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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가사도우미와 육아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한 지 벌써 10년이 다 돼간다. 아이를 낳고 한동안은 어떻게든 부부 힘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해보려고 아등바등 노력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포기하고 말았다. 직장 다니고 다자녀 키우면서 다 부여잡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음은 정했지만 많은 부침이 있었다. 요새 ‘오복(五福) 중 단연 으뜸은 이모복’이라 하던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서비스가, 어떤 때는 사람이 맞지 않아 인력을 교체하는 일이 반복됐다. 맞는 사람은커녕 사람 찾는 것조차 어려울 때도 많았다. 도우미 인력이 줄어드는 것인지 과거처럼 동네에 전단지를 붙이거나 아는 사람을 통해 알음알음 구해서는 사람이 구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육아도우미 한 분이 매일, 가사도우미 한 분이 주기적으로 오시는 현재의 형태로 정착했다.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 방안을 보면서 반색과 우려가 교차했던 이유다. 업계 인력이 늘어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반가운 일이었지만, 과연 만족할 만한 양질의 인력이 들어올지는 의문이었다. 더구나 이것이 육아도우미 수요를 상당 부분 충족해 ‘저출산 대책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고령층 고학력화…국내 가사 인력 감소 내국인 가사 인력의 수는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사 서비스 종사자 수는 2016년 18만6000명에서 6년 만인 지난해 11만4000명으로 38.7% 줄었다. 앞으로도 이런 인력 상황은 크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가사 서비스 근로자의 인력 풀이 될 수 있는 중장년층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그 안에서 고학력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한 연구 추계에 따르면 204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3명 중 1명, 2051년에는 2명 중 1명이 대졸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주로 저소득, 단기직에 고된 이미지인 가사서비스업에 이런 고학력 중장년층 인력이 대거 유입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최근 다른 기사 때문에 취재한 한 60대 대졸 여성도 ‘가사 등 돌봄 서비스 종사하는 게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벌이도 얼마 안 되는 일을 하느니 덜 벌고 덜 쓰는 게 낫다”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맞벌이 가구의 비중은 꾸준히 늘어 가사 근로자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오를 전망이다. 기자 주변에도 가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맞벌이 부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최근 맞벌이 가구 가사 서비스 ‘외주화’는 일반적인 추세다. 지난해 말 통계청 조사 결과 맞벌이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46.3%를 차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출산율, 고용률을 높여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갈수록 쪼그라드는 가사 서비스 인력 풀에 대한 대책이 시급했을 것이다. 가사 근로자의 안정적 이용이 출산, 일자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아이들을 9년째 봐주고 계신 육아도우미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기자 역시 감히 아이 넷을 키우며 일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 ‘값싼 이용’ 어렵고 육아돌봄 수요는 ‘글쎄’ 문제는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의 사회·경제적 비용 대비 효과다. 당초 외국인 인력을 들이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국내 인력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가정 양립에 너무 큰 비용이 들어서 출산이나 복직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값싼 외국 인력’을 들이면 이들의 고민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막상 외국인 인력에 기대만큼 낮은 급여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외국인 가사 근로자에 국내 최저임금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가를 두고 찬반이 오가고 있지만, 설령 최저임금 기준을 별도 적용한다고 해도 크게 낮은 임금수준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급여가 너무 적으면 인력이 대거 유입되지도 않을 테고, 애써 구해온 가사 인력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다른 분야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농·어업에 종사하겠다며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외국 인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또 다른 외국인 인력과의 형평성, 인력 송출 국가와의 외교적 관계 등도 고려해야 한다. 지나치게 낮은 급여를 책정할 경우 내국인 노동시장에 미칠 악영향도 거론된다. 가사 서비스 업계는 ‘값싼 외국인 인력’이 안 그래도 열악한 국내 가사 인력 처우 수준까지 끌어내려 국내 인력 감소만 가속화 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임금을 국내 인력과 비슷하게, 또는 같은 수준으로 맞춘다면? 기존 도입 명분이 다소 무색해짐은 물론 국내 수요를 크게 충족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현재 가사 근로가 허용된 조선족(해외동포) 인력도 내국 인력과 비교하면 그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외국인 가사 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할 동남아 여성을 현재 내국 근로자와 같은 조건으로 고용해야 한다면 그들에 대한 수요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가 애초 도입 목적으로 내세운 ‘저출산 해소’에는 정말이지 도움이 안될 가능성이 크다. 자녀 수가 줄면서 자녀 한 명에게 쏟는 부모의 관심과 기대는 더 커졌다. 돌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비슷한 급여를 주면서 굳이 말도 통하지 않고 내국인 인력만큼 신뢰를 담보할 수도 없는 외국 인력을 하나, 혹은 둘뿐인 자녀의 돌보미로 쓸 부모가 몇이나 될까.“아이 언어능력 향상을 위해 외국 인력을 찾는 부모도 있을 것”이라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교육 수요는 기본적인 돌봄의 요건이 충족됐을 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돌봄에 앞서 교육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돌봄은 돌봄을 잘하는 사람에게, 교육은 교육을 잘하는 사람이나 기관에 별도로 맡기려는 부모가 더 많을 것이다. 청소, 요리 등 일반적인 가사 서비스나 노인 돌봄 서비스의 경우 육아 서비스보다는 외국인 인력의 효용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급여 수준에 따른 수요, 다른 업계로의 이탈 우려, 근무지 내 인권 보호 문제 등 외국인 인력 도입에 따라 고민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 기존 돌봄·가사 서비스 지원부터 늘렸으면 사실 기자는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보미 서비스와 민간알선업체를 통해 현 육아도우미, 가사도우미를 각각 고용했다. 기관·업체를 통해 고용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개인적으로 구하는 것보다 믿을 수 있는 인력이 투입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고, 급여나 근로조건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점 역시 좋았다. 여가부가 정한 금액, 알선업체가 시세를 감안해 설정한 급여로 이용한 시각만큼 카드 결제하면 끝이었다. 아이돌보미는 ‘선생님’, 청소업체 가사도우미는 ‘매니저님’이라 불러야 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자가 현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던 시점에는 없었지만, 현재는 가사근로자법에 따라 가사도우미도 정부의 공식 인증을 받은 업체에 등록해 활동하는 인력 풀이 생겼다. 몇 달에 한 번 아이돌보미 제공 기관에서 이용자 대상 설문조사를 한다. ‘아이돌봄 서비스에 대해 바라는 점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기자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인력을 늘리고, 정부 지원금도 올려 달라.” 물론 인력과 정부 지원이 조금씩 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수요 대비 턱없이 부족하다. 흔히 아이 넷, 맞벌이 가구라고 하면 “국가가 애들 다 키워준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자는 매달 200만 원이 넘는 이용요금을 고스란히 내면서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비용 지원 대상이 저소득층에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자처럼 이용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아이돌보미 수가 부족해 애초 원하는 시간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가구도 다수다. 이렇게 기존에 존재하는 서비스들 지원을 늘리면 유입되는 근로자가 늘고 이용 비용도 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외국 인력을 도입하는 데 들이는 비용을 아이돌보미 지원 비용으로만 돌려도 수혜를 입을 가구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에 공식 등록된 가사 서비스 업체에 한해 인건비를 지원하는 건 어떨까? 가사 서비스 업계 종사자들은 국내 인력이 줄어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열악한 급여, 처우와 사회적 지위’를 꼽는다. 외국 인력 도입은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수요자와 수요처에 대한 면밀한 조사도 필요하다. 지난해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제재가 완화되면서 해외동포 인력 유입이 다시 늘어날 수도 있다. 조금 시간을 두고 국내 시장 개선에 먼저 주력하는 것이 여러 면에서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이는 일이 안되려면 말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지난해 8월 폭우로 서울 관악구 동작구 일대 반지하 주민 4명이 숨진 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실제로 반지하 집을 탈출한 주민은 극히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여름 기록적 고온과 홍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반지하 주민들의 피해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동아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월세 지원 및 공공임대주택 이주 등 지난해 폭우 이후 발표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주거 상향’ 정책을 통해 반지하를 벗어난 주민은 최대 2300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내 전체 반지하 주택(약 21만 가구)의 1.1%에 불과한 수치다. 서울시가 폭우 직후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밝히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아직 대다수 반지하 주민이 지난해와 비슷한 환경에 거주하는 것이다. 먼저 국토부와 서울시의 ‘공공·민간임대주택 이주 우선권 부여 및 보증금 무이자 대출’ 정책의 지원을 받아 반지하에서 임대주택으로 이주한 주민은 올 5월 말까지 1300가구에 그쳤다. 서울시의 ‘지상층 이주 시 월세 20만 원 지원’은 올 5월 말까지 970건 집행됐다. 