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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시가 강보합으로 마감했습니다. 금요일 인플레이션 지표 발표를 기다리는 모습인데요. 27일(현지시간) 다우지수와 S&P500은 0.09%, 나스닥지수는 0.30% 상승했습니다.투자자들은 28일 발표될 5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근원 PCE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선호하는 물가지표로 금리인하 시기에 영향을 줄 수 있죠. 월가에선 5월 근원 PCE가 전월보다 0.1%,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에 그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근원 PCE 상승률이 둔화하면서 연준의 올해 안 금리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줄 거란 전망이죠.이날 주요 반도체 주식은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전날 실적을 발표한 마이크론은 이날 주가가 7.12% 급락했는데요. 분기 실적은 시장 추정치를 웃돌았지만, 다음 분기 예상치가 월가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 주가 역시 1.9% 하락했죠.분기 실적 발표 뒤 주가가 하락은 종목은 또 있습니다. 청바지 제조업체 리바이스는 전날 실망스러운 분기 실적을 발표해, 이날 주가가 15.4%나 빠졌는데요. 하밋 싱 리바이스 CFO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데 신중해졌다”고 설명했죠.이날 장 마감 뒤엔 나이키가 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요. 비용 절감으로 이익은 늘었지만 매출은 예상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번 분기엔 매출이 10%, 2025년 회계연도(2024년 6월~2025년 5월)엔 매출이 한 자릿수 중반으로 감소할 거란 전망을 발표했죠. 시간외거래에서 주가는 12%나 급락했는데요. 매튜 프렌드 CFO는 온라인 판매 둔화와 중화권의 거시적 불확실성 증가, 시장 전반의 불균형한 소비자 추세가 실적 전망 하향의 원인이라고 설명합니다.나이키의 최근 부진의 가장 큰 이유는 러닝화 시장에서의 지배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죠. 호카·온러닝 같은 새로운 브랜드가 급부상하며 나이키가 밀리고 있는데요. 그동안 나이키가 러닝화보다는 한정판 스니커즈 출시 같은 다른 쪽에 집중한 탓이 크죠. 나이키는 이번 파리올림픽 때 신제품을 내놓으며 러닝화 시장의 기반을 재정비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아, 이 소식도 빼놓을 수 없죠. 27일 나스닥에 상장한 네이버웹툰 모기업 웹툰엔터테인먼트가 공모가보다 9.52% 높은 23.0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성공적인 데뷔인데요. 기업가치는 약 4조원으로 불어나게 됐습니다.웹툰엔터테인먼트는 공모가가 희망 범위 최상단으로 결정되면서 현지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네이버웹툰은 이번 IPO로 조달한 자금으로 애니메이션·영상·게임 같은 2차 사업으로의 확장에 나설 전망입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똑같은 제품인데 어제와 오늘 판매 가격이 다르다. 기억이 틀렸나 싶어서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보면 며칠 전 더 싼 가격에 구매했다는 상품평이 나온다. 왠지 손해 보는 듯한 기분에 마음 상한다. 쿠팡·11번가·G마켓 같은 온라인 쇼핑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면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유통기한과 재고 상황, 경쟁업체 판매가에 따라 가격이 수시로 바뀌는 가변가격제(Dynamic Pricing)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누가 사느냐에 따라서도 가격은 달라진다. 둘이 동시에 쿠팡에서 같은 제품을 검색했는데, 제시된 가격이 달라서 어리둥절한 적 있다. 신규 고객에게만 할인쿠폰을 줬기 때문인데, 멤버십에 가입한 충성 고객은 솔직히 억울하다.고립된 고객, 맞춤형 가격 가변가격제는 합법이다. 경영학에선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고객 선택권을 늘리는 선진적인 전략으로 여겨진다. 항공권 요금이나 호텔 숙박비는 언제 어디서 결제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게 일반적이다. 특정 시간대엔 값을 깎아주는 영화관 조조할인이나 카페의 해피아워도 비슷한 사례다.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평균 10분에 한 번 가격을 바꾸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성공 비결로 꼽힌다. 효율적인 시장에선 같은 상품엔 하나의 가격만 있다는 ‘일물일가의 법칙’은 깨진 지 오래다. 가변가격제는 점점 확산한다. 미국 맥도널드는 매장마다 가격이 다를 뿐 아니라, 앱으로 주문하면 매장 계산대에서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다. 미국 차량 공유업체 우버와 배달플랫폼 도어대시는 고객이 몰리는 시간대엔 요금을 대폭 인상한다. 하이브는 지난해 BTS 멤버 슈가의 미국 콘서트 티켓에 가변가격제를 도입해, 350달러였던 표값이 순식간에 1000달러 넘게 치솟기도 했다.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서로 누가 얼마에 제품을 샀는지 알 수 없다. 고립된 고객과 데이터 분석 기술이 결합해 유연한 맞춤형 가격 시대를 탄생시켰다.AI가 가져올 1인 1가격 시대 이론적으론 수시로 바뀌는 가격은 더 많은 소비자 효용을 가져다준다. 일부 고객이 더 높은 가격을 지급하는 대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 수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 제품을 정말 원하는 사람에겐 비싸게, 덜 원하는 사람에겐 싸게 제공하는 것. 경제학 용어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다. 하지만 가변가격제는 불편하다. ‘맞춤형 할인’은 다들 원하지만, 실제로는 ‘가격 차별’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비싼 가격을 지불해 손해 보는 소수에 내가 속하지 말란 법이 없다. 같은 물건에 다른 가격 지불하는 것은 공평한가. 질문은 점점 커진다. 인공지능(AI) 기술은 가변가격제를 고도화할 것이다. 완전히 개인화된 ‘1인 1가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 출근길에 앱으로 장을 보는 워킹맘에게 그 시간대에만 우유 가격을 슬쩍 올려서 제시한다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월급날 즈음엔 배달 음식료를 좀 더 높게 부른다면. 이런 맞춤형 가격 제안에 수락 또는 거절하는 소비자 경험이 쌓일수록 AI는 더 똑똑해질 것이다. 이 게임에서 소비자는 승리할 수 있을까. 최근 속속 등장하는 ‘가격 추적 앱’을 보면 소비자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쇼핑 앱의 제품별 가격 변동을 매일 추적해 지금 가격이 이전보다 얼마나 싼지, 비싼지를 그래프로 한눈에 보여준다. 역대 최저가로 살 수 있는 제품은 따로 모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런 정보를 전자상거래 기업 스스로 공개하면 어떨까. 과거 한 달 동안의 가격 변동 범위를 알리는 식으로 말이다. 가격이 전보다 오르거나 내린 이유까지 설명해 준다면 더 좋겠다. 점점 늘어나는 가변가격제가 소비자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건 투명성이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haru@donga.com}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 주가가 요동친다. 사흘 동안 주가가 13%나 추락하더니 25일(현지 시간)엔 다시 6.8% 급등했다. 주가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닷컴버블의 상징인 2000년 시스코와 비교하는 분석이 이어진다.● 주가 급등 차트가 닮았다 엔비디아 주가는 불과 2년 만에 700%가량 올랐다. 16달러이던 주가가 130달러 내외로 뛴 것. 하루뿐이긴 했지만, 18일엔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시가총액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4년 전, 이와 비슷한 주가 차트를 그렸던 종목이 있다. 미국 통신장비업체 시스코다. 2년 동안 주가가 약 600% 수직 상승한 시스코는 2000년 3월 잠시 시가총액 1위(5700억 달러) 자리를 차지했다. 그때도 2위는 MS였다. 당시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시스코 목표주가를 끌어올리기 바빴다. 시스코가 역사상 처음으로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할 거란 장밋빛 전망이 이어졌다. 하지만 닷컴버블은 터졌고 주가는 빠르게 무너졌다. 2000년 3월 80달러를 넘어섰던 시스코 주가는 불과 1년 만에 77% 급락했다. 이후 주가는 더 빠져 2002년 10월엔 8달러까지 내려앉았다. 인터넷 대장주의 극적인 몰락이었다.● 기술혁명 초기의 수혜 기업 지금의 엔비디아가 2000년 시스코와 비슷한 건 차트만이 아니다. 현대판 골드러시 시대의 곡괭이와 삽을 파는 기업이란 공통점이 있다. AI 기술 개발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없인 이뤄질 수 없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기술기업은 너도나도 엔비디아 GPU를 사려고 줄서기 바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자사의 GPU를 가리켜 “새로운 산업혁명을 구동하는 엔진”이라고 말한다. 인터넷 혁명이 시작된 1990년대 말, 시스코도 그랬다. 시스코의 스위치와 라우터 없이는 네트워크 구축이 불가능했다. 1995년 22억 달러였던 시스코 매출은 2000년 189억 달러로 불어났다. 당시 시스코 CEO였던 존 체임버스는 이렇게 밝혔다. “인터넷 산업혁명이 이제 막 시작됐고 시스코 제품이 수요를 주도한다.” 이런 폭발적 성장세가 영원히 이어질 듯했지만 아니었다. 2000년 닷컴버블 붕괴로 인터넷 관련 투자가 쪼그라들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시스코 주가는 47달러. 24년 전보다 매출은 세 배가 됐고 여전히 세계 1위 통신장비 업체이지만, 주가는 고점에 한참 못 미친다. 월가 비관론자는 엔비디아가 이와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투자은행 BTIG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18개월 동안 엔비디아 주가 상승률은 827%로 2000년 시스코의 두 배”라며 엔비디아 주가가 “미지의 영역에 진입했다”고 지적했다. ● 여전한 엔비디아 대세론 이런 비관론은 아직까진 소수 의견이다. 주가 차트는 비슷하지만 여러 지표에서 엔비디아가 버블 붕괴 직전의 시스코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일단 주가가 얼마나 고평가됐는지를 나타내는 주가수익비율(PER)이 엔비디아는 약 70배, 2000년 3월 시스코는 205배이다. 엔비디아 주가가 비싸지만 정점 때의 시스코 수준엔 한참 못 미친다는 뜻이다. 돈도 더 잘 번다. 엔비디아의 매출총이익률은 78.3%로, 과거 시스코(64%)를 크게 앞선다. 성장도 더 빠르다. 엔비디아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62% 늘었다. 시스코는 2000년 55% 성장에 그쳤다. 전 세계 개발자 470만 명이 이용하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CUDA)’는 엔비디아의 해자로 꼽힌다. 로젠블랫증권의 한스 모세스만 애널리스트는 “진정한 이야기는 하드웨어를 보완하는 소프트웨어에 있다”면서 최근 엔비디아 목표주가를 200달러로 높여 잡았다. 물론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엔비디아의 경이로운 실적 성장세가 꺾일지 모른다. 만약 엔비디아의 기술 진보 속도가 느려진다면 AMD 같은 경쟁사가 따라잡을 수 있다. 전력과 데이터 부족으로 AI 기술 확장 속도가 느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곡괭이와 삽을 많이 만들어도 광부들 먹일 식량이 동나면 금을 캐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다시 돌아왔다고 하죠. 지난 1분기 조선 빅3(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가 무려 13년 만에 처음으로 동반 흑자를 기록하며 ‘K-조선 전성기’ 부활을 알렸는데요. ‘역시 배는 한국이 잘 만들지’라며 뿌듯하지만, 한편으론 불안합니다. 한때 ‘거제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대호황을 누렸던 조선업이 불황에 빠진 뒤 얼마나 크게 무너졌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인데요.K-조선은 모처럼 돌아온 이 호황을 발판 삼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으려나요. 16년 동안 조선업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조선업 굴곡을 지켜본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팀장을 인터뷰했습니다.*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3년 치 일감이 쌓여있다-요즘 한국 조선업 분위기가 참 좋죠.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의 호황인가요?“10년 만에 돈 버는 거죠. 2014년 해양플랜트 사고(대규모 손실) 나고, 빅배스(big bath, 잠재부실을 한꺼번에 손실처리)하면서 망할 뻔했던 게 10년 전인데요. 15조원이었던 대형 조선사 매출이 5조원대까지 떨어져서 난리 났었죠. 조선업 인력이 (절정기에) 20만명이었는데, 9만명까지 떨어졌고요.지금은 좋아요. 2021년부터 다시 수주를 잘 받고 LNG선 수주도 나오고 선가도 올라가니까요. 그래서 이제 (매출) 10조원 정도를 향해 회복하는데, 사람(인력)이 바로 안 돌아와요. 그리고 일 잘하는 분들 월급은 50~60%씩 오르고요. 그래서 조선업은 이미 2021년부터 호황이었는데 인건비도 같이 올라가니까 그동안 돈이 안 됐어요. ‘너무 좋은데 왜 돈은 못 벌고 있지? 왜 이익이 안 나지?’라고 하다가 올해부터 드디어 돈을 버는 겁니다.”-1분기엔 빅3가 동반 흑자를 기록했죠.“올해는 더 좋은 물량이 들어와요. 지난해보다 더 비싼 걸 만드는 거죠. 인건비도 더는 오르지 않을 거예요. 외국인 노동자가 지난해 한국에 많이 들어왔거든요. 그동안 교육 받고 이제 현장에 쫙 들어오는 중이에요.”-지금 조선사마다 3년 치 이상의 일감이 싸여있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어떤 의미인가요?“백로그(수주잔고)는 보통 2년 정도가 적당한 거예요. 왜냐하면 배를 만드는 데 1년 반이 걸리거든요. 백로그 1년 반이면 초비상이죠. 지금 당장 수주를 못하면 1년 반 뒤엔 놀아야 하니까, 무조건 수주를 받아야 하는 거예요. 2년이면 그냥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 적당한 수준이고요.2021년 컨테이너 수주가 쏟아지고 LNG 수주가 또 2022년 쏟아지면서 백로그가 3년이 돼버렸어요. 왜냐면 2021년에만 2년 치를 받았거든요. 그럼 그때부턴 내가 배 파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수주를 골라서 받아야죠. 어차피 다 받을 수도 없고요.“(조선사가) 정말 좋은 조건을 시장에 내놓고, ‘이거 너무 비싼데’라고 하면서도 결국은 (고객사가) 잡거든요. 그렇게 선가는 계속 올라갑니다.”-이렇게 3년 치가 쌓인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인 거죠?“2004년 이후로는 처음입니다.”-20년에 한 번 오는 드문 일이로군요.“그런데 그땐 우리나라 인구도 젊었고 노동자들도 많아서 캐파(생산능력)를 늘렸어요. 그래서 2000년대 초반 매출이 3조, 4조원이던 대형 조선사들이 단기간에 15조원까지 갈 수 있었는데요. 그런데 이번엔 (캐파를) 못 늘립니다. 왜? 사람이 없잖아요.어떤 산업이든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을 원활히 늘리지 못하는 산업은 엄청난 호황이 올 수 있어요. 지금 그게 조선업에서 진행되고 있고요. 그런데 투자자분들 중에서 안 믿으시는 분들이 많죠. 왜냐하면 2007년 너무 좋았다가 그다음에 막 망해버린,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요.”LNG선 수주 늘리며 쫓아오는 중국-올해 수주 물량은 이전보다 오히려 줄었죠. 골라서 받고 있다고 봐야겠죠?“그렇죠. 2021년에 2년 치, 2022년에 1.7년 치 (수주물량을) 받았어요. 지난해는 350억 달러로 수주가 좀 줄었지만 연간 매출(지난해 37조원, 올해 39조원)보다 많은 거죠. 올해 수주 목표가 330억 달러인데, 벌써 230억 달러를 채웠어요. 수주가 줄어든다고 나쁠 건 없어요. 백로그를 4년, 5년까지 만들 필요는 없거든요. 나중에 선가도 바뀌고 원자재값도 다시 오를 수 있으니까요.”-최근 중국의 LNG선 수주가 늘어났다는 기사를 봤어요. 중국이 결국 따라오게 되지 않을까가 걱정인데요.“양으로는 중국에 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이 도크도, 사람도 더 많거든요. 탱크나 컨테이너는 수주금액에서 우리가 뒤지죠.사실 LNG는 유럽 선주들이 중국에서 절대 발주를 안 하던 배였어요. 한번 발주했다가 2018년 배가 고장 났거든요.(중국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LNG선이 한 달 만에 해상에서 고장, 결국 폐선 처리) 이후 중국이 아무리 싸게 팔아도 LNG선은 발주 안 한다는 분위기였는데요.2022년 한국 조선사가 LNG선을 119척 수주합니다. 그리고 중국이 55척을 받았어요. 이게 무슨 일이냐면요. 우리가 LNG선은 1년에 65척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걸 막 늘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배를 도커에서 제작한 뒤, 바닷가 안벽(부두 벽)에 붙여두고 나머지 작업을 해야 하는데요. 