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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찐 우정’ 친구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마음 든든하고 위로를 받는다. 연락을 자주하고 못하고를 따지지 않는다. 챙겨주고 아니고를 계산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져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서로를 피한다. 연락하는 것조차 그에게 피해를 주는 일로 여겨져서다. 차원이 다른 배려다. 인생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 잘 산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살면서 친하다는 지인들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 조건 없이 곁에 있어주는 그가 소중하다. 가장 바라는 일이 그의 인생이 술술 풀려나가는 거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조금 도와주고 끌어주면 금상첨화다. 배우 조상구(70)와 장세진(60)의 관계가 이에 해당한다. 어디에서든, 누구를 만나든 둘은 서로를 가족이라고 소개한다. 두 사람은 2002~2003년 전 국민이 열광했던 인기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의 ‘히어로’였다. 조연이었지만 주연들을 살리면서 시청률 고공행진을 견인했기에 주역이나 다름없었다. 조상구는 전국 최고의 주먹, 시라소니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살린 명품 연기로 화제가 됐다. 찰진 이북 사투리와 비장한 격투 연기가 압권이었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순간 시청률이 치솟기 일쑤였다. 요즘도 그의 시라소니 연기 장면은 짤(인터넷에서 도는 사진, 짧은 영상, 그림 등을 이르는 말)로 SNS 등에서 회자된다. 영상물에 달린 댓글 대부분은 칭찬이다. 시라소니 역할에 한해서는 대체 불가한 배우라는 것이다. 조상구 역시 자신의 인생 캐릭터로 꼽는다. 조상구는 그의 예명이고, 본명은 최재현이다. 그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이현세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이장호 감독이 만든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이하 외인구단ּ1986년 작)을 통해서다. 이현세 작가의 고향 친구라는 인연이 영화출연으로 이어졌다. 외인구단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이 조상구다. 그리고 이후 그의 예명이 됐다.장세진은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했던 영화학도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연기를 하기 시작한 뒤 액션 영화에 종종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다 〈야인시대〉로 드라마에 데뷔했다. 당초 그에게 맡겨진 역할은 하야시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연기에 자신이 없었던 데다 일본인 역할이라 감독님에게 정중하게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맡게된 배역이 김두한의 오른팔이자 친구인 문영철이었다. 중저음 목소리에 190cm 가까이 되는 큰 키, 괜히 눈 마주치면 바로 고개 숙일 수 밖에 없는 인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 잡았다. 기대 이상으로 맡은 역할을 소화하자 그의 출연시간은 당초 계획된 분량을 훨씬 넘어 계속됐다.이달 11일 약속장소에 나타난 장세진은 드라마와 달리 얼굴에 살이 붙은 모습이었다. 미리 도착했던 조상구는 그를 보자마자 “나는 ‘문영철’ 얼굴이 너무 멋있었다. 지금 얼굴은 별로야”라고 타박하면서도 반가워했다. 실제 온라인 정보 공유 사이트 검색란에 ‘장세진’을 입력하면 그를 두고 리암 니슨, 리처드 기어를 닮았다는 댓글이 적잖다. 실물을 보면 꽤 닮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어떻게 문영철을 하게 됐나요.“하야시 캐스팅 제안을 거절하고 며칠 후에 조감독에게 전화가 왔어요. 감독님께서 할 말이 있다고요. 다른 배역을 맡을 것이라고는 생각 안하고 편하게 만났어요. 그런데 문영철을 제안하더라고요. 6회 정도 나온다고 해서 ‘제가 연기를 모르니 잘 알려주셨으면 한다. 감사하다’고 받았죠. 참 연기 편하게 했어요. 고인이 되신 장형일 감독님에게는 ‘연기 못한다고 뭐라고 하시면 안 된다’고 농담도 하면서 찍었어요.”(장세진)“장 감독이 작은 아버지나 다름없었잖아.”(조상구)“실제 감독님이 제 작은 아버지하고도 동갑이셨어요. 의견을 다 들어주셨죠. 농담으로 극중에서 여자친구도 없이 버틴다고 했더니, 나중에는 진짜 (조)여정이를 여자친구로 만들어주셨어요. 주인공인 (김)두한이 여자만 있으면 됐지, 극중에서 문영철의 여자가 왜 필요했겠어요. 하하. 첫 촬영 때는 카메라 쳐다보지 말고 대사만 외워 하라셨어요. 대본 리딩도 안 시키셨어요. ‘그래도 연기를 배워야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 ‘하던 대로 해요’라고 물리치세요. 그래도 편집이 기가 막히게 잘 되어서 나갔죠.”(장세진)“세진이는 적응을 잘하는데 저는 그러질 못했어요. 감독님이 말하면 저는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였어요. 그런데 세진이는 감독님한테 ‘아버지, 아버지’ 라고 해요. 너무 부러웠어요.”(조상구)“형님, 제가 왜 그랬는지 아세요? 뭔가 바라는 게 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합니다. 그저 감독님에게 고마운 마음만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죠.”(장세진)- 원래 계획 분량과는 달리 청년 시절의 김두한(안재모 분)에서 해방 이후 장년의 김두한(김영철 분)으로 넘어가는 2부에도 등장을 했잖아요. “바라는 게 없었으니 감독님이 또 기회를 주신 거죠. 문영철이 2부까지 나올 이유가 없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1부에 등장했던 김두한 친구들이 전부 빠지면 모양새가 안 좋다. 알아서 멋있게 정리해줄테니 더 하자’고 그러시더라고요.”(장세진)〈야인시대〉는 후반부로 접어들기 직전 조상구와 장세진은 촬영장에서 만났다. 사실 두 사람은 훨씬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하지만 중간 공백이 길었다. 둘의 우정에는 ‘시즌 1’과 ‘시즌 2’가 있다. 둘이 〈야인시대〉를 통해 다시 재회를 했는데, 조상구가 예전 장세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40년 전 만났다가 20년 전 또 만난 ‘우리’ - 어떻게 된 사연인가요. “1985년인가, 제가 한양대 (연극영화학 전공) 다닐 때였죠. 학교 정문 앞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었어요. 형님도 거기에서 운동을 하셨어요. 그러다 만난거죠. 그때엔 형이 배우인지 몰랐어요. 제가 체육관 관장님하고 친했고, 형님도 잘 아셔서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부르게 됐죠. 제가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하고 말을 섞지 않을 때였어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어요. 형은 그 때도 느낌이 남달랐어요. 멋있었고, 제가 좋아했죠. 말도 많이 하고요.”(장세진)“나는 세진이 얘가 깡패인줄 알았어요. 하하.”(조상구)이후 장세진이 배우로 데뷔하면서 연락은 끊겼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두 사람은 〈야인시대〉에서 만났다. 하지만 당시 조상구는 장세진을 기억하지 못했다. - 정말 모르셨어요?“시라소니로 캐스팅이 되고 촬영장에서 세진이를 만났는데 그냥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요. 보자마자 나는 속으로 ‘인사를 먼저 해야 겠다’는 생각 밖에는 안 들더라고. 인상이… 보통이 아니잖아요. 하하. 평소 저는 나이가 적어 보이는 사람에게 ‘아이고,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하거든요. 세진이한테는 공손하게 두 손 모으고 ‘안녕하세요’라고 했어요. 하하. 그랬더니 세진이가 ‘제가 형님 밑입니다. 말씀 낮추세요’라고 해요.”(조상구)“저는 형이 캐스팅 된 걸 알고 있었어요. 형이 나를 못 알아봐서 서운하다는 생각은 안 했고요.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형의 느낌이 그대로 있었어요.”(장세진)“정말 무서웠어요. 하하. 고마운 건 김두한 패거리들 중에 세진이가 가장 먼저 와서 인사해줬다는 거예요. 〈야인시대〉에 나오기 전까지 8년을 놀았습니다. 그런 저를 알아봐주니 얼마나 고마웠겠어요. 처음 보는 사람으로 인식했지만 세진이는 역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포스’가 달랐어요. 그래서 더 빨리 친해지지 않았나 싶어요.”(조상구)“대학 때 봤던 형의 느낌과 기운을 형이 그대로 갖고 나타나주니까 반가웠죠. 내친 김에 두한이 패거리 배우들을 전부 형한테 소개시켜줬죠.”(장세진)“항상 세진이가 촬영장에서 이 관계, 저 관계 정리를 다해줬어요.”(조상구)● 연락처 5번째로 저장한 ‘조상구’ 그리고 20여년이 훌쩍 지났다. 한 번 붙은 인연은 이후로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을 계속 정리하다보니 저의 휴대폰 연락처에는 전화번호가 12개 밖에 없어요. 저장한 순서가 있습니다. 제 아내, 부모님, 그리고 형이 있고요, 그리고 5번째 이름, 보이죠? 상구 형 번호입니다.”(장세진)“와! 정말? 감동인데. 세진이는, 저도 처음 얘기하는데, 동생이 아니라 평생 친구죠.”(조상구) “형을 5번째에 올려놨다는 것, 그만큼 저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겁니다.”(장세진)“감동의 연속이네. 저는 개인적으로 힘들 때 세진이한테 전화를 안 했어요. 세진이가 ‘형, 왜 연락 안했냐’고 이러쿵저러쿵 할 수도 있죠. 저는 굳이 그런 얘기 할 필요가 없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동생인데 내가 힘들다는 것을 알려주면 듣는 본인도 힘들지 않겠어요?”(조상구)매사 정리가 확실한 장세진을 조상구는 있는 그대로 믿어준다. 동생의 결정과 판단을 존중하고 무조건 따라간다. 장세진은 이에 대해 “내 옆에 이런 형님이 있다는 자체가 복”이라고 했다.- 오늘 보니 형이 신중하게 동생 배려를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예를 들어 어디 같이 갈 곳이 있으면 형한테 ‘몇 시쯤 나오세요’라고만 해요. 그런데 형이 못 가고, 안 간다는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반대로 형은 저에게 꼭 의견을 물어봅니다. 저는 안 물어보죠. 그래도 형이 언짢아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 형은 늘 저에게 ‘괜찮냐, 가능하겠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농담으로라도 반항할 기회를 안 줘요. 하하.”(장세진)- 이런 형이 다 있을까 싶습니다.“100% 신뢰감을 받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짠합니다. 곱고 고운 형님의 마음들이 저한테 쌓여 많이 묻어 나와요. 감동입니다.”(장세진)조상구는 오른쪽 눈 시력이 좋지 않다. 망막의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수정체가 터져 대규모 안과 수술도 두 차례나 받았다. 아직도 완치된 것은 아니어서 수술을 한 번 더 받아야 한다. 후유증으로 오른쪽 얼굴을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 그는 독서광이었다. 연기를 안 할때면 책을 끼고 살다시피했다. 알려진 대로 영화 번역 일도 오래 했다. 국내 개봉 명작들이 그의 섬세한 번역을 거쳤다. 책과 번역 일에 집중하다보니 눈을 혹사하게 됐고,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그는 장세진에게 알리지 않았다. 걱정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작은 수술한다 정도만 알고 있었죠. 얘기를 듣고 얼굴은 편한 적 했지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정말 상구 형은 신사입니다. 형이 그동안 살면서 고통이 왜 없었겠어요. 그래도 늘 수양하면서 흐트러지지 않고 겸손합니다. 남한테도 의지하는 일도 없이 사세요. 그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참 괜찮은 사람을 내가 좋아하고 있구나’하는 뿌듯함이 커요.”(장세진) ● 100% ‘조상구’ 연기가 보고 싶다둘은 연기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웃고 신이 난다. 연기는 곧 둘의 삶, 인생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연기에 대해서 공감하는 교집합이 많다. 그래서 만나면 집요하게 연기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떠든다. -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와 문영철이 격투를 벌였다면 어떤 장면이 나왔을까요. 예전 운동도 같이 했던 사이였으니 예상 못한 캐릭터가 나왔을 수도 있겠어요. “상대도 안 되죠. 붙었다면 드라마 그 회가 저에게는 마지막 회가 됐겠죠. 문영철이 무조건 한 방에 죽는 상황입니다.”(장세진) “모르지. 감독님이 너를 아꼈으니까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었다고 봐.”(조상구)- 형의 연기는 어떻습니까.“일단 저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말해두고요. 상구 형은 ‘색깔’을 갖고 있어요. 그 색깔을 전부 가져다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형이 아직 못 만났다고 봐요. 사람들이 아는 형의 색깔은 〈외인구단〉의 조상구, 〈야인시대〉의 시라소니죠.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형이 역할에 맞춘 거라고 봐요. ‘인간 조상구’, ‘사람 최재현’을 온전히 담는 작품이 나왔으면 합니다. 그럴려면 꼭 주인공을 맡아야 해요.”(장세진)그는 주인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조연은 ‘서포터’입니다. 배우 리암 니슨만 해도, 리암 니슨 자체가 곧 〈테이큰〉 입니다. 형은 주인공으로 충분히 자신을 연기할 준비가 돼 있어요.” - 형이 주연을 해야 했을 작품이 있었다는 얘기로도 들립니다. “먼저 (최)재성이는 제 친한 동생이라는 것을 말해 둡니다. 참 바르고 사람 좋고 흠 잡을 데 없는 친구예요. 그 동생을 폄하하는 게 아니고요. 〈외인구단〉에서 ‘까치’ 배역은 최재성이 아니라 조상구가 맡았어야 했어요. 형이 조상구 역할을 분명 잘 했습니다. 그런데 까치 캐릭터는 상구 형이었어요. 상구 형이 까치를 맡았다면….”(장세진)“쫄딱 망했을 거다. 하하.”(조상구)“망했을 수도 있겠죠. 재성이가 당시 워낙 스타였으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안 망하고 ‘외인구단 = 최재현’의 신드롬이 생겼을 수도 있을 거예요.”(장세진)조상구는 장세진의 말에 고개를 한참 끄덕이다 한 마디 덧붙였다. “연기에 대해서 겸손하고 싶은데, 시라소니도 저하고 잘 맞아 떨어졌던 겁니다. 누가 어떻게 하라고도 안 했어요. 감독님이 저한테 전적으로 맡기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연기했어요. 처음에는 이북 사투리를 흉내내기 바빴지만 나중에는 연구를 해서 연기를 했죠.”- 조상구의 시각에서 조상구는 어떤 배우일까요. “색깔은 개성이죠. 주인공을 맡기면 잘하겠지만, 우리는 ‘쌈마이’ 배우예요. 요즘에는 ‘별 볼일 없는 3류 배우’라는 의미의 은어로 쓰입니다만, 원래 ‘쌈마이’ 배우는 얼굴이 잘 생기지 않은 배우를 의미해요.”(조상구)“ 저기 형님, ‘우리’라는 표현은 빼주세요. 하하.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다고 하세요.”(장세진)“외국에서도 유명 배우가 아니더라도 메소드 연기(배우가 극중에서 자기에 완전 몰입해 하는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 많아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세요. 형사로 나오든, 할아버지로 나오든, 서부극에 나오든 그 사람은 그냥 클린트 이스트우드잖아요. 역할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배우가 아니라는 거예요. 한 마디로 자기를 연기하는 배우라는 겁니다. 로버트 테일러, 타이론 파워 등도 자기 생긴대로 연기한 배우였어요. 미키 루크도 그래요. 매력 있는 얼굴 그대로 작품에 나왔잖아요. 특별하게 연기를 잘 한 건 없는데 자기를 연기했어요. 미키 루크 역할 중에 기억나는 것 있나요? 〈나인 하프 위크〉에서도 미키 루크가 맡은 배역 이름이 기억 안 나잖아요? 마찬가지에요. 항상 저는 저를 연기하고 싶거든요. 내 것을 100%로 펼쳐서 주어진 역할을 만들어가는 겁니다.”(조상구)- 〈야인시대〉의 시라소니는 조상구다? “남들은 시라소니라고 하지만 저예요.”(조상구)- 동생(정세진)은 주인공을 해야 나를 연기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불행하게도 조연급입니다. 얼굴 자체가 주연급이 안 돼요.”(조상구)“형은 그래요. 하하.”(장세진)“진짜 저는 임성민(1995년 작고)하고 연기하면서 주연의 꿈을 안 꿨어요. 버렸죠.”(조상구)“형님, 잘 생기고 못 생기고를 따져서 배우를 나누면 요즘 ‘노땅’ 취급 받아요. 하하. 잘 생긴 배우가 있으면 ‘멋있는’ 배우도 있다 정도로 해야죠. 멋있다는 표현이 맘에 안 들면 ‘죽이는’ 배우 같은 표현도 쓸 수 있잖아요. 연기자에 대한 최고의 평가요? ‘멋진 배우’라고 생각해요.”(장세진)“그런가. 정말 아까 네가 차에서 점퍼를 걸치면서 내리는데, 속으로 ‘이 자식은 항상 멋있네’라는 생각이 들었어. 장세진의 아우라가 확실히 나오더라고. 가공하지 않은 자기만의 매력, 저는 이것이 멋있는 배우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우리가 때를 못 만난 것 같아. 하하.”(조상구)●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 동생과의 만남이 인생작일 수도…” 장세진이 보기에 조상구는 하고 싶은 연기에 대한 확실한 철학이 있다. 그렇지만 욕심을 드러내지 않고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런 형을 정세진은 자극하고 싶다. 그래야 본인도 연기 갈증이 생길 것만 같아서다. “저는 배우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잖아요. 처음 연기할 때도 감독이 대사 안 시킬테니까 ‘미안한데 그냥 서 있기만 해라’고 했어요. 쉽게 연기를 했고 노력을 안 했죠. 그래서 작품이 안 들어와도 미련이 크지 않았어요. 그런데 상구 형을 보면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내가 나와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볼 수 있는 작품도 만들고 싶습니다. 요즘 채널은 많잖아요. 물론 형이 등장하셔야죠. 지금까지 작품은 ‘조상구’ ,‘최재현’을 보기 위한 밑밥이었다고 봅니다.”(장세진) - 인생작을 기다리는 마음은 어떠합니까. “저는 ‘문영철’ 의 연장 선상에서 연기를 하겠죠. 연기를 제대로 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100% 제 모습으로 역할을 채울 준비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연기에서 삶의 진솔한 면이 약간은 묻어나겠죠.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세월도 겪고요. 그런데 형님은 완전히 다를 겁니다.”(장세진)“저한테는 얘 밖에 없어요. 예전에도 다른 사람들이 세진이 연기에 대해서 어쩌고 저쩌고 해도 나는 세진이만 보면 정말 ‘죽인다’, ‘멋있다’라는 생각 밖에 안 들어요. 세진이는 세진이를 연기할 겁니다. 얘가 뭘해도 저는 그렇게 여길 거예요. 세진아, 우리 괜찮은 캐릭터야. 빠지지 않아. 나보고 안타깝다고 했잖아. 그런데 너도 연기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았을거야. 인생작을 만나야 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야. ”(조상구) - 연기 의지만 봐도 두 분이 서로에게 더 집중할 것 같습니다. “각자 현실을 살아가면서 힘든 부분이 있겠죠. 