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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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01-18~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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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23%
문화 일반7%
인사일반7%
역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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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3%
종교3%
  • [광화문에서/조종엽]도심에도 노거수 살 수 있게 나무에 흙바닥 돌려주자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앞 전나무숲길엔 2006년 쓰러졌다는 육백 살 나무가 있다. 텅 빈 속에 곰이 들어앉아 쉴 것 같은 크기다. 그 건너편 그루터기, 곰곰이 들여다보면 어지러워질 만큼 동심원이 많은 나이테 위에서 ‘멍 때리며’ 앉아 있으면 ‘사람의 삶은 참 짧다’ 싶다. 겨울 산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고요 속에서 늙고 키 큰 나무들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다람쥐가 뒤척이며 떨어뜨린 눈이 살포시 지면을 두드릴 때면, 나무의 물관이 지표 아래에서부터 한껏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럴 땐 거대하고 말 없는, 뿌리 박아 움직이지 않는 초연한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이 가슴을 채운다. 강원이 산이라면 제주는 숲이다. 거문오름 곶자왈에서 ‘돌은 낭(나무) 의지, 낭은 돌 의지’라는 제주 속담처럼 돌을 붙잡고 깊이 뿌리 내린 거목과, 그 위를 다시 콩짜개덩굴이 뒤덮은 모습을 보노라면 ‘고다마’(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숲의 정령)가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 것만 같다. 이런 기분은 이젠 도시를 떠나서야 느낄 수 있게 됐지만 전통시대엔 노거수(老巨樹)가 일상의 일부였다. 마을 어귀마다 느티나무가 정자나무로 서 있었고, 산기슭의 당산나무는 신령하게 여겼다. 그 시절 경이와 신비는 마치 밥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물론 산업화를 거치며 대부분 사라졌지만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도 오래된 마을엔 여전히 아름드리나무가 꽤 있다. 다만 거기서 놀라움은 좀 다른 것이다. ‘이런 채로도 생존할 수 있다니!’ 건물과 도로가 장악한 공간의 한구석에서 노거수는 산다. 늙고 큰 나무가 빗물과 양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 한쪽, 가로세로 1m 정도밖에 안 되는 흙바닥이 전부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마저도 길을 정비하면서 원래 지표보다 높게 흙을 덮은 탓에 뿌리엔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다. 노거수가 이런 환경에 처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처음으로 데이터로 밝혀졌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18일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노거수의 생육 환경과 나무의 활력에 관한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팀이 느티나무 노거수 25주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나무의 가지와 잎이 펼쳐진 넓이만큼의 지표, 지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자라는 노거수는 광합성을 잘하지 못했다. 지하에 장애물이 있으면 뿌리가 뻗지 못하고, 바닥을 콘크리트로 덮으면 그만큼 공기와 물, 영양분이 땅속으로 전해지지 못하는 탓이다. 마찬가지로, 바닥에 흙을 두껍게 덮어 물이 땅속으로 침투하기 어려울수록 나무의 활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낮았다. 노거수 주위의 콘크리트를 뜯자. 뿌리가 숨을 쉴 수 있게, 인위적으로 덮은 흙은 걷어내자. 연구진은 전화 통화에서 “벤치를 놔두는 정도야 괜찮겠지만 적어도 수관(樹冠) 폭만큼은 바닥을 자연 상태로 둬야 노거수의 생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천연기념물 가운데는 600∼700년을 산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도 있다. 우리가 오래 살 나무를 천천히 죽이고 있는 셈이다. 말라 죽는 노거수와 함께 우리의 경이로움도 사라져 간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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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실패한 역사? 오히려 배울 점 많다

    “동학군을 진압해 달라고 청군을 불러들여 일본군이 한반도에 상륙할 구실을 내주고 조선 몰락의 물꼬를 튼 이가 고종이다. … 권력 유지를 위해 외세에 의존하려 했던 용렬한 군주 고종이 미화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책머리에 던지는 저자의 질문이다. 저자는 우리 역사 인식이 “은폐와 과장, 왜곡,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면서 이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 위화도 회군은 ‘명분 없는 군사 쿠데타’였으며, 만약 고려 우왕이 이성계 대신 최영 장군을 보냈다면 요동에 진출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해볼 만했던’ 원명 교체기, 쿠데타로 집권해 명분이 부족했던 이성계가 스스로 굽히고 명나라의 신하를 자청했다는 것이다. 반면 명청 교체기엔 막강한 상대에게 무모하게 대들다가 깨졌다. 저자는 “‘병자호란은 미개한 만주족이 문화국 조선을 유린한 것이며 만주족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절개를 높이 기린다’는 식의 역사 서술은 국내 정치 투쟁의 명분을 지키고자 국가 안보를 포기함으로써 백성을 고난과 치욕으로 몰아넣은 정치 세력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축적된 해양 역량을 포기한 조선의 해양 정책’, ‘성리학 질서에 매몰된 일류 과학기술’ 등 역사에서 배울 교훈을 조곤조곤 짚는다.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저자가 DBR(동아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을 보완해 묶었다. 저자는 “실패한 역사는 전략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재”라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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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전쟁 중 발행된 종이 조각, 세계경제 흔드는 금융 무기로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발표하는 날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연준이 부여하는 달러의 가치에 지구 반대쪽 나라에서 수백만 명의 일자리가 왔다 갔다 한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달러의 힘’이다. 