그 작업기간이 일반 상선은 3개월인데, LNG선은 9개월입니다. LNG선을 한 척 만들면 일반 상선 세 척을 포기해야 하는 거예요.그런데 일반상선도 2000억원, 3000억원짜리도 있거든요. 3500억원짜리 LNG선 만들려고 상선 세 척을 포기하는 게 맞는지 잘 계산해 봐야 하죠. 그래서 한국 조선사가 원래 LNG선을 연간 40척 만들다가, 늘려서 65척을 하고 있는데요. 그게 2022년에 수주가 쏟아진 거예요. 이미 2년 치를 받아놨으니, 더 받으면 5년 뒤에나 인도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영업을 닫았어요.유럽 선주는 LNG선이 필요해요. 심지어 (한국 조선사와) 되게 친한 단골도 있어요. 그런데 안 해주는 거예요. 삐치겠죠. 그럴 때 중국이 ‘우리가 할게’라고 치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한번 믿어볼까. 가격도 싼데’라며 중국으로 간 거죠.중국은 원래 후동중화 한 곳만 LNG를 했어요. 그런데 원래 (연) 5척 정도 하다가 캐파를 10척 이상으로 늘렸고요. LNG를 안 하던 4개 조선사가 새로 들어왔어요. 중국의 에이스들인데요. 그 5개 사가 55척을 받은 거죠.이제 중국 조선사들이 이걸 만들어서 내보내는 게 2025~2027년이 될 텐데요. 이게 어떤 평가를 받느냐가 중요하죠. 만약 좋은 평가를 받으면 지금 컨테이너와 탱크에서 우리가 지는 것처럼, 점점 점유율을 뺏길 수도 있어요.”암모니아 운반선과 수소 경제-중국이 생각보다 LNG선을 잘 한다면, 우리에겐 위협이 될 수도 있겠군요.“그런데 LNG선이 계속 가진 않을 거예요.”-왜요?“LNG는 중간 에너지원이잖아요. LNG로 하다가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만약 2030년 중후반쯤 중국이 LNG를 잘하게 되더라도 괜찮아요. 그때쯤 되면 오히려 LNG는 가라앉는 때일 수도 있어요. 대신 새로운 선종이 생기고 있죠. 암모니아 운반선, 이산화탄소 운반선 등. 계속 뭔가 바뀌는 건 좋은 거예요. 후발 주자가 따라오기 힘드니까요.”-우리는 계속 앞으로 치고 나가면 되는 거군요. 암모니아 운반선은 이제 막 수주가 들어오기 시작한 선종이라고요?“지난해 5월, 6월쯤부터 갑자기 막 시작됐죠.”-암모니아 운반선이 필요한 건 암모니아가 수소 운반체이기 때문일 텐데요. 수소 생태계가 벌써 그렇게 조성된 건가요? 아직 수소 경제는 좀 멀었다고만 생각했는데요?“될 거니까 지금 주문하는 거죠. 수소생태계 중 명백한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발전소와 선박이죠. 발전소의 경우엔 석탄화력발전에 암모니아를 집어넣으면 이산화탄소(CO2)를 잡게 됩니다. 또 암모니아를 연료로 쓰는 선박이 2026년이면 나오고요. 그게 한 3년 돌아다니면서 안전하다고 입증하면 (선박 연료가) 암모니아로 싹 넘어가게 되겠죠.그럼 배들이 항만에서 암모니아를 넣을 수 있도록, 항만마다 암모니아를 뿌려주는 수송 수요가 생기는 건데요. 계산해보면 2035년까지 암모니아 운반선이 약 200척 필요해요. 1년에 20척이니까 많진 않죠. 그런데 이게 더 많이 쓰이고, 또 다른 수요까지 생긴다면 지금의 LNG만큼 엄청 큰 시장으로 갈 수도 있는 거죠.그래서 지금 발주하는 겁니다. 그런데 배들이 2027~28년 나오잖아요. 그때 혹시 암모니아 운반 수요가 별로 없을 수도 있긴 해요. 그런데도 발주하는 건 왜냐. LPG(액화석유가스)와 액화 암모니아는 물성이 거의 비슷하거든요. 한마디로 암모니아 운반선은 기존 LPG선의 차세대 버전이라고 보시면 돼요. 더 튼튼하게 만들고 내부 탱크 코팅도 해서, LPG선을 더 크게 만드는 거죠.”-그건 왜 우리가 잘하는 걸까요?“이 시장은 니치 마켓이에요. 원래 대형 LPG선 1년에 한 20~30척밖에 안 나와요. 한국이 만드는 배가 연간 총 200척, 중국은 500척인 것에 비하면 조그마한 시장인 거죠. 그동안은 현대중공업이 이걸 주로 해왔고요. 그런데 이 작은 시장이 갑자기 커지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존에 조금씩이라도 계속했던 현대가 유리하고요. 이전엔 아예 LPG를 하지 않았던 삼성중공업도 야심 차게 들어왔습니다.”-삼성중공업이 들어왔다는 건 이 시장이 진짜로 커지는 게 보인다는 뜻이로군요.“삼성이 이번에 크기를 대폭 키운 새로운 암모니아 운반선 디자인도 개발했어요. 배가 커진다는 건 그만큼 물동 수요가 커지고, 대륙 간으로 이동이 늘어난다는 뜻이죠.수소 생태계에서 수소를 대륙 간 이동할 때 액화수소로 할지, 암모니아로 할지를 고민해 왔는데요. 액화수소 운반선은 지금 연구개발 중이고 막 만들어보려고 하는 단계에요. 액화수소는 영하 253도 이하여야 하는데요. 이걸 배에 싣고 다니면 바깥 온도와의 차이 때문에 수소가 기화돼서 날아가 버리는 양이 아마 상당할 거예요. 돈도 많이 들고 어렵죠. 그런데 그냥 수소와 질소를 붙여서 암모니아(NH3)로 만들어서 수송하면, LPG처럼 싸게 운반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암모니아 운반선이 먼저 확 시작된 겁니다.”-조선업을 알려면 글로벌 친환경 트렌드를 미리 읽어야겠군요. 사실 조선업은 워낙 오래되고 늘 있던 산업이라 이런 변화의 한복판에 있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테슬라 같은 전기차 멋있죠? 조선업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름에서 LNG로 넘어오고, 그러다 메탄올 선박으로 갔다가 암모니아 선박이었다가. 더 먼 미래엔 선박 안에서 자체 전기생산을 해서 모터로 가게 되겠죠.”미국 진출로 열릴 기회-슈퍼사이클이라는데, 조선업의 호황은 얼마나 더 이어질까요.“일단 2028~29년까지는 돈을 엄청 벌 거예요. 이미 2028년 인도분 수주를 받고 있으니까요.”-주가는 어떤가요? 이미 좀 올랐는데.“2026년에 돈 벌 걸 가지고 계산해 보면 저는 주가가 30~50% 더 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 2026년 영업이익률 10%를 전망했는데, 더 나올 것 같아서 그래요. 매우 좋게 보고 있죠.”-오늘(인터뷰한 날짜 6월 21일)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이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를 발표했죠.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미국에서 생산이 가능한 조선사를 하나 산 거죠. 필리조선소는 전투함은 아니지만 군수지원함을 만드는 기업인데요. 미국은 법에 따라 미국에서 만든 배만 운항할 수 있죠. 또 군함의 MRO(유지보수운영)도 주로 본토에서 하거든요.사실 이건 ‘우리가 들어갈게요’ 해서 한화가 들어간 게 아닙니다. 미 해군 장관이 지난 2월 한국에 왔잖아요. 지난해에도 미 해군에서 많이 왔다 갔대요. 왜냐하면 중국이 군함을 엄청 지으면서 양에서 이미 뒤집혔고요. 그래서 미 해군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데, 미국 조선사가 정말 일을 못 하거든요. 가격은 우리의 2배, 3배인데. 보호무역의 진짜 폐해이죠.그래서 델 토로 해군장관이 와서 무슨 얘기를 했느냐. 한국 조선사들이 정말 잘한다. 너네 우리 미국 들어와서 좌초된 우리 설비들을 살려달라고 합니다. 이게 우리가 ‘들어갈래요’ 한 게 아니라 ‘들어와 줘’라고 한 거예요. 미국이 국방비를 연 1000조원 쓰잖아요. 함정 MRO만 해도 20조원이에요. 정말 큰 시장이죠.저는 이거는 그냥 하나(한화의 필리조선소 인수)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고 봐요. 한화가 빨랐을 뿐이지, HD현대중공업도 당연히 들어가겠죠. 저는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미국 필리조선소의 존재도 몰랐고요. (현재 한화오션이 인수 추진 중인) 호주 조선사 오스탈 존재도 몰랐어요. 그럼 우리가 지금 모를 뿐이지, 그런 비슷한 매물이 또 있겠죠. 거기 현대도 들어갈 겁니다.같이 들어갈 거고, 미국 가면 아마 (한국 조선사가) 잘할 거예요. 한화나 현대가 미국에 가서 현지 조선사를 매니지먼트하면, 그 나라 다른 조선사보다 훨씬 더 잘할 겁니다.”-혹시 나중에 미군이 ‘우리 함정도 만들어줘’라고 하게 될진 아직은 알 수 없겠죠?“모두가 꿈꾸는 건 그거예요. 우리가 미국 전투함을 만들게 되는 것. 그런데 그건 정말 마지막이죠. 아무리 동맹이어도 무기체계 관련 기술까지 다 공유하게 두진 않을 것 같긴 한데요. 가서 MRO 정도만 해도 충분하고, 그게 얼마나 커질진 모르는 겁니다.” By.딥다이브인터뷰하면서 조선업 출입기자를 했던 2007년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땐 그런 슈퍼 호황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는데요. 사이클이라는 게 한번 꺾이기 시작하니까 정말 무섭더군요. 이제 업다운을 모두 겪어봤으니, 이번엔 좀 다를 수 있으려나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K-조선의 전성기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2021년부터 수주가 급증하면서 지금은 3년 치 일감이 쌓여있습니다. 인건비 상승세도 멈추면서 올해부터는 다시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선이 효자 노릇을 했습니다. 다만 이 분야는 중국이 열심히 쫓아오고 있는데요. 암모니아 운반선, 이산화탄소 운반선 같은 이전엔 없던 새로운 선박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 조선의 미국 진출도 시작됐죠. 일단 미국 해군의 MRO 시장을 공략할 텐데요. 배를 잘 만드는 관리의 기술이 한국 조선사의 큰 장점입니다.*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엔비디아 주가가 3거래일 연속 하락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2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1.09%, S&P500은 0.31%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다우지수는 0.67% 상승 마감했고요. 이날 엔비디아 종가는 6.68% 하락한 118.11달러입니다. 20일 장중 최고치(140.76달러)와 비교하면 16% 떨어진 거죠. 시가총액은 최고치보다 약 5500억 달러 낮은 2조9100억 달러에 머뭅니다.고점 대비 주가가 10% 넘게 빠지면서 엔비디아는 공식적으로 조정장에 진입했는데요. 엔비디아 CEO이자 공동창업자인 젠슨 황이 지난 13~21일 9460만 달러어치 보유지분을 매각했다는 공시가 나온 것도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평균 매도 가격은 주당 131.44달러이죠. 다만 이는 젠슨 황이 지난 3월 미리 공개했던 지분 매각 계획의 일환인데요. 그 계획대로라면 그는 내년 3월까지 추가로 528만주를 더 매각할 계획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회사 경영진이 지분 매매 계획을 몇 달 전 미리 알리도록 규제합니다.이러한 엔비디아 주가 조정이 혹시 AI 거품 붕괴의 신호일까요. 피크아웃 논란이 커지지만 아직까진 일시적 조정이라는 의견이 더 우세한데요. 소시에테제네랄의 미국주식전략 담당인 매니쉬 카브라는 이날 엔비디아 매도세가 “시장에 매우 건전한 현상”이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시장 랠리가 더 확대되거나, 아직 없는 버블이 (기술주에) 형성될 겁니다.”하이타워 최고투자전략가인 스테판 링크는 CNBC 인터뷰에서 “(엔비디아 주식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면서 “파티가 끝났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기술 분야엔 더 매력적인 다른 많은 곳이 있다”고 말합니다. 엔비디아 주가가 주춤한 대신 다른 기술주로 관심이 옮겨갈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바워삭캐피탈파트너스의 CEO 에밀리 바워삭 힐도 비슷한 의견인데요. 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주식시장은 거품이 아니며, 메가캡 성장주 주가는 2000년 닷컴버블 때처럼 펀더멘털과 분리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 “한편으로 엔비디아의 높은 밸류에이션은 터무니없었다”면서도 “반면 AI 혁명은 현실이 될 거고, 그 선두 기업엔 엄청난 이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연 8%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평균 28.6세의 젊은 인구. 여기에 탈중국이란 지정학적 기회까지. 인도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 관심이 뜨겁습니다. 급기야 인도증시 시가총액이 지난 6개월 동안 약 1조 달러 늘어나면서, 지난주 사상 처음 5조 달러를 돌파했죠(세계 5위, 미국·중국·일본·홍콩 다음).하지만 잘 나가는 주식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인도 경제에 대해선 경고음이 이어집니다. 빛나는 인도 경제에 결정적으로 부족한 게 있어서인데요. 바로 일자리이죠. 오늘은 인도 경제 성장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인도 공무원 시험이 난리인 이유인도의 공무원 선발 시험인 UPSC(연합공공서비스위원회) 시험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 불립니다. 매년 100만명 넘게 지원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1000명 이내. 최종합격률이 0.1%도 되지 않죠. 워낙 전 국민의 관심이 뜨거운 시험이라 합격자 발표 날 인도 모디 총리가 SNS에 불합격자 격려 발언을 올릴 정도입니다(“좌절은 힘들지만, 인도엔 여러분 재능이 빛날 기회가 풍부합니다”).이 도박에 가까운 확률을 뚫기 위해 인도 전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수재들이 몰려듭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7~8년씩 시험 준비만 하는 공시족이 넘쳐나죠. 2년 전 뉴델리의 공무원 시험 학원가에 입성한 공대 출신 라훌 싱(26세)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공무원 직업을 얻으면 내 인생뿐 아니라, 가족 인생 전체가 순조로울 거예요.”십여년 전 한국의 공무원 시험 열풍(한창때 합격률 1%대)은 저리 가라 할 수준인데요. 인도 청년들이 이렇게까지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졸자가 갈 만한 괜찮은 일자리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죠.인도에선 학력이 높을수록 청년 백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통계만 보면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벵갈루루의 아짐프렘지 대학(Azim Premji University) 보고서에 따르면 25세 미만 대졸자의 실업률은 42.3%나 됩니다. 글은 읽지만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청년층 실업률(10.6%)의 네 배이죠. 문맹자를 빼고는 학력이 높아질수록 실업률이 올라갑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연령대가 높아지면 고학력자 실업률이 이보단 좀 낮아지지만, 기본 추세(고학력=고실업)는 변하지 않습니다.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공부를 많이 한 대졸자들은 월급 150달러짜리 소규모 조립공장 일자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또래들처럼 시골에서 가축을 돌보거나 인력거 운전이나 아이스크림 노점상으로 나설 리도 없죠. 그래서 남은 선택이 공무원입니다. 기본 월급은 5만6100루피(93만원)로 아주 높진 않지만, 복지혜택 좋고 직업 안정성도 최고이니까요. 게다가 사회적 엘리트로 인정도 받고요. ‘인구 잠재력의 막대한 낭비’(뉴욕타임스 기사 인용)라는 말이 나오지만, 청년들에겐 그게 그나마 열려있는 문입니다.연 8% 경제성장 스토리의 큰 약점인도는 전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지난해엔 GDP 성장률이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8.2%를 기록해 경제학자들을 놀라게 했고요. 올해도 연 7% 성장을 기대합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앞다퉈 인도 증시로 몰리는 이유이죠. MSCI 인도 지수의 PER(주가수익비율)은 약 23배. 세계에서 가장 고평가된 주식시장입니다(참고로 중국은 10배). 거시경제도, 주식시장도 그 어느 나라보다 밝게 빛나는데요. 이런 인도를 가리켜 ‘세계 경제의 빛나는 별’이라고도 부르죠.그래서 인도의 높은 청년 실업률을 보면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그 성장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지난 20년 동안 인도의 경제성장을 이끈 분야는 서비스 부문(예-콜센터 같은 아웃소싱 기업)입니다. 서비스 분야는 부가가치는 높을지 모르지만 숙련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죠. 이에 비해 노동집약적인 제조업 성장은 저조합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도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년 전 17%에서 2022년 13%로 오히려 떨어졌죠. 이는 196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여전히 인도엔 제조업 취업자(12%)보다 농업 종사자(46%)가 훨씬 더 많습니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층은 연 700만~800만명인데, 제조업 일자리는 10년 동안 고작 500만명 늘었습니다(현재 총 6500만개).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모디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메이크 인 인디아’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제조업 유치를 위해 도로·공항·철도 같은 기반시설에 엄청나게 투자했고요(10년 동안 국도 길이가 60% 증가). 통신망 확충 덕분에 이제 노점상도 QR코드로 결제할 정도로 스마트폰 이용을 보편화했습니다. 2020년엔 ‘생산연계 인센티브’라는 보조금 제도를 도입해 휴대전화와 반도체 산업을 밀어주고 있죠. 덕분에 애플과 마이크론 공장도 유치했고요.