 국내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적발된 ‘칵테일 마약’을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지적했다. 올 4월 동남아시아발 우편물 검사에서 발견된 이 마약은 여러 종류의 술을 섞은 칵테일처럼 각성제인 필로폰과 마취제인 케타민, 진정제인 니트라제팜과 전문의약품인 타마돌린(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해열제) 등 5종의 성분을 혼합한 것으로 분석됐다. 각성 효과가 있는 필로폰과 진정제 계열의 마약 등을 섞으면서 각성과 진정 효과를 반복하도록 해 단일한 종류의 마약보다 강력한 효과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다. 신 과장은 “국내에서 기존보다 강한 자극을 주는 마약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최근 적발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대마 오일류의 경우 전자담배 등을 활용한 투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접근성을 크게 높인 마약으로 꼽힌다. 대마에서 환각 효과를 유발하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이 함유된 대마 오일류는 북미에서 유행한 바 있는데 국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 과장은 “필로폰은 투약을 위해 주사기가 있어야 하지만 전자담배를 이용한 대마액상의 경우 연령대를 떠나 누구나 손쉽게 흡입할 수 있어서 마약 확산 가능성이 높다”며 “최근 텔레그램 등 익명 메신저를 통한 마약 밀수가 증가하면서 실제 마약 소비자를 검거했는데 중고등학생인 경우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도 엑스레이 판독 능력 배우고 싶어 해”교묘해지는 마약 밀수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 과장은 해외 관세청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역량으로 한국의 엑스레이 판독전문요원을 꼽았다. 현재 339명인 판독전문요원은 장기간 쌓인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하루 수십만 건의 특송 화물과 수하물이 엑스레이 검색기를 통과하면 3초 안에 의심점을 찾아낸다. 신 과장은 “엑스레이 검색 화면을 통해 비정상적인 음영을 판별할 수 있다면 공간을 이용한 마약 밀수를 잡아낼 수 있다”며 “여행자 정보 분석을 통한 마약 밀수 적발에 특기가 있는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 세관에서도 배우고 싶어 하는 역량”이라고 말했다. 이날 만난 ‘밀리’처럼 현장을 누비는 마약 탐지견도 지난해 전체 적발 건수(704건) 가운데 11.9%에 이르는 84건을 적발하면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신 과장은 “일부 ‘보디 패커’는 마약 탐지견이 다가오기만 해도 큰 불안감을 보이면서 적발되기도 한다”고 했다. 전체 세관 직원들이 마약 적발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문화도 뚜렷하게 자리를 잡았다. 전국의 공항과 항만에서 하루 평균 2건씩 마약이 적발되는 상황을 보면서 세관 직원들 모두 ‘나도 마약을 적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수상한 가루가 보인다면 주저 없이 마약 성분 분석을 의뢰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감시를 뚫고 실제 국내로 유입되는 마약의 양은 얼마나 될까. 신 과장은 국내로 반입되는 마약의 양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국내의 마약 도매 가격이 해외에 비해 수십 배 높은 상황을 통해 한국으로의 마약 밀수가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고 추정할 따름이다. 그는 “국내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필로폰의 경우 1회 투여량이 0.03g이기 때문에 1kg의 밀수를 적발하지 못하면 3만3000회의 투약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셈”이라며 “직원 모두가 ‘마약 단속 요원’이라는 생각으로 밀수 차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인천=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2050년 전 세계에서 가동되는 원자력발전소가 최대 1000기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산업 발달로 글로벌 각국의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최근 부활 기미를 보이는 국내 원전 업계에도 큰 수출 시장이 열린 것이다. 원전 업계는 체코에 이어 폴란드와 영국 등에 원전 수출을 추진하며 글로벌 시장 선점에 적극 나서고 있다. 1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앞으로 원전 산업이 ‘고(高)성장’한다면 2050년 전 세계 원전 발전용량은 890GWe(기가와트일렉트릭)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 439기의 발전용량이 395GWe인 것을 감안하면 2050년까지 최대 550기의 원전이 추가로 건설되는 셈이다. 이미 지난달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건설을 검토 중인 원전은 344기에 달한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국내 원전 업계는 해외 원전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9일부터 22일까지 2박 4일간 체코를 공식 방문한다. 24조 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신규 건설 사업이 최종 계약까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한-체코 간 원전 동맹을 구축하겠다는 게 이번 방문의 핵심 목표다. 민관 연합의 ‘팀코리아’는 폴란드와 영국,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의 원전 건설 수주에도 나설 계획이다. 