국제정치·경제전문가로 앞서 ‘지정학의 힘’(아카넷)을 펴냈던 저자가 달러의 탄생과 패권 구축 과정을 다뤘다. 달러의 등장은 전쟁과 직결돼 있다. 영국 식민지 시대 초기 미국에선 옥수수나 비버 모피, 담배 등이 물품화폐로 쓰였다. 영국은 미국이 주화를 주조하는 걸 막았다. 화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차용증서인 ‘신용증권’을 발행해 지폐처럼 통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대륙의회는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콘티넨털 달러’를 발행했다. 이 화폐는 금, 은과 바꿔준다고 명시됐지만 사실 재원이 없었던 데다, 영국이 독립군에 타격을 주려고 위조해 뿌리면서 가치가 폭락했다. 전쟁에서 이긴 미국은 화폐 발행권을 각 주가 아닌 연방의회가 갖도록 하고 달러를 단일 통화로 발행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순식간에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지대로 떠올랐다. 당시 1달러는 금 1.6g에 해당했다. 오늘날과 같이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만으로 가치를 갖는 달러는 남북전쟁으로 등장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연방정부의 재정 상태는 엉망이었다. 링컨은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불환지폐(금화, 은화 등과 태환이 불가능한 화폐)를 발행하고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가 국가 권력에 의해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 화폐는 뒷면이 녹색이라서 ‘그린백’이라고 불렸다. 1879년 금 태환이 재개되면서 그린백은 소멸했지만 오늘날의 달러 역시 그린백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이 밖에도 중앙은행의 부재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한 연준의 등장,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달러가 국제 금융의 중심에 서는 과정, 영국의 유로달러시장 발명, 1971년 달러의 금 태환 정지, 달러 기반의 신용 확장과 금융 혁신 등 달러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살핀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에도 한 장을 할애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제 달러 결제는 대부분 미국 은행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은 외국인에게도 손쉽게 달러 거래를 금지할 수 있다. 굳이 유엔을 통해 제재할 필요도 없다. 자산을 동결하고, 거래와 송금을 금지하는 미국의 금융 제재는 치명적이다. 달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중국은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면서 달러 패권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중국은 정치와 법, 규제 환경 면에서 투자자와 각국 중앙은행의 신뢰가 부족하다. 세계의 안전 자산은 여전히 미국 국채 같은 달러 자산이다. 이는 미국이 갖춘 제도와 금융시장 때문이다. 저자는 “통화 패권은 글로벌 세력 균형의 핵심적인 열쇠”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소비를 줄이고 수출을 늘리는 대신 더 많은 달러를 ‘수출하며’ 국제수지 적자를 메우고 있다. 저자는 “달러 체제는 대안이 없어서 지속되는 차선의 시스템일 뿐”이라며 “다른 화폐가 달러를 위협하는 상황이 된다면 미국의 정책 실패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꼼꼼한 자료 조사가 눈에 띄는 책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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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당신의 아픔이 당신이 되지 않길

    1944년 봄 헝가리에 살던 열여섯 살의 저자는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부모님은 도착한 날 가스실에서 살해됐다. 나치 친위대 간부를 위해 강제로 춤을 춰야 했던 저자는 속으로 어머니의 조언을 생각하며 견뎠다. “네가 마음에 새긴 것은 아무도 네게서 뺏을 수 없단다.” 수용소의 생지옥을 견디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시체 더미에서 구조된 저자는 쉰이 넘은 나이에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40년 이상 미국에서 내담자들의 심리를 치료해 왔다. 그런 저자가 ‘해로운 생각을 멈추고 삶을 선물로 바꾸는 법’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수용소에서 울었던 기억이 없다고 했다. 당장 생존이 다급했기 때문이다. 풀려난 뒤에도 홀로코스트에 관해 말하는 걸 꺼렸다. 그렇게 오랜 세월 회피했던 감정들은 나중에 닥쳐왔다. 중학교에 입학한 딸이 홀로코스트에 관해 묻자 남편은 저자가 아우슈비츠에 있었다고 알려줬다. 저자의 가슴이 그제야 무너져 내렸다. 종전 30여 년이 지난 뒤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방문해서도 거의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 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회피했던 감정들과 마주한 뒤엔 몽땅 밖으로 쏟아낸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저자는 “우리는 연약한 작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모든 현실과 똑바로 마주 보는 것이 좋다”며 “감정은 감정일 뿐 우리의 정체성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상실, 범죄 등을 경험한 이들을 상담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 통해 ‘나를 제외한 모든 관계는 언젠가 끝난다’, ‘내면의 대본은 다시 쓰일 수 있다’, ‘분노 안에는 해소되지 않은 슬픔이 있다’, ‘오직 나만이 나를 해방해줄 수 있다’ 등 치유를 위한 열두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책을 읽고 사람들이 ‘내 고통은 그녀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대신 ‘그녀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악의 감옥은 나치가 나를 가두었던 감옥이 아니다. 최악의 감옥은 내가 스스로 만들었던 감옥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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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日, 간논지불상 韓에 기증하면 오랜 악연이 좋은 인연 될 것