하지만 생각만큼 국내외 기업의 제조업 투자가 팍팍 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들춰보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도 해치워야 할 걸림돌이 수도 없이 널려있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대표적인 대못 규제인 토지수용법이 그 예이죠. 인도에선 너무 까다로운 토지수용법 때문에 땅을 사서 공장 하나 짓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요. 이거 모디 총리가 10년 전부터 고치려고 했는데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땅을 헐값에 뺏길까 걱정한 농민들의 대규모 반대에 부딪히자 정부가 두손 든 거죠.게다가 보호무역주의는 또 얼마나 강한지. 관세는 점점 높아지고(2014년 평균 13.5%→2022년 18%), 무역 규제가 수시로 생겨납니다. 지난해 8월엔 인도 정부가 노트북·태블릿·올인원PC 수입을 갑자기 금지한다고 발표해서 해외 기업을 대혼란에 빠뜨리기도 했죠(반발이 커지자 이후 철회). 친 모디 정부 성향의 현지 대기업만 반사이익을 보는 상황인데요. 브라운대학의 경제학자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약 당신이 아다니(인도 대기업 아다니그룹 회장인 고탐 아다니)나 암바니(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인 무케시 암바니) 같은 ‘두 A’가 아니라면 인도의 규제 우회로를 탐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또 사법 시스템은 심각하게 취약한데요. 소송이 한번 시작되면 최종 판결까지 수십년 걸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20년은 보통이고, 최대 72년 걸린 사건도 있다고 하죠. 계류 중인 사건은 넘쳐나는데(5000만 건 이상) 판사 수는 너무 적고(인구 100만명당 2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 절차의 디지털화도 되지 않아서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사법 리스크도 엄청난 겁니다.그래도 인도는 워낙 인구가 많죠. 만약 전반적으로 소득이 늘어나고 중산층이 커진다면 그 소비시장을 노리고 진출하려는 기업이 점차 늘어날 수 있을 텐데요. 바로 그 점이 인도 성장 스토리의 약점입니다. 놀랍게도 인도의 근로자 실질임금이 지난 10년 동안 오히려 감소한 거죠(ILO에 따르면 2022년 상용 급여 소득자 실질임금이 10년 전보다 14% 감소). 직장인조차 인플레이션 타격으로 점점 지갑이 얇아지고 있는 건데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빛나는 경제의 수혜는 결국 소수의 부자만 누리고 있는 겁니다.경제발전 공식과 인도의 길역사적으로 모든 저개발국 경제 도약엔 공식이 있습니다. 먼저 노동집약적인 제조업 공장이 농촌에 있던 비숙련 노동력을 대거 흡수하면서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되고요. 값싼 인력 덕분에 가격경쟁력을 갖추면서 수출이 빠르게 증가합니다. 1970년대 한국의 미싱공들이 그랬고, 1990년대 중국과 지금의 베트남 공업화가 그렇죠. 이후 경제성장이 본격화하면 자본집약적인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요. 그 성장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탈산업화’가 나타납니다.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점을 찍고 꺾이는 건데요.지금까지 인도 경제의 성장 궤도는 이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조업 단계를 아예 생략했고요. 이미 IT와 서비스업이 성장을 이끄는 탈산업화 단계가 진행 중인 걸로 보이는데요. 궁금합니다. 혹시 인도는 기존 공식을 깨고 새로운 경제발전 경로를 개척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당연히 그게 되겠냐, 그런 전례가 없다는 회의론이 주류입니다. 제조업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는 경고가 점점 커지죠. 이런 식입니다.“앞으로 30년 정도 지속될 인구 보너스 기간 동안 공업화를 실현할 수 없다면 모디 총리가 내세우는 선진국은커녕 중국 수준의 상위 중소득국이 되기도 어려워집니다. (…) 인도의 선진국화를 위해서는 경공업에 힘을 쏟아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 칼럼)“총선 결과는 인도국민당에게 굴욕을 안겨주었습니다(단독 과반 의석 확보 실패). 그들이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낸다면 인도의 성장 스토리는 계속되고 심지어 개선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인시아드대학 푸샨 더트 교수)모디 정부도 역시 제조업 육성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모디 총리는 이달 초 총선 직후 이런 메시지를 냈죠. “적절한 정책과 투자를 통해 인도가 선진적인 제조 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세계무대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와도 경쟁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 차이나’라는 지향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셈입니다. 이는 전 세계 투자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인프라 투자+제조업 육성’이라는 인도 증시의 익숙한 스토리가 계속 이어질 거란 안도감을 주니까요.그런데 이와 다른 참신한 의견도 있어서 소개합니다. ‘제조업 버스는 이미 놓쳤으니, 서비스업 열차에 올라타자’는 주장인데요. 전 인도중앙은행 총재이자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가 그 주인공입니다.그는 책과 인터뷰, 칼럼을 통해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는 베트남, 중국과 경쟁할 낮은 곳(제조업)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없습니다. 인도가 집중할 곳은 서비스업입니다.” 영어를 쓰는 인력이 풍부하고, 중국처럼 권위주의 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사회라는 인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는 서비스업이라고 보는 겁니다. 따라서 휴대전화 조립공장에 줄 정부 보조금을 차라리 교육에 투자하라. 이런 결론이죠.물론 가난했던 나라가 그런 식으로 성공한 사례를 한번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판단은 어려운데요. AI와 로봇의 시대엔 경제발전 공식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By.딥다이브흔히 인도를 20년 전 중국과 비슷하다고 얘기하죠. 그만큼 고성장의 초입에 있다는 기대가 큰데요. 하지만 막연하게 ‘중국이 그랬으니까, 인도도 그럴 거야’라고 보기엔 무엇보다 정치 체제 차이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인도의 미친 공무원 시험 열풍은 청년 실업난의 심각성을 드러내줍니다. 인도에서 25세 미만 대졸자 실업률은 42.3%, 25-29세도 22.8%에 달합니다. 생산가능인구는 점점 늘어나는데 괜찮은 일자리가 모자랍니다.-제조업 성장이 부진한 게 그 원인입니다. 정부가 인프라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보조금도 뿌리지만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해외기업이 공장 짓는 걸 가로막는 규제와 관료주의가 한둘이 아닙니다. -‘경공업-중공업-서비스업’이란 발전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인도 경제는 도약할 수 있을까요. 노동집약적 제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이미 제조업 버스는 떠났다는 소수의견도 있습니다.*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그동안 너무 올랐나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S&P500과 나스닥지수가 20일(현지시간)엔 쉬어갔습니다. 각각 0.25%와 0.79% 하락 마감했죠. 다우지수는 0.77%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파이퍼샌들러의 크레이그 존슨 분석가는 “S&P500과 나스닥 강세 모멘텀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단기 과매수 상황으로 주식이 조정에 취약하다”고 설명합니다.지난 화요일 시가총액 1위에 올랐던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3.54% 하락했습니다. 시총 1위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다시 내줬죠. 애플은 근소한 차이로 2위입니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장 초반 상승세로 출발해 한때 주당 14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는데요. 오후 들어 하락세로 돌아섰고 점점 하락 폭이 커졌죠.엔비디아의 놀라운 주가 차트는 자연스럽게 닷컴버블 시절의 시스코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나 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젠 벤처투자자로 직업을 바꾼 존 체임버스 전 시스코 CEO를 인터뷰했는데요. 그는 몇가지 유사점이 있지만 AI 혁명은 인터넷과 다르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시장 기회의 규모 측면에서 볼 때 인터넷과 클라우드 컴퓨팅을 합친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도 다르고, 시장 규모도 다르고, 가장 가치있는 기업이 도달하는 단계도 다릅니다.”엔비디아를 향한 시장의 열광은 좀처럼 꺾일 것 같진 않습니다. AI 붐에 힘입어 미국 증시의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거란 낙관론도 팽배합니다. 스트레이트개스의 니콜라스 본삭 대표는 주식 밸류에이션이 역사적 범위로 올랐다면서도 ”그럼에도 강세장이 꺾일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합니다. “경제는 모멘텀이 다소 약화되는 조짐을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강세인데다 기업이익 기대감이 확대된다”는 게 그의 근거이죠.캐피털이코노믹스의 닐 셰어링 이코노미스트는 “AI에 대한 열기는 거품이 팽창하는 모든 특징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1년 반 동안 미국 증시를 상승시킬 거라고 내다봅니다. 대신 그는 미국시장이 “상당한 저조한 실적을 기록할 운명”이라고도 덧붙이죠. 결국 언젠가는 거품이 터질 거란 뜻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상속세. 사망한 사람의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을 뜻하죠.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창안한 이 세금은 18세기 말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선 1950년 상속세법이 제정되며 자리 잡았죠.여기서 퀴즈. 스웨덴·캐나다·러시아·인도·중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상속세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럼 일본·한국·프랑스·영국·미국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40%가 넘는 국가들입니다. 이렇게 국가 간 차이가 크다 보니, 어느 방향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도 뜨거운데요. 마침 16일 대통령실이 상속세 전면 개편을 예고했죠. 오늘은 논란의 세금, 상속세를 들여다보겠습니다.진보는 찬성, 보수는 반대?여러분은 상속세에 대해 어떤 감정이신가요. 상속세를 높이는 것과 낮추는 것, 어느 쪽에 찬성하시나요.어쩌면 이건 정치적 이념의 문제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16일 대통령실은 상속세 최고세율(과세표준 30억원 이상)을 50%에서 30% 내외로 낮추는 걸 검토한다고 밝혔는데요. 반대로 지난 총선에서 진보당은 상속세 최고세율(자산 100억원 이상)을 90%로 높인다고 공약한 바 있죠. 아주 극명하게 입장이 엇갈리는 사안인 건데요.다른 나라에서 벌이지는 상속세 논쟁 구도로 비슷해 보입니다. 다음 달 조기 총선을 앞둔 영국에선 보수당이 과감하게도 ‘상속세 단계적 폐지론’을 꺼냈었죠. 이에 반대하는 노동당과 지난 몇 달 동안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습니다(상속세 폐지는 보수당의 최종 총선 공약에선 결국 빠짐).미국에선 2017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상속세 공제 한도를 무려 2배로 올려버렸죠(500만 달러→1000만 달러, 이후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올해는 1361만 달러, 약 188억원이 됨). 상속세 부과 대상을 확 줄인 건데요. 늘어난 공제한도가 예정대로 2026년 1월 다시 원상 복귀하느냐 마느냐는 결국 올해 11월 대선 결과에 달려있습니다. 만약 바이든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2026년 1월부터 공제한도가 절반인 700만 달러 수준으로 뚝 떨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죠.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보수 정당은 높은 상속세에 반대, 진보 정당은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건데요. 참고로 높은 상속세율은 공산주의 이론가 카를 마르크스의 주장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엔 상속세가 없죠. 잠깐 동안(1940~49년)만 있다가 폐지됐고요.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은 사회민주노동당이 집권했던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습니다. OECD 국가 38개국 중 현재 상속세가 없는 국가는 14개국인데요. 이들 국가에서 뚜렷한 이념적 공통점을 찾기란 어렵습니다.(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스웨덴 라트비아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오스트리아 체코 이스라엘 멕시코 노르웨이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생각해보면 세금 중 개인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거의 모든 나라에 다 있잖아요. 이런 세금을 없애려는 시도는 별로 없고요. 그런데 유독 상속세는 원래 있다가 없애버린 나라가 꽤 많다는 게 놀라운 점인데요.이들 국가가 갑자기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잡는 데에 무심해진 걸까요. 그래서 부자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걸까요. 그렇게 볼 건 아닙니다. 대체로 상속세 폐지의 가장 큰 이유는 이념이 아니라 행정 효율에 있습니다. 모든 세금은 징수 비용이 발생하죠. 특히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이 정확히 얼마인지를 확인하는 데 행정력이 필요하고요. 경우에 따라서는 상속자가 세금을 내기 위해 상속 부동산이나 기업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경우까지 생기죠.이에 비해 상속세가 전체 세수에 차지하는 비중은 쥐꼬리 수준(OECD 평균 0.5%)입니다. 집행 비용에 비해 얻는 수익이 적다보니 상속세를 따로 두는 효용이 적습니다. 차라리 세금 종류를 줄이고, 소득세 같은 다른 세금을 조정하는 게 과세 행정면에서 효과적이라고 보는 거죠. 바로 이런 이유가 상속세 폐지로 이어졌고요. 캐나다·호주·스웨덴·뉴질랜드의 경우엔 상속세를 없애고 대신 양도소득세(자본이득세, 상속 재산을 파는 시점에 세금을 매김)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죽음에 대한 세금상속세는 그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세금 성격 상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죽음과 관련돼 있기 때문인데요. 고대 로마 철학자 플리니우스는 약 2000년 전에 이렇게 주장했죠. “직계 상속인의 지분에 대한 세금은 유족의 슬픔을 가중시키는 부자연스러운 세금이다.”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맡았던 스티븐 므누신도 상속세를 “죽음에 대한 세금”이라 불렀죠. 영국에선 상속세가 “가장 혐오하는 세금”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인도에선 총선을 앞두고 야당 의원이 부자 증세를 위해 미국처럼 상속세를 부활하자고 주장했다가 난리가 났는데요(인도는 1985년 상속세 폐지).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이런 말로 야당을 제압했습니다. “야당은 사람들이 자녀를 위해 남긴 재산을 빼앗을 계획입니다.” ‘상속세=사망세’라는 프레임은 꽤 강력하고 잘 통합니다.FT 칼럼에선 상속세가 거부감을 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죠.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사람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기를 갈망합니다. 불멸은 물리적 사물에서 나타납니다. 사진, 좋아하는 의자, 가족 집 또는 백만 달러의 신탁 기금일 수도 있죠. 물려받은 자산은 금전적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정신적, 정서적 가치를 지닙니다. 정치인들이 이러한 상징에 세금을 부과할 때 우리는 진정한 슬픔을 느낍니다.”물론 상속세는 기본적으로 부자들이 내는 세금입니다. 