그렇지만 둘 사이에는 관계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0.000….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에게서 ‘최재현’이 더 묻어 나왔으면 해요. 그래서 솔직히 상구 형 외에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장세진)● 함께 찾을 ‘우리’의 새로운 존재감동생의 계속되는 칭송에 조상구는 “살아가는데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 둘이 함께 채우고 살자”며 손을 잡았다. 조상구는 장세진이 자신의 연기에 대해 자신감을 더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문영철’ 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전한 선한 영향력과 희망까지 너무 깎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한 때 장세진은 자신의 연기를 남에게 내세우기 주저했다.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사람들이 ‘문영철’로 알아보고, 사인을 해달라는 것에 적응이 힘들었다. 그런 관심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조상구가 보기엔 지나친 겸손이다. - 정말 그런가요?“저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팬들이 사인을 해달라면 해드리고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미치겠고, ‘오버’하는 것 같아 싫더라고요. 사인 요청 받으면 ‘진짜 배우가 되면 해줄게요’라며 사양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알아봐주시고 거기에 호응을 해드리는 것이 삶의 활력, 원동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답답해졌어요. 정직하지 못했으니까요. 연기를 아예 안하고 다른 길로 갔으면 이런 기분이 절대 안 들었겠죠. 연기를 못하는데도 배우가 된 것이 팩트지만 그게 다른 한 편으로는 ‘핑계’였어요. 배우가 되고 수많은 기회가 왔는데 노력을 안해서 못 살렸잖아요. 미친듯이 연기를 잘하려고 했다면 지금 덜 부끄러웠을텐데 말이죠. 이런 저와 형을 비교해보니 안타까움이 더 큰 거죠.”(장세진)“이제 우리의 영향력을 활용해서 도전을 해보자고. 나는 이용할 자신이 있어. 그렇게 생각해야 해.”(조상구)문영철을 보고 환호했던 사람들도 많고, 통쾌해 했을 시청자도 많았으니 장세진이 다른 연기로 더 사랑받을 수 있고, 더 주목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장세진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실제 본인이 체감하는 것보다 문영철의 캐릭터와 그 역할을 소화한 장세진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문영철’로 인생의 활력과 원동력을 얻었다며 감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다. 그래서 예전에 더 잘할 걸, 더 보여줄 걸, 더 노력할 걸 그랬다는 생각에 아쉬움도 적잖다. - 문영철 이름을 누군가 반갑게 불러주던 순간에는 자신의 연기 인생이 안타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겠죠?“아는 친한 동생의 아버님이 위암 수술을 받으신다고 해서, 수술 전날 인사드리러 집에 갔었어요. 그런데 아버님이 방에서 나오시면서 저를 보더니 ‘문영철, 야! 문영철’ 이러시면서 제 손을 잡고 좋아하시는데 제가 오히려 감동을 받았어요. 제 연기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이 아예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내가 위로를 해드리려고 갔다가 위로를 받았어요. 그 동생이 아버지가 80세가 넘으시도록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처음 봤답니다. 동생한테 그랬죠. ‘내가 아버님께 고맙다’라고요. 정말 큰 보상을 받은 것만 같았습니다.”(장세진)“내가 갔으면 더 좋아하시지 않았겠나. 하하.”(조상구)“당연하죠. 시라소니하고는 상대가 안 되니까.”(장세진)두 사람은 이제 평생 가지고 갈 대강의 인생 방향을 정했다. 여기에 연기 갈증만 해소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시라소니와 문영철이라는 캐릭터의 인지도를 활용하면서 그간 채우지 못한 연기 갈증을 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장세진이 “그동안 너무 갈증나게 살아왔다. 연기를 제대로 하고 싶어 목이 마른데 콜라만 많이 마신거다. 순간은 시원하지만 금방 갈증이 또 생긴다. 지금은 물을 많이 마셔야할 때”라고 하자 조상구는 “표현이 기가 막히다. 그래서 내가 장세진을 좋아해”라고 맞장구를 쳤다. - 연기에 대한 목마름은 역시 형이 조금 더 커 보인다. “제가 배우는 배우인가 봐요. 일본 배우 키타노 타케시가 한 쪽 얼굴이 마비된 연기를 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정지 장면에서 저런 표정이 나올까 감탄했었죠. 그런데 제가 요즘 키타노 타케시의 표정이 나오는 거예요. 눈 수술한 오른쪽 얼굴은 안 움직이고 반대 쪽 얼굴은 웃을수 있어요. 한 쪽에서 미소가 돌 수 있잖아요. 한 쪽은 싸늘한데 다른 쪽은 환한 느낌이 살아 나오는 거죠. 거울을 보다보니 그런 제 얼굴이 딱 키타노 타케시가 되어 있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작품을 찍으면 이 얼굴을 써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님이 저를 아프게 해놓고 마지막으로 연기에 써 먹으라고 주신 것 같아요. 하하.”(조상구)“형. 눈이 회복돼야 일도 하는 거지, 무슨 말씀이세요.”(장세진)“세진아. 내가 얼마나 긍정적이냐.하하.”(조상구)일반인들이 쉽게 말 걸기 어려워하는 동생과 주변사람들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 형이 운명같이 만나 서로를 오랜시간 관통하고 있다. 동생은 형을 웃으며 품고 온갖 세상 얘기를 해댄다. 그러다 혼도 내고 심하면 꾸짖기도 한다. 그런 동생 때문에 형도 웃고 말을 한다. 친구 같아져버린 동생이 무엇을 하자면 무조건 따르는데 이날 만큼은 용기를 내 먼저 제안해본다. 연기 말고 같이 하고 싶은 게 또 하나 생겼기 때문이다. “세진아, 우리 매일 아침 들기름 한 숟갈씩 먹어보자. 건강에 좋대.”“아 눈물 나네, 날아다니던 시라소니 형님이 이제 건강 챙기실 때가 됐나. 하기야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던데, 그래요. 먹어봐요.”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학생들이 총장과 함께 산길을 걸으며 수다를 떠는 수업이 있다고?보통 대학에 가서 총장 얼굴 볼 일이 4년 동안 몇 번이나 있을까. 기껏 입학식이나 졸업식, 축제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총장을 매 수업 때마다 만나 길을 함께 걷는 대학수업이 있다. 총장은 수강생들의 이름을 모두 안다. 어디에 살고, 어떻게 중고교 시절을 보냈고, 현재 고민이 무엇인지 등도 줄줄이 꿴다. 수업에는 교수들과 외부인들도 참여해 학생들의 멘토가 되어 준다. 수강생들의 반응도 좋다. 대학이 아직 낯선 24학번 새내기들도 첫수업만에 총장과 교수, 다른 과 동기, 선배들과 친해졌다. “어른들과 말을 섞고 땀 흘리며 소통하는 자체만으로 기분 좋다. 무작정 듣고 배우는 게 많다. 수강하길 잘했다”며 만족해한다. 진로 고민이 컸던 3~4학년들은 “총장, 교수, 멘토들에게서 맞춤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제주대 총장-학생 함께 올레길 걷고 눈높이 대화 수업 큰 호응제주대가 올해 도입한 무전공 수업 ‘제주 올레길과 자아성찰’의 얘기다. 이 수업은 교육부의 무전공·학과 벽 허물기 등과 같은 학생모집 광역화 정책 기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획됐다. 1학점 짜리로 수강 인원은 30명. 강의실에서 앉아서 듣는 수업은 아니다. 제주의 여러 올레길을 걸으며 교수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내용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졌다. 총장과 학교 주요 보직 교수들이 수업을 같이 하며, 이 대학을 졸업한 분야별 선배들도 멘토로 참여한다. 시험이 없고, 평가도 없다. 내가 어떠한 존재이고,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지를 깨닫는게 목적이다. 학생들은 수업 후기를 자유롭게 써내기만 하면 된다. 수업은 김일환 총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치열한 입시 경쟁를 겪으면서 지칠대로 지친 학생들에게 확 트인 제주 자연을 접하면서 자기의 잠재적 재능을 발견하고, 우리로 사는 가치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잖았지만 김 총장은 밀어붙였다. “제주대에는 섬 밖 외지인 학생들도 많이 옵니다. 중·고교 때 부모님의 관리를 받으며 혼자 공부한 친구들입니다. 이들이 집하고 먼 이곳에까지 와서 혼자 지내며 다시 고립되더라고요. 고립되는 건 요즘 대학생들 모두의 문제입니다. 막연하게 대학을 와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야하는지 혼란스러워합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지난달 29일 올레길 6코스(쇠소깍다리→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첫 수업을 한 데 이어 이달 5일에 올레길 9코스(대평포구→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서 두 번째 수업이 진행됐다. 이날 수업에는 강철웅 부총장도 따라나섰다. 제주대 출신 제주테크노파크 임직원들도 선배 멘토로 참여했다. 한 선배 멘토가 “제주테크노파크가 봉급을 많이 준다. 선배들을 언제든지 찾아와 주세요”라며 분위기를 띄우자 학생들은 환호로 반겼다. “수업 두 번 만에 꿈 찾았다” 학교에서 출발지까지 버스 두 대가 동원됐다. 김 총장은 학생들이 탄 버스에 올랐다. 한 마디라도 학생들과 대화를 더 하기 위해서다. 생명공학부 학생에게 “오늘 내 짝꿍이냐”며 반갑게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수업을 통해 학생뿐만 아니라 김 총장도 얻는 게 많았다. “대학 상담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솔직한 얘기를 안 하고 숨어버립니다. 그런데 밖에서 만나 ‘놀멍, 쉬멍, 걸멍(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의 제주도 방언)’하면서 아무 말이나 하자고 하니 허심탄회한 대화가 되더군요. 역시 진로와 대인 관계 고민이 컸습니다.” 김 총장은 올레길 코스 트래킹을 하는 동안 수업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과 대화하려 애썼다. 먼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제주도 바다 전경이 보이는 곳에 도착해서는 학생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먼저 권하기도 했다. 수업에 참여한 다른 교수들도 전공 분야 진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듯 상세한 답변을 쏟아냈다.김 총장과 교수들의 이런 노력에 화답하듯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자기 속내를 꺼내며 마음을 열었다. 김정도 학생(정치외교학과 4)은 “총장님하고 교수님, 멘토들과 자연에서 소통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다”며 “어디에서도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많이 했고, 단 한 번의 수업으로 막연했던 내 앞 날 방향에 대한 확신이 섰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제주도의 자연과 환경을 알리는 일을 할 생각이다. 새내기 이효웅 학생(물리학과 1)은 트래킹 중간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저의 진로를 찾았다”며 “홍주연 교수(미래교육과)님처럼 사람들과 재미있게 어울려 사는 교수가 되겠다”라고 외쳐 큰 박수를 받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로 관광융복합과의 새내기로 입학한 김순오 씨는 “올레길을 걸으면서 병이 나았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며 “다음 수업과 그 다음 수업에 참여하는 게 나의 꿈”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변방의 작은 교육 혁명이 큰 울림이 됐으면…”교외 멘토로 참여한 이들도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일행을 인솔한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길에서 길을 찾으라”는 말로 학생들에게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날 수업에는 주 제주 일본국총영사관 다케다 가츠토시 총영사와 주 제주 중국총영사관 왕루신 총영사도 참여했다. 이들은 수업 방식에 호평을 쏟아내며 유창한 한국어로 학생들과 대화하는 데 기꺼이 동참했다. 김 총장은 앞으로 한-중-일 대학생들이 올레길을 같이 걸으면서 소통하는 ‘런케이션’(배움의 Learn과 휴가의 Vacation을 합친 말)도 계획하고 있다. 또 학생들이 제주도 자연을 보고 걸으면서 솔직하게 털어 놓은 현실적 고민과 미래, 꿈 등에 관한 후기 등을 묶어 책으로 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교육부의 ‘글로컬 30 대학’ 지정사업에 재도전하는 제주대는 대학 내 전공벽을 과감히 허물고 학생의 학습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변화의 최우선 기조로 삼았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작업이 이번 수업이다.김 총장은 이런 노력들이 한국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우리 학생들이 피말리는 입시 경쟁 하에서 자기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없이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고 힘든 시간을 버텼는지,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필요한 공부를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교육이 먼저 학생들에게 인성과 자신감, 목표 의식을 분명하게 심어주는 방향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의 노력이, 제주도의 작은 ‘남풍’이 한국 교육에 큰 울림이 됐으면 합니다.”제주=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서울 구로구에 있는 경인고는 매일 아침마다 교내 체육관이 시끌벅적하다. 월~금요일까지 0교시에 배드민턴 수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을 하는데, 80여 명 정도가 참여한다. 원서윤 학생(3학년)은 “배드민턴을 하니 살이 찌지 않고 잘 체중 유지가 된다. 점심 식사도 잘하고, 수업 집중도 잘 된다.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을 보면 교실에서 잠을 안 자고 깨어 있다. 남학생들하고도 배드민턴을 쳐서 실력이 늘다보니 자신감까지 생겼다”고 했다. 김윤서 학생(3학년)은 “서윤이하고 친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배드민턴을 같이 하기 전까지는 다가가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단짝이 됐다”고 말했다. 불면증이 심했던 김이솔 학생(3학년)은 배드민턴 아침 운동을 하고 증세가 싹 없어졌다. 김 학생은 “배드민턴을 치고부터 잠을 정말 잘 잔다. 잠을 잘 자니 몸도 좋아지고 기분도 좋다”며 아침 운동에 매우 만족해했다. 경인고는 학생들에게 체육 활동을 적극 장려하는 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선임 체육 선생님인 이윤희 교사는 이전에 재직했던 등촌고, 상암고에서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농구 동아리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며, 면학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는 서울지역 초 중고에 재직 중인 여성 체육 교사 모임인 ‘원더 티처’ 결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원더 티처’에 가입된 교사들은 1주일에 한 번씩 경인고에 모인다. 이 교사에게 다양한 체육 수업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면서 자기 학생들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다. 0교시 체육 활동은 서울시교육청 주도로 2010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현재 전체 서울시내 초중고 가운데 절반 가량인 570여 학교가 참여한다. 이 교사는 “특히 여학생들의 만족도가 크다. 심지어 나중에 태어날 2세를 운동 선수로 키울 생각을 하는 친구도 있다. 자발적인 참여가 계속 늘고 있는데 건강한 학교 체육의 발전에 중요한 동력이 된다”고 말했다.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부터 학교 아침 운동을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해 ‘시즌2, 다시 뛰는 아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침 운동을 통해 사회성을 회복하고, 체력을 기르는 일을 평생 습관이 되도록 만드는 게 목표. 22일부터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교를 대상으로 아침 조식을 지원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성장기 학생들의 건강 증진과 면역력 유지, 학습력 증진 등을 위해서다.부산시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운영 중인 ‘아침 체인지(體仁智)’ 를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한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학교 규모와 여건을 고려해 오전 8~8시 50분까지 최소 20~30분 이상체육 활동을 하고, 원하는 요일에 걷기, 줄넘기, 전통놀이 등의 개인 종목과 축구, 농구, 배드민턴 등의 단체 종목 운동을 하는 게 핵심이다.‘아침 체인지’를 주도한 하윤수 부산시교육감은 체육 활동을 통한 건강한 교육 환경 조성과의 공로로 대한체육회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아침체인지에 참여한 부산지역 학교는 450개였는데, 현재는 580여 개로 늘었다.부산 남도여중은 아침 체인지를 적극적으로 운영하는 대표적인 학교이다. 아침마다 음악을 틀고 전교생과 교직원이 힐링 워킹이나 댄스, 탁구, 피구 등을 즐긴다. 부산 덕원중은 학교 조례와 1교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줄넘기와 달리기를 한다. 아침 운동에 한 번도 빠지지 않는 학생, 달리기에서 자기 기록을 넘어서는 학생에게는 학교에서 상품까지 준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부총장 김영)가 사이버보안 인재 양성을 통해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최민호)의 스마트시티 완성에 앞장서고 있다.세종시는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모빌리티 △에너지 △헬스케어 등 4차 산업혁명 신기술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데이터 정보보호 산업 육성을 위해 ‘사이버보안 분야 기회발전특구’를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이에 필요한 사이버보안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려대 세종캠퍼스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첨단 학과를 신·증설했다. 