    진즉 일본에 돌려줬어야 했다. 약탈당한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장물을 취득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12년 10월 한국인 도둑들이 일본 쓰시마(對馬)섬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 국내로 밀반입한 고려 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 얘기다. 지난달 26일 대법원은 이 불상의 소유권이 일본 사찰에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2013년 1월 도둑들이 잡힌 지 10년 9개월 만이다. 그동안 법원 판결은 왔다 갔다 했다. 2017년 1심은 정부가 불상을 충남 서산 부석사에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원래 부석사 소유인 불상이 오래전 도난이나 약탈을 통해 일본에 넘어갔다고 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간논지는 불상의 취득 경위를 소명할 증거를 내지 못했다. 불상을 왜구가 약탈했을 가능성이 큰 것도 맞는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올해 2월 나온 2심 판결은 뒤집혔다. 왜구의 약탈 정황은 인정되지만 불상이 제작, 봉안된 14세기 초 고려 사찰 ‘서주(瑞州) 부석사’와 현 부석사가 같은 절이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또 불상의 소재지였던 일본의 민법에 따라 간논지가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부터 20년 이상 불상을 점유했으므로 소유권은 간논지에 있다는 판결이었다. 법 논리상 일본 법을 따른 것일 뿐 우리 민법을 따라도 결론은 같았다. 대법원은 2심의 일부 판단은 틀렸다고 봤다. 근처에 부석사라는 이름의 다른 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현 부석사는 고려 시대 부석사를 그대로 계승한 권리의 주체가 맞는다는 것. 하지만 불법 반출의 개연성만으로는 일본 간논지의 소유권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긴 소송을 거쳤지만 단순한 일이다. 기자는 약탈당했거나 무단으로 국외 반출된 문화재가 고국의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누구보다도 소망한다. 그러나 강제로 빼앗긴 물건인 것 같다고 해서 다시 훔쳐 오는 일이 정당화되긴 어렵다. 불상이 제자리를 찾길 바라는 유서 깊은 절 부석사와 그 신도들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그러나 불상을 돌려주지 않은 채 부석사에 봉안했다 해도 ‘(약탈당했다가) 훔쳐 온 불상’이라는 꼬리표를 떼진 못했을 것이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에 보관된 불상은 향후 정부가 반환 절차 등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간논지 측에 “불상을 한국에 기증해 달라”고 제안하고 싶다. 수백 년간 신앙의 대상으로 모셔 온 불상을 돌려달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소송이 오래 이어지면서 감정의 앙금도 쌓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악연을 오늘날의 좋은 인연으로 바꾼다면 부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당초 불상이 일본에 건너가게 된 건 아무래도 악연이었던 것 같다. 한국 도둑들의 절도는 또 다른 악연을 만들었다. 간논지가 한일 우정의 마중물이 돼 준다면 한국인들도 마음이 크게 움직일 것이다. 일본 정부도 나서 달라. 1965년 한일 문화재협정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의 한국 문화재를 한국에 기증하는 건 양국의 문화 협력에 기여할 것이고, 이를 권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불행한 역사도 오늘날의 선의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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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신임 위원장에 이재진 교수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신임 위원장에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59)가 선임됐다. 임기는 3년. 이 신임 위원장은 한국언론학회장, 한국언론법학회장,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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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 라운지]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심포지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언론정보대학원장 겸 사회과학대학장 한동섭)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창립 60주년, 언론정보대학원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언론학교육 60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11월 7일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심포지엄을 연다.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안동근 교수가 ‘언론학교육 60년, 교육프로그램 변화의 역사’, 손동영 교수가 ‘언론학교육의 현재와 미래’, 박진우 교수가 ‘AI 저널리즘과 인간 저널리즘, 그리고 저널리즘 교육’을 주제로 발표를 진행한다.이 밖에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 김경모 연세대 교수, 윤석민 서울대 교수, 박정찬 전 연합뉴스 사장, 정준형 SBS 기자, 성지영 MBC 기자 등 학계와 언론계 주요 인사가 패널로 참여해 토론을 벌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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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금관훈장 받은 전통가요, 딱 맞는 제 이름 찾아주자

    한국인에게 음악은 기록의 첫 페이지부터가 엘레지(elegy, 만가·挽歌 또는 애가·哀歌)다. 2000여 년 전 어느 새벽 한 남자가 흰머리를 풀어헤친 채 깊은 강물을 건너려다 최후를 맞는다. 끝내 남편을 붙잡지 못한 아내는 공후(箜篌·고대 현악기)를 타며 마지막으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부른다. 곡조는 전해지지 않지만 애절한 노랫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엘레지의 여왕’으로 불리는 가수 이미자 씨가 21일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대중음악인이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 훈장을 받은 건 처음이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래 64년 동안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그의 위상을 볼 때 때늦은 감이 있다. 오래 폄하됐던 전통가요(트로트)가 뒤늦게나마 제 대접을 받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 씨가 1964년 내놓은 ‘동백 아가씨’는 당시 가요 프로그램에서 35주간 1위를 했지만 1년 만에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됐다. 