그게 바로 상속세가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이유-실제 대상자가 매우 적다- 때문이기도 하죠. 대부분 사람에겐 남의 일이다 보니 반발이 작을 수밖에요.그런데 상황이 좀 달라지고 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자산을 축적하면서 상당히 부유해졌기 때문입니다. 물려줄 게 늘어난 거죠. 이에 비해 상속세 공제 기준은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국에선 이 기준(32.5만 파운드, 약 5억7000만원)이 16년째 유지 중이고요. 한국은 1999년부터 26년째 5억원이 일괄공제 한도이죠. 그 결과 상속세 부과 대상이 빠르게 늘어나는데요. 보통 1% 수준인 다른 나라와 달리, 이제 영국은 피상속인(죽은 사람) 기준으로 5.1%, 한국은 4.53%가 상속세를 냅니다.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이 상속세를 물어야 한다’는 말이 이들 국가에서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물론 상위 4~5%를 중산층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의문입니다만.이중과세 논란과 유산취득세상속세가 왜 논란의 세금인지를 설명해 드렸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우리도 대세(?)에 맞춰 상속세를 확 깎아주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제도를 업그레이드할 방법을 찾아봤으면 하는데요.사실 상속세 비판 논리에도 허점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이중과세 논란입니다. 이미 재산을 형성할 때 소득세를 내고 합법적으로 모아둔 재산인데, 왜 여기에 세금을 또 매기냐. 뭐 이런 주장이죠.하지만 생각해봅시다. 누군가가 세후 소득으로 개인 운전기사에 월급을 줬다고 해서, 그 운전기사가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죠. 상속세 역시 기본적으로 상속을 받은 사람이 내는 세금이라는 점에선 엄밀히 따지면 이중과세는 아닙니다. 세금에 있어선 아버지와 아들을 각각 독립된 주체로 보니까요. 이런 관점에선 아버지의 유산은 아들에겐 불로소득일 뿐입니다.그런데도 이중과세처럼 느껴지는 데는 ‘유산세’라는 부과방식 탓이 큰데요. 유산세 방식은 OECD 국가 중 한국 포함 4개국(영국, 미국, 덴마크까지)만 해당하죠. 이건 물려 주는 사람(죽은 사람) 재산 전체에 통으로 상속세를 매기는 겁니다. 예컨대 피상속인이 물려주는 재산이 과표 기준 30억원을 넘으면, 상속인이 몇 명이든 상관없이 최고세율(50%)이 되는 식이죠. 그중 1억원 물려받은 사람이나 10억원 물려받은 사람이나 세율은 똑같습니다.일본 포함 다른 OECD 20개 국가는 상속세 계산법이 다릅니다. 죽은 사람이 얼마를 남겼느냐가 아니라, 상속을 받는 사람이 얼마 받았냐를 각각 따져서 상속세를 매기죠. 이걸 ‘유산취득세’ 방식이라고 부르는데요. 유산 총액이 30억원이라고 해도, 1억원 물려받은 상속인은 1억원을 기준으로, 10억원 상속인은 10억원을 기준으로 각각 상속세율이 결정되죠. 자연히 세율은 훨씬 낮아질 거고요.유산세가 ‘죽음 사람 재산에 매기는 세금’이라면 유산취득세는 ‘상속인이 공짜로 물려받은 재산에 물리는 세금’인 셈입니다. 어느 게 더 합리적으로 보이시나요. OECD는 이미 답을 내렸습니다. 2021년 보고서에서 “유산세보다는 상속인이 받는 부의 양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게(유산취득세) 더 기회균등 면에서 타당하다”고 지적했죠. 유산취득세는 납세자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과세한다는 원칙에도 더 부합합니다. 이중과세 논란에서도 훨씬 자유롭고 말이죠.그래서 우리나라도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자. 이런 얘기가 꾸준히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정부 위원회가 이를 공식 제안했고요. 2022년엔 기획재정부가 관련 TF를 꾸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대통령실이 이 유산취득세를 들고 나왔죠.물론 세금 제도를 74년 만에 완전히 뜯어고치는 일이 쉽지 않을 겁니다. 부자 감세다, 세수 감소는 어쩌냐, 위장 분할 상속으로 세금을 피하면 어쩌냐. 부작용 우려가 이미 나옵니다. 하지만 제도를 설계하기 나름 아닐까요. 논쟁적 세금, 상속세를 둘러싼 논란이 이번 기회에 한번 뜨겁게 불붙기를 기대해봅니다. By.딥다이브세금 제도는 복잡합니다. 감정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이슈이죠. 그래서 정작 깊은 논의에 들어가진 못한 채 각자 주장만 펼치다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번엔 좀 다를 수 있을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논란이 많은 세금, 상속세에 대해 정부가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상속세를 없애는 나라가 늘고 있는 건 사실이죠. 이념보다는 행정효율이 폐지의 주요 이유로 꼽힙니다.-상속세는 죽음과 관련된 세금이란 면에서 거부감을 줍니다. 하지만 기회의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고, 부자만 내는 세금이라 조세저항은 적죠. 다만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령화로 한국에선 갈수록 대상 인원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중과세 논란을 줄이고, 기회균등이란 취지에 맞게 상속세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는 걸 이젠 논의할 때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세율과 공제한도 조정 수준이 아니라 제도 변화로 나아가길 기대합니다.*이 기사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낙관적인 분위기로 한 주를 시작했습니다. 17일(현지시간) 3대 지수는 일제히 상승 마감했는데요. S&P500과 나스닥지수는 각각 0.77%와 0.95% 상승해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요. 다우지수도 0.49% 올라 5거래일 만에 상승했습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 기업 실적의 개선, 금리 인하 가능성. 연초부터 뉴욕증시를 달아오르게 한 요인들이 여전히 증시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데요. 메인스트리트리서치의 제임스 데머트는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합니다. “실적 개선과 1~2회 금리 인하의 결합은 주가를 높이는 터보 부스터와 같습니다. S&P500이 연말까지 6000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이런 분위기 속에 월가는 S&P500의 연말 목표치를 줄줄이 상향 조정 중이죠. 골드만삭스는 5200에서 5600으로, 에버코어ISI는 4750에서 6000으로 높였습니다. 씨티그룹도 5100이던 연말 전망을 5600으로 올렸죠. 씨티그룹 스콧 크로너트 애널리스트는 “대형 성장주 집단의 가중치 효과가 (S&P500) 지수 움직임에 박대한 영향을 미친다”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엔비디아를 포함한 대형 기술주가 연말까지 지수 상승세를 이끌 거란 전망이죠.이날도 증시 상승세를 이끈 건 기술주였습니다. 애플 주가는 1.97%, 마이크로소프트는 1.31% 상승했고요. 알파벳, 아마존, 메타플랫폼도 상승을 기록했죠. 엔비디아는 장중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종가는 0.68% 하락했습니다.이날 눈에 띄는 기업은 테슬라인데요. 이날 주가가 5.3% 급등해 약 한 달 만에 최고로 올랐습니다. 블룸버그가 소식통을 인용해 테슬라가 중국 상하이에서 첨단 주행보조시스템인 FSD(Full Self-Driving)를 시험할 수 있는 승인을 받았다고 보도한 영향인데요. 일론 머스크 CEO가 4월 말 베이징을 깜짝 방문해 리창 총리를 면담한 지 약 6주 만에 나온 소식이죠. 최근 중국에서 부진했던 테슬라엔 매출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FSD를 더 고도화할 기회인 겁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2020~2021년의 테슬라와 2023~2024년의 엔비디아. 미국 주식시장에서 놀라운 주가 급등 기록을 세우는 종목이 등장할 때마다 월가 비관론자들이 소환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 시스코(CISCO)이죠.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의 통신장비 업체로 꼽히는 시스코는 어쩌다 버블의 상징이 됐을까요. 시스코가 알려주는 주식시장의 교훈은 무엇이고, 이게 엔비디아와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오늘 주제는 시스코와 엔비디아입니다.*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닷컴 시대의 삽 판매자전 세계가 인터넷 혁명에 열광했던 1990년대 말. 뜨거웠던 ‘닷컴 골드러시’ 시대에 열심히 곡괭이와 삽을 팔던 기업이 있었습니다. 스위치, 라우터 같은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는 시스코가 그 주인공이었죠. 1999년 8월 연례보고서에서 시스코의 존 챔버스 CEO는 자랑스럽게 밝혔습니다. “시스코가 4년 전 인터넷이 우리 삶을 바꿀 거라고 예측했을 때 이는 대담한 발언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를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죠. 우리는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수익성 좋은 회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1995년 22억 달러였던 시스코 매출은 2000년 189억 달러로 불어났죠. 그 기간 평균 매출 증가율은 연 55%에 달했습니다. 시스코의 이런 성장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습니다. 1995년 초 2달러가 채 되지 않았던 시스코 주가는 수직상승해 2000년 3월 27일, 80달러를 찍습니다. 1998년 초(9.68달러)와 비교해도 주가 상승률은 무려 727%. 시스코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5700억 달러)에 오른 겁니다. 이런 기세라면 시스코가 역사상 최초로 시총 1조 달러의 기록을 달성할 거란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습니다.그 정점에서 시스코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주가가 주당순이익(2000년 0.39달러)의 205배에 달했으니까요. 그야말로 ‘미친 밸류에이션’이었죠. 하지만 월가는 크게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주가 상승에 맞춰 목표주가를 끌어올리기에 바빴죠. 당시 체이스 함브레히트&퀴스트의 한 애널리스트는 이를 이렇게 정당화합니다. “시스코는 매우 인상적인 성장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융계는 올해 이익의 배수가 아니라 3~4년 후 수익을 생각합니다.”그리고 모든 게 무너집니다. 정점을 찍은 뒤 시스코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한 건데요. 1년 만에 시가총액 85%가 날아갔고, 2002년 10월엔 주가가 8.06달러까지 빠집니다. 10분의 1토막 난 거죠.매출은 3배, 주가는 반토막흔히 닷컴버블이라고 하면 실체 없이 막연한 기대감에 기술주 주가가 급등하는 걸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시스코는 거품 같은 닷컴은 아니었습니다. 배너 광고가 아니라 스위치·라우터라는 실체 있는 제품을 파는 기업이니까요. 그래서 당시 시스코 성장은 시장의 실제 수요를 반영하는 걸로 보였습니다.하지만 버블이 터지면서 그게 아니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낮은 금리로 넘치던 유동성과 이로 인한 과잉·중복 투자가 연 55% 매출 성장의 동력이었던 겁니다. 205배 PER을 정당화했던 성장세는 버블이 만든 신기루였던 셈이죠. 재고가 쌓여갔고, 2001년 3월 결국 첫 대규모 정리해고를 시행해야 했습니다. 순이익은 2001년 적자로 돌아섰고, 2002년엔 첫 매출 감소를 기록합니다.20여년이 지난 지금, 시스코 주가는 얼마일까요. 12일 종가 기준 45달러. 2000년 3월의 최고가와 비교해 44% 낮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주가는 80달러 근처에도 못 갔죠.실적이 24년 전만 못하냐고요? 아니요. 2023년 시스코는 역대 최대인 570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주당순이익(EPS)은 3.07달러로 늘었고요. 2000년(매출 189억 달러, EPS 0.39달러)과 비교하면 훨씬 더 돈 잘 버는 탄탄한 기업이 됐습니다.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1위입니다.시스코가 업계의 승자가 될 거라던 24년 전 투자자들의 전망이 어떤 면에서 맞았던 겁니다. 다만 문제는 주가였을 뿐. 회사에 아무 문제가 없고 돈을 잘 벌고 있어도, 주가가 터무니없이 높다면 그 주식은 계속 갈 수가 없는 겁니다.엔비디아와 비슷한 점, 다른 점시스코 과거사를 자세히 들춘 건 엔비디아 때문입니다. 시스코와 엔비디아, 두 회사를 비교하는 분석이 요즘 자꾸 나오는데요.엔비디아의 주가 급등세가 워낙 극적이기 때문이죠. 2023년 이후 1년 반 만에 주가가 757%나 뛰었는데요. 엔비디아는 애플과 MS를 잇는 시가총액 3위(3조1900억 달러)의 기업이 됐습니다. 주가 그래프만 보면 1999년의 시스코와 비슷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또 공통점이 있죠. 엔비디아 역시 현대판 골드러시의 곡괭이 판매자라는 점입니다. 전 세계 AI 기업들은 기술 개발을 위해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를 사려고 줄을 섰습니다. 워낙 수요가 넘치다보니 엔비디아는 가격을 마음껏 높여 팔 수 있죠. 시스코 장비 없이 인터넷이 없었듯이, 엔비디아 GPU 없인 AI도 없습니다.이런 닮은 점 때문에 시스코 주가 폭락의 강렬한 기억은 엔비디아 비관론의 근거로 종종 거론됩니다. 아크인베스트먼트의 캐시 우드CEO가 지난 3월 투자자 편지에서 밝힌 엔비디아 전망도 그랬는데요. 이런 내용입니다.“(GPU) 용량의 과잉 구축을 정당화할 만큼 (AI) 소프트웨어 수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면, 특히 클라우드 고객이 지출을 일시 중단하고 초과 재고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닷컴 시대의 시스코와는 달리 AMD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테슬라도 AI 칩을 설계하고 있기 때문에 (엔비디아와의) 경쟁이 심화할 겁니다.”악시오스도 최근 기사에서 시스코와 엔비디아 주가 그래프를 나란히 보여주며 이렇게 지적합니다. “AI 기업들이 기술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러한 특수 칩(GPU)에 대한 수요가 약화되거나 사라질 수 있고, AI 열풍은 멈출 겁니다. 2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기업이 온라인에 접속하는 데 필요한 라우터를 판매하던 시스코는 90년대 인터넷 붐의 엔비디아였습니다.”다만 이는 아직은 소수의견으로 보입니다. 수치상으로는 현재의 엔비디아가 버블 붕괴 직전 시스코보다 훨씬 낫기 때문인데요.1. 엔비디아의 주가수익비율(PER)은 현재 75배 수준. 상당히 높은 수치이지만 정점 시절의 시스코(205배)와 비교할 바는 아닙니다. 엔비디아도 한때 PER이 200이 넘었던 때가 있었지만, 이후 분기 실적이 나올 때마다 이익이 급증하면서 PER을 끌어내린 겁니다.2. 엔비디아는 시스코보다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262% 늘었습니다. 시스코는 2000년에 55% 성장에 그쳤습니다.3. 수익성 면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엔비디아의 매출총이익률은 갈수록 올라 1분기 78.3%를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원가 대비 비싸게 팔아서 많이 남겼단 뜻이죠. 시스코의 2000년 매출총이익률은 64% 수준이었습니다.질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있는데요. 엔비디아는 꽤 강력한 해자를 갖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플랫폼 쿠다(CUDA)가 그것이죠. 2006년부터 엔비디아는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 쿠다를 공짜로 제공했고, 이미 전 세계 개발자 47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했죠. I/O펀드의 애널리스트 베스 킨디그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합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AI 엔지니어들이 GPU를 프로그래밍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CUDA 플랫폼입니다. 이것은 이들을 엔비디아에 묶어두는 데 도움 됩니다. 이 조합은 뚫을 수 없는 해자입니다.”데이터가 바닥난다고?현재까지는 엔비디아의 성장이 당장 꺾일 조짐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경이로운 성장률을 영원히 이어갈 수야 없겠죠. 과연 엔비디아의 질주를 결국 가로막게 될 건 무엇일까요. 앞에서 언급한 대로 고객사의 AI 투자 열정이 식거나 경쟁자가 부상할 가능성이 자주 언급되는데요. 추가로 흥미로운 주장 하나를 소개합니다. AI의 확장이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거란 연구 결과인데요.아시다시피 GPU는 AI 훈련에 쓰는 칩이고, AI를 훈련시키려면 막대한 데이터가 필요하죠. AI리서치 기관 에포크(Epoch)는 최근 업데이트한 보고서(‘데이터가 부족해질까? 인간 생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LLM 확장의 한계’)에서 이런 AI 훈련에 활용할 고품질 데이터가 2~8년 안에 고갈될 거라고 추정했는데요. 