미래 핵심 성장동력인 모빌리티 산업 선도를 위해 자율주행 등 각종 공학 분야를 융복합한 글로벌 인재 양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지난해 8월에는 고려대 세종캠퍼스와 세종시, 영국 퀸즈대학교 벨파스트가 사이버보안 분야 인재 양성 및 연구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퀸즈대학교 벨파스트는 1845년 설립된 종합대학으로 영국 명문대학들이 소속된 러셀 그룹의 회원이다.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정보보안센터(CSIT)를 유치, 사이버보안 연구로 유명하다. 이번 협약을 통해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세종시의 특화산업을 이끌어 ‘미래전략수도 세종’ 구축에 기여할 인재를 배출할 계획이다.고려대 세종캠퍼스는 과학기술통신부가 주관하는 대학정보통신기술연구센터사업(ITRC) 사이버보안 분야에도 선정됐다. 이를 통해 사이버보안 신기술 확보는 물론 전문인력 양성과 데이터 보안산업의 스마트시티 거점 산업화 지원 및 ‘핵테온 세종’을 공동 주관한다.‘핵테온 세종’은 2022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국제 대학생 사이버보안 경진대회이다. 사이버보안 인재 발굴·양성 및 산업 육성이 목적이다. 스마트시티, 인공지능(AI) 사이버보안 신기술 등을 주제로 하는 국제 컨퍼런스와 기업기술(제품) 전시 및 채용박람회도 열린다.고려대 세종캠퍼스는 세종시와 상호협력하며 지·산·학·연을 아우르는 전방위 협력사업을 진행 중이다. 세종시의 안전하고 쾌적한 스마트시티 구축을 이끌고, 미래 인재 양성의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김영 고려대학교 세종부총장은 “사이버보안 대응 역량 강화 및 사이버보안 인재 양성과 발굴을 통해 세종시와 함께 미래전략수도 완성과 글로컬 대학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교육부는 최근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 2000명의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수도권(경인지역) 대학에 361명을 배정하고 비수도권 대학에 1639명을 배정했다. 발표에 앞서 국무총리는 의대가 없는 전남지역에 의대를 신설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에 전남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의과대학 신설을 기대했던 대학들은 크게 실망한 모습이다. 전국적으로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 평균이 2.2명이다. 반면 전남지역은 1.7명이다. 이번 정부 발표는 이처럼 의료취약지역에 대한 정부의 의대신설 방침을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의과대학 및 대학병원 설립·운영에는 약 1조 원이 넘는 재정지출이 예상된다. 그만큼 의대 신설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선정기준을 마련하고 투명한 심사절차를 거쳐야만 의료인력 육성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의대 신설 선정기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 없이 전남지역의 국립의대 신설 언급은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만으로 지역간 의료복지 불균형 해소는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주장하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취약지역에 대한 의대 신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의대 신설을 위해 명확한 선정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의사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의대가 없는 의료취약지역, 의대와 더불어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여부, 지역에 정주할 수 있는 의료인력 육성 등이다. 의대 신설을 희망하는 대학은 경기북부 대진대, 대전 카이스트, 충남 공주대, 전북 군산대, 전남 목포대·순천대, 경북 안동대·포항공대, 경남 창원대·창신대 등 10곳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대진대는 인구 1000명 당 의사수가 제일 적은 경기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대진의료재단은 현재 500여 병상의 분당제생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 1500여 병상의 동두천제생병원과 600여 병상의 고성제생병원도 건립 중에 있다. 여기에 의료취약지역에 정주할 수 있는 지역의사 양성, 군사 밀집지역의 군의관 육성 등과 같은 공공의료 성격의 의대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성신여자대학교(총장 이성근)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고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가 지원하는 ‘첨단산업기술 보호 전문인력양성사업’과 ‘기술보호 운영인력 전문화 지원사업’에 잇따라 선정됐다고 25일 밝혔다.‘첨단산업기술보호 전문인력양성사업’은 국내 첨단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지원하는 석·박사 인재 양성 사업이다. 성신여대는 이번 사업 선정으로 5년간 매년 3억 원(총 15억 원)을 지원받는다. 이를 통해 미래융합기술공학과와 융합보안공학 관련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며, 산업계 수요맞춤형 인재를 양성한다.이 과정에서는 첨단산업기술보안 위협탐지 및 예방과 사고대응 분석에 필요한 산업보안 전문인력 양성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프로젝트 기반 학습과 다학제 융합 전공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또 SK쉴더스, 안랩, 윈스, 지니언스 등 국내 유수의 정보보호 기업체와 국가핵심기술 및 산업기술을 보유한 다수의 기업 등과 협업도 진행한다. ‘기술보호 운영인력 전문화 지원사업’은 국가 핵심기술과 산업기술 보유기관의 산업 보안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되는 사업이다. 산업 보안 기획과 관리 등에 관해 전문화된 교육과정을 갖춘 국내 대학원이 대상이다. 성신여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기술보호 분야 교육의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선정된 4개 대학 가운데 여자대학으로는 성신여대가 유일하다. 성신여대는 앞으로 1년간 약 1억 5000만 원의 지원받아 융합보안공학과 산업보안전공 석사 과정으로 재직자 전용 특별 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입학한 대학원생에게 등록금을 지원하고, 국가 핵심기술 보유 기업과 반도체 및 제조업체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보호 실무를 중점으로 설계한 전문 교육 커리큘럼도 제공한다. 또, 정보통신분야 전문기업인 진인프라, 코어시큐리티 등 국가핵심기술 및 산업기술을 보유한 국내 유수의 기업들과 협업해 ISMS-P 보안컨설팅 및 보안지침문서 고도화 등 산학협력 프로젝트도 추진한다.이일구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및 미래융합기술공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의 발전에 따라 기술 유출 사고 대응을 위한 첨단산업기술보호 전문인력 양성이 중요해졌다”며 “두 사업을 통해 첨단산업기술보호 전문인력을 적극 육성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한편,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와 미래융합기술공학과는 2022년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ICT 혁신인재 4.0사업’에 선정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주관하는 ‘2022년 정보보호 특성화대학 지원사업’에도 선정되는 등 직무 중심의 정보보호 전문 인력 양성 및 우수 인재 배출에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인구 감소,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구인난,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까지….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영 환경은 혹독하다. 이에 많은 기업에서 키오스크, 디지털 사이니지, 서빙 로봇 등 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도입하며 경영 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영세한 소상공인에게 기기 초기 설치 비용은 큰 부담이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오영주)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사장 박성효)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스마트기술과 기기 등을 지원하는 ‘소상공인 스마트상점 기술보급사업’을 통해 소상공인 경영 개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서울과 천안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고위드짐’ 최슬기 대표는 스마트상점 기술보급사업으로 스마트 체형 분석기를 도입해 고객의 체형을 분석한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업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체대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최 대표는 2018년 9월 고위드짐을 개업했다. 초창기부터 늘 양질의 고객 관리를 최우선 가치로 뒀다. 최 대표는 효과적인 1 대 1 PT를 제공하기 위해 나름의 사업 체계를 잡아가며 치열한 헬스장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바로 체형 분석 분야였다. 운동 전후 비교를 위해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수기로 분석을 했는데, 좀 더 정확하고 과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봤다. 최 대표는 인터넷으로 스마트 체형분석기 제품을 알아보던 중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스마트상점 기술보급사업 안내 글을 보고 지원했다. 지원받은 제품은 모티피지오(motiphysio)였다. 이 제품은 골격에 대한 10가지 측정 지표를 제공하는 스마트 체형분석기다. 인공지능(AI) 기술과 빅데이터를 통해 몇 장의 간단한 사진 촬영으로 고객의 자세와 체형을 분석하고 맞춤형 결과 분석지를 제공한다. 스마트 체형분석기는 정면과 측면, 후면에서 촬영한 결과를 종합해 각도 변화량과 체형 등급 변화 등을 전반적으로 알려준다. 이 기기 덕분에 시각적인 분석 자료를 놓고 골반의 틀어짐이나 근육 불균형 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 체형분석기는 정확한 진단과 분석을 원하는 이 시대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입니다. 고객 소통이 한층 더 원활해진 것은 물론이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스마트 체형분석기 덕에 신규 상담이 10%가량 증가했고, 상담 고객의 등록률 또한 상승했다. 올해 최 대표의 목표는 직영점을 몇 군데 더 오픈하는 것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소상공인 스마트상점 기술 보급 지원사업은 테이블오더, 사이니지, 로봇,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등 11가지 항목의 기술을 세분화해 기기 공급가액의 70%(최대 1000만 원 한도)까지 국비로 지원한다. 사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스마트상점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사는 게 어렵고 힘들 때 먼저 연락하고, 밥이라도 사주고, 용돈이라도 손에 쥐어 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 고마움은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다시 살고 싶은 용기가 생길 수도 있다. 인생 밑바닥까지 추락해보면 주변 사람들의 실체가 보인다고 한다. 평생 가까이 지낼 사람과 정리하고 지워야 할 사람이 갈리는 타이밍이다. 이럴 때 자기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이 있다. 평생 은인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리포터이자 MC 조영구(56·영구크린 전무이사)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두 명의 가수 형님들에게 그렇게 불린다. 자신에게는 절대 돈을 쓰지 않는 걸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스스로를 ‘자린고비’라 말한다. 덕분에 연예계에서 ‘짠돌이’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몇 차례 사업에 실패했으나 2008년 ‘조영구 이름에 먹칠 하지 말자’는 각오로 시작한 청소 서비스, 포장 이사 사업은 관련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경쟁력 있는 업체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유독 평생 자기 것을 나눠주고 싶어하는 깐부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트로트 가수 이병철(58), 또다른 한 명은 1994년 국내에 농구 붐을 몰고 온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타이틀곡을 부른 가수 김민교(57)이다. 조영구에게 두 사람은 수학에서 ‘A=B=C’로 표현하는, 같은 집합처럼 여겨지는 존재다. 그런데 이병철과 김민교는 다르다. 자신들은 ‘조영구’라는 전체 집합에 속해 있는 ‘부분 집합’일분이라고 말한다. ● 거리로 나앉은 형에게 집을 내어 준 영구 “주머니에 10원도 없었어요. 휴대전화만 손에 있었죠. 그 때가 늦가을이었는데 두꺼운 옷 몇 개만 걸치고 공원에 하루 종일 멍하게 있다가 벤치에서 자던 기억 밖에 안 나요.”(이병철) 트로트 가수로 최근 사랑을 받고 있는 이병철의 ‘흑역사’ 시절 이야기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가족과 주변 사람과도 멀어져 세상 그만 살려고 할 때였다. 중년이 된 지금은 욕심이 과하게 생길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도록 마음을 컨트롤해주는 소중한 기억이다. 20대 초반 일본으로 음악 유학을 떠났던 그는 하고 싶은 음악 공부에 노래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돈도 꽤 벌었다. 그룹도 결성했다. 사업에도 뛰어들어 라이브카페를 6개까지 운영해봤다. 결혼도 했고, 아들도 얻었다. 잘 나갔던 일본에서의 삶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모두 깨졌다. 지인의 제안으로 한국에서 벌였던 사업이 크게 망한 것이다. 일본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이혼을 해야만 했다. 당연히 아들과도 교류도 끊어졌다. 노숙자로 거리에 나앉게 됐다. 세상 쓰레기가 된 처지가 어이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은 그는 세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2005년 말의 얘기다. “노숙자가 되니 알던 사람들이 피하더라고요. 그럴 때 오는 비참함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이병철)이 때 조영구가 인생 밑바닥에 쓰러진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둘은 1994년 무렵 연예인축구단에서 처음 만난 사이. 이병철은 “쫄딱 망해서 갈 데가 없었는데 영구가 전화를 해서 ‘형, 잠깐 집에 와봐’라고 하더라. 그래서 영구 집으로 갔는데 거기서 5년을 눌러 있었다”고 했다. -돈을 빌려 주는 것도 아니고 집으로 들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가진 것 없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서 일을 할 때, 병철이 형은 일본에서 돈을 조금 벌었거든요. 연예인축구단 초청도 하고, 저한테는 신발도 사주더라고요. 정이 많은 사람이었요. 특히 저한테 잘해줬죠. 그런데 이 형이 삶의 끈을 놓으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마포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을 때였는데 뒤로 안보고 무작정 형보고 들어오라고 했죠.”(조영구)-아무리 친해도 같이 살다보면 생활 습관도 달라 싸울 수도 있고요…. 형도 동생에게 얹혀사는 부담도 컸을 테고요. “같이 살면서 더 친해지려면 서로가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받기만 하면 누가 계속 도와주겠어요. 내 집에 사는데, 내가 어디 외출하고 오면 집이 지저분하고, 설거지도 안 돼 있으면 짜증이 나겠죠. 그런데 형이 고마웠어요. 집 청소도 다 해주지, 빨래해 주지…. 행사를 가면 운전도 해주고요. 형을 보고 사람의 관계라는 건 서로 노력을 해야 잘 유지가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냥 형이 우리 집에서 놀기만 하고 밥이나 달라고 했으면 꼴도 보기 싫었겠죠. 병철이 형은 늘 나한테 미안해 했고,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보였어요. 감동을 받게 하니 같이 살지, 안 그랬으면 어떻게 5년을 한 침대에서 같이 잤겠어요. 하하.”(조영구)-그래도 자신을 챙겨주는 동생이 있어서 무척 안심이 되고 뿌듯했겠습니다. “영구 어머님한테 죄송했죠. 어머니가 영구 집으로 오시면 반찬을 해놓고 가시거든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 오실 때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영구도 장가를 가야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고 미안해지더라고요. 안 되겠다, 나중에는 어머니가 오시기 전에 제가 미리 밖으로 나가 있었죠.”(이병철)“맞아. 저는 형이 집안 일을 해주니까 너무 좋은데, 우리 어머니가 형을 탐탁치 않아 했어요.형을 너무 편하게 생각하니까 장가를 안 간다는 이유였죠. 하하.”(조영구)거처는 해결이 됐지만 조영구는 이병철의 ‘벌이’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집에만 있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 형도 동생의 마음을 알아 챘다. 고마운 마음에 조영구의 운전 기사 노릇을 많이 했다. 그런 형을 조영구는 띄워주고 싶었다. 동생 덕에 이병철은 초대 가수가 아닌데도 즉석으로 노래를 부를 기회가 가끔씩 생겼다. “영구가 바람을 멋있게 잡아줘요. 그리고 메인 가수들이 오기 전에 저를 무대에 올립니다. 저는 신나게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불러 버렸죠. 잘 노는 무대 체질인데다 최선을 다해 몸을 던져 노래를 부르니 보던 사람들이 10만 원이든 20만 원이든 팁을 주더라고요.” (이병철) 동생은 형이 노래를 포기 안했으면 했다. 의지를 보고 싶었다. “형이 세상과 인연을 끊을 절박한 상황까지 갔으니까, 저로서는 무조건 이 형이 다시 노래를 하도록 돕고 싶었죠. 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작정 돈을 주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돈이 있으면 힘든 시간을 넘길 수는 있지만 잠깐입니다. 궁극적으로 형이 가수로 돈을 벌도록 하는 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행사가 있으면 같이 가자고 하면서 형을 무대에 올렸죠.”● “돈으로 도와주는 우정은 오래 못 가” -그러다 형의 음반을 제작해준 거군요?