업계에선 앞으로 신규 원전 시장이 기존 대형 원전보다 발전 용량과 크기를 줄인 소형모듈원전(SMR)으로 재편되는 만큼 SMR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차세대 SMR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신속하게 관련 규정이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英-폴란드에 원전 수출 기대… 美 설비-동남아 시장도 커져[新 원전 르네상스, 다시 뛰는 K-원전] 〈상〉 글로벌 원전 시장 ‘활짝’AI發 전력수요 늘며 ‘脫탈원전’… 전세계 총 432기 건설 확정-검토발전기 등 핵심 설비 판매도 늘듯… 전문가 “교육-인력 등 정부 지원을”“원자력발전소 내 A구역 작업자는 유지 보수 업무 시 안전에 유의해 주세요.” 작업자가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안내 음성이 나온다. 중앙 통제실에선 작업자의 몸에 부착된 카메라로 360도를 살펴보며 실시간으로 주의사항도 전달한다. 현재 원전에선 중앙 통제실과 현장 작업자 간의 소통은 별도의 장소에 마련된 유선 전화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무선 통신을 도입하면 전혀 다른 업무 환경이 펼쳐진다. 12일 찾은 경기 광명시 일신EDI 연구실에서 확인한 ‘원전 전용 무선통신 시스템’이 가져올 미래 원전의 모습 중 하나다. 이 시스템은 2020년부터 한국수력원자력과 일신EDI가 공동 연구해 지난해 말 개발했다. 시스템 개발 이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운영사 ‘나와(Nawah)’부터 미국 전력연구원(EPRI)까지 문의가 끊이질 않고 있다. 안혁태 일신EDI 대표는 “고온, 고압, 내방사선, 내진 등 극한 상황에 맞춘 모든 규격을 통과했다”며 “해외에서 운영 중인 원전은 물론이고 향후 예정된 신규 원전도 시스템 수출을 논의 중인 곳이 여럿”이라고 말했다. 올 7월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해외 원전 수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수년간 침체됐던 전 세계 원전 시장이 향후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2030년 10기 원전 수출’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목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K원전 르네상스… 미국, 동남아 수출 가능성↑18일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전은 총 64기다. 88기는 건설 계획이 확정됐고, 344기는 신설을 검토 중인 상황이다. 한국이 수출에 공을 들이고 있는 유럽에서도 영국(2기), 스웨덴(2기), 폴란드(3기) 등이 원전 건설을 확정했고 미국도 향후 원전 13기의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불었던 세계적인 ‘탈원전’ 바람은 다시 ‘탈탈원전’으로 돌아서고 있다. 인공지능(AI) 붐으로 전력 수요가 급등하면서 값싼 가격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탄소 배출량까지 적은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국내 원전 업계에선 신규 원전뿐만 아니라 원전에 들어가는 발전기 등 핵심설비 수출 역시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등 기존 원자력 발전 선진국들은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공급망이 붕괴돼 원전 기기 제조 역량이 부족하다. 대신증권은 ‘원자력 밸류체인 재건과 한국 원자력의 수혜’ 보고서를 통해 “미국과 한국은 노형 수출에서는 경쟁 관계이지만 주기기 및 보조기기 제조에서는 협력 관계”라며 “매년 3∼5기의 원전이 추가로 필요한 미국이 한국의 고객사가 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적기 시공능력으로 글로벌 원전 시장 선점”유럽뿐만 아니라 원전에 소극적이던 동남아시아로의 원전 수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태국 정부는 이달 공표하는 국가에너지계획(2024∼2037년)에 소형모듈원전(SMR) 도입을 포함할 계획이다. 이미 후보지 선정을 위해 관계 기관이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도 2030년대 초 원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K원전 르네상스’가 도래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이미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정해진 예산으로 적기 시공)’ 능력으로 높은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만 앞으로 전 세계 원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원전 산업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호 서울대 원자력미래기술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원전 운영, 건설, 설계, 후행주기 등 전(全)주기적 경쟁력이 필요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 인력, 교육체계 등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올 5월 중국은 하이난성 창장 원자력발전소에 위치한 소형모듈원전(SMR) ‘링룽 1호’의 시험 가동에 돌입했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SMR로 주목받는 링룽 1호는 2026년 정식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가 2030년 SMR 실증단지 완공과 상업 운전을 목표로 기술을 개발 중이다. 1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35년 전 세계 SMR 시장 규모는 약 6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을 연구하는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는 2050년에는 SMR이 전체 신규 원전의 50%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차세대 원전으로 평가되는 SMR 기술 개발을 두고 강대국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2028년까지 혁신형 SMR(i-SMR) 개발을 완료하고, 203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은 이미 2012년 SMR 기술의 일종인 ‘SMART’를 개발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표준설계인가를 받았다. 