인간이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빨리 AI모델 훈련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데이터 재고량이 300조 토큰 정도인데 몇 년 안에 이게 바닥난다는 뜻이죠. 연구진은 이렇게 말합니다. “심각한 병목현상이 있습니다. 데이터 양의 제약이 발생하면 더 이상 모델을 효율적으로 확장할 수 없을 겁니다.”그러니까 데이터라는 게 한없이 있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훨씬 유한한 자원이었던 겁니다. 다소 놀라운 발견인데요. 곡괭이와 삽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인부들 먹일 식량이 동나면 결국 금을 캘 수 없게 되는 것 아닐까요. By.딥다이브엔비디아의 주가 차트는 언제 봐도 놀랍습니다. 이미 천장을 뚫은 주가가 과연 어디까지 치솟을지가 궁금한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AI 시대에 엔비디아가 있다면 닷컴 시대엔 시스코가 있었습니다. 스위치, 라우터를 공급하는 시스코는 당시 2년 만에 700% 넘는 주가 상승률을 기록하며 세계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닷컴버블이 터지면서 주가는 폭락합니다. 시스코는 여전히 업계 1위이지만 주가는 24년 전의 절반 수준입니다. 회사가 아니라, 200배 넘는 ‘미친 밸류에이션’이 문제였습니다.-엔비디아 주가가 치솟자 시스코처럼 될 거란 비관론이 대두합니다. 물론 아직 매출 성장률이나 주가수익비율 면에선 2000년의 시스코보다 훨씬 낫습니다. -엔비디아의 놀라운 성장세를 잠재울 위험요인은 뭐가 있을까요. 인터넷처럼 AI 시대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성장 속도가 둔화되는 순간 주가는 꺾일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하세요.*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혼조세로 마감했습니다. 13일(현지시간) S&P500과 나스닥지수는 각각 0.23%와 0.34% 상승하며 4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요. 다우지수는 0.17%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미국 노동부는 이날 5월 생산자 물가(PP1)가 전월보다 0.2% 하락했다고 발표했죠. 이코노미스트들의 0.1% 상승 예상을 뒤집은 결과였습니다. 인플레이션 둔화 소식은 연준의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소식인데요. 12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금리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지만, 여전히 시장은 연말까지 두차례 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이날 가장 눈에 띄는 종목은 애플입니다. 주가가 0.55% 상승하면서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이날 0.12% 상승한 마이크로소프트 시가총액을 근소한 차로 앞선 건데요. 종가 기준으로 애플이 MS를 제친 건 지난 1월 24일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애플의 시총 1위 탈환은 지난 월요일 애플이 새로운 AI 기능을 선보인 결과인데요. 이 AI 기능을 쓰기 위해 새 아이폰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수요가 폭발할 거란 낙관론을 불러일으켰죠. 애플 주가는 올해 들어 11% 상승했는데요. 여전히 ‘매그니피센트 7’로 알려진 빅테크 그룹 중엔 상승률 6위에 그칩니다. 참고로 7위는 테슬라(올해 주가 27% 하락).정규장 마감 뒤 나온 어도비 실적 발표도 눈길을 끕니다.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해, 시간 외 거래에서 주가가 16% 급등했죠. 샨타누 나라옌 CEO는 이날 발표문에서 “AI에 대한 우리의 차별화된 접근방식과 혁신적인 제품 제공이 확장된 고객층을 유치했다”면서 AI 기술 도입이 성장 비결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어도비는 올해 연간 매출과 주당순이익 전망치도 지난 3월 발표한 것보다 올려잡았습니다.소프트웨어 기업인 어도비는 발 빠르게 AI를 제품에 도입했지만, 주가는 올해 들어 13일 종가까지 23%나 하락했었죠. AI 기술이 얼마나 빨리 수익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인데요. 어도비의 이번 실적 발표가 투자자들의 불안을 어느 정도 잠재울 전망입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값싼 중국 전기자동차의 공습을 막기 위해 각국이 관세장벽을 쌓고 있다. 브라질, 미국, 튀르키예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에 나섰다. 자동차 산업이 40여 년 만에 다시 보호무역주의에 휩싸였다. ● 미국 이어 튀르키예·EU도 관세 폭탄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25%의 추가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제조사에 통보했다. 현재 10%인 관세율을 다음 달부터 최대 35%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가 중국 정부의 불법 보조금 혜택을 누렸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반영한 조치다. 앞서 8일엔 튀르키예 정부가 관보를 통해 중국산 자동차 관세를 40%로 높이겠다고 공시했다. 다음 달 7일부터 기존 10%이던 관세율을 대폭 올리고, 차량 1대당 7000달러(약 970만 원)의 최저 관세 금액도 도입한다. 지난달 14일 미국 백악관은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율을 무려 100%로 상향한다고 발표했다. 25%이던 관세율이 8월부터 4배로 뛴다. 관세 폭탄의 근거는 미국의 무역법 301조.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부터 미국 제조업과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게 백악관이 밝힌 명분이었다. 중국산 전기차의 최대 수출국인 브라질 역시 3년에 걸쳐 관세를 인상할 계획이다. 현재 10%인 관세율이 7월엔 18%로, 2026년엔 35%까지 오른다. 각국의 관세 인상이 줄 잇는 건 값싼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는 치열한 내수시장 경쟁을 피해 수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2년 새 수출 금액이 4배로 급증했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가 밀려들면 아직 초기 단계인 자국 전기차 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중국 기업 비야디(BYD)의 전기차 생산 단가는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보다 25%가량 낮다. 올해 초 이익단체인 미국제조업연합(AAM)은 중국산 전기차 수입이 “미국 자동차 산업에 멸종 수준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가 중국산 공습으로 무너졌던 미국·EU의 태양광 산업과 비슷한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40년 전엔 일본차에 ‘장벽’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부는 건 1980년대 이후 약 40년 만이다. 당시엔 일본산 자동차의 홍수를 막기 위해 각국이 무역장벽을 쌓았다. 값싸고 연비 좋은 일본차 수입이 급증하자, 1981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일본 자동차 업계는 ‘자발적 수출 제한 제도’라는 이름의 수출 할당제를 도입했다. 1980년 182만 대였던 일본차의 미국 수출이 1981년엔 168만 대로 줄었다. 60% 관세율을 부과한 것과 같은 효과였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로 수출하는 일본 차 역시 할당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10년간 이어진 이런 보호무역 조치는 추세를 되돌리지 못했다. 일시적으로 미국 빅3(GM, 포드, 스텔란티스)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졌지만 1980년대 후반이 되자 다시 시장을 뺏겼다. 정부 보호로 거둔 이익을 임직원 보너스나 자동차와 상관없는 기업 인수에 써버렸기 때문이다. 스콧 린시컴 카토연구소 부소장은 “일본차에 할당량을 부과해서 빅3를 구하지도, 자동차 노조의 경쟁력을 키우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는 피해를 보았다. 경쟁이 줄어들자 미국 내 차량 가격이 일제히 뛰었기 때문이다. 평균 인상 폭은 대당 1000달러 이상이었고, 이로 인한 미국 소비자의 손실은 연간 60억 달러(약 8조2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1980년대 일본 자동차 기업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앞다퉈 미국에 조립공장을 세웠다. 이는 약 10만 개의 새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보호무역주의로 수천만 명의 소비자는 피해를, 소수의 근로자는 수혜를 본 셈이다.● 전기차 가격 뛰면 소비자는 손해 이번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 역시 소비자의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독일 킬연구소는 관세 인상으로 EU에 중국산 전기차 수입이 줄면 “최종 소비자 입장에선 눈에 띄게 전기차 가격이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코너 월시 컬럼비아대 교수는 “높은 관세로 인해 (미국에서) 전기차는 부자들을 위한 사치품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관세 장벽 우회를 위해 중국 전기차 기업은 해외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EU와 브라질에선 중국 전기차 기업이 이미 현지 공장을 건설 중이고, 튀르키예는 비야디 공장 유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 전기차 기업의 진출을 막고 있는 미국만 기술적으로 고립될지 모른다. 마틴 울프 FT 칼럼니스트는 “관세는 비효율적이고 퇴행적이고 보복을 초래한다”라면서 “(미국이) 보호무역 정책으로 돌아가는 건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강대국 간 무역전쟁이 우리 기업엔 기회 요인일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일본차 할당제가 유지되던 1986년 엑셀의 미국 수출을 시작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유럽, 중국이 전기차 관세 전쟁에 휩싸이면서 한국 기업의 반사이익이 기대된다”고 분석한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지난달 미국이 중국 전기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8월부터 4배로(25%→100%) 올린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주엔 튀르키예 정부가 중국산 차량에 40%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밝혔고요. 이번 주엔 유럽연합(EU)이 그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이르면 12일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 인상(현재는 10%)을 사전 통보할 전망이죠.중국 전기차에 대한 다른 나라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자칫 중국에 전기차 시장이 다 먹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데요. 40년 전인 1980년대에도 자동차 업계에선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당시엔 중국이 아닌 일본이 그 주인공이었죠. 오늘은 자동차 산업의 보호주의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40년 전 ‘수출 할당제’의 기억전설의 명작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이 개봉하고, CNN이 24시간 뉴스 방송을 시작하고, 비틀스의 존 레넌이 총에 맞아 사망했던 1980년. 돌아보면 ‘풍요의 80년대’의 시작이었지만 당시 미국 경제는 심각한 침체에 빠져있었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 중심지 디트로이트 경제는 엉망이었죠.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크라이슬러는 파산 일보 직전이고, 자동차 공장 근로자는 10만명 넘게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해 11월 대선을 앞뒀던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대선 후보에겐 자동차 노조의 표가 절실했습니다. 그는 디트로이트 크라이슬러 공장을 찾아 이렇게 약속합니다.“정부가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정상화될 때까지 일본산 자동차의 홍수를 늦춰야 한다는 점을 일본에 설득할 겁니다.”일본산 자동차의 미국 공습을 막겠다는 공약이었는데요. 싸고, 작고, 연비 좋은 일본 차는 무서운 속도로 미국 시장을 점령해가고 있었습니다. 1976년 8%였던 일본 차 점유율은 2차 석유파동을 거치며 1980년 21%로 뛰었죠. 연간 수입량 182만대. 일본 차가 일본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팔렸습니다. 당시 미국을 휩쓴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교수의 베스트셀러 제목은 ‘Japan as Number One(1위인 일본)’.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에 곧 추월당할 거란 위기의식이 미국엔 팽배했습니다.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이듬해 노골적으로 일본을 압박합니다. 일본 정부도 결국 백기를 들게 되는데요. ‘자발적인 수출 제한 제도’라는 다소 역설적인 이름의 자동차 수출 할당제가 도입됩니다. 일본 차 업체들이 1981년 168만대를 시작으로, 해마다 정해진 물량만 미국으로 수출하기로 한 건데요. 당초 3년 예정이던 이 할당제는 무려 10년간 이어집니다. 미국 입장에선 격차를 따라잡을 몇 년의 시간을 번 셈이었습니다.자동차 보호무역주의의 결과는?무역 상대국의 급부상과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 대선 후보의 정치적 계산과 보호주의 약속. 어떤가요. 지금의 중국 전기차 관세 인상과 상당히 닮아있지 않나요?일본 차 수출 할당제는 상당히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제도였습니다. 관세로 치면 60%의 수입 관세를 매긴 것과 마찬가지 효과였죠. 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 다른 국가들 역시 미국과 비슷한 할당제를 잇달아 도입합니다. 자, 그리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와 관련한 연구는 미국에서만 수십 건 쏟아져 나왔는데요.① 미국 자동차 가격이 올라갔습니다.일본 차는 물론, 미국·유럽산까지. 미국에서 팔리던 자동차 가격이 일제히 인상됩니다. 차량당 평균 가격이 당시 돈으로 1000달러 넘게 뛰었죠. 차를 더 비싸게 사게 되었으니 당연히 미국 소비자는 그만큼 손실을 본 겁니다. 이러한 소비자 손실 금액은 연간 6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요. 현재 물가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77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할당제의 최대 피해자는 미국 소비자였습니다.②일본 자동차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세웁니다.일본 자동차 기업은 규제를 우회할 수 있었습니다. ‘수출 할당제’는 일본에서 제조된 차량만 해당하니까요. 이후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 가치까지 급등하자, 일본 자동차 제조사는 앞다퉈 미국 현지 공장을 속속 세웁니다.도요타·혼다·닛산·마쓰다·미쓰비시·이스즈·스바루. 1980년대에만 미국에 7개의 신규 자동차 조립공장이 문을 열었고, 하청업체를 포함해 총 10만개 일자리가 생겨납니다. 보수 싱크탱크 아메리칸캠퍼스는 “할당제 덕분에 더 이상 일본 자동차는 미국 노동자에게 위협이 되지 않게 됐다”고 평가합니다. 보호주의가 국내 산업을 육성하는 효과는 있었던 셈이죠.1970, 80년대 미국 빅3 자동차 제조사의 미국 시장 점유율 추이. 일본차 할당제가 도입된 1981년 이후, 1984년과 85년에 잠시 점유율이 반등하는 듯했지만, 이후 가파르게 다시 줄어들었다. ③빅3는 옛 명성을 되찾진 못합니다.할당제가 도입되자 한동안 미국 자동차 제조사 이익은 급증했습니다. 정부 보호 덕분에 자동차를 더 비싸게, 많이 팔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럼 빅3는 이 이익을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품질 혁신과 경쟁력 향상을 위해 썼을까요?만약 그랬다면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지금 같진 않겠죠. 그 대신 경영진은 자동차와 상관없는 금융·항공기·컴퓨터 기업을 인수하거나, 막대한 보너스를 임직원에게 나눠줬습니다. GM이 1984년 당시로는 엄청난 금액인 25억5000만 달러에 컴퓨터 시스템 기업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즈를 인수한 게 대표적인 뻘짓이었는데요(1996년 결국 분사시킴)빅3의 매출과 시장점유율은 1985년까진 상승했지만 이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섭니다. 