“내 노래가 있으면 무대에 올라가서 자신감도 생기고, 그러면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죠. 대접도 달라집니다. 이것이 병철이 형의 길이었어요. 그 길을 뚫어주고 싶었어요.”(조영구)“영구한테 고맙죠. 정말 행사장을 다녀보니 음반이 있고 자기 노래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무명 가수라고 해도 한 50만 원은 받아요. 그런데 다른 가수들 노래만 부르면 몇 곡을 불러도 10만 원도 못받습니다. 잘 아는 영구가 ‘형 음반은 하나 있어야 되겠다’고 밀어 부쳤죠. ”(이병철)그래서 조영구는 2007년 이병철을 중심으로 3인조 혼성그룹 ‘쓰리쓰리’를 결성하고 앨범 제작을 했다. 제작비를 다 댔다. 본인도 멤버로 합류했다. 같이 무대에 서주면 사람들이 이병철의 이름을 더 알아줄 것 같았다. 앨범이 잘 됐으면 더 좋았겠으나, 일단 동생 덕에 스스로 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문턱을 넘어갈 수 있었다. 동생의 지원으로 열심히 팔도를 누비는데 또 갈 곳이 없어졌다. 조영구가 결혼을 하면서 5년 동안 살았던 집을 나와야 했던 것. “영구 네가 나 앨범 만들어준다고 1억 4000만 원 까먹고, 그걸 만회하려고 주식 투자했다가 13억 원인가를 날렸잖아. 고마움의 연속인데, 영구가 결혼할 때 막상 내가 갈 곳이 없었는데 또 집을 마련해줬어요. 사실 영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서울 양천 쪽에 반 지하방, 보증금 500만 원, 월 40만 원 짜리 방을 얻었어요. 영구가 ‘형은 집 어떻게 하기로 했냐’고 물어봐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너나 결혼 준비 잘해’라고 했죠. 그런데 영구가 다음날 여의도에 아파트 전세 계약을 했더라고요. 저 때문에.”(이병철)“형이 갈 데가 없는데 월세방 구했다고 하니 또 마음에 뭐가 계속 걸렸죠.”(조영구)“저도 영구가 신경 쓰여서 빨리 월세방이라도 잡은 건데…. 신혼인데 아내한테도 잘해야 될 때라 신경끄라고 했죠. 영구는 와이프한테도 얘기 안하고 집을 잡아놨더라고요.”(이병철)“형. 그 당시 1억 원이면 큰 돈이에요. 하하.”(조영구)“맞아, 그런데 재밌는 게 또 있어. 원래 영구 마포 아파트로 처음 들어갈 때 사정이 힘든 작곡가 한 명을 데리고 갔어요. 그런데 여의도 들어갈 때는 한 명이 더 붙어 왔었어. 하하. 여의도 아파트는 방 2개에 거실이 있었잖아. 집을 옮기자마자 몇 번 안 본 연예 매니저가 전화가 온 거야. ‘여기 한강고수부지인데 어디 갈 데가 없다고 죽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또 데리고 들어 왔지. 외면할 수 없더라고. 영구 네가 ‘형, 일단 데리고 와’라고 해줘서 너무 고마웠었어.”(이병철)“하하. 여의도 집은 형한테 준거니까 알아서 하라고 한 거죠.”(조영구)“영구가 그렇게까지 배려해주는데 열심히 안 살 수 없겠더라고요. 영구에게 감사하면서 살았죠. 그런데 언젠가 민교가 ‘형, 나 아무리 혼자 해도 안 뜬다. 형이 행사를 많이 다니니까 같이 노래를 해보자’라며 도와 달라 그러더라고요. 별 수 있나요. 영구한테 받은 마음, 나도 써야 했죠.”(이병철) ● 전성기 다시 찾고자 노력하는 형들 … 동생이 평생 도와줘야할 이유 솔로 가수로 ‘미스터리’, ‘보고 싶다 내 사랑’, ‘오빤 강북 스타일’ 등을 꾸준하게 내놓다가 2016년 ‘인생 뭐 있나’는 곡으로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이병철은 2019년 ‘국민 MC’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아바타인 ‘유산슬’과 같이 한 예능방송에서 고속도로 휴게소 공연을 펼치며 존재감을 세상에 다시 한 번 알렸다. ‘고속도로 휴게소 싸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조영구의 도움으로 행사 전문 가수로 ‘홀로서기’는 제대로 했다. 동생 때문에 되찾은 감을 이제는 한 살 터울 동생 김민교를 위해 쓰고 있다. 김민교의 제안으로 둘은 그룹 ‘원 플러스 원(1+1)’을 결성해 한 몸처럼 활동 중이다. 2022년 첫 싱글 앨범 곡으로 발표한 ‘휴게소’는 제법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열심히 달렸다면 쉬어 여기서 놀다 가시게세상사 피곤하면 쉬어 어서와 맛 좀 보시게인생 바쁘다고 말하시지만 잠깐 쉼표 한번 찍자고 Oh Oh웃기만 해도 모자란 세상 인상 풀고 어서옵쇼내가 그대만의 휴게소 인생길 막힐 땐 휴게소내 님 달래줄 땐 휴게소 비비비 비비고 지지지 지지고난 너의 휴게소서산에 가면 어리굴젓 가평엔 잣 막걸리광천에 가면 새우젓 사천엔 왕 돈가스인생 바쁘다고 말하시지만 잠깐 쉼표 한번 찍자고 Oh Oh웃기만 해도 모자란 세상 인상 풀고 어서옵쇼내가 그대만의 휴게소 인생길 막힐 땐 휴게소귀에 쏙쏙 박하는 노래에 맞춰 둘은 고속도로 휴게소 공연에 특화된 가수 컨셉으로 밀고 나갔고, 조영구도 무릎을 쳤다. 조영구과 함께 연예인축구단에서 처음 만난 둘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희한하게도 비슷하다. 둘 모두 죽다 살아난 시점이 2005년 말이다. ‘마지막 승부’ 한 곡으로 스타가 된 김민교는 2005년, 11년 만에 가수로 복귀했다가 그해 12월 위암 선고를 받았다. 오랜만에 스타일을 바꾼 세미 트로트로 복귀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마지막 승부’ 에 이은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사느냐 죽느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마지막 승부’로 지상파 방송 가수상도 받았고 잘 나갔죠. 그 당시 병철이 형도 일본에서 좋을 때였거든요.”(김민교)“희한해. 민교가 암이 걸릴 무렵에 나도 노숙자가 돼 세상에서 떠나려고 했고. 신기하게 인생 궤적이 똑같았어요.”(이병철)지금도 둘은 엇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본다. 이병철은 “영구가 형들을 아직까지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을 보면, 나나 민교가 여전히 정상적인 인생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철은 “나도 크게 히트를 친 노래는 없고, 3곡 정도가 보통 수준으로 떴다고 말할 수 있다. 민교도 ‘마지막 승부’를 30년 가까이 우려먹고 있다. 하하. 그러다보니 다른 신곡을 발표했는데도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라고 했다. 같은 생각에 김민교는 형에게 SOS를 쳤고, 의기 투합을 해서 ‘원 플러스 원’이 탄생했다. 김민교는“병철이 형과는 에너지가 비슷하다. 그래서 같이 뭉치면 시너지 효과가 크겠다 싶었다”고 했다. -너무 오래 ‘마지막 승부’ 의 울타리에 갇혀 있던 건 아닐까요.“저나 영구가 보는 민교는 그런 성격이 아니에요. ‘나 옛날에 ‘마지막 승부’로 잘 나갔었는데 인정 안 해줘?’ 라며 어깨에 힘주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러니 저랑 ‘원 플러스 원’ 도 하죠. 빨간 양말도 신고 춤도 추잖아요. 고급스럽게 ‘마지막 승부’ 한 곡으로 평생 ‘가오’ 잡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여요. 민교가 혼자 이미지 바꾸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민교의 새로운 노래에 사람들이 귀를 열어주지 않더라고요.”(이병철)“혼자로는 벅차서 병철 형과 함께 둘이 ‘마지막 승부’를 넘는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해보겠다는 거죠. 형과 둘이 ‘마지막 승부’를 부르면 예전보다 더 힘있게 부르는 것 같아요. ‘내 전부를 거는 거야. 모든 순간을 위해~’ 라는 가사가 지금 저에게 해당되는 얘기인 듯 해요.” (김민교)● 자기 벌이를 3분의 1로 또 나눠 챙겨주는 동생듀엣이 나선 형들이 일을 더 할 수 있도록 조영구는 이제 자기 일도 똑같이 3등분한다. 돈도 똑같이 나눈다. “영구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 행사가 생기면 ‘원 플러스 원’을 끌고 가려고 해요.”(이병철)“예를 들어 행사 섭외가 왔는데 저한테 300만 원을 준다고 하면, 저는 셋이 가서 다양한 재미를 드릴테니 100만 원씩 받겠다고 하죠. 같이 행사하면 재밌고, 형들도 일하고 돈 벌어서 좋잖아요. 만약에 행사 주최 측에서 저희 비용을 못 맞춰준다고 하면….”(조영구)“저희가 열심히 해서 팁이라도 받아가겠습니다고 하죠. 하하.”(김민교)“영구가 가자고 하면 가는 겁니다.”(이병철)동생이 중심이 되서 죽이 잘 맞는다. -최근에 보니 무릎 줄기세포 광고에도 세 분이 나오던데.“공치사가 아니라 이 광고도 저만 찍기로 되어 있었어요. 1억 원을 받기로 했었죠. 그래서 또 똑같이 나눴죠.”(조영구)● 무연고 어르신 장례 봉사하려는 ‘우리’함께 해서 좋고 잘 풀리니, 다른 사람을 도울 마음도 커진다. 조영구나 이병철은 둘 다 어렵게 자랐다. 평생 노래를 하고 행사해서 돈 버는 것도 좋은데, 봉사로 받은 걸 돌려주고 싶어 한다. 당연히 김민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조영구는 18년 전 ‘행복나눔연예인봉사단’을 조직해 요양원, 경로당, 장애인 단체를 찾아다니면서 피자를 대접하고 위문 공연을 했다. 어르신들이 의외로 피자를 접해본 적이 없어 맞춤 봉사를 했다. 조영구는 피자 회사 모델을 하면서 받아야할 1억 원을 받는 대신 피자를 구울 수 있는 트럭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끌고 봉사를 다녔다. 취약 계층 어르신을 자주 접하다보니 이들에게 꼭 필요한 봉사를 또 하게 됐다. -앞으로 장례를 치러준다고 들었습니다. “불우한 어르신들을 보면, 자식들도 먹고 살기 어려우니까 손을 벌리지 못하셔요. 그래서 돌아가실 때가 되도 ‘나는 가족이 없다’고 하십니다. 무연고 어르신이 되는 겁니다. 서울시에서는 무연고 어르신에게 생활지원금이 나옵니다. 서울시에만 무연고 어르신이 18만 명이나 된답니다. 아셨어요?”(조영구)-무연고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면 장례는 어떻게 치를까요?“18만 명 어르신은 결국 자식이 장례 치를 능력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르신들이 알아서 자식들을 포기한 거 아니겠어요? 무연고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민간단체가 시신을 인수 받을 수는 없어요. 서울시 관할입니다. 서울시는 장례업체에 돈을 주고 의뢰를 하는 거죠. 그러면 장례업체는 시신을 모아 화장을 하죠. 저희가 양로원 등에 가면 어르신들이 ‘나 죽을 때 장례 치러줄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우리가 장례 지원을 해야겠다고 한 거예요. 이 얘기를 하면 어르신들이 엉엉 우세요. 어르신께서 ‘행복나눔 연예인 봉사단’에 장례 신청을 하고 자식 연락처를 주면, 저희가 전화를 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장례를 대신 치러드리겠다며 연락을 달라고 합니다. 연락이 오면 시신 화장 절차를 잘 밟아서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마무리해드리는 거죠. 연예인 봉사단이 자식까지 불러서 장례를 치러준다고 하면 마음이 편하실 거예요. 평생을 힘들게 사신 어르신들의 가시는 길이라도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 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죽고 난 이후 장례를 걱정하는 어르신들이 계속 눈에 밟혀요.”(조영구)24일 ‘행복나눔 연예인 봉사단’은 서울시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장례 지원을 위한 기금 모금, 후원 유치 활동에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조영구는 봉사단의 이사장으로, 이병철은 단장, 김민교는 부단장이다. 다음 달 2일 봉사단은 기부콘서트를 연다. 조영구는 “셋이서 고독사하는 어르신들의 ‘인간다움’을 꼭 지켜드리겠다”고 말했다. ● “영구를 지키기 위해 인기와 신용을 쌓겠다”연예인 최고의 마당발이라고 알려진 한 조영구에게는 소위 잘 나가는 스타 절친이 많을 것 같다. 이병철과 김민교도 넓은 인맥 중의 한 명으로 볼 수도 있다. 정작 조영구는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조영구는 연예 리포터로 각광을 받던 시절에 오히려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인들만 만나는 전문 MC였다. 리포터가 ‘조영구’여야 인터뷰를 하겠다는 톱스타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픈 속사정이 있었다. 연예 리포터로 할 일을 제대로 하면 할수록 그는 연예인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 조영구만 나타나면 연예인들이 자리 정리하고 피해다녔다고. 이 때부터 자기보다 어려운 동료, 후배들에게 마음을 쓰게 됐고, 순수한 이병철과 김민교의 풀리지 않는 삶이 너무 안타까워 자기 인생으로 끌어 들였다. -잘 나가는 톱스타들과도 오래 절친한 관계를 유지해왔을 것 같았는데….“1994년 SBS 전문 MC 공채 1기로 28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죠. 14번 방송국에 떨어지고 15번째 시험에 합격한 거였어요. ‘한밤의 TV 연예’라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는데 1년 동안 안 시켜줬어요. 1년 만에 기회를 받아서 첫 인터뷰를 하고 다시 기회를 안 줘서 힘들어 하고 있는데 3주 째에 서초동 법원으로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그 때부터 연예인들의 마약, 음주운전 등 사건사고 현장을 찾아다녔죠. 해당 연예인들로서는 좋지 않은 뉴스잖아요. 저는 신문에 난 것을 바탕으로 현장을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촬영하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톱스타 연예인들 사이에서 제가 연예인들의 뒤를 심하게 파헤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방송에서는 제가 사건사고 내용도 리딩을 하니까 오해는 더 쌓여갔고요. 이후로 연예인들이 저를 만나면 불편해하고 힘들어했어요. 사람들, 연예인들 많은 자리에서 제가 보도한 스타들한테 공개적으로 면박 당한 적도 많고…. 연예 프로 기능상 어쩔 수 없이 한 건데 그러면서 저도 위축이 되고 사람을 피하게 되더라고요”(조영구)-편하고 의지가 되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겠습니다. “잘 나가는 톱스타들과 매일 지냈다면 어렵고 힘든 사람들 보살피고 도울 여유가 없었을 거에요. 제가 얻은 유명세로 도울 수 있는 착한 동생, 선후배들이 보였어요. 병철, 민교 형 둘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고 착하니까 도와주고 싶었죠.”(조영구) -본인도 살면서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할 때도 있잖아요. 마음이 복잡한 상황도 생기고요. “힘든 건 스스로 많이 이겨냈죠. 예전에 주식으로 많은 돈을 날리고 힘들 때, 또 연예계 활동하면서 나에게 누명이 씌워질 때, 누구 붙잡고 술만 마셨어요. 억울하고 분해서. 그런데 몸과 정신이 무너지더라고요. 그 때 알았어요. 힘들 때 자꾸 무엇에 기대면 안 되겠더라고요. 이제는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 산에 가거나 교회 가서 한참 앉아 있곤 해요. 또 지하철을 타고 많이 걷기도 해보면서 마음의 정리를 해요. 결국 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나밖에 없다라는 겁니다.”(조영구)형들 입장에서는 동생에게 도움도 받았으니, 막상 동생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는 발벗고 뭐든 하고 싶을 거다. -홀로서기 잘한 동생이 대견하고 대단해보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움이 보이기도 하죠? “안쓰럽고, 가끔씩 고독하고 외로워하는 모습이 보이죠. 그런데 저나 민교가 영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냥 걱정이 되면 ‘괜찮냐’고 물어보는 정도죠. 영구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민교나 저는 영구가 어디 갈 때 함께 가주고, 재밌게 해주는 것 밖에는 없어요. 사람들이 살다보면 잘 나갈 때 억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만약 영구가 그 상황에 처해있다면 우리가 나서서 대변해주고 바로 잡아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제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고, 인기가 있어야 사람들에게 내 얘기가 설득력이 있을 것 아니에요? ‘조영구 씨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제가 사람들에게 믿게 하려면 신용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을 민교나 제가 쌓아가야죠.”(이병철)-셋이 모이니까 서로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형들에게 감사한 건 ‘제가 뭐 하자’고 했을 때 ‘싫어, 안 돼’ 가 없다는 거예요. 봉사 활동도 그렇고 무조건 형들이 저를 따라준다는 자체가 고맙죠.”(조영구)“영구야,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네가 알려줬어. 영구하고 지내면서 느낀 게 있어요. 예전에는 사실 세상이 원망스럽고 나한테 거짓말하고 사기친 사람들이 참 미웠거든요. 영구를 보면서 ‘준비를 못한 내 욕심이 컸고, 내 잘못이 크다’는 생각으로 바뀌더라고요. 사업에 망할 때 당시 내 그릇은 작았는데 너무 큰 것을 넣으려고 하니 잘못된 거였어요.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기다린 거죠. 그래서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더 힘들었던 거고요. 영구 때문에 깨우쳤어요. 그것마저도 감사해요.”(이병철)형들이 동생을 동생으로 보지 않는다. 관계가 특별하다. 무조건 동생이 중심이다. 형들이 동생보다 살아가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인정한다. 동생보다 모자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한다. 그러니 동생이 하자는 일에 토를 다는 법도 없다. -왜그런지 이해는 됩니다. 떼어 놓을래야 떼어낼 수 없어 보이네요. “ ‘영구 사단’이죠. 영구가 가장 최상위에 있는. 하하. 민교나 영구를 높이 평가하는 주변 사람들한테 항상 이런 얘기를 해요. 늘 영구가 우대 받아야 한다고요. ‘영구 덕에 너희들이 이만큼 왔으니까 항상 영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곁에 있자’는 거예요. 영구가 많은 사람을 살린 덕을 발판으로 이 사회에 더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큰 프로그램을 맡았으면 해요. ”(이병철) “아무도 안 알아주는 봉사까지 같이 나서주는 형들이 저의 진정한 ‘깐부’죠. 민교 형은 ‘마지막 승부’에 걸맞는 불후의 명곡을 불렀으면 해요. 병철이 형도 불멸의 히트곡을 가질 수 있도록 제가 노력을 해야죠. 저는… 형 말대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긴 했는데….”(조영구)“뭐였는데?”(이병철-김민교)조영구는 아쉬움을 크게 삼키며 답을 했다. “전국…노래자랑 MC요…” (조영구)바람이 이뤄졌다면 ‘전국깐부자랑’ 이 급격하게 ‘전국영구자랑’ 이 될 뻔 했다. 그래도 형들은 동생을 더 띄워 달라고 했을 거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2024년 전기 제48회 한국수학인증시험(KMC)이 5월 19일 일요일 전국 20여개 고사장에서 치러진다. 한국수학교육학회가 주최하고 동아일보사가 후원하는 이 대회는 기초과학의 근간이 되는 수학 성취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공계 우수인재의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시행되는 전국 단위 시험이다. 1999년 첫 대회 시행 이후 매년 연 2회 시행되고 있으며 전기 대회는 5월 예선 6월 본선을, 후기 대회는 11월 예선 12월 본선 대회를 시행하고 있다. 초중고 학생을 응시 대상으로 하는 한국수학인증시험은 단답형 주관식 30문항이 출제되며 120분의 응시 시간이 주어진다. 해당 학년의 교과 범위 내에서 교과 기본 및 심화, 경시형 사고력 문항이 출제되며 본인 학년의 시험으로만 응시할 수 있다. 수학적 재능과 흥미를 가진 학생들에게 본인의 전국 위치를 확인하고 결과 분석을 통해 학습전략을 재정립해 볼 수 있는 기회다. 