일본의 엔카(演歌)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됐던 탓이다. 하지만 엔카와 전통가요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것은 당연했다. 성장기를 조선에서 보냈고, 아리랑을 편곡하기도 했던 엔카의 대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1904∼1978)가 “한국의 멜로디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건 잘 알려져 있다. 한일 양국의 민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동시에 서양음악과 결합하면서 비슷한 양식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백제 미마지가 고대 일본에 기악무를 전했고, 정읍사 같은 백제 노래도 일본에 전해졌을 것이다. 이 씨의 노래에 대한 금지 조치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가 저자세 외교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자 여론몰이 차원에서 내렸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전통가요는 옛 우리 노래의 적통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가요 ‘가시리’에서 김소월의 시로 이어진 절창(絶唱)이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동백 아가씨’)로 터져 나왔던 것이다. 많은 전통가요엔 우리 옛 노래와 마찬가지로 그리워하는 이의 하심(下心·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 담겨 있다. 대체로 자유로운 개인이 강조되는 K팝의 흥망과는 별개로 전통가요는 앞으로도 오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공무도하가에서처럼 기어이 물을 건너려 할 수밖에 없는 좌절(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公竟渡河)과 그를 어찌하지 못하는(장차 임을 어이할꼬·當奈公何) 존재의 근원적 비극이 담겼기 때문이다. 다만 전통가요라는 명명은 엄밀해 보이지 않는다. 근대 들어 여러 나라와 접촉하며 변화 발전한 측면이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반대로 미국의 ‘폭스트롯’에서 기원한 ‘트로트’라는 말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면면히 이어 내려온 노래라는 걸 보여주지 못한다. 더구나 이 씨는 20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에서 “전통가요를 이어가는 가수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요즘은) 트로트라는 장르로 잘 이어받고 있습니다만 지금의 활발한 리듬의 트로트와는 별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통가요가 다시금 변화한 근래의 트로트와는 구별되길 바란다는 취지다. 전통가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딱 맞는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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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풍경화처럼 펼쳐진 생명의 역사

    “노스슬로프를 배회하던 말과 그 뒤를 쫓던 동굴사자에게 드넓은 스텝은 영원할 듯 보일 테지만 장구한 시간 규모에서 보면 영속성이란 환상이다. 얼음이 물러나면 비가 한 방울만 내려도 말들이 발굽을 힘차게 내딛던 딱딱한 땅은 이내 무너져내린다. 명멸하는 작은 불빛 하나에도 오로라는 사라진다.”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 연구원이 지구 생명 역사의 주요 장면을 장대한 풍경화처럼 그려낸 책이다. 약 2만 년 전 신생대 플라이스토세의 알래스카에서 시작해 눈에 보이는 크기의 생물이 나타난 지 얼마 안 지난 5억5000만 년 전의 오스트레일리아 에디아카라 언덕까지, 시간을 거슬러가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2만 년 전엔 아일랜드의 대서양 연안부터 땅이 드러난 베링육교(지금의 베링해협)까지, 역대 최대 연속 생태계였던 ‘매머드 스텝’(매머드가 살기 좋은 춥고 건조한 초원 지역)이 존재했다. 큰 짧은얼굴곰은 뒷다리로 서면 어깨높이가 3m에 이르는 매머드를 1m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조랑말 같은 크기의 알래스카말이 서로 몸을 맞대며 추위를 달랬고, 아프리카 사자보다 10% 더 크고 덥수룩한 털이 있는 유라시아동굴사자가 이들을 노렸다. 매머드 스텝은 약 1만4500년 전 급속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난해지고 습도가 높아지면서 이탄(식물이 퇴적돼 분해된 탄소화합물) 습지가 늘어나 토양이 산성화된 것. 먹을 것은 적어졌고, 푹푹 발이 빠지는 웅덩이는 동물들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당시 동물들 가운데 상당수는 화석과 인류가 그린 벽화로만 남았다. 책은 신생대의 6개 세(世·epoch)와 고생대와 중생대의 9개 기(紀·period)에 각기 한 장(章)씩을 할애한다. 유려한 문장으로 드러내는 과거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금과는 ‘다른 세계(other lands)’다. 저자는 “멸종 뒤에도 생명은 복구되고 종 다양화가 뒤따른다.…종종 놀라울 정도로 다른 세상을 창조하지만 최소한 수만 년이 걸린다. 복구는 잃어버린 것을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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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도덕은 유전자의 산물? 이의 있습니다

    인간의 문화를 진화의 산물로 설명하려는 연구들이 적지 않다. 인류가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진화에서 그것이 이득이 됐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수긍이 갈 때도 있지만 다소 고개를 갸웃하게 될 때도 많다. 인간이 놀랄 만한 이타성을 보이고, 고도의 사회를 구성하며, 수많은 위대한 예술작품을 창조하고, 영성(靈性)과 신비에 빠져드는 것 모두가 단지 진화에서 유리했기 때문일까. 이 같은 의문을 품어본 적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은 영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손꼽히며, 런던대 버크벡칼리지 교수로 미학을 가르쳤던 저자(1944∼2020)가 2013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했던 특별강연을 담고 있다. 저자는 과학만이 세계를 해석할 특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과 도덕성을 제대로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그저 유전자의 복잡한 부산물이라고 봤다. 그와 같은 사회생물학의 입장에선 “도덕성은 인간 유전 물질을 손상 없이 유지하는 것 외의 다른 명백한 궁극적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우리가 무엇이었느냐’로 치환할 수 있다고 전제한 채, 인간의 조건을 단순한 원형으로 끌어내기 위해 생물학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대신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고유한 인격의 세계다. 