지난해 8월 폭우 피해가 컸던 동작구는 312건, 관악구는 129건 지원을 받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혜자가 매달 월세를 지원받을 때마다 1건으로 집계되는 만큼 실제로 지원을 받은 가구는 970가구에 못 미칠 것”이라며 “장마철을 앞두고 홍보 우편물 발송 등을 통해 제도를 더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다세대주택을 매입해 창고 등으로 전환하며 반지하 주택을 줄이는 정책도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지난해부터 올 5월 말까지 SH공사가 매입한 반지하 주택은 98채로 지난해(1000채)와 올해(3450채) 목표를 합친 것의 2% 남짓에 불과하다. LH는 지난해 폭우 이후부터 지난달 말까지 1건도 매입하지 못했다. 여전히 반지하에서 못 벗어난 주민이 대다수여서 지난해와 같은 폭우가 내릴 경우 침수 피해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여름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의 고온 현상인 엘니뇨가 발생하며 기록적 고온과 홍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7월 강수량이 평년(245.9∼308.2mm)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80%에 달했다. 8월에도 평년(225.3∼346.7mm)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80%에 이른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일부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수천만 원에 이르는 지상층 임차 보증금과 매달 수십만 원씩 더 내야 하는 월세는 반지하 주민에게 여전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남아있는 반지하 주민을 위한 물막이판(차수판) 설치, 신속 대피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작년 침수지역 반지하 45곳중 39곳 주민 거주… “지원 턱없이 부족” 공공임대-보증금 대출 등 혜택 적어지원 받아도 반지하 탈출 어려워“10개월 지났지만 아직 물비린내… 하수도 정비-차수판 현실적 지원을” “지상층으로 올라갈 돈이 충분하지 않네요. 여름이 무섭지만 반지하에 남을 수밖에 없죠.” 지난해 8월 폭우 당시 침수 피해를 당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민 이모 씨(25)는 9일 만난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 씨는 당시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자 몸만 빠져나왔다. 가재도구 등이 모두 침수돼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집에선 물비린내가 난다. 이후 몇 번이나 인근 지상층 원룸으로 이사를 생각했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반지하 집 전세 계약도 연장했다. 이 씨는 “정부 지원을 받아도 반지하를 탈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당시 5분만 늦었어도 못 빠져나올 뻔했는데 올해는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관악·동작 반지하 여전히 대부분 거주 9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지난해 폭우 피해가 컸던 서울 관악·동작구 일대 반지하 가구 45채를 조사한 결과 39채(87%)에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밝히며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주민 대부분은 반지하를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8월 폭우 당시 일가족 사망 사고가 발생한 관악구 반지하 주택 바로 옆 빌라 2곳에도 아직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중 1곳은 빗물을 막아주는 물막이판(차수판)도 설치되지 않은 채였다. 반지하 주택을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이주 우선권을 주며 보증금 대출을 지원하고 있지만 조건이 까다롭고 물량이 많지 않다 보니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실정이다. 또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보증금 대출이자, 월세 등의 비용 부담이 여전하다 보니 지상층 이사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관악구 반지하 주민 김모 씨(35)는 “지금 사는 반지하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인데, 인근 지상층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 수준”이라며 “서울시의 20만 원 월세 지원을 받아도 매달 25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작구 반지하 주민 박모 씨(49)도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 해준다고 해서 알아봤는데 직장 및 아이들 초등학교와 거리가 너무 멀어 포기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침수 피해가 잦은 지역의 반지하 주민부터 선제적으로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보증금을 직접 지원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자도생 나선 반지하 주민들 고물가에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저렴한 반지하 주택을 찾는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동작구의 한 부동산에서 만난 김모 씨(32)는 “지난해 침수됐던 지역이라 꺼려졌지만 비용을 고려하니 이 지역 반지하 집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관악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고시생이나 외국인 근로자 등 신림동 반지하를 찾는 수요는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반지하를 못 벗어난 주민들은 장마철을 앞두고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침수를 경험한 동작구 주민 최모 씨(49)는 반지하에 사는 동네 어르신 집을 돌며 무거운 짐들을 바닥으로 내려주고 있다. 최 씨는 “집이 물에 잠기는 과정에서 대피하다 무거운 짐이 떨어져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올해도 비가 많이 온다는데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악구 반지하 주민 김모 씨(33)는 “올해 다시 침수되면 어차피 다 버릴 것 같아서 냉장고 같은 필수품을 제외하곤 가전제품과 가구를 최소화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남아 있는 반지하 주민들을 위한 대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폭우 때 물이 차는 속도를 늦추기 위한 하수도 정비와 물막이판 설치 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폭우를 대비해 임시 거처를 미리 마련하고 주민들이 신속하게 해당 공간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세계기상기구(WMO)는 올여름(6∼8월) 엘니뇨가 발생할 확률을 70%로 예상했다. 2015∼2016년에 이어 7년 만에 ‘슈퍼 엘니뇨’가 찾아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우리 기상청 역시 지난달 발표한 3개월 기상 전망에서 엘니뇨 발달의 영향으로 6∼8월 평년보다 덥고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동태평양 바다의 수온이 따뜻해지는 현상이다. 바다의 수온이 차가워지는 라니냐와 번갈아 3∼7년 주기로 나타난다. 엘니뇨와 라니뇨는 자연 현상이지만 온난화와 중첩되면서 전 지구적인 고온, 가뭄, 홍수, 폭설 등 이상기후를 유발한다. 문제는 ‘슈퍼 엘니뇨’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보통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가량 높으면 엘니뇨로 본다. 슈퍼 엘니뇨는 1.5도 이상 높을 때 발생한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대(UNIST) 폭염연구센터장은 “라니냐가 발생했던 지난해 4월과 올 4월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 차가 2도나 된다”며 “올해 전 지구적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한반도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동태평양에 생긴 대규모 상승기류가 전 지구적 기류 흐름을 바꾸는데 이때 폭염, 국지성 폭우처럼 보다 극단적인 이상기후가 나타날 수 있다. ‘슈퍼 엘니뇨’가 발생했던 2016년 당시 폭염일수(일 최고기온이 33도를 넘는 날)가 22일에 달하는 등 무더위가 찾아왔다. 이에 따라 기상청은 “7, 8월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많을 가능성이 80%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릴 수 있다. 한편, 기상청은 올봄(3∼5월) 전국 평균기온이 13.5도로 전국 단위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50년 만에 가장 따뜻했다고 9일 밝혔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사진)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대화 복귀를 기다리며 MZ(밀레니얼+Z세대)노조 등 다른 노동조합과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전날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에 대해 대화 필요성을 호소한 것. 그는 최근 자신을 둘러싼 ‘위원장 교체 필요설’에 대해서는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기자에게 “한국노총이 돌아오도록 경사노위도 노력할 것”이라며 “그 사이 한국노총 지역·산별 위원장, (MZ세대가 주축인) ‘새로고침 노동협의체’ 등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겠다”고 말했다. 이어 “(양대 노총뿐 아니라) 여러 노조와 대화 창구를 열어 놓고 있다”며 “오늘도 한국노총 지역·산별 노조에서는 계속 연락이 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록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대화를 중단했지만 노동계와의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전날(7일) 한국노총은 전남 광양시에서 긴급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경사노위 대화 불참을 결정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정치권에서 나오는 ‘김문수 교체론’에 대해 “우리(경사노위)가 (금속노련 집회를) 진압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에게 화살이 날아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중단을 두고 책임 공방이 오갔다. 국민의힘은 “떼법이 통하는 비상식적 시대를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노동계를 척결 대상으로 본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한국노총 지도부가 불법 행위에 대한 경찰의 적법한 진압을 이유로 경사노위에 불참하겠다고 하는데, 불법 집회시위를 계속 방치해둬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이날 “불법이 자행되는데 눈을 감아야 하느냐. 경사노위가 중요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원칙을 바꿀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반면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노동계가 곤봉과 캡사이신, 살수차로 무장하고 노동을 적으로 삼는 정부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조동주 기자 djc@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고교나 대학 재학 중 취업에 좌절해 졸업을 늦추는 ‘휴학생’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학 단계부터 실제 채용과 연계될 수 있는 양질의 일 경험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 15세 이상 가구원을 대상으로 매달 실시하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동아일보가 7일 분석했다. 그 결과 15∼29세 청년 비(非)경제활동인구 중 재학 상태에서 학교도 다니지 않고 취업, 직업훈련과 같은 활동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었다’는 청년이 2020년 10만8300명, 2021년 11만800명, 2022년 11만7500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15∼29세 청년 인구가 891만1000명에서 856만7000명으로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작지 않은 증가 폭이다. 