다만 SMR 개발을 위한 각종 법규와 제도는 추가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i-SMR 개발 완료까지 4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i-SMR 같은 종류의 원전을 반복적으로 짓기 위해 필요한 표준설계인가는 아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신기술인지 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지부터가 불명확한 것이다. 원전을 설치할 때 각종 주민 보호대책 수립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방사선비상계획구역(EPZ)의 범위 역시 SMR만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SMR 관련 규제를 유연하게 하면서 기술 개발을 뒷받침하는 미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심형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SMR은 신기술이기 때문에 ‘안전이 입증된 기술’만을 적용하려는 기존 규제 체계와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며 “개발이 다 끝난 뒤에 판단하는 방식 대신에 개발 단계별로 협의하는 규제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경북 울진군의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이 신청 8년여 만에 허가를 받았다. 신한울 3·4호기는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2017년 10월 건설이 중단된 바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2일 제200회 회의를 열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안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이번 건설 허가는 한국수력원자력이 2016년 1월 건설 허가를 신청한 지 8년 8개월 만에 이뤄졌다. 이로써 한국은 2016년 6월 새울 3·4호기(당시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이후 8년 3개월 만에 새 원전을 짓게 됐다.신한울 3·4호기는 전기 출력이 각각 1400MW(메가와트) 용량인 가압 경수로형 원전(APR1400)으로 현재 운영 중인 새울 1·2호기, 신한울 1·2호기와 설계가 동일하다. 2016년 1월에 건설 허가를 신청했지만 1년여 만인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의결하면서 사업이 중단됐고 건설 허가 심사도 중지됐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2022년 7월 건설사업 재개를 선언하면서 심사가 다시 시작됐다.원전 생태계 복원 신호탄, 12조 일감 생겨… 원전 3기 추가 건설신한울 3·4호기 8년만에 건설허가… 文정부 탈원전에 4개월만에 중단尹정부서 다시 건설허가 절차 밟아… 고사 직전 원전업계에 단비 역할“부지 81% 매입”… 오늘 공사 재개신청 8년 만에 건설허가를 받으면서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가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의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총사업비가 11조7000억 원에 이르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앞으로 10년 이상에 걸쳐 지속적으로 일감을 공급하면서 고사 직전에 몰렸던 국내 원전업계의 숨통을 틔울 것으로 기대된다. 2038년까지 최대 3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정부 계획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돼 국내 원전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원전 생태계 복원의 상징… 이미 터 닦기 진행 중”신한울 3·4호기는 2016년에 이미 건설 계획을 확정하고 용지 선정과 환경영향평가까지 마친 원전이었다. 하지만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착수한 지 4개월 만에 건설이 중단됐다. 현 정부 들어 원전 건설 재개로 정책 전환이 이뤄져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진행하고 건설허가 절차도 다시 밟아 왔다.한국수력원자력은 즉시 본관 기초 굴착과 함께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한수원은 13일 신한울 3·4호기 건설 부지에서 관계사 임직원들과 함께 명품 원전 건설, 안전한 일터 조성을 다짐하면서 공사 재개에 나선다. 최일경 한수원 건설사업본부장은 “원전 생태계 복원의 상징으로 불리는 신한울 3·4호기가 이번에 건설허가를 받은 만큼 책임감을 갖고 최고의 안전성을 갖춘 원전으로 건설하겠다”고 말했다.신한울 3호기는 2032년, 4호기는 2033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정식 공사에 앞서 정부의 실시계획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터 닦기 공사는 이미 진행 중”이라며 “이달 5일 기준으로 신한울 3·4호기 부지의 약 81%도 매수가 끝난 상태라 빠른 공사 진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울 3·4호기의 주요 설비 공사 계약은 이미 완료된 상황이다. 종합 설계는 한국전력기술이 담당하고 주기기 공급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맡게 된다. 시공은 현대건설과 두산에너빌리티, 포스코이앤씨 등이 진행할 예정이다.● 원전업계에도 대규모 일감으로 ‘단비’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내 원전 생태계에는 자연스럽게 대규모의 일감이 공급된다. 약 2조9000억 원 규모의 주기기 건설 과정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협력업체들과 계약을 맺게 되고 약 2조 원 규모의 펌프, 배관, 케이블 등 보조 기기 계약도 준공 시점까지 순차적으로 발주된다.