저자는 인간성이란 유기체로부터 ‘창발하는’ 특징이라고 봤다. 육체를 갖고 있다고 인간성이 생물학적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는 것. 인간성은 유기체가 인격적 관계를 맺을 때 창발한다. 인격체의 만남을 통해 이뤄진 근본적인 도덕 감정을 인식해야 인간만이 가지는 인격체로서의 성격을 해명할 수 있다. 현대 윤리학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가’와 같은 딜레마에 사로잡혀 도덕적 판단을 허깨비로 만들었다는 것. 영미 사회철학에 대해서도 사회가 ‘계약’으로 형성됐다고 이해해 도덕에 대한 냉소로 빠져들 길을 열어놨다고 비판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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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단아하게 빛나는 삶 속의 문장들

    “마른땅에 보슬비가 내리듯이, 건조하고 닫혔던 마음에 조금씩 설렘의 동요가 일어나며 한 편의 글은 시작된다. 마치 농부가 대기의 미세한 기운을 감지하면서 농작물과 교감이라도 하듯이. 때로는 한 문장이, 때로는 문장 전체가. 어떤 때는, 드물지만, 핵심이 되는 영상이 자리를 잡으며 그 설렘은 일어난다. 그것은 하나의 음계일 수도 있으며,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는 하나의 어조(톤)에 멈추기도 한다.” 주요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소설가이자 서강대 프랑스문화학과 명예교수인 저자의 글 ‘나는 어떻게 쓰는가’의 첫머리다. 글쓰기의 설렘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저자는 글쓰기는 “시작과는 달리 곧장 긴 낙담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글은 일단 이 부인할 수 없는 흥분 어린 희열로 열린다”고 했다. 저자가 ‘잠깐 비켜서서 자유롭고 싶을 때’ 쓴 산문을 모은 책이다. 산문집으로는 1994년 낸 ‘수줍은 아웃사이더의 고백’(문학동네) 이후 29년 만이다. 저자는 1988년 중편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 ‘오릭맨스티’ ‘첫 만남’ ‘열세 가지 이름의 꽃향기’ ‘겨울, 아틀란티스’ 등을 내며 사회와 역사를 다채로운 문법으로 다뤄왔다. 산문집 역시 교단에 선 경험, 여행자로서의 체험, 좋아하는 작품 등을 소재로 한 단아한 문장이 빛난다. 자연과 종교,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통찰도 엿볼 수 있다. “삶의 무수한 이방인에 대한 성숙한 한 인간의 태도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무수한 다름의 타인과의 ‘동행’이 아닐까 합니다.”(‘현대를 극복하는 공감과 환대’에서) 글쓰기를 두고선 이같이 비유했다. “그러나 대체로 사막은 아름답고 순수하다. 그것이 모래사막이건 돌사막이건 바위 사막이건, 모두 다 나름의 개별적 아름다움과 버려진 지역에서 영글어 깊어진 순수가 있다. 그러나 그 안에 갇히는 것은 위험하다. 사막의 정의는 결여이기에 그곳에는 신기루가 있다. 사막과 신기루, 이 두 단어는 내게 자주 세상과 글쓰기의 은유였다.”(‘지금 생각나는 몇 가지 비유’에서)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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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만날 수 있어 감사한 추석… 잔소리 삼키고 진심 전하길

    “토란국에 솔잎떡을 새로 차려(芋羹松餠○初新)/마루 위에서 은근히 모친을 위로하네(堂上慇懃慰母親)/자매와 형제가 한 사람 적다고 탄식하니(姊妹弟兄歎少一)/올해 추석은 가장 마음이 아프네(今年秋夕最傷神)”(‘하재일기·荷齋日記’에서) 궁과 관청에 그릇을 납품했던 중인 출신 지규식은 1900년 추석을 엿새 앞두고 수구(水龜)라는 아홉 살 아이를 병으로 잃었습니다. 명절을 맞아 토란국을 끓이고 송편을 차렸지만 그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집 뒤엔 대추가 전보다 배나 달려 한가득 따보지만, 주고 싶은 아비의 마음을 아이는 이제 알 수가 없습니다. 지규식은 이런 심정을 시로 지어 일기에 적었습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가족이란 애증이 깊은 관계다 보니 귀성길 정체를 헤치고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 마주해도 보고팠던 마음처럼 말이 나오지 않는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박남수 시인은 읊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서/바라보는 중추(仲秋)의 달은/그리움의 거울./이북에 계신 할머니를 그리며/미주(美州)에 간 아내를 그리며/내가 지금 귀뚜라미처럼/추운 몸을 떨고 있다” 딱 100년 전 추석도 그랬습니다. 1923년 추석 다음 날인 9월 26일 동아일보엔 ‘총독부제2회 안부조사도착’이라는 제목 아래 간토대지진 생존자의 명단이 빼곡히 실렸습니다. 그해 9월 1일 발생한 대지진 소식을 듣고 가족의 생사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이들이 명단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을 겁니다. 그날 본보 사설은 이렇게 썼습니다. “‘추석이지만 쓸쓸하다!’ 이것은 비상(非常)히 슬픈 말이다.” 1933년 10월 추석 즈음엔 돈 벌러 만주로 떠난 오빠를 그리는, ‘고향에서 어린 누이’가 쓴 편지가 게재됐네요. “오늘은 8월 한가위 푸른 하늘에 밝은 달은 말 없이 흐르는 깊은 밤!…머나먼 오빠 계신 그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오라버님의 고생 (생)각할 때 가슴은 바작바작 타오르는 듯 안타까울 뿐입니다.” 삼국사기는 신라 유리왕이 6부(部)를 정한 뒤 패를 갈라 길쌈 승부를 한 데서 가배(한가위)가 유래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지는 편이 술과 밥을 내면서 놀았다는 것이지요. 좀 이상한 건 다음 구절입니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뒷날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졌다 해도, 노는데 왜 슬펐을까요. ‘회소’를 ‘모이소(集)’나 ‘아소(知)’ 등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습니다만 “(만날 수 없는 영혼들이 모두) 모여 소생(蘇生)하라”는 간절함을 담은 건 아니었을지, 근거 없는 추측을 해 봅니다. “가을이 되었으니/한가위 날이 멀지 않았소/추석이 되면/나는 반드시/돌아간 사람들을 그리워하오”(천상병, ‘한가위 날이 온다’에서)라는 시구처럼 말이지요.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 추석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잔소리는 다시 삼키고, 진짜 마음을 전해 봅시다. “보름달이다./…/백수 건달바/아들딸도 보아라,/바람으로 돌아오는/은의환향 밤길엔/그리움의 사연으로도/달은 채워지나니”(김경희, ‘추석’에서)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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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메타버스는 고대에도 있었다?