반짝 찾아왔던 기회를 잡지 못한 겁니다. 1989년 뉴욕타임스 기사는 이렇게 한탄했죠. “오늘날 미국 자동차 산업 전망은 디트로이트 생산자들이 일본 수입차의 ‘자발적’ 할당제를 도입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달려갔던 1980년대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불확실하다.”그사이 적응을 마친(미국 제조공장 설립) 일본 자동차 기업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집니다. 결국 2007년엔 도요타는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제조사로 올라섭니다.관세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기억도 가물가물한 1980년대 일본 차 이야기를 들춘 건 지금의 중국 전기차 때문입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값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크게 높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40년 전 상황을 대입해 보면 두 가지는 명확해 보입니다. 일단 당장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는 건 불가피합니다. 전기차 가격이 더 높게 유지될 게 뻔하니까요. 가뜩이나 예전만 못한 전기차 수요가 더 꺾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컬럼비아대학의 코너 월시 교수는 NYT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하죠. “이런 관세로 인해 전기자동차는 주로 부자들에게만 제공되는 사치품으로 남게 될 겁니다.”그럼 미국과 유럽 자동차 업체는 관세장벽 덕분에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기업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헤맨다면,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질 위험도 얼마든지 있죠. 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 부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일본 차에 할당량을 부과해서 갑자기 빅3가 구해지지도 않았고, 자동차노조가 마법처럼 경쟁력을 갖게 되지도 않았습니다. 혁신적이고 저렴한 경쟁업체로부터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과 역사를 거스릅니다.”만약 관세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중국 전기차 제조사가 현지에 공장을 세운다면 어떨까요. 실제로 일부 국가에선 이런 움직임도 나타납니다. 예컨대 브라질은 룰라 대통령이 ‘수입차에 대한 단계적 관세 인상’ 계획을 밝혔는데요(올해 10%인 관세를 2026년 35%로 점진적 인상). 동시에 이 나라에선 중국 전기차 기업 GWM과 BYD의 공장 건설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브라질은 이미 중국 전기차의 최대 수출국으로 올라섰죠.튀르키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BYD가 유럽의 두 번째 공장 부지를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첫 번째는 헝가리)이 전해졌는데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튀르키예 정부가 BYD와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하죠. 40%의 추가 관세 부과를 발표한 진짜 목적은 따로 있는 겁니다. 자국 제조업을 키워야 하는 신흥국 입장에선 영리한 전략이죠.그럼 미국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중국 전기차 기업의 현지 투자를 막을 게 확실하다고 내다봅니다.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는 산업 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 안보’를 위한 일로 여겨지니까요. 요즘 미국에선 완성차는 물론 중국 배터리 공장도 짓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할당제가 일본 자동차 공장을 미국으로 끌어들였던 40년 전과는 다른 상황인데요. CSIS 선임연구원인 일라리아 마조코는 바로 이 점에서 “이것(관세 상향)이 중국보다 미국에 더 나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중국 기업은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고, 많은 국가가 새로운 기술과 인프라 확보를 위해 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크고 인상적인 시장인 상황에서 미국이 기술적으로 훨씬 더 고립된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현대차가 소형 세단 ‘엑셀’을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한 게 1986년 1월이었죠. 40년 전 미국의 일본 차 할당제는 한국 자동차 기업엔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일본 차가 할당량 제한에 묶여 마음껏 뛰지 못하는 틈을 타서 미국 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요. 과연 이번에도 기회를 살릴 순 있을까요. 누가 승자가 될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기대해봅니다. By.딥다이브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강대국간의 무역전쟁이 40여년 만에 다시 불붙었습니다.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가 궁금하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중국 전기차의 질주를 막기 위한 주요국의 관세인상 움직임이 본격화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40년 전 일본 자동차에도 벌어졌는데요. 1981년 시작돼 10년 간 이어진 ‘자발적 수출 제한’ 제도입니다.-일본차의 미국 수출이 줄면서 한동안은 미국 자동차 업계가 시장점유율과 이익이 되살아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빅3는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날려버렸습니다. 품질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고, 1980년대 후반이 되자 미국 자동차업계는 다시 위기에 빠집니다.-대신 일본 자동차 업체가 미국에 조립공장을 설립하면서 미국 경제엔 플러스 효과가 분명히 있었는데요. 지금의 중국 전기차의 경우 미국이 현지공장 설립을 허용할 것 같진 않죠. 중국 전기차에 대한 무역전쟁이 자칫 미국 자동차 산업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40년 전 일본차 수출 할당제로 미국 진출의 기회를 잡았던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이번에도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강보합으로 마감했습니다. 이번 주는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보니 투자자들이 신중한 모습입니다. 10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18%, S&P500 0.26%, 나스닥지수는 0.35%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이날의 빅이벤트는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였죠. 애플은 이 자리에서 ‘애플 인텔리전스’라고 부르는 자체 AI 기능을 소개했습니다. 아울러 음성비서 서비스 시리(Siri)를 통해 오픈AI의 챗GPT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거라고도 밝혔는데요. 예컨대 사용자가 쓴 글을 교정·요약해주고, 이미지와 이모티콘을 생성해주고, 사진 편집과 검색을 키워드 입력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통화 중 녹음이 가능해지고, 그 내용 요약 기능까지 제공해준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이런 새로운 기능 대부분은 올해 말 제공될 예정입니다. 특히 애플은 개인정보보호를 강조했는데요.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 대부분은 데이터센터가 아닌 아이폰 기기 내에서 수행되고요. 복잡한 일부 기능은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데이터 저장 없이 비공개적으로 실행된다고 설명합니다. 팀 쿡 애플 CEO는 사용자 개인 데이터가 기기를 떠나지 않고 AI를 훈련시킬 수 있다며 “애플만이 제공할 수 있는 AI”라고 강조했죠.마침내 기다렸던 AI 기능을 애플이 공개한 이날, 투자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이날 애플 주가는 1.91% 하락했는데요. 블룸버그는 “애플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새로운 기능을 선보였을 때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라고 설명합니다. 한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날 팀 쿡 CEO의 엑스(X) 게시물에 이렇게 댓글을 달았죠. “이 소름 끼치는 스파이웨어를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모든 애플 장치를 우리 회사 내에서 금지시키겠다.” 애플이 개인 정보를 오픈AI에 넘길 거라고 보고 발끈한 겁니다.이날은 엔비디아 주식이 10대 1 액면분할 후 처음 거래된 날이기도 합니다. 액면분할이 주가에 호재가 될 거라는 기대가 그동안 컸는데요.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0.75% 오른 121.79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뜨거웠던 밈 주식 게임스톱 주가는 지난주 금요일 39% 하락한 데 이어, 이날도 12% 떨어졌습니다. 그동안 주가를 끌어올렸던 ‘대장 개미’ 키스 길이 7일 3년 만에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했죠.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 나오지 않자 투자자들이 실망한 건데요. 밈 주식이 이렇게 무섭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가스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부 공식 발표가 나왔습니다. 기대감에 관련주 주가는 급등했죠. 동시에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발표가 그랬듯이, 이번에도 헛물켜는 것 아니냐는 신중론도 나오는데요.오랜 탐사 끝에 대형 유전이 발견돼 ‘석유 대박’이 난 국가로는 남미의 가이아나가 있습니다. 어제 정부 발표에선 포항 영일만 매장량이 ‘금세기 최대 석유개발 사업’인 가이아나 광구(110억 배럴)보다 더 많을 수 있다(최대 140억 배럴)고 비교하기도 했는데요. 갑자기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면 그 나라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남미 최빈국에서 석유 부자로 변신 중인 나라, 가이아나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탐사 시작 99년 만에 유전이 터졌다수십 년 탐사에도 못 찾았던 석유가 그렇게 많이 묻혀있다는 게 말이 돼?아마 3일 정부 발표를 보고 이런 생각한 분들 많을 텐데요. 2015년 5월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가이아나 앞바다 스타브록에서 상당량의 석유 매장량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을 때 바로 그 이유로 전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가이아나에선 1916년부터 거의 100년 동안 여러 차례의 석유 탐사가 진행됐고,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죠.엑손모빌은 2008년부터 이 지역에서 석유 탐사를 벌여왔는데요. 실패를 거듭하자, 파트너사였던 셸(Shell)은 2014년 컨소시엄을 탈퇴해버렸습니다. 그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엑손모빌이 35개 기업에 제안했지만 대부분 거절했고요. 딱 두 곳-헤스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만 파트너로 참여했죠(지분율 엑손모빌 45%, 헤스 30% CNOOC 25%). 그만큼 업계에선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던 건데요.1년 뒤 가이아나에서 대형 유전이 처음 발견됩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엑손모빌 컨소시엄은 이 지역에서 30개 넘는 유전을 발견했고요. 총 추정 매장량은 110억 배럴 이상에 달합니다. 매장량 기준으론 세계 17위의 규모이죠. 가이아나에도, 엑손모빌에도 대박이라 할 만한데요.유전 발견까진 꽤 오래 걸렸지만, 이후 석유를 뽑아 올리는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습니다. 처음 시추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2019년 12월 20일 가이아나 해안에서 200㎞ 떨어진 라이자 해상유전에서 첫 원유 생산이 시작됐죠. 가이아나 대통령은 이날을 ‘국가 석유의 날’로 선포했고 시민들은 “축복이 찾아왔다”며 환호했습니다.이후 가이아나의 원유 생산량은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엔 하루 65만4000배럴을 생산 중이고요. 2027년 말이면 130만 배럴이 될 겁니다. 오늘날의 카타르와 맞먹는 수준으로 생산량이 늘어나는 겁니다. 남미에선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원유생산국으로 올라 선다는 전망이죠.가이아나 국내총생산(GDP)은 급성장 중입니다. 석유달러가 밀려들면서 2022년 GDP 성장률 62%, 2023년 38%를 기록했죠. IMF는 향후 5년(2024~2028년) 가이아나 경제성장률을 연평균 20%로 예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2018년 6100달러였던 가이아나의 1인당 GDP는 2022년 1만8000달러로 치솟았습니다. 이 수치만 보면 중국(1만2700달러)이나 러시아(1만5270달러)를 뛰어넘는 겁니다.가이아나는 정말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가 80만명으로, 국토의 87%가 열대우림으로 덮여있죠. 과거엔 사탕수수 농장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변변한 산업기반이랄 게 없어 다들 떠나는 바람에 인구의 55%가 해외로 이주했을 정도이죠.그런데 이 가진 것 없던 나라가 이젠 1인당 석유 매장량(약 1만3700배럴)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로 올라선 겁니다. 그럼 석유의 축복이 밀려들기 시작한 지 5년. 가이아나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①돈과 사람이 몰려온다가이아나가 석유로 벌어들인 돈은 지난해 16억2000만 달러(약 2조2300억원). 올해는 24억 달러(약 3조3000억원)로 더 불어날 전망입니다. 스타브록 광구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50%가 가이아나 정부 몫이죠. 동시에 매출의 2%에 해당하는 로열티도 받습니다. 계약조건이 지나치게 엑손모빌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오긴 하는데요. 확실한 건 이 작은 나라에 전례 없던 돈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입니다.이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쇠락한 수십 년 된 식민지풍 건물이 특징이었던 가이아나 수도 조지타운은 이제 곳곳이 공사판입니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새 주택과 호텔, 쇼핑몰, 체육관, 사무실이 끊임없이 들어서죠. 지난해 조지타운 외곽엔 이 나라의 첫 번째 스타벅스 매장이 문을 열어 화제가 됐습니다. 개업식에 대통령과 미국 대사가 참석했을 정도였죠.석유 시추 산업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외국인들이 밀려오고, 해외로 떠났던 이민자들이 유턴하고 있죠. 얼마 전 뉴욕타임스 기사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20년 동안 지내다 가이아나로 다시 돌아온 사리아 바쿠스 사례를 전하는데요. 조지타운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한 그는 한 달에 최대 6000달러를 받고 외국인들에게 주택을 임대합니다.새 고속도로, 새 항구, 새 화력 발전소, 새 병원 건설도 한창입니다. 석유 수익금이 인프라 개발에 대대적으로 투자되고 있는 겁니다. 가이아나는 툭하면 전력이 끊길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했는데요. 이제 석유생산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천연가스를 발전소로 끌어오는 파이프라인을 건설 중입니다. 바렛 자그데오 부통령은 AP에 “가이아나의 에너지 생산량을 두배로 늘리고 전력요금은 절반으로 낮출 것”이라고 말합니다.②누가 호황을 누리나하지만 이 유례없는 호황을 모두가 만끽하는 건 아닙니다. 인프라 개선은 반가운 일이지만 개개인의 살림살이는 그리 눈에 띄게 나아지진 않고 있는데요. 늘어난 일자리가 현지인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아서입니다. 이 나라의 실업률은 여전히 10.3%(2023년)에 달합니다.심해 채굴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죠. 사탕수수 기르던 가이아나인이 바로 석유 시추 작업에 투입되기란 불가능합니다. 직업 전환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미비합니다. 결과적으로 외지인들이 늘어난 일자리의 수혜를 보고 있죠.물론 발 빠르게 땅과 집을 사서 임대사업을 벌인 사람은 이미 쏠쏠한 이익을 내고 있고요. 