이들은 졸업 학점만 수료하고 졸업은 하지 않았거나 휴학한 상태에서 다른 활동도 하지 않고 있는 학생들이다. 다수는 구직이나 그 준비를 위해 학교를 쉬었다가, 취업 실패 등을 이유로 쉬는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명지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강버들 컨설턴트는 “최근 휴학을 고민하거나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졸업을 유예하고 인턴십 자리를 찾는 학생들의 상담이 무척 많이 들어온다”며 “아무것도 없이 졸업하고 나면 취업이 더욱 어려울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휴학하고 졸업도 미루려는 듯하다”고 전했다. 실제 기자가 취재한 재학생 청년들은 모두 재학 단계에서부터 취업과 관련한 경력을 쌓거나 구직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뒤 쉬었다고 답했다. 지방 국립대 졸업을 1년 앞두고 지난해 휴학한 성소연(가명·22) 씨는 “선배들의 입사 실패 소식들을 접하면서 불안한 마음에 휴학하고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1년가량 취업에 도전한 성 씨는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지 못했고, 현재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채 별다른 활동 없이 쉬고 있다. 그는 “여러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넣어 봤지만 서류 전형에서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했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너무 힘들고 지쳤다”며 “지금은 그냥 쉬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 법학과를 나온 김호승(가명·29) 씨도 졸업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휴학한 경험이 있다. 김 씨는 “스물네 살까지 공부만 하면서 달려왔는데 막상 취업하려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내게 어떤 일이 맞을지 알 수 없었다”며 “막막한 마음에 쉬었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런 청년들을 위해 재학 단계 취업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0일 SK하이닉스, 삼성전자, 포스코 등 주요 72개 기업과 함께 서울에서 ‘2023 미래내일 일 경험 사업’ 발대식을 열었다. 취업 준비 초기 단계의 학생부터 졸업 전후 학생까지 2만 명에게 다양한 유형의 일 경험 프로그램을 단계별로 지원할 예정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 경험을 쉽게 찾고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데 모아 통합 공고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 경험이 단순한 경험으로 끝날 게 아니라 채용과 연계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스펙이 되고 결국에는 취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현재 다양한 일 경험의 질을 맞추고 자격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국내 4년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이수영(가명·28) 씨는 졸업 후 대기업 입사를 원했지만 여러 차례 낙방한 끝에 중소 교육 콘텐츠 제작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각종 허드렛일까지 도맡아야 하는 ‘일당백’ 신입 생활에 지쳐 1년여 만에 퇴사했다. 이후 출판사에 들어갔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1년여 만에 그만뒀다. 퇴사한 지 1년이 넘은 현재는 구직 활동을 그만둔 채 쉬고 있다. 이 씨는 “다시 ‘취업 전쟁’에 뛰어들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5∼29세 청년 비(非)경제활동인구 중 학업, 취업 준비 등의 활동 없이 그냥 ‘쉬고 있다’는 청년은 약 39만 명이었다. 동아일보가 고용노동부와 이를 분석한 결과 이들 39만 명 중 직장 경험이 있는 청년이 29만2000명이었다. 기자가 만난 청년들은 구직, 취업, 퇴직 과정에 지쳐 한동안 재취업을 미루거나 포기한 상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번아웃(burnout·극도로 지침)’되어 일을 그만둔 뒤 다시 취업 전선에 나서지 않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재취업 도전 두렵다”… 졸업 3년 지나도 그냥 쉬는 청년 15만명 ‘재취업 번아웃’ 청년구직에 지치고 입사해도 미스매치“힘든 취업 경험 탓 자존감 떨어져”진로 교육-일 경험 기회 늘리고… 中企 지원으로 임금 격차 줄여야 일을 안 할 뿐 아니라 학업이나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청년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사태 당시에는 경제 불황의 여파로 일자리가 감소하며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쉬고 있다’고 답한 청년이 2020년 44만80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그 수가 다소 줄긴 했지만, 전체 청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자존감 떨어지고 도전 두려워” 쉬는 청년들 ‘일하다 쉬고 있는’ 청년 29만2000명의 절반(15만 명)은 졸업 후 3년 이상 지난 상황이었다. 한창 일을 하거나 안정적인 일자리에 진입할 시기에 뒤늦게 ‘쉼’을 선택한 청년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한 번 이상 구직, 취직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지친 청년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구직과 취직, 이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번아웃(burnout·극도로 지침)’이 왔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동아일보가 취업 후 오랫동안 쉬고 있거나 쉰 경험이 있는 청년 9명의 사례를 들어 보니 △오랜 취업 준비와 실패 과정에 지쳤고 △취업한 일자리가 생각보다 힘들었고 △그로 인해 퇴사한 후 다시 취업을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쉬고 있는 주요 이유였다.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했다는 김수진(가명·27) 씨는 취업 과정이 힘들어 한동안 쉰 경우다. 김 씨는 “졸업 이후 23개월 동안 입사지원서만 100개 정도 썼다”고 했다. 그는 “외국어에는 자신이 있었고 교직 이수까지 했지만 자격증 있고 외국어 잘하는 지원자들이 너무 많았다”며 “계속 떨어지다 보니 지쳐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원래 대기업 마케팅팀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었던 김 씨는 취업을 포기하고 약 1년간 쉰 뒤 최근 한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2년제 전문대를 졸업한 뒤 2019년 중소기업에 취업한 주승연(가명·29) 씨는 입사 1년 반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벌써 3년째 쉬고 있다. 주 씨는 “취업 준비만 3년 하다가 입사했는데 막상 들어간 회사는 너무 힘들고 나와 맞지 않았다”며 “취업 경험 탓에 자존감, 자신감이 떨어져 다시 취업에 도전하기도 두렵다”고 밝혔다. 구직과 취직을 반복하다 결국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장기간 취업 포기 상태에 이른 청년들도 있었다. 혈액관리본부에서 근무했던 김태영(가명·29) 씨는 일을 관둔 뒤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다양한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현재는 5년째 쉬고 있는 상태다. 김 씨는 “이제는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찾기 어렵다”며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는 벌 수 있다. 한동안 취업 준비는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니트(NEET)족을 연구해 온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정책연구실장은 “한국 청년들의 졸업 후 취업 소요 기간은 평균 10∼11개월이지만 단기간 내 퇴사 혹은 이직하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며 “일단 취업을 하지만 취업 과정이 힘들고 원하는 일자리와 실제 취업한 일자리의 ‘미스매치(불일치)’도 크다 보니 그만두고 한동안 취업에도 뛰어들지 않는 ‘쉬는 상태’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진로교육 늘리고 임금 격차 줄여야 해결” 청년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매년 수십만 명의 청년이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쉬는 상태’라는 점은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이다. 더구나 이런 청년 중 일부는 자력으로 사회활동에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은둔·고립형 청년이 될 가능성도 크다. 20대 후반부터 7년째 쉬고 있는 유서영(가명·34) 씨는 “공무원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연이어 낙방한 뒤 불안감과 우울함이 커져 집에만 있는 상태”라며 “이제는 재취업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조 씨는 현재 지자체의 은둔·고립형 청년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고 있다. 부실한 진로 교육과 일자리 미스매치로 청년들이 취업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이 ‘번아웃’ 청년을 양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실장은 “중고교와 대학 재학 동안 조기 직업교육을 통해 대부분 졸업 전 진로와 취업을 결정짓는 유럽, 일본 등과 달리 한국의 청년들은 진로, 직업에 대해 교육받을 기회도 없이 취업시장에 뛰어든다”며 “이러다 보니 취업 준비 기간도 길고 취업 후 일자리 미스매치로 퇴사하고 뒤늦게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비율도 높다”고 말했다. 중고교생 단계에서부터 진로를 고민할 기회를 주고 일 경험 기회도 확대해 미스매치를 줄여야 한다는 조언이다. 길현종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일자리의 급여와 처우 차이가 극명하다 보니 모두가 좋은 직장을 향해 달리고, 거듭 실패한 청년들은 낙담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번아웃’ 청년이 느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짚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근로자 사이의 임금, 고용 여건 격차를 뜻한다. 길 본부장은 “이중구조 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 데서 낙오하고 쉬는 청년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중소 규모 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 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이런 곳에 취업한 청년들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우리나라 50, 60대는 주 직장에서 은퇴하는 시점 이후 10년간 평균 소득이 42%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런 은퇴 후 ‘소득 절벽’의 충격은 고소득자와 고학력자들에게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고용패널조사 학술대회에서 오태희 한국은행 동향분석팀 과장과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과 조교수가 발표한 ‘우리나라 고령자의 준비되지 못한 은퇴 이후 소득절벽 효과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고령자의 평균 소득은 정년을 전후한 나이인 58세에 311만 원이었지만 68세에는 180만 원으로 42% 감소했다. 연구진은 한국고용정보원이 2006년 당시 만 45세 이상이었던 중노년층 1만254명을 대상으로 구축한 고령화연구패널에서 연구 조건에 맞는 1948명의 표본을 추출해 소득 변화를 분석했다. 