    “예수의 형상이 남아 있다는 ‘토리노의 수의’가 상상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사회가 그 천에 다른 세계를 향한 믿음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토리노의 수의가 요즘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디지털 아트 같은 가상 오브제이다. 종교적 상상력으로 입장할 수 있는 세계와 와이파이로 입장할 수 있는 세계는 생각보다 비슷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에 관해 인문학적으로 살핀 책이다. 메타버스라고 하면 온라인 게임의 한 종류 정도로 막연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가 태고부터 언어와 상상력만으로 메타버스를 창조해왔다고 말한다. 1만여 년 전 만들어진 터키의 신석기 유적 괴베클리 테페는 메타버스의 원형이다. 1000년에 걸쳐 거대한 바위를 날라 만든 이 유적엔 전갈과 으르렁대는 맹수, 날갯짓하는 독수리와 머리 없는 인간의 조각 등 신화적 상징이 넘쳐난다. 고고학자들은 사람들이 이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협동하면서 신석기 혁명이 앞당겨졌을 거라고 본다. 피라미드나 올림푸스 신전 등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메타버스는 인류가 처음 존재했을 때부터 지녔던, 현실에 없는 세계를 창조하려는 본성의 최신판이라는 것이다. 고대에도 가상세계는 사람들이 사건과 정체성, 규칙, 사물이 실재한다고 믿기에 존재했고, 현실의 인간사회와 서로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며 개인과 사회의 부와 만족감, 의미를 증진했다. 자연스레 오늘날 좋은 메타버스의 조건도 찾을 수 있다. ‘이용자의 내적 동기와 자기 결정성을 충족시키며, 다른 사람과 충분한 상호 작용이 가능하고, 현실 세계와 가치 교환이 가능한’ 메타버스다. 저자는 21세기 안에 컴퓨터와 뇌 신경이 직접 연결되는 포스트 휴먼 사회가 등장하고, 사람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지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때는 컴퓨터가 시뮬레이션한, 현실보다 더 정교한 가상 세계 수천 가지 속에서 다채로운 삶을 병행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글로벌 가상현실 소프트웨어 회사 임프라버블의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가 쓴 책답게 메타버스에 관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 고찰이 펼쳐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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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만의 미학 ‘남미의 피카소’ 보테로 별세

    인체와 사물을 풍만한 양감으로 표현하며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한 콜롬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이자 조각가 페르난도 보테로(사진)가 15일(현지 시간) 모나코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 AP통신 등에 따르면 보테로가 이날 폐렴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그의 딸이 콜롬비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알렸다. 보테로는 어릴 적 투우사 양성 학교에 들어갔지만 곧 그만뒀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며 1951년 19세 때 보고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60년 수중에 몇백 달러만 가진 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대상을 마치 풍선이 부푼 듯한 모습으로 묘사한 화풍으로 주목받았다. 다빈치나 벨라스케스, 얀 반 에이크의 유명한 작품을 패러디한 작품도 사랑받았다. 인체의 새로운 해석, 냉소와 유머가 뒤섞인 표현, 화려한 색채로 남미의 정서를 표현하며 ‘남미의 피카소’로 불리기도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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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아시나요

    애기여새는 날개 끝이 빨간 조류다. 미국에선 이 새들이 대낮에 날다가 담이나 아크릴 유리, 창문에 충돌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여러 차례 보고됐다. 과학자들이 부검해 보니 새들 대다수가 지나치게 익은 브라질후추나무 열매를 대량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간 파열이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인(死因)은 “에탄올에 취한 상태로 날아가던 도중에 단단한 물체와 충돌하여 유발된 외상”으로 추정됐다. 새들이 음주 비행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던 것이다. 새도 사람처럼 취하면 혀가 꼬인다. 연구에 따르면 금화조는 알코올이 섞인 주스를 마시자 노래가 살짝 엉성해지고, 구성이 어지러워지고, 감상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취한 사람이 특정 단어를 말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새도 음절마다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달랐다. 동물들 사이에서 흔한 약물 도취 행위와 진화와의 관계를 소개한 교양 과학서다. 무척추동물부터 영장류까지 수많은 생물 종이 의약용이건 기분 전환용이건 일부러 향정신성 물질을 섭취한다고 한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진화학자인 더들리 박사는 원숭이가 발효돼 알코올 성분이 섞인 과일을 그냥 과일보다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걸 발견했다. 그는 “알코올의 냄새와 맛을 향한 강렬한 끌림은 완전히 무르익어서 영양분이 풍부해진 과일을 찾도록 도와줌으로써 영장류 조상에게 선택적 이익을 선사한다”는 이른바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세웠다. 향정신성 물질을 향한 인간의 친화성이 인류 이전부터 이어졌다는 것이다. 곤충도 약을 사용한다. 제왕나비는 금관화에서 카데놀라이드라는 화합물을 섭취한다. 독성이 있는 이 화합물을 몸속에 저장해 포식자나 기생충으로부터 자신과 알을 보호한다. 마약에 취한 동물의 움직임도 소개한다. 문어는 원래 고립적인 동물이지만 실험에서 마약 엑스터시에 취하게 만들면 다른 문어의 몸을 마구 휘감았다. 벌은 코카인에 노출되면 인간처럼 내성과 금단 현상을 보였다. 