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고사 직전까지 갔던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고, 원전 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우리나라의 원전 산업에 대한 대외 신뢰도를 제고해 향후 체코 원전 수주를 비롯한 원전 수출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경북 울진군은 5일 한수원 한울원자력본부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과 관련해 지역 업체 참여 방안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본격적인 공사 착수로 울진 지역 경제에도 버팀목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국내 원전 업체들은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다. 원전 보조기기 생산과 납품을 담당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탈원전 정책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원전 관련 신규 수주가 ‘올스톱’ 상태였다”며 “과거에 수주한 기기들의 개·보수 작업을 진행하면서 회사를 겨우 운영해왔는데 신한울 3·4호기 공사를 계기로 새로운 일감을 따내면 매출 증진 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2016년 6월 새울 3·4호기(당시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이후 8년 3개월 만에 새 원전 건설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정부의 추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5월 공개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는 2038년까지 최대 3기의 원전을 새로 건설하고 2035년부터는 대표적인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본격적으로 발전에 활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전기본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담긴 것은 2015년 이후 9년 만이다.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새울 3·4호기가 곧 준공될 예정이어서 국내 원전업계의 일감이 완전히 끊어질 위기였는데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원전업계의 인프라와 시설, 인력 등을 유지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것”이라며 “11차 전기본 실무안 계획 이행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봤을 때도 우리 원전 산업의 신뢰를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경북 울진군의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건설이 신청 8년여 만에 허가를 받았다. 신한울 3·4호기는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2017년 10월 건설이 중단된 바 있다.원자력안전위원회는 12일 제200회 회의를 열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안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이번 건설 허가는 한국수력원자력이 2016년 1월 건설 허가를 신청한지 8년 8개월 만에 이뤄졌다. 이로써 한국은 2016년 6월 새울 3·4호기(당시 신고리 5·6호기) 건설 허가 이후 8년 3개월 만에 새 원전을 짓게 됐다.신한울 3·4호기는 전기 출력이 각각 1400MW(메가와트) 용량인 가압 경수로형 원전(APR1400)으로 현재 운영 중인 새울 1·2호기, 신한울 1·2호기와 설계가 동일하다. 2016년 1월에 건설 허가를 신청했지만 1년여 만인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의결하면서 사업이 중단됐고 건설 허가 심사도 중지됐다. 이후 이번 정부가 2022년 7월 건설사업 재개를 선언하면서 심사가 다시 시작됐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세종=김도형기자 dodo@donga.com}
정부가 종신형 개인연금에 적용하는 분리과세율을 기존의 4%에서 3%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매년 1500만 원의 연금을 종신 수령할 경우 16만 원 이상의 세금을 추가로 아낄 수 있도록 해서 장기 수령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퇴직금을 20년 이상 장기연금으로 받을 경우에도 추가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한다.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은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장기연금 수령을 유도하고 국민들이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개인연금에 대한 적극적인 세제 지원에 나설 방침”이라며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현재 개인연금은 세액 공제를 받은 기여금과 운영 수익이 연금 수령 시점에 연 1500만 원 이하인 경우 저율 분리과세를 적용한다. 확정형으로 수령하면 나이에 따라 70세 미만은 5%, 80세 미만은 4%, 80세 이상은 3%의 세율을 적용하고 종신형 수령에서는 4%(80세 이상은 3%)의 세율을 적용한다. 정부는 이 같은 소득세법을 개정해 종신형 수령의 경우 세율을 3%로 낮추기로 했다.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때부터 확정형의 최저 세율과 동일한 세율을 적용해 종신형 개인연금 선택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매년 1500만 원의 연금을 종신 수령하는 경우라면 기존에는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66만 원의 세금을 내야 했지만 앞으로는 49만5000원만 내면 되기 때문에 연 16만5000원의 절세가 가능해진다. 