석유기업 취업 박람회에 참석한 젊은 학생들 역시 앞날이 창창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인구 중 극히 소수일 뿐이죠.오일머니 분배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점점 커질 겁니다. 정부는 석유 판 돈으로 국부펀드를 조성해 운영 중이죠. 투명하게 자금내역을 공개하고, 이 돈을 인프라 확충과 의료·교육서비스에 쓰겠다는 취지인데요. 야당은 이 현금과 사업권이 여당지지 세력에 흘러가고 있다고 계속 문제를 제기합니다. 야당이 우세한 지역이 분배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건데요. 대신 야당에선 무상교육 같은 더 많은 복지 지출과 농업에 대한 투자를 요구합니다.이런 갈등이 심상찮아 보이는 건 인도계(40%)와 아프리카계(29%)로 나뉜 이 나라 인구구조 때문입니다. 현재 집권 여당은 인도계, 야당은 아프리카계로 나뉘는데요. 유전개발의 덕을 볼 만한 현지 기업 대부분을 장악한 게 인도계 출신이라 아프리카계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갈등이 극단적 분열로 치닫게 될 위험도 내재돼 있죠.③흔들리는 친환경의 상징석유가 나오기 전까지 가이아나가 가진 가장 귀중한 자산으로 꼽혀온 건 열대우림이었습니다. 강력한 환경법을 가진 가이아나는 남미 국가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낮은 산림 벌채율(약 0.07%)을 자랑하죠. ‘지구의 허파’ 열대우림을 지키는 나라라는 찬사를 받아왔습니다.하지만 바다에서 석유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해양시추는 기본적으로 원유유출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죠. 2010년 BP의 ‘딥워터 호라이즌 재해’(멕시코만으로 약 2억 갤런 기름이 유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세계적으로 연평균 1~2회의 원유유출 사고가 벌어집니다. 환경 측면에선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데요.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미 가이아나 내에서도 나왔습니다. 가이아나 시민단체가 낸 소송에서 현지 법원은 예상과 달리 환경단체 손을 들어줬죠. 엑손모빌에 만약 원유유출 피해가 발생하면 ‘무제한 보증’을 제공하라고 판결한 겁니다. 엑손모빌은 이에 반발해 항소한 상황인데요.이 사건에 대한 가이아나 내 분위기는 어떨까요. 현지 여론은 엑손모빌 편으로 확 쏠렸습니다. 환경규제를 강화해서 유전 개발 속도를 늦추고 싶진 않으니까요. 가까스로 잡은 횡재를 놓치면 곤란하죠. 자그데오 부통령은 이 판결을 비난하고 법원이 “예측가능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까지 했는데요.국가의 운명을 바꿀 대박 기회 앞에서 환경보호라는 명분이 힘을 잃는 건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입니다. 지난 3월 모하메드 이르판 알리 대통령은 BBC 인터뷰 도중 진행자가 심해채굴의 환경 위험을 언급하자 이렇게 발끈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삼림 벌채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대 규모의 석유 탐사에도 우리는 여전히 넷제로 수준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위선입니다. 선진국은 언제 비용을 지불할 예정인가요? (…) 누가 우리에게 투자합니까. 그린피스도, 그 다른 누구도 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국가를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 천연자원을 공격적으로 추구할 겁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기회를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국민을 위한 기회를 창출해야 합니다.”④베네수엘라와의 영유권 분쟁요약하자면 가이아나는 석유 덕분에 부유해졌지만, 그로 인한 여러 갈등도 터져 나오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이겁니다. 베네수엘라와의 영토 분쟁.베네수엘라는 식민지 시대인 19세기부터 가이아나 영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에세퀴보 지역이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해왔죠. 한동안 뜸했던 영유권 주장에 다시 불이 붙은 건 이 지역 바다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후인데요. 급기야 지난 3월엔 베네수엘라 국회가 에세퀴보를 자국의 새로운 주로 승인하는 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이 영유권 분쟁은 2018년부터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인데요. 지난해 ICJ가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베네수엘라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고 명령했거든요. 그런데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접경지역에 군사기지를 확장하며 위협을 가하고 있죠.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올해 7월로 예정된 대선에서 3연임을 노립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매장량이 세계 최대(3040억 배럴)이지만 마두로 정권의 실정과 미국의 경제제재가 겹치면서 경제가 만신창이인데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마두로 대통령이 가이아나와의 무력충돌을 진짜 감행할지도 모릅니다. 자칫하면 예비군까지 합쳐도 고작 4070명인 가이아나 군대가 35만명의 베네수엘라 군대와 맞붙게 될 판인데요. 영국이 이 지역에 해군순찰함을 파견하고, 미국 공군이 가이아나 상공에서 훈련을 벌이며 경계하는 이유입니다.유전 개발이란 횡재 뒤에 만만치 않은 도전적 과제가 이어지는 가이아나. 유전이 발견된 이래 10년째 이 나라엔 ‘가이아나의 석유는 축복인가 저주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붙곤 하는데요. 아직 그 답을 내리긴 이릅니다. 하지만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축복이 되는 건 아니란 점은 알 수 있죠. 과연 우리나라도 가이아나가 하는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날이 오려나요. By.딥다이브가이아나 스타브록 광구는 요즘 세계 석유업계의 핫이슈입니다. 경쟁사 셰브론이 이 광구의 지분 30%를 가진 헤스 인수를 결정하자, 엑손모빌이 이를 저지하겠다며 나섰기 때문인데요. 두 석유공룡 싸움이 팝콘각(?)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상상도 못 한 포항 영일만 유전 발표가 나왔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갑자기 바다에서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면 그 나라엔 어떤 일이 생길까요. 남미의 작고 가난한 나라 가이아나가 ‘석유로또’를 맞은 지 5년이 됐는데요. 연간 수십억 달러의 오일머니가 들어오면서 1인당 GDP가 유전 개발 전의 3배로 불어났습니다.-하지만 아직 모두가 다같이 잘살게 된 건 아닙니다. 부의 분배를 둘러싸고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인데요. 여당과 야당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로 갈린 상황에서 소외된 아프리카계 지역의 불만은 커져만 갑니다.-;대표적인 친환경 청정 국가‘라는 타이틀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론자들의 우려가 커지지만, 간신히 얻은 대박 기회를 환경 보호 때문에 놓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이웃국가 베네수엘라는 영토분쟁을 재점화했습니다. 대선을 앞둔 마두로 대통령이 지지율 반등을 위해 무력충돌에 나설까 우려되는 상황인데요. 국제뉴스에서 점점 더 자주 보게 될 이름, 가이아나를 기억해주세요.*이 기사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남미의 가이아나는 세계 최빈국에서 석유 부국으로 수직 상승한 극적인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이라고 언급한 가이아나 광구는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미국 업체 ‘액트지오(Act-Geo)’가 앞서 프로젝트 평가를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사탕수수 농사가 주요 산업이던 가이아나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된 건 2015년. 미국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7년의 탐사 끝에 가이아나 앞바다 스타브로크 광구에서 석유 시추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석유 매장량은 총 110억 배럴. 금세기 발견된 매장지 중 최대 규모였다. 2019년 12월 원유 생산이 시작됐고, 산유량은 올해 초 하루 65만 배럴까지 늘어났다. 2027년 말이면 그 두 배인 130만 배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카타르와 맞먹는 수준이다. 석유 수출로 막대한 달러가 유입되면서 가이아나 경제는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62%, 지난해 38%나 증가했다. 2022년 기준 가이아나의 1인당 GDP는 1만8199달러로 4년 전(6094달러)의 3배가 됐다. 수치상으로는 중국(1만2700달러)이나 러시아(1만5270달러)를 추월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가는 건 아니다. 지난해 가이아나 실업률은 10.3%. 석유 개발과 건설 붐으로 경기는 호황이지만 늘어난 일자리 상당 부분을 외지인이 채운다. 농사만 짓던 현지인이 심해 채굴 같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에 바로 투입될 순 없기 때문이다. 분배를 둘러싼 정치적 분열도 심화됐다. 새 유전을 둘러싸고 이웃 베네수엘라와 영유권 분쟁도 생기고 무력충돌 위험도 커졌다. 반면 1969년 북해 유전 발견으로 부국이 된 노르웨이는 ‘자원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1990년 국부펀드를 설립해 석유 수출로 얻은 수입을 적립하고 있다. 당장 복지 지출에 흥청망청 쓰는 대신 미래 세대를 위해 쌓아놓고 불리는 데 초점을 뒀다. 덕분에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한국 한 해 GDP와 맞먹는 1조6000억 달러(약 2200조 원)의 자금을 굴리고 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 3대 지수가 혼조세로 마감했습니다. 미국 제조업 경기가 예상보다 둔화됐다는 소식이 투자자들을 압박했죠. 3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30% 하락했고, S&P500과 나스닥지수는 각각 0.11%. 0.56%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이날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5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7을 기록했습니다. 전문가 예상치(49.8)를 밑도는 수치인데요. PMI가 50 미만이면 경기 위축을 의미하죠. 제조업 활동이 예상보다 급격하게 위축되었다는 뜻입니다.이 소식은 금리인하 가능성을 키우며 국채금리 하락을 부추겼습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0.12%포인트 하락한 4.392%를 기록했죠. 하지만 동시에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도 자극합니다. 알파심플렉스의 포트폴리오관리자 캐서린 카민스키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데이터의 약점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전반적으로 조심스러운 시장 분위기였지만 밈 주식 열풍만은 뜨거웠습니다. 전날 ‘대장 개미’ 주식 트레이더 키스 질이 자신의 X 계정 ‘로어링 키티’에 올린 주식 보유내역을 사진 때문인데요. 여기엔 게임스톱 주식 500만주(주당 21.27달러 1억1570만 달러 규모)와 오는 21일 만기되는 콜옵션(행사가격 20달러) 12만개가 포함됐습니다.이에 이날 오전 장 초반 게임스톱 주가는 64% 급등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주가는 하락했지만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21% 상승한 28달러로 마감했습니다. 장 마감 뒤 키스 질은 그가 이날 주가 급등에도 주식을 매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스크린샷을 X 계정에 올렸죠. 그는 하루 동안 7860만 달러(약 1080억원) 넘는 이익을 얻었습니다.이를 두고 맷 레빈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미국 주식시장엔 (주가를 끌어올리는) 요술램프를 사용하는 두명의 인물, 일론 머스크와 키스 질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는데요. 이런 방식으로 시장을 움직이는 건 괜찮은 일일까요.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키스 질의 행동이 주가 조작에 해당하는지, 그의 이트레이드 계정을 취소할지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습니다.이날 국제유가는 급락했습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6% 하락한 배럴당 74.22달러로 거래를 마쳤는데요. 2월 7일 이후 넉 달 만에 가장 낮은 가격입니다. 주말 동안 열린 OPEC+ 회의에서 감산의 단계적 중단을 발표한 게 유가 약세를 부추겼는데요. 오는 9월까진 현재의 감산 규모를 유지하지만, 10월부터는 감산을 서서히 축소하면서 산유량을 늘리겠다고 밝힌 겁니다. 블룸버그는 “배럴당 100달러의 원유를 추구했던 OPEC+카르텔이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분석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이 또다시 역대 최저(0.76명)로 떨어졌단 뉴스 보셨나요. 큰일이라고요? 아니면 이젠 놀랍지도 않다고요?저출산이 큰 화두인 건 한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 걱정거리로 떠올랐는데요. 도대체 우리 인류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전례 없는 이 현상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요. 오늘은 저출산으로 축소하는 세계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5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전 세계 아기가 줄었다전 세계 204개국 중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문제가 너무 쉽죠. 네, 답은 한국입니다. 0.82명으로, 세계 합계출산율(2.23명)을 크게 밑돌았죠. 그리고 지난해 한국 출산율은 0.72명으로 더 떨어졌습니다.그럼 2050년, 2100년엔 어떨까요? 권위 있는 연구그룹인 글로벌질병부담연구(GBD)가 이달 18일 의학전문지 란셀에 발표한 보고서를 참고할 만한데요. 2050년까진 한국이 전 세계 꼴찌(0.82명)를 유지할 거고요. 2100년이 되면 부탄(0.69명)과 몰디브(0.77명), 푸에르토리코(0.81명)가 한국(0.82명)을 추월하는 바람에 꼴찌 탈출이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 한국 출산율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져서 간신히 꼴찌를 면한다는 전망이죠.한국을 덮친 저출산 현상이 마치 전염병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1950년 4.84명이었던 전 세계 출산율은 이미 대체출산율(인구 유지를 위한 출산율)인 2.1명에 가깝게 떨어졌죠. 그리고 앞으로도 반등 없이 계속 하락해 2050년엔 1.83명, 2100년엔 1.59명이 될 거라고 합니다.인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을 대체출산율이라고 부르죠. 자연적인 상황에선 남아가 여아보다 더 많이 태어나기 때문에 흔히 대체출산율은 2.1명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지금은 204개국 중 출산율이 2.1에 못 미치는 국가가 절반 정도(110개국)입니다. 그리고 2100년이면 거의 대부분(198개국) 국가가 여기 해당되겠죠. 고작 6개 국가(사모아·소말리아·통가·니제르·차드·타지키스탄)만 2.1명을 웃도는 출산율을 기록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출산의 지역별 분포도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라지겠죠. GBD는 2100년에 태어날 아이들의 절반 이상(54%)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이 될 거라고 전망합니다(2021년엔 약 29%).이미 전 세계 출생아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인류의 ‘출생 피크(Birth Peak)’는 연간 1억4200만명이 태어난 2016년이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엔 출생아 수가 그보다 1300만명이나 줄어든 1억2900만명에 그쳤죠. 출생아수에선 이미 피크 아웃이 시작된 건데요.하지만 아직까지 그렇게까지 경계심이 크지 않은 건 출생아수는 줄어도 인구는 늘기 때문이죠. 즉 더 많이 태어나서가 아니라 덜 죽기 때문에 전 세계 인구는 한동안 증가할 텐데요. 그럼 전 세계 인구의 정점은 언제일까요.이와 관련한 여러 연구가 있지만 2100년 이전이 될 게 확실시됩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인구·이주전문센터는 2070년 98억명, 독립연구기관인 건강측정평가연구소(IHME)는 2064년 97억명을 이야기하죠. 