저자는 “합법이든 아니든 마약 소비를 지지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며 “마약 중독과 그와 관련된 행동의 원인에 대해 많이 알수록 부작용을 완화하기가 더 유리해진다”고 말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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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마음의 병 앓는 내 아이를 위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나는 흐트러진 머리로 아이의 짧은 삶 속 여러 순간들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자는 딸 안나의 팔목에서 자해한 자국을 목격한다. 안나는 흔히 ‘조울증’이라고 알려진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는다. 조증과 울증이 교차하며 반복되는 병으로 치료받지 않으면 질환이 없는 이들에 비해 자살률이 30배나 높다. 돌이켜보면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괜찮은 척하는 데 선수’였다. 저자는 대학병원 류머티스내과 교수고, 남편도 병원에서 일한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가족을 이해하는 건 전문지식이 있는 부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은 진솔하다. 저자는 부부가 각자 근무하는 병원은 일찌감치 치료할 곳에서 지웠다는 것, 딸이 입원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공격성이 드러나면서 힘들었다는 것, 아이가 병 때문에 힘들어할 때 대마초라도 흡입해서 고통을 잊기를 바라는 마음에 해외에 거주하는 것을 고려했다는 것 등 딸과 함께한 7년의 투병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저자는 입원에 대해 불필요하게 중대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여러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도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고, 때에 따라 일생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악화된다면 미리 입원하는 편이 낫다는 것. 치료와 일상 생활을 병행하며 스스로 제동을 걸기 어려울 때가 있기에, 삶에 이따금 브레이크를 잡아 주는 수단으로 입원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과 가족들에게 “이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여느 신체질환과 다를 바 없는 질환임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의 질곡에서 고통을 덜 수 있을지, 그리고 가족 간에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손잡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것이 책을 쓴 이유다. 저자는 묻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적 없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게 데는 일이 얼마나 많나. 정신질환자라고 낙인찍지만 낙인이 없다고 정상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우울 증상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도 거의 없다. 어디까지가 질병인가? 누가 환자이고 누가 정상인가? 많은 이들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이 아닐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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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조종엽]친일파 박춘금으로 드러난 대일본제국의 자가당착

    “2000만 명(의 조선인)이 잠자코 있지 않을 것이다. … 내선(內鮮·일본 본토와 조선) 간에 유혈 참사를 보는 일이 없다고만은 볼 수 없다.” “우리들은 식민지가 아니다. 일본이 강하기 때문에 잡은 것도 아니고, 조선이 약하기 때문에 잡힌 것도 아니다.” “같은 국민이면서 차별적으로 다루는데, 야마토혼을 심어준다는 논리는 통할 수 없는 일이다.” 퀴즈 하나. 일제강점기 제국의회를 향해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은 누구일까. ①독립운동가 여운형 ②아나키스트 박열 ③친일파 박춘금. 뜻밖에도 정답은 ③이다. 오해가 있을까 싶어 미리 말하지만 박춘금(1891∼1973)은 명백한 반민족행위자다. 그는 친일단체를 육성하던 총독부의 원조를 받아 폭력단체 상애회를 조직하고 일본의 조선인 노동자를 착취했다. 동아일보가 총독부의 친일 폭력단체 구성을 비판하자 사장이었던 고하 송진우 선생 등을 유인해 폭행한 이력도 있다. 1924년 하의도 소작쟁의가 일어나자 상애회원을 동원해 농민들을 습격하는 등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노동쟁의, 소작쟁의, 반일운동 등 집회 때마다 깡패들을 동원해 탄압했다.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그를 ‘일본인의 집을 지키는 개’라고 불렀다. 역사가이며 사회학자인 오구마 에이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교수는 최근 국내 번역된 저서 “‘국민’의 경계: 오키나와·아이누·타이완·조선”(소명출판·원제 “‘일본인’의 경계”)에서 한 장을 할애해 그의 행적을 재조명했다. 저자가 특히 초점을 맞춘 건 박춘금의 제국의회 활동이다. 박춘금은 1932년 중의원 선거에서 도쿄 니시구에 입후보해 적지 않은 돈을 뿌리며 당선됐다. 현재까지도 조선인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유일한 인물이다. 박춘금은 그해 6월 첫 의회 등단을 시작으로 조선인에게 참정권과 병역의무 부여, ‘내지(일본 본토)’와 조선 간의 도항(渡航) 제한 철폐 등을 요구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했다. 조선이 식민지가 아니고, 조선인도 똑같은 제국의 신민이라면 차별하지 말고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근본적으로는 이의가 없다”면서도 시기상조를 내세우며 요구를 거절하거나 묵살했다. 일제가 내건 ‘내선융화’와 ‘일시동인(一視同仁·조선인도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천황의 동일한 신민이라는 것)’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박춘금의 당선부터가 일제로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일본 본토의 조선인에게도 참정권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차별을 공공연하게 공언할 배짱도 없던’ 법의 공백 상태에서 예상치 못하게 조선인 의원이 출현했던 것. 책은 이처럼 일제가 동화를 표방했지만 차별한,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닌’ 존재들을 탐구하면서 ‘탈식민’의 길을 찾아간다. 저자는 조각난 팩트를 현재적 관점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인물의 복합성을 드러내면서 마침내 감춰졌던 체제의 맨얼굴을 까발린다. 