최 부총리는 “퇴직소득을 개인연금 계좌에 불입할 경우 20년 이상 수령하면 세금을 50% 감면하는 구간을 추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현행법상 근로자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지 않고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가 매겨지지 않고 이연된다. 이 세금은 실제로 연금을 수령할 때 10년 이하는 이연된 퇴직소득세의 70%, 10년 초과는 60%만 분리과세하고 있는데 20년 초과 구간은 이보다 더 낮은 50%를 분리과세하겠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퇴직금 3억 원을 개인형퇴직연금(IRP)에 납입해 1700만 원의 퇴직소득세가 전액 이연된 근로자가 매년 1000만 원씩의 연금을 수령할 경우 20년 이후 연 37만4000원(지방소득세 포함)인 세금이 30만8000만 원으로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이 같은 조치를 최근 정부가 공개한 국민연금 개혁과 맞물려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의 성공 여부에 이번 세제 혜택도 연동돼 있는 것이다. 한편 이날 최 부총리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1∼6월)에 상속세 체계를 현재의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법안을 제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현재는 상속되는 유산 전체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상속 받는 사람 각자의 실제 상속 금액에 따라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과세표준 산정에서는 실제 상속재산 분할 결과를 최대한 반영하는 방식을 우선 검토하고 상속인별 공제액 규모는 현재 공제액을 감안해 따로 설정할 계획”이라며 “빠르면 내년 상반기에 유산취득세 법률안의 국회 제출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지난달 전국 가정집의 전기요금이 1년 전보다 평균 7500원씩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가장 긴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에어컨 등 냉방기 사용이 늘어 전력 사용량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9일 한국전력은 지난달 주택용 전기의 가구당 평균 사용량이 363kWh(킬로와트시)로 지난해 같은 달(333kWh)보다 9.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달 주택용 전기요금은 가구당 평균 6만3610원으로 1년 전(5만6090원)보다 13.4%(7520원)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전기요금 인상 폭이 사용량 증가 폭보다 더 큰 것은 주택용 전기에 사용량이 많을수록 전기요금을 무겁게 매기는 누진제를 적용한 결과다. 한전은 7, 8월 가정용 전기요금의 경우 ‘300kWh 이하’ ‘301∼450kWh’ ‘450kWh 초과’ 등 3구간으로 나눠 위로 갈수록 요금을 더 무겁게 매기고 있다. 지난달 전기요금이 1년 전보다 증가한 가구는 76.2%였다. 요금이 1만 원 미만 증가한 가구(973만 가구)가 전체의 38.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1만∼3만 원 증가한 가구(710만 가구)가 28.2%로 그 뒤를 이었다. 전체 2522만 가구 중 22.6%를 차지하는 569만 가구는 오히려 지난달 전기요금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달 가구당 평균 사용량을 기준으로 보면 일본과 프랑스의 전기요금은 한국의 2배 이상이고 미국은 2.5배, 독일은 3배 수준”이라고 밝혔다.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모든 미국 수입 제품에 1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겠다.”(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지난 수십 년간 가장 강한 ‘바이 아메리칸’(미국산 우선 구매) 원칙을 만들겠다.”(민주당 정강 정책)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차기 미국 행정부의 대외 통상 기조는 지금의 미국 우선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흐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치 지형의 격변에 따라 한미 양국 간 경제, 통상 부문의 불확실성도 함께 커지는 양상이다.● “트럼프, 한미 FTA 개정 요구 가능성” 트럼프 후보는 올 7월 발표한 공화당 정강 정책을 통해 통상 분야의 미국 우선주의를 분명히 했다. 특히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외국산 제품 전반에 10%의 ‘보편적 기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공화당은 무역흑자 규모에 따른 보복관세 부과도 정강 정책에서 당 방침으로 못 박았다. 이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대미 무역 흑자국을 상대로 무역협정 개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실제로 어떤 카드를 꺼내 들지 불확실하다는 점을 가장 큰 위험으로 꼽고 있다.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후보의 보편 관세는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슈지만 물가 상승 우려 때문에 실제로 어떤 식으로 활용될지 불분명하다”며 “결국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무역에서 결과적인 균형을 추구하면서 미국이 적자를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뚜렷한데 우방국도 배려하지 않는다는 기조가 더해지면서 한국에 어떤 정책을 펼칠지 점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해리스 통상 정책, “바이든보다 급진적” 평가 민주당은 지난달 발표한 정강 정책에서 ‘바이 아메리칸’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너무 오랫동안 미국의 통상 정책은 중산층 일자리를 해외로 보내고 우리의 공급망을 훼손하는 방향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해리스 후보는 현재 21%인 법인세율을 28%로 높이겠다고 했다. 