소득 하락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분석한 결과 전체 원인의 영향을 100%라고 했을 때 ‘주된 일자리 은퇴’의 기여율이 40%로 나타났다. ‘연령 증가’(49%)에 이어 두 번째였다. 노화 다음으로 주된 일자리에서의 은퇴가 소득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고학력자와 고소득자에게서 소득 하락 폭이 컸다. 연구진은 고교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 고령자를 고학력자, 상위 50% 이상 소득을 가진 고령자를 고소득자로 분류했다. 그 결과 고학력자는 퇴직 2년 후 소득이 퇴직 전보다 평균 86만 원 떨어지고, 고소득자는 퇴직 2년 후 평균 111만 원 떨어졌다. 저학력자와 저소득자는 은퇴 전후 소득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은 고학력자와 고소득자가 은퇴 전 가진 일자리에 비해 고령 이후 일자리의 급여가 현저히 적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미성숙한 연금제도로 인해 국내 고령자 다수가 늦은 나이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령 일자리의 급여가 높지 않아 상당수 노인이 ‘근로 빈곤’ 상태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고용률은 2021년 기준 34.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데 이렇게 많은 노인들이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 빈곤율 역시 2020년 기준 40.4%로 OECD 1위다. 연구진은 “고령층이 기존 근무에서 습득한 경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하고, 고학력·고소득자들의 경우 주된 일자리에서 더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적절한 유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양적 확대에 집중했던 고령 일자리 정책을 질적 고양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국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려면 원칙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기반한 직무급 체계가 확산돼야 한다고 다수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기본급 체계를 갖춘 상용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중 호봉제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은 35.1%, 성과급제 적용 기업은 35.3%, 직무급제 적용 기업은 27.7%(2022년 6월 기준·복수 응답)이다. 하지만 1000인 이상 기업으로 보면 호봉제 비율이 67.9%나 됐다. 호봉제는 근속 연수가 길어지면 연봉이 기계적으로 오른다. 성과급제는 맡은 일의 성과에 따라, 직무급제는 일의 종류에 따라 연봉이 갈린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호봉제 비율이 높은 이유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정규직 근로자들은 성과급제나 직무급제보다는 오랜 기간 일하면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호봉제를 선호한다. 고용부 조사에서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 중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호봉제 도입 비율은 69.4%,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도입 비율은 30.7%로 2배 차이였다. 국내에서는 직무급제 적용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일부 기술직, 전문직업군을 제외하면 직무 기반 노동시장이 아니다. 연공서열 위주의 임금 문화가 강하다”며 “인프라 조성부터 시스템 변화, 근로자 인식 전환 등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다만 현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연공 중심 임금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직무 표준체계를 확립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확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올 1월 사업 때문에 급히 돈이 필요했는데 은행권은 고금리가 계속되고 있어서 돈을 빌리기가 어려웠어요. 그때 원청이 만든 펀드를 이용해 시중보다 4%포인트 낮은 금리로 대출할 수 있었어요.” 울산 울주군에 있는 화학약품 중소기업 ㈜부승화학 김경민 영업팀 부장은 연초에 위기를 넘긴 상황을 설명했다. 부승화학은 20년 넘게 LG화학에 에탄올 등 화학약품을 납품하고 있는 하청업체다. 원청인 LG화학은 부승화학을 비롯한 하청업체들을 위해 각종 지원사업을 시행해 오고 있다. 하청업체들은 LG화학이 조성한 2061억 원 규모 ‘동반성장펀드’에서 저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각종 안전설비, 납품 관련 장비도 지원받는다. 김 부장은 “지게차, 수분 측정 설비 같은 고가 장비도 원청 지원을 받아 구입했다”고 말했다. 줄잡아 수백 곳인 하청업체 지원은 큰 비용이 들지만 “길게 보면 이득”이라는 게 LG화학 측 설명이다. LG화학 박찬 CSR(사회적책임)팀 선임은 “협력(하청)업체가 열악해 납품 질이 떨어지거나 안전사고가 나면 원청에도 손해”라며 “결국 하나의 생산공동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나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처럼 원하청 간 상생 모델을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아일보는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국내 원하청 이중구조의 문제와 해법을 살펴봤다. ● 中企임금, 대기업의 70%대 → 50%대 원하청 이중구조는 한국 수출주도형 경제의 산물이다. 국가 주도로 수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인력,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부품 생산과 중간 공정을 맡고(하청), 대기업이 완제품 조립과 수출을 맡는(원청) 식으로 기능이 분화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긴 원청과 하청,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불균형이 고착되면서 임금과 처우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기준 통계청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같은 시간을 일하고 받는 임금(시간당 임금총액)이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정규직은 3만7783원, 비정규직은 2만4672원이었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정규직이 2만1758원, 비정규직이 1만6520원이었다. 각각 대기업의 57.6%, 43.7%에 불과했다. 이는 해외와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자료를 보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2002년만 해도 한국 70.4%, 일본 64.2%, 유럽연합(EU) 15개국 평균 74.7%였다. 하지만 16년 뒤인 2018년에는 한국 59.8%, 일본 68.3%, EU 75.7%였다. 일본과 EU는 격차가 다소 줄어든 반면, 한국은 오히려 격차가 벌어진 것. 23일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상생임금위원회 토론회에서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에 집중된 처우, 근속 혜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 위원은 “한국은 장기근속이 대기업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길게 근속하는 편이라 불평등 수준이 우리보다 낮다”고 밝혔다. ● “하청의 쇠락은 원청의 손해… 相生해야” 대기업은 임금이 점점 높아지고 근속 기간이 길어지며 근무 환경도 좋아지는 반면, 하청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하고 궂은일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승인된 48만6754명 중 45만3136명(93.1%)이 30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였다. 이달 1일부터 27일까지 발생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사망자 총 19명 중 11명이 하청근로자다. 이처럼 이중구조 문제는 심각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청 구조를 당장 없애거나, 정부가 기업의 임금 체계에 직접 개입해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원하청은 상생의 관계”라며 “제조업의 경우 원하청 평균 거래 기간이 10년, 비제조업도 7년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하청 간 성과 공유를 활성화하고 상생협력 모델을 발굴하는 등 이해당사자들이 대화, 협의를 통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수 김앤장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연구소장도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ESG 이행 및 공시에 대한 요구가 늘고있다”며 “하청과의 원활한 관계는 곧 기업의 평판과 평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하청과의 상생협력을 강화하는 게 원청의 수출 차원에서도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 정부, 다음 달 이중구조 대책 발표 실제 LG화학뿐 아니라 현대차, SK하이닉스, 삼성전기 등도 상생펀드를 구축하거나, 우수 하청업체 기술 육성에 도움을 주는 등 자구책 차원에서 협력업체 지원에 나서고 있다. 현재의 경직된 고용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선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엄격한 해고나 파견 규제 등 노동 ‘과잉 보호’가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노동시장을 고착화시키고 기업 규모 간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독일, 프랑스, 일본은 근로자의 업무 성과 부진을 해고 사유로 인정하는 등 기업 간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한 나라로 꼽힌다. 성 위원도 “기본적으로 (일자리 간) 이동이 활발하다면 이중구조는 지금보다 훨씬 덜 문제일 수 있다”고 했다. 정부 또한 차별 시정과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상생협력에 앞장선 기업에는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 이에 따라 고용부는 다음 달 원하청 이중구조 해소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원하청 상생 모범 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수돗물에서 발견돼 논란이 된 깔따구 유충은 사실 물속에서 유기물을 분해해 물을 깨끗하게 만들기 때문에 인간에게 익충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지난해 생긴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생물연구팀은 ‘문제적 곤충’들을 연구하고 있다. 갑자기 개체수가 증가(대발생)해 민원이 늘었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곤충들이다. 2020년 인천의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되면서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줬던 깔따구에 대해 박선재 연구관은 “보기에 혐오스러울 뿐 무해한 곤충”이라고 말했다. 몸길이 1cm에 황갈색을 띤 깔따구 성충은 모기와 흡사하지만 입이 퇴화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박 연구관은 “깔따구와 접촉하거나 날아다니던 성충이 입에 들어가면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긴 하지만 실제 국내에서 보고된 사례는 없다”고 했다. ● “무해한 곤충들”… 급증 원인 다양성충이 되면 몸길이 1∼2cm에 옅은 갈색을 띠는 동양하루살이 역시 입이 없다. 물지도 않고 병을 옮기지도 않는다. 성충이 되면 단 며칠간 짝짓기만 하고 죽는 무해한 곤충이다. 