한국수학인증시험 예선에서 전국 또는 지역 상위 15% 이내의 학생에게는 한국수학경시대회 본선 진출권이 부여된다. 본선 대회는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고사장 및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제주 고사장에서 시행되는데 전국 백분위뿐 아니라 지역 백분위 성적 우수자에게도 본선 진출권을 부여해 지방권 학생의 수상 기회를 넓혔다. 본선 시험은 서술형 주관식 6문항을 120분 동안 푼다. 정답과 풀이 과정을 모두 평가받는 경험을 통해 수학적 논리력과 사고력을 신장시킬 수 있다. 본선 응시 결과에 따라 개인 부문에는 대상, 금상, 은상, 동상, 장려상을 수여하며 단체 부문에는 지역별 최우수학교상을 수여한다. 대회는 수학 능력을 확인하고, 고난도의 사고력과 논리력을 요구하는 문제들을 경험해보면서 수학 실력을 한층 성장시킬 기회가 될 것이다. 대회 원서 접수는 이달 18일부터 전국 종로 아카데미 지정 접수처 및 인터넷으로 할 수 있다. 전국 주요 시, 도에 약 20여개의 고사장이 개설되어 접수 시 희망 고사장을 선택해 응시할 수 있으며 각 고사장은 선착순으로 조기 마감될 수 있다. 대회 관련 문의는 전화 또는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국내기관과의 활발한 산학협력 교류에 이어 해외 대학과 협약 잇따라글로벌사이버대는 지난해 해외 유수 대학을 비롯한 국내외 50여 개 기관과 산학협력 협약을 맺으며 온오프라인 교육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를 맞아 K-교육 선도대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사이버대는 인도 힌두스탄공대와 인도네시아 비누스대와 학점 교류 협약을 맺고 K-원격 교육 협력 모델을 수출했다. 또 미국 뉴질랜드 일본 스페인 영국 프랑스 벨기에 슬로바키아 스웨덴 러시아 캐나다 엘살바도르 등 12개국에 글로벌 뇌 교육 센터를 구축해 K-교육을 알리고 있다. 이달 18∼19일에는 일본 교토예술대와 학점 교류 협약을 체결했다. 이어 지구시민 운동을 주도하는 ECO Japan과 지구경영 융합전공 운영을 비롯해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협약식을 열고 일본과의 산학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사이버대는 대학 특성화 영역인 뇌 교육에서 세계로 확장하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2022년 일본 글로벌뇌교육센터와 뇌 교육 세계화를 위한 공동 협약을 맺고 일본어판 ‘뇌교육 명상’ 강의를 공동 개발하는 데 이어 이달 19일에는 뇌교육 명상 비(非)학위 과정 운영과 뇌 교육 세계화를 위해 산학협력 특임교수 8명을 위촉했다. 홍익인간 철학 담은 뇌 교육… 세계에 보급글로벌사이버대는 2010년 세계 최초로 뇌 교육 4년제 학사 과정을 신설해 한국이 21세기 뇌 활용 분야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뇌 교육 특성화 대학으로서 생애 주기별 뇌 활용 전문 인력 양성 체계를 구축하고 유아 두뇌 발달, 아동·청소년 두뇌 훈련, 성인 역량 계발, 중장년 치매 예방 훈련 등의 뇌활용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아울러 뇌 교육 석·박사 과정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설했다. 석·박사 과정은 같은 학교 법인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에서는 영역별 전문 트레이닝과 사례 연구 등을 통해 연구 역량을 갖춘 뇌 교육 전문가를 배출하며 국가 공인 브레인 트레이너 자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사이버대는 뇌 교육 역량을 인정받아 엘살바도르 정부로부터 ‘호세 시메온 까냐스’ 상을 받기도 했다. 뇌 교육을 엘살바도르 1300여 개 공립 학교에 도입해 교직원과 학생의 심신 건강을 지키고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를 유도해 학교에 평화를 중시하는 문화를 조성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가장 많은 K-pop 아티스트가 다니고 있는 한류 선도대학실용 학부 중심 교육부 인가 4년제 원격 대학 글로벌사이버대는 방탄소년단(BTS) 7명 중 6명의 모교다. 현재도 국내 대학 가운데 K팝 아티스트가 가장 많이 다니고 있다. 영국의 한 교육 전문 사이트는 글로벌사이버대를 “한국에서 가장 새롭고 혁신적인 대학에 속한다. 저렴한 학비뿐 아니라 창의적인 개인을 양성하고 모든 학생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몽골 국립예술문화대와 문화 예술을 비롯한 여러 분야 협력을 약속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학생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는 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조직해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공병영 총장은 올 1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지구 경영 국제 워크숍’에 참석해 미국 IBE 지구경영대학원, 바디앤브레인, 일본 일지브레인요가, 뉴질랜드 ECO 등과 ‘K-미네르바 글로벌 프로젝트’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글로벌사이버대는 2024학년도 2학기 신·편입생을 6월부터 모집할 예정이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1986년 국립철도고 폐교 이후 용산공업고로 전환해 공업계 특성화 교육을 담당하다 35년 만인 2021년 고교 과정에서 철도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로 재전환한 용산철도고가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많은 기대와 우려 속에 공교육 틀에 맞게 철도 관련 교육 과정을 개편한 용산철도고 졸업생들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먼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고졸 경쟁 채용에서 차량 직종 전체 합격생 10%를 배출했다. 또 서울교통공사, 서울시청, 서울시교육청 공무원은 물론 대기업 취업생을 배출했다. 특히 자동차과 졸업생 절반 이상은 독일계 차량 정비 연합 아우스빌둥(Ausbuildung)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코레일에서는 해마다 특성화 고교장 추천 학생을 공개 채용한다. 일반 특성화 고교에서는 합격생을 1명 배출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용산철도고는 추천 학생 대부분을 합격시켰다. 더욱이 코레일이 2023년도 채용 인원을 기존 200명 안팎에서 크게 줄였음에도 학생들 열망과 열정적인 선생님들 지도로 이룬 성과다.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 시흥차량사업소에 근무하게 된 이 모 군(용산철도고 졸)은 “어릴 때부터 철도 기관사를 꿈꿔 왔는데 중학교 3학년 진로 시간에 용산철도고 이야기를 듣고 진학했다”며 “3년 간 향후 진로를 두고 고민을 했지만 공기업 고졸 채용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군은 “5년이 지나도 나이가 20대 중반이기에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면서 “이처럼 꾸준히 자신의 진로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고졸 채용의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용산철도고는 국립철도고 출신 선배들과 철도 관련 종사자들의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지역과 공단의 철도 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한 한국형 틸팅 열차 ‘한빛200’을 기증받기도 했다. 용산철도고는 인프라와 기자재가 필요한 철도 분야 특성화고로서 교육부 주관 협약형 특성화고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마이스터고교가 산업 수요 맞춤형 고교로서 특수목적고 지위를 갖고 전교생이 특정 산업 분야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달리 협약형 특성화고는 일반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특정 분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협약형 특성화고는 사회 진출을 위한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고 맞춤형 취업을 하는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백해룡 용산철도고 교장은 “철도처럼 국가 기간 인프라이면서 대규모 재정이 필요한 산업분야 인재를 육성하는 용산철도고에 협약형 특성화고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면 실질적인 교육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철도 분야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서당은 잘난 사람 길러내는 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 서당의 인재상입니다.” 치열한 대학 입시 경쟁 구도 하에 놓인 우리의 학생들은 기계적 학습과 진학 위주 교육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학생들은 공교육과 사교육을 넘나들며 내신 등급 올리기와 시험 점수에 목숨을 건다. 학생 뒤에서 부모가 열심히 등을 떠민다. 뛰어놀고, 운동하고, 친구를 사귀어야 할 유년-청소년기에 수학, 영어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추고, 안 틀리려는 훈련에만 매진한다. ‘나’라는 존재의 특별함을 찾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성적과 대학 간판으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규정된다. 인성과 예의, 공감, 배려가 사람 평가의 틈에 들어갈 여유가 없다. 위기에 빠진 교육의 대안을 논의하는 차원에서 서당의 교육 목표와 방향이 주목받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이사장 박성기, 이하 진흥회)’는 서당 문화와 예술 문화의 계승 및 국민 인성 함양을 목적으로 전국에서 전통 서당을 운영하는 훈장과 각계 지도자들의 뜻을 모아 2011년 창립한 비영리 공익 단체다. 최근 직접 찾아가는 여러 교육 프로그램 사업을 통해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바탕으로 서당 교육의 가치를 알리고 확산시키고 있다. 13일 진흥회에서 만난 한재우(50) 사무총장은 관계가 서당 교육의 핵심이라면서 “사람의 인격이 그 사람의 인생임을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을 지낸 고 ‘해평’ 한양원 선생의 아들이다. 현재는 종로국제서당 훈장도 맡고 있다. 한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앎’을 ‘삶’으로 실천하는 교육이 핵심… “그것이 인격이고, 곧 인생이다”-‘서당’ 하면 아직도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이 있다. “옛 조상들의 살폈던 좋은 가치들이 있으니, 우리가 그것을 잘 지키고, 따르고, 이 시대에 살려보자는 건 좋은데 그걸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 공감을 한다. 여기서 고민이 많다. 그런데 분명히 가야 할 길은 보인다. 기능적인 공부에 매달리는 학생들은 분명 다른 공부에 대한 갈증이 클 거다. 그 갈증을 채워줘야 하는 서당의 시대적 교육 역할이 있다고 본다.”-어떤 역할일까. 대학 간판과 직업, 연봉으로 사람의 가치를 정해버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인성과 예의가 뒷전으로 밀렸다. “서당이 지향하는 교육은 ‘앎’을 ‘삶’으로 잘 실천해 좋은 사회를 만드는 축이 되라는 것에 있다. 핵심은 ‘관계’다. 배운 지식을 잘 살려 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건강해진다. 올바른 관계 형성에는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서당 교육의 인재상을 맛으로 표현하면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등을 다 담아낼 수 있는 맹물이라 할 수 있다. 맹물은 맛이 없지만, 다른 맛이 본연의 맛을 낼 수 있게 해준다. 맹물이 곧 참다운 사람이다. 인성과 예절이라 하는 것도 결국은 관계 안에 있다. 인성 좋고, 예절 바르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존재로 가족과 사회가 따뜻해지고 갈등이 완화된다는 걸 의미한다. 시대가 아파하는 병, 문제에 대해서도 같이 아파할 수 있다.” - 서당 교육 체계에서는 개인의 인생 목표 설정이 다를 수 있겠다. “언젠가 대학에 다니는 여성이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하고 나누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23살 이모하고 조카가 바라는 꿈이 똑같더라. 직업을 꿈으로 봤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대에 들어가 의학 기술을 배웠다고 해서 의사는 아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 등의 가치까지 포함해서 세상이 ‘의사’라고 보는 거다. 직업인은 통합적 관계의 사고에서 사람과 현상을 봐야 한다. ‘내 밥그릇’ 논리를 가진 직업군의 일원으로 사회에 나가면 갈등 요소다. 서당은 관계를 직업과 꿈으로 연결하는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당은 공익 인재 기르는 공교육의 보완재… 공교육은 사교육 흉내 내서는 안 돼-공교육에서 서당이 하고자 하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학원 등 사교육이 입시 경쟁에서 남을 이기는 기술을 가르치는 구조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가는 건 좋지 않다. 공교육에서 ‘공(公)’이라는 건 ‘더불어 함께’다. 이 가치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공교육이 가야 한다. 판사, 검사, 의사 등도 이런 환경에서 배출되는 게 맞지 않나 싶다.”-반쪽으로 갈라져 극한 대립만을 일삼는 정치권을 보면, ‘관계’의 가치는 실종된 듯하다. 정치는 정말 다양한 ‘관계’가 잘 소통하도록 돕는 윤활유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정치에서 ‘정(政)’은 바로 잡는다는 것이다. 바로 잡으려고 하는 사람, 정치인의 언행과 자세, 태도, 인격이 좋아야 한다. 자신이 옳지 않은데 상대를 바로잡으려고 하니 바른 정치가 나올 수 없다. 우리 사회와 정치에 어른이 없다고 한다. ‘본보기’가 없다는 거다. 본보기는 가정에서는 부모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다. 사회 지도층 인사, 정치 지도자일 수 있다. 문제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서당 교육은 ‘앎’이 ‘삶’으로 이어지는 교육이라 했다. 내가 아는 것과 현실에서 실천하는 게 다르다보니 괴리가 생긴다. 아는 것은 정의인데 실천은 집단 이기주의, 당리적, 정략적으로 나온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도 보고 배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갈등이 생긴다.”-서당 교육이 곧 시대 ‘본보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이들을 통합할 수 있는 리더가 없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맛을 담아낼 수 있는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는 점에서 서당 교육이 절실하다.”-AI(인공지능)시대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야 하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진흥회가 22회째 ‘대한민국 서당문화 한마당’을 4월27일(남원)과 5월19일(종로)에 개최하는데, 올해 행사 주제가 ‘ㅅㄷ(서당), AI에 답하다’이다. AI는 ‘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 AI가 답할 수 없는 부분은 사람의 관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서당 교육은 관계 윤리를 다루기 때문에 AI도 역시 우리에게 답을 얻어가야 한다.” 안 보이는 것을 가르치는, 졸업장 없는 ‘인간학’ 교육 학교-학교를 다닌 적이 있나? “없다.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이 1981년 지방 서당으로 내려보냈다. 남들은 다 서울로 유학을 오고, 직장을 찾아서 오는 데 반대로 서울에서 시골 서당으로 갔다. 부모님은 ‘세상이 물질로만 가지 않는다. 내 새끼는 돈 버는 기계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서당으로 보냈다. ‘극즉필반(極卽必反, 극에 달하면 반전이 일어난다)’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이 ‘물질만능주의’로 가다 보면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다시 사람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인간의 품성과 인격의 바탕이 있고, 또 인간이 가진 넓은 ‘숲’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이 다시 온다는 거다. ‘참 따뜻해’, ‘인간미가 넘쳐’라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온다. 18년간 서당 공부를 했는데 주변에서 ‘당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물어본다. 졸업장이 없으니 증명은 못한다. 있다 한들 사회에서 인정해줄까? 서당에서 교육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의 마음 가짐을 가르치니까. 맑은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다. 인정을 당장 받기 쉽지는 않겠지만 공기 같은 사람이 많이 나오도록 가르치고 싶다.”-미래 교육 방향에 대한 국가적 고민이 큰데, 결국 답의 일부가 서당 교육에 있지 않을까. “관계는 결국 시대를 이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서당 교육은 ‘인간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당신 때문에 내가 불행해’라는 시각이 아니라 ‘네가 있으니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라는 교육이라는 점에서 미래 지향적이다. 혼자보다는 함께 가는 게 좋고, 좀 늦더라도 같이 가면 모두의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앎’을 깨우치게 하는 교육이기에 평생 받아야 한다. 끝은 없다. 서당 교육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어져야 한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우석대의 ‘수소 중심 대학’ 추진은 국내 수소 연구의 권위자인 이홍기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64)이자 수소연료전지 부품 및 응용 기술 지역혁신센터(RIC) 센터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1994년 부임한 이 센터장은 2008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RIC 센터장을 맡아 한국 수소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 연료전지 기술의 표준화를 총괄하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nternational Electro-technical Commission)의 연료전지 기술위원회(TC 105) 의장직도 수행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미래 수소 에너지를 활용하는 데 필수적인 연료전지 분야의 국제 표준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우석대 ‘글로컬 대학 30’ 추진본부장이기도 한 이 교수는 “국제 수소 에너지의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수소자동차와 연료전지, 발전 등 다양한 시장에 주도적으로 진입해야 한다. 