미국 법인세는 외국 법인에도 동일하게 부과되기 때문에 현실화된다면 한국 기업들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어떤 방식으로 계승할지 불명확하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해리스 후보가 조 바이든 대통령에 비해 젊고, 급진적인 성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 불확실성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혜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공급망을 분리하지 못하면 약속된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무역 흑자 공격과 친환경 이슈 대응 준비해야” 우선적으로는 자동차를 비롯한 미국 전통 산업에서의 무역 흑자 문제 대응과 친환경 에너지 활용 확대 등이 중대한 과제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집권한다면 자동차와 철강, 석유화학 등이 가장 우려되는 산업”이라며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판매량을 늘리고 있지만 미국 차는 한국에서 팔리지 않는다는 점을 앞세워 한국의 무역 흑자를 공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US스틸이 일본 기업에 인수되는 문제가 대선 이슈로 떠오르면서 철강재 역시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수출 규제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여 전 본부장은 “해리스 후보가 승리한다면 민주당은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를 보다 강하게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유럽연합(EU)이 이미 시행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미국판 정책이 시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제품 생산 과정에 발생한 탄소의 양을 측정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해 미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면서 세금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세종=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올 7월 말 취임한 강민수 국세청장이 최근 주요 간부 인사를 마무리 지으면서 2만 명 국세청 직원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상황. 최근 내부 감찰 강화로 조직 다잡기에 나선 강 청장이 인사로 엄정 과세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인데요. 세무 업계에서는 얼마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 인사가 강 청장의 속마음을 잘 보여준다고 얘기합니다. 대기업과 대형 사업장이 집중된 서울에서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은 세무 조사에 착수하기만 해도 이목이 집중되는 이른바 ‘기업 저승사자’인데요. 강 청장은 이 4국장 자리에 세무대 출신의 국세청 과장급 간부였던 김진우 역외정보담당관을 발탁했습니다. 2013년 이후 10년 넘게 행정고시 출신만 부임하던 자리에 “조사에 진심”이라는 평가를 받는 세무대 출신 간부를 처음 낙점한 것입니다. 고위공무원 전보가 아니라 승진으로 이 자리를 채운 것도 이번이 최초였습니다. 취임사에서도 “일 하나는 제대로 하는 국세청”을 외쳤던 강 청장의 이번 인사를 놓고 국세청에서는 팬데믹 기간 유연성에 방점을 찍었던 과세 행정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팬데믹 이후 경제 위기 국면이 이어지면서 국세청도 민생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까지의 과세 행정 기조였는데요. 이에 따라 국세청은 2019년 1만6008건이었던 세무조사를 매년 축소해 지난해 1만3992건까지 줄였습니다. 하지만 팬데믹이 종식되고 올해도 20조 원이 훌쩍 넘는 세수 결손이 우려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제는 세정의 방향성을 바꿀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해 344조 원에 이르는 국세 수입 중에서 세무 조사를 통해서 거둬들인 세수는 3%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정예 인력을 총동원해 세무 조사를 늘려도 실제 세수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세청의 ‘엄정 과세’ 기조는 공정 과세의 가장 중요한 기반일뿐더러 납세자 신고를 토대로 하는 주요 세수를 늘리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아 보입니다.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2024 에이팜쇼’는 1일 오전 10시 박람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관람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귀농·귀촌 노하우와 농촌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공유한 설명회에는 미리 준비한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이목이 집중됐다. 또 전국 66개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귀농·귀촌관에는 실제로 농촌에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관람객과 지역 특산물을 살펴보고 구매하는 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입에는 지역 특산물, 귀에는 귀농 노하우 1일 입장 가능 시간이 20분 넘게 남았는데도 행사장 입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선착순 100명에게 에이팜 마켓에서 지역 특산품, 전통주 등을 구입하면 50% 할인해 주는 할인권을 증정하는 데다 사전 신청을 하지 못한 프로그램들에 참여하기 위한 관람객들이 몰린 것이었다. 박람회에는 지역 특산품과 색다른 전통주를 구매하기 위한 관람객들도 끊이질 않았다. 