박 연구관은 “유충일 때는 오히려 많은 동물의 먹이가 되는 중요한 1차 소비자”라며 “동양하루살이가 사라지면 물속 생태계가 망가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원관이 이런 곤충들을 별도로 연구하는 팀을 만든 이유는 최근 들어 곤충과 관련한 신고나 이슈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2017년 부산항에서 발견돼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일명 ‘살인개미’ 붉은불개미 사건 이후 “못 보던 곤충이 나왔으니 확인해달라”는 식의 신고가 매년 10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생태원 외래생물팀에서 곤충을 담당하는 이희조 전임연구원은 “언론에서 곤충 소식이 보도되고 나면 특히 신고 건수가 급증한다”며 “최근 서울 강남에서 외래종 흰개미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나서 사흘간 50건이 넘는 신고 전화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렇게 민원의 대상이 되는 곤충 중 다수는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서울 은평구에서 대발생한 일명 ‘러브버그’라는 털파리도 마찬가지였다. 박 연구관은 “2017, 2019년 여름 동해안에서 대거 나타나 지자체가 긴급방역에 나섰던 홍딱지바수염반날개는 크기가 큰 데다 공격당하면 사람을 물기 때문에 공포감을 줬다. 이 벌레 역시 사실 해충인 파리를 먹어 치우는 익충”이라며 “여름 피서지에서 발생한 이유도 야외 캠프장, 관광지에 쓰레기가 늘면서 파리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곤충이 대거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원관 환경생물연구팀은 그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후변화로 겨울이 따뜻해져 월동 기간 많이 살아남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특정 지역에만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박 연구관은 “대발생 지역의 생태환경 개선, 먹이의 변화 등도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도 “도심에 공원이 많이 생기고 하천도 있는데 이곳이 다 곤충들의 생활 터전”이라며 “이들 생태계가 개선되며 늘어난 곤충이 도시의 먹이나 조명을 따라 넘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습지보호지역, 산림보호구역 등 자연을 보전하기 위해 개발을 제한한 국가보호지역은 2011년 전국 면적의 6.23%에서 2021년 17.15%로 10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 1인당 도시공원 조성 면적도 같은 기간 8.3㎡에서 11.6㎡로 증가했다. ● 해충·교란종도… “연구로 대비해야”물론 최근 늘어난 곤충들 중 해충이나 생태계 교란 생물이 될 여지가 있는 외래유입종도 있다. 2020년 서울 은평구 봉산 등에서 대발생했던 대벌레는 가로수나 과수에 피해를 줘 해충으로 분류됐다. 최근 인천 연수구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 대거 발생했다는 혹파리도 해충이다. 얼마 전 강남의 한 가정집에서 발견된 마른나무흰개미류나 과거 이슈였던 붉은불개미, 갈색날개매미충, 미국선녀벌레 등은 국내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는 외래종이다. 이들 중 일부는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해충이나 외래종이 아니어도 곤충이 떼를 지어 나타나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불편을 끼친다. 이원훈 경상국립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해충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국제교역량이 늘고 도심 곳곳에 재자연화한 장소들이 늘면서 그동안 사람들이 접하지 못했던 곤충을 볼 기회가 늘었다”며 “이들 중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종도 있는 만큼 미리 그런 종을 연구해놓고 효과적인 방제책, 예방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관은 “곤충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지자체에서 화학적 방제에 나서는데 오히려 이때 뿌리는 약품이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병원성 미생물이나 먹이 등을 이용한 친환경적인 방제법을 찾고 있다. 최대한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는 공존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태계 교란 생물이나 생태계 위해 우려 생물 종류는 국립생태원이 운영하는 ‘한국 외래생물 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종으로 의심되는 곤충을 발견했을 때는 국립생태원 외래생물 신고센터로 신고하면 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수돗물에서 발견돼 논란이 된 깔따구 유충은 사실 물속에서 유기물을 분해해 물을 깨끗하게 만들기 때문에 인간에게 익충에 가까운 존재입니다”지난해 생긴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생물연구팀은 ‘문제적 곤충’들을 연구하고 있다. 갑자기 개체수가 증가(대발생)해 민원이 늘었다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곤충들이다. 2020년 인천의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되면서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줬던 깔따구에 대해 박선재 연구관은 “보기에 혐오스러울 뿐 무해한 곤충”이라고 말했다. 몸길이 1cm에 황갈색을 띤 깔따구 성충은 모기와 흡사하지만 입이 퇴화해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박 연구관은 “깔따구와 접촉하거나 날아다니던 성충이 입에 들어가면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긴 하지만 실제 국내서 보고된 사례는 없다”고 했다. ● “무해한 곤충들”…급증 원인 다양성충이 되면 몸길이 1~2cm에 옅은 갈색을 띠는 동양하루살이 역시 입이 없다. 최근 서울 송파구, 광진구 등에서 대거 출몰해 화제가 된 곤충이다. 이 곤충 역시 물지도 않고 병을 옮기지도 않는다. 성충이 되면 단 며칠간 짝짓기만 하고 죽는 무해한 곤충이다. 박 연구관은 “유충일 때는 오히려 많은 동물의 먹이가 되는 중요한 1차 소비자”라며 “동양하루살이가 사라지면 물속 생태계가 망가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원관이 이런 곤충들을 별도로 연구하는 팀을 만든 이유는 최근 들어 곤충과 관련한 신고나 이슈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2017년 부산항에서 발견돼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일명 ‘살인개미’ 붉은불개미 사건 이후 “못 보던 곤충이 나왔으니 확인해달라”는 식의 신고가 매년 10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생태원 외래생물팀에서 곤충을 담당하는 이희조 전임연구원은 “언론에서 곤충 소식이 보도되고 나면 특히 신고건수가 급증한다”며 “최근 서울 강남에서 외래종 흰개미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나서 사흘간 50건이 넘는 신고 전화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렇게 민원의 대상이 되는 곤충 중 다수는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서울 은평구에서 대발생한 일명 ‘러브버그’라는 털파리도 마찬가지였다. 박 연구관은 “2017, 2019년 여름 동해안에서 대거 나타나 지자체가 긴급방역에 나섰던 홍딱지바수염반날개는 크기가 큰 데다 공격당하면 사람을 물기 때문에 공포감을 줬다. 이 벌레 역시 사실 해충인 파리를 먹어 치우는 익충”이라며 “여름 피서지에서 발생한 이유도 야외 캠프장, 관광지에 쓰레기가 늘면서 파리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곤충이 대거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자원관 환경생물연구팀은 그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후변화로 겨울이 따뜻해져 월동 기간 많이 살아남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특정 지역에만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박 연구관은 “대발생 지역의 생태환경 개선, 먹이의 변화 등도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도 “도심에 공원이 많이 생기고 하천도 있는데 이곳이 다 곤충들의 생활터전”이라며 “이들 생태계가 개선되며 늘어난 곤충이 도시의 먹이나 조명을 따라 넘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환경부·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습지보호지역, 산림보호구역 등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개발을 제한한 국가보호지역은 2011년 전국 면적의 6.23%에서 2021년 17.15%로 10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 1인당 도시공원 조성면적도 같은 기간 8.3㎡에서 11.6㎡로 증가했다. ● 해충·교란종도…“연구로 대비해야”물론 최근 늘어난 곤충들 중 해충이나 생태계 교란 생물이 될 여지가 있는 외래유입종도 있다. 2020년 서울 은평구 봉산 등에서 대발생했던 대벌레는 가로수나 과수에 피해를 줘 해충으로 분류됐다. 최근 인천 연수구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 대거 발생했다는 혹파리도 해충이다. 얼마 전 강남의 한 가정집에서 발견된 마른나무흰개미류나 과거 이슈였던 붉은불개미, 갈색날개매미충, 미국선녀벌레 등은 국내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는 외래종이다. 이들 중 일부는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해충이나 외래종이 아니어도 곤충이 떼를 지어 나타나면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거나 불편을 끼친다. 이원훈 경상국립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해충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국제교역량이 늘고 도심 곳곳에 재자연화한 장소들이 늘면서 그동안 사람들이 접하지 못했던 곤충을 볼 기회가 늘었다”며 “이들 중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종도 있는 만큼 미리 그런 종을 연구해놓고 효과적인 방제책, 예방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연구관은 “곤충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지자체에서 화학적 방제에 나서는데 오히려 이때 뿌리는 약품이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병원성 미생물이나 먹이 등을 이용한 친환경적인 방제법을 찾고 있다. 최대한 생태계에 피해를 안 주는 공존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태계 교란 생물이나 생태계위해우려생물 종류는 국립생태원이 운영하는 ‘한국 외래생물 정보시스템’(kias.nie.r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종으로 의심되는 곤충을 발견했을 때는 국립생태원 외래생물 신고센터(041-950-5407)로 신고하면 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가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평일 저녁에 일찍 끝나면 대부분 집에 가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거든요.” 지난 3월 독일 헤센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한 한국인 회사원이 말했다. 그는 한국 회사 직원으로 독일법인에 파견돼 몇 년째 근무 중이었다. ‘독일에서 일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을 묻자 그는 “차나 집을 손수 고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신기했다”고 했다. “그것 역시 일찍 퇴근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보니 그런 것 같다”며 “그래서 이 나라에 공구가 그렇게 발달했나 보다”고 웃었다. 또 다른 회사에서 만난 독일인 직원은 “평상시 오후 5, 6시면 퇴근해 집에 간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주로 오후 7시 넘어서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기자가 이야기하자 그는 “오후 7시? 그때면 일이 남은 관리자급 외에 일반 직원들은 회사에 남아있지 않을 시간”이라며 “대부분 그 전에 그날 일을 다 끝내고 퇴근한다”고 덧붙였다. ● 독일 근로시간 상한, 한국보다 긴데… 3월 말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독일 등 유럽 근로시간 제도와 문화에 대해 취재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독일의 근로시간이 한국보다 짧고 유연하다는 이야기야 익히 들어왔지만, 막상 가서 본 독일 직장인들의 모습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재택근로가 활성화돼있었고, 시차출퇴근제(정해진 근로시간만 채운다면 서로 다른 시각 출퇴근할 수 있도록 한 제도) 같은 유연근로가 일반적이었다. 독일인 직원의 말처럼 오후 5, 6시면 극히 일부 관리자급 직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퇴근했다. 