박춘금을 두고는 “그의 궤적엔 제국의 마이너리티들의 굴종과 저항의 양가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역사 속 인물을 재조명한다는 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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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세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 티보르 버르거 콩쿠르 1위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14·사진)이 2일 스위스 시옹에서 폐막한 2023 티보르 버르거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와 주니어 심사위원상, 위촉곡 최고 해석상을 수상했다. 김서현은 1위 상금 2만 스위스프랑(약 2984만 원)과 특별상 상금 3500스위스프랑(약 522만 원)을 받는다. 이번 콩쿠르의 최연소 본선 진출자인 김서현은 “콩쿠르에 만 26세 이하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 도전하게 됐다. 훌륭한 음악가들을 만나고 함께 연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예원학교에 재학 중인 김서현은 2022년 토머스 앤드 이본 쿠퍼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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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니체와 사르트르가 자전거 경주서 만난다면

    “니체의 페달링은 민첩했고 공중을 부양하는 듯하면서도 명료했다. … 이 등반가 철학자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그가 느낀 고통의 독특한 신호였는데, 너무나 존재감이 있다 보니 고통을 겪은 게 아니라 고통을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니체는 자전거와 놀고 있는 듯했다. 고통과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고통을 의지로 승화시켰던 철학자 니체가 자전거 경주에 나갔다면 이렇게 페달을 밟았을까. 손꼽히는 철학자들이 프랑스의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한다는 설정의 픽션과 철학 에세이가 섞인 책이다. 사르트르는 선수들에게 ‘앙가주망’(현실 참여)을, 마르크스는 단결을 촉구한다. 파스칼은 공허감과 무의미에 대항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나치의 편을 들었다는 논란이 있는 하이데거는 ‘(유대인인) 프로이트에게서 폴크스가이스트(민족정신)를 느낄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독일 팀 코치는 과학자인 아인슈타인. 그는 말한다. “자전거는 간단해요. 거리가 줄도록 가속을 하면 됩니다.” 저자는 올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 10위를 기록한 프로 사이클 선수이면서 철학 석사 학위도 갖고 있다. “사이클 선수에게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떤 엑스터시 같은 것이 찾아온다. 내가 나 밖으로, 아니면 내 정신 밖으로 빠져나가 어딘가로 들려 나가는 기분. 스포츠 지구력의 엑스터시는 몸과 현재로의 회귀이다. 니체가 말하기를, 이것은 디오니소스적인 체험, 즉 영원한 회귀이다.” 철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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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부 “홍범도, 독립군 몰살 ‘자유시 참변’ 연관 의혹”… 학계 “확인 안돼”

    국방부는 28일 “홍범도 장군은 1921년 6월 러시아(소련)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시베리아)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이전키로 결정한 주된 이유로 들었다. 국방부는 “홍 장군이 자유시로 이동한 이후 보인 행적과 독립운동 업적과는 다른 평가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자유시에서 소련 적군(赤軍)이 일제에 쫓겨 모여든 독립군 부대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며 전투가 벌어진 사건이다. 홍 장군과 부대가 적군 편에 서서 독립군 공격에 가담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 국방부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홍 장군이 소련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공산당의 자유시 참변 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사실, 자유시 참변 발생 후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되는 등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그의 공산주의자 행적을 뒷받침할 소련 정부문서를 인용하면서 “(당시) 홍범도 장군은 순순히 무장해제하는 편에 섰다는 평가”라며 “이때 독립군 측이 400명에서 600명까지 사망했고 약 500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을 재판하는 위원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라고 했다. 홍 장군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소련의 지도자 레닌으로부터 권총과 상금 등을 받았고, 1927년엔 정식 소련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이력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선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홍 장군 부대가 전투에 가담했다는 기록 자체가 확인되지 않았고 오히려 홍 장군이 휘하 장교들과 인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했다는 증언이 당시 병사 회고록에 나와 있다는 것. 자유시 참변이 시베리아와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 계열 독립군 세력 사이의 주도권 다툼인 만큼 간도에서 투쟁을 벌인 홍 장군은 이해관계가 없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유시 참변을 연구한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자유시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독립군에 대한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한 배경에 대해서도 “독립군의 어른인 홍 장군이 재판에 회부된 독립군 부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판관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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