전북 남원시에서 안터원목장을 운영하며 직접 생산한 우유로 만든 치즈와 요구르트를 소개하고 판매한 황인원 씨(42)는 “지난달 31일 하루에만 매출이 200만 원을 넘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1일 두 아들과 함께 에이팜쇼를 찾은 김효정 씨(41·여)도 “당장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자체 부스를 돌면서 아이들이 책으로만 보던 전국의 특산물을 눈과 입으로 직접 경험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이틀 동안 릴레이로 진행된 귀농·귀촌 설명회와 ‘농담(農談) 토크 콘서트’는 농촌 전문가들의 순도 높은 조언으로 실속을 채웠다. 지난달 31일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귀농·귀촌 설명회의 강사로 나선 최민규 농촌공간 대표는 “농업을 목적으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한 귀농인은 각종 세금 감면이나 연금 및 건강보험 관련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농업인은 농촌에 내려가도 별다른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귀농·귀촌 전부터 농업인 자격을 갖추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평균 1억7000만 원 정도의 자본금으로 진행되는 귀농·귀촌은 여러 지자체의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도 설명했다. 강의 내내 질문을 던지거나 메모를 하던 관람객들은 강의가 끝난 뒤에도 최 대표를 붙잡고 귀농·귀촌 노하우를 물었다. 전남 고흥군으로의 귀촌을 고민 중이라는 최성희 씨(64·여)는 “1시간 30분의 강의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해서 들었다”며 “내년에 교수 생활을 은퇴한 뒤에 남편과 제2의 인생을 위해 귀촌해도 되겠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농촌 세컨드하우스, 공유로 단점 극복” 이틀 동안 진행된 ‘농담 토크 콘서트’도 농촌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관심을 모았다. 다채로운 시골 공간을 소개하면서 구독자를 42만 명 넘게 모은 유튜브 채널 ‘오지는 오진다’를 운영하는 유튜버 김현우 씨와 정태준 씨는 1일 무대에 올라 농촌 빈집을 매입할 때는 꼭 마을을 찾아 이장이나 부녀회장을 만나보라고 조언했다. 김 씨는 “시골집은 아파트와 달리 매물을 부동산에 올리는 대신 이장님을 통해 거래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이장님을 직접 만나면 마을 분위기와 환경까지 간접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나만의 세컨드하우스 만들기’를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연 박찬호 클리 대표와 김범진 밸류맵 대표는 소유 대신 공유로 농촌 공간을 누리는 방법을 소개했다. 농촌 빈집을 공유형 세컨드하우스 상품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플랫폼을 개발한 박 대표는 “관리 부담은 큰 반면에 사용하지 않는 시간이 긴 세컨드하우스의 단점은 공유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교통 좋은 무주군에 내려가 임업을 하고 싶은데 임야는 어떻게 구입할 수 있나요? 준보존산지와 보존산지 중에선 어떤 땅이 더 좋을까요?” 30일 ‘2024 에이팜쇼’ 제1전시장의 ‘귀농·귀촌관’을 찾은 강기정 씨(55)는 전북특별자치도 부스에서 무주군의 임야와 주변 환경, 경영 가능 여부 등에 대해 세세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무주군 관계자가 10여 분에 걸쳐 종이에 임야별 특징을 써 내려가며 장단점을 설명했다. 강 씨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 뒤 두 달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다음 달 10일 무주로 내려가 직접 임야를 살펴보겠다는 계획을 잡았다.● “전원주택 물색하려 3년 연속 찾아” 2016년부터 귀농·귀촌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강 씨는 “떠도는 정보는 많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정확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며 “(이번 에이팜쇼는) 농촌에서 ‘내 밥벌이를 할 수 있느냐’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66곳이 80개의 부스를 마련한 귀농·귀촌관에는 강 씨처럼 꼭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는 ‘귀농·귀촌 지망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기 과천시에서 온 원모 씨(61)는 이날 사과로 유명한 경북 청송군 부스에서 상담을 받으며 “청송에서 기를 수 있는 사과의 종류가 뭐냐” “귀농 체험 신청은 어떻게 하면 되냐”며 연신 질문을 던졌다. 청송군 관계자는 ‘청송 황금사과’로 유명한 시나노골드 품종을 추천하면서 재배한 사과가 잘 팔리지 않을 경우 청송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 씨는 “퇴직 후 노후에 대해 고민이 컸는데 귀농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며 “다양한 지자체의 귀농 정보를 한 장소에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경기 여주시 부스에서 귀촌 상담을 받은 이돌 씨(74·경기 용인시)도 “수도권 내 조용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 만한 곳을 알아보려고 에이팜쇼를 3년째 찾고 있다”고 말했다. ● “농촌유학으로 아토피 안심학교 찾아오세요” 제2전시장에 처음으로 마련된 농촌유학관에는 감성과 창의력을 길러 줄 수 있는 농촌학교 유학에 궁금증을 가진 학부모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6세 된 아들과 함께 전남도교육청 부스를 찾은 설은희 씨(41·여)는 “농촌 유학에 관심이 있지만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며 “교과 과정 대신에 농업을 주로 공부하느냐”란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정다정 전남도교육청 주무관은 “일반 교과 과정과 지역 특성에 맞는 생태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된다”며 “섬진강과 지리산을 끼고 있는 구례군이라면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과 강을 느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에이팜쇼에는 전북과 서울도 농촌 유학관을 마련했다. 