이른 저녁에도 사무실이 휑뎅그렁했다. 흥미로운 것은 막상 제도를 살펴보니 우리 근로시간이 독일과 비교해 결코 길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일주일 내 법정근로시간 40시간, 연장근로시간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돼있어 더하면 총 52시간이다. 일명 ‘주 52시간제’다. 주 5일을 일하든,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최대 6일을 일하든 총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으면 안된다. 독일의 경우 법정근로시간이 하루 8시간, 연장근로시간은 최대 2시간이다. 이를 일주일로 환산하면 주 5일 기준 50시간, 주 6일 기준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게 된다. 물론 6개월간 주 평균 근로시간을 48시간 이내로 맞춰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대부분 주 48시간 이내로 일하지만, 어쨌든 한 주에 한해서는 최대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독일과 우리의 근로시간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독일이 더 길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상적으로 보면 다르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근로시간 자료에 따르면 독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349시간으로 조사국 가운데 가장 짧았다. 반면 한국은 1910시간이었다. 한국인들이 독일인들보다 무려 561시간 더 길게 일했다. ● 선진적 근로시간, 비법은 정확한 기록 무엇이 문제일까. 기자가 본 두 나라 간 차이의 이유는 근로시간을 정확히 기록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었다. 독일의 기업들은 근로자들의 실근로시간을 정확히 기록했다. 방식은 다양하다. 기계를 이용해 기록하기도 하고, 수기로 각자가 출퇴근한 시각을 관리자에게 제출하는 곳도 있었다. 재택근로자들도 각 회사가 정한 출퇴근 정의에 맞게 근로시간을 기록했다. 예를 들어 한 회사는 직원들이 회사 메신저에 접속하는 시간을 출근시각으로 정해 그때부터 메신저 로그아웃 시간까지를 근로시간으로 책정한다고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를 나설 때도 해당 시간을 기록했다. 한 독일 회사 인사팀 직원은 “식사 시간이 1시간이면 1시간, 30분이면 30분을 실근로시간에서 빼서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생산직 근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자가 방문한 고무 재생공장은 직원이 80명 남짓한 소규모 기업이었는데 이곳 근로자들도 모두 근태기록기기에 출입증을 찍는 방식으로 출퇴근 시각을 기록·관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근로시간이 길고 불규칙하기로 유명한 운송업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차 운행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는 기기를 차체마다 단다고 했다. 재생공장 임원은 “고무운송차량에 달린 내비게이션이 회사와 연결돼 있어서 차량 위치, 운행 시간 등을 회사가 다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정확히 기록하면 뭐가 달라질까? 초과근로가 줄어든다. 그리고 근로자가 원하는 시각에 일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근로시간이 정확히 확인되기 때문에 굳이 직원들을 같은 시각에 출퇴근시킬 필요가 없다. 법정근로시간인 하루 8시간만 근로한다면 누군가는 오전 7시, 누군가는 오전 9시에 출근해도 된다는 뜻이다. 오전 7시에 출근한 직원은 법정근로시간 8시간에 점심시간으로 빠지는 시간 1시간을 더해 오후 4시에, 오전 9시에 출근한 직원은 오후 6시에 퇴근하면 될 것이다. 만약 어느 날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느라 오전 10시에 출근했다면? 8시간 일하고 점심시간은 30분으로 줄여 오후 6시 반에 퇴근할 수 있다. ● 정확히 기록된 근로시간, 저축했다 휴가로 보상 유럽의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라는 것도 사실 이런 시간 관리를 바탕으로 탄생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는 법정근로시간 이상 일한 시간을 모아서 ‘저축’했다가 나중에 돈이나 휴일로 보상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기자가 방문한 독일의 한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하루 8시간이 법정근로시간인데 근로자가 8시간 55분 일했다고 하면 정확히 55분이 (근로시간 저축계좌에) 적립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기업들도 근로시간을 기록하긴 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명세서(임금대장)에 근로시간을 적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급여를 산정하기 위한 기준이라 기업이 대략 산정해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독일에서는 근로자들의 실근로시간을 정확히 기록하고 이를 2년 이상 보관하는 게 법적 의무다. 이런 제도를 토대로 각자 주어진 시간 안에서 출퇴근시간을 정하고 초과근로한 시간은 정확히 보상받다 보니 독일에선 한국에서처럼 괜히 늘어지게 일할 필요도, 서로의 눈치를 보며 퇴근을 미룰 필요도 없었다. 사무실이든, 외부에서든 주어진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만 하면 됐다. 상대적으로 근로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도 근로시간이 늘어져서 좋을 건 없다. 그만큼 근로자에게 초과근로수당을 주고 사무실 가동시간을 늘리는 등 부대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보다 짧은 시간 내 마치고 일찍 사무실 문을 닫을 수 있다면, 즉 근로자들이 효율적, 압축적으로 일한다면 그건 기업 입장에서도 이득일 것이다. 실제 국민 1인의 시간당 생산성은 독일이 1.6배 이상 높다. ● 제도가 문화를 바꾼다 한 대선 후보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친 지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의 다수 직장인들은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오후 8, 9시 퇴근하고 나면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기에도 빠듯하다. 차나 집을 고치는 취미활동 같은 것은 언감생심이다. 이번에 독일을 가보고 느낀 것은 독일의 ‘저녁이 있는 삶’이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과 제도라는 기틀이 먼저 선 뒤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스템과 문화가 도입될 수 있었다. 독일의 경우 이미 19세기 말부터 근로시간에 관한 논의가 있었고 20세기 초 관련 제도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축계좌제, 근로시간 기록 의무도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 도입, 정착한 것이었다. 짧은 근로시간과 유연한 근로 문화는 그 산물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변화는 거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가 수정 보완해 발표할 근로시간 개편안이 그런 변화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고용노동부가 올해 하반기 ‘외국인 가사 도우미’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외국인이 국내 가정에서 일할 수 있도록 비전문취업(E-9) 비자가 허용되는 업종에 가사·돌봄 서비스업을 추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열린 국무회의 비공개 회의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책의 하나로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을 언급하면서 시범사업에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하지만 노동계와 여성계에서 내국인 근로자와의 제도 및 임금 형평성 문제, 실효성, 인권 유린 우려 등을 들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도입에 난항이 예상된다.● 맞벌이 늘고 가사 근로자는 줄고25일 서울에서 열린 ‘외국인 가사 근로자 관련 공개 토론회’에서 고용부는 가사·돌봄 서비스 근로자에게 비전문취업(E-9) 비자를 주는 방안과 일정 시간의 취업 교육을 하는 등의 추진 방향을 공개했다. 현재는 중국·구소련 지역 동포(H-2)나 거주(F-2), 영주(F-5), 결혼이민(F-6)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만 가사 서비스에 종사할 수 있다. 앞으로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인력이 가사 근로자로 취업하기 위해 비자를 받고 한국에 올 수 있게 된다. 고용부는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에 대해 “저출산 대응 및 여성 경력 단절 방지를 위해 가사·돌봄 분야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만 내국인 종사자 규모가 줄어들고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가사 서비스 종사자 규모는 2016년 18만6000명에서 2022년 11만4000명으로 38.7% 줄었다. 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종사자의 33.2%는 50대, 59.0%는 60대로 50대 이상이 전체 근로자의 92.2%에 달한다. 반면 맞벌이 가정 증가로 가사 서비스 수요는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아이돌봄 인력의 부족과 부담을 호소하는 부모가 많은 상황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최저치를 경신하면서 외국 인력 활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외국인 가사 근로자를 도입했다. 2017년 제도를 도입한 일본은 도쿄, 오사카 등 6개 특구 지역에 한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근로자의 출신국이나 서비스 이용자의 자격에는 특별한 제한 조건이 없다. 반면 홍콩과 싱가포르는 근로자의 출신 국가에 제한을 두는 것은 물론이고 이용자에게도 ‘특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가져야 한다’는 식으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돌봄 기대 수준 높아…수요조사 해야”노동계와 여성계는 외국 인력 도입이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국내 근로자들의 사회적 지위에 악영향만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국내 가사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고 양질의 내국인 중·장년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과연 정부가 (외국 인력에 대한) 수요조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 단체에 있다는 한 참석자는 “아이 돌봄 인력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 근로자 수요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실효성 문제를 제기했다.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홍콩 등에서 외국인 가사 근로자에 대한 인권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는데 정부가 깊은 고민 없이 졸속 도입을 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고용부는 가급적 근로자들의 출신국을 ‘의사소통이 용이한 국가’로 제한하고 ‘관련 경력 및 지식 보유 여부, 연령, 언어 능력과 범죄 이력’ 같은 자격 요건을 둘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부터 고용부와 함께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국가자격시험에서 609명이 제출한 답안지가 채점도 하기 전에 정부 기관의 실수로 파쇄되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서중에서 치러진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의 서면 답안지 609장이 채점 전 폐기된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산업인력공단은 매년 3, 4회 정기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실시한다. 올해 1회 시험 총응시인원은 15만1797명. 연서중 고사장에서는 건설기계설비기사 등 61개 종목에 응시한 609명이 시험을 치렀다. 