그 이상적인 모델을 우석대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이 학교 안팎의 현장에서 성과와 미래 비전을 보여줘야 기업이 동참하고 거기서 얻는 혜택이 대학으로 다시 돌아온다”며 “우석대가 생산기지 역할도 하면서 전북이 전국에서 가장 저렴한 수소를 생산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완주=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전북 완주군 우석대가 수소 에너지 분야 중심 연구대학 도약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완주군에 들어설 ‘완주 수소 특화 국가산업단지’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우석대는 지역과 산업을 이끄는 대학 혁신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국내 수소 산업 전반에 이론적 지식 자산을 제공하는 국내 대표 대학이자, 실질적인 사업 실행 능력까지 갖춘 세계적인 수소 허브 대학으로의 도약이 목표다. 프로 스포츠 선수 출신 최초의 대학 총장 이력을 가진 ‘야구 레전드’로 최근 취임한 박노준 총장(62)은 지방대 소멸 위기에서 우석대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좋아하는 말이 ‘전화위복’인데, 지방대의 위기도 이렇게 희망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는 박 총장은 “빛의 속도로 대학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함을 갖고 우석대를 수소 중심 대학으로 재편하는 ‘발전적 구조조정’에 총력을 쏟아보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 ‘완주 수소 특화 국가산단’ 연착륙 주도 정부는 지난해 3월 미래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완주를 비롯해 전국에 15개 국가 첨단산업단지를 선정했다. 수소 특화 국가산단은 2027년까지 완주군 봉동읍 일원에 165만 ㎡ 규모로 조성된다. 총사업비는 6270억 원에 이른다. 수소 특화 국가산단 조성으로 직접 투자 규모가 72개 기업, 3조84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 3만 명에 이르는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우석대는 대학 내 수소연료전지 지역혁신센터 등을 통해 배후 지원기관으로 수소 특화 국가산단의 연착륙을 총력 지원할 계획이다. 우석대는 이미 완주군이 산단 유치 과정에서 필수 확보 계획으로 내세웠던 △수소 용품 검사 지원센터 △사용 후 연료전지 기반 구축 △에너지저장장치(ESS) 안전성 평가센터 △수소 저장 용기 신뢰성 평가센터 등의 효과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실증 데이터를 제공했다. 추가 연구 지원 등을 통해 전북 지역 내 수소 에너지 활용 증가, 수소 에너지 활용에 따른 소비자의 이익, 또 여타 다른 에너지 대비 가성비와 가격 경쟁력 우위, 안전 확보 등에서 국가 수소 에너지 발전 계획의 수준을 높이는 결과물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소 글로벌 기업 협력 체계 구축 우석대는 2008년부터 미래 수소 에너지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수소연료전지 기반 조성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국내외 수소 분야 글로벌 기업들과의 연대체 구성 노력에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는 물론이고 두산퓨얼셀, SK E&S, LS엠트론, 현대모비스, 일진하이솔루스 등을 비롯해 동유럽 최대 규모 공인 시험인증기관인 SZU, 전북 지역 수소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비나텍 등과 유기적인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또 100여 개 수소 관련 기업에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핵심 기반 기술을 꾸준히 이전해 왔다. 이홍기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의 주도로 국내 최초로 수소 기술 2개 분야에서 국제 표준도 획득하며 한국 기술 수준의 경쟁력과 잠재력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우석대는 국내 대학 최초로 수소연료전지발전소도 가동해 운영하고 있다. 이번 신학기부터 전주 캠퍼스 생활관의 전기를 자체 충당하기 위해 10kW급 수소연료전지발전소 5기의 운영에 들어갔다. 대당 10kW급으로 도시가스에서 추출한 수소를 이용해 하루 평균 250kW의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수소 에너지 사용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는 기존 도시가스 활용 대비 약 50%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대표 ‘수소 중심 대학’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지산학연 협의체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박 총장은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30’ 진입을 준비 중인 우석대는 수소 분야를 중심으로 미래 100년 대학으로 거듭나면서 지역 상생 발전의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수소 중심 대학’으로 진군하는 행보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완주=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고도의 집중력과 잠재된 뇌의 능력을 깨워줘 미래인재를 양성하는 학습법이 있다. 세계전뇌학습아카데미의 김용진 박사가 개발한 초고속전뇌학습법이다. 초고속전뇌학습법은 잠자는 뇌세포를 깨워 학습효과를 높여주는 공부법이다. 이 학습법은 좌뇌, 우뇌, 간뇌로 구성된 전뇌를 개발해 학습 능력을 최대 10배 이상 향상시켜준다. 김 박사는 초고속전뇌학습법을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1년 간 교육심리학, 인지발달, 대뇌생리학 등 여러 영역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완성했다. 김 박사가 개발한 학습법은 한글을 포함 세계 218개국 언어와 문자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교육 노하우를 담고 있다. 이 학습법은 특허청에 등록됐고 세계대백과사전에도 등재됐다. 3단계로 구성된 초고속전뇌학습법은 초-중-고급으로 나뉜다. 초급은 초고속 정독을 위한 과정으로 집중력을 길러줘 기억력, 사고력, 판단력, 논리력, 어휘력, 문해력, 독서 능력을 10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다. 중급은 영어 단어, 한자, 교과서 및 전공 서적 암기 7, 5, 3원칙 등 암기법이다. 고급은 교과서 및 전공 서적 요점 정리 7원칙, 전뇌 이미지 기억법 7원칙 등을 체득해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평균 5∼7일이면 전 과정을 끝낼 수 있고 학습 과정을 완수한 이들에게는 ‘공부방법면허증’을 발급한다. 공부방법면허증 취득자 가운데에는 공무원, 변호사, 공인회계사 시험 등에 합격하거나 로스쿨 입학, 대학 수석 졸업을 하기도 했다. 김 박사는 많은 국민이 잠재력을 끌어내 다방면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초고속전뇌학습법을 활용한 ‘노벨상 100명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전 국민이 1년간 365권 독후감 쓰기를 통해 100만∼1000만원 상금을 주는 장학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중고교생과 대학생 회원들에게 성적 향상 인증 시 성적장학금 200만원을 주고 있다. 김 박사는 노벨상 100명 만들기 프로젝트를 삶의 운명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초고속전뇌학습법이 제도권에 도입된다면 각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될 수 있다. 아울러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어 출생률을 높일 수 있고 국가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뇌계발훈련을 통해 어르신들의 집중력, 기억력, 암기력 증진으로 인해 치매 예방에도 획기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어서 90대까지 수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78세인 노성복 회원은 1년 간 1800권의 책을 읽고 1015권의 독후감을 작성해 독후감 대상과 상금 300만원을 받았다. 노 씨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정에서 뇌가 개발되어 인지기능 저하(초기 치매)와 손 떨림, 고혈압, 심근경색, 고질적인 불면증 등의 증상이 개선됐다. 자신의 경험을 ‘상금 300만원’이라는 책에 담았고 2022년 7월 세계기록인증원이 주는 ‘세계최고기록 인증서’를 받기도 했다. 초고속전뇌학습법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30분 동안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세계전뇌학습아카데미에서 열리는 공개 특강에서 접할 수 있다. 세계전뇌학습아카데미는 전국 및 해외지사를 모집하고 있다. 학원, 공부방, 개인과외, 방과 후 운영, 소자본 창업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제주대 LINC 3.0 사업단(단장 강태영)은 청년이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일할 수 있도록 산학연 협력 활동을 다각적으로 기획해 운영하고 있다. 먼저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는 지역 현안이 뭔지 학생들이 알아내고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솔루션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캡스톤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지방자치단체, 유관 기관, 지역 산업체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산학연(産學硏) 연계 캡스톤 디자인의 대표 사례로는 2022 국가균형발전사업 우수사례에 선정된 ‘귤껍질 신산업’ 개척 모델을 들 수 있다. 지역에서 나는 귤의 껍질을 활용해 개발한 제품이다. 학생이 창안한 캡스톤 디자인 아이디어는 펀딩형 캡스톤 경매 제도를 통해 기업에 이전돼 사업화할 수 있도록 하고있다. 캡스톤 경매 제도를 통해 최근 2년간 5000만 원(5건) 규모 기술 이전 성과를 달성했다. 또 기업 지원을 통해 신제품 출시 2건, 마을 관광산업 콘텐츠 개발 1건, 신제품 개발 사업화 추진 2건 등을 이뤘다. 기업 기술 이전 규모는 2년간 총 63건, 1억1200만 원에 이른다. 취업 및 창업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예비 창업자를 위해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공동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실전 ICT 해커톤 캠프를 추진했다. 캠프 기간 예비 창업자들과 기획, 개발, 디자인 분야 전문가들을 매칭해 참가자 아이디어를 보완하고 프로토타입 개발과 아이디어 구현 가능성을 검증했다. 우수 프로젝트 3개 팀을 뽑아 최소기능제품(MVP) 제작 과정에 필요한 전문가 멘토링 및 기술-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해 1개 팀이 성공적으로 창업했다. 또 제주관광공사와 공동 주관한 ‘2023 제주 스마트관광 빅데이터 해커톤’과 전국 10개 대학 연합 ‘CDS 빅데이터 경진대회’를 열어 제주도 관광 데이터를 활용한 현안 해결 및 관광 서비스 활성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빅데이터 교육을 실무에 적용해 학생들의 취업 견문을 넓힐 계획이다. 이어 지역과 대학이 처한 공동 위기 극복을 위해 도내 3개 대학과 지자체 간 산학연 협력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소통을 목적으로 지난해 제주권역 지자체·대학 실무 협의체를 구성했다. 협의체에서는 산학연 협력, 산업 혁신 세미나 등과 연계 교육 프로그램 공동 운영, 인력기술 산업정보 등을 지원한다. 협의체는 도내 3개 대학 공동 워크숍 등을 통해 지역 정주형 인재 양성 및 지역 발전 연대 협력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대 LINC 3.0 사업단에서는 스타트업이 성공할 때까지 복합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대학 기업 상생 발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오래오랩이다. 이 기업은 2021년 신생 기업 대상 사업 아이템 발굴 등을 통해 제주대생들과 함께 반려동물용 ‘진정 기능성 음료’를 개발, 기술 이전을 통해 창업했다. LINC 3.0 사업에 참여하는 수의학과 교수 및 학생 들과 산학 공동기술 개발 연구 과제로 넓혀 진정 효능까지 검증했다. 그 결과 오래오랩 지난해 매출은 2022년 대비 130% 상승했고 직원 2명을 새로 채용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산학협력 EXPO의 산학협력 우수 사례 경진대회 기술협력 분야에서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래오랩에서는 사업 아이템 추가 개발과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 기업 연계 캡스톤 디자인 및 글로벌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표준 현장 실습 연계 및 신규 채용까지 제주대 LINC 3.0 사업단과 협력할 예정이다. 제주대 LINC 3.0 사업단은 지자체와 가족기업, 도내 대학와 협력해 창의융합형 인력 양성과 지속 가능한 산학 협력 생태계를 조성하고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계획이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첨단분야 혁신융합대학 사업은 첨단 기술과 첨단 산업 분야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부 사업이다. 13개 첨단 분야에 53개 대학이 분야별 컨소시엄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미래자동차 컨소시엄은 국민대(총장 정승렬)가 주관하고 계명대, 대림대, 선문대, 아주대, 인하대, 충북대가 참여한다. 미래자동차 컨소시엄은 교육 체계 및 유연한 학사제도 도입과 교원·학생 지원을 통해 미래자동차 고등교육 체계 새로운 표준 제시라는 비전과 미래자동차 혁신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3년간 ‘WE-Meet (Work Experience-Meet)’ 프로그램, 미래자동차 소프트웨어(SW) 인력 양성 프로그램, LG 자동차 융합 SW 트랙 프로그램 같은 프로젝트 교과를 운영해 지역, 산업체, 대학 모두의 시너지를 도모했다. WE-Meet 프로그램은 대한상공회의소가 WE-Meet 일·경험 플랫폼 운영 지원, 기업은 미래자동차 관련 문제 제시, 전문가 멘토링, 연구 장비 지원 및 현장 직무를 제공해 인재를 발굴하는 과정이다. 미래자동차 컨소시엄은 프로젝트 수행 공간 및 연구 장비 지원, 학점 연계용 WE-Meet 캡스톤디자인 교과 개설, 전담 교수 배정을 통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에 대한 기업 참여멘토 평가를 통해 해당 기업으로의 채용 연계도 이루어지고 있다. 산학 협력과 글로벌 역량 제고를 위한 ‘SEA: ME(Software 폭스바겐그룹코리아의 지원과 국민대, 독일 소프트웨어 교육기관 42볼프스부르크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참여 학생들은 미래자동차 관련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을 뿐 아니라 여러 국적 학생들과 교류하며 글로벌 역량을 키운다. 프로그램 운영 예산은 폭스바겐그룹코리아가 전액지원하며, 학생들은 1년간 독일에서 임베디드시스템과 자율주행에 대한 고난이도 프로그램을 PBL 기반으로 학습한다. 미래자동차 컨소시엄의 글로벌 인재양성 프로그램들은 성과를 내타내고 있다. 지난해 SEA:ME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부 학생은 국내 자동차 관련 대기업에 취업했다. LG전자에 입사한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출신 황지혜 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익힌 코딩과 프로그램 언어 활용 능력 글로벌 현장 감각 및 팀워크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미래자동차 컨소시엄은 올해 HL만도와 미래자동차 분야 교육 협력 및 채용 연계 트랙을 운영할 예정이다. 학부 4학년과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일정 수준 이상 학생에게는 채용 연계형 선발 기회를 부여한다. GM-TCK와 친환경 전동화 자율주행 미래모빌리티 분야 산학 협력 및 교육 협력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산업체 전문가 풀을 확보할 계획이다. 직무 전환 교육이 필요한 재직자에게는 맞춤형 학습 기회도 제공한다. 미래자동차 컨소시엄은 미래자동차 분야의 세계적 교육기관 및 글로벌 기업 그리고 기계, 전기전자, 통신, 인간공학 같은 다른 첨단 분야와의 융합과 협력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신성환 미래자동차 컨소시엄 사업단장은 “미래자동차 분야는 해당 학문뿐 아니라 응용할 수 있는 산업 범위가 넓어 대학 한 곳에서 담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협업과 융합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 사업단장은 이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7개 대학과 함께 교육 체계 및 인프라를 공동 활용하고 국제 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꾸준히 교류함으로써 미래자동차 분야를 선도할 글로벌 융합인재 양성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서강대학교(총장 심종혁)는 최근 2∼3년 혁신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대학으로 꼽힌다. 혁신 결과는 취업률 전국 1위 유지, 외부 연구비 수주 상승, 교내 창업기업(스타트업) 성공 신화, 반도체 및 전자 관련 첨단 기업과 함께 하는 캠퍼스 등으로 결실을 맺었다. 서강대는 2022년 선정된 3단계 산학연 협력 선도(전문)대학 육성사업(LINC 3.0)과 소수 대학에만 주어지는 대학혁신지원 사업 S등급 획득으로 확보한 재원을 토대로 혁신을 추진할 수 있었다. ‘가치를 창조해 인류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대학’이라는 비전 실현을 위해 이 재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것도 혁신에 크게 기여했다. 혁신을 추진하는 대학은 자칫 경제적 가치에만 우선 순위를 둘 수 있다. 