전북은 특화형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앞세웠고, 서울은 전남 전북 강원과 연계해 경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전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진안군 조림초등학교의 아토피 안심학교 프로그램처럼 자연, 생태, 사회, 역사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기업이 운영하는 임대주택에 세입자가 2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기업형 장기임대주택’이 2035년까지 10만 채 공급된다. 주로 개인 집주인들이 전월세 공급자 역할을 하던 민간 임대 시장에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취지다. 임차인들로서는 전세사기 우려 없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 선택지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일각에선 기업들이 수익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임대료가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28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신유형 임대주택 공급 방안을 발표했다. 법인이 100채 이상 규모로 장기 임대주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의무 임대 기간을 기존 10년에서 20년으로 늘리면 임대료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 핵심이다.가격 규제를 없애면 기업들이 수요에 따라 수영장, 식사 제공 등 서비스를 확대해 경쟁력을 키울 여력이 생길 수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는 효용을 다했다”며 “어쩔 수 없이 전세금을 못 돌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 이런 추세가 구조적으로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제도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국토부는 관련 민간 임대주택법 개정안을 다음 달 발의할 계획이다. 20년 장기임대주택은 기존 10년 임대주택과 달리 임대료를 주거비 물가 상승률보다 더 올릴 수 있고, 세입자가 바뀌면 임대료를 시세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유형은 정부 규제와 지원 정도에 따라 자율형, 준자율형, 지원형 등 3가지로 나뉜다. 자율형은 임대료 규제를 받지 않는 대신에 정부 지원을 최소한만 받는다. 준자율형은 임차인이 20년 가운데 계약을 갱신하는 2년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할 수 있고 임대료 인상률 5% 상한이 적용된다. 그 대신 기업은 지방세 감면 혜택과 저금리 기금 융자 지원을 받는다. 지원형은 준자율형이 받는 규제에 더해 초기 임대료가 주변 시세의 95% 이내로 제한되고 무주택자 우선 공급 의무가 생긴다.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모델은 앞서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된 ‘뉴스테이’의 확장 버전이다. 2015년 정부는 임대료와 관련된 모든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8년간 의무 임대 기간을 둔 ‘뉴스테이’를 내놓았다. 당시엔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임대료 제한을 두지 않는 점이 논란이 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의무 임대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면서 초기 임대료를 시세의 95%로 제한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기업을 중심으로 민간 임대주택 시장이 형성돼 있다. 한국은 규제 등 영향으로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표 사업자인 SK D&D는 서울에서 ‘에피소드’라는 브랜드로 총 2200채를 공급하고 있다. 정부가 공급하겠다고 밝힌 장기 임대주택 10만 채도 전체 임대주택 시장(863만 채)의 1.1%에 불과하다. 일본이 전체 임대주택의 60% 이상을 다이와리빙 등 임대 전문기업이 공급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관건은 기업들의 참여 여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자금을 장기 투자로 운용하는 보험사에도 임대주택 투자를 허용하고 건전성 기준을 완화해 주기로 했다. 다만 주택 공급이 늘더라도 임대료가 상승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편 이날 정부는 지방의 미분양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양도소득 과세특례를 추진하기로 했다. 비수도권의 미분양 주택을 취득해서 5년 이상 임대하면 시가를 활용해 5년간의 양도소득 가운데 절반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이다. 대상은 이날부터 내년 말까지 취득한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85㎡ 이하) 및 취득가액 6억 원 이하 주택이다. 이번 조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토부는 또 내년 예산안 발표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규모를 지난해보다 50% 많은 7500채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를 활용해 피해자에게 첫 10년간은 무상으로, 다음 10년간은 시세의 30% 수준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