이들이 제출한 답안지는 시험 종료 후 포대에 담겨 공단 서울서부지사로 운반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답안지는 원래 지사 금고에 보관돼야 했지만, 누군가의 실수로 금고 옆에 있는 창고로 보내졌다. 이튿날(지난달 24일) 연서중 답안지를 제외한 다른 17개 고사장 답안지는 모두 공단 채점센터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직원 누구도 연서중 답안지가 누락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창고에 남아 있던 연서중 답안지는 남은 문제지 등과 함께 파쇄됐다. 공단은 이런 사실을 한 달여가 지난 이달 20일에야 확인됐다. 공단 관계자는 “채점 과정에서 누락 사실을 확인했다. 국가자격시험이 매우 많아 시험을 치른 즉시 채점을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공단은 답안지가 폐기된 609명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재시험 등 후속 대책을 설명할 예정이다. 응시자들이 재시험을 원할 경우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고, 시험을 원치 않으면 응시 수수료를 전액 환불할 계획이다. 수수료 면제, 교통비 제공 등 보상안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해당 응시자들 사이에서는 공단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나오며 분노가 들끓고 있다. 어수봉 공단 이사장은 23일 “이번과 같은 일이 발생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저를 비롯한 관련 책임자는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공단은 지난해에도 세무사 자격시험 과정에서 세무공무원 출신에게 혜택을 줬다는 공정성 논란에 휩싸여 고용부 특별감사를 받았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사업장에서 부상 또는 질병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인을 평가하는 모든 과정에 근로자들의 참여가 보장된다. ‘체크리스트’ 형식의 위험성 평가 방법도 보급된다. 22일부터 이 같은 내용의 ‘사업장 위험성 평가에 관한 지침(고시)’ 개정안이 시행된다. 고용노동부는 올해부터 산업안전보건감독의 기조를 처벌, 규제에서 ‘위험성 평가를 통한 자기규율, 예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사업장에서는 ‘위험성 평가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지침에 내용, 시기 등 불명확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안전관리 인력이 부족한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 이런 불만이 컸다. 개정 고시는 사업장의 위험 요소 빈도, 강도를 일일이 산출하지 않아도 노사가 쉽게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한 ‘체크리스트’와 ‘핵심 위험 요인 기술법’ 등을 제시했다. 최초 평가 시기는 ‘사업장 성립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착수’로 명시했다. 공정, 기계·기구의 변동이 잦아 평가를 매번 실시하기 어려운 업종을 고려해 상시평가 제도가 신설됐다. 1년에 한 번씩 해야 하는 정기평가는 앞서 실시했던 위험성 평가의 결과를 재검토하는 것만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해 기업 부담을 줄였다. 위험성 평가에는 사업장의 위험 요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근로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동안 근로자들은 일부 절차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 고시가 개정되면서 위험성 평가의 전 과정에 근로자의 참여가 보장됐다. 또 위험성 평가 결과 전체 내용이 근로자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기존에는 위험성 평가 결과에서 위험이 남은 요소만 근로자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규정돼 있었다. 고용부는 고시 시행에 맞춰 모든 사업장이 원활하게 평가를 이행할 수 있도록 ‘새로운 위험성 평가 안내서’를 발간했다. 안전보건공단 온라인 위험성 평가 지원시스템(kras.kosha.or.kr)에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고용부는 또 위험성 평가 방법 안내서 및 사례집을 제작·배포하고 민간 재해예방기관을 시작으로 6월 중 지방고용노동관서별로 신청을 받아 사업장 안전관계자 대상 설명회를 연이어 개최할 계획이다. 사업장 대상으로 위험성 평가 사용자창작콘텐츠(UCC) 공모전도 연다. 위험성 평가 제도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마련도 추진할 예정이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손가락이 끼었을 당시 어떻게 작업했는지 볼 수 있을까요?” 10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직원 수 50인 미만의 한 중소 인쇄업체 작업실.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들이 30대 남성 근로자에게 질문했다. 이 근로자는 2년 전 이 업체에서 일하다 종이를 자르는 재단기 부속품에 왼쪽 엄지손가락이 끼어 깊게 베이는 창상(創傷) 사고를 당했다. 김종호 산재예방지도과장은 “업체 방문 전 이런 산업재해 기록을 확인했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이후 그는 업체 임원과 안전관리 담당자에게 “사고 이후 작업을 어떻게 개선했느냐”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사이 또 다른 감독관은 재단기에 붙은 안전검사 증명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2년에 한 번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증명서에 적힌 검사 시기는 12년 전이었다. “이 기계의 문제가 뭘까요? 안전점검 2년에 한 번씩 꼭 받으셔야 해요.” “전기설비 앞에 종이 더미가 쌓여 있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김 과장과 감독관들은 작업장 구석구석 위험 요인을 짚어주며 인쇄업체 임원 및 직원들에게 설명했다. ● 산재 78.3%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정부는 올해부터 산업안전보건감독 시 단순히 사업장을 적발, 규제하는 게 아니라 사업장 전반의 위험성을 평가해 기업이 문제를 인지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스스로 구조적 문제를 고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일명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이다. 특히 올해는 중소 규모 제조·건설업 점검에 집중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128명으로 전년 동기 147명 대비 12.9% 줄었다. 하지만 50인 미만 작은 기업에서의 사망자 수는 79명으로 전년과 같았다. 최근 4년간 산업재해 승인 통계를 살펴봐도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4410명 중 3496명이 50인 미만 중소 근로자였다. 전체 사망자의 79.3%다. 사망자를 포함한 산업재해자 수 역시 전체 48만6754명 중 38만887명(78.3%)이 50인 미만 사업장 소속이었다.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과 건설업 종사자가 24만8519명(51.1%)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이다. 정부가 올해 예방체계 구축에 특별히 힘쓰는 이유는 당장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면 50인 미만 기업에서 관련 조사와 처벌이 줄을 이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뿐 아니라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도 부담이 큰 상황이다. 기업들은 법 적용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영세한 업체들의 경우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다. 법이 요구하는 안전관리 조건을 채우기 어렵다. 10일 근로감독 현장에서도 비슷한 불만이 이어졌다. 인쇄업체 임원 A 씨는 “끼임 사고를 막기 위해 인쇄 기계는 롤 방식이 아닌 평판 방식으로 바꿨고, 다른 기계도 밖으로 노출된 채 돌아가는 벨트나 롤러가 없는 내장형 기계를 쓰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인력이 부족하고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한 사람이 이 일 저 일 하느라 뛰어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사고가 나게 마련”이라고 털어놨다. 이런 중소 사업장들의 상황을 감안할 때 단속을 강화해봐야 처벌만 늘 뿐 실제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는 큰 효력이 없을 거라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근로감독이 실제 근로자들의 건강을 지키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처벌에 앞서 이런 작은 기업들의 안전 역량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 현장에 고령·외국인 인력도 늘면서 사고 발생 가능성도 갈수록 커질 전망이라 정부는 단속의 기조를 규제와 처벌에서 자율점검과 예방으로 점차 전환해 나갈 계획이다.● 노사가 함께 위험요인 발굴자기규율 예방체계의 핵심은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위험 요인을 발굴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10일 감독에서도 이런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감독관들은 곧장 현장 실사에 나서는 게 아니라 그전에 약 1시간을 할애해 회사 임원진과 직원들을 대상으로 산업재해 현황과 주요 발생 요인, 예방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업장의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질문했다. “근로자들이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허리를 다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게차에 사람을 인지하는 센서를 부착해야 하지 않을까” 등 마치 기업 내부의 회의 같은 모습이었다. 현장 감독에 나가서도 감독관과 기업 관계자 간 질문과 대화가 이어졌다. 고용부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과 더불어 안전관리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에 취약하지만 안전 설비나 인력 도입에 어려움이 있는 중소 규모 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 안전장비를 지원하는 사업도 올해 시작했다. 스마트 안전장비란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센서 기술 등을 활용한 안전장비다. 50인 미만 중소사업장 등이 이런 장비를 도입한 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 신청을 하면 소요 비용의 80%, 최대 30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202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안전투자 혁신사업’도 계속해 올해 총 3200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안전투자 혁신사업이란 중소 사업장을 대상으로 미인증 이동식 크레인 등 위험 기계를 교체하고 노후·위험공정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소요 비용의 50%, 최대 7000만 원(위험 기계)에서 1억 원(위험공정)까지 지원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중국 고비사막과 내몽골고원에서 발원한 황사의 영향으로 22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고농도 미세먼지가 나타나겠다. 남부 지방에선 초미세먼지 농도도 높게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는 22일 경기 북부와 강원 지역을 제외한 전국의 미세먼지(PM10)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일 것이라고 예보했다. 21일 황사가 유입된 중부 지방의 경우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 단계(㎥당 150μg 초과)를 훌쩍 뛰어넘는 최대 291μg(강원 화천)까지 올랐다.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도 오후 한때 ㎥당 214μg까지 치솟았다. 황사가 북서풍을 타고 남부로 이동하면서 22일에는 남부까지 황사 영향권에 든다. 전라, 경상, 제주 지역의 경우 미세먼지보다 작은 초미세먼지(PM2.5)의 농도도 ‘나쁨’ 수준을 나타낼 전망이다. 