하지만 서강대는 예수회 대학이라는 특수성을 바탕으로 혁신 목표를 인류 공동체 발전에 두고 대학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강대 LINC 3.0 사업에서 첨단산업 중심 대학으로 변모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면서도 혁신 온기가 세계에 퍼지는 것을 목표로 세운 것, 인문학을 토대로 인본주의 혁신 및 확산을 강조한 점 등은 이 같은 서강대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치를 바탕으로 산학관 협력에 기반한 혁신은 최근 기후변화나 전쟁 같은 글로벌 위기 상황 및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미래 사회 불확실성이 팽배한 현실에서 더욱 빛을 내고 있다.K-테크놀로지 글로벌 전도사 2023년은 세계 기업들에 ‘Sogang’이라는 브랜드를 가장 많이 알린 한 해일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스타트업 글로벌 마케팅 역량 지원에 초점을 둔 서강대는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 한국디자인진흥원 등과 174개국 15만 명이 참관해 프랑스에서 열린 유럽 최대 규모 스타트업 행사 비바테크(Viva Tech)에 서강대생들이 서포터즈로 참여하도록 했다.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능통자를 선발할 때 모집 인원을 훌쩍 넘는 지원자가 몰려 서강대생들의 글로벌 역량을 보여줬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세계 최대 전자 박람회인 미국 CES에 서강대생들이 서강 글로벌 LINC 서포터즈 (Sogang Global LINC Ambassador)로 참여했다. LINC사업 시작 이후 두 번째로 CES에 참가한 서강대는 전년 대비 참가 규모를 대폭 늘려 단일 대학 최다인 25명을 선발해 서울 통합관 참가 기업 글로벌 마케팅을 1 대 1로 지원했다. 또 서강 가족회사 글로벌 진출 지원프로그램 (Sogang Global Developed Business)을 통해 혁신 산업 및 기술을 보유한 서강 가족회사 5곳 전시 부스도 마련했다. 이를 위해 서강대 LINC사업단과 서울경제진흥원, 관악구청은 ‘CES 2024 서울통합관 관악구 스타트업 대학생 서포터즈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CES 2024 서울통합관 관악S밸리존에 참가한 8개 기업과 서강대생을 매칭해 줬다. 서강대 가족기업뿐 아니라 지역 벤처기업의 글로벌 역량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올해는 다른 기초자치단체와도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지역사회 해결사 서강대는 최근 수준 높은 지식을 활용해 대학의 존재 이유를 지역사회에 보여줘 지역 사회가 대학과 협업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역 기반 개방형 혁신 가능성을 제시했다. 서울시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문제를 제시하면 서강대생들이 참여해 다양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SG 산학협력(동문 멘토링) 프로젝트 (SG-Competition)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처음임에도 롯데손해보험, 신세계 등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인 세종문화회관이 참여했다. 산업체 및 지역사회 기관은 학생의 관점으로 현장 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학생들은 산업에 대한 이해와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전통적으로 인문사회 분야가 강한 서강대는 이 같은 능력을 LINC 3.0 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개인의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오히려 커지면서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마포구, 서울시교육청 등은 청년 자립 및 은둔형 외톨이, 극단적 선택, ‘묻지마 살인’ 등에 대한 심리 상담 지원 프로그램을 소수 인력으로 진행해 왔다. 즉 대학같이 전문성 있는 기관의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공감한 서강대는 지난해 LINC 3.0 사업의 하나로 상담센터를 설립해 지역사회 정신건강 수요에 대처할 수 있는 맞춤형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서강대의 탁월한 연구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심리 상담 전문가 교육 및 인력 양성을 도모해 이바지하고 있다. 또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와 함께 서울시 청년 및 서강대생을 대상으로 영화 제작과 영화제를 경험하게 했다. 전문 영화인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마련해 제2의 박찬욱 감독(서강대 출신) 발굴을 기대하고 있다.글로벌 혁신 중심 한국, 서울, 그리고 서강‘K’ 로 시작하는 단어는 세계 혁신의 키워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화는 제품 수출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 글로벌화는 세계를 주도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서강대도 글로벌화를 추진하며 이런 변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서강대는 지난해 ‘2023 글로벌 기술교류회(2023 Sogang Global Technology Roadshow)’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얀 페터 발케넨데 전 네덜란드 총리, 다국적 제약회사 로셰의 주디스 판 샤이크 전무, 노르웨이 트룰르스 베르겐 오픈이노베이션랩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유럽 저명 인사 10여 명이 참석했다. 또 서울경제진흥원(SBA)과 사전 회의를 통해 서강대 가족기업을 비롯해 지역사회 하이테크 기업들이 적극 참여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글로벌 혁신 기업들이 서강대 가족기업 및 지역사회 기업의 기술을 확인하고, 나아가 국내 기업과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특히 한국과 네덜란드,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의 혁신 생태계 간 협력을 도모하는 장이 열리며 ‘산학 협력 기반 외교’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학생들만 활약한 것은 아니다. 2020년 11월 교원 기술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엠피웨이브를 설립한 전자공학과 박형민 교수는 CES 2024에서 ‘모바일 기기, 액세서리 & 앱’과 ‘디지털 건강’ 2개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박 교수는 난청자(難聽者) 청력 저하를 완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일반인도 외부 소음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들을 수 있는 범용 기술로 발전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난청 환자는 물론이고 청력 보조가 필요한 사람이 무선 이어폰만 있으면 저렴하게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이타주의적 혁신을 통한 글로벌 공동체 발전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서강다움’의 대표 사례일 것이다. 이처럼 서강대의 변화는 글로벌과 지역 혁신을 공동체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전통 고급 향수의 관습을 깬 혁신적인 니치 향수 브랜드가 국내에 상륙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달 자체 디지털 플랫폼 에스아이빌리지(S.I.VILLAGE)를 통해 프랑스 향수 브랜드 에르메티카(HERMETICA)를 론칭했다고 밝혔다. 에르메티카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니치 향수 메모 파리(MEMO PARIS) 창립자인 존 몰로이와 클라라 몰로이 부부가 2018년 내놓은 향수 브랜드다. 자연과 과학의 조합으로 지속 가능한 향수를 제공하려 한다. 기존 니치 향수가 진귀한 자연 원료를 사용한 전통적인 제조법을 고수해 왔다면 에르메티카는 고대 연금술에서의 분자 기술을 천연 성분과 결합해 각 향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피부와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방법을 적용한다. 특허 분자 기술인 이노센트(Innoscent™)를 기반으로 알코올이 첨가되지 않은 워터베이스(수성) 향수를 제작한다. 원료의 선택부터 제조, 포장 등 모든 공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다. 에르메티카는 많은 천연 원료를 활용하지만, 원료가 고갈 위기에 있거나 환경에 더 이로울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 대체 분자를 개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은방울꽃 향은 오렌지 주스를 짜고 남은 오렌지 껍질을 재활용해 향 분자를 구현했다. 배 향은 사탕수수를 재활용해 과일 향을 재현한 100% 생분해성, 재생할 수 있는 합성 분자를 사용한다. 시더우드 에센스는 삼나무 껍질과 재활용한 목재 부스러기, 톱밥을 증류해 얻어낸다. 에르메티카의 모든 향수에는 알코올 대신 사탕수수 줄기를 재활용해 얻어낸 차세대 녹색 분자가 함유됐다. 그래서 벨벳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수분 공급과 향 지속 효과를 선사한다. 착향 6시간 후를 비교했을 때 일반 알코올 함유 향수 대비 약 56% 향이 강력하게 지속된다. 알코올이 날아가면서 순차적으로 느낄 수 있던 탑, 미들, 베이스노트를 뿌리는 즉시 모두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사용하는 사람이나 피부에 따라 다르게 결합해 독특하고 개인화된 향이 완성되는 장점이 있다. 향수가 담긴 유리병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현지 조달된 재활용 유리와 모래로 제작되며 재사용이 가능하다. 패키지도 100%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를 쓴다. 모든 제품은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는다. 동물성 유래 원료와 유전자변형생물(GMO) 또한 사용하지 않는다. 대표 제품으로는 , 앰버와 우디향을 통해 달콤한 열기를 향으로 표현한 피그피버(FIGFEVER), 피오니와 로즈 등 만개한 꽃다발을 표현한 피오니팝(PEONYPOP), 상쾌하고 싱그러운 시트러스 향의 마콤바(MACOMBA) 등이 있다. 오 드 퍼퓸 50mL 21만 5000원대, 100mL 31만 원대다. 이달부터 신세계인터내셔날 디지털 플랫폼 에스아이빌리지(S.I.VILLAGE)를 통해 접할 수 있으며, 론칭을 기념해 3월 말까지 에르메티카 제품 구매 고객에게는 10% 쇼핑백 쿠폰을 지급한다. 제품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샘플 2종과 4만 원 상당의 디스커버리 키트 정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예전부터 정말 친한 친구끼리는 동업하지 말라고 했다. 친구는 감정 공동체인데 동업은 이익 공동체다. 친구는 관심사나 성격이 서로 맘에 들어 맺어진 관계다. 그런데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에서 친구가 이익 공동체 관계로 놓이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의견이 충돌해 급기야 관계가 깨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친한 친구끼리 돈 거래 하지 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익 공동체에서도 절친 관계가 유지되려면 각자의 캐릭터, 성격에 대한 이해심과 인내심 이 필수다. 같은 목표를 달성해가는 과정에서‘내가 더 열심히 노력을 했다’‘너보다 더 기여했다’ 식의 지분 따위를 계산하고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각자 역할을 분명히 정하고, 그 역할에 대해 서로가 인정하고 존경해줘야 한다. 물론 이익 공동체에서 나와 감정 공동체가 되는 시간도 많이 가져야 한다. 프로농구 SK의 전희철(51) 감독과 김기만(48) 수석코치는 이익 공동체와 감정 공동체를 오래 넘나들었는데 우정이 안 깨지고 더 깊어지는 오랜 ‘깐부’다. 둘은 감독과 수석코치로 최근 두 시즌 동안 팀을 프로농구 우승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번 시즌도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하다. 전 감독은 역대 프로농구 감독 중에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100승을 달성하는 기록까지 세웠다. 전 감독은 그 공을 김 수석에게 많이 돌린다. 전 감독(92학번)과 김 수석(96학번)도 고려대 선후배다. 전 감독은 1990년대 폭발적인 농구 인기를 주도한 여학생 팬, ‘오빠부대’의 선봉장이다. 김 수석이 예비 대학 새내기로 고려대 훈련에 합류했을 때 전 감독은 이미 ‘에어본’으로 불린 슈퍼 스타였다. 김 수석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악착같은 플레이가 인상적이어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프로농구(NBA) 레전드 데니스 로드맨과 외모와 패기의 농구 스타일이 닮았다고 해서 ‘로드만’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김기만’하면 모르는 사람도 ‘로드만’ 하면 안다. 몇 년 전 방송 농구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대학 시절 미국에서 현주엽 선배의 심부름을 받고 햄버거 프랜차이즈 ‘드라이빙 스루’에 가서 차량 사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맨 몸으로 대기한 에피소드를 공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어렵다면 어려운 사이인데 희한하게 동반자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전 감독은 일에 관해서는 매사에 섬세하고 꼼꼼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어 후배나, 선수들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그런데 코트 밖에서는 본인 스스로를 무장 해제를 하고 먼저 사람에게 다가가는 성격이다. 공과 사가 매우 뚜렷한데 속내는 마음의 입, 출구를 다 열어 놓은 사람이다. 김 수석은 이런 ‘전희철’을 아주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일하는 ‘전희철’을 기다릴 줄 안다. 코트 안팎 ‘전희철의 시간표’를 기가 막히게 알고 있다. 감독이 말하기 전까지 그의 심리적 공간에 성급하게 끼어드는 법이 없다. 감독 중심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배어 있다. 권력을 양보할 줄도 안다. 굳이 조언과 위로를 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장난과 놀이, 위트로 ‘전희철’ 옆에 있다. 그것을 발휘할 시간과 타이밍을 잘 안다. 한 명을 위한 맞춤‘동반’ 기술이다.●별 걸 다 기억하는 ‘김기만’, 형이 되다 본인 자신도 잊고 있던 인생 스토리를 잘 알고 디테일을 잘 포장해주는 사람을 누구든 안 좋아할 리 없다. 기억은 관심이다. 김 수석은 전 감독과 같이 있던 순간이 기억의 총량 우선순위에 있다. 그것이 전 감독에게 우정과 신뢰로 천천히 쌓였다. 김 수석은 원래 나이로는 95학번으로 입학해야 했다. 그런데 명지고에서 1년 유급을 해서 96학번으로 입학했다. 95학번이었으면 대학 최고의 농구 스타 반열에 올라섰던 전 감독과 1년을 대학 무대에서 같이 뛸 수 있었다. “만기가 1년 일찍 왔으면 나한테 죽었죠. 하하.”전 감독은 평소 사석에서 ‘기만’수석을 ‘만기’라고 부른다. 고려대 시절부터 선후배들에게 친근감 있고, 부르기도 쉬워서 그렇게 불렸다는데 전 감독도 SK에서 김 수석을 만나고부터 애칭처럼 쓰고 있다. -김 수석은 대학 입학하고 전 감독을 우러러봤겠어요. 대면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죠? “보통 고3 학생들은 대학 입학식 하기 전해 겨울에 훈련에 합류하잖아요. 그 때 전 감독님은 졸업 직전이었죠. 당시 스타니 당연히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도 힘들었죠. 아, 첫 인상이 아주 강렬했습니다. 겨울에 군산에서 농구대잔치 경기가 있었는데 예비 새내기들도 팀에 합류했었죠, 당시 1학년들이 경기 하루 전날 술을 먹자는 거예요. 저희 동기들은 뭣도 모르고 쫒아갔죠. 1차를 하고 끝냈어야 하는데 군산 바닷가 옆에 나이트클럽까지 끌려간 거예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운동을 가는데, 고려대 선수들은 큰 버스가 아니고 미니버스로 이동을 했어요. 좁은 버스 안이니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아니나 다를까 감독님한테 딱 걸렸죠. 점심 식사하고 숙소 한 방으로 집합이 되서 1학년들은 머리 박고 있고… 하하. 그런데 여기서 대단한 일이 벌어집니다.”“김 코치, 나도 술을 좋아하지만, 경기 전날에는 안 마셨어.”전 감독이 말을 자르든 말든 김 수석은 그 때 그 순간으로 빠져든다. “당시 감독님이 ‘지기만 져봐’라면서 엄포를 놓으시더라고요. 상대가 한양대였는데 지면 큰 일 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전력은 고려대가 앞섰잖아요. 이길 줄 알았는데 웬걸, 막판까지 시소 접전이었어요. 벤치에서 1학년들이나 신입생들은 벌벌 떨고 있고, 하하. 종료 시간은 얼마 안 남았는데 아예 3점을 지고 있었어요. 그 때 저희들은 ‘죽었구나’ 했어요. 박한 감독께서 마지막 작전 타임을 부르시더니 그 때 ‘희철이! 3점 쏴’ 라고 하셨는데 절망에서 빛을 본 거죠. 그래서 감독님이 들어가서 가운데 자유투 서클 밖에서 3점 슛을 쏘는데….”“김 코치, 오른쪽 45도 지점이야.”“아, 그래서 감독님이 슛을 쏘는데 상대 (이)흥섭(DB 사무국장) 형이 파울을 한 거예요. 그래서 자유투 3개를….”“솔직하게 파울은 아니었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플라핑(파울을 유도하는 액션)이었죠.”“자유투를 3개 다 넣어서 연장으로 갈 수 있었고, 나중에 이겼어요. 그 때 감독님 때문에 ‘살았다’를 외쳤죠. 하하.”“그러면서 내가 다음 날 신문에 ‘간 큰 남자’라고 나왔다니까.”최고참 선배 전 감독이 막내 예비 새내기 김 수석의 ‘생명의 은인’이 된 날, 김 수석 ‘전희철’ 대역으로 화끈하게 대미를 장식하고, 전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더 웃긴 에피소드가 있어요. 경기에서 그렇게 이기고, 체육관을 빠져 나가야 되잖아요. 감독님을 보러 여학생 팬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빠져 나갈 수 없었어요. 경기 끝나고 매니저 형이 저하고 이규섭 등 몇몇 예비 신입생들한테 선배들의 유니폼하고 츄리닝을 입히더라고요. 말하자면 가짜 ‘전희철’로 만든 거죠. 그리고 팬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던 출구로 내보내더라고요. 팬들 몰이를 저희 쪽으로 해놓고 진짜 감독님과 (김)병철 형 같은 스타들은 반대편으로 빠져 나가려고 했던 거예요. 출구로 나가자마자 한 팬이 저를 보고‘아이 XX, 아니야, 아냐’라고 분개하며 감독님을 찾아 반대편 출구로 달려가는데…지금도 그 학생의 찰진 말 한 마디가 생생하게 기억나요. 하하.”김 수석은 대학 신입생 때부터 직접 눈으로 보거나 전해 오는 전 감독의 소식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았다. 자잘한 얘기부터, 프로농구 출범 전 실업팀에서 얼마나 대단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는지, 국가대표팀에서도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어떻게 경쟁하며 주전으로 뛰었는지 등등. 자신이 알고만 있어도, 기억만 잘해도 평생 농구 인생에 보약이 될 것 같았다. 누가 전 감독의 자서전이라도 써달라고 하면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다. 지금도 김 수석이 ‘전희철’의 별 것을 기억해내는 일이 많다고 한다. 전 감독 입장에서는 기억 저편에 묻혀진, 잘 나갔을 때의 추억을 다시 생각해낼 수 있어 기분도 좋고, 치열하게 농구를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 마음의 정비도 된다고. -감독님은 프로농구가 출범(1997년) 안하고 그 전에 실업팀으로 갔으면 백지수표를 받았을 거예요(김기만).