어쩌면 우리가 죽기 전에, 아마도 우리 자녀 세대엔 확실히 전 세계 인구의 감소에 직면하게 될 거란 뜻입니다. 전쟁·재난·기근·전염병이 닥친 것도 아닌데, 세계 인구가 줄어들다니.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일인데요. 우리의 자발적 선택(저출산)으로 인류는 미지의 땅에 진입하게 될 겁니다.이민과 AI는 저출산 해결책인가아마 여기까지 읽고 심드렁한 분들 많을 겁니다. 전 세계적 저출산, 수십년 뒤 닥칠 인구 감소는 너무 먼 얘기처럼 들릴 테니까요. 또 이런 반응도 예상됩니다. 저출산? 이민 왕창 받고, 로봇과 AI로 생산성 끌어올리면 되지.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좀 찾아봤습니다.①이민을 늘리자. 얼마나?당연한 얘기이지만 지구 차원에선 인구의 순이동이 제로입니다. 외계인이 우리 행성을 발견해서 지구로 귀환하는 일은 아직까진 없으니까요. 즉, 이민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출생아라는 한정된 자원을 국가 간 재분배하는 작업입니다.이민을 촉발하는 건 더 많은 기회와 일자리입니다. 주로 고출산·저소득 국가가 선진국으로 이민자를 공급해왔죠.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인도에서 영국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호주로 이민 가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앞으론 상황이 좀 달라질 겁니다. 이들 국가의 출산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GBD 전망에 따르면 멕시코는 2021년 1.77→2100년 1.15, 같은 기간 인도는 1.91→1.04, 인도네시아는 1.97→1.29로 출산율 급락이 예상되는데요. 선진국 입장에선 점점 더 이민자를 유치하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더 많은 급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다른 나라와 경쟁하게 될 게 뻔하죠.그리고 또 알아두셔야 할 게 있는데요. 한국처럼 출산율이 극도로 낮은 나라는 이민으로 지금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냐. 데려와야 할 이민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펜실베니아대학 경제학과의 헤수스 페르난데스 교수가 팟캐스트에서 한국을 예로 들어 설명했는데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한국이 이민으로 현재 인구를 유지하려면 한국인이 자국 내에서 소수민족이 돼야 합니다. 단일 민족이 99%였던 나라가 다른 민족이 70%인 나라로 바뀐 적이 있나요? 정치시스템이 이러한 변화를 소화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수준의 이민을 지지하는 정치를 본 적 없습니다.”어떤가요. 한국인이 인구의 30%인 소수민족이 되는 한국. 과연 누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②AI가 생산성을 책임져줄까인구감소는 경제에 마이너스입니다. 생산가능인구가 1% 줄면 국내총생산(GDP)이 0.59%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있죠. GDP가 줄어든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상당히 큰일입니다. 국제금융시장에선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매우 중요한데요. GDP가 줄면 이 비율이 뛰어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할 겁니다. 그럼 국가부채를 늘리기 어려워 돈에 쪼들리는 정부가 복지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겠죠. 개개인의 삶이 엄청나게 팍팍해지게 되는 겁니다.물론 인구가 줄어도 이를 만회할 정도의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룬다면 GDP는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인공지능(AI)이 생산성 향상의 열쇠가 될 거란 장밋빛 전망이 줄을 잇는데요. 골드만삭스는 AI가 앞으로 10년 동안 전 세계 GDP를 7%(거의 7조 달러) 증가시킬 거라고 예측했고요. 지난해 맥킨지는 AI가 선진국의 생산성을 연 평균 0.6~0.7%포인트씩 끌어올릴 거라고 전망했습니다.그리고 전혀 다른 예측도 나옵니다. 노벨경제학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대런 아세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낸 논문(AI의 단순한 거시경제학)이 눈길을 끄는데요. 그는 AI가 향후 10년 동안 생산성을 0.53%, GDP를 0.9% 증가시킬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1년이 아니라 10년 동안 말이죠. 그는 “AI의 거시경제적 효과는 사소하진 않지만 미미하다”고 설명하는데요. 동시에 “노동자와 자본가의 소득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봅니다.물론 생성형AI가 산업현장에 어떤 혁신을 일으킬지는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아직은 워낙 초기단계이니까요. 하지만 다가오는 인구 붕괴의 해결책이 될 거란 믿음을 갖기엔 근거가 빈약해보이는 게 사실입니다.0.7과 1.3의 엄청난 차이저출산과 관련한 우울한 예측이 가득한데요. 저출산과 인구감소가 전 세계적 추세이고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무의미한 걸까요. 그냥 이대로 애 안 낳게 내버려 둘까요?그건 결코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출산율이 대체출산율(2.1명)보다 25% 이상 하락했다가 다시 2.1명 수준으로 반등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긴 한데요. 그래도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거나 방어하는 건 중요합니다. 아니, 오히려 출산율이 다 같이 낮은 지금은 예전보다 그 차이가 더 중요해졌는데요.간단한 산수를 해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출산율 1.0이면 출생아수가 어떻게 변할까요. 출산율이 1.0이라는 건 현재 200명(남자 100, 여자 100명) 인구가 있다면, 아이를 100명 낳는다는 뜻이죠. 또 그 아이들이 나중에 출산하면? 그 100명 중 여성은 50명일 테니까, 자녀 수가 50명이 될 겁니다. 노인 200명이 아기 50명으로 줄어드는 거죠.그럼 한국처럼 출산율이 0.7이라면? 200명→70명→25명으로 줄어들고요.일본처럼 출산율 1.3이면? 200명→130명→85명이 됩니다.대부분 국가가 고만고만하게 낮은 출산율을 보이는 지금 상황에서는 작은 출산율 격차도 인구구성의 극적인 차이를 가져오는 거죠.문제는 과연 무엇을 해야 출산율이 의미있게 반등하느냐는 건데요. 이와 관련한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2022년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의 방대한 워킹페이퍼 ‘출산율의 경제학: 새로운 시대’의 결론은 이겁니다. 일·가정 양립이 잘 되고, 남성의 육아참여도를 높이고, 전통적인 사회규범(엄마의 역할 강조, 과도한 교육열)에서 벗어나는 게 출산율을 높이는 길입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바뀌겠냐고요? 물론 쉽진 않겠죠. 하지만 우리는 연간 출산율 0.6명대마저 코앞에 두고 있는 소멸위기의 나라이잖아요. 이젠 좀 절박감을 느끼고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By.딥다이브요즘 인구통계학이 정말 핫한 학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련한 연구결과와 기사들이 쏟아져나옵니다. 그만큼 저출산 현상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다는 뜻인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출산율 세계 꼴찌 국가인 한국은 아마 2100년쯤 되면 그리 외롭진 않을 겁니다. 전 세계 출산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죠. 2021년 2.23명이던 세계 출산율은 2100년엔 1.59로 떨어진다는 예측입니다. 세계 인구도 2070년쯤이면 정점을 찍고 줄어든다는 전망입니다. -이민과 AI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전 세계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젊은 이민자 유치를 위한 국가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겁니다. AI는 아직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켜줄지 미지수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순 없습니다. 앞으로는 출산율의 작은 변화가 인구구성의 큰 차이를 가져올 테니까요. 해법은 결국 문화가 바뀌는 데 있을 겁니다.*이 기사는 5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기술주, 특히 소프트웨어기업 세일즈포스의 주가 급락이 지수 하락을 이끌었죠. 30일(현지 시각) 다우지수는 0.86%, S&P500 0.60%, 나스닥지수 1.08%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세일즈포스 주가는 이날 무려 19.74%나 폭락했습니다. 2004년 이후 20년 만에 최대 하락률이라는데요. 고객의 수요 둔화를 이유로 매출 전망을 하향 조정한 영향입니다. 이는 다른 기술주 주가와 다우지수에까지 영향을 끼쳐 이날 하락세를 주도했는데요.월스트리트저널은 세일즈포스의 매출 부진이 최근 급증하는 AI 투자의 어두운 면이라고 설명합니다. AI 붐이 일고 각 기업이 관련 투자를 급격히 늘리면서 AI 이외의 다른 영역에 쏟을 돈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같은 데 들이던 비용을 줄이고 있다는 거죠. RBC캐피탈마켓의 리시 잘루리아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최고투자책임자(CIO)들이 AI에 집중하는 부분이 세일즈포스의 확장을 희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합니다.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는 AI의 장기적인 잠재력이 회사에 긍정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성명에서 “우리는 기업들이 향후 10년 동안 AI의 약속을 실현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강조하는데요. 하지만 대부분 애널리스트는 세일즈포스 애플리케이션 내 생성형 AI 기능이 2025년 또는 2026년까지 매출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AI 투자의 역풍을 맞아 매출 성장이 둔화하는 조짐은 워크데이나 유니패스 같은 다른 소프트웨어 기업 실적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UBS 애널리스트 칼 커스테드는 “불안감은 세일즈포스에만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며, 하반기에 회복될 거란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분석합니다.이날 증시에서 눈에 띄는 종목은 패션기업 갭입니다. 1분기 순이익이 흑자전환하는 깜짝 실적을 발표하면서 이날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22% 넘게 급등했는데요. 산하 4개 브랜드(올드네이비, 갭, 바나나리퍼블릭, 아틀레타)의 매출이 모두 살아나면서, 내년 2월 마무리되는 연간 실적 전망치도 상향조정했습니다.갭은 지난해 8월 바비인형의 마텔을 부활시킨 것으로 유명한 경영인 리처드 딕슨을 CEO로 영입했죠. 딕슨 CEO는 4개 브랜드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비해, 죽어가던 미국 패션의 상징을 되살리려 했는데요. 그의 이런 작업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데이터의 닐 사운더스는 갭의 회복이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경영진이 사업 안전화를 위해 쏟은 노력에 대해 칭찬할 만하다”고 평가했는데요. 과연 바비인형처럼 갭도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부활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놀라운 경영 스토리로 기록될 만한데요. 딕슨 CEO는 인터뷰에서 “트렌드에 맞는 제품과 문화적인 화젯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멘텀이 직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항공산업에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지속가능항공유(SAF)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이를 선점하려는 주요국과 대형 석유회사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탄소중립 비행을 향한 기대가 커지지만, 원료 공급이 한계로 지적된다.● 탄소중립 비행의 유일한 대안 지난해 11월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은 폐식용유로 만든 SAF를 넣은 항공기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100% SAF를 이용한 장거리 비행이었다. 치킨 튀긴 기름으로 비행기를 띄우는 시대는 이미 현실이다. SAF는 화석연료가 아닌 지속가능한 공급원료로 생산하는 항공연료이다. 폐식용유뿐 아니라 동물성 기름, 옥수수·해조류로 만든 바이오에탄올, 폐목재 등이 재료가 된다. 바이오 원료를 쓰기 때문에 일반 항공유보다 탄소배출량을 80%까지 줄일 수 있다. SAF가 항공업계에 처음 등장한 건 2008년. 여전히 항공연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밖에 되지 않는다. 일반 항공유의 3∼5배에 달하는 가격이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를 차지하는 항공 부문도 2050년 탄소중립이란 목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기 항공기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장거리 비행이 불가능하고, 수소 항공기는 수소 생산·보관·충전 인프라 구축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반면 SAF는 엔진 개조 없이 모든 항공기에 넣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기존 항공유와 섞어 쓸 수도 있다. 탄소중립 비행으로 가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SAF가 떠오른 이유다.● 미국은 보조금, EU는 의무화 아직 초기 단계인 SAF 시장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올해 SAF 생산량이 지난해의 3배인 18억7500만 L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2030년 사용을 위해 43개 항공사가 미리 계약해둔 SAF 물량을 합치면 162억5000만 L에 달한다. 윌리 월시 IATA 사무총장은 “2050년 항공산업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하려면 SAF 생산의 기하급수적 증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요국은 이미 시장 선점을 위해 나섰다. 미국은 SAF 생산업체에 1갤런(3.8L)당 1.25∼1.75달러(1700∼2400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2030년까지 SAF 생산량을 지난해의 100배가 넘는 연 30억 갤런(114억 L)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공항에서 이륙하는 항공기에 SAF를 일정 비율 이상 혼합하도록 의무화한다. 이 비율은 2%로 시작해 2030년 6%→2035년 20%→2050년 70%로 올라간다. EU혁신기금을 통해 SAF 생산시설 건설도 지원한다. 일본과 싱가포르, 영국 역시 1∼10%의 SAF 혼합 의무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은 올 1월에야 국내 정유사가 SAF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석유사업법을 개정한 상황. 국내 정유업계는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중이다. 영국의 BP와 셸, 프랑스 토탈에너지스, 미국 셰브런·필립스66 같은 메이저 정유사가 SAF를 생산 중인 것과 비교하면 한발 늦었다.● 폐식용유·옥수수가 모자랄 판 SAF가 전 세계 항공과 정유업계의 뜨거운 관심사인 건 분명하지만 뚜렷한 한계도 있다. 원료 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단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년에 나오는 폐식용유는 60만 t 정도다. 이를 모조리 SAF 생산에 투입해도 미국 항공연료 수요의 1%밖에 채우지 못한다. 바이오에탄올을 원료로 쓰는 경우엔 옥수수 키울 땅이 문제다. 영국 가디언은 “영국이 항공연료를 (옥수수 기반 SAF로) 완전히 대체하려면 모든 농경지의 50%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SAF 생산이 늘면 팜유가 폐식용유로 둔갑해 팔리면서 열대우림 파괴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IPS는 최근 보고서에서 “SAF는 화석연료에 대한 현실적이거나 확장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라면서 “항공업계의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술)”이라고 꼬집었다. SAF 생산량을 단기간 획기적으로 늘릴 방법이 없으니, 항공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뜻이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