황사가 실어 온 작은 먼지의 영향이다. 예보센터는 황사가 23일 오전까지 영향을 미친 뒤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황사 관측일수는 서울 기준 17회다. 5월까지 관측 일수만 따졌는데도 최근 20년 중 올해 횟수가 가장 많다. 지난해에는 한 해 통틀어 5회, 2021년에는 14회였다. 황사가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발원 지역의 기온 상승, 강수량 감소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23일까지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겠다. 22일 전국 아침 기온은 11∼18도, 낮 최고 기온은 20∼27도로 예보됐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저출산 고령화로 유럽의 노동인구가 줄고 있다. 동시에 실업률도 높은 상황이다. ‘일자리 미스매치’(구직 인력이 맞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실업이 발생하는 현상)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직업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의 고용·노동 문제를 총괄하는 니콜라스 슈미트 EU 일자리·사회권 집행위원은 3월 27일 벨기에 브뤼셀 EU 집행위원회에서 진행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 집행위원은 총 26명으로, ‘EU의 장관’과 같은 존재다. 2019년부터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슈미트 씨는 룩셈부르크 노동·고용·사회연대경제 장관을 지냈다. 그에게 최근 유럽의 고용노동 상황을 물었다. ―유럽의 고용노동 현안은 무엇인가. “노동력이 줄고 있다. 최근 프랑스 파업도 고령화 부담 때문에 정부가 정년 연장을 추진하면서 벌어졌다. 사실 프랑스의 정년은 62세로 유럽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다른 유럽 국가 정년은 64, 65세다. 그런데도 노동력이 부족하다. 유럽 각국은 여성 고용률을 높이고 이민자를 많이 받아들여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실업률도 높다고 들었다. “그렇다. 노동력이 부족한데 동시에 실업자도 많다. EU 회원국 평균 실업률은 6.1%(올해 1월 기준)로 한국의 2배 수준이다. 물론 2%인 나라도, 20%인 나라도 있는 등 국가 편차가 크다. 하지만 분명 ‘일자리 불일치(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구직자와 일자리를 연계하는 시스템이 시급하겠다. “별다른 기술을 배우지 못한 채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EU와 각국 정부가 직업훈련에 좀 더 많이 신경 쓰고 예산도 투입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단기 일자리가 크게 늘었는데, 직업훈련을 잘 받은 근로자는 쉽게 해고되지 않고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할 수 있다.” ―산업 변화가 고용시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디지털화, 탄소중립 달성과 녹색 전환 등으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옛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석탄 산업 종사자들은 일을 잃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일자리가 많이 생겼다.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일자리가 2030년까지 유럽에 100만 개 생겨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라도 구직자를 새로 훈련시키는 것이 큰 과제다.” ―유럽의 근로시간은 모범사례로 꼽힌다. EU 지침이 있나. “‘주 6일 기준 48시간’ 지침이 있다. 각국, 각 기업의 노사 합의에 따라 근로시간을 더 줄일 수 있다. 그것이 유럽 근로시간의 ‘유연성’이다.” ―당신의 근로시간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반 직원 대부분은 하루 8시간 이내로 일한다. 그 대신 나도 휴가는 다 쓴다. 지난해 총 4주 휴가를 썼다.” 브뤼셀=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30분 넘게 버스를 기다렸는데 전광판에 적힌 대기 시간이 줄어들지 않네요.” 17일 오후 2시 반.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70대 남성은 “서대문에 가야 하는데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나을 거 같다”며 자리를 떴다. 버스정류장 맞은편 도로에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건설노조원 수백 명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민노총 건설노조가 16, 17일 서울 도심 주요 도로를 점거한 채 1박 2일 노숙 집회를 열면서 일대가 극심한 교통혼잡을 빚었다. 관광객들과 시민들은 도심 한복판을 점령한 채 술을 마시고 노상 방뇨를 하는 노조원들과 길가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틀간 5만여 명 모인 집회로 출퇴근길 혼잡 17일 오후 2시부터 노조원 2만7000여 명(경찰 추산)이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오거리에서 종로구 동화면세점까지 세종대로 6개 차로를 점거하고 1시간 반가량 집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노조 탄압 분쇄, 강압수사 책임자 처벌’ 등의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건폭’(건설폭력) 수사를 받던 중 분신해 사망한 간부 양모 씨의 죽음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다. 집회 후에는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 방면과 양 씨의 빈소가 있는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방면으로 나눠서 행진했다. 서울대병원으로 행진하던 노조원들은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멈춘 뒤 전 차로를 무단 점거하고 30분가량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민은 차량 경적을 울리며 “통행을 막지 말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노조원들은 전날 오후에도 같은 장소에서 2만40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여 집회를 하고 대통령실 방면으로 행진했다. 이틀 동안 도심을 막고 진행된 집회 행진 때문에 교통이 통제되면서 일대에는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17일 오후 3시 기준으로 서울역 방면 세종대로 차량 통행 속도는 시속 2km에 불과했다. 평소 시속 26km 안팎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서울 도심을 찾은 관광객들도 불편을 호소했다. 헝가리에서 온 관광객 레나타 푸츠 씨(29)는 “집회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데 교통마저 통제돼 버스가 안 온다. 무작정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집회 후 노숙장으로 돌변한 서울 도심 전날 모인 조합원들은 1박 2일 노숙 시위를 진행한 후 오전까지 광화문역 일대 인도를 점거했다. 간밤에 조합원들이 먹다 버린 도시락이나 돗자리 등 쓰레기도 인도에 놓여 있었다. 중구 관계자는 “노숙으로 발생한 쓰레기가 약 20t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평소의 2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또 조합원들은 16일 경찰이 집회를 금지한 오후 5시 이후에도 불법 집회를 이어갔으며, 행진을 마친 오후 8시 반경부터는 1만4000여 명(경찰 추산)이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일대에 모여 돗자리, 등산용 매트, 간이용 텐트 등을 설치하고 노숙했다. 일부 조합원은 금연 구역인 서울광장 등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인근에 경찰이 설치한 간이 화장실이 여럿 있는데도 노상 방뇨를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술에 취한 조합원끼리 시비가 붙어 서로 욕설을 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16일 밤∼17일 새벽 노숙 장소 일대에서 조합원 간 시비 2건, 소음 6건, 텐트 설치 관련 민원 1건 등 총 9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서울시는 민노총 건설조합에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무단 사용에 대한 변상금을 각각 9300만 원, 260만 원 부과하고 형사 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지난달부터 연일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강원 동해시 인근 해역에서 15일 오전 6시 27분 규모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올해 들어 한반도에서 규모 4.0 이상의 지진은 처음이다. 기상청은 이번 지진이 강원 동해시 북동쪽 52㎞ 해역(진앙 북위 37.87도, 동경 129.52도) 31㎞ 깊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 규모 횟수 이례적인 지진 동해의 진앙 반경 50km를 기준으로 지난달 23일부터 발생한 지진은 15일 규모 4.0 지진과 그 여진을 포함해 36차례 발생했다. 전날(14일)까지는 규모 2.0∼3.0 안팎의 지진이 34차례 반복됐는데, 이날 지진은 규모 4.5였다. 진원이 얕을 경우 진앙 부근에서 기물이 파손될 수 있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강원 동해시 내륙까지 포함하면 53차례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동해시 내륙에서 발생한 지진과 해역에서 난 지진은 공간적 거리와 주변 단층 분포가 달라 연관성은 낮지만 시기가 유사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기상청은 최근 동해 지진을 좁은 지역에서 소규모 지진이 반복되는 ‘군발 지진’으로 추정했다. 2013년 충남 보령, 2020년 전남 해남 인근 해역에서도 몇 달간 각각 60회, 70회가량 지진이 발생한 적 있다. 하지만 이례적인 규모 4.5 지진에 기상청은 긴장하고 있다. 1978년 이래 역대 20위에 해당하는 센 지진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진을 본진(本震)으로 본다면, 앞서 발생한 지진은 더 이상 군발지진이 아닌 ‘지진의 전조’인 전진(前震)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날 지진 이후 오전 8시 6분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1.8 지진은 여진(餘震)이 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만약 이후 규모 4.5가 넘는 지진이 발생하면 오늘(15일) 지진도 전진으로 분류한다”며 “밥솥에 김이 새듯 작은 지진으로 응력을 분출하고 끝날 수도 있지만 계속 단층이 쪼개지면서 더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지진은 양쪽에서 미는 힘(횡압력)으로 한쪽 판이 다른 판 밑으로 파고든 ‘역단층’에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어떤 역단층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울릉단층 북쪽 방향에 있는 작은 단층에서 난 것으로 추정된다”며 “2011년 동일본 대지진(규모 9.0) 이후 지각 깊숙한 곳까지 힘의 불균형이 생겨 계속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 내륙 피해 가능성은 낮아 시민들 사이에선 ‘잦은 지진이 대형 지진의 전조 아니냐’는 불안이 크다. 최근 일본 서쪽 해역에서도 지진이 잦아 이를 연계한 우려가 있다. 보통 우리나라가 포함된 유라시아판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진원 깊이는 5∼16km이다.이번 지진은 약 31km다. 진원이 깊다는 것은 지진이 발생한 단층이 부드럽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조창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장은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기보다는 점점 안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해당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동해안에 해일이 밀려오는 등 피해를 입힐 정도가 되려면 규모 6.0 이상, 최소 규모 5 후반대 이상 지진이 발생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기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환태평양 지진대로부터 먼 유라시아판에 속해 있고, 일본과 지진판이 아예 다르다”고 말했다.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