“진짜 대학 졸업할 때 현대전자(현 KCC)에서 백지수표에 쓰고 싶은 만큼 액수 적으라고 했어. 오너께서도 그러셨던 걸로 알고 있고, 농구단 안에서도 ‘그룹에서 달라는 액수로 주라’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었어. 나도 현대를 가고 싶었거든. 포지션도 4번(파워포워드)이라 희귀성도 있었지. 나중에 동양(현 소노)으로 우선 지명될 때에는 대만에서도 제의가 있었어.”김 수석은 프로에 와서도 자기 코가 석자인데, 전 감독의 슬럼프를 자기 일처럼 매우 신경 쓰고 걱정하기도 했다. 당시 하늘같은 선배라 뭐라 위로를 할 수도 없고, 멀리서 선배의 방황에 어쩔 줄 몰라 했었다고. 김 수석이 언급한 그 기억은 전 감독이 지금 감독 자리에 있으면서 초심을 다질 때 가끔 거슬러 추억해보는 일이다. 분명 현역 시절 가장 없애고 싶은 성적표인데 요긴 지도법으로 활용한다. 전 감독이 2003~2004시즌 KCC에서 이상민, 추승균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뛸 때다. 그 시즌 전 감독은 18경기에 경기당 평균 21분 출전해 5.9득점에 그쳤다. “선수가 지도자에게 맞추는 것도 맞고, 지도자가 선수의 성향을 잘 파악해 전술 배려를 해주는 것도 맞죠. 이 점을 전제로 당시 저는 팀에서 외곽에 서 있다가 3점 슛을 쏘라는 주문만 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플레이는 아니었어요. 나는 슛만 쏘는 선수가 아닌데 슛만 쏘라고 하고, 안 들어가면 세게 지적을 받았어요. 모든 패턴의 시작은 제가 밖에 서 있는 것이었어요. 안 하면 안 됐죠. 골밑으로 잠깐 들어가면 패턴을 깬다고 또 지적을 받았죠. 그러면서 언론 등에서‘이제 전희철이 몸싸움을 안 하고 피한다. 밖에서 편하게 슛만 쏘려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다분히 선수의 잘못된 의지로 오해를 받았던 기분 좋지 않은 기억이다. 그렇지만 팀을 이끌면서 선수 입장과 사정을 챙겨보고자 할 때 자극삼아 되돌아보면 나름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눈치 빠르게 김 수석이 얘기를 꺼낸 것이다. ●‘전희철’ 은퇴식 때 울어버린 ‘김기만’, 그래서 동생이 되다‘이 사람의 진짜 동생이 되고 싶다’, 이 생각이 들 때가 언제였을까. SK에서 함께 뛰면서 서운한 적도 있고, 뭔가 말하기 어려운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도 있었다. ‘전희철’이라는 스타의 이름값에서 느껴지는 멀어짐이라고 할까. 그런데 그런 감정이 무의미하다고 정리된 순간이 왔다. 김 수석은“전 감독님의 은퇴식이 우리 관계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했다.2008년 11월. 전 감독은 SK에서 25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구단이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마련해준 은퇴식에서 그는 꽃다발과 감사패를 받으면서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 때 김 수석은 조용히 관중석 구석에서 전 감독의 눈물을 지켜보고 자신도 눈물이 터졌다고. 김 수석은 당연히 전 감독 옆에서 꽃다발도 주고, 포옹도 나눠야 하는 SK 선수였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농구를 하느냐 마느냐, 몇 개월 공백을 갖다가 어렵게 2군에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아 선배 옆에 자신 있게 서기 어려웠다. 누구보다 더 감동적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할 상황이 못 됐다. 관중석에서 마음으로는 ‘고생하셨다, 수고했다’라며 심박 조절을 했지만 눈에서 동공 조절이 안 됐다고. 당시 전 감독도 선수 생활 연장 기로에서 은퇴라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말을 안 해도 이심전심, 전 감독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아 울컥하고 또 울컥한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김 수석은 이 얘기를 꺼내면서 또 감정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감독님을 거스를 수 없다는 믿음이 생긴 날이었어요. ‘다른 사람하고 비교할 수 없다, 평생 따라다니는 동생이 되자’, 코트에서 우는 감독님을 보며 그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요.”● 나에게 은퇴 제안, 그리고 보고서까지 던져 버린 ‘형’같은 팀에서 있다보니 생각하지도 못한 선택을 해야 할 일도 생기고, 얼굴 붉힐 일도 있을 텐데 둘은 자칫 오해를 할 수도 상황에서 각자의 의도를 잘못 짚지 않았다. 2011년 4월, 당시 코치를 맡고 있던 문경은 전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면서 둘의 신상 변화가 생겼다. 운영팀장이었던 전 감독이 코치가 되면서 현장으로 복귀했고, 2군 선수로 있던 김 수석이 1군으로 올라가 다시 뛸 여지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전임 감독이 사임하시고 저는 2군 숙소에 박혀서 운동하고 있을 때였죠. 하루는 오전에 웨이트훈련을 하고 있는데 문 감독께서 감독으로 부임했다고 기사가 난 거예요. 전 감독님은 코치가 된다고 나오고. 그 때 속으로 ‘이제 좋다. 됐다’ 싶었죠. ‘나이도 많은데 나도 말년에 제대로 뛰어보자’ 그랬죠. ‘희철이 형이 나를 버리진 않을 거야’라고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어떤?“기대를 하고 있던 마당에 전 감독님이 2군 훈련장으로 오셨죠. 저를 불러 하시는 말이…‘은퇴하게’였어요, 하하. 기대하고 완전히 반대였죠.”물론 팀 사정 때문이었다. “‘만기’에게 전력분석을 맡기려고 한 거죠.”“전 감독님이 당시에 문 감독하고 팀을 만드는데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은퇴에는 동의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노트북만 만지고 있는 것보다 현장에서 움직이는 게 성향에 맞으니 D리그(2군)를 보고 운영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죠. 전 감독께서 회사하고 상의해보더니 어렵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다음 날부터 팀 운영 방향 등에 관한 보고서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된 겁니다.”-피곤해졌겠네요.“김 코치가 많이 혼났죠. 저도 전력분석을 해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뻔히 알고 있잖아요. 보고서만 봐도 어느 정도 일을 한 건지 알죠.”“주로 홈 경기를 보고 공부도 하고 분석을 했어요. 한 번은 경기가 끝났는데 문 감독께서 기자들하고 술 한 잔 하면서 식사를 해야 하는데 인원이 부족하다고 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까지 길게 술을 마시게 됐죠. 다음 날도 경기라 바로 끝난 경기 보고서를 점심식사 전까지 전 감독님께 드려야 했어요. 새벽에 들어와서 힘든데도 나름대로 보고서를 만들어서 보내고 영상 분석은 아직 실력이 부족하니 식사 후에 드리겠다고 했는데, 바로 엄청 깨졌죠. 전 감독님이 ‘할 일은 하고 술을 마셔야지’라고 식당에서 선수들 보는 앞에서 막 혼을 내는데 얼마나 서러운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하하.”“오타는 엄청 살벌하게 내고 와서.” -그래도 서로의 진심을 알았기 때문에 그 때 관계가 틀어지지 않았죠? “친분, 뭐 의리를 떠나서 가장 어이없고 화가 나는 건 일을 같이 하는 사람이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잖아요. 그 때 그런 제 마음을 기만 코치는 잘 이해한거죠. 조직에서 상급자, 선배들 잘 모시는 것 같은 사회생활 김 코치가 참 잘해요. 장점 중에 가장 좋은 건 같이 다닐 때 신경을 안 쓰게 한다는 거예요. 같이 있으면 이것, 저것 전부 챙겨줘야 하고,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후배가 아닌 남자의 입장에서 둘이 다니는데, 나한테 피해만 안 주면 정말 고맙거든요.”-감독에게는 최적화된 코치 아닌가요.“잘 스며들어요. 잘 챙기고. 내가 잊어버릴만한 일들을 어떻게 알고 저의 빈틈으로 들어옵니다. 살짝 귀띔해주거나 본인이 처리해놔요. 감독이 완전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면 코치는 분명 감독이 뭔가를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죠. 그렇게 둘이 잘 커버가 돼야 서로 하나의 ‘세트’가 되지 않겠어요? 일이든 인간관계든. 저의 ‘사각지대’를 보는 시력이 참 좋습니다. 김 코치가.”● 선배 감독들 실수 반복 안 하려는 ‘형’… 그것을 ‘카피’하는 ‘동생’이제 감독과 코치로 3시즌 째. 전 감독은 첫 프로팀 지휘봉을 잡자마자 우승을 거뒀고, 지난 시즌에는 아쉽게 준우승을 했다. 초보 감독으로 프로농구 역대 지도자로 최소 경기 100승을 달성했다. 147경기 만에 100승. 대단하다. 시행착오야 분명 있었겠지만 둘이 팀을 다지고 끌어온 과정과 결과가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 수석에게는 지난 3시즌 전 감독의 팀 운영을 보고 배운 것을 무엇과도 바꾸기 힘들다고 했다. 김 수석은 “나중에 어떤 팀을 맡더라도 자신 있다. 지난 3년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을 갖고만 있으면 되고, 아니 갖고 있어서 좋다. ‘카피’할 수 있다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어디서든 잘 적용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는 게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전 감독에게 깨지고 또 깨지고, 숙제하고 또 숙제 검사 받는 게 지겹고, 한편으로는 자존심 도 무너지는 과정을 겪었지만 지나가보니 맞는 길을 찾았다고 본다. 형을 잘 만난 덕으로 돌린다. -전 감독께서 보기에, 김 코치가 뭘 보고 배워서 저렇게 만족해할까요. ‘전희철표 지도’의 핵심으로 연결되는 문제네요.“저도 여러 감독들을 모셨고, 지켜봐왔는데 각자 장점과 단점이 있잖아요. 그런데 장점이라는 건 객관적 지표로도 보일 수 있는 거고, 그런데 단점은 굉장히 주관적인 의사에 달려 있는 거잖아요. 코치를 할 때부터 선배 감독들의 좋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배워보자’가 아니라 단점은 하지 말자라는 점에 기준을 두고 일을 했어요. 사람마다 장점 캐릭터가 있잖아요. 그것을 내 것으로 승화시키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원래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아예 선배 감독들의 실수를 답습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죠.”-경험에서 얻어진 신념 같은데요.“이전 감독들이 한 행동들에 대해 선수들이 싫어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장점은 분명히 있잖아요. 다른 감독들의 장점을 따라가진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후회가 안 생기도록. 그러면서 이전 감독들의 단점들을 내가 보여주지 말자는 겁니다. ‘단점을 하지 말자’라고 하면 보완책을 생각해 놓겠죠. 그 보완책을 실행으로 옮기다보면 그게 새로운 저의 장점이 될 테고요.”-꼼꼼한 성격인데 본인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저의 이런 이미지가 정답은 아니죠. 이 팀에서도 코치든, 선수들이든 상황에 따라 저에 대해 뭔가의 단점을 발견하고 찾겠죠. 내 의지대로만 팀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제가 100% 완벽한 게 아니기 때문에요. 이전 감독들의 단점을 답습하지 말자라는 건 팀 운영을 하는데 있어서 조정과 조율을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여기서 좋은 결과물을 내면 그게 또 저의 것, 장점이 되고요. 제 스스로도 모니터링을 합니다. 예를 들어 중계 카메라의 잡힐 때 선수들을 대하는 말과 표정 등까지도 체크를 하죠. ‘아, 이렇게 화를 낼 때 선수들은 어떤 감정이 들겠구나’ 하고 곱씹어보죠. 그러면 다음 같은 상황에서 마음을 비운다던가, 스스로도 단점을 줄이는 과정을 겪죠.”-이제 ‘김기만’에서 그런 ‘전희철’의 모습이 많이 비춰질 수도 있겠네요.“김 코치는 많이 배운다고 하는데, 저는 배워보라고 하는 것보다, 들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에요. 저의 장점을 가져가라, 배워가라고 하면 힘들 거예요. 한 상관을 모시고 평생 직장을 다닐 거면 모르겠지만, 이 바닥에서는 팀, 감독도 자주 바뀔 수 있고, 선수 세대도 금방 바뀌잖아요. 그러면 내 철학이 맞다, 이거죠. 장점만 따라가서 복사하려면 방향성을 못 잡습니다. 예를 들어 카리스마 있는 감독이 있고, 온화하게 지도하는 감독이 있을 수 있고, 또 유머 있는 감독?… 내가 유머가 없는데 어떻게 따라갈 거예요? 무조건 따라한다고 해서 내 것이 되기 어렵다는 거죠. 만들었다 해도 내 스타일이 없어지죠. 단점을 안 하는 게 복잡하지 않고 쉽다, 단점만 안 하면 최소한 욕은 안 먹는 감독이 된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었어요.”“이러니까 되게 편해요. 감독님이 머리 아프면서 정리해놓으셨잖아요. 이런 단점, 저런 단점 안해야 되고…나름 좋은 감독상을 정리하셨잖아요. 저는 머리 안 굴리고 그대로 따라가면 되죠. 하하.”(김기만)내 것은 온전히 다하고 또 연구해서 좋은 쪽으로 발휘하고, 안 좋은 것은 하지 않는 실천. 농구를 떠나 ‘전희철’이 사는 인생법이라 느껴진다. 그게 온전히 동생에게 이식되고 있다. -해석이 그럴 듯한가요?“감독도 다 먹고 살자고, 주변 사람들과도 좋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같은 조직에서 같은 목표를 갖고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누군지 보여줘야 하잖아요. 사람들이 참 재밌는 게 10년 전의 제 모습을 다 기억 못해요. 오래 같이 있던 사람들도요. 그래서 저를 계속 변화시키고 알려줘야 한다는 거죠. 이미지라는 게 나쁘다가도 좋게 되거든요. 농구를 잘 공부하고 파헤치면서, 팀을 바르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저의 사회적인 이미지에도 연결이 되니까요.”-김 코치는 그런 감독님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겠습니다.“저는 자부할 수 있어요. 형수님 다음으로 대한민국에서 전 감독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저는 알아요. 그런데 단점을 계속 지우고 계셔요. 보통 같으면 화이트보드를 던져 날아갈 상황인데, 과장 없이 얘기하면 10번 날아갈 게 한 번도 안 나왔어요. 아직 감독님의 단점은 안 보입니다. 하하.”● 눈물까지 닮고 싶다초보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자마자 통합 우승을 하고 두 번째로 맞이한 2022~2023시즌. 전 감독은 또 한 번 SK를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정관장을 상대로 3승 2패로 앞선 상황에서 치른 6차전에서 3쿼터 한 때 15점 차이로 앞서가다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7차전에서 분위기를 넘겨주며 거의 손에 넣었던 우승을 놓쳤다. 전 감독은 7차전이 끝나고 6차전을 복기하며 4쿼터 자신의 전략이 실패였고,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거의 가족 누가 세상을 떠난 것처럼 눈물을 쏟았다. 김 수석은 비판과 비난을 기꺼이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감독의 눈물 시작과 끝을 다 봤다. 김 수석이 “그 때 진 건 저한테도 지분이 있다…”고 말하자 전 감독이 말을 끊었다. “김 코치. 그 때는 감독의 잘못이야. 3쿼터 이기고 있을 때 작전 시간을 부르면 안 되는 상황이야. 여태껏. 15점을 이기고 있는데. 그런데 나한테 만약 그 상황이 똑같이 왔다고 하면 작전 타임 또 부를 거야. 그 때는 선수를 쉬게 해주는 게 맞아. 쉬게 하면서 템포 조절하고 정리해서 이기고 있는 점수를 지키는 게 맞아.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점수를 지키지 못한 게 잘못이지, 몇몇 팬들은 ‘미친 작전 타임’이라고 하시는데 나는 지금도 자신 있게 작전 타임을 똑같이 부를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때와 달리 주력 3명을 작전 타임 때 쉬게 하면서 벤치에 앉혀두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을 거야. 그래도 당시 전체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김 수석은 감독을 너무 잘 아니까, 조언할지 말지 생각이 많았겠어요. 당시에.“감독님은 ‘레파토리’를 여러 개 준비하고 오니까….” “아니, 내가 못 볼 수도 있는 것을 얘기할 수도 있었겠지.”(전희철)“그런데 저는 감독님이 다 보고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만약에 이런 저런 상황에 맞는 조언을 드렸는데 감독님이 ‘그랬어?’라고 하면 다들 속으로 ‘그것도 파악 못했어’라고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감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런 적이 없으니까 판단을 잘 하실 거라 믿었죠.”-김 수석이 감독님 판단에 개입할 여지가 많지는 않겠어요.“경기 중에 상대 선수 누가 우리 선수 뒤통수를 때렸는데 내가 못봤을 때? 김 코치가 정말 때린 것을 봤다고 큰 소리를 내면 ‘그래? 때렸어?’라고 같이 열 받아할 수 있겠죠. 하하.” -김 코치의 역할이 막중합니다.“정해놨어요. ‘뒤에서 내 욕하다 걸리면 다 잘라버린다’고요. 하하.”-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 열심히, 팬들 의식하면서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제가 왜 농구에 진심인 줄 아세요?. 감독으로 왜 죽기 살기로 이기려고 하느냐면, ‘남들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어서’에요. 싫은 소리를 농구하면서 너무 많이 들어서 제발 안 들었으면 해서 진심으로 이기려고 합니다. 이겨서 희열을 느낀다기보다 ‘아 싫은 소리 안 듣겠다’, 이게 더 좋아요. 프로니까 이기면 싫은 소리 안 나오잖아요.”“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하고 저라도 감독님처럼 눈물이 났을 거예요. ‘내가 정말 그렇게 했다고’ 하면서 자책하는 눈물로 보였거든요. 저도 같은 상황이면 똑같이 그랬을 거예요. 저도 이제 누구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선수들한테도 주기적으로 ‘뭐 하지 마라’식으로 주의를 많이 주죠. 귀찮을 겁니다. 그래도 재밌게 받아들여달라고 해요. ‘니희들 때문에 나 감독님한테 욕먹는다. 감독님 성격 알지? 나 죽는다. 평상시처럼 착한 사람으로 살게 해 달라’고요.”(김기만)듣다보니 척하면 척이다. 둘이 평생 같은 길을 안 가면 어색할 것 같다. 전 감독은 “ ‘만기’가 ‘정말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라고만 안하면 둘이 평생 농구로 붙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 수석은 이미 몇 년 전 수석코치였던 전 감독이 여자프로농구 팀 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의 대화로 ‘평생 깐부’로 지낼 것을 확신했다고. “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만기야, 여자 선수 3점 슛 자세 제대로 잡아주고 가르칠 줄 알아?’라고 해서 ‘모르겠는데요’라고 했죠. 그러니까 ‘그렇지? 나도 몰라, 안 갈래. 그냥 여기 있자’라는 거예요. 얼마나 웃었는지….”각자의 이익을 우선 염두에 두는 동업자였다면, 분명 이 대화 뒤에 숨겨진 의도와‘트릭’이었을 거다. 계속 곁에서 배운다는 김 수석이 동반자로 전 감독에게 하나 드릴 게 있다고 한다. 말 선물이다. 돈은 없으니. “감독님 혼자 가는 길에 엄한 짓 제가 안 할 테니, 가고 싶은 길로 가시고,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제가 주변 정리 할 테니.”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